스포츠 중계도 많고, 야외 나들이도 늘어나는 요즘 같은 계절에 증가하는 질환은 뭘까? 당연히 골절 등 외상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뜻밖에 6월과 7월에 조심해야 하는 질병 중 하나는 통풍이다. 한국인이 즐기는 ‘치맥’의 소비가 가장 왕성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통풍에 대한 위험은 커진다. 통풍의 위험성과 예방에 대해 대한류마티스학회 산하 통풍연구회의 송정수(宋禎秀) 회장을 통해 들어보았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대한류마티스학회 통풍연구회 송정수 회장
흔히 통풍은 이름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통증이 느껴진다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런가 물어본 질문에 송정수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심지어는 고양이가 걸어가는 진동에도 통증이 생긴다고 하고, 방문을 여닫는 진동에 의해서도 통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통풍으로 인한 고통은 여자들의 산고(産苦)보다 더 심하다고 하죠. 통풍 발작은 주로 밤이나 새벽에 오는데 관절에 생긴 통증에 의해 잠을 깨서 그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러다닐 정도로 아프고, 쉬는 시간이 없이 뼈를 부수는 듯한 통증이 며칠간 계속돼 참기 힘들고 통풍이 생긴 다리를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로 통증이 심합니다.”
이렇듯 무시무시한 병 통풍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요산 때문이다. 요산은 음식을 통해 섭취되는 퓨린(purine)이라는 물질을 인체가 대사하는 과정에서 몸속에 남게 되는데, 이 요산의 혈액 내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정이 관절의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들러붙는 질병이 통풍이다. 통풍은 관절의 염증을 유발하여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재발성 발작을 일으키며, 요산염 결정에 의한 통풍결절은 관절의 변형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환자를 불구로 만든다.
고령일수록 더욱 위험한 병
나이가 들수록 통풍이 위험해지는 이유는 요산이 몸에 계속 축적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40세가 넘으면 통풍 발생 위험이 크다고 판단한다. 청소년기 이후부터 요산이 몸에 쌓이기 시작하여 20~40년 동안 요산은 높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무증상 고요산혈증) 시기를 거쳐 몸에 축적된 후에 발생하기 때문. 물론 유전적인 요소나 음주, 비만과 같은 요산이 증가하는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은 20대나 30대에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통풍은 남성에게 위험한 병으로 불린다.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는 에스트로젠이라는 여성 호르몬이 폐경 전까지 몸에서 나오는데, 이 에스트로젠은 몸에서 요산 배출을 강력하게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폐경기 이전의 여성에게서는 거의 통풍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폐경기 이후에는 통풍의 발생률이 남성과 같은 비율로 증가해 폐경기가 지난 이후의 60~70대 여성들도 주의해야 한다고 송 회장은 조언했다.
술 줄이고 물 많이 마셔야
나이가 많은 시니어들의 경우 생활환경이 좁아지고, 체력이나 관절 등의 문제로 운동이 어려워진다. 이럴 경우 예방할 방법에 대해 송 회장이 내놓은 답은 음식에 있었다.
“고령으로 인해 운동량이 줄어든다면 몸에서 생산되는 요산의 양을 줄이면 됩니다. 그러려면 우선은 혈중의 요산농도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술을 절대적으로 줄이거나 중단해야 합니다. 또 퓨린이 많이 들어있는 고기나 생선을 너무 많이 섭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물을 하루에 2ℓ이상 마셔서 요산을 소변으로 배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음식 중에서 한식은 탄수화물과 섬유소, 단백질, 무기질 등이 골고루 섞여 있어 과식만 하지 않는다면 통풍에 걸릴 위험이 많지 않다. 다만 기름진 튀김 요리나 퓨린 함량이 높은 소나 돼지의 내장, 생선은 통풍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조절 가능하나 완치되지 않는 병
통풍은 크게 4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무증상 고요산혈증이 20~40년간 지속된 후 급성 통풍성 관절염이 생기고, 간헐기 통풍, 만성 결절성 통풍, 4단계로 진행된다.
무증상 고요산혈증 기간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피검사를 해서 요산이 7.0 mg/dL 이상 나오면 무증상 고요산혈증이라고 판단한다. 급성 통풍 관절염은 엄지발가락이나 발등처럼 침범된 관절이 심하게 붓고 아파서 걷지를 못할 정도가 되는데 7~10일 후 통증이 저절로 사라진다. 그리고 6개월에서 2년 후 다시 통증이 찾아온다. 이렇게 10년 정도 지나면 만성 결절성 통풍으로 진행한다. 이 상태가 되면 통풍 발작이 여러 관절에서 더 자주 발생하고 더 오랜 기간 통증이 지속되고 중풍이나 심장병, 만성 신부전 등과 같은 합병증도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통풍에 대해 송 회장은 완치는 어렵고 약물로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요산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평생 복용해야 합니다. 통풍은 완치의 개념으로 치료하지는 않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이 조절하는 개념으로 치료합니다. 복약지침을 잘 따르고 정기적인 혈액검사로 요산 수치를 5mg/dL 정도로 잘 유지를 하면 관절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심각한 합병증이 생기는 것도 거의 완벽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치료를 안 하면 사망에 이르는 병
통풍은 합병증도 만만치 않은 질환이다. 통풍을 10년 이상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때에는 만성 결절성 통풍으로 진행되는데 그런 경우에는 관절이 망가져서 불구나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요산으로 이루어진 통풍결절이 장기적으로 몸에 쌓이면 통풍 발작뿐만 아니라 퇴행성관절염도 발생한다. 요산이 관절에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혈관과 콩팥에도 쌓이면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동맥경화, 중풍, 심장병, 만성 신부전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흔히 통풍은 관절이 아픈 병으로 치부하고 생명과는 무관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이 때문이다. 통풍 환자의 주된 사망 원인은 관절염이 아니라 만성 신부전이나, 심장병, 중풍 등의 만성 성인병이므로 이런 합병증을 막기 위해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하면서 통풍 치료를 제대로,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한다. 특히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송 회장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환자들은 통풍치료 순응도가 외국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급성기 통풍발작 때에는 약을 잘 먹다가도 증상이 없어지면 약을 중단하는 비율이 외국에 비해 높아 안타깝습니다”라고 설명하고, “통풍은 발, 특히 엄지발가락에 많이 발생하므로 발에 심한 염증을 동반한 통증이 생긴다면 통풍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으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조언했다.
