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구독경제’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뿐 아니라 의식주부터 취미와 여가 등 삶의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심심할 때 TV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 구독자 수로 인기를 가늠하는 구독 전성시대,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을 이색 서비스를 소개한다.
속도 모르고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이 야속한 봄이다. 장미부터 튤립, 유채꽃까지 오색 봄꽃이 만발하는 5월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로 겨우내 꽃놀이를 기다려왔던 상춘객의 발이 꽁꽁 묶였다. 지난달 벚꽃 명소인 서울 여의도, 잠실 석촌호수 일부 구간도 코로나19 방지 차원으로 통제되면서 벚꽃 축제도 물 건너갔다. 계절을 만끽하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흘려보내는 것 같아 아쉽다면 집 안을 꽃향기로 가득히 채워보는 건 어떨까. 복잡한 인파를 뚫고 꽃 시장을 가지 않아도 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꽃 구독 서비스 ‘꾸까’
핀란드어로 꽃을 의미하는 꾸까는 2주 간격으로 계절이나 콘셉트별로 어울리는 꽃을 정기배송 한다. 스몰(1만7900원)·미디엄(2만6900원)·라지(3만4900원)·엑스라지(4만9900원) 가운데 원하는 꽃의 크기를 고르고 구독 기간을 선택하면 알록달록한 플라워 박스가 집 앞으로 도착한다. 구독 신청 시 수령할 요일도 설정할 수 있어 “비 오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주고 싶다”는 옛 노래 가사처럼 자신에게 깜짝 선물을 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이용자 대다수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 자신을 위해 꽃을 산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그 매력에 빠져 2주 뒤를 기다리게 된다는 반응이다.
박춘화 꾸까 대표가 추진하던 화장품 정기구독 사업을 접고 꽃으로 시선을 돌린 것도 같은 이유다. 박 대표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기분전환을 위해 꽃집을 찾는 이들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꽃을 향유하는 것을 낯설게 여긴다”며 “그동안 경조사나 선물용으로만 소비되던 우리나라의 꽃 문화를 좀 더 일상적으로 바꿔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박 대표는 ‘꽃의 일상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구독경제’라는 용어가 대중화되기도 전인 2014년에 꽃 구독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기존 인터넷 꽃 배달 서비스를 통해서도 꽃을 받아볼 수 있지만, 만족도는 들쑥날쑥한 편이다. 콜센터를 통해 지역별 꽃집을 중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신선도나 보관 방식, 재고 등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꾸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자와의 직거래로 꽃을 대량 주문하고, 본사 작업실에서 플로리스트가 직접 꽃을 손질하는 방식으로 품질을 표준화한다. 꾸까를 단순 배달 서비스가 아닌 전문성 있는 꽃 브랜드로 발돋움시키겠다는 취지다. 박 대표는 “다양한 꽃을 자주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이 좋은 후기를 남겨주실 때 가장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광화문·잠실·월계·구로점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프라인 쇼룸에도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꽃을 접하길 바라는 박 대표의 소망이 담겼다. 유럽의 파머스 마켓(전통시장)과 카페를 결합한 콘셉트로, 음료를 주문하면 꽃 한 송이를 제공한다. 또 꽃에 관심이 생긴 이들을 대상으로 수준별 플라워 클래스도 진행한다. 따분한 ‘집콕’ 일상으로 기분전환용 취미를 찾고 있거나, 인생 삼모작으로 새로운 도전을 모색 중인 시니어에게 솔깃한 기회다. 박 대표는 “꽃을 경험하는 데 거창하고 대단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며 “앞으로도 일상에서 꽃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브라보’ 독자에게 추천하는 5월의 꽃
작약 꽃 시장에서 3월부터 6월까지 만나볼 수 있는 작약은 ‘봄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계절을 대표하는 꽃이다. 특히 새하얀 속잎과 분홍빛 겉잎이 수줍게 조화를 이루는 가드니아 작약은 그 자체로 봄의 전경을 닮았다. 개화할수록 겹겹이 풍성하게 피어나, 같은 공간에 두어도 매일 색다른 무드를 선사한다. 추천 꽃다발 로즈 앤 피오니 가격 3만7900원
캄파넬라 하늘에서 축복의 햇살이 내리쬐는 듯 노란빛의 화사하고 우아한 색감을 자랑하는 캄파넬라는 ‘축복’이라는 꽃말에 걸맞게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웨딩 부케다. 주변에 축하할 만한 소식이 들려올 때 샴페인과 함께 캄파넬라 한 다발을 건넨다면 그야말로 센스 만점 시니어가 될 수 있다. 추천 꽃다발 캄파넬라 에디션 가격 5만4900원
델피늄 & 블루 스위트피 흔치 않은 분위기를 원한다면 오묘한 푸른빛을 띠는 델피늄과 블루 스위트피를 한데 담아보는 것도 좋다. 특히 향수의 원료로 쓰일 정도로 달콤하고 진한 향이 매력적인 스위트피는 꽃잎의 모양이 나비가 모여 있는 모습과 닮아, 향기 가득한 정원을 거닐다 나비를 만난 듯 기분 좋은 설렘을 전한다. 추천 꽃다발 파랑새 에디션 가격 5만6900원
