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에 사는 오영자(52·가명)씨는 요즘 불만이 많다. 당뇨병 치료 중이어서 아침저녁으로 약을 챙겨먹는 것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얼마 전 의사가 인슐린 주사로 치료 방법을 바꿔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복부에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하다니… 인슐린 주사는 치유가 어렵다는 증거라는 주변의 이야기도 자신을 짓누른다. 그녀의 고민은 당연한 것일까? 건국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송기호(宋基壕·46) 교수에게 당뇨 환자들의 일반적인 고민에 대해 물어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당뇨병은 일명 ‘성인병 4종세트(당뇨, 고혈압, 고지혈, 통풍)’의 대표 주자로 꼽힐 만큼 흔한 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선천적으로 포도당을 연소하는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소아 당뇨병을 1형이라고 부르고, 서구화된 식생활이나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세포가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연소하지 못하는 것)이 떨어지는 상태를 2형이라고 부른다. 성인이 되어 발병하는 경우는 2형으로 보면 된다. 유전이나 감염 등도 2형 당뇨병의 원인으로 유추된다.
당뇨병은 혈관병이다
송기호 교수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당뇨병은 정말 완치가 안 되는 병인가?”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대답은 예스였다.
“대부분의 경우 당뇨병은 완치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젊을 때 비만으로 당뇨에 걸렸다가 체중 감량 후 완치한 사례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죠.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완치가 안 된다니 겁부터 날 법하다. 하지만 송 교수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한다. 당을 조절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치료만 잘하면 문제될 일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와 포도당 연소에 관한 병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당 수치’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진짜 주의해야 할 부분은 그다음부터라고 송 교수는 지적한다.
“당뇨병을 무서운 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합병증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당뇨병 환자는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잘 쌓입니다. 당연히 콜레스테롤이 쌓이면서 생기는 병이 문제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서운 것은 대혈관 합병증이에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것들이죠. 그래서 당 수치뿐만 아니라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조절도 함께 신경 써야 합니다.”
당뇨 합병증 중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망막병증이나 통증, 저림 증세가 나타나는 신경병증 역시 미세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혈관병의 일종.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당뇨병에 의해 망막의 혈관이 손상된 상태를 의미한다. 망막병증은 당뇨 환자의 약 60%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당뇨의 가장 큰 복병은 합병증
안타깝게도 당뇨는 혈관성 질환 외에도 다양한 합병증이 따라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당뇨병성 족부병증(당뇨발)이다. 당뇨발이라 불리는 당뇨병성 족부병증은 여름철 당뇨 환자를 위협하는 당뇨 합병증 중 하나. 하지 절단, 족부궤양 등으로 대표되는 당뇨발은 당뇨병성 신경병증에 의해 상처 발생이 쉬워지는 동시에, 고혈당으로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 않아 발생한다. 따라서 당뇨 환자들은 상처가 발생하지 않도록 발을 잘 관리해야 한다.
폐렴을 당뇨 합병증으로 보기도 한다. 당뇨병 환자는 면역력 감소와 신체기관의 기능 저하로 인해 감염질환에 특히 취약해 감염질환의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지역사회 획득성 폐렴의 경우 건강한 성인에 비해 당뇨병 환자에서 발생 위험이 최대 3.1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깨가 굳는 오십견(유착성관절낭염)도 대표적인 당뇨 합병증 중 하나. 전체 인구 중 오십견 환자가 2~3% 정도인 반면 당뇨 환자는 36%로 5배 이상 발병 위험이 높다. 특히 당뇨 환자의 경우 일반 오십견 환자에 비해 더 통증이 심하고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먹는 약 vs 주사제 무엇이 다를까
당뇨를 치료하는 방법은 먹는 약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환자에 따라 인슐린을 직접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선천적인 1형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 주사가 필수다.
먹는 약과 주사제는 체내에서 작용하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 주사제는 인슐린을 몸속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먹는 약은 췌장 등 소화기관에서 인슐린 분비를 좀 더 활발히 하도록 자극하거나, 이뇨를 촉진해 당 배출이 잘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송 교수는 “당뇨병 초기 환자의 경우 인슐린 주사를 사용해 혈당을 잘 잡아주면 6개월 이내에 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간혹 주사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계시는데, 치료 효과가 크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특히 당뇨병을 오래 앓으신 분들은 약을 써도 당 조절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인슐린 주사가 효과적이죠”라고 설명한다.
일부 환자들은 ‘주사제=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송 교수의 설명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초기 환자에게 사용하기도 하고, 먹는 약의 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삶의 질이 나아질 수도 있다.
당뇨 약 오래 먹어도 될까
당뇨병은 평생의 친구라고 표현할 만큼 오래 함께해야 한다. 이는 당뇨 약 역시 평생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별 문제는 없을까? 송 교수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약을 많이 먹는다고 체내에 무언가가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24시간 동안 대사되면 사라져요. 오래 먹는다고 문제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간혹 약을 오래 먹으면 좋지 않다고 안 드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경우 혈당 조절이 안 돼서 더 심각한 병까지 얻게 됩니다. 당뇨 약은 무조건 드셔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당뇨 약이 췌장에 무리를 주거나 췌장암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오해하는데, 이 역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뇨 약과는 무관하게 당뇨병 환자의 췌장암 발병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1.5배 정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할 때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는 있다.
나이 들수록 더 위험한 병
시니어의 경우 당뇨병 발병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당을 소비하는 양도 줄어드는 데다 근육의 양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은 줄고 내장지방은 증가해요. 근육 감소는 당뇨뿐만 아니라 낙상 등 다른 질환의 발병 가능성도 높이기 때문에 운동은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관절이 좋지 않다면 아쿠아로빅이나 실내자전거를 이용한 운동이라도 하시는 것이 좋고, 가능하다면 걷기가 가장 좋은 운동이니 일주일에 150시간 이상 약간 땀이 날 정도로 걷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 당뇨병 발병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고혈압, 중풍, 만성신부전 같은 병들이다. 의료진은 환자의 나이와 여명에 따라 맞춤 치료를 진행한다. 여명이 많지 않은 암환자들이 무리하게 혈당 조절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콤한 음료수, 당뇨 환자에게는 독
당뇨 환자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역시 음식이다. 혈당 관리가 음식 섭취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당뇨병학회(www.diabetes.or.kr)를 방문해보면 식생활에 대한 안내가 매우 상세히 나와 있다. 얼마나 먹고 식사 계획은 어떻게 수립하면 좋은지, 외식은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에 관련한 내용들이다. 또 계절별 식단이나 요리법도 알 수 있다.
송 교수는 “식단을 짜서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기본적으로 빵이나 케이크와 같은 가공된 음식을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쌀 역시 백미보다는 가공이 덜 된 현미를 먹고, 고기보다는 생선을 드시고, 야채를 많이 드세요. 그리고 소식하는 습관도 아주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가 특별히 주의할 것을 강조한 것 중에는 음료수가 있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 오렌지주스와 같은 과즙 음료들이다. 당뇨병 환자들은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될 독이라고 송 교수는 말한다. 당뇨에 좋다고 소문난 음식들 역시 맹신해서는 안 된다.
“당뇨병 의사들에게 여주, 돼지감자, 누에가루, 달맞이꽃종자유, 해독주스와 같은 것들은 아주 익숙한 것들이에요. 환자들이 건강식품만 믿고 약을 끊는 경우가 있거든요. 환자에게는 치명적이죠. 당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들은 되레 간수치만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을 복용하시면서 적당히 드시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맹신은 절대 안 됩니다. 방송에 나오는 검증 안 된 일반인의 경험담들도 믿지 마세요.”
당뇨병 소모품비용지원제도를 아시나요?