도시락은 먹는 즐거움,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행복, 그리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설렘을 준다. 맛이 있든 없든, 모양이 예쁘든 아니든 도시락 뚜껑을 여는 그 자체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락 나들이를 계획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팁을 준비했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네이버 요리 파워블로거 리즈쿡 이현주(blog.naver.com/cooklhj)
한국인들의 첫 서양 나들이는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에 비해 늦었다. 개항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30년 이상 늦어진 까닭이다. 중국의 개항은 아편전쟁 후인 1842년(남경조약), 일본의 개항은 1854년인 데 비해, 한국은 일본과의 개항조약을 1876년(강화도조약), 미국·영국과는 1882년에 맺었다. 또 일본이나 중국은 서양문물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각국을 ‘견학’하지만 우리에겐 이 같은 의욕이 부족했다.
조선은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정부 차원에서 허용된 몇 개 항구를 제외하고는 외국과의 해로와 육로를 통한 교류와 통상을 금지하여 문을 잠갔다. 바로 ‘쇄국정책’이다.
조선은 주변 국가들에 비해 약하다고 스스로 평가하여 접촉을 가능한 한 피하려 한 것이다. 교류가 빈번하면 강대국의 영향이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이 결과 정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 정권의 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독교를 금지한 근본적인 배경이다. 단지 중국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1년에 네 번 조공 사절을 보냈다.
중국의 명(明)왕조 역시 외래족인 몽골제국 원(元)을 몰아내고 건국되었기 때문에 외부와의 거래는 중국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태조 주원장(朱元璋) 때부터 대외접촉을 억제했다. 주변국들의 조공도 3년에 한 번으로 제한했다. 조선에 대해서는 평화가 정착된 후 교류 확대를 허용했다.
조선 정부는 일면 중국과의 접촉을 정부 차원으로 제한하면서 동시에 중국에게는 국경을 철저히 감시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조선인의 압록강·두만강 월경은 극형으로 처벌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자기 뜻대로 되던가.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멈추어 주지 않고’ 조선이 혼자 꿈속같이 편안히 살려고 하나 주변국들이 내버려두지 않았다. 국제정치가 그런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 학자들은 1860년대 이후 조선이 중국과 일본 외에는 중국의 허락이 있어야 개항할 수 있다고 내세운 것은 핑계이며 ‘조선의 쇄국은 그 뿌리가 서울에 있다’고 평한다.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의 한반도 진출이 본격화되고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야심에 대한 풍문이 베이징(北京)이나 도쿄(東京)에서 끊임없이 나도는 가운데 중국은 조선이 미국·영국 등 서양 국가들과 수교하도록 주선한다. 서양 국가들을 이용하여 러·일을 견제하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 전략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서양 국가들은 조선이 자기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수교했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국이며 중국의 속방(屬邦)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조선에 특명전권 공사를 파견했다. 미국이 일본과 중국에 파견한 공사와 동등한 직급이다. 영국은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으로 공인되어야 러시아가 열강의 동의 없이 조선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이에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이 조선 문제는 텐진(天津)에서 자기와 먼저 논의하자는 요청을 무시하고 조선 정부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택했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그동안 정치권에서 밀려나 있던 대원군이 다시 조정을 장악하자 중국은 경악한다. 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복귀하면 조선을 개방시켜 러·일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밑바닥부터 뒤집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은 조선에 군대를 파견, 대원군을 지지한 세력을 진압하고 대원군을 텐진으로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전통적으로 중·조 종속관계는 ‘정교금령(政敎禁令)’, 즉 ‘내정과 외교’의 자주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조공, 책봉 등 형식적, 의례적인 문제들을 제외하면 조선이 내정이나 대외문제를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독립국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모호한 ‘종속관계’를 내세워 마치 원(元)나라 시대 고려에 주재한 다루가치와 같이 조선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려 나선 것이다. 이제 조선은 기막힌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중심인물이 원세개(袁世凱)이다. 이홍장(李鴻章)이 파견한 원세개는 서울에 주재하면서 조선 정부를 장악했다. 1859년 생으로 대원군을 데리고 인천에 들어온 것이 1885년 10월 3일(양력)이니 이때 26세 청년이었다. 그는 1894년 청일전쟁 이전까지 오늘날 을지로의 중국 대사관 자리에서 ‘유안 다이런(袁大人)’으로 마치 총독처럼 행세했다. 우리나라가 1946년 10월 서울의 지명에서 일본식 이름을 정리할 때 ‘을지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원세개 등 중국인들의 본거지를 수(隋)양제를 무찌른 을지문덕 장군의 정신으로 제압하려 한 것이었다.
원세개는 서울 주재 외교단의 수장(doyen) 직을 맡으라는 서양 외교관들의 권고를 거부한다. 자기는 중국이 조선에 파견한 외교관이 아니라 조선 문제를 전담한 이홍장(李鴻章)이 조선의 정치를 감독하라고 파견한 ‘주찰조선 총리교섭 통상사의(駐紮朝鮮 總理交涉 通商事宜)’라고 말한다.
그는 조선과 중국은 한가족이라면서 외교사절들을 초청할 때도 자신이 주빈 자리에 앉고 조선의 늙은 외무대신을 말석에 앉혀 손님들을 접대하고 시중들게 했다. 말이나 가마를 타고 궁중으로 들어가거나 고종을 배알하는 자리에서도 기립하지 않고 인사문제에도 개입했다.
서양 열강은 이에 중국의 조선 통제를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조선정책을 재평가하기 시작한다. 미국은 1884년 말 “조선에서 미국의 이해는 경제적인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서울 주재 미국공사의 지위를 특명전권공사에서 변리공사(minister resident)로 한 단계 격하시킨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던 영국도 중국과의 협조가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하면서 조선 독립에 대한 지지를 포기해 버린다.
