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 두라
- 남산은 크지 않으나 용장골 냇물은 순수하고 곱살하다. 남산 특유의 허연 화강암 암반과 암벽도 곳곳에서 풍치를 돋운다.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용장주차장에 파킹하고 이정표를 따라 용장골을 탐승한다. 용장사지까지는 약 2㎞. 용트림하는 아름드리 노송들과 수많은 불상을 볼 수 있는 삼릉골 코스를 통해 용장사지에 오를 수도 있다. 경주 남산을 ‘노천박물관’이라 부르는 건 신라의 유적이 많아서다. 능선과 골짜기에 산재한 절터만 100여 곳이다. 불상, 석탑, 석등, 연화대 등 불교 유산이 200기 이상에 달한다. 이 산을 통째 ‘불국’(佛國)으로 봐도 지나칠 게 없다. 남산을 오르는 탐방로는 20여 개. 그 가운데 수려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용장골 코스가 썩 빼어나다. 산길이 평평해 활개 치며 걷기에 마땅하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오르막에도 헐떡거린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노루처럼 날래게 산을 오르던 때의 몸이 아니다. 이럴 때면 몸을 흘러간 과거 시간의 형적을 느낀다. 아울러, 지금 옷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시간의 기척을 깨닫는다. 기억해야겠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이 삶의 절정임을. 여름 나무들은 크거나 작거나 다들 풍요롭다. 초록 잎사귀들이 허공에 뒤엉켜 길 위로는 푸른 그늘이 내린다. 계류는 참 맑고 풍성하다. 좁은 목에서 돌돌거리던 물소리가 여울에선 솰솰 소용돌이친다. 바위 턱을 만나면 쿵쿵쿵 소쿠라진다. 각색의 물소리가 흥겹다. 물은 제 갈 길 가는 게 즐거운가? 낮은 곳으로, 한사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하심(下心)으로 흐뭇한가? 사람이 물처럼 살기는 어렵다. 용렬한 자에게 물은 준령처럼 너무 높다. 분수를 알아 조신하게 살기에도 숨이 차 마냥 푼수로 산다. 임제 선사가 이렇게 일렀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만 극락이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임제는, 사람들아, 평상심 안에 길이 있다! 그리 귀띔한다. 너무 폼 잡지 말라 한다. 너무 멀리 보지 말라 한다. 산과 물에 기죽어 현기증 느끼지 말라 한다. 극락이 무슨 서천(西天) 허공에 있겠느냐. 지금 네가 발 디딘 자리가 환한 길이다. 저기가 아니라 여기가 청산이다. 그리 가르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설잠교(雪岑橋)를 건너자 길이 가팔라진다. 설잠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법명으로, 그가 무시로 오간 길목이라 봐 설잠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시습이 생의 한때를 이곳 남산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용장골 탐승은, 이 산의 바람소리이거나 물소리이거나, 나무이거나 바위이거나, 하다못해 환(幻)이거나 혼이거나, 그 무엇이로건 가슴으로 느껴질 법한 김시습의 잔영을 탐사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생애는 처연했으나, 행장은 올곧았고 정신은 자유로웠다. 나는 좀스러워 쓸쓸하나 일쑤 김시습을 생각하며 위안을 느낀다. 다산, 추사, 그리고 김시습을 조선의 3대 ‘매력남’이라 여기며. 비탈길에 접어들면서 땀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몸은 어리굴젓처럼 물크러지는 기분이니 가관이다. 그러나 짤막한 비탈이라 잠깐 사이에 목적지로 삼은 용장사지(茸長寺址)에 닿는다. 절터라지만 여겨볼 게 없을 지경으로 산등성이의 비좁은 둔덕이다. 그래서겠지, 절터 저편 위 평지나 암벽에 성물을 조성했다.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이 그것들이다. 삼층석탑은 균형미로 아름답고, 마애여래좌상은 사실적 표현으로 생생하다. 가련한 건 석불좌상이다. 머리를 잃은 부처이니 딱하다. 그러나 부처에게 무슨 머리가 필요하겠나. 머리를 버리는 게 부처다. 번뇌가 고이고, 망상이 들솟는 머리를 타파한 게 부처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간장종지처럼 비좁은 머리에 의존한다. 잔머리를 최대치로 쓰며 골머리 아파한다. 부처는 이런 중생이 가여워 울고 싶은 심정일 게다. 김시습은 이곳 용장사에서 조선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다. 글을 쓰면서 그가 사용한 게 주로 머리였을까?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쓰지 않았을까? 절개로 살았던 생육신(生六臣)의 하나였던 김시습은 타락한 권력의 바깥에서 시대를 절규한 방외자(方外子)였다. 곡학아세의 선수들을 조롱한 아웃사이더였다. 세상이 울지 않을 때 울었고, 세상이 웃지 않을 때 웃었던 독존(獨存)으로 일세의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유랑한 길섶엔 기화(琪花)처럼 요요한 게 피었으니 바로 시라는 꽃이었다. 김시습이 생시에 남긴 죽음의 메시지는 매우 조촐한 것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주구려!’라 했으니.
