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심각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는 2023년이면 696만 명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4년)가 전원 60대에 편입되고, 2025년에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급격한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다.
통계청의 지난해 12월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5∼64세 인구는 2020년 3737만 9000명에서 2025년 3561만 명으로 4.7%(176만9000명) 줄어든다. 2070년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대비 53.5%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고령자 고용에 대한 정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고, 정부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이 고령화 사회의 과제를 어떻게 풀지 이목이 집중된다.
계속고용제도, 경영계 반대도 과제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만 60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 촉진을 위한 '고령자 고용지원금' 제도를 시행했다. 60세 이상 근로자 수가 증가한 우선지원대상기업 및 중견기업 고용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지원금 신청 분기의 월평균 고령자 수가 지원금 최초 신청 직전분기 이전 3년간 월평균 고령자 수보다 증가한 사업주다. 여기서 고령자는 무기계약 또는 고용 기간이 1년 초과하는 만 60세 이상인 근로자를 말한다.
고용부는 증가한 고령 근로자 1명당 분기별로 30만원씩 2년간 총 240만 원을 지원한다. 기업은 월평균 피보험자 수의 30% 이내에서 최대 30명까지 신청 가능하다. 최대 7200만 원을 받는 셈이다. 월평균 피보험자 수가 10명 이하면 최대 3명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현 정부는 지난 2월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해 60세 정년 이후에도 고령자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4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주요 분야 및 논의 방향'을 발표했다.
고령자 계속고용제도는 60세 정년 이후에도 기업에 일정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하되,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의 고용연장 방식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아울러 고령자에 대해서도 60대 후반이나 70대, 80대 등 연령 계층별로 차별화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고용 지원을 위한 직업훈련과 취업 정보 제공 등 고령층 고용 인프라도 더욱 확충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2019년에도 이 제도를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경영계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고령자 계속고용제도는) 정년연장을 추진하는 것과 같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고령자의 계속고용은 기업 부담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 10곳 중 6곳은 근로자 정년 연장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총이 지난해 고령자 고용 정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중 58.2%가 60세를 초과하는 정년 연장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3%는 인건비를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정년 연장 정책이 청년 일자리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5월 발표한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에서 10~999인 규모의 비교적 소규모 사업체에서 10명의 정년을 연장하면 15~29세 고용이 약 2명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계속고용제도는 일본의 '고령자 고용제도'를 모델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06년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뒤 고령법을 개정했다. 고연령자의 고용 의무화를 3년마다 1세씩 단계적으로 연장했으며, 2025년 4월까지 모든 사업장에서 65세 고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정년연장(정년 65세로 연장) △재고용 제도 활용(퇴직 뒤 재계약) △정년제 폐지(정년 없이 계속 고용) 가운데 기업이 적절한 방식을 선택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노인 일자리 무게중심 민간 기업으로
일본 정부의 정책 핵심은 '권고 사항'이다. 강제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강제법이 되면 반발이 더욱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당시 고용연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제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그는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청년 일자리와 충돌을 최대한 방지하면서 다양하고 실용적인 고용연장 방안을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며 "중장년 재취업지원서비스 의무화 대상 기업 확대, 고용보험적용 연령 70세까지 확대 등을 통해 실질적인 고용연장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서도 기초연금 인상과 노인 일자리 확대에 대해 얘기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만 60세 이상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의 사업이다.
윤 당선인은 심각한 노인빈곤문제 완화를 위해 기초연금을 현행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감액 등 미세조정으로 조금이라도 기초연금을 더 받도록 조치하고, 국민연금을 포함한 노후소득보장체제 전반에 대한 구조개혁을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장형 어르신 일자리 확대 지원을 약속했다. 은퇴 직전 및 은퇴 이후 어르신 직업교육 적극 지원, 기업과 연계 시스템 대폭 확대, 어르신 채용 및 고용연장 기업 지원을 확대해 시장형 어르신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당선인은 노인 일자리 중 시장형 사업에 대해 언급했지만, 사실상 노인 일자리 정책은 이어가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확대했고 공공 부문 취업자가 증가해 고용 안정을 이끌었다. 전체 일자리 증가의 45.5%는 60세 이상이었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선망하는 좋은 일자리는 크게 줄고 단기·공공 일자리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 정부가 아니라 일자리 파괴 정부라고 말하는 게 옳다. 통계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 국민 혈세로 가짜 일자리를 늘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이 만든다"면서 "일자리 만드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돕고 청년들의 스타트업 창업을 파격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 자체가 청년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정부 일자리와 관련 있는 노인, 취약계층은 앞으로 취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윤석열 당선인의 임기 중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데, 고령자를 위한 정책이 마련될지 이목이 쏠린다.
