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에 뜨도록 이불 속에서 뭉개다 일어나 TV를 보는 고등학생 아들 가오(량진룡 분). 그 시각 어머니 정 여사(포기정 분)는 동네 ‘Wellcome’ 슈퍼마켓에서 일하느라 바쁘다. 도입부만 보면 게으른 망나니 아들을 둔 홀어머니 고생담 아닐까 싶지만, 점차 관객은 가오가 HKCEE(홍콩 중등교육검정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이며, 신문을 사오라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달라는 어머니의 소소한 심부름에도 군말 않는 착한 아들임을 알게 된다.
외할머니 생신 잔치 때, 외국을 들락거리는 잘사는 외삼촌 가족 사이에서 쭈뼛거리는 정 여사와 가오. 외할머니가 입원하자 가오는 바쁜 어머니 대신 사촌 여동생(진옥련 분)과 함께 부지런히 죽 도시락을 날라댄다. 외할머니는 “네 엄마는 일밖에 모른다. 남동생 둘을 다 공부시켰고, 맏딸로 고생 많이 했다”며 울먹인다. 이 장면은 공장에서 일하는 홍콩 여성들의 옛 사진과 남편의 관 앞에서 서럽게 우는 정 여사 모습으로 이어진다.
정 여사는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혼자 사는 할머니(진려운 분)의 TV 구입을 도와주고, 할머니는 말린 버섯을 선물한다. 서로 의지하는 이웃이 된 정 여사와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의 시험 결과를 궁금히 여긴다. 세상 떠난 딸이 남긴 유일한 자손인 손자가 보고 싶지만, 사위가 재혼해 맘놓고 전화하기도 힘든 할머니. 정 여사는 사위와 손자를 만나러 가는 할머니와 동행한다. 손자는 아르바이트로 바쁘다며 나오지 않고, 사위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해준 게 없어서…”라며 내미는 금반지를 물리치고, “새 장모님이 아프셔서…” 하면서 음식 값을 치루고 훌쩍 나가버린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할머니는 “자네와 가오에게도 주려고 은반지를 샀어. 손자와 사위 내외에게 주려던 금붙이도 자네가 갖게”라며 반지 상자들을 내민다. 정 여사는 “그럼 간직해둘게요. 무슨 일이든 도와드릴게요” 한다. “나도 가오를 손자로 여기고 기도할게”라고 답하는 할머니.
중추절을 앞두고 월병(月饼) 티켓을 구해온 외삼촌(고지삼 분)은 배웅 나온 가오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다. “네 유학비용은 걱정하지 마. 외삼촌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허안화 감독의 은 정 여사와 가오, 할머니의 일상(장을 보고, 조리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는 별스럽지 않은 하루하루)을 통해 서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특히 밥 먹는 장면이 어찌나 많은지 고기와 푸성귀 볶음, 계란 부침과 국 등 두 개 이상 찬이 오르지 않는 식탁에, 젓가락으로 밥과 반찬을 입안에 쓸어 넣듯 하는 빠른 식사까지. 만한전석(滿漢全席)을 자랑하는 중국 요리를 느긋느긋 음미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초간단 조리와 초스피드 식사 장면으로 시간 흐름을 보여주며, 원제목인 ‘天水圍的日與夜’와 영어제목인 ‘The Way We Are’에 충실한 영화임을 증명하려는가 싶다.
먹는 문제를 중하게 혹은 별스럽지 않게 보여주던 영화는 마지막도 식사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중추절을 맞아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정 여사와 가오와 이웃 할머니. 웃으며 과일과 월병을 나누는 그들 뒤로 고층 아파트 불빛이 보이고, 창밖으로 이동한 카메라는 아파트 광장에 모여 중추절을 기리는 주민들을 보여준다. 노동으로 그날의 끼니를 장만하는 서민 아파트 사람들에게도 달은 은은한 빛을 내린다.
이 영화는 허안화 감독의 생활 밀착형 세밀화 작품(, )의 맥을 잇고 있다. 가족과의 마작놀이 셈도 바로 치루는 정 여사의 반듯함, 금목걸이를 주고받는 정 여사와 할머니의 정서적 연대를 식사 장면처럼 무심하게 그려낸다. 눈썰미 좋은, 영화에 푹 빠진 관객이 아니라면 물처럼 흘려보내기 쉬운 장면들. 산다는 것은 밥 먹고 잠자는, 그날이 그날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아들은 교회 선생님을 잠깐 흠모하고, 어머니는 늙고 병들며, 친척 장례식장에서 종이돈 접는 품앗이를 하기도 한다.
이렇다 할 설명이나 교훈 없이 담백한 장면을 그리기만 했는데도 허안화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차곡차곡 쌓여 가슴이 뻐근해진다. 세월이 흘러도 뭉클하게 떠올릴 것 같다. 허안화 감독의 작품에는 영화배우 같은 배우가 아닌, 마치 그 지역에 사는 평범한 외모의 실제 인물이 일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한다. 무심한 표정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삶의 회한을 미세하게 드러내는 포기정과 진려운의 연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은 영화 배경으로 천수위를 택함으로써 홍콩 현실을 담아내는 사회적 책무에도 충실하게 복무한다. 천수위(天水圍)는 1990년대 홍콩의 토지 개간으로 생긴 서민 주거 지역이다. 1980년대부터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이민 온 이들 30여 만 명이 살며 고층 아파트형 공용 주택이 많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적응과 사회 지원 부족으로 가정 폭력, 자살, 실업 등의 불행한 뉴스가 많았는데, 2007년 10월 어머니와 두 자녀가 고층 주택단지에서 사망한 사건이 유명하다.
