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리면서 다채로운 공연 소식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뜨거운 인기를 얻은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이 서울에서 앙코르 공연을 펼칠 예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대구국제 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인정받은 뮤지컬 '프리다'와 청춘의 자화상으로 꾸준한 인기를 끄는 'B클래스'도 출격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일정 2월 25일 ~ 3월 13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질 마으
출연 안젤로 델 베키오, 막시밀리엉 필립, 엘하이다 다니, 젬므 보노 등
프랑스 3대 뮤지컬 중 하나인 ‘노트르담 드 파리’가 대구, 부산 공연에 이어 서울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추한 외모의 꼽추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대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의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다. 그 안에서 불안정하고 혼란스런 시기의 사회상과 이교도들의 갈등, 부당한 형벌제도, 인간의 욕망, 삶과 죽음까지 담아내며 시대를 뛰어넘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프리다
일정 3월 1일 ~ 5월 29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연출 추정화
출연 최정원, 김소향, 전수미, 리사, 임정희, 정영아 등
‘프리다’는 제1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DIMF)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멕시코의 위대한 여성 화가이자 혁명가인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액자 형식으로 그린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통 속에 살았지만, 자신의 지난한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에게 세리머니 같은 최고의 쇼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추정화 극작가는 프리다의 마지막 생애를 쇼라는 독특한 콘셉트와 형식으로 풀어낸다.
B클래스
일정 2월 25일 ~ 5월 15일 장소 브릭스씨어터 연출 오인하
출연 최정헌, 이지현, 지호림, 김찬종, 노태현, 류찬열, 한선천 등
2017년 초연 이후 매 시즌 관객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연극 ‘B클래스’가 2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연극의 배경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만 갈 수 있는 예술인 양성학원 ‘사립 봉선예술학원’이다. B클래스에 속한 학생 네 명이 실력이 아닌 능력과 조건만으로 평가받는 봉선예술학원의 기준을 넘어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합동 졸업 공연’을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청춘의 자화상이 큰 울림을 안겨줄 예정이다.
‘대한민국 1인자’로 꼽히는 정미순 조향사(57).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향수를 만드는 그녀에게서는 어떤 향이 날지 궁금했다. 인터뷰 당일 뿌린 향수를 묻자 “저는 사실 향수를 잘 안 뿌린다”는 반전의 답이 돌아왔다. 다양한 향을 테스트하고 향수를 개발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 그래서일까. 그녀에게서는 인간 본연에서 나오는 향이 더 짙게 느껴졌다.
데이트 장소를 향해 두근거리며 걸어가는 여대생이 떠오르는 향, 숲속을 걷는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향, 중세 유럽의 쓸쓸한 느낌이 드는 향…. 정미순 조향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향수에서는 다양한 향이 났다. 그리고 그 향수들의 어머니답게 그녀는 모든 향을 품었다.
향수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처음 느껴지는 향을 톱 노트, 그 다음에 느껴지는 향을 미들 노트, 마지막으로 보통 잔향이라고 부르는 것을 라스트 노트(베이스 노트)라고 한다. 정미순 조향사는 향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자신의 향을 내뿜었다. 그녀의 톱 노트는 수수했고, 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해지자 밝고 열정적인 미들 노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라스트 노트는 향기를 만드는 예술가답게 통통 튀며 사랑스러웠다.
“향기란 저의 삶, 일생의 동반자 같아요. ‘조향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도 향기 덕분이고, 향기를 지금까지 놓지 않고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친구, 연인, 가족… 저에게 향기란 그런 존재 아닐까요?”
척박한 불모지 개척
향수뿐만 아니라 화장품, 디퓨저, 향초 등, ‘향’은 우리의 삶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러면서 향을 업으로 삼는 조향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전문적인 조향사가 아니더라도 공방을 차릴 수 있고, 취미로 향수 만들기도 가능하다.
조향사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조향사는 여러 향료를 섞어 새로운 향을 만들거나, 제품에 향을 덧입히는 등의 일을 하는 향료 전문가 또는 향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직종을 일컫는다. 화장품 향료나 향수를 다루는 향장품연구자 퍼퓨머(Perfumer), 식품 향료를 다루는 플레이버리스트(Flavorist)로 세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10여 년 전만 해도 향 산업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2002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정미순 조향사가 1세대라니 말 다하지 않았나. 그전에는 더욱 척박했다. 그녀 또한 조향사가 되기까지 쉽지 않았다. 포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녀는 중학생 때 에스티 로더 여사의 전기를 읽고 조향사의 꿈을 갖게 됐다. 에스티 로더가 조향사로 화장품 업계에 입문했던 것. 정미순 조향사는 대학교 전공도 에스티 로더를 따랐고,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공부 잘하는 딸이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를 마주하는 것은 당연했다.
“에스티 로더 여사가 화학 공부를 했다는 것이 책에 한 줄 써 있었나 그랬어요. 화학을 전공해야 조향사가 될 것 같았어요. 당시 부모님은 약대를 가라고 하셨죠.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좀 컸어요. 부모님은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신 거죠. 조향사는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었기에 ‘밥 먹고 살 수 있냐’고 걱정하셨어요. 저는 밥 먹고 살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약대를 가고 약사를 했어도 결국에는 향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떤 일을 했어도 저는 결국 향으로 넘어왔을 것 같아요. 시기만 늦어졌겠죠.”
정미순 조향사는 대학교 졸업 후 일반 기업체에 입사했다. 회사 생활을 3년 정도 한 그녀는 잊고 있던 조향사라는 꿈을 떠올리고는, 회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향수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에 가는 대신 가까운 일본으로 떠났고, 도쿄 미아조향학원을 다녔다. 3년 동안 공부에 매진해 교육을 수료했다.
그러나 조향사가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정미순 조향사는 다시 수입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2년 출장으로 프랑스의 향수 도시 그라스에 가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그라스는 인구 60% 이상이 향수 관련 산업에 종사하며, 프랑스에서도 향수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정미순 조향사는 향수 회사 갈리마드(Galimard)의 대표를 만났다. 갈리마드는 약 27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프랑스 왕실 향수로 유명하다. 갈리마드에는 조향 체험을 할 수 있는 퍼퓸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그녀는 직접 예약하고 그곳을 찾아갔다. 갈리마드 대표는 향에 대한 그녀의 진심을 알아봤는지 한국에 갈리마드 스튜디오를 열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귀국 후 정미순 조향사는 갈리마드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외국에나 있던 퍼퓸 스튜디오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녀는 조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으로 발전시켰다. 국내에 마땅한 교육 기관이 없었고,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후배들이 많이 양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1세대 조향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사실 저는 1세대 조향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처음 하셨던 분도 있고, 저의 스승님도 계세요. 섬유 회사를 운영하시던 박재덕 선생님인데 제가 학원을 차린 후 먼저 연락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저희 학원에서 플레이버 수업을 하셨고, 제가 첫 제자가 됐죠. 그래서 대한민국 1호 조향사라고 하면 부담스러워요. 제가 조향사로서 처음 한 것은 조향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한 거죠. 또 프리랜서로서 독립 조향사는 처음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던 홀로서기
갈리마드는 조향사로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해줬지만, 현재는 ‘애증’의 존재다. 고마운 은인이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미순 조향사는 갈리마드와 퍼퓸 스튜디오 계약을 맺고 활동해왔다. 향수 수입 판매는 안 했다. 그런데 갈리마드가 국내의 다른 회사와 향수 수입과 관련해 이중 계약을 맺었고, 정미순 조향사와는 결별을 원했다.
