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의 증가는 국가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치매 국가책임제의 시동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고, 치매 환자 관리는 이미 정부기관을 통해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중앙치매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환자 수를 살펴보면, 9월 현재 65세 이상 노인 약 711만 명 중 치매 환자는 10%가 넘는 72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치매 환자 하면 대부분 알츠하이머병을 떠올리지만 치매의 한 종류인 혈관성 치매 역시 적지 않다. 전체 치매 환자 중 16.5%인 약 12만 명이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다. 혈관성 치매의 문제 중 하나는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金希珍·46) 교수를 통해 혈관성 치매의 위험성을 알아봤다.
“시니어들이 혈관성 치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김희진 교수가 질환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만큼 중요한 얘기라는 뜻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아직 100% 예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또한 발병하면 병의 진전을 미루는 것이 주된 치료법이고 완치법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예방이 가능한 치매예요. 관심 갖고 건강관리를 해나간다면 혈관성 치매를 막을 수 있습니다.”
혈관성 치매가 예방 가능한 이유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혈관성 치매의 발병 원인은 뇌혈관의 기능 이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중풍’이라고 부르는 뇌졸중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혈관성 치매는 뇌출혈이 생겨 발생하는 출혈성 뇌혈관 질환과 뇌혈관이 막혀 뇌세포가 죽는 허혈성 뇌혈관 질환, 즉 ‘뇌경색’ 으로 나뉜다. 전체 환자 중 허혈성 뇌질환이 약 80% 정도로 흔하고, 출혈성 질환은 20% 정도다.
이러한 질환들은 대부분 뇌세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혈관이 막혀 혈액 공급이 안 되거나 출혈이 발생하면 뇌세포는 피해를 입는다. 이런 이유로 뇌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장애가 오는 질환을 혈관성 치매라고 부른다.
“뇌졸중은 대부분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만 조절하면 예방이 됩니다. 혈관이 터지는 것도 막히는 것도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니까요. 다만 혈압이나 혈당을 관리할 때 중년과 노년은 그 기준 수치를 다르게 해야 해요. 혈압은 나이 들어가면서 다소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중년의 기준에 너무 철저하게 맞추려다 저혈압 증상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출혈성 혈관성 치매를 막기 위해서는 혈압을 낮춰 뇌출혈을 예방하고, 허혈성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통해 혈전으로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병
혈관성 치매의 또 다른 특징은 갑작스러운 발병이다. 특히 뇌출혈이 발생할 경우 급격하게 뇌기능이 나빠져 말 그대로 갑자기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경과 의사들은 이런 상황을 ‘어느 날 갑자기’라고 표현해요. 느닷없이 저림이나 따가움, 운동장애가 온다면 뇌출혈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히 한쪽만 증상이 나타나는 편마비는 강력히 의심해야 해요. 언어장애가 나타나거나 시야가 좁아지거나 복시, 두통, 보행장애가 나타나도 마찬가지예요. 주저 말고 119에 전화하셔야 합니다. 보통 골든타임을 3~4시간이라고 말하지만 빠를수록 좋아요.”
뇌졸중은 발병 초기에 제대로 치료만 해주면 상당 부분 회복이 가능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출혈이나 허혈성 뇌경색으로 인해 일부 뇌세포가 죽게 돼도 주변의 다른 뇌세포가 그 기능을 대신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작은 뇌혈관이 서서히 막혀서 오는 피질하 혈관성 치매는 천천히 발병하는 대신 회복이 어렵다.
“의외로 젊은 사람에게서 발병하기도 해요.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고 우울감이 오면서 무기력해지는 특징이 있어요. 집 안에만 있으려 하고요. 배뇨기능에 문제가 생겨 자주 소변을 보면서 오줌싸개가 되기도 해요.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파킨슨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피질하 혈관성 치매는 MRI 촬영 등 진단을 통해 알아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단순한 노인성 질환으로 치부해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해요.”
혈관성 치매 역시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만약 가족력이 있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가족 노력에 따라 차도 달라져
김 교수는 혈관성 치매의 발병에서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성격이 변한다든가 무기력해지는 등의 사소한 변화를 최초 증상으로 의심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어요. 또 혈관성 치매는 혈류량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가족의 독려가 필요해요.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지역 주간보호센터를 통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가족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환자는 요양원에 갈 정도까지 악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식생활도 매우 중요하다.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식단 조절이 필수적인데,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채소는 매일 먹어야 한다. 붉은 고기는 가급적 멀리하고, 생선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먹을 것을 권한다. 큰 생선은 중금속 축적이 많기 때문에 이로 인한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꽁치나 고등어 같은 DHA나 EPA를 많이 포함해 뇌에 좋은 등푸른 작은 생선이 좋다. 올리브 오일과 해산물을 풍부히 섭취하는 지중해식 식단도 좋다. 물도 매일 충분히(하루 6잔 정도) 마셔야 한다. 물론 담배는 끊어야 하고, 술을 마실 경우 하루 한두 잔 정도만 마신다. 이렇게 까다롭게 식단 조절을 하는 이유는 병의 원인인 혈압과 당뇨, 콜레스테롤의 조절을 위해서다.
“통계적으로 60세 이상의 노년기에는 마른 체형이 치매가 잘 오는 편이에요. 그러므로 원칙을 지키면서 잘 먹는 것이 중요해요. 맛있게 잘 드셔야 해요. 치매 판정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철저한 식단 관리 보다는 골고루 잘 먹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혈관성 치매가 오면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체내에 흡수되는 효율이 떨어집니다. 좋은 것을 먹어도 대부분 배설되고 말거든요. 환자가 싫어해도 골고루 잘 먹도록 가족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병이 깊어진 상태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살펴야 한다. 치매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 대부분은 그 자리를 일시적으로 피하라는 조언도 하지만, 환자가 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함께 생활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됩니다. 공격적이거나 화를 내는 건 배변 문제일 때도 많아요. 오래 배변을 못해 답답한 상태인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인 거죠. 이럴 땐 배를 만져보면 알아요.”
김 교수는 가족이 환자 상황에 따라 세세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의가 절대적이라고 조언한다.
“신경과 의사들은 치매 환자들이 공격성을 보여도 겁내거나 물러서지 않아요. 늘 겪는 일이니까요. 대부분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어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치매 치료의 근본적인 목표는 환자가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한의학에서 말하는 ‘중풍’은 ‘풍에 맞는다’는 의미다. 풍은 떨리는 증상, 저리는 증상, 시린 증상을 포함한다.
흔히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뇌 손상이 발생하며 생기는 병이다. 뇌졸중과 비슷하지만, 중풍은 ‘뇌졸중’으로 분류하지 않는 질환도 포함하고 있어 그 범위가 좀 더 넓다. 중풍은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린다. 한 번 발병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얼굴이나 팔, 다리가 저리면서 마비 증상이 오고 말투도 어눌해지는데 심해지면 전신이나 팔, 다리 등 몸의 일부가 마비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환자의 수가 이전보다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 인구 100명당 남자는 3.94명, 여자는 2.52명의 중풍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2015년 기준). 하우연한의원 윤정선 원장에게 중풍의 발병 원인과 예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요즘은 이전보다 중풍 환자가 줄어든 것 같은데 맞나요?
요즘은 모두들 건강에 관심이 많아 검진도 자주 하고 미리미리 고혈압 약도 챙겨드시니 중풍 환자들이 예전에 비해 좀 줄어들긴 했죠. 하지만 중풍이 심한 분들이 외부 활동을 잘 안 하셔서 그렇지, 아직도 우리나라의 중풍 발병률은 세계 1위입니다. 성인의 3대 사망 원인 중 빈도수가 가장 높습니다.
중풍의 원인은 뭔가요?
풍은 몸 안에서 생기는 내풍과 외부 환경으로 생기는 외풍으로 구분되는데, 주로 유전에 의한 체질적 요인이 크게 작용합니다. 혈관의 탄력이 약해지거나 혈액이 탁해지는 것도 유전적인 요인이 있거든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환경적인 요인을 더해 간의 기운이 울체(기혈이 퍼지지 못하고 한곳에 몰려 막혀 있는 증상)되고 그 기운이 오래되면 사지(四肢)가 힘없이 늘어지고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며 근육 경련이 자주 일어나는 ‘간열’이 발생하면서 서서히 고혈압 증상이 생기는 거죠. 간열이 심해지면 그다음 단계가 스트레스가 심해 지거나 화를 잘 내게 되는 ‘간화’, 머리가 심하게 어지럽고 팔다리가 땅겨서 잘 걷지 못하는 ‘간풍’으로 진행되면서 풍이 발생합니다.
