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거듭 휘어지는 길, 조붓한 찻길을 따라 닻미술관을 찾아간다. 누굴까? 외진 야산 자락에 미술관을 만든 이. 자연에 심취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 대도시 근교도 아니고, 접근도 쉽지 않은 산중에 사립미술관을 열다니. 이는 모험일 수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우랴. 속된 말로 파리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외져서 오히려 호감을 살 수도 있겠다. 도시엔 없는 정적과 고독이,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이곳에 흔하게 있는 게 아닌가. 이윽고 길의 끝에 닿자 닻미술관 푯말이 보인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에 있다.
넓고 훤칠한 정원 안에 미술관이 있다. 정원 안이라 했지만 숲속에 있는 미술관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백마산이라 부르는 야산이 늘어뜨린 치맛자락에 폭신하게 안긴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너른 부지 자체가 산과 정원의 융합으로 이루어져 통째 아늑하다. 청신해서 생동한다. 게다가 계절은 봄. 부지깽이도 꽂아두면 싹이 튼다는 4월의 봄이다. 물오른 나무들의 몸엔 이미 튼 싹눈들. 설레어 곱살스레 하느작거리는 연둣빛 잎사귀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들은 작렬하듯 일제히 피어나 날 좀 보소, 아우성친다. 햇볕은 궁금한가? 그것은 유난히 풀꽃들 소담하게 핀 둔덕에 모여 앉아 있다. 풀꽃이 전하는 소식에 귀 기울이는 것 같다. 벌써 후루룩 떨어져 땅바닥에 누운 벚꽃들의 모습은 또 어떻고? 휘황한 장제(葬祭)를 닮아 애절하게 아름답다.
미술관에 왔으나 눈길과 발길은 이렇게 서정적인 정원 풍경에 오래 머문다. 이런 미술관, 아마도 드물지 싶다. 수려한 정원으로 일단 유혹하고 매혹한다. 수목과 화초들이 연출하는 예술과, 숲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내는 선율에 씻긴 마음은 샘물 한 바가지 퍼마신 양 개운하다.
나무들에 가려 감춰진 듯 살짝 보이는 입구를 찾아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의 양식도 분위기도 이채롭다. 지중해 휴양지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집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디귿(ㄷ)자를 닮았다. 건물 복판에 조성한 중정 좌우로 전시관과 카페 공간이 있다. 눈길을 붙잡는 건 역시 중정이다. 중정을 이룬 사물들마다 고풍스런 미감을 돋우고 있다. 고재와 고철로 만든 출입문, 빈티지 타일이 깔린 바닥, 처마를 떠받친 하얀 기둥들, 획일적이지 않은 의자와 탁자들의 낡음과 아름다움…. 한층 독특한 건 중심부에 팔각형 형태로 설치한 연못이다. 아주 작은 연못이라 연못다운 기능성에 착안하기보다 뭔가 상징적인 물웅덩이를 표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성이라거나, 궁극의 자연성을.
중정 뜰에 앉아 만날 수 있는 풍경 중 빼어난 건 하늘의 동향이다. 지붕 없이 확 열린 상부의 사각 프레임으로 파란 하늘과 구름과 햇살이 들이친다. 닻미술관 건물은 이렇게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 자연을 끌어들인다.
닻미술관은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2010년에 개관했다. 설립자는 사진작가이자 미술관 관장인 주상연. 그는 건축과 정원 조성에 따르는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그가 미술관 설립에 나선 계기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트 인스튜어트’(Art Institute)에서 공부하면서였다고 한다. 유학을 통한 개안? 그는 국내에 있을 땐 착안하지 못했던 구상을 했다. 예술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것.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 삶과 예술과 자연, 이 셋의 소통과 유대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이러한 생각을 가슴에 담고 귀국한 그는 마침내 닻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중심의 예술서적을 작가와 협업해 출간하는 닻프레스도 설립했다. 닻미술관과 닻프레스는 서로 손잡고 동행한다. 닻프레스의 출간 콘텐츠가 곧장 미술관 전시로 이어지면서 확장되는 게 아닌가. 닻프레스의 존재감은 해외에 더 또렷하게 부각됐다고 한다.
억지 꾸밈이 없는 야생정원
주상연 관장에게는 유학 중에 인연을 맺은 예술적 어머니가 있다. 미국의 사진가 린다 코너(Linda Coner)다. 코너는 하늘과 땅, 성과 속,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탐구와 질문을 사진 작업으로 하는 작가로, 주 관장의 삶과 사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미술관 설립의 배경을 이루는 정신적 에너지 역시 코너에게서 얻은 것 같다. 한편 주 관장은 자연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고요한 숲속에 미술관을 지은 걸 보면 이미 알 만한 일이지만, 그는 인생에 자연이 결부돼 있을 때 삶의 더 나은 지평이 열린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진작가로서, 미술관 운영자로서 자연이 발신하는 언어를 포착한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연과 예술이 주는 ‘무작위적 친절’이 공기처럼 세상에 미만하길, 그래 저마다의 삶에 창조성과 영성이 깃들길 바라서다.
전시실에선 국내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꼽히는 주명덕의 작품전 ‘풍경, 저 너머’가 펼쳐지고 있다.(6월 18일까지) 80대 고령에 접어든 주명덕은 아직도 암실에 들어박혀 사진 작업을 하는 열정의 화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과속 질주하는 세태에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진 작업을 고수하는 것에서도 뚝심과 지향이 드러난다. 평생 한국의 자연과 풍속과 문화유산을 흑백 기록사진에 담은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문명, 풍요, 공해 같은 개념과 상관없는 한국의 고유한 전통과 특색을 보존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회는 2021년 닻미술관의 기획전 ‘집’과 이어지는 주명덕의 두 번째 사진전이다. 기록사진으로 시작해 예술사진으로 확장된 후반기 작업에 속하는 세 가지 시리즈, 즉 ‘잃어버린 풍경’과 ‘장미’, 그리고 ‘사진 속의 추상’을 함께 엮어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피사체의 사실성을 포착하는 데 능란한 작가가 추상 이미지의 구축에도 유능함을 알려주는 전시회다. 다만 한 획을 쓱 그은 듯 간결한 이미지를 담은 주명덕의 추상사진엔 허무와 초탈이 실려 있다. 리얼리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깊이와 높이를 보여주고 있으니, 마침내 그의 눈은 세상과 인간의 이면을 그윽하게 관조하나? 대가의 사진은 그렇다면 한 줄의 경전에 맞먹나?
본관 저 뒤편 프레임실에서는 ‘구름의 노래’전이 진행된다. 닻미술관이 소장한 사진작품 가운데 구름을 소재로 한 것들을 골라 걸었다. 구름이라는 이름의 자유로운 나그네를 저마다의 작풍으로 은유한 사진가 12인의 흑백사진이다.
전시실을 나와 다시 정원 숲길을 헐렁헐렁 산책한다. 억지 꾸밈이라곤 없는 야생정원이다. 가꾸는 건 가두는 것이다. 가만히 방목해둔 나무와 풀들은 저리도 무성하다.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 정원 길 한편에 오두막 한 채 있다. 은자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작은 집은 데이비드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오두막의 실제 도면에 따라 지었다. 월든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치를 때 만들어 실내에 전시했던 걸 정원으로 옮겨놓았다. 소로는 말했다. ‘나의 직업은 산책가’라고. 산책이 직업? 이보다 좋은 직업이 있나? 대봐라, 더 나은 게 있거들랑.
주상연 닻미술관 관장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 추구”
닻미술관의 정원은 아름답다. 인위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정원의 외곽은 야산 그대로를 다듬지 않고 원형 그대로 두어 야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의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주상연 관장은 정원 공간을 전체 콘셉트의 중심에 두고 숙고했던 것 같다. 유학차 미국에 살 때 만들었던 개인 정원에 관한 경험도 되살려 활용했다.