길어지는 코로나19로 손주와 만남조차 어려운 요즘이다. 기술이 발달해 영상 통화, 메신저 등 연락할 방법은 많아졌지만, 얼굴을 보고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을 작은 휴대폰 화면에 담기에는 부족하다. 길을 거닐다 손주 또래의 아이가 눈에 띄면 절로 생각이 나기도 한다. 집안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적적한 시니어를 위해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꼬마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마틸다 (Matilda, 199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처럼 자식은 부모의 행실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녀만은 예외인 듯하다. ‘마틸다’의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총명한 마틸다(마라 윌슨)는 어려서부터 혼자 핫케이크를 만들고,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씩씩한 소녀다. 반면 마틸다의 아버지는 사기꾼에 가까운 중고차 매매업자로 돈밖에 모르고, 어머니는 게임과 사치에 빠져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러던 어느 날 TV나 보라며 책을 빼앗는 아버지에 화가 난 마틸다는 저도 모르게 눈빛으로 TV를 망가뜨리고, 자신도 몰랐던 초능력을 발견한다. 이후 학교에 들어간 마틸다는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자 자신의 초능력으로 못된 어른을 혼내주기 시작한다. 로얄드 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로얄드 달 특유의 위트와 풍자로 무책임하고 부조리한 어른의 모습을 꼬집는다. 권선징악의 전개를 성실히 따라 극이 진행될수록 사이다를 마신 듯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마틸다의 똘똘한 표정과 야무진 말투가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2. 애니 (Annie, 1982)
“사랑 대신 구박을 받아. 키스 대신 매를 맞아.” 구슬픈 가사와는 달리 씩씩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는 아이들. 이내 분주한 몸짓으로 집안일을 거든다. 그 중심에 애니(아이린 퀸)가 있다. 뮤지컬 영화 ‘애니’는 1933년 공황기, 미국 뉴욕의 아동 보호소에 사는 애니가 친부모를 찾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나온 가사처럼 아이들의 보호소 생활은 녹록지 않다. 보호소 원장이 시키면 한밤중에도 일어나 청소를 해야 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멱살을 잡히기도 한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애니는 친부모가 살아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품고 지낸다. 그러던 중 억만장자 워벅스(알버트 피니)가 보호소를 찾아 애니를 양녀로 삼으려 하는데, 친부모가 그리운 애니가 이를 거절하자 얼떨결에 ‘친부모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애니’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애니의 명랑한 태도와 사랑스러움을 극찬한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하는 영화지만, 손주가 더욱 보고 싶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3. 보스 베이비 (The Boss Baby, 2017)
탱탱한 볼살에 솜털 같은 머리카락. 영락없는 아기의 모습인데, 어딘가 이질적이다. 옷은 쫙 빼입은 양복 차림에 표정은 인생 2회 차인 듯 매사가 따분해 보이고, 목소리는 중년 남성처럼 중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스 베이비’(알렉 볼드윈)는 ‘베이비’가 아니다. 아기인 척하는 기업의 ‘보스’다. 영화 ‘보스 베이비’는 7살 팀의 집에 베이비 주식회사의 CEO가 경쟁업체인 퍼피 주식회사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아기로 위장을 하고 들어오는 이야기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아기 행세를 하다 팀 앞에서만 본래의 성격으로 돌변하는 보스 베이비의 발칙한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는 어린 시절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형제간의 다툼과 화해, 성공에 대한 열망 등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을 기발하게 표현해 연령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 본의 아니게 한 팀이 되어 투덕거리면서도 우애를 쌓아나가는 두 주인공의 귀여운 동맹이 감동을 자아낸다. 보스 베이비의 귀여운 매력에 홀딱 빠졌다면 넷플릭스 독점 만화인 ‘보스 베이비: 돌아온 보스’를 이어 봐도 좋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헌터 아담스, 앨런 튜링, 기타와 바비타 자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실존 인물의 극적인 삶을 담은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패치 아담스 (Patch Adams, 1998)
루돌프 코 장식을 달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가 하면, 온 방안을 풍선으로 가득 채운 채 시를 읊는 남자. 레크리에이션 강사인가 싶지만, 병을 고치는 의사다. 그의 이름은 헌터 아담스, 정신병원에서 삶의 희망을 되찾은 인물이다. 미국 늦깎이 의사 헌터 아담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패치 아담스’는 자살미수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헌터가 의사의 꿈을 품고 두 번째 삶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신병원 수감 시절, 헌터는 환자를 단순 ‘정신 이상자’로 취급하며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의사의 태도에 실망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자들과 소통한다. 허상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는 룸메이트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맞서 싸워주고, 손가락 4개를 8개라고 주장하는 환자의 숨겨진 뜻을 이해한다. 진심의 힘을 믿는 그는 의사가 되어서도 환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며 웃음을 전파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헌터가 보여준 가슴 따뜻한 인류애는 바람직한 의료인의 자세뿐 아니라 각박한 사회에 공감과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헌터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의 푸근한 미소와 연기가 여운을 남긴다.