고혈압 외에 중풍과 연관된 질병이 있나요?
한의학에서는 그동안 고혈압 단계부터 중풍으로 보고 치료를 해왔어요. 최근엔 양방에서 고혈압 약이 손쉽게 처방되고 관리되면서, 뇌경색이나 뇌졸중의 단계를 중풍으로 보고 있어요. 평소 고혈압이 있거나 당뇨가 있어서 말초순환에 장애가 있는 경우 합병증으로 중풍이 올 수 있습니다.
중풍에도 전조증상이 있나요?
근육 떨림이나 손 저림, 순간적으로 한쪽 사지에 힘이 떨어지거나 어지러움, 잦은 두통, 안면 홍조와 뒷목 당김, 불면증 등이 전조증상입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증상들이 전조증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들은 폭풍이 오기 전에 잔가지가 떨리듯 미리 보여주는 증상일 수 있으므로 비슷한 증상이 오면 꼭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봐야 합니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이런 상황을 그냥 지나치면 큰일 날 수 있어요. 중풍은 한 번 발병이 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후유증이 큽니다. 병이 커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입니다.
전조증상을 느끼면 이미 늦은 상황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고혈압 증상이 있고 위에서 말한 전조증상들이 나타나는 중풍 초기라면 한방 치료가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미 진행이 많이 되었다면 큰 병원에 가서 치료할 것을 권합니다. 한방 치료는 중풍 전조증과 중풍 후유증 치료에 더 적합합니다.
한의원에서는 중풍 검사를 어떻게 하나요?
진맥을 통해 중풍 전조증상을 진단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양방과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해요.
양방 MRI 검사 등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진맥을 해보면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죠. 양방 진료를 믿고 치료를 늦추다가 풍을 맞은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방 검사에 이상이 없어도 진맥과 증상으로 중풍이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치료를 늦추면 증상이 심해지나요?
대부분 병원 가는 것을 늦춰서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중풍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만성두통, 두통으로 인한 구토, 언어장애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면 절대 치료를 늦추면 안 됩니다. 특히 50세 이상이거나, 뇌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과 흡연자의 경우는 40세 이후부터 뇌질환 관련 건강검진을 1년에 한 번 이상 받아야 합니다.
한의원에서는 어떤 치료를 하나요?
중풍 전조증상이 있으면 중풍환과 사혈요법, 침 등으로 최대한 관리하고 치료 과정에서 증상의 완화가 더디거나 심해지면 양방 치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중풍 재활 치료에서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돕습니다. 양방 재활 치료를 통해 많이 호전되기는 하지만 여기에 한의학 치료를 겸하게 되면 재활시기를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의원에서는 재활을 위해 한약 치료, 침 치료, 재생 치료, 보행특화 치료 등을 해요. 한약 치료를 통해 오장육부와 뇌에 진액을 충분히 공급하고 침 치료를 통해 뇌신경, 척추신경을 활성화시킵니다. 재생 치료는 뇌, 신경, 혈관 등의 재생을 돕습니다.
예방법을 알려주세요.
중풍은 크게 오기 전에 신호를 꼭 보내는데 그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작은 증상이라도 진료를 통해 예방해야 합니다. 식생활 관리나 금연, 유산소 운동, 체중관리 등 생활습관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짜거나 자극적인 음식, 동물성 지방질이 풍부한 음식들은 피해야 합니다. 기름진 음식은 경락의 순행을 막아 열을 일으켜 중풍이 발생할 확률을 높이거든요. 유산소 운동은 순환기계를 튼튼하게 하고 혈관을 보호해주고 동맥경화의 위험 요인들인 스트레스와 비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비인다중풍(肥人多中風)’이라 해서 비만하고 습이 많은 사람에게 중풍이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어요. 스트레스 관리도 필요합니다. 지나친 감정적 자극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화열(火熱)이 심해져 중풍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야채나 과일은 중풍 발생 위험이 3분의 2로 감소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1년간 금연하면 흡연 때에 비해 중풍 발생 위험이 반으로 감소하고 5년 이상 금연하면 비흡연자와 같은 수준으로 위험도가 줄어듭니다.
우리는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삶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희망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난 ‘장수시대(長壽時代)’가 되면서, 건강한 노년은 수명연장만큼이나 중요한 숙제가 됐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듯 지난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었다. 노년의 건강관리와 정신건강, 운동법으로 나눠 진행됐던 강연의 주요 내용을 에 소개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의 이은주 교수가 첫 번째 화두로 던진 질문이다. 이 교수는 아직 과학적으로 노화의 원인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라면서 몇 가지 가능성들을 소개했다.
“노화의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노화 이론은 ‘Wear and Tear’죠. 오래 쓰면 낡아서 닳고 망가진다는 이론이에요. 인체의 노화를 막기 위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생활습관을 건전하게 바꾸자는 것도 상당 부분 이 이론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밖에 몸의 주요 기능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이 원인이라는 신경내분비(Neuroendocrine) 이론도 있고, 활성산소를 노화 인자로 지목하는 산화 스트레스(Oxidative stress) 이론, 수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프로그램(Programmed) 이론도 있어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론은 텔로미어(Telomere) 이론이에요. 염색체의 일부인 텔로미어라는 것이 세포의 수명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이론입니다. 복제 양의 수명은 어미 양의 남은 수명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데, 이미 성체가 돼 수명이 짧아진 상태의 세포를 복제했기 때문에 복제 양들의 수명이나 어미 양이 비슷한 시기에 죽는 것 아니냐는 이론이에요. 그래서 이 텔로미어를 재생해 성장을 촉진하는 연구들이 진행 중입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도 이미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2014년 행정안전부의 통계에 따르면, 100세 이상 인구는 2012년 조사결과에 비해 15% 증가한 1만4592명에 달한다. 이 중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세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는 100세 이상 인구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낮은 편으로 인구 10만명당 2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 65세인 1952년생이 100세까지 살 가능성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기대여명조사가 있었어요. 하지만 30년 후에 태어난 1982년생의 경우는 5명 중 1명이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30%를 차지하는 일본과 같은 상태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래 사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장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장수 노인들을 조사하는 방식을 노화종적연구라 부르는데, 이 교수는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북 장수군에서 한국의 백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보다 6배 정도 많았어요. 교육수준은 수명과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장수하는 사람들은 흡연율이 매우 낮았고 고지혈증, 당뇨, 중풍, 치매, 비만과 같은 만성질환의 빈도가 낮았어요. 간염보균자도 없었고요. 신선한 채소와 과일, 해조류, 버섯, 생선 등을 골고루 먹고, 짜고 자극적이며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멀리했어요.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평소에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생활 태도도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교수는 해외 백세인 조사결과 7가지도 소개했는데,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만이 없고 ▲금연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이고 ▲인지 능력이 높고 ▲여성의 경우 40세 이후에도 출산한 경험이 있고 ▲형제들도 함께 장수하며 ▲자녀 역시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오래 살려면 이것 지켜라
장수를 위한 생활습관은 단순하다. 이미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것들이다. 먼저 금연이다. 흡연은 활성산소를 통한 노화를 촉진시키고 동맥경화, 관상동맥질환, 암 발생 등의 원인이 된다. 흡연과 함께 따라다니는 술도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다. 간질환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도 치명적이다.
흡연이나 음주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이들이 많은데, 쉽지 않겠지만 오래 살려면 담배와 술을 멀리하면서 스트레스에도 강해져야 한다. 이 교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명상이나 요가, 마사지, 그리고 등산이나 산책과 같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해소법을 추천했다.
비만과 수면 이상도 피해야 한다. 노화에 따라 기초대사가 감소하면 복부비만은 따라오기 마련인데, 식사량을 줄이는 등 식사습관을 바꿔나가야 한다. 숙면을 위해서는 음주와 밤 시간의 심한 운동을 삼가야 하고, 카페인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이 교수는 이야기했다. 이와 반대로 권할만한 대표적인 것으로 비타민D가 있다. 비타민D는 근력 향상과 암 예방, 항염증 등 여러 좋은 효과가 있다. 이 교수는 또 적게 먹는 것을 권했는데, 적게 먹으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이론은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연에 나선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김원 교수는 시니어의 운동 방법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강도’라고 강조했다.