당뇨병 환자들에게 약값 외에도 부담되는 것이 있다. 바로 혈당 검사지나 채혈침, 인슐린 주사기, 1회용 주삿바늘 등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2015년 11월 15일부터 모든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국민 소모품 구입비용을 지원한다. 본인 비용으로 구매하면 구매 비용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건강보험 당뇨병 환자 등록→처방전 발급→의료기기 판매업소에서 제품 구입→요양비 청구순이다. 언뜻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다니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관련 절차를 도와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지원 금액이 적지 않기 때문에 지금 병원을 다니고 있다면 반드시 챙기자.
거친 바다 마을 출신의 사내라 해도 이 우주선 같은 치료기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폭풍우 속 배 위가 더 속 편하지 않았을까. 돌아가는 기계 위에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의 소음은 조용했지만 시끄러웠다. 임재성(林在聲·56)씨는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계가 큰 병을 낫게 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암(癌)이라는 큰 병을 말이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보통 암이라고 하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던 어떤 사람이 느닷없는 선고에 당황하게 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많다. 그런데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임재성씨는 그에 반해 억울한 구석이 많은 경우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던 그는 교직에 있는 아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평탄하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사업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지됐고, 그의 활달한 성격에 주변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자녀도 1남 1녀다. 마치 동사무소 입구에 꽂혀 있는 홍보물 표지 사진 속 가족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반짝이는 가족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다.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강검진에서 B형 간염에 감염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년 빠짐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원래 건강에 자신이 있었어요. 실제로 간염 환자가 겪는다는 식욕부진이나 피로감 같은 것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어요. B형 간염도 어머니를 통해 받은 것이니 크게 동요할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정기적인 검사만 제때 받으면 되겠지 하고 평소처럼 생활했어요.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요. 그때만 하더라도 주(主)님이 아닌 주(酒)님을 모실 때였죠(웃음).”
그 시절부터 그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B형 간염은 까딱하면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왔기 때문에 건강검진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균열은 조금씩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 광주에서의 건강검진 결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간암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말. 하지만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정기검사 때마다 만났던 의사의 태도였다.
“간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아직 B형 간염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랬던 그 의사에게서 느닷없이 암 진단을받았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 상황에서 요즘 의술이 좋아져 초기 간암은 치료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위로가 위로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암 선고는 그에겐 충격이었다. 여느 암 환자처럼 그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부정과 분노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 죽기 전에 손주는 볼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해야 하나, 고통은 어느 정도나 될까, 더 괴로워지기 전에 차라리 생을 끝내는 것이 나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의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검게 변해 죽어 있는 물고기들이 바닷가로 잔뜩 밀려오는 악몽을 꿀 정도였다.
그렇게 암 선고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처가 쪽 친척으로부터 일산으로 올라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일산에 국립암센터가 있으니 진단이든 치료든 그곳이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곳 아니겠냐는 조언이었다. ‘약사님’ 친척의 조언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 길로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러고는 국립암센터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김태현(金泰現·46) 교수를 만났다.
비장의 카드 ‘양성자치료기’
김태현 교수는 “임재성씨는 간암 환자 중 우리 주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의 환자예요”라고 설명했다 .
“B형 간염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독 한국과 중국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이에 반해 일본과 서양인들은 C형 간염 보균자가 많죠. 최근에는 간염 예방 백신의 보급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 수가 줄고 있지만, 그래도 B형 간염 보균자는 우리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이 간염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염증이 일어났다 나았다를 반복하는데, 이러다 암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아요.”
임씨의 경우 간암 초기였기 때문에 경동맥 화학색전술로 치료를 했는데, 원하는 만큼 예후가 나오지 않아 간암고주파열치료술까지 시도했다. 경동맥 화학색전술은 간 전체에 여러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도록 약을 뿌리는 방식이고, 간암고주파열치료술은 특정 암세포에 고주파를 쬐어 높은 마찰열을 발생시켜 괴사시키는 치료법이다.
“문제는 임재성씨의 증세가 다발성(多發性)이라는 것이었죠. 암세포가 또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그 위치가 애매했어요. 접근이 무척 어려운 부위라 수술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성자치료였어요.”
400억원 넘는 꿈의 치료기
양성자치료기는 CT나 방사선치료기와 같은 ‘의료기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료시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도 장비가 먼저 자리 잡은 뒤에 그 위로 건물이 지어졌다. 지어진 건물 안으로 장비를 넣는 것이 불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양성자치료 장비는 가속기 반경이 4km 정도였다. 우주의 기원을 좇는 입자가속기와 유사한 가속기를 통해 수소 원자의 핵을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면 튕겨져 나오는 방사선을 받아 암세포에 쏘이는 방식이다.
의사들에게 이 장비가 꿈의 장비로 불리는 이유는 일반적인 방사선치료 장비와 달리 주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일반 방사선 장비는 방사선을 투과할 때 암세포 앞뒤의 정상 조직이나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방사선 조사각을 이리저리 돌려 쪼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양성자치료기는 정확히 암세포에만 조준사격이 가능하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미미하다. 암세포를 죽인 뒤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은 셈이다. 일반적인 방사선치료가 식욕부진이나 설사, 두통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는 2007년부터 본격 치료를 시작했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에 한 대가 더 도입돼 국내에 2대가 운용 중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약 480억원이었고, 삼성서울병원이 밝힌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1000억원 선이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치료 시설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60대가 안 되는 귀한 장비다.
치료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예전의 10분의 1 수준이 됐다. 암종, 치료기간, 치료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만~800만원 수준이다.
김 교수는 “최대한 건강한 간 조직을 유지시키는 데 가장 주의를 기울였어요. 임씨와 같이 만성 간변병증이 있는 경우는 낮은 백혈구·혈소판 수치 때문에 출혈이 잘 멈추지 않아 수술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치료가 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어요. 다행이죠.”
암 환자 더욱 위험하게 하는 건 ‘얇은 귀’
임씨가 양성자치료기를 통해 본격적인 치료를 받은 것은 2016년 2월부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사들은 가능성과 확률을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B형 간염 보균자는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B형 간염 보균자가 많은데, 그에 비해 경각심은 너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와 함께 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곳이 있어요. 바로 언론이에요. 요즘 종편에서 의학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믿어선 안 될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암 환자는 기본적으로 귀가 얇아질 수밖에 없어요. 마음이 다급하니까요. 이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 엉터리 프로그램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는 주변의 다른 암 환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모임을 갖는 등 활동을 해왔는데, 불필요하게 효과도 없는 건강식품에 돈을 쏟아 붓는 사람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효과가 좋다고 암 환자들을 유혹하는 각종 식품들에 대해 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말한다.
“흔히 암에 좋다는 음식 중 상당수는 몸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되레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간암은 간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인데 간을 쉬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러니 예후가 좋을 리 없죠.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 수치가 나빠져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원인은 음식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난 운이 좋은 사람”
임재성씨는 그래도 스스로를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간암이라는 장벽을 만났지만 남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비교적 일찍 암을 발견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덕분에 초기에 치료를 받았잖아요. 또 간암에 효과적이라는 양성자치료기를 알게 되어 혜택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기 직전에 건강보험 적용이 돼서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치료 과정에서 임상시험 대상자로 뽑혀 치료비 부담도 줄였고요.”
양성자치료는 아직 모든 암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일부 암종을 대상으로 2015년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 급여화가 됐다.
