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실에 앉자마자 고재윤(65,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외식경영학과) 교수가 보이차를 내놓는다. 중국의 6대 명차에 속하는 만전(蠻磚) 보이차. 수령 500년에 이르는 차나무에서 딴 잎을 5년간 숙성시킨 차란다. 목으로 넘기자 상쾌한 뒷맛이 혀에 고인다. 진귀한 차라고 굳이 내세우지 않으나, 고재윤의 표정은 은근히 득의양양하다. 그는 보이차에 풍덩 빠져 산다. 요번 세상은 그저 보이차를 탐구하는 데에 시간을 쓰기로 했나? 진정한 보이차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양, 그는 줄기차게 명차 원산지를 찾아 중국 오지를 순례했다.
보이차 공부만 고재윤의 일은 아니다. 물과 와인 역시 열공을 해 달통했다. 통하면 보이고, 보이면 자유롭다. 사통팔달하는 식견으로 전공 분야에 관한 생각에 장애나 망상이 없다. 그러자 행복이라는 이름의 댄서가 그를 부둥켜안고 블루스를 추나? 깊고 너른 공부가 주는 맛과 멋에 겨워 인생을 통째 긍정하며 만족한다는 게 아닌가. 처음엔 웬 물 공부, 술 공부, 차 공부냐며 환상적인 인간 취급을 하는 눈총들이 많았단다. 그러나 갈 데까지 가보고서야 결론이 날 일이라는 신념으로 스스로 노정한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모처럼 생명을 얻어 세상에 나왔으니 하고 싶은 공부는 똑떨어지게 하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었을 테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1회 졸업생인 고재윤은 1980년, 쉐라톤 워커힐 호텔의 말단 웨이터로 입사해 사회와 만났다. 원래 타고났다는 근면성에 기민하게 회전하는 머리까지 가세한 성과였을까. 그는 호텔의 혁신과 성장에 세운 공이 많아 ‘워커힐의 전설’로 불렸다. 이후 2001년, 모교의 외식경영학과 교수로 변신하면서 와인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워커힐 호텔 식음료부장으로 재직할 때 독일의 유명 호텔에서 열린 와인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와인 공부에 입문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독일의 산골 마을들이 와인 하나로 풍족하게 사는 모습이었다. ‘아하, 한국도 와인사업을 진흥시켜야 한다!’ 퍼떡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 그래 워커힐에 소믈리에(sommelier,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매칭하는 사람) 프로그램을 국내 호텔 최초로 도입했다. 와인의 대중화와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 판단해서였다. 경희대 교수로 옮겨간 직후에도 국내 대학에 없었던 와인학 강좌 개설을 주도했다.”
한국산 와인의 세계시장 진출에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적극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 나는 우리의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주력해왔다. 예컨대 국가대표급 소믈리에를 배출해 ‘와인 소믈리에 올림픽’ 등 각종 세계대회에 출전시키고 있다.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국내에 소믈리에 대회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현재 자격증을 가진 와인 소믈리에가 3000여 명에 이른다.”
‘와인 소믈리에 올림픽’에선 무엇으로 실력을 겨루지?
“이론 실력, 와인을 호리병에 옮겨 담는 디캔팅(decanting) 동작과 기술, 와인 비교 능력, 음식과 와인의 매칭 솜씨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당신을 사로잡은 최고의 와인을 꼽는다면?
“이탈리아의 말비라(Malvira) 와인이다. 풍부한 미네랄, 진한 과일 향, 입안에서의 섬세한 질감으로 유명한 와인이다. 빌 게이츠가 좋아했던 와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술맛의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흔히 비싼 와인을 좋은 걸로 알지만 오해다. 내 입맛에 맞으면 그게 가장 좋은 와인이다. 와인 고수가 되려면 생산 현지에서 신선한 와인을 비교 시음해 품질을 판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현지의 재배 풍토와 문화, 양조자의 철학을 파악하는 일도 기본이다.”
시들해진 부부 사이를 짜릿하게 북돋워주는 와인을 추천한다면?
“‘사랑의 와인’으로 소문난 프랑스의 라파주(Lafage)를 배우자와 즐긴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이다. 이 술을 만든 장 마크 라파주는 6대째 포도농사를 이어온 가문의 자제로 13세에 와인 양조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학에서 와인 양조학을 공부하다 같은 학과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 부부는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와인 양조 기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거니와 금슬 좋기로도 소문이 자자하지. 결국 라파주는 부부 금슬을 스토리텔링해 성공한 와인이라는 거. 이처럼 근사한 스토리텔링으로 부상한 와인이 많다.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과 보이차로 건강 되찾아
와인은 덧없는 인생에 휴식과 낭만을 부여한다. 엔도르핀을 돌게 하는 귀여운 요정? 그러나 지나치게 마신 술은 반란을 일으켜 몸을 역습한다. 조신한 음주가 상책이겠으나 술과 정분이 나면 자제가 쉽지 않다. 와인의 속 깊은 세계를 탐구하는 흥미와 보람에 심취한 고재윤에게도 잦은 음주가 관습이었던 모양이다. 결국은 몸에 이상이 오더란다. 고혈압과 당뇨, 비만 등 각종 성인병이 방문했던 거다. 그는 병원치료 대신 물을 통한 자연치유법으로 건강을 회복하기로 결심하고 물 공부에 나섰다.
“세계적인 장수마을들엔 흔히 좋은 샘물이 있다. 칼슘, 마그네슘, 게르마늄 등 약리작용을 하는 성분들을 함유한 물이 장수와 병 치료에 유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엔 없지만 유럽엔 오직 물로 치료를 시도하는 수치(水治) 병원도 있다. 다양한 물마다의 성분과 농도를 적절히 배합한 약수를 음용하게 하고, 목욕이나 물 마사지까지 병행해 질병을 다스린다. 여하튼, 난 물의 힘을 믿고 물 공부를 하며 좋은 물을 찾아 마시는 걸로 자가치료에 열중했다.”
마침내 물 요법으로 건강을 되찾았겠군.
“물의 긍정적인 힘과 매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물의 해독작용이 충분하진 않아 한계가 있더라. 그렇다면 해독에 유능한 뭔가를 찾아내야 했는데 바로 보이차였다. 결국 물과 보이차로 당뇨와 고혈압을 잡았지. 85kg이었던 몸무게도 65kg으로 돌아왔다. 이후 감기 한 번 걸린 일 없이 살고 있다. 그러니 좋은 물과 좋은 보이차 마시기를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일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 물 공부, 보이차 공부를 어떻게 중단할 수 있겠나.”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흔히 보이차를 사온다. 이미 보이차가 널리 보급된 현실이지 않나?
