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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상의 갭
- ‘애란이도 이젠 시집가야지’ 그날 3학년 교실에서 목에 힘을 주시며 필자에게 이 말을 하신 분은 열일곱 살인 필자보다 한 살 더 많은 조봉환 선생님이었다. 순간 나는 속이 상해서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필자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린 선생님의 잔인함이 미워서였다. 훤칠한 키,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생긴 용모, 목소리까지 좋았던 조 선생님. 싱긋 웃으며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농담한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필자가 상처를 받은 것은 선생님에 대한 필자의 심상치 않은 감정 때문이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 도중 내가 소리 죽여 울고 있었더니 옆에 계신 아줌마가 조심조심 물으셨다. “얘 너 왜 우니?” 대답을 하지 않자 또 다른 아줌마가 말했다. “아마 설교 말씀에 감동해서겠지 뭐” 천만에 말씀. 그날 내가 운 것은 동생 연희 때문이었다. 목사님 설교 중에 동생은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내가 언니 편지에서 우표를 떼었어, 우표 수집하려고.” “말도 안 돼. 내 편지에 손을 대다니!” 선생님들의 편지를 보물처럼 아끼던 필자였다. 더군다나 조 선생님의 편지를?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조 선생님은 분명히 필자의 가슴 한 자락을 차지하고 계셨다.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신 조 선생님은 그해 어느 날 어머니께 매를 맞았는데 “잘못했다고 한 번만 빌어라. 그러면 때리지 않겠다”고 애원하는 어머니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결국은 매를 맞다 견디지 못하고 기절까지 하셨다는, 필자 못지않은 고집쟁이 선생님이었다. 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아리랑’의 가사를 이렇게 풀이해주셨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서 나한테 다시 돌아와라’가 아니라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 리도 못 가서 죽어버려라’라고 해야 한다.” 내게서 떠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하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그 의미가 여리고 정 많은 한국인의 정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말이라서 충격을 금치 못했지만 필자도 모르는 사이 그 말씀이 점점 와 닿았다. 훗날 조 선생님은 우리들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도록 그렇게 강인한 의지 내지는 투지를 의도적으로 심어주려고 그러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조 선생님의 의도대로 필자는 강인함을 잘 키워나갔던 것 같다. 국어를 가르쳐주셨던 조 선생님이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 등을 낭송하실 때면 그 멋진 모습에 푹 빠져들곤 했다. 금상첨화라고 조 선생님은 잘생긴 용모에 목소리도 일류 성우 못지않았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킹카였다. 필자는 혼자서 가슴을 태웠다. 그런데 어쩌랴?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학생이었고 필자는 정규 중학교도 못 가서 야학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소녀였으니…. 필자가 만들어낸 동화에서는 필자가 공주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 사실이 필자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던 필자는 그때부터 아성을 굳게 쌓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자존심을 부르짖으며 상처받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선생님이 아무리 좋아도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야학 선생님들의 제자 사랑이 각별한 만큼 우리들 가슴속에 피어난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모의 정도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럴수록 더 비참해지는 자신을 느껴야 했다. 이상은 높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불운했던 10대에 야학 선생님들과의 신분상 장벽은 필자의 삶에서 결정적인 아픔이었고 상처까지 됐던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어느 날, 근무하고 있던 평택여고 교무실에 학생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왔다. 군복무를 마치고 갓 부임한 총각 선생님의 얼굴을 보려고 몰려든 것이다. 별로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얼굴이 울퉁불퉁 민주적으로 생겼거나 키 작은 분이라도 총각 선생님이라면 무조건 껌뻑 죽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필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만약 필자의 야학 선생님들처럼 맑은 눈망울, 해맑은 표정의 선생님이 오신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그 상상만으로도 혼자 즐거울 때가 있다. 아마도 몇 명쯤은 심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속없이 외모만 잘난 남자처럼 경멸스러운 대상이 또 어디 있을까? 개성도 없고 평범한 용모의 필자는 순수하고 인품이 있으면서도 잘생긴 남자들을 좋아했는데 B선생님과 조 선생님은 야학 선생님들 중에서도 용모가 영화배우급으로 수려했으며 키도 훤칠했던 멋진 분들이었다. 또한 순수하면서도 의젓한 인품이 단연 돋보였다. 당시에는 신분상의 갭을 느끼며 가슴 아파했는데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필자가 별 볼일 없는 자신을 커버해줄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만 가슴속에 넣어두기를 고집했던 것이다. 현실 감각도 없었던 필자는 오직 그런 사람들만 동경의 대상으로 모셔놓고 혼자 아파하고 상처받은 후 슬픔에 빠져 있기를 즐겼던 것이다. 