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8경길, 여의도생태순환길, 서리풀공원길 등 서울 시내에 산책 삼아, 운동 삼아 걷기 좋은 길들이 많아졌다. 그중 어디를 걸어도 좋지만, 원하는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면 더욱 환영이다. 서울 곳곳 50가지 걷기 코스의 지도, 소요 시간, 여행 정보 등을 비롯해 길의 역사와 문화 정보까지 알차게 담은 ‘서울 산책길 50’을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서울 산책길 50’ 최미선·신석교 저, 넥서스BOOKS
5가지 테마로 떠나는 걷기 여행
야트막한 산자락 숲길, 도시와 숲을 잇는 공원&숲길, 물길 따라 걷는 한강&천변길, 재미있는 골목길, 걸으며 배우는 역사문화길 등 5가지 테마로 나눠 50가지 길을 소개한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고, 목차를 펼쳐 익숙한 길이나 궁금했던 길부터 찾아봐도 괜찮다. 또는 책을 후루룩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곳부터 읽어도 좋다.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125×205mm)로 평상시 이곳저곳 걸으며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책 표지 양 날개를 펼치면 앞장에는 서울시 지도가, 뒷장에는 지하철 노선도가 나와 서울 주요 걷기 코스의 위치와 교통편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걷기 코스 정보와 약도를 한눈에
책에서 각각의 걷기 코스를 소개하는 첫 장에는 코스의 이름과 길에 대한 역사와 문화 정보, 대표 사진이 실려 있다. 바로 옆 장에는 걷는 데 꼭 필요한 이정표를 중심으로 전체 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시한 약도가 나온다. 그 아래 걷는 거리(km)와 소요 시간, 출발점을 상세하게 적어 걷기 전 미리 시간과 거리 파악이 가능하다. 더불어 길 주변 맛집과 그밖에 정보, 참고 사항 등을 친절하게 담았다. 이 두 페이지에 담긴 정보만으로도 코스의 풍경과 진행 방향, 난이도, 특징 등을 가늠할 수 있다.
구간마다 거리와 사진을 알차게
출발 지점부터 목표 지점까지 코스를 세분화해 각각 이정표로 구분하고, 순서대로 번호를 달았다.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 거리를 미터(m) 단위로 표시해 길을 걸으며 쉬는 구간이나 중간 목표 지점을 계획성 있게 짤 수 있다. 이정표마다 정보 글과 함께 그곳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 사진을 넣어 코스를 헤매지 않도록 돕는다. 그밖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적에 대한 설명과 이용 방법, 요금 등을 담아 도보여행을 하는 데 더욱 유익하고 편리하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 1
책 속의 맛집 ‘남산공원 둘레길’은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출발해 명동역까지 총 8.2km, 약 3시간이 소요된다. N서울타워를 중심으로 남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둘레길을 빠져나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부터 명동역까지 이어진 만화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향하기 약 400m 전 산채비빔밥과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목멱산방’이 나온다. 코스 거리와 시간을 조절해 식사 때에 맞춰 방문해보면 좋겠다.
#plus 2
책 속의 영화 ‘홍제동 개미마을’은 6·25전쟁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1980년대,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골목마다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등장한 벽화를 찾아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plus 3
책 속의 미술관 석촌호수 산책로는 봄이면 화사한 벚꽃과 철쭉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석촌호수 꽃길을 걷다가 곰말다리를 지나 몽촌토성길을 향하다 보면 올림픽공원 내 자리 잡은 소마미술관을 발견할 수 있다. 43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녹지와 어우러진 소마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를 이용해 자연친화적인 외관을 자랑한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봄꽃이 만발하는 4월에는 ‘작가 재조명 展-황창배, 유쾌한 창작의 장막’을 관람할 수 있다(5월 20일까지, 회화·드로잉·영상 등 200여 점 전시).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2018 따뜻한 콘서트’가 3월 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공연은 7시 30분, 전 MBC 아나운서 서현진의 진행으로 시작했는데 객석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순서지에는 K'ARTS 발레단, 김남윤과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프르테 디 콰트로와 발라드 가수 김범수가 아주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첫 공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진이 이끄는 K'ARTS의 발레로 시작되었다.
발레리나 민세연과 발레리노 이은수는 자그마한 체구로 대단한 기교는 느껴지지 않지만,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민세연은 깃털 같은 발을 내디디며 몸짓은 날리는 꽃잎 같았다. 이은수의 깔끔한 동작과 어우러져 경쾌한 봄을 알리러 온 듯, 눈을 떼기 힘들었다. 물의 요정처럼 차고 신선했다.
이어서 발레리나 박선미와 발레리노 류성우의 무대가 있었다. ‘바람의 신’과 ‘공기의 요정’은 격동적이고 활기차 무대가 좁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진행자 서현진은 이투데이 김상우 부회장을 무대로 초대해서 신춘 음악회의 취지를 질문했다. 김부회장은 “이투데이가 사옥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했는데 이번이 6회차가 되었다. 이투데이가 경제 신문의 사명을 다하고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기여하여 국민이 부자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무대는 한국음악예술종합학교와 영재교육원의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으로 구성된 세계 유일의 쇼스타비치 바이올린 오케스트라였는데 대중에게 익숙한 OST작품과 정통클래식 등을 연주했다. ‘에델바이스’, ‘미션임파셔블’이 나오자 관객들은 반가운 듯 손뼉을 치기도 했다.
사실‘ 클래식은 지루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일시에 날리는 신나는 무대였다.
음악은 면역력과 기억력을 향상하니 참지 말고 좋아하시라고 진행자가 말했다.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남성4중창 ‘포르테 디 콰토르’.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의 초대 우승팀으로 뮤지컬배우 고훈정, 테너 김현수, 베이스 손태진, 가수 이벼리를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포르테 디 콰토르’는 ‘4명의 힘’ 또는‘ 4중창의 파워’를 의미한다.
‘오딧세아’, ‘베틀노래’는 여린 듯, 감성을 어루만지며 관객들을 평화로 이끌었다.
