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익산 관광 때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유적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러나 발굴 중이라 땅만 파놓았지 막상 볼 것이 없어 실망했다. 제대로 보려면 익산까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공주 부여를 돌아봐야 한다고 들었다. 검색으로 공주는 볼 것이 그리 많지 않고 부여에 유적지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여로 향했다.
폭염의 날씨라 목적지는 실내 위주로 짤 수밖에 없었다. 첫 목적지는 부여 박물관이었다. 경로 우대를 생각하고 갔는데 무료입장이었다. 입구의 어린이박물관은 백제문화를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꾸며놓았다. 백제시대의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 이 또한 무료였다. 바로 옆에서 왕흥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본관으로 들어가니 천장에서 자연광이 들어오는 스카이라이트 지붕 아래 커다란 돌그릇이 있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시대별로 그릇, 무기의 변화를 유적으로 잘 전시해놓았다. 이 박물관의 대표 유물은 황금대향로였다. 백제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라 그런지 특별실에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발굴 당시 얼마나 큰 감동이 있었을까 상상이 되었다. 크기로나 모양으로나 과연 대단한 보물처럼 보였다.
백제문화는 너무 오래된 역사이기 때문에 친숙하지 않다. 더구나 한성백제 500년도 있어 분산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본 문화가 백제의 영향을 받았고 한때는 한반도를 지배하기도 했던 백제였으므로 재조명을 해볼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낙화암에 갔다가 실망하고 온 적이 있다. 3천 궁녀가 신라의 침략에 강으로 투신했다는 야사만 기억에 있지, 정작 볼 것은 없다는 기억에 날씨도 더워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동네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부여 박물관 인근에 있는 신동엽문학관을 찾아갔다. 39세에 요절한 민족 시인이란다. 대표작으로 ‘껍데기는 가라’가 있다. 범상치 않은 외관이어서 알아보니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생가에 육필 원고와 신동엽 평전 등 관련 책자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궁남지였다. 7~8월이 절정이라는 연꽃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며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군에서 인근 논밭을 사서 계속 궁남지를 늘려간다고 했다. 과연 사람 키보다 더 큰 연꽃잎과 탐스러운 연꽃들이 볼만했다. 인근 음식점에서는 연밥을 팔고 있었다. 잡곡밥을 연잎에 싸서 내오는 것인데 다른 반찬은 평범했다. 원래 충청도 음식은 별 특징이 없다.
백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도자기류다. 백제요 등 도자기 굽는 가마가 근처에 있다 해서 찾아가 봤다. 거대한 가마가 공룡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30분마다 버스가 있고 두 시간이면 도착한다. 유적지가 많아 당일로는 좀 빡빡하다. 여름은 너무 더우니 서늘한 봄가을에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불[火]의 계절 여름입니다. 붉은 태양이 땅 위의 모든 것을 태울 듯 이글거리는, 사계절 중 불의 기운이 가장 성한 시기입니다. 그런 화기(火氣)를 달래려는 듯 사람들은 너나없이 물가를 찾습니다. 계곡으로, 강으로, 바다로 갑니다. 장맛비는 물론 소낙비라도 내리면 금세 사위를 삼킬 듯 사납게 질주하는 계곡물과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는 성난 파도….
여름이면 만나곤 하는 성난 물의 모습은 여름이 곧 불과 물이 정면으로 맞서는 계절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7~8월 불과 물이 상극(相剋)하는 틈새에서 피는 각별한 꽃이 있습니다.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 식히려는 듯 그늘 한 점 없는 연못, 흐르지 않는 저수지에 커다란 이파리를 잔뜩 깔고 보랏빛 영롱한 꽃을 피우는 물풀이 있습니다. 바로 100년 만에 꽃을 피운다는 가시연꽃입니다.