“이거 아나? 시중에 등장하는 보이차의 99.5%는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거. 한마디로 0.5% 외엔 모두 가짜 보이차다.”
저런! 중국 상인들의 농간에 속고 있다는 얘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이지?
“통상 100년 이상 자란 자생 고차수(古茶樹)에서 채취한 찻잎을 전통 방식의 수작업으로 만든 보이차를 진품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생산량이 1% 미만에 불과해 구매 자체가 어렵다. 결국은 인위적으로 재배한 차나무 잎을 원료로 한 저질 보이차가 진짜 보이차로 둔갑한다. 맛과 향, 약리작용이 크게 떨어지는 가짜를 고가로 팔아먹는다. 나는 이와 같은 보이차 유통의 폐단까지 알리고 싶은 것이다. 진품 보이차를 구하려면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다. 생산 현장을 직접 찾아가 구매하는 방법도 요긴하다.”
보이차 강의를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생산 현장을 찾아다닌다지?
“와인이든 보이차든 현장을 직접 리서치하지 않는 학문은 의미 없다는 기본을 철저하게 고수해왔다. 와인 공부가 낭만적이라면 보이차 공부는 거의 고행이다. 명산지들이 다들 오지 산골에 있기 때문이지.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산길을 달리다 산사태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기꺼이 고생을 감수한다. 가령 해발 3000m 고지에 있는 2700년 수령의 차나무를 찾아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보이차의 정수를 찾아 마치 탐험처럼 대차게 오지를 누볐다는 얘기다. 그는 기쁘다, 어쩌다 만난 와인과 보이차, 그리고 물이 자신의 인생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행운에. 공부가 많아 성취도 완연하다. 수많은 논문과 책을 냈으며, 그의 쓸모를 인정한 경희대는 교수직 정년을 3년 연장해줬다. 그는 ‘소믈리에 대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수원지 오염 문제 이슈화해야
고재윤의 얘기에 따르면, 한국은 물에 관한 한 자못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물 연구가와 다양한 물 교육 프로그램을 보유해서다. 대학에서 워터 소믈리에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나라도 한국이 유일하다. ‘파인 워터스(Fine Waters) 국제워터품평회’라고 세계적 권위를 가진 물 품평회 기관이 있다. 여기에 소속된 심사위원 6명 중 2명이 한국인이다. 고재윤, 그리고 그의 제자 김하늘 워터 소믈리에가 바로 그들.
모두들 가급적 좋은 물을 마시고 싶어 한다. 유럽산 초고가 생수나 탄산수를 사 마시는 이들도 늘고 있다. 어떤 물이 좋은 물인가?
“일단은 신토불이 관점에서 물을 봐야 한다. 내가 태어난 곳의 물을 먹는 게 가장 안전하다. 광고에 이끌려 괜히 비싼 해외 탄산수를 마실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인의 DNA와 식습관에 부합하는 성분을 지닌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서양인들이 만든 물엔 소화작용을 촉진하는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식 중심이 아니지 않은가.”
국내산 생수가 한국인에겐 이상적?
“기본적으로 그렇다. 우리가 주로 섭취하는 곡류와 채소류, 해초류엔 이미 미네랄과 이산화탄소가 다량 함유돼 굳이 미네랄 함량이 높은 생수를 고를 필요가 없거든.”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생수 중 좋은 걸 선택하는 방법은?
“첫째, 제조일자를 보고 가장 최근에 생산된 생수를 택하라. 페트병 속에서 오래 묵은 물에선 환경호르몬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둘째, 생수가 태어난 수원지를 확인, 이왕이면 자연환경이 살아 있는 지역에서 채수된 물을 택한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취수한 물을 유리병에 담은 생수, 이쯤이면 썩 좋은 물이다.”
2017년, 국내 생수업체의 80%가 위생기준을 어겨 적발됐다. 하천 물을 생수로 속여 팔고, 대장균이 검출되고, 심지어 발암물질까지 검출돼 놀라웠다. 그 사건 이후 3년이 지났다. 현재의 시판 생수들은 안전할까?
“생수회사의 수원지로 하천 물이나 축산 폐수 등이 유입해 발생한 문제였다. 최근엔 검사기준이 매우 강화되었다. 품질관리를 소홀히 했다가는 생수회사가 문을 닫게 되어 있거든. 따라서 요즘의 생수는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 수질 안전성을 위해 일부 업체들은 수돗물처럼 고도정수(高度淨水)나 오존 처리를 해 생수를 생산하지만 사람이 마시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수원지로 유입되는 오염원들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해선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그게 실로 중요한 과제다. 정부가 나서 수원지 관리 법규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해외에선 수원지 반경 50여 km 일대를 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농사조차 짓지 못하게 한다. 우리도 이 사안을 이슈화해 조속히 보호구역을 설정해야 한다. 문제를 외면하다간 언젠가 엄청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자연을 파헤치는 개발을 능사로 삼으며 상황을 방치할 경우 머잖아 모든 지하수가 오염될 게 아닌가. 먹는 물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거다.”
소나무보다 오래 살 수 없고, 페트병보다 빠르게 썩는 게 사람 몸뚱이다. 그저 은하계를 부유하는 한 점 먼지에 불과한 게 사람임을 얼른 알아차리는 게 속 편하다. 그토록 허망한 게 삶이지만 사는 동안엔 물다운 물을 마음 놓고 마셔야 할 게 아닌가. 수원지 보호구역의 조속한 설정을 역설하는 고재윤의 얘기를 듣자니 밤처럼 캄캄한 정책의 불감증에 불안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가급적 물처럼 사는 게 개중 자유롭다. 그러나 물처럼 살면 이미 성인이지 그게 중생인가? 여차하면 화가 치솟아 들이박는 게 인간이다. 물의 달인 고재윤에게 “당신은 화를 어떻게 처리하지?”라고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색적이다.
“뭐 별로 화낼 일이 생기지 않더라. 가끔 화 비슷한 게 올라오면 물을 마신다. 그러곤 끝! 하하하!”
AD 2020년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리는, 은하계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당시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그 혼란이 재앙인지, 유행인지, 축복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지는 회복탄력성이 되었다. 곧 눈앞에 벌어질 일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만 인간의 무지는 아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지난 일을 잊어버리는 증상도 있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별 감(지구의 다른 생명체와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인간만의 능력)으로 충격이 강한 몇몇 일과 현상을 일정 기간 뇌에 저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인간은 용량을 규정할 수 없는 뇌라는 저장장치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그것을 기억 혹은 추억이라고 불렀다.
