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건강관리 및 위험 예측, 대화를 통한 심리적 안정감 제공 등 인공지능은 노인의 신체적·정서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노년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공지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생각이나 학습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을 말한다. 영어로는 ‘Artificial Intelligence’라고 하며, 줄여서 AI라고 부른다.
2020년 한국신용정보원의 ‘AI 기술·시장 동향 : 핵심 기술, 시장 규모, 사업 리스크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AI 시장 규모는 2025년까지 연평균 38.4% 성장해 1840억 달러(약 204조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25년 10조 5000억 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정부는 올해 ‘인공지능 10대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 그중 주요 목표는 초고령사회 대비 ‘전 국민 AI 일상화’다. 독거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보살피고 민생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상용 인공지능 제품·서비스를 국민 생활 곳곳에 확산하는 프로젝트다.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로봇 지원, 소상공인 인공지능 로봇 전화상담실 도입, 공공병원 의료 인공지능 적용 등이 주요 과제다.
의료 AI : 의사도 대체할까?
지난해 11월,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마켓은 AI 시장 규모가 2027년에는 4070억 달러(약 563조 9000억 원)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업종별로는 의료 및 생명과학 부문이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우리나라의 의료 AI 기술 수준도 빠른 성장을 이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22년 보건의료산업 기술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한국이 보유한 의료 AI 기술은 가장 우수한 미국의 74∼80%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기술을 따라잡는 데 2년에서 3.5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측됐다.
긍정적인 부분은 한국이 AI를 활용한 의료 영상 판독 분야에서 발전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김현철 진흥원 연구개발혁신본부장은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를 학습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 AI는 이미 의료 현장에서 쓰일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은 2월 28일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방암 검출 AI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여기에 정부는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공의료기관에 ‘닥터앤서’(Dr.Answer) 도입을 확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한 닥터앤서는 데이터·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의사의 진료·진단을 지원하는 AI 의료 소프트웨어다. 심뇌혈관, 대장암, 유방암 등 주요 8대 질환의 예측과 진단을 지원한다.
닥터앤서의 도입 확대와 함께 챗GPT의 활용으로 의료 AI가 단순히 진단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의사를 대체하는 ‘AI 의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최근 챗GPT는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의 생화학, 진단추론, 생명윤리 3개 과목에서 52.4∼75.0%의 정답률을 보여 합격권에 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챗GPT 진단 결과의 정확도와 전문성이 떨어져 의사를 대체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라은 가톨릭대 의료정보학교실 교수는 지난해 11월 ‘의료 인공지능의 시대, 의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토론회에서 “인공지능이 효과가 좋은 약물로 처방을 내릴지라도 환자가 그 약물을 사용하고 고통을 느꼈을 경우 인공지능이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궁극적으로 인류를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는 선동적인 역할은 인간 의사의 책무다”라고 말했다.
2021년에는 세계 최초의 간호 로봇 ‘그레이스’가 세상 밖에 나왔다. 개발사 핸슨로보틱스의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핸슨은 “그레이스와 같은 로봇은 의료 종사자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AI와 로봇 기술은 의료 종사자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 자료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강조했다.
그레이스는 사람의 얼굴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환자의 체온과 맥박을 감지하는 열화상 카메라,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센서 등을 탑재했다. 노인 돌봄을 전문으로 하는 로봇으로 환자의 말동무 기능도 갖췄다. 한국어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봄 AI : 사회복지사도 대체할까?
정부의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 과제 중 하나는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로봇 지원’이다. 현재 지원되는 돌봄로봇은 AI 스피커 유형이다. 2016년 SK텔레콤이 국내 최초 음성인식 AI 스피커 ‘누구’(NUGU)를 출시한 이후, ICT 기업들은 AI 스피커를 잇따라 내놓았다.
SK텔레콤은 최근 노인 돌봄체계 지원 전문기관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누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AI 기반 음성 안내 플랫폼 ‘누구 비즈콜’을 활용한다.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대상자들의 안전 및 안부 확인, 생활지원사들의 업무 효율을 향상하는 시범 서비스를 2만 명을 대상으로 제공한다.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은 중장년 1인 가구를 위한 AI 안부 전화 서비스다. 현재 전국 40여 개 지자체와 협력해 서울, 경기, 인천, 부산, 광주 등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클로바 케어콜은 돌봄 대상자에게 주 1~2회 전화를 걸어 식사, 수면, 외출, 복약 등의 안부를 확인하고, 통화가 되지 않거나 이상자로 분류되면 담당 공무원이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클로바 케어콜의 차별화된 특징은 자연스러운 대화와 함께 위로·공감·지지·격려의 기술을 탑재했다는 점이다. 인간과 정서적으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AI를 지향한다. 초대규모 AI ‘하이퍼클로바’ 기술을 적용한 덕분이다. 올해부터 클로바 케어콜은 ‘기상 재난’ 주제의 목적성 대화도 가능해졌다.
KT의 AI 스피커 이름은 ‘기가지니’다. 평상시 하루 세 번 안부 확인과 안내방송 및 복약 알림의 양방향 소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급 상황 발생 시 이용자가 “지니야, 살려줘”라고 말하면, AI 스피커-KT텔레캅-119 안전신고센터가 365일 24시간 연동돼 응급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KT는 2021년 6월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AI 케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시행 후 2년이 넘은 가운데 이정화 전남대학교 생활복지학과 교수 연구팀은 기가지니 1, 2년 차 이용자 212명을 대상으로 한 ‘AI 스피커 기반 케어 서비스’ 연구 보고서를 지난 2월 발표했다. 조사 결과, 건강 수준 개선 및 유지 80.0%, 상태 불안감 감소 효과 72.6%, 고독감 감소 65.9%, 우울감 감소 63.5% 등의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에 대해 묻자 이정화 교수는 “대부분의 이용자는 저소득층의 고연령층이었다.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부분은 복용 시간 알림이었다. 약을 빠뜨리지 않고 먹은 덕분에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AI 스피커가 고독사 예방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심했던 이용자들의 우울감, 고독감도 감소했고, 친구가 생긴 것 같은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광주 서구는 AI 스피커와 함께 ‘AI 복지사’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AI 복지사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한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사의 행정업무 시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는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AI 복지사 개발에 예산 26억 4000만 원을 배정했다. 이후 각 지자체에서 AI 복지사 서비스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사회복지 관련 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AI 복지사가 늘어나면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줄어들고,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화 교수는 기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AI 복지사라고 하면 꼭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만 결국은 기계다.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화 교수는 “AI 스피커를 통해 볼 때 AI 복지사가 노인 돌봄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보통 돌봄 매니저는 한 사람당 노인 16명을 담당한다. AI 스피커가 도입된 후에는 돌봄 매니저 한 명이 노인 100명을 담당했다. 효율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매일 안부 연락은 AI 스피커가 하기 때문에 응급 상황 등 문제가 생겼을 때만 돌봄 매니저가 집을 방문해 조치를 취했다.”
