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하고 때론 다소 억울해도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것까지 공론 거리가 되나 싶을 만한 일에도 대문짝만한 자기표현이 주렁주렁 달린다. 특히나 지하철이나 식당 등에서 예사롭게 보아 왔던 일들도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된다. 그러다 논쟁이 도를 넘어 서로 비난하고 대립각을 세우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즘, 지하철에서 화장하기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들이 흔히 눈에 띈다. 입술이나 눈썹화장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톡톡 두드리며 베이스를 정성스레 먹이는 것은 물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위로 치켜뜨고 몰입하다가 입술도 슬며시 열리는 마스카라 화장은 풀 메이크업의 절정이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
화장은 집에서 하고 나와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과제에 눌리고 야근에 허덕이다 시간이 빠듯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다는 반응이다. 진한 화장품 냄새에, 파우더 가루가 옆 사람의 양복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고, 바삐 나폴 거리던 팔꿈치가 아주머니를 가격하는 사태까지 오면 “작작 좀 해라”라는 욕설이 터지고야 만다. 왜 모르는 사람의 신기한 변신 과정을 지켜봐야 하느냐는 비아냥거리는 불평에는 “안보면 되지 않느냐”고 맞받아친다. 급기야 모 대학 교수는 “지하철에서 화장하지 말라.
프랑스에서는 몸 파는 여성이나 그렇게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고. 그러자 남성들이 반바지에 북실북실 털북숭이 다리를 떡하니 드러내는 혐오감은 어떻고, 세세만년 찌든 것 같은 역한 담배 냄새보다야 화장품 냄새는 오히려 향기라고 설명한다. 화장을 안 하고 출근하면 ‘초췌해 보인다’, ‘게으르다’ 하면서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힘들지만 꾸밈 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지하철에서 화장 문제가 이렇듯 논란이 되자, 최근 지하철역 내에 파우더룸이 마련된 곳도 생겨났고, 여대 안 편의점 중에는 파우더룸이 설치된 곳도 있다고 한다.
여유가 있는데도 일부러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따가운 시선을 맞아가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이면이 있을 것이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외적 아름다움 가꾸기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도 힘든 언덕이다. 화장만이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요술은 아닌데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하철에서 냄새를 풍기며 음식을 먹는 사람이 볼썽사납게 느껴진다면, 진한 화장품 냄새에 코를 틀어막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수긍할 만한 일이다.
한 여성이 식당에서 겪은 일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또다시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머리를 묶다가 식당 주인에게 혼났다’는 사연이었다. 늘 하고 다니는 긴 머리가 평소에는 매력 포인트이지만, 식사 때는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음식에 들어갈 수도 있어서 밥 먹을 때는 머리를 묶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머리를 묶으려 하자 식당 주인은 ‘머리를 만지지 말라’면서 식당에서 머리를 만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출처 모를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가는 바람에 애꿎은 식당 직원들이 욕을 먹고 음식을 다시 내오는 것은 물론 식당 이미지까지 안 좋아진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오히려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묶는 것이 타당해 보이고 심지어 어떤 식당은 입구에 머리 묶는 고무줄을 비치해 놓는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머리를 묶으려면 식당 밖이나 화장실에서 미리 묶어야지 여러 사람이 식사하는 식당 안에서 할 일은 아니라는 반론이다. 한 번에 살포시 잡아 재빨리 묶어 올리는 건 그나마 낫다. 비단길을 내려는 듯 수도 없이 쓸어내리는 손가락 빗질에는 인상이 써진다는 것이다.
세상일이 너나없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이리 보면 그 자리인 것 같기도 하고, 저리 보면 그 조각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관념에 있어서 절대 선(善)과 절대 악(惡)이 어디 있으랴 싶다. 요즘 우리 사회에 팽배한 대결 구도는 보기에 안타깝다. ‘내 맘도 내 맘대로 못하는 데 하물며 남의 맘을 어떻게 내 맘대로 하겠나?’ 싶다.