2.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
오늘날 인공지능(AI)은 인간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 기계가 ‘지능’을 가진다는 것은 낯선 개념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이미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한 인물이 있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비상한 두뇌로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군의 암호기 ‘애니그마’를 해석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애니그마는 24시간마다 암호가 바뀌어 연합군 사이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암호기다. 이에 튜링은 하루마다 달라지는 암호를 해독하는 대신 애니그마 체계의 근본을 분석하는 기계를 발명한다. 인공지능의 뼈대가 되는 튜링 머신이다. 튜링의 아이디어는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당시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공을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는 그런 그의 비극적인 삶을 극적인 과장 없이 담담하게 묘사한다. 화려한 액션신이나 총격전은 없지만, 치밀한 두뇌 전쟁이 시선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3. 당갈 (Dangal, 2016)
“당갈! 당갈!” 흥겨운 힌두풍 리듬이 귀를 사로잡는다. 이내 거칠게 몸을 풀고 모래판 위에서 힘을 겨루는 남성들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오프닝 장면만 보면 영락없는 남성 레슬링 영화다. 그러나 ‘당갈’은 국제대회 최초로 금메달을 딴 인도 여성 레슬링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두 딸을 대회에 내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마하비르는 딸들이 태어나기 전 아들을 간절히 바란다. 남성만이 레슬링에 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던 어느 날 또래 남자아이들에 힘으로 뒤지지 않는 두 딸의 모습을 본 마하비르는 자신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고, 두 딸에게 대회 준비를 시키기 시작한다. 영화는 “남자든 여자든 금메달은 금메달”이라는 대사를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레슬링을 남성의 전유물처럼 묘사한 오프닝 장면을 반전시킨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과 뭉클한 가족애, 레슬링의 박진감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신나는 음악이 흥을 더한다.
몸과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푹 가라앉은 날에는 잔잔한 영화 한 편이 위로될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 영화는 특유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힐링영화’ 목록에 종종 언급되곤 한다.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변함없는 일상에 울적함을 느낀다면 맥주 한 캔과 넷플릭스로 가볍게 기분전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지친 하루에 위로 한 스푼을 더해주는 일본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카모메 식당 (Kamome Diner, 2006)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맛있는 밥 한 끼로 위장을 든든하게 채우는 것이다. 맛있는 식사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내오는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한 상으로 대리만족을 해보자.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가 선보이는 메뉴는 매실장아찌를 넣은 일본식 주먹밥. 타국의 낯선 메뉴에 식당은 파리만 날리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며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핀란드 청년 토미(자코 니에미)가 식당의 첫 손님으로 방문하고, 그 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손님들이 하나 둘 이곳을 찾는다. 달그락달그락 요리하고 머리를 맞대며 식사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지만, 지루하기는커녕 그 속에서 오고 가는 인물들의 대화와 공감, 위로가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러닝타임 100분 동안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Rent-a-Cat, 2012)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도 사람과 사회를 향한 그녀만의 따뜻한 시선을 이어간다. 고양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애묘인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가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길어진 독거 생활로 대화 나눌 상대 하나 없는 사요코 역시 그녀가 찾는 ‘외로운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때마다 귀여운 고양이들이 그녀의 곁을 지킨다. 영화는 사요코와 만나는 손님을 하나둘 보여주며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죽음을 앞두고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지내는 중년 남성, 하루 종일 적막한 사무실에 갇혀 일만 하는 회사원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요코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통하며 자신의 외로움도 조금씩 채워나간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주먹밥이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고양이가 그 역할을 한다. 극적인 서사는 없지만, 군중 속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잔잔히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다.
3. 원더풀 라이프 (Wonderful Life, 1998)
기차역 안 대합실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이곳은 삶과 죽음을 잇는 ‘림보’다. 림보에 머무는 망자들은 일주일 안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고르고, 오직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 천국으로 향해야 한다. ‘원더풀 라이프’는 이 같은 독특한 설정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그려내며 삶의 진리를 담담하게 깨닫도록 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망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고심 끝에 소중한 기억을 고백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선택을 번복하는 인물도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떠올린 장면은 대부분 인생에 몇 안 되는 엄청난 이벤트가 아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다. 옷깃 스치듯 지나 보낸 날들이 돌아섰을 때 평생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반복되는 인터뷰 형식을 취하며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의 인생에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 영원히 머물고픈 순간이 존재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는 것만으로 우리의 하루는 한층 더 ‘원더풀’해진다.
최근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따라서 유행이다. 그런데 성만 한 인문학이 또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사랑을 나누고, 종족을 남기고, 늙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다 성에 있다. 성을 한자로는 ‘性’이라 표기하는데 어찌 이렇게 적확한 표현을 찾았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성은 그 사람의 본성을 뜻한다. ‘배정원의 성 인문학’은 역사, 예술, 사회 등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 속에서 성을 재미있게 풀어볼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흥미로운 드라마를 보았다. 시청률 세계 1위일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그 로맨틱한 미국 드라마의 제목은 ‘브리저튼’이다.