이정화 교수는 “AI 스피커가 돌봄 매니저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사람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포인트를 짚었다. 더불어 “AI가 정서적인 부분도 케어하는 등 진화하고 있어 복지사의 역할을 충분히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I 관리와 추가적인 서비스 제공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사회복지 역할을 할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의견을 전했다.
두충, 오가피 등을 주요 약재로 하는 약침액 ‘신바로2(SHINBARO2)’가 허리디스크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한방 척추질환 치료의 유효성이 재차 인정받고 있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하인혁 소장)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이상국 교수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신바로2의 허리디스크 치료 기전을 규명하고 운동 능력 개선 효과를 입증했다고 3일 밝혔다. 해당 논문은 SCI(E)급 국제학술지 ‘신경학최신연구(Frontiers in Neurology, IF=4.086)’ 3월호에 게재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 환자는 197만 5853명으로 약 2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로 인해 현대인의 고질병이라고 불리며 척추전방전위증, 척추관협착증과 함께 3대 척추질환으로 꼽힌다.
허리디스크의 원인으로는 바르지 못한 자세, 외상, 과체중 등이 있다. 이 같은 요인들로 척추에 과도한 부담이 누적될 경우 척추뼈와 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추간판)가 손상되거나 탈출하며 염증 및 통증을 유발한다. 이는 보행에 지장을 주는 등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허리디스크에 활용되는 비침습적 치료법으로는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일반 약물과 천연물 약재를 이용한 약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주사의 경우 반복적으로 맞으면 척추 주변 근육과 인대가 약화되고 감각이 저하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달리 약침은 천연물 한약재 유효성분을 인체에 무해하게 정제한 뒤 사용해 화학 약물보다 부작용이 거의 없다.
특히 두충, 오가피 등을 주요 약재로 하는 약침액 ‘신바로2(SHINBARO2)’는 통증의 원인이 되는 염증을 빠르게 해소하는 효과가 있어 임상에서 활발하게 처방되는 중이다. 실제로 신바로2의 기반이 되는 GCSB-5(청파전)의 근골격계 질환 치료 효과는 다수 연구 논문을 통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하인혁 소장)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이상국 교수 연구팀의 공동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허리디스크 상태를 유도하기 위해 쥐 꼬리의 디스크에서 분리한 자가수핵을 쥐의 요추 5번 신경근과 가까운 부위에 이식했다. 이어 쥐 그룹을 △정상 집단 △허리디스크 유도 집단 △신바로2 근육투여 집단(2, 10, 20mg/kg) △신바로2 구강투여 집단(20, 200mg/kg) 등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이후 연구팀은 산화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호전달물질인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와 인터루킨-베타(IL-1β)의 발현을 분석했다. 산화 스트레스는 활성산소가 체내에 과도하게 누적돼 산화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말하며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이는 노화와 더불어 근골격계 질환, 신경 손상, 대사증후군 등의 원인이 된다.
실험 결과 허리디스크 유도 후 증가했던 TNF-α와 IL-1β는 신바로2 투여로 발현량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근육투여 집단과 경구투여 집단 모두 신바로2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발현량이 더욱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연구팀은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킴으로써 허리 통증의 원인인 염증을 해소하는 신바로2 의 치료기전이 입증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팀은 신바로2가 디스크 퇴행 관련 인자의 발현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바로2를 투여한 집단의 ADAMTS-5(A Disintegrin and Metalloproteinase with Thrombospondin Motifs 5) 증감을 살펴본 결과 허리디스크 유도에 의해 증가했다가 신바로2에 농도 의존적으로 감소됐다. ADAMTS-5는 연골을 파괴하는 효소로 디스크 퇴행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신바로2는 동물 행동실험에서도 운동능력 개선 효과를 보였다. 쥐가 쳇바퀴를 돌게 한 뒤 움직임을 관찰하는 검사를 진행한 결과 신바로2를 근육 및 구강 투여한 지 10일 차부터 뒷발 사용량이 유의미하게 늘어났다. 또한 신바로2를 투여한 농도가 높을수록 운동기능이 더욱 크게 개선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해당 연구를 주도한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 홍진영 선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신바로2의 허리디스크 치료 기전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허리디스크 치료에 있어 천연물 유래 한방치료가 스테로이드와 같은 화학성 약물의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과의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꾸준히 공동 연구 논문을 발표하며 한의학의 과학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2017년에는 근골격계 질환 치료에 활용되는 한약재 천수근의 항골다공증∙항염증 효과를 입증해 천연물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우울증 치료제인 SSRI* 처방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OECD 국가 중 우울증 유발률 1위인 만큼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령자에 대한 항우울제 처방이 늘어 우려스럽다거나, 우울증 약인 줄 모르고 먹는 고령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자 항우울제 처방, 현실을 들여다본다.