어차피 언제나 생겨날 논쟁이라면 ‘두들기지’ 말고 ‘다독이면’ 한결 부드러워질 것 같다. 두들기나 다독이나 그게 그거지만 결과는 다른 길로 향하지 않겠나. 부딪히기보다는 닿은 김에 안아 주자는 얘기다. 안고 있으면 이 마음 그 마음이 잘도 왔다갔다 하겠지. 혹시 또 모를 일이다. 그러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얌전히 화장하는 사람을 위한 오렌지색 좌석이 한 자리 생길는지도.
무척 더운 날씨인 요즘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한 뮤지컬 ‘시카고’를 보고 왔다. 뮤지컬로만 3번째이고 영화로도 감상했기에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다. 여러 번 보았지만, 매번 개성이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흠뻑 빠져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좋아하는 배우 리처드 기어가 얍삽한 변호사 빌리 플린으로 출연해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강렬한 인상의 캐서린 제타 존스의 눈빛이 퍽 마음에 들었고 그녀를 능가하고 싶어 하는 르네 젤위거가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듯 영화도 재미있지만, 실제 눈앞에서 음악이 울리고 춤추는 무희를 가까이 볼 수 있는 뮤지컬을 선호한다. 캐스팅을 보니 주인공 벨마 역에 박칼린이다. 박칼린은 무대 연출가나 음악 감독으로만 알았는데 그녀가 직접 배우로 나온다니 참으로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검색해 보니 18년 동안 연출이나 감독으로만 이 작품을 만났는데 이번 공연의 연출자가 벨마 역에 어울린다며 오디션을 권했다고 한다.
‘시카고’는 여러 번 연출을 맡았기 때문에 박칼린은 이 작품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우로 무대에 서기는 두려웠다는데 남들과 똑같이 오디션을 보고 더블 캐스팅되어 당당하게 무대에 서게 되었다. 매스컴에서의 박칼린은 키도 크고 몸집도 큰 카리스마 있는 연출가로만 보였다. 그러나 벨마로 무대에 선 박칼린은 얼굴도 작고 날씬한 몸매에 눈웃음이 매력적이고 애교도 많았다.
또 다른 주연 록시 역의 아이비는 언제나처럼 몸에 꼭 맞는 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뮤지컬의 특성상 출연진의 의상이 매우 자극적이다. 모두가 까만 망사 스타킹이나 몸에 딱 붙는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예쁘고 젊은 아이비와 한 무대에 섰지만 50세가 넘었다는 박칼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독보적이고, 이국적인 용모만큼이나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안재욱까지 합세해 열연하니 이날의 공연은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컸다.
보통 무대 아래에서 연주하는 음악 팀이 이번 공연에선 독특하게 무대 정면에 층층이 자리 잡아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들려줬다. 무대는 저마다 사연으로 감옥에 들어오게 된 여자 수감자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쇼걸 출신의 벨마는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동생을 총으로 살해한 죄로 잡혀 왔다. 언론의 시선을 끌어 변호사와 말을 맞추어 무죄로 풀려나려고 계획한다. 두 명이나 죽였지만,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불륜남을 살해한 죄로 예쁘고 젊은 코러스 걸 록시가 수감되자 벨마의 이야기는 뒤로 묻히고 새로운 살해범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을 이용해 록시 역시 얄팍하고 돈만 아는 변호사 빌리와 공모해 무죄를 주장한다. 빌리는 벨마보다 록시의 인기가 높아지자 록시의 편이 되지만 더 큰 스캔들의 여죄수가 들어오며 록시 역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무조건 새로운 가십과 흥미만을 좇는 대중과 언론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던 1920년대 시카고, 환락과 마피아가 성행하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스타를 꿈꾸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당시엔 있을 법한 이야기를 뮤지컬 ‘시카고’는 위트 있게 표현했다. 1975년 처음 뮤지컬로 제작된 이 작품은 격동기 미국 시카고의 분위기, 농염한 재즈 선율, 몸에 딱 붙는 의상을 입은 배우들의 섹시한 춤 등이 결합하여 관객을 즐겁게 한다.공연이 끝났는데도 검은 망사 스타킹에 시스루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관능적인 춤을 추며 부르는 대표곡 '올 댓 재즈'(All That Jazz)가 선명하게 남았다.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부르는 군무와 귀에 익숙한 멋진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잊히지 않는 아주 멋진 장면이다.
