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경기도 용인시의 삼성노블카운티 중앙 잔디광장에서 '레크레이션 동물매개치유' 프로그램이 열렸다. 미리 신청받은 16분의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입주민들이 잔디광장을 빙 둘러 앉아 행사를 구경했다.
진행을 맡은 둥글개봉사단은 힐링견 8마리와 방문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먼저 봉사단과 시범견이 각각 원반을 던지면 개가 물어오는 프리스비, 장애물을 넘는 어질리티 등의 독 스포츠 종목들을 선보였다. 이후 체험을 원하는 어르신들이 직접 원반을 날려보고, 힐링견을 이끌어 장애물을 통과하는 등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청한 16명의 어르신들은 2인 1조로 짝을 지어 힐링견들과의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삼성노블카운티 내 치유의 숲길을 걸으며 기념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이웅종 교수를 포함한 봉사단원이 동행하며 어르신들과 힐링견들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수고한 힐링견을 위한 '아로마 마사지' 시간을 마지막으로 이날 행사가 마무리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옥연 어르신은 "보기만 해도 좋은 힐링견들과 함께 활동하니 저절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둥글개 봉사단은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AAA'(Animal Assisted Activity), 즉 동물매개치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람은 동물을 만지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사랑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닌(Oxytoncin)을 분비시킨다는 점을 활용해,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면서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둥글개 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이웅종 연암대학교 동물보호계열 전임교수는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간 활동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라며 "거리두기 단계가 모두 풀렸으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과 동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안양시는 ‘공공예술의 도시’를 표방하며 개성과 위상을 돋우고 있다. 도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로 가꾼다는 의도를 가지고 지역 곳곳에 예술을 흩뿌렸다. 안양예술공원은 그 센터이자 견고한 플랫폼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할 만한 이 산속의 예술공원은 사실상 국내 초유의 야외 공공미술 실험장으로 등장해 선구적인 성취를 거두었다. 마음을 훌훌 털어놓기에 적당한 숲길 산책과 미술품 감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명소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연수 공공예술부장에게 작품 소개와 관람 방법을 들어봤다.
“가장 중요한 작품은 관람 출발점인 알바루 시자의 ‘안양파빌리온’이다. 시자 특유의 미니멀리즘 건축 미학을 체험할 수 있는 이 건축물은 직선이 거의 없는 유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 채광 효과에 의한 빛과 음영의 변화, 곡선으로 처리한 내부 벽면이 야기하는 안락하고 부드러운 느낌 등에서도 시자 작품의 디테일과 문맥을 읽을 수 있다.”
공원에 산재한 미술품을 구경하다가 작품 ‘전망대’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하더라.
“네덜란드 작가 MVRDV의 설치 작품이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기반으로 산의 구체적인 형태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예술에 자연을 극적으로 접목한 설치 작품이다.”
플라스틱 상자를 첩첩이 쌓아 만든 ‘안양 상자 집’은 어떤 의도로 만든 작품일까? 평범한 오브제로 독특한 대형 설치 작품을 조형했다는 점에선 기발했다.
“불교적 상상력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원(寺院)을 형상화했다고 보면 되겠다. 겹쳐진 플라스틱 박스들의 틈새로 스며드는 빛의 효과를 통해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절묘하게 표출했다. 밤에는 내부에 밝힌 불빛이 밖으로 흘러나가 신성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독일 작가의 작품인데, 대량의 재활용 음료수 박스를 독일에서 직접 가져왔다. 한국의 박스는 빛의 투과율이 좋지 않아서다.”
순전한 예술로서의 작품 외에 실용성과 현장의 기능성을 추구한 작품들도 있어 이채롭다. 가령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용도의 작품들이 그렇다. 이런 경향을 공공미술의 특징으로 보면 되나?
“그렇다. 공공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공익성을 구현한 작품이 많다. 시민들이 산책하는 장소에 필요한 요소를 문제의식을 갖고 찾아내 보완하듯이 설치 작품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대형 작품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역시 마찬가지 계열의 작품이다. 예술 작품이자 시민들의 통행로로 쓰이는 공간이니까.”
프랑스 작가의 작품 ‘발견’은 나무로 된 작고 허름한 원두막 형상이다. 이 작품은 시간 속에서 스러져 결국은 소멸할 것을 예감하고 만들었을까?
“냇가 흙 속에 묻혀 있던 쉼터 용도의 원두막을 발굴, 약간의 구조 보강을 해 복원했다. 유원지였던 과거의 역사성을 담은 작품이며, 이런 경향 역시 공공미술의 특징이다. 공원의 작품들은 지속적으로 보수해 관리한다.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건 어쩔 수 없고.”
한결 효율적인 관람 방법이 있다면?
“현재 코로나 상황이라 잠정 중단됐지만, 우리는 도슨트를 통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로 감상의 재미와 즐거움이 커지니까.”
도슨트의 해설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라는 얘기다. 그러나 소나무와 하늘과 구름까지 만끽할 수 있는 산속 야외 미술관이니 혼자라도 충분히 즐겁다.
전국의 벚꽃이 속속 개화를 시작한 가운데, 서울시가 ‘서울의 아름다운 봄꽃 길 166선’을 소개했다. 올해 서울 벚꽃은 2일부터 개화를 시작해 오는 8일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벚꽃길은 ▲가로변 꽃길 73개소(영등포구 여의동·서로, 광진구 워커힐길, 금천구 벚꽃로 등) ▲공원 내 꽃길 51개소(경춘선 숲길, 서울숲공원, 북서울꿈의숲, 서울식물원, 남산, 서울대공원 등) ▲하천변 꽃길 34개소(한강, 중랑천, 성북천, 안양천, 청계천, 양재천 등) ▲녹지대 8개소(강북 우이천변 녹지대, 양재대로 녹지대 등)로 총 166개소다.
특히 올해는 2020년에 선정된 노선(160개소) 중 공사 시행 등으로 통행이 불편한 곳 5개소를 제외한 155개 노선에서 11개 노선이 추가됐다. 벚꽃과 무궁화가 조화로운 경관을 연출하는 은평구 창릉천변, 튤립·수선화·수국·꽃양귀비 등 다채로운 꽃구경을 할 수 있는 서울대공원 산책로, 성동구 중랑천(응봉지구·송정지구), 벚꽃이 가득한 동작구 보라매공원·도림천, 서초구 도구머리 꽃길 등이 새로 선정됐다.
서울의 아름다운 봄 꽃길 166선은 서울시 홈페이지와 서울의 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영봉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은 "집 근처 가까운 서울의 아름다운 봄꽃 길에서 꽃잎 흩날리는 봄 풍경을 즐기시길 바란다"며 "코로나19로 2년간 억눌렸던 시간을 위로하고 일상 속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흘리 동백동산은 습지를 품었다. 비가 내려도 고이지 않고 그대로 땅속에 스며든 지하수 함량으로 사계절 보온·보습 효과가 높다. 제주에선 이런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을 곶자왈이라고 한다. 수풀을 의미하는 ‘곶’,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는 ‘덤불’에 해당하는 ‘자왈’, 곶자왈이다.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 동백동산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 1리에 있다.
