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사이는 참 신기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함께 의지하고 걸어가는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해답 없는 갈등 속에서 헤매기도 한다.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 딸이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와 엄마는 잔소리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딸. 과연 세대 차이일까? 대화의 부재일까? 엄마 박현주(54)씨와 딸 김정윤(24)씨를 만나 속 얘기를 들어봤다.
진로갈등 “운동할래요” vs “공부해라”
체육학과에 재학 중인 김정윤씨는 라크로스 국가대표이자 럭비 국가대표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 생활체육 복싱 50kg 이하급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타고난 스포츠인이다. 하지만 그가 체육학과에 진학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엄마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하는 운동마다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만큼 잘하기도 했죠. 육상이면 육상. 축구면 축구. 하지만 운동하고 싶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안 돼!’ 딱 그 말뿐이었어요. 저는 운동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잘라서 말씀하시니깐 제 입장에선 많이 서운했죠.”
김정윤씨는 자기가 원하는 걸 못하게 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의 답변은 그가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운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공부도 어느 정도 하는 애가 어느 날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니까… 아쉬운 마음에 하지 말라고 했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운동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스포츠인으로 살아갈 딸의 불투명한 미래와 현실이 걱정이 됐다. 엘리트 선수가 된다 해도 그 과정까지의 육체적인 고통을 딸이 겪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끝까지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엄마는 딸을 학원에 보내며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여러 학원을 다니면 지칠 법도 한데 그 일정 속에서도 운동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수학학원 다니니까 검도 보내줘’ 하는 식으로 제게 딜을 해왔어요. 그때마다 허락하면서 ‘아 정윤이는 정말 운동을 해야 되나보다’ 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딸이 체고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땐 무시했어요. 못 들은 척하고…. 그러다 보니 사이가 엄청 안 좋아지더라고요.”
로스쿨 학생인 첫째와 외고를 다니는 셋째, 그 사이에서 운동을 좋아하는 둘째 김정윤씨. 부모 입장에선 그런 딸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둘째의 부담도 컸으리라.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존재인 부모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 딸과 끝까지 운동은 시키고 싶지 않았던 엄마.
“저의 심한 반대에 체육을 하고 싶다는 말을 못해서 정윤이가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성적이 떨어지면 ‘나를 포기하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 성적까지 떨어지니 상황은 더 나빠졌죠. 눈만 마주쳤다 하면 싸움판이었어요. 전쟁터가 따로 없었죠.”
딸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운동을 더 좋아했다. 그의 체대 진학에 대한 목표는 뚜렷했고 엄마조차 그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왜 부모님은 운동을 한다면 무조건 땀 흘리고 고생하고 힘든 이미지로만 보는 걸까요? 체육학과를 간다고 해서 모두가 운동선수가 되는 건 아니에요. 체육도 하나의 교육과목이자 지식인데. 그 지식으로 뻗어갈 수 있는 건 한계가 없죠. 노인체육, 스포츠마케팅, 스포츠의학, 선수에이전트, 스포츠기자 등 졸업 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무궁무진한데요. 엄마의 경험으로만 바라보는 시선과 잣대는 불편해요.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은걸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직업으로도 삼을 수 있다면 정말 매력적인 삶이 될 거예요.”
결국 체대에 들어간 김정윤씨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라크로스는 시작한 지 1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고, 럭비는 친구 따라 갔다 감독님 눈에 띄어 국가대표가 됐다. 그때마다 김정윤씨는 자기도 모르게 서프라이즈 이벤트꾼이 됐다.
“귀가하더니 언제부터 언제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면 글쎄 럭비 국가대표가 됐다고 합숙을 가야 한다고 그제야 말하는 거 있죠? 그리고 또 다른 날은 트로피를 턱턱 가지고 와요. 이건 또 뭔가… 해서 보면 ‘라크로스 최우수 선수상’ 이렇게 씌어 있어요. 딸이 도대체 어디를 갔다 오는 건지, 뭘 하고 다니는 건지.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무서워요(웃음).”
하루아침에 딸은 국가대표가 됐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엄마는 내심 섭섭하다. 비록 딸 앞에서는 투덜대지만 친구들 앞에선 딸 자랑을 늘어놓기 바쁘다. 모든 엄마처럼 말이다.
“제가 운동하는 걸 싫어하시니까 이제는 ‘뭐 한다, 어디 간다’ 말 안 하고 다녀와요. 좋은 소리 못 들으니까요. 결과가 좋을 때만 말하는 편이에요. 안 그래도 운동 싫어하시는데 결과까지 나쁘면 더 싫어하실 것 아니에요(웃음). ”
요즘 엄마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라크로스에 이어 럭비와 복싱을 시작한 딸이 혹여나 다치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럭비가 제일 걱정이죠.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렸어요.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요. 자기는 포지션이 윙인지 윈인지… 다칠 위험이 적다고는 하는데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죠.”
“윙이라고! 윙! 말해줘도 모르니 내가 말을 안 하지.”
“복싱을 한다고 했을 땐 정윤이 아빠도 반대를 많이 했어요. ‘음침한 곳에서 혼자 샌드백 뚜들기고 있고… 난 너무 싫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가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봐요’ 하고 우선 설득했죠. 복싱장에 가보니 저희가 생각한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물론 스파링은 안 했으면 하지만…. 딸은 꼭 제가 우려하는 건 다 하더라고요. 이왕 좋아해서 하는 운동 다치지나 않으면 좋겠어요.”
취업갈등 “사업할래요” vs “취업해야지”
김정윤씨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체육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 체육관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운동이 좋아서 왔는데 재미는 없고, 힘들고. 그래서 다시 떠나는 사람들도 많죠. 운동을 배우고 싶어서 온 사람, 그 열정을 끌어올려서 더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체육관을 여는 게 제 꿈이에요.”
이제는 사업이라니! 오늘도 엄마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어른들은 뻥쟁이다. ‘내가 2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으로 시작해 ‘경험할 수 있는 거 다 해봐. 그때 아니면 못해!’라고 말하며 청춘에게 도전과 희망의 메세지를 던진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자식이 그러겠다고 하면 반대한다. 참 묘하다.
연예갈등 “하고 싶을 때 하는 것” vs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
연애갈등은 연인끼리만 겪는 일이 아니다. 엄마는 도통 딸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소개팅 자리도 마련해봤지만 딸 김정윤씨는 관심이 없다.
“연애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어요. 엄마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의 우선순위는 연애가 아니라 운동인걸요.”
모녀관계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데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내일도, 또 다른 갈등은 끊임없이 생겨나겠지만 이 또한 모녀 사이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해본다.
100세 시대의 행복경영 비결은 무엇일까.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 인생을 살아낼 새로운 설계와 순서는 어떻게 세워야 할까. 유필화(63)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마케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경영학계의 구루다. 뿐만 아니라 를 비롯해 , 그리고 최근작 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고전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100세 시대, 고전에서 배우는 인생 경영 지혜’를 듣고 싶은 생각에 인터뷰를 청했다.
대방동에 위치한 유 교수 서재의 섬돌엔 검정고무신 두 켤레가 정겹게 놓여 있었다. 유 교수는 부인(이기향 한성대 의류학과 교수)이 아침에 인터뷰 복장 코디는 물론 간식을 손수 준비해놓고 갔다며 미소를 지었다. 신혼 때부터 지금껏 수십 년간 변함없이 싸준 부인의 도시락 내조력을 들려주는 그의 얼굴에 일순 사랑과 감사가 환하게 번졌다.
인생은 60부터란 말도 있는데요. 교수님께선 예순을 기점으로 달라진 것이 있는지요.
