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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잘 자기 위한 나만의 비법] 잠 못 드는 밤과의 이별을 위한 레시피
- 불면증을 겪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힘든 고통은 없을 것 같다는 아픔을. 반면에 불면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불면증으로 고생한다고 하면 속으로는 아마 별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한다고 빈정댈 수도 있는, 조금 사치스러워 보이는 습관으로 치부할 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런 하릴없는 증세(?)로 크게 두 번, 작게는 여러 차례 고통과 직면해야만 했었고 그때마다 그로부터 해방되는 방안을 찾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만큼 이제는 나름 불면증에 관한한 준전문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체가 아프거나 마음이 아파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먼저 병원을 찾는 것이 맞는 일이겠지만 그 이전에 그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개인적인 몇 가지 팁을 제시해 보려한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닐 때 처음으로 불면증이라는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늘 고뇌와 번민을 달고 살았던 예민의 시절이었기에 어느 정도 잠 못 드는 밤이 있는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잠이 부족해서 머리가 아파오고 몸이 피곤해 무엇에든 집중하기 어려운 날이 몇 달 지속되자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극도의 신경과민이 나를 심하게 괴롭혔다. 매일 아스피린을 달고 살거나 술에 만취해서 예민한 신경을 잠시라도 잠재우려 애를 써보기도 했지만 ‘존재에 대한 불안’에 근거한 잠 못 드는 밤은 실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 정신을 피폐케 하였다. 결국 병원에서 가끔 수면제 처방을 받아 임시방편으로 잠에 빠져보기도 했지만 약이 없으면 이내 또 정신이 너무 눈부시게 깨어나서 잠을 이룰 수 없게 되고 젊은 혈기가 넘칠 나이에 약에 의존한다는 것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는지 약의 효과는 점차 반감되어가기만 했다. 일반적으로 잠이 안올 때 책을 읽는다든가 양을 한 마리 두 마리 세어 나간다든가 하는 여러 민간처방을 해보았지만 효험을 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내 영혼의 근본적인 불안이 원인이라고 잠정결론을 내리고 내 안에 오래 내재된 잡다한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참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십분 정도일지라도 참선을 하는 것을 지속했고 잠자리에 들 때는 사지를 편하게 뉘이고 오직 복식호흡에만 집중하였다. 아무런 잡념 없이 오직 심호흡에만 집중하여 계속하다보면 깊은 숨에 의한 체내 산소공급의 원활화로 인해서인지 편안한 마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잠에 빠지게 되고 보통 한 두시간지나면 다시 깨곤 했었던 악순환 없이 6시간 이상 지속적인 깊은 잠을 이루게 되면서 드디어 악몽 같았던 불면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게 되는 갈등으로 잠시 불면의 밤을 지새운 적도 많고 심호흡을 해도 잠이 오지 않는 고통스런 순간도 많았지만, 적극적인 마음으로 나를 괴롭히는 갈등을 정면으로 돌파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보면 무의식 세계의 평안함이 찾아오게 되고 이는 다시 나의 수면주기를 정상적으로 돌려놓곤 해주어서 그다지 큰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다시금 된통 불면증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한동안 살아야했던 기간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너무 생생하여 되새겨보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없으나 불면증이 다시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고생할 것 같지 않다는 마음이 먼저 앞서는 것으로 보아 편한 마음으로 써나가도 될 듯하다. 삼십 여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그리 큰돈을 모으지도 못한 채 맞이한 정년퇴직 후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다. 퇴직 후 일,이년 남짓한 기간은 해방감을 만끽하면 전국을 돌아다녔고 히말라야나 시베리아까지도 ‘무릎 떨리기 전에 가슴 떨림을 먼저 느껴야 한다!’고 우기면서 신나게 즐길 수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55세 이후 대략 또 다른 40~50년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 뭔가 확실한 인생 2막을 열어야 할 것이라는 부담감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원래 꼼꼼한 성격에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러한 고민에 침잠하다보니 예전 고민 많던 20대의 상황과 거의 유사한 내적불안으로 인한 잠 못 드는 밤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여행과 사진 활동을 접고, 노인에 대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도 하고, 노후에 하고 싶었던 직업으로 생각한 관광통역사 자격도 취득해서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던 몇 가지 사업들도 지속적으로 매달려 보기도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백방으로 노력한다고 해보았지만 돈이 되는 것은 없고 돈만 계속 들어가는 시기였다. 아무래도 동업에 따른 갈등도 적지 않다보니 내 자신의 사업을 별도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법인을 만들고 직원채용과 마케팅으로 하루하루 몰두를 했지만 너무 앞서나가고 시장을 제대로 파악치도 않고 뛰어든 사업의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번아웃 되어가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속절없이 잠 못 드는 밤과 나란히 친구가 되어 고통을 견디어야만 했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찾아오는 여러 고통은 예전과는 달리 두렵거나 힘들다는 느낌은 별로 없고 번거롭다는 생각일 뿐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또는 ‘연식이 오래되면 여기저기 탈이 나는게 자연의 섭리’라는 정도로 달관하게 되어 그다지 고통스럽다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 다만 얼마 되지 않은 사업자금이 바닥나고 30년간 관리자 역할밖에는 모르던 사람으로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대안 마련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저녁에는 잠들기 어렵고 새벽에는 진정 노인이 된 듯 일찍 깨면서 내 머리 속은 지나치게 밝은 조명을 바라보듯 집중이 어려워졌다. 어차피 잠 못 드는 시간이라면 가급적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하다보니 일석이조의 방안이 떠올랐다. 치매예방을 위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글을 보고 한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영어공부를 다시하기로 한 것이었다. 특별히 공부시간을 정해 놓을 필요 없이 잠이 오지 않아 고통스런 시간이 오면 무조건 스마트폰에 저장된 가장 어려운 등급의 영어 리스닝을 틀어 놓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약 한달 정도 사이에 70킬로의 몸무게가 66킬로까지 빠질 정도로 불면증은 심신을 피폐하게 하는 악당이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달리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잠이 빨리 찾아와 주었다. 처음에 자동꺼짐을 한시간 정도 여유 있게 해 놓곤 했으나 점점 30분, 15분... 짧은 시간을 세팅하더라도 마지막까지 들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잠은 급히 쏟아지게 되었다. “역시 어려운 공부는 졸음으로 가는 지름길!” [불면증 관련 엉뚱한 제언] 민간요법(?)의 하나로서 잠이 오지 않은 경우 양을 세는 방법이 우리나라의 방식이 아니라 외국에서 전래된 내용으로 알고 있다. 보통 잠을 잘 못자는 경우 양을 세라고 하면 우리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하겠으나 외국의 경우에는 one sheep, two sheep...하면서 ‘잠’에 해당하는 단어인 ‘Sleep’과 유사한 발음을 하므로 인해 잠을 유도하게 된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양한마리’ 대신에 ‘잠자리 한 마리, 잠자리 두 마리...’하다보면 잠자리에서 쉽게 잠이 들지 않을까?
