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직책과 나이대의 사람들이 협력해 업무를 해야 하는 조직 생활. 최근 중장년들은 소위 '꼰대'라는 질타를 면치 못하는가 하면, 90년대생과의 사고방식 차이와 마찰 등으로 직장에서의 동상이몽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리더십 전문 컨설턴트 김성남은 '아직 꼰대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갈매나무)를 통해 미래지향적 해법을 내놓았다. 책에서 그는 수평적 리더십이야말로 90년대생에게서 아이디어와 성과를 끌어내는 지름길임을 조언하며, 꼰대는 되고 싶지 않은 중장년들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Q. 책을 펴내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오랜 시간 조직 리더십 컨설팅을 통해, 젊은 직원들과 일하며 고충을 겪는 중장년 관리자와 리더들을 접해왔습니다. 최근 90년생 직장인에 대한 콘텐츠가 많아졌지만, 흥미 위주로 문제 제기만 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관리자의 입장이나 해결책이 없던 점이 아쉬웠죠. 어떻게 해야 중장년들이 ‘꼰대’ 소리를 안 들으며 젊은 직원들과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에 대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담아보고 싶어 책으로 펴내게 됐습니다.
Q. 제목처럼 대부분 리더나 관리자가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겠지요. 그런데도 자꾸만 꼰대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에 서글퍼 하곤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꼰대’로 전락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먼저 꼰대라는 말이 너무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우선 기성세대가 뭘 특별히 잘못해서 꼰대가 된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꼰대라는 개념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회자가 된 거예요. 즉, 요즘 기성세대가 뭔가를 잘못한 게 아니라, 그들은 그냥 있는데 세상이 바뀐 겁니다. 중장년과는 다른 성장 과정과 가치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들어오니 세대 차이나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죠. 지금의 리더나 관리자들은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자기희생을 해가며 열심히 살아온 이들입니다. 상황이 그렇게 된 거지, 그들이 잘못해서 특별히 뭔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바뀐 상황에서도 옛날의 방식이나 관념을 고수한다는 점이겠죠.
Q. 반대로 ‘꼰대’가 아닌 존경받는 리더의 경우 어떤 특징이 있던가요?
우선 누군가를 ‘꼰대다’, ‘꼰대가 아니다’라고 양분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꼰대의 특성을 적게 또는 많이 가질 수 있죠. 가령 평소엔 쿨하고 깨어있는 사람인데 어떤 측면에서는 고리타분할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논문이나 연구를 보면 존경받는 리더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요. 첫째, 업무 능력이 출중한 사람. 둘째, 실무를 하지는 않지만 어른으로서 비전을 제시하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 셋째, 능력이나 카리스마를 떠나 인간적으로 따뜻하고 모성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도 어떤 면에서는 꼰대의 기질을 보일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떤 한 면만 보고 이 사람이 꼰대다 아니다를 나누는 건 위험하죠. 또, 이렇게 양분해서 접근하면 누구라도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더 자기 성찰이 어렵고 변화가 안 되는 거고요. 그러니 스스로도 ‘아, 나는 이런 점은 훌륭하지만 어떤 점은 직원들이 꼰대라고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인정하는 게 좋습니다.
Q. 꼰대를 벗어나려면 먼저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존경받는 리더들마저도 자기 인식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관리자나 임원 정도 된 사람들은 상당히 실력이 있고, 인정을 받아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자부심이 높을 수밖에 없죠. 그러니 자기 인식이 어려운 거고요. 결국 지속적으로 명상하고, 회고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다른 방법으로는, 내가 직장에서 진짜 믿을 수 있는, 나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줄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피드백을 받는 게 자기 인식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것이 어렵다면 심리검사를 한다거나, 전문가의 카운슬링을 받아보는 것도 좋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자기 인식의 시간을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이든, 5분이든 10분이든 날짜와 시간을 정해 주기적으로 해줘야 효과적입니다.
Q. 요즘 90년대생은 ‘노력과 인내가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그런 말보다는 어떤 이야기가 동기부여에 도움이 될까요?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해볼게요. 과연 90년대생이 성공과 승진을 원하지 않을까요? 아뇨 원합니다. 성공에 욕심이 없거나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들은 ‘지금 내가 속한 조직에서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냥 승진이 싫다는 것과 그걸 원하는데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포기하는 건 큰 차이죠. 저는 요즘 젊은 직장인의 경우 후자라고 봐요. 그렇다면 조직에서는 그들의 승진, 성공 말고 뭘 제시할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당장 편하고 좋고 누릴 수 있는 것, 아니면 먼 미래에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제시하는 거죠. 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워라밸을 지키며 일하도록 근무환경이나 복지 등 당장 손에 잡히는 가치를 충족해주거나, 이 조직에서 얼마나 올라가느냐보다 내 인생에서 어떤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데 지금의 직장생활이 도움이 되게끔 좋은 프로젝트와 경험을 쌓게 배려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Q. 부하의 책임을 운운하기 이전에 권한 위임을 먼저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권한 위임을 못 하는 이유는 리더의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한 강박, 직원에 대한 불신과 불안함 때문일 텐데요.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현명할까요?
어떤 단계라는 관점보다는 원칙을 몇 가지 정해놓고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첫째, 사람에 맞게 위임해야 합니다. 같은 90년대생이라도 사람마다 역량이나 의식 수준은 다릅니다. 직원의 경험이나 강약점, 선호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위임해야 하죠. 그러려면 평소 직원들을 잘 관찰하여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 위임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와 방향성이 명확해야 합니다. 위임을 했는데 그 결과가 기대와 달라져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한 가지 업무를 쪼개지 말고 통으로 위임해야 합니다. 권한을 줄 때는 확실하게 주는 게 동기부여 효과가 크고 직원의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나누어 위임하면 직원은 그 일이 자기 책임이라 생각하지 않고, 팀장의 업무를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끝으로, 인내심을 갖고 결과를 기다리되 한 번 준 위임은 피치 못 할 사정이 아니면 바꾸지 않는 겁니다. 그래야 그 직원의 자존감과 신뢰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Q. 기술의 발달과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스마트오피스,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등을 접목하는 조직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리더는 어떤 변화를 고려하고, 대처해야 할까요?
과거 한국에서는 재택이 안 된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었죠. 최근 코로나19 덕분에 그런 통념은 깨졌고, 재택근무가 표준이 된 곳들도 많아졌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리더들도 있지만, 실제 실행 이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더군요. 그러니 아직 그런 근무 방식에 부정적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게다가 90년생은 유연근무나 재택근무를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으로도 꼽습니다. 실제 이러한 근무 방식을 채택하고 잘 지키는 회사를 더욱 우호적으로 여기는 거죠. 특히 이들은 자기 시간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유연근무, 재택근무는 자기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주는 셈인데, 이를 통해 직원들의 시간을 존중하고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꾀할 수 있죠. 이러한 변화에 맞춰 중장년 리더들은 비대면을 통해 더욱 명확하고 간결한 업무지시를 내리고, 과정보다 결과 중심의 평가를 하는 등의 방침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Q. 꼰대라는 표현을 지우기 위해 아래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감수하는 리더들인데요. 이들에게도 쉼과 격려가 필요하겠지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재충전할 수 있을까요?