겨울 동백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름부터 동백동산인 선흘마을에서는 동백꽃 보기가 쉽지 않다. 이곳이 보호림으로 지정되면서 모든 수목이 고스란히 쑥쑥 성장한다. 그에 비해 성장이 더딘 동백나무는 큰 나무들 틈에 가려서 햇빛을 보기 어려워 꽃 피울 여력이 없기 때문. 제주의 여느 동백꽃 군락지처럼 흐드러진 꽃동산은 아니지만 이곳 동백동산만의 태곳적 매력과 그윽한 은은함을 듬뿍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제주 남쪽보다 꽃피는 시기가 늦어서 3~4월에도 드문드문 동백꽃을 볼 수 있다.
선흘리 마을길을 앞에 두고 있는 입구로 들어가면 널찍한 방문자 센터가 친절하다. 안내 내용을 훑어보면서 동백동산의 숲과 습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챙기고 시작할 수 있다. 약 1만 년 전 형성된 용암대지 위에 뿌리내린 숲, 곶자왈.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길에 낙엽이 수북수북하다. 덩굴식물이 뒤엉키고 촘촘한 나무들로 겨울 숲은 여전히 푸르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의 숲이다. 숲길 군데군데 다양한 형태의 숯막터가 남아 마을 주민들의 살아온 생활상이 엿보인다.
밀림과도 같은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적막함에 슬그머니 두렵기까지 하다. 푸른 이끼로 뒤덮인 암석 사이로 아름드리나무가 굵직한 뿌리를 드러냈다. 얽히고설키어 서로 손을 잡고 팔짱을 낀 듯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척박한 땅에서도 자연의 숲은 이렇게 방법을 찾아간다. 맑은 새소리까지 들린다. 숲의 운치가 절정이다. 태곳적 제주의 풍경일까. 알 수 없는 신령스러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원시림 속을 헤매는 듯하다. 제대로 된 제주의 곶자왈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이곳은 제주 역사의 아픈 과거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제주 근대사의 뼈아픈 4.3사건 광풍이 몰아쳤던 도틀굴이 숲길에 있다. 당시 지역 주민들의 은신처였던 곳인데 발각되어 억울하게 현장에서 몰살되거나 모진 고문을 당한 피맺힌 역사의 현장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제주 동백은 4월이 더 붉다더라’라고도 말했다.
겨울이지만 사계절 피워내는 상록수림으로 숲은 울창하고 아늑하다. 걷다 보면 중간쯤에서 만나는 먼물깍.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의 ‘먼물’과 끄트머리라는 뜻의 ‘깍’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2011년 람사르 습지에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는 먼물깍 습지다. 생활용수나 가축들이 먹었던 물로, 용암대지의 오목하게 함몰된 부분에 빗물이 채워져 만들어졌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먼물깍은 희귀 생물들의 서식지로도 생태적 가치가 크다. 동백동산 습지는 먼물깍을 중심으로 0.59㎢ 지역이 2010년에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원시의 숨결 속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은 듯 먼물깍 주변은 온통 고요하다.
동백동산 숲길은 총 5.1km. 걷기에 따라 1시간 30분~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숲길이다. 동백동산의 나무는 그동안 이 터를 지켜온 선흘리 주민들의 집을 짓거나 생활 도구가 되어왔다. 습지에서 먹을 물을 긷고 일상을 해결하는 곳이었다. 그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던 생명의 못(池)이다. 이제는 이 모든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고민한다. 이곳에 가면 마을 공동체의 따뜻한 자연 지킴 모습을 보며 삼촌 해설사의 진솔한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흔히들 제주 하면 섬을 둘러싼 바다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제주 본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은 제주 땅에 자리 잡은 다양한 생태의 숲들이다. 제주의 숲은 이 터를 지켜온 현지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자부심이다. 그리고 여행자들에겐 치유라는 위로의 선물이 되어주는 곶자왈 숲이다. 사계절 울창한 숲 동백동산이 뿜어내는 청량한 생명력 또한 그렇다.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겨울 동백숲으로
제주의 겨울 여행이라면 호사스러운 동백꽃 구경을 하고 볼 일이다. 제주 서귀포 위미리에 가면 동백꽃 명소가 몇 군데 있다. 위미리는 제주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다. 동백꽃 성지라고도 할 수 있는 위미리 마을의 돌담길을 걷다 보면 머리 위로 동백꽃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바닥을 온통 붉게 물들인 듯 레드카펫을 이룬 동백꽃길도 쉽게 볼 수 있는 동네다. 제주에선 초겨울부터 초봄까지 붉은 동백을 푸지게 볼 수 있다.
SNS에서 제주 동백이라는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여러 군데의 동백 군락지가 나온다. 그중 동백수목원은 붉은 애기동백이 솜사탕처럼 타원형으로 붉은 꽃을 피운 모습이 아름다워 겨울이면 포토 스폿으로도 인기 있다.
남원읍의 위미리 동백군락지는 백여 년 전만 해도 황무지 돌밭이었다. 열일곱 나이에 이 마을로 시집 온 고 현맹춘 할머니가 제주의 모진 해풍을 막아내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으면서 현재의 위미리 동백군락지를 만들어냈다. 제주 고유의 토종 동백나무 숲과는 달리 부근의 동백수목원은 할머니의 증손자가 만들어낸 숲이다. 4대째 이어온 동백 사랑이다. 500여 그루의 애기동백을 심어 조성한 것으로 또 다른 제주 동백의 명소가 되고 있다.
애기동백과 토종 동백의 차이를 본다면, 토종 동백은 1월 엄동설한에 피어나 3월까지 피고 지고를 거듭하는 붉은 동백이다. 반면 애기동백은 11월부터 피우기 시작하는데 꽃 색감이 짙은 분홍빛이다. 뿐만 아니라 꽃 한 송이가 비장하게 통째로 툭 떨어지는 토종 동백에 비해 애기동백은 꽃잎을 분분히 흩날리며 떨어진다.
애기동백의 색감은 유난히 핑크빛이다. 러블리한 핑크빛 동백숲에서 웨딩 촬영을 하거나 연인들의 인생샷을 담기 위한 포즈를 곳곳에서 본다. 봄날처럼 온화한 기후 속에 행복 넘치는 공간이다. 판타지 동화 속에 나올 듯한 미로의 숲처럼 빽빽한 애기동백 숲을 누비다가 수목원 2층 전망대에 오르면 건너편에 펼쳐진 제주의 시원한 바다가 이국적이다.
붉은 애기동백이 올망졸망 피어 있는 동백숲. 꽃망울을 터뜨리는 11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지역에 따라 피고 지고를 달리하는 모습을 초봄까지 볼 수 있다. 겨우내 피어 있어 지긋하게 만날 수 있으니 제주의 겨울 여행 중 새하얀 눈 속에서 선홍의 동백꽃을 찾아가 봄 직하다. 이름부터 ‘겨울 동’(冬)에 ‘나무 이름 백’(柏)이다. 허나 꽃이 이미 속절없이 떨어졌으면 어떠랴. 동백꽃은 역시 낙화한 모습 아니던가. 풍성하게 만개했을 때의 멋과는 달리 선혈 낭자하게 뚝뚝 떨어져 있는 모습도 겨울 동백의 풍경이다.