2017년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31명. OECD 국가 중 1위다. 의사들은 노인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202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항우울제 사용량은 OECD 국가 최저 수준이다. 우울증 유발률과 자살률은 1위인데, 우울증 약 처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기운 나는 약’, 쉽게 처방되는 항우울제
노인 우울증은 ‘60세 이상 인구에서 발생하는 우울 증상’이라고 따로 정의할 정도로 일반 우울증과는 별개로 다뤄진다. 노인 우울증의 특징은 ‘온갖 병원을 다 가봐도 아프다’는 것이다. 우울 증상이 여러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신체적 질환과 동반되어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규만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우울증뿐 아니라 공황장애, 범불안장애와 같은 노년기 불안장애도 늘고 있어 1차 치료제로 항우울제가 처방되고 있다”면서 “내외과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지속되는 원인 불명의 신체 증상이나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 예민도를 낮추기 위해 처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고령 세대는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약에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정신과에 가보세요’라는 말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는 우울증 치료에 대한 문화적·법적 낙인이 치료를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 정신과 진료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진단서에 남는 ‘F코드’를 우려해 ‘죽어도 정신과는 못 간다’며 버티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 진단서에 F코드가 남는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환자에게 고지조차 되지 않는다. 권 이사는 “쉽게 처방할 수 있도록 항우울제 처방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고령자의 우울증 치료는 다방면으로 살펴보고 이뤄져야 하는데, 낙인이 두려워 정신과를 찾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권 이사는 “사람의 뇌에는 혈류장벽(Blood Brain Barrier)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대부분의 약물은 이것을 뚫지 못한다. 아세트아미노펜(해열진통제)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 성분이 뇌에 영향을 줄 위험은 없다는 뜻이다. 이 장벽을 넘는 약을 향정신성 약물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SSRI가 꼽힌다. 노인들은 뇌 혈류장벽이 느슨해져 있기 때문에 부작용에 더 쉽게 노출된다”면서 “아세트아미노펜 하나를 처방하는 것보다 렉사프로(항우울제) 하나를 처방할 때 용량 계산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항우울제는 뇌에 작용하기 때문에 적은 용량으로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전문적으로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항우울제를 먹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약물을 복용할 확률이 높은 고령자의 경우 한 번 문제가 발생하면 목숨도 위험할 수 있을 만큼 부작용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치료 접근성의 명과 암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서는 진료 시간이 길수록 병원의 적자도 커진다. ‘3분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환자를 설득하고 약에 대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기운 나는 약’으로만 알고 약을 복용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권 이사는 “렉사프로와 같은 대표적 항우울제는 기존에도 타 과에서 처방이 가능했으나 60일이 경과하면 정신과에 갈 것을 권유하고 협진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해당 고시 내용을 없애기로 했다”면서 우울증 치료 접근성의 명과 암을 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노쇠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는 필연적으로 우울감과 같은 정신건강의학적 문제를 수반한다. 신체형 장애 환자를 진단했지만 SSRI 처방 제한으로 우울증을 치료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런 환자들이 찾는 병원이 주로 내과나 신경과임을 고려하면 SSRI 규제 완화로 고령자 우울증 치료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령 환자를 진료할 때는 적극적으로 기분장애를 확인하고 약제 처방을 하는 적극적 진료 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 역시 고령자는 다약제 복용을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병원을 전전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진료와 부작용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항우울제가 치매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노인 우울증의 40~60%는 인지 기능 저하가 동반돼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인다”면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우울증이 치매를 유발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진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고령 환자분들 중에는 우울한 기분이나 의욕 저하보다 무기력감, 식욕 저하, 가슴 답답함, 소화불량 등의 신체 증상으로 우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환자 스스로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항우울제 복용에 관해 설득이 필요하지만, 치료 후 신체 증상이 호전되면서 이전의 삶을 되찾고 기뻐하는 분들이 많다”며 치료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SSRI: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우울증 치료 약물 중 하나.
초고령화시대, 처방전이 길어질수록 약을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더욱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환자가 알아야 할 약 먹는 법을 소개한다.
고혈압
① 고혈압 약 중 일부는 복용 시 마른기침, 소변량 증가, 쇠약감, 어지럼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나면 의사, 약사 등 전문가에게 알리고 상담을 요청한다.
② 의사와 상의 없이 복용을 중단하지 않는다.
【KEY POINT】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꾸준히 치료받아 적절한 혈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뇨병
①혈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 복용을 주의해야 한다.
혈당을 높이는 약물: 이뇨제, 갑상선 호르몬제, 결핵약, 부신피질 호르몬제, 시럽제
②당뇨 약 복용 중 저혈당 증상이 나타나면 사탕이나 음료수를 즉시 섭취하고, 나아지지 않으면 전문가에게 알린다.
【KEY POINT】 정기적으로 혈당을 측정해 기록하고, 규칙적으로 진찰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고지혈증
①고지혈증 약 중 스타틴 계열은 근육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근육통이나 쇠약감이 있는 경우 즉시 전문가에게 알린다.
②고지혈증 약 중 일부는 간 기능 약화를 유발할 수 있다. 간 기능이 약할 경우 처방 전 의사와의 상의가 필요하다.
【KEY POINT】 고지혈증 환자는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진찰받고 검사 수치를 기록하도록 하자.
나이를 먹고 노화가 진행될수록 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동시에 약을 제대로 복용하고 있는지, 좋은 약은 무엇인지 궁금증도 커진다. 유튜브 채널 ‘리틀약사TV’를 운영하는 이성근 약사를 만나 약에 대한 궁금증과 오해를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저는 OO 질환이 있는데, 어떤 약을 먹어야 좋아질까요?” 이성근 약사가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유형이다. 이 약사는 2012년 약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자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했고, 2018년에는 유튜브로 소통의 장을 확장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35만 명에 이른다.
‘리틀약사TV’ 구독자는 40대부터 60대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 가운데 고령자는 어떤 특성을 보일까. “어르신들은 고혈압, 당뇨, 대사증후군 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고, 그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한다. 피로와 관련된 문의도 많다. 최근 들어서는 불면증과 우울증에 관한 문의가 늘고 있다”고 이성근 약사는 말했다.
고령자 약, 올바른 복용법은?
우리나라 고령자의 다제약물 복용은 꾸준히 거론된 문제다. 2020년 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다제약물 복용자는 2016년 154만 8000명에서 2019년 201만 2000명으로 증가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75세 이상이 84만 1000명(복용률 22.4%)으로 가장 많았다.