그렇게 흠모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필자에게 품고 있는 고운 감정에는 아예 장님이 되어 깨닫지 못하거나 안다고 해도 터무니없이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반응으로 상대방에게 상처까지 주곤 했다. 자신의 감정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감정 또한 소중한 것을 몰랐던 시절이다. 정신적 미숙아였던 것이다. 1993년 1월, 여의도에 있는 주택은행 본점을 찾았다. 조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야학 시절에는 몸이 마르신 편이었는데 적당히 살이 붙어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25년 만에 뵙는 선생님이었는데 선생님도 필자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셨다. 단 1년 동안 우리를 가르치셨는데 그 순수하고 열정적인 시절을 오늘날까지 잊지 않고 선생님 가슴속에 꼭 간직해두고 계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필자가 10대에 지독한 가난 때문에 맺힌 한이 너무 많다고 하니까 “가난한 것이 그렇게 불편한 거였냐?’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당신도 가난했지만 크게 불편한 것을 몰랐다며, 당시 야학 선생님들도 대부분 어려운 처지였기에 우리들의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르쳐주려고 노력했다고 말씀하셨다. 조 선생님은 당시의 야학활동이 ‘베풀고, 나누고, 사회에 동참한다’는 의미였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홀어머니도 삯바느질을 하시며 사셨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중․고교 때의 교복도 늘 남이 입던 것을 얻어 입었기 때문에 옷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입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교복 모자도 쓰레기통을 뒤져서 나오면 먼지를 ‘툭툭’ 털어 쓰고 다녔다고 한다.이렇게 오랜만에 뵙기 전까지는 선생님 댁이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집안인 줄 알았다가 새삼 당신도 그렇게 어려운 처지였음에 놀랐고 그 상황에서도 우리들의 선생님이 되어주셨다는 데 대해 깊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은 그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고통을 많이 겪으신 선생님의 원숙함과 철학의 깊이에 필자의 마음은 고개를 숙였다. 조 선생님은 졸업식 날 집까지 데려다준 우리들이 다시 야학에 와서 선생님들을 붙잡고 운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계셨다. 슬픔마저도 찬란하게 기억되는 그 시절! 서로가 애틋했던 시절의 소중하신 우리들의 선생님이시여.
- 2017-06-2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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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헬스 콘서트’ 개최, 관객과 소통하는 의학 버라이어티 토크쇼!
- 27일 오후 5시 여의도 신한금융투자빌딩 웨이홀에서 척추건강과 치매를 주제로 한 ‘시니어 헬스 콘서트’가 열린다. ㈜이투데이PNC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척추와 치매 관련 강연과 더불어 관객과 함께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으로 꾸며진다. 가천대 뇌건강센터장과 인천시 치매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가천대 길병원 연병길 교수와 우신향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민형식 부원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연병길 센터장은 ‘치매와 마주보기’를, 민형식 부원장은 ‘척추 알면 10년 젊어진다’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아울러 개그맨 권영찬의 진행으로 펼쳐지는 의학 토크쇼와 관객과 함께하는 일문일답 코너를 마련해 시니어들의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의학 관련 프로그램 외에 김범룡, 여행스케치 등 가수들의 흥겨운 공연 무대까지 즐길 수 있다. 참가 신청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팀(02-799-6730)을 통해 무료로 가능하며, 선착순 마감한다.
- 2017-06-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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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에 열리는 문화 장터 ‘서울밤도깨비야시장’
- 한밤중 나타났다가 아침이면 사라지는 도깨비처럼, 비밀스러운 거래가 일어나던 도떼기시장을 이른바 ‘도깨비시장’이라 부르곤 했다. 이처럼 특정한 날과 시간이 되면 열리는 장이 있다. 바로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이다. 청계천과 한강공원 등 물가 인근에서 열려 밤공기가 선선한 6월이면 산책 삼아 거닐기 제격이다.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이하 야시장)은 서울시에서 출범해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행사다. 3월부터 10월까지 금·토요일(청계천은 토·일요일) 저녁마다 여의도·반포 한강공원과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에서 열린다. 청년 상인들이 운영하는 각양각색 푸드트럭과 핸드메이드 숍, 다채로운 공연 무대 등을 만날 수 있다. ‘월드나이트마켓’이라 부르는 여의도 야시장은 한강의 유람선과 마포대교, 쌍둥이빌딩 등에서 비추는 조명이 별처럼 반짝이는 야경을 자랑한다. 잔잔한 강 물결과 어울리는 버스킹(길거리 연주) 공연과 더불어 아시아·유럽·남미의 전통 공연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한강공원의 너른 잔디밭에는 텐트와 돗자리를 펴고 야시장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하다. 인근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다니다가 반짝이는 야시장의 불빛을 보고 발걸음하기도 한다. 한여름에는 열대야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는 방문객이 주를 이룬다. 돗자리만 챙겨간다면 도시락을 싸가지 않고도 여름밤 가족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동대문디자인프라자 ‘청춘런웨이마켓’에서는 신나는 DJ공연과 함께 패션쇼가 열린다. 