2m에 이르는 거대한 이파리로 1년 중 가장 강한 여름 불의 기운을 받고, 뿌리로는 강 대 강(强 對 强)으로 맞서는 물의 기운을 흡입해서인지, 생김새는 물론 꽃이 피는 과정 등 모든 것이 예사롭게 않습니다. 먼저 그 이름은 온몸에 가득 가시가 박혀 있어 함부로 다가가 멋대로 휘저을 수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파리(앞면뿐 아니라 물에 잠기는 뒷면까지)는 물론 줄기와 뿌리, 꽃받침까지 식물체 전체에 길게는 1cm쯤 되는 가시가 촘촘히 나 있습니다. 전초에서 가시가 없는 부분은 꽃잎과, 가시가 송송 돋은 열매 안에 든 완두콩 모양의 씨앗뿐입니다.
가시만큼 위압적인 것은 커다란 이파리입니다. 보통 가시연꽃이 자라는 수면은 그 잎으로 뒤덮일 정도로 개체마다 여러 개가 달릴 뿐 아니라, 타원형의 잎 하나가 어른 한 사람을 휘감을 만한 크기까지 자라납니다. 한해살이 물풀이 한두 달 만에, 줄기는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굵고 잎은 2m까지 크려면 하루에 무려 20cm씩 자라야 하기에 그 과정이 눈에 보인단 말이 나올 법합니다.
이렇듯 까칠한 가시연꽃이지만, 그 꽃은 모두를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물론 꽃이 피는 과정도 촘촘한 가시나 넓은 잎에 못지않게 기이합니다.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 새 생명을 낳듯, 가시연꽃도 가시가 촘촘히 박힌 봉오리로 역시 가시투성이의 두꺼운 잎을 뚫고 올라와 지름 4cm 안팎의 꽃을 피웁니다. 꽃은 오전에 열었다가 저녁이면 오므리기를 사나흘 되풀이하다 물속으로 들어가 씨앗을 생성하는데, 꽃봉오리가 맺혔다고 해도 수온과 수심, 기후와 일조량 등이 맞아야 열리기 때문에 활짝 핀 모습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까다롭기로 치면 개화(開花)보다 씨앗의 발아(發芽)가 훨씬 정도가 심합니다. 계명대 김종원 교수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가시연꽃의 종자 발아율은 4% 이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낮은 발아율이 역설적으로 가시연꽃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즉 발아가 안 된 씨앗이 수년이든 수십 년이든 발아력을 유지하다가 수온과 기후 등이 최적의 조건이 되면 발아해서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잎을 펼치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것이지요. 휴면 상태의 씨앗 속에 내재된 생명이 되살아나며 ‘백 년 만에 피는 꽃’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실제 2010년 강원도 경포호에서 가시연꽃이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연원을 추적한즉 1960년대 농경지 개간 이후 휴면 상태에 있던 가시연꽃의 종자가 습지 복원 사업으로 생육 조건이 맞자 반세기 만에 다시 발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Where is it?
가시연꽃은 발아도, 개화도 까다롭지만 그렇다고 1급수 청정지역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큰 잎에서 알 수 있듯 영양분이 풍부한 수질, 즉 적당히 부영양화(富營養化)된 연못에서 잘 자란다. 최대 자생지로는 경남 창원의 우포늪이 꼽힌다. 우포늪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 이름이 아예 가시연꽃마을인데, 가시연꽃 등 우포늪의 수생식물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생태체험장도 있다. 수도권에선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가 유명하다, 충남 홍성의 역재방죽공원과 부여의 궁남지, 강원도 강릉의 경포호 등 전국적으로 20여 곳에서 자란다. 진못(사진) 등 오래된 연못이 많은 경북 경산과 영천에도 자생지가 여럿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연꽃이 피어나는 연못가에는 꽃구경하러 모여드는 사람들로 발걸음이 잦다. 서울 근교에도 연못이 여러 군데 있는데 시흥의 관곡지나 양평의 세미원 등의 연못에 연꽃이 한창이어서 무더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백련과 홍련의 아름다움이 무르익고 차츰 꽃이 지는 듯하면 그 연못 속에서 또 다른 꽃을 기대하게 된다.
빅토리아 연꽃.
꽃과 잎에 가시가 있고 꽃술에도 가시가 있어서 큰 가시연꽃이라고도 불린다.