홍콩과 중국은 하나가 됐지만, 영화에서는 높은 벽이 그려진다. 특히 천수위는 1980년대 홍콩 누아르의 몽콕 지역처럼 묘사된다. ‘슬픔의 도시’로 알려진 천수위는 중국과 홍콩의 관계, 홍콩의 정체성 모순이 집약된 배경으로 등장한다. 천수위를 배경으로 한 유국창 감독의 (2008)도 홍콩 영화 금상장 신인상과 미술상 후보에 오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천수위에서 영화를 찍겠다는 허안화의 제안에 제작자는 영화가 음울해질 거라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한다. “그럼 아주 저렴한 텔레비전 영화를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9월에 촬영을 시작해 연말 전에 완성했다. 제작비도 100만 홍콩 달러 정도밖에 안 들었다. 고화질 HDV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을 본 제작진은 다음 작품인 (2009) 제작에 동의했다고 한다.
중국과 홍콩의 경제적 격차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구 이동과 계급, 사회 격차를 은유적, 함축적으로 담아낸 은 제28회 금상장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는 과는 무관하다. 중국에서 온 웡히우링(장정초 분)과 리삼(임달화 분) 부부는 천수위의 아파트에 산다. 의처증 심한 리삼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아내를 폭행한다. 참다못한 웡히우링은 두 딸과 여성복지시설에 몸을 의탁한다. 리삼이 찾아와 마치 새 사람이라도 된 양 사과하며 마음을 고쳐먹은 듯하다가도 발작적으로 웡하우링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홍콩 남자와 사랑에 빠져 홍콩에서의 근사한 삶을 상상했던 중국인 아내의 팍팍한 일상. 이 나이를 초월한 두 여성의 우정을 그렸다면, 는 중국-홍콩 가족의 파멸 드라마다.
‘내 청춘아 어디로 갔니, 소리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건만, 그것이 인생이더라.’ 오승근(吳承根·66)의 새 앨범 수록곡 ‘청춘아 어디갔니’의 가사다. 노래 속 그는 청춘을 찾고 있지만, 현실 속 그는 “내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 말한다. 노래하는 지금이 청춘이고, 노래를 불러야 건강해지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노래와 함께 남고 싶다는 천생 가수 오승근. 사진을 찍을 때 “주름은 지우지 마라”며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그의 미소에는 특유의 편안함이 배어 있었다. 아내(故 김자옥)가 떠난 뒤, 이제는 살림도 제법 하면서 싱글라이프를 톡톡히 즐기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껏 나온 앨범 표지 중에 표정과 의상이 가장 밝아요. 밝기도 하고 젊기도 하죠. 한동안 ‘내 나이가 어때서’를 많이 불렀잖아요. 이후에 다른 곡들도 발표했는데 사람들에게 어필이 안 됐어요. 그 노래의 인상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이번에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뛰어넘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표지 촬영한 것 중에 중후한 멋의 사진들도 있었는데 사진작가나 기획사에서는 젊게 나가는 게 좋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에 포토샵도 하고(웃음). 나야 그런 거 안 하는 게 자연스럽고 좋긴 하죠.
타이틀곡으로 ‘맞다 맞다 니 말이 맞다’를 고른 이유가 있나요? 전체적인 흐름이 좋았어요. 리드미컬하고, 따라 부르기 쉽고. 나이 들고부터 곡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남이 어떻든 간에 나를 나타내려고 가수를 위한,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했거든요. 요즘은 반대로 “이 노래는 내 노래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노래”라고 하고 불러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보다는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려고요. 예전에 ‘투에이스’, ‘금과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는 듣기는 좋아도 따라 부르긴 어려웠어요. 그래도 여전히 찾는 팬들이 있어 자주 불러드리곤 하죠.
‘떠나는 님아’, ‘빗속을 둘이서’ 등 청춘 시절 노래를 부르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이전과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노래는 말이죠, 젊었을 때와 나이 들어서의 감정이 똑같아요. 오히려 노래를 부르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죠. 다만, 나이가 들어서 까랑까랑하던 높은음이 안 나오는데, 그럼 키를 낮추면 되니까. 동년배는 지금 목소리를 더 좋아하기도 해요. 청춘이라는 것도 꼭 20대만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40대가 된 사람이 30대를 그리워하는 것도 청춘이고, 60대가 50대 떠올리는 것도 다 청춘 아니겠어요? 노래는 그런 감정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거죠.
타이틀곡 ‘맞다 맞다 니 말이 맞다’에서 ‘사랑해서 미안합니다’라는 가사는 어쩐지 애잔하더라고요. 아내를 향한 감정이 담긴 것이 아닐까 궁금했어요. 그런 건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조심스럽게 부르긴 해요. 그만큼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사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데 왜 미안해? 물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미안할 수도 있거든요. 연인이나 부부, 자식 관계도 그렇고 모든 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운하기도 하고, 상처도 주고 하니까요.