다른 야시장보다 젊은 층의 비율이 높아 신선하고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다. 패션의 거리인 만큼 신진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와 더불어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 상품과 디자인 소품들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패션 트렌드와 젊은 세대 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도심의 야경과 분수, 빛과 음악이 흐르는 반포 야시장 ‘낭만달빛마켓’에서는 로맨틱한 재즈, 팝페라, 어쿠스틱 음악 공연이 열린다. 해질 무렵 찾아가면, 붉게 물든 석양 아래 무지갯빛 물줄기가 쏟아지는 낭만적인 광경을 볼 수 있다. 인근 반포대교와 한남대교 등 도심의 야경을 배경으로 이색적인 음식과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는 이가 많다. 청계천을 따라 펼쳐지는 ‘타임슬립마켓’은 사랑의 자물쇠와 소원의 나무, 도깨비 퍼레이드 등 다양한 이벤트를 운영한다. 평소에는 광통교 일대에서 열리지만, 시즌별로 특정한 날에는 청계광장에서도 야시장을 만날 수 있다(여름 시즌 8월 18~20일).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청계천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각 지역 야시장 종합 안내소 겸 상황실에는 의료지원 본부가 마련돼 있어 응급상황 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푸드트럭, 점포 정보 및 공연 안내는 서울밤도깨비야시장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 2017-05-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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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식문화 수준을 높이려면
- 여의도에서 마라톤 대회가 끝나고 체력을 보충하겠다며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강 건너 유명한 고기집을 필자가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 동네가 재개발이 되는 바람에 어디로 옮겼는지 몰라 일단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택시 운전사도 모른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과연 그 집의 위치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장사가 잘돼 번듯한 건물을 짓고 간판도 크게 달아놓았다. 그런데 좀 일찍 가기는 했지만,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데이트 족 한 팀이 더 왔을 뿐 손님이 안 오는 것이었다. 다른 한 팀은 종업원과 언쟁이 벌어졌다. “서비스업을 하는 음식점의 종업원이 손님을 이기려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주문하면서 몇 마디 건넸을 때 담당 종업원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마치 ‘잡소리하지 말고 고기나 먹고 빨리 가라’는 투였다. 음식 값이 비쌌지만 맛도 별로 없었다. 그러니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이다. 문전성시를 이뤘던 이 음식점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마 옛날 맛을 잃고 가격도 많이 올랐으며 이런 불친절한 종업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점은 주인이나 종업원의 태도에 따라 손님들이 금방 알아챈다. 불친절한 음식점은 당연히 손님들이 기피한다. 동네에도 비슷한 업종의 두 집이 바로 붙어서 영업을 한다. 한집은 손님이 넘치는데 그 옆집은 파리만 날린다. 늘 가던 집에 자리가 없을 경우 옆집이라도 가자고 했더니 일행 중 여러 명이 그 집은 가지 말라며 말렸다. 우리가 가던 음식점에 손님이 넘쳐 밖에 상차림을 했는데 그 음식점 주인이 투덜대더라는 것이다. 만약 웃는 인상으로 대했다면 늘 가던 집에 자리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그 음식점도 이용했을 것이다. 음식점 주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싼 메뉴를 주문했을 때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생선회집에 갔는데 비싼 생선회는 주문 안하고 간단한 멍게 해삼을 주문하면 안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들어갔을 때는 반색을 하더니 싼 메뉴를 시키자 돌변하며 주방에 대고 실망스러운 표시를 한다. 그러면 그 음식점은 안 가게 된다.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이 전국 여기저기에서 화두에 오른 적이 있다. 겉으로 말은 거칠지만, 속뜻은 그렇지 않기에 감수하고 드나들었던 것이다. 가격에 비해 푸짐하고 맛도 좋았기에 거친 말을 들어도 웃고 넘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시니어들은 더 이상 그런 음식점에는 가지 않는다. 요즘이라면 갔다가는 싸움이라도 날 것이다. 손님 중에는 갑질하는 진상들도 있다. 종업원들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상식적으로는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반말을 하면 안 된다. 옛 성현의 일화중에 그 집에 갔을 때 하인이 문을 열어주기에 존댓말을 했더니 그 집 주인이 하인인데 굳이 존댓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당신에게는 하인이지만, 내게는 내 하인이 아니고 초면이니 존댓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은 음식점이나 카페 주인, 종업원들이 아들이나 딸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초면인데도 반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아들딸 뻘이니 말을 낮춰서 되지?”하면 싫더라도 “안 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싫은지 좋은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외식을 자주 하게 되면서 음식점이나 손님이나 서로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 서로 기분 좋게 대하면 서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한쪽이 기분을 상하게 하면 다른 한 쪽은 상처를 입는다. 외식문화의 수준은 서로 존중하고 고마워하는데서 올라간다.