- 2020-07-27 08:00
-
- 1박으로 단박에 즐기는 세계 문화 체험
- 그 나라를 대표하는 테마파크나 박물관 등은 해외여행을 할 때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다. 물론 현지에서 즐기는 게 제일 좋겠지만, 여의찮을 땐 멀리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하루 만에 그 매력을 엿볼 만한 곳들이 있다. 게다가 현지에서도 보기 힘든 진귀한 아이템들도 마련돼 있어, 그야말로 해외여행 못지않은 알짜여행을 할 수 있다. CHAPTER 1 한국 속 작은 세계 마을을 만나다 제주에서 물 만난 물의 도시 ‘베니스랜드’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재현한 테마파크다. 물의 도시로 알려진 베니스의 풍광이 물 많기로 유명한 제주의 지형과 만나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세계 오지 박물관과 베네치아 갤러리 등에서 전 세계의 귀한 유물들을 관람하거나, 곤돌라(베니스 시내를 운항하는 작은 배)를 타고 베니스 운하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23개의 테마 정원이 조성된 ‘아일랜드 가든’과 시원한 물줄기를 내리꽂는 ‘베니스폭포’, 베니스 광장의 가장 오래된 카페를 재현한 ‘플로리안’ 등 이색적인 풍경을 벗 삼아 다채로운 체험을 즐겨보자.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2575 (입장료 성인 1만2000원) 베니스의 추억을 간직하려면 >> 해외 관광 명소를 방문하고 나면 꼭 들르는 곳이 바로 기념품 가게다. 베니스랜드의 ‘기념품 숍’에서는 베니스와 관련된 각종 상품을 비롯해 세계 오지에서 공수한 독특한 아이템과 제주 특산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청평 호반 위 아름다운 소행성 ‘쁘띠프랑스’ 한국 속 작은 프랑스 마을을 뜻하는 ‘쁘띠프랑스’에서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문화와 정취를 고루 느낄 수 있다. 생텍쥐페리 기념관을 비롯해 어린 왕자 체험존, 유럽 인형의 집, 기뇰극장, 프랑스 전통주택 전시관 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메종 드 오르골’에서 진행하는 오르골 시연과 야외극장 마리오네트 퍼포먼스는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 수백 년 역사가 깃들어 있는 오르골과 희귀 마리오네트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마을 곳곳에는 무려 150년 된 목재와 기와, 바닥까지 프랑스에서 가져와 재현한 전통 가옥이 있다. 그밖에 쁘띠프랑스 한홍섭 회장이 100여 차례 유럽을 오가며 직접 공수해온 골동품과 미술품도 다양하게 전시됐다. 경기 가평군 청평면 호반로 1063 (입장료 성인 1만 원) 당일치기가 아쉽다면? >> 즐길 거리 많은 쁘띠프랑스에서의 하루가 아쉽게 느껴진다면, 고급스러운 유럽풍 객실에서 하루 더 머물러도 괜찮다. 2인실부터 최대 10인실까지 다양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객실이 크기별로 마련돼 있다. 숙박 다음 날 아침에는, 맑은 공기를 쐬며 ‘봉쥬르 산책길’을 거닐어도 좋다. CHAPTER 2 영월에서 오가는 인도와 아프리카 오감으로 즐기는 인도문화체험 ‘인도미술박물관’ 1981년부터 인도미술에 매료돼 현지에 머무르며 인도에 관한 주제로 여러 개인전을 개최해온 박여송 관장과 인도 지역 연구가인 남편 백좌흠 교수가 모은 다양한 인도미술품들을 전시한다. 라자스탄 지역의 페인팅과 세밀화를 비롯한 인도 전역의 부처상과 힌두인상, 패널 조각과 탈 등으로 꾸며졌다. 전시품 관람과 더불어 인도 미술 기법, 헤나 보디페인팅, 요가와 만다라, 인도 의상, 인도 음식 체험 등을 통해 인도 문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강원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899-6 (입장료 성인 5000원)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아프리카 여러 부족의 생활, 의식, 신앙, 축제 등과 관련한 조각, 그림, 생활도구, 장신구 등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16개국의 주한 아프리카 대사관이 출품한 아프리카 문화전을 반영구적으로 선보인다. 올해 12월까지는 ‘2020년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문화체육관광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마트한 아프리카 배낭여행’, ‘컬러풀 아프리카’ 등을 진행한다. ‘나만의 비즈팔찌 만들기’와 ‘나만의 아프리카 부족 마스크 만들기’ 등도 체험 가능하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592-3 (입장료 성인 5000원) CHAPTER 3 세계 문화를 휘리릭, 헤이리 한 바퀴 콜라의 이국적 매력이 콸콸 ‘잇츠콜라박물관’ 세계 각국 유명 작가들이 참여한 콜라 디자인과 관련 장식품, 생활용품 등을 모았다. 해외 각지에서 모은 병, 뚜껑, 올림픽 스페셜 에디션 등 그 나라마다의 매력을 담은 콜라를 만난다는 게 흥미롭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이색적인 사진을 남기거나 콜라를 활용한 음료도 즐길 수 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6-40 (입장료 성인 4000원, 변동 가능) 세계 어린이들의 동심을 담은 ‘세계인형박물관’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공수한 1000여 점의 전통 인형을 전시한다. 박물관 입장과 동시에 작은 목각 인형 하나를 선물로 받는데, 관람을 마친 뒤 나만의 인형으로 꾸며볼 수 있다.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프랑스의 마리오네트,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다. 경기 파주시 헤이리마을길 76-100 (입장료 성인 5000원) 내 손으로 연주하는 ‘세계민속악기박물관’ 120여 개국의 민속악기, 음반, 민속품 등 2000여 점의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시아, 중동, 아메리카, 유럽 등 문화권별로 나뉘어 전시돼 있는데, 곳곳에서 각국 현지에서도 보기 힘든 유물급 악기들이 눈에 띈다. 몇몇 악기들은 만져보고 두드리며 직접 연주도 해볼 수 있다. 11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레인스틱(빗소리가 나는 라틴아메리카 악기)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고, 8월 29일에는 볼리비아 음악 특별공연이 열린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63-26 (입장료 성인 5000원) 사진 이지혜 기자, 각 사 제공
- 2020-07-27 08:00
-
- 트레킹을 건강하고 안전하게즐길 수 있는 방법
