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이 우리 사랑을 갈라놓았을지라도…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단기적으로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더 많이 후회하는 것이 사람이라지? 죽음 앞에서라면 더더욱. 삶의 마지막에는 한 것보다 하지 않은 것에 회한이 든다지 않나. 어느 책에서 읽은 대로, ‘죽을 만큼 마음껏 사랑해볼걸’, ‘조금만 더 일찍 용서할걸’, ‘걱정은 내려놓고 행복을 만끽할걸’, ‘마음을 열고 포용할걸’,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볼걸’, ‘아등바등 말고 여유를 가지고 살걸’,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면서 살걸’ 등 말이다. 그도 그랬을까? 지난달 죽은 그도 하지 않은 그 무엇을 후회했을까? 무엇보다 우리의 사랑에 솔직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을까? 오늘도 그의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수목장을 했기 때문에 반나절 공원을 산책하듯, 바람을 쐬듯 발걸음을 하게 된다. 그의 나무는 아직 어린 묘목이다. 가녀린 묘목 밑에서 다 큰 성인이 의지하여 잠자고 있다. 나무 밑에 묻혀 있다 해도 그의 육신이 곧장 나무를 키우는 자양분이 될 수는 없다. 그의 육신의 재는 나무 상자에 담겨 땅속에 있으니 그 육신이 상자와 함께 시나브로 흙이 되어 나무를 키우는 것은 멀고도 먼 훗날의 일일 것이다. 묘목 앞에 나붓이 꿇어앉아 그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모르죠? 알았다고 해도 당신과 나를 죽음이 곧장 갈라놓았을 테지만…. 이제 이렇게 나무 아래 쉬고 있는 당신이나마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되어 나는 차라리 지금이 행복하네요.” 단 석 달을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그리워한다면 그 사랑은 너무 밑지는 장사 아닌가? 어떤 사랑이든 진실했다면 가슴에, 영혼에 아름다운 상흔을 남긴다는 점에서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라고들 하지만. 유부남과의 동거 6개월 나는 아내 있는 남자와 6개월을 살았다. 그 사실을 몰랐으니 속아 산 것이다. 나는 그와 결혼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나는 그의 아내로, 그는 나의 남편으로 그렇게 부부처럼 살았다. 투병 중이었으니 결혼식은 할 형편이 못 된다 해도 혼인신고라도 하자는 말조차 못 들은 척할 때 낌새를 느꼈어야 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는데야 어쩌랴. 한 1년 몸을 보양한 후에 결혼식을 올리든가 혼인신고를 하자는 남편(이 아닌 내연남)을 몰아붙일 수는 없지 않나. 나로서는 불안함과 서운함이 없지 않았으나, 내 곁에 그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하고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마흔 살이었던 그는 국토 남단 이름도 모를 섬에 아내와 일곱 살짜리 딸 하나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섬과 가까운 뭍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섬에서 나고 자랐고, 섬 반경 내에서 직업을 구했고, 인근 섬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따분함,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권태감이 봄철 아지랑이처럼 사철 피어오르는 삶이었을 것이다. 눈앞이 확 열리는 뭔가가 찾아오지 않는 한, 고만고만하게 살다 고만고만하게 생을 마칠 운명이었을 그에게 숨통은 뜻밖에도 암과 함께 트였다. 그가 폐암에 걸린 것이다. 다른 암도 아니고 폐암이라니! 그것도 공기 청정한 어촌에서 폐암이라니, 그야말로 ‘운명의 암’이라 할 수밖에. 허파에 바람 들듯 병은 그를 서울로 데려왔다. ‘서울 큰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이다. 본격적인 암 치료가 시작되었고, 수술 후 나는 간병인으로 처음 그를 만났다. 환자와 간병인, 환자와 간호사만큼은 아니라 해도 로맨틱한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남편, 아니 내연남은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하기야 상대의 환심을 사지 못하는 사기꾼이 있으랴. 결혼 사기극을 벌이는 판에 여자 마음 홀리는 것쯤이야. 버젓이 살아 있는 아내와 딸을 3년 전 배가 뒤집히는 사고로 죽었다고 말하면서,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결국 암에 걸린 것 같다며 내게 동정과 연민을 끌어낸 사람. 퇴원을 해도 아무도 없는 섬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나만 좋다면 학교를 옮기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열아홉 살에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동갑내기 남자와 동거하다, 1년도 못 살고 헤어진 후 20년 가까이 혼자 지내고 있었다. 퇴원 후에도 학교를 옮기거나 다른 직장을 구하는 일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나의 단칸방이 신혼방이 되었고 나의 간병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6개월이 넘도록 그의 아내가 한 번도 병원을 오거나 그를 찾는 일이 없었을까? 아무리 먼 곳에 산다고 해도. 나중에 들으니 그의 아내는 시어머니 병 수발로 꼼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암 수술을 하는 남편을 어떻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그 무렵 부부 사이에 석연치 않은 일이 있었던 건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여하간 서울로 올라간 남편과 그간 전화 통화만 하다 6개월이 지나 만나고 보니 나라는 여자가 떡하니 옆에 있었으니 그 아내의 충격은 또 얼마나 컸으랴. 고백도 못 한 연인의 죽음 그 길로 그는 내 곁을 떠났다. 아내의 치마꼬리를 잡고 다시 섬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암에 걸렸으니 망정이지 어떤 아내가 그런 황당한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 있었으랴. 죽었던 남편이 살아온 셈 치겠다며 크게 봐준 것 같았다. 암이 그를 두 번 살렸다. 그럼 나는? 그 여자에게 머리끄덩이 안 잡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억울하고 황당하기야 그의 아내 못지않았지만, 그 남자와 사는 동안 소소한 빚도 생겨 억지로라도 마음을 수습하고 생계를 위해 다시 일을 나가야 했다. 다니던 병원에 이미 소문이 돌아 일자리를 옮길 생각에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갔는데, 그 남자가 떠난 침상에 다른 환자가 누워 있었다. 차트를 보니 52세였다. 운명의 내 사랑이, 석달 만에 나를 떠난 사랑이 그렇게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간암 환자였다. 내 눈에도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나를 본 담당 간호사가 일손이 부족하다며 어지간하면 병원에 그냥 있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주저앉았지만 전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필요한 접촉 외에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공교롭게도 그 또한 찾아오는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더욱 경계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게 ‘마지막 부탁’을 해왔다. 마지막 부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후 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인데, 거꾸로 우리 사이는 그 일을 계기로 급격히 가까워졌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20년 동안 만나지 못한 딸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의 구술을 내가 받아쓰는 형식의 편지였다. 신혼 때부터 삐걱대던 아내와 이혼한 후 세 살이던 딸을 혼자 키우던 어느 날, 퇴근해 돌아와 보니 아내가 딸을 데려갔더라고. 작정하고 데려갔으니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탔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어 엄마가 키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며 이 악물고 포기했다고. 하지만 양육비라도 보내주려고 간간이 수소문을 했지만 도통 불통이었고, 그는 그대로 해외 취업을 나간 사이 애 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혼한 아내가 죽은 것은 딸을 데리고 간 지 얼마 안 돼서였고, 그 길로 딸은 해외로 입양되었다고 했다. 아빠가 버젓이 있는데 어떻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라고. 그는 그대로 사정이 있었는 데다 그 모든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터라, 현재 딸과의 재회를 위해 입양기관을 통해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병이 깊어지고 있어 딸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날 것에 대비해 편지를 써두고 싶다고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가까워졌다. 기운이 달려 몇 차례 편지를 나눠 쓰는 사이, 내 쪽에서 급격히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보육원 출신인 내 처지와 그의 딸이 겹쳐졌고, 평생 외로움과 벗 삼고 살아온 나와 그가 한마음이 된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내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지 못했고, 그것이 그를 향한 내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딸에게 주는 그의 편지와 마음은 얼굴도 모르는 내 부모의 것인 것만 같아 나는 그를 통해 부성을 느꼈다. 그가 딸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절절한 그의 마음을 한자 한자 써 내려가면서 나는 그의 딸이 되어 그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마지막 석 달을 나로 인해 행복했고, 나는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는 결국 딸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벌 받을 각오로 말하건대 나는 내심 안도했다. 그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고 그와 나의 사랑이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편지를 간직하고 있고, 그를 대신해 그의 딸과의 접촉을 이제 시도하려고 한다.