우선 꼰대라는 평가에 너무 의식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들 역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잖아요.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최적으로 활용해 조직 생활을 해야 하는데, 중요한 건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하려면 안 된다는 거예요. 크고 중요한 몇 가지를 하고 나머지는 다 위임할 필요가 있죠. 모든 걸 다 일일이 챙기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자신도 워라밸을 찾을 수 있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고, 야근하고, 집에도 일을 가져가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가 공허해지고, 번아웃이 오는 거예요. 번아웃은 그냥 일이 힘들다고 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힘들게 고생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 온다고 해요. 산업시대에는 개인의 희생으로 회사가 성장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도 이제 90년생처럼 생각하고, 자신을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조직은 문제없이 굴러가니까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똑똑해서 적절한 권한을 주면 의외로 곧잘 해내죠. 그런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시면서 자신의 제2, 제3의 커리어를 위한 자기계발의 시간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 김성남 리더십 전문 컨설턴트
20여 년 경력의 조직, 리더십 전문가로 삼성, 코트라, 듀폰, SK 등에서 근무했다. 글로벌 HR컨설팅사 머서, 타워스왓슨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컨설팅을 수행했다.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한국어판, '동아 비지니스 리뷰'의 필진으로 활동하며 조직 고나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코칭을 하고 있다. 인문학, 심리학, 뇌과학의 지혜를 경영, 조직, 리더십 분야에 접목하는 게 주요 관심사다.
1920년대 태어난 90대 할머니와 2020년을 사는 20대 손녀.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다다서재)는 치매 할머니의 삶의 마지막 과정을 기록한 동시에, 한 세기를 용감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인생을 그린다.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역사를 더듬고 자신의 삶을 다듬어간 저자 윤이재(27)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취업준비생이 되어 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상태셨어요. 그 전까지는 가족, 조부모에게 특별히 관심 있지는 않았죠. 할머니가 몇 년생인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할머니와 종일 있으면서 이런저런 ‘말’을 들었는데 전처럼 흘려듣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내 할머니가 아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시대를 거쳐 현재를 사는 한 명의 사람, 국민, 여성으로 보이더군요. 저는 할머니가 살던 시대를 교과서에서 배웠고, 그 내용을 달달 암기해 수능을 봤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할머니의 입으로 들으니 새삼 충격적이었죠. 역사 속 위인은 아니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범인(凡人)이 바로 내 할머니구나. 근데 그런 이야기가 할머니의 기억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스스로에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1920년도에 태어난 할머니와 1990년도에 태어난 제가 겪은 일을 엮은 책이죠.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할머니가 살던 세상과 제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그 전에는 소위 ‘세대차이’라는 어른들의 생각 차이를 터부시하고 넘어갔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쓰면서, 가족과 더 많이 대화하면서 그 시대를, 할머니와 부모님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특히 할머니,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보게 됐죠. 동시에 그 분들이 살아온 사회 구조와 편견, 차별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비로소 알게 됐어요. 그것이 다른 형태로 대물림 되고 반복된다는 사실도요.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고민할지 성찰할 기회이기도 했죠. 책을 쓰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완성하는 게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다 쓰고 나니 20대 중반에 꼭 해야 할 일을 해낸 느낌이에요. 이런 시절이 주어졌다는 게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 할머니와 함께한 2년 동안 틈틈이 글감을 마련해온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 글을 남기기 시작했나요?
할머니와 대화하면서 영상을 많이 촬영했어요. 혹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리울까봐, 움직이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볼까 싶어서...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소스를 모았죠. 동시에 하나의 주제가 될 만한 것들은 글로 남기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영상보다 글로 남기는 게 빠르겠다 싶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아놓은 글감에 영상으로 찍어둔 할머니와의 대화로 살을 붙여 글을 작성했어요.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 다다서재에서 출간 제안을 해와 책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Q. 할머니께서는 글을 못 배우신 것이 한이셨죠. 손주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면 굉장히 뿌듯해하실 것 같은데요. 할머니께서 책이 나온 걸 아셨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요?
사실 저도 궁금하기는 해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할머니는 가끔 제 생각과 다른 말씀을 많이 하셔서 감히 예상해 보기도 어렵네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제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은 이정도 인 것 같습니다. “나? 내 얘기를 글로 썼다고? 그런 걸 누가 궁금해 한다고 글로 쓰냐? 그때는 다 그랬다!” “우리 애기가 책을 썼어? 대견하다 대견해!”
Q. 제목에서도 그러하듯, 할머니를 ‘슈퍼우먼’이라 비유했습니다. 내 가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본 할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참 ‘사람’다운 분이셨어요. 할머니는 글도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알고 행동하셨다고 해요. 할머니는 도덕성, 이타심, 배려심, 인간으로서의 도리 같은 것들을 평생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셨어요. 지금 우리는 할머니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지식수준은 더 높을지언정 정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치는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어리고 철없을 때는 많이 배우지 않아서, 부유하지 않아서,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조부모님이 조금은 부끄럽고 원망스럽기도 했는데요. 돌아보니 사실은 더 중요한 것들을 제게 남겨주신 것 같아요. 할머니에게는 언어가 없었지만 언어보다 더 강력하고 의미 있는 행동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존경스럽습니다.
Q. 슈퍼우먼이었던 할머니께서 무기력해지신 모습을 보고 ‘마음의 은퇴보다 몸의 은퇴가 먼저 찾아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곁에서 보는 심정은 어땠나요?
많이 안타까웠어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스럽기도 했고요. 마음의 은퇴를 하고 싶어도 하실 수 없는 세상에서 사신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어요.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Q. 책에서 할머니를 위한 취미를 찾던 중 ‘소소한 현재의 습관과 취미가 훗날 노인이 된 나를 살아가게 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바뀐 일상이 있다면요?
취미 자체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취미도 할머니의 농사처럼 나이 듦에 따라 할 수 없을 수도 있고요. 앞으로 세상에 또 얼마나 재미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올까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건강한 신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건강한 20대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즐기고 있어요. 동시에 새로운 취미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후보로는 주짓수, 드럼, 베이스기타 배우기가 있어요. 하고 싶은 취미와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기에 하나씩 해볼 예정입니다.
Q.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 이야기를 많이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와 다시 시간을 보낸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나요?
먼저 “학교가자 할머니!”일 것 같아요. 할머니가 기억을 잊어가면서도 습관처럼 말씀하시던 게 글을 배우지 못해 원통하다였거든요. 그 한을 꼭 풀어드리고 싶어요. 두 번째는 ‘글도 모르는 시골 노인네’가 아닌 할머니 스스로 인생에 자긍심을 가지도록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고요. 세 번째 할머니의 욕망을 찾아드리겠어요. 할머니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할머니의 취향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누군가의 어머니로서의 욕망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욕심 부리고 성취할 수 있게 도와드렸음 해요. 마지막으로는 할머니의 죄책감을 덜어드리고 싶어요.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미안해 하셨는데 함께하며 저는 얻은 게 정말 많거든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제 욕심인데, 할머니가 직접 말한 언어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박막례 할머니처럼 유튜브를 할 수도 있고요. 책이 될 수도 있고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고요. 할머니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더 섬세하게 꺼내고 다듬어젊은 사람들의 시선에 맞춘 의미 있는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이제 할 수는 없지만요.