19세기 런던 상류층의 사랑과 결혼을 주제로 한 드라마인데, 줄리아 퀸의 원작 소설 ‘브리저튼 시리즈’ 1권인 ‘공작의 여인’을 극화한 것으로, 화려한 배경과 의상, 그리고 더없이 아름답고 멋진 남녀 주인공이 세간의 화제였다. ‘브리저튼’의 내용은 산업혁명 후 귀족의 입지가 줄어들고 ‘평등’이라는 의식이 확대되던 19세기 영국에서 상류층이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고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던 ‘결혼’에 대한 것이다. 또 그 당시 상류층 여성은 혼자 힘으로는 살기 어려웠기에 가능한 한 재산이 많고 작위가 높은 신랑감을 찾아 결혼하는 것이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혼기에 이른 딸을 가진 부모들과 그 딸들이 결혼이라는 중대한 사업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일은 너무나 당연했다.
여자 주인공은 상류층의 영애인 다프네 브리저튼으로, 그녀는 사교계에 처음으로 데뷔하는 ‘데뷔탄트’에 참석해 당시 권력자인 샬럿 왕비로부터 최고의 신붓감으로 선택된다. 애정 많은 가정에서 자란 다프네는 똑똑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었다. 다른 상류층 가정과 다르게 다프네의 부모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관계였기에 다프네도 그런 신랑감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이자 오빠의 낮은 안목으로 추천된 나이젤경과 결혼할 위기에 빠지자, ‘비혼’ 의사를 가진 사이먼 공작과 위장 연애를 하며 계속 좋은 신랑감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선남선녀인 그들이 서로의 매력에 무관심할 수 없었을 터.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빠져들고 결국 결혼하게 되지만, 비혼주의일 뿐 아니라 아이도 원하지 않는 사이먼과의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 없다. 그런데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절대 대를 잇지 않으리라’ 결심한 사이먼은 오럴섹스를 포함한 다채로운 섹스를 하지만 결코 질내사정은 하지 않는다. 절정의 순간이 되면 질외사정을 해버리는 것으로 피임을 했는데, 섹스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다프네는 그것이 섹스의 전부인 줄 알았다.
사이먼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줄 알았던 다프네는 하녀에게 ‘진정한 섹스’에 대해 듣게 되고, 그가 자신을 속여왔던 것을 눈치 채면서 이들의 결혼은 위기에 봉착한다. 결국 자신도 다프네를 깊이 사랑하고, 아버지에 대한 복수 방법이 치졸했다는 것을 깨달은 사이먼의 개심(!)으로 이 선남선녀의 결혼 생활은 회복되고, 다시 진정한 화합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 가장 ‘핫’한 상남자로 매력 넘치는 남자 주인공 레게 장 페이지는 이 단순한 드라마가 ‘오만과 편견’, ‘가십걸’, ‘그레이의 35가지 그림자’를 합친 것과 같다고 재치 있게 요약한 바 있다. ‘그레이의 35가지 그림자’는 여성 포르노라고 불리며 세계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비유한 것으로 그것보다는 수위가 약간 낮아서라고 하는데, 드라마 속 애정 표현 수위는 그럼에도 꽤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극에서는 볼 수 없는 오럴섹스에 대한 묘사와, 아름다운 몸을 가진 두 남녀 주인공이 호화로운 실내에서 혹은 잘 관리된 야외 정원에서 시시때때로 거리낌 없이 나누는 섹스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에로틱한 불을 질렀을 것이다.
성 전문가로서 본 ‘브리저튼’에는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점은 이 드라마에서 사이먼이 피임 방법으로 사용하는 ‘질외사정’은 피임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이먼은 아주 운이 좋았다. 아무 피임 도구나 방법 없이 일단 삽입이 되면 정자가 난자를 만날 가능성은 적지 않다. 정자와 난자는 1:1로 만나면 수정이 가능하다. 남자가 흥분하면 정액보다 먼저 나오는 쿠퍼액에는 원래 정자가 들어 있지 않지만, 미리 나와 있던 정자가 섞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질외사정은 결코(!) 피임법이 아니다.
또 이렇게 번번이 절정의 순간에 성기를 빼내는 것은 남자에게 무척 부담스런 행위이고, 극도의 긴장감을 주게 된다. 최고로 긴장을 풀어야 할 순간에 가장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 남자로서도 성적 오르가슴 순간이 아쉽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질외사정을 하다 보면 사정의 기전에 실제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두 번째는 미흡한 성교육!