- 배낭 메기 의류 등 가벼운 것은 배낭 아래쪽에 두고 무거운 물건은 제일 위쪽에 배치한다. 배낭 잘 싸기만큼 중요한 것이 잘 메기다.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반나절 이상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하므로 출발할 때부터 내 몸에 잘 밀착되도록 단단히 살피고 가는 것이 좋다. 1 배낭 바닥 라인이 허리 아래로 늘어질 경우 보행이 불편할 수 있다. 또 가슴 부위에 고정해야 할 스트랩이 목을 압박하기도 한다. 2 어깨와 배낭은 최대한 일직선을 유지해야 한다. 배낭이 상체에 완전히 밀착되도록 멘다. 등산 스틱 사용법 스틱 길이는 오르막에서는 짧게, 내리막에서는 길게 세팅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다이내믹하게 이어지는 곳에서는 스틱 길이를 유연하게 바꿔가며 걷기가 힘들다. 이럴 경우 길이를 자주 바꾸지 않아도 스틱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스틱 길이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길이는 평지 위에서 스틱을 잡았을 때 팔의 각도가 90°로 직각을 이룰 때다. 스틱 손목걸이는 아래에서 위를 관통하도록 한다. 오르막에서 잡는 법 오르막을 만났다고 해서 급하게 스틱의 길이를 짧게 조절할 필요는 없다. 경사도에 따라 스틱의 허리 부분을 잡으면서 올라가도 된다. 땀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평소 잘 잡는 부분에 별도의 테이핑 처리를 해두면 좋다. 내리막에서 잡는 법 스틱의 머리 부위를 누르면서 내려가면 굳이 스틱의 길이를 길게 조절하지 않아도 된다. 이때 스틱이 돌너덜에 걸려 다칠 경우를 대비해 손목걸이는 착용하지 않는다. 트레킹화 제대로 신기 1 신발 바닥에 부드러운 인솔(안창)을 깔아주면 편안한 보행을 돕는다. 시중에 다양한 맞춤형 인솔을 제작 판매한다. 2 걸을 때 발이 트레킹화 안에서 많이 움직이면 물집이 생기거나 발톱이 상할 수 있다. 트레킹화 끈이 풀리지 않게 잘 묶어준다. 다만 보행 중에는 발이 붓기 때문에 발등 부분의 끈은 여유를 주는 게 좋다. 또 산에 올라갈 때는 끈 조임을 느슨하게 해서 발바닥 전체가 닿도록 하고, 내려올 때는 끈을 바짝 묶어 발가락이 신발 코에 닿지 않도록 한다.
- 2020-07-23 08:00
-
- "아는 만큼 즐긴다"
- 아름다운 자연을 유쾌하고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 알아야 할 트레킹의 기초! 기초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트레킹이 유행하고 있지만 과연 배낭 속에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다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완벽한 트레킹이란 집을 떠나 산을 오르고 걷다가 다시 집으로 무사하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에서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웬만큼 안다고 자부해도 의외로 모르는 정보들이 있다. 이번 기회에 정리해봤다. 배낭 속 장비 리스트 걷고자 하는 코스, 당일 날씨, 동행자 인원 등에 따라 배낭 속 장비 리스트는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트레킹 필수 장비를 꼽아봤다.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비를 보완해 완벽한 배낭을 꾸려보자. 헤드램프 모든 일정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면 좋겠지만 시간은 예정보다 지체되기 십상이다. 특히 여름철의 경우 저녁 8시까지 시야가 밝기는 해도 산속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두워진다. 여분의 배터리와 함께 배낭 윗부분에 헤드램프를 챙기자. 바람막이 재킷(방수·방풍 재킷) 부지런히 걸을 때는 온몸에 열이 나지만 5분만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식으며 체온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바람막이 재킷을 챙겨 휴식을 취할 때 입으면 보온이 된다(일기예보를 체크해 방수·방풍 재킷을 준비한다). 선글라스 강렬한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한다. 선크림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트레킹 전 미리 충분히 바른다. 땀과 함께 씻겨 내리는 액체류보다는 스틱용을 추천한다. 물병 1~2ℓ짜리 물병을 준비한다. 트레킹 시작 20~30분 전에 500ℓ정도를 마신다. 물을 미리 마셔두면 걷기 중 갑자기 목이 마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가면 기호에 따라 커피 등 차도 마실 수 있다. 물컵 둘레길 곳곳에서 만나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일 때 개인 물컵이 있으면 좋다. 방수주머니 땀이 나거나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때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제품 등을 보관할 수 있다. 깜빡이 날이 어두워진 상황에서 길을 잃었을 때 구호용으로 유용하다. 호루라기 비상시에 구호용으로 준비한다. 반사밴드 이른 새벽 혹은 저녁 보행 중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다. 벌레퇴치제 여름산에는 벌레가 많다. 트레킹 컨디션을 쾌적하게 유지하고 싶을 때 준비한다. 약국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손수건 땀을 비롯한 이물질을 닦을 때 유용할 뿐만 아니라 부상을 입었을 때 지혈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휴식 중에는 벤치 위에 깔고 앉을 수 있다. 기초 구급약 리스트 트레킹 중 구급약품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면서도 막상 준비하려면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허둥지둥할 때가 많다. 가장 기본이 되는 구급약들을 정리해봤다. 작은 파우치에 넣어 가면 비상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소독용 에탄올 티슈 상처 부위에 묻은 흙을 닦아낼 때 사용한다. 연고류 외상용 기본 구성으로 준비한다. 밴드류 환부의 세균 침투를 막아준다. 거즈 환부를 보호해준다. 압박붕대 접질리고 골절을 당했을 때 고정용으로 활용한다. 스포츠 테이핑 발목과 무릎 등에 무리가 올 때 테이핑을 활용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도 쓸 수 있다. 진통제 갑작스러운 두통, 복통, 근육통에 시달릴 때 사용한다. 에어파스 삠, 타박상, 근육통 등에 쓰면 좋다. 칫솔 넘어져 다쳤을 경우 상처 부위의 이물질을 긴급히 제거할 때 요긴하다. 절단 주사기 산행 중 벌레에 쏘이거나 가시가 박혔을 때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 나무젓가락 사고로 신체 부위가 골절됐을 때 고정용으로 활용한다. 노끈 나무젓가락 등으로 고정한 부위가 움직이지 않도록 묶을 때 사용한다. 행동食 리스트 행동식의 필수 요건이 있다. 첫째, 소화 흡수가 잘 돼야 한다. 둘째, 쉽게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유통기한이 길고 배낭 속에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 음식이 좋다). 셋째, 가벼워야 한다. 넷째, 칼로리가 높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다섯째, 무엇보다 내 입맛에 잘 맞아야 한다. 기호 식품 위주로 준비하되 이동하는 중간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준비한다. 미숫가루 포만감을 갖게 해주면서 갈증도 없애준다. 이온분말 땀으로 배출되는 전해질을 보충할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을 이용해도 되지만 물에 타서 마시는 분말을 준비하는 게 좋다. 에너지바 빠른 시간 안에 당을 충전해야 할 때 먹는다. 비스킷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제공한다. 육포류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골고루 섭취하면 트레킹 중 체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견과류 단백질을 제공한다. 초콜릿류 에너지바와 함께 빠르게 당을 충전할 때 좋지만 지병이 있을 경우 과도한 섭취를 하면 안 된다. 인스턴트 쌀국수 기름기와 염분이 많아 국물까지 다 섭취하기 부담스러운 컵라면의 단점을 보완한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오이 수분이 많고 쉽게 먹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트레킹 메이트다. 분말커피 기호에 따라 준비한다. 걷기 중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 2020-07-22 08:00