“나눔과 베풂의 봉사활동이 내 삶의 비중에서 늘어났습니다. 60이 넘고부터는 경력과 일에 관련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일에 에너지, 시간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은 두 여인의 영향 덕분입니다. 어머님도 생전에 ‘늘 베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내도 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덕분에 전혀 만나볼 수 없는 사람을 알게 되고, 접하지 않았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기업과 경영 문제에만 쏟던 관심을 기업 바깥의 세계로 돌리게 돼 좀 더 크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을 알게 돼 세상을 보는 균형감각이 키워지는 부수효과도 있더군요.”
사회봉사가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개인의 단순한 느낌이나 추정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근거가 있다. 코넬대학의 행복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남을 돕는 사람은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 간에는 정신이 노쇠해가는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봉사활동은 더욱 건강한 정신자세를 지니게 하고, 이는 다시 건강과 삶의 만족을 증진시키는 ‘행복의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게 연구의 골자다. 봉사는 이타적 행위일 뿐 아니라 이기적 행동이기도 하다.
인생 2막에선 성공보다는 행복이란 단어가 한결 실감 있게 다가온다고 다들 말씀하시더군요. 교수님께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행복이란 마음이 편한 것, 마음의 평정과 평온을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부러워하는 기업인을 만나보면 ‘성공하면 뭐해’ 하며 자조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쩌면 남이 부러워하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울 일이 많다는 것과 동의어라고나 할까요. ‘살아 있는 게 축복이고 숨 쉴 수 있는 게 기적’이라는 마음을 갖고, 일상을 감사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건의 충족이 아니라 그 수행 과정에 행복이 존재하지요.”
매일 참선과 명상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서재에 명상실까지 두고 있으시지요.
“마음의 평화를 위한 제 수행 방법은 참선과 300배입니다. 1997년부터 해왔으니, 20년 가까이 해온 셈이네요. 가끔 40~50분씩 참선하고 300번 절하고 나면 마음과 몸이 깨끗해집니다. 현재에 몰입하고 집중함으로써 잡념을 없애버리는 것이지요. 명상을 하면 집중력, 몰입력이 높아져요. 건강한 긴장력이 생산된다고나 할까요. 삶을 객관적으로 제3자화, 관찰하는 것을 습관으로 하면 자기에 대한 지독한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지도 않고요. 참선을 하다 보면 나를 특별한 존재로 보기보다는 수많은 중생 중 하나로 담담히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불행과 불만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으려고 하는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 교수에게 이순(耳順)(공자가 60을 가리켜 한 말)의 나이에 문자 그대로 이순(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칭찬, 아부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있는데 비난, 싫은 말에는 그리 편하지 않고 신경이 쓰인다. 아직 이순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교수님은 위기의 시대를 이기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꼽으신 바 있지요. 인생 경영에서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만심입니다. ‘왕년에’와 ‘내가 누군데’가 자만심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장군은 은퇴 후 모임에도 군복 입고 훈장 달고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를 알아달라는 의미이지요. 그래봤자 남들은 ‘그래서(so what)?’예요. 버려야 채울 수 있고, 낮춰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요. 우리 세대는 산업혁명, 민주화를 달성한 세대 아닙니까. 열심히 살아온 것이지, 결코 헛산 것이 아니지요. 사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젊은이에는 부족한 경륜이나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고 늠름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만심과 자부심,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유 교수는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시원치 않다고 깔아뭉개는 마음이 자만심이라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상대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은 자부심”이라고 구분했다. 자만심은 남을 무시하지만 자부심은 남을 포용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서양통이신데 동양고전에 심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동양이 서양보다 한결 깊고 차원이 높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병법서를 예로 들어볼까요. 과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을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에서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고, 어떻게 이기느냐 거기에만 관심을 둡니다. 반면 동양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무력으로 싸우지 않고 지략으로 이길 방법을 모색하지요. 서양에선 지략이나 책략보다 전략, 전술에 관심을 두고요. 서양의 병서가 단지 전략서인 데 반해 동양의 병서를 정치사상서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대를 이끈 리더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공부력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평생 학습의 끈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독서이든, 대화를 통해서든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살아 있는 한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배우려고 하는 학습력이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이는 동서양의 리더가 다르지 않습니다.”
리더들의 경쟁력이 공부력이란 사실은 인생 경영 지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린다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저서 에서 공부력을 변형자산이라 명명해 강조한다. 변형자산이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래튼 교수는 “돈 등 유형자산 못지않게 필요한 무형자산이 공부력”이라며 “학교 졸업, 취업, 은퇴라는 3단계 벽이 무너진 오늘날, 100년 인생의 풍요로움은 평생공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요컨대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미분의 인생관에서 적분의 인생관으로 발상전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생 전반기의 실력과 경력에 얹혀 후반전을 영위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전반전에 종언을 고하고 유연성과 개방성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라, 그렇게 공부력을 쌓는 것이 100세 시대의 생존비결이라는 진단과 처방이었다.
역사는 리더십의 스승이란 말을 강조하십니다. 역사적 인물 중 평생학습의 롤 모델로 누구를 꼽으시는지요.
“중국의 황제 당태종을 꼽고 싶습니다. 평생학습은 자기경영이 바탕인데요. 당태종은 죽는 날까지도 겸허한 태도를 잃지 않았지요. 그의 자기경영원칙은 경청, 자기경계, 자기절제, 긴장감 지속, 겸허한 태도 및 신중한 언어 구사 등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다만 집권 말년에 고구려 원정 등 쓸데없는 전쟁을 만류하는 신하들의 충언을 듣지 않은 것이 결정적 실수였지요. 아무리 뛰어난 군주라도 최초의 긴장감을 20년 이상 지속시키기는 어려웠다고나 할까요.”
당태종의 자기경영 비결 중 겸허한 태도 및 신중한 언어구사가 눈에 띄는군요. 이는 오늘날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서고자 하는 마음, 참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본인은 경륜이지만, 상대에겐 편견이고, 본인은 조언이지만 상대에겐 잔소리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세 가지 기준을 돌아봅니다. 먼저 내 의도입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인가, 내 능력 자랑을 위해서인가 성찰해봅니다. 즉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능력을 드러내 잘난 척하려고 하는 것인가를 검토해봅니다. 다른 사람이 다 보는 상황이어서 불편하거나 부끄럽게 느끼지는 않을지를 살핍니다. 끝으로 내가 말하는 방식이 그 사람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인지를 고려해봅니다.”
그는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할 뿐인데 연장자라고 말을 다짜고짜 낮추며 하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며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겸양의 태도를 평생친구인 헤르만 지몬 교수를 통해 체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헤르만 지몬 교수는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독일의 경영학자다. “일국의 대통령에서부터 차 나르는 직원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존중하고, 즐겁게 대화를 하는 지몬 교수에게서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리더의 소양까지 배울 수 있었다”는 술회다.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한 교수님의 ‘인생 경영 비법’을 듣고 싶습니다.
“가족, 친구,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지요. 가족, 친구와 잘 지내려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게 필요해요. 또 나이 들수록 중요한 게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인데요. 저는 최고의 방법으로 독서를 꼽고 싶습니다. 인생에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호기심, 혼자서 경험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내용을 알게 됐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기 위해선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건강이 필수이지요.”
그에게는 독특한 독서 버릇이 있다. 책 앞날개에 독서를 시작한 날짜, 독서를 마친 날짜, 책 구입 장소 등을 메모해놓는 일이다. 나중에 이 메모를 보면 책 내용은 물론 책을 읽게 된 동기, 시공간의 배경에 대한 추억까지 함께 떠올라 즐겁다고 한다. 또 세 종류의 책을 동시다발로 읽어나가는 독서 습관도 있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있으신지요.