- 2016-08-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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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석과 아동석
- 필자는 출·퇴근을 주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2시간가량 차를 갖고 운전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몇 번 지하철을 갈아 타긴 하지만 익숙해진 탓에 힘든 줄 모른다. 5호선 개롱역에서 출발하여 1호선 덕정역까지 가는 데는 군자역과 도봉산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거의 끝과 끝인 관계로 아침 출발할 때는 자리에 앉아서 신문이나 책을 보기도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탓에 출근길은 앉아서 가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에 있다. 야간 강의가 있어 덕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오게 된다. 오후 4시 전후로 타게 되는 데 전철 안 좌석은 빈 틈이 없다. 소요산 종점부터 이미 지하철 여덟 량이 초만원이다. 탑승자 90% 이상이 실버세대인 5~60대 이상의 노인들뿐이다. 낮에 소요산으로 등산 갔다 돌아가는 것이다. 중간에 몇 개 대학을 거치면서 젊은 학생들이 타지만 자리에 앉을 기회는 없다. 어느 칸을 가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앉을 자리도 없을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도 어렵다. 더구나 이 시간에 어린이들을 본다는 것은 행운(?)에 가깝다. 우리나라가 고령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현실감 있게 느끼게 된다. 일부분은 여유 있는 노후생활이겠지만 이미 잘 알려진 사실대로 준비되지 않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수입도 있어야 하고 아직 일을 더 할 수 있지만, 일자리가 없어 파고다 공원이나 무료로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하루를 소일하는 노인들이 많다. 오늘도 전철을 타게 되었는데 칸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른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언제 탔는지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젊은 여인이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탑승를 하였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나이 든 어른들만 늘 보았던 전철 안이 갑자기 새 생명의 서광이 비친 듯 했다.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희망처럼 다가왔다. 엄마는 아기를 업은 채 자리가 없어 한참을 서 있었다. 태어나는 어린이는 줄고 고령화로 점점 노인인구가 늘어난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7% 이상일 때는 고령화 사회, 14% 이상일 때는 고령사회, 20% 이상일 때는 초고령 사회로 분류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7%를 넘어서며 고령화 사회에 진입을 했고 2018년에는 고령 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라 한다. 2026년 현재의 노인인구가 거의 2배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 예상을 하는 데 지금 전철안에서 보는 노인인구의 약 2배 노인이 늘어난다는 셈이다. 얼마지 않아서 지금 한 쪽 구석에 놓여있는 경로석은 아동석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전철안에 아이를 업은 엄마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를 꾀해야 할 시점이다.
- 2016-07-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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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할아버지 베이비시터
- 베이비시터는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고 민간자격증도 있는 전문직dl다. 요즘 맞벌이가 대세다보니 아이를 내 친자식처럼 돌봐줄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쪽지가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있다. 구인광고를 보고 정확히 어떤 베이비시터를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아이 돌봐줄 이모 구함’ 이라는 뉘앙스로 보아 40대나 50대 초반의 아줌마를 지칭하는 것 같다. 남자고 게다가 할아버지는 꽝이다. 베이비시터가 되려는 사람은 아이엄마와 면담을 거쳐 고용이 되겠지만 돌도 안 지난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직장에 가야 하는 아이엄마들은 불안할 것이다. 처음 약속 대로 아이를 제대로 돌봐 주어야 하는데 때리거나 먹을 것을 제시간에 맞춰 제대로 줄지에 대해 불안해한다. 급기야 CCTV를 거실에 달고 베이비시터의 동작을 살핀다. CCTV가 거실에 설치 된지를 모르고 옷을 갈아입다가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지 마세요.’ ‘아이에게 집중해 주세요.’라고는 문자 통보를 받으면 감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어 억울해하기도 하고 결국 그만두기도 한다. 베이비시터는 여자여야 한다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건강한 할아버지에게 적합한 일거리이다. 필자가 며느리를 도와서 손자, 손녀를 돌보면서 얻은 결론이다. 물론 모든 할아버지가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평소 아이를 사랑하는 따뜻한 심성에 신체 건강한 할아버지여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할아버지 베이비시터 장점은 이렇다. 첫째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힘이 있어서 덜 지친다. 아이를 좀 더 오랜 시간 안아줄 수 있다. 서너 살 먹은 아이가 갑자기 뛰어와서 ‘할머니!’하고 덤벼들 듯 안기면 할머니가 벌러덩 나자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할아버지는 버티는 힘이 할머니 보다는 강해 넘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둘째로 할아버지는 대부분 운전을 하므로 아이가 아플 때 병원 투어에 제격입니다. 동네병원은 주차시설이 좁고 열악하여 숙달된 운전자가 필요하다. 셋째로 직장에서 조직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할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하다. 시간 맞춰 분유를 타주거나 간식을 주는데도 할아버지가 더 잘 할 수가 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들보다 위생관념이 덜하고 아이를 건성건성 볼 것이라는 생각도 선입견이다. 요즘 할아버지들은 외출해서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손을 씻고 아이를 안아준다. 보건, 위생관념이 예전의 할아버지와는 다르다. 아이의 정서적인 면에서도 베이비시터가 자주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 젊은 여성베이비시터는 할아버지에 비해 자주 바뀔 가능성이 높다. 시니어들의 일자리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일다. 할아버지 베이비시터는 큰돈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경제적이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힘에 부치지도 않는 아이 돌봄을 하면서 신체와 머리를 쓰므로 건강해지고 일을 한다는 자존감으로 행복해진다. 국가적으로도 노인의 의료비가 높은데 노인이 일을 함으로써 건강해지면 의료보험재정이 튼튼해진다. 