사람 드문 지방의 외진 산자락에 있는 미술관이다. 운영 문제를 고려한다면 아무나 쉽게 나설 여건은 아닌데?
“처음엔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산기슭에 이상한 지중해식 건물을 짓고 들어선 미술관이라니,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그런 의아심을 표시했다. 초기 수년간은 관람 인원도 극히 드물었다. 내가 산속에서 지금 뭐하고 있지? 이런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운영에 관한 어떤 전략적 대안을 가지고 개관한 게 아니라 힘든 점이 많았다. 다만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확신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가 잡혔다. 서서히 팬이 생기고 조력자들이 늘더라.”
닻미술관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보나?
“예술과 정원과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라는 점이 포인트라 생각한다. 보통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지만 우리는 빛과 공기가 드나드는 건물을 지었다. 이 역시 장점이다.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이라는 게 관람객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미술관들은 대부분 악전고투를 했다. 닻미술관은 여기에서 예외였단다. 팬데믹 국면에 오히려 방문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 바이러스조차 침투할 수 없는 숲속 미술관이라는 안전성이 거둔 뜻밖의 성과였다.
사진 전성시대랄까,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들도 많아졌다.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풍속이지 않을까?
“사진을 쉽고 친숙한 매체로 대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반면 사진에 관한 인식이 얕아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정말 좋은 사진을 만날 기회가 오히려 적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나 대중이나 디지털 사진에 편중된 점도 문제다. 해외에선 다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니까.”
현재 진행 중인 주명덕 사진전에 나온 추상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재능과 내공이 느껴져서.
“주명덕 선생이 그저 전통가옥이나 풍경을 찍는 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한결 다층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해왔다. 기록사진에서 더 깊이 들어간 관념적 사진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동양철학적 지향을 가진 걸로 보인다. 나에게는 큰 스승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뜻을 얻으면 말을 버린다!’ 선가의 법어 같지 않나?”
당신 역시 사진작가다. 어떤 작품 세계를 추구하지?
“자연에 대한 경외감, 영성에 관한 생각, 시간과 공간에 관한 성찰 등을 테마로 삼는다. 늘 잊지 않는 건, 예술의 치유력이 삶과 정신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고.”
숨 가쁘게 시간이 흘러간다. 어느덧 겨울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겨울 차디찬 공기와 그 풍경 속으로 데려다주는 대청호의 새벽을 찾아간다. 자동차로 어두운 새벽길을 두 시간여 달려 쨍한 추위 속에 호수의 새벽 공기를 맞는 일, 신선하다.
엄동설한의 캄캄한 새벽길은 생각처럼 어렵진 않다. 달려갈수록 조금씩 걷혀가는 어둠을 확인하는 일도, 중간에 잠깐 들른 휴게소의 적막함도 어두운 길을 달리는 사람들만의 즐거움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새벽길을 달리면 시골길 드문드문 몇 채의 농가와 들판이 내다보이고 대청호를 향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청호 오백리길 제4구간 출발점인 윗말뫼 주차장은 한적하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이 구간 안에 대전, 청주, 충북 옥천군과 보은군이 경유한다. 그 속에 마을과 산과 들과 강과 호수가 오백리길을 이어준다. 원래는 대덕군과 청원군 사이에 있다고 하여 대청호라 이름 붙였다. 이 지역에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80년 대청댐 완공과 함께 지역 마을 담수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인공 호수가 대청호다. 이때 수몰 지역은 86개 마을로 4000세대가 넘었고, 주민은 2만 6000여 명이나 되었다.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생긴 대청호로 인해 어릴 적 따뜻했던 추억 속 아름다운 시골 마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대청호는 인공 저수지로는 저수량 기준으로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 국내 세 번째다. 스무 개가 넘는 대청호 오백리길 구간을 편안히 즐기는 방법은 호수 둘레길을 산책하듯 걷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4코스 호반 낭만길은 대청호수를 가까이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습지공원과 자연생태관 등이 걷는 길마다 이어지며, 총길이는 약 12.5㎞이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지금도 호반길을 걷기 위해 찾아드는 이들에게 큰 불편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3년 열린관광지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대청호 일대는 장애인, 노약자 등 이동 약자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무장애 관광 환경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제는 이동 약자의 문턱이 더욱 낮아진 대청호 오백리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정보취약계층이 불편 없이 관련 홈페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도 개선한다.
취향에 따른 구간별 길을 걷다가 갈대숲이나 호숫가에 멈춰서 조용히 대청호를 즐길 수도 있고, 또는 드라이브만으로도 좋다. 굳이 걷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발걸음에 따라 또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일부를 걷거나 쉼을 택하면 된다. 걷는 속도나 그 길을 모두 걸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일인가. 단 한두 시간을 걸었어도 그저 자연 속에서 음미하는 시간이 의미 있다.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다독이는 그 순간만으로도 충만하다.
동이 트기 전 호수에 도착하는 이들에겐 새벽 물안개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은 마냥 맑고 쾌청한 호수를 보게 된다.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에 주로 발생하는 물안개가 이날따라 피어오르지 않았다고 글렀구나 생각할 일은 아니다. 새벽의 거대한 호숫가에 서보았는가. 온몸이 떨리고 시리도록 쨍한 상쾌함으로 간단하게 마음의 평안을 던져준다. 이렇게 겨울과 마주한다.
호수 주변에 들면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공기 맛이 다르다. 건너편의 산과 능선이 호수 안으로 잠겨 흔들림 없는 반영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호반 둘레길에 깊숙하게 들어가면 질퍽한 습지 위로 풍성한 억새가 숲을 이루었다. 가끔 바스락거리며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곤 한다.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철새가 푸드덕 날고 먹잇감을 찾는 백로의 날갯짓을 보게 된다. 계절에 따라 개구리는 물론이고 메뚜기나 거북도 볼 수 있다. 자연환경이 청정해 구간 안에 자연생태관도 운영한다.
수변탐방로에서 한없이 호수에 취했다가 명상정원 방향으로 향하면 무엇이 기다릴까. 호수와 숲이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발밑에는 여전히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10분여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숲길의 자연스러움에 젖어든다. 호수와 정원 사이 언덕처럼 완만한 등성이에 ‘대청호 오백리길’ 표지판이 보인다. 쉼을 제공하는 벤치와 정자가 호수를 앞두고 나무 아래 고즈넉하다. 이곳에서 호수를 빙 돌아보며 각자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명상정원은 물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건네주는 공간인 듯싶다. 한 번쯤 들러서 간단하게라도 그리움을 풀어보도록 전통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옛 마을길의 한옥 담장, 장독대, 널찍한 평상 등으로 그들의 깊은 그리움이 해소될까마는 수몰민들을 위로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마을 어귀에서 자라던 나무였는지 여전히 우뚝 서 있는 나무는 사진가들의 피사체가 되어 언제까지나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애잔하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물속의 작은 섬들이 이루는 반영의 멋과 함께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상정원에는 드라마 ‘슬픈 연가’, 영화 ‘역린’, ‘창궐’, ‘7년의 밤’ 등의 촬영지였다는 안내가 줄을 잇는다. 이런 이유 말고도 이곳에 서면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련한 마음이 생겨난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가는 현장과 그들의 어제와 오늘, 그뿐 아니라 이 모습을 대하는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힐링의 장소로 이곳을 찾는다. 포토존에서 셔터를 누르고 나무 그네에 앉아 눈앞의 호수를 마냥 누리며 새벽의 호수를 만끽한다.
4구간 호반 낭만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명상공원에서 조붓한 길을 따라 1km쯤 거리에 자연생태공원과 추동 취수탑이 자리 잡고 있다. 상수원 취수구역이다. 가래울 마을과 황새바위와 연꽃마을에 이어진 오리골 제방이 시원하다. 철 지난 논과 밭을 끼고 걷는 길에 몇 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도 지나고, 데크로 연결되는 길도 나온다.