고급스러움과 대중성을 동시에 느끼게 했는데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로 황홀하도록 설레는 감동을 주었다.
끝으로 무대에 오른 김범수는 관객들의 감성을 그 목소리 하나만으로 그에게 몰입시켜 버렸다.
‘끝사랑’, ‘보고 싶다’로 완전히 김범수에게 중독된 관객은 눈물을 글썽이며 각자의 사랑을 떠올리거나 작은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그런 순간에 김범수는 노련하게도 유머를 잊지 않았다. ‘어리석은 질문에 하는 흔한 답변을 이야기’하며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앙코르곡과 함께 무대는 막을 내렸다. 모두에게 봄을 배달한 것 같은 무대였다.
투명한 얼음이 눈앞에서 녹고, 물방울이 경쾌하게 떨어지며 시냇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매년 이투데이 음악회는 필자를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색다른 무대를 위해 노력한 담당자의 결과물일 것이다.
매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2018 따뜻한 콘서트'가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올해는 벌써 6회 공연이지만 필자는 운 좋게도 작년 이맘때쯤에 5회 공연을 관람하고 이번에 두 번째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송파에 살고 있는 필자는 조금 이른 시간에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퇴근시간의 지하철 9호선은 지옥철이었다. 공연시간보다 다소 이른 저녁 일곱 시 직전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는 KBS로 올라갔다.
입장하기 직전의 KBS홀 로비에는 삼삼오오 지인들끼리 모여서 반가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동년기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티켓팅 부스에서 티켓 두 장을 받아들고 입장을 했다.
사회를 맡은 서현진 아나운서의 맑고 카랑카랑한 멘트와 함께 막이 올랐다. 'K'ARTS 발레단‘은 국내외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무용수들이 대한민국의 발레를 선도하는 발레단이라고 들었다. 2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무대를 휘젓고 있었다.
사실, 발레공연은 필자 일상의 삶속에서 꽤나 거리가 먼 예술이다. 어쩌다가 찾아온 기회나 되어야 관람할 수 있지만, 오늘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환상적인 공연은 어렴풋 지난 세월 속에서 관람했던 ‘빌리엘리어트’라는 영화를 추억해 내게 했다.
삶의 벼랑 끝인 탄광의 막장에서 아들 빌리의 성공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광부와 그의 아들이 빌리엘리어트의 이야기다, 엄마를 여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광부인 아버지와 형을 둔 빌리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여 영국 왕립발레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멋진 발레리노가 된 빌리가 가족을 초청해서 공연을 펼치는데, 그 멋지게 날아오르는 앤딩 장면이 자꾸만 클로즈업 되어 왔다.
이어지는 무대는 바이올린 오케스트라였다. 바이올린의 대가 김남윤을 중심으로 한예종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어린 예술영재들의 황홀한 바이올린 연주였다. 곡이 끝날때마다 관객 모두가 힘찬 박수로 환호를 했으며, 이들은 전통클래식, 올드팝, 영화음악 OST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바이올린의 간드러지면서도 애달프고 때로는 경쾌한 선률이 리듬을 타고 객석에 울려퍼지는 순간, 칙칙한 겨울은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감상하는 내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시원함이 묻어나왔다. ‘따뜻한 콘서트’에 딱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포르테 디 콰트로’는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의 초대 우승팀으로 4인조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우렁우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매료되어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감상을 했다. 선이 굵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4중창은 무대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마지막 순서로 서현진 아나운서가 비주얼 가수라고 소개한 김범수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정통클래식 공연을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섬세한 바이브레이션과 고저음을 오가는 가창력으로, 슬픈 가사와 멜로디를 지닌 김범수의 음악을 감상하게 되었다. “사랑이 날 또 아프게 해요 사랑이 날 또 울게 하네요 ~” 관객중에 어떤 분은 김범수의 ‘하루’를 들으면서 울컥했다고 했다.
공연은 무르익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공연자들과 끝까지 호흡하며 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아직은 모질게 추웠던 금년겨울의 여운이 남아있었지만, ‘따뜻한 콘서트’ 공연을 감상하면서 칙칙한 그 여운조차 밀어내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느껴야 했다. 아내와 함께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공연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가장 인상깊은 공연은 ‘바이올린 오케스트라’라고 했으며 두 번째는 ‘포르테 디 콰트로’의 4중창을 꼽았다. 하지만 필자는 공연 모두가 의미있고 가슴속에 깊은 떨림과 여운으로 남았다고 대답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따분한 일상에서 만나게 된 ‘따뜻한 콘서트’는 잠자던 가지에 물을 올려 봄을 꽃피워 내고 있었다. 또한 아내랑 모처럼 함께 차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 더욱 의미가 있었다. ‘따뜻한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겨울철의 암울했던 찌꺼기들은 훌훌 떠나보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찬란한 새봄을 맞이해야겠다.
명절 연휴가 며칠씩 이어지다 보니 하루 세끼를 만들어내느라 매번 머리를 쥐어짰다. 가까운 큰 댁에 가서 잠깐 차례만 지내고 오다 보니 별달리 명절 음식도 없다. 잠깐 나가서 사 먹고 오자 하고 가끔 배달음식을 먹자고도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끼니 준비하는 게 귀찮고 성가시기 시작했다. 간신히 먹고 살 정도로 민생고를 해결하는 성의 없는 밥상의 날들이 잦아졌고 남편의 회식이 자주 생겨나길 바라기도 했다. 한때는 요리의 즐거움과 호기심이 넘쳐서 무수한 요리강좌도 다니고 급기야는 각종 요리 관련 자격증을 수집하는 사람처럼 있는 대로 모아들이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즐거움도 한때인 듯 이젠 주방 일이 귀찮아 죽는다.
설 쇠고 오래간만에 아이들도 함께 있는 날이기도 해서 작정하고 열심히 밥상을 차려보기로 했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지지고 볶고 이쁜 그릇세트도 꺼냈다. 효리네 민박을 보며 늦은 아침 브런치로 와플을 굽기도 했다.