-
- 관악산 자락 걸으며 한갓진 반나절 산림욕
- ‘서울 둘레길’은 서울시 동서남북을 둘러싼 산과 산을 잇는 총연장 157㎞, 8개 코스로 나뉜 원형 둘레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서울을 대표하는 크고 작은 산들의 속살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 서울 시내의 면면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이 중 서울 둘레길 5코스 관악산 구간은 해발 629m의 관악산 둘레를 도는 산길이다. 바위가 많고 산세가 깊고 웅장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즐겨 찾는다. 관악구와 금천구를 가로지르며 이어지는 이 길의 거리는 12.7㎞. 지하철 2·4호선 사당역에서 1호선 석수역까지 이어진다. 넉넉히 반나절 호젓하게 걸으면서 삼림욕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낙성대공원, 서울대 정문, 천주교 삼성산 성지, 관음사와 호압사 등 풍부한 역사문화 현장도 두루 만날 수 있다. 관악산 구간은 ①사당역~서울대, ②서울대~호압사, ③호압사~석수역 3개 코스로 나뉜다. 사당역~서울대 코스는 민속신앙과 불교신앙을 엿볼 수 있고, 서울대~호압사 코스는 흥미로운 설화와 풍수와 역사를 만날 수 있고, 호압사~석수역 코스는 풍부한 삼림욕을 통해 심신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민속신앙과 불교신앙의 조화 사당역~서울대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 경기권으로 이어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다. 밀집한 상가들을 뒤로하고 관음사 방향으로 걷는다. 번잡한 역을 벗어난 지 5분쯤 지나자 길은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으로 이어지고 금세 조붓한 산길과 닿는다. 조금 전의 소음은 온데간데없다. 도심의 회색빛 대신 온통 초록빛이다. 첫 번째 경유지인 관음사에 도착한다. 관악산 북동 기슭에 자리한 이 절은 예로부터 서울 근교 사찰 가운데 영험 있는 관음 기도도량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시대의 도선국사가 정한 비보사찰(裨補寺刹, 이름난 곳이나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을 돕는다는 도참설과 불교 신앙에 따라 세운 절) 중 하나인 관음사 입구에는 수령이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본당 주변을 한 바퀴 돈 뒤 낙성대공원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오른다. 관음사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당골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바위와 만난다. 과거 무당들이 기도하던 곳이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며 촛불을 켰는지 바위 입구가 까맣게 그을려 있다. 곳곳에 나지막한 조망터가 있어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여유도 잊지 않는다. 공원 내의 작은 매점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고 간단히 요기도 할 수 있다. 흔히 대학 이름이나 바위 이름으로 오해받곤 하는 낙성대는 고려시대의 영웅 강감찬이 태어난 생가 터다. 강감찬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자리라 해서 낙성대(落星垈)로 부르게 됐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면 재밌다. 1973년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천주교 분위기 물씬 풍기는 삼성산 자락 서울대~호압사 이제 서울대 방면으로 이동해 관악산 구간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서울대 정문을 지난다. 정문 근처에는 관악산 관리사무소가 있어 서울 둘레길을 비롯한 관악산 등산 관련 안내 자료를 구할 수 있다.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다음 목적지인 천주교 삼성산 성지를 향해 걷는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장돼 있다. ‘삼성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말 명승 나옹, 무악, 지공 등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곳에 천주교 성직자였던 3명의 성인 선교사 유해가 안장됐고, 1970년 이후 천주교는 삼성산을 ‘세 명의 성인 유해가 안장된 성지’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관악산 구간의 마지막 포인트인 호압사에 이른다. ‘호랑이의 기운을 누른다’는 의미를 지닌 절 이름이다. 풍수적으로 볼 때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 위치인데, 호환이 많았던 산세를 누르기 위해 호랑이 꼬리를 누를 수 있는 자리에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호압사에서 석수역에 이르는 구간은 곳곳에 삼림욕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끝나가는 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다가오는 주말,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서울 둘레길 관악산 구간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달랠 수 있다. 당일치기 둘레길 트레킹을 위한 정보 코스 정하기 먼저 동행할 사람의 성별, 연령, 체력, 산행 경력 등을 고려해 코스를 정한다. 당일 트레킹일 경우 소요시간은 하루 4~5시간 정도, 거리는 10㎞ 내외, 누적 고도차는 1000m를 넘지 않는 게 좋다. 일행 중 노약자가 있다면 좀 더 쉬운 코스를 선택한다. 날씨, 교통, 편의시설, 지형, 중간탈출로 등 여러 가지 조건도 함께 체크한다. 잘 걷기 최대한 효율적으로 걷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짐을 줄여 배낭을 가볍게 해야 한다. 걸을 때는 발바닥 전체로 노면을 내딛는다. 경사도에 따라 상체를 앞으로 굽히고 내딛는 발바닥에 몸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잘 쉬기 적당히 쉬면서 걸어야 큰 피로감 없이 트레킹을 지속할 수 있다. 처음 20~30분은 가급적 쉬지 말고 체온을 올리고 근육을 깨우며 천천히 걷는다. 휴식을 취할 때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겉옷을 입어 보온한 뒤 약간의 물과 간식을 섭취한다. 너무 오래 쉬면 활성화된 신체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 근육이 굳어지므로 적당히 쉬는 게 좋다. 잘 먹고 마시기 열량이 있으면서 소화가 잘되는 행동식을 준비해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한다. 행동식은 조리하지 않고 즉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건빵, 비스킷, 치즈, 초콜릿, 사탕, 육포 등을 기호에 따라 챙긴다. 물은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 3분의 1모금 정도 입에 머금고 입술과 입안을 적신 뒤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긴다.
