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hibition
◇라이프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일정 5월 11일~8월 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상징인 ‘라이프’ 사진전이 4년 만에 돌아온다. 1936년 창간된 ‘라이프’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 곳곳에 뛰어들었고, 찰나의 순간을 역사로 만들어내며 세상을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바꾼 전설적인 사진 잡지다. 전성기 시절 총 1350만 부가량 발행하고 정기 구독자 수가 800만 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전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피, 땀, 눈물을 담은 이번 전시는 2013년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과 2017년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기 위하여’에 이은 마지막 시리즈로 3부작의 서사를 마침내 완성한다. 지난 두 번의 전시가 격동의 시대와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면, 이번 전시는 우리 삶에 보다 가까운 일상을 포착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선동하거나 미래를 자극하기보다, 혼란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맞설 여유와 원동력을 선사한다. 1000만 장의 방대한 사진 자료 가운데 엄선한 100장의 작품과 더불어 ‘라이프’와 함께한 사진가 8명을 조명해, 프레임 저 너머 그들이 추구한 가치를 이야기한다.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일정 5월 1일~8월 29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파리국립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 11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70년에 걸친 피카소의 예술 인생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미술사에 혁명을 일으킨 입체주의 작품부터 신고전주의 화풍의 회화, 조각, 도자기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광범위하게 조명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을 국내 최초로 감상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전쟁의 잔혹성을 예술로써 고발한 이 작품은 ‘게르니카’, ‘시체구덩이’와 함께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이라 불린다. 입체주의 시대를 함께한 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가 가장 사랑한 여인 마리 테레즈,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자클린 로크 등 그의 뮤즈를 그린 그림도 전시의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총 7섹션으로 나눈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피카소의 전 생애를 탐험하는 듯한 신비롭고 생생한 시간을 선사한다.
● Book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저·북로그컴퍼니)
미국에 ‘모지스 할머니’, 영국에 ‘로즈 와일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 할머니가 있다. 83세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어느덧 12년 차 화가로 활동 중인 94세 김두엽 할머니다. 그녀의 소소하고 따뜻한 인생 이야기가 최근 110여 점의 작품과 함께 한 권의 그림 에세이로 탄생했다. 늦깎이 화가를 결심한 사연부터 아들, 며느리, 강아지와 함께하는 일상, 그리고 지난 90년 인생에 대한 반추가 알차게 담겨 있다.
김두엽 할머니의 인생은 그야말로 굴곡진 언덕길 같다.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에 가족과 귀국하고, 우리말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해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으며, 80세가 넘도록 나물 장사, 세탁소 운영 등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며 고된 나날을 보냈다.
힘들었던 삶이 원망스러울 법도 하건만,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지난한 인생과 달리 화사하고 포근하다. 로즈 와일리의 화풍처럼 때로는 유쾌하고 발랄하면서도, 모지스 할머니처럼 일상 속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아픈 날마저 고운 색으로 추억하고 아름다운 것만 눈에 담고자 했던 그녀만의 강인한 의지와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책은 83세에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딘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8세 일본에서 만난 첫사랑과 눈물겨운 시집살이, 택배 일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리는 오늘날의 일상까지 그녀의 삶 면면을 모두 담아낸다. 그 한 편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훑고 나면, 영화 같은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힘들어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할머니의 염원이 아주 오래, 가능하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고독사를 피하는 법 (리처드 로퍼 저·민음사)
장례업에 종사하는 앤드루가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를 고독사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 특유의 유쾌한 문체로 ‘관계 맺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살집팔집 (고종완 저·다산북스)
시니어가 만나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른 저자가 아파트 매매의 ‘A to Z’를 말한다. 핵심 이론부터 전국 아파트 단지의 가치 분석, 슈퍼 아파트 목록까지, 뜨는 부동산 이슈를 총망라한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저·페이퍼로드)
건축 평론가이자 시인인 저자의 서울 예찬기. 문학과 시, 역사 속에 그려진 서울로 그때 그 시절을 반추하는가 하면, 저자만의 시선으로 동네 곳곳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한다.
● Stage
◇레드북
일정 6월 4일~8월 22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박소영 출연 차지연, 아이비, 김세정, 송원근, 서경수, 김인성 등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는 독특한 여인이 있다. 상상은 자유라지만, 문제는 이 여인이 신사의 나라 영국, 가장 보수적인 시기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도 개의치 않고 뛰어난 상상력과 글재주로 외설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긴 ‘레드북’을 출간한 그녀는 당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신성 모독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뮤지컬 ‘레드북’의 내용이다. ‘레드북’은 미래를 꿈꾸는 여성 안나와 고지식한 변호사 브라운이 잡지 ‘레드북’ 출간 후 벌어지는 사회적 파장과 그로 인한 편견에 맞서나가는 이야기다.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시대, 갖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껏 욕망하고 표현하는 안나의 진취적인 모습이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주인공 안나 역으로 차지연, 아이비, 뉴 페이스 김세정까지 합류해 3인 3색의 매력으로 무대를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완벽한 타인
일정 5월 18일~8월 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대극장
연출 민준호 출연 유연, 양경원, 유지연, 김재범, 박소진, 이시언 등
2018년 국내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7명의 주인공이 저녁 식사 도중 서로의 휴대전화 알림을 모두 공개하는 게임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의 치밀한 심리전과 게임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비밀,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무대 위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극대화되며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1976 할란카운티
일정 5월 28일~7월 4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유병은 출연 오종혁, 이홍기, 산들, 김륜호, 안세하 등
1976년 미국 켄터키주 광산회사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함성과 투쟁을 그린다. 흑인 라일리의 자유를 위해 함께 뉴욕으로 떠나는 다니엘의 여정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광부들의 희망의 노래가 감동을 전한다. 배우와 무술감독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유병은 연출가와 젊은 창작진의 열정적인 협업으로 창작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인 스케일을 선보인다.
※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왕년 전성기에 누렸던 최고의 영웅담이나 에피소드. 정달호 前 대사의 외교관 그때의 시간을 되돌려본 그 시절, 우리 때는 이것까지도 해봤어. 나도 그랬어, 그랬지!! 공감을 불러일으킬 추억 속 이야기를 꺼내보는 마당입니다.