운동은 살살 하면 효과 없다
“기본적으로 시니어의 운동 방법은 젊은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무리한 운동으로 다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지 않거나 너무 약하게 하면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만약 운동을 할 때나, 끝난 후에 통증이 지속된다면 본인에게 과도하거나 맞지 않는 운동일 수 있으니 강도를 줄이거나 종류를 바꿔야 합니다. 통증은 몸에서 피하라는 신호이지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해서 규칙적으로 하시는 것이 장수에 도움이 됩니다.”
김 교수는 특히 빠르게 걷기나 조깅과 같은 유산소 운동에서 강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대화’라고 조언했다.
“운동 때문에 숨이 차서 옆 사람과의 대화가 약간 힘든 정도를 중등도 운동 강도라고 이야기해요. 운동 효과를 위해서는 최소한 이정도 강도로 해야 합니다. 반면에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는 효과가 별로 없는 저강도 운동으로 규정해요.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겠죠.”
김 교수는 간혹 특정 운동을 오래해 누적 손상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운동의 종류와 강도를 변경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시니어의 다리운동, 삶의 질 바꾼다
그렇다면 근력운동은 어떨까? 헬스클럽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아령과 알통이다. 그러나 시니어의 근력운동은 하지운동, 즉 다리운동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김 교수는 조언한다.
“근력 운동하면 상체에 근육이 많이 생겨서 몸짱이 되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데, 노년에 너무 무리한 상체 운동을 하면 어깨 통증 등이 생길 수 있어요. 실제 하지의 근육량이 상지보다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하지 근력 운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또 일상생활에서 사고 위험을 줄이는 데도 다리 근력은 필수입니다.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에요.”
김 교수는 계단오르기가 시니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데,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하는 데 좋은 운동 방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다만 계단을 내려올 때는 무릎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간 후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
최근에는 육체적인 건강만큼이나 정신건강도 100세 장수를 위해 관리해야 하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장수의 조건 중 하나로 스트레스 관리가 지목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강의에 나선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는 노년기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우울증과 치매, 신경성 3가지를 꼽았다. 이 중 우울증에 대해 김 교수는 ‘흔한 병’이라고 정의했다.
“정신과 질환 중 가장 많은 질환입니다. 그런데 간혹 우울증과 우울감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기분이 가라앉고, 의욕이 없고, 짜증이 나죠. 그러다 다시 평상시로 돌아갑니다. 이런 경우는 우울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증세가 보름 이상 매일, 하루 종일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봐야 해요.”
우울증의 증상은 보통 기분이 침체되고 눈물이 자주 흐르고 마음이 약해지는 슬픔형,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은 의욕저하형, 갑자기 짜증이 나고 화를 버럭 내는 감정기복형, 뇌기능에 영향을 미쳐 기억력이 저하되고 집중이 안 되는 신체증상형 등 4가지로 구분된다.
김성윤 교수는 우울증 예방과 핵심 치료 방법 중 하나로 ‘햇볕’을 꼽았다.
“우울증 약은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3분의 1밖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햇볕과 운동, 수면습관이 중요해요. 햇볕을 받으면서 하는 운동은 효과가 매우 큽니다. 실제로 빛을 쪼이는 광 치료 방법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치매는 시니어들에게는 말 그대로 공포다. 신체적으로 입는 피해만큼이나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끼치는 피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치매는 일반적으로 뇌의 신경세포가 죽는 신경퇴행성질환과 혈관 이상으로 뇌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 생기는 혈관성질환으로 나뉜다.
창조적 행동이 치매를 예방한다
김 교수는 치매 치료를 위해서는 약과 신체운동, 그리고 뇌운동 3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과 신체운동은 짐작할 수 있겠는데 ‘뇌운동’이라니 어떤 운동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뇌운동은 사회생활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뉴스를 보고, 신문을 읽고, 메모를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모임에 나가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이죠. 그저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뇌운동이 됩니다. 뇌운동에는 수동적인 운동과 적극적인 운동이 있는데요, 영화나 책, TV처럼 남이 만들어놓은 창조물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보는 적극적인 뇌운동을 더 권하고 있어요. 일기쓰기도 좋고 무엇을 배우는 것도 좋아요. 또 스스로 길을 찾고 낯선 이들과 만나는 여행도 좋은 뇌운동 중 하나입니다.”
신경성질환도 시니어들이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신경은 운동, 중추, 자율 3가지 신경계로 나뉘는데 시니어들이 겪는 대부분의 신경성질환은 자율신경성질환이다. 땀이 나고,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등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것들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느닷없이 숨이 가빠진다거나 남들은 더운데 혼자 춥고, 시원한 날에 땀을 흘리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심리 상태에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우울, 불안, 걱정, 화, 스트레스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자율신경계가 말썽을 부리면 강아지를 훈련하듯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식사나 운동, 수면 등 일상생활을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죠. 이런 훈련을 3개월 정도 반복하면 몸이 완전히 적응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요.”
이번 호에서는 당뇨에 좋다는 음식이 왜 좋은지를 생태적으로 밝혀 개개인에게 적합한 음식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양의학에서는 당뇨를 혈당, 당화혈색소, 인슐린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1형 당뇨병과 2형 당뇨병으로 구분한다. 이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의학에서 당뇨를 소갈(消渴)이라 부른다. 에서 소갈은 ‘내부에 열이 뭉쳐 진액을 말리는 것’이라고 표현돼 있다. 열로 인해 목이 마르고, 열로 인해 음식이 금방금방 소화되며, 열로 인해 땀과 소변 그리고 정액이 몰려 나가 몸의 진액이 마르는 것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소갈을 치료할 때 인체 내부의 열을 식히고, 땀과 소변과 정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한다.
당뇨를 이해하려면 먼저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혈당지수는 일정한 양의 시료식품 탄수화물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를 같은 양의 표준 탄수화물 식품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와 비교한 값(포도당 수치를 100으로 잡음)을 말하며, 이에 따라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과 낮은 식품으로 분류한다. 55 이하면 낮은 식품, 70 이상이면 높은 식품으로 분류한다.
메밀의 루틴 성분 혈관에 좋아
여주 열매는 쓴맛이 강해 ‘쓴 오이’라고도 부르는데 혈당지수는 24다. 한의학에서 고과(苦瓜)라고 부르며 성질이 쓰고 차갑다. 무더위를 잘 견디게 해주고 습열을 제거하는 능력이 강하다. 그러므로 몸에 열이 많고 음식을 잘 먹고 살집이 있는 사람의 당뇨에 적합하다. 위장이 약하고 차가워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또 여주는 여름철에 더 적합한 약초라 할 수 있다.