제주 동백동산 & 제주 동백수목원
제주 동백동산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12
•문의처 : 064-784-9445
•이용 시간 : 09:00~18:00
제주 동백수목원
•주소 :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929(주차장 931-1)
•문의처 : 064-764-4473
위미동백나무군락(기념물 제39호) : 위미리 904-1
11월 이후 겨울 시즌 동안만 영업. 유선 확인 필요
모든 게 멈춘 듯하지만 바람결에 흐르는 숲의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과 뚝 떨어진 듯한 고요함은 적적하기까지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 깃든 한낮의 햇살은 방문객에게 여유로움까지 준다.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며 숲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온전히 자연에 맡기는 시간으로 이보다 편안한 곳이 있을지. 치유 인자가 가득한 편백 숲길과 삼나무 숲속을 내어주던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나선다. 그렇다고 보통 5시간 이상 마냥 걷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서귀포 치유의 숲은 무리하지 않고 꼬닥꼬닥(천천히를 뜻하는 제주어) 걸으며 숲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남짓이면 편백과 삼나무의 피톤치드를 받으며 숲의 기운을 온몸 가득 담을 수 있다.
숲길은 총 11km 길이로 10개의 테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약 1.9km의 ‘가멍오멍숲길’에서 나머지 9개의 길이 뻗어나간다. 그 길에 쉼터인 쉼팡이 군데군데 있어서 편백 의자에서 쉴 수도 있다. 피톤치드와 테르핀, 음이온 등이 발산되는 환경에 쉬면서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산림치유지도사의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예약만 하면 풍부한 숲 이야기와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약은 입장료만 내고 자유롭게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느영나영 힐링숲 탐방 예약과, 해설사와 동행하는 세 시간 정도의 궤영숯굴보멍 코스 예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숲길로 가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숲속에 야자매트가 쭉 깔려 있어서 걷기 편할 겁니다. 천천히 15분쯤 걸으면 쉼팡이 나옵니다. 편백나무 숲인데 그쯤에서 쉬어가는 게 좋아요.” 산림치유지도사의 말이다.
큰길 옆의 숲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가멍숲길이다. 중간쯤 가면 가베또롱숲길, 가멍오멍숲길이 나타난다. 요즘 길이 난 곳이라면 걷기 시합이라도 하는 양 그저 열심히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걷다가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간간이 쉬어가는 게 좋다고 일러준다. 60년 된 편백나무 숲 쉼팡의 긴 편백나무 의자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계속 오르다 보면 가뿐하다는 뜻의 가베또롱숲길을 지난다. 걸으면서 드러나는 숲의 풍광에 감탄사를 멈출 수 없다. 숲속에선 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깐 멈추어 두리번거리다 다시 걷다 보면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울타리 담인 잣성길을 옆에 끼고 지나는 숲길이 나타난다. 벤조롱 치유숲길은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상쾌하고 산뜻하다는 뜻의 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기 다른 숲을 걷는 듯한 느낌은 치유의 숲이 주는 매력이다. 각 숲길은 0.6~2km 내외의 길이로 조성되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숲길은 대체로 완만해서 오르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노약자는 물론이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의 나들이로도 문제없다. 잠수하던 해녀가 내뱉는 숨소리라 하는 숨비소리 치유숲길을 지나 오고생이길엔 돌이 많아서 더러 불편할 수도 있다.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의 제주어로 돌길을 밟는 발걸음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역시 제주답다는 생각이 든다. 돌길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고즈넉함이 보존된 오고생이 치유숲길을 나서면 눈앞에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원시림의 숲과 하늘과 바람과 햇살만으로 가득 찬 풍경, 청명하다. 숨통이 트이는 게 느껴진다.
이어서 가멍오멍숲길을 다 만나고 엄부랑숲길(‘엄청난, 큰’이라는 뜻)을 지나 힐링센터까지 가면서 100년 된 거대한 편백과 삼나무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잘생긴 삼나무 숲의 위용이 압도한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찬 숲이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길을 걸으며 오감을 열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하다. 이쯤에서 비로소 숲의 신비로움에 스며든 자신을 보게 된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 숲의 신령스러움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이다.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자연이 주는 위안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숲 쪽으로는 군데군데 작은 오솔길이 있어서 숲속으로 들어가 파묻혀봐도 좋을 듯하다. 옆으로는 2km 정도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다 오른 곳에 산도록(‘시원한’이란 의미의 제주어) 치유숲길이 있다. 숲속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참여자들의 맨발 족욕이나 산림교육도 이루어지는 곳이다. 명상과 복식호흡을 하며 차분한 시간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산책로에는 치유의 샘이 흐르고, 숲길 쪽으로 한참 걸으며 시오름 정상에 올라 한라산을 볼 수도 있다. 상쾌함의 최고조다. 경관 좋은 하늘바라기 숲길을 걸어보는 여유도 가져볼 만하다. 그러고는 아무 데나 멍하니 걸터앉아 숲이 일렁이며 내는 바람 소리에 고단했던 세상의 먼지들이 씻겨나가는 듯한 경험을 할 것이다.
숲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소록 숲 주변에 자리 잡은 힐링센터는 주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건강측정을 하거나 다담(茶啖)을 나누며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때때로 개장이 불확실하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자리한 치유의 숲은 해발 320~760m에 위치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높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국영목장이었던 이곳에 100년 전쯤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 엄부랑 숲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있다. 그들마저 떠난 후 척박했던 삶의 흔적이 사라지고 덤불과 숲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런 숲의 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해 지금은 편백과 삼나무 군락으로 치유의 숲이 되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과 조류, 야생동물들과 나무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산림의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복합 휴양형 치유 공간인 셈이다. 하루 적정한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무장애 데크 시설 덕분에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열린 관광지’로도 지정되었다.
차롱 바구니에 담긴 제주의 로컬푸드
숲을 내려오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차롱밥상이 기다린다. 차롱은 제주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제주의 전통 바구니다. 주로 밭에 나갈 때나 제사음식 담을 때 통풍이 잘 되어 신선하게 음식을 보관하던 용도였다.
차롱 도시락은 호근마을 주민들이 숲과 마을의 상생을 꿈꾸며 프로그램에 접목했다.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당일 만든 도시락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각자 배정된 힐링하우스의 편백 테이블에 차롱치유밥상이 차려져 있다. 즉석에서 담아주는 따끈한 국과 김치, 그리고 동고량이라는 밥 차롱 바구니에는 한라산 표고버섯전, 빙떡, 브로콜리, 채소와 과일꽂이, 톳 주먹밥, 곰치 쌈밥, 고구마 등 푸짐하면서도 정성 가득 담긴 건강한 음식이 가득 차 있다. 제주의 음식문화와 향토의 맛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산 4
•문의처: 064-760-3067
•운영시간: 평일 매일 08:00~17:00 (하절기) 4~10월 18시, 매일 09:00~16:00 (동절기) 11~3월 17시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산림치유 프로그램: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차롱치유밥상: 3일 전 예약해야 가능. 1인용 차롱치유밥상 이용금액은 1만 7000원. 계절이나 식재료 또는 행사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 064-760-3067〜8
산촌 체험의 범위는 넓지 않고 의외로 단순하다.