결혼해서 곧 섹스를 치르게 될 딸이 어머니에게 ‘첫날밤’에 대해 물으면 ‘남편이 시키는 대로 다 하라.하지만 너는 영국만 생각하라’고 가르쳤다던 당시 영국의 여느 귀족 어머니처럼, 다프네의 사랑 넘치고 현명한 어머니도 결혼할 다프네에게 사랑의 행위에 대해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런 미흡한 성교육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학교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에 대해 알려주지만, 그들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피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성교육은 학교뿐 아니라 부모도 사회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브리저튼’의 미덕은 남자들이 열광하는 포르노는 아니지만 여자들의 성적 흥분감을 높이기에 적당한 에로틱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노골적인 성기 삽입 등의 시각적인 자극에 흥분하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이런 스토리가 있는 낭만적이고 에로틱한 자극에 더욱 성적으로 흥분감을 느낀다. 그래서 ‘브리저튼’을 여성용 포르노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섹스리스로 내게 찾아왔던 젊은 부부에게 치료 과정으로 이 드라마를 추천해주었더니, 성적 흥분 및 감각을 되살리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성감이 떨어졌다고 느끼신다면 한번 시도해보시길 권한다!
1990년대,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금발의 여인이 있었다. ‘귀여운 여인’ 줄리안 로버츠다. 시니어라면 아찔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싸이 하이 부츠 신은 채 발랄한 매력을 뽐내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스타와의 설레는 로맨스를 꿈꾸게 만들었던 ‘노팅힐’은 또 어떠한가. 두 작품의 흥행으로 줄리아 로버츠의 이름 뒤에는 ‘로코 퀸’이란 수식이 붙기 시작했지만, 이후 그녀는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영원한 귀여운 여인, 줄리안 로버츠의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적과의 동침 (Sleeping With The Enemy, 1991)
무명배우이던 줄리아 로버츠는 ‘귀여운 여인’으로 1990년 스타덤에 오르고, 맥 라이언과 함께 로코 퀸으로 부상하는 듯했지만 다음 해 전혀 다른 장르로 찾아와 관객을 놀라게 한다. 바로 ‘적과의 동침’이다. 영화는 미모의 여인 로라(줄리안 로버츠)가 결혼 후 돌변한 남편 마틴(패트릭 버긴)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언뜻 보면 행복한 부부 사이 같지만, 마틴은 극도의 의처증을 앓고 있다. 로라의 별 뜻 없는 행동에 외도를 의심하고,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뒤 곧바로 사랑을 속삭이며 자신만을 바라볼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가학적인 폭력에 시달린 로라는 탈출을 결심하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후 로라는 ‘사라’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살아가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영화는 장르의 본분을 잃지 않고 다시금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며 반전을 예고한다. 줄리안 로버츠는 이 영화에서 ‘귀여운 여인’과는 다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각인되며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한다. 내용은 다소 공포스럽지만, 그와 별개로 그녀의 리즈 시절 미모가 감탄을 자아낸다.
2. 에린 브로코비치 (Erin Brockovich, 2000)
‘귀여운 여인’, ‘적과의 동침’으로 눈부신 미모를 자랑한 줄리안 로버츠는 약 10년 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자신감 넘치는 싱글맘 역할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그녀가 연기한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은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실존 인물의 실화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름을 딴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 업무를 하는 에린(줄리아 로버츠)이 우연한 계기로 마을에 유해 물질을 방출한 거대 기업의 실태를 파헤치고, 미국 역사상 최고의 손해배상금을 받아내는 내용을 다룬다. 평범한 싱글맘과 거대 기업의 싸움은 시작부터 승패가 예상되는 불리한 게임이다. 그러나 에린은 정의에 대한 투지와 끈기로 기업의 부조리함을 입증하고, 사회를 바꿔낸다. 왼손잡이인 줄리안 로버츠는 에린 브로코비치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연습을 하며 캐릭터를 향한 아낌없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노력의 결실은 200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 자리를 공고히 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
3. 원더 (Wonder, 2017)
2010년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후 눈에 띄는 흥행작이 없었던 줄리안 로버츠는 2017년 따뜻한 가족영화 ‘원더’로 호평을 받으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원더’는 선천성 안면기형으로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와 그를 둘러싼 가족,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10살이 되던 해, 홈스쿨링을 하며 헬멧 속에 숨어 살던 어기가 학교로 첫 발을 내디디며 시작된다. 전체적인 서사는 어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각 챕터 별로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친구 잭(노아 주프), 비아 친구 미란다(다니엘 로즈 러셀) 등 서술자가 달라지며 주변 인물을 함께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비아의 결핍과 잭이 어기와 친구가 된 계기 등 저마다의 사연이 밝혀지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확장된다. ‘원더’는 공동체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인물들을 통해 사람 간 관계 맺음에 주목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차별적인 시선으로 상처 입은 어기를 향해 “너는 기적 같은 아이”라며 응원을 실어준 줄리안 로버츠의 대사가 영화의 메시지를 관통하며 오랜 여운을 남긴다.
주기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구독경제’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뿐 아니라 의식주부터 취미와 여가 등 삶의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심심할 때 TV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 구독자 수로 인기를 가늠하는 구독 전성시대,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을 이색 서비스를 소개한다.
