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독립 이후부터 시니어의 주거환경에는 변화가 생긴다. 아이들과 살던 집에서 부부 둘이 지내기도 하지만, 사별이나 졸혼 등으로 혼자 살거나, 자녀 세대와 함께 대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노후에 한 번쯤은 고민해야 할 주거공간, 어떻게 계획하는 것이 좋을까?
도움말 서지은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교수, 니콜라스 욘슨 이케아 코리아 커머셜 매니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사진 제공 이케아 코리아
◇ 1인 ‘편리와 안전’ vs 다세대 ‘융합과 프라이버시’
[1인 가구] 1인 가구의 경우 인테리어는 자기 마음껏 꾸미면 되지만, 그 전에 따져봐야 할 것은 편리성과 안전성이다. 한적한 외곽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는데, 사실상 편리하고 안전한 곳은 도심이다. 대형 병원이나 각종 편의시설이 가까워 위기 대응이 빠르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생겨나는 노인 대상 아파트의 경우 도심에 짓는 사례가 많아졌다. 또, 다양한 편의 시스템이 접목된 고가의 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 원룸 등도 주목받는데, 그 활용도가 관건이다. 실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많아도 사용법을 몰라 무용지물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Tip+ 편리하고 안전한 ‘스마트홈 기기’ 활용하기
혼자 살다 보면 만일의 사고에 대한 염려를 놓을 수 없다. 긴급 상황 시 ‘원 터치’(one touch)로 가족 또는 지인에게 긴급 메시지를 전송해주는 SOS 버튼이나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해 사이렌이 울리는 동작감지센서 등 스마트홈 기기를 적극 활용해보면 어떨까? 대표적으로는 LG U+ ‘스마트홈 패키지’, SK 브로드밴드 ‘지키미 SOS 버튼’, KT ‘기가 IoT홈’ 등이 있고, 월 1만~2만 원대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괜찮다면 스마트 홈CCTV 등을 설치해 가족과 공유하며 안전을 지키는 것도 방법이다.
[다세대 가구] 다세대 가구는 하드웨어적(건축물의 구조나 구성 등) 측면과 소프트웨어적(거주자 사이의 규칙 등) 측면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가족끼리 충분히 논의해 교집합을 찾고 이를 우선순위로 주거지를 찾는다. 이때 개인 공간보다는 공용 공간(거실, 주방, 욕실) 중심으로 보는 것이 좋다. 가령 주방을 자주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방 위치를 정하거나, 여분의 주방이 필요한지 등을 고려한다. 아울러 서로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한 공용 공간 사용 규칙을 만들고 공과금 문제와 가사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미리 상의한다.
Tip+ 다세대 가구 욕실 딸린 안방, 누가 쓰는 게 좋을까?
다세대의 경우 종종 안방 욕실을 누가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의견 차이를 보이곤 한다. 거동이 불편하지 않다면, 가급적 부모 세대와 손주들이 함께 공용 욕실을, 자녀 세대가 안방 욕실을 사용하길 권한다. 활동량이 적은 시니어가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면, 공용 공간 이용이 줄어 자칫 집 안에서 소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아이와 노인은 안전성 측면에서 안전하게 설계된 욕실을 함께 이용하는 게 좋다. 이때 미끄럼 방지 타일이나 손잡이 등을 설치하면 도움이 된다.
◇ 자녀 출가 후 주인 없는 방 vs 모두가 함께 쓰는 공유 공간
[1인 가구] 자녀가 독립하며 쓰임새를 잃어버린 방은 자칫 주거생활의 활력을 떨어뜨리거나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집의 규모를 줄여 원룸이나 스튜디오형 오피스텔을 찾지만,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주거 형태이기에 생활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딱히 이사 계획이 없다면, 남은 방을 취미를 살리거나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해줄 공간으로 꾸며보는 것도 방법이다.
Tip+ 나만의 홈 컬렉션(갤러리)
남는 공간을 갤러리처럼 활용하면 다채로운 주거공간이 된다. 컬렉션을 구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색상별로 아이템을 모으거나, 공간을 한 종류의 장식품으로만 진열하는 것이다. 비슷한 소품은 개별 진열보다 모아놨을 때 더 큰 미적 효과를 발휘한다. 투명한 선반이나 유리도어 수납장 등을 사용하면, 물건을 한층 더 돋보이게 연출할 수 있다.
Tip+ 홈 트레이닝 피트니스 룸
요즘처럼 바이러스나 미세먼지 등으로 바깥 활동을 자제하면 기초대사량과 근육량이 줄어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여유 공간에 홈 피트니스룸을 만들면 어떨까? 자칫 운동기구들로 바닥이 어질러지거나 공간이 좁아질 수 있는데, 이때 벽면 선반을 설치하면 효율적이다. 선반에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스피커 등을 올려놓고 헬스 동영상을 보며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다. 브래킷 사이 거리를 좁게 설치해 요가매트를 수납하거나, 후크를 달아 훌라후프, 밴드 등을 걸어도 좋다.
[다세대 가구] 함께 쓰는 공유 공간으로 ‘거실’을 꼽을 수 있지만, 대부분 텔레비전을 볼 때만 모여 앉아 있을 뿐 특별한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함께 살면서 교류가 부족하면 집 안 분위기가 무겁고 무미건조해지기 쉽다. 최근에는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없애고 대신 책장을 두어 북카페처럼 공간을 꾸미는 등 가족 간 융합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Tip+ 가족 전용 홈 시네마
탁 트인 공간이 있다면 가족을 위한 전용 극장으로 꾸며볼 수 있다. 가정용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실내 한쪽 벽면이나, 옥상·마당에 행거와 흰 천 등을 이용해 스크린을 만들어본다. 편안한 의자와 분위기 있는 조명, 텍스타일까지 준비한다면 더욱 아늑한 공간이 된다. 영화관처럼 상영시간표를 만들거나 팝콘 등을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Tip+ 휴대기기 충전 스테이션
식구가 많으면 각자의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등 휴대기기 충전기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간혹 제품에 맞는 충전기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방마다 수납공간을 들쑤시다 보면 쓰임새가 모호한 전선이나 어댑터까지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집 안은 어수선해지고 이름 모를 물건은 쌓여간다. 거실이나 공유 공간 한 편에 각종 충전기기를 모아놓으면 이러한 불편을 줄일 수 있다. 때때로 가족이 모여 쓸모없는 충전기나 전선 등을 정리하는 시간도 마련한다.
든든한 아내, 듬직한 세 자녀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행복한 일상을 채워가는 가수 최성수(60). 고등학생 늦둥이 아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이며, 아내에게는 집안일도 기꺼이 도와주는 평범한 남편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고 어떤 일을 겪든지 다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가 나이가 들수록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다 의미가 있나보다.