감나무에 넉넉히 남겨둔 까치밥의 푸근함을 올려다보면서 마을 옆 데크를 걷다가 예닐곱 단쯤 되어 보이는 알타리 무더기를 보았다.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라는 인심이었다. 이런 인정 넘치는 구경은 여행의 덤이다. 도로 옆으로 나오니 자전거 부대들이 씽씽 달린다. 시골길을 달리는 라이딩족들의 활기찬 질주가 상쾌함을 듬뿍 얹어준다.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을 찾는 이들이 들르는 곳이 또 있다. 3구간 종착지인 윗말뫼의 더리스. 호수를 앞에 두고 탁 트인 풍경이 압도한다. 더리스&테라베오는 슈하스코 브라질 바비큐 전통요리 레스토랑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청호 오백리길 산책로와 호숫가의 전경을 보려고 찾아온다. 더리스 정원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면 프라이빗한 장소가 나타난다. 커플 의자에 앉아 마음껏 물멍에 빠져들면 된다. 때가 맞으면 거위 떼가 찾아와 물속에서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다. 혹시나 비가 많이 내린 후라면 벤치와 나무가 물속에 잠긴 그림 같은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그리움 속 마을을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 문득 유년의 시간을 발견한다. 그 길 위에서 기억 저편의 할머니와 내 부모 형제들을 만난 듯 뭉클함도 얻는다. 소박한 자연 속에서 비로소 들여다보는 내면 깊숙이에 위로 한 줌 들여놓았다. 떠돌던 마음은 차분히 잦아들고 한없이 따뜻하다. 세상 소음 따윈 잊고 호숫가를 걷는 내 발밑에서 마른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전부였던 하루가 한동안 몇 알의 비타민이 되어줄 것이다.
여행 정보
자동차로 서울 기준 두 시간 정도 소요. 특히 청주에서 출발해 근교 문의문화재단지와 대청호를 함께 둘러보는 코스도 좋다. 전통문화와 호수의 멋을 제대로 느껴볼 만한 곳이다. 대청호 코스 대전역발 시티투어 순환버스가 토·일 주말에 있다.(2시간 반 정도 소요)
외옹치 바다향기로
강원도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바닷길이다. 풍광이 가장 멋진 구간은 하늘데크길이다. 바닷가 산책로 옆 해송숲길은 사색하며 걷기 좋다. 인근 아바이마을도 들러볼 것.
초량 이바구길
부산역에서 산복도로까지 걷는 길이다. 급경사 구간에서는 모노레일을 이용해도 된다.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오밀조밀한 초량동 주택가와 부산항,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야경도 으뜸.
만항재 하늘숲정원
함백산의 지맥 강원도 정선군의 만항재 정상 부근이다. 겨울이면 낙엽송 가지마다 서리가 얼어붙어 상고대가 생성된다. 눈 온 뒤 방문하면 겨울왕국을 보는 듯 새하얀 설경이 펼쳐진다.
곶자왈 동백동산
제주의 여느 동백꽃 군락지와 다르게 소박하고 은은한 매력을 풍기는 곳이다. 동백동산 숲과 습지에서는 한겨울에도 덩굴식물과 열대식물이 어우러져 푸릇푸릇한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삼척 나릿골마을
담벼락 곳곳에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좁다란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시설들과 만나게 된다. 전망대에 서서 청량한 겨울 바다를 보노라면 가슴이 뻥 뚫린다.
O₂, 산소, 원자 번호 8, 화학 산소족에 속하는 비금속 원소, 공기의 주성분이면서 맛과 빛깔과 냄새가 없는 물질. 호흡과 동식물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체라는 사전적 의미의 산소. 강원도 홍천에 산소길이 있다. O₂길. 마스크 때문에 마음껏 숨 쉴 수 없어 미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수타사 산소길이 떠올랐다.‘그래 이번에는 산소길이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홍천의 수타사 산소길은 1~4코스로 총 4개 코스가 있다. 수타사 산소길을 걷는다고 하면 대부분 1코스를 말하는데, 수타사 주차장에 주차하면서부터 걷기가 시작된다. 인근에 오토캠핑장까지 있어 주말 여행지로도 손색없다. 공작산 생태숲 산소길 코스는 3.8km로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수타사-공작산 생태숲-귀소(출렁다리)-용담-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이다. 걷기에 따라 1~2시간 정도 걸리지만, 수타사 경내를 천천히 돌아보고 숲길을 걷다가 쉬다가 느긋하게 숲멍도 한다면 3시간도 금방이다. 참 여유롭게 돌아보는 산소길 트레킹이다.
눈을 들어보니 해발 887m의 공작산이 날개를 펼친 듯 에워쌌다. 깊은 골짜기 위로 봉우리들이 겹겹이 솟은 모습이 공작새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공작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다. 그 산 아래 수타사 가는 길이 반기듯 쭉 뻗어 있다. 산소길 초입에 천년 고찰 수타사의 품격을 거친다는 것, 시작부터 차분히 숨 고르기를 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에는 우적산 일월사(日月寺)였다가 공작산으로 옮기면서 수타사(水墮寺)로, 다시 새 한자인 수타사(壽陀寺)로 바뀌었다. 수타사 옆의 용담에 매년 승려들이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잦아 목숨 ‘수’(壽)로 바꾸었다고 한다. 예스러움이 물씬 전해지는 절의 분위기가 꾸밈없이 단아하다. 옛 모습을 품고 있는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에서도 위엄을 보여준다. 한나절 푹 퍼질러 앉아 목탁 소리 들으며 쉬면 좋을 깊은 산속 절이다.
수타사를 나오면 바로 공작산 생태숲이다. 생태숲 자리는 예전 수타사에서 경작하던 논이었는데, 이제는 동식물의 서식 환경을 보호하고 다양한 생태체험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생태연못 탐방로로 온통 연잎으로 뒤덮인 연밭이다. 그 사이로 놓인 부드러운 곡선의 데크 위를 걷는 이들의 풍경이 그림 같다.
산소길은 대부분 흙길이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깊은 숲속이다. 오래된 홍우당 부도가 숲길 옆으로 자연스럽게 나란하다. 부도는 부처나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다. 그 길을 지나면 정말 빽빽한 숲속이다. 폭도 좁아서 나란히 걷기보다는 홀로 걷기 좋으니 숲을 자연스럽게 즐기면 된다. 막상 숲에 들어서면 마치 밀림에 온 듯 오래된 숲속 풍경에 놀란다. 얼기설기 나무줄기가 양쪽으로 서로 얽혀 고개를 숙여 지나가야 하고, 빼곡한 나무 사이로 하늘이 빼꼼히 보이는 것 또한 깊은 산중에 파묻혔음이 느껴진다. 걷기 좋은 완만한 오솔길이 계속 이어진다. 어느 순간 새와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자연 속에 내가 있다. 짙은 풀 냄새가 나를 둘러싸고, 비로소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 초록이 가장 초록다운 숲이다. 싱그러움이 가슴속 가득 찬다. 역시 산소길이다.
수타사의 산소길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홍천 읍내로 장 보러 가던 길이었다. 그 길을 걷다가 쉬어 가라고 쉼터가 있지만 힘들 것 없으니 그냥 계속 천천히 걷게 된다. 신봉마을을 반환점 삼아 돌며 시골 마을의 평온함도 얻는다. 수타사 계곡이 흐르는 출렁다리 소 구간에서 물소리 들으며 멍하니 쉬면 된다. ‘’은 소나 말 등의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여물통인 구유를 뜻하는 강원도 방언이다. 계곡이 마치 구유처럼 생겼다 해서 소라 불린다.