- 2017-05-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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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을 알리는 4月 벚꽃축제 베스트5
- 매년 4월이 되면 전국적으로 벚꽃이 피어나면서 봄을 알린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벚꽃으로 이름난 곳에는 벚꽃 구경과 놀이가 펼쳐진다. 그 중 5곳을 소개한다.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 (4월 1~9일) 200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2회를 맞이하는 는 도시 속에서 한강과 벚꽃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봄마다 많은 사람이 찾는다. 마포대교 사거리에서 여의도 교차로 내 하늘 무대와 꽃잎무대에서는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며 전시, 홍보,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석촌호수 벚꽃축제 (4월 1~9일) 석촌호수를 따라 피어난 벚꽃과 자연환경이 어우러지는 풍경 속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공연, 전통공연, 콘서트가 열린다. 특히 올해는 롯데월드 타워의 ‘스위치 스완(Sweet Swans)’ 프로젝트로 탄생한 거대한 백조 가족을 만나볼 수 있다. 이외에도 벚꽃 그리기, 벚꽃 사진전 등이 열린다. ◇경포대 벚꽃축제 (4월 6~12일) 경포대를 중심으로 경포호수를 둘러싼 벚꽃과 봄꽃이 꽃 세상을 이룬다.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으며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는 올해 바우길 걷기, 벚꽃 축하 하늘쇼 등 특별이벤트를 개최한다. ◇팔공산 벚꽃축제 (4월 12~16일) 대구 동구 불로동에서 팔공산 동화사 옆 동화지구까지 길을 따라 펼쳐진 벚꽃터널은 드라이브하기 좋은 장소이다. 팔공산이 연출하는 봄 풍경 속 봄나물 비빔밥 축제와 벚꽃가요제가 펼쳐진다. ◇용인에버 벚꽃축제 (4월 13~16일) 에버랜드가 벚꽃이 만발한 호암호수 주변을 무대로 를 개최한다. 축제동안 호암호수 일대에는 대관람차, 열기구 등 벚꽃을 활용한 다양한 포토스팟이 조성된다. 방문객을 위해 에버랜드 정문 셔틀버스 하차장에서 호암호수 입구까지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 2017-04-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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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꼽은 서울 최고의 벚꽃명소
- “현충원에 벚꽃 필 때가 됐을 텐데...” 올해도 어김없이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3년 전 현충원에 벚꽃 구경을 다녀온 후,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수양벚꽃 보러 가자고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처음 현충원에 꽃구경 가자고 했을 땐 묘지에 웬 꽃구경이냐고 손사래를 치더니 한번 와보곤 홀딱 빠지고 말았다. 전화기를 타고 오는 엄마의 목소리에도 봄바람이 불었다. 4월이 되자 여기저기서 봄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 중 으뜸은 벚꽃이다. 여의도 윤중로나 남산길, 석촌호수 등 벚꽃 명소에는 벚꽃나무 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만큼 벚꽃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서울 최고의 벚꽃 명소로 꼽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국립현충원이다. 우리나라 벚꽃은 대부분 왕벚꽃나무인데 비해 국립현충원의 벚꽃은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수양벚꽃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수모를 겪은 효종이 북벌 계획의 일환으로 활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수양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봄꽃을 즐기기에 국립현충원이 좋은 이유가 있다. 우선 현충원에 들어서면 묘역을 감싸고 있는 산 위에 형형색색의 꽃들에 눈호강이 시작된다. 벚나무 외에도 진달래, 개나리, 철쭉, 산수유, 목련 등 알록달록한 꽃들이 가득하다. 국립묘지이긴 하지만 43만 평이나 되는 넓은 곳이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온다. 20km 제한 속도를 지키면 승용차를 타고 현충원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어 나이 드신 부모님도 만족해 하신다. 게다가 넓은 주차장이 곳곳에 있으니 벚꽃축제가 한창일 때도 주차 걱정이 전혀 없다.현충원을 한 바퀴 돈 후엔 수양벚꽃을 감상하기 위해 정문 근처 충무정을 찾아간다. 수양벚꽃이 무리지어 심어져 있는 데다 벚꽃의 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있어 숨막히게 아름답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충무정 앞은 늘 붐빈다. 필자와 부모님도 이 곳에서 인증샷은 필수다. 널리 알려진 벚꽃 명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파에 휩쓸리느라 꽃구경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하지만 국립현충원은 대지가 워낙 넓으니 사람이 많아도 인파가 분산돼 호젓하게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또,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어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산책하기 참 좋다. 이번 주말 쯤 벚꽃은 만개해 장관을 이룰 것이니 서둘러 나들이를 계획해야겠다.