브라질의 아마존강(江) 유역이 원산지인 수생식물인데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여 학명을 Victoria regia로 명명했다고 한다.
밤에만 피어나는 꽃 빅토리아를 필자도 몇 번 보았다.
그동안 여러 곳의 연못을 다니며 진흙 속에서 피어났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고고한 연꽃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그렇지만 빅토리아 여왕을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빅토리아는 우리가 흔히 보던 연꽃과는 달리 연꽃 중에서 가장 큰 잎으로 쟁반처럼 물 위에 떠 있는데 그 넓이가 어린아이가 앉아도 될 만큼 크고 단단하다. 그러나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도도한 꽃.
이 꽃이 한 번 피려면 첫날엔 하얗게, 이어서 분홍색으로, 그리고 좀 더 짙어지며 왕관 모양으로 변화하며 달빛을 받아 더욱 향기롭고 탐스럽게 피어난다. 그리고는 밤이 지나고 나면 물속으로 잠겨버리며 장렬하게 그 모습이 사라진다. 이틀간의 짧은 시간 동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 화려한 대관식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으로 부귀영화도 덧없음을 느끼게 한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어두운 밤의 연못가엔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모여든다. 그리고 낮부터 자리를 잡아놓고 빅토리아를 알현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삼각대를 세운 후 진을 치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강력한 모기를 퇴치해 가며 그 연못가에서 들려오던 셔터 소리와 불빛이 예민한 빅토리아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조차 든다.
다른 식물과는 조금 다르게 빅토리아 연꽃이 피어나는 동안 우리 인간들과 감정교류를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두운 밤 연못가의 사람들도 배려를 하면서 바라본다. 한 식물의 신비로운 삶과 퇴장을 지켜보며 마치 한 여름밤의 꿈을 보는 듯하다.
부처님의 뜻을 담은 진리의 꽃이란 생각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는 계절이다. 게다가 빅토리아 연까지.
푸른 바다가 떠오르는 계절 여름! 그러나 막상 바닷가로 피서를 떠나면 시원함이 아닌 태양 아래 모래사장의 뜨거움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변에서 에어컨을 켤 수도 없는 노릇. ‘시원하게 바다 구경을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스친다면, 코엑스 아쿠아리움(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513)으로 나들이를 떠나보자. 대형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바라보면 바닷속으로 들어온 듯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손주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매표소에 도착하면 바닥에서 천장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게이트 수조 속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이곳부터 시작해 총 16개의 코스로 꾸며진 테마 존을 둘러보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순서에 따라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해양생물뿐만 아니라 육지 동물 등 4만여 마리의 생물을 만나게 된다.
코스 초반에는 피라미, 송사리, 어름치 등 정겨운 우리 물고기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네 번째 코스인 ‘한국의 정원’에서는 경복궁 내 향정원을 축소해 옮겨놓은 비단연못이 눈에 띈다. 한국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코스들을 지나면 현대식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상상 물고기 나라’가 나온다. 전화박스, 냉장고, 정수기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곳곳에 물고기들이 담겨 친근하면서도 흥미롭다. 닥터피쉬(가라루파)가 사는 욕조 모양 수족관에 손을 넣어 물고기와 접촉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다음 코스 ‘아마조니아 월드’ 입구로 들어서면 다소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마존 강 일대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이 살고 있어 열대우림과 비슷한 생태 환경을 유지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민물고기(3~5m)인 피라루쿠를 비롯해 식인 물고기 피라냐, 이집트 과일박쥐, 수달, 비버, 악어, 거북 등을 볼 수 있는 다채로운 구간이다.