아내를 위한 추모곡 계획은 없나요? 안 하려고 해요. 추모는 그 사람을 계속 기억한다는 건데, 그러면 괴로움도 계속되는 거예요. 그 마음 아픈 게 얼마간은 있을 수 있지만 10년 20년 그렇게까지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노래로 만들어놓으면 계속 남잖아요. 그건 남들에게 자꾸 ‘가지고 있어라’ 강요하는 거밖에 안 돼요. 그 사람도 좋은 곳에 갔을 거고, 우리 애들하고 나하고 기도하고 그러니까. 다들 그런 그리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면 좋겠어요.
아내의 부재가 마음이 쓰여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말을 나중에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지내세요?” 똑같아요. 조금 달라진 거는 일하고 집에 갔을 때 같이 있었는데 이젠 혼자 있다는 것. 그 차이일 뿐이죠. 한동안은 같이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잠시 여행 갔다고 말이죠. 전에 같이 있을 때도 몇 개월씩 여행을 다녀오곤 했으니까. 어디 갔구나, 곧 오겠지, 근데 어떻게 하지? 혼자 밥해야 하네? 그렇게 조금씩 실감했어요. 애절하게 ‘나 외로워’ 이건 아니고.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매일 그러지 않죠. 그러면 남은 사람이 힘들어져요.
살림 솜씨가 늘었겠어요. 요리도 잘하세요? 잘하죠. 나 설거지도 잘하고 반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요. 처음에는 (장가간) 아들하고 같이 살려고 했어요. 근데 아이들도 나도 편하게 살려면 분가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아내랑 함께 살던 집에서는 내가 못 지낼 것 같은 거예요. 거실이며 부엌이며 그 동네 어귀에도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데…. 거기 사는 건 내가 너무 괴롭다. 아빠가 나갈게. 그러고는 아내랑(봉안당) 가까운 판교에서 혼자 살게 됐어요.
그야말로 싱글라이프네요. 일상에서의 즐거움은 뭔가요? 내가 참 감사한 게 주변 친구들을 보면 다 실업자들이에요. 직장인들은 정년퇴직하고, 사업가들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근데 나는 정년 없지, 새 노래도 만들 수 있지. 자기 관리만 잘하면 100세까지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또 애들 엄마 하늘에 가면서 일찌감치 상속 정리를 했어요. 그러니 내가 벌어서 나만 쓰면 되고, 쓰고 남으면 좋은 데 봉사하고, 눈치 보지 않고 쓰고 싶은 데 쓰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러지. 그 자체가 즐거움이죠.
자기 관리 비법이 따로 있나요? 노래를 하면 젊어져요. 엊그제도 몸이 안 좋았거든요. 그러다 무대에서 섰는데 원래 부르기로 한 세 곡을 다하고 앙코르를 해서 총 다섯 곡을 불렀어요. 노래하면서 에너지를 채운 것 같아요. 노래가 약인 거죠. 지방 갈 때 아침엔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다녀오면 좋아져요. 매니저한테 나 오래 살길 바라면 일 많이 잡아줘야 한다고 해요(웃음). 약이 되는 피곤함이랄까?
일 외에 취미생활은요? 여행은 안 다니세요? 운동 삼아 골프도 치고, 여행도 가끔 가요. 사람을 골라서 만나지는 않지만, 여행 파트너는 마음이 맞아야 하거든요. 함께 다니던 가장 친한 친구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50년 지기인 데다가 마음도 참 잘 맞았는데… 그러는 바람에 이제 누구랑 여행을 가야 하나 싶어요.
요즘은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도 많잖아요. 혼자가 좋다고들 하는데, 그건 정말 혼자가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도 자다가 어떻게 될까 싶어 무섭고 외로워요. 여행은 좋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게 최고죠. 어떻게 보면 지금이 얽매일 것 없어 여행 가기 좋은 때이기도 해요. 얽매이는 건 가정인데, 아이들도 다 커서 자유로워요. 근데 오히려 편하니까 나태해지더라고요. 이게 아니다 싶으면 스스로 채찍질도 하죠. 온전한 자유 안에서의 불안이 있잖아요. 고삐가 없는 것처럼.
자유로운 지금,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처럼 도전하고 싶은 일은 없나요? 나는 내 나이를 몰라요. 생각 안 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가고 싶은 데 있으면 가고. 친구들에게 그래요. 너희들 돈 쓸 날도 얼마 안 남았어! 좋은 것도 한때이지 쓸 수 있을 때 쓰고, 재미있게 즐겨야죠. 지금처럼 자유롭게 지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오히려 도전, 목표 이런 걸 정해놓으면 거기에 구애받으니….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편이네요. 원래 성격이 그랬나요? 아뇨. 예전에는 그렇게 했어도 구애를 받게 되죠. 옆에 사람(아내)이 있으니까. 신혼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내왔는데, 살다 보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맞추는 게 좋더라고요. 아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계속 바뀌었죠. 근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요즘 나를 말하자면 자유분방 그 자체?
여전히 아내 얘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솔직히 불편하지는 않나요? 할 수밖에 없죠 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근데 너무 길게 이야기하지는 말자 그래요. 그럼 또 생각나니까… 내가 힘들어져요.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물 흐르듯 지나가면서 하는 정도가 괜찮아요.
아내 김자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우리는 만나고 6개월 만에 결혼해서 서로를 다 알지는 못했어요. 살면서 느끼고, 알아갔죠. 다음 생에서도 그 사람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다시 결혼하고 싶은 그런 여자예요. 근데 나뿐만 아니라 참 많은 사람이 사랑했잖아요. 아내가 떠날 때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어요. 이 사람 참 잘 살았구나 생각했죠. 내가 죽을 때도 그럴까 싶어요.