- 2020-07-14 08:00
-
- 다 함께 돌자 지구 한 바퀴
- 등산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국의 등산 도서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의 부제는 ‘산에 자유가 있다’이다. 이 제목을 빌려 필자는 ‘트레킹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트레킹은 등산보다 난이도가 낮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 아름다운 자연과 교감하며 걸을 때, 얼마나 자유로운가. 트레킹을 즐기려면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트레킹이 등산과 다른 점, 건강에 좋은 이유, 철학자들의 트레킹 예찬론, 시니어들이 즐길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아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언택트 시대에 트레킹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감염 걱정 없이 자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은 느리고 고지식한 여행이다. 일반 여행은 차를 타고 여러 관광지를 찍고 다니지만, 트레킹은 온전히 두 발로 길을 여행한다. 속도가 느리기에 길에서 만난 새와 나무, 풀 한 포기와도 친구가 된다. 자연과 호흡하며 걷다 보면 느린 속도에 적응되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치유는 트레킹이 은밀하게 건네는 선물이다. 느린 여행, 트레킹의 매혹에 빠지다 트레킹의 사전적 정의는 다소 애매하다. 백과사전에는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과 들과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 여행’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목적지 없이 바람 따라 떠나는’ 트레킹은 없다. 트레킹은 목적이 뚜렷할수록 좋다. 그래서 필자는 나름대로 트레킹에 대한 정의를 내려봤다. 일반적으로 등산은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트레킹은 정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정상을 대신하는 새로운 목적을 찾아야 한다.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트레킹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된다. 개인 취향에 따라 꽃길, 물길, 단풍길, 눈길, 강길, 섬길, 문학예술, 유적답사 등 다양한 목적과 테마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트레킹은 육체적 행위이며 상상력이 강조되는 정신적 행위다. 트레킹은 걷기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유산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꾸준히 걸으면 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쓰여 있다. 우리 선조들은 걷기의 위대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걷기가 각종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유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인간은 걸으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발을 다양한 교통수단이 대신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자신의 저서 ‘걷기 예찬’을 통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주장했다. 걷기를 통해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다. 걷기를 삶의 모토로 삼고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은 19세기 철학자 니체다. 그는 우울증을 걷기로 치유했다. 스위스 엥가딘 고원의 실스마리아(Sils Maria) 마을에 방을 얻어 지내며 호수를 걸었다. 이곳에서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탄생했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작품을 걸으면서 완성했다. “앉아서 지내는 삶은 성령을 거스르는 진정한 죄악이다. 걷기를 통해 나오는 생각만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어디 니체뿐인가. 칸트, 루소, 디킨스 등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걷기를 예찬했다. 시니어 트레커들이 주의해야 할 점 필자는 모험적 트레킹을 즐긴다. 모험은 인간의 피를 뜨겁게 하는 힘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뤘을 때의 느끼는 희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모험의 목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체력과 능력에 맞게 정하면 된다. 북한산 또는 지리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백운대나 천왕봉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완주는 더없이 훌륭한 목표다. 몇 년 전 필자는 오랫동안 꿈꿨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포터 없이 홀로 히말라야를 자유롭게 걷자는 목표를 세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와 고산병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을 향해 걸어갈 때 느꼈던 행복함과 충만함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 히말라야 산속 어느 로지에서 만난 5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혼자 온 트레커들이었다. 한국, 미국,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등 국적도 다양했다. 트레킹을 좋아해 세상 구석구석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들과 밤새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한국의 제주 올레길을 추천했고, 그들에게 알래스카, 아이슬란드, 러시아 등의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알려줬다. 10년 후에 알래스카에서 만나자는 우리의 두루뭉술한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시니어들이 트레킹을 즐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체력과 건강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고는 무리하고 얕잡아볼 때 나온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하고 솔직해야 한다. 관절이 안 좋으면 스틱을 사용해 무릎이 받는 하중을 줄이는 게 필수다. 스틱은 관절이 받는 하중의 30%를 줄여준다. 트레킹 코스는 무리하게 짜지 말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게 좋다. 