“워낙에 가무에 능했는데, 이제는 술과 이별을 해서 대신할 만한 것이 필요했죠. 그래서 드럼연주를 시작했어요. 절로 흥이 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더라고요. 보통 큰 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왜 신경 안 써주냐, 왜 이건 안 해주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신의 병은 자신이 챙겨야 해요.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이 좋아지길 바라면 그게 이뤄지겠어요? 또 이런저런 주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의료진의 진료에 따르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시니어들은 고령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크고 작은 질환에 시달린다. 흔히 이야기하는 노화의 과정인 셈이다. 다양한 질환은 부위와 병증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시니어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대부분의 병들은 증세가 가볍다면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바로 피부병. 단지 가렵고 변색이 되는 것을 떠나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건선(乾癬)은 겨울철 건조한 환경과 함께 시니어들을 속 썩이는 대표적 질환. 한의원에서는 드물게 건선치료만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강남동약한의원 이기훈 원장(李起熏·46)을 만나 이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건선은 피부에 작은 좁쌀 같은 발진이 생기면서 발진된 부위 위에 새하얀 비듬 같은 각질이 겹겹이 쌓여 나타나는 만성 피부병이다. 붉은 발진도 함께 나타나는데, 맨 처음에는 작은 크기로 나타나다 새로운 발진들과 합쳐져 커지고, 주위로 퍼져 나간다. 심한 경우에는 온몸이 빨갛게 발진으로 뒤덮이는 경우도 많다.
양의학에서는 건선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피부에 있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동성이 증가되어 면역물질이 과다 분비되는 것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 추정만 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건선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이기훈 원장은 건선의 원인으로 열(熱)을 지목한다.
“건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먼저 첫 번째 원인은 외적인 요인이에요. 건조한 환경입니다. 건조한 환경은 건선을 악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쳐요. 실제로 겨울철에 건선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열이에요. 체내에서 발생한 열이 몸 밖으로 방출되지 못하고 피부에 누적되면서 여러 증상으로 발병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건선이에요.”
건조한 환경은 건선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데, 환자 중 일부는 겨울철에 발병했다가 여름이 되면 자연스럽게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습한 여름 공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건선 환자가 건조한 공기를 피해 습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가서 지냈더니 건선이 말끔하게 나아 실제로 이민까지 심각하게 고려한 사례가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시니어에 발병하면 반점이 온몸 덮기도 해
건선은 보통 20~30대 젊은 층에 많이 생기지만, 60세가 넘어 처음 발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건선은 편도염이나 고열 감기를 앓고 나서 건선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발병하는 건선은 대부분 물방울 모양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편도염이나 고열 감기를 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열과 관련이 있다.
이에 반해 시니어들이 앓는 건선은 조금 다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땀의 배출이 줄고 피부가 건조해지는데, 전신의 건조함이 건선 발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발병하는 형태도 물방울 모양이 아닌 홍피성(紅皮性), 즉 붉은 반점이 전신을 덮는 모양으로 대부분 나타난다. 또 이런 홍피성 건선은 가려움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골치 아프다.
이 원장은 “피부에 습기가 없이 건조하고 기초 대사가 떨어지면서 열을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건선으로 이어지게 되고요. 실제로 실내 습도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만으로도 건선에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붉어지는 피부는 대인관계까지 어렵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피부병은 전염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피하려는 경향이 있고, 본인 스스로도 붉은 피부를 부끄럽게 생각해 대인기피증까지 겪는 경우도 있다.
스테로이드 연고 조심해서 사용해야
이렇게 붉은 반점과 함께 가려움을 유발하는 질환이 또 있다. 바로 아토피다. 아토피와 건선은 서로 같은 듯 다른 질환이다 보니 치료의 혼선을 주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아토피 환자는 건선으로 오해받아 엉뚱한 치료를 하고, 또 건선 환자는 아토피 치료로 시간을 헛되이 버리는 것이다. 건선이나 아토피가 생명과 직결되는 병은 아니지만 정확한 진단부터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발병하는 위치부터 아토피와 건선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토피는 관절 안쪽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반대로 건선은 관절 바깥쪽에서 발병해요. 예를 들어 무릎관절 앞쪽의 무릎뼈가 있는 쪽에 발병하면 건선일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오금 쪽에 나타나면 아토피로 볼 수 있죠. 건선은 외부와의 마찰이 잦은 부위에서 일어나는 셈이에요.”
아토피와 건선 치료를 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바로 스테로이드 사용이다. 스테로이드는 아토피 질환에서 단기적인 효과를 보이는 약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건선에서도 표면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그 부작용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피부가 얇아지거나 화상과 유사한 금단증상이 나타나거나 얼굴이 달덩이처럼 붓고 어깨에 비대증이 나타나는 등의 현상이다.
“만약 건선으로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았다면 3개월 정도 발라보다가 시험 삼아 중단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때 만약 건선이 다시 심하게 올라온다면 그건 건선을 치료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부작용을 동반하면서 건선을 일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장기적으로 치료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증상이 되레 심해질 가능성도 높아요. 물론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도 마찬가지고요. 때문에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일부에서 처방하는 면역억제제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고령의 시니어들에게는 장기적 복용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치료는 6개월에서 9개월 소요되는 장기전
그럼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이 원장은 건선은 그 원인을 제거해야지 외치(外治), 즉 침이나 연고 같은 외부의 치료는 그 효과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치료에 대한 진행 속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건선의 원인, 그러니까 피부가 마르고, 열 배출이 어려워지는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스트레스와 음식, 과로, 편도염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에요.”
치료를 하면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PASI(건선의 중증도를 나타내는 국제기준) 수치가 10% 이하로(PASI90) 내려가는 데 걸리는 기간은 6개월에서 9개월 정도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 성인 기준이며, 시니어의 경우에는 3개월 정도 더 소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건선 치료는 일종의 빙산이라고 보면 돼요. 질환이 눈으로 확인될 만큼 발현되는 것은 일부일 뿐이고 진짜 문제는 수면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요.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그래도 환자의 85~90%는 PASI90에 도달합니다.”
고기는 담백하게, 튀김은 피해야
일상생활에서 건선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기훈 원장은 일단 음식을 꼽는다.
“기름진 음식을 피해야 해요. 가장 나쁜 건 튀김. 고온 상태에서 기름으로 조리한 음식은 좋지 않아요. 볶음도 마찬가지고요. 찬 음식에 가열되지 않은 기름이 첨가된 건 별문제 없어요. 그리고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보다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드세요. 호두나 잣 같은 견과류나 배같이 단맛이 나는 과일은 도움이 됩니다. 대신 신맛이 나는 귤과 오렌지, 사과는 피하셔야 합니다.”
조심해야 할 음식은 역시 술이다. 상대적으로 몸의 열을 덜 올리는 맥주가 그나마 낫고, 양주와 같은 독한 술은 상극이다.
“일상생활에서 고쳐야 할 습관 중 하나는 잠이에요.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불면이 있다면 치료해야 합니다. 또 샤워할 때 비누나 보디클렌저 같은 계면활성제를 너무 자주 쓰시면 몸이 건조해져요. 특히 때 미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트레스 없이 생활하시면 건선 걱정은 줄일 수 있습니다.”
이기훈 원장이 말하는 건선 자가진단법
1 겨울이 되면 빨간 반점이 나타난다.
2 몸에 두드러기가 잘 생긴다.
3 피부 가려움증을 겪는다.
4 무릎이나 팔꿈치에 각질이나 반점이
생긴다.
5 각질을 떼어내면 피가 맺힌다.
6 여름에는 괜찮다가, 겨울에 반점이
생긴다.
7 붉은 반점 주위가 가렵다.
8 수포나 농포가 생기기도 한다.
은퇴하면서 비로소 종합건강검진 기회를 가졌는데, 암 검진에서 대장암이 발견되었다. 말수가 적은 의사는 “조기 발견으로 암세포를 제거해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의사의 묵직한 한마디에 새 생명을 얻었음을 실감했다.