대중에게 오승근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내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아 이 사람! 그렇게 노래와 가수가 함께 떠오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내가 세상에 없더라도 노래와 함께 회자되고 남아 있다면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노래 자체가 나의 정체성이고, 나의 정체성이 노래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게 대중에게 공유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무엇보다 음식 자체의 맛이 좋아야 하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오순도순 재미있는 담소를 나누는 기분 좋은 상태에서 먹어야 한다. 더 바란다면 주위 분위기가 아름답고 잔잔한 음악소리가 바닥에 깔린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 먹을 때마다 매번 그런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과 먹기는 황제가 아닌 이상 힘들다.
필자는 어떤 장소이건 아무음식이나 잘 먹지만 불결할 것 같은 음식점이나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 곳에서의 식사는 극도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이제 나이 들어 이것저것 가리는 것도 주책이고 어른스럽지 못해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싫어하는 곳 첫 번째가 초상집 음식이다. 초상집에서 통곡소리 들으며 흰 소복 입은 여자들이 날라다주는 음식에는 죽은 사람의 귀신이 붙어 있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들어오던 옛날이야기에 의하면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 기가 약한 사람에게 옮겨와 병들게 하거나 저승길에 동행하자고 속삭인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아내도 필자가 초상집에 다녀오는 날은 현관문을 들어서기 전에 뒤로 돌아서게 하고 소금을 한 주먹씩 뿌린다. 귀신을 쫓는 의식이란다. 귀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우리세대는 귀신과 죽은 사람을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다. 초상집음식을 제대로 먹으려면 귀신의 존재를 의식에서 없애야 한다.
요즘은 장례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흰 소복 입은 여인네를 보기도 어렵거니와 더더욱 통곡소리를 들어본지는 까마득하다. 심지어 예전에는 금기시되던 웃음소리도 초상집에서 들을 정도로 망자에 대한 애틋함이 사라졌다. 핵가족화 되어 어르신들과 떨어져있는 기간이 길어졌고 환경과 의료시설의 발달로 무의미한 삶을 너무 오래 살다보니 그나마 남아있던 애잔한 정도 요양원 생활을 거치면서 얕아져 버렸다.
음식서빙은 일가친척의 여인네들이 도와주던 시대에서 군복 같은 제복을 입은 전문 상조회사의 잘 훈련된 직원들이 도맡아하고 있다. 음식도 식당에서 위생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한결 좋아졌다. 예전의 초상집과는 다르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머리에 돼내며 초상집 음식 먹기에 점점 노력하고 있다. 살고 죽는 것이 다 한편의 인생사 드라마로 인식한다.
두 번째가 시장바닥에 좌판을 깔고 파는 음식들이다. 방송에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투어를 하면서 값싸고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먹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자만 아직은 시장통로의 좌판음식은 비위생적인 이유로 기피한다. 좁은 시장 통이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부딪치는 것도 짜증나지만 시장의 좌판에는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무엇을 제대로 씻기가 어렵다. 식기세척이 어려우니 접시에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뜨거운 음식을 담아내고 다 먹고 나서 비닐만 걷어서 버리고 새로 비닐을 씌우는 것으로 설거지가 필요 없다. 간편한 방법이지만 뜨거운 음식을 담아내는 비닐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이 걱정된다. 물이 귀하니 음식재료를 제대로 세척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음식원가를 낮추려고 저가의 재료에다가 맛을 내게 하는 조미료를 과다하게 살포하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주차시설이 부족한 것도 불편하다.
하지만 요즘 시장은 지자체의 재래시장 살리기의 정책에 힘입어 깨끗하게 변모되고 있다. 가벼운 주머니로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어보기 좋은 곳이 시장이다. 손님이 찾아와야 시장상인이 살고 상인이 살아야 시장도 발전하고 더욱 위생적이고 깨끗해 질 것이다. 잘못된 시장음식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자주 찾아가도록 노력한다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요즘 커피를 너무 자주 마신다. 저녁에 술좌석에 참석하고 나면 아침에 속도 안 좋고 머리가 몽롱하다. 그럴 때 커피 한잔을 마시면 비로소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믹스 커피는 달달한 설탕 덕분에 속이 진정되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조금 격을 높여 편의점 커피를 마시는데 너무 맛이 써서 시럽을 많이 넣는다. 그리고 글을 쓸 때도 연신 커피를 마셔댄다. 하루에 대여섯 잔은 마시는 것 같다. 한가로운 시간에 여유를 즐기며 커피 한잔 하는 모습이 그럴싸하게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탓도 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들을 보면, 커피가 몸에 좋지 않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신문에서는 커피가 건강에 좋다는 기사도 가끔 나오기 때문에 어떤 말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지인 중에 중년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마르는 사람이 있었다. 커피를 좋아했다. 커피 전문점에서 파는 커피를 즐겼다. 그러더니 어느 날 커피를 끊었다고 했다. 몸이 마르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커피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은 귀가 번쩍 뜨일만한 얘기이지만, 커피 때문이라기보다 커피의 카페인 성분 때문에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넷 카페에 글을 쓴 시간을 보면 새벽 3시도 좋고 4시에도 글을 올리기도 했던 것이다. 잠을 못자면 큰 문제이다.
군대시절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할 때, 비누가 없으면 분말 커피 가루를 썼었다. 그러면 기름기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고기를 자주 먹는 서양 사람들은 그래서 커피를 마시면 입안이 개운하다고 느끼면서 커피를 상음하는 것이다.