당시 발생한 혼란의 원인은 지구를 지배해온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구가 푸른색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편리와 효율성을 위해 지구를 붉은빛을 띠는 별로 오염시켰다. 한 줌도 안 되는 추상적, 독점적 지배논리(이데올로기, 종교, 국가 개념 등)로 서로 반목하면서 인간의 특징인 ‘따스한 마음의 결’도 황폐화시켰다. 결국 이러한 욕심은 인간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지구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버린 AD 2020년의 ‘코로나19’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별 전체의 합쳐진 힘이 필요했다. 근본 원인이 된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은 ‘공존과 배려의 공동체 의식’이 치료제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 다른 외계에서는 지구 회복과 그곳에 사는 인간의 보편적 행복 증진이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
인간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시작할 때 우리 ‘K-1625(지구로부터 7500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행성’의 연구자들은 한반도 남쪽에 있는 녹색 점을 주목했다. 파란 바다에 떠 있는 섬이 유독 싱그럽게 보였다. 자연과 인간이 잘 어울려 공존하는 장소였다. 두 개의 큰 섬과 부속 섬으로 이뤄진 이곳은 수려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특별 관리를 받아온 ‘남해’다. 바이러스가 발붙일 틈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따라 신체 기량이나 기술을 겨루는 운동을 하거나, 보는 것을 즐겼다. 남해는 천혜의 경기장들을 갖추고 있어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훈련을 하러 온다. 그만큼 인간의 신체가 최고의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 밖에 남해에는 몇 가지 숨겨진 보물들이 있다.
1. 남해 바래길
2010년에 개통한 문화생태탐방로인 ‘남해 바래길’은 총 16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가천 다랭이 길 4km’와 ‘물미 해안길 2km’ 코스는 해안을 따라 걷는 ‘해안 누리길’이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남해 바래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토닥거려주는 치유제가 된다. 남해의 길들은 풀잎을 보고도 우주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고, 도처에서 요정을 만나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다. 길은 난이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눠져 있다.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선택해 걸으면 된다. 단, “너무 빨리 걷지 마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는 아프리카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해 바래길은 치유의 길이자 성장의 길이기 때문에.
2. 독일마을
1960~70년대에 한국 경제를 끈 주역들이 있다. 바로 산업 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다. 이 마을은 그들의 고국 정착을 위해 조성된 곳이다.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잘 어우러진 주황색 지붕의 예쁜 독일식 주택. 이 마을의 이국적 풍경은 많은 드라마 촬영의 배경이 됐다. 파독 전시관에 들러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회상해보는 시간도 의미 있다.
3. 토피아랜드
언덕 경사지에 조성한 편백나무 숲 체험장이다. 평온과 안식의 휴식처인 이곳에 오르면 아름다운 꽃과 나무와 정원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떤 노력과 기도에도 열리지 않던 문이 저절로 스르륵 열릴 것만 같다. 자연과 타인과 접속하기 위한 영혼의 준비 운동을 하기에 최고의 공간이다.
세상을 치유하는 깊은 힘의 원천이 남해에 있다. 인생이 이기적 목적을 위한 경쟁으로 채워지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막다른 골목에서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지구의 인류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이다. 남해의 길과 자연에서 그 깨달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등산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국의 등산 도서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의 부제는 ‘산에 자유가 있다’이다. 이 제목을 빌려 필자는 ‘트레킹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트레킹은 등산보다 난이도가 낮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 아름다운 자연과 교감하며 걸을 때, 얼마나 자유로운가. 트레킹을 즐기려면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트레킹이 등산과 다른 점, 건강에 좋은 이유, 철학자들의 트레킹 예찬론, 시니어들이 즐길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아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언택트 시대에 트레킹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감염 걱정 없이 자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은 느리고 고지식한 여행이다. 일반 여행은 차를 타고 여러 관광지를 찍고 다니지만, 트레킹은 온전히 두 발로 길을 여행한다. 속도가 느리기에 길에서 만난 새와 나무, 풀 한 포기와도 친구가 된다. 자연과 호흡하며 걷다 보면 느린 속도에 적응되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치유는 트레킹이 은밀하게 건네는 선물이다.
느린 여행, 트레킹의 매혹에 빠지다
트레킹의 사전적 정의는 다소 애매하다. 백과사전에는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과 들과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 여행’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목적지 없이 바람 따라 떠나는’ 트레킹은 없다. 트레킹은 목적이 뚜렷할수록 좋다. 그래서 필자는 나름대로 트레킹에 대한 정의를 내려봤다.
일반적으로 등산은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트레킹은 정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정상을 대신하는 새로운 목적을 찾아야 한다.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트레킹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된다. 개인 취향에 따라 꽃길, 물길, 단풍길, 눈길, 강길, 섬길, 문학예술, 유적답사 등 다양한 목적과 테마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트레킹은 육체적 행위이며 상상력이 강조되는 정신적 행위다.
트레킹은 걷기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유산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꾸준히 걸으면 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쓰여 있다. 우리 선조들은 걷기의 위대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걷기가 각종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유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인간은 걸으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발을 다양한 교통수단이 대신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자신의 저서 ‘걷기 예찬’을 통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주장했다. 걷기를 통해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다.
걷기를 삶의 모토로 삼고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은 19세기 철학자 니체다. 그는 우울증을 걷기로 치유했다. 스위스 엥가딘 고원의 실스마리아(Sils Maria) 마을에 방을 얻어 지내며 호수를 걸었다. 이곳에서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탄생했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작품을 걸으면서 완성했다. “앉아서 지내는 삶은 성령을 거스르는 진정한 죄악이다. 걷기를 통해 나오는 생각만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어디 니체뿐인가. 칸트, 루소, 디킨스 등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걷기를 예찬했다.
시니어 트레커들이 주의해야 할 점
필자는 모험적 트레킹을 즐긴다. 모험은 인간의 피를 뜨겁게 하는 힘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뤘을 때의 느끼는 희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모험의 목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체력과 능력에 맞게 정하면 된다. 북한산 또는 지리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백운대나 천왕봉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완주는 더없이 훌륭한 목표다.