해외여행이 통제됐을 때는 여권을 받아 해외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자유로이 출국하는 외교관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다양한 나라를 상대하면서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외교관의 특권이자 긍지다. 외교관은 빛나는 일도 하지만 궂은일도 많이 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그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대학에서 정치외교 분야를 전공한 것이 직업의 특성과 맞았고, 여기저기 해외를 다니며 다방면의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외교관이 되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외교관의 기본 무기이기도 하다. 해외 근무지로는 잘할 수 있는 언어 사용국을 선호하지만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노르웨이, 이라크로 시작해 세 번째 임지는 미국 뉴욕이었다. 뉴욕에서 ‘뉴욕타임스’를 매일 읽고 현지 방송을 듣고 현지인들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영어에는 자신이 붙었다.
그다음에는 오래 마음속에 그리던 파리로 발령을 받았는데 프랑스어를 꾸준히 공부한 덕도 있지만 시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양 외교관들은 일생의 꿈으로 여길 만큼 파리 근무를 희망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에 비해 출세 길이 멀다고 프랑스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유럽 외교의 중요성에 비해 아쉬운 일이다.
첫 임지인 노르웨이에서 어느 날 한국 여성의 울먹이는 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멋모르고 국제결혼을 해서 왔는데 몇 달 되지 않아 남편에게 구타와 구박을 당해 공포에 떨고 있으니 무조건 노르웨이를 떠나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사정이 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경황도 없이 오슬로 밖 멀리 은신처에서 피해자를 데려와 하루이틀 보호하다가 귀국하도록 도와준 일이 있다. 쉽고 편한 일은 아니었다.
이라크에서는 당시 이란과 전쟁 중인 터라 핵심 전투 지역인 바스라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우리 근로자들의 보호가 초미의 과제였다. 이라크 쪽 전세가 불리해져 근로자들이 마지막 철수할 때까지 이들과 함께 지냈는데, 상대측의 포탄이 터지는 굉음으로 방 벽에 걸린 그림이 떨어지고 물건들이 쓰러지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해외 어디서 근무할 때가 제일 좋았냐고 누가 물으면 서슴없이 파리라고 대답한다. 프랑스는 참으로 복 받은 나라다. 3면이 바다(대서양, 지중해, 북해)이면서 평야가 많고 동쪽에 알프스라는 웅장한 산이 있어 지리적 이점이 뛰어나다. 그런 만큼 먹을거리도 풍부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켜왔다. 파리 바깥 프랑스 어디를 가더라도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유명한 포도주 생산지를 방문해 양조 공정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시음도 해본 추억이 생생하다.
프랑스는 또한 파업이 빈번한 나라다. 한번은 한말숙 소설가가 이끄는 우리 시인·작가 그룹이 파리에 와서 프랑스 문인들과 문학 행사를 벌이는데, 쌀쌀한 겨울인 그날 대중교통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몇 킬로미터인지도 모를 그 먼 행사장까지 마라톤을 해서 간 적이 있다. 도로는 차와 사람들로 뒤범벅돼 있었다. 선진국의 역설을 경험한 셈이다. 아무튼 추운 겨울날 땀 흘리며 파리의 밤거리를 뛰었던 것이 하나의 추억이자 보람으로 남아 있다.
그다음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 근무를 마치고 파나마 대사로 나가면서 생각지도 않던 스페인어를 배워 그 문화권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적지 않은 성과다. 파나마에 부임한 지 겨우 두 달 만에 우리 예술인 방문단이 왔는데 국립오페라극장 로비에서 이들을 위한 리셉션이 열렸다. 그때 양국 인사들 앞에서 대사가 연설을 했는데 일천하지만 스페인어로 했다. 물론 원고를 보면서 했지만 파나마 외무차관으로부터 연설이 아주 좋았다는 평가를 들었다.
파나마에서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대규모 갈라 디너가 열렸는데 대사들은 장관급 텐트에, 국가원수들은 별도의 텐트에서 디너를 하기로 돼 있었다. 원수급 텐트에 낯익은 모습의 신사가 앉아 있기에 다가가서 보니 영화배우 숀 코너리였다. 그는 파나마 대통령의 친구 자격으로 왔다는데 디너 자리에서 원수급 대우를 받는 것을 모두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인간적 매력과 품격이 몸에 밴 노배우가 존경스러웠다. 이집트 대사 시절에는 한 유력 가문의 혼사에서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오마 샤리프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많이 쇠락한 모습임에도 명배우의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외교관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일 하나는 우리 원양어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최초로 나포되었을 때 일이다. 선원들의 석방을 위해 인접국 케냐에 두 번이나 가서 현지 교섭을 지휘한 끝에 서너 달 만에 이들의 석방을 이루어냈다. 석방하는 순간까지 해적들이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해서 참 고생을 많이 한 기억이 난다. 몸바사 해안의 비밀스런 장소에서 몰골이 초췌한 우리 선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포옹하며 맞이할 때 그들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마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아침에 아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동성애자라는 이유에서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요즘이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담론이 계속되는 오늘날, 성소수자 문제에 뿌리까지 접근하는 연극 ‘빈센트 리버’가 막을 올린다. 드라마, 연극 등 다방면에서 관록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서이숙은 아들을 잃고 절망하는 ‘아니타’ 역을 맡아 작품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의 일을 작품으로 말하고, 연기로 표현하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작품을 선택할 때 두 가지를 우선순위로 삼아요. 창작극과 국내에서 초연되는 번역극은 웬만해선 무조건 하자는 주의죠. 창작극은 뿌리부터 만들어내는 거니까 사실 완성도 면에서 몇 백 년 동안 이어져온 번역극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연극 선배로서 의무감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번역극은 창작의 여지가 있는 초연작을 선호해요. 누군가 한 번 했던 작품은 재미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국내 초연작인 ‘빈센트 리버’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어요.