“없습니다(답변의 속도는 30초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평소에 열심히 살고 아무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게 제 신조라고나 할까요. 안 되면 그만이지요. 무엇인가를 바라고, 해야 된다고 마음먹는 순간 괴로워요.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는 순간 족쇄가 되기 때문이죠. 저는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그렇게 자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 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인생 경영의 최고 비법은 공부력’이고 “궁극적 공부력은 마음 경영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 인생 시대, 무한성장 시대인 오늘날이야말로 자기성찰력이 최고의 인생 덕목이자 경쟁력이 아닐까.
‘유필화’란 이름 석 자의 문패가 달린 파란 대문 집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그의 시집 를 다시 펼쳐보았다. 그는 ‘나의 묘비명’이라는 시에서 ‘인간 유필화’를 이렇게 관조한다.
‘그는 입버릇처럼 자주 수행을 얘기했고 꾸준히 좌선도 하였지만, 생각만큼 행동이 안 따르는 자신의 한계를 늘 절감했다. 그는 물욕과 애욕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만심도 결코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장년 이후 눈에 띄게 화를 내는 일이 적어진 것에 대해서는 은근히 흐뭇해했다. (중략) 그는 자신의 숱한 약점,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수시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태도였다. 그의 이름은 유필화였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100세 시대엔 자산관리도 평생 동안 해야 한다. 평생학습처럼 평생 자산관리 시대다. 평생학습이 정신적·심리적 강장제라면 평생 자산관리는 재무적·경제적 예방주사이자 영양제다. 지금까지 일만 하면서 살아온 것이 억울해 앞으로 열심히 놀고 싶은데 자산관리를 평생 하라니…. 원통한가? 그러면 곤란하다. 평생 자산관리는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인생을 보다 의미있고 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의식주는 당연한 일이고 사회활동을 하는 데도 돈이 든다. 노후에 몸이 아파도 큰일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평소 건강관리를 하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아무리 초연해지려고 해도 돈이 없으면 건강도 챙기기 힘들고 하고 싶은 일 하기도 어렵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돈 걱정 없는 노후의 삶을 바란다. 특별한 사람의 대표적 사례는 톨스토이다. 그는 돈을 매우 싫어했으며, 평생 가난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돈이 그를 너무 사랑해 한 번도 가난해진 일이 없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삶을 찾아 길을 떠났고 객사하고 말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돈을 매우 좋아했으며 평생 부자를 꿈꾸었다. 글도 돈을 벌기 위해 썼으며, 선금을 주지 않으면 작품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는 물질적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인 두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을까? 톨스토이는 돈이 마를 수 없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그 재산을 물려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원고료를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 기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박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다.
톨스토이가 모든 재산을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건전한 삶을 살았다면 꿈을 실현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오! 저런!’과 ‘오! 이런!’
“자식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오! 저런!’을 모릅니다.” 로 잘 알려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본을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이 그에게 해준 말이다. ‘오! 저런!’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런 극단적인 일 말고도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단말마처럼 ‘오! 이런!’을 내뱉는다. 리스크 관리는 바로 ‘오! 이런!’의 빈도를 줄이는 일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노후자산 관리의 핵심은 돈과 죽음의 경주에 있다. 다시 말하면 돈의 고갈 시점이 더 빠르냐, 생명의 소진 시점이 더 빠르냐를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돈과 죽음의 랠리는 흔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비교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것은 토끼가 도중에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죽음의 경주는 다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없다. 돈은 빠져나가는 속도는 너무 빠르다. 쉬어가는 법도 없다. 가끔은 키다리처럼 보폭이 커지거나 아예 도약대를 딛고 날아오르는 체조선수처럼 큰 점핑을 하기도 한다. 그 속도와 높이를 쉽게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 생명의 소진 속도는 너무 느리다. ‘오! 이런!’
돈과 죽음의 경주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추거나 돈 뭉치를 크게 만들면 된다. 많은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익률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 자산관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산관리는 소득과 지출 수준, 자산과 부채 규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2040세대에게도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고, 5070세대에게도 수익률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산관리의 무게 중심이 2040세대는 수익률에, 5070세대는 리스크 관리에 둬야 한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말하면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5070세대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3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5070세대는 현금 유입이 급감하거나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하면 월급이 끊어진다. 퇴직 후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돈 뭉치를 키우기 위해 수익률 높은 곳을 찾아 기웃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별일 없으면 다행이지만 리스크가 터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키우려고 한 돈 뭉치는 더욱 쪼그라들고 생활은 불안해진다. 현금이 계속 유입되는 2040세대는 리스크가 터져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그 자산을 사들임으로써 가격상승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이른바 물타기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금 유입이 급속히 줄어드는 5070세대는 그럴 여유가 없다. 수익률보다는 리스크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둘째 급감하는 현금 유입에 비해 지출의 규모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금 유입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출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고정비에 가깝고, 나이가 들면 몸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한다. 게다가 장성한 자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더해지면 설상가상이다. 노후가 길어진 만큼 지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만약 연금이 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장기적으로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자산관리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화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기술의 수용 속도를 보면 라디오 38년, TV 13년, 아이팟 4년, 인터넷 3년, 페이스북 1년, 트위터 9개월 등이다. 변화를 이끄는 신기술에 대한 수용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세대를 가르는 시간 기준 역시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세대를 구분할 때 30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20년에서 10년으로 짧아지더니 최근에는 5년까지 짧아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4~5년이면 세대 간의 차이와 거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변화는 곧 리스크다. 자산관리에서 리스크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손관승(58) 전 iMBC 대표를 만났다. 전 MBC 베를린 특파원, 전 iMBC 대표이사,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온 그는 여러 개의 호칭을 갖고 있다. 스스로 부여한 현업(業)은 스토리 노마드, 즉 이야기 유목민이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저술을 하는 삶이다. 전반전은 수치와 가치를 추구한 2치의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브런치, 맘대로 시간을 쓰고 배울 수 있는 사치,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한발 먼저 호흡해야 하는 눈치, 3치의 삶이란다. 그의 3치의 삶에 1치를 덧붙이고 싶다. 재치! 고전의 인용과 고급 유머의 재치를 적재적소 활용하는 활용하는 그에게선 자유인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그는 거듭되는 사진 촬영 포즈 요청에도 ‘Sure’, ‘OK’를 연발하며 경쾌하게 응했다. 또 ‘흑모백모(黑毛白毛) 가리지 않고 아쉬운 중년의 머리숱이니 정수리 부분의 사진 촬영은 피해 달라’는 유머로 분위기를 경쾌하게 띄웠다. 퇴직 후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른바 전직의 ‘잉크’가 쏙 빠진 티가 역력했다.
메고 오신 백팩의 끈이 ‘나달나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닳았습니다. 바꾸지 않고 사용하시는 사연이 있으신지요.
“독일 속담에 ‘가방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퇴직할 때 직원들이 선물해준 것입니다. ‘그간 고생했으니 새로운 설레는 이야기를 담아 가져와달라’는 당부를 담아서요.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제가 일생 뜨겁게 일하던 열정, 후배와 동료들이 준 사랑 등 과거와 미래가 함께 담긴 가보예요. 그 직원들의 바람과 기대를 생각하면 열심히 뛰게 되지요. 중요한 자리에도 가능한 한 이 가방을 메고 간답니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빈티’ 가방을 ‘빈티지’ 가방으로 보면서 감동받더군요. 이 백팩과 운동화는 스토리 노마드로서의 프로 의식과 현장 의식을 잊지 않겠다, 허례허식을 버리겠다는 제 다짐이 담긴 인생 2막 필수 장비(?)입니다.”
퇴직 후 많은 사람이 조직의 후광, 즉 타이틀이 없어지는 상황에 멘붕이 되시더군요. 선생께선 어떠셨습니까.