한번 고착된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이돌보는 것은 여성이 제격이라고 믿고 있고 일부 타당성의 근거도 있지만 절대적은 아니다. 평소 아이를 좋아하는 할아버지고 베이비시터 전문적인교육을 받으면 충분히 할아버지도 훌륭한 베이비시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2016-07-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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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자서전]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 필자는 한국전쟁이 나던 해 자식 많은 가난한 농사꾼의 9남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풍요로움을 느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애잔함이 밀려든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로 변한 농촌에서는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13명의 대가족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해야 할 만큼 식량이 필요했다. 봄날은 길고 보릿고개는 높았다. 봄에 장리쌀 한 가마니를 빌려오면 가을에 한 가마니 반을 갚아야 했다. 50%의 이자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과히 살인적인 이자요, 착취다.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사회 구조였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해만 보릿고개를 넘을 때 장리쌀의 고리에서 벗어나면 되었지만 굶을 수는 없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걸 필자가 해보리라 결심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1년만 포기하기로 했다. 1년 동안 돈을 벌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어린 필자가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는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시절이었다. 필자 동네도 정부에서 구불구불한 논둑을 똑바로 펴는 경지정리 작업을 시행했다. 지금 말로 하면 공공근로다. 읍사무소 담당 공무원이 나와서 그날 할 일을 지정해주고 저녁 무렵 성과를 측정해서 실적에 따라 밀가루 티켓을 나눠 줬다. 지원자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최저임금에 버금가는 적은 밀가루 지급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농사일이 다 끝난 겨울에 하는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논둑에 한 뼘 정도 들어 올릴 만큼의 범위를 정하고 곡괭이로 논둑에 구명을 낸다. 거기에 쇠로 된 긴 지렛대를 넣고 논둑을 들어 올리면 논둑이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 직선화된 새로운 논둑을 만드는 일이다. 공사가 다 되면 바둑판처럼 반듯한 직선화된 논둑과 논이 만들어진다. 경지면적도 커지고 농토가 반듯해서 농사짓기에도 편하게 된다. 요즘 같으면 포크레인 등 기계로 하겠지만 당시는 순전히 사람의 노동에 의한 작업이었다. 공공근로라는 것이 다 그렇듯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하루 할당된 일의 양도 5~6시간이면 다 마칠 일이었다. 밀가루를 매일 주는 것이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읍사무소에 가서 받아왔다. 이렇게 받은 밀가루가 10포대 정도 되었다. 필자가 벌어온 밀가루로 수제비도 해먹고 콩가루 넣은 칼국수도 만들어 먹었다. 늙은 호박에 팥을 넣은 호박범벅도 해먹었다. 덕분에 쌀이나 보리를 아낄 수가 있었다. 그해 장리쌀의 고리를 끊고 보릿고개를 넘었다. 이제 빚은 없어졌다. 어머니가 두고두고 필자 공을 인정해주었다. 당시는 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먹어야 사니까 흉년에는 콩죽 한 그릇 하고 논 서 마지기를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방직공장에 취직한 나이 어린 소녀들이 봉급 받은 다음 날 우체국에 줄을 서서 고향으로 돈을 보내는 모습도 봤다. 고향 집에 보내기 위해 손에 쥔 그 돈이 달랑 3000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돈으로 오빠나 동생들 학교 다니게 하고 살림 밑천인 송아지도 샀다. 이런 돈들이 모여 논, 밭도 사고 고향 집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일등공신들이 수두룩하던 시절이었다. 땅값이나 집값이 지금처럼 비싸다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는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는 다음 해 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진학했다. 적성도 모르고 오직 취업이 잘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공고를 택한 이유라면 이유다. 당시는 공부를 못해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빠른 취업을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자 동급생들이 하나둘씩 취업되어 학교를 떠났다. 필자도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전매청 연초제조창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담배를 만드는 기계는 이태리 제품인데 요즘처럼 완전자동은 아니나 당시로는 획기적인 자동화 기계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동화 설비에 대해 도면 보는 법을 익히고 고장 난 기계들의 점검하고 수리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군대에서 기술을 더 배워보려고 육군 발전기술병으로 지원했다. 처음에는 대대 참모부에서 군수품을 담당하는 행정병 보직을 받았다. 그런데 전기 일을 하게 될 운명이었는지 부대 목욕탕 관리 병사가 전기 감전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후임으로 전기를 안다는 이유로 필자가 선발됐다. 목욕탕 관리사병은 보일러를 다룰지 알아야 하지만 필자는 보일러에 대해서는 통 몰랐다. 인근 부대를 다니며 독학으로 보일러의 운전법을 배우고 무난히 목욕탕 관리사병의 임무를 마쳤다. 한 번은 목욕탕에 사성장군인 군사령관이 방문했다. 별 4개를 보는 순간 벌벌 떨었다. 35개월을 마치고 제대한 후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입사하게 됐다. 27세 때었다. 필자 인생에서 전기안전공사를 빼놓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자식 공부도 시키고 60세 정년퇴직을 했으며 노후생활도 보장받았다. 안전공사 생활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간부시험에 일찍이 합격한 것이다. 간부는 60세 정년이지만 직원은 58세가 정년이었고 급여에서도 차등이 있어 경쟁이 심했다. 간부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의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하는 근속연수 점수와 상급자가 매기는 고과점수를 합한 기본점수가 있다, 여기에 필기시험을 쳐서 학과 점수를 보태어 성적순으로 뽑았다.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필기시험이었다. 필자는 상급자인 주임들을 제치고 간부시험에 입사 3년 만에 합격하였다. 간부로 첫 부임지가 공교롭게도 과거 근무한 적이 있는 사업소였다. 간부로 발령받고 보니 옛날 상사인 주임들이 부하로 바뀌어 있었다. 필자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주임들도 필자를 대하기에 곤혹스러웠다. 이런 때일수록 필자의 상급자인 과장이 잘 컨트롤 해 줘야 하는데 상급자인 과장도 주임들과 오래 근무한 정으로 심적으로는 주임들과 더 가까운 편이었다. 공식적인 술자리에는 필자가 참석했지만 주임들과 과장 간의 사적인 술자리에는 필자를 고의로 배제했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힘으로 간부의 위치를 찾아갔다. 