조선은 중국의 압력을 감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과거와는 판이해졌다. 열강들과의 수교와 만국공법의 도입으로 평등성에 기초한 유럽적 국제관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과거에는 중국만이 강대국이었으나 이제는 중국을 굴복시킨 강대국들이 포진하고 있다. 1885~1887년 영국의 거문도 철수는 중국을 통한 교섭이 실패한 후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해결됐다. 국내에서도 중국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독립당-개화파가 대두했다.
이에 정부는 1884년(고종 21) 조선·러시아 수교조약 체결 후 조선에서 세력을 확대해가는 러시아에 보호를 요청하는 밀약을 두 차례 추진하며 미국에 외교관을 파견하여 우리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조치를 취한다. 해외 나들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영문과 졸, 한국일보사 기자, 런던정경대 석ㆍ박사(외교사 전공).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일학연구원장 등 역임. 저서 등.
총선투표로 공휴일이었던 날(4월 13일).
아침에는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차츰 개이면서 화창한 날씨가 봄바람을 부채질했다. 필자는 일찍 투표를 마치고 파주 헤이리마을로 봄나들이 갔다가 쇼나 조각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합정역 1번 출구로 나와 2200번 광역버스를 타고 헤이리 1번 출구 앞에서 내린 뒤 맨처음 둘러본 곳이 '레오파드락갤러리의 쇼나 조각 갤러리 & 숍'. 건물 바깥에 전시된 조각물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갤러리 여사장님의 손짓에 따라 들어갔다가 아프리카대륙의 강한 생명력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쇼나(Shona) 조각’을 만난 것이다.
쇼나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가장 큰 부족의 명칭인데,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에서 독특한 석조 문명을 이룩한 조각의 나라로 알려졌다.
쇼나 조각가들은 스케치나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오로지 정과 망치, 끌, 불, 사포 등 전통적인 도구만으로 자연석에 깃들어 있는 형태를 쪼아내고 연마해 조각한다. 특히 이 조각은 작업할 때 들리는 돌의 내면의 소리 때문에 '혼의 예술'이라 부른다.
쇼나 조각은 짐바브웨에서 싹텄지만 현재는 대표적인 제3세계 미술양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 조각은 신비감과 생동감을 자아내며 자연스러운 질감과 정서적인 풍부함을 머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록펠러, 로스차일드가, 찰스 왕세자 등은 쇼나 조각의 대표적인 애호가이며, 피카소도 쇼나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파리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대표적인 미술관들이 쇼나 조각을 전시를 하고 있으며, 비평가들로부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쇼나 스톤즈(SHONA STONES)’은 짐바브웨에서 나는 사문암 종류이며, 200가지가 넘는 다양한 색상이 있다. 무늬가 표범과 닮았다는 레오파르드락, 아프리카의 녹색 금으로 알려진 버다이트, 보랏빛 운모 라피도라이트,지구 최초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버터제이드, 귀한 코발트스톤과 오팔스톤 등이 있다. 돌 속에 녹색, 갈색, 보라색, 하얀색, 에메랄드색 등 저렇게 다양한 빛깔이 들어 있다는 것도 놀랍고, 돌을 깎아서 이토록 아름답고 능숙하게 조각을 하는 솜씨도 놀라웠다. 이런 희귀한 돌을 채굴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울까?
여러 가지 빛깔의 쇼나스톤을 붙인 ‘파라오 조각’도 유명하다. 너무도 실감 나게 만들어진 호박조각, 앙증맞은 부엉이들이 대표적이다.
여사장님은 궁금해하는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해외생활을 오래 한 연유로 우리 발음이 좀 특이했던 사장님이 아름다운 보라빛의 라피도라이트 하마를 선물로 줬다. 앙증맞은 게 장식하거나, 독서하며 책장을 넘기다 고정할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라피도라이트는 리튬이 함유되어 있어서 진정효과가 나며,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것을 산 사람이 구입하던 날로 바로 큰 계약도 체결했다며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도 생길 거라 했다.
헤이리예술인마을 초입에서 쇼나 조각을 감상한 것만으로도 그날의 나들이는 대박이었다. 헤이리에 가시는 분들은 꼭 한 번 들러서 작품감상 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지인들에게 쇼나 조각을 선물한다면 받는 분들에 매우 특별한 선물이 되리라 생각하며 갤러리를 나왔다.
헤이리예술인마을은 1998년 파주의 15만 평 부지에 꾸며진 복합문화예술 마을로, 다양한 창작 공간을 비롯해 전시, 공연, 축제, 교육, 교류 등 새로운 것을 계속 개발 중이다. 점포마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서 볼거리가 많은 게 강점. 각종 매체를 통해서 알려져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많은 연인과 가족들이 찾는 참 좋은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아침(Breakfast)과 점심(Lunch) 사이에 먹는다는 ‘브런치(Bruch)’. 나들이 가고 싶은 봄날엔 점심때보다 일찍 만나 아침처럼 가벼운 브런치 한 끼 어떨까?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 건강을 생각하는 유기농 브런치 ‘빙봉(Bimbom)’
보사노바의 한 곡과 이름이 같은 ‘빙봉(Bimbom)’은 그 음악처럼 묘한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매장으로 들어서면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의 오픈 키친이 돋보인다. 훤히 보이는 주방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유기농 건강 브런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주요 식재료인 달걀은 항생제, 산란촉진제, 합성착색제가 들어가지 않은 신선한 유정란을 사용한다. 특히 브런치 메뉴 4가지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3단 브런치’(4만4000원, 2인분)가 인기다. 1단은 브리오쉬 프렌치토스트와 당근 팬케이크 중 한 가지, 2단은 머쉬룸 에그 베네딕트, 키쉬로렌(에그타르트), 토마토 미트볼 스튜 중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고, 3단은 비포선라이즈 크레페가 고정으로 나온다. (음료 2잔 제공, 핫/아이스 아메리카노 또는 티(tea)나 탄산음료로 주문 가능)
주소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51
문의 070-8849-6245
영업시간 (평일) 10:00~18:00 (주말 및 공휴일) 9:00~18:00
◇ 유럽풍 가구와 브런치의 조화 ‘빈티지 다락방’
주인장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하나하나 직접 들여온 50~100년이 넘은 고가구들을 볼 수 있는 브런치 카페다.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와 더불어 샌드위치, 파니니, 파스타, 샐러드 등 다양한 브런치 메뉴를 맛볼 수 있다. 매장 한쪽에는 다락방처럼 아기자기한 부엌이 눈에 띈다. 온라인 사이트
(www.vintagedaracbang.com)에서는 인테리어 제품 구입도 가능하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무궁화로 141번길 8-8
문의 070-8253-7566
영업시간 10:00~23:00
◇ 싱싱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콩부인’
‘콩부인’의 메뉴에는 셰프, 소믈리에, 플로리스트, 바리스타, 파티시에의 아이디어와 손길이 담겨 있다. 매주 일요일 메뉴가 달라지는 ‘선데이 브런치 뷔페(Sunday Bruch Buffet, 2만4000원, 11~14시)’를 운영한다. 콩부인에서만 즐길 수 있는 에너지 드링크(사과, 당근, 샐러리 등 1만3200원)는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그대로 장식해 신선한 느낌을 준다. 봄이면 텃밭에서 기른 제철 야채가 들어간 ‘콩부인 샐러드(1만8700원)’를 찾는 고객이 많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59길 16
문의 02-3443-2187