나무가 바람에 사사삭 흔들리는 나즈막한 소리,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숲 내음, 흙 내음, 초록의 색감만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 한참을 걸었어도 가뿐하다. 후텁지근하고 끈적이던 더위도 잊었다. 숲이 깊어 햇빛도 저만치에 있다. 산소길에선 다만 마음껏 숨 쉬고 청량한 산속의 운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초록을 실컷 눈에 담았다. 천천히 한숨 돌리며 용담에 다다르니 계곡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줄을 이어놓았다. 바위와 물의 깊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예부터 용이 승천했다는 용담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메워져 평범한 소(沼)의 모습이다.
운동화를 툭툭 털며 산소길을 내려가다 옆길로 고개를 돌려보니 산림치유쉼터의 숲속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그야말로 신선놀음 중이시다.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 숲속에 쉼터와 명상 공간이 마련되어 시원하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모습이다. 어딜 보아도 산소 뿜뿜. 보는 사람 마음도 시원하다.
홍천의 자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홍천을 다녀보면 무궁화 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마을길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무궁화공원, 무궁화테마파크, 무궁화수목원, 체험관 등 온통 무궁화 꽃 도시다. 이는 홍천군이 우리나라 무궁화 메카로 선정되어 무궁화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자 조성됐기 때문이다. 무궁화 명소인 홍천의 무궁화수목원을 찾았을 때는 꽃이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무궁화수목원은 국내 최초로 무궁화를 테마로 조성한 공립수목원으로,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사랑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각 테마별로 남궁억 광장, 무궁화 조형물, 품종원, 미로원과 16개의 주재원을 비롯한 숲속 산책로, 숲속 도서관 등 즐길거리가 마련돼 있다. 특히 무궁화가 한창 피어나는 8월에는 ‘나라꽃 무궁화 홍천 축제’가 열려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수목원 입구에 길게 이어지는 280m 산책로 끄트머리에 위치한 무궁화(Rose of Sharon)의 집이 연출하는 풍경이 시선을 끈다. Rose of Sharon. 서양 사람들은 무궁화를 이렇게 부른다. 샤론의 장미는 성스럽고 선택받은 곳에서 피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꽃이 우리 민족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희망의 빛이 되기를 소망했다는 설명이다.
무궁화의 집을 둘러싼 푸른 들판엔 코스모스가 자라고 있었다. 무궁화와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난 들판의 풍경은 홍천의 핫플레이스 예약이다. 현재 야간 경관 조명으로 은하수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연출되어, 데이트 커플들이 찾아오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곳이다.
홍총떡과 올챙이국수
홍천의 맛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저렴하면서 맛도 좋은 서민 음식 홍천메밀총떡(홍총떡)은 시장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홍천의 메밀로 만든 반죽을 얇게 부쳐서 준비한 소를 넣고 드르르 만 홍총떡은 홍천의 대표 향토음식이다. 구수하고 개운한 김치나 무채 양념의 순한맛과 매운맛, 강원도 제철 나물이나 시래기를 넣은 나물맛으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홍천중앙시장에 가면 총대를 닮아 총떡이라는 홍총떡과 메밀전, 올챙이국수 등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또 한 군데, 전직 청와대 셰프가 운영한다는 음식점에서 명태회막국수와 낙지만두도 먹어볼 만하다.
홍천 여행
수타사 산소길 :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덕치리 5-3
교통 : 수도권 기준 자동차로 약 두 시간. 대중교통-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홍천종합버스터미널까지 약 한 시간 반 소요
홍총떡 : 홍천중앙시장 및 홍천 각 관광단지에서 판매. 홍천 오일장 1, 6일. 장날 아니어도 홍총떡은 영업 중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제주 웰니스 힐링 여행 상품 기획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기획전은 제주를 웰니스 여행목적지로 브랜딩 하고자 만든 것으로 취미 여가 플랫폼 프립과 함께 추진했다.
웰니스란 웰빙(Well-being)과 건강을 뜻하는 피트니스(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균형을 추구하는 활동을 말한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제주 웰니스 여름 기획전은 지난 7월 7일 오픈 이후 한 달간 총 800건이 판매됐다. 기획전 중 인기가 많은 상품은 ▲오션뷰 요가 클래스 ▲편백숲길 승마 ▲패들보드·패들요가 ▲숲 해설·힐링 트래킹 ▲숲속 프라이빗 요가 ▲그림 명상·컬러 요가 등으로 제주의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숲 치유’, ‘힐링·명상’, ‘만남·즐김’ 등 3가지 테마로 구성된 웰니스 여름 기획전에는 총 70여 개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추가될 예정이다. 이번 기획전은 9월까지 이어진다.
제주관광공사는 8월 19일부터 9월까지 기획전을 구매하는 이용자에게 후기 리뷰 이벤트를 통해 제주 왕복 항공권, 에어팟 맥스 등 다양한 상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고은숙 제주관광공사 사장은 “호스트와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고, 웰니스를 통해 건강 증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전은 의미가 깊다”면서 “웰니스 호스트인 ‘힐러’를 지속 발굴해 지역 주민 소득 창출과 웰니스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전했다.
큰맘 먹고 시작한 한달살기. 정해진 시간에 정신없이 유명한 장소를 훑는 관광이 아닌, 느리고 여유로운 휴식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부지런히 살아온 이들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하루를 빈둥빈둥 보내는 게 영 익숙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주 생활이 즐겁고 만족스러울까? 급할 건 없다. 우리에게는 30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한달살기는 단순한 여행과는 차이가 있다. 보통 한달살기를 앞둔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한 달 동안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동네 산책을 하다 말을 트게 된 아주머니에게 사는 이야기를 듣거나, 비를 피하려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메뉴에 없는 음료를 대접받는 등의 상황 말이다.
그러나 막상 제주 땅에 발을 딛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육지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 할 수 없는 일을 깨알같이 모두 즐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을 참고해 각종 정보를 샅샅이 뒤지게 되고, 고민과 갈등의 연속에 하루하루가 숙제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이상과는 다른 제주살이에 문득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한달살기가 아니라 그저 한 달간의 패키지 여행이 되는 셈이다. 한달살기에 대한 보상 심리를 바라기보다, ‘여행 테마’를 설정하고 제주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마음의 자유 선물하는 ‘책방 투어’
전자기기와 영상매체가 발달한 후로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버거운 사람들이 늘었다. 독서율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달살기를 명목으로 멀리했던 책을 다시 가까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주에는 소규모 독립 서점, 독특한 색깔을 가진 서점이 많다. 제주만의 지역 감성과 책방지기의 취향이 버무려져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방 특유의 기분 좋은 종이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주는 아늑함은 덤이다.
바라나시 책골목_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횟집 거리 사이, 빈티지한 간판이 눈에 띈다. 내부로 들어서면 이국적인 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인도 서적과 세계문학 및 인문학 책이 즐비하다. 이곳은 제주 속 인도, ‘바라나시 책골목’이다.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도시다.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바라나강과 아시강을 합쳐 붙인 지명으로, ‘신성한 물을 차지한다’는 뜻이 있다. 생애 한 번은 가봐야 할 도시로 꼽히며, 일부 여행객은 인도 여행의 필수 코스로 소개하기도 한다.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은 한국에서 인도의 정취를 느끼기 충분한 장소다. 책방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인도식 밀크티인 ‘차이’나 요구르트 ‘라씨’도 맛볼 수 있다.
만춘서점_야자수를 배경으로 한 아담한 흰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삼각형 구조의 내부로 매력을 더했다.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책들과 LP, 제주의 감성이 흐르는 소품이 가득하다. ‘만춘서점’ 책방지기는 출판·디자인 업계에서 일하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그래서인지 육지 사람이 그리는 제주의 장면을 더욱 잘 옮겨놓은 듯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1인용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어 가기도 좋다.