메밀의 원산지는 히말라야, 동북아시아, 바이칼 호 주변 등 추운 지방이다. 에서 메밀은 “위장의 찌꺼기와 막힌 것을 잘 제거한다. 설사, 이질, 복통, 상기 등의 증상이 있으면서 기가 성하고 습열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만약 비위가 차갑고 약한 사람이 먹으면 원기가 손상되어 수염과 눈썹이 빠지므로, 적합하지 않다”고 표현돼 있다. 그래서 살집이 있고 음식을 잘 먹고 열이 많은 당뇨 환자에게 좋다. 메밀에 들어 있는 루틴은 혈관벽을 튼튼하게 해줘 동맥경화, 고혈압, 뇌출혈 같은 질환에 도움이 되며, 생활습관형 만성질환 개선에도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돼지감자는 국화과 뚱딴지라는 식물의 덩이줄기인데, ‘이눌린(inulin)’이 많이 함유돼 있어 ‘천연 인슐린’으로 알려져 있다. 이눌린은 단맛을 내지만, 소화계를 통해 흡수되지 않은 채 그냥 빠져나가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금기시되는 단맛을 내는 데 쓰인다. 한의학적으로는 달면서 약간 쓰고 서늘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열을 식히는 음식으로 당뇨에 좋다. 돼지감자는 또한 소화를 도와주고 뼈를 단단하게 해준다. 그러나 빈속에 돼지감자를 너무 많이 먹으면 혈당이 과도하게 낮아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해조류, 성인병에 탁월
우뭇가사리, 미역, 김, 다시마, 파래, 톳 등 해조류의 혈당지수는 10~20 사이로 매우 낮다. 해조류는 물을 정화하는 힘이 있어 인체 내에서 피를 정화해준다. 또한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항산화 물질이 많아 LDL 콜레스테롤은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은 높여준다. 고혈압을 내리고 미네랄을 공급해주며 식이섬유도 많아 대변을 잘 보게 해 독소를 배출해준다.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도 좋다. 일본 오키나와와 전남 바닷가, 제주도가 장수마을로 유명한 것도 해조류의 영향이 크다. 해조류의 약한 짠맛은 정제염의 강한 짠맛과는 작용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해조류로 미네랄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 해조류는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크다. 성인병 환자(고혈압, 당뇨, 통풍 등), 육류를 많이 먹어서 피가 탁한 사람, 머리로 열이 치솟는 사람, 편도선·임파선·갑상선 질환 등 목이 잘 붓는 사람에게도 좋다. 고환 주위가 잘 붓는 사람, 관절에 염증이 잘 생기는 사람에게도 좋다. 특히 현대인들은 음식 과다 섭취로 성인병에 많이 노출돼 있기 때문에 해조류, 염생식물이 더욱 필요하다. 만성피로 역시 피가 맑지 못해서 생기는 증상이므로 해조류, 염생식물이 도움이 된다.
블루베리의 혈당지수는 34다. 블루베리는 진달래과 산앵도나무속 식물인데, 혈당 수치의 급상승을 막고 인슐린 분비를 높여 혈당치를 낮춰준다. 시큼하고 단맛이 있어서 땀, 소변, 정액으로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수렴시켜 소갈을 치료하며 뼈와 근육을 단단하게 해준다. 따라서 몸이 마르고 뼈와 근육이 약해지면서 시력이 나빠지고 설사가 잦은 당뇨 환자에게 좋다. 몸에 열이 많으면서 입이 마르면 생블루베리가 좋고, 몸이 건조해지면서 마르는 사람에게는 건블루베리가 좋다.
설사가 잦을 땐 달달한 식초를
시큼한 맛이 나는 음식은 당뇨에 좋다. 피클이나 식초, 레몬주스 등 신맛이 나는 음식은 혈당지수가 매우 낮은데, 레몬이나 식초를 드레싱 재료로 이용하거나 채소, 생선 위에 뿌려서 먹으면 혈당수치를 낮출 수 있다. 식초에는 끝 맛이 쓴 식초와 끝 맛이 달달한 식초가 있다. 육류를 많이 먹거나 열이 많은 당뇨 환자는 전통식초처럼 끝 맛이 쓴 식초가 좋다. 그러나 소화력이 약하고 몸이 마르고 땀, 설사가 많은 당뇨 환자는 흑초, 홍초처럼 끝 맛이 달달한 식초가 좋다. 오미자도 끝 맛이 달아 기침, 소변, 설사가 잦고 기가 약한 사람의 당뇨에 좋다. 다만 당 성분이 너무 많이 들어간 오미자청 등은 좋지 않고 생오미자로 만든 오미자즙이나 말린 오미자로 만든 오미자차 등이 당뇨 환자에게 좋다.
콩류는 당뇨병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신장기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당뇨병 환자의 뇨단백도 감소시킨다. 인산죽염을 만드는 인산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인 에서는 검고 작으며 반짝반짝 윤이 나고 속이 파란 쥐눈이콩이 당뇨에 좋다고 했다. 그런데 복용법이 좀 독특하다. 쥐눈이콩 생것을 소나무 바가지에 넣고 약수로 불린 후 소나무 절구통에서 소나무 주걱으로 짓찧어서 먹으라 했다. 콩을 짓이기면 비린내가 심해 먹기 어려운데, 소나무 절구통과 주걱을 사용하면 비린내는 제거하면서 콩의 약성은 그대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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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당뇨병과 고혈압 같은 성인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당뇨 식이요법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하겠다. 그리고 다음 호에서는 각각의 약초가 당뇨에 왜 좋은지 그 이유를 밝혀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약초를 올바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
먼저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기로 하자. 혈당지수는 일정한 양의 시료식품 탄수화물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를, 같은 양의 표준 탄수화물 식품 섭취 후의 혈당 상승 정도와 비교한 값(포도당 수치를 100으로 잡음)을 말하며, 이 지수에 따라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과 낮은 식품이 분류된다. 55 이하면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 70 이상이면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이다.
당뇨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재를 알게 되면 그 음식들에 이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다. 우선 현미를 살펴보자. 당뇨에 현미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현미는 속껍질째 먹는 통곡(wholegrain)이기 때문에 당뇨에 좋은 식품이다. 여기서는 쌀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껍질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사과 껍질은 사과 속살의 영양분이 과잉으로 급속히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 배 껍질도 마찬가지다. 현미의 속껍질 역시 쌀알의 영양분이 과잉으로 급속히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현미가 백미보다 혈당지수가 낮고, 껍질이 들어 있는 호밀 빵이 밀가루로만 만든 흰 빵보다 혈당지수가 낮은 것이다. 따라서 현미는 당뇨 환자에게 좋다.
고구마는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이라 당뇨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고구마를 먹을 때도 깨끗하게 씻어 껍질째 먹는 것이 당뇨에 더 좋다. 장을 청소해주고 배변을 도와주는 얄라핀(jalapin)도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고구마에 상처가 생기면 상처를 보호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카이아포(caiapo)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일본의 흰색 고구마 껍질은 2형 당뇨병 환자의 공복 혈당, 총 콜레스테롤,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끼니를 때우는 것이 중요했지만, 영양 과잉의 현대인들에게는 청소, 정화, 배설이 더 중요해졌다.
에도 고량진미를 먹으면 당뇨가 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곡물의 껍질은 쓴맛이 나지만 청소, 정화, 배설 기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는 통곡이 중요한 식품이 됐다. 껍질이 있는 식품을 먹으려면 제대로 길러진 안전한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고구마는 혈당지수가 낮아 당뇨에 좋고, 감자는 혈당지수가 높아 당뇨에 나쁘다고 한다. 그러나 고구마를 먹는 방법에 따라 혈당지수가 달라진다. 2015년에 경희대에서 시행된 실험에서 군고구마의 혈당지수가 91, 찐고구마가 71로 나왔다. 2012년 미국에서 시행된 실험에서는 생고구마의 혈당지수가 32로 나왔다. 그리고 생고구마의 껍질은 19, 군고구마의 껍질은 34였다. 고구마를 찌거나 구우면 맥아당이 증가해서 맛이 달달해지고 더 찰지게 된다. 찐고구마나 군고구마를 뭉쳐 경단을 만들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찰진 음식은 몸을 보호한다. 그래서 찐고구마와 군고구마는 비위를 보하고, 기력을 더해주며, 추위를 이기게 하고, 얼굴색을 좋게 한다. 높은 고열에 구운 군고구마가 이런 특성이 더 강하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군고구마를 즐겨 먹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보하는 특성 때문에 혈당이 높아져 당뇨병 환자의 간식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당뇨에 좋지 않다는 감자도 마찬가지다. 찐 감자가 생감자나 튀긴 감자보다 혈당지수가 높다. 그러므로 당뇨병 환자는 찰진 음식을 피하고 달지 않게 먹는 것이 좋다.
미국의 앤 위그모어 여사는 20세기 중반에 밀 새싹을 연구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하기와라 요시히데 박사는 보리 새싹을 연구했다. 새싹류는 땅을 뚫고 나오는 힘으로 체하거나 막힌 것을 뚫어준다. 그래서 체기에 맥아를 쓰는 것이고 밀 새싹, 보리 새싹도 막힌 혈관과 탁한 혈관을 뚫어준다. 현미에 싹이 나면 비타민, 아미노산, 효소, SOD(superoxide dismutase) 등 몸에 유용한 성분들이 많아진다. 이런 영양소들은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이고 성인병을 예방하며 몸의 독소를 씻어내는 해독 작용을 한다.