① 임산물 채취 및 요리 : 알밤 줍기, 두릅 따기, 산양삼·버섯·산나물 캐기
② 숲길 탐방 : 숲 해설 및 삼림욕, 숲 놀이터, 숲속 음악회
③ 나무공예 : 목공예품 제작, 나뭇잎 조각 및 프린팅
이 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산촌 체험은 숲길 탐방이다. 숲길 탐방 중 할 수 있는 체험은 딱 두 가지다. 걷기와 머물기. 세상에 이렇게 쉬운 체험은 없다. 이 중 숲에 그냥 머무는 것을 최근의 신조어로 ‘숲멍’이라고 한다. ‘숲멍’은 사람이 휴양림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차원 높은 힐링이다. ‘숲멍’의 명소를 몇 군데 소개한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숲멍’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전나무숲길을 추천하겠다. 강원도 평창의 월정사, 경기도 포천의 광릉수목원, 전라북도 부안의 내소사를 흔히들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길이라고 부른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수도권에 위치한 광릉수목원 전나무숲이다. 500년 넘게 왕실의 능원으로 관리돼온 덕에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규모가 가장 크다.
월정사 전나무숲은 천천히 30분 걷기 코스로서 규모도 적당하고 옆으로 오대천의 맑은 물을 끼고 있어 풍광 또한 다채롭다.
내소사 전나무숲은 이들 중 규모는 제일 작지만, 차에서 내려 내소사로 향하는 진입로를 겸하고 있어서 동선 손실이 없는 가장 효율적인(?)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전나무, 소나무, 편백나무숲길 등 다양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것을 삼림욕이라 하여 목욕에 비유한 것은 나무가 사람 몸에 좋은 피톤치드를 내뿜기 때문이다. 피톤치드를 마시거나 피부로 접하면 살균 작용을 통해 장과 심폐 기능이 좋아지고 스트레스 또한 해소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좋은 피톤치드의 뜻풀이는 의외로 살벌하다. 피톤(phyton)은 식물체의 최소 단위를 말하며 치드(cide)는 죽인다는 뜻을 지닌 접미사다. 따라서 나무가 사람 좋으라고 피톤치드를 뿜어댄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곰팡이 등 병원균이나 해충 따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독성 물질이 마침 사람에게 약이 됐을 뿐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우리는 나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산림이 체험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피톤치드만이 아니다. 알밤, 두릅, 산양삼, 버섯, 산나물 등 다양한 임산물을 얻어갈 수 있다. 물론 임산물을 얻어가는 체험에는 제약이 많이 따른다. 우선 산림보호법에 따라 산나물을 포함한 임산물 채취에는 법적 제재가 따른다. 또한 대개의 유실수는 주인이 따로 있는 사유물이므로 함부로 채취했다가는 절도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한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산촌 체험이란 것이 일정 금액을 내고 제한된 시간 동안 알밤 줍기, 두릅 따기, 고구마 캐기를 해보는 정도에 그친다.
숲길 탐방과 임산물 채취 외에 다른 한 가지의 산촌 체험은 나무공예다. 나무를 재료로 공예품을 깎거나 조립해보고, 나뭇잎 등 부산물을 활용하여 조각을 하거나 프린팅을 해보는 체험이다. 주로 유치원과 초등생을 위한 체험일 것으로 지레 한정짓기 쉽지만 나뭇잎 프린팅은 의외로 성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으며, 특히 나뭇잎에 음각으로 그림을 새겨 넣는 나뭇잎조각은 최종 성과물이 높은 가격에 팔려나가는 등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국가 자산 활용 측면의 산촌 체험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산촌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이라는 것이 매우 한정적이며, 관점에 따라서는 농촌 체험과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산촌에 대한 관심의 문제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인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국민 상식이다. 국토의 70%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시각을 달리해서 바라보면 국가 자산에 대한 방치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국민들에게 치유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숨겨진 자원으로서 산촌을 바라보며 산촌 주변 관광 자원을 매력 있는 체험 콘텐츠로 발굴해야 한다. 그 시작은 산촌 체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될 것이다. 산촌 및 산촌 체험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산림청과 임업진흥원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길 권한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귀에 익숙한 노랫말에 나오는 산 너머 남촌은 산촌일까?
산촌일 가능성이 높지만 산촌이 아닐 수도 있다. 산자락 마을일지라도 개간을 통해 넓은 경지를 품고 있다면 산촌이 아니다. 또한 사람이 살기 좋아져 인구가 많아진다면 이때도 산촌은 아니다.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산촌의 구체적인 법적 정의가 대통령령(산림기본법 시행령 제2조)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제1호. 행정구역면적에 대한 산림면적의 비율이 70% 이상일 것
제2호. 인구밀도가 전국 읍·면의 평균 이하일 것
제3호. 행정구역면적에 대한 경지면적의 비율이 전국 읍·면의 평균 이하일 것
우리가 정서적으로 인식하는 노랫말이나 서정시 속의 산촌과 산림기본법에서 정하는 법적인 산촌은 이렇게 다르다. 지역 사례를 통해 산촌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가지 법적 조건 충족돼야 산촌
인제, 양구, 화천은 강원도 북부 내륙에 자리한 산골 중의 산골이지만 이곳에도 산촌이 아닌 곳이 있다. 펀치볼로 유명한 양구군 해안면은 면 전체가 너른 분지를 형성하고 있어서 산림면적 비율이 70%에 미치지 못한다. 3개 군의 나머지 14개 읍면은 모두 산촌이다.
김제는 경지면적 비율, 즉 농사짓는 땅이 많기 때문에 산촌이 아닌 농촌이다. 전북 김제시의 1읍·14면·4동 중 산촌은 금산면 한 곳이다. 금산면은 모악산을 포함하고 있어서 예외적으로 산지 비율이 높다.
그럼 섬 지역도 조건만 충족된다면 산촌일까?
물론 그렇다.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와 주변 부속도서를 묶은 행정명칭이 전남 신안군 흑산면인데, 섬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데다 경지는 적고 인구밀도도 낮아 산촌에 해당한다.
신안군 흑산면뿐 아니라 영광, 진도, 완도, 고흥, 여수, 남해, 거제, 통영 등에는 이처럼 바다에 뜬 산촌이 흔하다. 다도해를 품고 있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 해당하는 얘기다.
정리하자면 오지가 곧 산촌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섬도 산촌이다.
오지가 곧 산촌이 아닌 경우도
통상적인 인식과 실제가 다른 것은 산촌의 정의뿐만이 아니다. 산촌 체험의 범위 또한 모호한 것은 매한가지다.
산촌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이란 어떤 것이며, 이런 체험을 통해 방문객과 산촌민은 각각 어떤 이득을 얻게 될까?
우선 산촌 체험의 대강을 살펴보자.
① 임산물 채취 및 요리 : 알밤 줍기, 두릅 따기, 산양삼·버섯·산나물 캐기
② 숲길 탐방 : 숲 해설 및 삼림욕, 숲 놀이터, 숲속 음악회
③ 나무공예 : 목공예품 제작, 나뭇잎 조각 및 프린팅
이들 체험의 공통 요소를 꼽자면 산림이다. 산림은 국토환경을 보전하고 임산물을 생산하는 기반으로서 국가발전과 생명체의 생존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산(산림기본법 제1장 제2조)이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기꺼이 체험 소재로 활용하는 활동이라면 그 결과는 어떠한 형태로든 체험 당사자에게 이득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때 체험 당사자란 체험자인 방문객과 체험 제공자인 산촌민을 두루 아우른다.