Q. ‘효녀’라는 말이 칭찬이지만, 때론 그것이 의무감으로 다가와 부담을 느끼기도 했죠. 다른 가족도 있었는데, 유독 자신이 할머니께 마음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상황이었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을 때 아주 우연히도 함께 살았던 손녀딸이 직업이 없었던 것이죠. 제가 특별히 착하거나 할머니와의 애정도가 다른 형제보다 더 커서라고 보긴 어려워요.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처럼 했을 거예요. 제 또래들은 조부모님과 사는 친구들이 거의 없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그런지 거부감은 없었어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어요. 항상 할머니와 살았고, 집에 늘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런 할머니가 조금 아프셨던 거죠. 다만 조금 용감하긴 했어요. 처음에는 치매 노인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떻게 사람이 늙고 죽어 가는지 몰랐기에 용감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밥만 차려드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Q.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노인의 삶을 가까이 하며 힘든 점도 있지만, 어떤 인생의 깨달음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땠나요?
감히 인생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기에는 부끄럽고요. 할머니와 함께 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는 했어요. 알고는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우리에게는 모두 끝이 있다”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삶의 활력이 가장 충만한 시기에 끝을 생각하면서 지금 제게 주어진 일상과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요. 지금의 삶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실하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어떤 결정을 할 때 효율이나 성공 가능성 보다는 ‘후회를 덜 할 것 같은’ 것을 기준으로 선택해요.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고요. 조금 진부하지만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Q. 할머니를 지켜드리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을 텐데요. 자신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했나요?
그 당시에는 엄마도 저도 방법을 찾지 못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어요. 그래도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는데, 길게 계셔도 4-5시간이거든요. 그 외 시간은 가족의 손길이 필요했죠. 다행이었던 것은 할머니가 자식이 많고 가까이 산다는 거죠. 고모들도 종종 오셔서 돌봄을 나누셨어요.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 가족은 특이한 케이스였어요. 동시에 대가족이 아닌 지금의 가족형태에서 돌봄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방식이 될 지 상상이 안 돼서 두려워요. 치매는 정말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가정에서 개인들이 오로지 감당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니까요. 만약 경제활동을 하는 구성원밖에 없으면 요양시설에 가거나, 누군가가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전담하는 상황이겠죠.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없는 건 아니지만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보완해야겠다 싶어요.
Q.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달라지고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요?
조금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지켜봤어요. 근육이 사라지고 쪼글해진 살이 뼈에 간신히 붙어 있고,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말을 못하고, 누워만 있는 말 그대로 육체적인 노화의 과정이요.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할머니의 장례식까지 치르면서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워 외면하고 살았던 부모님의 죽음과 저의 죽음을 상상했어요. 그 상상이 너무나 뻔하고 진부하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죽음’을 말하는 것을 얼마나 터부시 하는지, 그 방식에 대해 다양성이 얼마나 허용되지 않는지 새삼 느꼈어요. 죽음을 고민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과정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단언컨대 저는 “No”거든요. 그런 부분에서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 명쾌한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고민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아쉽지만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는 못하셨습니다. 인터뷰로나마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할머니 정말 고맙고 사랑해.”
Q. 끝으로, 치매 가족을 둔 분들, 또는 자신처럼 치매 조부모를 둔 또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개인적으로 할머니를 돌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위로가 “언젠가 복 받을 거야”라는 말이었는데요. 그 말만큼 공허하고 듣기 싫은 말이 없더라고요. 물론 말의 선한 의도는 알지만 사실 환자를 돌보는 입장에서는 눈앞에 환자가 있고, 무언가 기대를 하면서 돌봄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눈앞에 환자에게 충실한 거였거든요. 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지켜드리는 것뿐이었어요. 각자의 사정과 환경이 있는데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있을까 싶은데요. 그저 정말 수고가 많고 고생이 많으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 가족도 그랬지만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계시는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기억을 잊어가는 가족을 보는지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가족으로서 이해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인간의 삶에서 오직 죽음만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모두 공평하게 한 번은 죽음을 만난다. 죽음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죽은 자는 행위가 종식되고 운동이 정지하면서 반응이 없어진다. 존재에서 무존재가 되어 모든 계획과 삶이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을 후벼파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독일의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의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은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후, 곁에 있을 때 못 느꼈던 사랑과 아내가 접어야 했던 꿈을 이해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린 작품이다. 죽음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 그리고 소통과 배려 등 살면서 챙겨야 할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독일 남부의 시골 마을 시청 청소행정과 과장 ‘루디’(엘마 베퍼 역)는 큰 위기 없이 20여 년 공무원 생활을 착실히 해온 평범한 가장이다. 그의 아내 ’트루디‘(한넬로르 엘스너 역)는 무용의 꿈을 접고 내조와 자녀 교육에만 전념해온 전업주부다. 그들에게는 베를린과 일본 도쿄에서 사는 2남 1녀의 자녀가 있다. 트루디는 일본의 ’후지산‘을 가고 싶어 한다.
어느 날 트루디는 남편 루디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듣는다. 하지만 트루디는 이 사실을 숨긴 채 베를린의 자녀들을 만나러, 둘이 함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자녀들의 무관심과 세대 차이에 충격을 받고 발트해로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곳에서 트루디가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
상실의 슬픔과 그리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루디는 아들 칼을 만나러 도쿄로 가지만 바쁜 아들 때문에 홀로 도시를 헤맨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부토 춤을 추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소녀와 함께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후지산을 찾아간다. 후지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새벽녘 푸른 호숫가에서 루디는 아내 트루디와 함께 부토 춤을 춘다.
영화에서는 중요한 두 개의 메타포가 등장한다. 하나는 파리다.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의 창에 붙어 있던 파리의 모습은 이후 벌어질 자녀들과의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예고한다. 식탁에 앉은 파리를 손바닥으로 내려쳐 잡는 젊은 세대와, 작은 생명체 하나도 존중하는 기성세대 간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사전 장치다. 부모 앞에서 레즈비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딸의 모습과 부모의 반응은 ‘세대 간 차이를 갈등과 대립이 아닌 소통과 배려로 극복해야 함’을 표현하는 서브 텍스트다. 여성 감독이기에 이런 따뜻한 메시지가 더해졌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림자다. 영화 초반 루디의 기계적 일상을 설명하는 트루디의 내레이션에서 시작돼 자주 등장하는 장치다. 이 영화의 큰 축인 부토 춤의 표현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는 그림자를 외부에 드러내기 싫은 나, 그래서 진정한 나에 가까운 것으로 말한다. 억누른 기억과 감정이 모두 담겨 있는 무의식의 거대한 산 같은 것이 그림자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그림자를 존재의 다른 방식으로 때론 타인에게 인식될 수 있고 또 타인과 이어주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사회의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해답을 갈구하는 것 같은 움직임을 묘사한 그림자 춤인 부토 춤을 이 영화에서는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가 통하는 의식으로 설정했다.