보고 만지며 교감하는 오감만족 나들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마린터치 연구소’에 꼭 들러보자. 조개, 불가사리, 멍게, 해삼 등 직접 수중생물을 관찰하고 만져볼 수 있는 쌍방향 체험이 가능하다. 아울러 아쿠아리움의 전반적인 생물 배양 및 양육 기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포토타임을 즐기기 좋은 코스로는 ‘산호 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액자 형태의 수족관에 화려한 색상의 산호와 열대어들이 어우러져 멋진 그림이 완성된다. 그다음 코스인 ‘바다왕국’ 역시 많은 관람객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곳이다.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 등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대형 어류들이 유유히 위엄을 과시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해저터널’, ‘펭귄들의 꿈동산’ 등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테마 코스가 이어진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프로그램 일정이다. 정어리 공연, 펭귄 먹이주기, 상어극장 영화상영 등 다양한 전시 및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자세한 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코스를 둘러보고 나면 선물상점이 나온다. 손주가 나들이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귀여운 물고기 인형 하나 선물해보는 것도 좋겠다.
언제부턴가 경복궁에는 한복을 입은 내․외국인이 넘쳐난다. 한복을 입으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이유도 있지만 경복궁 관람객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하다. 특히 학생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물론 한복의 정통성이나 무국적성 디자인에 대한 시비는 다른 문제로 치자. 경복궁은 근대사에서 광화문이 차지하는 상징성과 맞물리면서 외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다.
경복궁은 근정전, 경회루의 건축적인 스케일과 멋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도 향원정의 아름다움이 최고다. 향원정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 주위로 단풍나무와 고목 느티나무, 소나무는 계절마다 향원정의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바꾸어간다. 연못에 가득한 수련은 초록 융단을 깐 듯 곱다. 노랑어리연이 필 때면 그 작은 꽃이 향원정을 더 돋보이게 한다. 비단잉어가 무리지어 수련 아래로 지나가고 언뜻언뜻 수련이 비어 있는 연못 조각에 하늘과 향원정이 살짝 잠겨 있다. 단풍이 절정일 때도 좋지만 눈이 연못을 덮고 있을 때는 그 적막과 고요가 마음을 비워준다. 어느 계절이든 향원정 주위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필자는 향원정과 관련한 특별한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곳 향원정 주변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젤을 세우고 수채화로 향원정을 그리고 있는 필자 주위로 사람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곤 했다. 아버지의 반대로 미대에 진학하지 못해서 그런지 향원정에 오면 그 시절 자주 그림을 그리던 장소를 찾곤 한다. 세월은 거의 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서 교복을 입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필자를 발견하곤 한다.
향원정이 요즘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연못 주위로 둘러친 가설 담장에 난 작은 창을 들여다보니 연못에 수련이 가득하다. 갑자기 화가 난다. 향원정을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일부를 보수하는 공사인 모양인데 굳이 연못 전체를 칸막이로 둘러칠 이유가 뭔가. 더구나 가설 담장이 성인 키보다 높아 연못 주위를 돌며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가설 담장 재료인 판넬 모양도 그렇다. 고궁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색상이 완전히 경관을 망치고 있다.
요즘은 공사를 해도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한다. 특히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공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다. 향원정도 보수공사하는 모습을 관람객들에게 공개하면 어떨까. 비밀공사도 아닌데 굳이 비공개로 할 이유가 없다. 주위에 연못이 있어 향원정 공사로 인해 관람객이 불편하거나 위험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볼썽사나운 자재로 막아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완전히 막은 것도 아니다. 중간중간 창문이 있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가설 담장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간다.
지금은 향원정 주위로 수련이 가득하다. 좀 더 있으면 노랑어리연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이 아름다운 향원정을 작은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외국인들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이제 막고, 금지하고, 억제하는 과거의 유산들은 버려야 한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이 한 폭의 수채화 풍경 같은 쾌청한 5월의 어느 날,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시니어 블로거 협회 회원 40여 명이 군산으로 근세 문화를 둘러보러 나들이에 나섰다.
군산은 전라북도 북서부에 있는 도시이며 일제강점기 이후 군산항을 중심으로 성장한 항구도시로 1899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곡창에서 나는 좋은 쌀을 일본으로 빼앗아가는 항구도시의 역할로 급성장했다는 슬픈 역사가 있다.