이에 2013년 갈리마드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지엔(GN) 퍼퓸&플레이버 스쿨’(이하 ‘지엔 퍼퓸’)로 이름을 변경했다. 홀로서기에 나선 그녀에게 갈리마드는 소송을 걸었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소송으로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정미순 조향사는 “좋은 관계로 끝낼 수도 있었는데 굳이 소송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저도 그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는데, 그 업체(다른 파트너사)가 저를 매도한 거예요. 계약 종료 후 저는 바꾼다고 다 바꿨는데, 기존의 기사를 내릴 수는 없잖아요. 정리가 안 된 부분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걸 영업 방해 명목으로 세 개 정도 소송을 건 거예요. 그때 만약 합의를 했으면 영업을 방해하고 갈리마드 이름을 고의적으로 도용했다는 불명예스런 결과가 남는 거였죠. 제 명예도 있고 제자들의 명예도 있어서 소송을 했어요. 1년 넘게 소송을 했는데, 저는 정당하고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세 개 다 승소했죠.”
힘들었던 시간은 다행히 전화위복이 됐다. 오히려 단단해졌다. 당시를 회상하며 정미순 조향사는 “소송을 당한 자체로 제가 잘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지인들이나 제자들이 진정성을 알아주고 힘을 실어줘서 잘 극복했다”면서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갈리마드라는 이름을 보고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정미순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지엔 퍼퓸은 현재 아카데미, 공방, 향수 회사, 향료 회사까지, 크게 네 가지 사업을 한다. 조향사 자격증 취득도 가능하다. 정미순 조향사는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해내면서 점점 발전하는 향수 산업에 큰 기여를 했다.
“조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보기는 어려웠어요. 조향사라는 일을 관심 있어 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공방이나 아카데미를 찾아와 배웠으니까요. 이제는 향에 대한 수요가 많이 생겼죠. 브랜드에서도 향수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셀럽 향수 제의도 들어오죠. 셀럽 향수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담은 향수를 출시하는 거예요. 그룹 신화와 비가 생각나는데, 비는 공연이 무산돼서 출시는 못 했어요. 언젠가는 가수 박효신 씨의 향수를 만들고 싶어요!”
조향사로 저명해진 그녀는 2021년 2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인기 프로답게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방송을 보면 정미순 조향사는 유재석, 조세호에게 즉석에서 향수를 만들어준다. 이에 대해 그녀는 “유재석 씨는 시원하고 깔끔한 향을 좋아하고, 조세호 씨는 파워가 있는 향을 좋아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고를 것 같은 향을 예측해서 갔는데 그대로 고르더라”고 설명했다. 또한 배려심 넘치는 유재석을 보면서 ‘괜히 톱 MC가 아니구나’를 느꼈다고 후기를 전했다.
자연과 예술에서 조향의 영감 받아
정미순 조향사는 현재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면서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한 달에 2주는 서울에, 2주는 제주도에 있는 격이다. 서울 방배동에 있던 국내 유일의 향수 박물관 ‘뮤제 드 파팡’이 제주도로 이전했고,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곳에서는 원데이 클래스로 자신만의 향수도 만들 수 있다.
“프랑스 그라스에 향수 국제 박물관이 있는데, 뮤제 드 파팡은 그것의 작은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향료를 추출하는 원재료가 심겨 있고, 향도 맡아볼 수 있고, 향을 추출하는 과정, 조향 과정도 볼 수 있어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데, ‘자연 속에 향수 박물관이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향수의 히스토리도 듣고 소재가 되는 식물들도 보고 하니 재밌고 신기하죠. 정원도 더 가꾸고, 점점 더 확장시킬 계획이에요.”
정미순 조향사는 어릴 때부터 자연의 향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앞집 정원에서 피어나는 장미꽃 향이 좋아서 매일 저녁마다 향을 맡았다고. 자연의 향기들로 이어진 조향사의 삶. 그녀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새로운 한국적인 향을 만들 계획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싶어서 제주도에 내려간 것도 있어요. 자연이 저한테 영감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제주도의 산이나 바다, 바람 부는 것, 해가 뜨고 지는 것…. 이런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향을 만들지 정한 것은 없어요. 지금은 동백꽃이 많이 피어 있으니 동백꽃을 향으로 표현해볼 생각이에요. 그 계절, 일상이 반영되는 거죠.”
조향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역시 자신이 만든 향수가 대중한테 사랑받을 때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한 것을 제외하고 지엔 퍼퓸에서 만든 향수는 15개, 제자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향수는 10개라고 한다. 그중 정미순 조향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향수는 무엇일까.
“제가 처음 만든 향수가 맥앤로건 화이트예요. 지금은 라이선스가 끝나서 ‘지엔 화이트’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베스트 셀링된 향수예요. 그리고 최근에 마지막으로 만든 향수는 ‘디야’라고 하는데, 류시화 시인님이 지어주셨어요. 인도 관련 시집의 북 퍼퓸이었고, 샌들우드 향수로 만들었죠. 또 하나는 ‘웜홀’이라는 향수가 있어요.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먹 향’을 썼어요. 개성 있다고 생각하는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았던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생소했죠. 그런데 그 향을 꾸준히 찾는 마니아층이 생겨서 뿌듯하더라고요.”
이처럼 정미순 조향사는 자연이든 어떠한 이야기든 영감을 받아 향으로 표현하고 있다. 향을 표현의 예술로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녀는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만든 향수가 있다. 수녀의 이야기인데 오래된 성당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을 줬다. 향을 맡은 분들이 공감해줘서 보람을 느꼈다”면서 “앞으로도 스토리가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향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덧붙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감 중 후각으로 일하는 조향사에게 코 관리는 생명이다. 그녀는 조향사가 된 이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코와 건강관리를 하는 것. 조향사로서 향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20년 동안 향을 맡았고 약 2000개의 향을 구별할 경지에 올랐지만, 그녀는 여전히 향이 지겹지 않고 좋다. 척박한 불모지에 향을 퍼뜨린 정미순 조향사는 앞으로도 향과 함께하는 삶을 걸을 예정이다.
“저는 향을 계속 만들어나갈 거예요. 대중한테 좋은 향을 만들어서 선보여야죠. 또 개인적으로는 제주에서 뮤제 드 파팡을 좀 더 생각하는 그림으로 키우고, 제자들이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후각은 사실 신체의 노화와 관련 있어서 60대 중반이 최대인 거 같아요. 앞으로 한 5년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는 경험치로 향을 만들 거예요. 내 머릿속의 냄새를 맡아야죠. 조향사로서의 삶이 언젠가 끝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Exhibition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예술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출품작은 174점으로 박수근 전시 사상 최대 규모다. 전시는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구성됐다.
유화 7점, 삽화 원화 12점도 최초로 공개된다. 특히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박수근 작품 33점 중 31점이 출품됐는데, 그중 ‘세 여인’, ‘마을풍경’, ‘산’ 등 3점은 최초 공개작이다.
미국 미술관에 소장됐던 ‘노인들의 대화’(1962년), ‘귀로’(1964년)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박수근의 은사인 오득영 유족이 소장해온 ‘초가’를 비롯해 개인 소장품 ‘웅크린 개’, ‘노상의 소녀’ 등도 첫 공개 작품이다. 2007년 5월 경매에서 45억 2000만 원에 낙찰된 이후 8년간 한국 미술 최고가 자리를 지킨 ‘빨래터’도 만날 수 있다.