컴퓨터를 처음 샀을 때는 속도가 빠르지만, 이것저것 다운받다 보면 느려진다. 우리 몸 역시 마찬가지다. 다 소화시키지 못한 음식이나 소화가 안 되는 강력한 이물질 등은 독으로 변해 질병을 일으킨다. 곡물의 싹은 막힌 것을 뚫고 독소를 씻어내 우리 몸을 초기화(reset)시켜준다. 열이 많고 너무 잘 먹어서 몸에 찌꺼기가 많은 사람들의 당뇨에는 새싹류가 좋다. 새싹나물을 늘 반찬으로 먹기를 권한다.
메밀도 당뇨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루틴(rutin)이라는 성분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루틴은 모세혈관을 강화하고 혈관 벽을 튼튼하게 해 동맥경화, 고혈압, 뇌출혈 등의 질환을 예방하고 당뇨병, 비만 등 생활습관형 만성질환 개선에도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혈관 벽을 튼튼하게 하면 혈액을 통해 수분과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므로 피부가 좋아지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그런데 메밀도 루틴 함량이 많지만, 메밀순은 루틴 함량이 27배나 많다. 즉 새싹은 막힌 것을 뚫는 힘으로 혈액을 정화하기 때문에 메밀순이 당뇨에 더 좋다.
한의학에서 당뇨를 소갈(消渴)이라고 부른다. 에서는 소갈을 ‘내부에 열이 뭉쳐 진액을 말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열로 인해 목이 마르고, 음식을 금방 소화시키며, 땀·소변·정액이 몰려나가 진액을 말리는 것이다.
고구마, 현미, 호밀 등의 껍질은 당뇨의 원인인 열을 없애주고,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당뇨병에 매우 유익하다. 그러므로 당뇨 환자는 이런 식품들을 섭취할 때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혈관을 청소하고 소화를 돕는 새싹류도 마찬가지다. 한의학적으로 당뇨의 원인인 열을 식혀주는 작용도 하므로 당뇨 환자는 새싹류를 자주 먹어주는 것이 좋다. 찰지고 단 음식들은 내부의 열을 조장해 진액을 더 말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중년에 많이 나타나는 고혈압, 당뇨, 뇌혈관 질환, 통풍 등 성인병은 비만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병이 있는 시니어는 다이어트를 적극적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은 다이어트를 위해 근육을 태우는 운동을 하는 것이 기본인데, 나이든 사람은 이러한 운동법이 오히려 신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음식 섭취도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시니어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일반 다이어트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다이어트센터 오픈을 앞두고 있는 선한의원 김한수 원장을 만나 시니어 다이어트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글·사진 이학영 객원기자 mrm97@naver.com
시니어의 비만은 일반 비만과 뭐가 다른가요?
저희는 같은 비만 환자라도 시니어와 젊은 환자는 다르다고 인식해요. 유형도 다르고 다이어트 방법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있는 분들의 비만을 말할 때, ‘뚱뚱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내부에 노폐물이 많이 끼어 있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편이죠. 즉 몸무게보다는 내장지방, 체지방 비율에 더 신경을 씁니다. 한의학적으로 몸 내부의 기력이 떨어져서 아랫배 쪽으로 지방이 집중적으로 누적되거나 몸이 무겁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시니어의 비만은 체중감량보다는 몸에 필요한 것들을 보충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다이어트를 할 때 조심해야 할 음식들은 무엇인가요?
오히려 뭐든 기분좋게 드시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몸을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다이어트를 이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식욕억제보다는 어떤 원인 때문에 음식 조절이 안되는지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0세에 80kg 가까이 몸무게가 나가는 노인분에게는 어떤 조언이 필요한가요?
이 정도면 일반적인 다이어트가 아닌, 치료와 보약 개념이 포함된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근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테고 몸도 잘 붓고, 각종 관절의 불편 증상을 호소하실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약으로 떨어져 있는 기력을 회복시키는 한편 순환력을 증대시켜 몸은 가볍게, 살은 빠지는 방식으로 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평소 드시는 음식의 종류에 있어서도, 체질이나 증상에 따른 조정이 필요합니다.
시니어분들은 뿌리채소 등 성질이 너무 차갑지 않으면서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다면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요?
이들 환자가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면 비만치료 이전에 골다공증이 악화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고혈압과 당뇨병 등이 있는 시니어들이 비만을 치료하겠다고 음식 양을 줄이면 근육이 약해져 오히려 척추와 무릎관절 치료에 애를 먹을 수 있습니다.
시니어의 체중감량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요?
무리한 운동보다는 평지 산책 수준의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해주시는 것이 더 좋고, 지방과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체력과 기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체중감량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다이어트 기준이 있나요?
다이어트 기준을 결정하는 7가지 요소 중, 타고난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타고난 유전자입니다. 비만 관련 유전자에 대한 검사를 통해 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비만 유형입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주로 하체에만 살이 찐다거나, 상체에만 찐다거나, 유독 복부비만이 심하다거나 하는 등 사람마다 비만 유형이 다릅니다. 세 번째는 장내 세균입니다. 실제, 장내 세균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으냐에 따라 비만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신체주기입니다. 여자는 나이대별로 신체주기의 변화가 생기는데, 7세·14세·21세·28세 등 7년 단위로 신체 변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현재 어떤 주기인가에 따라 다이어트 기준이 달라집니다. 이 4가지 요소 외에도 식습관, 생활 패턴, 스트레스 상황 등 3가지 환경적 요소들도 다이어트 기준에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센터는 이런 연구를 기본으로 설립되는 건가요?
그렇죠. 한의학에 국한되지 않고, 유전자 등을 다루는 의학, 장내 세균을 다루는 미생물학, 생활관리를 위한 심리학까지 결합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입니다. 다이어트와 밀접하게 관련한 각 분야의 학문들이 총집합된 센터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일대일 관리를 해준다는 말씀이죠?
네, 맞습니다. 유전자에 따라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고, 장내 세균 상태에 따라 살이 쉽게 찌거나 살이 찌지 않는 유형도 있습니다. 식습관, 생활패턴, 스트레스로 인해 살이 찌는 유형도 있는데 이런 원인들을 세밀하게 분석해 관리해줍니다.
센터의 주요 프로그램인 Q7은 무엇인가요?
Q7은 Question, 즉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7가지를 물어보고 따져본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비만을 결정하는 7가지 인자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체크하고, ‘몸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 살이 찐 이유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요소들을 진단, 분석하고 관리하기 위해 한의사, 의사, 미생물학 박사, 다이어트 매니저, 심리치료사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연구진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Q7 다이어트는 각 분야별 전문가를 통해 비만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 분석하고 그에 맞는 효율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가장 건강한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있는 시니어를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살을 빼면 당장은 체중이 줄어도 금세 살이 다시 찌는 요요현상을 겪게 됩니다. 특히 운동량이 부족한 시니어들은 살이 찐 정확한 원인을 찾아 치료하고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시니어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즐거운 다이어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시니어의 비만을 말할 때 ‘뚱뚱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내부에 노폐물이 많이 끼어 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몸의 기력이 떨어져 아랫배 쪽으로 지방이 집중적으로 누적되기 때문이죠.
최근 방송된 건강 프로그램에서 동갑내기 여성 탤런트 L과 전직 스타 농구선수 H의 ‘뼈 나이’를 비교한 적이 있다. 골밀도를 주로 비교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창 뼈가 건강한 나이에 운동을 많이 한 H는 4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20대의 뼈 나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반면, 같은 나이의 L은 뼈 나이가 60대로 측정되면서 무려 40년 정도의 차이를 보여줬다. L은 거의 골다공증 위험 수준이었다. L은 왜 이렇게 뼈가 급격히 노화된 것일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 아픈 그녀의 병력 때문이다. 한창 나이에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질환을 앓았던 그녀는 후유증 때문에 몸의 절반에 마비가 왔고,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과다 투여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이 무리한 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부작용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끝내 고관절이 괴사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인공관절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방송활동을 다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처럼 스테로이드제를 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데, 왜 스테로이드제는 그렇게 심각한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것일까?