- 2023-05-30 08:22
-
- 스크린 속 과거와 현재의 대화,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개막
- 5월 11일(목)부터 15일(월)까지 5일간 개최되는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집행위원장 희유) 개막이 공식 선포됐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하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의 이번 주제는 ‘일상의 회복,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개막식은 지난 11일 오후 3시 충무로 대한극장 3관에서 개최됐다. 창작 음악 그룹 '모던가곡'의 축하공연,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최기찬 의원의 축사로 포문이 열렸다. 이어 이수연 서울시 복지기획관, 박노숙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협회장,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비롯한 다양한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보인스님은 개막식에 참석해 "일상의 회복, 과거와 현자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영화제가 지금, 여기를 잘 살아내는 용기와 위로를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기주봉과 지주연의 환영 인사도 더해졌다. 다음 순서로는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 영상 ‘The Flim is Rolling with Digital’을 감상하고 영화제의 지향점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트레일러는 이상인 감독의 작품으로, 젊은 세대의 배우와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 간의 소통을 비추면서 영화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트레일러와 더불어 전체 상영작을 살펴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영상(EPK)이 상영됐다. 개막작인 질리스 맥키넌 감독의 '라스트 버스'를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고전 영화를 비롯한 국내외의 다양한 상영작 소개가 이어졌다. 이후 이번 영화제의 출품된 총 474편(국내 작품 320편, 해외 작품 154편)의 작품 중 본선 진출작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다. ‘그래도 사랑해’의 김명희 감독, ‘까치의 육아일기’의 차경미 감독, ‘연인’의 허건 감독, ‘사라지는 것들’의 김창수 감독을 포함해 국내 출품작 중 본선에 진출한 노인 감독의 작품 1편, 청년 감독의 작품 15편이 서울시장상을 받았다.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희유스님은 “수많은 관객과 함께 여러 감독의 노력과 열정이 담긴 작품들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세대를 불문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희유스님의 발언을 끝으로 공식 개막이 선포됐다. 1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5일까지 5일간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가 5일간 열린다. 충무로 대한극장 및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을 통해 장편 작품 14편, 단편 작품 57편으로 구성된 총 71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국내외 단편 경쟁 부문의 11개 섹션을 포함해, 국내외 장편 초청, 기주봉 배우전, 배리어프리(barrier-free) 명예의 전당까지 다양한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는 무료로 상영되며, 상영 후에는 영화로 소통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이어진다.
- 2023-05-12 17:26
-
- 전쟁과 항쟁의 역사, 국내의 다크 투어리즘 명소들
- 다크 투어리즘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전 세계적인 핵심 테마는 전쟁과 항쟁(식민지)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들 수 있다. 아직 생소한 개념인 다크 투어리즘을 어떻게 계획하고 즐길지 모르겠다면, 위의 두 역사를 중심으로 명소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PART1. 항쟁의 역사 : 일제강점기 [1] 남산 국치의 길 남산은 낭만적인 야경이 돋보이는 명소로 유명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1876)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 통치를 위한 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당시의 상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 바로 ‘남산 국치의 길’이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도착하면 ‘거꾸로 세운 동상’이 눈에 띈다. 과거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공을 인정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설치했다. 해방 후 당시의 치욕스러움을 기억하고자 사라진 동상의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어 리라초교와 숭의여대로 향해 노기신사와 경성신사 터를 둘러본 뒤에는 케이블카 탑승장 인근 한양공원을 찾는다. 1910년 일본인들이 조성한 곳으로, 당시 공원 입구에 세웠던 비석도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남산을 향해 걷다 보면 옛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일부가 나온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조성한 신사로, 해방 후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철거되며 현재 우리가 아는 남산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한때 연인과의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로 남산을 찾았다면, 한 번쯤 이러한 역사를 한발 한발 따라가 보길 추천한다. [코스] 명동역 1번 출구 ▶ 한국통감관저 터·기억의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 ▶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 경성신사(숭의여대) ▶ 한양공원 ▶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상당 구간이 언덕길이니 이 점 참고하자. 반대 방향으로 돌아봐도 괜찮다. [2]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하 서대문형무소)은 일제강점기 시절 4만여 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곳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철거 논의도 이뤄졌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기능하기 위해 현재의 역사관 형태로 복원됐다. 서대문형무소 하면 붉은 벽돌로 이뤄진 외관이 상징적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따스한 봄볕 아래 그림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외관과 비교해 내부는 삭막하고 음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독방과 고문실, 시구문 등을 복원해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생생히 드러냈다. 당시의 수형기록표나 사진들을 보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모진 세월이 전해져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서대문형무소는 올 한 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시민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온라인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방문 당시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이끈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외교’를 주제로 강의가 열렸다. 이날 소개된 독립운동가는 황기환, 이희경, 나용균이었다. 강의에 참여한 한 시민은 “김구나 윤봉길처럼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처음엔 생소했다. 세 분의 역사를 들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고,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강의를 준비한 김철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사는 “과거 서대문형무소는 인왕산, 안산, 무악재 고개로 둘러싸여 있어 수감자들의 탈출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 현저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년 방문객들이 등산을 겸해 오시기도 한다. 아울러 실제 수감자들의 후손이나 가족들이 오기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모임을 꾸려 자체적으로 투어를 즐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교훈여행(다크 투어리즘의 우리말)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분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신념을 느껴보셨으면 한다. 또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신 후에는 근처의 독립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등도 찾아도 좋겠다”고 조언했다. [코스] 독립문역 5번 출구 ▶ 서대문독립공원 입구 ▶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독립문 맞은편) *독립문을 기점으로 왕복하는 코스로, 역사적 사건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PART2. 전쟁의 역사 : 한국전쟁 [1] 피란수도 부산 소막마을 지난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확정됐다. 현재 부산시는 2028년 등재를 목표로 지속 연구와 관리에 힘쓰고 있다. 부산에는 유독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이 눈에 띄는데, 이 또한 피란기의 흔적이다. 