언젠가 TV에서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물자를 수탈해가는 관문이었던 군산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군산은 일본인이 많이 자리 잡고 살았던 곳으로도 설명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 문화와 건축물이 남아 있고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취지로 잘 보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동네에서는 서울의 고궁 근처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것처럼 일본의 기모노를 빌려 입고 일본 문화를 체험해 보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일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역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이므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설명에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필자가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는 아니어서 일본 문화에 그리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일본의 건축물이나 일반인들이 살던 가옥은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필자가 좋아했던 외갓집도 적산가옥이라 불리던 일본식 가정집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아련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다.
일본의 정원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던 외갓집은 꿈의 궁전으로 생각될 만큼 필자에겐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집 건물이 있고 왼쪽으로는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커다란 팽나무에는 할아버지께서 필자를 위해 매어주신 그네가 있었다.
마당에는 또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수 있을 정도의 동산과 돌다리가 걸쳐진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 속에 있던 돌로 만든 거북이도 멋있었고 연못 속에서 피어난 늘씬하게 쭉쭉 뻗은 수선화의 초록 이파리와 보라색 꽃도 아름다웠다.
건물 가장 끝에는 부엌이 있었고 그 옆에 칸칸으로 나누어진 커다란 미닫이 유리창은 안방 문이었다. 부엌 앞에는 마중물을 부어 위아래로 빨리 움직이면 언제나 콸콸 시원한 물이 쏟아지는 펌프가 있었다. 작은방 옆에는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새빨간 석류가 딱 벌어지면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보석 같은 알맹이를 보는 게 즐거웠다.
다다미로 이어진 건넌방, 긴 복도 끝의 화장실로 가는 길은 좀 으스스했지만 모두 그리운 추억의 장소로 기억된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군산에서의 근세 문화와 일본 가옥 돌아보기를 시작했다.
먼저 근대 역사박물관에서는 193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필자가 신어본 적은 없지만 상표는 알고 있는 경성 고무 만월표 신발가게, 조선 주조인 술도가, 군산극장, 군산역이 재현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납작 고무신이 정겨웠고 술도가의 술 만드는 기구와 술통이 흥미로웠다. 이곳엔 국제무역항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와 관련한 전시물과 함께 의병장 등 독립 영웅들의 자취 등 많은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군산 개항 후 일본인과 함께 들어왔다는 동국사는 일본 사찰 건축 양식을 따랐고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개화기와 근․현대사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식민지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고 한다.
큰 관심을 갖고 돌아본 일본식 가옥은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외갓집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무 창살이 촘촘한 창문도, 둥그런 유리창도 모두 추억 속 외갓집과 닮아 있어서 어린 날로 돌아간 듯 그리움이 밀려왔다.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보는 여행도 즐겁지만 이번처럼 어린 시절을 추억해볼 수 있는 나들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필자에겐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초여름, 캠핑하기 알맞은 시기다. 캠핑의 꽃은 단연 바비큐! 같은 고기라도 야외에서 불을 피워 구운 고기는 더 맛있게 느껴진다. 찌르르르 산벌레 울음소리,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모닥불, 살랑살랑 불어오는 은은한 바람이 천연조미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캠핑의 낭만을 경험할 수 있는 곳, ‘모노캠프’를 찾아갔다.
자연이 빠지면 진짜 캠핑이 아니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 잡은 모노캠프는 인근에 고기리유원지와 고기리계곡, 광교산 등이 있어 자연과 벗 삼아 캠핑 바비큐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주변 경관도 볼거리이지만, 모노캠프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가 맞이하는 연못과 가지런히 쌓여 있는 참나무 장작, 캠핑 천막을 두른 야외 테이블까지, 마치 숲속의 아지트를 발견한 듯하다.