은퇴와 종합검진
필자는 5년 전 은퇴했다. 샛별 보면서 집을 나와 달빛을 벗 삼아 귀가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방학을 한 학생처럼 해방된 기분이었다. 은퇴 후의 장년은 건강관리가 제일 중요하다는데, 무엇부터 챙겨야 하나? 건강검진기록부터 살폈다.
국가검진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나이를 감안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긴 했지만 바쁘고 검사 과정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다. 은퇴 후 비로소 필자를 돌보는 황금 같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퇴임 전 종합검진 예약을 했다. 그리고 퇴임 며칠 후 암 검진을 받았다.
대장암 발견과 치유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용종 1개와 선종 3개가 발견되어 제거 시술을 했다. 2주 후 상쾌한 기분으로 검진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정색을 하면서 “선종 한 곳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아차!” 뭔가 심각한 상황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담당의사는 “배가 아프거나 자각 증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더니 “암은 증상을 느끼면 이미 늦다. 조기 발견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암세포는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고 시술 부작용도 없으니 안심하라. 치료 과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주기적인 추적 관찰만이 필요함을 친절히 설명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필자에게 유일한 위안의 말이었다.
‘암환자’라는 사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뱃속에 시한폭탄이 들어 있어 곧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에 가는 동안에는 뱃속이 뒤틀리고 쑤시다가, 별 이상이 없다는 검진 결과를 들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졌다. 대장암과 함께 위장·방광·당뇨·전립선과 갑상선도 암 전이 가능성 때문에 검진을 했지만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스런 결과에 위안을 받으면서 암 극복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암세포 제거 시술 후 어느덧 5년이 다 되어간다.
봉사하면서 사는 새 삶
앞으로 살아갈 세월은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얻었던 소중한 은혜를 후세대에 되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회평생교육기관에서 시민강좌 강의와 청년창업 멘토 재능기부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백 마디 말보다 작은 실천 하나가 진정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숭고한 정신으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시청·구청과 사회평생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평생학습·교양강좌를 찾아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손주에게 들려 줄 새 이야기’도 배운다. 은퇴 후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 꾸준하게 등산도 한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운동이 있어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등산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건강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 은퇴에 감사한다.
사회를 은퇴하면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대장에서 상피내암이 발견되었다. 암환자가 되기 전과 후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으나 큰 탈 없이 견디고 있다. 내년 이맘때면 이른바 ‘5년’이 된다.
사회평생교육에서 건강에 대한 강좌를 많이 접했다. 어느 강사는 “건강하니까 건강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고, 설령 불치병에 걸려도 연명치료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였다. “실제 암환자가 되어서도, 지금과 같이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수강생들의 반응이었다.
국가건강검진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대장은 1차 검사에서는 별 이상이 없지만, “나이를 감안하여 내시경검사를 받아 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바쁘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이를 실천하지 못하였다.
보라매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용종 1개와 선종 3개가 발견되었다. “용종만 발견되면 곧 시술이 가능하나, 선종은 당장 시술할 수 없고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진행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 달 후 내시경 검사 시 채취한 조직에서 다른 이상이 없어, 비수면 대장내시경시술을 하였다. “시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 말라”는 격려 및 주의사항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검진결과를 기다라는데 담당의사가 “선종제거시술 시 채취한 선종 한 군데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산정특례 등록절차를 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뭔가 심각하게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암 세포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고 시술 부작용도 없으니 안심하고, 통상 암환자에게 실시하는 치료과정도 아직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 될 뿐이었다.
앞으로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주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함을 친절히 설명하면서, “상심하지 말고 건강관리에 유념하라. 한마디로 암은 자각증상이 나타나면 너무 늦다”고 말했다.
‘암환자!’ 암 확진 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줄 알았던 말이다. 가족력을 보아도 암은 부모님, 형제자매 누구에게도 없다. 절제와 성실한 생활규범을 잘 지키면서 살아 왔다고 자부했는데, 왜 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암환자가 되었단 말인가!
뱃속에는 꼭 시한폭탄이 들어 있어 곧 터질 것 같은 기분이다. 검진 받으러 병원에 가는 동안은 뱃속이 뒤틀리고 쑤시다가, 별 이상이 없다는 검진 결과를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다.
대장암과 함께 종합검진 때 체크되었던 다른 분야도 혈액검사, 초음파, C/T촬영 등 검진을 1년에 몇 차례씩 계속하고 있다. 검진 때마다 의사선생에게 물었고, 대답은 항상 같았다. “특별히 좋거나 나쁜 음식이 없으니 섭생에 연연하지 말라. 과음과 과식을 삼가고 스트레스와 체중관리에 노력하라.”고 말하였다.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결과에 위안을 받았다. 완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이제 ‘5년’이 되어간다. 처자식과 손주, 친구들과 어울려 관악산 동네에서 살면서 평범한 방식으로 암을 이기는 건강을 관리할 것이다.
건강한 사람을 부러워 할 때도 많았다.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오르고 사회공헌 자원봉사에 앞장섰다.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최근 날씨가 좋아지면서 시니어들의 야외활동이 급격히 증가했다. 걷기, 등산 등 건강을 위한 운동이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야외활동을 할땐 부작용으로 각종 질환이 따른다는 것이다. 기미, 잡티에서부터 허리디스크, 진드기까지. 그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퇴행성관절염이다.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정형외과의 신성일(申性一) 교수와 연세에이스정형외과 전재훈(田在勳) 원장을 통해 퇴행성관절염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무릎연골은 저축과 같은 재산입니다”라는 말로 신성일 교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릎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인데 재산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연골은 3무(無)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신경과 혈관, 임파선이 없는 신체 조직이란 이야기죠. 이것은 연골이 재생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결국 연골은 한 번 다치면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때문에 적절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저축이라면 모을 수도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저축이라고 말한 이유는 언젠가는 줄어들어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은행 통장의 돈을 관리하듯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물 쓰듯 낭비하면 언젠가는 연골이 바닥나 고통받게 되고, 제대로 아껴쓰면 오랜 기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흔히 무릎관절염이라고 말하는 퇴행성관절염은 왜 생기는 것일까? 전재훈 원장은 노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퇴행성관절염은 오랜 기간 관절 연골을 사용하면서 마모되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이외에 유전적으로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 젊을 때의 외상이나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화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직업과 생활환경 무릎에 큰 영향
전 원장은 퇴행성관절염은 직업이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발생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미장이나 도배, 농사와 같이 어려운 자세에서의 작업이 많거나, 계단 청소와 같이 무릎을 많이 움직이는 직군에서 특히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성별로 구분하면 여성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폐경과 관련이 많고, 60대 이후 발병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뼈가 약해지면서 퇴화가 빨리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골다공증을 방지하기 위한 영양 공급과 적절한 운동이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특히 폐경기 여성의 경우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노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에서 무릎까지 문제가 생길 경우 환자가 심리적으로 더욱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운동이라고 모두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신성일 교수는 운동은 몸을 강하게 만들고, 뼈를 튼튼하게 해 줄 것 같지만 적절한 처방 없이 무턱대고 몸을 쓸 경우 되레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퇴행성관절염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체중입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그만큼 무릎에 가해지는 부하도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체중 1㎏을 감량하면 실제로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은 3㎏정도 줄어든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걱정 중 하나는 최근 시니어들 사이에서의 운동 열풍입니다. 등산과 걷기가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있는데, 본인의 몸 상태에 맞게 적당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그래도 통증이 계속되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무릎과 관련해선 근육 강화효과는 거의 없습니다. 아플 때는 운동으로 이겨내려 하지 말고 휴식과 치료를 권합니다.”