걸을 때는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자. 술은 과음을 부르는 법이고, 취하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술은 걷기를 마치고 마시는 걸 원칙으로 정하자. 트레킹에는 등급이 없다. 걷기를 통해 행복을 즐기는 자가 최고의 트레커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는 약 4만 ㎞다. 하루에 11㎞ 정도를 1년쯤 걸으면 약 4000㎞다. 10년쯤 걸으면 지구 한 바퀴 거리다. 그 과정에서 얻는 건강과 반짝반짝 빛나는 사유는 보너스다. 그렇게 꾸준하게 걷다가 하늘이 부르면 미련 없이 떠나자. 나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이면 좋겠다. ‘열심히 걷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 진우석 시인이 되다 만 여행작가, 걷기 달인으로 통한다. 학창 시절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걸었다. 저서로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이 있다. 현재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두발로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 2020-07-09 08:00
-
- 천국의 산책, 알프스에 빠지다
- 2010년 전후를 즈음해 나는 알프스로 발길을 돌렸다. 히말라야 지역을 지겨울 정도로 쏘다닌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본의 아닌 ‘가난의 전시’가 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지역의 국가들은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덕분에 물가가 말도 안 되게 싸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트레커에게는 반가운 일일지 몰라도, 나이 든 어른으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나 자신이 마치 ‘가난의 갤러리를 배회하며 우쭐대는 부르주아 관람객’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 알피니즘의 역사를 봐도 히말라야보다는 알프스가 우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프스는 안중에도 없었다. 히말라야에 그토록 집중한 것은, 박정희 시대가 낳은 ‘성과 우선주의’의 우스꽝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높은 곳에 먼저 오르는 놈이 장땡’이었던 시절의 유물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진열대에서도 치워진 지 오래다. 등반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트레킹이라는 개념이 시작되고 크게 발전한 지역 역시 알프스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알프스는 제쳐놓고 히말라야만 고집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알프스 트레킹에 대한 오해들 알프스 트레킹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그중 첫 번째가 “히말라야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알프스 트레킹을 할 경우 대개 산장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산장의 편의시설(샤워실, 화장실, 침대, 식당 등)은 매우 만족스럽다. 최소한 서울의 3성 내지 4성급 호텔 수준이다. 3성급 이상의 호텔에 머물면 당일 저녁식사와 다음 날 아침식사를 제공받는데 비용이 10만 원 수준이다. 과연 비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1박에 3000원도 안 되는 히말라야의 로지에 비하면 비싸다. 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다르지 않은가. 알프스 트레킹의 매력 중 하나는 음식과 와인이다. 산장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서울의 웬만한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 레스토랑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근사한 와인을 제값 주고 마실 수 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알프스 주변 국가는 이른바 ‘서양의 선진국’들이다. 선진국에서의 트레킹 비용을 최빈국과 단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두 번째 오해는 “알프스에 가면 자기 짐을 모두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랬다. 인건비가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프스에는 차량과 케이블카 등을 이용한 딜리버리 시스템이 정착한 지 오래다. 즉 커다란 카고백에 짐을 잔뜩 넣어 가도, 당일 필요한 짐만 배낭에 챙겨 길을 떠나면, 딜리버리 서비스맨들이 그날의 종착지인 산장에 나머지 짐을 옮겨준다.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이제 짐이 무거워 알프스에는 못 가겠다는 말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그림엽서 속 풍경 같은 ‘투르 뒤 몽블랑’ 알프스 트레킹의 시그니처 코스는 당연히 투르 뒤 몽블랑(Tour du Mont Blanc, TMB)이다. 프랑스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걸어서 넘는 아름다운 길이다. 당신이 알프스로 진출한다면 제일 먼저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곳곳에 깔끔한 편의시설이 넘쳐나는, 그림엽서 속 풍경 같은 길이다. 그래서 일단 알프스 트레커들의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면, 이제 눈을 돌려 알프스 곳곳에 숨겨진 트레킹 코스들을 들여다보라. 당신은 건강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살아생전에 그 매혹적인 코스들을 다 둘러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나는 2010년 이후 거의 매년 여름을 알프스에서 보냈다. 알프스 자락의 3대 산악도시로 흔히들 프랑스의 샤모니, 스위스의 체르마트, 이탈리아의 쿠르마유르를 꼽는다. 대부분의 트레킹 코스는 이 도시들 중 한 곳 이상을 통과한다. 내가 가본 아름다운 코스들 중 한 곳은 투르 몬테로사(Tour de Monte Rosa, TMR)다. 체르마트를 끼고 돌며 마터호른(Matterhorn, 4478m)을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알프스 전역은 스키장용 케이블카 노선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체력이 부치는 사람은 차량과 케이블카를 이용해 다음 목적지까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다. 심산(沈山) 작가, 심산스쿨 대표, 코오롱등산학교·한국등산학교 강사. 산악 관련 저서로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 등이 있다.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을 수상했다.