왜 그랬을까? 세상일은 알 수가 없는 일이어서 언제 나에게 돌발적인 사건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평생 도덕적이고 아름답게만 살 수도 있겠지만 벼락처럼 닥치는 사랑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큰 비극을 맞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 불꽃처럼 다가온 사랑을 피하지 않고 맞았지만, 결국 비극의 파멸을 맞는 아름다운 여자 이야기가 화려하고 멋진 무대에서 뮤지컬로 펼쳐졌다.
이제 서서히 봄에 자리를 내어주는 듯 매서웠던 추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겯기에도 좋은 기온이어서 남부터미널 전철에서 내려 필자는 버스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예술의 전당에 갔다.
예술의 전당은 항상 좋은 작품으로 넘쳐나고 있어 전면의 포스터들이 필자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저 포스터 중에는 오늘 감상할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외에 담 주에 볼 예정인 리처드 3세도 걸려 있어 기쁨의 미소가 떠오른다.
일요일 오후 2시, 공연 보기에 최적의 시간이어선지 공연장엔 사람들이 꽉 찼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안나 카레니나가 싫다.
어지간히 보수적인 필자의 입장에서 훌륭한 남편과 귀여운 어린 아들까지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사랑만을 좇아 가정을 떠난다는 게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젊었을 때 톨스토이 원작인 이 작품을 영화로 책으로 만나고 필자는 충격을 받고 분개하기까지 했다.
특히 어린 아들을 그렇게 사랑한다면서도 떠났을 때 꼭 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꼈으며 결말에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택했을 때 정의는 살아있다고 위안받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만큼 세월이 흐르니 그녀에 대한 느낌은 물론 벌을 받아야 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서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되며 대리만족을 해 본다.
그러면서 연륜이 사람을 좀 유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실소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인사가 있은 후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열린 무대는 화려했다.
러시아의 스케이트 광장이 배경으로 배우들이 스케이트를 타며 노래하는데 진짜 스케이트는 아니고 롤러스케이트지만 추운 나라의 즐기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시대는 19세기 러시아 상류사회이다.
키티라는 명문 가문의 아가씨는 브론스키 백작을 사모한다.
자신에게 프러포즈할 것을 믿었는데 무도회장에 나타난 브론스키는 이미 다른 여성을 보고 있다.
바로 특별하게 아름다운 모습의 유부녀 안나 카레니나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정치가의 아내로 나이가 20년 차이 나는 남편과 8살의 아들과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무료함을 느끼고 있다.
이때 그녀 앞에 나타난 매력적인 브론스키와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버리면서 둘만의 도피를 한다.
남편 카레닌은 그녀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려 하지만 자신들만의 사랑이 중요했던 안나는 거부한다.
그러는 사이 고향에는 그들의 불륜이 알려지며 비난받게 된다.
고향에 돌아와 브론스키의 만류도 뿌리치고 안나는 사람들의 무시와 질타를 느끼면서도 무도회장에 한껏 치장하고 나간다.
뮤지컬 내내 멋진 음악과 춤이 흥겨웠지만, 비도덕적인 안나를 향한 여인들의 날 선 군무는 참으로 인상 깊었다.
절도있는 모션으로 나란히 줄을 서서 안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장면은 어쩌면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부도덕한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 같다고 생각되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남편 몰래 집에 들어와 잠자는 아들을 안을 때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났으며 거기쯤에서 멈췄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견디지 못하고 브론스키와 처음 만났던 기차역에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원하는 사랑을 얻었지만, 세상의 질서에 반하는 일은 불행일 뿐이라는 교훈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에 가슴이 서늘하다.
주인공뿐 아니라 무대를 가득 채웠던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모두 멋져 보이는 공연이었다.