결국 루디는 그림자, 그림자 춤을 통해 상실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인다. 자신의 상처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을 챙기고 ‘그림자 치유’ 과정을 통해 트루디가 있는 세계로 가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부토 춤을 추는 공원의 소녀가 춤출 때 사용한 전화기의 수화기와 선도 중요한 메타포라 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지인 발트해에서 트루디는 계면쩍어하는 루디의 손을 잡고 같이 춤을 춘다. 루디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트루디는 춤을 추면서 어떤 참혹한 상실의 시간이 오더라도 그 시간을 딛고 일어설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낮에는 해안가에서 추워하는 루디를 위해 스웨터를 함께 입는 세심한 배려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홀로 남게 된 루디의 슬픔, 아픔이 살갗을 뚫는 듯했다. 남겨진 자들의 고통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잊혀간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가장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루디는 침대 위 자신의 옆자리에 트루디의 잠옷을 펼쳐놓는다. 트루디를 느껴보고 싶어서, 트루디를 기억할 수 있는 작은 것들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그리고 “여보 어디 있어…”라고 속삭인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거대한 상실의 구멍이 생긴 것처럼 슬픔이 스며들었다.
트루디가 죽기 전 발트해의 해안을 둘이 걸을 때 루디가 말했다. “그래, 우린 행운이지. 우린 서로가 있으니까. 그게 젤 큰 행복이야….” 그런데 몇 시간 뒤 루디는 홀로 남겨진다. 루디는 남겨진 자녀들에게 말한다. “이제 익숙해져야겠지.” 일본에서 만난 아들은 왜 좀 더 빨리 두 분이 함께 일본에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시간이 많은 줄 알았다”고 루디는 대답한다.
영화 초반부에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알프스 산맥이 있는 독일 남부의 아름다운 자연이 영상으로 나온다. 후반부에서는 일본의 봄 벚꽃과 후지산의 풍경이 잔잔하게 흐른다. 이야기 전개상 도쿄의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이 때문에 일본 홍보 영화로 평가절하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각종 영화상도 받은 작품이다. 편견 없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장면은 베를린의 자녀 집에서 잠자리에 누운 트루디가 루디에게 “아이들이 낯설다“고 하면서 손을 내밀어 루디의 손을 꼭 잡는 모습이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오늘은 잠들기 전 옆에 누운 아내의 손을 꼭 잡아보자. 그리고 한마디쯤 하자.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오늘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 간의 관계를 되새기고 화합을 독려하는 취지에서 국가가 공인한 법정기념일이다. 부부의 날이 5월 21일인 이유는 ‘둘(2)이 결혼해 하나(1)의 부부로 성장한다’는 의미다.
최근 각종 사회·경제문제들로 인한 가정 해체가 늘면서 배우자의 역할이 점점 중요시 되고 있다. 실제 고령화 사회의 주축인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 부부들이 겪는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지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 건수는 3만8400여건으로 전체 이혼의 34.7%를 차지했다. JTBC '부부의 세계' 등 부부 갈등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 역시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로를 이해하고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부가 정신·신체적으로 편안해야 한다. 중년 부부들이 알아두면 좋은 건강 정보들을 자생한방병원 한창 원장의 도움말로 알아보자.
◇ 은퇴 남성, 우울증 걸릴 확률 2배↑, 집안일 실천 등 생활패턴 유지 필요
이 시기 남성들은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은퇴해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은퇴 남성들의 경우 신체적 건강보다는 정신적 건강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남성들은 은퇴 직후 여성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활동량과 함께 대인관계 형성이 줄어들면서 인지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우울증은 정신적인 압박과 함께 불면증, 몸살, 식욕저하 등 신체증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또한 인지기능의 지속적인 저하는 인지장애 및 치매를 야기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생한방병원 한창 원장은 “많은 중년 남성이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데, 가족들과의 다정한 교류는 우울증 예방에 효과적”이라며 “아내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등 평소 생활패턴을 직장 생활 시기와 비슷하게 맞춰 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인들과의 유대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갱년기 여성들에 다발하는 ‘골다공증’, 운동·식단 관리가 효과적
이 시기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들은 호르몬 분비가 급격하게 변화해 신체적인 이상 증후를 겪게 된다. 감정적 기복은 물론 골밀도가 약해지고 척추·관절의 퇴행이 점차 가속화 된다.
이는 50대 이후부터 여성들이 남성보다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을 더욱 많이 겪는 이유다. 특히 남녀 간 큰 차이를 보이는 질환이 바로 골다공증이다. 지난해 국내 골다공증 환자 총 107만9548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94%에 달한다. 골다공증은 작은 충격에도 골절 부상을 입기 쉽고 약해진 척추가 뒤쪽으로 굽는 척추후만증을 유발해 키가 작아지는 등 삶의 만족도를 크게 떨어트린다. 골다공증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치료 효과가 좋기 때문에 중년 이후 여성이라면 질환이 진행되기 전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한방에서는 골다공증 완화를 위해 한약처방, 침 치료 등 건강 상태 전반을 개선하는 치료를 실시한다. 허약해진 오장육부의 기능 강화와 함께 뼈의 생성에 관여하는 조골세포 향상을 돕는 한약을 복용하고 침 치료를 통해 기혈 순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돕는다.
또한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이다. 뼈에 적절한 부담을 주는 운동은 뼈의 강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골다공증이 심하지 않다면 스쿼트와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추천하며 골다공증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걷기, 조깅 등이 권장된다. 또한 식사는 비타민D와 칼슘 함량이 높은 식단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고 음주와 금연은 골밀도를 낮추는 주범이므로 삼간다.
◇ 함께 있는 시간 늘어난 ‘오팔세대’ 건강한 부부관계 유지하고 관심으로 배려해야
은퇴 이후 오팔세대 부부들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변화된 생활이 익숙치 않은데다 집에 오래 머물며 생기는 사소한 문제가 증폭돼 쉽게 갈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혼 20년차 이상 부부의 이혼 건수 증가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화목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상호 간의 배려와 관심이 우선시 된다. 건강 관리 측면에서도 배우자의 심리·신체적 변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증상 완화 및 치료에 큰 장점이 된다. 이는 배우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일석이조다.
이외에도 부부관계를 돈독히 하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방법으로 성생활을 꼽을 수 있다. 성관계는 신체의 호르몬 분비를 자극하고 심혈관 운동을 촉진시켜 신진대사를 원활히 돕는다. 여성의 경우 파골세포를 억제하는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가 증가해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피부 탄력을 높일 수 있으며,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촉진돼 뼈와 근육 발달에 긍정적이다.
함께 스트레칭을 하는 습관도 권장된다. 특히 아침에 하는 스트레칭은 밤 사이 굳어진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고 운동효과도 있어 군살을 빼는데 효과적이다. 간단히 실천할 수 있는 스트레칭으로는 ‘고양이 스트레칭’이 있다. 우선 두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 자세를 취한다. 숨을 마시면서 머리를 들고 허리는 바닥으로 내린다. 숨을 내쉴 때는 등을 들어 둥글게 말아준다. 이 동작을 천천히 10회 반복한다. 스트레칭은 정확한 자세 유지가 중요한 만큼 서로 자세를 확인해준다면 더욱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생한방병원 한창 원장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배우자야 말로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건강 문제들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며 “기념일을 맞아 그 날만 챙겨 주는 것보다는 평소 서로 건강을 챙기는 습관과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13년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를 통해 수많은 딸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던 한성희(韓星姬) 이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딸의 결혼을 앞둔 한 엄마이자, 정신과 전문의로서 건넨 진정 어린 조언이 큰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잠시 절판됐던 도서가 최근 다시 출간됐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의 흐름 때문일까? 표지에 그려진 딸의 모습은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당시 50대였던 한 원장 또한 어느덧 60대에 이르렀다. 딸 못지않은 인생의 전환점을 지났을 터. 그녀는 “잘 성장하고 있다”며 담담히 안부를 들려줬다.