어느 책에 보니, 사람의 뇌는 해로운 물질을 대부분 걸려내지만, 카페인, 알코올, 마약 성분은 걸러내지 못하고 그냥 통과시킨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극이 빠르고 쉽게 중독이 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책을 보니, 커피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거의 모든 세포에 영향을 끼친다고 되어 있다. 그 결과, 과민성 위, 과민성 방광, 소화성 궤양, 피로 불안, 두통,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되어 있다.
습관적으로 마시고, 지인들이 흔히 권하고, 손님을 만나면 마시는 것이 커피이다. 이제부터는 조심해야할 것 같다. 믹스 커피도 안 좋고, 드롭 커피도 안 좋다는데 굳이 찾아가서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커피 없으면 당장 큰일 날 것 같지만, 안 마시다 보면, 안 마셔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재직 시절, 매일 커피를 대여섯 잔씩 마시다가 중국에 출장 갈 일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커피마시기가 어려울 것 같아 일부러 믹스 커피를 가져갔었다. 가는 곳마다 중국 차를 주는데 그러다 보니 굳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둥글레 차나 현미 녹차로 대신해도 될 것 같다.
친정엄마가 89세가 되셨다. 예전 앨범 속에는 싱그럽고 꽃다운 모습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느새 아흔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다. 그래도 올 초까지는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버스투어를 즐기셨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이 고향인 엄마는 집 앞에서 버스에 올라 평창동 세검정과 부암동 윤동주기념관을 지나 엄마의 고향인 통인시장까지 가는 코스의 버스를 타고 나가 마음 내키는 정류장에 내려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드시고 오셨다.
그런데 요즘 다리가 무거워 영 버스투어를 갈 수 없다고 아쉬워하신다.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면서 필자도 요새 무엇이 그리 바쁜지 엄마를 자주 보러 가지 못하고 있어 항상 마음이 무겁고 편치 않았다. 다행히 아파트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계셔서 마당의 정자에 나가 이야기 듣는 게 새로운 재미가 있다며 즐거워하신다.
그런데 어느 날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는 모습이 힘들게 보였는지 요양보호시설을 운영하는 분이 지나가다가 엄마에게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신청하라고 했다. 등급 판정이 나면 일주일에 5번, 하루 세 시간씩 요양보호사가 방문해 엄마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분을 위해 목욕이나 산책을 같이해주고 그 외에도 집안일이나 음식도 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필자의 마음도 좀 편해질 것 같아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했다.
예약된 날짜에서 보험공단에서 심사원이 오셨다. 신청자의 상태를 판단해 등급이 정해지는데 65세 이상이나 65세가 되지 않았어도 거동을 못 하는 분과 치매가 있는 분은 1, 2, 3등급을 받는다고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고령이나 노인성 신체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신체 인지 가사활동 지원 등의 급여를 제공하여 노후생활의 안정과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회보험제도로 사회적 효를 실천하는 제도다. 우리는 그 제도에 드는 비용 중 15%만 내면 혜택을 볼 수 있다.
전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 1등급이 된다. 상당 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면 2등급이 되고 부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75점 미만인 사람은 3등급, 일정 부분 도움이 필요하며 인정점수가 60점 미만일 경우 4등급을 받는다. 장기요양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1년이고 유효기간 끝나기 90일부터 30일 전에 갱신 신청을 해야 한다.
요양보호사는 수급자를 위해 신체활동으로 식사 및 약 챙겨드리기, 양치, 세면, 목욕, 머리 감기 돕기, 머리 손질 등을 도와주며 일상생활 및 정서지원 활동으로 장보기, 산책, 물품구매, 병원 동행, 수급자의 청소, 세탁, 식사준비, 조리, 설거지, 대화하기 등을 같이해준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다리가 불편해 거동이 힘들어 집안일 도와주기를 원했는데 이제 4등급을 받았으니 도움 요청을 할 수 있다. 이런 혜택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누구라도 나이는 드는 것이니 우리나라 노인복지제도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엄마와 잘 맞는 좋은 요양보호사가 와서 필자 마음도 좀 편해지고 엄마도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다.
어떠세요?
어여쁜 여성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죠?
바로 그거예요.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은 샤넬의 재킷보다 디올의 구두보다 당신을 빛나게 합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헤어스타일이 환상적으로 아름답죠?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행위이거든요.
이왕에 입는 거 예쁘게.
여성이 아름다우면 남성이 행복하고 남성이 행복해지면 세상이 평화로워집니다.
"나는 애란씨를 첫눈에 보고 어떻게 저런 미인이 내 주변에 계시나 황홀했는데 장미의 가시에 찔릴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서초문화원에서 같이 수필공부를 하고 있는 남자 회원의 카톡문자다. 필자가 황홀할 정도의 미인? 천만의 말씀이다. 필자는 결코 선천적 미인은 아니다(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들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의 절세미인으로 태어나고 싶다). 자신에게 잘 맞게 연출을 할 뿐이다.