아름다운 모습의 안나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좀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옛날이야기나 역사자료에 따르면 자기 아들이 아님에도 어떤 계략이나 암투로 남의 자식을 친자로 알고 키우거나 대를 잇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사실은 왕의 씨가 아니었다는 역사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이라면 아주 어림없는 일이다. 유전자 검사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서로 확인할 당사자의 머리카락 한 올이나 손톱, 칫솔 정도로도 친자 여부가 가능하다니 놀라운 과학의 발전이라 하겠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아서인지 유전자검사라고 하면 어쩐지 불륜이 떠오르고 아니면 모르던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너희 집 자손이라 우겨서 분란이 일어나는 뭐, 그런 통속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개인유전정보분석 서비스라는 분야가 연구되고 있다 한다.
해외에서는 이런 유전 정보에 대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 단계라 한다.
개인유전정보분석이란 질병과 관련된 유전 체내의 변화를 검사해 특정 질병의 발병 확률을 예측하는데 최근에는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유전정보분석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질병은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유전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똑같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도 유전적 요인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폐암 발병 가능성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위험도를 미리 예측한 후 발병위험이 높으면 환경적 요인을 개선해 질병을 최대한 억제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유전정보분석을 받아두면 질병에 걸려서 드는 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고 한다.
개개인에게 맞는 좋은 음식이나 운동이 다 다른데 이러한 건강관리를 유전적 특성에 맞춰서 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유전체연구소 소장의 말에 따르면 유전정보는 인종 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한국인의 유전 정보를 많이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DNA GPS 서비스를 받으면 한국인에게 많이 발병하는 22가지 질병의 가능성 등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검사는 유전자 동의서를 작성한 후 혈액을 채취해 이루어지는데 검사 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맞는 맞춤형 건강관리 방법도 상담받을 수 있다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단계라 널리 알려진 분야는 아니지만 이런 분야에 더 많은 발전을 이루어서 국민 누구라도 손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간편하게 질병을 미리 예측해보고 예방할 수 있다면 좋겠다.
질병 예방 차원이라면 유전자 검사가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불륜을 떠올리거나 재벌 집에 모르던 아이를 들이미는 정도의 통속적인 이미지는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키스할 때는 코를 어디에 둬야 하죠? 코를 어디에 둘까 늘 생각했어요."
여 주인공 마리아는 사랑하는 연인 로버트에게 이렇게 묻는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였다. 이 한마디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단번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었다. 또 이 장면은 최고의 키스신이 되었다. 마초이면서 멋진 남자 헤밍웨이가 한 일이었다. 그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을 다루고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들어 겪은 일들을 글로 썼다. 전쟁 중 아름답고 청순한 그녀는 파시스트에게 험한 일을 당했다. 그러나 그녀의 맑고 아름다운 영혼은 망가지지 않았다.
'기가 막혀! 정말 이렇게 사랑스러워도 되는 거야?'
필자는 그녀에게 폭 빠져버렸다. 여자인 필자도 이럴진대 남자들은 어떠할까? 주인공 역을 맡은 잉그리드는 그 시절 가장 인기 있었던 미녀 스타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로 1960~1970년대에 온 지구촌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아니 그녀는 단지 대스타라고 하기에는 표현이 많이 부족했다. 175cm의 키에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여신이었다. ‘가스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승승장구하며 대스타로 입지를 다져가던 중 세인이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터진다. 치과 의사인 남편을 버리고 이탈리아의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동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불후의 명작인 그의 작품 '무방비 도시'를 본 그녀는 즉시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한다. '세상에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가슴속에 그런 용광로가 숨어 있었다니!' 두 사람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영화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백야', '블루 벨벳'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이며 특히 오랜 세월 랑콤 화장품 대표 모델로 활동했다. 그녀는 여신인 어머니와 지적이고 잘생긴 아버지의 우월한 유전자를 골고루 받고 태어났다. 그녀는 잉그리드가 우리에게 남겨준 선물이다. 잉그리드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녀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많은 영화를 통해 청순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정숙하고 아름다운 잉그리드의 불륜 소식에 세상 사람들은 경악했고 극도의 배신감으로 그녀를 비난했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7년간을 할리우드에 입성할 수 없었다. 로베르토와의 사랑도 8년 만에 금이 가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다.