하나뿐인 딸아이의 결혼, 그것은 한 원장이 책을 펴낸 계기이자 크나큰 성장통을 앓게 한 사건이었다. 자녀의 독립이 시원섭섭한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녀의 상황은 좀 달랐다.
“딸이 미국 유학을 갔는데, 당연히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여겼죠. 그런데 어느 날 결혼 얘기를 꺼내더니 아예 미국에서 살 거라더군요. 제 나이와 여건을 감안할 때, 앞으로 20년 동안 1년에 한 번씩 본다 해도, 평생 딸을 볼 기회가 20번 남짓인 거예요. 너무나 기가 찬 노릇이었죠. 영원한 이별은 아니더라도, 그 못지않은 심정이었어요. 공항에서 서로 엉엉 울며 헤어졌지만, 즐거운 신혼을 앞둔 젊은 딸과 점점 늙어만 가는 엄마가 느끼는 아픔은 천지차이죠. 그 옛날 우리 친정엄마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보냈을 텐데, 이 정도로 상실과 아픔이 크리라고는 그땐 상상도 못했어요.”
아직 어린 딸을 이것저것 챙겨주고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다. 아쉬운 마음도 달랠 겸 그동안 딸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아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가 완성됐고, 덕분에 그녀는 엄마로서의 삶 1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도 어렵지만, 부모가 자녀로부터 독립하는 건 더욱 쉽지 않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부모가 말로는 ‘독립하라’고 하면서도 막상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죠.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는데 내가 외롭고 힘들다고 계속 붙잡아두는 거예요. 겉으로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럴싸한 이유를 대겠지만, 사실상 소유욕에서 비롯된 착취나 다름없죠. 물론 저도 아주 쿨하게 딸을 보내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만큼 자녀에게서 독립하는 건 누구에게나 참 힘든 일이죠.”
입체적 삶을 위한 경험 투자
그토록 힘든 일임에도 해내야 하는 까닭은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있었다. 딸의 성장은 물론 엄마의 성장까지 말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것, 그리고 엄마에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것. 한 원장은 이러한 성장을 통해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고 보다 성숙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과정 같지만, 역할 변화에 따른 전환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시기가 고통스러워서 어떤 이들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죠. 자신에게 주어졌던 역할의 고리들을 과감히 끊어내는 용기가 필요해요. 물론 그것이 더러 외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라면 다 겪어야 할 일들이죠. 흔들리다가도 중심을 찾는 오뚝이처럼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성장하는 과정이고, 그렇게 성숙해야 왜곡과 갈등 없이 자녀와 잘 분리될 수 있습니다.”
삶의 키워드를 ‘성장’이라고 언급한 한 원장은 몇 해 전 과감히 유학을 결정했다. 딸도 결혼하고 안정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던 차였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선택을 의아해했다. 늦은 나이에 웬 공부냐는 반응이었다. 단순히 커리어만을 위했다면 단행하지 못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성장을 바랐기에 가능했다.
“커리어는 성장을 통해 얻는 일종의 부산물이죠. 애당초 그걸 목적에 둔 건 아니었어요. 물론 현실적인 면에서 내가 잃는 것과 얻는 것을 두고 저울질을 많이 했었죠. 금전적인 리스크도 있었지만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거예요. 그러나 돈이란 것은 결국 나의 잠재성을 실현하고 내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쓰이는 거잖아요. 나중에 죽음에 이르렀을 때 돈이나 나이 등등 때문에 성장의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갑자기 남자가 된다거나, 공학자가 된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바람도 아닌데 말이죠. 그저 내가 해오던 것을 더 심화하려는 욕구였기에 조금만 발돋움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렇게 ‘돈을 경험에 투자하자’고 마음먹었죠.”
기품 있는 중년의 아름다움
그러나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자녀 세대의 경우 개인의 성장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한 원장은 자신을 찾아오는 워킹맘들의 우울한 심정을 절절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워킹맘으로 고단한 현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단, 허덕이며 사는 삶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땐 당연히 먹고살려고 일하지 자기실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생계를 위한 일이 꿈을 이루는 일이면 참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죠. 그러나 그런 중에도 자기 꿈을 위한 여지는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실현되지 않을 것 같아도 조각을 쌓다 보면 언젠가 실체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애 키우고 일하느라 아직은 버겁더라도 가슴 한편에 꿈을 품고 살아야 언젠가 이모작, 삼모작의 기회도 잡을 수 있습니다. 짬짬이 단 15분이라도 취미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한 원장 역시 수십 년 동안 천천히 조금씩 즐겨온 취미가 있다. 바로 ‘첼로’다. 딸이 세 살 무렵 첼로를 샀는데, 이제 중급 정도의 실력은 된단다. 자신의 여든 살 생일에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하리라는 야무진 꿈도 생겼다. “인생 별것 없다. 재미있게 살아라”라며 힘든 시절 그녀를 위로했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처럼,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 다짐도 해본다. 그런 한 원장 역시 딸아이가 늘 즐겁게 또 아름답게 중년을 맞이하길 바란다.
“언젠가 제인 구달이 한국에 왔을 때 백발을 늘어뜨린 수수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여든이 넘은 나이에 민낯이었는데도, 메이크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더군요. 코코 샤넬은 ‘스무 살 때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당신의 공적이다’라고 했는데, 자기 삶을 잘 다져온 이가 뿜어내는 고유의 아우라가 있는 거죠. 그렇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만의 향기를 품는, 아름다운 중년의 딸을 보고 싶습니다.”
시니어 세대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몸이 아픈 것이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면 기관지 질환에 쉽게 걸리고, 작은 충격에도 골절상을 입을 수 있다. 쇠퇴한 신체기능에 따른 노인성 질환도 건강을 위협한다. 그래서 노후 의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이 필요하다.
생활수준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고령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이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나타나는 사회문제 중 하나는 의료비 증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 65세 이상 노년층의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457만 원으로 전체 연령층의 153만 원보다 3배가량 많다. 젊었을 때는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 신체 노화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진료비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제 생애주기 중 의료비 지출이 가장 큰 시기인 노년기를 대비해야 한다.
◇낙상으로 인한 진료비 ‘144만 원’
나이가 들면 노화 과정에서 뼈의 질량이 감소해 골다공증이 심해지고, 신경계의 퇴화로 평형능력과 감각기능이 약화돼 반사작용이 느려진다. 또 근골격계의 힘과 기능이 저하돼 보행 능력이 감소하고 시력이 나빠져 낙상하기 쉽다. 은퇴 후 적어도 30년 이상 행복한 인생을 보내야 하는 시니어 세대에게 낙상은 피해야 할 천적이다.
2018년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낙상사고의 61.5%는 야외가 아닌 가정에서 발생했다. 화장실 타일이나 거실 마루, 장판 등 미끄러운 바닥이 가장 큰 위험 장소이다. 특히 21%가 낙상을 경험하는 65세 이상 노년층에게는 치명적이다. 이로 인한 입원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8배나 높다.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낙상사고로 인한 입원비와 치료비, 약값 등 의료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7년 65세 이상 노년층의 낙상 등으로 인한 진료비는 1인당 평균 144만 원이다. 같은 해 국민연금공단이 조사한 1인당 월 적정생활비가 146만 원인 걸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여기에 노인성 질환까지 발생하면 생활비는 더 늘어난다.