부모에게서 듣는 칭찬은 자녀들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애란이는 코가 잘생겼어.” 10대 중반의 필자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세 살 위인 언니는 필자보다 예쁘고 머리도 좋고 키도 크고 성격도 좋았다. 여러모로 우월한 언니를 유독 사랑하던 아버지였다. 열여섯 살 무렵 어느 날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필자 뒤통수에 대고 동네 총각이 휘파람을 불었다. 영 껄렁껄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감히 나를 넘봐? 필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마침 마당에 계신 아버지께 "아버지, 저 사람이 글쎄 나한테 휘파람을 부는 거예요. 뭐 저딴 사람이 다 있어! 아유! 자존심 상해!" 하며 신경질을 냈다. 그러자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대전시장이 대전 제일의 미인이라고 한 네 작은고모도 너처럼 그러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인물이 시원찮은 둘째 딸이 잘난 척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던 것이다. 편을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 말이 서운했던 필자는 속상해하며 속으로 말했다. ‘아버지, 예쁘다고 다는 아니에요.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거예요."
아버지 형제들은 모두 탤런트 뺨치는 미남미녀였다. 아버지는 외탁을 한 필자를 늘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코만'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필자는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다. 오늘의 필자는 그 결과다. 옷을 입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예쁘고 멋지게 보일까 궁리하며 입었다. 그러므로 수필반 남자 회원은 말하자면 필자 옷발에 넘어간 것이다. 필자는 옷을 입을 때 잘 어울리는 색과 디자인을 고민하며 입는다. 또 체형의 단점을 감추고 장점은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과 체지방량부터 체크한다. 거울에 전신을 비춰보고 뱃살도 확인한다. 사이즈가 66이 넘지 않도록 긴장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백화점의 영 캐릭터 브랜드 옷들이 66까지만 나오기 때문이다. 학교에 재직할 때는 환상의 55사이즈였다. 그러다가 체중이 57kg까지 늘어나면서 옷맵시가 나지 않았을 때는 외출하기도 싫었고 기분까지 우울해졌다. 이러면 안 돼지. 그때부터 다이어트가 일상이 되었다. 식사는 하루에 두 끼, 채식과 현미밥 위주로 먹었다. 설거지할 때는 까치발로 서서 하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왈츠, 모델워킹, 탁구 등 운동도 한다.
"얘들아 너희들 좋은 남자 만나고 싶지? 그러면 내가 좋은 여자가 돼야 해. 이제 거울은 그만 보고 독서로 내면을 채워야 해. 몇 번 만나다 보면 얄팍한 지식이 드러나거든. 그럼 그 남자가 나를 계속 만나고 싶어 할까?"
학교에서 열여덟 살 제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공짜인 삶은 없다. 지속적으로 탐구해 내면을 꽉 채우고 겉모습도 멋진 여성이 되고자 필자는 오늘도 노력한다. 사람은 몇 살이 되든 자신의 마음밭과 겉모습 가꾸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몸 여기저기에 공작 털을 듬성듬성 꽂은 까마귀는 아닐까?’ 한껏 치장을 하고 나간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공작새로 위장한 까마귀면 어떠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는 완벽했다. 아름다운 외모에 성격도 밝았다. 외국어로 부르는 성악을 잘 불러 여러 사람들에게 인기도 높다.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 많아 재력도 탄탄하다. 어딜 가나 공주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결벽증이 있다. 그래서 혼자 산다.
그녀가 결벽증이 심하다는 것은 악수를 거절했을 때 눈치 챘다. 다른 옆 사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는데 그녀 차례가 되자 그녀가 악수를 거절한 것이다. 금방 손을 씻었다고 했다.
그녀가 외출한 동안 그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친척뻘 되는 집사가 있었다. 차를 마시고 찻잔을 설거지를 하려 하자 집사가 그냥 두라고 했다. 남이 아무리 잘 씻어도 그녀가 나중에 또 씻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애용하는 특수한 세제가 있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여성들을 몇 명 알고 있다. 비싸더라도 동네 유기농산품만 사다 먹는다. 일반 시장에서 파는 과일 및 채소류는 농약을 쓰기 때문이란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집에 누가 방문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잠시 앉아 있는데도 늘 옮긴 자리를 걸레로 닦는다. 집안 살림이 번쩍번쩍한다. 외출했을 때는 티슈와 물티슈를 늘 갖고 다닌다. 택배 기사나 고장 난 것을 고치러 기사가 왔다 가면 문고리부터 닦는다. 발자국마다 다 닦는다. 그러니 늘 쓸고 닦고 씻는다. 남들과 같이 식사를 할 때 소리 내면서 먹거나 입가에 음식물이 묻으면 질색을 한다. 찌개처럼 여럿이 같이 떠먹는 음식은 반드시 국자를 달라고 하여 나눠 먹어야 한다. 라면처럼 여럿이 냄비에 달려들어 젓가락으로 떠 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술 냄새가 나거나 흡연 냄새가 나면 질색한다. 심지어 남편과 키스하는 것도 못한단다. 외식을 해도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용서 못한다. 재래시장처럼 공중화장실이 있는 곳은 그래서 못 간다. 그래서 음식점 고르기 전에 화장실 청결부터 점검해야 한다.
필자도 중학교 시절까지는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고 매점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도시락을 펼치면 밥풀 묻은 젓가락들이 덤벼들어 식욕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비위가 약한 편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본인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전생에 북 유럽의 어느 나라 공주였다는 얘기도 한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 의식이 강하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그대로 인정해주면 된다. 악수를 꼭 할 필요도 없다. 악수를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단체 댄스 레슨에서 첫 시간에 남들과 홀드하는 것을 거부하는 여자들이 종종 있다. 붙잡지 말고 춤을 추자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돌려보낸다. 체인징 파트너 해가며 같이 춤을 추는데 홀드를 거부하면 자칫하면 사람 무시한다고 싸움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같이 온 여자끼리만 추겠다거나 장갑을 끼고 춤을 추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도 어찌 보면 재주이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감염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면역력이 있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알면서도 결벽증이 있다면 하기 싫은 것이다.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그대로 존중해줄 필요는 있다.