한 집에 살아도 각자 바쁜 생활 속에 살다 보니 평소에는 함께 밥을 먹거나 아이들이 주방 일을 도울 틈이 없었다. 그런데 연휴다. 식사 준비에 아들도 참여시켰더니 제법 잘 한다. 구워놓은 생선을 각자의 접시에 담아 나르고 식후 커피도 내린다. 군대 다녀온 이후부터 설거지 실력은 가히 예술이다.
그렇게 명절 연휴 삼시 세끼의 즐거움과 보람도 느껴보지만 슬그머니 서운해지는 게 있다. 가끔 엄지 척을 할 때는 있지만 분명 맛있게 먹으면서도 콕 집어서 하는 칭찬을 잊는다. 필자는 가족들에게 이거 맛있지? 스스로 생색을 내기 좋아하다 보니 그들이 칭찬할 기회를 뺏은 건지도 모르겠다. 과한 리액션은 아니어도 수고로움에 한 마디 하는 건 필수다.
언젠가 유명한 호텔의 셰프가 하는 요리 강좌에 간 적이 있다. 그분은 손으로 식재료를 버무리며 말했다. 요리의 맛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 난후 예의도 있다고 강조했다.
“벌써 오래전 일인데요. 어떤 선거유세 때문인지 한창 바쁘던 철이었을 거예요. 그때 여의도에 있는 호텔에 근무했었는데 국회의원 등 많은 정치인들이 와서 식사를 하러 왔어요. 그중에 그분이 자주 우리 식당에 오셔서 식사를 했어요. 그런데 오실 때마다 저에게 늘 눈인사를 하십니다. 일하느라 바빠서 못 마주칠 때도 있는데 굳이 절 찾아서 잘 먹었다고 말하고 가세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여의도의 정치인들이 그런 편이 아니거든요. 저는 정치가 뭔지 모르고, 또 지금도 잘 몰라요.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 중에 그래서 그분 하나 안다고 할 수 있거든요. 대통령이 된 그분의 눈인사, 그분은 제가 만들어드리는 해물탕을 아주 좋아하셨는데...”
그의 따뜻한 눈인사와 칭찬 한마디 때문에 세상에서 오직 요리밖에 모르는 어느 요리사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 깊은 주름 선명한 이마 위로 밀짚모자 쓰고 순박한 미소로 봉하마을 들녘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진 한 장이 눈에 선하다. 그분은 먼 길 떠났지만 셰프는 자신의 손맛과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고마움을 내내 잊지 못했다.
맛난 한 끼를 먹고 새하얗게 빨래한 옷을 입으며 잘 자라고 있는 화초의 푸른 잎을 보면 무심할 수는 없다. 기분 좋게 고마워하며 칭찬하는 한 마디는 우선 자신이 행복해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고마움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50여 년간 장미를 그려온 화가의 심상은 무엇일까? 그것도 화병에 꽂은 정물이 대부분일 때는 의아할 수밖에 없다. 장미의 화가라면 김인승(金仁承, 1910~2001)이나 황염수(黃廉秀, 1917~2008) 화백이 떠오르지만, 성백주(成百冑, 1927~) 화백만큼 긴 세월 ‘장미’라는 주제에 천착해오지는 않았다.
성백주 화백은 화필이 무르익은 중년을 지나는 1960년대 말부터 장미만 그려왔다. 물론 바닷가 풍경이나 누드화도 간간이 눈에 띄지만, 아주 드문 편이다. 성 화백은 경북 상주에서 출생해 초·중등학교 교사, 지방 방송국 편성부 등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산 권역을 벗어나지 않고 동아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에도 출강했다. 1955년 부산에서 ‘민주신보 창간 10주년 기념 초대전’이 열린 것을 보면, 1948년 초등학교 교사로 첫 부임한 이래 그림에 정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2년, 1975년 서울 명동화랑과 공간화랑의 전시가 중앙 화단에 진출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1992년의 여의도 정송갤러리 초대전이 전국적으로 자신의 그림 세계를 각인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 무렵부터는 장미 그림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두어 점의 풍경이나 누드화가 겻들여지기도 했으나 장미만큼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의 장미는 꽃병에 꽂힌, 그래서 식탁이나 서재 책상 위에 무심코 놓인 정물화다. 청화백자 항아리나 유리단지에 성기게 꽂힌 몇 송이 혹은 꽉 찬 아름진 장미 다발이 언제나 맑은 향을 뿜는다.
“그는 꽃의 실제적 형상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감성의 파상적 율동에 의해 창출되어 나온 선과 터치에 의한 궤적이다. 꽃을 응시하고 연후에 그것을 화면 형상으로 바꿀 때 표현은 부드럽고 경쾌하며 리드미컬하다. 담채와 농채가 적절히 배분된 화면은 활기차 보이며 따스한 온기가 감돈다”라고 평자는 말한다.
주로 정물을 그리는 화가들을 만나보면 “꽃, 그것도 장미 그리기가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장미는 그 종류만 수백 종에 색깔도 가지각색일 뿐만 아니라, 꽃잎이 수십 장 포개져 있어 입체감의 표현과 꽃잎마다 빛의 반사가 다채로워 평면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 화백의 장미는 극사실의 요염한 자태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장미를 많이 그렸지만, 한 번도 장미라는 물질적 속성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화폭에 어떻게 조형성을 심어가느냐의 문제였다. 항상 그랬듯이 남에게 보이기보다 내 작업을 연출된 공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성찰해보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느 전시회를 앞두고 그가 한 말이다.
이 그림[사진1]은 1992년, 서울 여의도 정송갤러리에 전시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청화백자 항아리에 꽃송이와 줄기가 얼비추어 푸르른 그림자를 만들고 속도감 있게 처리된 배경과 꽃잎 끝에 건듯 묻어나는 옅은 색깔, 꽃송이와 봉오리에 깊은 마티에르가 하모니를 이룬 회심작이라 생각한다. 식탁에 걸어놓고 맑은 향을 맡는다.