‘남남’, ‘동행’, ‘해후’, ‘풀잎사랑’, ‘기쁜 우리 사랑은’ 등등의 메가 히트곡들로 1980년대를 휘어잡았던 대표적인 미남 가수 최성수. 얼마 전에 그는 ‘복면가왕’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하림, 카더가든, 혁오 등 수십 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까마득한 후배들이지만 음악성으로 인정받는 가수들의 노래를 과감히 선곡해 특유의 미성으로 완벽하게 소화했기 때문이다. 그가 가왕에 오르지 못한 것은 고작 5표 차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1983년에 데뷔한 이 베테랑 가수의 감각과 에너지가 지금 세대에게도 여전히 통한다는 의미였다. 감성을 채우면서 60세의 나이에도 변치 않는 젊음과 소통의 아이콘으로 청춘을 노래하고 있는 그다.
“요즘 노래들은 굉장히 세련됐어요. 예전에는 우리 가요를 우습게 생각하고 팝만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팝을 안 듣고 가요를 듣죠. 케이팝이 그만큼 세계인의 공통된 노래가 됐고 우리 것이 세계 것이 될 정도로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죠.”
최신 트렌드에도 자연스러운 최성수의 모습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는 얼마 전 디지털 싱글 ‘린도마니’를 발표한 데뷔 37년 차의 여전한 현역이자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말하자면 최근의 트렌드에 더없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그의 기질에서 비롯된 바도 있다.
열등의식이 나를 키웠다
“제 첫 번째 직업은 가수죠. 사업가, 교수 등 여러 가지 일도 할 수 있지만 업(業)으로서는 끝까지 뮤지션이에요. 노래 부를 때 가장 행복하고 감사해요. 힘들 때도 노래만 부르면 시간이 지나갔거든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성수는 자신의 히트곡 대부분을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다. 그런 그에게 가수로서의 깊이를 더해준 터닝 포인트가 1990년대 중반에 있었다. 서른다섯 살에 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난 것이다. 그가 향한 곳은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버클리 음대였다.
“서른다섯에 미국에 가서 프로페셔널 뮤직 전공으로 마흔에 학사를 받았죠. 그리고 돌아왔다가 다시 UCLA에 들어가 뮤직비즈니스 마스터를 하려고 했지만 익스텐션을 받는 걸로 정리했어요. 미국은 뮤직비즈니스를 노동법에 기초해 배우도록 되어 있어서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귀국했고, 중앙대학교에서 예술 경영을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았죠.”
최성수는 서른다섯 살 이후 계속 공부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그는 미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제 삶의 터닝 포인트는 열등의식이에요. 못살아서 잘살려고 했고, 잘살기 위해 노래를 했고…. 계속 노래를 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 상처를 받았고 공부해야겠다는 터닝 포인트가 생겼죠. 노래를 하고 히트를 해도 공부에 대한 미련이 끊임없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교수법도 깊이 알아야겠더라고요. 지식에 대한 욕구 그리고 열등의식이 저를 이만큼 만들어줬어요.”
때때로 열등의식은 자신을 바라보는 토대가 된다. 과거보다는 나은 자신을 만드는 동력이 된다. 최성수는 그 표본이었다.
노래 안에 시를 담은 가수
그는 가수로서의 본분을 절대 잊지 않으려 한다. 특히 노래를 잘하려면 많은 책을 읽고 스스로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노래에도 깊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대의 최성수와 60대의 최성수가 부르는 노래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그때는 히트하는 게 꿈인 가수였죠. 지금은 다르죠. 요즘은 노래를 부르면서 두렵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좋아해줄까?’ 하면서 저 혼자의 노래라기보다는 노래를 듣는 사람을 많이 생각하게 돼요.”
그의 정규 10집 앨범은 2007년, 그리고 11집은 2017년에야 나왔으니 무려 10년 만에 나온 셈이다. 노래 발표 주기가 점점 길어지는 것은 노래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보다 숙고하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1번째 정규 앨범 ‘시가풍류방’(詩歌風流房)의 콘셉트는 시의 멋과 풍류다. 타이틀곡 제목은 김현 시인의 시 ‘고맙다 사랑, 그립다 그대’에서 따왔다. 젊은 남녀에게 진실한 사랑과 일상의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외 도종환 시인의 작품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안도현 시인의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가 가요로 거듭 태어났다. 시를 좋아했던 그는 오래전부터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쓰며 다양한 곡을 만들어 왔다.
2019년 싱글 ‘린도마니’가 나오는 데도 2년여가 걸렸다.
‘최성수 독창회’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준비하고 있다. 3월 19일 인천 청라 엘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도 콘서트보다는 약간 클래식한 분위기로 그냥 목소리 하나랑 피아노, 성악가들이 함께한다.
“3월에 열리는 제 콘서트 이름을 ‘독창’이라고 지은 건 제 오랜 꿈이에요. 교회 성가대를 하면서 클래식에 대한 꿈이 남아 있었던거죠. 사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불러봤으면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그 노래를 들으면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콘서트가 아니라 독창회라 이름 붙였죠.”
최성수의 미려한 목소리와 바리톤 성악곡에 있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결합. 상상만 해도 흥미가 생기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소중한 노래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하는 듯했다. 어쩌면 우리가 최성수에게 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터닝 포인트로서의 영역이 미래에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자기관리도 철저하다. 담배는 아예 안 하고, 술을 먹으면 다음 날 노래가 잘 안 되는 걸 몇 차례 느껴 아예 술을 끊었단다.
그는 노래를 위해 술과 담배 등을 멀리하는 절제된 생활을 해왔기에 열심히 사는 게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아티스트 요건도 슈베르트의 삶처럼 절박하고 절실한 사람이다.
하루 통화의 절반은 아내와
1990년대 중반에 떠난 미국은 최성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안겼다. 한참 힘들게 지내던 시절, 지금의 아내와 만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어쩌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죠. 돈이 없어서 햄버거를 반으로 나눠 먹고 딸에게 1달러짜리 멜론도 못 사주고 했지만…. IMF 때 한국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안 될 때 저를 버티게 해준 건 아내와 하나님이었어요.”
애처가로 소문이 난 그는 요즘도 하루 통화의 절반을 아내와 한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된 화제는 아이들이라고 대답한다.
최성수의 아내는 전 남편과 사별한 후 그와 재결합했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둔 상태였다. 그 아들이 지금은 서른다섯 살, 딸은 서른한 살이 됐다. 현재 아내와의 사이에는 고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
“제가 자식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아빠이긴 해요. 엄마를 무서워하거든.(웃음) 아내는 악역을 자처한 거고, 저는 아이들 편에 서기로 한 거죠. 이제 열심히 일해서 막내아들 대학만 보내면 되겠죠.(웃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요즘 삶에 대해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말하는 최성수는 자신의 삶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했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으니까요. 제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고.(웃음) 그러니 하루하루 소소하게 행복해하고 감사해야죠.”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에는 얼마 전 있었던, 가수 인순이 씨와 아내가 법정까지 갔던 갈등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됐다. 그가 힘들 때 가장 힘이 났던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끝이든 나쁜 끝이든 끝은 반드시 있다”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듯하다.
“억울하죠. 하지만 지나가고 있는 일이에요. 그것도 감내해야 할 제 일이죠. 그런데 제가 사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사람은 매번 순간순간, 어떤 때는 행복하지만 어떤 때는 힘들다.