박수근은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해 18세 때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화가로 데뷔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의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어 화단을 풍미했지만, 박수근은 시종일관 서민의 일상생활을 단순한 구도와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고수했다.
◇가야인, 바다에 살다
일정 2월 6일까지 장소 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가야 유물 570여 점을 선보였다. 전시는 1부 ‘남해안의 자연환경’, 2부 ‘관문: 타고난 지리적 위치’, 3부 ‘교역, 가야 제일의 생업’으로 구성됐다. 관람객은 각종 유물을 통해 바다에 깃든 가야 문화의 다양성, 개방성, 역동성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은 특히 바다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가야인의 발자취를 집중 조명했다. 또 옛 김해만의 자연경관 복원에 대한 연구 성과는 물론이고 남해안 일대에 축적된 고고학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해상왕국’으로도 불리는 가야 문화의 특성을 관람객이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Book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에디 제이쿠·동양북스)
저자 에디 제이쿠는 1920년생으로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사람이기도 하다. 책은 그의 인생을 집약해놓은 회고록으로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에디 제이쿠는 19세이던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약 7년 동안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폴란드의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죽을 고비를 수십 번 넘겼다. 부모를 가스실에서 잃고, 나치 간수가 되어 수용소를 관리 감독하는 대학 동기도 만나고,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며 민가에 도움을 청하다 다리에 총을 맞기도 했다. 특히 수용소 안에서 친구와 동료가 날마다 죽어나가고, 부모를 학살한 자들을 위해서 중노동을 해야 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면서 날마다 모멸감을 느꼈던 하루하루가 책 안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참혹한 일을 겪었지만 에디 제이쿠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운이 오더라도 자신의 삶을 사랑해보세요”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오늘 집에 가서 당신의 어머니를 꼭 안아주세요’,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친절이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등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얘기한다. 이 책은 그가 100세가 되던 해인 2020년에 출간된 후 호주 아마존 1위에 올랐고 미국, 영국 등에서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면서 전 세계 37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2021 올해의 자서전상, 2021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유럽에서 대한민국만세(송일국·상상출판)
배우 송일국이 유럽에서 삼둥이 아들 대한·민국·만세를 직접 찍고 글로 쓴 유럽 여행 화보 에세이다. 1년간 생활한 프랑스부터 스위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아이슬란드까지 총 8개 나라의 여행기가 실렸다.
◇오십부터는 이기적으로 살아도 좋다(오츠카 히사시·한스미디어)
“50대는 무한의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고민한다.” 저자는 수십 년간 50대 1만 명의 이야기를 듣고 ‘후회하지 않고 50대를 사는 법’을 정리했다. 50대는 ‘인생의 디톡스 기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일, 업적, 인간관계를 결산하고 앞으로의 50년을 계획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스필버그의 말(스티븐 스필버그·마음산책)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74년부터 2021년까지 48년 동안 그의 인터뷰 스물한 편을 소개하는 책에는 ‘죠스’, ‘쉰들러 리스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 유명 영화의 제작기도 포함돼 있다. 또한 그동안 공개된 적 없는 그의 개인적 삶까지 담았다.
●Stage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일정 2월 25일 ~ 3월 13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질 마으
출연 안젤로 델 베키오, 막시밀리엉 필립, 엘하이다 다니, 젬므 보노 등
프랑스 3대 뮤지컬 중 하나인 ‘노트르담 드 파리’가 대구, 부산 공연에 이어 서울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지난해 세종문회회관 대극장에서 유료 점유율 99%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원작이다. 추한 외모의 꼽추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대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의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다. 그 안에서 불안정하고 혼란스런 시기의 사회상과 이교도들의 갈등, 부당한 형벌제도, 인간의 욕망, 삶과 죽음까지 다각도로 담아내며 시대를 뛰어넘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특히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뤄진 ‘성스루’(Sung-through) 작품의 백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뮤지컬로, 낭만적인 음악과 다양한 장르의 안무, 30톤의 거대한 무대 세트가 감동을 전해준다. 1998년 프랑스 파리 초연 이후 전 세계 23개국, 1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만난 세기의 역작이다.
◇프리다
일정 3월 1일 ~ 5월 29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연출 추정화
출연최정원, 김소향, 전수미, 리사, 임정희, 정영아 등
‘프리다’는 EMK뮤지컬컴퍼니가 선보이는 첫 중소극장 작품이다. 제1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멕시코의 위대한 여성 화가이자 혁명가인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액자 형식으로 그린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통 속에 살았지만, 자신의 지난한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에게 세리머니 같은 최고의 쇼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추정화 극작가는 프리다의 마지막 생애를 쇼라는 독특한 콘셉트와 형식으로 풀어낸다. 또한 주인공 프리다 칼로 역에 배우 최정원, 김소향이 캐스팅돼 기대감을 높였다.
◇B클래스
일정 2월 25일 ~ 5월 15일
장소 브릭스씨어터
연출 오인하
출연 최정헌, 이지현, 지호림, 김찬종, 노태현, 류찬열, 한선천 등
2017년 초연 이후 매 시즌 관객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연극 ‘B클래스’가 2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연극의 배경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만 갈 수 있는 예술인 양성학원 ‘사립 봉선예술학원’이다.
B클래스에 속한 학생 네 명이 실력이 아닌 능력과 조건만으로 평가받는 봉선예술학원의 기준을 넘어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합동 졸업 공연’을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청춘의 자화상이 큰 울림을 안겨줄 예정이다.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79). 국내외에서 축하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예정대로 연극 '라스트 세션'의 무대를 소화하고 있다.
오영수는 지난 10일(한국 시각) 열린 제 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TV부문 남우조연상(BEST SUPPORTING ACTOR)을 수상했다. 앞서 한국계 배우인 샌드라 오와 아콰피나가 연기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한국 드라마에 출연한 한국 배우가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아 연기했다. 반전을 지닌 노인 역할을 소화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 호평 받았고, 깐부 신드롬을 불러오기도 했다. 오영수는 대중에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연기 경력 59년차로 연극계에서는 유명한 베테랑 배우였다. 그가 쌓아온 연기 내공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오영수의 수상 이후 그를 향한 축하가 쏟아졌다. 이정재는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남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장면들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깐부로부터"라고 오영수의 수상을 축하했다. 오영수와 '오징어 게임'의 깐부 신을 찍을 때 촬영한 사진도 게재했다. 이병헌 또한 "This is the Frontman speaking, Bravo!"라며 극 중 대사를 이용해 센스 있는 축하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반세기 넘는 연기 외길의 여정이 결국 나라와 문화를 뛰어 넘어 세계 무대에서 큰 감동과 여운을 만들어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배우 오영수 님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을 국민과 함께 축하한다"며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외신의 호평도 이어졌다. 미국의 CBS방송은 "올해 골든글로브는 TV 생방송이나 스트리밍 행사가 없어 예년보다 더 조용했지만, 몇몇 스타들이 역사를 새로 썼다”며 "'오징어 게임' 스타 오영수가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됐다"고 평했다.