한국전쟁 후 40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몰려든 피란민들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 높은 언덕까지 판잣집을 지어 올렸던 것이다. 선별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총 9곳으로, 그중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도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2018,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15호 지정)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소를 수출하기 위한 검역소와 소막사가 있었던 곳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공업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여러 형태의 집들로 변모해 현재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한국의 근대화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산물인 셈이다. [코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등 총 9곳이다. 하루에 몽땅 급하게 둘러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피란민들의 삶을 음미하며 살펴보길 바란다. [2] DMZ 평화의 길 시간을 두고 여러 날에 걸쳐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한다면, ‘DMZ 평화의 길’을 추천한다. 도보 여행가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테마 코스 중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통일부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조성한 길이다.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꼬박 1년 뒤인 2019년 4월 27일 강원도 고성 구간이 처음으로 개방됐다. 이로써 일반 시민들도 DMZ(비무장지대)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철원, 파주, 양구 등 구간이 속속 개방되며 현재 총 11개 코스가 마련됐다. 전 구간 예약탐방제(두루누비 사이트 이용)로 운영되며, 올해는 대체로 4월 하순부터 예약을 시작해 11월 전후로 마감될 예정이다.(여름 혹서기 및 장마 기간 임시중단) [코스] 강화 코스, 김포 코스, 고양 코스, 파주 코스, 연천 코스, 철원 코스, 화천 코스, 양구 코스, 인제 코스, 고성 A코스, 고성 B코스 *현재 고성B코스는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Interview]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어두운 역사의 흔적에서 오늘의 교훈을 얻길” 최근 유행인 ‘다크 투어리즘’을 오래 전부터 주목하해온 이가 있다. 2017년 출간 도서 ‘다크투어’의 저자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다. 서울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곳곳을 여행하다 다크 투어리즘에 눈을 떴다. 현재 그는 역사문화 여행 모임 ‘컬처클럽’을 7년째 운영 중이다. 모임을 통해 국내외를 누비며 직접 도보여행 길도 발굴한다. 저서에 소개된 '대한 제국의 길', '서대문의 길', '용산의 길' 등도 직접 개발한 다크 투어리즘 루트다. 그런 김 대표를 통해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해봤다. Q. 중장년들에게 다크 투어리즘을 권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A. 사람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역사가가 됩니다. 각자 역사의 증인이고, 역사평론가가 되며, 아마추어 역사가가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든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역사관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관광을 하면 화려한 곳, 훌륭한 곳, 멋진 곳을 가기 쉽습니다. 이런 것을 그랜드투어(grand tour)라고 하죠. 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과거의 어두운 곳을 찾아 역사의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dark tour)도 필요합니다. 이런 곳에서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또, 역사의 교훈을 얻어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실패에서 얻는 교훈, 재발방지 다짐을 하게 되는 거죠. Q. 다크 투어리즘 현장에서 유념해야 할 에티켓이 있을까요? A.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면 자신의 단견으로 이해해버리거나 현지에서 가볍게 말하기 쉽니다. 즉 공부가 필요하죠. 사건과 관련된 주민들도 만날 수 있는데 역사를 모르면 섣부른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겸허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큰 목소리는 삼가는 게 좋습니다. Q. 해외와 비교해 국내 다크 투어리즘이 지니는 특징이 있나요? A. 예전에는 한국에서 다크 투어리즘 장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가면 안내판이 없고, 유적, 유물이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았지요. 근래에는 다크 투어리즘 관련 문화 유적을 많이 발굴하고, 기념관, 유적지, 친절한 안내판, 간단한 표지석 등을 두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현재는 외국과 수준이 비슷해졌습니다. 다만 몇몇 장소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어둡게 만들어져 있어 과도한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Q.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A. 다크 투어를 할 때에는 진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열 군데, 스무 군데 리스트를 만들어 많이 다녀왔다한들 큰 의미는 없습니다. 현장을 제대로 알려는 호기심, 진정성이 바탕이지요. 다크 투어리즘이 좋다고 너무 연달아 가는 것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너무 몰입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여행지와 섞어서 다니길 권합니다. ※ 자료 제공 및 도움말 한국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2023-05-03 08:39
-
-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삼각관계가 끝난 날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남편의 장례식에 그 여자가 왔다. 경황이 없던 터라 옆에 있던 친구가 “혹시 저 여자 아니냐?”며 귀엣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주에게 인사를 건네기는 고사하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안개처럼 스며들어 소리 없이 조문을 하고는 그림자처럼 홀연히 자리를 떴으니. 나중에 부의금을 챙길 때도 그 여자 것은 없었다. 철저히 존재를 감춘다는 것이 오히려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할지. 다녀간 걸 알고 나니 부의금을 내지 않은 이유가 짐작되면서, 꽁꽁 감춘다고 감춘 것이 티를 낸 꼴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남편 장례식에 그 여자의 등장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 이제 와서 좋다 나쁘다 할 게 뭔가. 이미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두 여자의 심리적 줄다리기도 남편의 사망으로 맥없이 끝이 나버렸으니. 한쪽 줄은 남편과의 내연 관계인 그 여자가, 다른 쪽 줄은 아내인 내가 잡고 있던 줄다리기. 간호사와 환자로 만나 결혼 위암 판정을 받은 남편은 꼬박 1년을 투병한 후 세상을 떠났다. 47세였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증상이 잦아 소화제로 버티다 못해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암이었다. 남편은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치료는 하되 아울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도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니까요” 하는 말로 대꾸했을 뿐이었다. 문학청년, 아니 문학장년다운 말이었다고 할지. 감정적 동요를 거의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이이가 이 정도로 담대한 사람이었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아니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실감을 못 하는 건가?’ 하고 놀란 건 되레 나였다. 아니면 본인이 진단받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내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의연함을 가장하는 건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남편의 암 진단 후에도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겠나. 현실은 더 힘들어졌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야속했던 건 남편이 아니라 오히려 나였던 것 같다. 결혼 전부터 해오던 일을 결혼 후 아이 출산하고 산후조리 때 잠깐 쉬었을 뿐 20년 넘게 해오면서, 막말로 죽을 날 받아놓은 남편이건만 그때조차 옆에 있어 주질 못했으니. 남편을 떠나보낸 지금, 만약 옆에 있어 주느라 생활비에 치료비도 감당하지 못했다면 그나마 1년 투병도 채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간호사다. 3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해 경력 따라 연륜 따라 52세인 지금은 중간급 병원의 수간호사로 근무 중이다. 남편은 나의 환자였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로맨틱한 설정의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간호사와 환자 관계에서 부부가 된 경우였다.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무난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 무난함을 지탱해준 것은 두말할 여지 없이 내가 가지고 오는 일정한 수입이었고. 