다제약물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겁을 먹고 무작정 약 복용을 거부하는 고령자도 많아졌다. 이성근 약사는 “무조건 약을 안 먹는 것은 내 몸에 무익한 행동이다. 약의 유익성이 유해성보다 높을 때는 복용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혈압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 ‘고지혈증 약은 부작용이 많다’ 등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약을 복용하지 않는 어르신이 많습니다. 철저한 식습관과 생활습관 개선 없이 무작정 약을 안 먹는 것은 내 몸이 혹사당하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그에 따른 유해성이 더 커진다는 거죠. 약 복용을 중단하고 싶으면, 의사와의 상의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건강 증진을 위한 영양제는 하루에 얼마나 먹는 것이 적정 수준일까. 이성근 약사는 “사실 정해진 기준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다”면서 “제품의 개수가 아닌 성분의 중복성 여부 파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약사는 “영양제를 통해 건강을 증진하고 싶다면 유산균, 오메가3, 종합비타민을 드시고 필요에 따라 제품을 추가해 먹어보면서 자신한테 맞는 조합을 만들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고지혈증 약은 체내에서 코엔자임 합성을 방해합니다. 그 때문에 코엔자임 Q10 영양제 섭취를 추천합니다. 반대로 홍국쌀 추출물은 고지혈증 약을 먹는 환자에게 복용을 피하라고 합니다. 모나콜린K 성분이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과 동일한 물질이기 때문에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습니다.”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약 개발
영양제를 구매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은 자신에게 필요한 성분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다음 고려하는 기준은 가격이다. 과연 비싼 제품이 몸에도 좋을까. 이성근 약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영양제는 원료가 중요하다. 제품이 비쌀수록 좋은 원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성근 약사는 약에 대해 연구하면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 약사는 ‘더 리틀스’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직접 개발한 영양제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는 피크노제놀과 은행잎 추출물을 섞은 제품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피크노제놀은 강력한 항산화제이고, 은행잎은 항산화 기능과 함께 기억력 개선에 도움을 주는 원료입니다. 고령자들에게 도움이 될 제품이라고 자신합니다.”
이와 함께 이성근 약사는 ‘약과 영양제’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약은 질병이 있을 때 치료 목적으로 먹는 것이다. 영양제는 질병의 치료보다는 건강 유지와 증진이 목적이다”고 강조했다.
이성근 약사는 “만병의 근원은 식습관, 생활습관 등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습관이 개선되어야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영상 말미에 늘 “못 고치는 병은 없다. 못 고치는 습관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잘못된 습관은 고치지 않은 채 약으로만 병을 고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영양제 역시 건강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무엇보다 식습관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보조적인 수단으로 영양제를 드시고, 식습관 개선을 두 배로 철저히 하시길 바랍니다.”
이성근 약사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유튜브 구독자가 100만 명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처럼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드리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영양제를 양심적으로 만들어 많은 분의 건강 증진에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엄마로서 때로는 아내, 며느리, 딸, 강사 등 상황에 따라 한바탕 역할극을 해내야 하는 필자에게 가면(페르소나, Persona)은 어쩌면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쓰는 것은 가정, 학교, 직장 등 크고 작은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좋은 점을 드러내고 나쁜 점을 감추려는 지극히 당연하고 본능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희비쌍곡선 롤러코스터 인생
글쓰기는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은 강의입니다. 필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글쓰기입니다. 강의는 두 번째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 무슨 장난이며 조화란 말입니까. 저만 이러는 걸까요? 똑같은 일이 어떨 땐 정말 행복하고, 어떨 땐 너무 고통스러워 도망치고 싶고 당장 그만두고 싶으니 말입니다. 어느 힙합 뮤지션은 ‘음악은 행복이자 깊은 고통’이라고 노래했습니다. 행복과 고통은 둘이 아닌 하나라 앞뒤로 딱 붙어 있나 봅니다.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여러분도 하루하루 지내시나요?
칼춤 추는 여자
필자는 막대기처럼 뻣뻣한 몸이라 춤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자칭 춤꾼입니다. 30년이 넘도록 주부로서 싱크대를 점령하고 있는 망나니이기 때문입니다. 망나니가 술 뿜어내고 칼춤 추듯 저도 도마 위에서 바다며 뭍에서 포획한 먹잇감 대가리 치고 몸통 자르며 식구들 위해 칼춤 추니까요. 살리기 위해 죽이는 역설, 이게 어쩌면 삶의 양면성 아닐까요. 먹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거잖아요. 죽여서 먹이기도 하고요. 쓱싹쓱싹! 탕탕탕탕! 칼자루 쥐고 김치 썰고, 양파 다지고, 오징어 저미다가 혹 원망 한 줄기 툭 터져 나오면 칼끝에 살기 실려 손톱이 썰려나갈 때도 있습니다. 싱크대 앞에서 칼춤 추다 나쁜 생각 못 하도록 마음 단속해주는 하늘의 보살핌 아닌가 합니다.
두 얼굴의 사나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자기 내면에 억눌렀던 추악함과 잔인함을 가감 없이 표출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886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발표한 단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아 존경받던 지킬 박사는 쾌락을 탐하는 욕망을 억누르며 두 개의 본성 사이에서 고민하다 선과 악을 분리해내는 약물을 만듭니다. 지킬 박사로서 품위에 흠집을 내지 않고도 하이드로 변신해 깊숙이 눌러놨던 쾌락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약을 마시지 않아도 지킬 박사가 계속 하이드로 변신하면서 본성의 균형이 깨지고 내면이 악으로 차올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하고 맙니다.
앞뒤가 똑같은 동전
500원짜리 동전을 볼까요? 어느 쪽이 앞면인가요? 필자도 갑자기 헷갈리네요. 하여튼 한쪽에 학이 그려져 있고 다른 면에 숫자 500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 하나 볼까요. 1000원짜리 지폐 앞면엔 퇴계 이황 초상이 있고, 뒷면을 보면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가 있습니다. 막연히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도산서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완락재라는 작은 정자에 앉아서 조용히 ‘주자서절요서’(朱子書節要序)를 집필하는 퇴계의 모습을 그려놓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돼지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은행에 입금하려는데 동전 하나가 앞면도 학이고 뒷면도 학이지 뭡니까. 또 어느 날은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앞면도 퇴계 이황 얼굴이고 뒷면도 똑같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동전과 지폐는 돈 구실을 할까요? 500원과 1000원이라는 돈값을 치를 수 있을까요? 물건을 살 수 있는 교환이라는 값어치를 전혀 할 수 없게 됩니다.