지금도 필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뿐인 영원한 내 사랑 피터!"라며 치과의사 남편 피터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던 잉그리드가 로베르토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딸은 훗날 묻는다. “그렇게 성실하고 좋은 남자인 아빠와 엄마는 왜 헤어졌을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뜨거운 열정이 그녀를 대스타로 만든 것일까? 그녀는 끝까지 당당했다. "나는 배우다. 내 연기를 비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 사생활은 비난하지 말라“고.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스캔들만 알았을 때는 그녀의 열정에 열광했었는데 최근에 남편 피터가 아주 성실하고 좋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그녀에게 실망했다. 로셀리니 말고도 다른 두 명의 남자를 더 만나 사랑하게 된 그녀를 두고 필자의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건 열정이 아니라 난잡한 거거든!"
딸의 평가에 선뜻 그녀를 두둔하지 못했다. 필자의 젊은 날을 지배하고 매혹시켰던 그녀, 잉그리드 버그만을 이해하는 한계였다.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 내 소마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누드화 전시가 있다 하여 가봤다. 8월 11일부터 12월 25일까지란다. 모처럼 갔는데 휴관일이 아닐까 걱정되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월30일까지는 휴관일이 없다고 되어 있어 안심하고 가봤다. 소마 미술관은 종종 가봤는데 휴관일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한다. 평소에는 여러 가지 기획전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제법 큰 전시회라고 홍보되어 있었다. 입장료가 성인 1만 3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6000원으로 꽤 비싼 편이다. 경로할인이 6000원이다.
운 좋게 필자가 방문한 날에 이벤트가 열렸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카페에서 1만 3000원 어치 이상 음료를 팔아주면 1만 3000원짜리 무료 초대권을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입장 티켓을 보여주면 구매한 음료 외 아메리카노 한잔을 무료로 받았다.
테이트 미술관은 영국의 국립 미술관이라고 한다. 거기 소장되어 있던 작품 중 누드화를 테마로 하여 피카소, 드가, 르누아르, 마티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이 한국에 나들이 왔다. 누드화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누드는 19세기~20세기 작품 위주이다. 그전의 그림이나 조각품은 주로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심으로 누드를 등장시켰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누드를 아카데미 교육의 일환으로 채택했고 테마는 역시 고대신화, 성경, 문학 작품 등의 상상의 주제를 사용했다. 이것을 역사적 누드라고 분류했다. 20세기 들어 사적인 누드라 하여 목욕하는 여인, 욕조 안의 여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근대에 들어 모더니즘 누드라 하여 입체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위라 불리는 방식의 누드가 등장했다. 1920년대~1940년대까지를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시대라고 하여 누드를 꿈의 세계와 연관시켜 표현했다. 1950년대는 더욱 발전하여 표현주의 시대라고 한다. 피카소가 등장하고 나서 에로틱 누드 시대가 등장한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여성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그동안 남성 화가가 그리는 여성의 몸에 대항하여 소년부터 시작하여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는 몸의 정치학 시대라 한다. 1980년대 들어서는 누드 장르에 사진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연약한 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누드를 연약한 몸으로 보는 시대 조류이다. 이렇게 8가지로 구분하여 전시실을 배정했다.
테이트 미술전의 하이라이트는 3톤이 넘는 대리석 조각 ‘키스’이다. 로댕 작품이다. 특별 공간에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다. 한 부호의 요청으로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에로틱하다 하여 오랫동안 빛을 못 보던 작품이란다. 조각상의 모델도 불륜 사이라서 이 장면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설명이 있다. 오늘날 이 작품은 여러 예술품의 모델이 되고 있지만, 초기에는 주요 부위를 천으로 가리고 전시하는 등, 우여 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누드라 하면 음탕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웬만한 누드화는 집에 걸어 놓기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이라고 하니 예술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인간의 누드가 가장 아름다운 소재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누드도 모두 숭고하게 보인다. 누드에서 발전하여 남녀의 성교 장면을 스케치 한 작품도 따로 있는데 그 전시실에는 미성년자들은 못 들어가게 통제한다. 인상적인 작품으로, 누드를 말로 풀어 단어를 나열한 작품도 있었다. 이카루스의 죽음을 표현한 작품도 좋았다. 누드 작품 100여점을 보고 났는데 성적인 욕망이 전혀 안 생긴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올림픽공원의 푸른 녹음을 보며 진정시켜야 한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 될 때 하는 말이다.