결혼 후 지금까지 돈을 벌어본 적 없는 남편이 묵묵히 가사와 살림을 꾸려온 것도 우리 결혼의 무난함에 일조했음을 물론 인정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녀의 전통적 역할을 바꾼, 바깥일하는 아내 집안일하는 남편 구도의 가정이었던 것이다. 다만 남편은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또 하나의 아내처럼 의지하며 지냈고, 나는 그런 두 사람 관계를 묵인한 채 결국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정리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렇다. 무난했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처음부터 결코 무난할 수 없었던 결혼 생활이었음을 인정한다. 애초 우리의 결혼은 세 사람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문학폐인 단짝이 내연녀로 그해 추석 명절 연휴 마지막날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밤늦게 병원에 온 30대 후반의 남자. 그날 나는 야간 근무 중이었다. 미혼인 데다 뒤늦게 간호학을 전공한 나이 많은 새내기 간호사였던 나는 명절마다 당직이나 야간 근무에 배정됐다. 가정을 가진 선배 간호사들을 대신해 당연한 양보라고 생각했기에 딱히 불만도 없었다. 명절이라 봤자 갈 곳도 없었기에 더욱. 오빠 집에 갈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안 계신 친정은 이미 친정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연이어 돌아가신 지 2년, 3년 정도밖에 안 되었던 때라 명절에 간다고 해도 눈치나 푸대접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오빠는 몰라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올케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 교회에 다녔던 우리 집은 차례도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차례 핑계를 대고 찾아갈 명분도 없었다. 세상 아래 피붙이라곤 오빠와 나 남매뿐이었지만,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그다지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으니 부모님이 떠나신 마당에 새삼 가까이 지내지도 않았다. 이래저래 명절 근무는 갈 곳 없는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연휴에는 환자가 많을 때도 있고 아주 없을 때도 있다. 그야말로 환자 마음. 그해 추석 명절은 환자가 없는 편에 속했다. 밤 11시경 응급처치를 받은 그 남자, 미래의 내 남편은 장염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다음 날 정식으로 치료를 받고 며칠 입원하는 정도로 회복되었는데, 그 며칠 사이에 그와 나는 상당히 가까워져서 1년 만에 결혼을 했다. 내 나이 40을 넘긴 때였다. 내가 남편 내연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결혼 후 5년 만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 연인 중 한쪽이 결혼을 하자 둘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결혼하지 않은 여자 쪽이 내연녀로 자리를 옮겨 앉은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 남편은 애인이 있는 남자, 그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결혼한 남자였던 것이다. 둘은 왜 결혼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의 무능력 탓이었다. 돈 벌 재주가 없었던 사람, 어쩌면 돈 벌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니 두 사람은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쪽에서도 돈 벌 능력이 없었을 테고. 두 사람은 작가 지망생이었다. 둘 다 대학 문예창작과를 다니던 중에 어느 문학 단체에서 만났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갔지만 두 사람 모두 글은 써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서로 간의 연민과 공감대가 깊어갔을 것이다. 고시폐인, 공시폐인 등 폐인증후군 중에서 이른바 ‘문학폐인’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경제력 있는 내가 남편 눈에 띄었고 남편은 운 좋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던 것이다. 물론 그는 결혼과 동시에 그 여자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됐을 뿐. 나는 병원 일로 정신없다 보니 남편의 정서적 빈자리는 풋풋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그 여자가 메워주었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관계 정리 만약 남편이 자기 일이 있었다면,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이 있었다면 결혼과 함께 그 여자와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지 못했다. 마흔 살이 넘으면서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고, 그럴수록 그 여자와의 유대는 더 깊어졌을 것이다. 그 여자로선 어차피 결혼 상대가 없을 바에야 남편만큼 편한 사람이 또 있으랴. 내가 번 돈이 그 여자한테로 쏠쏠이 넘어갔을 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 때가 있지만 그 또한 다 지나간 일이다. 둘 사이를 알게 된 것은 소설을 쓴답시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인터넷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어느 날 내가 퇴근하기 직전까지 둘이 속닥거리다가 미처 컴퓨터를 끄지 못한 상태에서 들켜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병원에 있는 낮 시간 동안 두 사람은 SNS나 전화로 늘 교류해왔던 것인데, 핑곗거리로도 얼마나 좋은가. 글에 관한 대화 중이었다고. 자기들 스스로도 단지 글 이야기를 하는 거라며 관계를 합리화했을 테고. 돌이켜보면 남편이 그 오랜 세월 묵묵히 살림을 맡아 꾸려준 것도 내가 출근한 사이에 가지는 그 여자와의 밀회 덕이었으리라. 내가 알게 된 이상 두 사람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정리되었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 쪽에서 그 여자를 만나 헤어져달라고 말한 것도 정리에 대한 경고의 몸짓은 되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이혼하지 않는 이상 어쩔 것인가. 남편을 믿을 수밖에. 그러나 내 쪽에서 다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다. 그랬다. 나는 묵인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3년 후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안 후에도 두 사람이 계속 만났는지, 아니면 관계를 정리했는지 나는 모른다. 남편이 떠난 지금 남편과의 추억을 그 여자와 나눠 가진다고 해서 억울할 것도 없다. 다만 추억의 부피로나 깊이로나 나보다 그 여자의 것이 훨씬 두껍고 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를 쓰라리게 한다. 그의 아내는 내가 아니라 그 여자이고 내 인생은 두 사람을 먹여 살리느라 흘러간 게 아닐까 하는 자학적 망상에 빠져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세 사람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 나게 됐으니….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2023-02-22 08:36
-
- 모두의 추억이 되는 소르본의 오래된 골목 여행
- 그 무렵 일상이 심드렁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사상 최고의 폭염이라는 여름도 간신히 버텨냈고 슬슬 가을이 되고 있었다. 툭하면 머리가 지끈지끈거렸고 개운치 않은 컨디션은 때로 우울하게 했다. 누군가의 낯부끄러운 이기심을 보며 가까이한 것을 후회했고 어떤 이의 유치하고 얄팍한 이중성은 슬프거나 정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내야 하는 소심함이 힘겨웠다. 무엇이 기다릴지 몰라도 잠깐이라도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끓던 중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파리를 제안해 왔다. 거기서 며칠 쉬다가 세비야와 마드리드를 거쳐서 돌아오자고 말하는 남편의 생각에 묻지도 따질 것도 없이 동의했다. 눈 빠지게 그의 휴가 승인을 기다리느라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파리를 거쳐 또 다른 유럽으로 가는 일정이다. 파리를 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거쳐가는 도시로 파리가 좋았다. 잠깐이어도 괜찮다. 스치듯 지나쳐온 단 이틀간의 파리가 가라앉은 내 심장을 조금씩 살아나게 했으니까. 예측하지 못했던 일로 지치고 기운 다 빠졌던 드골공항에서 탄 RER 열차가 뤽상부르 역에 닿았다. 파리다. 파리라는 것만으로도 슬슬 기분전환이 되기 시작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 안에서 살짝 어이없는 일이 있었지만 가라앉았던 기분은 집어치우자며 심기일전의 심호흡을 길게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날린다. 여기도 가을과 겨울 사이쯤이다. 마음껏 늦가을을 즐기는 파리지엔들 틈에서 내 기분도 조금씩 생생해졌다. 빵집 진열장의 알록달록한 마카롱 더미를 보면서 아하, 파리구나 했고 샹송에서나 듣던 어조를 지나가는 연인들의 말소리에서 들으며 나 떠나왔구나 실감했다. 떠나옴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주변을 온통 둘러쌌다. 거리의 밤바람이 그랬다. 걸을 때마다 눈앞 여행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상의 이야기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발 딛고 서 있는 낯선 풍경 속에서 심장의 동요가 느껴지는 것, 이미 두근거리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소르본 대학 주변의 숙소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는 대학가의 학구열보다는 어렴풋한 소설의 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제목도 내용도 기억에 없지만 희미한 가로등 불빛 한 점 빛나던 소르본의 골목 풍경을 읽었던 듯했다. 어렴풋한 기억이 오히려 아련한 기분으로 감성을 부추긴다. 그리고 문득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재클린이 생각났다. 소르본이라는 이름으로 얼핏 그 두 명이 떠올랐던 것이다. 고작 대중적 인지도만으로 떠올려지는 내 수준으로 연결되는 소르본 골목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한결 친근하다. 연상법의 흐름이란 참 편리하다. 