“타이틀 앞에 전(前), ex라는 말이 붙는 것보다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죽어라 하고 치달린 인생이 A4 용지 발령장 하나로 흔들리지요. 자기 인생을 찾으려면 명함의 타이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과거는 선용 하면 자산이지만, 매달려 있으면 부채입니다. ‘내가 누군데’ 하며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실패합니다. 허세를 빼야 실세가 됩니다(허허). ex를 잊어야, 인생 전반전에서 exit해야 인생 후반전 진입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예전 CEO를 할 때도 늘 엑시트 플랜이 없는 프로젝트는 결재 보류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직업에서 20년 이상 일했으면 나중에 어떻게 엑시트할지 상정해놓는 게 필요합니다.”
그는 “경영자는 수치(數値)가 나쁘면 수치(羞恥)를 당한다. 최고의 수치는 강판당하는 것, 그만두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경영자 시절 “매일 주가, 실적, 매출, 수익 등의 수치와 싸워야 했다”며 “나쁜 수치는 강판을 시키지만, 좋은 수치가 자리를 보호해주지는 않는 게 현실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그늘조차 위트를 담아 말하는 모습이 스토리 노마드다웠다.
조직에 있으면서 출구 전략을 미리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뭘 원하는지, 잘하는지 자신과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세월과 나이가 저절로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퇴직을 속절없이 당하느냐, 의지를 갖고 맞이하느냐는 차이가 큽니다. 코앞의 일이 급하다고 미루다 보면 늦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왔어도 자신과의 대화를 갖지 못한 사람은 퇴직 때 자괴감과 혼란을 느끼기 쉽습니다.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멈추면 더 위험하고 부상도 크게 당하지 않습니까. 준비 없이 갑자기 조직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그와 같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책 없는 ‘퇴직’과 대책을 생각해둔 퇴직은 많이 다릅니다.”
그는 “지금의 50플러스 세대는 물심양면에서 퇴직 이후가 가장 준비되지 않은, 낀 세대”라며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대충 해도 잘살았어 하며 퇴직 이후를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선생께선 2013년 퇴직 후 괴테의 궤적을 따라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셨지요.
“과거에는 일에 미쳤지만, 이젠 한량이 되어 내가 미칠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심리스(seamless), 말 그대로 30년을 재봉틀 박음질하듯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에 완전 지쳤다고나 할까요. 번아웃(burn out)된 내 인생에 갭 이어(gap year), 안식년을 줘야겠다는 절박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혹자는 ‘먹고살 만한 게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어요. 대학 다니는 애들도 둘이나 있고요. 독일 여행 버킷리스트에 도전하느라 새 자리와 기회, 제안 등을 놓쳤지요. 하지만 리스크 없는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일, 내일’ 하며 미루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다 보면 ‘매일 책임질 일’은 계속 이어지고 평생 헤어나오질 못해요. 여행을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자유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요.”
그의 여행 궤적은 이라는 책으로 나왔고, 마법처럼 제2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퇴직 후 일반적 설계는 크게 버킷리스트의 로망형, 생활형 구직으로 크게 나뉘는데요. 각각의 유형에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인지요.
“첫째도 둘째도 자기탐색입니다. 버킷리스트를 남, 책, 영화에서 나온 대로 따라 하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맞춤 프로그램을 세워야 합니다. 속절없이 시간보내기를 하면 후회합니다. 계획을 세웠으면 도전해야 합니다. 못할 이유를 찾으면 백 가지도 더 나오게 마련입니다. 또 조급한 구직 역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더 갈증이 나는 이치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오랫동안 일할 커리어 로드맵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프리랜서로 2막을 시작하신 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드셨지요. 전반전과 후반전의 룰은 무엇이 다릅니까.
“인생 전반전은 남이 정해진 룰을 익히는 타율의 적응학습이라면, 후반전은 자기주도 학습이에요. 전반전이 패키지여행이라면 후반전은 자유여행이에요. 당연히 전술과 전략이 달라야 해요. 남이 보기 좋은 옷이 아니라 내게 어울리는 옷, 내게 맞는 신발을 고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요. 남의 답안지 훔쳐보면서 인생을 허비할 시간이 이젠 없어요. 또 주인공에서 벗어나 조연, 심지어는 카메오 역할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관점을 전환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다스리면 됩니다. 그러다 가끔 주인공 역할 맡게 되면 또 감사한 것이고요.”
인생 전반전은 앞서가기 위해 최고에 역점을 뒀더라도, 2막은 최적을 택해, 오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빛 좋은 개살구’보다 ‘뚝배기보다 장맛’의 내용, 즉 자기 적합성 여부를 따져야 멀리, 오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말하며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꼰대는 과거에 갇혀 있고, 어른은 미래를 향해 있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꼰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며 장광설만 늘어놓고 실천은 따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른은 매일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영광, 기억에 머물러 있으면 ‘옛날 타령’만 하게 됩니다.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을 해야 하는데 꼰대일수록 doing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입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우려는 것, 그것이 조직 밖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자 어른으로 존경받는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職)과 업(業)은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직(職)은 조직에 있어야만 유지되는 직책, 직장이지요. 업은 남이 뺏을 수 없는 본인의 경쟁력, 경륜입니다. 퇴직 후의 대책 하면 흔히 경제적인 것과 이직을 위한 타이틀 등 유형자산만 생각합니다. 저는 업, 경험과 지혜의 노하우 등 무형자산을 준비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에도 종잣돈이 필요하듯, 인생 2막에 키워나갈 수 있는 종자 경험이 업입니다. 전문성, 네트워크, 경험 등의 총합인 내 일[業]이 없으면 내일(來日)은 없습니다.”
그는 “직은 동료들에 비해 뒤처졌지만 업의 힘을 베를린 특파원 시절에 길렀다”며 “혼자 지낸 고독력이 그 비결”이라고 털어놓았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술, 혼자 하는 여행. 웅덩이가 있어야 물이 고이는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야 창조적인 것들이 따라온다는 설명이다.
파워 스토리텔링을 강조하시는데요. 선생처럼 베를린 특파원, CEO, 교수 등 화려한 경력과 해외탐방의 이색 경험이 없는 분들도 가능합니까.
“내 이야기야말로 삶의 무궁무진한 무형자산이에요. 각각 자기의 파워스토리는 다 갖게 마련이지요. 스토리텔링이란 성공 스토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극복 스토리예요. 백퍼센트 성공담과 실패담은 재미와 의미가 없어요. 시련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느냐 그것을 담아내는 반전에서 스토리의 파워가 나옵니다. 나를 스토리텔링할 줄 아는 게 경쟁력 있는 셀링포인트예요. 덕장, 지장보다 앞서는 게 운장이라고 하는데요. 그보다 상수가 담장(談將), 즉 스토리장이라고 농담하곤 합니다.”
그의 인생 2막을 열어준 비밀의 열쇠는 현직 시절 틈틈이 적어놓은 수첩이다. 이순신에게 남아 있던 ‘12척의 배’처럼 12권의 수첩이 그를 소생시켰다. 책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인생 2막의 시침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한다. 심지어는 영감을 얻은 식당의 영수증까지 노트에 꼼꼼히 붙여놓는다. 그것이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된다.
이른바 ‘손빠’를 가지실 만큼 강연 및 저술로 프리랜서계에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자신의 저서 에서 “100세 시대에 코끼리에 붙어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1인 기업가’처럼 강인한 벼룩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라”고 말한 바 있지요. 프리랜서가 명심해야 할 생존법은 무엇입니까.
