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속 '동행' 히말라야를 걷다

기사입력 2020-06-30 08:00 기사수정 2020-06-30 08:00

[산·들·바람 따라 사색여행] PART 2. 심산의 트레킹 이야기①

내가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0년대 초반 아내와의 신혼여행 때였다. 최초의 행선지는 안나푸르나 지역이었는데, 안나푸르나 라운드도 아니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도 아니고, 그저 푼힐 전망대까지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짧은 여정도 불치의 히말라야병(病)에 걸리기에 충분했다.

첫 만남의 짜릿했던 경험 이후로 나는 한동안 거의 매년 겨울을 히말라야에서 보냈다. 때로는 가족과, 때로는 산행 친구들과, 때로는 원정대원들과 히말라야의 이 계곡 저 능선을 정신없이 쏘다닌 것이다. 광대한 대자연의 장엄미.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이다. 엄청난 스케일의 파노라마 앞에 서면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렇게 작아지다가 끝내 소멸해버려도 좋으리라는 야릇한 안도감마저 든다. 현대문명의 여러 이기(利器)로부터 멀어져 단순한 육체적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또 다른 매력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 걷고, 배고프면 먹고, 해가 지기 전에 걸음을 멈춘 다음, 행복한 피로감을 즐기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히말라야 트레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풍부한 산행 경험과 대단한 체력을 갖춰야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 내지 오해에 불과하다. 히말라야 지역은 포터 시스템이 매우 잘돼 있다. 그들이 짐을 옮겨다준다. 당신은 그저 작은 배낭에 당일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룰루랄라 걸으면 그만이다. 서울 근교의 작은 산에 오를 때보다 배낭은 오히려 더 가볍다. 간식이나 물 따위야 배낭에 넣고 가겠지만 본격적인 식사에 필요한 음식이나 조리기구 등은 모두 포터들이 짊어지고 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년을 넘어선 가정주부들은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면 모두들 입을 벌리고 찬탄을 금치 못한다. 삼시 세끼 남이 차려준 밥을 먹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되니까.

히말라야 트레킹의 식사 문제에 대해 한마디. 서양 트레커들은 대체로 현지 음식을 먹는다. 젊은 트레커들은 아예 집채만 한 배낭에 자신이 먹을 것을 모두 싸들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시니어에게 권할 방법은 못된다. 현지 음식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다. 트레킹 기간이 일주일 이하라면 또 모르겠다. 보름 혹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 코리언 쿡(cook)을 고용하는 게 낫다. 코리언 쿡은 한국 요리에 능한 현지인(네팔, 인도, 티베트, 무스탕 등)을 말한다. 특히 네팔 지역에는 수도 없이 오고 간 한국 원정대들 덕분에 음식 솜씨가 매우 뛰어난 코리언 쿡이 많다.

▲히말라야 칸첸중가 베이스캠프 트레킹.(심산 작가 (심산스쿨 대표))
▲히말라야 칸첸중가 베이스캠프 트레킹.(심산 작가 (심산스쿨 대표))

◇구름공장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의 시그니처 코스는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다. 두 코스에는 편의시설(숙박시설이나 식당 등)이 잘 발달돼 있어 불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어찌 보면 트레킹 코스라기보다는 관광지에 가깝다. 베테랑급 트레커는 더 이상 가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초보 트레커라면 일단 이곳부터 졸업(?)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해서 일단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감을 잡고 나면 이제 무한한 코스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당신을 끊임없이 유혹할 것이다.

내가 다녀온 곳들 중에서 추천하라면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꼽겠다. 이 코스의 최고 매력은 단연 부디 간다키(Budhi Gandaki)다. 부디 간다키는 마나슬루(Manaslu, 8163m)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인데,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고 계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다. 나는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서 그토록 유장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본 적이 없다. 단언컨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강이다. 마나슬루를 ‘구름공장’(Cloud Factory)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운 첨봉(尖峰)에서 끊임없이 구름들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야영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칸첸중가(Kan chenjunga, 8603m)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권한다. 이곳에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 있는 것이라곤 희미한 옛길의 자취와 밤마다 해일처럼 쏟아지는 별빛뿐. 덕분에 매일 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 한다. 코스도 제법 길어 거의 3주 이상 걸린다. 히말라야 트레킹 루트들 중 가장 때 묻지 않은 코스는 아마 이곳일 터. 그래서 칸첸중가 트레킹에는 짊어지고 갈 짐이 많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도 네팔 혹은 인도 출신의 포터들이 그 일을 대신해줄 것이다. 당신은 지갑을 열어 그들에게 합당한 삯만 지불하면 된다.

▲히말라야 칸첸중가 베이스캠프 트레킹.(심산 작가 (심산스쿨 대표))
▲히말라야 칸첸중가 베이스캠프 트레킹.(심산 작가 (심산스쿨 대표))

심산(沈山)

작가, 심산스쿨 대표, 코오롱등산학교·한국등산학교 강사. 산악 관련 저서로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 등이 있다.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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