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다. 사업의 성격상 50대 초반의 여성근로자를 많이 고용하는 업체다. 근로자를 채용할 때 개인별 면담을 하면 고용보험과 관련하여 이런 부탁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즉, 본인이 지금 실업상태여서 고용보험을 받고 있는데 취업이 되면 고용보험을 더 이상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남편이나 아들의 이름으로 급여를 당분간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고용보험법을 어기는 범죄 행동이지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런 범죄 모의를 술술 제안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이없다고 한다.
'회사 사장인 당신은 내가 일한 보수를 줘야하는데 단지 명의만 바꾸어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손해 볼 것이 없지 않느냐'사장으로서 종업원의 편의를 봐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는 기본 바탕의 인식이 너무 강해 뭐라고 타이를 수도 없다고 한다.
또 일을 그만하고 퇴사할 때 자의로 사표를 내면서도 고용보험을 타기위해 회사의 사정으로 해고되었다고 명기한 서류를 고용보험 사무실로 통보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체용 때와 똑 같은 잣대다. 사장이 당신이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도 다 이렇게 한다는데 못해줄 이유가 뭐 있느냐! 가난한 근로자를 위해 퇴사사유에 몇 자 적어주면 되는데 그 정도 편의를 봐주지 못하면 악질사장으로 금방 소문을 낼 것처럼 표정을 짓는 다는 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이런 사람들일수록 남의 잘못에는 용서하지 못하고 흥분한다고 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세금 포탈이나 아파트 당첨을 위해 위장전입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어찌 저럴 수가 있느냐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일장 연설을 한다고 한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또 다른 일면이다.
별것도 아닌 교통사고를 의사와 짜고 사고를 부풀려 오랜 기간 병원에서 나이롱환자 행세를 한다. 비용은 고스란히 자동차 보험에서 지급되기 때문에 누구 개인에게 직접 피해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런 행동이 도무지 범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것을 막아야 할 보험회사 직원도 한패가 되어 가담하기도 한다. 이런 비용들이 결국 보험료인상으로 보험가입자 전체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요즘은 길거리의 cctv가 각종교통위반을 적발해내고 벌금을 매기는 교통경찰의 일을 척척해 내지만 과거에는 길거리에 교통경찰이 많았다. 즉 교통신호위반도 잡고 과속도 적발하여 벌금을 때렸다. 적발되면 몰래 돈 몇 푼을 넘기고 봐달라고 사정을 하면 돈의 위력으로 교통경찰이 눈감아주고 유야무야 없든 일로 끝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교통경찰을 매수하였으면서도 돌아서는 교통경찰의 뒤통수에 대고 속으로 쌍욕을 해댄다.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함에도 돈으로 유혹한 자기 잘못은 제쳐두고 유혹에 넘어간 상대방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쏜다. 참으로 적반하장이요 꼴불견이다.
세상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 하지만 사람은 먹이만 탐하는 짐승과는 다르다. 체면이 있고 예의가 있다. 넓게 보는 공동체의 이익도 생각해야 한다. 강물에 우리 집 쓰레기를 버리면 당장은 우리 집이 깨끗하지만 강물을 먹는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몰라서 하기보다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을 자신만의 이익을 쪼아 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맑고 깨끗한 공기와 물은 기본이고, 건강한 먹거리도 필수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려면 자기 적성에 맞고 나아가 자아실현을 위한 일거리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사회에서 이미 정년을 마친, 시쳇말로 한물간 나이 든 사람에게 좋은 일자리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그것도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직장은 마치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이 기피하는 변두리 지역 또는 교통이 불편한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게 된다. 채용만 해준다면 동해의 외딴섬 독도도 좋고 최남단 마라도도 얼씨구 절씨구다. 아내와는 자연스럽게 주말부부가 된다.