저녁 시간에 가면 야외 정원에 모닥불이 빨갛게 피어오르고 연못 분수에 조명이 들어와 별빛처럼 반짝인다. 일반적인 식당은 실내 테이블에서 고기를 먹고, 야외로 나와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게 대부분인데, 이곳은 그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고기는 야외 테이블에서, 디저트는 실내에서 즐길 수 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아요
한때 캠핑 스타일의 바비큐를 모방한 맛집들이 유행했다. “캠핑 도구로 꾸민 실내에서 간이의자 몇 개 놓고 고기 구워 먹는다고 해서 캠핑 분위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모노캠프 주인장의 이야기다. 가게를 운영하기 이전에도, 또 현재까지(아마 앞으로도 계속) 캠핑을 사랑하는 주인장은 자신이 느끼는 캠핑의 매력을 공유하기 위해 공을 쏟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리’다. 바람소리, 물소리, 음악소리 이 세 가지는 꼭 넣고 싶었다고 한다. 본래 이곳은 라이브카페였는데, 정원을 개조하며 연못 분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바람소리와 어우러진 물소리를 낼 수 있었고, 연못 안 개구리 울음소리도 덤으로 얻었다. 또 가요 대신 잔잔한 재즈와 팝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식사 중 음악이 거슬리지 않게 ‘리스닝(listening, 듣는 것)’이 아닌 ‘히어링(hearing, 들리는 것)’을 의도한 것이라고.
분위기를 사는 힐링 맛집
강릉에서 올라와 2주에 한 번꼴로 모노캠프를 찾는다는 단골은 “이곳은 고기가 아닌 분위기를 사는 맛집이다. 번거롭게 캠핑을 떠나지 않고도 캠핑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고기와 야채, 소시지, 새우 등을 함께 구워 먹을 수 있는 세트 메뉴(캠핑 훈연 바비큐 세트 4인 6만9000원, 와규 프리미엄 꽃등심 세트 4인 9만9000원)를 주문한다.
구이용 메뉴 못지않게 손님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은 바로 ‘라면(2000원)’. 캠핑을 가본 사람이라면 야외에서 끓여 먹는 라면 맛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라면은 끓여서 내지 않고 봉지라면과 달걀, 양은냄비,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준다. 직접 끓여 먹으라는 것인데, 분위기 덕분인지 수고스럽기보다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캠핑에서 빠질 수 없는 것 또 하나, 시원한 맥주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얼음이 든 양동이에 소주, 맥주, 음료 등을 한꺼번에 담아와 먹을 수 있다. 이 또한 독특한 풍경이다. 야외에서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진다면, 실내로 자리를 옮겨보자. 다양한 카페 메뉴는 물론, 주류와 안주까지 마련돼 있어 1차를 마치고 가장 빠르게 2차를 즐길 수 있다.
명칭이 항상 헛갈리는 곳! 은평한옥역사박물관이 맞는지 아니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제대로 된 이름인지? 여러분은 어떻게들 알고 계시는지요? 오늘은 작심하고 그를 만나러 왔다. 그러나 그를 만나려면 삼가야 할 순서가 있다는 생각이다. 먼저 싸리문을 열고나 보자.
조선의 3대로를 아시는가? 큰길을 따라 서발, 북발, 남발의 삼발로가 조직되었으니 그중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서로(서발)는 기발(말을 타고 이동)에 해당되는데, 바로 이곳 박물관 인근을 경유했던 것이다(구파발, 지명의 유래). 때문에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조선의 역참제도에 대한 내용은 빼놓을 수 없을 터이다.
유리판 아래로 생생한 발굴 현장을 재현해놓은 김자근동 묘를 스릴 있게 체험하는 잔재미도 느껴보며(현재 유적 발굴 과정에 있는 서울 은평구 이말산에서 발굴됨), 세종의 6남 금성대군(단종 복위에 가담했다가 32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함)을 모신 사당인 금성당(실제는 은평뉴타운 우물골 소재) 코너에선 무속신앙, 즉 샤머니즘에 잠시 빠져보기도 한다. 2층의 한옥 상설전시관으로 오르다 보면 계단길 벽면으로 전국의 한옥촌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한복체험 코너에선 끼리끼리 방문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멀리서 온 객을 위한 대접이 이만하면 융숭한 편이다. 자, 이제 헛기침 한번 해볼 차례다. 그가 버선발로 반겨줄지 모를 일이다.