영업시간 10:00~23:00, (런치) 11:00~15:00 (디너) 17:30~21:30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아니, 배우자가 둘이 필요하다니? 나이 든 부부에게 불 지를 일이 있나? 필자가 강의를 하다가 불쑥 “나이 들수록 배우자가 둘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대다수 청중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나면 “아하,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무릎을 친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배우자 둘 중 하나는 남편 또는 아내를 뜻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뭔가를 배우자는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가장 좋은 친구
다 아는 유머 한 토막. 나름 오순도순 살고 있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 여고 동기모임을 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여고 친구들을 만나는 부인에게 남편이 멋진 옷도 한 벌 사고 머리도 예쁘게 하고 가라는 등 신경을 썼다. “그래, 다녀오든지~”하면서 시큰둥한 통상의 남편에 비하면 엄청 배려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모임에 다녀온 아내의 표정이었다. 불편한 심기를 알아챈 남편이 “식당이 마음에 안 들더냐, 몇 명 안 왔더냐,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있더냐”라고 물었더니 다 아니란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만 남편이 살아 있잖아~”라고 대답하더란다. 다른 친구들은 다 이혼하거나 남편이 죽어서 마음대로 나다니는데 그 부인만 아직도 남편에 매여서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머는 어디까지나 유머일 뿐이다. 영화 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요즘 TV에서 늘어나고 있는 장수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팔순, 구순의 노부부가 아이들처럼, 신혼부부처럼 아웅다웅하면서 재미있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둘이 한날한시에 먼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다. 죽을 때까지 이마와 등을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대화 상대, 밥을 함께 먹을 상대, 나들이를 함께 할 상대, 그 상대로 배우자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행복한 노후를 위한 5F’에서도 배우자는 필수 요건이다. 5F는 돈(Finance), 할 일(Field), 재미(Fun), 건강(Fitness), 친구(Friends)이다. 사실 젊어서는 학교 친구, 동아리 친구, 직장이나 사회 친구들을 주로 만나며 바쁘답시고 다닌다. 하지만 은퇴하고 나면 하나씩 둘씩 다 떨어져 나가고 남는 친구는 한 손도 다 못 채우기 십상이다. 그러다 마지막까지 함께 할 친구는 결국 가족, 즉 배우자와 자녀, 손자녀들이다. 가족을 뜻하는 영어 ‘FAMILY’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알파벳인 것도 우연의 산물은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배우자가 가장 좋은 친구라면 다른 것 다 제치고 성공한 인생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특히 부모와 조부모가 정겹고 애틋한 부부애를 보여준다면 자녀와 손자녀들이 보기에도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부터라도 나의 제1 배우자와 친구처럼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소일거리를 찾아라
두 번째 배우자 또한 첫 번째 배우자에 못지않게 중요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기대수명이 이미 82세를 넘어서고 있고 지금의 40~50대는 적어도 90세를 넘어까지 살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의 우리 부모님들과는 달리 우리는 은퇴한 후 ‘뭔가 할 일(Field)’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래 살면 오래 일을 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남성을 기준으로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는 나이는 53~54세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부터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된다고는 하지만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60세에 은퇴한다고 하더라도 30~40년을 살아갈 계획이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20~30년 이상을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했으니 실업자는 아니지만 뭔가 할 일이 없다면 실업자 아닌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집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이다.
죽치고 앉아서 TV나 보는 게 돈 안쓰고 가장 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활기차고 의미있는 소일거리를 찾을 수는 없을까? 소일거리는 말 그대로 ‘소소한 할 일거리’로 꼭 상당한 소득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내가 의미를 찾으면 그게 곧 좋은 소일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추천하는 것이 ‘뭔가를 배우자’이다. 나이를 들어 배운다는 것은 학창시절에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배우는 일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만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정도의 적절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하지 않는가.
배우고, 익히고… 새출발을
취미활동도 배워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댄스와 악기 등과 같이 서로 맞대야 가능한 배움은 처음부터 친구들을 사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요즘엔 온라인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옮겨가는 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으로만 주고받던 정보와 모임이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맞댈 경우 사람 사는 즐거움을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6만 곳이 넘는 노인 여가복지시설과 노인대학 등이 늘어나면서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 오죽하면 평생학습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좀 더 체계적인 배움을 원한다면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대학에 정식으로 등록할 수도 있다. 2013년 상반기 기준으로 대학 학점인정과정에 등록한 60세 이상 학생 수가 2만3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특히 방송통신대학에만 60세 이상 학생이 3000명을 넘고 있다. 1972년 방송통신대학 개교 이후 240만 명의 입학생 중 최고령자는 2013년 2학기 일문과 3학년에 편입한 정한택씨로 당시 92세였다. 방송통신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35만원 안팎으로 큰 부담이 없는데다 도서관 등 시설이 좋아 이를 이용하는 어르신 학생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필자가 아는 어떤 분은 중국어과와 일본어과를 찍고 프랑스어과에 다니고 있다. 졸업기념으로 부부가 중국과 일본 여행을 했으니 프랑스어과를 졸업하면 유럽 여행을 할 계획이란다. 학점을 따고 졸업을 하는 그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기념으로 해외여행까지 한다니 ‘행복한 노후를 위한 5F’를 완벽하게 갖춘 멋진 인생이 아닌가.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가수 서유석의 노래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봤다’의 가사로 끝을 맺자.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뭐라 해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 말도 배우고 중국 말도 배우고 아랍 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 볼 거야. 너~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출발이다.”