너나 할 것 없이 제 이야기 하고 싶어 야단인 세상이다. 들어보면 제각기 대단한 구석도 있고, 웃음 나는 구절도 있으며, 눈물 훔치게 하는 구간도 있다. 그러나 그 재미난 이야기 들어줄 사람 없이 혼자 떠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성화 관악FM DJ는 ‘듣는’ 아나운서다. 누구보다 말할 기회가 많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듣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믿고 듣는, 현역 최장수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했는지도 모른다. 잘 듣는 사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세상이지 않은가.
이성화 DJ는 1959년 부산 MBC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한 상업방송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다. 이후 서울 MBC, RSB 라디오 서울(동양방송의 전신), TBC 동양방송까지 다양한 방송국의 개국 아나운서로 자리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초대 DJ를 1964년부터 1972년까지 8년 동안 맡기도 했다.
아나운서, 현대사 한복판에 서다
1959년부터 1980년까지, 그가 아나운서로 한창 이름 날리던 때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사건이 많던 시기였다. 부산 MBC 아나운서로 일하던 때였다. 그는 우연히 들어선 다방 창가에 앉아 있는 엄순영 씨를 발견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미모에 감탄한 이성화 아나운서는 엄 씨를 미스코리아 경남 대회에 출전시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그를 설득해 심사 3일 전에 아슬아슬하게 후보 등록을 마쳤는데, 부산 미스코리아에 선발되면서 엄 씨는 미스코리아 본선에 진출할 자격까지 얻었다.
당시 한국일보사에서 실시했던 미스코리아 본선 대회는 경복궁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대회 전날 엄 씨와 함께 서울에 올라온 그는 당시 김지태 서울 MBC 사장의 자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사모님이 그를 깨우며 하는 말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미스 리, 쿠데타가 일어났대요’ 하시는데,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멍한 채로 대문을 열었더니 집 앞으로 탱크가 지나가지 뭐예요.” 그때가 1961년 5월 16일 아침이었다. 2년 차 사회 초년생이 5·16 군사정변의 순간을 직접 목도한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아나운서 자리에 앉아 3·15 부정선거, 4·19혁명 등 굵직한 사건을 보도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정치인부터 유명 가수, 배우 등 명사를 만날 일이 많았다. 만났던 당시에는 몰랐으나 후에 역사적 인물이 된 경우도 있다. 그가 부회장을 맡았던 여류방송인클럽이 한 군부대를 위문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 “안내받으며 사단 내부를 둘러보고 사단장을 비롯한 장성들과 기념 촬영을 했죠. 굉장히 대접받으며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죠. 나란히 서서 사진 찍었던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역사적 인물이 될 거라고는 말예요.” 그는 지금도 김재규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권력이 다 무엇이고,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생각한다.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와 배짱
인생무상,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전성기는 빛나기 마련이다. 그는 업계 안팎으로 일찍이 능력을 인정받은 1세대 커리어우먼이었다. 재치 있고 순발력이 좋다고 소문 난 덕분에 당시 생방송 스케줄이 잡힌 PD들에게는 섭외 1순위 아나운서였다. 게다가 당시 발간되던 잡지 ‘아리랑’에서 진행한 아나운서 인기 순위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동양방송에서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던 시절이었어요. 요즘처럼 방송에서 노골적으로 남녀 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요. 택시 기사와 전화 연결을 할 때 제가 ‘기사님 밤늦게 운전하고 들어가도 부인께서 식사 정성껏 챙겨주시면 덕분에 기운 나시죠? 그러면 기사님도 부인께 친절을 베풀어야지요’ 하면 바로 알아듣고 상대편에서 ‘그럼요. 다음 날 아침상에 달걀프라이가 올라온답니다’ 하고 대답하거든요. 듣는 사람들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지요.”
그의 인기에는 뛰어난 순발력과 더불어 듣기 좋은 음성이 한몫 단단히 했다. 연극 연출가 오사량은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며 그의 목소리를 극찬했다. 목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평생 목 관리를 모르고 살았으니 천직이나 다름없다.
이성화 DJ의 방송 인생을 논할 때는 당찬 성격을 빼놓을 수 없다. 부산 MBC의 방송요원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가 덜컥 합격해 방송 인생이 시작된 것, 예상 못한 순간에 순발력을 발하는 기지도 그의 당찬 성격에서 비롯됐다.