한때 나팔꽃을 좋아해서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나팔꽃 덩굴을 만나면, 씨가 여물 때를 기다려 몇 알씩 따두었다가 이른 봄, 마당 창가나 담장 아래 씨앗을 틔워 줄기가 늘어뜨린 끈을 감고 공중에 꽃 피우는 신선함을 즐겼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가요의 가사처럼 짧은 꽃피움이 애잔했다. 나팔꽃 기르기를 좋아하던 서예가와 경기도 여주의 도예촌을 동행하며, ‘백제도예연구소’의 정지현(1958~) 도예가를 찾았다. 몇 차례의 방문이라 익숙하게 후원을 빙 돌며 작약이며 들꽃 틈에 깨뜨려버린 도자기를 휘감은 나팔꽃 덩굴의 진분홍 꽃을 감상했다.
“어느 날 새벽 도자기 작품 구상이 안 떠올라 이곳을 거닐다가 무심코 도자 파편 위 저 나팔꽃이 이슬을 머금고 활짝 핀 모습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팔꽃 이미지를 도자로 빚어보았지요.”
작업실 안에는 철화와 진사채로 완성된 나팔꽃 이미지의 아름드리 대형 도자기와 초벌구이한 도자기가 나란히 있었다. 정지현 도예가는 뒤늦게 도예에 입문해 예술자기와 생활자기 사이에서 많은 고뇌를 했다. 현실적 생활고도 체감했다. 이제는 일본이나 유럽으로 생활자기를 수출하며 경제적 안정을 얻었지만, 문득 일상의 쓰임을 벗어난 도자에 예술혼을 굽고 있다 고백했다.
이 대형 푼주[사진2]는 몇 달 후 그날 동행했던 서예가가 우리 집까지 날라준 크나큰 선물이다. 혼자 들기도 버거워 아내와 거실 탁자 위에 놓고 마음 깊게 감상했다. 겉은 정지현이 개발한 특유의 연록빛 유약이 자연스레 흘러넘쳐서 나팔꽃 줄기와 잎의 싱싱함을 나타내었다. 입술부터 안쪽으로는 붉은 진사의 유약을 두텁게 발라 고상함을 더해주고 있다. 도자기 속에다 속삭이면 그 잔잔한 울림이 좋았다. 이 푼주의 쓰임을 놓고 가족회의도 열어보았다. 겉과 속을 두루두루 볼 수 있는 낮은 탁자 위가 제자리다 싶으면, 찻잔을 나르거나 과일을 나르다 부딪힐까봐 조바심되었다. 마침내 거실 큰 유리문 앞 튼튼하고 낮은 탁자를 따로 마련해 옆에 백자 달항아리를 나란히 두어, 사계절 남향 타고 스미는 햇빛이 부서지는 반사광까지 즐기고 있다.
“가마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사위고 첫닭이 우는 새벽, 부끄럽고 두려움에 떨면서 죄를 짓고 용서를 비는 심정으로 도자기를 꺼내죠. 무슨 항아리가,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몰라요. 반은 내가 만들고 반은 불이 만들거든요. 꿈꾸던 작품을 얻었을 때의 감동과 희열, 그건 맛본 사람들만 알아요. 도예가들의 삶의 원천이죠.”
어느 일간지 인터뷰에서 정 도예가가 한 말이다.
꽃은 인류가 문명세계를 열기 이전부터 생명의 원천이었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꽃은 기쁨의 표상이고 추모의 상징이다. 구순 넘긴 노 화백의 여린 붓끝에서 피어나는 장미에서 인생의 환희를 느끼고 연륜 깊은 향을 맡는다. 하늘을 향해 입 벌린 푼주에서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을 듣는다.
>>이재준(李載俊)
아호 송유재(松由齋). 1950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고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 중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달과 6펜스’, ‘사랑과 인식의 출발’을 읽고, 붉은 노을에 젖은 바닷가에서 스케치와 깊은 사색으로 화가의 꿈을 키웠다. 1990년부터 개인 미술관을 세울 꿈으로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올해도 여의도공원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열렸다. 아들이 직장 바로 앞 여의도공원에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졌다며 가보자 해서 손녀를 데리고 갔었다. 어린 손녀는 처음 타는 스케이트가 신기한지 자꾸 넘어지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즐거워하는 손녀를 보는 필자 마음도 흐뭇하고 좋았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낭만적이고 멋지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서울시 곳곳에 겨울을 맞이한 시민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스케이트장 또는 눈썰매를 탈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창경궁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인 공원 광장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누구의 발상인지 참신하다. 어릴 때 외국 영화에서 아치형 다리 밑에서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털목도리를 두르고 남자들은 양복 정장을 하고 우아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을 보았던 게 생각난다. 너무나 로맨틱하고 참 아름다운 장면이라 감탄을 했는데 이제 우리도 도심 복판에서 얼음을 지치는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케이트는 한 번 배우면 한동안 타지 않아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를 탔다. 대전에 살 때였는데 목척교 아래 넓은 대전천에 겨울이면 둥근 링크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를 탔다.
교육열이 높아 필자에게 무엇이든 가르쳐주셨던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날렵한 날이 있는 롱스케이트를 들고 처음 개천으로 내려갔던 때가 생각난다. 필자가 웬만큼 익힐 때까지 기다리시다가 대전극장 골목의 일본 음식점에서 따끈한 우동을 사주셨던 것도 기억난다. 정말 그리운 시절이다. 처음 몇 번만 엄마가 따라오셨고 필자가 스케이트를 좀 타게 되었을 때부터는 혼자서 타러 다녔다.