“그런 매순간 자기 판단의 기준에 의해서 이겨내는 힘의 원천을 따져보면, 희망과 가족 덕이죠. 무조건 버텨야 해요.(웃음)”
그는 힘들 때마다 종종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단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이걸 못할까’ 하는 마음이 훅 들면서 뜨거운 물에 샤워할 수 있는 것만도 너무 감사하게 된다고 한다.
편협한 생각 버려야 현재와 어울릴 수 있어
다소 가벼운 얘기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최성수에게 지금까지 나온 앨범들 중 가장 아끼는 게 있냐고 물어봤다.
“2집이 저를 만든 앨범이었죠. 1집의 ‘남남’이 저를 바꾼 터닝 포인트였다면 2집의 히트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사라지게 해줬어요. 수록곡이 다 히트를 쳤고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앨범이죠. 1집이 씨앗이었다면 2집은 주렁주렁 열린 열매였다고 해야 할까요.”
그는 자신이 가수가 안 되었다면 기술을 배워 공장에 다니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기타를 부숴버릴 정도로 음악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제게 바란 건 오로지 기술을 익히는 거였어요. 오죽하면 제가 직업훈련소에 가서 자동차 정비를 배웠을까요. 그런데 결국 그만뒀어요. 그 무렵 사람들이 사우디엘 많이 갔는데, 기술을 계속 배웠다면 사우디에서 일하는 기술자가 됐겠죠?”
그가 자동차 정비공이 안 된 덕분에 한국 가요계는 선물을 얻은 셈이다. 그는 자신이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음악으로, 아티스트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가 공부를 계속하고 책을 보고 시를 쓰고 여행을 가는 건 모두 깊이 있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 생각이 그로 하여금 계속 현 시대와 어울려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그에게 시니어가 젊은 세대와 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년 남자들이 자격지심에 가끔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편협한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봐요. 꼰대가 되는 상황은 전적으로 자격지심 발로와 연관된 경우가 많거든요. 서로 존중하면 된다고 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에서, 자기 위치를 스스로 확인하려고 동물의 왕국에서 영역 표시하는 것 같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어떤 때는 제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놀랄 때가 있어요.”
가족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최성수는 태도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본다.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또한 같다.
“요즘 아이들은 지식이 너무 많아서 지식을 가르치기엔 제가 부족할 정도죠. 그것보다는 근본적인 걸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음악하는 친구들에게는 인사 잘하고 시간 약속 잘 지키면 인생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말해요. 첫인상에서 뭘 알겠어요? 인사 잘하고 시간 잘 맞추는 게 기본이죠. 그리고 리더라는 위치에 서려면 팔로워가 많아야 하는데 팔로워에게서 존경의 눈빛이 있어야 해요. 그 눈빛의 가치가 바로 성공의 척도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려면 진심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 공감과 진정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새해 들어 가장 중시하는 건 뭘까?
“집안일 잘하자.(웃음) 어제도 일 끝나고 와서 미뤄뒀던 설거지를 했고요. 하루하루 열심히 감사히 사니까 편해요.”
가족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의 관심은 온통 가족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나이를 잘 먹어가는 비결처럼 보였다.
“인생에서 진짜 잘한 일이요? 하나님을 만나고, 마누라를 만나고, 우리 아이들의 아빠가 되고, 마지막으로 노래를 한 거예요.”
트레킹과 맛집 순례가 대세다, 방송과 각종 매체들이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해외 코스까지 샅샅이 소개하고 있다. 과장되고 억지스런 스토리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적으로 취재에 나섰으니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겠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니어 세대를 위한 길과 맛 소개는 소홀하다. 시청률이나 구매력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동년기자들을 통해 편하게 걸으면서 그 지역의 특별한 맛도 즐길 수 있는 ‘Road & Food’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탐라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오 솔레 미오’
제주의 풍광은 역시 항상 ‘정답’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을철임에랴.
먹거리 취재만 아니라면 오늘은 햇빛을 받으며 해안길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다. ‘오 솔레 미오(O Sole Mio)’라도 멋들어지게 부르면서. 그러나 우선 먹거리 취재부터 해야 한다. 하긴 걸으려면 뱃속을 채우는 게 우선이기도 하겠다.
먹방 프로그램에 많이 소개됐다는 우진해장국(제주시 서사로 11)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진기자가 9시에 식당에 가서 대기번호표를 받았다. 대기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1만9000원의 고사리해장국이 별미다. 그러나 소중한 아침 시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선택할 사항이겠다.
모슬포에 사는 친지의 권유로 사계리 해안을 돌기로 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오늘은 숙소가 있는 곳에 차를 놔두고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갔다(꽤 빙빙 돈다). 같은 제주 섬인데도 북쪽 제주시 해안과 느낌이 확연히 다른 남서쪽 해안의 풍광이 보인다. 제주에 올 때마다 이런 느낌이 계속 드는 건 아마도 도시화 진척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통량도, 바닷가 풍경도 차이가 난다. 실제로 가파도 선착장 근처에서는 몇 명의 해녀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소라, 전복 등을 캐고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자연산!
“이거 모두 3만 원에 사서 듭소!”
해녀 한 분이 권하는 대로 꽤 많은 양의 소라를 사서 먹기로 했다. 해녀가 근처 탈의실에 가서 초고추장을 가져오더니 그 자리에서 소라를 까서 바닷물에 씻어준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식감과 함께 상큼하게 올라오는 바다 맛이 별미다. 이번 제주 취재 여행의 먹거리 중 으뜸!
간식은 간식이고 점심은 또 해야겠기에 일대에서 밀면 맛있다고 소문난 산방식당(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이삼로 62)을 찾았다. 부산에서 많이 먹는 밀면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냉면이 그리울 때 메밀 대신 밀로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이 식당은 밀면 맛도 좋지만 돼지 수육이 별미로 꼽힌단다. 특이하게도 제육을 찍어먹는 양념으로 고추장을 내온다. 새우젓과 된장을 찾으니 단호하게 없단다.
점심식사 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호 유배지를 돌아보고 서귀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이중섭 기념관도 찾았다.
9년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한 조선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추사는 유배지에서도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구석구석 그의 흔적을 느껴본다.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발문에는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글이 들어 있다.
이중섭이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들도 감상했다. 제주여행 중 이들의 흔적을 살펴보며 한 번쯤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겠다.
수월봉 - 자구내 포구길은 걷기 좋은 올레길 코스로 많이 소개됐다. 이 길을 걸으며 전망 좋은 카페를 만났다. 1시간여 계속된 취재를 잠시 쉬면서 넋을 잃고 차귀도와 바다를 감상했다.
친지의 차를 얻어 타고 제주시 쪽으로 향했다. 신창-용수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며 내려준 곳. 월령 선인장마을에는 바닷속에 일렬로 박혀 있는 수십 대의 풍력발전기가 있다.
일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박!!! 해가 질 때 꼭 이곳을 찾아 석양과 ‘바람개비’를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황 기자, 저쪽으로 좀 더 가서 찍어보지!”
“더 가면 바닷속인데요. 후훗!”
풍력발전기 풍광 사진이 너무 탐나서 동료기자를 바다에 밀어 넣을 뻔했다. 저녁에는 대정읍 하모항구로에 위치한 덕승식당을 찾았다. 우럭매운탕이 일품.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특이한 맛이다.