한복은 참 아름답다. 가지런히 역삼각형으로 내려오는 새하얀 동정 깃에 고운 빛의 저고리와 치마가 이루는 조화는 세계의 어느 나라 드레스에 비할 바 없이 멋지다. 예쁜 색상과 날렵한 선도 멋지지만 음식을 많이 먹어도 배가 감춰지는 치마의 풍성함도 좋다. 그러나 제대로 갖춰 입으면 행동하기에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 상용하는 옷이 되기에는 힘들다는 생각으로 명절 때나 찾아 입게 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거리에서 한복 입은 아가씨가 눈에 띄인다. 특히 서울 삼청동부터 광화문까지 거리엔 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가 많이 보인다. 삼청동, 광화문뿐 아니라 인사동 근처에서도 한복 차림의 젊은 여성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본 지자체가 관광지에서 일부러 기모노(着物)를 입고 다니게 해 그곳의 명성을 높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한국의 한복 아가씨도 특별히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한복을 선보이려고 서울시가 진행하는 행사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특정 지자체가 입혔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한복 차림엔 큰 문제점이 있다. 대부분 한복 아가씨가 단정하게 머리도 땋고 댕기도 들였으나 그중 일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머리는 산발한 듯 풀어헤치고 치마의 뒷부분은 여미지 않은 채 벌어져 속에 입은 청바지가 훤히 나타났다. 이렇게 입을 거면 입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기자는 당연히 이 일을 벌인 곳이 서울시라고 여기고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 보았던 보기 싫은 모습에 대해 주의해 달라고 건의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다산콜센터에서는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화부 소속 어느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곳에 문의해 봐도 거리의 한복 아가씨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한다.
그러면 거리에서 보이는 수많은 한복 아가씨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러던 중 인사동에 갈 일이 생겨 창덕궁 앞 정류장에 내렸는데 마침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많이 눈에 보였다. 앞쪽에 즐겁게 깔깔대는 예쁜 한복 아가씨 세 명에 다가가 “궁금한 점이 있어요.” 하며 말을 걸었다.
이렇게 한복 입고 다니는 이유에 관해 물었더니 자기들은 강원도에 사는 대학생인데 서울에 놀러 와 한복 체험을 하는 중이라 한다. 안국역 근처에 한복 대여해 주는 집이 있어 돈을 내고 한복을 빌려 입었다고 했다. 한복을 입으면 고궁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고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재미있다고 웃는다. 아르바이트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한복을 빌려 입고 하루를 즐기는 당당하고 멋진 젊은 여성들이었다.
기왕 빌려 입고 즐길 것이면 단정하게 입고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복을 입은 것도 고맙고, 이상하게 입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지적질 대신 칭찬만 해줬다. 아울러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 준 세 명의 예쁜 대학생이 즐거운 한복 체험을 했기를 바란다. 흔쾌히 포즈도 취해 준 학생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기원하며 오늘의 나들이를 마쳤다.
[경봉궁 부근서 한복대여점 삼삼오오 운영하는 정병훈 대표 일문일답]
-젊은이들이 한복 입기에 열광하기 시작한 시기는.
“3~4년 전부터다. 한복을 입고 에펠탑을 비롯한 유명한 여행지 앞에서 사진을 찍은 뒤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는 것이 인기를 끈 것이다.”
-대여 비용만 30만원은 넘는데 한복을 왜 굳이 가지고 가는 걸까.
“일종의 놀이다. 재미있으니까 돈을 기꺼이 낸다.”
-외국인 여행객과 한국 학생 중 어느 쪽이 더 큰 고객인가.
“못 믿겠지만 한국 학생이다.”
스마트폰이 대세인 세상, 구태여 ‘사진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구식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술적인 이야기를 모두 차치하더라도 나들이를 떠나면서 어깨 한 쪽에 혹은 목걸이처럼 카메라가 한 대 걸려 있지 않다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는 것 아닐까? 나들이가 잦아지는 계절이 찾아온 지금 배우자를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멋진 사진 한 장을 위한 준비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간혹 “요즘 세상에 사진을 누가 카메라로 찍느냐?”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힘들지만 묵묵히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에게는 야유나 조롱 섞인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이미 대부분의 스마트폰에서는 값비싼 카메라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카메라 꼭 있어야 하나?
그럼에도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DSLR(일안반사식 디지털카메라)이나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미러리스(광학 뷰 파인더가 없는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가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해 갖는 장점은 물리적인 크기에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스마트폰은 물리적인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가장 많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광학적인 표현의 문제다. DSLR이나 미러리스는 렌즈 교환이 가능해, 소위 이야기하는 ‘흐려지는 사진’ 즉, 피사계 심도가 얕아 선명하게 보이는 범위가 적은 사진 등의 표현이 가능하다. 반면에 스마트폰 카메라는 거의 모든 기종이 광학 줌이 아닌 디지털 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선 그 차이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인 화질의 차이도 있다.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대부분 1000만 화소 이상의 고해상도의 센서를 장착하고 있지만, 물리적으로 좁은 센서 안에 많은 화소를 몰아넣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화소가 같더라도 스마트폰 카메라와 일반 카메라는 화질의 수준차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카메라를 선택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갖거나 다양한 장면의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면 렌즈가 교환 가능한 기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많게는 10가지 이상의 렌즈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3~4가지 렌즈만 있어도 거의 모든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최근 카메라를 선택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wifi(무선인터넷)나 스마트폰을 지원하는지 여부이다. SNS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야외에서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재빨리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등을 통해 공유하고자 하는 사용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wifi나 스마트폰을 지원하는 기종들은 야외에서 바로 업로드나 공유가 가능하다.