아내는 남의 식구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경상도 집안이라 친척들과는 더 없이 잘 지내는데 남의 식구는 찬바람이 쌩쌩 날 정도로 불편하게 대했다. 심지어 손님이 간 다음에는 손님의 손길이 닿았던 문고리 등을 걸레로 닦는 결벽증까지 있었다. 설거지할 때도 손님이 사용한 컵이며 수저 등은 무슨 약품을 쓰는지 몰라도 특별히 더 세척했다. 반면에 필자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선 음주운전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대로 술을 마실 수 있고 필자의 집이라 편했기 때문이다. 또 집에서 음식을 먹으면 경제적으로도 절약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이 집에 초대를 받으면 마음을 열고 오랫동안 고마워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었다. 평소 직장에서는 사무적으로 대하다가 집으로 초대해 정성스럽게 접대를 하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며 감동을 하곤 했다. 대우받는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한번은 직장에서 퇴근할 때 부하 직원을 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다음 날부터 연휴라서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좀 더 가까워지는 데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의 표정이 싸늘했다. 손님을 싫어하는 데다가 연락도 없이 손님을 데려왔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그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술상으로 소반을 내놓고 양주병을 꺼내 가져왔는데 안주거리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양주에는 마른 오징어구이가 제격인데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서 급한 대로 술안주 될 만한 반찬을 꺼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부하 직원은 필자의 아내가 안방에 들어가서 나오자 않자 불청객이라는 입장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부하 직원은 직장에서 아내의 냉랭한 태도와 당황하며 쩔쩔매던 내 모습을 다른 직원들에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 당시 필자는 봉제공장 공장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청공장에 가면 사장 부부가 우리 집을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하청공장이 대부분 지하실이었는데 서울 강남에 있는 우리 집은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초대했다가 아내가 냉랭하게 대하면 손님이나 필자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 언제든 초대하겠다고 말만 해놓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일주일간 미국에 있는 처형네 집에 다녀오겠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일주일 내내 손님들을 집에 데려와 술파티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뻔질나게 해외출장을 다닐 때마다 사온 각종 양주들은 장식장에 고스란히 있었다. 술은 혼자 마시는 것보다 여럿이 마셔야 제맛이 난다.
그룹별로 초대할 명단을 뽑아봤다. 그러고 하루는 생산부 사무직원들, 하루는 공장 반장급들, 하루는 사무 여직원들, 나머지는 하청사 부부들을 따로 부를 계획을 세웠다. 안주와 식사는 마른안주에 중국집 등 동네 음식점에서 주문해 먹으면 될 일이었다. 과일은 통째로 칼과 과일바구니를 갖다 놓으면 손님들이 알아서 깎아 먹으면 됐다.
필자의 특기는 진토닉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특기라 할 것도 없는 것이 제조방법이 너무나 간단하다. 드라이진이나 보드카에 토닉워터를 타고 통조림에서 꺼낸 빨간 체리 하나를 넣어주면 훌륭한 진토닉 칵테일이 된다. 주량에 따라 토닉워터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담긴 빨간 체리 때문에 보기에도 좋다. 오렌지 주스를 섞기도 하는데 그러면 노란 스크류 드라이버가 된다. 사람들은 소주와 맥주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주량에 맞춰 마신다. 그러나 진토닉이나 스크류 드라이버는 생소한데다 어느 정도 마셔야 취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많이 마실 수 있다. 술맛이 달달해서 잘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보드카나 드라이진은 알코올 도수가 만만치 않게 높다. 멋모르고 마셨다가는 많이 취하게 된다.
칵테일 종류의 술은 특히 여성들이 좋아한다. 보기에도 좋고 마시기에도 달달하기 때문이다. 여직원들과 하청사 부인들에게 칵테일을 만들어주니 생전 처음 맛보는 술이라며 즐거워했다. 만약 아내가 있었다면 그들은 필자 집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직원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떠들고 양껏 술을 마실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아내가 있었다면 여직원들을 집에 데려오는 것 자체가 허락이 안 떨어질 일이었다. 그들도 아내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는지 여행으로 부재중이라고 하자 부담 없는 표정으로 필자 집을 방문했다. 아내가 함께 어울려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아내의 부재를 틈타 마음껏 떠들고 웃음꽃을 피운 날이었다. 몇십 년이 흘렀어도 이때의 추억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요새는 거울을 잘 안 보게 된다. 흐릿해서 안경을 써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번거로워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석촌호수를 걸었다. 안 보는 사이 호수는 근사하게 변해 있었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와 분수를 만끽하며 걷는 길은 숲처럼 신선했다. 점점 깨끗하고 여유롭게 변해가는 서울 거리가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친구와는 50년이 넘는 사이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겨울밤에는 군고구마를, 여름이면 찐 옥수수를 함께 먹으며 지냈다. 헤어지기가 싫어 서로 바래다주기를 세 번씩 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밝은 햇빛 아래서 나를 보더니 “얼굴에 뭐가 많이 났네” 했다. 얼마 전 외제 샴푸와 샤워 젤을 선물로 받았는데 며칠 전에 사용하려고 포장을 뜯어 샤워실 선반에 나란히 뒀다. 두 용기의 색깔은 거의 비슷했다. 게다가 사용법이 프랑스어로 쓰여 있어서 목욕탕의 침침한 불빛 속에서 샴푸라는 단어만 보고 구분해서 사용했다. 그렇게 일주일 이상 사용했는데 어느 날부터 얼굴에 불긋불긋한 것이 돋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목에까지 조짐이 보였다. 이상하다 싶어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보니 이제까지 샤워 젤인 줄 알고 쓴 것이 샴푸였다.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자기도 오늘 남편에게 한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신 부인 눈이 안 보여서 티셔츠도 뒤집어 입고 있어.”