전국체육대회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던 시절, 육영수 여사가 직접 방문한 일이 있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전국체육대회 중계방송의 진행석에서 방송 준비를 하던 그는 마이크를 쥐고 대뜸 육 여사가 앉은 단상으로 올랐다. 단상 밑을 지키고 서 있던 경호원 둘이 막아섰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동양라디오에서 나왔는데 잠깐 인터뷰만 할게요’ 하고서 그 둘이 망설이는 틈을 타 단상에 올라섰어요. 올라가는 동안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한 다음 육영수 여사한테 ‘안녕하십니까. 이따 방송 시작하거든 날씨가 어떤지만 여쭤볼게요. 오늘 날씨가 좋지요? 하고 물으면 ‘네’ 하는 대답이랑 선수들 잘 뛰라는 말씀만 해주세요’ 그랬어요. 돌이켜 생각해도 보통 배짱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결국 그는 계획에 없던 영부인의 인터뷰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쾌지나 청춘에서 제2의 청춘을 열다
이후 1980년 신군부의 주도로 언론통폐합이 이뤄지면서 당시 몸담고 있던 TBC 방송이 문을 닫았다. 이때 그의 활약상에도 일시정지 버튼이 눌렸다. 밖에서 그만 일하고 가정으로 돌아오라는 남편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후 방송에 대한 욕심, 재능, 외부의 인정을 모두 던져두고 30년을 주부로 살았던 그는 9년 전 뜻하지 않게 아쉬움을 풀 기회를 얻었다. TBC 방송국 막내 PD였던 동료의 소개를 받아 비영리 라디오 방송국 관악FM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서울 관악구에 사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회화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고 발음이 정확해 한국어 선생님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러나 반응이 좋지 못했고, 방송을 맡은 그 역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제작진과 함께 고민한 끝에 폐지됐던 ‘쾌지나 청춘’ 방송을 되살리는 카드를 선택했고, 그는 현재 9년째 ‘쾌지나 청춘’의 월요일 DJ를 맡고 있다.
‘쾌지나 청춘’은 국내 최초 어르신 방송단이 만드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간 오전 6시에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쾌지나 청춘’은 고정 코너 ‘생활의 지혜’, ‘생활 건강’과 요일마다 다른 여섯 가지 단독 코너로 이뤄진다. 이성화 DJ와 함께하는 월요일에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인터뷰 코너가 진행된다. 코너의 아이템 기획부터 게스트 섭외, 인물에 대한 사전 취재와 원고 작성은 모두 그의 몫이다. 녹음을 진행해보고 더 끌어낼 이야깃거리가 있다고 판단하면 회차를 늘려 추가 녹음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획 및 진행자만으로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없다. 관악FM 내의 오랜 파트너인 김우신 PD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베테랑 DJ로서 방송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알기에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방송 제작에 힘써준 그가 고맙기만 하다. “지금까지 기획진행 이성화, 기술편집 김우신 프로듀서였습니다.” 매 방송마다 빠짐없이 넣는 멘트만큼이나 그를 향한 애정이 빼곡하다.
한창때는 하루에 10시간도 방송했던 베테랑 방송인에게, 30년이란 기나긴 공백기를 뛰어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청취자에게 신청곡을 주문받으면 막내 작가가 서고로 뛰어올라가 CD를 찾는 동안 즉흥에서 멘트를 지어내던 시절과는 사뭇 딴판이지만, 라디오 DJ 일은 그에게 여전히 즐겁기만 한 분야다. 그는 매 방송이 끝난 뒤 직접 준비한 원고를 일일이 개인 블로그에 올리곤 한다. 젊을 때부터 습관처럼 하던 기록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방송과 게스트를 홍보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여성·드라마, 그가 전할 새로운 이야기
평생을 진행자로 살았지만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꿈도 꾼다. 이를테면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하고 제작하는 일 말이다. 만약 PD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중장년 여성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 ‘라떼’를 만들고 싶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아내로만 살아오며 나이 들어버린 이들의 세월을 조명하고픈 욕심 때문이다.