몸국 한 사발에 담긴 제주의 맛
몸국은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해초인 모자반과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국이다. 취재기자들은 몸국을 제주 이외 지역에선 먹어보지 못했다. 제주의 특별 음식 중 하나인 ‘김희선제주몸국’(제주시 어영길 19)이 소문이 자자하다기에 찾아갔다.
식당은 자그마했다. 6000원짜리 몸국, 1만 원짜리 성게미역국에 대한 평가점수를 모두 후하게 줬다. 김희선제주몸국은 다른 식당보다 몸(모자반의 제주도 사투리)을 풍성하게 쓰고 약간 매콤하게 맛을 냈으며 성게의 양도 풍부하고 싱싱했다. 한마디로 둘 다 진국이었다. 이 집 몸국은 전국으로 소문이 나서 서울에서도 택배 신청을 한단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자동차로 5·16도로를 달려 서귀포로 넘어갔다. 5·16도로는 한라산을 관통하는 제주도의 남북 연결 도로 중 가장 경관이 좋다. 특히 서귀포에 거의 다다르면 도로 양쪽의 우거진 나무들이 만든 숲 터널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그재그로 굴곡이 심해 상업용 차량 이용률은 높지 않다고 한다.
올레길에서 가장 인기 높다는 7코스의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있다. 바로 외돌개. 중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어 이 길을 걸으면 행인들 속에서 중국말이 자주 들려온다. 해안 중간에 위치한 널찍한 바위 좌우에서 스카프를 휘날리며 사진을 찍는 여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외돌개 바위 좌측에는 호수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천연 바다수영장이 있다.
여름이 되면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한단다. 스노클링을? 다시 보니 최적의 장소다. 해변에 붙어 있고 앞으로는 큰 바위들이 막아주고 있어 안전할뿐더러 아늑하기까지 하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그물을 쳐놓고 하는 스노클링보다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안전성은 높다. 어린이 스노클링 장소로도 제격이겠다. 제주에 자주 오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소란다.
점심식사 장소로 택한 식당은 시내 의 오분자기 뚝배기의 원조격 식당. 그러나 이번 제주 맛 취재를 위해 방문한 곳 중 가장 실망스러운 식당이었다. 죽은 미리 끓여놨는지 시키자마자 곧바로 나왔고 뚝배기 맛은 겉돌았다. 그런데도 가격은 높았다. 점심시간이 한창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저녁때는 더 맛 좋은 흑돼지 구이 식당을 찾기 위해 기자들이 각자 흩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의견을 취합해본 결과 흑돼지 구이 맛은 대동소이! 다시 한 번 제주의 흑돼지고기 맛은 대부분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전날 흑돼지 안주로 과음들을 한 탓일까. 갈칫국으로 해장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부둣가에 있는 물항식당(제주시 임항로 37-4)을 찾아갔다. 수산물은 역시 부둣가 식당이 최고다. 재료가 신선하고 양도 푸짐하다. 전복뚝배기 1만5000원, 갈칫국 1만3000원, 갈치구이백반 1만3000원, 성게국 1만3000원. 아침식사비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내친김에 자리물회와 한치물회 맛까지 보려 했으나 제철이 아니란다. 돌이켜보니 이번에는 제주에 와서 회다운 회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재를 마치고 물항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대표 빵집이 있게 마련이다. 전주의 풍년제과, 여수의 거북선빵집 등이 잘 알려진 빵집이다. 제주에는 보리빵을 파는 신촌덕인당(본점,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36)이 있다. 매장에는 대기하는 손님을 위한 테이블이 딱 하나만 놓여 있다. 순수한 보리빵과 팥보리빵, 통팥보리빵 등을 판매한다. 건강한 빵이라는 느낌이 든다.
함덕해수욕장은 제주에서 보기 드문 고운 모래의 넓은 백사장이 조성돼 있다. 왼쪽은 해변에서 10여m 나갈 때까지 바닷물이 허리 정도의 깊이밖에 안 돼 가족 놀이터로 제격이다. 제주 시내에서 가까워 이용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찻집을 찾을 때 보통 분위기가 좋은 곳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차 맛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기분 좋은 맛과 향기 가득한 곳으로 찾아가 봤다. 정성스레 준비한 차는 기본. 고즈넉함에 취하고, 이야기에 물들고, 사람 냄새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곳. 각양각색의 찻집 다섯 곳을 소개한다. 차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있었고, 그 아름다운 향취에 반하고 말았다.
우리 차의 내음을 맡다 ‘차 마시는 뜰’
차 한 잔 시켜놓고 닿을 듯이 가까이 보이는 인왕산을 바라보고 앉았다. 웅성이던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온전히 차와 나, 산이 가을 숨과 연결되어 자연스레 하나 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뜰에 핀 꽃과 장독대의 유유자적한 모습은 오래전에 멈춘 듯한 모습이다.
‘차 마시는 뜰’에서 제공하는 차는 전통차의 비중이 높다. 집에서 직접 담근 대추탕과 쌍화탕, 오미자차 등이 인기가 좋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우전차도 많이 찾는다. 특히 녹차류나 꽃차 등 우려내서 마시는 따뜻한 차의 경우 다기 세트와 함께 손님상에 오른다. 중국 차와 커피도 찾는 이들이 있어 판매한다. 단, 커피는 찻집 고유의 향을 위해 더치커피로 내린다. 커피 머신을 사용하면 커피 향이 곳곳에 배일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다도를 배우던 조영희 대표는 집 근처 고택을 장만해 찻집을 열었다. 그저 차가 좋아서 벌인 일이었다. 차를 좋아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의 공간이나 하나 마련하자는 의미가 컸다. 요즘 이곳은 세계인이 찾는 한국의 관광 명소가 되어버렸다. 손님 대부분이 외국 관광객일 정도. 일본은 물론 프랑스 등 유럽 언론에까지 소개되다 보니 외국인들로 늘 북적인다. 마치 외국에 있는 한옥 카페 같은 분위기다. 특히 공휴일과 주말에는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손님이 붐빈다. 평소에는 일본 관광객 비중이 높으나 기자가 찾았던 날은 중국의 국경일과 겹쳐서인지 중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차 마시는 뜰’은 단아하고 깊은 차 맛과 함께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해질 무렵의 노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그 자체. 찻집 입구로 들어가는 유리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하여간 당신에게 고맙기만 합니다.”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곳까지 와 앉아 차 마시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는 말이다. 차와 함께 한국적인 문화를 흠뻑 느끼고 싶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길. 단, 편안한 신발을 신고 가기를 권한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11나길 26)
대만 차와 만나다 ‘포담 티하우스’
대만에서 건너온 양질의 차를 마시고 또 이야기를 통해 알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포담 티하우스’(이하 포담)다. 젊은이들이 오가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을 지나 한적한 골목에 있다. ‘포담’은 ‘아름답다’는 뜻의 포르투갈어 ‘포모사(formosa)’와 ‘이야기하다’라는 뜻의 ‘담(談)’을 붙이고 줄여 만든 합성어다. 16세기 중국을 향해가던 포르투갈인들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대만 섬을 보고 ‘아름다운 섬(Ilha Formosa)’이라고 말했다고. 이 ‘아름답다’라는 뜻의 ‘포모사’는 20세기에 들어와 ‘대만’의 별칭이 됐다.