이렇듯 과한 운동을 피하면서 체중을 감량해야 하는 딜레마는 퇴행성관절염 치료의 숙제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면 고통으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고, 늘어난 체중이 무릎에 고통을 주고, 이 때문에 운동반경이 더 좁아져 체중이 증가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체중부하운동으로 체중 조절해야
의사들이 권하는 운동은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는 비체중부하운동이다. 이번에 만난 두 전문의 모두 누워서 자전거 타듯 하는 다리 운동이나 수영을 추천했다. 두 가지 모두 무릎에 체중이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기도 체중의 부하를 덜 받는 운동으로 꼽았는데, 자전거는 퇴행성관절염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악화시킬 수도 있어 사전에 상담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퇴행성관절염의 치료는 단계별로 달라지는데, 초기에는 생활환경 개선이나 운동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신성일 교수의 설명이다.
“퇴행성관절염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나이와 체중, 직업, 질환의 진행 정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퇴행성관절염은 아직 획기적인 치료법이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상태에 따라 적당한 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기에는 약을 쓰지 않거나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치료하고, 심한 경우는 흔히 이야기하는 무릎연골주사를 통해 무릎이 보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무릎연골주사는 연골 성분의 하나인 히알루론산이 주성분인데, 무릎관절이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일부에선 이 무릎연골주사를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무릎연골주사는 단순 윤활유 역할만 할 뿐 손상된 연골을 재생 시키는 등의 치료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환자마다 그 효과가 달라, 길게는 반년 정도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별 영향을 받지 못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때문에 모든 퇴행성관절염에 효과가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밖에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법이 있다. 그러나 치료비가 800만원에 달하는 등 엄청난 고가인 데다가, 확실하게 줄기세포가 연골로 분화되는가에 대한 의견이 의사마다 분분한 상태다.
극적인 효과 가져오는 인공관절 수술
만약 더 심한 상태라면 수술을 선택해야 한다. 무릎 관절내시경 수술과 무릎 인공관절 수술 두 가지가 있다. 무릎 관절내시경 수술은 연골에 외상을 입었을 때나 외상을 입었던 무릎에 예방적 차원에서 주로 하는 수술로, 고령으로 인해 발생하는 퇴행성관절염에는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관절로 인한 고통이 너무 크거나 손상이 심해 손쓸 수 없을 때 선택하는 것이 바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다. 인공관절 수술은 체중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무릎관절 중 안쪽이나 바깥쪽에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무릎 인공관절 부분치환술과 전체 관절을 교체하는 무릎 인공관절 전치환술로 나뉜다.
부분적으로 교체하는 경우는 O자 형태의 다리 모양 때문에 관절 한쪽에만 관절염이 진행됐을 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전치환술은 관절 부위가 심각한 상태일 때 마지막 방법으로 사용한다. 수술 후 완전히 적응되고 나면, 고통이 극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환자들이 먼저 조르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수술은 환상적인 영화 속 인공 장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전재훈 원장은 경고한다.
“인공관절 수술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특히 입식 생활을 하는 서양 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죠. 하지만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 환자들의 경우에는 다소 다릅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환자들의 만족도는 60~70%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족도가 떨어지는 원인은 인공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인 데 있습니다. 젊은 사람의 정상적인 관절은 최대 145~155도 정도까지 움직일 수 있지만, 인공관절은 그것에 못 미치는 125~135도 정도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양반다리’ 같은 자세는 어려워지는 셈이어서, 방바닥 생활을 원하는 환자들에겐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인공관절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의 환자에게는 최선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적응 전까지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 일상생활이나 보행은 전혀 고통없이 할 수 있게 된다. 적응정도에 따라서는 가벼운 운동도 가능하다는 것이 의사들의 설명이다.
이 인공관절 수술에 또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체력과 나이다. 관절 전체를 들어내는 대수술이다보니 수술을 견딜 만한 체력과 나이가 필요하다고 신 교수는 조언한다.
“이 인공관절 수술은 시기를 놓치면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비교적 젊다 해도 퇴행성관절염을 오랫동안 앓아 심한 운동 부족인 상태라면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른 후에야 수술이 가능해집니다. 만약 너무 고령이어서 수술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환자가 원한다 하더라도 쉽게 수술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회복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죠. 보통은 75세가 넘으면 수술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권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무릎관절은 고통이 수반되는, 쉽게 봐선 안 될 큰 수술이다. 과거에는 환자의 체력을 고려해 한쪽씩 수술을 했지만, 한쪽 수술을 하고 나면 다른 쪽 수술은 거부하는 환자들이 늘자 아예 양쪽을 하루에 수술하는 것이 일반적이 됐을 정도다.
신 교수는 “몸은 이상이 생기면 신호를 보내 줍니다. 무릎의 경우 보통 ‘고통’이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이를 무시해선 안 됩니다. 무릎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반드시 수영이나 누워서 하는 안전한 운동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제때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치료를 받고 싶어도 때를 놓치면 의사도 손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우선 상담을 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무릎에 좋다고 알려진 클루코사민은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효과가 없고 당 성분으로 인해 혈당 조절에 장애가 된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 퇴행성관절염에 효과가 있다고 광고하는 기능성 신발 중에 상당수는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다만 부드럽고 푹신한 신발은 연골의 충격을 분산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신발을 고를 때 참고해야 하고, 실내에서도 푹신한 실내화를 신는 것이 좋다고 의사들은 조언했다.
인체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기관이라 어딘가 이상이 생기면 ‘이상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의사들은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나중에서야 그것이 이상을 나타내는 신호였구나 하며 후회한다고 한다. 이번에 만난 홍유식(洪裕植·46)씨 역시 그랬다. 그의 몸이 두 번이나 말을 걸어왔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생명이 위독한 위기를 맞이했지만,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김형철(金炯喆·56) 교수의 도움으로 정상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홍유식씨가 몸에 통증을 처음 느낀 것은 2014년 9월이었다. 여느 때처럼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저녁쯤 되었을 때 낯선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알고 있던 배앓이하고는 고통의 수준도, 시간도 차이가 있었다. 잠을 청해봤지만 통증은 더 심해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동네의 큰 병원을 찾았다.
“미치겠더라고요. 너무 아파 집 근처의 대학병원에 갔는데, 응급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X선 촬영과 CT(컴퓨터 단층촬영)를 찍자는데, 공복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겨우겨우 지쳐 잠이 들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씻은 듯이 나았어요. 별일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응급실의 응대도 맘에 들지 않아 집으로 와버렸죠.” 그렇게 해프닝처럼 지나가나 보다 생각했다.
꽤 이름난 자산운용사의 마케팅 총괄로 근무 중인 홍씨는 몸도 별 탈 없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지낼 때 즐기던 골프도 이상 없이 쳤다.
다음 통증은 2015년 12월에 찾아왔다.
“연말에 집에 있을 때였죠. 갑자기 장이 꼬인 듯한 통증이 찾아왔어요. 고통이 시작되자마자 생각난 것이 1년 전 그때였어요. 안일하게도 그때 떠오른 생각은 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였어요. ‘ 나쁜 요령이 생긴 거죠. 그래서 무조건 자야 한다고 생각했고, 억지로 잠들었다 일어나니 또 멀쩡하더라고요.”
하지만 나쁜 요령은 다시는 통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다. 올해 2월 1일 홍씨는 똑같은 부위에 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죠. 다음 날 출근했는데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전에 찾았던 대학병원을 다시 찾았어요. 다행히 전에 촬영했던 사진들이 그대로 있어 진단에 도움이 됐죠. 담낭에 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 도착해 병명도 알았고 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술 날짜가 문제였다.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협의한 날이 2월 5일이었는데, 수술은 11일 후인 16일에나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곧 다가올 설 연휴 때문이었다.