그녀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문학적 배경이 되고 그녀들의 빛났던 인생의 초석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여자가 소르본 대학 학생이었다. 비엔나행 열차에서 만난 남녀의 끊이지 않던 대화가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낸 것으로 기억한다. 어딜 가든 영화 속의 풍경이나 ost가 순간순간 떠오르거나 책 속의 배경이나 여행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시도 때도 없이 생뚱맞게 불쑥 오버랩되는 건 오랜 내 습관이다. 무엇보다도 어둔 밤거리가 활기차다. 구획이나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는 생미셸 거리의 대학가는 가을바람이 휙휙 불어대는 쌀쌀함 덕분인지 순식간에 상쾌하게 기분전환이 된다. 백 년 전에도 있었을 듯한 골목이다. 대학 건물 벽의 오래된 낙서가 이야기가 있는 벽화처럼 재미있는 볼거리다. 길 가다 손잡이를 열면 나를 압도할 그들의 견고한 학문이 맞아줄 것 같은 상상을 하며 그 담벼락 옆 소르본의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젖은 낙엽이 발에 밟히는 거리 주점에선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밤늦도록 들려왔다. 숙소 창문을 열고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고 스민 골목을 자정이 넘도록 내다보았다. 노천카페와 서점들로 이어지는 소르본 대학 주변을 산책하며 비로소 심폐 소생하듯 되살아나는 기분을 감지했다. 소르본 근처 호텔의 아침식사는 간단했다. 그런데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며 신기한 실내 구조를 보며 놀랐다. 마치 마리앙뜨와넷뜨나 루이 14세 시절에 죄수나 반역자들을 가두었던 지하 감옥이 떠올려진다. 언젠가 책에서 그 옛날 프랑스 어느 지하 감옥이 대학 주점으로 변모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또한 떠올려졌다. 역사가 느껴지는 특별한 실내 분위기였다. 참 쓸데없는 상상력이란. 천정이나 벽이 울퉁불퉁하다. 실내가 네모거나 원형도 아닌 멋대로 삐뚜름한 내부 공간에 정갈한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요란하게 잘 차려진 아침이라기보다는,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나는 누군가의 소박한 주방의 간편한 아침시간 같은~수수한 듯 참 인상적인 분위기여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뭐니 뭐니 해도 바게트 맛은 내가 맛본 중에서 가장 최고다. 쌉싸래한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통통한 빵의 굵기와 겉 부분의 크러스트가 단단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하다. 그 안의 빵 결은 촉촉하고 쫄깃해서 물리지 않고 끝없이 먹게 된다. 그 맛에 배가 부른데도 마구 먹어댔다. 우리의 주식은 밥이기에 빵만으로는 오래 먹기 쉽지 않다.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고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빵심으로 산다는 걸 이해하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다. 다음에 또 갈 일이 있을까만 만일 다시 간다면 맛있는 바게트를 찾아서 실컷 먹고 올 생각이다. 빵이 맛있던 소르본 어드메의 골목길이 유난히 떠오른다.
- 2023-01-27 09:23
-
- “귀엽거나 웅장하거나” 계묘년 1월 문화소식
- ●Exhibition ◇어제의 미래 : 마리아 스바르보바 일정 2월 26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슬로바키아의 젊은 사진작가다. 동화 같은 색감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바르보바는 2016년 국제사진공모전(IPA) 수상을 시작으로 ‘포브스’에서 선정한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30인에 선정됐다. 2018년에는 핫셀블라드 마스터 아트 부분 1위에 올랐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어제의 미래 : 마리아 스바르보바’(Futuro Retro : Maria Svarbova)는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총 5개 섹션에 174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전시의 주요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스위밍 풀’(Swimming Pool)을 비롯해 ‘정육점’, ‘더 게임’, ‘휴먼 스페이스’, ‘걸파워’ 시리즈 등이다. 스바르보바의 작품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 속에 사회 비판의식을 담았다. 프레임 속 인물들이 무표정을 짓고 있고 경직된 행동을 하는 이유다. ◇헬가 스텐첼 사진전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CXC 아트 뮤지엄 빨랫줄에 널린 빨래가 말이 되고, 양상추와 식빵은 강아지가 됐다. 이는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 헬가 스텐첼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집 안의 초현실주의’(Household Surrealism)로 불린다. 일상의 사물에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헬가 스텐첼은 2020년에 ‘올해의 푸드 아트 크리에이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헬가 스텐첼의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사진 작품 70여 점을 볼 수 있다. 작가의 대표작은 지난해부터 선보인 ‘빨랫줄 시리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좋아요’ 5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 ●Stage ◇영웅 일정 2월 28일까지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윤금정 출연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 김도형, 서영주, 최민철, 정재은, 린지 등 지난해 12월 21일 뮤지컬 ‘영웅’이 개막했다. 같은 날 동명의 뮤지컬 영화도 개봉했다. 두 ‘영웅’에는 정성화가 안중근으로 출연한다. 정성화는 2009년 초연부터 현재까지 뮤지컬 ‘영웅’에 출연하며 14년째 안중근을 연기하고 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창작 뮤지컬로 통하는 ‘영웅’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다. 극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그의 마지막 1년을 깊이 있게 그린다. 이번 시즌에는 정성화와 함께 양준모, 민우혁이 안중근 역을 맡아 연기한다. 이토 히로부미 역에는 김도형, 서영주, 최민철이 출연한다. ◇베토벤 일정 1월 12일 ~ 3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연출 길버트 메머트 출연 박효신, 박은태, 카이, 조정은, 옥주현, 윤공주, 이해준, 윤소호 등 ‘베토벤’은 뮤지컬 제작사 EMK의 다섯 번째 오리지널 작품이다. 제작 기간만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베토벤의 실제 삶을 모티브로 아름다운 구원의 서사가 펼쳐진다. 넘버 또한 베토벤의 음악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대작의 탄생을 예고한 만큼 라인업도 화려하다. 박효신, 박은태, 카이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을 연기한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는 조정은, 옥주현, 윤공주가 연기한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일정 1월 28일 ~ 3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김동연 출연 정문성, 이상이, 김성철, 정소민, 채수빈, 김유정, 송영규, 임철형 등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199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2014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첫선을 보인 뒤 세계 각국으로 진출했다. 국내는 이번이 초연으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특히 정소민과 김유정은 첫 연극 도전이다. 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사랑으로 탄생했다는 유쾌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1593년 런던, 촉망받던 작가 셰익스피어가 연극 오디션에 남장을 하고 찾아온 귀족의 딸 비올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3-01-13 08:34
-
- 내게 안달 난 돈 많은 이혼녀에 학을 뗀 사연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전화 주실 줄 알고 기다리다 다시 해요.” “응… 손님 만나는 중이어서….” “그랬어요? 그럼 그렇다고 문자라도 주시지… 나는 함께 점심하려고 전화했던 건데.” “손님과 점심 약속을 했던 터라… 미리 말하지 그랬어?” “미리 말한다고 약속 잡아주실 것도 아니면서.” “뭐 어쨌든. 그나저나 잘 지내고?” “네, 저는 잘 지내요. 조만간 점심 사드리고 싶네요.” “점심은 무슨. 됐고.” “그럴 줄 알았어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예의 그 ‘손님’이 화장실을 가는 척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는 바람에 통화가 오히려 길어졌다. 점심 식사 중에 그 여자의 전화가 왔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 손님과의 자리가 대단히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핑계 삼아 그 여자의 전화를 따돌리고 싶었을 뿐. 손님이라야 등산을 함께 다니는 동네 지인으로 별 용건 없이 그냥 점심이나 함께하자는 게 다였으니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전화했어?” “보고 싶으니까 했죠. 얼굴 본 지도 오래됐고.” “우리가 얼굴 보고 싶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만날 사인가? 아무튼 난 지금 바빠. 그만 끊자고.” 얼굴 보고 싶다며 자유로이 만날 수 없는 사이, 만나면 부담스러운 사이, 껄끄러운 사이. 그렇다, 그녀와 나는 옛 연인 사이다. 눈 씻고 찾으려 들면야 한 자락 추억이야 없지는 않겠지만 그딴 건 찾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수록 씁쓰레함만 남은 관계. 그런데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아직도 내게 미련이 있다는 거겠지만, 나는 한마디로 노 생큐!다. 안 그러면 또 뭘 어쩔 건데? 지금 와서 내가 뭘 해줄 수 있다고. 헤어진 지 벌써 3년인데. 