몇 년 전 필자는 오랫동안 꿈꿨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포터 없이 홀로 히말라야를 자유롭게 걷자는 목표를 세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와 고산병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을 향해 걸어갈 때 느꼈던 행복함과 충만함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 히말라야 산속 어느 로지에서 만난 5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혼자 온 트레커들이었다. 한국, 미국,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등 국적도 다양했다. 트레킹을 좋아해 세상 구석구석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들과 밤새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한국의 제주 올레길을 추천했고, 그들에게 알래스카, 아이슬란드, 러시아 등의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알려줬다. 10년 후에 알래스카에서 만나자는 우리의 두루뭉술한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시니어들이 트레킹을 즐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체력과 건강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고는 무리하고 얕잡아볼 때 나온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하고 솔직해야 한다. 관절이 안 좋으면 스틱을 사용해 무릎이 받는 하중을 줄이는 게 필수다. 스틱은 관절이 받는 하중의 30%를 줄여준다. 트레킹 코스는 무리하게 짜지 말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게 좋다. 걸을 때는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자. 술은 과음을 부르는 법이고, 취하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술은 걷기를 마치고 마시는 걸 원칙으로 정하자. 트레킹에는 등급이 없다. 걷기를 통해 행복을 즐기는 자가 최고의 트레커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는 약 4만 ㎞다. 하루에 11㎞ 정도를 1년쯤 걸으면 약 4000㎞다. 10년쯤 걸으면 지구 한 바퀴 거리다. 그 과정에서 얻는 건강과 반짝반짝 빛나는 사유는 보너스다. 그렇게 꾸준하게 걷다가 하늘이 부르면 미련 없이 떠나자. 나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이면 좋겠다. ‘열심히 걷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
진우석 시인이 되다 만 여행작가, 걷기 달인으로 통한다. 학창 시절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걸었다. 저서로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이 있다. 현재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두발로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올여름 휴가는 어디에서 보낼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버렸으니 웬만한 국내 여행지는 사람들로 북적거릴 게 뻔하다. 무인도에서 삼시 세끼 해먹으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연예인들을 보며 ‘나도 한번 저래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쉽지 않다. 대신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의 휴식과 사색을 담은 일본 영화 ‘안경’을 보며 마음을 달래본다.
중년의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는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바닷가 조그만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마음씨 좋은 민박집 주인 유지와 팥빙수를 파는 수수께끼 같은 아줌마 사쿠라, 고등학교 생물선생님 하루나를 만난다. 타에코의 눈엔 이들이 영 이상하다. 아침마다 해변에 모여 알 수 없는 체조를 하는가 하면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매일 식사도 함께한다.
관광할 곳을 추천해 달라는 타에코에게 민박집 주인은 관광할 만한 데가 딱히 없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여기 놀러온 사람들은 뭘 하냐는 타에코의 질문에 그는 “사색”이라고 대답한다. 사색 말고 할 게 없냐고 묻자 하루나는 “사색이 아니라면 타에코 씨는 도대체 여길 뭐하러 오신 거죠?”라고 되묻는다.
타에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거나, 바닷가 가게에 앉아 팥빙수를 먹는 일이 어색했지만 사색하며 쉬는 게 일상인 마을 사람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간다. 처음에는 함께 밥 먹는 걸 사양했지만 점차 고기도 같이 구워 먹고, 정갈하게 차린 아침상도 함께 받는다. 이 영화에는 공들여 찍은 듯한 식사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온다.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빨갛게 익은 랍스터를 한 마리씩 통째로 먹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타에코를 통해 사색과 휴식의 진짜 의미를 알려준다. 타에코는 도시의 복잡함을 피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섬을 찾으면서도 캐리어를 물건들로 가득 채운다. 그 무게 때문에 늘 낑낑댔고 손에서 놓지도 못한다. 은색 캐리어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사는 타에코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리자 타에코는 사쿠라의 자전거에 오르기 위해 캐리어를 포기한다.
온 세상이 석양에 물들 때 바닷가에 홀로 앉아 그윽한 생각에 잠기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함께 팥빙수를 먹고 밥을 먹고 서로의 힘든 마음에 등을 내주는 일도 중요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해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것, 그 시간 동안 등을 내주고 밥을 함께 먹는 것. 그게 휴식이고 위로라고 조언한다.
“사색하는 데도 무슨 요령이란 게 있나요?” 타에코의 물음은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쉼 없이 달리고, 배우고, 가득 채우는 데만 열심인 사람들은 휴식이 익숙지 않다. 쉬고 싶어 종종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온갖 계획을 짜고 그걸 또 실천하느라 가방 안은 여전히 근심과 걱정, 집착으로 가득하다.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코로나 시대. 휴식도 연습이 필요하다면 ‘한번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세차를 하는 날, 세차장이 바로 집 옆이어서 차 몰고 가는 건 좀 뭐하다고 생각해 걸어갔다.
-강아지 털 밀기로 예약한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아 막 뛰어갔는데, 강아지를 안 데리고 왔더라.
최근 인터넷에서 읽은 건망증 사례다. 쯧쯧. 젊은 사람들인 걸로 보이는데, 벌써부터 그러니 참 안됐다.
다음은 교수의 건망증에 관한 유머. 기차를 기다리던 교수 세 명이 각자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기차가 저만큼 떠나자 쫓아가 올라탔다. 동작이 굼뜬 교수는 타지 못했다. 지켜보던 사람이 “그래도 셋 중 둘이나 탔네”라고 놀리자 낙오된 교수가 “저 사람들은 날 배웅하러 왔던 거 같은데…”라고 했다.
교수들은 왜 잘 잊어버릴까. 교수유머는 수도 없이 많다. 독일 대학에서 교수자격을 취득한 분은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은 이제부터 시간을 못 지키더라도 용서와 이해를 받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라고 해 다들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근데 나는 교수도 아니면서 왜 자꾸 뭘 잊어버리는 거지? 차로 출퇴근하던 시절, 지하철 타고 몇 정거장 갔다가 회사 주차장으로 되돌아옴. 흐린 날, 검은 우산과 검은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집을 나와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지하철까지 감.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쳐다봐 유턴, 쓰레기통 뒤져서 우산을 찾음.
최근에 자주 잊어버리는 건 마스크다. 난 마스크 버리기가 아까워 몇 개를 빨랫줄에 걸어놓고 나름대로 햇볕에 ‘소독’한 다음 번갈아 쓰고 있다. “마스크는 내 친구”(남양주시의 포스터)라는데, 외출할 때 집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가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들어갔다 나와 보니 이번엔 휴대폰이 없어 또 들어가고…. 며칠 전 밥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더라.
그날 화제는 건망증(健忘症)이었다. 우선, 건망증에 왜 健(건강할 건) 자가 들어갈까. 잊어야 건강해진다는 뜻일까. 너무 많은 걸 기억하고 하나도 안 잊어버리면 정신건강상 오히려 해로우니 적당히 잊어야 한다는 뜻에서 만든 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파우스트도 1부에서 저지른 악행과 잘못을 완전 망각한 뒤에야 2부에서 사람이 된다. 그럴듯했다. 어감상 일본인들이 만든 말 같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궁금해 찾아보니 당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가 나왔다. 그의 ‘偶作寄郞之’(우작기낭지, 우연히 지어 낭지에게 주다)라는 작품의 맨 끝에 “老來多健忘(노래다건망, 나이 먹으니 더 잊기를 잘하나) 唯不忘相思(유불망상사, 오직 그리움만은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 경우의 健은 ‘매우, 몹시, 잘, ~에 뛰어남’이라는 뜻이다. 건송(健訟, 하찮은 일에 송사 걸기를 좋아함), 건설(健舌, 뛰어난 말재주), 건필(健筆, 글씨를 잘 씀), 이런 말이 같은 용법이다.