“술 한잔하자”는 말을 들으면 대개 소주나 맥주를 떠올린다. 주점에서 판매하는 술이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흥의 민족’ 한국인은 단 두 가지 술만으로도 기상천외한 폭탄주를 만들어내곤 했지만, 조선 시대 선조들은 현대인보다 한 수 위(?)로 술을 즐겼다. 당시 국민 60% 이상이 김치를 담그듯 집에서 가양주를 빚었으며,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술을 만들었다. 그러나 1909년 일제에 의해 면허를 가진 사람만 술을 빚을 수 있는 주세법이 시행되며 긴 시간 이어지던 전통주의 명맥이 끊겼다. 그로부터 80여 년 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통주 발굴 필요성이 재조명됐지만, 이미 ‘소맥’(소주+맥주)이 주류(酒類)의 주류(主流)로 떠오른 뒤였다.
전통주 구독 서비스 ‘술담화’
“저도 우리나라 술은 소주와 맥주만 있는 줄 알았어요.” 이재욱 술담화 대표도 대학 시절 초록색과 갈색 병이 뒤섞인 술자리 문화를 경험했다. 그는 사람마다 다른 입맛과 기호는 존중하면서 술자리에서는 모두 똑같은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셔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보다 여러 종류의 술을 맛으로 즐기고, 진득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선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방문한 전통주 엑스포에서 여러 개성 있는 술을 맛보며 원하던 음주 문화의 해답을 찾았다. 2000여 가지 전통주 중에서 누구나 취향에 맞는 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통주 구독 서비스 ‘술담화’가 탄생한 계기다.
술담화는 동네 마트에서 구하기 힘든 전통주를 매달 콘셉트에 맞춰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최근 ‘부어라 마셔라’ 식의 회식 문화가 줄어들고, 조용한 공간에서 술을 음미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월 3만9000원을 내면 총 2~4병의 전통주와 술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는 큐레이션 카드, 간단한 스낵 안주 등이 담긴 ‘담화박스’를 제공한다. 담화박스에 들어가는 전통주의 평균 소매가가 지난해 기준 약 4만3000원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시중보다 12%가량 저렴한 가격이다. 콘셉트는 계절이나 그달의 분위기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4월은 봄에 어울리는 술, 5월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술을 추천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택배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자신이 받아볼 술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신 맛 표현이나 재료, 도수 등 술담화 측에서 공개하는 몇 가지 힌트를 통해 이달의 구성이 자신의 취향에 맞을지 추측해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전통주는 올드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블라인드 면접처럼 술의 특성만 공개한다면 선입견을 해소하고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수천 가지 전통주가 생산되고 있는 만큼 담화박스에 선정되는 술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직원들이 모여 시음을 하고 점수를 매겨 평균 평점 3.5점 이상인 제품만 후보로 삼는다. 또 국제 와인전문가 자격증 고급 과정(WSET Level 3)을 보유한 전문가뿐 아니라 갓 입사한 인턴 직원도 한데 모여 의견을 교류한다. 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전통주 초보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술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다.
구독자 대부분은 구독경제 모델이 익숙한 젊은 세대다. 그러나 중장년층의 이용률도 19.8%로 적지 않다. 특히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중장년층은 구매력이 높고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뛰어나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저희가 SNS에 익숙한 세대다 보니 중장년층 고객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데 부족함이 있는데, 충분히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앞으로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인생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술담화가 ‘브라보’ 독자에게 추천하는 이색 전통주 BEST3
복순도가 손막걸리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강한 탄산감과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뚜껑을 열 때 힘차게 차오르는 기포가 샴페인 같아 ‘막페인’(막걸리+샴페인)이라고도 불린다. 주로 기름진 음식을 즐길 때 곁들이기 좋다. 가격 1만2000원 추천 안주 수육, 짜장면, 파전
토박이 한산소곡주 한 잔 마시기 시작하면 계속 손이 가고, 결국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취하게 만든다고 해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린다. 캐러멜의 달콤한 향과 누룩의 고소한 풍미가 16%라는 도수를 잊게 만든다. 가격 1만2000원 추천 안주 샤브샤브, 제육볶음, 약과
문배술 헤리티지 40도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오르고,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술이다. 배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향긋한 문배나무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해산물 등 성질이 차가운 음식과 어울린다. 가격 1만800원 추천 안주 오삼불고기, 생선회, 양장피
얇은 옷차림으로 몸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봄바람처럼 살랑대는 음악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과거에는 음악 한 곡을 듣기 위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타이밍 맞춰 녹음해야 했지만, 요즘은 유튜브 하나만으로 그 시절 추억의 무대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흥겨운 리듬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나이를 잊은 듯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춤과 노래, 서사가 한데 어우러진 음악 영화도 흥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영화 ‘더티 댄싱’의 베이비처럼 춤바람에 흠뻑 빠져볼 독자를 위해 춤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그리스 (Grease, 1978)