미국의 CNN방송은 "'오징어게임'의 배우 오영수가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되면서 역사를 새로 썼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 드라마나 배우가 후보에 올라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첫 번째 사례"라고 재차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은 "할아버지 오영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포브스는 "독창적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라는 명예를 얻었고 극 중 오영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따라) 78살 그의 연기 이력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현재 연극 '라스트 세션' 무대를 펼치고 있는 오영수는 연극 연습 도중 수상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공연을 하는 배우 이상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라스트 세션' 배우와 스태프들이 오영수에게 축하 파티를 해준 모습을 인증하기도 했다. 사진 속 오영수는 케이크를 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어 오영수는 11일 예정대로 공연 무대에 올랐다. 수상 이후 쏟아진 관심에 연극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바.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공연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수상 소식이 알려지고, 이달 남은 11회 차 공연은 모두 전 석 매진되기도 했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이후 차기작으로 연극 '라스트 세션'을 택해 주목을 이끈 바 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뜻이 전해진다. 오영수는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에서 "'오징어 게임' 흥행 후 광고가 들어오고 하는데, 왜 연극을 선택하냐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내 나름대로 지향해왔던 모습 그대로 가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뜻 깊다"고 말했다.
또한 "'오징어 게임'으로 주변에서 나를 많이 띄워 놓은 것 같다. 자제력이나 중심이 흩어지진 않을까 염려하던 차에 품격 있는 좋은 연극을 만나게 되어 뜻 깊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7일 개막한 '라스트 세션'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가 직접 만나 '신의 존재'에 대한 치열하고 재치 있는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 등에 대한 대화를 통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한편, 13일 미국 배우조합상(SAG)의 발표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수상의 기쁨을 이어갈지 이목이 집중된다. '오징어 게임'은 TV드라마 시리즈 앙상블상 후보로 지명됐으며, 남우주연상(이정재), 여우주연상(정호연), 스턴트 앙상블상에도 이름을 올렸다.
배우 오영수가 '한국 배우 최초 골든글로브 수상자'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올해 한국 나이 79세, 연기 경력 59년차에 접어든 그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버리힐즈 비버리 힐튼 호텔에서 '제 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린 가운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오영수는 남우조연상(BEST SUPPORTING ACTOR) 부문을 수상했다.
골든글로브에서 한국 드라마에 출연한 한국 배우가 수상한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한국계 배우인 샌드라 오와 아콰피나가 각각 TV 드라마와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지만, 한국인 배우는 오영수가 처음이다.
더욱이 골든글로브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던 터라 오영수의 수상은 이례적이고 유의미하다. 지난해까지 골든글로브는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을 뒀다. 때문에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2021년 윤여정 주연의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그친 바 있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한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최약체인 노인 참가자로 보였으나, 알고 보니 엄청난 비밀을 안고 있는 캐릭터로 반전을 선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오영수는 '깐부 신드롬'을 불러왔는데, 깐부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해외 매체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호평을 받았다.
오영수는 수상 후 넷플릭스를 통해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고맙다"라고 전했다.
오영수는 1963년 극단 광장의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20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기도. 또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드라마 '선덕여왕', '무신' 등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에 스님으로 출연해 '스님 전문 배우'로 통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오징어 게임'을 통해 연기 생활 58년 만에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그가 묵묵히 연기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오늘날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오영수는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아름다운' 삶을 사는 어른의 품격을 보여줘 인간적으로도 귀감을 싰다.
한편, 오영수는 오는 3월 6일까지 연극 '라스트 세션'으로 무대에 오른다. '오징어 게임' 이후 차기작으로 연극 출연을 결정해 주목 받았다. 당시 오영수는 연극 출연에 대해 "내 나름대로 지향해왔던 모습 그대로 가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뜻깊다"고 말했다.
●Exhibition
◇ 파올로 살바도르 개인전 : 새벽의 백일몽
일정 1월 29일까지 장소 일우스페이스
국제 미술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파올로 살바도르(Paolo Salvador, 31)의 개인전 ‘새벽의 백일몽’(Ensueos en el amanecer)은 국내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다.
파올로 살바도르는 페루 출신 작가다. 그는 잉카 제국의 모태였던 케추아(Quechua) 부족의 후예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강력한 모국주의 정서는 그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살바도르의 작품에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자주 등장한다. 고대 페루의 종교에서 사람과 동물은 동등한 존재이며, 페루 신화에도 사람과 신성한 동물이 상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살바도르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동물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나는 동반자로 표현된다. 살바도르는 급격히 변모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페루의 토착성,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페루의 고대 신화와 설화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되, 개인의 경험과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화풍을 창안했다. 서구 르네상스와 표현주의 같은 미술사를 수용하면서도 페루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조형 언어를 천착했다. 고립, 고독, 몽상을 주제로 삼으면서 느슨한 붓 터치와 청과 적의 자극적인 색채를 통해 우화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 알렉스 카츠 개인전 : Flowers 꽃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미국 출신 작가 알렉스 카츠(94)는 ‘세계 10대 화가’이자 ‘현대 초상회화 거장’으로 통한다. 이번 전시는 카츠의 작품 중에서도 꽃을 주제로 한 회화들을 특별히 조명한다. 이 꽃 시리즈는 이전에 소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그린 것이기 때문.
카츠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르며, 한 장르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로 의의를 더한다.
●Book
◇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이제경·일상이상)
100세 시대다. 이는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와 같이 20년 공부해 직장에서 30년 일하고 은퇴하는 ‘3단계 인생’(교육-일-은퇴)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에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은 책을 통해 ‘골드 인생 2.0’을 제시한다.
‘골드 인생 2.0’은 건강한 체력과 정신으로 노후에도 스스로 경제활동이나 취미를 즐기면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지역과 글로벌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사회책임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먼저, 이제경 원장은 80세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므로 세 번은 은퇴하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하는 첫 번째 은퇴하기,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하는 두 번째 은퇴하기,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의 길을 걷는 세 번째 은퇴하기를 추천한다.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해 근로소득 외에 업무 관련 기타소득도 얻고,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해 사업소득 외에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소득도 얻고,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로 거듭나 사회가치 소득과 자산소득까지 얻으면 나뿐만 아니라 증손자까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과 여러 부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융·부동산·미술품 투자 노하우, 합법적으로 세금 줄이는 방법 등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기대여명을 측정하고 ‘건강수명 늘리기’, ‘정신건강 챙기기’ 등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법,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관계 만드는 방법도 담았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드림디자인)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故) 표재명 교수. 그는 1978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로 1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이미지의 엽서를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가족들이 그 엽서들을 모아 펴낸 책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라디오 탐심(김형호·틈새책방)
강원도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30대 초반부터 라디오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책에는 라디오와 관련된 에피소드 27가지가 담겼다. 라디오가 탄생과 성장, 전성기와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 사회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얘기한다.
◇이까짓, 탈모 : 노 프라블럼 (대멀(김준석)·봄름)
천만 탈모 시대. 탈모는 이제 청년과 중년의 연결고리가 됐다. 15년 차 대머리 영화배우이자, 탈모인 대나무숲 채널 ‘대멀’의 주인장인 저자. 그는 탈모 고충부터 웃픈 가발 경험담 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내 탈모인들에게 정보와 희망을 전달한다.
●Stage
◇엑스칼리버
일정 1월 29일 ~ 3월 13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김준수, 김성규, 이지훈, 에녹, 강태을, 신영숙, 장은아, 민영기, 손준호, 김소향, 케이 등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서울에서 단 6주간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아더 역 김준수, 랜슬럿 역 이지훈, 에녹, 강태을, 모르가나 역 신영숙, 장은아, 멀린 역 민영기, 손준호, 기네비어 역 최서연, 울프스탄 역 이상준, 엑터 역 이종문, 홍경수가 다시 한번 무대를 빛낸다. 여기에 아더 역 김성규와 기네비어 역 김소향, 러블리즈 출신 케이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더한다.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속 영웅 아더왕의 전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평범한 소년 ‘아더’가 성인이 되고 왕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아더가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엑스칼리버’는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킨 EMK의 제작 노하우가 집약된 세 번째 오리지널 뮤지컬로 2019년 월드프리미어로 초연됐다.