“여성들이 남모르게 겪은 고통과 고난 같은 사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가부장 사회의 제도와 법률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거든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는데 각자의 가정에 자양분으로 쓰이고 만 거예요. 그래서 유능한 여자들이 가슴에 응어리가 많아요.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할 곳도 없으니 친구들이랑 만날 때나 털어놓고 말죠. 그런 얘기를 자주 듣는데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만 해도 그랬다. 일에 욕심이 있고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남편의 반대를 거스르지 못해 끝내 집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다. 은행에 입사할 때 결혼하면 그만두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고,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두고 바깥일을 하면 손가락질하던 시절이었다. 당대 여성들에게 선망받는 방송인이었던 그도 방송을 마치면 아내이자 엄마로서 일할 줄만 알았지 자기 계발에 시간 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주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아나운서로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30년의 시간이 그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쉬운 만큼 그는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지금에 열중하다 보니 새로운 목표도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는 80대에 들어서면서 드라마 공부를 시작했다. 예전부터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야 도전할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어엿한 스토리텔러로 활약하고픈 열정이 샘솟아 4년 전에는 전문 학원까지 등록해 수업도 들었다.
“쾌지나 청춘 기획하고 진행하랴, 집에 가면 블로그 글도 올리랴. 게다가 남편 밥도 챙겨줘야 해요. 쉴 새 없이 바쁜데도 드라마가 너무 쓰고 싶어서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대본을 썼어요. 드라마라는 게 제각기 다른 갈래의 사람들이 한데 얽혀 진행되는 이야기잖아요. 저도 그렇게 멋진 예술의 한 줄기로 끼고 싶은 거죠.”
‘옛날 사람’인 그는 그가 실제로 보고 들은 ‘옛날이야기’를 50분짜리 대본 한 편에 풀어냈다. 요즘 사람들의 AI, 우주 공간 같은 요즘 이야기 말고 욕심쟁이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명예를 탐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았다고 했다. 그 대본으로 당장 드라마를 제작할 수 없고, 촬영 현장에서 스토리텔러로 활동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지금은 아는 것이 없지만, 그는 꾸준히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처음 아나운서 일을 시작했던 그 당찬 성격과 배짱을 무기로 내세우면서.
1세대 아나운서인 그는 아나운서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친화력을 꼽았다. 친화력이 있으려면 배려와 친절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처음 보는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며, 이를 이끌어내는 능력까지. 아나운서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이 친화력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관악FM에서만 4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400개의 이야기를 듣고 400개의 아름다움을 뽑아낼 줄 아는 그는 친화력 그 자체나 다름없다. 이야기가 익숙하거든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 좋고, 몰랐던 세월의 이야기라면 새로워 좋다. 들을 줄 아는 아나운서, 한결같은 그의 인생이 아름답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연금을 대대적으로 손 볼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의 기금이 2055년쯤 바닥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연금 개혁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공약으로 ‘세대공평 연금’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이에 개혁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보험료 인상을 강조하는 만큼 현재 9%인 보험료율 조정이 예상된다.
윤 당선인 또한 보험료율을 언급하며 MZ세대에게 연금 부담이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1소득자 1연금’ 체계를 ‘1인 1연금 의무화’로 확장하고 국민연금 구성을 세 개 층으로 나누어 개혁할 것을 시사했다.
그 외 공무원 연금과 같은 직역연금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직역연금은 지난 2015년 개혁을 했음에도 국고 보전액이 증가하고 있는데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어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초고령사회 백년대계 상생의 합리적 연금개혁 방안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며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2022년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신규 사업대상지 68개소를 선정했다. 사업대상지는 올해 약 105억원을 시작으로 향후 총 1050억 원 규모의 국비를 지원받게 된다.
시·도별로는 전남 15개소, 경남 11개소, 경북 10개소, 충북·전북 9개소 등으로 도시 10개소, 농어촌 58개소가 선정됐다.
올해 선정된 지역은 앞으로 4년 간 사업을 진행하게 되며 도시는 약 30억 원, 농어촌 지역은 약 15억 원을 지원받게 된다. 도시의 경우 쪽방촌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임대주택 조성 사업이라면 최대 70억 원을 지원한다.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은 취약지역의 주민들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주거, 안전, 위생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농어촌 391개소와 도시 136개소 등 총 527개 취약지역을 지원했다.
주요 지원 내용은 슬레이트 지붕 개량 등 노후주택 정비, 소방도로 확충 등 안전시설 정비, 재래식 화장실 개선, 상하수도 정비 등의 생활 인프라 확충, 노인 돌봄과 건강관리 프로그램 등의 주민 공동체 활성화, 주민역량강화사업 등이다.
균형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노후된 주거환경과 낙후된 생활인프라로 불편을 겪어 온 취약지역 주민들의 기본적인 삶의 질 충족을 위한 지원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석열 당선인은 오는 5월 10일 취임하면서 새로운 정부가 시작된다. ‘윤석열 시대’를 앞두고 그가 발표했던 공약들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노인 관련 정책에서 “요양·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공약위키에 따르면, 세부 내용은 △환자 특성별 맞춤형 간병 지원을 통한 간병비 절반 감소 △요양·간병 가족 돌봄 휴가·휴직 기간 확대 △맞춤형 돌봄 계획 설계 및 지원 △양질의 간병 서비스 제공 △노인질환 예방 지원 강화 등이다.