같이 웃었다. 요즘은 설거지할 때도 요리를 할 때도 안경을 쓴다.
얼마 전 친구가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친구가 안과에서 안약을 처방받았는데 집에 와서 화장대 위에 두고 사용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자려고 안약을 짜서 눈에 넣었다. 양쪽 다. 그런데 눈이 딱 붙어버리며 심한 통증이 왔다. 안약과 비슷한 용기에 있는 강력접착제를 눈에 짜 넣은 것이다. 접착제도 액체이고 색깔도 투명해서 분간이 안 갔다고 한다.
급하게 응급실로 실려갔다. 속눈썹과 눈꺼풀이 모두 붙어버렸고 통증은 심했다.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시간 동안 공포에 휩싸였다. ‘실명하면 가족들이 날 보살펴줄까? 아님 버림받게 될까? 남편은 날 여전히 사랑해줄까?’ 응급실에서 남편에게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해달라고. 의사가 치료를 시작하며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강력접착제가 혈관을 다 차단하면 위험하다고 해서 극도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친구는 잘못을 회개하고 기도했다.
다행히 접착제는 다 제거되었고 눈은 며칠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눈이 안 보이고 치료하는 동안 가족이 보여준 사랑은 친구가 가졌던 공포와 불안을 밀어내주었다. 이제 점점 나빠지는 곳이 늘어날 것이다. 정신까지 무너지면 정말 노인이 되는 것이다. 사는 동안 불안 없이 YOLO.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맑고 깨끗한 공기와 물은 기본이고, 건강한 먹거리도 필수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려면 자기 적성에 맞고 나아가 자아실현을 위한 일거리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사회에서 이미 정년을 마친, 시쳇말로 한물간 나이 든 사람에게 좋은 일자리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그것도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직장은 마치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이 기피하는 변두리 지역 또는 교통이 불편한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게 된다. 채용만 해준다면 동해의 외딴섬 독도도 좋고 최남단 마라도도 얼씨구 절씨구다. 아내와는 자연스럽게 주말부부가 된다.
아내 없이 혼자 지내다 보면 불편한 점이 많다. 첫 번째는 식사 준비와 설거지다. 그동안 해보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선에 출마한 모 후보는 설거지가 여자 몫이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사과까지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60세가 넘는 나이 든 사람들은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것은 당연히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필자도 자랄 때 부모로부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요리학원에 등록해 몇 가지 뚝딱 반찬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남자 혼자 해먹는 밥이 오죽하겠냐마는 아내가 준비해준 반찬과 국거리에 적당히 가미해 식사를 해결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평소 다져온 건강과 아무거나 잘 먹는 타고난 식성에 금방 해먹는 밥맛이 조화를 이루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두 번째는 외로움이다. 말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할 일이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을 독방에 가두는 것만 봐도 외로움은 형벌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술, 혼밥이라는 말이 생겨나는 세상이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 애완동물이라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혼자 TV를 보면 재미가 없다. 예전에도 권투나 축구 등 전 국민이 열광하는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에는 대형 TV가 있는 다방 문 앞에 몇 시에 중계방송이 있으니 오라는 광고 안내문이 나붙었다. 하지만 이제 혼자 있을 때가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고독력을 키워야 할 정도다. 혼자 전자책이라도 읽으며 인터넷 바둑을 두기도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외로움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다. 인간의 능력은 개발할수록 무궁무진하다. 혼자 있을 때 연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만하다.
세 번째는 밤새 안녕이다. 직원 중 한 사람이 출근을 하지 않아 숙소로 찾아가 봤더니 죽어 있었다. 자신의 긴급한 상황을 알리려고 전화기 줄을 잡아 끌었던 흔적을 보고 안타까웠다. 옆에 누가 있었다면 살아 있었을 사람이다. 건강 상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건강검진을 통해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 대사증후군 예방은 기본이고 운동과 섭생에 유의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마음의 통을 키워야 한다.
네 번째는 방종이다. 혼자 있으면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움은 있다. 하지만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술이나 오락 또는 불륜에 빠지기도 한다. 필자는 지방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어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이 없는 곳에서도 잘 찾아보면 주민센터와 특별 단체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끝없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표가 뚜렷하고 건실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면 샛길로 빠질 틈이 없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혼자 객지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필자는 테니스를 좋아해서 새벽 테니스를 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테니스 할 곳을 못 찾으면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건강을 다진다. 아침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린 후 샤워를 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지방의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하는 것도 좋다. 지역의 고적지 탐방도 해볼 만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편하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없다. 나이를 먹어도 일거리가 있고 그 일에서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면 주말부부로 지내는 불편함은 걸림돌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