이들 두 당사자를 주체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산촌 체험을 정의하자면, ‘산촌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치유와 즐거움을 제공하고 산촌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산촌 지역의 진흥을 가져다주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 산촌이 진흥된다는 것은 산촌의 소득이 늘어나고 산촌주민의 복지가 증진되는 것(산림기본법 제8조)을 말한다.
시야를 넓혀 산촌 체험을 바라볼 경우, 체험자에게 치유와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넘어 귀산촌의 전초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한국임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귀산촌 준비의 8개 단계(① 귀산촌에 관심 갖기 ② 산촌 체험 ③ 가족 동의 ④ 작물 선택 ⑤ 기술 습득 ⑥ 정착지 물색 ⑦ 주택·임야 매입 ⑧ 산림 경영계획 수입) 중 두 번째 단계가 산촌 체험이다. 다시 말해 산촌 체험은 자신이 귀산촌 생활에 적합한지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므로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귀산촌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등 현장 실습을 해보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산촌 체험의 부가적인 이득이 될 수 있다.(강원도 평창은 군 전체가 산촌이지만 고랭지 채소를 임산물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산촌의 소득과 복지 증진이 과제
산촌 체험이 활성화되면 체험자(방문객)도 좋고 체험 제공자(산촌민)도 좋은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산촌 체험이냐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임산물 채취, 숲 탐방, 나무공예 등이 산촌 체험의 대표적인 형태이지만 이들은 태생적으로 농촌 체험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비근한 예로 나물을 산에서 캐면 산나물로서 임산물이지만 밭에서 길러 수확하면 농산물이 된다. 도라지나 곤드레를 밭에서 캐보고 요리를 해보는 체험은 산촌 체험일까? 농촌 체험일까? 감자와 고구마는 분명한 농산물이지만 산자락 밭에 심은 감자나 고구마를 캔다면 과연 농촌 체험일까? 산촌 체험일까?
이처럼 농촌 체험으로부터 산촌 체험을 골라내는 것은, 농장에서 사육하는 멧돼지가 산돼지냐 집돼지냐를 가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산촌생태마을이라 알려진 곳을 찾아가 보면 마을의 운영 주체는 대부분 영농조합법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산촌 체험은 별도의 입지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산촌 체험은 장소가 아니라 재료를 기준으로 정의 내려야 할 듯하다. 다시 말해 산촌에서 진행하는 체험이 아니고 산림자원을 재료로 하는 체험을 산촌 체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돼지에 비유하자면 집에서 기르더라도 멧돼지는 재료(?)를 기준으로 그냥 멧돼지로 보자는 것이다.
자, 이제 재료를 기준으로 산촌 체험을 다시 분류해보자.
① 임산물로 분류되는 은행, 밤, 잣, 더덕, 도라지, 각종 나물, 구기자, 오미자 등은 자연산이 아닌 밭작물일지라도 산촌 체험의 대상으로 본다.
② 산촌 지역이 아닌 곳에 조성된 숲과 가로수에서 삼림욕 등을 하는 것도 산촌 체험으로 본다.
③ 목재를 체험 소재로 하는 목공예품 제작과 나뭇잎 조각 및 프린팅 등도 산촌 체험으로 본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있는 논의 과정과 그에 따른 정교한 정의가 필요하다. 산촌 체험을 즐기는 사람들의 과제가 될 것이다.
숲에 들면 차분해진다. 그리고 푸근하다. 나무 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은혜롭다. 더 바랄 것 없이 관대해지기까지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밀린 숙제 하듯 허둥대며 떠밀려온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느긋하고 풍요해지는 마음이다. 걷기만 해도 지지고 볶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하다. 차분해지고 감사함이 생겨난다. 숲이 주는 고마움, 풍성하게 누린 날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리 온 것 같진 않았다. 고갯길을 넘고 간간히 조붓한 길을 주춤주춤 달리기도 했지만 자동차는 어느새 나남수목원 앞에 다달았다. 나남수목원은 한평생 책을 만들며 살아온 사람의 인생을 전해주는 숲이다. 경기도 포천의 산비탈에 '세상에서 가장 큰 책, 나남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숲에 들었다.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에 수목원의 검둥개가 꼬리를 흔들며 앞장선다. 느릿느릿 두리번거리면서 사진도 찍느라 늦장 부리면 가다가 뒤돌아서 한참씩 멈춰서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일루 와요, 나만 따라오면 된다니까' 하는 표정이다. '알았어, 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수목원의 개와 노닐며 한적한 숲길을 걸었다.
책과 나무의 숲에 살다
‘나와 남이 어울려 사는 우리’라는 포부를 담고 시작한 나남출판사의 조상호 회장이 2008년부터 일군 나남 수목원. 포천의 왕방산 산자락에 20여만 평의 땅에 만들어낸 숲이다. 이런 숲을 개인이 가꾸다니... 언감생심 부러워할 수조차 없지만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이 생각만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짐작이 된다. 적어도 고된 노동과 긴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수목원의 아름다움은 역시 아침 무렵이다. 숲 사이로 유난히 도드라지는 빛이 눈부시다. 온누리에 아침빛을 받은 숲의 투명함 또한 참 이쁘다. 숲길에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자연스럽게 무더기를 이루어 피어났고 꽈리꽃의 붉은빛이 선명하다. 산책로 옆으로 5리쯤 된다는 실개천이 촉촉하게 흐른다. 숲길을 걸으면서 와, 좋구나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굽이진 산속이다 보니 여타 수목원처럼 주변과 입구에 음식점이나 카페도 없다. 내부에 놀이 공간이나 즐길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흔한 포토존이나 무슨 촬영지였다는 표지판도 없다. 인위적 기교 없이 수수한 숲은 마냥 자연스럽다. 온전히 숲을 받는 느낌이다. 그저 숲이기만 한 게 이렇게나 고맙구나 싶다.
책 박물관으로 이르는 길의 연못에 푸른 하늘이 풍덩 빠져 있다. 연못 앞에서 세찬 바람에 머리를 날리는 듯한 여자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짐바브웨이의 조각가 Witness Bonjisi의 A Windy Day라는 작품이라는데 그 풍경 속에서 잘 어울린다.
수목원 중턱쯤에 있는 책 박물관에 오르니 딱 그 자리가 제 자리인양 앉혀져 숲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이 편안하고 멋스럽다. 안이 훤히 보이는 3층 건물에 가을볕이 에워싸고 숲이 둘러있다. 숲지기인 조상호 회장이 나남출판사를 통해서 평생 만들어 낸 책이 담겨있는 곳이다. 그리고 책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책 박물관, 이 또한 책의 숲이다. 나남출판사에서 40년간 3500여 권의 책을 펴낸 숲지기 조상호 회장이 직접 심은 나무가 10만여 그루라 했다. 이젠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이라 일컫는 나무를 키우는 일에 파묻혀 있으니 더 할 일이 있을지.