구체적으로 요양, 간병 책임을 수행하는 돌봄 가족의 휴가 및 휴직 기간을 확대하고, 재가서비스 확대와 데이케어를 도입하는 등 간병인의 부담을 완화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노인의 치매, 생활습관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사전 관리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맞춤형 건강 지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힘쓸 것을 약속했다.
더불어 ‘어르신들을 위한 윤석열의 효도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1인당 30만 원씩 지급했던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10만 원 인상해주고, 65세 이상 대상포진 예방 접종을 무료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설에는 ‘석열씨의 심쿵약속’을 통해 노년층을 위한 건강 증진 프로그램 지원을, 2월 14일에는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위한 장수 사진 1회 무료촬영과 낙상사고 예방용품 지원을 공약했다. 70세 이상 어르신을 위해 개인당 장수 사진 1회 촬영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고 차상위계층·기초생활 수급자에 해당하는 노년층에게 미끄럼 방지 매트와 실내·외 안전 손잡이, 화장실용 안전손잡이 등의 용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윤 당선인은 10일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 인사를 가졌으며 정권 인수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10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폐지를 포함한 부동산 세재 개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부동산 세제 개편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종부세와 재산세를 통합하고 단기적으로는 세금 부담을 낮추는데 집중한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서 종부세와 재산세가 이중과세라는 주장이 있었던 만큼 시장 관리 목적이 아닌 조세 원리에 맞는 방향으로 부동산 세재 개편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종부세와 재산세의 통합을 위해서는 종부세법을 폐지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방대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이며, 종부세가 지방세인 재산세와 통합될 경우 지방자치단체 별로 세수가 양극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종부세 등의 부동산 세금 부담을 낮추는 정책들을 펼칠 예정이다. 먼저 1주택자 종부세율을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 수준(0.5~2.0%)으로 인하한다. 또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적용을 최대 2년간 한시적으로 배제하고 다주택자 중과세 정책 자체를 검토할 예정이다.
기존에 종부세율은 보유 주택 수에 상관없이 적용되다가 2019년부터 다주택자의 경우 기본 세율보다 높은 세율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1주택자 종부세율은 최고 2.7%까지 올랐다가 지난해부터 0.6%~3.0%로 추가 인상된 바 있다.
1주택자 종부세 인화와 함께 1주택 장기 보유자에게 연령 상관없이 주택 매각이나 상속 시점까지 종부세 납부 이연을 허용할 방침이다.
또한 1주택자 세 부담이 직전 연도의 50%를 넘어가지 않도록 세 부담 상한을 낮추고,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부동산 공시가격은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한다.
취득세의 경우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거나 1% 단일 세율을 적용하며 조정지역 2주택 이상에 대한 누진 과세 비율도 완화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세가 지난해 연말부터 대출 규제 강화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아파트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부동산 업계는 올해 아파트 시장에서 급격한 하락은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아파트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요소들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올해 시장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참조 신한은행 ‘2022년 수도권 아파트 시장 연간전망’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월 전국주택동향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월 대비 0.08% 올랐다. 지역별로는 수도권(0.02%)과 지방(0.13%)에서 상승했지만 서울에서는 상승세가 멈춰 섰다. 실제로도 ‘아파트 거래량 급감’, ‘서울 부동산 꺾였다’는 내용의 뉴스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도 아파트 시장 전망이 어둡기만 한 것일까? 우선 거래량이 급감한 것은 사실이나, 거래량 감소가 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있지는 않다. 경제 논리에 의하면 거래량이 감소할 때 물건이 팔리지 않고 쌓이니 판매하는 사람들이 가격을 내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장소희 신한금융투자 WM솔루션부 책임연구원은 신한은행 ‘2022년 수도권 아파트시장 연간전망’ 유튜브 영상에서 “호가를 낮춰 거래하려는 매도인이 적어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지난해 다양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던 이유로 수급 불균형을 꼽을 수 있다. 수급 불균형은 올해도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며, 오히려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특히 서울의 경우 대부분 재개발·재건축 등의 정비 사업을 거쳐 아파트가 공급되므로, 조합원을 제외하면 실질적 신규 공급이 많지 않다. 결국 올해도 서울 아파트 공급 부족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누적된 공급 부족과 경기 회복으로 주택 가격이 지난해보다는 낮아지지만 상승세는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경제성장률, 금리 등 경제 변수와 주택수급지수를 고려한 전망 모형을 통해 2022년 주택 가격을 예측한 결과, 지난해보다는 낮아지지만 인천, 대구 등 일부 공급 과잉 지역과 ‘영끌’ 추격 매수로 인한 단기 급등 지역을 제외하고는 하락세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금리 인상, 지켜보되 걱정 말자
선거는 올해 부동산 시장을 전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대통령 선거에 지방선거까지 겹쳐 있는 올해는 정치 변수에 따른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동성이 큰 해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장소희 책임연구원은 “대선 후보마다 부동산 정책이 다르지만, 집권 1년 차인 올해에 정책이 미칠 영향은 적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방선거의 경우 정비 사업에 대한 인허가권자를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달라진다. 장 책임연구원은 “올해도 부동산 개발 공약들로 부동산 시장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승이 멈춘 서울 강북권 타 아파트와 달리 용산구(0.03%)와 같이 리모델링 호재가 있는 단지는 상승세를 보였다.