- 2017-04-0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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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풍이 가능한 관계가 좋다
- “엄마, 이 오빠 알아? 이 오빠 엄마가 엄마 안다던데?” 교회에 다녀온 딸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얘, 민철이 아니야?” “맞지? 맞지? 오빠랑 얘기하다 우리가 옛날 살던 동네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네도 거기 살았다고….” 민철이 엄마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팝송을 함께 듣고, 디제이가 있는 빵집에 들락날락했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친구가 결혼해서 외국으로 떠났다가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 친구 소식을 딸을 통해 듣게 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당장 연락을 하고 단짝 시절로 돌아갔다. 여의도에 사는 친구네 집은 잘 꾸며져 있었다. 현대적인 가구와 중국풍의 믹스매치가 세련돼 보였다. 거기다가 유럽이나 미국에 갈 때마다 사온 소품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필자는 친구의 세련된 감성과 친구가 만나는 품격 있는 사람들에 매료됐다.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부터 바빠졌다. 함께 가는 곳도 많아지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친구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물건을 내보였다. 필자가 전에 살던 생활 방식과는 전혀 달랐지만 고맙고 즐거웠다. 어느 날 친구가 집 앞으로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 나갈 수 없다고 하니 얼굴만 보고 가겠다고 찾아왔다. 친구는 부스스한 필자의 모습을 보더니 “차 타고 드라이브 좀 하면 나아질 거야” 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날 친구를 거절하는 게 힘들었던 필자는 조금씩 친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필자가 홍콩 여행을 가게 됐다. 심천에서 수년을 살았고 홍콩을 밥 먹듯 드나들었던 친구는 최신 가이드북과 옥토퍼스카드(선불카드)를 챙겨주며 자기가 홍콩 맛집을 정리해서 주겠노라 했다. 필자는 친구의 말을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조용히 홍콩엘 다녀왔다. 문제는 홍콩 여행을 다녀온 후에 터졌다. 적극적인 성격의 친구는 이모저모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별일도 아닌데 뭐”라고 말한 필자의 대답이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장문의 문자로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전해왔다. 필자는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가까워지면서 생활에 활기도 생기고 재밌는 일도 많았지만 끌려다니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필자만의 여행을 하고 싶었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그 후 누가 잘못한 것도 없이 서로 상처를 받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오히려 친구를 안 만나니 홀가분했다. 그동안 손에서 놓았던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편안함을 되찾았다. 소노 이야코의 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집 주변을 둘러싼 나뭇잎과 가지를 손질했다. 통풍이 나쁘면 집이 썩고 그 집에 사는 사람도 병에 걸린다고 믿으셨다. 그 믿음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깊이 뒤엉킬수록 서로 성가스러워진다. 살다 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고 어려울 때 약간의 거리를 두고 관계를 통풍하는 일 그것이 삶을 행복으로 이끌고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현명하게 관계를 끊는 일은 아직도 고민거리다. 페이스북에서 ‘알 수도 있는 친구’에 그 친구 이름이 뜨면 아직도 깜짝 놀라니 말이다.
- 2017-03-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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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따뜻한 콘서트>덕분에 부자지간 돈독해져
- 동년기자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만 1년이 돼가고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나태(懶怠)에 빠져 글쓰기를 망각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가 정말 글다운 글을 썼을까?” 하고 뒤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지난 1년 동안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자생활 1년 동안 덤으로 얻은 행운도 많았다. 대학로에서 두 번씩이나 연극을 관람했고 올 초에는 압구정동에서 이라는 뮤지컬도 관람했다. 젊어서는 살기 바빠 문화생활을 못했고 나이 들어서는 관심이 떨어져 고작해야 1년에 영화 한 편 보기도 쉽지 않았는데, 지난 1년 동안 동년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화생활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 2월 22일에도 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여의도 KBS홀 본관에서 공연된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에 초대된 것이다. 필자는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그런데 당일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오후가 되자 오락가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필자가 사는 인천공항 근처에는 진눈깨비와 비가 섞여 내리면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퇴근시간에 맞춰 막내아들에게 회사로 나오라고 했다. 공연장까지 가는 방법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번이나 확인해보았지만 쉽게 가는 노선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 결론은 회사 통근버스로 김포공항까지 이동한 다음 공항전철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로 갈아타고 가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 가다 보니 허기는 또 얼마나 몰려오든지…. 서둘러 현장에 도착해 일단 표를 받아놓고 시간을 보니 공연시작 20분 전이었다. 빠듯하긴 했지만 저녁을 굶고 관람할 수는 없어 근처 김밥 집으로 달려갔다. 모처럼 아들과 둘이 마주 앉아 김밥과 라면을 시켜 먹으면서 오랜만에 서로의 관심사를 물으며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가 끝나고 부리나케 공연장으로 돌아오니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겨우 안내를 받아 착석하고 관람을 했다. 오프닝 무대로 타악그룹 RUN의 ‘두드림’은 힘차고 역동적으로 리듬을 타고 있어 오랜만에 필자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겨울 끝자락에서 만난 ‘마음이 따뜻해지는 콘서트’는 오는 봄을 맞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필자의 마음을 녹여줬다. 아들은 가수 린의 인기 드라마 OST곡을 제일 좋아했다. 자신의 세대와 공감이 되고 감성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깜찍한 걸그룹 ‘모모랜드’의 공연은 싱그러워 젊은 층의 관람자들은 물론이고 시니어들도 한마음으로 공감하고 어우러진 멋진 공연이었다. 중견가수 김장훈의 넘치는 끼와 재치는 마력이 있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문화는 대중과 함께 호흡을 해야 그 힘이 발휘된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메인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등장하기 전부터 한껏 기대를 갖게 한 대형 록 가수 전인권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울림통, ‘전인권 밴드’의 현란한 연주, 관중을 사로잡는 매력과 포스가 한껏 발휘된 무대였다. 공연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시간에 갈 길이 먼 필자와 아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아들은 공연장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내내 공연의 잔상(殘像)에서 벗어나지지 않는지 따뜻하고 멋진 공연이었다고 끊임없이 조잘댔다. 황급히 돌아오면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맨 필자와 아들은 영락없는 촌뜨기 신세였다. 겨우 지하철을 타고 두어 정거장쯤 갔을 때 무심코 안내방송으로 다음 정차할 역이 노량진이라는 멘트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만 것이다. 일찍 집에 도착하려고 공연 엔딩도 보지 않은 채 조금 일찍 빠져나왔는데 반대로 가는 지하철을 타다니! 필자와 아들은 마주보면서 멋쩍은 웃음을 나누고 노량진역에서 내려 부리나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갈아탔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전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승강장을 보니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30여 미터나 늘어서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걸어가다가 택시가 보이면 타자. 그게 더 빠르겠다.”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그날 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한 시간여를 눈길을 걸었다. 칼로 에이는 듯한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고 귀를 손으로 감싸면서 걸었지만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걸어가는 길이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부자가 함께 걷는, 눈 내린 밤길은 따뜻한 콘서트만큼이나 훈훈했다.