“명절이 있었으니까 병원으로선 어쩔 수 없었겠죠.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몸은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 고통을 안고 열흘이나 넘게 버틸 생각을 하니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던 중 김형철 교수님을 만나게 됐죠.”
김형철 교수는 그때의 홍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담낭 담석이었죠. 이 담낭 담석이라는 건 담낭 안에 작은 결석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다가 갑자기 급성담낭염으로 발전하는 때도 있어요. 염증이 생기는 축농증의 일종입니다. 급성괴사성 담낭염은 바로 조치를 안 하면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입니다.”
담낭 담석의 무서움은 무엇보다 통증에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옛날 할머니들이 갑자기 아팠다, 괜찮았다 하는 것을 가슴앓이 한다고 표현하잖아요? 아마 그런 경우 대부분 담낭 담석으로 봐도 틀리지 않을겁니다. 숫자로 따지면 10단계에서 9에서 10 정도의 심한 통증을 동반합니다. 이런 통증을 앓는 환자에게 며칠이나 기다렸다 수술받으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죠. 당시 홍씨는 복막염까지 의심되는 소견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수술을 진행했죠.”
홍씨는 김 교수의 신속한 조치로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가 설날을 이틀 앞둔 2월 6일이었다. 홍씨가 김 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김 교수는 어려운 외과 수술로 꼽히는 복강경 담낭절제술을 5000건 가까이 성공시킨 명의로 꼽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뿐만 아니라 50회 이상의 간이식수술과 무수혈 간이식수술로도 병원을 알렸다.
수술은 복강경 담낭 제거 수술로 진행됐는데, 평균적인 수술 시간보다 두 배 이상 소요됐다. 담낭에 고인 고름이 생각보다 심해 시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강경 수술은 몸에 작은 구멍을 뚫어 카메라와 조명, 수술도구가 달린 작은 관을 넣어 수술하는 방식. 개복수술과 달리 환자 몸의 절개부위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환자의 회복속도가 굉장히 빠른 장점이 있지만, 시야가 좁고 수술 부위에서 도구의 움직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집도의의 능력에 따라 수술 성공률이 달라진다. 김 교수는 당시 수술부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환부가 고름으로 덮여 수술에 애를 먹었습니다. 담낭 제거 수술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간에서 내려오는 총수담관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고름과 섬유화변성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어요. 예를 들자면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밤에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담낭을 그냥 떼어내도 괜찮은 걸까? 담석만 떼어낼 수는 없는 것인지 질문하니 불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답한다.
“반복적인 염증으로 담낭은 이미 그 기능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절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담낭은 소화에 필요한 쓸개즙을 분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것이 없다고 해서 우리 몸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오래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몸이 적응하게 됩니다.”
우리 몸에서 생기는 담석의 종류는 세 가지라고 김 교수는 이야기한다. 담석은 성분에 따라 일반적으로 콜레스테롤 담석(cholesterol gallstone)과 색소성 담석(pigment gallstone), 혼합형 담석으로 크게 나눈다. 이런 담석이 당낭은 물론이고 간 내외의 담도에 발생하는 것을 담석증이라 부르고, 담석이 담낭에 생길 때 이를 담낭결석이라고 부른다. 담석증은 급성 담낭염이나 폐쇄성 황달, 심한 담도염의 원인이 되고, 췌장염까지 유발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색소성 담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콜레스테롤 담석이 압도적입니다. 콜레스테롤 담석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해 침전되면서 담석이 형성되는 것인데, 원인으로는 서구적인 식생활로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정식처럼 육류와 채소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홍씨는 다행히 수술이 잘 마무리돼 며칠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수술 후 생활이요? 많이 바뀌었죠. 2013년 이후 운동을 끊었었는데, 다시 시작했어요. 콜레스테롤 담석이라고 해서 음식에 주의하고 있죠. 특히 곱창을 좋아했는데, 이젠 될 수 있으면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삼겹살처럼 기름기 많은 음식도 자제하고 있어요. 집에서는 평소 아내가 워낙 잘 챙겨줬기 때문에 큰 신경은 안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몸에서 이상 신호가 느껴진다면 다시는 간과하지 않을 겁니다. 큰 교훈을 얻었어요.”
홍씨는 김형철 교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뜻을 몇 번이나 표현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수술을 하느라 김 교수가 연휴를 반납하고 병원으로 출근해 그의 수술 후 몸 상태에 신경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런 김 교수의 모습에 홍씨의 아버지가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감사의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설날 휴가를 반납하고 정성을 다하여 수술하고 설날에도 출근하여 환자를 보살피는 그의 따듯한 마음은 어디에서 유래하였을까?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자의 덕목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정작 김 교수는 당연한 일 아니냐며 되레 반문한다.
“외과의에게 수술환자 때문에 휴일이 반납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죠. 병원이 위치한 부천 인근은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살기 힘들잖아요. 아파서 수술하려 해도 회사 눈치, 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니까요. 아픈 것도 눈치 보는 사람들에게 수술이라도 원할 때 해줘야죠. 그래서 여긴 주말 수술이 꽤 많습니다. 병원 설립자께서도 의사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위한 존재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설립자인 고(故) 서석조(徐錫助, 1921~1999) 박사는 “의료인은 삶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치료하는 가장 낮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취재가 진행된 날은 주말 오전이었는데, 병원 곳곳은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북적였다. 김 교수는 취재에 응한 이날 수술을 두 건이나 소화해야 했다.
이런 김형철 교수의 성향은 병원 내에서도 뚜렷이 드러나, 여러 가지 미담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4월 김 교수는 국제진료센터 센터장 자격으로 병원과 협력관계에 있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시 마시모프 헬스센터를 방문했다. 김 교수는 한 여자아이와 마주치게 되는데, 큰 눈이 귀여웠지만, 병색이 완연했다.
큼밧(kymbat)이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랑거한스세포 조직구증식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 병은 백혈구의 일종인 ‘랑거한스세포’가 급증해 몸의 장기들을 침범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병으로, 특히 유아일수록 더 위험하다. 김 교수는 사연을 듣자마자 치료를 약속했고, 큼밧은 긴급 비자를 받아 아버지 카이랏(Kairat)씨와 함께 한국에 와 치료를 받고 호전될 수 있었다.
또 형편이 어려워 치료를 포기한 몽골인 근로자의 간이식을 집도한 것도 병원 내에서는 잘 알려진 일이다.
김 교수는 “국제진료센터를 맡아 외국인 환자 유치를 하고 있는데 책임감이 큽니다. 과거엔 공업이 국내 산업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의료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무조건 돈 많은 환자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돈 없는 외국인도 환자니까요. 돈도 중요하지만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달팽이 요리를 즐기는 나라, 그러나 시속 300㎞가 넘는 TGV가 달리는 나라, 프랑스. 말을 할 때 여러 가지 내용을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도 귀담아들어보면 앞뒤 논리가 잘 맞는 기막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세계의 유행과 패션을 리드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유행이나 패션에 별 관심이 없는 나라. 수많은 명품을 생산하지만, 실제 거리에서는 우리나라의 강남과는 전혀 다르게 명품을 찾아보기가 힘든 나라. 모든 게 느리고 엉성한 것 같지만, 또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나라. 담배를 많이 피우기로 유명하며 운동은 별로 즐기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나라, 프랑스. 이쯤 되면 프랑스를 ‘패러독스의 나라’라고 해도 될 성싶다.