한때 할리우드 배우 올리비아 뉴튼 존과 존 트라볼타가 당대 최고의 이상형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뮤지컬 영화 ‘그리스’는 시니어의 추억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단골손님이다. 영화는 1950년대 말, 여름방학 동안 해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대니(존 트라볼타)와 샌디(올리비아 뉴튼 존)가 방학이 끝난 후 고등학교에서 재회하며 시작된다. 하지만 여름날의 설렘도 잠시, 학교에서 다시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흐른다. 학교 서클의 리더인 대니가 친구들 앞에서 허풍을 떨기 위해 반가운 마음을 애써 숨기고, ‘나쁜 남자’로 변신한 것. 달라진 대니의 태도에 상처받은 샌디는 톰과 친하게 지내고, 대니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 뒤에도 다소 예상 가능한 전개가 이어지지만, 그때마다 장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뮤지컬 넘버가 지루할 틈을 없앤다. 특히 ‘유아 디 원 댓 아이 원트’ 등 시니어에게 익숙한 로큰롤 멜로디는 롤러장에서 신나게 춤을 추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1950년대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엿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2. 브링 잇 온 (Bring It On, 2000)
추억여행도 좋지만, 젊음의 열기와 10대의 상큼 발랄한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땐 ‘브링 잇 온’도 괜찮은 선택이다. 영화 ‘브링 잇 온’은 미국 고등학교 치어리더를 소재로 한 고전 하이틴 영화다. 치어리더 경연대회를 몇 주 앞두고, 5년 연속 우승한 최강 응원팀 ‘토로스’의 안무가 도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응원팀 ‘클로버스’와 경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장르 특성상 설정과 대사 등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회 우승을 향한 주인공들의 열정과 몸을 아끼지 않는 연습, 묘기에 가까운 고난도의 치어리딩을 보고 있으면 그저 시시한 하이틴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꿈을 향해 질주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전해 받은 듯 불끈 기운이 솟는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노래 ‘미키’에 맞춰 파워풀한 군무를 선보이는 치어리딩 장면이 영화의 명장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헤이 미키’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3. 스텝 업 (Step Up, 2006)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스텝 업’이 바로 그 원조 격이다. 2000년대 초반 불어 닥친 비보이 열풍도 이 영화의 영향이 크다. ‘스텝 업’은 반항심 가득하지만 스트리트 댄스 하나는 끝내주게 잘 추는 타일러(채닝 테이텀)가 사고를 치고 근처 예술학교에서 사회봉사를 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최고의 춤꾼들이 모인 곳에서 타일러는 아름다운 발레리나 노라(제나 드완)를 만나고, 다리 부상을 당한 그녀의 파트너를 대신해 함께 춤 연습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연습 과정에서 장르와 환경 등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지만 거듭되는 연습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마침내 춤으로 하나가 된다. 파워풀한 비보잉과 우아한 발레가 한데 어우러진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색다른 무대로 보는 이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여기에 청춘남녀의 짜릿한 로맨스까지 더해져 두근거림은 배가 된다. 스텝 업과 비슷한 짜임새를 갖춘 영화 ‘더티 댄싱’과 비교하며 봐도 좋다. 더티 댄싱은 열일곱 소녀가 댄스 강사를 만나 춤의 신세계에 눈을 뜨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 같다가도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장소에 방문하거나, 음악을 들으면 학창 시절이 어제처럼 생생해진다. 오늘날 ‘라떼(나 때)는 말이야’가 과거의 무용담을 밥 먹듯이 늘어놓는 이들을 비아냥대는 유행어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한창때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라떼’가 그리운 이들을 위해 옛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쎄시봉 (C'est Si Bon, 2015)
오늘날 가요계를 주름잡는 대표 가수로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꼽힌다면 1960~70년대에는 트윈폴리오가 있었다. 한국 포크 음악계의 전설 송창식과 윤형주가 1967년 결성한 듀오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쎄시봉’은 트윈폴리오에 숨겨진 제3의 멤버 오근태가 있었다는 설정으로 출발해 ‘트리오 쎄시봉’의 탄생 비화와 이들의 얽히고설킨 첫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종로구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과 주인공들이 만들어나가는 음악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시니어라면 반가울 만한 에피소드를 군데군데 갖춰 놓는다. 특히 근태(정우)와 자영(한효주)이 늦은 시간까지 데이트를 하다 ‘통금’시간에 맞춰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 자영을 미니스커트 단속에서 지켜주기 위해 자영의 짧은 치마를 대신 입은 근태의 모습 등은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여기에 ‘하얀 손수건’, ‘담배가게 아가씨’, ‘딜라일라’, ‘웨딩케이크’ 등 세월을 관통하는 명곡들은 덤. 신파적인 감성이 과하다는 평이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기엔 충분하다.
