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화장’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사입력 2018-08-23 11:03 기사수정 2018-08-23 11:03

조금 불편하고 때론 다소 억울해도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것까지 공론 거리가 되나 싶을 만한 일에도 대문짝만한 자기표현이 주렁주렁 달린다. 특히나 지하철이나 식당 등에서 예사롭게 보아 왔던 일들도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된다. 그러다 논쟁이 도를 넘어 서로 비난하고 대립각을 세우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즘, 지하철에서 화장하기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들이 흔히 눈에 띈다. 입술이나 눈썹화장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톡톡 두드리며 베이스를 정성스레 먹이는 것은 물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위로 치켜뜨고 몰입하다가 입술도 슬며시 열리는 마스카라 화장은 풀 메이크업의 절정이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

화장은 집에서 하고 나와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과제에 눌리고 야근에 허덕이다 시간이 빠듯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다는 반응이다. 진한 화장품 냄새에, 파우더 가루가 옆 사람의 양복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고, 바삐 나폴 거리던 팔꿈치가 아주머니를 가격하는 사태까지 오면 “작작 좀 해라”라는 욕설이 터지고야 만다. 왜 모르는 사람의 신기한 변신 과정을 지켜봐야 하느냐는 비아냥거리는 불평에는 “안보면 되지 않느냐”고 맞받아친다. 급기야 모 대학 교수는 “지하철에서 화장하지 말라.

프랑스에서는 몸 파는 여성이나 그렇게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고. 그러자 남성들이 반바지에 북실북실 털북숭이 다리를 떡하니 드러내는 혐오감은 어떻고, 세세만년 찌든 것 같은 역한 담배 냄새보다야 화장품 냄새는 오히려 향기라고 설명한다. 화장을 안 하고 출근하면 ‘초췌해 보인다’, ‘게으르다’ 하면서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힘들지만 꾸밈 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지하철에서 화장 문제가 이렇듯 논란이 되자, 최근 지하철역 내에 파우더룸이 마련된 곳도 생겨났고, 여대 안 편의점 중에는 파우더룸이 설치된 곳도 있다고 한다.

여유가 있는데도 일부러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따가운 시선을 맞아가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이면이 있을 것이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외적 아름다움 가꾸기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도 힘든 언덕이다. 화장만이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요술은 아닌데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하철에서 냄새를 풍기며 음식을 먹는 사람이 볼썽사납게 느껴진다면, 진한 화장품 냄새에 코를 틀어막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수긍할 만한 일이다.

한 여성이 식당에서 겪은 일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또다시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머리를 묶다가 식당 주인에게 혼났다’는 사연이었다. 늘 하고 다니는 긴 머리가 평소에는 매력 포인트이지만, 식사 때는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음식에 들어갈 수도 있어서 밥 먹을 때는 머리를 묶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머리를 묶으려 하자 식당 주인은 ‘머리를 만지지 말라’면서 식당에서 머리를 만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출처 모를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가는 바람에 애꿎은 식당 직원들이 욕을 먹고 음식을 다시 내오는 것은 물론 식당 이미지까지 안 좋아진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오히려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묶는 것이 타당해 보이고 심지어 어떤 식당은 입구에 머리 묶는 고무줄을 비치해 놓는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머리를 묶으려면 식당 밖이나 화장실에서 미리 묶어야지 여러 사람이 식사하는 식당 안에서 할 일은 아니라는 반론이다. 한 번에 살포시 잡아 재빨리 묶어 올리는 건 그나마 낫다. 비단길을 내려는 듯 수도 없이 쓸어내리는 손가락 빗질에는 인상이 써진다는 것이다.

세상일이 너나없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이리 보면 그 자리인 것 같기도 하고, 저리 보면 그 조각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관념에 있어서 절대 선(善)과 절대 악(惡)이 어디 있으랴 싶다. 요즘 우리 사회에 팽배한 대결 구도는 보기에 안타깝다. ‘내 맘도 내 맘대로 못하는 데 하물며 남의 맘을 어떻게 내 맘대로 하겠나?’ 싶다.

어차피 언제나 생겨날 논쟁이라면 ‘두들기지’ 말고 ‘다독이면’ 한결 부드러워질 것 같다. 두들기나 다독이나 그게 그거지만 결과는 다른 길로 향하지 않겠나. 부딪히기보다는 닿은 김에 안아 주자는 얘기다. 안고 있으면 이 마음 그 마음이 잘도 왔다갔다 하겠지. 혹시 또 모를 일이다. 그러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얌전히 화장하는 사람을 위한 오렌지색 좌석이 한 자리 생길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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