“자유직업, 프리랜서의 다리는 조직인의 다리와 달라야 합니다. 뭍사람의 다리와 뱃사람의 다리가 다른 것처럼요. 뭍사람은 배를 타면 작은 파도의 출렁거림에도 일을 못합니다. 반면 뱃사람은 균형감각을 잡아 폭풍우 속에서도 일을 하지요. 프리랜서는 뱃사람처럼 심리적으로 굳건한 다리를 가져야 합니다. 고체가 돼선 안 되고 액체가 돼 늘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고요.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프리랜서력(力)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상대를 설레게 할 정도의 섹시한 제안 능력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기 위해 생자료를 가공자료로 바꿔 기획안을 만들고, 제안하고, 그러다 역제안을 만들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전직을 내세워 고위관계자와 직통하려 드는 것. 필패하게 돼 있다는 조언이다. 둘째는 상시 준비력이다. 언제 어떤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알파에 베타까지 덧붙여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준비력이다. 평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쉬는 날에도 일해야 하는 상시 근무체제와 같은 의미다. 셋째는 탄력 회복성이다. 숱하게 거절당하거나 좌절당할 일이 있어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다시 원점으로 회복하고 돌아봐 스스로를 성장시킬 계기로 삼는 능력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묻죠. 손 선생에게 현재 ‘성공’이란 어떤 의미인지요.
“마음 설레는 일을 갖는 것입니다. 쓰고 싶은 글거리가 줄줄이 머릿속을 채우고 맴돌 때의 희열, 그것 이상의 행복과 성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인터뷰 후 연거푸 제안서 미팅이 있다며 낡은 백팩, 아니 이야기 보따리를 메고 서둘러 일어섰다. 파란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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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과거 족보나 문헌들을 조사해보면 고려시대(918~1392년) 임금 34명의 평균수명은 42.3세, 조선시대(1392~1910년)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로 나타난다. 왕들의 수명은 40세 전후에 불과했던 셈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 가장 장수했던 임금은 21대 영조로,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을 뛰어넘는 8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의 장수 비결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필자는 시골에서 홀로 생활하시던 외조모가 몇 년 전 향년 92세로 굴곡 많은 생을 마감하시는 모습을 보며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일반적으로 100세 시대란 사망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 즉 ‘최빈사망연령’이 90세가 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략 2020년경이면 최빈사망연령이 90세가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의 의료기술 발달 속도와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고려할 때 5070세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살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
5070세대는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동안에도 자산 축적에 관심이 많았다. 즉 은퇴설계를 할 때도 수익률과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는 축적된 재산을 유지하고 보전하는 일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열심히 저축하고 모아온 자산 등이 예상하지 못한 일로 한순간에 없어지거나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위험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미 우리 코앞으로 다가온 100세 시대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위험과 우발적으로 생기는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앞으로 5070세대가 부딪칠 수 있는 대표적 위험 3가지를 살펴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보자.
의료비 리스크
보장자산을 사망에서 노후 의료비로 재편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인구는 몇 명 정도 될까? 2015년 기준 통계청에 따르면 3159명으로 여성이 2731명, 남성이 428명으로 여성이 6배 정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조사에서는 100세 이상 인구를 17만562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1만4000명 정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 기준으로 말소 여부로 판단하는 반면 통계청은 인구센서스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하는 조사 방법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필자는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더 생겼다. 과연 차이가 나는 1만4000여 명의 100세 어르신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대부분은 거동의 불편과 질병 등을 이유로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치료 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생명보험협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수명, 즉 전체 평균수명(82.4세)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는 기간을 제외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간이 76.4세라고 발표한 바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수명을 73.2세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 정도 병치레를 하다 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노후에는 질병이라는 달갑지 않은 친구를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후 질병이 재무적인 측면에서 특히 위험한 이유는 일정 연령이 되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오래 살수록 그 위험의 정도가 급증하며, 질병의 정도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후에 발생하는 질병은 자연스런 현상이란 점에서 건강관리만 잘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예방이 쉽지 않고 한 번 발병하면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노후에 발생되는 치료비는 가족에게 큰 부담이다. 건강보험공단(2015)의 조사에서처럼 연령이 증가할수록 1인당 연간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1인당 생애 총의료비가 65세 이후에 절반 이상 발생하는 것은 노후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이 5070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의료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위해 먼저 국민건강보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5070세대가 은퇴 후 의료비가 1000만원 발생했다면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 요양기관별로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63.4%(약 630만원)를 부담하고 나머지 36.6%(약 370만원)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개인부담분을 분해하면 건강보험 급여 대상 의료비의 20.1%와 비급여 의료비 16.5%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구조를 감안할 때 5070세대의 노후의료비 부담은 건강보험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 부분을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는 가장의 유고에 대비한 사망보장 중심의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었다면, 50대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후의료비 보장 중심의 위험관리로 보장 자산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한다. 2040 시절에 가입해두었던 보험을 노후의료비 보장 중심으로 재검토하고, 행여 중복보장으로 인해 과도한 보험료 지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분석해 웰스(wealth)가 아닌 헬스(health) 시대에 맞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자녀부양 리스크
현명한 노후준비는 ‘자녀의 경제적 독립’
대한민국의 5070세대가 늙은 염낭거미를 닮아가고 있다. 염낭거미는 독거미의 일종으로 새끼가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를 위해 제 살을 먹이로 주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5070세대는 은퇴 후에도 성인이 된 자식 뒷바라지를 걱정하고 있다. 혹자는 자식뒷바라지가 100세 시대에 무슨 위험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으면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연금 외 변변한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 생물학적 성인자녀가 사회학적 성인자녀로 탈바꿈하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따른 심리적 고충은 물론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는 점에서 엄청난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경기침체에다 비혼(非婚)과 만혼(晩婚)이라는 사회적 현상까지 더해져 부모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성인자녀가 늘고 있다. 동거를 하지는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성인자녀도 꽤 많다. 이는 선배 세대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고민이란 점에서 5070세대에겐 새로운 리스크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대학졸업 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곁에 머무는 자녀를 ‘낀 세대’라는 의미의 ‘트윅스터(Twixter)’라 부른다. 캐나다에서는 직업을 구하러 이리저리 다니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에서 ‘부메랑키즈’, 영국에서는 부모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에서 ‘키퍼스(KIPPERS: 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 이탈리아에서는 모친이 해주는 음식에 집착한다는 의미의 맘모네(Mammone)라고 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졸업 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20~30대 젊은 층을 캥거루족, 취업을 했어도 경제적 독립을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30~40대를 신캥거루족이라고 칭한다.
이처럼 5070세대가 은퇴 이후 성인자녀를 부양하는 상황이 연출되면 이들의 노후준비 자산은 급속하게 줄어들게 된다.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노후준비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부양 리스크에 대한 통일된 대처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생각하면 실천할 수 있는 방안 두 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부양기간과 지원 범위를 자녀와 함께 정하는 것이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에서 20~50대 성인을 대상으로 “언제까지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나?”라고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40.9%는 적어도 취업 전까지는 자녀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응답했다. 2008년에는 이 비중이 26.1%였던 점을 감안할 때 성인자녀의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자녀의 경제적 미독립이 게으름 등 개인적 소양 탓보다는 사회경제적 구조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황에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경제적 지원 범위와 기간을 자녀와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선에서 정하고, 독립을 이루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둘째 소규모 청년창업이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소규모 청년창업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창업의 경우 어느 정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능력이 된다면 한없이 지원하고 싶지만, 5070세대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수년 전 은행에서 퇴직한 박씨(60)의 경우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땅과 아파트, 그리고 퇴직금이 전 재산이다. 그런데 명문대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을 하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던 자녀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창업자금을 요청하더란다. 지원을 해야 하나, 말려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박씨는 구체적인 조건을 내걸고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자녀에게 사업계획서를 요청하고, 자금을 한꺼번에 지원하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지원하며, 아버지가 아닌 채권자로서 계약서까지 썼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혀를 찰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일수록 냉정하게 대하는 게 정답에 가까운 차선책인 것 같다.