차를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여러 차례 방문하는 대만 차의 성지 같은 곳. “포담” 하면 “아~”라고 답할 정도. 2017년 10월에 문을 열었고, 대만 차 전문가로 통하는 권남석 씨가 공동대표로 있다. 매주 수요일(오후 7시 30분)과 토요일(오후 4시 30분)에는 권남석 씨 진행으로 다양한 대만 차를 맛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차 모임이 진행된다. 세대의 경계 없이 차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시간으로 회비는 1만 원이다. 대만 차에 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료 강의도 있다.
EBS 프로듀서였던 권남석 씨는 IMF 때 회사를 그만둔 뒤 2000년부터 안동에 있는 한 전문대 교수로 재직했다. 차에 깊이 빠지기 시작한 건 그 무렵. 특히 보이차의 잎을 따고 제다까지 해서 전부 완성하는 시기인 4월이 되면 중국 운남성 차밭을 12년 동안 들락거렸다. 그 사이 대만인들과도 교류하면서 대만 차의 매력을 알게 됐다. 현재는 그 지역 다원과 직접 거래를 하면서 차를 수입해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우롱차 다법은 대만이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차뿐만 아니라 문화를 교류하는 공간으로 ‘포담’을 이용할 계획이다. 대만 차 탐방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포담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대만 차를 구입할 수 있다. 비싼 차의 경우 한 번에 우려먹을 수 있는 양으로 적당히 덜어놓은 미니어처 형식으로도 판매한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길 26-13)
샤로수 옆길에서 우아하게 차 한 잔 ‘반조’
‘반조’라면 어떤 차든 믿고 마실 수 있다. 차를 알고 마시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사랑받는 공간이다. ‘홍차의 거의 모든 것’과 ‘커피의 거의 모든 것’(열린 세상)의 공동저자인 하보숙 대표가 2015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한국 차와 중국 차, 꽃차, 커피 등이 손님 찻상에 올라간다. 차로 시작해 차로 끝나는 곳. 모든 디저트도 차를 위해 준비된다. 이곳에서는 특히 가향하지 않은 다양한 차를 간편하게 마실 수 있게 제공한다. 테이블로 나가는 모든 차는 손님들이 직접 우려 마시는 것이 기본. 차는 누군가 시중을 들어줘야만 마실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차를 마시기 전 30초에서 1분 속성으로 차 우리는 방법을 배우면 누구든 차를 즐길 수 있다. ‘차는 어렵지 않다’가 ‘반조’의 콘셉트.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젊은 학생들과 물어물어 찾아오는 이들, 차를 마실 줄 알거나 혹은 모르는 이들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다. 개업 초창기에는 다양한 차 수업과 문화 강좌, 인문학 강좌, 음악회 등 차가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현재는 카페를 찾는 손님이 많아 맞춤형 수업 정도만 진행한단다. 하보숙 대표는 “반조를 통해 사람들이 차를 가까이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 대표는 차 중심의 카페를 열기 전까지는 어떤 고정관념이나 틀에 갖혀 있었는데, 서서히 그 틀을 깨나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도 차를 온전히 즐길 줄 알자는 쪽으로 말이다. 좋은 차가 있기에 지역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요즘은 반조가 대세다.(서울 관악구 관악로12길 11, 2층)
홍차 키즈가 일군 홍차 나라 ‘티에리스’
‘티에리스’는 홍차를 좀 마실 줄 안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찾아가는 곳이다. 홍차를 좀 안다며 좀 읊어대던 사람들도 티에리스 앞에 서면 주눅이 든다고. 메뉴판도 책 한 권을 읽는 마음으로 봐야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홍차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꽤 높은 편이나 편하게 접근하면 좋겠다는 게 정다형 대표의 바람이다. 이곳에는 가향되기 전 단계의 홍차를 주로 판매한다. 산지 농장 단위를 다니면서 수입하는데 지난봄에도 인도 다르질링 지역에서 생산한 홍차 7종류를 들여왔다. 현재 이곳에서는 10종류 이상의 다르질링 홍차를 선뵈고 있다.
티에리스는 마포구 합정동에 사무실 겸 티 룸이 있고 방배동에도 두 개의 티 룸이 있다. 조만간 하나는 정리할 계획이다. 그것도 한창 잘되는 카페의 문을 닫을 예정. 정다형 대표는 “왜 잘되는 카페를 닫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사업 확장보다는 작고 좁아도 깊이 있게 이 길을 걷겠다는 의미”라고 답한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다. 지난 3월에 오픈한 매장은 좀 더 작고 빈티지한 느낌. 이곳에서는 홍차와 디저트인 스콘에 집중할 생각이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홍차에 마음을 빼앗긴 정다형 대표는 차와 함께 성장한 홍차 키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앞 홍차 전문점에서 파트 타이머로 시작해 일본의 홍차 브랜드 루피시아를 거쳐 미국의 유기농 홍차 리시티코리아에서 4년가량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다. 인도에서는 티 테이스터 과정을 밟았고, 영국에서는 티 소믈리에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만든 다원이 인도에 있기 때문에 차에 대한 기본을 배우려면 영국보다는 인도로 가야 한다고. 홍차는 보이차를 비롯한 기존 차와는 달리 새로 수확한 차를 마시는 것이 훨씬 신선하고 맛이 좋다. 정 대표는 단 한 번만 우려먹는 것을 추천한다. ‘티에리스’의 홍차 수업은 합정동 티 룸에서 진행한다. (서울 서초구 방배천로4안길 84,1층/ 서울 마포구 성지1길 39, 2층)
예약제로 여는 꽃차 티 룸 ‘화려한수다’
‘화려한수다’의 티 룸은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예약을 해야만 열리는 곳. 올해 1월에 강남의 스터디카페 작은 공간에서 예약제로 운영하던 티 룸을 능동의 주택가로 8월에 옮겼다. 한국꽃차아카데미의 송주연 원장이 운영하는 이곳은 꽃차를 순수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은 물론 카페 업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동백꽃 차이, 꽃차를 이용한 아포카토 등 다양한 레시피를 접할 수 있다. 꽃차를 적당하게 잘 우리는 방법도 배우고 코스별로 4가지의 꽃차와 디저트를 함께 맛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마시는 차는 꽃차만을 우려 손님에게 대접한다. 장미차, 목련꽃차, 노란 코스모스차 등을 주로 낸다. 그다음으로 동백꽃차를 걸쭉하게 우린 뒤에 크림을 얹어 동백꽃 차이티를 낸다. 동백꽃은 꽃차 중에서도 가장 진하게 우릴 수 있는데 얹은 크림 위에 장미나 목련 꽃잎을 잘게 부숴 올리기도 한다.