◇라스트 세션
일정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신구와 함께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정신분석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C. 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극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면서도 재치 있는 논변을 쏟아낸다.
◇그때도 오늘
일정 1월 8일~2월 20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
연출 민준호
출연 이희준, 김설진, 이시언, 차용학, 오의식, 박은석 등
연극 ‘그때도 오늘’은 네 가지 장소와 네 가지 시간을 가지고 총 여덟 명의 배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공연이다. 1920년대 광복 전의 모습, 1940년대 제주도, 1980년대 부산, 2020년대 최전방 등 총 네 가지 배경이 나온다. ‘그때’를 지금 ‘현재’로 여기며, 각자의 눈에 비친 미래를 확신하는 인물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의식, 박은석, 김설진은 2020년대의 은규, 1980년대의 주호, 1940년대의 사섭, 1920년대의 윤재 역의 남자1 배역을 맡는다. 이희준, 이시언, 차용학은 2020년대의 문석, 1980년대의 해동, 1940년대의 윤삼, 1920년대의 용진 역의 남자2 배역을 연기한다.
배우 문희경(56)은 유난히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 그녀에게서는 나이를 잊은 사랑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당차고 열정적이다. 문희경의 에너지는 강철 추위도 꺾지 못할 정도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동백꽃이 떠올랐다. 문희경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이맘때쯤 활짝 피는 꽃. 지난해 ‘대세’로 떠오른 그녀는 올해도 기지개를 활짝 켰다.
문희경의 2021년은 찬란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이어 채널A ‘쇼윈도 : 여왕의 집’(이하 ‘쇼윈도’)에 출연했고, 티빙(TVING) 웹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도 특별출연했다. 연이은 화제작 출연으로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는 2월에는 앨범을 발매하며 가수로서 못 다 이룬 꿈도 이뤘다. 문희경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며 행복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재작년에도 바빴지만, 작년에도 정신없이 일들이 휘몰아쳤죠. 올해 더 많은 일을 할 것 같아요. 한마디로 2021년은 올해 더 열심히 하라고 준비한 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체력은 늘 유지하고 있고, 즐기면서 일을 하는 편이거든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받는 게 좋아요. 현장 체질인가 봐요. 집에 있는 것보다 편안해요.”
‘쇼윈도’로 새로운 배역의 갈증 해소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시청률도 상승 중인 드라마 ‘쇼윈도’. 문희경은 주요 역할로 출연 중이다. 그녀가 맡은 김강임은 패션 기업의 회장이다. 한선주(송윤아 분)의 엄마이기도 하다. 즉 문희경은 여성 회장이자 엄마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쇼윈도’와 김강임에 대해 “하고 싶었던 작품, 역할”이라고 강조하며 “그래서 굉장히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쇼윈도’ 제작진은 문희경의 캐스팅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그녀가 송윤아의 엄마로 보일지 우려했다. 다행히도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제작사에서 제가 송윤아 엄마를 하기에는 너무 젊다고 생각해서 망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과감히 전화했어요. ‘나 김강임 역할 하고 싶다, 나를 대체할 배우 없을 것이다’라고 어필했죠. 제작진분들이 저를 직접 만나본 후 고민을 떨치고 저를 과감히 캐스팅했죠. 연기를 해보니까 저하고 송윤아는 진짜 엄마하고 딸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어필하는 편이에요.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이처럼 문희경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는다. ‘쇼윈도’에 앞서 출연한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그랬다. 석형(김대명 분)의 엄마로 출연한 문희경은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나왔다 하면 통통 튀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화려한 스타일링도 한몫했다.
“모든 배우가 신원호 감독님, 이우정 작가님 작품을 하고 싶어 하잖아요. 어느 날 작가님이 저를 원하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진짜 소리 지를 정도로 좋았어요. 그래서 덥석 물었죠.(웃음) 저나 김갑수 선배님, 김해숙 선배님은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을 즐거워했어요. 그것만으로도 좋은 기억이고 잊을 수 없는 일이죠.”
문희경은 부유한 상류층 역할을 많이 맡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사모님이었고, ‘쇼윈도’에서는 회장님이었다. 그녀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사모님이지만 아들만 바라보는 평범한 엄마였고, ‘쇼윈도’는 재벌 회장 역할이다”라고 차이점을 짚었다. 문희경은 그동안 사모님 역을 많이 맡은 것보다 ‘누군가의 엄마’에 그친 것에 아쉬움이 더 커 보였다.
“늘 배우로서 갈증이 있었죠. 살림하고 누군가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쇼윈도’의 김강임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룹 회장이고 여성 경연인이잖아요. 그동안 부잣집 사모님은 많이 연기했지만 경영인은 처음이었어요. 엄마보다는 일하는 여성이죠. 그래서 스트레스가 좀 풀려요.”
사모님 역할을 주로 맡다 보니 캐릭터가 철부지거나 얄미운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인생작으로 꼽는 2010년 SBS 드라마 ‘자이언트’ 때부터 이어져온 이미지 같다. 극 중 계모 오남숙 역을 맡은 문희경은 악녀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카카오TV 웹드라마 ‘며느라기’에서는 기존과 다르게 평범한 시어머니로 분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더 얄미웠다.
“사실 저도 착한 역할 많이 했어요. 그런데 못된 역할, 카리스마 있는 역할만 기억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며느라기’ 역할은 악역도 아니고 가정밖에 모르는 현실적인 시어머니죠. 착하고 좋은 것 같으면서도 며느리들에게 시킬 것은 다 시키니까 욕을 먹더라고요. 이게 욕 먹을 일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문희경은 “포스 있고, 예민할 것 같고, 못될 것 같다”는 오해를 받는다. 때문에 실제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정반대 이미지에 깜짝 놀란다고. 귀엽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는 그냥 역할에 충실할 뿐이에요. 배우는 맡은 역할을 100% 해내야 하는 게 숙명이죠. 배우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해요. 빨간색, 검은색 등 다양한 컬러를 입힐 수 있어야죠.”
출연작
드라마 SBS ‘자이언트’, KBS2 ‘감격시대’, JTBC ‘귀부인’, JTBC ‘품위있는 그녀’, MBC ‘슬플 때 사랑한다’, MBN ‘우아한 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카카오TV ‘며느라기’, 채널A ‘쇼윈도 : 여왕의 집’ 등
영화 ‘좋지 아니한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간신’, ‘글로리데이’, ‘인어전설’, ‘어멍’ 등
가족, 그리고 제주
실제 엄마로서의 문희경은 어떨까. 그녀는 슬하에 작곡 공부를 하는 딸이 있다. 문희경에게 딸은 제일 친한 친구고, 둘도 없는 존재다. 딸 얘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 그녀. 그러다가 이내 언젠가 딸이 시집 갈 때를 떠올리고는 “어떻게 보내야 하나”며 울컥하기도 했다.
“딸은 제 인생의 원동력이에요. 허투루 살지 말아야겠다는 경각심을 줘요. 엄마이기 때문에 책임감도 더 느끼고 열심히 하려고 하죠. 딸을 낳은 것은 축복이고,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에요. 딸은 소통이 잘되고 친구 같아요. 걔가 더 언니 같아요. 저를 막 혼내요.(웃음) 결혼은 안 하겠대요. 친구들과 같이 실버타운 들어갈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너한테서 해방되고 싶다고 하고요. 그런데 막상 걔를 보내면 눈물 날 것 같아요.”