소심한 책방_오름 다섯 개가 감싸고 있어 유독 고요한 제주의 동쪽 끝 마을, 종달리다. 좁은 골목 안쪽, 돌담 너머에 ‘소심한 책방’이 있다. 이곳은 각각 제주와 서울에 사는 두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모아 만든 공간이다. 소설, 에세이, 여행 등 단행본부터 독립 출판물, 제주 특산품, 문구까지 다채롭게 구비했다. 낮에는 햇살이 가득 들어와 책방에 온도를 더해주고, 밤에는 노란 불빛이 다정하게 채워진다. 때로 소소한 전시나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주변에 들를 곳이 많은 관광 지역이 아닌데도 굳이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하나만 꼽기 어렵다.
책약방_‘책약방’은 초록 잎과 나무, 낮고 작은 집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무인으로 운영된다. 사람 대신 책이 지키고, 마을이 지킨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현관 옆에 걸린 작은 의자 위에는 운영자가 추천하는 ‘오늘의 그림책’이 놓여 있다. 비치된 그림 일기장과 100자짜리 작은 원고지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다. 릴레이처럼 이어진 글들을 읽다 보면, 책약방의 진짜 ‘약’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다.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올레길은 제주도의 마을길, 해안도로, 숲속 오솔길 등 걷기 좋은 길들을 선정해 개발한 코스다. 2007년 9월 8일 제1코스(시흥초등학교~광치기해변, 총 15km)가 개발된 이래, 2012년 11월 제주해녀박물관~종달바당을 잇는 21코스가 개장하면서 올레길 코스는 제주도를 한 바퀴 빙 두르게 됐다. 현재는 제주도 내에 총 23개 코스가 있으며 우도, 가파도, 최근 확장된 추자도 코스를 포함하면 총 27개다. 각 코스는 길이가 대체로 15km이내이며, 평균 소요 시간은 5~6시간 정도다.
제주도 올레길을 한 코스씩 돌다 보면 도내의 모든 코스를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코스도 있어 차를 갖고 있지 않다면 동선과 숙소 계획을 맞춰 짜야 한다. 식사도 매번 사 먹을 수 없으니 간단하게 준비한다. 또한 올레길은 리본을 매달아 길을 안내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혼자 간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통상 날이 저무는 시간인 오후 6시 이후로는 드문드문 표시한 리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길을 잃기 쉽다.
이런 사소한 단점을 보강한 ‘알파캠프’는 트레킹과 관련해 가이드, 교통, 식사, 숙소, 세탁 서비스 등을 모두 제공한다. 더불어 관광객이 한 달 동안 제주의 모든 올레길과 새로 생긴 하영올레길까지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토끼반과 거북이반 중 하나를 골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체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보통 중장년층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68세 이선이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그 대신 올레길을 걸어볼 생각으로 알파캠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올레길 코스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숙소 예약도 번거로워 고민하던 차였다. 이 씨는 “차로 여행할 때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가까이 보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제주는 그저 우리나라의 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정겨운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알파캠프에는 제주 올레길 코스를 완주하는 ‘제주올레캠프’ 프로그램 외에도 오름이나 한라산, 4대 휴양림, 숲길 등을 다양하게 걷는 ‘제주여행캠프’,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하는 ‘다이어트 캠프’, 오름 전문 캠프인 ‘제주계절캠프’ 등이 있다.
의미 있게, 친환경 한달살기
‘제주도’ 하면 많은 이들이 청정 자연을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해변에는 폐그물, 밧줄, 스티로폼, 플라스틱, 페트병, 장대 등 폐어구와 나무토막이 가득하다. 게다가 언제 번식했는지 모를 파래가 수면에 떠 있거나 바위나 모래사장에 널려 있어 볼썽사납다.
제주도는 수용력을 넘어서는 관광객의 유입으로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도는 1인당 폐기물 발생량을 전국 평균의 2배 이상, 관광객이 버리는 생활폐기물은 전체 발생량 가운데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일부 관광객은 제주를 지키기 위해 ‘쓰레기 없는 제주’를 여행 혹은 한달살기 테마로 설정한다. 제주에 있는 동안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플로깅을 하는 식이다. 플로깅은 간단한 산책이나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혼자서 가고 싶은 장소를 지정해 환경 정화를 하거나, 제주 내 여러 봉사단체에서 진행하는 캠페인과 이벤트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나에게 맞는 여행 테마는?
후회 없을 제주도 한달살기를 위해서는 장소 위주로 계획을 짜기보다 나만의 큰 주제나 목표를 정하는 게 좋다. 우선 ‘왜 제주도에 가려고 하는지’를 고민해보자.
1 건강하게 한달살기 ‘하루 한 군데 오름 오르기’, ‘서핑·승마·스쿠버다이빙 등 레포츠 한 종목 배우기’, ‘한 달간 인스턴트식품 끊기’ 등으로 몸을 상쾌하게 만들 수 있다.
2 휴식하며 한달살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면 ‘매일 한 시간씩 바닷가에서 멍때리기’, ‘동네 반경 5km 안에서 생활해보기’, ‘7시간 이상 수면하기’ 등의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3 습관 개선 한달살기 한 달 동안 ‘전자기기 없이 살기’, ‘부정적인 말 하지 않기’,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기’ 등을 시도해 나를 괴롭히는 습관을 개선해보는 건 어떨까.
1 바라나시 책골목 2 만춘서점 3 소심한 책방 4 책약방
이젠 연두에서 완연한 초록이다. 선명해진 그 색감 속에서 자연을 충만하게 누릴 만한 곳, 안성에 가면 산자락을 돌며 이루어진 호숫가의 신록이 한창 물이 올랐다. 호수를 감싼 둘레길이 매력적인 안성. 날마다 감각적인 공간들이 튀어나오는 세상에 푸름이 가득한 시인의 고향에서 마주하는 사색과 사유의 시간으로 여기가 더없이 딱 안성맞춤이다.
시를 만나며 걷다, 박두진 둘레길
굳이 박두진 문학길을 내비게이션에 넣지 않아도 안성의 금광호수만으로도 자동차는 잘 찾아간다. 둘레길 진입로엔 청록뜰과 수석정 두 코스가 있다. 금광호수를 따라 빙 둘러싼 박두진 문학길 중 하나인 수변산책로 청록뜰은 인적이 드물다. 안성 시내에서 동쪽으로 자리 잡은 빼어난 경관의 금광호수 수변길은 오직 자연의 소리만 들린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낮은 물소리와 숲길 따라 걸으며 들려오는 새소리가 전부다.
수변데크를 걷다 보면 호수를 둘러싼 주위 산들이 기다랗게 어우러진 풍경이 자연스럽다. 안성은 큰 강이 없는 내륙이다 보니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를 여럿 만들었다. 금광호수는 안성의 대표적인 호수다. 보통은 둥그런 형태의 호수 모양이 흔한데, 주변의 산길 따라 구불구불하게 형성된 모양이다. 호수 위에 얹은 나무데크 길은 사뭇 물 위를 걷는 느낌이랄까. 가다가 숲 그늘 벤치에 앉아 마음껏 ‘물멍’에 잠겨도 좋다. 맞은편 산이 물속에 잠겼다. 물속에 잠긴 나무의 반영이 청송 주산지와 흡사하다. 다만 시인의 고향인 이곳의 고요함은 어쩐지 더 아련하다.
시인이 나고 자란 고향 안성. 조지훈, 박목월 시인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알려진 혜산 박두진 시인은 유년기를 안성의 농촌 마을에서 보냈다. 그 후 평생을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면서 자연을 시로 노래한 분이다. 말년엔 안성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문학적 토대가 되었던 고향 땅에서 시를 쓰고 유년기의 추억을 집필했다고 전한다. 호숫가를 돌다 보면 언덕 위로 집필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앉아 호수 물빛을 바라보며 따스한 고향의 품을 누렸을 듯하다. 지금은 자료들을 모두 옮기고 빈집과 표지석만 남아 있다.