둘이면서도 하나인, 하나이면서 둘인
손바닥이 있고 손등이 있는데 우리는 이 두 면을 합쳐 ‘손’이라고 부릅니다. 양면이 손바닥만 있거나 손등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차피 하나인데 경우에 따라 둘로 구분해 부를 뿐입니다. 우리 삶, 사건, 사람도 흡사합니다. 양면이 있어야 제값, 제 역할을 합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햇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습니다. 건전지 한 몸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두 극성이 같이 있어야 전기 에너지가 생깁니다. 감정에도 애증(愛憎)이 함께합니다. 마치 동전 양면처럼 하나로 맞붙어 있습니다. 햇빛은 좋기만 하고, 어둠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양(陽)은 선(善)이고, 음(陰)은 악(惡)일까요.
겉과 속이 다른 게 나쁠까요?
어떤 사람을 평가하면서 “그 사람은 참 표리부동(表裏不同)해.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아주 형편없어.”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속마음을 겉으로 곧장 드러내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이고 올바른 것일까요?
평소에 시기하고 미워하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 앞에서 대놓고 “나는 당신의 이러저러한 면이 정말 밥맛없고 가증스럽기 짝이 없어요. 어쩌면 그렇게 재수가 없는지, 당신이 잘 안 됐으면 정말 쌤통이겠네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해봅시다. 싫어하는 내색은 감춘 채 “저번에 만든 그 상품은 정말 근사하던데요. 아이디어가 탁월하십니다. 저는 그쪽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요. 하하하!” 이런다고 나쁜 사람일까요?
오히려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이 더 위험하고 무례한 것은 아닐까요? 겉과 속이 하나라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수라 백작 같은 당신 그리고 나
우유부단(優柔不斷)과 심사숙고(深思熟考)는 똑같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놓고도 누구는 “참 깊이 있고 침착한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만 다른 누구는 “어째 사람이 결정장애야, 뭐야. 판단을 못 해”라고 하니까요. 한 사람, 한 사건을 놓고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반된 입장에 놓입니다.
말수가 적고 신중을 기하는 면이 좋아서, 또 남들 앞에서 나대지 않고 잘난 척하지 않는 게 좋아서 그 남자랑 결혼했다는 301호 김 여사. 결혼 30년 차가 되도록 살다 보니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징글징글 싫어졌다고 합니다. 우유부단하고 임기응변도 제대로 못 하는, 융통성이라고는 1도 없는 꽉 막힌 남자라는 겁니다. 처세도 젬병인 데다 상황 판단하는 능력도 느려터진 한참 못난 남자로 보인다나요. 선택이나 결단을 미루는 것도 그렇고요. 내가 좋아서 선택했던 성격이나 특징, 외양이 싫어지곤 합니다.
인공지능(AI)의 양면성
도대체 양면성이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정의를 풀자면, ‘한 가지 사물에 속해 있는 서로 맞서는 두 가지 성질’을 양면성이라고 합니다. 풀이는 간단해 보이는데 언뜻 와 닿지 않습니다. 최근 화제만발인 ‘챗GPT’라는 인공지능 오픈AI 시스템에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AI 가라사대
“인간의 양면성은 사람 안에 긍정적인 특성과 부정적인 특성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개인은 선과 악, 빛과 어둠, 그리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행동 모두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경향도 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측면이며 관계, 감정, 의사결정 등 삶의 많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일반 사전이나 학문적 정의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풍부하고 상세하게 개념을 설명하는 것 같아 놀랍고 고마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러한 특성은 문학, 철학, 종교에서 공통 주제이며,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탐구되어왔다. 그것은 인간의 복잡성과 그들이 일차원적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특성과 부정적인 특성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다면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 본성의 이러한 측면을 이해하는 것은 개인이 더 자각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개발하고, 더 균형 있고 조화로운 삶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작가나 학자나 기자 같은 글 쓰고 분석하는 직업에 인공지능이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는 것 아닌가 싶어 마냥 기쁘지는 않습니다.
덜 미워하며 살아가려면
필자가 강의 말미 칠판에 분필로 이런 글을 또박또박 적습니다.
“모든 인간은 각기 존경스럽고, 각기 추악하다.”
이 양면을 어떻게 다스리고 잘 조절할지는 우리의 숙제입니다. 내게 허물이 있더라도 그 허물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했듯이요. 동전이나 건전지가 음양이 있고 앞뒤가 공존해야 가치가 있고 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사물도 사람도 그렇습니다. 숙명처럼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균형과 조화를 찾아야겠습니다. 잘하려고, 인정과 칭찬만 받으려고 안달복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언행일치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강박에 너무 주눅 들거나 위축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때도 많습니다. 대신에 자신을 덜 미워하며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내 안의 허물, 추악함, 부끄러움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점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장단이 고루 있는 게 사람입니다. 그 장단을 조율하며 오늘은 굿거리로 신명 나게, 내일은 세마치로 사뿐사뿐 가볍게, 모레는 진양조로 느릿느릿 장단 맞추며 살아보아요.
일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늙어가고 있는지 측정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까? 노화를 최대한 천천히 진행되도록 하거나, 예방하거나, 가능하다면 역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노화 데이터를 수집해 신체 나이와 노쇠 정도를 측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디파이’는 이 고민에서 출발했다.
디파이(DeFi)라고 하면 블록체인에서 언급되는 탈중앙화 금융이 떠오를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 소개할 디파이(DYPHI)는 건강한 노화를 돕는 디지털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노인의학 연구에 기반해 우리 신체가 얼마나 노화했는지, 노쇠 정도에 맞춘 운동과 영양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한 예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어간다.