도시적인 이미지와 달리 그녀의 고향은 제주도다.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문희경을 포함한 여덟 남매는 아옹다옹 살았다. 중산층이었지만 가족이 워낙 많다 보니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남아 선호사상이 심했어요. 아들 두 명을 낳으려다 보니 딸 여섯 명을 낳게 된 거예요. 그래서 8남매가 됐죠. 저는 다섯째고요. 부모님은 과수원도 팔며 자식들을 공부시킨, 자식들을 위해 사신 분들이죠. 형제들이 공부는 잘했어요. 선생님, 대학교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공부를 악착같이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공부 잘하면 시키고, 못하면 안 시킨다고 하셨거든요.”
문희경이 공부를 필사적으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남몰래 가수라는 꿈을 키웠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친척들 앞에서 빼지 않고 노래를 부르던 소녀는 자신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봤다. 나이 들면서 가수에 대한 꿈은 확고해졌고,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제주도를 벗어나 서울로 가야만 했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 부모님이 서울행을 반대하셨어요. 당시 집안이 좀 어려웠기 때문에 제주교대에 들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죠. 저는 서울에 가야만 했어요. 그래야 대학가요제든지 강변가요제든지 나갈 수 있으니까요. 서울 안 보내주면 죽어버리겠다고 데모도 하고 그랬죠. 결국 대학에 합격하니까 보내주시더라고요.”
마침내 문희경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고, 계획대로 일이 술술 풀렸다. 1986년 ‘제1회 샹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쇼86’에 출연했다. 이어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는 ‘그리움은 빗물처럼’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대학에 가고 상도 받으면서 제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 같았어요. TV에도 나오니까 부모님도 ‘어릴 때부터 노래 좋아하더니 하네, 가수 할 수 있으면 해라’라고 응원해주셨죠.”
그렇게 벗어난 제주도지만, 고향은 고향인가 보다. 문희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도에 대한 그리움도, 애정도 커졌다.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인어전설’, ‘어멍’에 출연하기도. 배우로 제주를 찾아 해녀 연기를 하기까지,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다.
“내 고향 제주는 정신적 지주죠. 내게 배우로서 가수로서 감성적인 부분을 줬다고 할까요. 고향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기도 하죠. ‘내가 어떻게 고향을 떠나왔는데, 꼭 성공해서 돌아갈 거야’ 그런 마음이 강했어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예전에는 그렇게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나이 들면서는 고향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귀향 본능이 생기더라고요. 나중에는 내려가서 살 거예요. 촬영이 있을 때만 서울로 올라오고, 귤 농사도 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25년 만에 다시 가수
앞서 얘기했듯이 문희경은 1987년 강변가요제 대상 출신이다. 가수가 되는 지름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가수 인생은 잘 풀리지 못했다. 문희경은 1989년에 1집 ‘갈 곳 잃은 연정’, 1994년에 2집 ‘예전 같지 않은 너’를 발표하며 발라드 가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다. 첫 작품은 1996년 ‘노트르담의 꼽추’ 에스메랄다 역으로 기록된다.
“문희경이라는 사람도 점점 잊혀갔죠. 가수는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어릴 때부터 꿈을 키워서 서울에 왔는데 아닌 길을 억지로 갈 수는 없잖아요. 과감히 포기하고 뮤지컬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는 뮤지컬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미래도 안 보이고, 암흑 같은 시기였죠. 하루하루 버티면서 그날그날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오는 법이다. 마침내 문희경은 2007년 어둠을 벗어나게 됐다. 연극 무대에 선 그녀를 보고 정윤철 감독이 러브콜을 보내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문희경은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녀는 정윤철 감독을 ‘은인’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린 문희경. 오히려 가수의 꿈에 가까워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2015년 문희경은 MBC ‘복면가왕’ 출연으로 노래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후 2016년에는 JTBC ‘힙합의 민족’에 출연했다. 딕션이 좋은 그녀는 놀라운 랩 실력을 보여주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에는 MBN ‘보이스트롯’에 출연해 트로트 실력을 뽐냈다. 아름다운 음색으로 최종 5위를 거머쥐었다.
노래 실력을 인정받은 문희경은 결국 다시 가수가 됐다. 지난해 2월 트로트 정규 앨범 ‘금사빠 은사빠’를 발매한 것. 가수를 포기하고 배우가 된 지 꼭 25년 만이다. 그리고 지난 12월에는 ‘보령에 가자’, ‘서해랑길에서’, ‘대천에 가자’ 총 3곡을 발매했다.
“제가 ‘보이스트롯’을 하면서 정의송 선생님 노래를 세 곡이나 했어요. 그 인연으로 선생님께서 고맙다고 곡을 선물로 주시면서 앨범을 내게 됐죠. 제가 다시 가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생각도 없었어요. 악착같이 가수를 열망할 때는 정말 안 됐잖아요. 다 내려놓고 노래를 즐기면서 했더니 가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지금은 인사할 때 ‘배우 겸 가수 문희경’이라고 해요.”
정리해보면 문희경은 ‘가수→뮤지컬배우→배우→가수 겸 배우’의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노래 부를 때보다 연기할 때가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연기를 할수록 깊이와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이 ‘노래 잘하는 배우’로 봐주기를 바랐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제주도 꼬마는 50여 년이 흐른 뒤, 자신이 배우 겸 가수가 될 줄 알았을까. “꿈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그녀의 메시지가 더욱 특별하게 와 닿는다.
“결국 돌고 돌아 가수도 하고, 뿌듯하고 만족한 삶이죠.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연결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사람 일은 몰라요. 그러니까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지금은 백세인생 시대이기 때문에 나이가 있다고 망설이거나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꿈이 있다면, 꿈을 꾸라고 하고 싶어요. 꿈에는 나이 제한이 없잖아요.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면, 삶에 긴장감이 생기고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자는 거예요. 여러분, 꿈을 꾸고, 도전하세요!”
요즘 서로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인간의 품격을 훼손하는 크고 작은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더욱이 ‘어른다움’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아버지가 부재(不在)한 세상, 존경할 어른이 실종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정말 안녕하십니까?
‘꼰대’와 ‘깐부’
오래전 특정 세대에서만 통했던 은어이자 속어 두 가지가 우리 삶에 어느 날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그 첫 주자가 ‘꼰대’라면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유행어가 바로 ‘깐부’입니다. ‘꼰대’라는 말은 아버지나 학교 선생님처럼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어린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습니다. 요즘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일명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속어로 쓰입니다. 꼰대가 주는 어감과 부정적 의미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기성세대라면 꼰대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내가 과연 꼰대일까, 밖에 나가면 나를 꼰대로 보지는 않을까 자문하고 젊은이들 눈치를 보기까지 하니까요. 이를 반영하듯 2020년 MBC에서 ‘꼰대인턴’이라는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나 때는 그러지 않았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타령 덕에 드라마 주제가(OST) ‘꼰대라떼’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제발 그만 그만 그만해
오늘도 시작되는 꼰대라떼
(중략)
뻔뻔하게 뻔하게 반복되는
하루가 지나간다
왕년에 내가 말하신다면
오늘도 시작이구나
니까짓 게 뭘 알아 궁금하시면
라떼를 한잔 드세요
라떼라떼라떼라떼 라떼는 말이야
라떼라떼라떼라떼 라떼는 말이야
아침부터 시작되는 꼰대라떼
적나라한 노랫말처럼 온갖 진부하고 부정적인 수식어가 어울리는 늙은 사람, 나이만 많이 먹은 선생질만 일삼는 사람이 ‘꼰대’라면, 그 반대편에 ‘깐부’가 있습니다. 꼰대 소리 듣기 싫다면 진정한 내 편, 내 맘을 알아주는 ‘찐친’, 깐부가 되고 싶다면 함께하실까요.