금융사기 위험
내 돈 지키는 5가지 행동지침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은퇴자들이 어이없게 금융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드라마의 소재거리로 활용될 정도로 은퇴자들이 쉽게 금융사기 표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주된 직장에서 물러난 은퇴자들은 비록 고정수입은 크게 줄어들었다 해도 퇴직금과 모아둔 유동자산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여기에다 금융시장의 변화에 둔감한 상황에서 줄어든 고정수입을 보충하고픈 조급한 마음에 고수익 상품에 대한 욕구가 커져 금융사기범의 미끼를 덥석 물 가능성이 높다.
미국 투자자교육재단에서는 금융사기를 당하기 쉬운 사람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① 50대 후반의 기혼자, ② 자신의 판단과 금융 지식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 ③새로운 생각이나 판매 선전에 귀가 솔깃한 사람, ④ 최근에 건강 또는 금융상 어려움을 겪은 사람 등. 이 중에서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는 사람은 금융사기에 당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금융사기를 당하게 되면 힘들게 모아온 자산을 다 잃을 수 있다. 아래에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5가지 행동지침을 소개한다.
첫째, ‘아는 사람인데 잘해주겠지, 전문가이니까 잘해주겠지’라는 생각을 버려라!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 있다. 이들은 오히려 고객의 이익보다 금융기관이나 종사자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다.
둘째, 금융업에 종사하는 개인이 제공하는 보고서가 아닌 금융기관의 보고서를 받아라! 가끔 개인이 작성한, 고수익을 보장하는 보고서를 믿고 투자에 나섰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약속 뒤에는 대부분 고객의 자금을 유용할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고수익을 미끼로 두 자릿수 수익률을 제공하면서 호시탐탐 돈을 노리는 금융사기꾼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셋째, 배우자의 사망, 이혼소송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불현듯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조심하자! 사람의 어려움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돈과 연관된 도움의 손길은 주변 사람과 충분히 상의해 결정해도 늦지 않다. 채근하는 사람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삶의 전환기나 시련기에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결정해야 한다.
넷째, 장점만 있는 금융투자상품은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때는 그 상품의 장단점을 충분히 파악한 후 투자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으로 금융사기꾼이 노리는 것은 높은 수익률에 쉽게 흔들리는 고객의 마음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고수익을 확정 보장하거나 마감임박이라면서 투자 권유를 종용하는 경우 금융사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부모만큼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모든 것을 물려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명 내편이다. 인생의 스승이자 가장 큰 지지자로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부모는 영원한 내편이다. 이 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실이다.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책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할 본질적인 숙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일본의 심리학자 ‘가시미 이치로’의 저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우리도 나이가 들어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추해지고 정신이 희미해지는 현실의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미래의 자신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미운 마음이 들 때마다 한때는 부모님도 최고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하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며 젊었든 늙었든 삶 자체가 소중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덮으며 자신에게 끝임 없이 질문을 했다. 천하의 불효자도 처음에는 부모를 잘 모시고 싶은 효심이 있었다. 그런데 왜 불효자가 되었을까? 급격하게 변화한 세대차이가 범인이다. 궁핍한 세대를 살아오면서 절약이 몸에 배이고 위생관념이 덜하던 시대를 살아온 부모세대는 소변을 두 번보고 양변기의 물을 내리려하고 풍요와 위생관념이 투철한 자식세대는 이런 모습에서 기겁을 한다. 함께 살면서 생각과 관념의 사소한 차이로 틈이 벌어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틈이 누적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요강을 머리맡에 두고 방안에서 오줌을 누고 가래를 땅바닥에 뱉고 보이지 않는ㄴ 바이러스는 인정하지 않는 부모세대와 일회용 기저귀에 익숙한 자녀세대는 머리로는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있다가도 이내 부모의 더러움을 보고 고개를 돌리고 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2등은 필요 없는 승자독식의 경쟁 세상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효를 위해서라면 허벅지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던 부모세대와는 생각이 다르다. 머리로는 효도를 하려고 하지만 감성적으로 부모를 멀리하고 무슨 전염병 환자를 보듯 도망가려 한다. ‘당신은 부모님을 사랑하십니까?’ 라는 그럴듯한 질문보다 ‘당신은 부모님이 먹다가 남긴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라고 고쳐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미술을 애호하는 의사? 의료활동을 가끔 하는 미술 전문가? 이성낙 가천의과대 명예총장(79)을 지칭할 때 헷갈리는 이름표다. 베체트병 최고의 권위자인 그는 가천의과대 총장 퇴임 이후 일흔의 나이에 미술사 공부를 본격 시작했다. 의학 박사이자 미술사학 박사로서 그는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한편, 다양한 매체에 문화 관련 칼럼을 기고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젠 문화인으로서의 명성과 활동이 의료인의 경력을 압도할 정도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인터뷰를 약속한 날, 그는 최근 한 달여 유럽 미술관 전시회를 혼자 순례하고 왔다며 문화의 향취에 젖은 표정이 역력했다. 사진 촬영을 생각지 못하고 평상복(?) 차림으로 와 어쩌냐고 걱정을 했지만 중절모에 세련된 비즈니스 캐주얼, 적당히 손때 묻은 가죽가방을 멘 차림은 단아한 문화인 그 자체였다.
퇴임 후 미술사 공부를 시작,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취미로 즐기셔도 될 텐데 굳이(?) 박사학위에 도전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한국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 연구, 이것은 한국에서 저 말고는 할 수 없는 분야란 절박감과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간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모두 쓰레기가 된다. 내가 책임지고 반듯한 논문으로 남겨야 국내외로 인용될 것 아닌가’라는 사명감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2008년 총장직을 사임하고, 사석에서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 관련 자료가 많은데 어떻게 넘겨줄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때 좌중에 있던 유홍준, 이태호 교수가 ‘대학원에 들어와 연구’를 하라는 조언을 하더군요. 그 말이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사명감을 부추겼다고나 할까요.”
그가 피부과 교수로서 초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4년 뮌헨의과대학 졸업 종강강의 ‘예술작품에 나타난 피부병’을 듣고부터다. 당시 청년 의사 이성낙은 ‘예술을 의학적 시각에서도 접근할 수 있겠구나’ 하고 비로소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 미술관을 다니며 자료 수집을 하고 틈틈이 공부도 해왔다. 그 열매가 50여 년 만에 맺어진 셈이다.
피부병변을 통해 밝힌 한국 초상화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선비문화의 정직성입니다. 죽기 전 영정에 해당하는 초상화들을 보면 중국,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정직성입니다. 자료를 본격 수집하기 전엔 우리나라 초상화에는 피부병이 나타나 있지 않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관찰해보니 우리나라 초상화의 83%에서 피부병이 확인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단지 17%만이 정상적인 피부란 이야기인데요. 예컨대 서예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살짝 곰보였습니다. 이는 전기 등엔 안 나오는 사실이지요. 초상화들을 보면 곰보 자국, 여드름 자국, 다모증 등 실물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시의 초상화는 수염을 그리지 않았지요. 다시 말해 그리는 사람이나 초상화를 요청한 사람이나 담담하게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그리게 한 것이지요. 피사체가 장바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상위층 양반 그룹이라 지시를 통해 그리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담담하게 다 드러내 그리도록 한 것이지요. 조선 선비정신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아 희열을 느꼈습니다.”
일흔의 나이에 전혀 다른 분야, 늦깎이 공부에 도전하셨습니다. 취미로 하셨다 해도 녹록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이나 교수진이 부담스러워하진 않던가요?