오랫동안 프랑스인들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이에 착안해 1991년 11월 미국의 CBS 방송은 이 주제로 를 꾸며보기로 결정하고, 리용(Lyon)에 있는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의 르노(Serges Renaud) 박사의 연구소를 방문한다. 목적은 지방이 많은 음식을 즐겨 섭취하고, 흡연도 많이 하는 반면 운동은 미국인에 비해 적게 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심장병 사망률이 현저하게 낮은 이유와 장수하는 까닭 등 간단하지 않은 주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미스터리는 그때까지 과학적으로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인터뷰 중에 르노 박사는 조심스럽게 하나의 가정을 내세운다. 이 미스터리를 푸는 데 와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는 소량의 와인을 규칙적으로 마시는 것이 심장혈관 계통의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으리라 전망했다. 이 방송은 전 미국을 열광케 했다. 1993년부터 1996년 사이 미국인의 와인 소비는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리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증폭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과연 프렌치 패러독스는 존재하는 것일까? 프랑스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심장병 사망률과 평균 수명은 유럽 여느 나라의 평균과 비교해 볼 때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니 프렌치 패러독스는 프랑스 하고도 남부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남쪽 사람들의 느긋한 생활 태도, 신선한 과일과 야채의 다량 섭취, 온화한 기후 등이 와인과 함께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니 프렌치 패러독스라기보다는 ‘지중해 패러독스’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와인은 2000년 동안 유일한 항생제
고대 사회 이래로 와인은 인간의 근심을 잠재우고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와인은 2000년 동안 유일한 항생제이기도 했다.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와인은 치료제로 간주되어 열이 날 때, 통증을 줄이기 위해, 설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장티푸스나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들이 처방하던 약이었다. 외부에 상처가 났을 때도 바르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루이 14세의 주치의 파공(Fagon)은 절대군주에게 건강을 위해 화이트 와인 대신 부르고뉴 산 레드 와인을 마실 것을 처방했다는 기록도 있다. 영국의 의사인 허버든(Herberden)은 일찍이 1786년에 와인이 협심증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준다고 기록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1954년까지 모든 병원이 환자들에게 아침을 제외한 매끼 와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늙은이의 우유”로 부르기도 하는데, 와인의 강장제적 효능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와인 구성성분이 무려 800여 가지
그렇다면 와인이 정말 건강에 좋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와인의 구성성분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와인을 구성하고 있는 생물학적, 화학적 성분은 놀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성분만도 8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구성 성분이 다양한 만큼 각각의 함유량도 크게 다르다. 물(80∼90%), 에틸알코올(7∼10%)을 제외한 나머지 성분들은 극소량이 들어 있다. 그러니 와인을 마시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선하고 깨끗한 수분을 섭취하는 행위다. 그 밖에 와인에 함유된 성분 중에는 산(acid), 포타슘, 칼슘, 소듐, 철, 황산염, 인 등이 있다. 와인 속의 산은 인간의 위액과 아주 흡사하여 소화 촉진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타슘과 황산염은 이뇨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와인에는 질소 함유물과 20여 종의 아미노산도 들어 있다. 아미노산 중 일부는 인간의 피 속에 들어 있는 것과 비슷한 농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근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와인에는 지용성 비타민만 들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비타민 P는 혈관의 모세관을 강화시켜 주며, 출혈(일혈)과 수종(부종)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와인에 함유된 또 다른 성분으로는 산화제, 환원제와 셀레늄·크롬·아연·동·마그네슘·불소·요오드·비소 등의 금속 촉매, 그리고 효소 촉매들이 있는데, 생명의 근원인 세포번식에 필요한 화학적 작용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요소들이다. 뿐만 아니라 와인에는 지금까지도 상당부분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는 와인의 향을 구성하는 여러 물질들과 다양한 종류의 페놀(polypenols)이 들어 있다. 특히 페놀은 강력한 산화 방지 효과가 입증되어 중요한 연구의 주제가 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레드 와인에 함유된 타닌도 많은 연구가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와인에 포함된 성분 중에는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많기에,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보나, 현대의 첨단 연구 결과를 보나, 와인이 분명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라 섣부른 속단으로 우리의 소중한 건강을 담보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다음으로 와인 속 수많은 성분들이 섭취 후 정확히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시는 사람의 체질에 따라 흡수력이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셋째로 각자의 생활 습관이나 식습관 등이 다르기에 와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만을 따로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와인은 치료약이 아니다. 일정한 조건에서 마실 경우 일부 성인병 예방에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을 마시기만 하면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 점에 한해서만은 모든 연구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와인이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소량을 마실 때만 가능하다고 한다. 부연하자면 하루에 2∼3잔을, 그것도 식사 중에 마실 때만 가능하다고 한다. 와인이 무슨 처방약도 아니고, 이렇게 마시다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알랭 쉬프르(Alain Schifres)의 다음 말을 음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최고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와인이 여러 질병을 예방한다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행운을 가졌다. 나는 심장을 위해 한 잔을 마신다. 두 번째 잔은 암을 막기 위해 마신다. 세 번째 잔은 건강한 내 몸을 위해 마신다. 그리고 그 이상은 기쁨을 위해 마신다.”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설이 난무하면서 - 건강에 무척 민감한 우리들이기에 - 이에 영향을 받아 와인을 마시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몸에 이로운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다. 페니실린을 발명한 플레밍(Alexander Fleming)의 말로 결론을 대신한다. “페니실린은 병을 치유하지만, 진정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와인이다.” 그리고 기분이 좋을 때 엔도르핀이 높아지므로 우리의 면역 체계는 자연적으로 강화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적당히 그리고 즐겁게’, 이것이 질병 예방을 위해 가장 바람직하게 와인을 마시는 방법이지 않을까?
>> 장 홍 (張洪)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얽히고설킨, 소우주라 불리는 ‘뇌’는 인간이 생산해내는 모든 것들이 중심이 된다. 하나의 뇌세포는 수천 개의 뇌세포로부터 전기 신호를 받아 다른 수천 개의 뇌세포에 전달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의식, 인지, 감정이 발현된다. 인간의 마음은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다. 즉, 뇌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도움말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
어디까지 왔을까? 뇌로 마음을 읽는 것. 너무나도 복잡하기에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뇌 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10여 년 전 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를 살펴보면, 뇌의 쾌락 중추에 전극을 심어 쾌락 감도를 외부의 제3자가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내용은 당시 뇌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공상과학 소설로 분류됐다. 소설 속에서는 해당 부위를 찾지 못해 마구 찔러대는 대목이 나오고 있지만 이제는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허구가 아닌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가 됐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를 만나 마음과 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감정의 중추, 새로운 발견
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서 감정의 중추는 대뇌의 변연계(limbic system)로 알려져 있다. 이 변연계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망이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각각의 신경줄기 다발이 담당하는 감정의 종류를 파악하면 이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소설 ‘뇌’처럼 말이다. 해부학적 경로가 복합해 뇌-감정을 주관하는 변연계에 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조금씩 밝혀지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마음을 보는 뇌 연구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가 세계 최초로 분노, 슬픔, 우울 등 부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ATR)와 기쁨, 웃음, 행복, 사랑, 보상 등 긍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sIMFB, imMFB, SPT)를 발견해 냈다. ‘7T PET-MRI’라는 장비를 통해 뇌 영상을 찍고 분석해서 나왔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울고 웃는지, 기분이 좋고 나빠지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게 된 것이다. 이 신경섬유의 존재는 감정 이상을 연구하는 데 포인트가 된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대략적인 연구 성과만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뇌세포의 활동을 정확히 분석하면 범죄를 일으키는 감정을 제거하고 스스로 뇌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중년, 뇌도 품격 있게 자란다
김 교수에 의하면 뇌의 기능은 나이에 따라 점점 쇠퇴해져 간다는 통념 때문에 가벼운 건망증 현상이 오면 덜컥 겁부터 내는 것이 신중년의 모습이지만, 뇌 과학 분야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결과들이 나왔다고 한다. 특히 뇌의 가소성(Neuronal Plasticity)측면에서 인간의 인지기능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발전해 50~60대에 절정에 이른다는 보고들이다. 실제로 뇌가 더 탄력적이고 유연해지며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인식 시스템을 갖추고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는 것.