노을빛 치마에 새긴 가족사랑
슬하에 자식 아홉을 두었던 그, 그러나 그중에 여섯이 그만 병사하고 마는데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버이의 그 마음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어디 그뿐인가?
“누리령 산봉우리는 바위가 우뚝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 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을까.” 유배길에 전남 영암의 월출산을 바라보며 두고 온 집과 가족을 그렸을 그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가는 이 길이 무려 18년간이나 지속되리라고 짐작조차 했을까? 참으로 헛헛한 독백이 아닐 수 없다.
“주인 없는 초당엔 적막만이 가득하고, 처마 끝에 방울방울 낙수지어 반기는가?”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초당에 들린 적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길을 더듬어 그를 만나러 갔던 그 길, 한적한 초당 대청에 걸터앉아 낙수에 손 비비며 그가 만들었다는 연못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기억이 오버랩된다.
부부간의 애틋함, 자식을 향한 아비의 마음은 옛사람이라고 다를 리 없고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뺄셈은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다. 유배생활을 하던 그는 부인이 보내온 치맛자락을 재단하여 두 아들과 그 후손들이 간직하도록 아비의 당부를 글로 표현한 서첩을 만드는데 그중 3첩이 남아 있다(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또 남은 천으로는 시집가는 딸에게 매화나무 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앉아 있는 '매화병제도'를 그려줌으로써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했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강진에서 수년간 유배 중일 때, 부인 홍씨가 해진 여섯 폭 비단 치마를 보내왔다. 세월이 오래 흘러 붉은색이 퇴색되었다. 네 첩의 글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보내고, 남은 천으로 작게 장정하여 딸아이에게 보낸다.”
짐작하셨겠지만 오늘 필자가 만나러 온 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하피첩, 은평에 오다
은 노을 하, 치마 피, 엮을 첩의 의미로 부인이 시집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색이 바랬음을 은유한 것으로 지어미에 대한 지아비로서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리 넓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좁지도 않은 기획전시실, 그 공간의 범위로는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선생의 마음과 정신은 결국 오랜 유배생활을 이겨내고 고향(남양주시 능내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고, 만년에도 저술을 놓지 않았던 선생은 회혼일(결혼 60주년 기념일)에 그만 세상을 떠난다. 생의 마직막엔 곁을 지켜준 부인이 있었으니 선생의 임종은 외롭지 않았으리라. , , 등 다산 사상의 핵심은 사회 현실을 바탕으로 제도와 법을 맞도록 바꾸자는 것이 그 골자로 정치 및 행정체제, 형률제도, 경제제도, 생산기술, 군사제도 등 제반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다. 선생이 저술한 책은 모두 503권이라고 한다. 인고의 세월 동안, 그리고 말년에도 평생 붓을 놓지 않았던 선생!
나는 어떤 남편이고 어떤 아버지인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본 기획전은 6월 11일까지 이어지며 문의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하면 된다.
올해 5월은 공휴일과 주말이 겹쳐 징검다리 연휴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번 석가탄신일(3일)은 어린이날과 가까워 손주와 함께 나들이 갈 곳을 찾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와우정사에 들러보고, 인근 용인농촌테마파크까지 즐겨보는 것 어떨까?
세계 각국의 불상 3000여 점을 만나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와우정사(臥牛精舍)는 도심에서 가깝고 산수가 아름다워 산책 삼아 거닐기에 안성맞춤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절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불두(佛頭)’가 눈에 띈다. 그 아래에는 아담한 불상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불두 바로 앞 연못에 석가모니의 은은한 미소가 비친다. 영어의 감탄사 ‘와우(wow)’를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명칭은 절이 있는 연화산이, 누운 소[臥牛]의 형상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누워 계신 부처님(와불, 臥佛)을 뜻하기도 한다. 열반전에 가면 한 팔을 괴고 누워 있는 석가모니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와불상은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다듬어 만들었는데, 길이 12m, 높이 3m인 세계 최대의 목불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고 한다.