신체 나이 알려주는 ‘안단테핏’
디파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안단테핏’(AndanteFit)은 임상 검증된 자동 신체기능평가 솔루션이다. 노인 신체기능검사(SPPB)를 수행하고 연구를 기반으로 도출해낸 노쇠 지수(신체 나이)를 보여준다. SPPB 검사는 보행 속도, 특정 자세를 잘 유지할 수 있는지, 앉았다 일어서기를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해 점수화하는 검사다. 1980년대 후반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처음 만들어 전 세계로 보급됐다. 그동안 SPPB 검사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초시계로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안단테핏은 기계가 자동으로 측정해주며, 검사 시간은 3분으로 줄였다.
윤성준 디파이 대표는 “신체 기능이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면 근육이 빠지면서 근감소증이 생기고, 침대에 누워만 있다 보면 사회적 교류도 끊어진다. 잘 먹지 못하니 영양 상태도 나빠진다. 이 모든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신체 기능은 굉장히 중요한 포지션이다”라고 설명했다. 신체 기능이 곧 노쇠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셈이다.
디파이는 안단테핏으로 진행한 신체 기능과 노쇠 지수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신체 나이도 제공한다. 신체 나이는 복지관, 치매안심센터, 요양 시설, 데이케어센터(주야간 보호센터) 등에서 활용도가 높다. 이 개념을 도입하니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시설 담당자도, 설명을 듣는 노인도 이해가 쉬워졌다. 노화 정도가 좋아진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보여 돌봄을 받는 고령자의 효능감도 높아진다. 안단테핏을 이용한 노쇠 평가는 서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등 서울 권역 치매안심센터, 인천광역치매센터 등 인천 권역 치매안심센터와 서울·인천 복지관 등에서 시행 중이다.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기기 ‘싸코핏’
2021년 근감소증이 국내에서 질병으로 분류되고, 예방적 통합돌봄 서비스에 노쇠 평가가 핵심으로 도입되면서 신체기능평가 수요가 늘어났다. 안단테핏으로 누구나 신체 기능을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면, 현재는 근감소증 진단 후 처방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만들고 있다. 팔십 평생 운동을 안 했던 노인을 운동하도록 유도하는 건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나이여도 신체 기능 상태가 천차만별이다. 개인 상태에 맞춘 운동 설계와 유도가 중요한 이유다.
디파이는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기기 ‘싸코핏’(SarcoFit)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근감소증 약물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운동 및 영양 중재(처치)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싸코핏은 △신체 기능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운동 중재와 △순응도를 높이는 디지털 인지행동 치료로 구성된다. 싸코핏이 디지털 치료기기 품목 허가를 마치면, 운동·영양·인지·사회적 교류의 다면적 중재에 기반해 지역사회에 노쇠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헬스케어 서비스 ‘마이 비바체’를 선보일 계획이다.
윤성준 대표는 “노년기에 병원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나의 생활권인 지역사회에서 노쇠 관리 평가는 더욱 중요하다. 집에 살면서도 나의 신체 기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떨어질 것 같다면 미리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 회복하기 어렵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회복을 넘어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이른바 역노화도 가능하다. ‘노쇠를 관리한다’는 개념을 만들어가는 디파이는 지역 곳곳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반면 개호보험 인정자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일본 후쿠이현(福井)과 일본의 요양·재활·방문 돌봄 시스템을 선도하고 있는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ほっとリハビリシステムズ)의 초청을 받았다. 일찍이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는 일본에서도 노쇠 예방을 위해 안단테핏에 관심을 보인 것.
윤 대표는 “단순히 만성질환 수가 적으니까 건강하다는 개념보다, 질환이 있더라도 얼마나 나의 신체 기능, 영양, 사회관계를 잘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고령자는 노후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의 노쇠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50대 얼리 시니어 단계부터 디파이가 만들어놓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건강하게 잘 늙어갈 수 있다는 답을 주고 싶다”며 디파이의 비전을 제시했다.
‘의료 마이데이터’ 시대가 열렸다. 여러 의료기관에 흩어져 있는 건강 정보를 환자와 의료기관이 손쉽게 확인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의 발달로 편리한 세상이 됐지만,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범부처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주요 골자는 ‘의료 마이데이터’ 시스템 구축 사업이다.
의료 마이데이터란 국민이 의료기관, 공공기관 등에 분산된 자신의 개인 건강 정보를 통합적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원하는 헬스케어(의료, 건강관리 등)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자신의 개인 건강 정보를 제공·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개인 건강 정보를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의료 마이데이터의 편리성
이날 보건복지부는 △의료·건강·돌봄서비스 혁신 △바이오헬스 산업 수출 활성화 △첨단 융복합 기술 연구개발 강화 △바이오헬스 첨단 전문 인력 양성, 창업 지원 강화 △법·제도 및 인프라 구축 등 5대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5대 전략 혁신을 위해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한다. 우선 분산된 정보를 개인, 의료진 등에게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하는 기반을 올해 안에 구축한다. 현재 서울·부산 등 240개 의료기관에서 시범 운영 중인 인프라 '마이 헬스웨이'(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은 오는 6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를 보건의료 빅데이터와 연계·결합해 연구자 등에게 제공하는 플랫폼도 활성화한다.
그렇다면 의료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장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장점으로 ‘편리성’이 꼽힌다. 정부가 개발한 ‘나의 건강기록’ 앱(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개인은 자신의 의료기록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의료 마이데이터 시스템이 도입되면 개인을 넘어 의료기관도 환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환자가 병원을 이동하려고 하면 진료 기록을 출력해서 다녀야 했다. 전국의 의료기관에 마이데이터 시스템이 도입되면 이러한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편리하다. 의료 마이데이터에는 진단 정보, 약물 처방 정보, 병리검사 정보, 생체신호 정보 등이 모두 담긴다. 의사가 환자의 마이데이터를 활용하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진찰을 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의료 마이데이터는 병의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당뇨 환자가 혈당 정보를 의사에게 전송하면, 의사는 환자가 내원하지 않아도 데이터를 보고 알맞은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정보 유출 우려 숙제
정부의 이와 같은 의료 마이데이터 정책 추진은 지난 2월 27일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속도가 붙었다. 이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의 핵심은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이동권)’ 도입이다.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이란 정보 주체가 개인정보를 본인이나 ‘제3자’에 이전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개인이 본인 정보를 적극 관리‧통제하고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 받기 위해 데이터 전송을 요구하는 행위 일체를 뜻한다. 즉 ‘나의 데이터는 내 것이므로 내 뜻대로 활용한다’는 개념이다.