아내 없이 혼자 지내다 보면 불편한 점이 많다. 첫 번째는 식사 준비와 설거지다. 그동안 해보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선에 출마한 모 후보는 설거지가 여자 몫이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사과까지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60세가 넘는 나이 든 사람들은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것은 당연히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필자도 자랄 때 부모로부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요리학원에 등록해 몇 가지 뚝딱 반찬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남자 혼자 해먹는 밥이 오죽하겠냐마는 아내가 준비해준 반찬과 국거리에 적당히 가미해 식사를 해결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평소 다져온 건강과 아무거나 잘 먹는 타고난 식성에 금방 해먹는 밥맛이 조화를 이루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두 번째는 외로움이다. 말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할 일이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을 독방에 가두는 것만 봐도 외로움은 형벌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술, 혼밥이라는 말이 생겨나는 세상이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 애완동물이라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혼자 TV를 보면 재미가 없다. 예전에도 권투나 축구 등 전 국민이 열광하는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에는 대형 TV가 있는 다방 문 앞에 몇 시에 중계방송이 있으니 오라는 광고 안내문이 나붙었다. 하지만 이제 혼자 있을 때가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고독력을 키워야 할 정도다. 혼자 전자책이라도 읽으며 인터넷 바둑을 두기도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외로움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다. 인간의 능력은 개발할수록 무궁무진하다. 혼자 있을 때 연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만하다.
세 번째는 밤새 안녕이다. 직원 중 한 사람이 출근을 하지 않아 숙소로 찾아가 봤더니 죽어 있었다. 자신의 긴급한 상황을 알리려고 전화기 줄을 잡아 끌었던 흔적을 보고 안타까웠다. 옆에 누가 있었다면 살아 있었을 사람이다. 건강 상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건강검진을 통해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 대사증후군 예방은 기본이고 운동과 섭생에 유의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마음의 통을 키워야 한다.
네 번째는 방종이다. 혼자 있으면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움은 있다. 하지만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술이나 오락 또는 불륜에 빠지기도 한다. 필자는 지방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어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이 없는 곳에서도 잘 찾아보면 주민센터와 특별 단체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끝없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표가 뚜렷하고 건실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면 샛길로 빠질 틈이 없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혼자 객지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필자는 테니스를 좋아해서 새벽 테니스를 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테니스 할 곳을 못 찾으면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건강을 다진다. 아침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린 후 샤워를 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지방의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하는 것도 좋다. 지역의 고적지 탐방도 해볼 만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편하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없다. 나이를 먹어도 일거리가 있고 그 일에서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면 주말부부로 지내는 불편함은 걸림돌이 될 수 없다.
김태용 감독 작품이다. 계약직 교사 효주 역으로 김하늘, 이사장 딸 혜영 역에 유인영, 남학생 재하 역으로 이원근이 주연으로 나온다. 스릴이 넘치고 심리전이 돋보이는 공포 영화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점도 흥미롭다.
효주는 계약직 교사로 정교사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장 딸 혜영이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성격까지 사근사근한 혜영은 학교 선배인 효주에게 다가서려 하지만, 속이 뒤집어져 불편한 효주는 혜영에게 못되게 군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체육관 뒤편에서 무용특기생 고교 3년인 재하와 혜영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혜영의 약점을 손에 쥔 효주는 혜영을 굴복시키고 재하마저 빼앗는다. 따로 발레 과외까지 시키며 재하를 자신의 남자로 만든다. 그러나 재하가 콩쿠르에 나간 날 객석에 혜영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재하는 혜영을 계속 만나고 있었다. 재하가 효주를 여자로 대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혜영의 사주이기도 했다. 둘 다 한 남자를 상대로 불륜을 저지른 것이므로 비긴 셈이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효주는 반대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그래도 혜영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려 했으나 혜영은 이미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다며 더 이상 약점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효주는 혜영의 입김으로 재임용 명단에서도 제외된다. 결국 효주는 혜영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용서를 빈다.