대전천 야외 스케이트장에는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아저씨도 있었고 간식으로 어묵이나 코코아를 파는 간이매점도 있어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다가 사 먹었던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신나게 울려 퍼지던 음악소리도 여전히 귀에 들리는 듯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바로 건너편에 동대문 실내 스케이트장이 있어 틈틈이 친구들과 가서 놀았다. 그 당시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스케이트장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빨간색이나 흰색의 피겨스케이트를 탔지만 나는 검은색 롱스케이트만 탔다. 스피드를 즐기기엔 롱스케이트가 제격이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스케이트를 탈 일이 없었다. 다른 재미있는 일이 그것 말고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때 학부모 스케이트 대회가 열렸다. 아주 오랜 시간 스케이트를 타보지 않아 걱정했는데 의외로 실력이 줄지 않아 등수 안에 들었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때 스케이트나 수영은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TV 속에서 빙글빙글 링을 따라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어릴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필자도 당장 타러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마음뿐이다. 이제는 혹시라도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는 나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은 깊은 겨울이다. 좀 씁쓸하지만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이라도 해야겠다.
12월의 첫 주말, 고향친구들 송년모임이 있어 이른 오후에 길을 나섰다.
고속터미널역에서 9호선 환승을 하려고 이동 중인데, 때가 때인지라 구세군 냄비가 딸랑딸랑 종을 울리고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 촘촘하게 얹혀 실려 가는 짐짝이 되어 마음만 재촉해 본다.
김포공항에서 여의도를 거쳐 강남 도심권으로 관통하는 9호선은 출, 퇴근 시간이면 늘 상습적으로 붐비는 노선이다. 더구나 12월의 첫 주말, 이미 년말분위기가 무르익은 듯, 많은 사람들이 전철 문 앞에 줄을 서있다. 전철이 도착하자 내 몸은 저절로 빈대떡이 되어 차량 안으로 빨려들어갔는데, 숨이 막힐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약속된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하여 정다운 고향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다가 당구장으로 가자는 유혹을, 길이 멀다는 이유로 뿌리치고 돌아오는 전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노량진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에 막 갈아탔는데, 저녁 8시를 넘긴 시간이라 올 때보다는 덜 붐볐으나 그래도 어지간히 복잡했다.
이 때, 전철 안에서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 무리 중에 한사람이 신나게 썰을 풀어내고 있었다.
“나가 말이여 50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내서…….하하하(호쾌한 웃음소리), 기분이 너~무 좋아부렀어. 나가 전주에서 올라왔는디 반백 년 만에 불x 친구들을 만나니 기분이 너~무 좋아 죽을뻔 했구마....하하하” 모처럼 오랜만에 노래방에 가서 김삿갓을 불러부렀어…….하하하” 한 잔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그 사람은 정말 유쾌하게 웃었다. 50년 만에 어린시절 친구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중충한 셔츠자락이 반쯤 바지에서 삐져나온 채 점퍼는 벗어 팔에 걸치고 서서 연신 큰소리로 얘기하며 웃어댔다. 평소 같으면 떠들어대는 소리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마치 상기된 아이처럼 진지하게 떠들어대는 그사람이 별로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그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시끄러운 소음정도로 들으면 한없이 불쾌하겠지만 특유의 유쾌함으로 전이가 되어 은근히 주위사람들도 슬며시 따라 웃어주었다. 더구나 연말을 앞두고 여기저기 송년모임 분위기가 벌써 무르익었으니 그 사람의 우직한 말투가 미워 보이지도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주위에 있는 초로의 장년 남녀가 그 사람의 초등학교 동기들인가보다. 재담이 계속 이어진다. “예전에 말이야”, 발동기 시동을 거는 모습을 흉내 낸다. 소매자락을 반쯤 걷어올린체, 돌리는 흉내를 내면서 푸쉬푸쉬 (고무공에 바람빠지는 소리)힘차게 발동기 시동을 거니 주위사람들이 소리죽여 배꼽빠지게 웃고있다. 나역시 바로 옆칸에서 은근히 그 쪽으로 귀를 집중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덩달아 유쾌하게 웃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고속터미널역에서 그 사람은 내렸다. 남부터미널역을 찾는 것을 보니 아마도 오늘 밤에 전주까지 내려갈 모양이다.
3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사람의 잔상(殘像)이 떠올라 기분이 유쾌했다. 초등학교 동창을 50여년 만에 만났다고 하니 분명 내 또래인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과 담을 쌓고 사는 각박한 도시 생활 속에서 이렇듯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유쾌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의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갈등하고 이리 저리 갈라져 보이지 않게 서로 반목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상대방에게 조금만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온기가 감도는 연말연시를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세상에 이기지 못할 것이 운발이라고 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70%라면 재능과 노력은 30%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는 운11. 기 마이너스 1이란 이야기조차 있다. 운이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은기(66) 한국협업진흥협회장은 그 답을 협조와 협업에서 찾는다. 그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공생, 상생하는 것이 운을 좋게 만들고, 지속가능경영을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가 아니라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가 그의 신조다. 남과 나눠야 운이 따른다. 운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별명이 ‘미스터 콜라보(Mr. collabo)’인 그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 회장께선 일찍이 미래의 물결, 정보화사회를 이야기하는 등 미래 트렌드를 남보다 앞서 예측하시고 강의해왔습니다. 그런데 운 이야기를 강조하시는 게 좀 모순 같습니다.
“정보화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운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내가 말하는 운이란 덕행의 인과법칙입니다. 지극히 과학적입니다(웃음). 남을 돕지 않는 자에겐 운이 따르지 않아요.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남이 도와주지 않거나 방해를 하면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남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는 점입니다. 귀인을 만나야 운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귀인을 만나려면 먼저 인간 존중,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최근 를 쓴 일본의 원로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도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운=도덕과학’이라고 풀이한 바 있다. 니시나카 변호사는 “도덕적 과실이 운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라도 갚지 않으면 운이 나빠진다. 은혜를 받기만 하면 ‘도덕적 부채’로 쌓인다”고 말했다. 도덕적 선행과 나눔이 운을 불러온다면, 도덕적 부채와 독과점은 금전적 부채보다도 더 큰 불운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보다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 남을 돕는 봉사를 하고 난 뒤에는 거의 모든 경우 심리적 포만감, 즉 ‘하이(high)’ 상태가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지속된다. 의학적으로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고 엔도르핀이 정상치의
3배 이상 분비되어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친다. 이른바 마더 테레사 효과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리더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인의 사회적 공헌(PSR, Personal Social Responsibility) 실행은 이타적이라기보다는 운을 불러들이는 이기적 행위인 셈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은 많이 합니다. 반면에 일반 개인의 사회적 공헌(PSR)은 그만큼 강조되진 않지요.