두 번째 사건은 고등학교 후배가 많은 지역에 과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필자가 졸업한 공고는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동문회 야유회 때는 장난 비슷하게 선배가 후배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나쁜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매이니까 웃으며 맞았다. 부부동반으로 야유회도 다녔는데 선배들이 후배 벌주는 것을 부인들이 다 보고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고착화된 선후배 간 전통이었다. 그런데 회사 간부인 필자를 때리기는 아무리 선배지만 버거워했다. 필자로 인해 벌씌우거나 매를 드는 것은 차츰 없어졌다. 하지만 선배들을 사적인 장소에서는 더욱 깍듯하게 모셨다. 술을 따를 때도 3년 이상 선배한테는 무릎을 꿇었다. 세 번째 사건은 기술직으로 감사반장이 된 것이다. 감사는 회계감사가 중요한데 기술회사에서는 기술을 아는 사람이 감사반장을 해야 한다는 사장의 경영방침에 의해서 필자가 선택되었다. 부서별 부장급 감사반원을 이끌고 사업소를 순회하며 실무 감사를 했다. 잘못하는 점보다 잘하는 점을 찾아서 타사업소에 전파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징계도 했지만 표창도 많이 했다. 올바른 비판력과 판단력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네 번째 사건은 전문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맡은 일이다. 기술사 자격을 갖고 있고 현장 경험이 많다는 점을 들어서 대학교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사장이 허락해 교수직을 겸임한 것이다. 전기응용 과목을 맡았는데 전기응용은 조명, 전동력응용, 전기철도, 전기화학 등 폭이 넓은 실무 분야다. 4년간의 겸임교수 시절은 몸은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다섯 번째 사건은 전기안전 부문에서 필자가 노력한 일들을 정리하여 공적조사로 만들어 경향신문이 주최하고 한국전력공사가 후원하는 에너지대상을 신청한 결과 국민봉사 부문 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굵직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부상으로 대만 여행을 보내주고 금 20돈의 황금 열쇠를 받았는데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60세 정년퇴직을 했다. 1남 1녀의 자식도 결혼하여 필자 곁을 떠났다. 비록 나이에 의해 정년퇴직했지만 아직은 신체 건강하여 일자리를 찾았다. 급여는 적지만 필자를 필요로 하는 곳에 다니고 있다. 나이 더 들면 직장에서 완전히 은퇴해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취미가 있는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글쓰기의 자산은 역시 독서이므로 도서관의 ‘책 읽기 마라톤’에 3년간 참가하여 언제나 1등을 하였다. 귀촌을 위해 도시 근교에 땅도 사두었다. 나이 들어서 버티는 힘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연금도 부었다. 체력도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올해 동호인 테니스대회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 기쁘다. 앞으로 전국테니스대회에 노년부로 참가하려고 한다. 우승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 70세가 넘으면 봉사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에 매진할 것이다. 이것도 공부해야 한다. 사회봉사의 이론을 갖추기 위해 인터넷으로 사이버대학을 수강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말로만 하는 봉사가 아니라 육체가 따라가는 봉사를 위해 발마사지와 경락안마도 배우고 민간자격증도 취득했다, 경험을 얻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치매센터에 치매전문 자원 봉사자의 일을 하고 있다. 세상살이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신념을 늘 갖고 있다. 필자의 생애가 아직은 진행 중이지만 돌이켜 보니 준비하며 여기까지 잘 왔다고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 2016-07-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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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인생] 새 인생에 딱 맞는, 제2 직업에 도전하세요
- 생물학적 수명은 늘어나고 사회적 수명인 정년은 점점 짧아지면서, 제2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두 번째 인생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 즉 은퇴자금 준비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제2 직업은 더 중요하다. 시니어들의 이러한 요구에 발맞춰 여러 민·관 기관에서 제2 직업에 관한 다양한 안내와 새로운 직업 소개를 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기보다 교육과 준비과정을 통해 새 인생에 어울리는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최근 제2 직업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구인 활동을 펼치는 업체나 기업을 살펴보면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장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노사발전재단이나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은퇴자협회 등 여러 기관에서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전국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이 일자리 희망센터를 이용하면 구인구직 정보에서부터, 교육 프로그램, 관련 컨설팅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시니어 구인구직 단순직종에 집중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직업이나 일자리가 시니어들이 원하는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경비직이나 청소, 택배와 같은 단순 노무직이고 그나마 이런 일자리의 대부분은 40대를 우선적으로 선호한다. 연령이 높은 시니어들에겐 순서조차 돌아오기 힘들다. 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정현주 대리는 센터가 최근 사회공헌형 일자리로 사업 방향을 옮긴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제적으로 자유롭거나 노후 자금이 해결된 시니어들은 단순직 일자리를 원치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그간의 경력을 살릴 수 있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으려는 분들이 많아요. 수고를 인정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죠. 저희 센터에서는 이런 시니어들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센터에서 준비하는 직업들은 경제적 소득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이나 참여 시니어들의 자부심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에는 건강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이 있다. 