박두진 문학관과 안성맞춤 공간들
물 위를 걷듯 수변의 박두진 문학길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시인의 시구가 한마디씩 맞아준다. 숲길 따라 시(詩)를 만나며 혜산정으로 오르는 산책로에서는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적당히 땀 흘리며 여유롭게 걸으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지고 순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평온함을 주는 아름다운 둘레길이라니, 시인의 길에서 감성을 일깨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왕 나섰다면 금강호수 둘레길의 박두진 문학관도 들러볼 일이다. 문학길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잘 알려진 대표적인 시 ‘해’가 그려진 외관이 멋스럽다. 박두진 시인의 문학사상과 관련 자료 전시, 교육, 휴식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전시 공간은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3부 ‘박두진의 예술 세계를 만나다’로 구성되었다.
1층 북카페와 수장고를 지나 2층을 둘러보며 간간이 시를 읽어본다. 자필 원고와 원고료 영수증 같은 시인의 소소한 일상도 볼 수 있다. 단소와 서예를 즐기던 모습과 영상으로도 시를 만난다. 한켠의 서재 공간은 연희동 집에서 옮겨와 똑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잘 고증된 지인들의 회고 영상이나 수많은 작품과 자료들이 지루하지 않다. 살아생전 주변 문인들과 교류의 흔적,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낭독으로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전시 공간도 마련되었다. 노래로 만나는 박두진 시인 코너에서는 시에 곡을 붙인 조수미와 조하문 등의 노래를 헤드폰을 끼고 들어보는 것 또한 즐겁다.
박두진 시인은 수석과 붓글씨, 도자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었다. 전시장 곳곳에 집약적으로 펼쳐놓은 시인의 생활을 보면 일상이 고스란히 예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따라 보여주는 문인들의 사진과 회화 작품들이 시인과 연관해서 생각케 한다. 다목적실로 이어지며 나타나는 책이 구비된 멋진 공간, 서가의 책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어 편하게 앉아 책 속에 파묻히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을 듯.
문학관 주변에 조성된 공예문화센터와 잔디광장, 야생화 단지는 시민공원으로 최적이다. 박두진 문학관은 안성맞춤랜드 북쪽 끝자락인 셈이다. 안성맞춤랜드의 남사당 공연장이 문학관 건너편에 마주하고 있다. 안성 남사당패의 바탕이 된 여성 꼭두쇠 예인 바우덕이를 기리는 민중 예술단 남사당 공연장이 산 아래 웅장하다. 주변으로 천문과학관이나 캠핑장도 이어져서 커플이나 가족 단위 나들이로도 안성맞춤. 안성 시민들과 여행자들에겐 최고의 쉼터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주변에 가볼 곳이 아직 많다. 안성에서는 올망졸망하고 나지막한 산과 호수들이 천혜의 자원이다. 안성목장 들녘에는 청보리가 익어서 누렇게 일렁이고, 죽주산성의 탁 트인 성벽을 따라 오르며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유기공방에서 장인의 전통 유기도 살펴보고, 4대째 이어오는 노포 맛집 안일옥에 들러 안성 쌀밥에 국밥 한 그릇도 먹어야 한다. 나선 김에 마음 끌리는 곳으로 한 군데 더 발걸음한다면 천년고찰 석남사(石南寺)가 있다.
천년고찰 석남사 돌계단 그 끝까지
서운산 기슭에 들어앉은 석남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절이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돌계단을 밟으면서 단박에 이 절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파르게 계단이 쭉 이어진다. 오르면서 계단 옆으로 불두화가 맞아주어 잠깐씩 발걸음을 멈춘다. 조금 더 오르면 계단 옆으로 호위하듯 세운 담장에 기댄 보랏빛 매발톱이 바람에 살랑살랑. 드물게도 계단 오르는 일이 힘들지 않다.
돌계단 중간쯤에서 양옆으로 두 기의 5층 석탑, 그리고 나타나는 영산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기도를 올리는 스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석가모니불과 그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함께 모신 불전이다. 또한 500나한을 함께 봉안한 것이 특징인 조선시대 건축 양식으로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영산전에서 또 한 번 계단을 오르면 그 끝에 석남사의 대웅전이 기다린다. 마치 마지막 신전에 오르는 기분이다.
대웅전 앞에 서서 석남사를 내려다본다. 산 높이에 따라 중턱에 배치된 몇 동 안 되는 사찰의 구성이 운치 있다. 절 앞으로 마주한 산과 뒤편으로 배경이 되어주는 산세가 너무나 평안하다. 이렇게 유순한 산세에 파묻힌 절의 긴 계단을 오르면 드라마 속 배우 공유가 날리던 풍등이 자연스러워 보였던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절에서 조금 더 걸으면 마애여래입상을 만난다. 산길을 쭉 걸으면 청룡사도 나오니 시간이 허락된다면 산행을 즐겨볼 만하다. 꼭꼭 숨은 듯 서운산 자락에 묻힌 석남사, 고졸(古拙)함과 소박함의 깊이가 거슬릴 것 하나 없이 기막히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가 코로나19로 장기간 야외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고령자를 대상으로 숲속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숲속 힐링 프로그램은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와 주택관리공단 협업으로 진행되며, 주택관리공단에서 관리 중인 임대주택 고령자 약 300명을 대상으로 5~6월에 걸쳐 운영된다.
주요 내용으로는 ‘숲속 체조’(유명산), ‘오감을 느끼며 걷기’(산음), ‘휴양림 내 계곡 탐방’(대야산), 편백나무 숲 걷기(남해편백) 등의 프로그램이 15개 국립자연휴양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영록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장은 “이번 숲속 힐링 프로그램이 고령자분들에게 심신의 안정과 우울감 해소 등에 많은 도움이 되면 좋겠다”라며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사회적 가치 구현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관에서 고령자 대상으로 마음 치유를 위한 산림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오고 있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지난 19일 가평군 경기도잣향기푸른숲에서 공공임대주택 고령자 입주민을 대상으로 ‘산림치유 힐링캠프’ 체험을 진행했다. 하남풍산 국민임대주택 고령자 입주민 20명이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잣향기푸른숲에서 숲길 걷기, 나무와 함께하는 스트레칭, 명상 등을 체험했다.
합천군 농업기술센터는 교통약자가 전동 카트를 타고 황매산군립공원을 관람할 수 있는 ‘나눔카트 투어 프로그램’을 철쭉 개화기간 동안 운영한 바 있다. 70세 이상 고령자 동반 가족 등이 신청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한 담당자는 “철쭉 개화기간에 노모를 모시고 오는 가족들이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까지만 관람하고 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전통카트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꽃이 필 즈음의 이른 새벽, 쪽을 잘라내 하루이틀 물에 우려낸다. 자연산 굴 껍질을 구워 만든 석회를 섞고, 잿물을 부어 발효시켜야 준비가 끝난다. 손등이 파랗게 물들 때까지 커다란 천을 쪽물에 담갔다 빼는 과정은 고된 빨래를 연상시킨다. 지난한 과정이 꽃피운 쪽빛은 탄성을 자아낸다. 철 따라 탈바꿈하는 자연 풍광, 20년 넘게 이어지는 장인의 열정 앞에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감탄 말이다. 쪽 염색에 대해 묻자 푸른 산에 흐르는 물(靑山流水)처럼 애정과 자부심이 쏟아졌다.
홍루까 하늘물빛 전통천연염색연구소 대표는 20년 넘게 전통 천연 염색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쪽 염색을 활용한 회화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책 ‘한국 천연 염색 백서 2017’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인 쪽염 보존을 위해 힘썼다. 현재는 쪽 염색 체험, 천연 염색 자격증 강좌 및 전문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며 쪽 염색의 전통과 미래를 잇고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더라
처음부터 가업을 이으려던 건 아니었다. 여름 휴가철에 어머니인 조일순 전통매듭 장인이 매듭실 염색할 때 도와드렸을 뿐이다. 천연 염색에 대한 열정을 지핀 것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천이 펄럭이는 장면이었다.