◇노인성 질환 진료비도 ‘수십만 원’
노인성 질환은 노화와 질병이 복합돼 발현하는 것으로 고혈압, 백내장, 치은염, 치주질환, 관절염, 당뇨병, 척추질환 등이 있다. 2016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년층은 고혈압, 백내장, 치은염 및 치주질환 등을 가장 많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태성고혈압의 경우 252만8000명, 노년백내장은 20만4671명, 치은염 및 치주질환은 222만8000명의 노년층이 진료를 받았다.
이 가운데 대표 노인성 질환인 ‘고혈압’은 심장, 뇌혈관질환, 당뇨병 등을 동반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또 다른 노인성 질환인 ‘백내장’은 노년층 입원 질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 ‘치은염 및 치주질환’은 60대 10명 중 3.5명이 앓았을 정도로 흔한 만성질환이다.
이들 노인성 질환 역시 적지 않은 의료비 부담이 따른다. 2016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본태성고혈압 진료비는 55만 원, 노년백내장은 128만 원이었다. 치은염 및 치주질환은 9만 원의 진료비가 들어갔다. 이외에 무릎관절증(61만 원), 2형 당뇨병(75만 원), 기타 척추병증(48만 원)에 대한 진료비 부담도 컸다.
◇벅찬 의료비 부담… 보험으로 해소
젊고 건강할 때와 나이가 든 이후에 발생하는 의료비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은퇴 후 수입이 줄었거나 없는 노년층은 노후 의료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치료를 안 할 수도 없다. 보험이 필요한 이유다. 보험을 미리 든든하게 준비해놓지 않으면 의료비 부담 때문에 경제적 리스크를 겪을 수 있다. 보험은 의료비는 물론 생활비로도 활용할 수 있어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
무병장수하면 좋겠지만 ‘유병장수’가 걱정되는 세상이다. 행여나 몸이 아프면 누군가 간병을 해줘야 한다. 이때 가족들이 케어해줄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간병보험은 이럴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치료비만큼 부담을 주는 간병비를 미리 준비해두는 건 본인과 가족을 위한 선택이다.
최근 출시되는 보험은 가입 범위가 예전보다 크게 확장됐다. 많게는 90세까지 가입할 수 있다. 치료 이력이 있는 유병자를 위한 상품도 많이 출시됐다. 나이가 많거나 지병이 있다는 이유로 가입이 거절되는 보험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롯데손해보험 관계자는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노인성 질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부모님을 위해 가입하는 자녀들이 늘고 있는데 이 경우 보험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상품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
너도 알다시피 힘들거나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면 앞집 할머니께서 쓰시는 말이다. 그런 그 분이 요즘은 그 말씀을 달고 사시는 걸 보니 확실히 힘든 시기인 것 같다. 그리고 평생 받았던 전화보다 더 많은 네 전화를 이틀이 멀다하고 받으면서, “코로나19 위험 연령층에 속하니 꼼짝 마라”는 잔소리를 듣는 걸 보니 난리가 맞는가 보다.
네가 좋아하는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코로나 사태 이후의 세계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쇄국과 개방 사이의 선택들이 미래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전망보다 아래와 같은 경험에 의한 아빠의 느낌이 더 맞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반공도덕’ 과목을 배우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련을 받으며 학도호국단 활동을 했던 대학까지의 교육을 받으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잘못 되시면 그 즉시 남침을 받아 적화통일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 후… 나라가 안 망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함께 시작한 통행금지는 가장들에게 합법적 외박의 핑계를 제공했다. 오늘날의 연인들은 마지막 배를 놓치기 위하여 주말에 시간을 내어 섬 지역까지 가야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통금을 잘 활용해 매일 막차를 놓칠 수 있었다. 마음을 온전히 허락해야만 겨우 손을 잡았던 그 당시, 통금은 그렇게 속도위반에 따른 결혼률 상승의 기회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통금의 해제는 사회적 방종과 범죄의 양산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후... 그냥 그대로 건전했다.
교복과 까까머리 두발은 학생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면 교문에서 규율부가 복장검사를 하였다. 그리고 방과 후 문제 행위가 발생했을 때, 교표가 달린 모자와 명찰로 오늘날의 CCTV 못지않게 비위 학생들을 잘도 찾아내었다. 따라서 교복/두발 자율화가 되면 모두 불량학생이 되어 다 망가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후… 애들의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컬러텔레비전 방송 개시는 과소비를 유발한다며 시기상조라 했는데 오히려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였고,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도덕과 윤리는 땅에 떨어져 금수와 같은 세상이 될 것이라 했는데 그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가보지 않은 길, 즉 새로운 경험은 늘 두렵다. 코로나19 이후는, 한 국가의 차원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또 다양한 부문에 걸쳐 상당한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부정적인 변화가 상당할 수도 있다. 네 말대로 인간끼리 어울리는 면대면 기회의 상실로 재미없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아라. 너도 내가 가르쳐 준 야구와 탁구를 친구들과 안 하고 스타크래프트 게임 사달라고 졸라, 네 방문 잠그고 매우 즐겁게 중학교 생활을 보내지 않았느냐? 나도 육십을 넘기면 인생이 재미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김새와 성격이 다양한 손자들이 생기고 평생 같이 살아온 친구들의 행동과 생각이 변하는 경험을 하면서, 나름 심심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인생의 각 단계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은 거의 일정한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 힘든 기억조차도 추억으로 변해 간다. 그러니 언제까지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를 그리워하면서 살겠느냐? 유발 하라니 교수가 나보다 젊어서 예리하고 또 박식하지만, 인생의 실제 현장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아버지의 경륜을 믿고 다가 올 세계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리 세대가 겪어온 앞서의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며 잘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아, 너무 밖으로 내두르진 말고!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기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한다.” 중장년을 위한 자기계발서 ‘비바 그레이’의 저자 홍동수(64) 씨가 말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공통점이다.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스쿠버다이빙, 승마, 요트 등 거의 모든 레포츠를 섭렵한 그에게 ‘젊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 “나이를 느껴본 적이 없다. 고로 나는 매 순간이 젊다.”
도움말 홍동수 ‘비바 그레이’ 저자
홍동수 씨와 같은 중장년을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라 부른다. 본래 이 말은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인 버니스 뉴가튼이 처음 사용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패턴이 가족 중심에서 여가, 자기계발 등 자기 중심으로 변화한 것에 착안한 용어다. 한국에서도 여가와 취미, 소비를 즐기며 사회생활에도 적극적인 50~60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줄곧 쓰인다. 액티브 시니어의 경우 과거 노인층과는 확실히 구분되며, 육체뿐 아니라 경제적, 정신적 측면에서도 혈기왕성한 성향을 띤다.
‘액티브’(활동적인)라는 의미처럼, 이들은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청년 시절보다 더 활발한 여가와 취미를 즐기고 있다. 홍동수 씨는 “레포츠 동호회에서도 직장생활로 바쁜 젊은 세대보다 시간 여유가 있는 시니어들이 반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활동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무엇일까? 첫째, 삶의 행복과 심리적 안정을 준다. 둘째,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친밀감과 유대감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사회적 혜택을 얻는다. 셋째, 신체적 여가활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뭐래도 즐거워한다.