한자가 재미있고도 어려운 것은 한 글자가 다양하고도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굴원(屈原, BC 343?~BC 278?)이 남긴 ‘離騷經’(이소경)의 경우, 離는 떼어놓다, 가르다, 벗어나다, 피하다라는 뜻 외에 걸리다, 당하다, 만나다라는 뜻이 있다. 심지어 결혼하다라는 뜻도 있으니 오늘날의 이혼(離婚)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그러니까 離騷는 근심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걱정거리를 만났다, 우환(憂患)에 걸렸다는 뜻이다.
이 경우의 離는 나중에 罹(병, 근심, 재앙 따위에 걸릴 이)로 바꿔 쓰게 됐다. 이환(罹患) 이재민(罹災民)이 그런 경우인데, 국회 부의장까지 했던 어떤 국회의원이 정부의 수재대책을 따지면서 이재민을 나재민으로 읽어 망신을 한 일이 있다. ‘罹’(걸릴 이)를 ‘羅’(벌릴 나)로 본 탓이다. 息(식)도 참 묘한 글자다. 생존하다, 번식하다, 살다라는 뜻과 상반되게 그치다, 그만두다, 망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거 참, 어디 가서 남들 앞에 아는 체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건망증을 알기 쉽게 ‘새는 술잔’에 비유한 사람들이 있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시에 “온갖 근심 한데 모여 속이 오글오글 타고[百憂幷集似焦釜] 만사는 잘도 잊어버려 새는 술잔 같네[萬事健忘如漏巵]”라는 표현이 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시에도 “가난하여 배부름 꾀한 것 때때로 우스워라[貧謀一飽時還笑] 세상 인정 잘 잊는 건 새는 술잔 같다오[世態健忘如漏巵]”라고 한 대목이 있다. 누가 누구 표현을 베낀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시대의 일반적인 표현이었나? 동시대의 인물인 두 분은 그리 살갑지 않아 서로의 문장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김종직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서거정이 대제학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는 말도 있더라.
새는 술잔, 즉 누치(漏巵)는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지금 낙숫물 방울도 충분히 항아리를 채워 넘치게 할 수 있지만, 강하의 큰물도 새는 술잔은 채울 수 없나니,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今夫霤水足以溢壺榼 而江河不能實漏巵 故人心猶是也].” 원래 뜻은 이렇게 주량이 많은 것, 절약하지 않고 헤피 쓰는 걸 경계하는 말이었는데, 후대에 내려와 건망증으로 연결된 것 같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는 술잔’은 정말 치명적인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전고를 찾고 문자 공부를 한다고 해서 건망증이 치유되거나 해소될까. 오히려 잊어버려야 할 것만 더 쌓아두는 게 아닐까. 전에 읽었던 책을 간혹 뒤지다 보면 내가 같은 걸 여기저기에 써둔 메모가 발견된다. 잊어버리고 또 적어두고, 잊어버리고 또 적어놓은 탓이다. 건망(健忘)은 결국 다망(多忘)이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그만.
중장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막연한 불안감에 싸여 산다. 쫓기듯 사느라 은퇴 이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여유조차 없다. 그래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노사발전재단 대구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목공 직업체험교실(6월 20일)을 열었다. 목공 체험을 통해 새로운 적성을 찾았으면 하는 김철홍 컨설턴트의 바람대로 참여자의 호응도는 놀라웠다.
2시간 이론, 3시간 실습 총 5시간 동안 진행된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시종일관 흥미로워했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도마를 완성하기 위해 몰입했고 이웃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조패옥(56) 씨는 목공 체험에 대한 소감을 묻자 “내가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가장 큽니다. 지금은 안경제조업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목공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요. 도마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내가 만든 작품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직접 만든 도마를 선물하고 싶어서 강좌를 듣게 되었다는 이상희(50) 씨는 봉사하기 위해 목공을 시작했고 앞으로 직업으로 삼고 싶은 바람을 전했다. “목공은 체험을 많이 할수록 실력이 늘어요. 따로 목공 수업을 받고 있는데, 다음 주에 자격증 시험을 볼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목공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목공 직업체험교실을 진행한 다울협동조합 조기현(55) 대표는 철저한 준비를 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 일을 도모하면 목공으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목수에게 버려지는 나무는 없습니다. 새로운 쓰임을 위해 몸을 내어준 이 느티나무는 동네 어귀에서 오래도록 마을 주민의 그늘이 돼주었다가 수명을 다한 후 이곳으로 왔습니다. 나무의 생이야말로 이모작입니다.”
다울협동조합 조기현 대표와 일문일답
Q. 코로나19로 인해 오랜만에 강의가 열렸는데 수강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무엇보다 제가 더 기뻤습니다. 대구에서 31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 그야말로 전쟁통 같은 나날이었죠. 수강생들의 생생한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수업 내내 모두들 밝은 얼굴로 체험에 참여했습니다. 휴식시간에도 좀체 쉴 생각을 하지 않네요. 남자 수강생 한 분은 아내가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답니다. 도마를 고이 들고요.(웃음)”
Q. 중장년들에게 목공이 어렵지는 않은지,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은 있는지요?
“목공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재주 있는 사람보다 더 나아요. 적성이다 싶으면 목공지도사자격증을 따기 위한 심화과정을 이수해 앞으로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공방을 운영하거나 가구를 만들어 팔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겁니다. 베트남과 중국산 가구가 잠식한 국내 가구시장에서는 어렵습니다. 목공 교육을 하거나 반제품 납품을 하면 경쟁력이 있습니다. 체험용 반제품, 소품을 만들어 공방에 납품하면 됩니다. 혼자 할 수 없을 때는 같이 하면 됩니다. 함께하면 더 넓은 길이 열립니다.”
Q. 보람 있는 에피소드는요?
“시청 공무원으로 은퇴한 후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지내던 분이 있었습니다. 목공 체험을 한 후 치유목공실에서 대패질을 통해 서서히 컨디션을 회복하더니 목공체험지도사 3급, 2급, 1급을 차례로 따냈습니다. 1년 만에 이룬 성과였죠. 열의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목재문화체험장에 취업해서 성공적인 인생 후반기를 살고 계십니다.”