Q. 작품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저는 작품에서 이야기를 제일 먼저 봐요. 지금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어떤 메시지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빈센트 리버’는 호모포비아 이야기예요.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죠. 제가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변희수 전 하사가 세상을 떠났단 소식을 접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더 이상 기피하지 말고, 한 번쯤 툭 던져놓고 말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Q. ‘아니타’는 어떤 인물인가?
아니타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몰라요. 죽고 나서야 알게 되죠. 그래서 아이를 잃은 충격만큼 ‘왜 내가 이 아이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요. 아들과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였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우리 사회 부모들도 그래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갈등이 생기고 골이 깊어지죠.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어려운 점은 없나?
이 작품뿐만 아니라 연극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한데요. 저는 연기할 때 저 혼자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이 감정을 객관화시켜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배우가 감정에 과하게 빠져버리면 극한의 감정 그 자체만 남아 있지, 이야기는 전달이 안 되거든요. 그러려면 감정을 잘 나눠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워요. 강약 조절이랄까요? 그래서 작품을 많이 보고 정교하게 분석하려고 하죠.
Q. 작품을 준비하며 인상 깊었던 점은?
작품 연습하면서 저희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젊은 친구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굉장히 많대요. ‘동성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열어놓고 있다’는 대답을 꽤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단순히 섹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방식이 통한다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Q.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바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구나’ 생각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고 봐요. 거리감에 따라 느끼는 차이가 크거든요.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누군가 맞고 있는데 100m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도와줄 용기가 선뜻 나지 않지만, 눈앞에서 목격하면 자기도 모르게 나서게 되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그런 것처럼 성소수자 문제도 의식해서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면 개인화된 사회라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빈센트 리버’가 그 관심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극 '빈센트 리버'
일정 4월 27일~7월 11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신유청
출연 서이숙, 전국향, 우미화, 이주승, 강승호 등
고전의 매력은 같은 작품을 연극, 뮤지컬 등 여러 방식으로 접하며 다양한 갈래로 해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상상하며 읽어나가던 고전 소설의 주인공들을 생동감 넘치는 화면으로 만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영화로 재탄생한 세기의 고전 명작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제인 에어 (Jane Eyre, 2011)
고전문학을 이야기할 때 문학계의 거장 샬롯 브론테가 쓴 ‘제인 에어’를 빼놓을 수 없다. 무성 영화 시절부터 현재까지 19세기에 쓰인 소설 중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품으로, 무려 20여 번이 넘게 재해석되었다. 조안 폰테인, 샬롯 갱스부르 등 당대 유명 여배우들이 ‘제인 에어’를 거쳐 갔으며, 그중에서도 2011년 개봉한 캐리 후쿠나 감독의 작품이 비평가들 사이 원작을 가장 잘 각색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내용은 언뜻 보면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와 비슷하다. 19세기 귀족 사회에서 고아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란 제인 에어가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부임하고, 저택의 주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다만 제인 에어는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가 아닌 시대를 앞서가는 신여성의 모습에 가깝다. 불우한 환경을 탓하는 대신 자신의 힘으로 직업을 구해 자아실현을 하며, 사랑하는 남자에게 달려가 마음을 고백한다. 영화는 이 같은 제인 에어의 주체적인 삶을 한 폭의 유화처럼 서정적이고 잔잔하게 그려낸다. 몽환적인 영상미와 빅토리아 시대를 나타내는 소품, 의상 등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2.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 2012)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안나 카레니나’도 지금껏 여러 차례 영화화되며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았다. 1935년 그레타 가르보, 1948년 비비안 리, 1997년 소피 마르소 등의 버전이 대표적이다.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중년의 정치가 남편과 결혼한 안나 카레니나가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눈이 맞아 금단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21세기에 재탄생한 안나 카레니나도 원작과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보다 과감한 연출로 차별화를 더했다. 오프닝 장면부터 한 편의 공연이 시작되는 것처럼 빨간 커튼을 들어 올린 뒤 그 안에서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 뒤에도 세트장을 활용해 장면을 부드럽게 전환한다. 그 덕에 보는 이들은 연극의 관객이 된 듯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집중하게 된다. 작품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저 그런 치정극으로 느낄 수 있지만, 극히 보수적이었던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전통과 규범 대신 사랑과 욕망을 택한 안나 카레니나의 삶이 그 자체로 놀랍게 다가온다. 조 라이트 감독의 말 그대로 ‘극적인’ 연출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매혹적인 연기가 몰입도를 더한다.
3. 오만과 편견 (Pride & Prejudice, 2005)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읽은 이들은 다아시가 고전문학 사상 손꼽힐 정도로 매력적인 주인공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1995년과 2005년, 작품이 각각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후부터는 어떤 다아시가 더욱 매력적인 지에 대해 팽팽한 설전이 벌어진다. BBC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콜린 퍼스와 영화에서 다아시를 맡은 매튜 맥퍼딘 모두 활자로 묘사된 다아시의 오만함을 완벽하게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오만과 편견은 18세기 영국 사교 파티에서 만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첫눈에 반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로 다가서지 못하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는 내용이다. 재해석된 작품들은 모두 원작을 기반으로 하되 드라마는 인물들의 감정을 긴 호흡으로, 영화는 압축적이지만 강렬하게 그려낸다. 예컨대 영화에서는 남녀 간 사랑이 시작될 때의 감정을 무도회 장면으로 간결하게 담아내면서도, 성적인 긴장감은 증폭시킨다. 콜린 퍼스와 매튜 맥퍼딘 중 어떤 이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누구든 잠들어 있던 연애 세포를 깨워줄 것임은 분명하다. 콜린 퍼스 버전의 ‘오만과 편견’은 왓차에서 감상할 수 있다.