- 2020-07-01 08:00
-
- 대자연 속 '동행' 히말라야를 걷다
- 내가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0년대 초반 아내와의 신혼여행 때였다. 최초의 행선지는 안나푸르나 지역이었는데, 안나푸르나 라운드도 아니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도 아니고, 그저 푼힐 전망대까지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짧은 여정도 불치의 히말라야병(病)에 걸리기에 충분했다. 첫 만남의 짜릿했던 경험 이후로 나는 한동안 거의 매년 겨울을 히말라야에서 보냈다. 때로는 가족과, 때로는 산행 친구들과, 때로는 원정대원들과 히말라야의 이 계곡 저 능선을 정신없이 쏘다닌 것이다. 광대한 대자연의 장엄미.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이다. 엄청난 스케일의 파노라마 앞에 서면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렇게 작아지다가 끝내 소멸해버려도 좋으리라는 야릇한 안도감마저 든다. 현대문명의 여러 이기(利器)로부터 멀어져 단순한 육체적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또 다른 매력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 걷고, 배고프면 먹고, 해가 지기 전에 걸음을 멈춘 다음, 행복한 피로감을 즐기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풍부한 산행 경험과 대단한 체력을 갖춰야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 내지 오해에 불과하다. 히말라야 지역은 포터 시스템이 매우 잘돼 있다. 그들이 짐을 옮겨다준다. 당신은 그저 작은 배낭에 당일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룰루랄라 걸으면 그만이다. 서울 근교의 작은 산에 오를 때보다 배낭은 오히려 더 가볍다. 간식이나 물 따위야 배낭에 넣고 가겠지만 본격적인 식사에 필요한 음식이나 조리기구 등은 모두 포터들이 짊어지고 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년을 넘어선 가정주부들은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면 모두들 입을 벌리고 찬탄을 금치 못한다. 삼시 세끼 남이 차려준 밥을 먹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되니까. 히말라야 트레킹의 식사 문제에 대해 한마디. 서양 트레커들은 대체로 현지 음식을 먹는다. 젊은 트레커들은 아예 집채만 한 배낭에 자신이 먹을 것을 모두 싸들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시니어에게 권할 방법은 못된다. 현지 음식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다. 트레킹 기간이 일주일 이하라면 또 모르겠다. 보름 혹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 코리언 쿡(cook)을 고용하는 게 낫다. 코리언 쿡은 한국 요리에 능한 현지인(네팔, 인도, 티베트, 무스탕 등)을 말한다. 특히 네팔 지역에는 수도 없이 오고 간 한국 원정대들 덕분에 음식 솜씨가 매우 뛰어난 코리언 쿡이 많다. ◇구름공장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의 시그니처 코스는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다. 두 코스에는 편의시설(숙박시설이나 식당 등)이 잘 발달돼 있어 불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어찌 보면 트레킹 코스라기보다는 관광지에 가깝다. 베테랑급 트레커는 더 이상 가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초보 트레커라면 일단 이곳부터 졸업(?)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해서 일단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감을 잡고 나면 이제 무한한 코스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당신을 끊임없이 유혹할 것이다. 내가 다녀온 곳들 중에서 추천하라면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꼽겠다. 이 코스의 최고 매력은 단연 부디 간다키(Budhi Gandaki)다. 부디 간다키는 마나슬루(Manaslu, 8163m)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인데,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고 계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다. 나는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서 그토록 유장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본 적이 없다. 단언컨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강이다. 마나슬루를 ‘구름공장’(Cloud Factory)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운 첨봉(尖峰)에서 끊임없이 구름들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야영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칸첸중가(Kan chenjunga, 8603m)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권한다. 이곳에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 있는 것이라곤 희미한 옛길의 자취와 밤마다 해일처럼 쏟아지는 별빛뿐. 덕분에 매일 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 한다. 코스도 제법 길어 거의 3주 이상 걸린다. 히말라야 트레킹 루트들 중 가장 때 묻지 않은 코스는 아마 이곳일 터. 그래서 칸첸중가 트레킹에는 짊어지고 갈 짐이 많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도 네팔 혹은 인도 출신의 포터들이 그 일을 대신해줄 것이다. 당신은 지갑을 열어 그들에게 합당한 삯만 지불하면 된다. 심산(沈山) 작가, 심산스쿨 대표, 코오롱등산학교·한국등산학교 강사. 산악 관련 저서로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 등이 있다.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을 수상했다.
- 2020-06-30 08:00
-
- 보폭이 닮은 친구와 산에 오르다
- "산에 가자" 오랜만에 전화한 동갑내기 친구가 대뜸 산에 가자고 한다. 정년까지 일하겠다는 당찬 그녀. 코로나19로 장기간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떠올랐지만 서로 바쁘기 전에는 자주 산행을 하던 친구라 단칼에 거절이 어렵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조심조심 다녀오자고 마음을 굳힌다. 그녀와 나는 걸을 때 보폭이 비슷하다. 빠르거나 더디지 않으니 산길에서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편이다. 오랜만에 산에서 먹는 밥맛은 또 얼마나 좋을까? 쳐져있던 마음이 한껏 부풀어 들뜬 맘으로 집을 나선다. 불광역 2 번 출구에서 장미공원 방향으로 걷다보면 북한산 족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코스다. 시작부터 가파른 만큼 재미도 있다. 맘이 통했는지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족두리봉으로 향했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진분홍 꽃들이 길 양 쪽에 마주 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길에 진달래가 이렇게 많았나? 새삼 놀랍다. 겨울이 멈칫대는 사이 몰래 온 봄이 족두리봉과 연결된 좁은 오솔길 사이에서 노닐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 누런 흙먼지가 날린다. 중턱쯤 오르다 마스크를 벗었다. 때마침 능선을 타고 넘어오던 바람이 맑은 공기를 훅 몰아준다. 누구랄 것 없이 크게 숨을 들이킨다. "와아! 너무 좋다~" 산 중턱에서 마시는 공기는 집에서 마실 때와 확실히 다르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혹은 코로나19에서 벗어난 곳이라고 생각해선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족두리봉 너른 바위를 등지고 앉아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마을을 내려다본다. 바짝 말라 건조한 하늘 아래 봉긋봉긋 솟은 아파트와 빌딩, 사이사이 납작납작 엎드린 다가구 주택들. 탁한 느낌인데 신기하게 하늘은 푸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맛있다. 후다닥 챙긴 밥과 조금씩 덜어내 온 반찬이 꿀맛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마주하니 마음도 여유롭다. 사는 게 뭐라고 그리 아옹다옹 하냐고 즐겁게 살자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이 텅 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 손질해온 딸기를 입에 넣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시간이 갈수록 그립다고. "그렇구나… 그렇겠지…."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그저 끄덕끄덕 고갯짓이라 슬프다. 족두리봉을 끼고돌아 향로봉으로 향했다. 진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나무 사이사이마다 만개했다. 사진을 찍어 확인해보니 수분이 모자라 꽃잎이 바짝 말랐다. '멀리선 아름답게만 보이더니 너도 애쓰는 중이었구나' 하긴, 사람도 그렇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한 걸음 가까이 들어가 보면 걱정과 근심이 있다. 사람이나 꽃이나 서로 적당한 거리에 있을 때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달콤한 행복을 떠올리다 습기라곤 없는 진달래꽃을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본다. 텁텁한 꽃 향이 입안에 퍼진다. 기분이 좋다. 나란히 걷는 친구의 입에도 넣어준다. 몇 해 전, 혼자 배낭을 메고 산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난 날은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다. 비를 피하느라 바위 아래 멈췄다 내려오는 길에 따먹었던 젖은 아카시아 꽃잎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 후로 산에서 꽃을 보면 입안에 넣고 씹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처럼 먹어도 되는 진달래, 아카시아가 대부분이지만. 그녀의 수다가 줄었다. 진분홍 꽃잎을 오물오물 씹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오늘 같은 날은 아카시아 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씹을수록 달콤한 그 꽃. 아카시아 꽃을 씹으며 행복하던 그 느낌이 그립다. 그녀와 함께 오물오물 달콤한 행복을 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음엔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지. 아카시아 꽃 필 무렵 산에 가자고 해야겠다.