액티브 어덜트, 더할 나위 없이 놀자!
국내 최초 설악산 대청봉 패러글라이딩 및 샌드 요트 제작, 에베레스트 원정, 초경량 항공기 면허, 스쿠버다이빙 자격 취득, 그룹사운드 INDKY의 베이시스트 등등. 액티브 시니어 홍동수 씨의 활동 이력이다. 젊은이조차 엄두를 못 내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 더 쉽게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 덕분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나 신체가 아닌 마음가짐. 물론 취향의 차이는 있다. 시니어 레포츠 전문가인 그에게 사람들은 ‘어떤 액티비티를 즐겨야 좋을지’ 자주 묻는다. 이에 그는 ‘에니어그램’(Enneagram, 성격유형검사)을 기반으로 추천 종목을 정리해뒀다. 온라인이나 앱을 통해 ‘에니어그램’을 검색하면 손쉽게 자신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다음 궁금증, 바로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는 것. 장비의 경우 대부분 대여가 가능하고, 동호회 등을 통해 중고로도 구매할 수 있다. 활동보다는 고가의 장비 수집이 취미인 이들도 있어, 그야말로 자기 나름이다. 홍동수 씨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마련한 공식(?)을 내놓았다. ‘장비 구입비는 한 달 생활비 정도, 활동비(이용료, 입장료 등 하루 경비)는 하루 생활비 정도’로 계산하라는 것. 그의 경우 장비 구입비는 300만 원 선, 활동비는 하루 10만 원 선으로 보고 있다. 금액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지는 않는가? 홍동수 씨는 말한다. “레포츠는 돈보다는 열정과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최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각종 레포츠 모임이 주춤한 상태다. 그는 이때를 틈타 준비해둘 것이 있다고 조언한다.
“나이를 떠나 레포츠를 즐기려면 어느 정도 근력이 필요합니다. 집에서라도 조금씩 운동하며 기초 체력을 키우길 바랍니다. 건강하고 능력 있는 우리 시니어가 ‘잘 노는 사람’까지 된다면, 드디어 완벽한 인생을 누리는 첫 세대가 아닐까요?”
홍동수 씨가 권하는 상황별 레포츠
◇ 은퇴 후 부부가 함께하려면 ‘산악자전거’
산악자전거가 일반 자전거보다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의외로 안전하다. 우리나라는 산마다 임도(산간 도로)가 잘 조성돼 있다. 이 길은 등산로와 다르다. 사륜구동차도 다닐 수 있다. 아내도 산악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건강해졌다. 산악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부부가 함께 전국일주도 가능하다.
◇ 럭셔리한 취미생활을 원한다면 ‘승마’
승마는 귀족 스포츠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말을 구입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부유한 이들도 말을 소유한 경우가 극히 드물다. 다양한 승마 체험의 재미가 있는데, 말을 사면 자기 말밖에 탈 수 없고 유지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정적이고 우아한 활동으로 여기기 쉬운데 의외로 격렬하고 체력소모도 심하니, 이 점 고려하자.
◇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땐 ‘패러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중장년이 꽤 많다. 하늘에 떠서 고요히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기 좋기 때문이다. 조절하기 나름이지만, 길게는 4~5시간도 공중에 떠 있다.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적인 레포츠다. 잠깐 교육만 받으면 스스로 바람을 살피면서 안전하게 제어가 가능해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있다.
인생은 살 만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터널을 지나면 결국 밝은 빛을 만나기도 한다. 때론 눈, 비 내리는 처절한 시련을 겪기도 하고 말이다. 명암의 시대를 지나 다시 한 번 뜻깊은 삶에 도전하는 박연재(朴連在·69)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9년에 탈옥수 신창원 검거사건을 특종보도한 후 KBS 서울 본사로 가서 홍보실 차장으로 2년간 근무했어요. 그때 일간지와 잡지사 기자도 많이 만났습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광주까지 온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박연재 변호사는 방송사 시절 이야기로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기자 출신인 그는 기자를 상대로 하는 홍보팀뿐만 아니라 KBS 광주방송총국 심의위원으로 정년을 마칠 때까지 방송사에 젊음을 바쳐 일해왔다.
정년과 함께 사법연수생 되다
방송사에서 정년퇴임이 임박했을 무렵, 박 변호사는 법무부로부터 사법시험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2007년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과거 국가 권력에 맞서 시위에 나섰다가 억울하게 사법시험 면접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사업연수원 입소 기회를 부여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박 변호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70년 전남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던 박 변호사는 유신시대, ‘독재타도’를 외치다 무기정학생이 됐다. 그래도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기에 사법시험을 봤다. 그러나 1981년과 82년 1, 2차까지 합격했지만 최종 면접의 관문은 넘어설 수 없었다.
“1981년에 사법시험 면접에서 떨어진 뒤 방송기자 시험을 보고 KBS에 들어갔어요. 미련이 남아서 다시 사법시험을 봤는데 또 붙었어요. 그런데 그때 누가 저에게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기자로서 종횡무진 일했다. 은퇴 인생을 앞두고 평생 소망이었던 꿈을 육십이 다 되어 이뤄낸 박연재 변호사. 사법시험에 합격한 지 근 30년 만인 2010년, 까마득히 어린 미래 법조인들과 사업연수원에서 함께 생활했다.
“내 앞뒤 좌우가 1987년생으로 나랑 26~7년 차이가 났어요. 아들보다 더 어렸어요.(웃음).”
연수원의 어린 동기생을 대하는 것도 어려운데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보니 고등학교 2년 후배인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연수원장이었다. 김 연수원장은 박연재 변호사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밥을 사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사업연수원에 들어간 지는 올해로 10년, 변호사 사무실을 연 지 8년이 됐다.
열혈 변호사 박연재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가족이 있는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대학과 방송사 생활까지 그곳에서 했기에 생활 터전이나 다름없었다. 사무실을 열고 2년 정도는 사무장을 고용했는데 점점 기자로서의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써야 하는 버릇이 남아 있어서 혼자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보지 않으면 불안했어요. 어떤 로펌을 보면 변호사가 아니고 사무장이 소장을 쓰던데 나는 그게 참 신기해요.”
변호사를 만나러 왔으면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가지 왜 사람들이 사무장과 상담하고 가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광주지방법원 앞에 마련된 박연재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마을 변호사’라고 쓰인 벽보가 붙어 있다. 마을 변호사로서 어떤 사건을 가지고 법원에 출입하는지 궁금했다.
“의뢰인 중에 영수증도 없이 돈 빌려줘 놓고 그거 받아 달라고 하는 분도 있어요. 민사에서 영수증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받아줘요. 참 답답하지만 해결하기 어렵죠. 그래도 변호사 초기 국선 변호사로서 음주운전으로 걸렸던 피고인의 음주 측정 수치를 분석해 무죄를 선고받게 한 적도 있습니다.”
황당한 일도 겪었다. 승소하고도 돈을 떼였다는 것.