● Exhibition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일정 7월 11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 만화, 음악 등 대중문화의 순간을 재탄생시킨 맥스 달튼의 개인전이 국내 최초로 열린다. 맥스 달튼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주로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영화를 소재로 해 보는 이들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트북 일러스트를 작업했으며, ‘스타워즈’, ‘메트로폴리스’ 등 SF영화를 정교한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이번 전시는 맥스 달튼의 영화 일러스트를 중심으로 포스터, 드로잉, 수채화 등 다양한 작품 220여 점을 살펴본다.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한국 영화 ‘기생충’과 판타지 대작 ‘반지의 제왕’ 포스터 및 미공개 연작 8점, 초안 드로잉 등을 최초로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비틀스, 밥 딜런 등 음악 거장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린 LP 표지와 동화책 일러스트 등도 전시해 그의 작품 세계를 다방면으로 조명한다. 특유의 물 빠진 듯한 빈티지 색감과 유머러스한 디테일로 관람객을 매료하는 그의 작품은 영화 속 한 장면을 유영하는 듯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일정 7월 11일까지 장소 일민미술관
샤머니즘과 우주론적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탐구하는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전이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운명과 상담소, 두 공간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작가 17명의 작품으로 ‘운명’의 의미를 고찰하고, ‘상담’을 통해 내면을 깨닫는 여정을 마련한다. 1전시실 ‘운명’에서는 베토벤이 악상을 떠올린 숲속을 재현해 운명이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공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빛과 어둠, 사계절, 음양오행 등 운명적 의미를 나타내는 신비로운 상징물이 내부를 가득 채운다. 2전시실 ‘상담소’는 사주포차, 본능미용실 등 작가들이 만든 6개의 이색 상담소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사주, 타로, 연금술 등 운명론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운을 시험하고,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미신이라 여겨지던 우주관을 예술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깊은 내면을 성찰할 수 있게 한다. 이외에도 모바일 앱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게임, 살풀이 굿판, 전자음악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보다 입체적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다.
● Book
◇그러라 그래 (양희은 저·김영사)
데뷔 51년 차에도 한 그루 느티나무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세월만큼 깊어진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양희은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지나온 삶과 노래,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마치 오랜 친구의 사연을 낭독하듯 따스하고 정감 있게 담았다.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어떤 근심도 툭 털어버리는 양희은의 말처럼, 이 책에는 쉽지 않은 인생이라도 정성껏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애틋한 응원이 들어 있다. 그런 그녀만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늘 여유만만하고 단단해 보이는 그녀도 순간마다 흔들렸던 시절이 있었다.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무대에 섰으나 자신을 향한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줄 사람이 없어 방어기제로 똘똘 뭉쳐 있던 이십대, 난소암으로 석 달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서른 살까지, “모진 바람을 맞으며 그냥 서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세월이 많이 지나간” 인생이었다고 담담히 돌아본다.
“무릎이 ‘나 여기 있다’ 하고 위치를 가르쳐주고” 늘 서서 부르던 노래를 앉아서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일부였던 노래를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것을 예감한다. 몸은 자꾸 느려지고, 노년을 준비하는 동갑내기 친구들의 말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또 치매 어머니를 모시며 ‘엄마가 떠나시면 어쩌나’ 마음 졸이다가도 마음과 달리 틱틱 쏘아대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후회 없는 헤어짐을 준비한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다.
몇 십 년을 살아도 어렵고 지난한 것이 인생이지만, 그녀는 그동안의 실패와 어려움에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덕분에 “마음의 자리가 넓어졌다”고도 덧붙인다. 인생의 시행착오를 ‘탓’이 아닌 ‘덕’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여유와 넉넉함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파도가 밀려와도 “그러라 그래” 하고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백년 허리 1 : 진단편 (정선근 저·언탱글링)
스테디셀러 ‘백년 허리’의 개정증보판이다. 초판에서 고쳐야 할 부분을 대거 보충했으며, 허리 통증은 진화의 축복이라는 요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공간의 미래 (유현준 저·을유문화사)
건축가인 저자가 코로나19로 가속화된 각종 공간의 변화를 진단한다. 단순 공간 이야기뿐 아니라 주거 문제부터 국토 균형 발전까지 사회를 위한 거시적인 조망이 담겨 있다.
세계사의 탄생 (데이비드 크리스천 엮·소와당)
케임브리지 세계사 시리즈 한국어판으로, 복잡다단한 세계사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200여 명의 석학이 저술에 참여해 주제별 다양한 시선으로 역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 Stage
◇나빌레라
일정 5월 14일~5월 30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조형균, 최인형, 강상준, 강인수 등
최근 tvN 드라마로 방영되며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나빌레라’가 창작가무극으로 관객을 찾는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품은 70대 ‘덕출’과 현실의 벽 앞에서 방황하는 20대 발레 유망주 ‘채록’이 발레를 매개로 함께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점점 희미해지는 덕출의 기억과 위태로운 채록의 삶을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발레단의 상황과 연결해 가슴 찡하게 풀어낸다. 창작가무극으로 만나는 ‘나빌레라’는 웹툰 한 컷의 감동과 드라마의 세밀한 감정선을 공연만의 매력인 현장성으로 살려낸다. 특히 독보적인 미장센이 돋보이는 이지나 연출가의 합류로 초연보다 안무 비중이 늘어났으며, 힙합, 재즈, 모던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활용돼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웹툰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무대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예정이다.
◇지붕위의 바이올린
일정 4월 28일~5월 1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정태영
출연 박성훈, 권명현, KoN, 이혜란, 정은영, 서유진 등
1905년 러시아 유대인 마을, 중매결혼을 중시하는 아버지 ‘테비예’와 주체적으로 사랑을 찾아 나서는 다섯 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랜 전통 앞에서 구세대와 신세대가 갈등하지만, 마침내 서로를 포용하는 가족의 모습이 감동을 전한다. 결혼을 허락받은 딸의 기쁨과 그런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로 극대화된다.