- 2017-02-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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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가 만난 CEO 스토리] 은퇴교육 열정 전도사 윤만호 EY한영 회계법인 부회장
- 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브라보’는 ‘잘한다’, ‘좋다’, ‘신난다’ 등의 갈채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성공적으로 2막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 시니어들로부터 ‘인생 2막 설계의 지혜와 조언’을 들어보고자 한다. 리타이어(retire)는 타이어를 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이어를 새로 바꿔 끼운다는 의미다. 단지 1막의 재현에 불과한 리플레이(replay)도 아니고, 1막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맨땅에서 헤딩하는 리셋(reset)도 아닌, 새로운 재생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라는 용어를 은퇴시키고’ 멋진 2막의 르네상스를 설계하기 위해 ‘이어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본지를 통해 살아온 길의 여정에 담긴 ‘온기’뿐 아니라 살아갈 길의 이정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길 기대한다. 윤만호 언스트앤영 어드바이저리 부회장(62)은 한국산업은행 부행장, 산은금융지주 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경제·금융 전문가’로 살아왔다. 이런 전문가로서의 이력을 넘어 주목되는 점은 열성적 은퇴교육 전도사라는 점. 그는 2011년 금융권 퇴직자들을 재교육, 창업자들에게 금융·입지권 조사 등 컨설팅을 해주는 사회공헌자 프로그램인 ‘시니어 브리지 센터’를 만드는 등 일찍이 퇴직자 재교육에 앞장서왔다. 최근까지도 서울시 50+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은퇴자들을 위한 제도적 교육과 일자리를 지원해왔다. 그가 설파하는 신(新)퇴직 또는 은퇴혁명 패러다임의 핵심은 ‘당하는 퇴직을 준비하는 퇴직으로 바꾸라’이다. 과거와 오늘날의 은퇴 의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50이 넘도록 사회생활을 하면 웬만큼 살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즘은, 생애주기가 바뀌면서 앞으로는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고령화 사회에서의 퇴직은 마지막 골라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지요. 이제 일은 평생 하는 것입니다. 은퇴란 말을 은퇴시켜야 합니다. 평생 현역이 될 각오를 다져야지요.” 평생 현역은 오늘날 은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의 반환점으로 보람찬 2막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우리 사회에서는 80세부터를 본격적 노후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50~60대에 은퇴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80세까지 평생 현역으로 일하기 위한 키워드는 3가지입니다. 일, 배움, 나눔이지요. 책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사람도 더 만나고, 일을 통해 경험과 경륜을 더 나누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급변할수록 ‘과거의 경험, 인연, 경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하면서 배우고 나누는 삶이 인생 2막의 패러다임입니다.” 영화 을 보면 대기업 부사장이 벤처기업의 인턴이 되어 젊은 여사장의 시중을 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갑에서 을로의 갑작스런 전락’이 2막 부적응의 이유가 될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퇴직 후 피부로 느끼는 것이 갑(甲)에서 을(乙)로의 입장 변화이지요. 이 변화를 약자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기여한다는 적극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시각 전환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퇴직 후 자신을 대하는 세태 변화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잘나갈 때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고 일정이 빡빡했는데, 퇴직하거나 작은 데로 옮기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일정도 텅텅 빈다면서 우울해합니다. 이럴 때는 인심을 탓하기보다 ‘그동안은’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느라 선택당했는데 이제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 만날 수 있으니 좋다’라고 시각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을(乙)적 사고야말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생 2막은 성공 마인드보다는 성숙-섬김마인드로 임해야 합니다.” 윤 부회장의 말을 들으니 시니어가 멀리 해야 할 한자로 단단할 ‘고(固)’ 자가 떠올랐다. 고(古)의 울타리[口]에 갇혀 고착돼 있으면 고루해진다는 의미가 떠올라서다. 인생 2막이 힘든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꼰대적 사고를 그쳐야 퇴직을 종착역이 아닌 간이역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보통 사람들이 퇴직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재정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현역에서의 퇴직 준비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현역, 퇴직 통틀어 지켜야 할 것은 ‘버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재정 원칙입니다. 현역 활동 때 현재의 수입을 모두 가처분소득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평생 내가 쓸 돈이 얼마나 되는지, 60세 이후 100세까지는 무슨 돈으로 살 것인지 꼼꼼히 계산해보십시오. 버는 것의 30%는 무조건 개인연금을 부어야 합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외에 개인연금을 들어 노후에 ‘3층 연금’의 단단한 방어벽을 준비해놔야 합니다. 특히 요즘은 저금리시대 아닙니까. 10억원을 버는 것도 힘들지만,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매달 100만원씩 나오게 하는 현금흐름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비도 과잉투자해선 곤란합니다. 