좀 더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하루 코스 꽃차 수업을 받으면 된다. 꽃차를 이용한 아이스티를 만들거나, 다양한 차 칵테일을 배울 수 있다. 정기적으로 수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꽃차를 이용한 알코올 칵테일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벚꽃 혹은 매화꽃을 보드카에 넣어 칵테일을 해먹는다. 차 코스에 나오는 디저트 대신 술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디저트도 준비된다.(서울 광진구 능동로 24길 100, 1층)
자격증에 관심을 두는 중장년이 늘어났다.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의 도구로 자격증을 취득하듯, 시니어 역시 재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노소를 떠나 무분별한 자격증 취득은 시간, 돈 낭비에 그치기도 한다. 2019년 등록된 자격증 수는 3만2000여 개. 관심 있는 자격증 정보를 선별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고민인 중장년을 위해 자격증을 분야별로 나눠 알아보려 한다. 이번 호에는 ‘이번 호에는 ‘컨설팅·중개’ 분야를 소개한다.
자료 및 도움말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고용정보원(한국직업전망 2019)
현역에서의 직무 경험을 살려 경영 및 기술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퇴직자가 늘고 있다. 직장에서의 오랜 경력이 무기가 되지만, 컨설팅에 대한 기본 지식과 영업 능력이 뒷받침돼야 원활한 활동이 가능하다. 전문 분야는 다르지만 업무 패턴이나 자기계발 면에서는 ‘중개사’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물론 꾸준히 업계 동향을 살펴야 하고, 개인의 역량과 더불어 고객(거래처) 확보와 실적 등에 따라 수입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PART1-1. 국가전문자격 '컨설팅 관련 분야'
경영·기술 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전문자격으로는 경영지도사와 기술지도사가 있다. 경영지도사는 마케팅, 생산관리, 인적자원관리, 재무관리 등으로 나뉘고, 기술지도사는 기계, 생명공학, 생산관리, 정보처리, 전기전자, 환경 등으로 세분화된다(2차 시험의 경우 지도 분야별로 구분해 실시).
응시 자격에 제한은 없지만, 1차에서 경영학을 비롯한 관련 법령 및 외국어 등 객관식 시험과, 2차에서 전문 분야 논술(약술) 시험을 치러야 해 공부 분량이 만만치 않다. 관련 분야 종사자라면 유리하겠지만 자격시험을 위한 이론을 익히고 암기해야 하기 때문에 실무와는 또 다른 맥락이다. 지난해 경영지도사 합격자는 215명, 기술지도사 합격자는 21명이었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합격률(2018년 경영지도사 18.6%, 기술지도사 28%) 역시 저조해 도전이 쉽지 않은 분야로 예상된다.
자격증이 없더라도 경영·기술 컨설턴트로 활동은 가능하다. 그러나 근래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술개발, 투자, 영업 관리 등의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대부분 국가전문자격을 요구한다. 더불어 인공지능, 스마트사업 등 신산업이 등장하면서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경영·기술 컨설턴트의 인력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젊은 세대와 경쟁에서 중장년이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대기업이나 고수익을 내는 프로젝트에 욕심내기보다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수행하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대상 컨설팅, 또는 청년기술창업 멘토 등에 참여하며 전문성을 쌓는 것이 경력관리에 효율적이다.
PART1-2. 국가전문자격 '중개 관련 분야'
흔히 알려진 중개 관련 분야 자격증으로는 ‘보험중개사’와 ‘공인중개사’가 있다. 두 자격증 모두 취득 후 나이 제한 없이 직업으로 연계가 가능해 중장년층의 관심이 높은 편이다.
먼저 보험중개사는 보험회사를 위해 계약을 체결하거나 대리하는 보험설계사와 달리, 보험회사별로 상이한 상품의 담보내용 및 요율, 조건 등을 비교해 보험계약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 더불어 독립적으로 보험계약자와 보험회사 사이에서 계약 체결을 중개하거나 그에 따르는 위험관리 자문 업무 등을 담당한다. 보험중개사 시험은 생명보험, 손해보험, 제3보험 등 세 종목으로 나뉜다. 응시 자격에 제한은 없으나, 합격자 수와 합격률이 저조한 편이라 취득 과정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중개사가 되려면 국가전문자격인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 후, 중개사무소 개설 등록을 위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나 대학에서 위탁받아 시행하는 실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대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여는데, 실무 경험이 없고 영업 능력이 부족하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부동산중개법인이나 부동산중개사무소에 소속공인중개사로 취업해 경력을 쌓으면 도움이 된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합격자 통계를 보면, 50대 이상의 합격률은 16.7%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응시자 수로만 보면 40대(2만5964명) 다음으로 50대(2만863명)가 높았다. 합격률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청년층에 비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험 합격률을 높이고 전문가로서 원활한 활동을 위해 관련 대학이나 대학원, 민간학원 등을 찾는 이도 적지 않다.
PART2. 민간자격
최근에는 창업 및 취업 컨설턴트, 퍼스널컬러 컨설턴트, 이미지메이킹 컨설턴트 등의 민간자격이 늘어났다. 대부분 일정 시간 교육 이수와 시험 등을 통해 취득이 가능하다. 다양한 민간자격 중에서도 중장년층이 주목할 만한 분야는 귀농·귀촌 컨설턴트, 정리수납 컨설턴트 등이 있다.
‘귀농·귀촌 컨설턴트’는 반드시 자격증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민간에서 발급하는 축산컨설턴트, 농업경영컨설턴트 등을 취득하면 업무에 도움이 된다. 주로 정부(지자체)와 귀농귀촌종합센터 등의 정책 사업에 참여해 귀농·귀촌자의 정착을 위한 정보와 조언을 제공한다. 귀농·귀촌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다양한 기관에서 교육 과정을 밟고 자격관리를 하면 안정적인 직업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엿보이는 분야다.
직장 경력이 적거나 전무한 주부들도 일자리로 삼을 수 있는 ‘정리수납 컨설턴트’ 분야의 민간자격도 인기가 높다. 관련 업체나 협회, 여성인력개발센터, 평생교육원 등에서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 주로 업체에 소속돼 일하거나 SNS 등을 통해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도 있다.
A(72) 씨는 크지는 않지만 젊은 시절 맨손으로 일으켜 탄탄하게 키운 사업체를 지금도 잘 운영하고 있다. 아들은 A 씨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남부러울 것도 걱정할 일도 그다지 없는 A 씨이지만 아내가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병원 신세를 자주 져 신경이 쓰인다. A 씨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지만, 요즘 들어와 부쩍 기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업체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하다.
우리나라의 현 법령과 제도는 부(富)의 대물림에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어 그 문턱이 상당히 높다. 대가 없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를 법률적으로 분석하면 결국에는 ‘증여’ 아니면 ‘상속’이 된다. 세법(稅法) 측면에서 보는 ‘증여’는 그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 형식, 목적 등에 상관없이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무상으로 재산을 이전하는 것(현저히 낮은 대가를 받고 이전하는 경우 포함)을 의미한다. ‘상속’은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의 권리와 의무를 일정한 사람(상속인)에게 포괄적으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 이름으로 취득한 재산이라 해도 취득에 들어간 자금의 출처를 입증하지 못하면 부모가 증여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사망한 사람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는 사유로는 앞서 설명한 ‘상속’이 대표적이지만, 유언으로 유산을 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는 ‘유증’도 있고, 증여자가 생전에 증여 계약을 체결한 뒤 사망했을 때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하는 ‘사인증여(死因贈與)’도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증여세’와 ‘상속세’는 다른 세금에 비해 세율이 높다. 증여 또는 상속되는 재산 가액이 커질수록 세율도 높아지기 때문에(이를 ‘누진세율’이라 하는데 증여, 상속되는 재산이 30억 원이 넘으면 세율이 50%에 이른다), 합리적이고 치밀한 절세 전략이 필요하다.