지역 치매센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도 인지장애(초기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인지학습 역할을 할 사회공헌 활동가를 양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밖에 바른먹거리전문가 양성과정은 유치원 등 각 교육기관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먹거리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를, 다문화가족 서포터스 양성과정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요청을 받아 한국생활 정착의 멘토 역할을 할 지원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수익보다 보람과 자부심 얻을 수 있어야 지난해 도심권 50플러스센터를 통해 SNS전문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종로지역자활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김희순씨(64)는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니어들에 대한 직업 교육은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재능기부를 통해 교육생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갖게 됐습니다. 예전엔 손주들이 와이파이 터진다고 하면 뭐가 터졌냐며 놀랄 정도였지만, 이제는 대화도 통하고 생활이 달라졌어요.” 물론 일자리나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현장에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실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겹치게 되면 사업 자체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현장에서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활동 무대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성공적인 직업에 정리수납전문가가 있다. 정리수납전문가는 여성발전센터, 여성인력 개발센터 등을 통해 민간에 알려졌다가 현재는 협회까지 설립됐다. 한국정리수납협회의 정경자 협회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정리수납은 보통 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혼자 활동하기 어려운 시니어, 특히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업입니다. 평생 살림을 해온 분들은 원칙과 이론을 알려주면 금방 익숙해지거든요. 이렇게 새로운 직업을 만들거나 창업하려면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니까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의 전문성, 문제를 해결할 창의성, 구성원과 소비자를 대할 인성을 갖추고 있는지 늘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찾을 수 없다면 창직(創職)도 방법 새로운 직업에 대한 단서가 필요하다면 한국고용정보원(www.keis.or.kr)을 노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곳에선 제2 직업을 필요로 하는 중년들을 위한 자료를 연구하고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올해 3월에 발간된 자료집 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베이비 부머들이 도전하기에 적합한 직업 30개를 선정해 하는 일을 소개하고 해당 직업을 가지려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고 있다. 또 지난 5월부터는 중장년층의 창직 활동을 돕기 위한 라는 지침서를 배포 중이기도 하다. #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 2016-07-0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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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문화] 나이 59살 10년
- 100세 장수시대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렸다. 덕분에 ‘인생은 60세부터’라는 말이 일반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건너기 싫은 강이다. '고령자'가 싫어서 59세에서 나이 먹기를 멈추고 젊은 오빠인 양 10년을 살았다. 삶길 어언 70년! 살길 30년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 학생 시절에 읽은 어느 유명 여류작가의 ‘29세 10년’이라는 글귀가 실감 나게 다가왔다. “25세부터 노숙미를 자랑하려고 29세 행세하였으나 막상 그때가 되니 불효하는 노처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나이가 겁나서 35세까지 29세로 10년을 살았다”라는 줄거리였다. 50대까지 삶은 희망이 있었다. 샛별 보고 출근하고 달을 벗 삼아 집을 찾으면서 열심히 살았다. 은퇴 후 생활이 안락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너머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절벽이 버티고 있다. 노인생활의 문제점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안고 있는 게 한국이다. 아들보다 어린 청년들과는 취업 전선에서 맞서야 하는 기막힌 처지에 놓였다. 50대 초반 사회에서 은퇴가 시작되나 국민연금 지급은 오히려 65세로 늦춰졌다. 은퇴는 일찍 오고 복지는 오히려 늦어는 어려움에 부닥쳤다. 그래서 60대 되는 것이 매우 싫어졌다. 그냥 59세로 작정하고 살았다. 평균수명은 매년 늘어나 세계 최고수준인데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地空居士)가 돼려면 65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도 문제다. 한창나이를 왜 ‘고령자’라고 하는가? 지하철을 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로석 앞에서 서성인다.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젊은 세대에 대한 배려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곤란하지 않게 알아서 처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가고 행동은 굼떠졌다.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증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60대 중반 은퇴 후에는 자원봉사와 사회교육에 참여하면서 보람차게 살고 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면서 즐겁게 자원봉사하시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에게 숭고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필자는 평생교육에 참여해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제는 사회에서 터득한 귀중한 경험을 사회에 되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 평생교육 참여는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평생교육도 그동안 많이 변했다. 얼마 전까지는 취미, 여가 활용 등 시니어의 은퇴 후 생활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이제는 일자리 창출, 창업 위주로 청장년 교육처럼 교육과정이 변하고 있다. 시니어도 새 삶을 찾아야 한다. 50대처럼 살아온 10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70세로 훅 뛰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두려워하지 않고 새 삶을 떳떳이 맞이할 것이다. 안락한 은퇴생활만 기대하기는 너무 젊다. 30년 살길이 바로 내 앞에 있다. 희망을 설계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
- 2016-06-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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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경제] 기초연금 제대로 받자