그간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전자정부법 등 일부 특별법에서만 허용됐기 때문에 마이데이터 사업도 금융·공공 분야에 제한적으로 활용됐다. 개정안에 따라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이 정보·통신·교통·보건·의료 등 전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이데이터 시대가 열렸다.
이로 인해 탄력을 받은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은 앞서 말한 대로 6월 중 마이 헬스웨이 사업을 시행한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개인정보 유출 위험 우려 때문이다.
모든 마이데이터 서비스에는 편리성과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라는 장단점이 따른다. 마이데이터는 개인의 데이터를 모두 모아두는 것이기 때문에 보안에 취약하다. 해킹을 당하기 쉽고, 데이터가 과도하게 유출될 경우 사생활 침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개인 동의 기반으로 진행하지만, 고령층의 경우에는 그러한 우려들이 있다”면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지정 기관이나 허가 기관에서만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증상만을 쫓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처방의 원인과 결과가 꼬리를 물면서 약이 약을 불러오는 상태, 연쇄 처방이다. 만성질환이 많은 고령자가 주로 마주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는 약을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먹고 있는 약, 어떻게 점검해야 할까?
김 씨(76세, 여)는 퇴행성 무릎 관절염으로 A의사에게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이후 온몸이 붓기 시작하더니 발목에 통증을 느껴 B의사를 방문했는데, 혈압이 높은 것도 확인되어 혈압 약과 이뇨제를 처방받았다. 그러더니 요산 수치가 높아져 C의사에게 통풍 진단을 받고 통풍 약제 치료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간 수치가 올랐다. 여러 약을 먹다 보니 속도 쓰리다. 위보호제에 간장약까지 어느새 복용하는 약 개수는 7개가 넘어가는데, 자꾸 다른 곳이 아프다. 그저 나이 먹어 몸이 고장 났나 싶다가도,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약 봉투를 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많은 약’ 불러오는 ‘연쇄 처방’
이 과정은 고령자가 흔히 겪는 연쇄 처방(Prescription Cascade)의 예시다. 처방된 약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했으나, 부작용인 것을 모른 채 부작용으로 인한 증상을 해결하고자 다른 약을 추가로 처방받는 상황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의료 접근성이 좋아 어떤 증상이 발생했을 때 여러 병원을 다니며 약을 처방받기 쉬운 환경인 데다, 몸이 아플 때 약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아 연쇄 처방이 이뤄지곤 한다. 게다가 고령자는 만성질환이 여러 개인 경우가 많아 복용하는 약이 많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타 병원에서 처방한 약제를 알려면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을 이용해 확인해야 하는데, 환자의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개인정보 이용에 대해 환자의 동의를 구해야 해 절차상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연쇄 처방은 또다시 ‘다제약물 복용’(Polypharmacy)을 불러온다. 다제약물 복용은 하루 5종류 이상의 약제를 복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다제약물 복용만으로도 병원 입원율은 2배 이상, 낙상·치매 발생 및 사망률 위험도가 1.3~1.5배 정도 높아진다”면서 “다제약물 복용도 질병처럼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용 약 개수가 10개를 넘어간다면 부작용 발생이 거의 100%에 가깝다. 서울아산병원의 약물조화클리닉을 방문한 한 환자는 처방받은 약으로만 30종류가 넘는 약을 먹고 있었다.
여러 병원을 다니다가 중복 처방받는 경우도 많다. 성분이나 효능이 유사한 약들이 처방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위산 억제제와 같은 위장관 보호제가 있다. 또는 각기 다른 증상을 조절하는 항콜린 성분 약제가 누적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가려움증, 기침, 요실금 등 각기 다른 증상으로 처방을 받았지만, 해당 질병 치료에 항콜린 성분 약제가 많이 사용돼 각기 다른 병원에서 처방받을 경우 용량이 과도해지는 식이다.
백 교수는 환자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의 환자분들은 약에 대한 선호도와 신념이 강해 복용을 중단하기가 쉽지 않다. 설득 끝에 약제를 중단하더라도 다시 처방을 받거나 의료진과 마찰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환자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몇 가지인지 늘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지거나 해서 약이 추가된 경우 의사·약사를 통해 먹고 있는 약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김광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의료센터장 역시 연쇄 처방을 막으려면 “새로운 증상을 무조건 약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먼저 적용해보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때 약을 추가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며 “명확하지 않은 증상에 대해서는 비약물 치료를 우선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 끊어내는 다제약물 관리사업
건강보험공단은 다제약물 복용을 해결하고자 대한약사회와 함께 2018년부터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시범으로 실시했다.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 중 한 가지 이상 질환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기적으로 10종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고령자일수록 여러 질환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부작용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해당 사업은 주로 고령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제약물 관리사업은 병원모형, 지역사회모형, 의원모형, 장기요양시설모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주로 병원과 지역사회모형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병원모형은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이뤄진다. 진료 전 약사와의 면담을 통해 먹고 있는 약물 종류와 복용 상태를 점검하고, 노년내과 의사가 진료하면서 노쇠 정도, 기능 상태 등을 고려해 약사의 약물 평가 의견을 검토한다. 의견을 종합해 처방 약물을 검토할 때는 연쇄 처방 고리 끊기, 노인주의약물(PIM) 중단, 중복 약물 확인이 이뤄진다. 또한 약과 약, 약과 질병, 약과 증상 사이 상호작용을 고려해 처방을 조정한다.