“퇴직하고, 2009년에 명지대에서 미술사 석·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지요. 공부도 힘들고, 주위의 눈길도 신경 쓰이긴 했지요. 또 뭘 읽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한 번 읽었다면 지금은 두세 번 반복해 읽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요(하하). 입학 전부터 전직(前職) 명함의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고, 그런 뒷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했어요. 내 전직이 무엇인지 다 아는데,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했답니다. 설렁설렁 한다고 할까봐 강의 15분 전에 출석하고, 강의가 끝나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등 성실한 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100퍼센트 출석은 물론이고요. 무엇보다 큰 기쁨은 강의를 통해 그간의 부분적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구슬이 한 줄로 꿰어지는 기쁨에 비유할 수 있어요. 늘 가르치던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으로 돌아가 젊은 30대들과 동료가 된 재미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주대 의대 학장과 가천의과대 총장으로 지내던 시절, 예술·인문·문화학을 정규 강좌로 개설해놓고 의학도들에게 의무적으로 듣도록 하셨습니다. 인문학을 이처럼 앞장서 강조해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문학은 공감학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고 성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요. 공연, 전시회, 책을 보며 우린 사람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돌아보고 경계하게 됩니다. 영국에선 유명 연극배우에게 ‘Sir’라는 칭호를 줍니다. 정치가, 기업인보다 높이 평가하는 거지요. 배우는 황제, 살인자, 거지 등 인간의 다양한 삶을 펼쳐 보이며 다양한 인격을 구현해냅니다. 또 문학 서적을 읽으며 그 안에서 비겁한 사람도 보고, 정의로운 사람도 보고, 용감한 사람도 봅니다. 그들의 갈등을 제3자의 눈으로 보며 경계하고 배울 것이 무엇인지 의식을 갖게 하는 것, 그것 때문에 예술과 인문학이 중요하지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의료인에게도 특히 필요한 학문입니다.”
실제로 총장님 삶에서 인문학과 예술이 문제해결의 마스터키로 작용한 적이 있는지요?
“(하하) 네, 제가 독일 유학을 갔을 때입니다. 1950년대 말이니 한국인 유학생이 흔치 않을 때였지요. 기숙사 룸메이트가 저를 노골적으로 무시했습니다. 늦은 가을 기숙사로 들어가는데 룸메이트가 베토벤의 을 듣고 있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베토벤!’ 하고 탄성을 질렀지요. 그날 그 말을 들은 친구와 밤새도록 베토벤 얘기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한 달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사이였는데 말이죠. 문화 예술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한 덕분이지요.”
인문학은 세대, 국가, 민족을 넘어 소통과 공감의 가교로 자리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진정한 교육은 잘난 사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못난 사람,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일으켜 세우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명문대 진학률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현행 입시체제는 잘못됐다, 사람의 아픔에 연민을 느끼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인문학적 교육 인식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흔히 십년지기(十年知己)라는 말도 있듯이 십 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를 오래된 인연이라 표현합니다. 총장님을 안 지 저도 십 년 이상 됐는데요. 뵈면 ‘70년지기’ 유치원 친구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인연을 오래 유지하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살아보니 사람에게 복 중의 최고 복은 인복(人福)이더군요. 돌이켜보면 친구, 학교 은사 등 제 주위엔 늘 인간적으로 훌륭하신 분이 많았습니다. 천운이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행복해져요. 이들과의 귀한 인연을 돌이켜보니 공통점은 지속성입니다.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가꿔나가야 합니다. ‘이 사람이 유용하다, 아니다’라는 계산에서 탈피해 순수하게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용건이 없어도 안부를 묻고 꾸준히 관심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우정 유지 방법입니다.”
그는 마르부르크대 의예과에 들어가 처음 만난 독일 친구와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하고 2014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는 부부가 함께 한국까지 일부러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는 신록의 연둣빛에 감탄해 “문득 네가 생각났다”는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보내니 바로 “어디에서든 우리에겐 봄소식이 들려온다”고 답장이 왔단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큰 행운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상 나눔에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른들은 신세대에게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신세대는 ‘꼰대의 잔소리’로 거부감부터 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총장님의 세대 간 소통의 지혜는 어떤 것인지요?
“한마디로 역지사지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입장을 바꿔 미리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되도록 가르치려 들지 않아요. 지나가는 말처럼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지요.”
이외에도 이 총장이 잘 쓰는 세대 간 소통 방법은 시사 현안을 갖고 그때그때 간단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는 손녀와도 현안에 관한 미니토론을 카톡으로 소소하게 나누곤 한다. 얼마 전 마네의 그림 를 패러디한 을 국회의원회관에 전시한 것이 문제됐을 때도 “예술에 있어서 역지사지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등을 생각해보면 좋겠구나” 하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간단히 코멘트를 해주며 손녀와 대화를 했다. 일방적인 주입보다는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도하는 식의 대화 방식이다.
자제, 제자분들에게 평소 강조하시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지요.
“첫째도 둘째도 정직입니다. 제가 의미하는 정직은 자기관리를 솔선수범해 실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퇴직할 때 ‘대과(大過) 없이 마쳤다’란 말을 관용어처럼 쓰지 않습니까. 그러나 혼탁한 현실에서 막상 이를 실천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부정이 만연한 사회에서 대과 없이 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소극적으로 들리지만 적극적 행동강령이에요. 운도 정직에서 비롯되고, 불운도 정직하지 못한 데서 온 것입니다. 예전에 선현들은 무첨(無添), 즉 선조에게 죄를 더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욕되게 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고리타분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살수록 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조, 가족,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사는 것, 그것 이상이 있을까요. 담담해야 당당할 수 있고 욕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이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제일 먼저 강조한 것도 돈에 대한 정직이었다. 그것의 구체적 행동강령으로 ‘현금을 수금할 때 당일 보고, 당일 입금’을 실행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혹시라도 먼저 입사했다고 친구들에게 밥 살 일 있으면 쩨쩨하게 굴지 말고 아버지 이름 대고 밥 사라’고 자신의 단골식당을 아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일일이 인사시켰다고.
마지막으로 현역 프리랜서로서 ‘인생의 브라보’를 외칠 수 있는 조언을 들려주시겠습니까?
“호기심과 활력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꾸 힘들다, 어렵다, 귀찮다 생각하면 도태되고 배제돼요. 행동반경이 좁아지면 사고반경, 사람반경도 좁아집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지인들이 부르면 불원천리, 산 넘고 물 건너 달려가고요. 지하철에선 되도록 자리를 양보받지 않아요.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서 있으면 오히려 균형력 강화에 좋습니다. 휴대폰은 신제품 출시 소식이 나오면 즉시 바꾸는 얼리어답터입니다. 지금 편한 것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해요.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힙니다. 이런저런 핑계 대지 말고 새로운 공부, 도구, 환경에 도전하세요.”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곁에 있는 가족, 평범했던 하루 등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연극 . 교사 퇴임 후 치매 아내를 돌보는 남편 역을 연기한 배우 이순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쁜 일정에도 이번 작품에 참여한 계기는?
을 끝내고 마침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났고, 작품도 마음에 들었어요. 아내가 치매에 걸린 남편 역할인데, 실제로 겪어본 적 없지만 우리 세대에게 가까운 이야기라 관심이 생겼죠. (극 중에서) 다른 병으로 죽거나 힘들어하는 아내를 둔 적은 많았는데, 치매에 걸린 아내는 처음이라 새로운 감정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 에서 연기한 아버지의 모습과 비교해본다면?
전혀 다르죠. 은 해외 원작이고, 이번 작품은 국내 창작 연극이기 때문에 인물의 환경이나 생활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나요. 독선적이고 애정 표현에 서툰 아버지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더 한국적이고 우리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연기를 통해 ‘치매’라는 질병을 간접 경험했는데
치매가 가족 간, 특히 한국 가정에서는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지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어요. 결국 자녀나 주변 사람들의 관심 아래 부부만이 극복할 수 있는 병인 것 같더라고요. 또 나이를 생각했을 때 나도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잖아요. 직업 특성상 암기력이 기본인데, 치매에 걸리면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죠. 우리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어요. 더 철저히 예방하고 관리해야죠.