-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소득하위 70% 이하 노인에게 국가에서 소득에 맞게 차등 지급되는 연금이다. 전 국민에 지급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축소, 시행되고 있으며 상당수 국민은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65세가 되면 동 주민자치센터에 신청하여야 한다. 국민연금 노령연금은 60세까지 소득 있는 업무 종사 시에 의무적으로 국민연금을 납부한 뒤, 10 년 이상 납부했을 경우 본인이 납부한 기간과 보험료에 따라 연금으로 받는다. 기초연금은 예산은 국가가 부담하고 국민연금공단의 업무협조로 동 주민자치센터에서 매월 지급한다. 2016년 1월부터 개정 시행하는 기초연금 수급자격은 다음과 같다. 65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음 ‘소득인정액’이 단독가구 100만 원, 부부가구는 160만 원 이하자가 신청자격이 있다. 단 공무원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군인연금, 별정우체국연금 수급자는 제외한다. ‘소득인정액=1.소득평가액+2.재산의 소득환산액’이다. 소득인정액 산정은 배우 복잡하므로 해당기관에 문의하거나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필요하다. 1.소득평가액=(근로소득-52만 원)*0.7+기타소득 1)근로소득->일용근로, 공공일자리, 자활근로소득 제외 2)기타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공적이전소득+무료임차소득 무료임차소득=시가표준액 6억 원 이상 자녀주택에 거주->연0.78% 2.재산의 소득환산액= {(1+2-부채)*4%+3 }/12 1)일반재산-기본재산(대도시: 1억3500만 원, 중소도시: 8500만 원, 기타지역: 7250만 원) 2)금융자산-2000만 원 3)고급자동차(3000cc 이상) 회원권(4000만 원 이상)의 가액 국가에서 국민을 위하여 시행하고 있는 기초연금! 월 10~20여만 원이 작은 금액이 아니다. 시니어 30년을 재설계해 보면 그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월 10만 원이면 원금으로 3600만 원, 20만 원이면 7200만 원이 된다. 국가예산으로 지급을 보장하는 기초연금은 시니어에게 제일 확실한 수입원이 된다. 엄청 큰 재산으로 인식하여야 할 이유이다. 65세가 되면 ‘지공거사’ 신청은 잘하고 있으나, 기초연금에 대하여는 대부분 무관심하다. 기초연금 수급자에 해당되는지 국민연금공단이나 동 주민자치센터에 문의하고 신청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기초연금 홈페이지 www.basicpension.mohw.go.kr
- 2016-06-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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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건강] 치매 예방주사는 대화로 푸는 소통이다
- 고령화 사회에서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老老Care)는 시대적 소명이다. 선진국일수록 보건환경 개선으로 고령화는 필연이며 반면 출산율은 점점 줄어들어든다. 당연히 전체 인구는 고령화와 저 출산이 서로 상쇄되어 별로 줄지 않지만 사회인구는 점점 고령화가 되어간다. 고령화 사회의 노노케어는 젊은이들에게 생산과 후세 교육에 전념토록 할 수 있는 여력을 주고 활동적인 시니어에게 새로운 일자리 창출된다. 필자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노노케어의 선두에 서겠다는 각오로 이론적인 재무장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고 노인운동지도사. 수지침사, 맛사지사 등 다수의 민간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지금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전문 자원봉사자의 일을 하고 있다. 치매는 고령화 사회에서 환자도 그렇지만 가족도 제일 겁먹는 질환이다. 중풍은 의식이 있는 본인이 괴로운 병이라고 하면 치매는 가족이 고달픈 병이다. 가죽 끈 같은 끈끈한 가족의 유대감이 없으면 한식구라는 관계가 어느 날부터 해체되고 심지어 치매 환자를 죽이기까지 한다. 치매는 병인데도 일반인이 치매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에 제발 정신 차리라고 환자를 때리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80대의 치매할아버지가 철로를 걷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치매할아버지의 법률상 보호자인 할머니에게 열차 지연에 대한 벌금을 부과 하였다. 할머니도 고령인 데다 할아버지의 매 순간을 감시할 수 없었다고 항변하였지만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 의외인 것은 아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하며 그 이유로 같이 살지 않는 다는 점을 들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봉사자의 한사람으로 치매는 외로워서 생기는 병이라고 감히 말한다. 치매는 영어로 Dementia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인지증(認知症)이라고 하지만 한자로는 치매(癡呆)라고 쓴다. 치매 글자는 癡(어리석을 치) 呆 (어리석을 매 )자로 무릎을 탁 칠만큼 치매환자의 상태를 글자의 의미에 잘 담고 있다. 癡 는 병질부 즉 암(癌),병(病)과 같은 병질부를 쓰고 있으며 안에는 의심할 의(疑 )자가 들어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소통이 없으면 남을 의심 하게 된다. 소통이 없는 치매환자는 의심이 많다. 자기 물건을 자기가 숨겨놓고 숨긴 사실을 잊어버린 채 누가 훔쳐갔다고 남을 의심한다. 심지어는 요양보호로 방문한 요양보호사와 남편과의 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서로 소통이 원활한 사람은 의심이 있을 이유가 없고 이런 사람은 치매가 없다. 매(呆) 자를 자세히 보면 나무(木)위에 입(口)을 내미는 형상이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말할 상대를 찾으러 나무위에 올라가서 입을 내밀어 보겠나? 결국 대화 상대를 못 찾고 어리석을 매(呆)자가 되어 치매환자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연민의 정을 느낀다. 바꾸어 말하면 혼자 외롭게 살면서 말할 사람이 없는 사람이 치매에 잘 걸린다. 사람의 의사소통의 기본이 말인데 말할 상대가 없으면 외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치매 한자를 풀어 의미를 새겨보면서 치매는 외로워서 생기는 병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치매는 외롭게 혼자 있는 사람들에게 친구하자고 찾아온다. 최근 치매는 노인성 질환이라는 통념과 달리 20∼30대 청년층 치매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서구화된 식생활과 운동부족, 음주 및 우울증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이유 말고도 사람사이의 대화소통에 주목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가족사회며 농경사회여서 가족, 이웃 간 소통은 저절로 이루어 졌다. 나이 들어 노동에 종사 못하고 집에 혼자 남게 된 노인들이 치매에 많이 걸린다. 치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치매 환자분들을 만나보면 대개가 외로운 사람들이다. 현대의 치매 환자의 증가는 점차 대화가 없어지는 가정과 이웃, 현대 사회가 주범이라 생각한다. 1인 세대가 늘어가고 혼자 밥 먹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간다. 사람끼리 모여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으로 카톡으로만 대화한다. 카톡으로 반갑게 대화하던 사람도 실제 만나면 시들해진다. 카페인 중독이라 하여 카톡이나 페이스북 인터넷은 중독에 가깝도록 이용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직접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키스하는 감질내는 형국이다. 보건 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치매로 인한 비용도 2008년 8,625억 원에서 2012년 1조9,234억 원으로 123%나 늘었다. 