노후를 잘 대비해놔야 자식 앞에 부모가 바로 서고 자식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미 퇴직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할 것들이 있는지요? “있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원칙은 퇴직자도 같습니다. 막연히 불안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나의 어셋’은 어떻게 되는지 점검하고 이에 따라 할 일을 리디자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퇴직 후 가능한 일자리 형태는 사회공헌형, 봉사형, 생계형, 전문가형 등이 있습니다. 어느 형태가 되든 평생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이때 연금을 들어놨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퇴직 후부터는 버는 것보다 나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저는 flowing-흘려보내기란 말을 좋아합니다. 퇴직 후에는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지금까지 나에게 위탁된 것을 잘 이용하고 남에게도 흘려보낸다’는 나눔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인생 1막과 2막, 그 분수령을 전후해 삶의 정비사항, 중점사항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 “삶이 변하면 사람도 바뀌어야지요. 1막에선 급한 것에 휘둘려 살았다면 2막에선 정말 중요한 것에 따라 여러 가지를 성찰하고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사는 대로 생각’했다면 2막부터는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성찰해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증진시킬 것은 증진시키고, 회복시킬 것은 회복시키는 등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 재조정해야지요. 다시 말해 돈, 시간, 몸을 우선순위에 따라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윤 부회장은 구체적 성찰 및 재정비의 대상을 관계, 시간, 재무, 건강(정신-육체), 웰다잉의 순서로 꼽았다. 그리고 이 5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의 리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하버드대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하버드대학 학생 268명의 인생을 72년간 종단연구하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큰 조건이 무엇인지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으며, 65세에 잘살고 있는 사람의 93%는 형제·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다. 많은 가장들이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바쁘게 일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나자 ‘찬밥 신세’라며 서러움을 호소하기도 하는데요. 윤 부회장께선 가족관계 경영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도 월화수목금금 일해야 하는 산업화 시대에 공직자로 살았으니 집사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갖진 못했습니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요. 하지만 ‘온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갖고 대화를 나누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명절 때면 온 가족이 모여 ‘가위바위보게임’을 하는 등 소소한 재미 디자인을 했지요. 매년 가족사진도 찍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슴에 따뜻한 가족 램프를 걸어두며 사는 것, 그것 이상 삶의 성공,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선친은 고(故) 윤재건 전 제주체신청장이다. 윤 부회장은 “우편제도가 열악했던 시절, 지방이든 해외든 출장을 가면 ‘부인에 대한 사랑, 자녀에 대한 자상한 관심’을 담은 엽서부터 보내는 아버지를 보며 알게 모르게 가족사랑은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함을 배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 재물도 그렇지만 가족관계 역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부친상을 당하셨는데요. “(눈시울이 붉어지며) 아버님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간암 선고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답니다. 소천 전 일주일간 오 남매를 불러 각각 독대 면담을 하며 당부의 말씀을 일일이 남기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지키고 계획한 대로 산 삶이었다는 점에서 웰리빙, 웰다잉의 표본이셨다고나 할까요. 선친께서는 늘 ‘요행을 기대하지 마라, 노력으로 거둔 보람만이 참된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끝없이 사랑을 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 제 삶의 피가 되고 살이 된 말씀이랍니다.” 선친이 그에게 남겨준 가보 제1호는 17세 때부터 61세 노년기까지 44년간 고이 모아온 우표책 한 질이다.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에서 한길을 걸어온 소신과 자부심의 표상을 아들에게 담아 물려준 것이다. 그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우표 수집을 이어가고 있다. 윤 부회장은 지난 1997년 부친의 고희 때 만든 가족 문집 를 가져와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문집에는 부부-부모자녀-손주 간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글, 사진 등 3대 가족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팔순이 될 때 이 같은 가족 문집이 더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회의실 8층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여의도공원의 늦가을 경치가 아름다웠다. 같은 낙엽이지만 ‘추풍낙엽’의 조락의 의미로도, ‘만산홍엽’의 서정적 의미로도 묘사된다. 이는 퇴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당신은 지금 미래의 계획 아래 ‘추일서정’의 퇴직을 준비하는가, 계획 없는 미래에 손 놓고 ‘추풍낙엽’의 조락을 당하고 있는가. >>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 2016-11-3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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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물환경연구소’는 무슨 일을 할까요?