스테로이드 호르몬제가 신약으로 처음 선보였을 때 인류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그 효과를 극찬했다. 기존의 소염제로는 염증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질환에 효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염증과 알레르기를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 효과는 분명 축복이었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는 항염증, 면역억제, 혈관수축 등의 효과를 가져오는데, 광범위한 질환에 사용된다. 접촉성 피부염, 아토피성 피부염, 지루성 피부염, 건선, 수포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피부질환 치료에 사용된다. 염증이 생길 경우, 혈관을 통해 염증의 원인 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혈관을 급격하게 수축시키면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의 효과가 필수적인 질병들이 그 대상이다. 심지어 난임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는 시험관 시술에서도 많은 의사가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다. 착상 전에 산모의 몸 안에 있을 수 있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면역력을 약간 저하시켜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착상에 실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스테로이드가 불법적인 목적으로 악용되는 일도 빈번하다. 즉 식품에 스테로이드를 섞어 팔면서 효과를 과장하는 것이다. 주로 노인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수법인데, 이런 수법으로 연간 10억여 원의 판매 실적을 올리는 떴다방도 많다. 식품이라 부작용도 없고, 먹기만 하면 관절염이고 통증이 싹 낫는다고 광고하면서 심지어 만병통치약처럼 과장하는 일도 많다.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 등지에서 관절에 특효약이라면서 지네가루를 담은 캡슐을 팔기도 하는데, 스테로이드가 무차별적으로 함유된 내용물도 많다. 현혹된 구매자들이 주변에 참 좋은 식품이라며 소개하는 일도 많은데, 그 결과는 참혹하다. 면역력이 억제되면서 고혈압, 당뇨병, 백내장, 골다공증 등의 발생이 거꾸로 급습하는 것이다.
사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외용제로 스테로이드를 자꾸 쓰다 보면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확장되는 것은 다반사다. 근골격계가 현저히 약해지면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 번 시도한 주부가 척추 압박골절을 겪은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눈꺼풀이나 눈 주위에 잘못 바를 경우 백내장이나 녹내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함유된 안약을 오랫동안 사용하던 청년이 녹내장 발생으로 실명 위험에 처한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도 금단증상을 일으킨다. 금단증상은 주로 중독성 약물을 복용하다 강제로 끊었을 경우 발생하기 때문에 마약과 관련이 높은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의 30세 여성은 3세 때부터 아토피성 습진에 걸린 피부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스테로이드제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자 피부가 빨갛게 변하면서 생으로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나 그녀는 커다란 고통에 시달렸다. 이것이 바로 일명 레드스킨 신드롬(Red Skin Syndrome, RSS)으로 알려진 스테로이드 금단증상(Topical Steroid Withdrawal, TSW)이다. 그녀는 벗겨진 피부에 이물질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피부 드레싱을 해야 했고, 하루에 거의 20시간 이상을 욕조의 물에 몸을 담그고 피부를 진정시켜야 했다. 결국 그녀는 우울증까지 겪었다. 국부성 스테로이드 중독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증세는 오랫동안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사용을 중단할 경우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가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또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심할 경우 직장과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다.
따라서 장기간의 스테로이드 사용은 결국 심각한 부작용이라는 굴레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테로이드의 효과와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까?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외로 답이 간단하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를 때는 가능한 한 얇고 정확하게 바르고, 자신이 스테로이드를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해왔는지에 대해 처방의사에게 알려줘야 한다. 또 스테로이드 복용을 장기화하지 않도록 하고,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양을 늘리지 않는 등 기본적인 사항을 지키면 된다. 많은 환자가 스테로이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어 부작용 피해에 노출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 최혁재(崔爀在) 경희의료원 한약물연구소 부소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우리나라에서도 비만 환자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당뇨병 환자 수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는 특히 식단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우리나라의 전통식단인 밥, 국, 찌개, 각종 채소를 비롯한 밑반찬으로 이루어진 한식을 위주로 먹었을 때는 당뇨병에 대한 걱정이 덜했지만, 요즘처럼 과식이 문제가 되고, 서구형 식단이 전통식단의 자리를 대신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당뇨병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게 되었다. 관련 기관의 예측에 따르면 현재의 식단 패턴을 유지하면서 고령화 추세가 더해진다면, 2030년 즈음에는 당뇨병 환자가 약 7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이 2030년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령 국가로 진입하는 문턱이다. 인구 감소세까지 감안한다면, 성인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당뇨병 환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 식단 변화에 따른 당뇨병의 우려는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더 위험한 복병이 될 수 있다. 고지방의 섭취가 많은 서양인들은 우리나라보다 비만 인구가 훨씬 더 많지만, 주로 하체에 살이 붙은 ‘서양배형 비만’인 당뇨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비교적 낮은데, 탄수화물 섭취로 인한 비만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부에 지방이 많은 ‘사과형 비만’이 많아 당뇨병으로 진전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피마 인디언의 비극’이다. 피마 인디언들은 원래 아시아 대륙에 살던 부족으로서 유전자가 몽골계로 분류되는 일족이다. 이들은 미국이 건국되기 이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한 부류는 멕시코에서, 다른 부류는 애리조나 사막지대에 정착했다.
애리조나 ‘피마 인디언’의 비극
멕시코에 정착한 이들은 지금까지 밀, 콩, 호박 농사 등을 지으며 전통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지만, 균형 잡힌 신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애리조나에 정착한 이들의 삶은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룬다. 애리조나는 방울뱀이 연상되는 따가운 햇볕의 사막지대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이 척박한 지역을 개척해 왔던 피마 인디언들은 사냥이나 낚시, 얼마간의 농사로 연명했다. 그런데 백인 이주자들에게 수로를 강제로 빼앗기면서 생활이 결핍해지자 이들의 식단에 변화가 생겼다. 미국 연방정부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콜라, 햄버거와 밀가루, 설탕 등을 보조해주기 시작했고, 이 음식에 익숙해진 피마 인디언들은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45세 이상 인구의 70%가 당뇨병 환자가 되었다. 반면, 멕시코에 정착한 다른 부류의 피마 인디언의은 당뇨병 발생률이 6%에 지나지 않는다. 애리조나 피마 인디언에게 이런 비극이 생긴 것은 유전자가 우리와 유사한 검약 유전자(Saving Gene)의 비율이 서양인들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서 곡식을 주로 먹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기상환경의 변화 등으로 오히려 수렵민족보다 영양 환경이 불안정했던 탓에, 일단 영양분이 섭취되면 분해를 지연시키는 유전자가 발달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구인들과 비슷한 식단을 접한 애리조나의 피마 인디언들은 오히려 같은 식단을 공유했던 백인들보다 훨씬 더 비만과 당뇨병에 쉽게 걸리고 만 것이다. 즉,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식단의 서구화는 이런 비극을 예견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뇨병약의 부작용, 생명과 직결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처럼 만성적으로 평생 동안 약을 복용하는 당뇨병약도 증상에 따라 한 가지로만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약에다가 인슐린 주사를 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평생 동안 먹을지 모르는 당뇨병약에도 당연히 부작용이란 것이 있고, 더욱이 그 부작용이 때로는 생명과 관계된 것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뇨병은 합병증 때문에 환자가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데, 그중에서 심뇌혈관 질환이 가장 생명과 직결된다. 당뇨병 환자는 당뇨병이 없는 일반 환자에 비해 사망이나 뇌졸중의 발생 위험이 2~4배나 높기 때문이다.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한 당뇨병약이 거꾸로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한다면 어떨까? 이에 관해 2015년 국내에서 발표된 논문에 두 가지 이상의 당뇨병약을 조합하여 복용할 경우, 어떤 조합이냐에 따라서 심뇌혈관 질환의 발생률이 다르다는 보고가 나왔다. 혈당을 정상 범위로 조절해주기 때문에 합병증인 심뇌혈관 질환의 발생률도 무조건 낮춰줄 것이라는 기대를 정면으로 반박한 연구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 당뇨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임상 지침에서는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복용할 것을 권고하는 경우가 많다. 저용량의 아스피린은 혈전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에 혈관이 막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고, 저용량을 사용할 경우 장기간 사용하더라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12년에 내놓은 연구 결과 보고서는 이 기대도 무너뜨렸다. 오히려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사용한 환자군에서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환자가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이 동반되지 않더라도 그 위험은 여전히 높았다.