증여세를 줄이려면 먼저 증여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부분, 즉 공제(控除)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 10년 이내에 증여한 금액의 합계액이, 배우자는 6억 원, 부모 또는 성년 자녀는 5000만 원, 미성년 자녀는 2000만 원까지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증여를 할 경우 반드시 증여세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으면 증여한 돈 또는 그 돈으로 얻은 재산 가치가 불어났을 때 늘어난 재산까지 증여 금액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액 공제가 되는 범위 내에서 증여하더라도 증여세를 0원으로 해 신고를 하거나, 소액의 증여세만 낼 정도의 금액을 증여해, 언제 누구로부터 증여를 받아 얼마를 증여세로 냈다는 근거를 남겨두는 게 좋다.
고령자가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처분해 현금을 수령하거나 재산이 수용되어 보상금을 받으면, 국세청에서는 일정 기간 당사자와 가족의 재산 변동 상황을 지켜보다가, 배우자 또는 자녀가 재산을 취득했을 때 취득자금 소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처분대금 사용처나 취득자금 출처에 대한 입증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이밖에 부동산을 증여할 때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예상되지 않는 한 공시지가나 기준시가 고시일 이전에 증여하면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부채를 상환할 때, 미성년자 명의로 재산을 취득할 때는 그 상환자금이나 구입자금 출처 조사에 대비해 증빙 자료를 잘 준비해둬야 한다. 또 손자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경우처럼 세대를 건너뛰는 증여는 할증된 세액이 적용된다는 사실도 기억해두면 좋다.
상속세를 절약하려면 먼저 공제 항목을 잘 알아둬야 한다.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이고 사망자에게 배우자가 있다면 상속공제를 받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상속재산이 많아 상속세가 과세될 경우에는 배우자 상속 공제(최대 30억 원까지 공제 가능)를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세 부담의 차이가 클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 금융재산상속공제, 동거주택상속공제 등의 상속공제 항목도 잘 살펴야 한다.
한편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이 있으면 그 재산 가액이 상속세를 계산할 때 과세가액에 포함된다(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증여한 경우는 5년 이내 기준). 10년이 지난 증여는 합산되지 않는다. 10년 이내 증여라 해도 그 가액은 과세 시점이 아닌 증여 당시의 가액으로 평가되므로, 증여 시점을 잘 선택해야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외에 사망일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피상속인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점, 상속세를 계산할 때 공제되는 피상속인의 채무를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 건물을 상속할 때는 월세보다 전세가 많은 상황이 유리하다는 점, 사망하기 전 재산을 처분하거나 예금을 인출할 경우 사용처에 대한 증거자료를 잘 준비해둬야 한다는 점, 상속인이 상속 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상속세를 자진신고하면 세금의 3%를 공제해준다는 점(증여세의 경우는 3개월 이내) 등을 알아두면 절세에 도움이 된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연기를 하는 것이 평생 꿈이던 시니어 세대에게 연극을 할 기회는 종종 있다. 몇몇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민배우 제도와 다양한 세대들이 모인 연극 동아리들. 가끔 소극장을 빌려 그들만의 공연을 열어 이루지 못한 이상에 잠시 동안만이라도 빠지는 사람들. 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우고 더 늦기 전에 열정을 담아 무대에 서기를 응원하기 위해 (사)한국생활연극협회가 문을 열었다.
‘생활체육’은 있는데 ‘생활문화’는 없다? 이 질문은 (사)한국생활연극협회를 있게 한 초석과도 같은 질문이었다. 생활체육은 동네마다 지자체에서 시설도 마련해주고 뭐든 다할 수 있게 해주는데 생활문화는 미비하기 이를 데 없다. 알음알음 만나 무대를 찾고 조명 아래 서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제대로 이끄는 단체나 체계적인 방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한국생활연극협회의 정중헌 이사장은 무대에 서고 싶은 욕망이 있거나 꿈이 있는 아마추어를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협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는 미주 지역을 포함해 12개 지회와 30여 개 지부가 있습니다. 전문 연극인들이 임원진으로 구성돼 있고, 회원은 200여 명 됩니다. 여성들은 대부분 50~60대이고 남성들은 은퇴하신 분들이 참여하고 계신데 60대가 많습니다. 78세 최고령자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젊은 시절부터 바라던 꿈을 이루면서 노후 설계를 하고 인생을 더 풍요롭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하자는 게 협회의 취지입니다. 특히 공연 전문가들과 비전문 연극인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마추어 연극인에게 무대 본능을 깨우다
협회는 2017년 7월 창립 기념 세미나를 열고 생활연극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부터 계획은 확실했다. 기자 출신에 문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사장의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전문 스태프가 장을 마련해놓으면 비전문 연극인은 그 시스템 속에 들어와 순수하게 연극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공연은 반드시 대학로에서 올린다. 비전문인이 이루고 싶은 소망이 바로 한국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 무대에 서보는 것이기 때문. 실제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작·최영환 연출)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은 동숭동의 크고 작은 극장에 올려졌다.
“대학로 바닥에서 공연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지도합니다. 전문 연극인이 아닐지라도 그분들이 가진 능력을 더 최대한 이끌어내려고요.”
덕분에 우리나라 연극계 대가인 강영걸 씨가 연출했던 ‘작은 할머니’(엄인희 작)는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작품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가와 함께하는 연극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 알게 됐다.
“지난 6월에 ‘강영걸 연기·화술 아카데미’를 열었어요. 연극 연습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수업으로 보충하기 위해서죠. 제대로 기초를 배우며 발성과 발음, 똑바로 서기, 앉기, 방향 바꾸기 등 대사 분석과 동작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송년 공연은 강영걸 씨가 연출할 예정입니다. 이번 수업을 들은 분들 중에서 우선적으로 캐스팅할 계획입니다.”
연극의 맛을 알아가는 생활연극인들
한국생활연극협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을 통해 새로운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회원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무대 위 특별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만큼 순수한 열정이 넘치는 곳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의 여동생인 스텔라 역을 맡았던 이주연 씨는 국어선생입니다. 1년만 있으면 연금이 나오는 상황인데 연극을 하겠다며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어요. 학교보다 연극이 좋다면서요. 물론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리고 다독여서 지금 잘 참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생활연극인으로 무대로 멋지게 돌아오겠죠.”