사업 실패와 연이은 가정 붕괴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한 100억 정도 가진 재산가다. 굳이 돈을 강조하는 이유는 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적다.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다. 그런 조건 좋은 여자가 내게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얼마나 조건이 좋은 남자길래 그런 잘난 여자가 죽자고 매달리는 거냐고? 나는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그렇다고 백수건달이나 제비족은 아닌, 어쨌거나 그녀에게 만만하게 보인 50대 중반 독신남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의 세 번째 남편감이냐고? 천만에 말씀! 누구 맘대로! 10년 전 나는 사업에 실패했다. 40대 중반이었다. 그 여파로 아내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이던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리자 가족들로부터 보기 좋게 버림을 받았다. 물론 내 잘못이 컸다. 외국 유명 브랜드 의류 수입상을 했던 나는 불황을 맞아 기울어가는 사업체를 정리할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어떻게든 살려보리라 무모한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나를 설득하며 마음 졸이다 못해 인내심이 바닥 난 아내는 반은 홧김에, 반은 살 길을 찾아 미국 친정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가정과 사업체가 박살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는 물론 생이별한 자식들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자살할 궁리만 모색하던 처참한 나날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고통 많은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자살 생각으로 가득 찼다. 1년 후 이혼 서류를 보내온 아내의 요구에 이렇다 할 대꾸나 변명 한마디 없이 응했던 것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탓이었다. 그럼에도 늘그막에 외손주 둘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해주시는 장인 장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처가의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어쨌거나 두 아이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보다 장래가 밝아진 게 아닌가. 그 와중에 아내는 나에 대한 원망과 일말의 복수심으로 나와 아이들의 관계를 차단한 것이리라. 나는 나대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서로를 이해하고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내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일거리도 없고 재기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간간이 들어오는 경영 계통 강연 수입으로 그때그때 생활비를 벌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등산과 마음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망한 나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아, 그녀는 사업상 나의 고객이었다. 내가 쫄딱 망한 것을 알고 호감을 표해온 것이었다. 쫄딱 망한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게다가 한 미모하는 이혼녀. 로또 대박과 맞먹는 행운이 아니냐고? 게다가 아내까지 미국으로 내뺀 상황이었으니. 글쎄, 계속 들어보시라. 나도 처음엔 그녀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재기를 꿈꿨다. 그녀를, 아니 그녀의 돈을 통해 회생할 가능성을 탐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도 불쌍한 여자다. 그녀의 인간관계, 특히 남자관계는 늘 돈이 중심이었다. 첫 결혼도 두 집안이 서로 돈을 보고 딸과 아들을 교환했던 것이니 애정 없는 혼인 생활이 평탄할 리 없었고, 결국 남편의 외도로 3년 만에 파탄이 났다.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그녀 측에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탐냄으로써 이뤄졌다. 20년 연상의 재벌급 홀아비, 그녀로서는 재력적 지위가 급상승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기쁨도 하늘을 찔렀다. 재물에 마음이 꽂힌 사람들은 더 많은 재물을, 권력을 탐하는 부류들은 더 높은 자리를, 인기몰이에 집착하는 자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무한 인기를 갈구하는 법이니. 사람은 저마다 우상을 모시고 살며, 우상 숭배란 맹목적인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미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돈에 집착하고 돈에 갈증이 든 그녀를 탓할 수만은 없는 게 아닌가. 그녀 부부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에너지를 쏟을 곳이라곤 오직 돈에 관계된 것이었기에, 앞뒤 재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인 것이 화근이 되어 많은 돈을 잃고 그만 이혼을 당하고 말았다. 두 번째 이혼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만난 것이다. 비록 이혼을 했어도 받은 위자료와 본인 재산 등으로 내게 대줄 수 있는 사업자금은 충분했다. 자, 이런 상황이다. 처음에야 나도 횡재한 기분이었다. 속물이라 욕해도 상관없다. 사실이니까. 거처가 마땅찮았던 나는 바로 강남에 있는 그녀의 80평대 아파트로 들어갔고,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됐다. 1년이 지났을 무렵, 한마디로 나는 그녀에게서 환멸을 느꼈다. 그녀는 오직 돈, 돈, 돈만 알 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돈 타령에, 아마 꿈조차 돈에 대한 것을 꿨으리라. 그녀에게서는 어떤 내면의 향기도, 내적 감수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동안 책은 고사하고 글 한 줄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사색에 잠긴다거나 주변이나 일상에서 감동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자연에 대해서도 교감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아마도 푸른 여름은 만 원권 지폐로, 노란 가을은 오만 원권 지폐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그녀의 아파트를 나왔다. 들어갈 때도 맨몸, 나올 때도 맨몸. 여전히 집도 절도 없었던 나는 TV 프로그램 속 자연인처럼 어느 산자락 빈집에서 한 달가량 몸을 의지해 있었다. 그 후 낯선 소도시로 흘러들어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작은 강연, 독서 모임 등을 이끌면서 내 입을 먹이며 살고 있다. 나와 그녀의 관계에는 환멸만 남고 혹자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내면이니 감수성이니 그딴 게 밥 먹여주냐고. 봉을 잡았으니 빌붙어서 몸이라도 편할 수 있지 않았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단 한번 살아보시라. 입만 열면 돈타령에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여자, 나는 열을 준대도 덧정 없다. 만약 그 여자가 그나마 머리에 든 것이 있는 나를 흠모하여 자신에게는 없는 지성이나 교양을 취해보리라는 갸륵함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환멸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애초에 그런 코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서 무엇을 보고, 내가 가진 어떤 점이 그녀를 끌어당겼을까. 돌이켜보면 그녀는 나를 자기 재산 증식시켜주고 관리해주는 머슴 정도로 취급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디 가서 재산을 불릴지, 하나보다는 둘이 힘이 되니 속된 말로 만만한 나를 ‘꼬붕’으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애초 애정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녀에게 애정 같은 감정과 정서가 있기나 할까. 내가 아는 한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인간에 대한 신뢰나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했으니. 설혹 내게 사업자금을 대주었다 해도 내가 원하는 일을 자유로이 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녀의 이해관계와 연결되는 것에 한해서 허용하는 게 고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녀가 지금도 내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니 불쾌할 수밖에.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자는 지성, 외모, 상식과 자존감을 갖춘 사람이기가 어려울까? 솔직히 그럴 것 같다. 그런 여자들은 남자 또한 엇비슷한 수준에서 만나고 싶어 할 텐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능력 면에서 현저히 기울어져 있으니 두루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친 여자들만 꼬인다고 할지. 겨우 한 여자 만난 것을 두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냐고? 내가 설마 한 여자만 두고 그러겠나. 그 사이에 두 여자가 더 내게 호감을 표해왔는데 역시 비슷한 여자들이었다. 돈밖에 없고 천박한. 돈 많고 무식한 여자, 돈밖에 모르는 여자들이 꼬이는 것이 내 운명이고 팔자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2022-11-17 08:41
-