서가 벽면에는 몇 해 전 나남출판 40주년 기념으로 펴낸 조상호 회장의 '숲에 산다' 포스터가 멋지게 붙어 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책과 나무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나남에서 펴낸 책으로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책으로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등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이러한 것들을 들여다볼만한 공간이다. 특히 3층에는 책과 인연인 된 사람들이 모여 서가를 채워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숲과 책에 둘러싸인 날의 행복
북카페는 널찍하고 시원하게 트여서 그저 여유롭다. 한적한 실내엔 군데군데의 책장이 인테리어 몫을 다한다. 세미나룸인 듯한 아늑한 공간도 따로 있어서 의미 있는 모임을 계획할만하다. 북카페 안과 테라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데크에 앉아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멍 때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1층 북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숲, 눈앞에 꽉 찬 짙푸른 숲이 압도한다. 숲이 주는 힐링, 세상 더 할 말을 잊는다. 숲을 보며 누군가가 말했다. "초록빛에 왜 그리 환호하지?" 그럴 리가, 생생한 자연의 색감만으로 눈앞에 있으니 감동이 아닐지. 가을 색으로 물들면 또 그것으로 미칠 듯 반할 것이다. 나남 수목원 저편의 눈 내린 자작나무 숲의 풍경은 또 어떨지 상상해 보게 된다. 숲을 앞에 두고 보니 철마다 달라지는 나남 숲의 풍경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실이다.
북카페의 직원에게 조회장님에 관해 궁금해 했더니 지금 마침 숲에서 수목 전지작업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직접 나무를 가꾸고 관리하느라 늘 바쁘시다며 숲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면서 연락해보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벌써 산 능선을 훌쩍 넘어가서 너무 멀리 계시어 만나보기 어렵겠다는 것이다. 괜찮다.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숲 속에서 나무를 가꾸는 숲지기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일, 전망 좋은 인수전과 자작나무 숲을 지나 언덕을 올라 산을 넘어가 더 많은 숲을 보는 일을 남겨두는 것, 어찌 한두 번으로 숲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길 다시 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들었다.
그냥 숲과 책에 둘러싸인 채, 서늘한 마젠타 빛으로 가득 채운 레몬 블루베리 에이드 한잔 앞에 놓고 나니 세상 더 바랄 게 없다. 감성도 깊어지는 시절이다. 이 계절에 이만한 여행 없다는 생각에 숲을 찾은 자신에게 뿌듯하다.
◎가볼 만 한 곳 1. 술이 익어가는 느린 마을, 산사원
포천에 가면 술 익는 마을 산사원을 빠뜨릴 수 없다. 이 계절의 따사로운 햇볕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두 팔 벌려 안아도 모자랄 커다란 술독 500여 개에 내려앉은 햇살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쏟아지는 볕을 받으며 술이 익어가는 포천 산사원의 세월랑에 들면 느긋하게 계절의 풍류를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술독 사이를 걸으며 저만치 한시름 밀어내고 술 향기만으로도 취하고픈 시절이다.
포천의 느린 마을 양조장 배상면주가는 입구에 술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그곳을 지나 '느린 마을'이라는 문패가 높이 매달린 정원으로 먼저 마음이 간다. 약 4천 평 규모의 산사원에는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술항아리 행렬들이 맞아주고 있다. 전통주들의 숙성 공간 '세월랑'이다. 한 켠의 풀밭 근처 '줄행랑'에는 그 옛날 술이 만들어지던 모습과 술통을 매달고 배달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산사원 저편으로 펼쳐진 너른 정원에는 소쇄원의 광풍각을 본뜬 취선각이 마주 보인다. 건너편으로 2층 석조 누각이 멋스러운 우곡루, 바로 옆으로 경주 포석정과 같은 유상곡수가 있으나 코로나19가 방문자의 만고 시름 잊고 취해도 좋을 한나절 풍류를 온통 막아버린다. 그리고 전통술에 빠질 수 없는 부재료 누룩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부안당. 누룩의 미생물을 이용해서 술의 주원료 쌀과 곡류를 분해해서 알코올을 생성하는 과정. 한 줄기 빛으로 술의 향기와 맛을 내는 부안당의 누룩을 비춘다.
이제 그 과정들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술을 빚어낸 우곡 배상면 선생의 양조 철학을 살피고 우리 술의 역사를 풀어낸 박물관에서 술 문화의 면면을 살피는 시간이다. 전통주의 규제가 심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고유의 술을 살리기 위한 그 분만의 노력을 본다. '백번을 시도하고 천 번을 고쳐라' 누룩 왕으로 불리던 배상면 선생의 기록실에서 술을 향한 일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볼 만 한 곳 2. 허브 마을에서 만난 산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허브아일랜드 위로 푸른 하늘이 빼꼼하다. 지중해식 건축이 얼핏 이국적이다. 허브 정원, 허브 식물박물관, 허브힐링센터... 무수한 허브 이야기로 가득한 '어쨌든 완전히 허브나라에 들어왔습니다'... 하는 듯하다.
언덕 위 스카이 허브팜에 오르면 핑크 뮬리로 핑크 핑크 하다. 잔털처럼 피어나 너른 산 아래 밭에 함께 모여 뭉쳐있는 핑크빛 물결의 군락들, 핑크 뮬리는 개화기간이 길다. 아직도 산속에 갇힌 듯 조용히 피어나 환하다. 숨차게 올라 땀 식히며 핑크 뮬리에 담뿍 빠져볼 수 있다.
이곳은 허브관광농장으로써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것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볼거리는 물론이고 갖가지 체험과 먹고 자고 사색하고 힐링하는 것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서울을 떠나 멀리 산속으로 들어오니 강원도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곳은 경기도 포천이다. 허브 숲에 드니 심리적으로 온몸이 이완되는 듯한 느낌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숨통을 트이게 하는 곳이다. 쭉 돌아보고 나오기 전에 허브마을 깊숙이 들어가 보면 숨겨진 듯 나타나는 곳, 거기 산타마을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저 푹 빠져서 즐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름의 격한 취미생활일 경우 부부라면 대부분 다른 한쪽에서는 뜯어말리는 걸 본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한다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30년 넘도록 부부가 수집한 2만여 점의 예스러운 부엌세간이 전시된 덕포진 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난 김홍선 관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애초에 우리는 아내가 더 앞장섰지요. 이런 취미로 말년의 재미를 책임진다고 내게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니까요. 하하... 이것 봐, 지금 고생은 나만 하잖아요."
고생이라고 말했지만 젊었던 시절의 취미로 이제는 느긋하게 누리는 부엌 전시관 앞에서 김포 덕포진의 가을 숲을 바라보는 그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장안평, 인사동, 황학동은 물론이고 직장 출장길에서도 찾아갔었고, 소문 따라 지방으로 쫓아가고 미친 듯이 모았거든. 점점 늘어나면서 창고를 임대해서 보관해 왔지요. 그러다가 자꾸 늘어나니까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지. 처음엔 지금의 이 건물을 지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짓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런데 창고에 보관하느라 지출되는 창고비용이 은행 이자와 별다르지 않아서 지었습니다.
사실 이런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머리 아픈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들 중엔 부자도 있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살면서 돈이 생기면 사러 다닙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못 말려요. 마약은 격리라도 시킬 테지만 이런 취미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더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제 그거 샀어야 하는데 하면서 꿈에도 나타나는 통에 미친다니까요."
담백하고 따뜻한 언어 외할머니
그렇게 모아지고 쌓인 2만여 점의 생활용품들이 박물관 1층을 빼곡히 채웠다. 우리네 외할머니의 부엌에 있었음직한 무쇠솥부터 채반, 술을 내리던 소주고리, 맷돌, 도무지 용도나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생활도구들이 방대하다.