“염색이라는 게 빨래나 다름없어요. 색이 제대로 날 때까지 염색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헹구고, 다시 넣었다가 헹구는 과정의 반복이거든요. 그걸 다 도와드리고 쉬려고 평상에 누웠는데, 그날따라 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도 어머니를 도와드렸지만 한 번도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나 봐요.”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자연 색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들어온 화학 염색이 제아무리 다양한 색을 뽑아낸대도, 자연의 빛에 견줄 수는 없었다. 길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에선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동대문 원단 시장을 가득 채운 원단들을 본다고 해서 감탄하는 사람은 없잖은가.
염색 경력만 스무 해를 훌쩍 넘는다. 한창 때 응했던 인터뷰 기사의 제목 ‘나는 아직도 미쳐 있다’가 과장이 아니었다. 자려고 누우면 바람에 날리는 천이 아른거렸다. 눈에 담는 모든 색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전통염색에 대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온갖 문헌을 뒤지며 전통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열정은 여전히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의 열정을 논할 때 어머니 조일순 장인을 빼놓을 수 없다. 화학 염색에 밀려나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쪽을 다시 살려낸 데에는 조 장인의 역할이 컸다. 1년생 풀인 쪽은 염색에 쓰이지 않으면 잡초나 다름없었고, 1970년대 당시 쪽 염색을 할 줄 아는 이도 전무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직접 구해온 쪽 씨앗을 전라남도 나주에 심었다. 현재 나주 문평읍, 당시 문평마을에서는 찬물염색이라 불리던 쪽염이 마을 단위로 행해지곤 했다. 그는 어머니가 윤병운 인간문화재와 쪽염을 재현해내기까지 갖은 노력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대로 쪽염을 성공한 게 1980년대 초반이었어요. 어머니는 ‘이 기술을 무조건 살려야 한다. 꼭 살려내서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고 하셨죠. 윤병운 어르신이 염색 분야에서 최초 인간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당신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우셨고요. 다른 사람들은 ‘최초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왜 남에게 주느냐고 아까워했는데, 어머니는 ‘나는 매듭 장인일 뿐, 염색 전문가는 아니다. 남의 것을 탐내면 안 된다’고 대답하셨어요. 확고한 면모가 정말 존경스럽죠.”
염색 0.5세대의 열정
‘염색 0세대’ 어머니의 열정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가 닿았다. 천연 염색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그는 쪽염을 최초로 시작했고, 무늬를 내어 염색하는 문양염 기법을 최초로 개발한 염색 전문가이며, 찹쌀풀을 이용해 산수화를 최초로 그린 작가다. 자연에서 새로운 염색 재료를 발굴해내 소개하거나, 인도나 일본 등 해외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리는 역할도 기꺼이 맡았다. 1세대보다는 앞서 염색을 시작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염색 0.5세대라고 칭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 년에 한 번씩 해외도 꼭 나갔어요. 원래 쪽빛, 즉 남색이 인도에서 온 푸른색이라 영어로는 Indigo Blue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건데, 세계 천연염색 심포지움(ISEND)이나 자연염색교류전으로 미국, 브라질, 호주, 일본, 한국 등지의 작가들이 모여서 교류하곤 했어요. 염색된 색상을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3년째 모임을 못 갖고 있죠. 일본도 자주 갔어요. 쪽염이 마치 제 것인 양 특화를 잘 시켜뒀더라고요. 쪽은 독초과에 속하는데, 어떻게 한 건지 쪽으로 차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더라니까요. 여러모로 빨리 하늘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열정으로 덮지 못하는 어려움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연구소를 옮겼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 도심, 그것도 북촌 한가운데 한옥에 있다 보니 환경이 항상 아쉬웠다. 마당이나 밭이 있었다면 천도 널어놓고, 염료 식물도 매일 관리하며 다양하게 염색할 수 있었을 테니까. 특히 쪽이나 염료 식물을 재배할 때는 새벽에 잡초를 뽑아줘야 하는데, 그나마 가진 땅에 심자니 짬 내서 들러도 잡초만 어마무시하게 자라 관리하기 어려웠다. 쪽이 열대 식물인지라 나주나 김천에서 자리를 잡을까도 고민했다. 결국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서울에서 버텨왔지만, 어려움을 견뎠기에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어렵게 연구를 이어나가면서도 그는 원칙을 고수했다. 전시회에 작가로 참여해 열 필의 천을 전시해두고 그 앞을 지킬 때였다. 관람객 서넛이 다가오더니 천 앞뒷면을 한참 번갈아 보더란다. 무얼 그리 뚫어져라 보느냐 묻자 색상이 어쩜 이렇게 균일하냐, 정말 천연 염색한 것이 맞냐고 도리어 되물었다. ‘천연 염색 작품이라고 플래카드 걸어두고 거짓말을 하겠나, 그러니 전문가가 아니겠느냐’ 하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열 번이든, 그 이상이든 반복하는 고집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스카프만 한 크기든 20m에 달하는 천을 염색하든 다르지 않다.
“처음 염색한 천을 보면 균염(均染)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햇볕에 널어두고 보면 군데군데 물이 덜 들어서 빈 곳이 보이거든요. 그러면 염색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저는 기본 열 번은 해요. 그러니까 10년이 지나도 색이 안 바래고 그대로인 거죠. 물론 천연 염색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어머니만 해도 얼룩이 있어야 천연 염색이 아니겠느냐고 하셨고요. 주먹구구식이던 예전과는 염색 방법이 달라졌으니 그 영향도 있겠죠.”
이제는 원칙을 지켜야 할 때
쪽의 매력은 고운 빛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환경오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화학 염색과 달리 친환경적인 천연 염색은 패션업계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천연 염색된 옷을 사거나 직접 염색을 배우는 등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쪽으로 염색된 천은 방충, 방균, 방염 성능을 지니고 있다. 쪽 염색된 옷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피부의 상처나 아토피 같은 질환이 완화되는 경우도 있더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 일본의 한 교수가 쪽 성분을 분석해, 여드름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 항균 기능이 있다는 걸 밝혀내기도 했으니 검증까지 된 셈이다. 게다가 쪽염된 옷은 여름철 높아진 체온을 어느 정도 낮춰주는 ‘쿨링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부르던 노랫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싶다.
중년들이 특히나 천연 염색을 자주 찾는다. 자연의 빛에 부쩍 관심이 많아질 나이인 데다, 눈 번쩍 뜨일 효능에 반해서 그러겠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천연 염색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걸 원치 않는다. 천연 염색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흔들리는 일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천연 염색한 옷을 판매하는 분들 중에서 필요 이상으로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전 일부러 같은 옷을 팔더라도 훨씬 싼 값에 내놓죠. 항의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당당하게 그래요. ‘작품하고 상품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기껏 만든 옷이 안 팔리면 그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래서 밥 벌어먹고 살겠냐’고요.”
전문가 양성 과정에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천연 염색 체험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 염색하고서 끝났다고 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직접 가르치는 제자들에겐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천연 염색을 배워 창업하려는 중년들에게는 디자인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유가 된다면 디자이너와 계약하거나, 의상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전통문화산업 지원 사업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자연
염색 일은 앞으로 5년 정도나 더 할까 싶다. 다만 문화재 보존과학과 염색을 동시에 전공한 전문가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스스로 선구자가 되어 후학을 이끌고자 산업대학원 섬유예술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문화재보존과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출토복식특별전 및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분석해서 바느질 기법, 원단 종류를 밝혀내는데 염색에 대해선 전문가가 없어 추측만 하는 현실이 아쉬웠던 탓이다. 지금은 마음을 접었지만, 전통염색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전문가가 꼭 생기기를 소망하고 있다. 아들이 그 역할을 맡아주길 내심 바라고 있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최근에는 염색에 대한 애정 뒤편으로 숲 해설가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자라났다. 염색밖에 모르던 외골수의 도전이다. 하던 일과 대단히 다른가 싶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숲 해설가는 자연휴양림, 유아숲체험원, 숲길 등에서 국민이 산림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설하거나 지도하는 직업이다. 숲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 이야기, 나무나 식물에 대한 지식, 숲에 얽힌 역사, 숲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처음엔 풀만 보면 ‘저걸로 염색하면 무슨 색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죠. 자연에서 난 재료를 다루긴 했지만 평생 염색만 하고 살았는데, 직접 숲속에 들어와 보니 훨씬 좋더군요.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숲에 직접 나가 해설사 강의를 듣고 있어요. 어떨 땐 배를 잡고 웃고, 어떨 땐 감동받기도 해요.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공부 좀 제대로 해봐야겠다 마음먹었죠. 석 달 뒤에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경쟁률이 만만찮아요. 느리더라도 꾸준히, 열심히 하려고요.”