세부적으로는 의료비(4,826억원→1조1,891억원), 교통비(10억원→23억원), 간병비(3,146억원→6,217억원)와 같은 직접비용이 모두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돼 2020년에는 18조9000억 원, 2030년에는 38조9000억 원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의료과학의 발전으로 획기적인 치료약이 개발되겠지만 가족이 해체되고 이웃과 고립화되어 혼자 살아가는 외톨이들 에게는 치매는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은퇴하기 전에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낼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 남들과 어울리는 소통력을 시니어들은 키워야 한다.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것보다 친구랑 함께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부부가 함께 행동을 하면 좋겠지만 3,4십년을 서로 다른 생활을 바쁘게 해오다가 어느 날 퇴직했다고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서 함께 지내려고 하면 평소 못 보던 단점을 자주 보게 된다. 퇴직 후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부부를 방송에서도 주제로 다룬다. 평소 이웃사촌이라는 동네친구를 사겨야 한다. 좋은 이웃친구란 나와 경제력이 비슷하고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이다. 시니어들은 살아온 세월이 있어 나와 잘 맞을지 않을지는 금방 알아낸다. 성격상 잘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려하거나 한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계속 친구로 지내려는 생각은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이 들면 성격은 고치기 어렵다. 빨리 헤어져야 한다. 지금 가입해 있는 스포츠나 취미 동호회가 있다면 목숨 줄처럼 꼭 붙들어야 한다. 나이 들어 새로운 모임에 가입하려고 하면 잘 받아주지도 안을뿐더러 혹 받아준다고 해도 개밥에 도토리처럼 외톨이가 되기 쉽다. 그런 면에서 탁구나,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등 적성에 맞는 스포츠를 좀 젊었을 때 배워두면 좋습니다. 필자는 테니스를 30년이나 함께한 동호회가 있는데 주말이면 함께 늘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나이 들수록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 인문학은 사람과 소통하는 도구요 자산. 필자는 해마다 실시하는 동네 도서관의 독서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5만 페이지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면서 상도 받는다. 막연히 하는 것보다 무슨 일이든 목표를 세워서 하면 동기부여가 확실하여 달성하기가 쉽다. 읽은 책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남들과 대화를 할 때 녹아 나온다. 남들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울리며 소통하는 여유로움이 치매예방주사다.
- 2016-05-2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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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년기자 칼럼] 노인 특화형 일자리가 필요하다
- 법으로 정년을 보장한 60세까지 근무한 뒤 박수받고 정년퇴직해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앞으로 10여 년은 너끈히 더 현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냥 해보는 큰소리가 아니고 건강관리를 원만히 한 사람은 실제도 그렇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다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래서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서 인생이모작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액티브 시니어가 되라고 권장하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집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활동하라는 말을 안 해도 ‘100세 시대’에 60세에 퇴직하고 남은 사십 년을 ‘구둘 장군’으로 지내기는 누구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도둑질 말고는 무슨 일이든 찾아보려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갖다 부치지 않아도 집안 식구들 등쌀에 집안에만 있기는 어렵다. 퇴직자가 왜 계속 일을 하려고 하는가? 우선은 먹고 사는 경제력이다. 퇴직금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봤자 월 20만 원을 손에 쥐기가 힘든 데 세금은 15.4%나 뗀다. 허드렛일로 월 100만 원을 번다면 은행에 6억~7억 원을 예금한 것과 맞먹는다. 퇴직했다고 해서 안 먹고 안 입고 살 수가 없다. 퇴직해서 근로수입은 없어져도 소비지출은 그만둘 수가 없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거나 극소수의 재테크에 성공한 재력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연히 퇴직하는 순간부터 돈 걱정하는 것이 일반 서민의 자화상이다.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자녀들 결혼마저 늦어져 함께 살고 있다면 퇴직했다 해서 보따리 싸 시골로 내려가기도 어렵다. 자연히 이런저런 돈 벌 궁리를 하느라 불면의 밤은 깊어간다. 집안에서도 가장이 놀고 있으면 분위기가 저기압이다. 공원 벤치에서 만난 김철수(가명ㆍ67) 씨는 “갈 곳이 없어도 이렇게 집을 나와야 아내도 숨을 좀 쉰다”고 한다. 매일 출근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거실에 턱 버티고 있으면 아내가 얼마나 답답해할 것이냐는 말이다. ‘아빠 내일부터 출근한다.’ 라는 말이 어떤 꽃 노래보다 하고 싶은 말이고 가족들은 듣고 싶은 속삭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반 토막의 급여를 주는 일자리도 마다치 않고 노인들이 줄을 선다, 문제는 적은 돈을 버는 일자리에 퇴직자들이 인생이모작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박수 보내고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퇴직했으면 그만 집에서 쉬시지 새로운 일자리 찾기에 혈안이 돼 반 토막의 급여도 고맙다고 감지덕지 일하는 노인의 모습을 사시의 눈으로 째려보는 젊은이들도 있다. 자식의 일자리를 뺏는 비윤리적 아버지로 매도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고령자 취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자리를 시니어들이 뺏어간다는 시각이다.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누가 차지하는가에 대한 갈등구조다. 두 번째로 동남아, 중국 등 출신 외국근로자 때문에 몇 년간 인건비가 제자리걸음 하는 상황에서 시니어까지 저임금 경쟁에 가세해 인건비 인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니어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도 젊은이들의 눈칫밥 먹는 신세로 전락해 길게 다니지 못한다. 뭔가 100세 시대에 걸맞은 정부 정책이 있어야 한다. 우선 노동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방치하지 말고 노년의 경험이 필요한 특화한 일자리를 특화해야 한다. 요일별 근무제나 바쁜 시간대의 파트타임 등 가변성 있는 노인 일자리가 필요하다. 어린이 놀이터의 안전점검, 불량식품 단속요원도 좋다. 공원이나 우범지대의 순찰이나 청소도 노인의 특화된 일자리로 손질해서 만들어야 한다. 9시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고정된 근무 개념을 깨뜨려야 노인의 일자리가 많아진다.