"이건 도둑시루라고 하지, 시어머니가 무서우니까 몰래 먹으려고 요렇게 만들어진 떡시루인데... " 설명만으로도 재미있다. 귀중한 식수원이었던 우물통, 김치 양념 가는 돌확이나 자배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호미와 가래, 갖가지 모양의 무쇠화로, 디딜방아, 맷돌과 어처구니, 주꾸미랑 문어 잡는 도구, 양푼, 참빗,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두레반의 정다움... 도구들과 연결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온갖 부엌 살림살이들이 지방 특색이나 용도별 삶의 형태에 따른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하다.
"연가라고 아는가" 묻기에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이런 노래를 흥얼댔더니 '연기의 집'이라며 투구처럼 생긴 옹기를 가리킨다. 이름 한 번 이쁘다. 그 틈에서 꽤 큰 장독 옆구리를 한 땀 한 땀 꿰맨 모습이 지금으로선 새로운 디자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일회성이 판치는 세상에 꿰매서 썼던 장독의 세월을 그려본다. 천년 이상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옹관, 물때가 끼지 않는 숨 쉬는 옛 옹기의 현상, 은행잎으로 섬세한 무늬를 놓은 토기 장인들의 섬세함, 옹기장이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었다.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만나기 어려운 아주 오래 전의 생활용품 전시장 속에 덕지덕지 외할머니의 일생이 담겨있었다. 정겹다. 조상들의 삶 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시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부엌세간들 속에서 속정 깊은 외할머니를 그려보고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부엌 세간들이 품어낸 세월의 가치
"이곳에 온지는 5~6년 됐나? 서울 사직동 한옥에서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도 서울과 덕포진을 오가고 있어요. 원래 마당의 정원 관리는 아내가 하기 때문에 바삐 오가죠. 올해는 덩굴장미를 많이 심어서 텃밭을 많이 점령했어요. 이쪽에 덕포진 진지가 있고 강도 보이고 풍광이 좋아요. 평화누리길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긴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카페로 용도 전환을 하라고, 요리교실로 활성화하라고 갖가지 조언들을 하는데 그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찾아오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볼 수가 없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일이 녹록지 않음이 짐작된다. 젊은 시절의 취미가 노후에 소일할 일이 되는 것만큼 이상적인 사례가 있을까만 교류와 관계성의 현실이 배제되면 재미가 덜할 수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주어야 할 텐데 무심함에 때론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자부심만은 만만찮다.
"차라리 사람들 말대로 이 건물에 카페를 하거나 임대를 주면 더 여유로울 텐데 이건 개인이 할 짓이 아니라니까. 지역이나 국가에서 해야지. 박물관이라고 어디서 지원이 있는 줄 아는데 지가 좋아서 하는 걸 어디서 도와줄 리가 있나. 팔아야 뭐가 나올까 지금은 생기는 것은 별로 없어요. 아무리 좋은 문화 콘텐츠라도 중요한 자료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유층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민속박물관에 가면 전시된 물건은 다 양반 위주지 여기처럼 서민들 용품은 별로 없거든요.
공유 부엌의 사용도 가능
전시관 2층은 음식 체험실이다. 잘 갖추어진 조리대와 넓은 홀은 쿠킹클래스의 현장이란 게 단박에 연상된다. 이곳 체험실은 공유 부엌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그동안 강사를 초빙해서 전통 장류나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 김장철엔 김장 담그기, 제철음식으로 감자전이나 호박요리, 샌드위치나 떡볶이, 중국을 비롯 동남아 요리 등 시대와 나라 구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진행해 왔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주춤했으나 경기도 김포시 보조사업으로 희망의 밥상 펼치기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도 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화상을 통한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밥상이 주는 위로와 화합으로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물론 평소에도 함께 한 끼 식사를 하며 쉼을 얻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엔 박물관 마당에서 로컬푸드 장마당이 열리곤 했다. 지역주민들이 가꾼 신선한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무료 요리교실이 열렸었다. 가족요리대회, 어린이 요리교실 등이 때때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젠 한적하다. 알고 보면 따뜻한 놀이마당이란 걸 아는 사람만 안다.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건네며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이어질 겨울의 멋을 슬그머니 자랑한다. 박물관 주변의 자연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어 늘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멋도 공유한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이런 풍경을 내다보면서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도 제공된다는 것.
“방역 수칙 강화로 모임들이 편치 않으니까 서울에 사는 우리 친구가 주말이면 놀러 와요. 다른데 가면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긴 조리실도 있고 마당에 가마솥도 걸려 있고 야외 천막 텐트도 있으니 여기서 마음껏 쉬며 먹고 숲에도 들고 시간 보내기 좋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
“가끔씩 때가 되면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어요. 여행 관련 모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본으로 몇 명씩 모여서 먹을 것 사 가지고 와서 요리해 먹고 함께 모여 토론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편히 놀다가 갑니다. 3층엔 카페 공간도 있으니까."
외할머니 부엌의 느릿한 정서에 잠기다
하루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이곳이 공유 부엌의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소액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각자 먹을 재료만 사 와서 요리도 하며 느릿한 템포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옛 마을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외할머니의 부엌, 방학이면 놀러 갔던 외가댁의 편안한 정취를 맛보고 싶을 때 떠올릴 만하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로컬푸드로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부엌 조리대엔 대부분 텃밭에서 조달하는 식재료들이다. 단호박은 박물관 옆 채마밭에서 자란 수확물이다. 앉은뱅이 우리밀로 만든 수제비와 단호박전은 다시 한번 찾아가 맛보고 싶게 한다.
외할머니 부엌의 푸근함 속에서 따뜻한 위로의 소리를 그는 날마다 듣는다. 인적이 드문 박물관 들꽃 정원에 나와 자연의 변화에 흠뻑 빠지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도시에서 맛보지 못할 평온한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있을지. 뚝 떨어진 김포의 덕포진 숲길 옆 외할머니 부엌의 김홍선 관장은 자발적 유배와도 같은 잔잔한 사색의 시간에 묻혀 산다.
평소와 다름없는 주말, 코로나19 탓에 외출이 조심스럽다. 집에 있자니 무료하기 그지없다. TV를 켜니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이 나온다. 2명씩 짝을 이뤄 각자 다른 코스를 걸으며 쓰레기를 주운 뒤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김종민이 1시간 넘도록 약속 장소에 등장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해변에 방치된 엄청난 쓰레기 더미를 혼자 치우느라 발이 묶여버렸던 것. 유통기한이 18년 지난 과자 봉지까지 발견됐다. 쓰레기가 이렇게나 많다니.
어릴 때 ‘선생님이 교내 정화 활동을 시켜서’,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같은 이유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운 적이 있다. 하지만 따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닌 적은 없다. 길거리에서 많은 쓰레기를 마주하지만 내가 버린 게 아니라 굳이 나서서 줍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본 예능 프로그램을 계기로 ‘쓰레기를 주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그 활동은 ‘플로깅’(Plogging)이었다. 플로깅은 이삭줍기를 뜻하는 스웨덴어 플로카업(Plocka Up)과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하면서 쓰레기 줍는 활동을 뜻한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년 전부터 ‘줍깅’(줍다+조깅), ‘쓰담’(쓰레기를 담다) 등으로 부르며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배우 김혜수와 이시영 같은 유명 연예인들도 플로깅에 동참하고 있다. 비싼 장비도 필요 없고, 그저 봉지 하나와 튼튼한 팔다리만 있으면 된다.