◇포미니츠
일정 5월 23일까지 장소 정동극장 연출 박소영
출연 김선경, 김선영, 김환희, 김수하 등
2006년 개봉한 실화 바탕의 독일 영화를 뮤지컬만의 매력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살인수로 복역 중인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 ‘제니’와 60년 동안 여성 재소자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크뤼거’가 피아노를 매개로 만나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의 제목처럼 제니의 처절한 삶과 아픔을 담은 4분간의 피아노 연주가 강한 여운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길어지는 코로나19로 손주와 만남조차 어려운 요즘이다. 기술이 발달해 영상 통화, 메신저 등 연락할 방법은 많아졌지만, 얼굴을 보고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을 작은 휴대폰 화면에 담기에는 부족하다. 길을 거닐다 손주 또래의 아이가 눈에 띄면 절로 생각이 나기도 한다. 집안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적적한 시니어를 위해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꼬마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마틸다 (Matilda, 199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처럼 자식은 부모의 행실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녀만은 예외인 듯하다. ‘마틸다’의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총명한 마틸다(마라 윌슨)는 어려서부터 혼자 핫케이크를 만들고,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씩씩한 소녀다. 반면 마틸다의 아버지는 사기꾼에 가까운 중고차 매매업자로 돈밖에 모르고, 어머니는 게임과 사치에 빠져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러던 어느 날 TV나 보라며 책을 빼앗는 아버지에 화가 난 마틸다는 저도 모르게 눈빛으로 TV를 망가뜨리고, 자신도 몰랐던 초능력을 발견한다. 이후 학교에 들어간 마틸다는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자 자신의 초능력으로 못된 어른을 혼내주기 시작한다. 로얄드 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로얄드 달 특유의 위트와 풍자로 무책임하고 부조리한 어른의 모습을 꼬집는다. 권선징악의 전개를 성실히 따라 극이 진행될수록 사이다를 마신 듯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마틸다의 똘똘한 표정과 야무진 말투가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2. 애니 (Annie, 1982)
“사랑 대신 구박을 받아. 키스 대신 매를 맞아.” 구슬픈 가사와는 달리 씩씩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는 아이들. 이내 분주한 몸짓으로 집안일을 거든다. 그 중심에 애니(아이린 퀸)가 있다. 뮤지컬 영화 ‘애니’는 1933년 공황기, 미국 뉴욕의 아동 보호소에 사는 애니가 친부모를 찾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나온 가사처럼 아이들의 보호소 생활은 녹록지 않다. 보호소 원장이 시키면 한밤중에도 일어나 청소를 해야 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멱살을 잡히기도 한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애니는 친부모가 살아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품고 지낸다. 그러던 중 억만장자 워벅스(알버트 피니)가 보호소를 찾아 애니를 양녀로 삼으려 하는데, 친부모가 그리운 애니가 이를 거절하자 얼떨결에 ‘친부모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애니’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애니의 명랑한 태도와 사랑스러움을 극찬한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하는 영화지만, 손주가 더욱 보고 싶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3. 보스 베이비 (The Boss Baby, 2017)
탱탱한 볼살에 솜털 같은 머리카락. 영락없는 아기의 모습인데, 어딘가 이질적이다. 옷은 쫙 빼입은 양복 차림에 표정은 인생 2회 차인 듯 매사가 따분해 보이고, 목소리는 중년 남성처럼 중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스 베이비’(알렉 볼드윈)는 ‘베이비’가 아니다. 아기인 척하는 기업의 ‘보스’다. 영화 ‘보스 베이비’는 7살 팀의 집에 베이비 주식회사의 CEO가 경쟁업체인 퍼피 주식회사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아기로 위장을 하고 들어오는 이야기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아기 행세를 하다 팀 앞에서만 본래의 성격으로 돌변하는 보스 베이비의 발칙한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는 어린 시절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형제간의 다툼과 화해, 성공에 대한 열망 등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을 기발하게 표현해 연령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 본의 아니게 한 팀이 되어 투덕거리면서도 우애를 쌓아나가는 두 주인공의 귀여운 동맹이 감동을 자아낸다. 보스 베이비의 귀여운 매력에 홀딱 빠졌다면 넷플릭스 독점 만화인 ‘보스 베이비: 돌아온 보스’를 이어 봐도 좋다.
박정자와 윤석화, 두 사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배우다. 두 여배우가 하나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 뭉쳤다. 박정자가 주연을 맡고 윤석화가 연출을 맡는 ‘해롤드와 모드’가 그것이다. 선후배 사이이자 연극계를 대표하는 고참으로서 팬데믹 코로나에 도전하듯 무대에 올리는 연극이 인생의 의미를 숙고하며 풀어내는 ‘해롤드와 모드’라서 더 의미심장하다. 삶의 지혜를 말하는 ‘모드’ 역을 맡은 배우와 그 모드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연출이라는 교차적 입장에 서서 서로 배려하며 내어주는 두 사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삶과 연극을 들여다봤다.
삶을 연극과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연극 속 인물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1962년에 연극 ‘페드라’로 데뷔해 팔순인 2021년에도 여전한 현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배우 박정자의 얘기다. 5월 1일부터 무대에 올라가는 ‘해롤드와 모드’에서 맡은 모드는 그녀와 나이가 같은 팔순이다. 그녀가 모드 역을 맡은 건 이번이 일곱 번째. 드디어 현실의 인물이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의 나이를 따라잡은 것이다. 그녀는 이번이 자신에게 마지막 모드 역이 될 거라고 이미 밝혔다.
“이제 좀 내려놓고 싶어서, 가벼워지고 싶어서요. 뱀은 때가 되면 허물을 벗기도 하고 애벌레도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것처럼 그런 기분이에요. 이 허물을 내가 옳게 벗을 수 있을까, 그런 염려가 있긴 하죠.”
박정자, 80세의 모드가 되다
‘해롤드와 모드’는 규범을 거부하며 자살 시도를 벌이는 게 유일한 취미인 부잣집 아들 해롤드가 장례식장에서 만난 자유분방하고 귀여운 80세 할머니 모드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깨닫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오랜 시간 무대에 오른 검증된 작품이고 박정자 개인으로서도 큰 애착을 느끼는 만큼, 그녀가 생각하는 이 작품이 말하고 싶어 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결국은 소통을 말하고자 하는 거죠. 부모와 친구, 사회, 국가, 세계… 이미 우리는 소통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소통이란 게 좋은 의미여야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 인물과 작품을 통한 선한 소통으로 사람들이 조금 더 성숙해지길 바라는 거죠.”