이 기대와 다른 연구 결과는 고지혈증 치료제로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스타틴(Statin) 제제에 대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2015년 연구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최근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주는 스타틴계 약물을 폭넓게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스타틴을 사용한 환자군에서 당뇨병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물론 연구진은 당뇨병 발생 위험을 두려워하여 심혈관계 질환 예방을 위한 치료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의사의 임상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하고 있지만, 당뇨병의 가장 심각한 합병증이 심뇌혈관계 질환임을 상기할 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최근 사용량이 늘어나기 시작한 한 당뇨병약도 부작용으로 소변량이 증가하여 탈수의 위험성을 주의사항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이뇨제를 이미 사용하고 있을 75세 이상의 고령환자에게는 가급적 권장하지 않는다.
당뇨병약은 평생 동안 복용하기 마련이므로 가급적 부작용이 최소한으로 적은 안전한 약을 사용해야 한다. 약물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연구들에서 새로운 위험이 발견됨에 따라 이제 당뇨병약도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안전한 사용을 위해 점검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질병을 치료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약을 복용하는 첫 번째 목적이라면, 오히려 그 약으로 인해 또 다른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도 귀 기울여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당뇨병 환자의 급증이 우려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최혁재(崔爀在) 약사, 경희의료원 약제본부 예제팀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눈에 띄는 증상이나 통증 등으로 우리에게 경고하는 질병들은 어쩌면 요즘 표현법에 빗대면 ‘착한’ 질환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무서운 것은 소리 없이 몸속에 자리 잡고, 시한폭탄처럼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질환이 아닐까. 경기도 부천시 세종병원에서 만난 최태현(崔太賢·70)씨도 그랬다. 예고 없이 나타난 증상에 당황했고, 더 큰 증상으로 자라는 두 번째 ‘폭탄’의 위험 앞에 서야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솜씨 좋은 ‘폭탄 해체전문가’ 신경외과 권기훈(權紀勳·44) 과장을 만난 것이었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최태현씨는 늘 그랬듯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순찰에 나섰다. 그가 경비를 맡은 건물은 IT회사들이 모여 있는 가산디지털단지 인근, 입주 기업들의 직원들은 야근이 잦았다. 저녁 순찰이라고 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7층 엘리베이터에서 발을 뗀 순간 갑자기 몸이 휘청거렸다. 열까지 나 간신히 벽에 의지한 채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간 운동을 게을리한 자신을 자책했다.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자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울렁거림은 쉬 나아지지 않았다. 속이 문제인가 싶어 위장약을 먹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냥 비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2013년 5월의 일이었다.
또다시 찾아온 어지럼증
그리고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증상은 또 느닷없이 찾아왔다. 이번엔 집에서였다.
“TV를 보고 있었어요. 편안히 누워 있는 데도 갑자기 어지럼증이 오더라고요. 눈을 감아도 나아지질 않았죠. 이번에도 운동 부족인가 싶어 아령을 들고 진땀이 날 때까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또 잦아들기를 기다렸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 평화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몸은 채 열흘도 버티질 못했다.
“큰일인가 싶어 병원을 찾았죠.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 싶어 근처 대학병원을 향했어요. 그런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당장 치료도 어렵다고 하고. 막막하더라고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무작정 택시를 타고 하소연을 했더니 기사가 세종병원을 추천해주더라고요. 심장하고 혈관 치료를 잘한다고. 미심쩍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가자고 했죠.”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무력감이었다고 최씨는 토로했다. 청춘은 아니지만 뜨겁게 인생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한순간 몸의 한 부분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처럼 무력한 기분이 한 번에 밀려왔다고 기억했다.
권기훈 과장은 그의 환자 최태현씨를 아주 잘 기억했다. UCSF(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병원에서 뇌혈관 전문의로 연수를 마친 후 세종병원에 부임해 보름도 안 되어 만난 환자였기에 때문이다.
“제가 1일 부임하고 13일 최태현씨가 내원하셨으니 첫 환자나 다름없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무척 우울해 보였다는 것이었죠. 검사 결과 동맥경화로 인해서 경동맥에 심한 협착이 있었어요.”
병원을 믿을 수 있을까 고민도
동맥경화로 인한 경동맥 협착은 목동맥이라고도 부르는 경동맥에 수도관이 녹슬고 이물질이 침착하여 관이 좁아지게 되는 것처럼, 혈관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내막에 콜레스테롤이 쌓이고, 혈전이 생겨 혈액의 흐름을 막는 병이다. 이러한 증상이 오래되면 혈관이 탄력을 잃고 딱딱해지는 석회화 현상이 발생해, 인체가 혈압 변화를 통해 혈류 조절하는 것을 막게 된다.
최씨는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에 겁부터 났다. 평생 건강한 몸을 자랑으로 살았고, 체중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 내 몸을 맡겨도 될까? 더 큰 병원으로 가볼까 하는 유혹에 고민도 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큰딸이었다.
“사실 세종병원은 처음이 아니었어요. 십여 년 전에 온 적이 있었는데, 제 기억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병원이었거든요.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이곳저곳을 알아본 딸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여기서 치료받자고. 믿어도 될 것 같다고. 그래서 수술을 결정했죠. 고민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이나 다른 분들께 괜한 소리도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웃음)”
이에 대해 권기훈 과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환자들이 병원을 고르는 과정에서 심사숙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가 아니시니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 것도 당연하고요. 의사의 역할 중 하나는 환자가 질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수술할지 말지, 어떤 의료기관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환자의 뜻이기 때문에, 고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 따르게 하는 유대감이 낫게 해
권 과장의 이야기를 듣고 의구심이 생겼다. 외과의사의 가장 큰 덕목은 수술 실력이 아닐까? 환자와의 관계 형성이 진료에 미치는 영향이 클까? 이런 우문에 권 과장이 내놓은 현답은 이렇다.
“최태현씨가 좋은 예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제 수술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나서가 아니라 라뽀, 즉 마음의 유대감 때문입니다. 저도 미국과 한국 여러 의료현장을 가 봤지만, 저보다 손기술이 뛰어난 의사들은 정말 많아요. 특히 한국 의사들 수술 실력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니까요.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은 다행히 환자가 저를 신뢰해 제가 말씀드린 대로 따라주었던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병은 수술만큼이나 수술 후의 약물치료도 무척 중요하니까요. 수술 후 복용해야 하는 혈전용해제를 귀찮다고 건너뛰기 시작하면 되레 수술 전보다 더 상태가 악화할 수 있습니다.”
권 과장이 미국 연수과정에서 느꼈던 것 중의 하나도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형성이었다고 했다. 충분히 환자의 의견이나 요구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진찰 과정에서 시간을 많이 쓰는 의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어렵게 수술이 결정되고 치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13년 9월 5일 우측 경동맥에 스텐트 삽입술이 진행되고, 20일 후인 25일에 좌측 경동맥에 다시 스텐트 삽입술이 시행됐다.
동맥경화로 인한 경동맥 협착 수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굉장한 대수술이었다. 혈관을 직접 절개해야 했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뇌에 공급되는 혈액을 차단해야 했다. 혈액 차단은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술시간도 제한적이고 후유증의 위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사용되고 있는 혈관 성형술은 혈관을 따라 작은 관을 삽입해 끝에 달린 작은 풍선을 불어 혈관을 넓히는 방법이다. 큰 수술도 아니고 후유증도 적다. 석회화가 심한 경우 여기에 금속으로 된 망사형태의 파이프인 스텐트를 위치시키면, 망사 사이로 내피세포가 자라면서 원래의 매끄러운 혈관 안쪽 표면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흔히 동맥경화를 시한폭탄에 비유하는 것은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동맥경화로 인해 뇌 쪽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 별다른 장애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뇌조직에 손상을 준다. 이러한 질환을 뇌경색이라고 부른다. 어지럼증이나 발음이 어눌해지고, 움직임이 둔해지면 뇌경색을 의심해봐야 한다. 심한 경우 안면마비, 반신마비 등이 올 수 있다.
또 혈관에 쌓인 혈전이 뇌혈관을 막고, 심한 경우 뇌혈관이 터져 출혈이 발생하면 뇌졸중이 된다. 뇌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하면 정상으로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동맥경화의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병원 찾는 것 겁내지 말아야
최씨는 수술을 위해 일을 잠시 쉬었지만 휴식은 두 달이면 충분했다.