돌고 돌아 자연이다. 쪽빛으로 물든 손과 흙 잔뜩 묻은 등산화가 전혀 거슬림 없이 자연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먹은 것은 이뤄내는 끈기와 열정이 뒷받침되기에 그럴 것이다. 그의 한결같음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꽃이 가득 핀 오월의 봄 거리가 그렇듯.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앞다투어 봄꽃 개화 시기를 전하고 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철쭉, 산수유, 수선화, 튤립... 그리고 벚꽃엔딩까지 친절한 안내가 줄을 잇는다. 그야말로 꽃철이다. 멀리 남녘 지방까지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의 기운을 맞을 수 있는 곳, 날마다 꽃이 피어나고 있는 수도권 부천의 꽃 이야기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정에 따른 변동으로 꽃 축제와 입장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필수다.)
부천 원미산 진달래 꽃동산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이런 시 한 소절이 아니어도 봄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진달래꽃이다. 부천 원미산(富川 遠美山)은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하다. 봄이 되면 원미산을 뒤덮는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만개한 꽃물결 속에 파묻혀 봄을 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입에 세워진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 시비(詩碑)를 지나 능선을 조금 오르다 보면 발아래로 저 멀리 부천 FC 스타디움이 보인다. 원미산 167m에 올라 정상의 원미정에서 내려다보는 부천 시가지와 종합운동장, 역동적인 축구장을 진달래 동산이 에워싸는 포인트에 서면 봄을 만끽하는 순간이 된다. 3월 중순경부터 약 한 달 남짓 만발한 진달래를 볼 수 있다.
♤가는 길: 지하철 7호선 부천 종합운동장 2번 출구로 나와서 500m 정도 거리에 있다. 참고로 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우측 놀이동산을 끼고 부천 순환 둘레길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둘레길 걷기의 시작이 된다. 특히 1구간의 향토 유적 숲길은 운치 있다.
부천 자연생태공원 튤립 정원
사월과 오월 중순쯤까지 가장 화려한 색감으로 온 누리를 빛내주는 튤립을 볼 수 있는 곳, 부천 자연생태공원이다. 이곳은 부천식물원, 자연생태박물관, 부천 무릉도원 수목원, 농경유물전시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도 테마 정원과 유아 숲 체험관, 힐링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아이 어른 상관없이 다양한 볼거리가 가능한 문화휴식 공간이다. 코로나로 훌쩍 떠나지 못하는 수도권 시민들이 찾아드는 곳이기도 하다.
부천 무릉도원 수목원의 튤립은 고결하고 우아한 자태로 봄 햇살을 받으며 가장 강렬한 색감으로 최상의 멋을 보여준다.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튤립 꽃길을 걸으며 선명한 빨강, 노랑과 보라, 하양, 핑크 등의 화사한 꽃들을 들여다보는 행복은 오직 이때뿐이다. 이 무렵 담장 너머 목련은 이미 지는 중이고, 춘덕산에서는 부천을 상징하는 복사꽃 피는 마을답게 춘덕산 복사꽃 축제가 이어졌었다.
튤립 정원을 지나 나타나는 수목원은 편백 군락지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힐링의 숲이다. 천천히 걷거나 곳곳의 벤치에 앉아 봄의 정취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주상절리를 연상케 하는 폭포, 생태연못 쪽으로 가면 수생식물들과 시원하게 내뿜는 분수의 물바람을 맛볼 수 있다. 나비정원, 풍차, 귀여운 토끼나 공작새의 미니 동물원은 튤립을 보러 왔다가 자연 속의 풍경에 푹 빠지는 시간이 된다. 출구로 나가면 주변에 맛집도 즐비하다.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660(춘의동)
7호선 까치울역 1번 출구에서 3분 정도 직진
내비게이션 명칭 검색 : 부천식물원 또는 자연생태박물관
☏부천 자연생태공원 공원 조성과(032-625-3502)로 연락
백만 송이 장미원의 화려한 봄날
해마다 오월이면 장미가 온 천지에 가득했던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 올해도 여전히 피어나겠지만 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혹시라도 아쉬움에 찾아가 장미원 둘레 담장 너머로 먼발치의 장미꽃들을 바라볼 만도 하다. 돌아보면서 군데군데 나타나는 장미 터널과 예쁜 포토존이 행복감을 주는 장미원이다.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은 부천시에서 1998년 150000여 그루의 장미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되었다. 장미 한 그루에서 7~10송이의 꽃이 피어나기에 백만 송이의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벚꽃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주변의 도당산이 에워싸고 장미를 비롯한 야생화 단지와 분수대, 체력장 등의 시설들이 갖추어진 장미꽃 테마공원이다. 오월과 칠월 사이에 절정을 이루는 백만 송이 장미를 풍성하게 볼 수 있다.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산 34
지하철 역곡역이나 까치울역에 내려 마을버스 013-3번
☏부천시청 공원관리과 공원관리 2팀(032-625-4854)
부천 상동호수공원의 꽃양귀비
계절별 꽃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상동호수공원. 그중에서 5~6월이면 붉은 꽃양귀비가 피어나 짙은 아름다움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준다. 부천시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공원으로 호수 근처로 나무 데크 길이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바람 쐬며 걷는 맛이 최고다. 또한 체육 시설과 놀이시설, 휴식 공간이 두루 잘 갖추어져 있어서 산책길에 한나절쯤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원이다.
꽃양귀비 정원에 들면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의 붉은 양귀비와 함께 청보리가 자라나고 있다. 두 가지의 어울림을 조화롭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혹시 코로나의 여파로 꽃밭 가까이 갈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촬영하려면 망원렌즈를 지참해야 한다. 멀리 꽃구경 가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부천 상동호수공원은 수도권에서 쉽게 나설만한 곳이다.
♤지하철 7호선 삼산체육관역 1번, 5번 출구 역
경기 부천시 길주로 16 복사
부천 중앙공원 능소화 터널
한때는 능소화를 찾아서 저 아랫녘까지 가기도 했다. 이제는 길거리나 동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그 옛날 구중궁궐 속에서 다시 찾지 않는 임금이 하도 그리워 궁녀 소화는 날마다 임금의 발자국 소리에 오매불망 귀를 기울였다. 죽으면서도 담장 아래에 묻혀 님을 기다리겠다는 애절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궁녀 소화, 님의 발소리를 들으려 귀를 활짝 열어놓은 듯 피어난다. 기다림의 세월이 능소화로 곱게 다시 피어났다는 전설의 꽃이다.
부천 중앙공원에 가면 능소화가 터널을 이루어 피어난다. 6월 말부터 7월 중하순까지 흐드러지게 만개했다가 툭툭 떨어지며 진다. 꽃이 지는 모습도 볼만해서 능소화 터널 아래 낙화가 뿌려져 있을 때 다시 가기도 한다. 더위와 비바람에도 흐트러진 남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꽃잎 하나씩 날리며 지는 게 아니고 미련 없이 꽃 한 송이 통째로 떨어뜨리는 게 능소화의 마지막 모습이다.
♤경기 부천시 중동 1177(부천 시청 뒤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