그녀가 보는 모드는 무공해 그 자체인 인물이다. 소유하지 않지만 모험적이라 매일 새로운 걸 해보자는 마인드다. 그렇다고 현자인 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생을 먼저 산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이 연극을 보고 모드를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사회가 더 아름다워질 거예요.”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다
박정자는 모드가 ‘나이를 먹어도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좋다’고도 했다. 그런 모드의 모습은 그녀 자신의 삶의 철학과도 일치하는 듯 보였다.
“차를 버린 지 3년 됐어요.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정 가기 어려운 덴 카카오택시를 타고 가고. 거기에 굉장한 기쁨이 있어요. 바로 내가 소유했던 걸 내려놓는 것이죠.”
그녀는 그러한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정화’라고 표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정에 대한, 사회에 대한 정화다.
“자동차는 내가 늘 혼자 타고 다니는데 공해 문제, 기름 문제 때문에 나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 나 애국자야.’ 그런 생각도 해요.(웃음)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죠. 작은 것부터 출발하면 삶이 정화될 수 있어요.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정화이기도 하지만 그 영향을 주변에 줄 수도 있죠.”
관객을 만나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주변 생활을 자신의 법칙으로 정화하고 있는 박정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저 ‘연극배우 박정자’로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간결함으로 이어졌다. 간결함은 어느 정도는 의도적인 잊어버림과도 같다.
“너무 오래 갖고 있으면 병이 돼요. 연연해하면 발목 잡히는 거니까. 늘 아침이면 해가 떠오르는데, 마음도 새로워야 되겠죠. 그래서 되도록 그런 걸 없애려고 해요.”
새로운 해와 새로운 마음으로 가다듬지만, 코로나19는 아직 암중모색 중인 상태다. 그래서 그녀는 당장은 행복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관객을 만나면 행복해질 거예요. 작년에는 그래도 ‘노래처럼 말해줘’라는 배우의 모노드라마를 했어요. 작년 2월 코로나가 막 터질 때였죠. 나는 그 작품으로 숙제를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 좋았어요. 많은 관객들이 울기도 하고, ‘저 배우처럼 나이 먹어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해요. 내가 참 좋은 일을 했구나 싶죠. ‘해롤드와 모드’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이번 ‘해롤드와 모드’가 특별한 것은 연출을 후배이자 그녀만큼이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 윤석화가 맡았다는 점이다.
“(윤석화에게) 내가 팔십에 연극을 하게 되면 그때는 네가 연출하라고 말했었죠. 그 약속을 지키게 됐어요. 사실 우리는 계속 티격태격해요. 티격태격 정도가 아니지.(웃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만족이 있을 수 없어요. 서로 부딪칠 때는 심하게 부닥치기도 하죠. 그런데 그건 우리가 바라는 목표가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정이란 참아주는 거죠. 참고 기다리고…. 그건 상대를 위해서라기보단 나 자신을 위해서일 거예요.”
윤석화, 극 속에 담긴 시적 메타포를 찾다
그렇다면 이제 연출을 맡은 윤석화의 말을 직접 들어볼 차례다.
“선생님과 저하고 굉장히 친하기 때문에, 친한 사람과의 작업은 힘들 수 있죠. 함께 산전수전 다 겪었고요. 내 연출작에 처음 출연하시는 것도 아니고. 친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라면 제가 연출로서 배우로서 애매한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께 빛나는 정점이 되기 위해 감사하며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어렵지만.(웃음)”
박정자가 모드 역을 이번으로 끝내겠다고 공언한 만큼, 두 사람이 함께하는 ‘해롤드와 모드’ 무대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연출가로서 윤석화가 이번 ‘해롤드와 모드’에서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녀는 이 작품의 스토리 자체가 완벽하다는 점을 전제로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해롤드와 모드’가 스토리텔링이 강했다면, 저는 그 행간에 시적 메타포를 좀 더 그려 넣고 싶어요. 무대를 미니멀하게 만든 것도 그런 정서, 즉 누구나 보면 그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걸 은연중에 느낄 수 있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둔 거죠.”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연출의 고통
박정자에게 이번 모드가 일곱 번째 모드인 것처럼, 공교롭게도 윤석화에게도 이번 ‘해롤드와 모드’는 일곱 번째 연출 작품이란 의미가 있다.
“어떤 면으론 연기보다 연출이 낫지 않나?(웃음) 제가 원하는 모험심이란 게 창의력과 연관되어 있어요.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내가 또 이상한 거 주문하지?’ 하고 자주 물어요. 그러나 예술은 새롭기 때문에 이상한 거죠. 우리에게 답습이란 교육이에요. 그런데 교육도 어떤 면에선 교육을 뛰어넘어 창의로 가야 하죠. 답습은 기본 과정이고 창의와 창조는 그것을 뛰어넘는 건데, 그걸 위해선 모험도 필요하고 새로운 발상이 필요해요. 그런 게 저에게 좀 맞지 않나 싶어요.”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CEO로서, 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녀에게 답습을 넘어서야 한다는 방법론은 체질화된 요소일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그러나 연출가로서의 어려움은 그녀를 스쳐 지나가기만 하지 않았다.
“연출은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는 일이죠. 배우도 외로운 작업이지만 뭔가 표현해냄으로써 자기만족, 관객의 박수라는 보상이 있어요. 그러나 연출은 그런 게 없죠. 배를 몰고 가는 선장이 배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면 나머지는 기계가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도 그렇고 다 자기 생각이 다르고 성격도 달라요. 그걸 합심해서 최선을 이루게 해야 배가 제대로 가잖아요. 큰 배를 지휘하는 선장도 외로울 텐데(웃음) 망망대해에서 사람과 계속 부딪치며 조율해야 하니까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낮추지 않으면 포용할 수 없어
늘 밝고 활기찬 그녀 특유의 에너지가 넘쳤다. 어떻게 저렇게 에너지가 유지될 수 있을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과정을 거치든 고난 없는, 절망 없는 삶은 없죠. 그 화두를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거죠.”