- 20년 전 도망갔던 약혼자 그 이유가 기가 막혀!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요즘 50대 이후 연령에서 옛 애인 찾기가 유행이란 소리는 들었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될 줄이야. 내가 그의, 그가 나의 옛 애인이라고? 콧방귀 나올 소리 아닌가. 개 풀 뜯는 소리 작작하라지. 그와 나는 연인이 아니라 약혼한 사이였으니까. 아련하고 쌉싸름한 추억의 대상은 고사하고 악연도 그런 악연이 없었던 사람들끼리 세월 지났다고 관계를 미화해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 작자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시도를 하는가. 폭력적일 만큼 일방적이던 태도가 20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면 이번에는 내 쪽에서 모지락스럽게 멱살을 틀어쥐고 따져볼 기회가 온 건가? 찾으려고 들면 바로 찾을 수 있으련만 옛 애인 찾기 운운하며 접근해온 것이 장난스럽게 들려 더 불쾌하다. 무엇보다 이제 와서 날 찾아 뭘 어쩔 거라고. 상견례 날의 비극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님을 모시는 상견례 날. 가뜩이나 해 짧은 겨울철, 시간을 저녁으로 잡은 것부터가 불행의 서막이었을까.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그날도 오후 4시경부터 내리던 눈이 약속 시간인 7시가 가까워올 무렵에는 제법 쌓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점심에 친구들에게서 축하 술을 몇 잔 받았다는 그가 염려되어, 그의 직장으로 내가 가서 함께 상견례 장소로 가기로 했다. 내 차를 그의 회사 주차장에 세워두고 그의 차로 같이 가면 눈길 운전에도 다소 안심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날 만약 각자 따로 이동했더라면, 그가 낮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폭설이 쏟아져서 약속이 취소되었더라면, 다 관두고 애초 그와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하고 질긴, 죽어야 끝이 날 만약에 게임. 만약에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뜬금없는 연락은 얼마나 잔인한가. “운전할 수 있겠어? 내가 할까?” “무슨 소리야, 얼마 안 마셨어. 그리고 지금은 다 깼어. 자기가 구태여 온다고 하길래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라고 한 거지, 나 때문에 올 필요는 없었어.” 아닌 게 아니라 그에게서 술 냄새는 거의 맡을 수 없었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설마 낮에 퍼마셨을 리는 없잖은가. 퇴근길 차량들이 도로로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다. 그날 나는 마사지도 받고 미용실에도 가느라 오전 근무만 했기 때문에 퇴근 풍경이 낯설고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모습처럼. 그날 이후 실제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눈길 안전 운전 당부와 도심 정체 구간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 또한 눈발처럼 쏟아졌다. “똑같은 소리 짜증 나. 웬 호들갑이야. 별로 많이 오지도 않는데.” 거칠게 라디오를 끄더니 반복되는 기상 방송에 대한 반감처럼 그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순간 충격으로 어찔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탓인가? 적당히 마실 일이지, 다른 날도 아니고 상견례 자리에 나오실 어른들께 경솔하고 무례한 태도 아냐? 신경이 예민해진 나도 슬며시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눈 내리는 퇴근길과 맞물렸으니 혹여 늦는다고 해도 양해를 구할 수 있으리라, 차라리 함께 이동하는 것이 잘된 일’이라 생각됐다. 둘이 같이 늦으면 양가 중 어느 한쪽이 불쾌할 일도 없을 테니까. 내 기억은 거기서 더 나가지 못한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눈을 뜬 곳은 상견례장이 아닌 대형 종합병원. 우리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았고, 놀라운 것은 사흘이 지나서야 내가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3일간 내 인생이 장애자의 길로 방향을 트는 동안 경미한 부상을 입고 응급처치를 받은 그는 곧장 귀가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불구로 만든 그, 입을 열다 내 두 다리의 감각이 사라지듯이 그렇게 그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고, 20년이 지난 엊그제 옛 애인을 찾겠다며 뜬금없는 연락이 왔으니…. 처음에는 당장 만날 것처럼 굴더니 며칠 후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경애 씨,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지요.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요즘 같은 세상에 알려고만 들면,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쯤이야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알 수도 있지만 경애 씨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무슨 염치로, 무슨 면목으로 경애 씨 앞에 나타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야 실토하지만, 그날 우리의 상견례 날 점심에 친구 녀석들과 술을 마셨던 게 아니었어요. 하필 그날 헤어진 여자가 찾아왔더라고요. 3년 동안 만났던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던 여자였지요. 경애 씨도 그 여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테지만, 자세히 묻지 않길래 나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지요. 나와 헤어지자마자 다른 남자와 결혼한 걸 보면 나를 만나고 있을 때 이미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선 그 남자, 그러니까 남편과 바로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혼인신고도 하기 전이었다며. 그날 나를 찾아왔을 때는 결별한 지 반년이 흐른 후였지요. 이혼 사유는,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 이혼이랄 것도 없지만, 남편이 지독한 마마보이였다나 봐요.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하루는 남편의 샤워 후 벗은 몸을 시어머니가 버젓이 닦고 있더래요. 남편과 시어머니 두 사람 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너무나 익숙한 표정으로. 기겁을 하고는 그날로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를 다시 받아주면 안 되겠냐고 합디다. 하필 우리의 상견례 날에. 많이 혼란스럽고 번민이 되더군요. 내가 아무 미련이 없었다면 속된 생각으로 ‘날 버리고 가더니 쌤통이다, 고소하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더라고요. 버림받았다는 마음에 그간 친구처럼 지내던 경애 씨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서둘러 약혼할 때만 해도 그 사람에게 복수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데 막상 혼자 되어 다시 나타나니 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그저 연민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었던 거죠. 그만큼 저의 미련이 컸던 거겠죠. 그날은 우선 돌려보냈습니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여운을 남긴 채. 그러고는 정신이 아득하니 혼미해졌지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우니 겨우 두 잔 마신 맥주의 취기마저 올라왔고, 그렇게 그날 기어이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과거 여자에게로 잠적한 이유 20년 전 그날에 버금가는 충격이 전신에 번졌다. 파혼 후 그의 소식을 애써 외면해왔기에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고 후 나는 하반신 마비의 불구자가 되었기에 어차피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었으니, 그가 도망가버린 것에 대해서도 혼자 삭여야 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속내와 사정을 감추고 있었다니! 결국 과거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중상을 당한 나를 버린 후 찾아오지 않았다는 건가. 이틀 후 두 번째 메일을 받았다. “경애 씨, 엊그제 메일을 받고 많이 놀라셨지요? 이래저래 나는 경애 씨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겠지요. 경애 씨의 일상을 다시 흔들고 있으니까요. 이미 내다 버린 가증스러운 놈을 쓰레기장에서 다시 집어 든 느낌이겠지요. 이런 파렴치한 나를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으니 경애 씨의 용서를 구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바로 그 여자에게로 갔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경애 씨가 그날 다친 것이 마치 내가 그 사람에게 가도 좋다는 운명의 허락처럼 느껴졌습니다. 장애자가 된 경애 씨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을 테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람을 더 사랑했으니까요.” 여기까지 읽는데 부아가 치밀었다. 만약 우편 편지로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북북 찢어버렸을 것이다. 이 자식이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20년 전에도 나를 조롱하더니 또 나를 갖고 노는 저의가 뭐야? 옛 애인 찾기 사이트를 뒤적여 나를 찾아내 기껏 한다는 소리가…. 분노로 울렁대는 가슴을 꾹꾹 누르며 메일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날의 사고는 전적으로 제 책임임을 통감합니다. 머리를 조아려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후 경애 씨의 다리가 되어 평생 죗값을 치러도 모자랄 판에 그대로 도망쳐버렸으니 천벌 받을 짓이었지요. 그런데 정말 천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실은 제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경애 씨처럼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3년 만에. 그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오늘 메일을 드립니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지만 왠지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 입으로 직접 하는 것이 제게는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아내의 발과 다리가 되어 삽니다. 경애 씨에게 했어야 할 일을 지금의 제 아내에게 하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어떤가요? 이제 좀 속이 시원하신가요? 복수를, 원수를 갚은 것 같은가요?” 머릿속이 안개로 자욱해졌다. 무슨 이런 장난 같은 일이….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은 정녕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인가. 그건 그렇고 왜 하필 옛 애인 찾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나를 찾았던 걸까. “경애 씨의 근황을 미리 좀 파악할 수 있을까 해서였어요. 특별히 다른 뜻은 없었어요. 미리 좀 알게 된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되레 결례가 되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드네요. 이래저래 죄송합니다.” 내 속을 읽은 듯이 메일이 날아들었다. 연달아 받은 세 통의 메일, 이제 내가 답신을 보내야 할 차례인가. 나는 무슨 말을 그에게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아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2022-10-27 17:32