2. 써니 (Sunny, 2011)
파란만장한 학창 시절을 추억할 때면, 세월이 흘러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바로 질풍노도의 시기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들이다. 1980년대 여고를 배경으로 한 영화 ‘써니’는 그 시절 시끌벅적한 학창 시절과 학급 분위기를 상기시킨다. 영화는 평범한 주부 나미(유호정)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교 동창 춘화(진희경)를 위해 옛 친구들을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는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전개 방식을 따르며, 수줍은 전학생 나미가 써니 멤버를 만나 추억을 쌓아가는 모습을 통해 때 묻지 않은 10대의 우정을 풋풋하게 그린다. 한편 중년이 된 써니 멤버들은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을 통해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되찾고, 다 함께 모여 춤 연습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여고 시절로 되돌아간다. 영화는 그 자체로 타임머신 역할을 하면서, 나미의 ‘빙글빙글’, 영화 ‘라붐’의 주제곡 ‘리얼리티’ 등 타이밍 좋게 흘러나오는 추억의 음악으로 향수를 더욱 자극한다. 보니 엠의 ‘써니’를 흥얼거리며, 먼지 쌓인 졸업앨범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3. 그대 이름은 장미 (Rosebud, 2018)
‘써니’가 여고 동창들의 우정을 이야기한다면,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는 한 여성의 찬란했던 옛꿈과 사랑을 그린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딸을 키우며 하루하루 전쟁처럼 살아가는 싱글맘 장미(유호정)다. 지금은 영락없는 주부의 모습이지만, 그녀에게도 가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로 꿈을 포기하고, 딸 현아(채수빈)를 낳은 이후부터는 흐르는 세월을 잊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옛 연인 명환(박성웅)을 마주치게 되면서 마음속에 묻어둔 추억을 하나둘 꺼내보기 시작한다. 전반적인 코드가 ‘써니’와 비슷한 듯하지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또 과거보다는 현재 시점을 위주로 보여주며, 엄마로서의 고단함, 딸과의 갈등 등 현실적인 내용에 집중해 밝고 활기찬 과거 장면과 톤을 달리한다. 서로 다른 두 영화를 합친 듯한 구성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극적인 대비를 통해 누군가의 부모로 살아가는 이들도 한때 장미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브라보’한 소식이다. 액티브 시니어를 대표하는 배우 윤여정이 최근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 배우로는 사상 최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녀가 걸어온 연기 인생과 필모그래피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는 여배우들이 나이 들면 반강제로 얻게 되는 ‘국민 엄마’ 타이틀을 떼고, 55년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수식이 필요 없는 배우로 거듭났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아카데미라는 신대륙으로 새 ‘여정’을 떠나게 된 윤여정을 응원하며, 그녀의 출연작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돈의 맛 (The Taste Of Money, 2012)
1970년대, 고(故)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와 ‘충녀’로 연예계에 한바탕 센세이션을 일으킨 윤여정은 ‘한국의 팜므파탈’이라는 별명으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그녀는 수십 년 연기 내공을 쌓아 다시 한번 팜므파탈로 변신한다. 영화 ‘돈의 맛’을 통해서다. ‘돈의 맛’은 대한민국을 돈으로 지배하는 재벌가 백씨 가문의 권력을 향한 집착과 욕망을 제목처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권력을 손에 쥔 윤회장(김윤식)과 안주인 금옥(윤여정), 비서 영작(김강우), 장녀 나미(김효진)까지 네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설정만으로 이미 충분히 파격적인 내용이지만, 영화는 윤여정의 무르익은 연기로 한층 더 농밀해진다. 붉은색 립스틱과 무언가를 관통하는 눈빛, 시니컬한 중저음 목소리. 존재만으로 압도하는 금옥을 보고 있으면, ‘윤스테이’ ‘윤식당’ 등 TV에서 접한 윤여정의 정겨운 사장님 이미지가 자동 삭제된다. 31살 연하 배우 김강우와의 수위 높은 베드신도 마다하지 않으며, 원조 팜므파탈의 위력을 입증한다.
2. 고령화 가족 (Boomerang Family, 2013)
사연 없는 집안은 없다고 하지만, 이 집은 많아도 너무 많다. 전과 5범 백수 한모(윤제문), 흥행에 참패한 영화감독 인모(박해일), 이혼이 취미인 미연(공효진)까지 이들은 모두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영화 ‘고령화 가족’은 나잇값 못 하는 자식들이 어느 날 평화롭던 엄마(윤여정)의 집에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반적인 가족과는 달리 콩가루 집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서로를 향한 비난은 기본, 치고박고 싸우는 것은 일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으르렁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맞대고 함께 밥을 먹는다. 영화는 사고뭉치 세 남매를 사랑으로 품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그간 미디어에서 다뤄온 ‘희생하는 엄마’ 역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진부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간 윤여정이 도회적인 이미지로 스크린에 비춰진 것을 떠올리면, ‘고령화 가족’에서의 수더분하고 모성애 가득한 모습은 그 자체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윤여정이라서, 한층 더 신선해지는 영화다.
3.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2016)
‘죽인다’는 말은 중의적인 뜻이 있다. 무언가를 향해 감탄하는 속된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고, 문자 그대로 살인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주인공 소영(윤여정)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놀랍게도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나이 든 이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소영이 뇌졸중을 앓고 있는 송노인으로부터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성적으로 죽이게 잘한다고 소문 난 소영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영화는 단돈 4만원을 위해 ‘박카스 할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영의 일생을 돌아보며 노년기 빈곤, 여성에 대한 성 착취 구조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담론을 깊이 있게 던진다. 또 소영의 주변 인물을 통해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등 현실 속에서 소외된 이들에 주목하고,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시니어 배우로서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그녀의 ‘죽여주는’ 연기가 감탄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