“수임료를 지불하지 않고 변호사협회에다 강요에 의해 계약서를 썼다면서 투서한 사람이 있었어요. ‘설명은 변호사가 한 것 같은데 고지를 안 들었다’, ‘바빠서 도장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등등 내용도 다양해요. 강제집행하려고 주소지를 쳐봤더니 논두렁인 적도 있고요.”
최근에는 중국 단동 출신 동포가 박 변호사를 찾았다. 그는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에서 사기죄로 구속됐다.
“제가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썼는데 다행히 피고인 측에서 제 상고이유서를 읽고 대단히 감동했다더라고요. 판결이 파기되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더라고요.”
다양한 사건을 맡아 변론해왔지만 그가 중점적으로 다뤄온 사건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사건이다.
“6·25전쟁 때 양민학살이 많았어요. 무고한 학살이었다는 것이 국가배상 청구를 통해 입증되고 승소하면 국가가 배상해줬습니다. 2010년까지 한시법으로 끝났습니다. 대상자들 가운데 영암에서 시신을 찾지 못하고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진실규명 불능이라고 했는데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국가 배상도 중요하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먼저이지요.”
지금도 가끔 이와 관련한 문의가 오지만 한시적으로 끝난 일이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세상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다
그는 기자와 변호사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비슷하지만 변호사가 더한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부부나 부자간의 갈등, 재산상속 문제는 가족 간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줍니다. 기자로 30년을 살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있더군요.”
법정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사건과 마주하는 순간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사건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는 의뢰인에게 파고드는 질문을 했다가 싫은 소리도 들었다.
“왜 심문하듯 따져 묻느냐는 사람도 있었어요. 불리한 상황도 변호사인 제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숨길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은 공격하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삶을 살다
시니어가 되어 제2인생으로 맞이한 변호사 생활. 그에게 삶의 활력소는 단연코 ‘일하는 삶’이다. 퇴직 이후에 흐트러지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면 건강도 해치고 삶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일이 없으면 생활의 윤기가 떨어지죠. 봉사건 뭐건 사회활동을 해야 해요. 물론 용돈을 벌면 좋겠지만, 수입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는 휴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판례를 보고 소장 등을 챙긴다.
“그전에는 골프도 치고 무등산, 월출산도 가고 그랬어요. 방송기자로 지낼 때는 낮술을 좀 했는데 지금은 전혀 안 해요. 외부 활동이 많은 변호사를 이해할 수 없어요. 최선을 다하려면 눈코 뜰 새도 없거든요.”
박 변호사는 이 시대를 사는 시니어로서 독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세대가 너무 비판적으로만 현실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감정을 유연하게 표출했으면 합니다.”
이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후세에게 개선할 역할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니어의 경륜과 진중함을 잘 활용해야 참 시니어 아닐까요? 이건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눈뜨고 잠드는 공간. 집이다.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시니어들에게 딱 맞는 인테리어 포인트를 찾아봤다.
사진 각 사 제공
최근 인테리어 업체들과 전문가 집단이 2020년을 대표할 인테리어 트렌드를 내놓았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된 의견이 있다. 보이지 않았던 공간의 재발견과 돌, 식물 등 자연에서 해답을 찾은 인테리어. 지금까지는 미니멀리즘, 즉 ‘비움’에 비중을 뒀다면 앞으로는 창의적이고 과감하고 실험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맥시멀리즘’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연에서 찾은 트렌드 컬러
글로벌 트렌드 조사기관인 ‘WGSN’은 올해 트렌드 컬러로 ‘네오민트’를 선정했다. WGSN의 발표는 색상 선정을 넘어 사회 기류도 함께 반영했다. 최근에는 이 컬러에 해당하는 다양한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자연에서 찾은 색상인 ‘그린’(녹색)과 연결 지어 식물이나 자연에서 유래한 소품, 친환경 인테리어에 안전성까지 담은 제품들이다.
LG하우시스는 시트 바닥재인 ‘은행목’과 ‘뉴청맥’에 최근 트렌드를 반영했다. 실내 낙상사고를 줄여주는 안티슬립 기능을 넣어 안정성도 챙겼다. 지난해 5월 출시된 ‘엑스컴포트’는 바닥재 속에 고탄성 2중 쿠션층을 적용했다. 푹신한 상부층과 탄성력이 높은 단단한 하부층이 보행 시 충격을 줄여주고 발이 푹 꺼지지 않도록 해준다.
동화자연마루의 ‘나투스진’은 찍힘과 긁힘, 수분 침투, 열에 의한 변형 때문에 발생한 소비자 불만을 해소한 바닥재다.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첨가되지 않은 신소재 나프(NAF)를 적용했다. 또한 국내산 소나무 100%를 원재료로 생산한 친환경 소재 E0 등급의 ‘동화에코보드’를 사용해 피부자극을 최소화했다. 안정적인 보행과 건강을 생각한 이들 제품은 시니어 세대에게 유용한 인테리어 제품이다.
실내나 집 안에 정원을 꾸미는 이른바 ‘홈가드닝’도 눈길을 끈다. 남는 공간을 작은 화분으로 장식하는 게 인테리어 포인트. 롯데주류는 발코니에 정원을 꾸미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의 하나로,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2019’에서 반려나무 입양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또 롯데마트도 ‘초보자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수경재배 식물’을 판매 중이다.
조경 전문업체인 조경나라 관계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소나무, 율마, 에메랄드그린 등과 함께 야생화를 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맥시멀리즘 인테리어 대세
크고 작은 인테리어 소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집 안을 가구나 조명,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미는 ‘홈퍼니싱족’도 늘었다. 인테리어 전문 브랜드 까사미아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을 위해 프리미엄 내추럴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내추럴 스타일은 자연 소재의 질감과 색감을 최대한 살려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를테면 까사미아의 ‘라메종’ 컬렉션은 자연에서 온 소재와 절제된 장식, 간결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원목 계열의 고급 하드 우드, 천연 소가죽, 포근한 컬러의 패브릭 등을 소재로 사용하고, 핸드메이드 공법으로 품격을 더했다. 또 ‘토페인’ 소파는 프리미엄 가구의 인기에 힘입어 3~4인 소파가 ‘ㄱ’자, ‘ㄷ’자 등으로 재탄생했다. 천연 아닐린 가죽을 100% 수작업으로 가공해 부드러운 감촉과 자연스러운 색감을 살린 프리미엄 소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인 벽난로는 위험성 때문에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전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벽난로가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왐 벽난로는 투박한 형태에서 벗어나 세련된 디자인으로 진화해 집 안 인테리어를 위한 멋진 도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자동연소 조절장치를 내장해 안전성을 높이고 장작 소모는 40% 줄였다.
집 안 분위기를 바꿔주는 조명도 운치를 더해주고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연출한다. 최근에는 물방울무늬의 샹들리에보다 펜던트 형이나 직선 위주의 깔끔한 스타일의 조명기구가 인기 있다. 미국의 조명 디자인 브랜드 애퍼래터스 스튜디오의 제품은 차별성 있는 디자인에 디테일하고 고급스러운 마감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오래 묵혀둔 반닫이도 올해 인테리어 시장에서 유행할 대표 앤티크 가구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과 그 시간만큼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박경숙 동연갤러리 관장은 “가치가 남다른 만큼 제대로 된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 앤티크 가구를 소화할 수 있다”면서 “적게는 100만 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제품도 있으니 차근차근 공부한 뒤 접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