“‘사회 공헌, 기부’ 하면 거대 담론으로만 생각합니다. 나중에 여유 생길 때 기부한다고 미뤄두면 평생 하기 힘듭니다. 기부는 물질적 여유가 아니라 평상시 태도, 습관입니다. 저는 재능기부 차원에서 군에 강의를 갑니다. 또 공군 순직 조종사 유자녀 장학금을 매년 1000만원씩 지원하는 일을 7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기부를 꾸준히 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그는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앰뷸런스를 이용하며 운전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부자들은 앰뷸런스에 시체가 실리는 순간부터 가족이 싸우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그렇게 산다면 부자인들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있어야 나누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야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부자는 돈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1년에 기부금 1000만원을 약정하고 꾸준히 하는 것, 쉬운 일은 아닌데요. 사모님도 처음부터 동의하셨는지 살짝 궁금합니다.
“저는 집사람을 설득해야 할 때 집에서는 절대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하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술집에 데려가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사는 게 뭐 별것 있나, 잘사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으로요. 먼저 길을 닦고,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 뒤 본론을 꺼내지요. ‘우리 여행 한 번 덜 가고, 골프 한 번 덜 치자, 소비를 조금 줄이더라도 좋은 일을 해보자, 돕고 사는 게 재미지, 혼자 잘사는 게 무슨 재미인가’ 하고요. 똑같은 이야기라도 반응이 전혀 달라요. 집사람이야 콩나물값 깎아가면서 알뜰살뜰 살림하는 전업주부인데 처음엔 좋아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저보다 더 기부에 적극적이랍니다.”
윤 회장은 스스로의 전공을 심경학, 즉 심리경영학(그는 학부는 심리학, 석·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이라고 말하곤 한다. 심리를 경영할 줄 안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정의파, 대의명분파들이 설득에 실패하고 저항에 부딪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옳으냐’로 ‘좋으냐’를 무시하거나 압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소통은 ‘옳다’를 넘어, 마음속으로 ‘좋다’고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이성보다 감성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 비결도 사모님과의 심경학 소통 덕분이라면서요.
“하하. 네. 제 책의 첫 독자, 안테나 마켓은 집사람입니다. 작가에겐 책 내용이 정리돼 영감이 오는 ‘유레카’의 순간이 있습니다. 한밤중이라도 깨워 한바탕 책 내용을 설명하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심드렁해하면 책의 콘셉트 혹은 틀을 바꿉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대부분 집사람이 한밤중 잠결에 들어도 흥미롭게 들은 책, 말 된다고 집사람이 동의를 표한 책이었습니다(웃음).이번 협업 책도 그렇고요.”
진정한 소통은 같은 세대, 같은 수준의 말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이질적 그룹의 사람과 통하는 것이다. 그의 강의가 폭넓은 호응을 얻는 것도 그 덕분이다. 이장우 브랜드마케팅그룹 회장, 차동엽 신부, 장용동 목사 등 숱한 명사들이 윤 회장의 강의를 ‘내 인생에 영향을 준 명강의’로 꼽는 것도 소통력 때문이다.
윤 회장께서 살아오시면서 겪은 가장 큰 고비는 무엇인가요.
“1980년도에 발간된 앨빈 토플러의 을 읽고 우리나라가 살 길은 정보화사회에 빨리 도전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잘 다니던 종합무역상사에 사표를 내고 1983년 여의도에 정보전략연구소를 차렸는데 2년 만에 퇴직금까지 모두 까먹고 엄청난 부채를 지게 된 거예요. 하루가 지나면 부채는 늘고 철수하자니 빚 감당을 못하겠고. 그때가 내 인생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마침 1985년 앨빈 토플러가 방한해 붐이 일어나면서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됐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세상 모든 일은 반드시 때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너무 늦어도 안 되지만 너무 빨라도 안 된다는 겁니다. 이후, 무슨 일이든 최적의 타이밍을 찾아내려고 심사숙고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자신감이 넘쳐 성급하게 뛰어드는데 그러면 실패하기 십상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 칼럼니스트로 골프와 경영을 접목한 글로 인기를 끄셨지요.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치고 저랑 골프를 치지 않은 사람은 드물지요. 골프를 치면서 인생의 깊은 내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글로 써본 것이지요. 특히 김종필 전 총리랑 골프를 치면서 들은 인생 허업(虛業) 이야기가 제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치는 허업이야. 잘났다고 하는 저 사람(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뭐가 있어? 온갖 폼은 다 잡지만 남는 게 뭐 있어? 정치는 자기들끼리 싸우다 다 잃는 거야. 제일 어리석은 직업이 정치야’라고 허무하게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분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에 허명(虛名), 허업(虛業)에 대한 내려놓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부리면 반드시 터지거나 넘어지게 돼 있다. 윤 회장은 인생의 욕심을 풍선과 계단오르기에 비유해 설명한다.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 문제가 없지만 한꺼번에 많이 오르려 하면 반드시 고꾸라지는 게 인생의 법칙이다. 풍선도 마찬가지다. 있는 힘껏 풍선을 끝까지 불 수는 있지만 그러다가 터질 수도 있다. 그래서 80~90% 정도만 불고 남겨둬야 한다. 너무 빵빵하게 불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힘을,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다.
탈속의 이야기만 했네요. 세상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정보화사회, 협업 등 늘 기업 경영의 화두를 먼저 설정, 새바람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시(時)테크, 골드칼라 등 시사용어를 선도해 유행시키셨는데요. 그 촉(觸)의 비결이 무엇인지요.