사찰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와불이 봉안된 열반전을 비롯해,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타종한 12만 톤짜리 통일의 종, 한국·중국·인도·미얀마·스리랑카 등 아시아 각지에서 들여온 3000여 점의 불상 등을 만날 수 있다. 꼭대기에 있는 대각전의 불고행상(佛苦行像)은 석가모니가 고행 끝에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있어 숙연함이 느껴진다. 대각전 아래 삼성각에서는 원뿔 모양의 돌탑 무더기가 보인다. 그 주변을 살펴보면 방문객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쌓아 올린 작은 돌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 연화산 와우정사
위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산43
◇ 용인농촌 테마파크
사찰만 보고 가기 아쉽다면, 와우정사에서 차로 1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용인농촌테마파크’에 들러보자. 각양각색의 꽃들로 가득한 ‘들꽃광장’을 비롯해 철쭉이 흐드러진 ‘철쭉원’, 튤립으로 꾸며진 ‘꽃과 바람의 정원’ 등 꽃을 테마로 한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따스한 봄 햇살 아래 테마파크를 둘러싼 잣나무 산책로에서 삼림욕을 하고, 건강지압로를 거닐어보는 것도 좋겠다. 손주와 함께라면 나비, 풍뎅이 등 다양한 곤충류를 체험할 수 있는 ‘곤충전시관’이나, 토끼와 공작 등 동물들이 살고 있는 ‘관상동물농장’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농촌파크로 80-1).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은 ‘사람은 천일 동안 한결같이 좋을 수 없고, 아름다운 꽃도 백일 동안 붉게 피어 있지 못한다’로 해석된된다.
나무[木]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는 배롱나무가 있다. 7월부터 9월까지 꽃이 피어 있는 화려한 꽃나무인데 그 하나하나의 꽃잎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 피어 있는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바람에 날려 잔디나 연못에 무리지어 떨어져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그러나 나무백일홍도 알고 보면 한 꽃이 그렇게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작은 꽃들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오랫동안 그대로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는 역시 장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자태도 아름답지만 향기까지 고혹적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는 가시가 있다. 아니 가시가 있어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아름답지만 가까이하기 어려운 도도함이 있는 꽃이다.
대부분의 꽃은 피어 있을 때 아름답다. 시들면 그만이다. 향기도 사라지고 아름다움도 헛되다. 꽃의 아름다움보다 향기가 오래 기억되는 꽃 중에는 수수꽃다리가 있다. 흔히 라일락이라고 부르는 꽃이다. 아주 오래전 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 교정에는 교문에서 교실 바로 앞까지 라일락이 길 양쪽으로 쭉 심어져 있었다. 새벽에 교문을 들어서면 그 향기가 온몸에 배어들곤 했다. 라일락 향을 맡으면 취기마저 돈다.
피어 있을 때보다 질 때 더 아름다운 꽃도 있다. 슬픈 아름다움을 간직한 듯한 동백꽃이다. 주먹만 한 핏빛 덩어리 같은 꽃이 어느 순간 툭 하고 떨어져버린다. 몇 년 전 찬바람이 부는 초봄 여수 오동도를 걸었다. 주먹만 한 붉은 동백꽃이 여기저기서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떨어져 누워 있는 붉은 동백을 보면 왠지 슬퍼진다.
질 때 아름다운 꽃 중에 벚꽃도 빼놓을 수 없다. 온 세상을 백색으로 물들이다가 한순간 바람에 날려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꽃잎. 벚꽃은 그러나 그 가벼움 때문에 허무하거나 슬픈 마음이 밀려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어 있는 꽃잎보다 지는 꽃잎이 더 화려하고 왁자하다.
흔히 우리는 꽃을 감상할 때 꽃의 생김새나 색깔 등의 자태를 본다. 그러나 자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향기가 고약하다면 좋아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꽃의 가치가 천 냥이라면 향기는 구백 냥은 넘을 것이다. 꽃이 피는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물론 아무리 좋은 향기를 간직한 꽃도 ‘화무백일홍’의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렇듯 때가 되면 꽃은 피고 시들어 떨어져버리지만 그 향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사람도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