시니어들의 경우 눈여겨봐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무게’다. 아무래도 체력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들이 사용하는 전문가용 기종의 경우 본체만 1kg이 넘고, 렌즈 하나의 무게도 보통 800g이상이다. 카메라 본체와 렌즈 몇 개를 챙기면 자칫 여행이 행군으로 바뀔 위험에 빠진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온라인 등을 통해 적당한 기종 몇 가지를 고르고 나서, 매장 등을 방문에 직접 만져보고, 내 손에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DSLR은 니콘이나 캐논, 미러리스는 올림푸스, 소니, 삼성 등이 최근 사용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있다.
카메라를 구매하지 않고 즐긴다?
최근에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촬영을 즐기거나 카메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렌털족(族)’의 등장이다.
사실 이 렌털족은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는 극성팬들이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연예인은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는 학생들이 카메라 장비 대여업체를 통해 고가의 망원렌즈와 카메라를 임차하기 시작하면서 렌털족의 시초가 됐다. 그러다 최근에는 카메라 사용 빈도가 낮은 직장인이나 다양한 장비를 사용해보고자 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대여업체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 운영 중인 카메라 장비 대여업체는 약 20여 곳. 그 중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지만, 지방 주요 도시에도 한두 군데씩 성업 중이다.
대표적 대여업체 중 한 곳인 ‘PLAY SLR’의 김현기 팀장은 대여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촬영 갈 때 빈손으로 오시는 고객들도 꽤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리 카메라와 렌즈, 삼각대, 가방까지, 여기에 메모리카드 같은 소품까지 통으로 빌려 가시는 고객들이 적지 않습니다. 구매 자체를 부담으로 여기는 고객들도 많지만, 최근에는 구매 전 비교체험을 위해 빌려가는 경우도 많죠. 아무래도 대여 전문 업체들은 판매업자와 달리 장비에 대한 문의에 객관적으로 답변해 드릴 수 있어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디지털 카메라 어렵지 않을까?
시니어들의 디지털 카메라 사용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는 ‘디지털 장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전문적인 촬영 기법은 고사하고,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사진을 PC나 스마트폰으로 옮기는 과정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촬영이나 공유가 상대적으로 편한 스마트폰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사용자들을 위해 각 브랜드는 사진학교나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데, 완전 초보에서부터 전문가를 위한 과정까지 그 교육내용도 다양하다.
니콘이나 캐논 등 주요 카메라 제작사들은 온라인, 오프라인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절차나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들 제조사가 운영하는 사진학교는 사용하는 기종에 맞는 최적화된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사진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들에게 유익하다. 이론적인 교육과 함께 야외촬영 수업도 참여할 수 있다.
올림푸스 한국 영상사업부의 윤은경 차장은 “사용자들을 위한 사후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각 제조사들의 교육지원 노력도 점차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올림푸스의 경우 지난해 시니어 사용자들을 위한 강좌를 별도로 운영한 바 있으며, 올해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을까?
최근 사진을 즐기는 추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이 개방적인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과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스토리와 같은 폐쇄적 SNS를 통해 끼리끼리 작품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특히 폐쇄적 SNS를 검색하면 중년들의 사진모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 밴드의 한 모임에서 만난 조이례씨(53)는 “남편의 카메라 선물이 사진 취미의 계기가 됐어요. 인생 후반에 무언가 집중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서 너무 좋습니다”라며, “힘든 갱년기 여성으로서 우울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친구가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정귀원씨(57)는 “지난해 명퇴하고 나서 생긴 여유 속에서 여행하며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사진이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계기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나 인맥을 넓힐 수 있는 것도 사진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책(book)과 사람(人)의 이야기를 담아온 ‘명사와 함께하는 북人북’. 이번 호에는 그 의미를 살려 책을 통해 맺어진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박상진(朴相珍·76)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와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 지난해 3월호에서 박 회장은 박 교수가 쓴 를 추천했다. 박 회장은 그전부터 여러 언론을 통해 박 교수의 책을 호평했고, 이를 고맙게 생각한 박 교수가 그를 찾아가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을 이어준 매개체는 책과 나무다. 이번 호에서 박 교수는 을 추천했다. 과거 박 회장과의 인연이 그랬듯, 책 그리고 궁궐을 매개로 한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며 박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역사건축기술연구소의 김동욱 이사와 이경미 소장 등이 합심해서 펴낸 은 평소 궁궐을 자주 찾던 박상진 교수에게 아주 반가운 책이었다. 궁궐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책 표지의 ‘동궐도(東闕圖,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창덕궁과 창경궁 그림)’에 그려진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궁궐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지만, 궁궐의 건물들에 사람 이야기를 입힌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건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잖아요. 선정전(宣政殿), 인정전(仁政殿), 낙선재(樂善齋), 성정각(誠正閣) 등 곳곳마다 얽힌 이야기를 소개해 역사와 더불어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했죠. 문학이나 철학 등의 장르가 아니니 책 제목처럼 우리 궁궐을 이해하고 알고 싶은 분들에게 유용한 책이에요. 하지만 읽다 보면 내용의 깊이나 정보 면에서 결코 가볍게 볼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책은 건물마다 실물 사진과 함께 동궐도에 그려진 모습을 보여준다. 지도에 나타난 모습이나 위치 등은 현재와 다른 부분도 있지만, 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라고 한다. 에도 동궐도가 자주 등장하는데, 현재의 모습을 반영한 지도가 있어 더불어 읽기 좋은 도서라 권할 만하다.
“지도와 사진,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넣어 품이 많이 들어간 책이에요. 궁궐의 다양한 면모를 알고 가면 더욱 생생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죠. 손주와 함께 간다면 들려줄 이야기가 참 많을 거예요. 궁궐은 역사의 현장입니다. 책이나 교과서로만 알던 역사를 그 현장에서 다시 보면 아이들에게도 기억에 남는 교육이 되겠죠.”