이거 생각보다 운동되네
7월의 마지막 토요일, 자발적으로 첫 ‘플로깅’에 나섰다. 오후 4시쯤 서울 관악구 장군봉 근린공원에 도착했다. 쓰레기 담을 봉지와 물을 준비했다. 쓰레기를 주울 때 나뭇가지 두 개로 젓가락을 만들어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장갑이나 집게를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공원 입구서부터 쓰고 버려진 마스크를 발견했다. 벤치 주변엔 담배꽁초가 수북했고 숲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음료수 캔, 과자 껍데기, 물티슈 등 다양했다. 방석대신 깔아둔 종이 박스와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묶어둔 봉지도 있었다. 심한 냄새와 함께 파리가 날아다녔다. 아마 박스를 깔고 앉아 ‘무언가’를 먹은 듯했다.
결국 음식물이 담긴 냄새 나는 비닐봉지는 치우지 못했다. ‘누군가 음식물을 먹지 않았더라면, 음식물을 먹고 제때 치웠더라면, 음식물과 비닐을 분리라도 했더라면.’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 어릴 적 내 방을 대신 치우던 엄마의 잔소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2시간가량 주운 쓰레기는 준비해간 20L 봉지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플로깅은 일반적인 조깅보다 열량 소모가 크다. 걷다가 쓰레기가 보이면 다리와 허리를 굽히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도 반복돼서다. 집에 가만히 누워 있을 시간에 밖으로 나와 운동을 하고 쓰레기를 줍는 일석이조의 시간을 보냈다.
쓰레기를 위한 쓰레기까지 조심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플로깅에도 도전했다. 먼저 쓰레기를 주울 나무젓가락을 하나 챙겼다. 물과 쓰레기봉지는 근처 편의점에서 살 생각이었다. 이날은 비영리단체 이타서울에서 주관하는 ‘데이터 플로깅’에 참여했다. 활동 중간중간 쓰레기를 주운 위치와 종류를 지정된 인터넷 사이트에 기록하는 식이다. 어떤 쓰레기가 어디서, 얼마나 나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오후 2시 한강공원에서 데이터 플로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플로깅 활동을 계기로 초면인 라유림 씨와 함께 쓰레기를 주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보통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기 마련인데,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 하나로 모여 함께 쓰레기를 줍다니 꽤 신선했다.
유림 씨는 쓰레기를 주울 도구인 나무젓가락, 옷을 구매하고 받은 종이 쇼핑백, 물을 담은 텀블러를 챙겨왔다. 편의점에서 살 생각으로 달랑 나무젓가락만 들고 온 게 창피했다. 라 씨는 “플로깅을 위해 최대한 갖고 있는 물건을 활용하려 했다”고 말했다. 쓰레기 담을 봉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사고 쓰레기가 추가로 나온다면 그 의미가 흐려진다는 설명이다. “쓰레기를 위해 쓰레기를 만드는 게 불편했다”고 말하는 유림 씨가 대단해 보였다. 또 “필름 사진 찍는 게 취미지만 사용한 필름도 결국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이 취미를 오래 할 수 없을 것 같아 고민”이라며 취미까지 환경에 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즐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주운 쓰레기를 공원 내 쓰레기통에 재활용품과 일반 쓰레기로 나눠서 버린 후 활동을 마무리했다. 기록한 데이터를 살펴보니 담배꽁초가 가장 많았다. 실제로 몇 걸음 옮기지 않아도 조금만 몸을 틀면 꽁초들이 모여 있었다. 틈새에도 숨어 있어 자세히 봐야 했다. 벤치나 한강 둔치 편의점에서 음식을 먹고 버린 빈 플라스틱과 비닐도 많았다.
플로깅의 유행이 사람들을 더욱 독려하는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쓰레기를 줍는 일이 유행이어서 다행이다. 두 번의 플로깅으로 지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부모님
플로깅을 마친 날 저녁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평소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쉽고 편하게 운동할 수 있을까 관심이 있었던 터라 플로깅을 소개하기로 했다. “엄마, 요즘 쓰레기를 주우면서 등산이나 조깅하는 활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두 번 정도 해봤는데 그냥 걷는 것보다 운동도 되고 환경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해. 주말에 아빠랑 산에 갈 때 한번 해보는 건 어때?” 수화기 너머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주말에 한번 해봐야겠네.” 들뜬 목소리다.
며칠 뒤 “주말에 산에 가서 쓰레기 주웠는데, 이거 운동 엄청 되네. 집에 와서 완전 뻗었잖니”라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중간에 어떤 부부가 배즙을 마시곤 껍데기를 땅에 파묻고 있었는데 쓰레기 줍는 우릴 보더니 머쓱해하더라. 쓰레기봉지랑 집게를 들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눈치를 보더라고.” 작은 활동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자연스레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또 등산객들에게서 “좋은 일 하시네요”, “수고 많으십니다” 같은 덕담도 듣고, 환경을 위해 좋은 일 한다는 자부심도 얻었다고 했다. “이제는 걸을 때 쓰레기만 보여. 쓰레기가 왜 그렇게 많은지. 다음 등산 갈 때도 쓰레기 주워야겠어”라는 부모님 말씀을 들으니 부모님께 플로깅을 제안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느라 바빠 쓰레기 주우러 다닌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했어. 천천히 걸으면서 환경도 생각해보고, 방학 숙제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더라. 나이 든 사람들한테 더 좋은 것 같아. 관절에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 줍는 데 정신 팔려서 자연스럽게 운동하게 되니까 힘든지도 모르겠더라. 멍하니 걷는 것보다 훨씬 뿌듯했어.”
한유사랑 이타서울 대표는 “플로깅은 환경과 인간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사회에 나눌 수 있는 선한 인간다움의 순간”이라며 플로깅의 가치를 설명했다. 이어 “쓰레기를 줍는것은 적극적인 선행 활동이자, 삶의 품격을 높이고 주변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현장에서 플로깅을 진행하다 보면 청년들뿐 아니라 중년들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5060세대는 급변하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더 깊이 공감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낀다”며 “이들의 플로깅은 건강을 영위하는 품위의 표출이자, 미래 세대에 모범이 될 어른의 환경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플로깅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집 앞 골목부터 공원, 산, 바다 등 한정이 없다.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버려진 쓰레기는 줍고, 내가 만드는 쓰레기는 줄이며 슬기로운 환경 생활에 동참해보자.
플로깅을 위한 팁
준비물: 쓰레기 담을 봉지, 장갑, 집게, 얼음물, 쿨토시, 손수건, 모자 등
주의사항
① 사용한 봉지를 재활용함으로써 쓰레기를 최소화한다.
② 분리수거용 봉지와 일반 쓰레기용 봉지 두 개를 준비하면 좋다.
③ 비닐장갑이나 물티슈 대신 면장갑이나 집게를 사용한다.
④ 위험한 곳까지 무리해서 들어가 쓰레기를 줍지 않는다.
⑤ 쓰레기를 줍기 전 가까운 분리수거장 위치를 찾아두고, 없을 때는 집으로 가져가 꼼꼼하게 분리 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