회원들과 함께 서울 인근으로 단합대회를 갔을 때 저마다 ‘왜 생활연극을 하게 됐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서로 감동하고 깊은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어떤 분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서 변두리로 이사를 갔답니다. 삶의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전봇대에 연극 포스터 하나가 붙어 있더라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도 활동할 곳이 있을까?’ 궁금했답니다. 그러다가 우리와 함께 연극을 하게 되신 거죠. 연극을 시작하고 사업도 잘되고 삶의 활력을 얻었다는 분도 있어요. 다들 참 많은 사연들이 있더군요.”
아이 셋 키우고 남편 시중만 들다 연극을 통해 세상을 접했더니 잔병도 없어지고 근심도 사라졌다는 여성 회원부터, 연기자 지망생이던 20대 시절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그곳에서 살다가 사별 후 4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된 회원까지. 모두가 크고 작은 아픔도 있고 은은한 삶의 향기도 지니고 있었다.
“누군가는 쉽게 기회를 얻기도 하겠지만 열정과 능력이 있어도 무대에 못 서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우리 협회의 생활연극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양적, 질적인 면에서 큰 성장을 하고 관심을 받게 된 것은 평생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회원들의 꿈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8월 말에는 한국생활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생활연극축제(8.30.~9.1.)가 충북 영동군 심천면 영동국악체험존에서 열린다. 이번이 2회째다. 전국의 생활연극인의 공연은 물론이고 국악, 춤, 시낭송, 버스킹 등을 하면서 즐기는 한판 놀이마당이 될 것이라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대사를 따라하는 독자가 있다면 지금 바로 생활연극협회 문을 두드려보는 것 어떨까? (생활연극협회 k-act.co.kr)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안물안궁’이란 신조어를 알게 됐다.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한데”를 줄인 말. “물어보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는데 왜 자꾸 잔소리를 하느냐”로 풀이된단다.
신조어는 시대상을 풍자한다. 말 수나 글자 수를 줄임으로써 의사를 빠르게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SNS가 의사 소통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시대이니 간편한 언어가 필요할 게다. 최근 문자 대신에 이모티콘을 간편하게 사용하는 것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안물안궁. 왜 이런 신조어가 생겼을까? 세대 차이의 산물로 보인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 그것도 과거의 사건들이 화제의 중심이다. 나이 든 이들의 사회적 역할이 줄어든데 대한 안간힘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신세대에겐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노파심이라고 변명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꼰대로 각인될 뿐이다. 시대가 급변하여 기존세대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신세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결국 잔소리로 들리게 된다.
어떻게 세대 차이를 극복할 것인가?
자기의 이야기보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적극 들어보자. 나이 든 세대는 스스로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하고 있어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노래를 불러도 실제 생활에선 변화하지 않는다.
시대 변화를 인식하고 동참해보자. 미래 예측이 어려워 열심히 배워도 젊은 세대처럼 빠르게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뒷짐만 지고 있게 되면 차이가 좁혀질 수 없다. 변화의 물결에 따라가야 한다.
‘안물안궁’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궁물(궁금하여 물어보는)’한 것에 짧게 말해주는 시니어라면 조금은 존경 받을 수도 있겠다.
일전에 지인으로부터 영화관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감상권을 선물 받았다. 주변에 있는 메가박스를 모두 검색했건만 어쩐 일인지 오로지 ‘어벤져스 엔드 게임’밖에 볼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 젊은 관객들 틈에 끼어 장장 세 시간을 앉아 영화를 봤다.
영화는 멜로, 스펙터클, SF 등이 뒤범벅된 성대한 잔칫상이었다.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CG(컴퓨터 그래픽스)가 화려하게 뒤섞여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등장인물이 수도 없이 많고, 스토리도 다양한 인물에 맞춰 짧게 스케치하듯 지나가 잠깐 졸았다간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나중에야 내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영화는 소설로 말하면 20권 짜리 대하소설인데 우리가 본 것은 총 등장인물별 스토리를 요약 정리한 마지막 권이었던 것이다. 앞의 영화들을 보지 않았으니 지금 눈앞의 장면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해는 될지 몰라도 감성으로 느껴지는 온전한 즐거움은 누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 설명서를 강매당한 셈이었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마블이라는 만화의 세계가 얼마나 방대하고 그 속의 세계관이 어떻게 젊은이들을 지배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이다. 아날로그 세대인 우리 나이 층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괴물 형상이 낯설고 우주 전쟁 시퀀스 등이 애들 장난 같은데 젊은 관객들에게 몰입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흥미로웠다. 이런 것을 세대 차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만화와 사이버에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는 그야말로 희한한 만화 같은 이야기에 불과했다.
영화는 수많은 히어로들이 절대 악이며 절대 힘을 지닌 타노스가 지구 생명체의 반을 절멸한 전 편 ‘인피니티 워’의 뒤를 이어 이들을 되살릴 마법의 구슬(인피니티 스톤)을 찾기 위해 사투하는 모험이 주를 이룬다. 아울러 타노스와의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 등장인물 간의 자기희생과 팀플레이, 가족에 대한 사랑 등 감동적인 요소가 사이 사이 배치되는 영화적 문법을 따른다.
흥미로운 것은 절대 악의 존재인 타노스가 생명체의 절반을 사멸시킨 것은 나름대로 지구를 살리기 위한 환경적 목적에서 행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아무리 목적이 숭고해도 과정이 부도덕하면 결국 악이 된다는 도덕관을 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얼마 전 신문 외신면에 소개된 한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그것도 익숙한 나라가 아닌 멀리 떨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사다. 요약해 인용한다.
“한국에 가면 우리처럼 한때 식민지였던 그 나라의 사람들을 대면케 된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전쟁을 치렀다. 북쪽에선 아직 무기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바로 곁에는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이 버티고 있다. 6·25 당시 한국을 침공했던 중국은 지금도 문턱에 버티고 서서 편한 잠을 못 자게 한다.
남아공은 그런 안보의 덫에 걸려 본 적이 없다. 어느 이웃 국가도 위협을 가한 적이 없다. 남아공의 지정학적인, 천연자원이 주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안보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 도리어 남아공의 뒷걸음질 친 현실을 깨닫게 한다.
경제는 가장 창피함을 느끼게 한다. 한국은 자신들이 만든 휴대폰을 사용한다. 길에는 국산자동차로 꽉 차있다. 교육은 종교처럼 소중히 여긴다. 한국의 국내 총생산은 1조 5천억 달러에 달한다. 남아공은 3490억 달러에 못 미친다. 남아공 면적의 13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에 5100만 명 인구가 비좁게 살면서도 이룬 그들의 오늘을 보라. 도대체 남아공엔 무엇이 잘못돼 있는 걸까.“
이 칼럼 집필자와 달리 우리가 보고 느끼는 우리의 현실은?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경제는 죽을 쑤고 있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더 팍팍해지고 있으며 청년 실업은 미래 세대를 좌절감 속에 몰아넣는다. 정치싸움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야말로 ‘헬조선’이라는 젊은이들의 탄식이 피부에 와 닿는다. 요즘 우리가 우리나라를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 차이! 현실은 하나인데 보는 눈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고 하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도 하고, 아는만큼만 보인다고도 한다. 남아공의 그 칼럼니스트나 우리들이나 보다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기 위해 ‘시각 재조정’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