Q. 다울협동조합은 어떤 곳인지, 그동안의 성과가 있다면요?
“다울은 ‘너도나도 다 우리’라는 의미입니다. 조합의 시작은 은퇴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먼저 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손에서 망치를 놓는 순간 퇴직금도 없고 국민연금도 없죠. 순식간에 사회적 빈곤층이 됩니다. 스스로 살아보자는 의지로 2014년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2017년 말에 인정받았습니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은 200명 정도 됩니다. 이윤보다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고 교육 사업, 목공 사업, 집수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의 30% 이상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쓰고 있죠.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했습니다. 공공근로를 할 수 없었던 지난 몇 개월 동안에는 도마 만들기를 했습니다. 물론 시간당 일정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여기 쌓여 있는 도마가 그때 완성된 것들입니다.”
Q. 다울협동조합과 노사발전재단에서 진행하는 목공직업체험은 어떻게 다른가요?
“협동조합에서는 마을목수학교, 건축아카데미, 학교 밖 청소년 목공교실, 도시재생 기반 주민역량교육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주로 합니다. 노사발전재단에서는 중장년 일자리에 중점을 둡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미뤄지고 또 미뤄지다 지금에야 첫 강의가 열렸습니다. 체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찾는 기회를 주는 거죠. 작년에는 실업자 교육과정으로 목공교실을 진행했습니다.”
Q. 목공을 제2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과도한 기대나 환상은 금물입니다. 목공교실을 진행하다 보면 대뜸 언제, 어디에 취업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사장 입장이라면 당신을 목수로 쓰고 싶은가?’라고요. 먼저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하고요. 여기에 의지까지 있다면 빠른 시간 안에 기술 습득이 가능합니다.”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정원을 사랑한 작가 헤르만 헤세를 소개한다.
바이러스에게 혼쭐이 나는 시절이다. 연분홍 치마 한 번 걸쳐보지 못하고 봄이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역병의 시간들을 “인간은 위태롭지만 지구는 회복하는 중”이라 표현하는 이도 있다. 이 또한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혹독한 깨달음이겠다. 겸손을 배워야 할 날들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며칠 손에 들고 다녔다. 꽃과 나무를 심을 수 있는 한 뙈기의 땅을 사랑한 이 남자는 ‘작은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눈에 쉽게 띄지도 않으니, 잘 느끼고 보려면 고개를 높이 들라고 했다.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싯다르타’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출신 작가. 194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그의 명성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그가 정원 가꾸기의 달인이었고, 3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더러 있다.
헤세가 쉬는 방법
헤르만 헤세는 정원을 지독히 사랑했다. 자연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체험할 수 있고 삶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정원은 영혼의 쉼터이자 안식처였다. 꽃과 나무들이 만들어낸 색채의 물결이 마당에 가득해지면 마치 천국에라도 와 있는 양 행복해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었다.”
헤세는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 한 권의 책과 빵 한 조각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었던 어린 시절의 정원을 잊지 않았다. 그토록 소망했던 정원은 서른 살에 처음으로 갖게 됐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허름한 작업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 글은 해가 진 뒤에야 썼다.
초목에 물이 오르는 계절이 되면 그는 더 바빴다. 평화롭게 보이는 집들과 들과 꽃과 구름의 모습을 빠트리지 않고 화폭에 담았다. 친구와 지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한쪽에 수채화를 그려 넣곤 했다.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 없고 자신은 화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맑고 투명했다. 정원 가꾸기와 그림 그리기는 믿음과 자유를 얻기 위해 그가 휴식하는 방법이었다. 헤세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봤고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과정을 이해했다. 그가 식물들을 관찰한 기록들은 그래서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재배 식물 가운데도 알뜰한 것과 헤픈 것이 있다. 절약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또 낭비가 심한 것도 있다.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긍지를 갖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다른 식물에 기생하려는 것도 있다. 그 종이나 생명력이 고루하고 평범하다 못해 활기가 없는 식물이 있는 반면 어떤 것은 마치 위풍당당한 신사 같다. 그들 가운데도 좋은 이웃과 나쁜 이웃이 있다. 다정한 것이 있는가 하면 혐오스러운 것도 있다. 어떤 식물은 제멋대로 무한정 거칠게 피어나 당당히 살다 죽는 반면 볼품없는 존재 때문에 손해 보며 내내 굶주리고 창백한 모습으로 힘겹게 생명을 유지해가는 식물도 있다. 어떤 식물은 열매를 맺고 증식하면서 믿기지 않을 만큼 풍성하게 성장해가며 어떤 식물은 애써 돌봐야만 겨우 씨라도 남긴다.
스위스 몬타뇰라의 정원
정원과 함께한 후반의 삶은 비교적 평화로웠지만 그의 청년기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적응하지 못했고 부모에게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퇴학과 자살 기도 등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다. 결혼 후에도 아내의 정신병과 이혼, 세계대전을 겪으며 삶이 평탄치 않았다.
나치스에 반대하는 작가로 낙인찍힌 뒤 ‘배신자’, ‘매국노’라는 비난과 함께 탄압을 받던 헤세는 스위스로 망명한 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다. 1919년, 불혹을 갓 넘긴 나이에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에 정착한다. 조국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불행한 가정사로 방황하던 그가 마음 치유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그림은 종종 탈출구가 돼주었다.
그는 사교 활동보다 정원에 있길 좋아했고, 아무리 대단한 곳에서 강연 요청이 와도 몬타뇰라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40여 년간 이곳에서 거의 칩거하다시피 했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도움을 청할 때는 언제나 문을 열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작품세계는 더 확대되고 깊어져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탄생했다.
훗날 사람들은 헤세의 정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위 상류사회의 거드름을 피우는 속물은 보이지 않았고 (…) 그곳에서 필요한 것은 모양이 망가지고 가장자리 창이 넓은 밀짚모자였다.”
집 밖을 나서면 걷거나 또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서 목적지를 향하게 된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요즘은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 그리고 여행을 하거나 아주 먼 거리 이동을 할 경우엔 비행기나 기차, 버스는 물론이고 여객선 등의 교통수단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준다.
그동안 누가 뭐래도 여행의 맛은 기차였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각 지역의 모습과 계절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셀렌 여행길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KTX라는 빠른 기차를 이용하면 전국 아무리 먼 지역도 당일 여행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엄청난 시간 단축을 선사한 것이다.
얼마 전 섬 여행을 했을 때는 다섯 가지 이상의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KTX로 두 시간 달려간 도시에서 버스로 한 나절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조용하고 호젓한 섬 신안의 12사도 순례길을 앞에 두고 걷기 시작했다. 이동수단의 기본인 두 발로 긴 시간 걷는 행위가 사색과 치유의 시간을 준다는 것, 그래서 걷기 열풍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자전거로 돌아보아도 좋다. 근래 들어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언택트’(비대면) 이동수단으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분홍색 자전거를 빌려 천천히 섬을 돌아보는 재미도 있다.