“지도자라는 것이 무슨 의미겠습니까. 선지자, 선견, 먼저 보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지도자는 지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즉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청년기에 군에서 훌륭한 리더를 만나 생각의 틀을 다진 게 제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청년 장교(중위) 때 투스타 김동호 장군의 부관을 하다 보니 엄청난 용량의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인생의 한창때 존경할 만한 롤모델을 만나는 것은 큰 운입니다. 책 100권, 아니 1000권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책 에서 귀인효과를 말씀하시는데요. 김동호 장군이 윤 회장님의 귀인이셨나보군요.
“맞습니다. 김 장군은 영어, 일어 등 외국어 실력도 뛰어나시고, 유도, 검도 유단자에다 특히 인품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지덕체, 문무를 겸비하신 분이었습니다. 김 장군이 면접하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 실력을 묻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력, 종교, 꿈을 들려주시며 리더로서 이렇게 노력하겠다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겁니다. 당시 제 주변 동료 장교들은 퇴근 후 취직 공부를 해야 한다며 24시간 근무해야 하는 부관을 기피했어요. 저는 퇴근 후 두 시간 공부보다 이분을 모시는 게 훨씬 큰 공부가 되겠다는 느낌이 한 번에 오더군요. 존경받는 것도 기쁘지만, 존경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것이 더 기쁜 일입니다.”
윤 회장은 그 후 4년간을 한결같이 김 장군을 곁에서 ‘모셨다’. 제대하는 토요일, 오후 3시까지 초과 근무를 자청한 것은 초급 장교 중 전무후무해 공군 본부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윤 회장은 김 장군과의 인연을 40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1년에 두세 차례씩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예전 어록과 교훈을 같이 추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김 장군도 훌륭하시지만 그분을 한눈에 알아본 윤 회장님도 대단합니다. 더구나 20대 중반의 청년 장교 때요.
“그런가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알아보는 용인술도 중요하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알아보는 ‘역용인술’도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롤모델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스스로 찾아보려고 노력하진 않거든요. 존경하는 사람이 없으면 반쪽 인생이에요. 한 번도 사랑해보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 더 불행하고 불쌍한 삶이지요. 어려운 의사결정을 할 때 ‘김 장군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기객관화가 되면서 답이 보여요. 존경할 대상이 생기면 상대의 장점 DNA가 보이고 배워야 할 사항이 쏙쏙 들어와요. 존경하는 사람을 가지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앞으로 10년 정도는 우리나라 모든 영역, 모든 분야에 협업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그 후에는 청소년 시절부터 꿈이었던 소설가로 데뷔하고 싶습니다. 소설은 현실에서는 추진할 수 없는 이상향을 마음껏 그릴 수 있으니까요. 제가 존경하는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도 수시로 만나고 있고 최근에는 김홍신 선생님도 몇 번 만났습니다. 평생 동안 경험한 일들과 상상했던 일들을 융합시켜 멋진 소설을 쓰는 게 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 될 겁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작년에 이어 사상 두번째 규모5.4 지진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사상 처음 수능시험이 연기되고 수백 차례 여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도 지진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난방송’이 날마다 화면을 가드 채운다. 시민의 관심을 끌기 좋다. 하지만 뭔가 조금 부족하다. 지난 해 재난대비 실전훈련에 몇 차례 참가하였다.
작년 이맘 때 소방재난본부 보라매안전체험관에서 안전체험이 열렸다. 체험행사는 화재대피와 소화기·풍수해·지진체험 등을 주제로 하였다. 각 코스마다 시청각 교육과 체험실습으로 진행하였다. 안전체험의 무엇보다 인명의 안전에 최우선 목적을 두고 있다. 과거에는 화재진압이 우선이었으나 인명을 중시하도록 훈련방법이 확 바뀌었다. 안전한 대피가 먼저다.
우리나라에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지진대피체험이 특히 인상 깊었다. 지진 동영상을 시청하고 대피훈련을 거쳐 사후 수습가정을 체험하였다. “지진이야!” 구호를 외치고 머리를 보호하면서 탁자 밑으로 대피하였다. 지진을 가상한 흔들림이 언론을 통하여 보았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고령자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소화기체험도 확 변하였다. 과거에는 소화기 들고 불난 곳으로 달려가는 훈련을 하였다. 정전으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벽을 더듬으면서 대피하는 요령을 배우는 대목에서 비상을 실감하였다. 교육자는 “벽면 쪽 손을 이용하여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면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화재현장에서 자세를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연기는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바닥에서 30~60cm 정도에는 맑은 공기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소화기를 인화물의 밑 부분에 분사하여야 소화효과가 있다.
태풍은 다른 재해보다 재해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미리 대비하면 극복할 수 있다. 시속 30km 태풍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였다. 위험한 곳에서 멀리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버스사고 시 안전벨트의 중요성에 대하여 체험하였다. 버스의 급커브, 급브레이크의 위험성을 체감할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다. 만약 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공중부양 하였을 것이다.
지하철 화재 때에는 골든타임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화재현장에서 2~3분 이내에 탈출하여야 한다. 제일 먼저 다른 칸으로 신속히 대피하여야 한다. 다음에 비상 탈출하여 1층 출구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철로를 이용하여 1~2km 떨어진 이웃 역으로 탈출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위험하여 최후로 선택하여야 한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기 쉬운 시니어들의 많은 참여가 요망된다. 즐기면서 익히는 2시간의 안전체험을 마련해 주신 서울소방재난본부 보라매안전체험관 및 친절과 성의를 다하여 안전체험을 즐겁게 이끌어준 소방관에게 감사한다.
관악구 응급처치 안전교육에도 참가하였다. 관악 안전지킴이는 안전 위해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사전에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생활 주변 위해요소를 발굴․신고하고 주민 관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악산, 도림천 등에 대해 지역 안전지도를 제작하였다. 응급상황 시 행동요령 등 이론 강의를 마치고 오후에는 응급처치 실습을 하였다. 체력이 엄청 요구된 것을 실감하였다.