“아프면서 생긴 우울했던 기분은 수술 직후까지 계속되긴 했죠. 하지만 퇴원 이후 꾸준히 약물치료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몸이 나아지자, 기분도 함께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10~15분 정도밖에 걷지 못했는데, 1시간 넘게 걷는 것도 너끈해지자 다시 일을 시작해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두 달 만에 새 직장을 찾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서 달라진 또 하나의 변화는 바로 잠이다. 젊을 때도 깊이 잠들기 어려웠던 최씨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잠을 깊게 잘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
수술 이후에 즐겨 먹는 음식은 양파 달인 물이다. 양파 껍질만 구해 말린 다음 구기자, 감초와 함께 달여먹는데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단다. 또 집 주변의 가까운 산을 오르면서 건강관리를 해 나가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권기훈 과장은 뇌혈관질환은 일반적인 건강관리 지침만 지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본적인 성인병인 고혈압과 당뇨병, 고지혈증만 잘 관리해도 뇌혈관질환은 예방할 수 있습니다. 술과 담배, 과로를 멀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이런 기본적인 것들만 지켜줘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동맥경화는 오랜 기간 찌꺼기가 쌓이면서 생기는 병인 만큼 나이가 많을수록 발병 소지는 더욱 높아집니다. 따라서 어지럽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시야가 흐려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가까운 병원에서 전문의를 꼭 만나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최태현씨의 마지막 당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큰일을 겪으면서 큰 병원, 좋은 병원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대학병원도 장점이 있겠지만, 규모는 작아도 같은 의사가 진찰부터 수술까지 맡아서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이제는 저도 몸의 이상이 있으면 바로바로 병원을 찾곤 합니다. 주변에도 꼭 그러라고 권하고 다닙니다.”
장홍
레드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우선 다양하고 현란한 붉은색에 매료된다.
다음으로 코를 잔으로 가져가면 다채로운 향의 정원을 만난다. 그리고 한모금 입에 머금어 혀의 여러 부위로 와인을 굴리면서 단맛, 신맛, 쓴맛 등을 음미하다가 조심스럽게 삼킨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이 한 잔의 와인은 수백 종류의 화학성분이 함유된, 그야말로 실험실이다. 포도 속에 함유된 당분이 박테리아와 효모의 작용으로 알코올, 보다 정확히는 에탄올로 전이되는 과정이 발효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주조와 숙성 과정을 통해 와인은 여러 종류의 산(acids)과 향을 얻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포도 속에는-특히 껍질과 씨 속에는-중요한 몰레큘라(분자)들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은 알코올에 의해 조금씩 축출돼 와인 속에 녹아든다. 그중에서도 페놀 그룹인 폴리페놀은 최소한 500여 종에 달하며, 각자의 화학적 구조에 따라 소중한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나쁜 콜레스테롤의 형성을 막는 황산화 성분이다. 그리고 이 황산화 성분이 심장 혈관 계통의 질병을 예방한다는 유명한 프렌치 패러독스의 기원이기도 하다. 게다가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신경 질환, 비만, 암 등의 예방에도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물론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두 그룹의 폴리페놀
와인 속에는 크게 두 그룹의 폴리페놀이 함유되어 있다. 플라보노이드(flavonoides)와 비-플라보노이드(non-falvonoides)가 그것이다.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 국립농산물연구소(Inra)의 오귀스탱 스칼베르(Augustin Scalbert) 박사는 여러 음식물에 포함된 폴리페놀의 양을 측정하는 새로운 연구 분야의 개척자다. 그는 450종에 달하는 식재료에 함유된 500가지 폴리페놀에 대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레드 와인은 화이트나 로제에 비해 10배 이상의 폴리페놀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폴리페놀 중에서도 플라보노이드 타입의 폴리페놀이 레드 와인에 다량 함유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비-플라보노이드는 소량 검출되었다. 비-플라보노이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와인의 핵심적 질병 예방 요소로 지명되었던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은 3.42㎎/100㎖ 정도로 지극히 소량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와인에 함유된 폴리페놀 중에서 어떤 것이 진정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런던의 퀸 메리 의대(Queen Mary’s School of Medicine and Dentistry)의 교수인 로저 코더(Roger Corder)는 여러 연구 결과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프로시아니딘(procyanidines)이 건강에 핵심적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프로시아니딘은 다른 폴리페놀에 비해 항산화성과 혈관 확장에 있어서 보다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특히 레드 와인에는 프로시아니딘의 함유량이 레스베라트롤보다 거의 1000배나 많다고 한다.
페놀-익스플로러(Phenol-Explorer)에 관한 또 다른 주요 정보도 밝혀지고 있다. 와인을 제외한 다른 알코올 음료(위스키, 럼, 맥주 등)에는 폴리페놀이 거의 함유되지 않은 반면 다른 식재료에는 레드 와인만큼, 혹은 그 이상의 폴리페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에는 100㎖당 107㎎의 폴리페놀이 들어 있는 반면 맥주에는 3.28㎎, 위스키에는 1.25g, 럼에는 고작 0.43㎎이 들어 있을 뿐이다. 같은 와인이라도 로제에는 10㎎, 그리고 화이트와 샹파뉴에는 10.4㎎의 폴리페놀이 함유돼 있다. 그리고 포도주스에는 100㎖당 단지 1㎎만이 들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커피에는 214㎎, 녹차에는 89㎎ 그리고 초콜릿에는 무려 216㎎이나 들어 있다. 단지 폴리페놀 측면에서만 본다면 커피나 초콜릿 한 잔이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을 한 잔 하는 것보다 훨씬 효용성이 뛰어나다.
광범위한 역학(epidemiology: 생활양식, 사회 환경 따위가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의학 분야)을 통해 프랑스인들이 폴리페놀을 섭취하는 근원에 대한 연구를 실시한 세르주 에르베르그(Serge Hercberg) 박사에 따르면, 커피가 36.9%로 가장 앞서고, 다음으로 33.6%의 녹차나 다른 차, 그리고 10.4%의 초콜릿이 뒤를 잇는다. 레드 와인은 7.2%로 네 번째에 위치하고 있으며, 과일(6.7%)이 그 다음으로 밝혀졌다. 이쯤 되면 육류를 먹을 때 녹차를 곁들이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모든 알코올 음료와 마찬가지로 와인 속에 함유된 에탄올이다. 에탄올은 미세한 몰레큘라로 수용성이고 특히 알코올에 잘 혼합되며, 모든 세포에 침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술을 마시고 몇 분 내에 뇌를 비롯한 인체의 모든 기관에 퍼져나가며, 섭취한 양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오르지만 많이 취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현대 의학은 알코올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미국 메릴랜드(Maryland) 주 베데스다(Bethesda) 연구소가 2006년 20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극소량의 알코올 섭취도 뇌 속 글루코오스의 신진대사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웰즐리 대학(Wellesley College)이 1839명을 대상으로 2008년에 실시한 연구 결과는 우리를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 이에 따르면 알코올 섭취량과 뇌의 크기(volum)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즉 알코올 섭취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뇌의 크기는 반대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뇌의 일부 지역은 무려 20%나 감소한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뇌가 성숙 단계에 있는 청소년기에 알코올을 섭취하면 그 악영향은 엄청나다고 한다. 프랑스의 한 국립연구소(Inserm)에 근무하는 미카엘 나실라(Mickael Nassila) 박사에 의하면 청소년이 알코올을 섭취할 경우 성인의 경우보다 뉴런(신경단위)이 2.5배나 많이 죽는다고 한다.
아, 불행한 와인이여! 에탄올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와인은 여느 다른 알코올과 다를 바가 없다. 과다한 알코올 섭취는 암, 간경화는 물론 뇌에도 나쁜 영향을 주는 만병의 근원이다. 게다가 와인의 도수도 최근 들어서 조금씩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당장이라도 금주법을 다시 시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금주만이 유일한 미덕일지도 모른다.
아, 행복한 와인이여! 다른 알코올 음료에는 없는 다양한, 그리고 다량의 폴리페놀을 함유한 와인이여! 하여 여느 알코올 음료와는 다른 와인이여! 폴리페놀은 그 명칭이 시사하듯 수많은 종류가 있다. 어떤 종류가 어떤 질병의 예방에 유용한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폴리페놀의 항산화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심장 혈관 계통의 질병과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 그리고 심지어는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와인!
영원한 형제이자 적인 폴리페놀과 에탄올을 모두 함유한 와인은 분명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프랑스 샹송의 가사처럼 결국 현명한 사람만이 와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나 보다.
△ 장 홍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