참다운 인간이 되는 방법은 스스로 낮추고 포용하는 것밖에 없다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를 비우지 못한다. 욕심 때문이다.
“낮추지 않으면 포용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해롤드가 보는 모드가 그런 사람이죠.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거든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이든 800년 전이든 그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그 철학은 우리에게 남아 있지만, 그 사람이 누렸던 것은 다 모래알보다 못하게 사라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죽기 전에는 결코 미리 죽지 않는 사람
윤석화의 요즘 삶은 본인 스스로가 표현하길 ‘거꾸로 가는 시계’ 같은 생활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남편 뒷바라지도 하고 여러 가지로 아직까지 무척 분주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다운 한결같은 면을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저에게 쉼을 주려고 노력해요. 마음에 쉼을 주는 방법은 딱 하나더라고요.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며 기도하는 삶. 저는 크리스천이에요. 사실 교회 다닌다고 모두가 믿음을 갖지는 않죠. 그러나 저는 믿음이 생기니 정말 편안해졌어요. 물론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가는 길은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그런데 제 삶의 마디마디에 고난이 많았기에, 고난이 저에게 믿음을 준 거죠. 혹여나 이상한 몸부림을 쳤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너무도 감사하게 믿음을 허락해주셔서 자신을 비우고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다시 새로운 소망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그녀가 자신을 유지하는 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감사하기에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 그녀는 웃으면서 “내가 죽어야 다시 살 수 있어요”라고도 말했다.
“ ‘죽기 전에는 결코 미리 죽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미리 죽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거 같거든요.”
한 편의 긴 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공연을 앞두고 맨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는 연출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윤석화 또한 마찬가지다.
“요즘은 거의 잠을 못 자요. 제 머릿속에 그림이 있지만 공연은 배우 예술이기 때문에 구상한 게 얼마나 나와줄 것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죠. 가끔 공연한다는 게 도박 같다는 생각을 해요. 엄청난 모험심이 필요하니. 내가 생각했던 그림만큼 나오고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지… 살 떨리죠.”
어느새 46년간 연극을 한 그녀가 생각하는 연극의 의미란 ‘좋은 질문을 찾아서 관객들에게 내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 각자가 자신의 답을 갖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해롤드와 모드’는 어떤 연극일지 물어봤다.
“ ‘해롤드와 모드’는 죽음을 통해 삶을 얘기하는 작품이에요. 모드의 대사 중 아름답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들이 참 많거든요. 한 편의 긴 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보시고 극장 문을 나서면 가장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은 하나, 어떤 사람은 일곱 개, 어떤 사람은 여러 개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들이 여러분 삶을 응원하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헌터 아담스, 앨런 튜링, 기타와 바비타 자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실존 인물의 극적인 삶을 담은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패치 아담스 (Patch Adams, 1998)
루돌프 코 장식을 달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가 하면, 온 방안을 풍선으로 가득 채운 채 시를 읊는 남자. 레크리에이션 강사인가 싶지만, 병을 고치는 의사다. 그의 이름은 헌터 아담스, 정신병원에서 삶의 희망을 되찾은 인물이다. 미국 늦깎이 의사 헌터 아담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패치 아담스’는 자살미수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헌터가 의사의 꿈을 품고 두 번째 삶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신병원 수감 시절, 헌터는 환자를 단순 ‘정신 이상자’로 취급하며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의사의 태도에 실망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자들과 소통한다. 허상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는 룸메이트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맞서 싸워주고, 손가락 4개를 8개라고 주장하는 환자의 숨겨진 뜻을 이해한다. 진심의 힘을 믿는 그는 의사가 되어서도 환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며 웃음을 전파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헌터가 보여준 가슴 따뜻한 인류애는 바람직한 의료인의 자세뿐 아니라 각박한 사회에 공감과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헌터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의 푸근한 미소와 연기가 여운을 남긴다.
2.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
오늘날 인공지능(AI)은 인간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 기계가 ‘지능’을 가진다는 것은 낯선 개념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이미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한 인물이 있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비상한 두뇌로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군의 암호기 ‘애니그마’를 해석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애니그마는 24시간마다 암호가 바뀌어 연합군 사이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암호기다. 이에 튜링은 하루마다 달라지는 암호를 해독하는 대신 애니그마 체계의 근본을 분석하는 기계를 발명한다. 인공지능의 뼈대가 되는 튜링 머신이다. 튜링의 아이디어는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당시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공을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는 그런 그의 비극적인 삶을 극적인 과장 없이 담담하게 묘사한다. 화려한 액션신이나 총격전은 없지만, 치밀한 두뇌 전쟁이 시선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3. 당갈 (Dangal, 2016)
“당갈! 당갈!” 흥겨운 힌두풍 리듬이 귀를 사로잡는다. 이내 거칠게 몸을 풀고 모래판 위에서 힘을 겨루는 남성들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오프닝 장면만 보면 영락없는 남성 레슬링 영화다. 그러나 ‘당갈’은 국제대회 최초로 금메달을 딴 인도 여성 레슬링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 두 딸을 대회에 내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마하비르는 딸들이 태어나기 전 아들을 간절히 바란다. 남성만이 레슬링에 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던 어느 날 또래 남자아이들에 힘으로 뒤지지 않는 두 딸의 모습을 본 마하비르는 자신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고, 두 딸에게 대회 준비를 시키기 시작한다. 영화는 “남자든 여자든 금메달은 금메달”이라는 대사를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레슬링을 남성의 전유물처럼 묘사한 오프닝 장면을 반전시킨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과 뭉클한 가족애, 레슬링의 박진감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신나는 음악이 흥을 더한다.