기준금리 인상은 부동산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소로 해석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인상 초기 단계인 올해는 부동산 매매 수요를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경제 주체들이 코로나19에 적응하면서 소비 회복세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역대 최고치를 갱신 중인 통화량과 높은 인플레이션율 또한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해석했다. 장 책임연구원은 “다만 여러 번에 걸쳐 지속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는 상황은 수요자 부담을 키우고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세력을 말한다. 86세대인 그들이 학생운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별난 학생들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경험을 녹여 그래픽 노블(만화책) ‘비밀 독서 동아리’를 펴낸 김현숙(58)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현숙 작가는 1964년생이고, 1983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어머니는 대학교를 굳이 가야 하냐는 입장이었고, 김 작가는 집에서 가까운 창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했다. 입학 첫날부터 김현숙 작가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학생운동이 펼쳐지는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김 작가는 겁 많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비밀 독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면서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더불어 당시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진압, 고문 등의 고초를 겪은 친구들의 모습을 옆에서 생생하게 봤다. 이 모든 이야기를 책 ‘비밀 독서 동아리’에 담았다.
김현숙 작가는 스스로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편은 아니라고 평했다. 김 작가는 그때 학생들의 외침이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며,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적극적으로, 더 당당하게 학생운동에 참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서 읽는 비밀 독서 동아리
‘비밀 독서 동아리’의 주인공 이름도 현숙이다. 김 작가는 현숙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실제 자신과 거의 흡사하다고 밝혔다. 책에서는 창원대학교가 ‘안전대학교’로 나온다. 당시 안전하지 않은 시대를 반영해 반어적인 의미로 ‘안전대학교’라고 했다.
1980년대의 대학교는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전두환은 물러나라”고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학생들과 경찰의 대치로 혼잡스러웠다. 그 속에서 현숙은 “나는 공부하러 대학교에 왔다”며 시위 동참을 원치 않았다. 김현숙 작가는 “당시 학교에서 ‘데모하면 안 되고 공부만 해라’라고 일종의 세뇌를 했다. 앞장서서 학생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낙인찍힌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괜히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것이 무서웠던 현숙은 ‘학생운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탈춤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러나 탈춤 동아리마저 과거 양반을 풍자하던 탈춤을 추며 현 정권을 꼬집었다. 현숙은 실체를 알고 도망가려고 하지만, 독서 동아리 가입을 제안받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현숙은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그 동아리는 ‘금서(禁書) 동아리’였다. 금서란 국가나 종교상의 최고 권력자에 의해 출판 또는 판매가 금지된 책을 말한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임꺽정’,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영혼의 죽음’ 등의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경찰에 잡혀갈 수 있었던 시대, 현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마음이 바뀌었다. 현숙은 동아리 친구들을 통해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이유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언론 탄압이 자행된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들이 왜 목숨 걸고 싸우는지도 깨달았다. 이에 각성한 현숙은 보다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며 친구들과 뜻을 함께했다.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이라고 하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을 펼쳤죠. 책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서 깨우치고 자기한테 저항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이 싫어서 책 자체를 못 읽게 한 거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북 클럽을 통해서 조금씩 눈을 떴어요. 나중에는 직접 책을 찾아서 보고, 더 나아가서 학생회 참여도 하고. 광주, 서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가보고 공부도 했죠.”