어른이 없고 아버지가 부재하다고 세상 탓을 하기 전에 찬찬히 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전 세계 언론에서 극찬과 호평 일색인 ‘오징어 게임’이란 드라마 시리즈에 등장한 ‘오일남’(오영수 분)이란 배역이었습니다. 9개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와 감동을 안긴 편이 바로 ‘깐부’라고 합니다. 극 중 ‘오일남’이 ‘깐부’가 뭔지 알려줍니다. 지는 즉시 게임에서 탈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숨을 내줄 구슬치기에서 짝꿍이 된 두 사람-오일남과 성기훈(이정재 분).
“우리 깐부부터 맺어야지. 구슬이랑 딱지랑 같이 쓰는 친구.”
어린 시절 놀이 자산의 전부였던 형형색색 구슬과 크기도 두께도 모양도 달랐던 딱지를 함께 쓰고 관리하던 제일 친한 친구를 일컫는 남자아이들의 은어가 ‘깐부’입니다.
“기억 안 나? 우리 손가락 걸고 깐부 맺은 거.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
그가 맡은 역할보다는 대사가 주는 울림이 국경을 넘어 세계적 신드롬이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라는 갈림길에서 결정적 순간 ‘내 편’이 되어주는 어릴 적 놀이 속 ‘깐부’라는 말이 이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게임의 설계자이자 호스트인 ‘오일남’이라는 극 중 인물보다 오히려 저는 그를 연기한 ‘오영수’라는 배우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들려주고 보여준 그의 이야기가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요. 어릴 때부터 하던 평행봉으로 체력을 유지하며 200편 넘는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 오영수. 60년 가까이 평행봉이야말로 일생의 동반자가 되었다는 그는 이사할 동네에 평행봉이 있는지가 우선순위라고 말합니다.
“가장 인간적인 사람에게도 사악함이 있고, 단지 그 차이가 얼마냐일 뿐이지. 드라마 속 인물과 저는 비슷합니다.”
수백 편 극 속에서 수백 가지 인물을 연기해온 그에게 인간처럼 복잡다양하고 다중다층적인 역할이 있을까 싶습니다. 선함과 악함, 추함과 아름다움을 버무린 인간 군상을 무대에 올리다 보니 인간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남다른 데서 나온 말로 여겨집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가족끼리 같이 앉아 식사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이야기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자기 이야기해가면서 그렇게 사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닐까 해요, 얼마 안 되는 식구지만 같이”라고 답하는 그에게서 한 끼 밥을 같이 나누는 일상의 소중함을 엿보게 됩니다. 때문에 그가 가진 염려라면 그저 가족과 문제 없이 잘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말에서도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오로지 1등만 기억하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2등은 패자가 아니라 3등한테 이긴 승자가 아니냐고 되물으며 우리는 모두가 승자라고 얘기하는 오영수.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과 세상에 위로를 건넵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이에게
제 인생 드라마 순위를 바꾼 JTBC의 ‘인간실격’. 여기서 주인공 아버지 이창숙(박인환 분)이란 인물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 또 하나의 어른입니다. 알츠하이머 초기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하나뿐인 딸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폐지를 주우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아버지. 세상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남기지 않고 딱 선물 같은 때론 기적 같은 사람. 아버지 없는 세상에선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그렇지만 어리지 않은 마흔이 다 된 딸 부정(전도연 분)은 죽기로 결심하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호소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아버지보다 더 가난하게 살 것 같아요. 길에서 고생하며 키워준 아버지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려 했는데,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못 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됐어요.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요, 아버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좌절과 상처, 배신을 겪으며 울부짖던 주인공 부정은 자살 카페에서도, 아버지가 살던 오피스텔 옥상에서도 결국 죽지 못합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마음을 읽어주는, 조심스레 다가오는 한 사람에게 닫히고 다친 마음을 꺼내 보이고 온기를 채우면서 아버지한테 다시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를 안고, 아버지 마음을 품으면서 비로소 살기로 결심합니다. 살아내기로 마음먹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나는 이제야 아버지가 제게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되는지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이미 눈으로 몸으로 삶으로 얘기해왔었다는 걸 아주 조금씩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어요.”
아버지 마음속에 법도, 문학도, 철학도 다 들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배운 적도 없는 아버지한테 차곡차곡 쌓여 있던 삶의 지혜와 내공은 시집이 됩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시집입니다. 수많은 생각 가운데 아끼며 꺼내는 아버지 말이, 고르고 고른 몇 개 말이 시가 되어 나온다는 걸 깨달은 딸은 편안히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버지를 보내드립니다.
왜 마음 미장공인가?
어른의 자격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이자 아니 사실 처음부터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제 아버지입니다.
박성옥 선생이 제 아버지입니다. 젊었을 땐 경북 왜관 등지를 누비며 숱한 병자를 치료해주셨지요. 면허가 없는 탓에 어머니 김초자 여사를 만나 저를 낳은 뒤론 의업을 접고 미장일을 배우셨습니다. 어머니는 의사 가운에 반해서 결혼하셨는데 새하얀 가운 대신 흙떡이 되곤 하는 작업복만 연신 빨아대셨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어린 저는 아버지 일하시는 데 따라다니거나 종종 새참을 갖다드렸습니다. 거친 사면 벽을 아버지 흙손으로 매끄럽게 만드는 마술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울 아버지 정말 멋지다!”
봄에서 가을까지 공사가 한창이던 때라 분주하시던 아버지는 겨울이면 온돌방 틈새로 이산화탄소 샐까 봐 연탄보일러 수리하며 또 생계를 꾸려가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과학자요 만능 ‘맥가이버’셨지요.
그런 아버지 마음 따라가려 저도 배운 재주 모아서 마음치유, 분노조절, 감정관리 강의하면서 낯선 분들 마음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미장일을 부끄러워하셨지만 저는 그때도 지금도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보고 있어도 그립고 애달픈 못난 딸내미입니다.
아버지한테 배운 붓글씨로 글씨깨나 쓰는 재주를 가진 저는 용돈봉투 드릴 때 짧은 손 편지를 쓰곤 했는데 아버지 역시 제 아이들, 당신 손주에게 용돈봉투마다 손 편지를 써주십니다.
“위대한 사람보다 참된 사람이 되어라. 잘 커줘서 기쁘다. 할아버지가.” “우리 ○○이도 안아보니 품 밖에 나는 구나. 부모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제는 그 두 아들이 성인이 되어 취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나는 젊을 때 체면 따지다가 좋은 기회도 놓치고 잘 살지 못했던 것 같다. 너희 애들은 그런 것 따지지 말고 밥 벌어먹고 일했으면 좋겠다.”
취업 앞둔 아니 취업이 절벽인 손주들한테는 차마 말 못 하시고 저희 부부한테 넋두리처럼 해주신 울 아버지 말씀이 귓전에 자꾸 울립니다. 아, 울 아버지!