몸과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푹 가라앉은 날에는 잔잔한 영화 한 편이 위로될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 영화는 특유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힐링영화’ 목록에 종종 언급되곤 한다.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변함없는 일상에 울적함을 느낀다면 맥주 한 캔과 넷플릭스로 가볍게 기분전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지친 하루에 위로 한 스푼을 더해주는 일본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카모메 식당 (Kamome Diner, 2006)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맛있는 밥 한 끼로 위장을 든든하게 채우는 것이다. 맛있는 식사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내오는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한 상으로 대리만족을 해보자.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가 선보이는 메뉴는 매실장아찌를 넣은 일본식 주먹밥. 타국의 낯선 메뉴에 식당은 파리만 날리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며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핀란드 청년 토미(자코 니에미)가 식당의 첫 손님으로 방문하고, 그 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손님들이 하나 둘 이곳을 찾는다. 달그락달그락 요리하고 머리를 맞대며 식사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지만, 지루하기는커녕 그 속에서 오고 가는 인물들의 대화와 공감, 위로가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러닝타임 100분 동안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Rent-a-Cat, 2012)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도 사람과 사회를 향한 그녀만의 따뜻한 시선을 이어간다. 고양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애묘인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가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길어진 독거 생활로 대화 나눌 상대 하나 없는 사요코 역시 그녀가 찾는 ‘외로운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때마다 귀여운 고양이들이 그녀의 곁을 지킨다. 영화는 사요코와 만나는 손님을 하나둘 보여주며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죽음을 앞두고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지내는 중년 남성, 하루 종일 적막한 사무실에 갇혀 일만 하는 회사원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요코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통하며 자신의 외로움도 조금씩 채워나간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주먹밥이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고양이가 그 역할을 한다. 극적인 서사는 없지만, 군중 속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잔잔히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다.
3. 원더풀 라이프 (Wonderful Life, 1998)
기차역 안 대합실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이곳은 삶과 죽음을 잇는 ‘림보’다. 림보에 머무는 망자들은 일주일 안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고르고, 오직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 천국으로 향해야 한다. ‘원더풀 라이프’는 이 같은 독특한 설정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그려내며 삶의 진리를 담담하게 깨닫도록 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망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고심 끝에 소중한 기억을 고백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선택을 번복하는 인물도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떠올린 장면은 대부분 인생에 몇 안 되는 엄청난 이벤트가 아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다. 옷깃 스치듯 지나 보낸 날들이 돌아섰을 때 평생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반복되는 인터뷰 형식을 취하며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의 인생에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 영원히 머물고픈 순간이 존재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는 것만으로 우리의 하루는 한층 더 ‘원더풀’해진다.
1990년대,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금발의 여인이 있었다. ‘귀여운 여인’ 줄리안 로버츠다. 시니어라면 아찔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싸이 하이 부츠 신은 채 발랄한 매력을 뽐내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스타와의 설레는 로맨스를 꿈꾸게 만들었던 ‘노팅힐’은 또 어떠한가. 두 작품의 흥행으로 줄리아 로버츠의 이름 뒤에는 ‘로코 퀸’이란 수식이 붙기 시작했지만, 이후 그녀는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영원한 귀여운 여인, 줄리안 로버츠의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적과의 동침 (Sleeping With The Enemy, 1991)
무명배우이던 줄리아 로버츠는 ‘귀여운 여인’으로 1990년 스타덤에 오르고, 맥 라이언과 함께 로코 퀸으로 부상하는 듯했지만 다음 해 전혀 다른 장르로 찾아와 관객을 놀라게 한다. 바로 ‘적과의 동침’이다. 영화는 미모의 여인 로라(줄리안 로버츠)가 결혼 후 돌변한 남편 마틴(패트릭 버긴)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언뜻 보면 행복한 부부 사이 같지만, 마틴은 극도의 의처증을 앓고 있다. 로라의 별 뜻 없는 행동에 외도를 의심하고,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뒤 곧바로 사랑을 속삭이며 자신만을 바라볼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가학적인 폭력에 시달린 로라는 탈출을 결심하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후 로라는 ‘사라’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살아가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영화는 장르의 본분을 잃지 않고 다시금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며 반전을 예고한다. 줄리안 로버츠는 이 영화에서 ‘귀여운 여인’과는 다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각인되며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한다. 내용은 다소 공포스럽지만, 그와 별개로 그녀의 리즈 시절 미모가 감탄을 자아낸다.
2. 에린 브로코비치 (Erin Brockovich, 2000)
‘귀여운 여인’, ‘적과의 동침’으로 눈부신 미모를 자랑한 줄리안 로버츠는 약 10년 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자신감 넘치는 싱글맘 역할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그녀가 연기한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은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실존 인물의 실화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름을 딴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 업무를 하는 에린(줄리아 로버츠)이 우연한 계기로 마을에 유해 물질을 방출한 거대 기업의 실태를 파헤치고, 미국 역사상 최고의 손해배상금을 받아내는 내용을 다룬다. 평범한 싱글맘과 거대 기업의 싸움은 시작부터 승패가 예상되는 불리한 게임이다. 그러나 에린은 정의에 대한 투지와 끈기로 기업의 부조리함을 입증하고, 사회를 바꿔낸다. 왼손잡이인 줄리안 로버츠는 에린 브로코비치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연습을 하며 캐릭터를 향한 아낌없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노력의 결실은 200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 자리를 공고히 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
3. 원더 (Wonder, 2017)
2010년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후 눈에 띄는 흥행작이 없었던 줄리안 로버츠는 2017년 따뜻한 가족영화 ‘원더’로 호평을 받으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원더’는 선천성 안면기형으로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와 그를 둘러싼 가족,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10살이 되던 해, 홈스쿨링을 하며 헬멧 속에 숨어 살던 어기가 학교로 첫 발을 내디디며 시작된다. 전체적인 서사는 어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각 챕터 별로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친구 잭(노아 주프), 비아 친구 미란다(다니엘 로즈 러셀) 등 서술자가 달라지며 주변 인물을 함께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비아의 결핍과 잭이 어기와 친구가 된 계기 등 저마다의 사연이 밝혀지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확장된다. ‘원더’는 공동체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인물들을 통해 사람 간 관계 맺음에 주목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차별적인 시선으로 상처 입은 어기를 향해 “너는 기적 같은 아이”라며 응원을 실어준 줄리안 로버츠의 대사가 영화의 메시지를 관통하며 오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