백 교수는 “다제약물 관리는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진료 행위지만 생각보다 여러 의사, 약사, 환자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의료진과 환자의 인식 변화, 진료 수가 체계 개선, 다제약물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리내 서울아산병원 약물조화클리닉 약사는 “우리나라는 상당히 약을 좋아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상당수 환자가 본인의 상태에 대한 이해 없이 약을 접하거나, 방문 의료기관을 하나씩 늘려가면서 다제약물 문제가 복잡해지기도 한다. 정작 본인은 왜 약을 먹는지 알지 못하고 습관처럼 복용하는 환자도 있다”면서 “약을 복용하는 것은 기존 질환을 잘 조절하고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약의 개수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본인의 신체 기능이나 건강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본인의 약 이용 습관과 의료기관 이용 습관을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약사들은 약물을 점검할 때 전문가와 꼭 상담하기를 권했다. 다제약물 복용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유튜브 ‘리틀약사TV’를 운영하는 이성근 약사는 “어지러움증 같은 부작용은 특정 약물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약물 때문인지 알기가 어렵다. 생명과 직결되는 약을 제외하고는 약을 먹지 않았을 때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면서 조절해볼 수도 있겠다”면서도 스스로 약물 조절을 판단하기보다는 “단골 약국을 만들어 약사와 약물에 대한 상의를 해보고, 담당의사와 또 한 번 상의해 약을 줄이는 등의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만약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통해 약물을 점검하고 싶다면 거주하는 지역의 건강보험공단 지역본부 건강지원센터로 연락해 다제약물 관리사업 방문 가능 기관과 이용 방법을 문의하면 된다. 근처 대형병원에 노년내과, 가정의학과 등 노인 환자를 전문적으로 보는 진료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이미리내 약사는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통해 환자 본인의 약물치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복약 순응도가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정도로 약물 개수가 줄어들면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결국 환자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 실제로 변비 해소, 식욕 개선, 멍한 느낌(인지능력) 호전, 기력 저하 개선 등 고령자가 많이 겪는 증상들이 해소되는 결과를 보였다.
건강보험공단은 그동안의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화를 위한 방안 마련을 연구하고 있다. 기준 마련 및 관련 법을 검토하고 급여화 적절성 평가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제약물 관리 서비스를 제도화하면 다제약물 복용자의 건강 수준이 높아지고 진료비가 절감될 것이라는 기대다.
#1 얼마 전 중학교 동창 모임 때 일입니다. 한 친구가 “설 연휴 동안 알츠하이머 관련 영화 5편이나 봤다”며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장인의 ‘결정’을 요즘에서야 이해하게 됐어. 나도 같은 상황이 오면 그런 결정을 할 생각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친구의 장인은 치매에 걸리자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분입니다. 친구는 “가족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좋은 남편, 아빠입니다. 그는 “내가 혹시 어떻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등에 대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뒀어”라고도 했습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이제 이순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라.” “120세 시대야, 이제 절반 살았어.” 나무람과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가슴은 먹먹했습니다. 지난 3년여 사이 세상을 떠난 장인·장모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2 장모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7년 전쯤입니다. 의심(누가 무언가를 훔쳐갔다는)에서 시작해 횡설수설, 길을 잃는 일이 잦았습니다. 치매는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됐습니다. 그런 장모를 오롯이 돌본 사람은 장인입니다. 아내와 처제가 열심히 간병했지만, 장모 곁을 한결같이 지킨 사람은 장인입니다. 그런 장인이 3년여 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2년여 뒤 장모도 장인의 뒤를 따라가셨습니다.
생전의 장인이 “나, 자네와 함께 살 수 없겠나?” 하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는 누가 돌보게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때 장인의 실망한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치매는 앓는 당사자의 고통이 크지만, 보살피는 가족의 고통 또한 작지 않습니다. 장인이 겪은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장인이 내민 ‘손’을 제가 뿌리친 것입니다. 장인의 죽음에 저의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3 알츠하이머는 소리 없이(혹은 ‘귀’를 막아서) 찾아옵니다. 65세 이상 인구만 보면, 10명 중 1명에게요. 기억력, 대화·계산 능력, 얼굴 인식 등의 인지 기능이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는 전조증상(경도인지장애)이 있는데, 그런 증상이 발현되더라도 “나이 들면 다 그래”, “말이 헛나왔네” 등 이유로 대부분 무시해버린다고 합니다. 대한치매학회가 지난해 성인 남녀 100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절반 이상이 경도인지장애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진단을 위한 검사 필요성에 10명 중 1명만 공감했습니다.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무서운 질병이지만 질병 인식 수준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전 세계 5000만 명 이상(2050년이 되면 그 수는 1억 6000만 명으로 늘어난다고 합니다)이 앓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인구가 수억 명에 달하는데도 말입니다.
#4 알츠하이머는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되는 질병입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치료도 어렵습니다. 알츠하이머 병명이 확인된 1906년 이래 지금까지 치매 관련 연구논문은 수만 편 발표됐지만 개발된 치료제는 몇 안 되고, 그중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행스런 것은 최근 디지털 치료기기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예방 및 치료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30여 년간 알츠하이머를 연구한 美 UCLA대학의 데일 브레드슨 박사는 저서 ‘알츠하이머의 종말’에서 이 질환의 원인을 염증, 뇌 영양 부족, 독성물질 노출 등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는 약물치료와 함께 식생활 습관 등을 개선하면 병을 완화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알츠하이머 증상이 의심된다면 바로 진단받아야 합니다. 그에 따른 예방적 조치, 치료도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뇌의 상태를 바로잡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뇌 운동과 함께 식단(염증과 독소를 몰아내고, 뇌에 필요한 영양분 공급)과 생활습관(12시간 이상 공복, 저녁식사 3시간 후 잠자리에 들고 8시간 이상 취침, 하루 1시간 이상 운동 등)을 개선해야 합니다. 가족의 관심과 도움도 필요합니다.
#5 요즘 TV를 보다가 배우, 개그맨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일이 잦습니다. 직장 후배나 친구의 이름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일이 힘겨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늙어서 그래”라고 한마디 던집니다. 아마 요즘 아내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말일 것입니다. “치매는 아닐 거야”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지만, 걱정이 작지 않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알츠하이머 영화 ‘카시오페아’를 방영했습니다. 영화에서 젊은 치매 환자로 열연한 서현진 씨가 잠깐 기억이 돌아왔을 때 극중 아버지 안성기 씨에게 한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서로 살면서 안 힘들게 하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