최근에는 ‘젊은 꼰대’, ‘역꼰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꼰대는 이제 더 이상 나이를 기준으로 불리는 호칭이 아니라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에서 대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다운 어른, 닮고 싶은 사람, 함께 얘기하고 싶은 사람, 나아가서는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 그런 어른이 우리 서로에게 되어주면 어떨까요. 그런 사람 없다고 투덜대고 원망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인사하고, 웃어주고, 귀 기울여주는 새 맘, 새 삶, 새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크든 작든 혜택을 무척 많이 받아왔습니다. 하늘, 햇볕, 바람, 비 같은 천지가 베푼 은혜뿐 아니라 부모님과 선생님, 세상 사람들한테 신세를 지고 사는 게 우리 인생인데, 이제는 돌려주고 좋은 것은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우 오영수가 방송에서 했던 얘기처럼 말입니다.
“산속에 꽃이 피어 있으면, 젊었을 적엔 그 꽃을 꺾어왔다면 이 나이쯤 되면 그냥 그대로 놓고 오죠. 그리고 다시 가서 보죠. 뭐 그게 인생이죠. 그냥 있는 그 자체로 놔두는 것. 그게 쉽지가 않죠.”
"무대에서 연기하다 죽고 싶다." 배우 이순재가 한 말이다. 이순재는 노년의 나이에도 무대 위에 올라 연기를 펼친다. 그와 같이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로 유명해지더라도 무대를 잊지 못해 돌아온다. 최근 개막을 했거나 앞둔 작품들을 보면 연기력을 인정받은 중장년 배우들이 출연해 눈길을 끈다. 추워지는 날씨에 문화생활을 즐기기 좋은 작품이 될 것으로 보여 소개한다.
오영수, 오일남 벗고 프로이트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을 맡은 배우 오영수. 20대 초반 1963년 광장 극단의 단원으로 입단한 그는 연기 생활 50여 년 만에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 이후 오영수의 차기작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 그는 무대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오영수가 선택한 작품은 연극 '라스트 세션'이다.
오영수는 '라스트 세션' 기자 간담회에서 "갑자기 '오징어 게임'을 통해 많이 알려지고 나서 나의 중심이나 연기자로서의 의식 흐름이 흩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며 "광고가 들어오고 하는데, 왜 연극을 선택하냐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가 연극을 선택한 게 잘한 일인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지향해왔던 모습 그대로 가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뜻깊다"고 강조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정신 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오영수와 신구는 프로이트 역에,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에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
오영수는 "대사가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고 관념적이고 논리적이어서 헤쳐나가기가 상당히 힘들다"며 "신구 선배가 이 역할을 하셨다고 해서 용기를 갖고 참여하게 됐다. 결과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라스트 세션'
일정 2022년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황정민, 다시 리차드3세
'믿고 보는 배우' 황정민이 2년 만에 연극 '리차드 3세'로 무대에 돌아온다. '리차드 3세'는 2018년 초연 이후 4년 만이다. 황정민은 초연 당시 10년 만의 무대 복귀작으로 '리차드 3세'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으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악인 연기로 호평받았다.
'리차드 3세'는 영국의 장미 전쟁기 실존 인물 리차드 3세를 모티브로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희곡이다.
황정민은 선천적으로 기형인 신체 결함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를 뛰어넘는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 감각, 탁월한 리더십으로 경쟁 구도의 친족들과 가신들을 모두 숙청하고 권력의 중심에 서는 악인 리차드 3세를 연기한다.
황정민은 "시대를 막론하고 명작은 보는 이들이나 만드는 이들 모두에게 깊은 울림과 에너지를 전달한다. 많은 분이 쉽게 접하고 연극과 예술을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양질의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리차드 3세'는 그러한 편견을 깰 가장 적합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작품 출연 이유를 밝혔다.
'리차드 3세'
일정 2022년 1월 11일 ~ 2월 1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서재형
출연 황정민, 장영남, 윤서현, 정은혜, 임강희, 박인배 등
신성우, 연출 겸 배우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은 가수 신성우는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연출을 맡은 동시에 배우로 출연도 한다. 앞서 신성우는 지난 2019년 10주년 기념 공연 당시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섬세한 연출로 극의 몰입도를 높여 호평을 이끌고 있다.
'잭더리퍼'는 1888년 실제 런던에서 일어난 미해결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극 중 사건을 따라가는 극 중 극 형태다. 퍼즐 조각처럼 얽힌 살인마의 존재를 파헤쳐 가는 스릴러 뮤지컬로 강력한 반전을 선사한다.
신성우는 극에서 잔혹한 살인마 '잭' 역을 맡아 연기한다. 그 외에 김법래, 강태을, 김바울이 잭 역을 연기한다.
'잭 더 리퍼'
일정 12월 3일 ~ 2022년 2월 6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공연장
연출 신성우
출연 엄기준, 이홍기, 남우현, MJ, 인성, 신성우, 김법래 등
배우 유태웅은 2021년을 바쁘게 보냈다. 그는 드라마 ‘빈센조’, ‘경찰수업’에 출연하며 악역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연극 ‘리어왕’으로 무대에도 올랐다. 그리고 12월에는 KBS 2TV ‘사랑의 꽈배기’에 출연하고, 연극 ‘디어 런드리’로 또 무대에 오른다. 쉴 틈 없이 바쁘지만, 그는 행복해 보인다.
유태웅이 선택한 ‘디어 런드리’는 ‘빈센조’, ‘김과장’, ‘굿닥터’ 등 드라마 제작사 로고스필름과 ‘얼쑤’, ‘쿵짝’ 등의 작품을 보유한 우컴퍼니가 공동 제작해 선보이는 연극이다.
‘디어 런드리’는 24시간 빨래방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코미디로, 청춘들의 일과 꿈, 사랑뿐만 아니라 중년 가장의 애환 또한 담은 작품이다.
디자이너 민준과 인터넷 기자 윤하는 동네 빨래방에서 자주 마주친다. 티격태격하며 서로에 대한 비호감만 쌓여가던 두 사람은 빨래방 관리인 정우가 알려준 방명록 ‘디어 런드리’에 익명의 일기를 쓰게 되고, 서로의 글에 댓글을 남기는 ‘비밀 친구’가 된다. 유태웅은 빨래방 관리인 정우 역을 맡아 이전과는 다른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디어 런드리’로 2021년 유종의 미를 장식할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디어 런드리’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제가 배우로서 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는데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무대는 배우에게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어 런드리’를 통해 좋은 기운의 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디어 런드리’는 어떤 연극이고, 관객들을 위한 관전 포인트를 꼽아보자면?
우리 연극은 빨래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연극이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안에 매력이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를 느끼실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빨래방 관리인 정우 역을 맡았다. 연기 변신이 기대되는데?
항상 중절모와 바바리코트를 입고 다니는 정우는 빨래방 터줏대감이자 빨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초고수예요. 정우 역의 연기 포인트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래서 반전의 재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우를 연기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정서 중 그동안 못 보여드렸던 정서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연기 변신까지는 감히~~ 하하하.
올해 바쁘고 유의미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빈센조’라는 작품에 출연해 악의 축의 한 획을 긋기도 했죠.(웃음). 동양대학교 공연영상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저에게 2021년은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고민하던 부분을 시험해보고 응용할 수 있었던 행복한 한 해였죠. 제가 1996년 드라마 ‘아이싱’으로 데뷔했으니, 데뷔한 지 벌써 30년 차가 가까워집니다. 앞으로 책임 있는 배우, 신뢰할 수 있는 배우,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저희 연극 ‘디어 런드리’, 재밌는 연극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 잘 챙기시고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느끼시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Godspeed~!
연극 '디어 런드리'
일정 12월 4일~12월 31일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연출 우상욱
출연 김도빈, 김찬호, 한수림, 박한들, 유태웅, 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