장용, 정영숙, 오미연 등 중견 배우들과의 호흡은?
최근 중견배우가 주인공을 맡는 작품이 많아졌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 있어요. 워낙 베테랑들이라 말하지 않아도 척척 맞고, 파트너인 정영숙씨는 과거에 드라마에 함께 출연해서 서로 불편한 것도 없죠. 그러나 잘하려고 하면 젊어서든 나이 들어서든 힘들 수밖에요. 경력이 쌓여도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어요.
어떤 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인가?
가족, 그중에서도 부부의 이야기이니까 중장년 부부가 본다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거예요. 젊은 세대 역시 내 부모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겠죠. 부모가 나이 들면 자립 능력이 떨어져 언젠가는 자식 신세를 지는 때가 오잖아요. 특히 치매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내 부모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각자 질문을 해보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거예요.
연극
일정 5월 28일까지
장소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연출 이재성
출연 이순재, 정영숙, 장용, 오미연 등
4월 14일 동년기자단 2기 발단식이 열렸다. 지난 1년간 감동과 연륜이 묻어나는 글로 두각을 나타냈던 1기 동년기자 26명을 포함한 총 48명의 2기 동년기자단이 꾸려졌다. 각자의 인생과 삶의 철학은 다르지만, ‘동년(同年)’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게 될 그들이 첫 만남을 가졌다.
3월 1일부터 15일까지 온라인 지원과 서류 심사를 거쳐 선발된 48명의 동년기자가 설렘을 안고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발단식 이후, 이듬해 3월까지 1년간 각자의 역량에 따라 활발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2기 동년기자들은 1942년생부터 1966년생까지, 평균나이 61세로 1기 동년기자단(평균나이 54세)보다 연령대는 높지만, 저마다의 깊은 연륜과 강한 열정으로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불어넣고 있다.
공감과 감동이 있는 기사 기대돼
이날 행사는 명함 및 기자수첩 수여, 윤리강령 채택, 동년기자단 1기 활동 보고, 개인 프로필 및 단체사진 촬영, 자기소개 등으로 이뤄졌다. 발단식에 참석한 길정우 이투데이 총괄대표이사는 “동년기자들의 눈높이로 일상의 행복한 일, 감동을 주는 이야기 등을 기사로 쓴다면 중장년 독자와의 공감대를 잘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좋은 글을 많이 써서 우리 주변에 행복과 기쁨을 나눠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혁 이투데이PNC 대표이사는 “매호 동년기자의 글을 감동적으로 읽고 있다. 1기 동년기자단의 활동 덕분에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콘텐츠 잡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며 2기 동년기자단의 활약을 기대했다.
보람만큼 책임감 더한 기사로 발전하길
동년기자단 1기를 이끌었던 강신영 단장은 “처음에는 얼떨떨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모두 액티브 시니어로 활동하는 분들이라 잘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며 지난 활동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블로그나 SNS 등에만 쓰던 내 글이 잡지와 온라인 사이트에도 실리는 것에 무척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보게 되는 만큼 글과 사진의 수준을 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동년기자단’을 작명한 임철순 이투데이 주필 겸 이사는 “동년이란, 같은 나이라는 뜻도 있지만, 과거 시험에 함께 합격한 이들을 일컫기도 한다. 서로 나이는 차이 나지만, 친구로 동무로 어울리며 망년지교(忘年之交)하길 바란다. 열심히 글을 쓰고 보람찬 활동을 하면 좋겠다”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남자 25명, 여자 23명 / 50대 20명, 60대 23명, 70대 5명 / 평균나이 61세
가나다순 48명
가재산(63·남), 강신영(65·남), 김수영(64·여), 김영선(65·여), 김종범(61·남), 김종억(64·남), 김진주(57·여), 김태형(57·남), 박기원(51·남), 박미령(63·여), 박수남(54·여), 박애란(66·여), 박정하(51·여), 박종섭(62·남), 박혜경(65·여), 배인휴(65·남), 백외섭(66·남), 변용도(67·남), 성경애(60·여), 성미향(54·여), 손웅익(59·남), 신용재(68·남), 안영란(55·여), 안영희(70·여), 양복희(60·여), 옥선희(59·여), 육영애(71·여), 윤영애(56·여), 윤재훈(58·남), 윤정자(75·여), 윤종국(70·남), 이경숙(65·여), 이두백(67·남), 이미숙(56·여), 이석현(56·남), 이찬만(58·남), 이현숙(59·여), 장영희(61·여), 전용욱(59·남), 정성희(57·여), 정원일(60·남), 조왕래(66·남), 주상태(51·남), 최원국(61·남), 최은주(54·여), 최현식(64·남), 한정수(71·남), 홍재기(57·남)
본인 동의 없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활용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금지됐다. 그런데도 얼마 전 경기 오산의 한 고등학교가 부모의 직업과 월 소득은 물론 월세 보증금 액수까지 적으라는 학생생활기초조사서를 배포했다가 학부모들의 몰매를 맞고 이를 회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전쟁 정전 후 어려운 시기에 초등학생이 된 우리 세대에게 ‘가정환경조사’에 대한 아픈 기억이 많다. 성인이 된 후에야 전기가 들어온 산간벽지 내 고향은 문화시설이라곤 어느 집에도 없었다. 따라서 모두가 빈칸으로 조사서를 제출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선생님도 모든 형편을 다 알고 있어서 손을 들라는 말씀이 없었다. 조사서에 기재된 항목들을 보면서 도시에서는 신문도 보고 라디오도 듣는가 보다 나름 짐작만 하였다.
하지만 읍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시골 동네와 문화차이가 많은 것을 느꼈다. 학교에서 지식이 아니라 수치심을 배웠다. 우리 집엔 단 하나도 없는 시계ㆍ라디오ㆍ전축 따위들이 친구들의 집에는 번듯하게 있었다. 세월이 가면서 환경조사는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내 집과 내 가족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매번 신학기를 맞았다. 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가난을 확인해야 하는 굴욕을 맛본 것이다.
그게 부끄러우면 거짓말을 해야 했다. 부모의 직업을 차마 쓰지 못하고 그냥 회사원으로 기재한 일, 국졸인 부모의 학력을 고졸이나 대졸로 쓴 일 등은 신학기 언론의 독자투고란에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매 학기를 맞이해야 했다. 그럼에도 가정환경조사서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학생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너무도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학생의 능력과 별 관계가 없는 허망한 일이었다.
이제는 뿌리 깊게 내려온 가정환경조사 관행이 사라지고 자기능력을 검증하는 시대가 되었다. 취업현장에는 성별ㆍ나이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남자 경비원을 모집하면서도 남자라는 표시를 하지 못하여 여자 지원자가 접수를 하고, 나이제한 공고를 하지 못하여 힘든 작업에 고령자가 찾아오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다. 이를 어기면 엄격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입사지원서에 학력기재 금지가 제도화할 예정이다. 입시 때 자기소개서에 부모 언급도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아예 탈락시키는 방향이다.
대선정국이 열렸다. 각 진영의 선수들이 앞 다투어 내달리고 있다. 주자들의 자기능력 검증이 절실한 시점이다. 과거의 검증은 사돈네 8촌의 뜬소문까지 쫓다가 세월 다 보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까지 문제 삼을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선수의 배우자와 직계 존ㆍ비속만 검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대선주자 자기능력 검증을 철저히 하여 허깨비가 등장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 또 다시 국정농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