다시 섬을 나올 때는 여객선을 타고 나와 약 한 시간 정도 요트를 타는 호사를 누렸다. 신안 섬 다도해를 즐기는 요트 투어가 있었다. 요트는 누구나 타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한다. 예전보다 대중화하고 있는 중이어서 가격도 많이 낮아졌기에 한 번 용기를 내볼 만하다. 누구나 즐겨봄직한 다채롭고 재미있는 해양 레포츠다. 우리나라에는 부산, 제주, 여수, 통영, 신안 섬 등 요트 타기 좋은 바다가 많다.
그리고 목포로 나와 역으로 가기 전에 잠깐 해상 케이블카로 도심을 즐겨볼 수 있다. 땅과 바다는 물론이고 하늘 높이 날아보자. 케이블카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목포 시내 전경과 유달산의 속살을 내려다볼 수 있다.
유달산 아래로 명량대첩의 요충지였던 고하도가 용의 모습으로 앉혀져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서 목포 근대문화 거리와 옥단이 길을 찾아본다. 내리막 끄트머리쯤에 세월호가 누워 있어서 바라보는 마음이 아프다. 틈새 시간을 이용한 도시 구경이다. 짧은 여행 중에 묵묵히 두발로 걷고, 버스, 자전거, 여객선, 요트, 해상 케이블카, 왕복 KTX가 함께했다.
우리에게 탈거리가 이뿐일까.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보트 타기와 패들보트가 있다. 부모 세대는 그저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구경이나 하는 줄 안다. 물론 패들보트는 강습을 받고 타도 일어나려면 물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아이들처럼 우뚝 서진 못해도 그저 물 위에 엎드려 유유히 손으로 물을 밀어내며 바다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 없이 재미있다. 아이들에게만 어울리는 놀이라는 고정관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카약을 한 번 타보는 건 어떨지.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보트 위에 둘이 앉아서 유유히 물 위를 나아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될 것이다. 이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다. 서툴게 노를 저어도 바다 위를 즐길 수 있다. 안전교육과 구명조끼, 안전요원까지 있으니 그리 겁낼 일은 아니다.
또는 바다 위를 빠르게 달리는 보트 타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신난다. 튀어오르는 바닷물을 맞으며 망망대해를 신나게 달려 바다 동굴이나 기암괴석에 다가가 신비로움을 확인하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상쾌함에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또 한 가지, 최근 어딜 가든 각 지자체에서 여행객 유치를 위해 마련한 시설 중 짚라인(짚와이어)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듯 출발해서 하늘길을 가르며 바다 위를, 그리고 산 위를 미끄러져 간다. 온 산하의 정경과 다도해의 아름다움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이나 전망대에서도 보이지 않던 풍광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 땅의 자연이 이리도 아름다웠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런 액티비티한 즐거움은 하동 금오산, 가평 남이섬, 단양 만천하 스카이워크. 보령 짚트랙, 강릉 아라나비 짚와이어, 정선 짚와이어, 김천 짚와이어와 출렁다리, 군산 선유도 등지에 가면 누릴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모험적이란 생각에 지레 겁낼 일은 아니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필수이고 사용법이나 주의사항만 잘 지키면 문제없다. 미리 몸무게와 키를 재고 동의서 작성과 해당 질환이 있는지 확인한다.
어렵거나 헷갈리는 것 하나 없이 쉽고 신나는 놀이다. 타기 전에 겁을 잔뜩 먹고 긴장하지만 막상 타고 나면 또 하고 싶어 한다. 하늘을 나는 스릴을 만끽하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짜릿함을 경험한다. 비행의 두려움도 단숨에 극복하게 된다. 연인들에게는 가성비 최고의 이색 데이트가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지역마다 스토리 투어 버스, 스토리 자전거, 하늘 자전거, 숲속 기차가 숲을 달린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다. 상공에서 걷는 아찔함을 즐기는 스카이워크, 출렁거림의 묘미를 즐기며 걷는 출렁다리도 지역마다 계속 생겨나고 있다.
굳이 해외까지 갈 필요 없다. 편리한 이동수단과 신나는 탈거리는 의외로 많다. 여행 떠나기 전에 미리 꼼꼼히 확인하고 예약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면 더 확실하다. 수고로운 여행이나 동적인 놀이는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라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62세, 교사로서의 35년 삶을 뒤로하고 명예퇴직 후 시작한 택시 운전. 아내와의 유럽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속쓰림과 몇 번의 토악질 끝에 찾은 응급실에서 시작된 투병생활.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 2년간 사투를 벌이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갑자기 배의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오늘 예약한 외래 진료를 기다리며 진통제를 몇 번이나 먹었는지 모릅니다. 더 이상 항암치료는 권해드릴 수 없다며 호스피스 입원에 필요한 진단서를 써준 의사는 외래 진료실을 나설 때까지 끝내 제 눈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정된 시간까지 이 고통을 견디는 일만 남은 걸까요? 차라리 그날이 오늘이면 좋겠습니다.