혜영은 다시 승자가 되어 효주를 가지고 논다. 어차피 교직 생활을 오래할 생각도 없었고 곧 약혼해서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던 혜영은 재하는 미국 가기 전까지의 심심풀이 상대였다고 말한다. 혜영은 집에 찾아온 효주에게 이것저것 시키며 부려먹는다. 차 좀 끓이라고 시켜놓고 소파에 길게 누워 승자의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효주는 끓는 물을 그대로 혜영의 얼굴에 붓는다. 마침 재하가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효주는 학교에 가서 여유를 즐긴다. 경찰차가 학교에 들이닥친다.
마지막 효주의 행동만 빼면 이 영화는 남자를 사이에 둔 여자의 질투, 가진 자에 대한 질투, 그리고 너무나 위험한 제자와의 불륜 등으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주는 심리극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남교사와 여자 제자 간의 불륜은 종종 기사에도 등장하지만, 여교사와 남자 제자 간의 불륜은 드문 예다. 옛날 같으면 사회적인 지탄 및 혹평을 받았을 만한 소재이지만,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이 정도의 영화 스토리는 무난하다. 우리 시니어들은 고등학생 시절 모두 까까머리였다. 이상하게도 기를 죽게 만드는 머리였다. 그런 모습으로 여교사와의 사랑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유화가 됐다. 영양 상태도 좋아 고등학생도 꽤 남성적인 매력을 보인다. 여교사들과 나이 차이는 있지만 서로가 매력적인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도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아내와 남편이 아닌 상대와 성관계를 갖는 일로 바르지 아니한 길이나 노릇이라고 설명돼 있다. 배우자의 허락이 없는 이성과의 성관계가 있을 때 외도라고 본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지인의 아내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어느 날 “당신을 사랑하지만 여자 없이는 못 살겠다”고 말했단다. 그 후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외도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아내가 모르는 편이 낫다는 것이 필자의 마음이다.
외도는 명백한 잘못이고 문제인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 같다. 외도는 뭔가 허전하거나 불만족스러울 때, 그리고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을 때 일어나곤 한다. 무심한 지경이 지속될 때 어디에 무지개가 없을까 하며 기웃대는 행위가 외도다. 어디에선가 햇볕 같은 위로를 받아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나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오매불망해보는 것이다.
어쩌다 감정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 서로 잠자리를 나눌 수 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외도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구구한 이유를 갖고 있다. 남자에게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욕구가 여성보다 더 많다는 잠재적 이유가 있을 테고, 여자에게는 반드시 결핍 동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돈을 제대로 안 벌어다 주거나 신뢰가 무너졌을 때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배우자와는 엄청 다른 사람이라는 착각과 편견을 갖게 된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로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로뎅의 작품이라며 감상을 요구했더니 혹평을 했다. 그래서 사실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했더니 줄행랑을 쳤다는 일화가 있다. 이런 편견들은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곤 한다.
외도가 발각됐을 때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부부가 이혼을 하는 이유의 49.3%는 배우자의 외도였다. 이렇게 가정이 파괴되는데도 애인이 없으면 심지어 불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외도는 잠시의 상쾌한 느낌일 뿐이다. 외도 호르몬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한 번의 만남으로 정나미가 떨어질 수도 있고, 이런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외도로는 일상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필자의 친구는 남편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자기와 성관계를 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모습에서 깊은 사랑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 한눈팔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상대를 믿고 진심을 다해 살면 된다. 부부간에는 속 깊은 대화가 더 많아야 한다. 사실을 추궁하고 상대의 마음을 쓸데없이 확인하면 점점 상대가 부담스러워지고 숨기는 것들이 많아진다. 또 그런 모습을 눈치 채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이때 벌어진 틈으로 외도라는 바람이 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변덕스럽고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