궁궐의 나무는 다 알고 있다
박 교수는 , 등 줄곧 나무와 역사를 함께 이야기해왔다. 나무를 전공한 그가 이토록 역사에 관심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누구나 역사를 알아야 하겠지만, 나무와 연관 짓는 그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카페를 가는 일이 드물었죠. 그럴 때 휴식을 겸해서 찾은 곳이 바로 궁궐이었어요. 일이 광화문 근처면 경복궁에 갔고, 종각 쪽이면 창덕궁이나 창경궁에 가서 쉬곤 했죠. 그런데 궁궐에 가보니 오래된 나무가 정말 많은데,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왕도 떠나고 사람들도 떠났지만 나무는 수백 년 역사를 그 자리에서 지켜봤잖아요. 나무에 입이 있다면 많은 기록을 남겼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내가 나무를 대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창경궁(昌慶宮)에는 영조 38년(1762년) 문정전(文政殿) 앞에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비명을 들은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다. 문정전에서 조금 떨어진 선인문(宣人門) 앞 회화나무와 광정문(光政門) 밖의 아름드리 회화나무다. 선인문 앞 회화나무는 줄기가 비틀리고 속이 완전히 비어 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 속이 까맣게 썩어버렸다고도 이야기한다. 이 두 나무는 동궐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박 교수를 만난 창덕궁(昌德宮)에서 가장 오래된 어른 나무는 바로 선원전(璿源殿) 앞의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다. 약 750세가 넘은 것으로 창덕궁의 터줏대감과 같다. 이 향나무는 와 에 모두 소개됐다. 그러니 나무와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말할 수 있겠다.
나이가 들수록 느티나무처럼
창덕궁의 향나무도 역사적 가치가 있지만, 그는 느티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궁궐에서 볼 수 있는 100여 종의 나무 중 박 교수가 가장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무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 가장 재질이 좋아요.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기둥, 가구, 양반들이 쓰던 탁자 등에 주로 쓰였죠. 쓰임새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삶에 보탬이 됐다는 뜻이에요. 느티나무의 용도는 한 가지 더 있어요. 요즘도 시골 마을 입구에 가면 오래된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잖아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해지기도 하는데, 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멋있어지죠. 그 넉넉한 품으로 오랜 세월 백성들의 안식처가 돼 주고, 고달픈 삶을 위로해준 고마운 존재예요. 나도 그런 느티나무처럼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살아서는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고, 죽어서는 여러 쓰임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느티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에는 본받을 점이 한 가지 더 있다고 한다. 바로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한 번 뿌리 내리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봄에는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열매 맺기 위해 노력한다.
“나무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은 자기가 마음에 안 들면 옮겨 다닐 수 있잖아요. 바람에 날아왔든, 동물이 물어다 놨든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죠. 요즘은 사회에 불평하고 참을성 없는 이들도 많잖아요. 우리도 나무를 본받아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4월 궁궐 나들이엔 ‘매화’
겨우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 나무. 봄기운이 충만한 4월이면 궁궐에도 나무마다 꽃망울 터뜨리기에 분주해진다. 궁궐은 어느 계절에나 가도 좋다는 박 교수는 특히 봄에는 매화나무가 으뜸이라고 했다.
“4월 10일쯤 되면 궁궐에 있는 모든 나무가 꽃을 피웁니다. 그중에서도 꼭 한번 가서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건 매화나무예요. 매화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품격 있는 동양의 꽃 중 하나죠. 조선시대에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에 꼽히기도 했고요. 태종이 특별히 좋아하던 꽃인데, 창덕궁 선정전 앞에는 와룡매(臥龍梅)라 불리는 백매와 홍매 두 그루가 임진왜란 전까지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덕혜옹주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낙선재에도 매화나무가 많으니(근래에 심은 것), 아름다운 매화를 볼 겸 궁궐 나들이 떠나보는 것 어떨까요?”
매화꽃은 가장 먼저 봄을 알려온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 하여 ‘설중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회색빛 도시, 겨울옷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 오아시스처럼 섬진강변에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긴 겨울에 숨이 막힐 듯 답답한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매화꽃을 찾아 장거리 여행 채비를 서두른다. 타 지역은 아직도 썰렁한 산하지만 섬진강 주변으로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청매실 농원엔 눈이 내린 듯 흐드러지게 매화꽃이 만발하고
일기에 따라 조금 차이는 나겠지만 3월 중순쯤 섬진강가의 온 마을에는 매화꽃이 만발한다. 길거리에도, 집 뒤뜰에도, 그리고 강변 옆으로도 꽃 천지다. 허허로운 산야에 핀 흰 꽃은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야 제멋이 난다. 꽃잎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만 꽃이 작고 나무줄기가 있어서 한 그루만 모여 있으면 제빛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화마을로 알려진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삼벅재 골짜기로도 부르는 이 마을 농가들은 산과 밭에 곡식 대신 모두 매화나무를 심었다. 봄이면 하얗게 만개한 매화꽃이 눈꽃처럼 휘날리고 하얀 꽃구름이 골짜기에 내려앉은 듯 장관을 이룬다.
꽃이 만개하면 으레 매화 축제가 열린다. 매화꽃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청매실 농원이 가장 유명하다. 수십년 묵은 매화나무 아래, 청보리가 바람을 타는 농원 중턱에 서면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 너머 하동 쪽 마을이 동양화처럼 내려다보인다. 매화꽃 군락을 감상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지만 해마다 몰려드는 인파 탓에 교통체증과 사람들에게 치인다. 초보 여행객들이 아니라면 이 북적거림을 피해 섬진강 하류를 기점으로 강변 드라이브 길로 나설 것이다. 그곳 또한 아름다운 여정의 풍광을 보여준다. 진월에서 신아리, 신구리, 월길리 등 낯선 이름의 마을을 지나친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꽃이 도로 옆을 화사하게 장식해 인적 드문 산간지역에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어냈다.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은 소를 이용한 밭갈이에 여념 없고 산등성이에도 무심하게 하얗게 봄꽃을 피워내고 있다. 잠시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열어놓은 차창 밖으로 진하면서도 달콤한 매화향이 코끝을 감싸온다.