-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물이다. 우리 몸의 70%를 이루고 있는 물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시켜주고, 대사 작용을 높이고, 혈액과 조직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을 섭취하지 못할 경우 1~3% 부족하면 심한 갈증을 느끼고 5%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이르며 12% 부족하면 사망한다고 한다. 그러니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들 잘 알고 있다. 우리 집은 일 년에 한두 번 서울시에서 담당 직원이 방문해 수질검사를 해주고 있다. 그때마다 여러 가지 시약을 준비해 실험한 뒤 우리 집 수돗물은 매우 깨끗하고 필요한 영양소가 함유된 좋은 물이니 그냥 마셔도 좋다는 결론을 내주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도 필자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지 않는다. 깨끗해서 그냥 마셔도 된다지만 더럽게 오염된 한강을 본 뒤로는 그냥 마실 생각이 들지 않는다. 며칠 전 ‘한강물환경연구소’를 견학한 후 생태학습선을 타고 팔당호 주변을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다. 팔당호는 서울 시민의 수돗물이 되는 근원지이므로 물과 환경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관심이 컸다. 아직 단풍놀이도 못 했는데 이미 초겨울로 들어선 듯 날씨가 매우 추웠다. 서울역에서 만난 탐사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소풍 가듯 팔당호로 출발했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양평의 ‘한강물환경연구소’는 팔당호를 끼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에 있었다. 우리 생명의 물줄기가 흐르는 한강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한강물환경연구소’가 앞장서고 있다고 했다. 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금대산 북쪽 계곡인 검룡소에서 발원해 북한강과 팔당호에서 합류하고 다시 한강 하구에서 강원도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간다. ‘한강물환경연구소’는 2500만 수도권 인구의 상수원인 팔당호와 한강수계의 물 환경생태 연구를 위한 국가 연구기관으로 팔당호 등 한강수계 물 환경개선 및 수생생태계 건강성 확보를 위한 실용화 연구에 앞장서고 있으며, 과학적 유역 환경조사 및 미래지향적인 물 관리 연구기반 구축을 통해 건강한 수중 생태계 보전과 복원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로비 옆에 있는 회의실에서 팔당호 유역에 관한 브리핑이 있었다. 상수원 보호를 위해 강변에 공장이나 축사, 음식점 규제를 하고 있고 생활 오수가 생기는 아파트 건립도 규제 대상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과학적 수질관리와 자료를 구축하고 유역 환경조사평가와 담수 생태계 기능 해석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 유아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방문해 상수원 보호에 대해 알아보는 환경교육 현장이기도 하다. 그날도 우리 탐사단 외에 중·고교생처럼 보이는 많은 학생들이 탐방을 하고 있었다. 전시실에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었다. 팔당호 및 한강의 수중 생태관인 이곳에서 천연기념물은 물론 상류, 중류, 하류에 따라 서식하는 물고기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플랑크톤 양서류, 파충류, 갑각류 생물들까지 볼 수 있어서 물속 생태계가 경이로웠다. 다른 한쪽에는 물에 관해 꼭 알아야 할 정보들이 가득했다. 물 아끼는 방법과 함께 물길을 조절하고 물분수를 연주해보면서 물의 성질과 상식을 배울 수 있는 재미있는 체험관도 마련되어있어 아이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우리 탐사단은 생태학습선을 타고 팔당호를 돌아보기로 했다. 선체 주변으로는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고 있어 덤으로 멋진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으로 팔당의 상수원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감사했다. 넓은 연꽃 밭이 수질 정화에 한몫을 하고 물가의 버드나무도 살리실산으로 수변에 자라면서 수초와 함께 수질 정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팔당호는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인공호수로 여의도 면적의 약 70배나 되며 연간 2억5000kw의 전력 생산이 되고 서울과 수도권에 하루 260만여 톤의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생태학습선 안에서는 인상 깊은 실험도 이루어졌다. 직접 팔당호 물을 채취해 실험 키트를 이용해 물의 COD(화학적 산소요구량)을 알아보았는데, 가장 깨끗한 상태라는 핑크빛으로 물의 색이 변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족자도는 정말 아름다웠다. 예전엔 토끼가 많아 토끼섬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가마우지가 철새가 아닌 텃세가 되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날아오른 가마우지 떼의 군무가 멋졌다. 직접 상수원을 돌아보고 나니 우리 집 수돗물도 수질검사 결과대로 안심하고 믿고 마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을 관리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한강물환경연구소’가 고마웠고 앞으로도 한강 수자원 보호를 위해 힘써주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 2016-11-14 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