서울 안전체험 한마당이 여의도공원 문화의 광장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재난, 교통, 화재, 신변, 생활 및 어울림 등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체험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소화기를 뿌려보고, 비상탈출 훈련을 하면서 무서워하지 않고 거뜬히 마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였다. 어린이가 즐기면서 체험하는 이 행사가 성인이 되어서도 안전을 실천하는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루에 한 가지 취미를 즐기면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외국 속담이 있지요. 누구나 현직에 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년퇴직이든 명예퇴직이든, 퇴직 이후 직장 동료나 후배·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인데, 이런 때일수록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보고 경험해보려고 노력하셨겠지요.
이런 면에서 저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도 3년 전의 일일 듯싶네요. 퇴직 후 동네 공원에 운동하러 갔다가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허리가 아파서 골프운동을 못하게 되어 파크골프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참 잘한 것 같다”는 동네 형님의 말씀에 귀가 솔깃해져 그분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필자도 어깨가 좋지 않아 골프를 쉬고 있었기에 그분의 소개로 파크골프 운동협회에 가입한 이후 지금까지 즐기고 있습니다.
파크골프(park golf)란 골프와 아주 유사한 운동으로 공원 같은 소규모 녹지공간에서 누구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골프게임입니다. 1983년 일본 북해도 마크베츠 강가의 진달래 코스로 7홀의 간이 파크골프장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파크골프의 시초는 1998년 진주 상락원 6홀을 시작으로, 2004년 서울 여의도에 9홀을 정식 개장한 한강 파크골프장 이래, 파크골프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그 수요에 발맞춰 파크골프장이 계속 신설되고 있습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생활체육회에서는 자치구별로 파크교실을 운영하게 하여 무료교육을 실시해왔습니다. 서울시를 예로 든다면 각 구에서 반상회 등 홍보활동을 통해 교육생을 모집, 약 2~3개월(주 1회 또는 2회), 지정된 장소(여의도 한강 파크골프장, 잠실 파크골프장 등)에서 무료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파크골프장은 서울에 5개소를 비롯하여 전국에 총 160여 개소가 산재해 있으며, 9홀을 기준으로 Par 3홀 4개, Par 4홀 4개, Par 5홀 1개로 구성되며, 9홀을 두 번 운동하는 파크골프장이 많이 있으나, 최근 신설되는 파크골프장은 18홀, 27홀, 36홀 규모의 파크골프장으로 변화·발전되고 있습니다.
Par 3홀 규모는 파크골프장의 시설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티샷을 하는 티잉 그라운드로부터 홀컵까지의 거리가 대략 40~60m, Par 4홀은 70~100m, Par 5홀은 110~150m 정도의 거리이며, 페어웨이 폭은 5~10m 정도입니다.
파크골프는 3세대가 함께할 수 있으며 배우기가 쉽고 공을 치기도 쉬우며 비용도 적게 드는 반면에, 운동은 많이 되며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고 신체에 무리가 거의 없으며 시간이 적게 들어 쉽게 찾아가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이지요.
수년 전 행해진 일본의 어느 대학 연구에 따르면 파크골프 운동의 효과로는, 첫째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사랑을 느낄 때 생성되는 다이돌핀이 왕성해지고, 진통효과가 있어서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으며, 둘째 온몸의 근육이 강화되어 낙상이나 골절이 예방되고, 잔디 위를 걸음으로써 허리나 무릎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셋째 함께함으로써 고독을 해소하는 데 더없이 좋은 운동입니다.
골프운동을 할 때는 운동할 사람과 골프장을 사전에 예약하는 등 신경 쓸 일이 많고 골프장을 찾아 몇 시간씩 이동해야 하고, 운동 후에는 허리도 쑤시고 갈비뼈와 어깨도 아파서 수시로 한의원을 찾아 치료를 해야만 했습니다. 파크골프 운동으로 전환한 이후에는 몸이 아픈 데가 없으며, 운동량은 골프 운동이나 파크골프 운동이나 똑같이 잔디 위를 걸으며 동반자들과 대화를 하며 운동을 하니 골프 운동할 때와 거의 유사합니다.
파크골프에 입문하려면 여러 방면의 길이 있는데 첫째 파크골프 인터넷동호회에 가입하여 동호회원으로 활동하기, 둘째 협회에 가입하여 협회회원으로 활동하기, 셋째 어느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개인 스스로 활동하기 등이 있습니다. 세상사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어느 방법을 선택하든 본인이 결정할 사항이지요.
필자의 경우를 소개해드리면 협회에 가입하여 협회비도 내고 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정기월례대회, 연말대회 등) 또는 전국대회(전국에서 개최)에 나가기 위해 협회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협회에서 주관하는 각종 자격시험에 응시해 자격을 취득할 수 있고, 일정 자격을 취득한 이후, 강사 또는 심판 자격에 도전하여 자격을 획득한 회원은 강사 또는 대회 심판 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협회 회원들 간 상호 친목을 도모하며 생활할 수 있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입니다.
파크골프와 관련된 단체로서는 (사)대한파크골프협회, 대한파크골프연맹이 있습니다. 필자가 가입한 (사)대한파크골프협회는 2016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통합 대한 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을 받은 단체입니다.
파크골프를 하기 위한 용구와 복장으로서는 파크골프 클럽(채)와 공, 골프 티, 볼마커, 볼 포켓, 모자, 장갑, 골프화, 운동복 등이 필요합니다. 파크골프 클럽은 일반 골프 클럽의 퍼터와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파크골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가까운 소속 구청 생활체육과와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과에 문의해보시고 그래도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신 분은 (사)전국파크골프연합회 등에 문의하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숨 가쁘게 근무했던 현직에서 물러나 이제는 취미 하나 정도는 즐기시는 여유와 함께 제2인생을 살아가셔야 우울증 없는, 건강한 삶을 누리시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