힘들게 견뎌온 치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말기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 주치의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호스피스 입원을 권유할 수 있습니다. 혹은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드릴 게 없습니다”라고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의 명시적인 말기 진단 이전에 이미 자신의 병이 악화돼가고 있음을 눈치 채는 환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말기 암 환자 가족들은 인터넷에서 말기 암 환자를 완치시켰다는 ‘OO주사, OO약침, OOO추출물’ 등에 대한 경험담을 보고 매달립니다. “호스피스 알아볼까?”라는 말은 모든 걸 포기하는 것 같아 입안에서만 머뭅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지 3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 밤이 정말 두려웠습니다. 물론 낮에도 통증이 끊임없이 몸을 웅크리게 했지만 특히 밤에 통증이 심해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밤새 안절부절못하는 저를 위해 며칠째 밤을 새운 아내도 연신 두통약을 삼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그렇게 망설이던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선택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의 첫인상은 제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의외로 병실 복도를 오가며 운동을 하는 환자도 있었고, 다리를 마사지해주는 봉사자들과의 대화 속에 간간이 웃음소리도 섞여 나오곤 하더군요. 저는 아주 엄숙하고 무거운 공기로 숨쉬기 답답한 병실을 예상했거든요. 입원하자마자 담당의사는 통증에 대해 이것저것 한참을 물었습니다. 바로 주사를 한 대 맞았고 수액병이 걸리자 10여 분 후부터 정말 놀라운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통증이 약간의 불편함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통증이 사라지자 정말이지 제가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적극적인 통증 조절을 통해 환자가 오늘을 잘 살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암 환자의 통증은 소위 ‘총체적 통증’(total pain)이라고 불리듯 신체적 문제뿐 아니라 심리·사회적 요인이 크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환자가 겪는 우울, 불안, 분노, 두려움 등의 심리적 문제는 약물 치료와 함께 지지적 상담을 통해 돕다 보면 완화될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온 지 이제 3주가 지났습니다. 지난주부터는 물만 마셔도 구토를 해 얼음을 입에 녹여 갈증만 줄이고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입마름 때문에 종종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불편하지만 영양제를 맞아서인지 배는 별로 고프지 않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주선해 요법실에서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양복을 입었습니다. 올가을에 아들과 결혼 예정인 예비 며느리도 사진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말렸지만 고집을 좀 피워 제 영정사진도 부탁해 찍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수고를 하나 줄여준 것 같아 내심 마음이 놓입니다. 미용 봉사를 받아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돈해두길 잘했습니다.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임종을 앞둔 마지막 몇 주의 시간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귀중할 것입니다. 호스피스 팀은 이 기간이 환자와 가족들이 사랑을 확인하고 혹은 갈등을 치유하는 금쪽같은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다양한 이벤트를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생전 장례식’, ‘자서전 출판기념식’, ‘미술 전시회’, ‘미니 결혼식’, ‘가족사진 촬영’, ‘가족음악회’, ‘가족여행’ 등등 다양한 이벤트가 오로지 ‘한 가족’만을 위해 준비됩니다. 종종 이런 시간들은 환자 사후에 가족들이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돕는 마법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임종 과정의 환자를 위한 별도의 ‘임종실’(1인실)이 운영됩니다. 호스피스 팀은 임종 과정이 온전히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임종기의 신체적 변화에 대해 가족들에게 미리 알려 불필요한 두려움과 오해가 생기지 않게 돕습니다. 또한 처음 경험할 수도 있는 장례 과정 등 사후 절차에 대해 충분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돌봄은 환자가 병동에 머무는 시간뿐 아니라 사후 사별가족들에 대한 지지와 상담 등을 포함합니다. 대부분의 호스피스 전문 의료기관은 체계적인 사별가족 프로그램 및 고위험 사별가족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자기에서, 익숙함에서, 나의 성(城)에서. 이것이 여행의 첫 번째 의미다. 이런 떠남의 관성을 가지고 있는 여행은 나에게 세상의 숨결을 들려준다. 그래서 여행은 내 삶의 보물지도다.
여행에서 가끔 마주치는 어둡고 그늘진 자리는 그대로인 채로 그 자리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을 때 아름다운 곳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그늘과 친밀해져야 자아에 더 익숙해지고, 더 강해진다. 우리 근대사에서 수탈의 아픈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시 목포가 그렇다.
목포는 고즈넉하면서도 생의 치열함과 남도의 향기가 섞이지 않고 각각 공존하는 건강한 샐러드 같은 도시다.
유달산에서 본 굽이진 영산강에서는 망국의 한을 가슴에 묻은 채 바람에 펄럭이는 돛과 노 젖는 소리에 장단 맞춰 사공이 부르는 뱃노래 ‘목포의 눈물’이 들려온다. 구슬픈 가락의 리듬이 애잔하고 참 서럽다.
유달산 주변으로 역사의 어둠이 남아있는 곳들이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
목포 최초의 서구적 근대 건축물로 1900년 일본 영사관으로 지어져 광복 이후 관공서, 도서관, 문화관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현재는 전시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영산로 29번길 6
◇ 목포근대역사관 2관
192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문을 연 착취의 최첨병 역할을 하던 곳이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이곳은 바다를 매립한 지역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주 거주지였다. 주변에 아직 일본식 가옥 형태의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목포시 번화로 18
◇방공호 대피 시설
목포근대역사관 1관 뒤편에 있는 당시 미군의 공습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방공호. 동굴 안에는 당시 징용으로 공사에 동원되어 수탈당하는 모습을 인형으로 전시해 놓았다. 지난 시절 아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는 생채기다.
해지는 풍경을 좋아한 어린왕자는 슬플 때마다 해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해지는 구경을 갔다. 유달산 주변에서 느꼈던 아픔이 하찮게 여겨질 정도의 주황빛 노을이 목포에도 있다. 바다와 섬이 만나는 선에 떨어지는 태양은 아픔을 더 큰 슬픔으로 치유해주는 명의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공원은 목포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행복 바이러스의 진원지다. 평화 광장에는 포토존 ‘LOVE GATE’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앞 잔잔한 바다 위 워터 스크린에서는 겨울철 과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세계 최대의 부유식 바다 분수와 음악, 레이저 빛이 어우러진 초대형 해상 음악 분수쇼가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276대의 분사용 노즐과 96대의 분사용 펌프가 작동하여 70M 높이까지 분수를 쏘아 올린다. 뿐만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하는 사연소개, 프로포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여행자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해안을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걷다 보면 ‘천연기념물 500호’인 갓바위를 만날 수 있다. ‘두 사람이 갓을 쓰고 서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에는 배를 타고 나가야만 볼 수 있었는데, 걸어가서도 볼 수 있도록 보행교를 바다 위에 설치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세 가지 종류의 각기 다른 결을 가진 공간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생의 공간, 지나온 시간을 증언해주는 치유의 공간,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창조의 공간이다. 목포의 미래를 위한 공간은 해안 길을 따라 조성돼있다.
◇ 국립 해양유물 전시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바다 속 수중문화유산을 발굴하여 전시한 곳이다. 해양문화체험 등 종합적인 해양문화전시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료관람이며,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이다.
제1전시실: 서해와 남해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고려시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제2전시실: 중국 무역선(신안선)과 동아시아 해상교역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제3전시실: 어촌 민속을 중심으로 전시
제4전시실: 한국의 전통 배를 주제로 한 배 전시
◇ 목포자연사 박물관
7개 전시실을 갖춘 지구의 자연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전시관 앞 공원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 각 계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다. 여기의 입장권으로 옆에 있는 문예역사관, 생활도자관 전체의 관람이 가능하다.
아이들과 동행하는 여행이라면 이곳 문화의 거리에서 하루를 보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추천 맛 집
해빔
해변공원 길 건너편에 해초비빔밥이 있다. 이곳에서 멍게해초 비빔밥, 낚지해초비빔밥 등 각종 해초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맛의 깔끔함과 해초의 싱싱함이 그만인 곳이다. 목표시 미항로 83
돌집 식당
누구나 한번쯤은 남도식당의 푸짐한 반찬과 인심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근래에는 남도 식당들의 음식도 바닷가 특유의 짠맛이 많이 순화되어 누구의 입맛에나 잘 맞는 편이다. 건어물거리와 종합수산시장 근처에 있는 목포식 백반집이다. 남도식당의 문화와 음식이 가진 장점을 경험할 수 있다. 목포시 복만동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