- 2016-05-1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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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가는 사람들] Part 3 신중년·꽃중년의 제2 인생설계 대학 가자 친구야! ⓶
- 귀촌 생활이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가치의 수단 농협대학에서 귀농·귀촌의 풍요로운 삶을 가꾸다 시니어들이 귀농·귀촌 대학을 찾는 이유는 농촌에 가면 웰빙을 추구하는 삶의 질 향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귀농·귀촌인의 정착 실태 장기추적 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 이유로 ‘조용한 전원생활을 위해서’가 31.4%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서’가 24.8%, ‘은퇴후 여가생활을 위해서’가 24.3%, ‘새 일자리나 농업·농촌 관련 사업을 위해’가 22.2% 등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농사일이 좋아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 때문’, ‘생태·공동체 등의 가치 추구’가 각각 18.4%를 차지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건강, 은퇴 후 여가, 전원생활을 위해 농촌을 찾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고학력일수록 은퇴 후 여가나 전원생활을 위해 귀농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귀농·귀촌자가 농촌 정착과정 상에서 자금 문제, 영농기술문제, 농지구입의 문제, 생활여건의 불편, 토착주민과 갈등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자가 다시 도시로의 재이주 의향을 보이는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기농림진흥재단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이론 및 실습형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적인 농촌 정착에 도움을 주고자 2009년에 개설하여 2015년까지 총 3000여명을 교육했다. 특히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위탁받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농협대학의 귀농·귀촌 대학은 지난해 까지 7기 회원을 모집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매년 120명에서 140명 정도 귀농·귀촌을 꿈꾸는 시니어들이 7개월 동안 성공적인 귀농·귀촌 정착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생산·가공·유통·마케팅 전반에 걸친 폭넓은 교육으로 본인에게 적합한 귀농 형태를 결정짓는 역량을 강화했다. 교육비는 200만원이 넘는 전체 교육비에서 자부담 일부(50만원)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지원했다. 오전에는 귀농 설계교육과 영농기술 기초학습이, 오후에는 농협대학 교내, 귀농·귀촌 대학 실습장에서 실습 및 현장 견학이 이어진다. 1인당 약 20여 평의 땅이 주어지는데 기초 교육이 끝나는 즉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농계획을 세우는 등 농촌 투어 등 다양한 경험과 실습이 이뤄진다. 경기농림진흥재단 귀농·귀촌 대학을 수료한 이석현(61)씨는 “농촌은 부부가 보다 심신의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고 며느리, 아들 눈치 보지않고 좀 더 여유롭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영농 계획을 세웠고, 귀촌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큰 공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참교육場 '사이버대학'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갈수록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시니어 세대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재교육 차원에서 사이버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30대 학생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것과 비교해 40대와 50대의 진학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사이버대의 나이별 대학생 추이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30대의 입학이 매년 2.5% 정도씩 줄어드는 반면, 40대와 50대 이상 등록은 1%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50대 이상 입학은 전체 학생의 10.59%로 두 자릿수 평균율을 보였다. 사이버대학이란 정보통신기술, 멀티미디어 기술 및 관련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하여 형성된 가상의 공간(Cyber-Space) 안에서 교수자가 제공한 교육서비스를 학습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학습하는 가상 학습 공간이다. 일정한 학점을 이수할 경우 학사학위 또는 전문학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제2조 제5호에 규정된 교육부 인가 대학이다. 사이버대학은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고 모든 수업과 시험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이버대학은 매년 6월과 12월, 2차례에 걸쳐 신·편입생을 모집한다. 수능 입학을 거치지 않고 입학지원서와 함께 학업계획서와 인성검사를 통하여 지원할 수 있다. 학비는 학점당 6만~8만원 선이며 18학점 신청 시 학기당 100만~150만원 수준이다. 소득분위 기준으로 지급되는 한국장학재단(www.kosaf.go.kr)의 국가장학금 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사이버대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사이버대 종합정보사이트 CUinfo(www.cuinfo.net)를 참조하면 된다. 사이버대학은 2001년도에 총 9개 대학으로 시작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총 21개가 운영되고 있다. 10만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시니어가 몰리는 사이버대학 인기학과 F4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과, 한국어문화학과는 학생의 1/4 정도가 50대 이상이다. 특히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이 대한 60대 이상 시니어의 관심이 두드러진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 미디어문예창작학과는 문예창작이론에 영상미디어를 접목한 학과다. 문학예술과 뉴-미디어에 대한 기본 소양을 배우고 폭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사유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에 실천적 문학인을 양성하는 것이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목표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는 60대 이상 시니어들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희사이버대학교에만 개설된 학과다. 한국어문화학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다. 어느 정도 배움이 있는 시니어들이 ‘교사’에 관심이 있고 또 외국인을 대상으로 봉사 차원에서도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려, 영남사이버대학교 등 9개 사이버대학에 개설돼 있다. 국어기본법에서 정한 한국어 교원 자격 요건에 맞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글로벌 환경,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국내외 현장의 요구에 부합되는 인재를 양성한다. 영역별 필수 과목을 이수하면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을 준다.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학은 현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 사회변화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전문적 해결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가족과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대상들과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회복지적인 개입 방안을 학습하고 이를 현실 사회 속에 실천하는 것에 주력한다. 사회복지전공은 전반적인 사회복지이론 및 기술의 습득, 각 전문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적 능력을 갖춘 복지전문가를 배양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두고 있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호하는 시니어들은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거나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봉사하는 시니어들이 많이 찾는다. 상담심리학과 최근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행복한 삶과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해,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상담심리학과의 경우 4년제 학위가 있는 시니어들이 선호한다. 이론과 실제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다양한 정신건강과 상담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통합적·전문적인 지식과 상담기술 등을 훈련하고 있다. 상담심리학과는 관련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교과목 운영은 물론, 기초단계의 상담심리 교육과정과 영역별 심화 및 응용 단계의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학생들은 졸업 후 다양한 휴먼서비스 영역에서 전문상담가로 활동할 수 있다.
- 2016-03-25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