‘비밀 독서 동아리’에는 중앙정보부의 눈총 아래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외침을 포기하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온다. 김현숙 작가는 검열을 해야만 하는 대학 신문(학보), 이유도 없이 끌려가 고문당한 학우들, 장학금 때문에 밀고자가 된 학생의 모습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김현숙 작가 역시 정보부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다. 책에 나온 대로 정보부는 김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스테이크 가게로 전화를 했다. 김 작가는 실제로도 정보부의 전화를 친구의 전화인 척 받고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나는 기지를 발휘했다.
“현숙이는 화려한 말솜씨로 정보부 옥 형사를 당황케 하죠. 실제로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정보부를 만나기 전에 고압적이고 강압적으로 나를 몰아세울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복을 입고 와서 그런지 의외로 평범해 보였고 질문도 조곤조곤 하시더라고요. 정보를 하나라도 더 캐보려는 느낌은 받았죠. 그런데 그분도 어쨌거나 그게 직업이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을 텐데,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생각도 들더라고요. 양면성이 있는 거죠.”
촛불집회, 미국인 남편의 출판 제의
‘비밀 독서 동아리’는 학생운동을 함께한 친구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2016년 9월~2017년 5월)에서 다시 모여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라고.
김 작가는 “촛불집회 동창회 신을 넣은 이유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다. 1980년대에는 학생, 지식인 위주로 운동을 했지만, 그때는 모든 시민이 참여했으니까. 그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동창회는 허구지만 촛불집회는 ‘비밀 독서 동아리’와 연관성이 깊다. 촛불집회는 책이 세상 밖에 나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현숙 작가는 부산 서면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미국인 남편 라이언 씨는 한국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당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멘붕’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남편은 트럼프, 저는 박근혜. 그때 미국과 한국의 상황에 대해 서로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남편이 촛불집회를 보면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이 지도자로 아니다 싶으니까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촛불집회를 펼친 것이 놀랍고 대단하대요. 폭력적이지도 않고, 남녀노소 모두 목소리를 냈으니까요. 미국은 불평 불만은 많지만 정작 그렇게 못 해서 더 대단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김현숙 작가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한 이야기도 남편에게 하게 됐다. 라이언 씨는 아내의 과거를 매우 흥미 있게 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 자료를 찾아본 그는 자신의 아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는 사실에 존경심을 느낀 것 같다. 라이언 씨는 ‘대한민국 대단하다,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트위터에 아내의 이야기를 썼다. 이를 본 미국 출판사 아이언 서커스 코믹스에서 정식 출판 제의를 해왔다.
김현숙 작가는 학생운동은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얘기이고, 자신은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 번역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자 남편이 “같이 써보자”면서 힘을 줬다. 자신이 느낀 것처럼 미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나 보다.
이에 본격적인 책 작업이 진행됐다. 김현숙 작가는 오랜만에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정치인이 된 이도 있다. 책에 ‘유니’로 등장하는 김경영 경남도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김 작가는 “졸업하고 공장에 위장 취업해서 노조 활동을 오래 했고, 여성운동도 하다가 현재는 의회에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는 여러 캐릭터로 파생돼 녹아 있다. 동창들은 자신이 모델이 된 것에 대해 뿌듯해했다고.
책의 스토리는 아내가 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라이언 씨가 썼다. 김현숙 작가는 자문과 검토를 맡고 이야기를 보충했다. 그림은 라이언 씨가 직접 그릴 수 있었지만 한국적 색채를 살리기 위해 고형주 만화가가 맡았다. 이색적인 것은 영어 책이 먼저 쓰였고, 그 다음에 한국판이 나왔다. 한국판이 번역본이 된 셈이다.
책은 2020년 5월 18일 세상 밖에 나왔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판됐다.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아마존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Bestseller on Amazon - YA History Comics)를 차지했고, 청소년도서관협회 올해의 최우수 그래픽 노블(YALSA Great Graphic Novels 2021)로 뽑혔다. 이밖에 미국 학교 도서관 저널, 스미스소니언, 북리스트, 미국 잡지 Publishers Weekly 등에서 최우수 리뷰를 받았다.
“트럼프가 인종차별 발언으로 대통령이 됐잖아요. 미국은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국민들은 후퇴해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아직도 책을 검수하고, 성 평등, 인종차별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책이 호응을 얻은 것은 영감을 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특히 청소년 권장도서로 많이 읽힌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저항을 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가는지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가만히 있으면 변화되는 것은 없잖아요.”