김 교수가 집필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UCLA 신경학자 조지 바트조키스는 “중년이 돼야 뇌에 들어오는 직접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가공해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극대화된다”고 강조했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바트조키스는 MRI를 사용해 18~75세 300명을 대상으로 백질(白質)양과 분포를 측정했다. 대상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건강한 젊은이들이었다. 그 결과, 건강한 50대 신중년 대부분은 ‘미엘린(myelin)’ 양이 절정에 달했고 중요한 사고를 하는 뇌 전두엽과 측두엽에 가지고 있었다.
뇌는 신경세포, 회백질, 백질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백질은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여기에 미엘린이라는 지방성 물질이 덮개를 형성해 미세한 신경섬유를 감싸준다. 미엘린은 신호가 전달되는 동안 신호가 톡톡 튀거나 합선되는 것을 방지한다. 전선 피복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미엘린은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물질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미엘린을 다른 영장류보다 20~30%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유아기나 어릴 때는 미엘린 중 많은 부분이 운동신경이나 감각기관에 놓여 있지만 중년이 되면 대부분 뇌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 축색돌기 주위에 나타난다는 것. 이곳이야말로 인간이 정교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하는 부분이라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나이가 들어 뇌는 전체적인 조직을 젊을 때보다 더 잘 작동하도록 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는 소화할 수 있는 정보량은 적을지라도 일상생활에서 더욱 잘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신중년이 되면서 대학시절 시험을 볼 때만큼 많은 정보를 기억 속에 욱여넣을 수는 없을지 모른다. 단기기억 역시 예전 같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보를 다루고 말과 문장에 대한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성격마저 변해 모호한 상황에서 더욱 편안하게 적응하고 좌절이나 초조에 덜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인성 치매 등을 겪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뇌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좋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뇌를 비워야 미래가 열린다
실제로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가 진행한 실험이다.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두 학생이 있다. 누가 공부를 잘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 뇌영상을 찍어 누가 똑똑한 학생인지 실험을 했다. 한 학생의 뇌에서는 포도당이 소모되면서 빨갛게 달아올랐고, 다른 학생은 별 다른 반응이 없다. 지능이 높은 학생은 누구일까?
정답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학생이다. 이 학생은 뇌의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뚜렷한 반응이 나타난 학생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생각해 내려 하니 자극이 됐던 것. 이 실험은 ‘정직한 뇌’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사실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뇌를 깨끗하게 비운 상태로 유지하고 있지만, 거짓이나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
한 분야에 몰두해서 성공하고 싶다면,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행동이나 거짓보다는 정직이라는 덕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살아서 정말 필요할 때 진짜 머리를 쓰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뇌 전문용어 정리
변연계(limbic system): 대뇌 속에서 동기와 정서를 주로 담당한다고 여겨지는 여러 구조물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변연 피질과 해마, 편도체, 중격 등이 포함된다.
뇌의 가소성(Neuronal Plasticity): 기억, 학습 등 뇌기능의 유연한 적응능력을 ‘뇌의 가소성’으로 표현한다. 뇌에 장기적인 변화가 일어나, 자극이 제거된 후에도 그 변화가 지속되는 것으로 본다.
미엘린(myelin): 인지질 성분의 막으로 ‘미엘린수초’라고도 한다. 뇌 신경세포를 둘러싸는 백색 지방질 물질로 뉴런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누출되거나 흩어지지 않게 보호한다.
비뇨기과의 중요성은 노령인구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부분 나이를 먹으면서 곤란을 느끼는 대표적인 증상이 바로 소변문제와 발기력 감퇴다. 누구나 남자라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소변을 보는 것이 옛날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옛날 사람들도 지금과 같이 나이 먹은 분은 소변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소변에 힘이 없으면 돈도 꾸어주지 말라고 했다. 소변에 힘이 없다는 것은 나이 들고 정력도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노령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증가하는 대표적 질환이 전립선비대증과 전립선암이다. 물론 발기부전 등 성기능 장애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부쩍 많아지는 질환 중에 하나가 전립선 암이다. 몇 년전까지만해도 전립선암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80년대초 필자가 비뇨기과에 입문할 당시에만 하더라도 전립선암이 흔치 않았다. 당시에는 의학의 발달이 지금 같지 않아서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의 의료통계에 따르면 남성이 걸리는 암중에 10위 밖에서 5위로 급상승을 할 정도이다. 80년대나 지금이나 미국에는 남성의 흔한 암 중에 하나가 바로 전립선암이다. 당시에는 환자의 사망률도 비교적 높아 15년동안에 약 반이 사망하였으나 최근엔 다른 암에 비해 얌전한 암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숙달된 비뇨기과전문의라면 간편한 PSA 라는 혈액검사 및 직장수지검사만으로도 조기진단이 가능하다. 물론 조기발견으로 인해 사망률 또한 대폭 감소하였다
"원장님이 전립선암을 일찍 발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행히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본 병원에서 PSA 검사 수치가 높아 전립선조직검사를 시행한 결과 암으로 판명되면 큰 병원으로 보내진다.
전립선암이란 전립선에 생기는 악성 혹을 말한다. 간혹 전립선비대증에서 암이 생기는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전립선비대증은 양성혹이라 할 수 있고 전립선암은 악성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립선비대증과 암은 주로 생기는 부위에도 차이가 있다. 비대증은 전립선 내부 요도를 둘러싸고 있는 부위에 생기고, 반면에 암은 전립선의 바깥 부위에 주로 생긴다. 생기는 부위에 차이가 있다보니 비대증은 배뇨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반면에 암은 진행이 되는지도 잘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환자 분은 자신이 암에 걸렸는지도 몰랐는데 원장님 덕분에 발견하였다고 고마워한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에 들어서 검사 장비와 진단 기법의 발달로 본인과 의료진이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조기에 발견이 가능하다.
우리 몸의 조직은 정상적으로 수많은 세포들로 구성되어있다. 정상적인 세포는 일정기간 살면서 필요한 기능을 하고 시간이 되면 저절로 죽어간다. 그러나 일부 세포가 시간 내에 죽지 않고 계속 자라면서 종양을 만들어낸다. 전립선 종양에는 전립선 비대증과 같은 양성 종양과 악성 종양인 전립선암으로 나눈다.
간혹 전립선암 수술한 환자 중에 발기부전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밤에 잠자리가 옛날같지 않고 통 잠자리를 가질 수가 없네요."
"암수술을 하기 전에는 한 달에 한두번 관계를 가져왔으며 발기약을 먹기는 하였으나 별 무리는 없었어요. 그러나 수술 후에는 약을 복용하여도 성관계 갖기가 힘드네요."하며 고민을 호소한다. 대부분 암과 마찬가지로 전립선에도 암이 발견되면 근치적 제거수술을 하게 된다. 이때 성기주변에 관련된 임파절 근처의 신경에 손상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발기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본 병원의 경우 성기능치료프로그램을 통하여 예전 발기력을 되찾는 경우가 많다. 앞의 환자는 일차적으로 성기능을 되찿기 위한 치료를 시도하였으나 불행히도 반응이 없어 음경보형물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수술 이외에는 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말에 수술을 결심 하였다. 수술은 음경내에 발기조직사이에 보형물을 넣어주어 발기기능을 도와주는 것이다. 환자는 자가팽창형의 일종인 세조각 팽창형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커졌다작아졌다 하는 성기의 모습을 보며 우울해 하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