- 2020-04-08 10:04
-
- 기어코 또 찾은 '하얀 산'
- 겨우내 기다려 딱 하룻밤 품에 안겼던 하얀 세상, 그 하얀 산에서 내려오자 그리워지기 시작해 지난 열흘간 몸살을 앓았다.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하나?’ 겨울이 멀어져 갈수록 크고 따스하게 밀려드는 그리움, 마음의 고향 설산이 그려내는 ‘산 그리메’였다. 기어코 다시 배낭을 꾸려 흥얼거리며 그곳으로 갔다. 열흘 만에 가는 길은 변함 없는데 눈은 다 없어졌다. 녀석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땅속으로 숨었나? 아무리 살펴도 차창 밖 산 속엔 눈이 없다. 도성고개(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와 일동면 사직리에서 가평군 북면 적목리로 이어지는 고개)를 올라 강씨봉(가평군 북면 적목리)을 거쳐 청계산까지로 그려두었던 당초의 산행계획을 포기했다. 눈이 없다면··· 아쉬움이나 달래고자 회목현을 생각하며 광덕고개를 찾았으나 새벽까지 내린 비가 이곳엔 진눈깨비였는지 도로 차단기가 길을 가로막는다. 눈 산행을 포기하기로 하고 방향을 돌려 사창리를 거쳐 도마치 고개로 올라, 그야말로 눈요기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지나가는 몇 개의 사이클 라이딩 팀을 만났다. 오늘도 젊은이들이 광덕고개, 그리고 사창리에서 도마치 넘어 가평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힘든 코스를 라이딩한다. “파이팅!” 응원을 보낸다. 도마치 도로 정상에 오르니 엄청난 광경이 선물처럼 펼쳐졌다. 남쪽을 바라보는 내게 등(북면)을 내어주는 산. 너무 멋지다. 아, 하얀 산! 열흘 동안 생각하던 하얀 산이 거기 있었다. 왼쪽 화악산(1468m), 가운데 명지산(1267m), 오른쪽 국망봉(1168m)이 하얀 이불을 걷지 않고 누워있다. “야호!” 눈이 그친 능선에는 순백의 영혼이 춤춘다. 소담스럽게 내린 눈을 이고 불그레 석양이 물드는 산길을 걷는 마음이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설화가 가득 핀 등산로를 따라 걷는 기분은 삭막한 잿빛 겨울 산행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용소폭포에서 무주채폭포를 거쳐 러셀은 커녕 길 흔적도 없는 국망봉 오름길엔 낡은 표지 리본만이 길을 겨우 이어준다. 비록 이정표는 2.7㎞이었으나 걸으면서 다음 발 디딤이 손에 닿을 만큼의 급경사와 무릎을 덮는 눈 사면을 두 시간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거리를 세 시간을 올라 정상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정상의 조망은 지난번 도마봉보다 더 좋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가르는 화악산과 독립 능선 명지산 줄기를 제외하면 한북정맥 최고봉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힘이 없다. 대기가 좀 더 깨끗했더라면 지난번 일몰만큼 멋진 연출이 있었을 텐데···. 텐트를 펼치고 360도 지형, 특히 휴전선 너머 평강고원 그리고 빛나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젊음을 사르던 철원평야를 바라보며 기억의 파편들을 불러 모으는 여유를 즐기는데 또 한 사람 백패커(주로 백팩에 등산 장비나 식량을 넣고 다니며 자유롭게 산야를 거니는 사람)가 올라온다. 그가 “조용히 쉬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지나온 봉우리로 다시 갈게요.” 하면서 주춤한다. 고운 마음씨를 가진 40대 후반의 사나이다. “젊은이와 함께하면 나로선 더 좋을 것 같네요. 괜찮다면 옆에 자리를 잡으세요!” 오히려 내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그렇게 우리는 술잔을 곁들여 산을 이야기하며 함께 밤을 건넜다. 일출을 안개 속에서 만나며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드는 특별한 아침을 맞았다. 한결 따뜻해진 3월의 첫날 행복 가득한 여유를 즐기며 패킹과 뒷정리를 한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다른 내림 길을 밟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니 조심하라고 그는 주의를 줬지만, 눈이 많아 오히려 쉽게 거리가 줄어들었다. 겨울을 풀어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경쾌한 리듬을 타고 들린다. “정령님 또 올게요! 어쩜 여름이 오기 전에 찾아뵐게요!“ 산의 맑은 영혼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 2020-03-09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