김현숙 작가와 라이언 씨는 다음 책으로 ‘노 룰스 투나잇’(No Rules Tonight)을 준비하고 있다. 1980년대 통금 제도를 다룰 예정이다. 책의 ‘투나잇’은 크리스마스로,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밀 독서 동아리’의 캐릭터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에서 출판되며, 2024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나올 예정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심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을, 2010년대에는 촛불집회를. 86세대는 분명 민주주의의 중심에 있다. 그들은 왜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것일까. 김현숙 작가는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1955 ~ 1963년)는 전쟁도 겪었고 많이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터전을 잡고 발전해야 하니 독재가 용인됐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 작가는 자신과 같은 86세대는 민주주의를 이룬 세대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권위주의적인 사람,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같은 소용돌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86세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들이 자유를 외치고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 투쟁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저도 물론이겠지만 그들에게는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있더라고요. 술도 마시라면 마셨고, 군사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체화된 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린 사람들이 보기엔 ‘학생운동 했으면 다야?’, ‘리더면 다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너무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고칠 점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변화는 젊은 세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김현숙 작가는 “젊은 세대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도 투쟁을 할 때 윗세대가 목소리를 잘 들어주기를 바랐다. 젊은 세대의 마음을 듣고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내일(5일)부터 식당과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12종의 영업시간이 오후 11시까지로 한 시간 더 연장된다.
전해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2차장(행정안전부 장관)은 4일 중대본 모두발언을 통해 “고심 끝에 현재 밤 10시까지 허용되고 있는 식당, 카페 등 12종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내일(5일)부터 1시간 연장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영업시간 연장은 오는 20일까지 적용된다. 사적모임 6명 제한은 현행대로 유지된다.
이에 따라 식당·카페, 노래(코인)연습장, 목욕장업, 실내체육시설, PC방, 멀티방·오락실, 파티룸, 카지노, 마사지업소·안마소, 유흥시설, 평생직업교육학원, 영화관·공연장은 내일부터 밤 11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전 차장은 “그간 추진된 손실보상 확대, 거리두기 일부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계속되어온 자영업·소상공인분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위험군 관리를 중심으로 방역체계가 개편됨에 따라 방역패스 중단, 동거인 자가격리 의무 면제 등의 다양한 조치들이 시행 중인 만큼 거리두기도 이와 연계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 지자체, 일상회복 지원위원회 그리고 다양한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을 면밀히 검토해왔다”며 “앞으로도 위중증의 안정적 관리를 비롯한 의료 여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등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중대본은 4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가 26만6853명 발생해 누적 369만148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186명으로 전날에 이어 다시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위중증 환자도 31명 늘어나 797명이 집계됐다.
전 차장은 “1월 3째주부터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모두 위험도 ‘높음’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번 주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약 50% 수준까지 증가했지만, 누적 치명률, 중증화율 등 핵심 방역지표들은 현재까지 의료대응 역량 내에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늘부터 내일까지 이어지는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와 관련해서는 “격리자 등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내일 오후 5시부터 자가 격리자의 선거 목적 외출을 허용했다”면서 “오후 6시 이전에 투표소에 도착한 경우 일반 투표소와 분리된 전용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에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발열체크와 거리두기 등 투표소 내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는 오는 5일과 9일 오후 5시부터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위해 일시적으로 외출할 수 있게 됐다. 외출 안내 문자나 확진·격리통지 문자 등을 보여주면 별도로 마련된 장소에서 투표할 수 있다. 다만 투표장 이외의 장소에 가서는 안 되며, 투표를 마치면 반드시 귀가해야 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로부터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의 제20대 대통령선거 참여를 위한 일시적 외출 허용 방안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16일 공직선거법과 감염병예방법및관리에관한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감염병 환자 등의 외출 허용 근거와 절차가 마련되면서 감염병 환자도 선거를 위한 외출이 가능해졌다.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유권자는 사전투표 둘째날인 5일과 선거 당일인 9일 오후 5시부터 외출이 가능하다. 5일은 오후 6시까지, 9일은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투표소에 도착해야만 투표가 가능하다.
투표장에 도착하면 신분증과 함께 외출안내 문자 또는 확진·격리 통지 문자 등을 투표 사무원에게 제시한 뒤, 안내에 따라 별도로 마련된 임시기표소에서 투표한다. 담당 보건소장은 이들 유권자에게 외출 시 주의사항을 포함한 외출 안내 문자를 사전투표일 및 선거일 전날 낮 12시, 당일 낮 12시와 오후 4시에 발송할 예정이다.
투표를 마친 뒤에는 반드시 귀가해야 한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확진자들에 대한 외출을 허용한 것은 철저한 국민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서 “(방역)수칙들을 국민 여러분들께서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