윤동주 시인의 애련한 흔적이 남은 망덕포구엔 벚굴이 한창
이어 발길을 멈추는 곳은 섬진강 물줄기가 바닷물과 조우하는 망덕포구다. 배알도라는 자그마한 섬 앞으로 띄엄띄엄 배들이 정박해 있고 횟집이 길게 이어진다. 섬진강 끝자락에 남은 포구라는 것 빼고는 딱히 볼거리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곳엔 윤동주(1917~1945) 시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포구는 매력적이다. 그저 시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싸하다. 측은지심에 가슴이 저려 온다. 일제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에 견주어 노래한 민족시인. 일제강점기에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진 시인의 인생을 어찌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리디시린 삶의 자그마한 흔적이 이 망덕포구에 있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관했던 낡은 정병욱 가옥(근대문화유산 제341호, 1925년 건립)과 시비가 있다. 횟집 즐비한 포구 앞에, 인기척 없는 가옥 한 채가 썰렁하게 있다. 굳게 닫힌 유리창 너머로 윤동주 시인과 친구의 학창 시절 얼굴이 해맑게 미소 지으며 반긴다. 마루 한쪽이 열려 있고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이라는 안내 글자가 있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윤동주 시인의 원고가 숨겨져 있었을까? 시인이 일본유학을 떠나기 전, 3부의 원고를 만들었다. 1부는 자신이, 1부씩은 은사 이양하 교수와 절친한 친구이자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맡겼다. 정병욱이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광양의 어머니에게 원고를 맡긴다. 어머니는 일제의 수색을 피해 집 마룻바닥 밑에 원고를 숨기고 보관해왔다. 무사히 돌아온 정병욱은 1948년 유고시집 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주옥 같은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이렇게 알려지게 된 데 큰 기여를 한 집인 게다.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정병욱 작은 기념관, 도서관,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소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또 윤동주 백일장, 문학상을 추진하는 등 윤동주 시인의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할 생각이다.
또 이 봄, 망덕포구를 찾아볼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벚굴이다. 1~4월이 제철인 벚굴은 이곳이 아니고서는 먹을 수가 없다. 벚굴은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짜지 않고 굴의 비릿한 맛이 적다. 거기에 일반 굴에 비해 보통 10배 정도나 크다. 서너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동백꽃 흐드러지게 핀 옥룡사지에서 즐기는 봄날의 오수
광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백계산(505m) 자락의 옥룡사지다.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도로 옆, 길목(해발 403m)에는 대규모(약 2100평) 동백군락지(도지정 기념물 12호)가 있다. 온 산을 동백나무가 에둘러 감싸고 있다.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보호수를 심었다는 전설이 흐른다.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고 꾸몄으며, 제자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차밭을 일궜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동백군락지는 ‘아름다운 숲’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찾는 이 많지 않은 그곳에 피어난 동백꽃은 따사로운 봄날과 잘도 어울린다. 동백숲길에 폭 빠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금 오르면 옥룡사지(사적 제407호)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터는 큰 연못이었는데 9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에 도선국사가 용을 몰아냈는데 유독 백룡만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 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쫓아낸 뒤 숯으로 절터를 닦아 세웠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이 옥룡사에서 30여년 동안 홀로 앉아 말을 잊고[宴坐忘言] 지내다 입적했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타 버려 폐사된 후 긴 세월 절터만 남아 있다. 대신 우측 언덕을 넘으면 도선국사비와 부도탑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초에 비석이 유실되었으나 2003년 본래 자리에 복원되었다. 또 이곳에서 산 길로 거슬러 오르면 동양 최대의 청동약사여래불이 서 있는 운암사를 만나게 된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이야기
도선국사(827~898) 하면 고로쇠 수액의 전설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참선하다 몸을 일으키려던 도선국사. 무릎이 금세 펴질 리 만무하다. 도선은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는데 나무가 부러졌고, 부러진 나무에서 수액이 흘러나왔다. 그 물을 마신 도선의 다리가 펴져 ‘뼈에 이로운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로 불렀는데, 나중에 고로쇠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해마다 경칩이면 백운산에서 고로쇠 약수제(3월 5일)와 축제를 연다. 어쨌든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동백나무, 녹차나무가 남아 옛터를 지키고 있다. 또 옥룡사지 가는 길목에서 중흥사(061-763-6655)를 찾아도 좋다. 중흥산성 3층석탑(보물 112호)과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남도 유형문화재 142호)이 있다. 근처 도선국사마을(061-762-6716, dosun.go2vil.org)도 재미가 있다. 다도, 도자기, 염색, 전통 손두부 만들기 등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농촌테마마을. 특히 물 맛이 좋아 원님 전용 식수로 애용되었다는 사또약수터가 있다. 이 약수를 이용해 만든 손두부를 농가에서 판다.
Travel Tip!
가는 길 서울 출발 → 호남고속도로 → 익산JC → 완주JC에서 순천 광양 방향 간 고속도로 이용 → 광양IC → 광양읍에서 매천 유적지를 보고 10여분 가면 옥룡면 소재지다. 옥룡면에서 광양읍내로 다시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월IC로 나오면 망덕포구를 만나기 쉽다. 그리고 하동 쪽으로 가면 섬진강변을 만나고 근처에 청매실 농원이 있다. 청매실 농원부터 여행을 하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구례를 거쳐 들어오는 것이 편하다.
숙박정보 백운산 자연휴양림(061-763-8615, www.gwangyang.go.kr)은 울창하고 소나무 숲이 가히 장관이다. 특히 휴양림의 황톳길은 흙에 들어 있는 원적외선이 뿜어져 나와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에 큰 도움이 된다. 읍내 덕계리(순천, 보성 가는 방면)는 모텔촌이다.
주변 연계 여행지 광양 시내에는 매천생가와 유적공원, 장도박물관(061-762-4853, www.jangdo.org)이 있다. 어치계곡, 동곡계곡, 금천계곡, 성불계곡 등은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한다.
별미집 광양읍내엔 불고기 특화거리가 있다. 매실한우(061-762-9178), 3대광양불고기(061-762-9250), 조선옥숯불갈비(061-792-8559), 금목서(061-761-3300) 등을 꼽는다. 봉강면의 지곡산장(061-761-3335, 닭숯불구이)이 아주 괜찮다. 고로쇠 수액이 나오는 철에는 미리 예약하면 음용이 가능하다. 그 외 이 계절에는 광양의 계곡 주변 민가 식당에서 고로쇠와 함께 닭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