-
-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10월 문화소식
- ●Exhibition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사진전 일정 8월 4일 ~ 11월 13일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사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미국 뉴욕 출신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사진전이다. 지난해 9월 시작한 유럽 투어 이후 첫 아시아 투어다. 비비안 마이어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사진 270여 점과 생전 사용했던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카메라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마이어가 1959년 필리핀·홍콩·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 등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들이 최초로 공개됐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여러 가정에서 보모로 일했다. 하루에 필름 한 통씩 50년간 많은 양의 작품을 남겼으나, 생전에 그녀의 사진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마이어는 영화감독 존 말루프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말루프는 2007년 마이어의 사진 필름 뭉텅이를 경매장에서 헐값에 사들인 후 2년간 방치하다 사진 일부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네티즌은 그녀의 사진에 열광했다. 이후 마이어는 전시회·사진집을 통해 명성을 쌓았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책과 영화가 나왔다. 마이어의 이야기는 영화 ‘캐롤’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셔터를 누른 마이어는 ‘거리의 사진가’로 불린다. 그녀의 사진에는 위트, 사랑, 빈곤, 우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고,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이 살아 있다. 마이어는 ‘셀피(Selfie)의 원조’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거리의 쇼윈도나 유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주 찍었기 때문이다. ◇이승조 개인전 ‘LEE SEUNG JIO’ 일정 9월 1일 ~ 10월 30일 장소 국제갤러리 ‘파이프 화가’로 불리는 이승조(1941~1990)의 개인전이다. 국제갤러리에서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한 작가의 주요 작품 30여 점을 소개하며 그만의 굳건한 시각언어를 새롭게 조망한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이승조는 가족과 함께 남하했고,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모티브는 ‘파이프’ 형상이다. 캔버스에 단순한 형태와 색조 변이로 시각적 일루전(환영)을 만들어내는데, 파이프가 연상된다. 작가의 회화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평면성과 입체성,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다. ●Book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창비) “50년 동안이나 이 험난한 세월을 시를 쓰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가 출간됐다. ‘당신을 찾아서’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열네 번째 시집으로,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라 더욱 뜻깊다. 이번 시집에는 ‘죽음’에 대한 정호승 시인의 사유가 유독 돋보인다. 시인은 죽음을 새로운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낙과(落果)’), “죽고 싶을 때가 가장 살고 싶을 때이므로/ 꽃이 질 때 나는 가장 아름답다”(‘매화불(梅花佛)’)라고 말한다. 또한 시인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 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모닥불’)고 말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비움’을 제시한다. 시인은 “빈 의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의자”(‘빈 의자’)이고, “빈 물통은 물이 가득 차도 빈 물통”(‘빈 물통’)이며, “빈집은 빈집이므로 아름답다”(‘빈집’)라고 말한다. 담담한 어조로 적어 내려간 시인의 일화들 또한 감동적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낸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회한(‘어머니에 대한 후회’)과 나를 꾸짖을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서럽게 깨닫는 장면(‘회초리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신아연·책과나무) 신아연 작가가 시한부 독자와 스위스까지 동행한 기록을 담은 철학 에세이다. 독자의 죽음을 배웅하고 돌아온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으로 뜨거운 우리 사회에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김영준·김영사) 신라면, 요플레, 에비앙 생수 등 일상에서 사랑받는 제품들은 치열한 경쟁의 생존자다. MBC 유튜브 채널의 인기 콘텐츠 ‘돈슐랭’의 진행자 김영준은 F&B 기업의 성공 사례를 통해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법을 밝힌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쿠니 가오리·소담출판사)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장편 소설이다. 섣달그믐 밤 노인 세 명은 함께 목숨을 끊는다. 이 죽음을 계기로 남겨진 자들의 일상도 새롭게 펼쳐진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가 돋보인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10월 6일 ~ 11월 13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오경택 출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 ‘러브레터’(LOVE LETTERS)는 두 주인공 멜리사와 앤디가 5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특히 배우 오영수와 박정자, 배종옥과 장현성이 커플 호흡을 맞출 예정으로 기대를 모은다. 오영수와 박정자는 1971년 극단 자유에서 처음 만나 50년 이상 돈독한 우정을 이어온 연극계 동료다. 장현성과 배종옥은 꾸준히 연극무대를 병행해온 실력파 배우들로, ‘러브레터’를 통해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냈다. 오영수와 장현성은 멜리사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이며 와스프(WAST, 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슈퍼 엘리트 ‘앤디’ 역을 맡아 연기한다. 박정자와 배종옥이 연기하는 ‘멜리사’는 적극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자유분방한 예술가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일정 11월 8일 ~ 2023년 2월 26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연출 박소영 출연 최호중, 김도빈, 성태준, 조성윤, 박정원, 김현진, 김리현, 김기택 등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관객을 찾는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드(Creative Minds)에 선정된 후 2013년 초연했다. 당시 객석점유율 95%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같은 해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무인도에 표류된 남북한 병사들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작전을 펼치며 융화되어가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히스토리 보이즈 일정 10월 1일 ~ 11월 20일 장소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김태형 출연 오대석, 정상훈, 박은석, 김경수, 안재영, 이지현, 견민성 등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극작가 앨런 베넷의 대표작이다. 1980년대 영국 북부 지방의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내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이번이 6번째 시즌 공연이다. 인생을 위한 공부를 추구하는 문학 교사 ‘헥터’ 역에는 2019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열연한 오대석과 함께 정상훈이 새롭게 캐스팅됐다. 옥스퍼드 출신의 역사학 교사 ‘어원’ 역은 김경수·안재영과 재연부터 5시즌까지 ‘데이킨’ 역으로 참여했던 박은석이 출연한다.
- 2022-10-21 08:42
-
- [카드뉴스] 10월 공연 추천 셋!
- 러브레터 일정 10월 6일 ~ 11월 13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오경택 출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 ‘러브레터’(LOVE LETTERS)는 두 주인공 멜리사와 앤디가 5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특히 배우 오영수와 박정자, 배종옥과 장현성이 커플 호흡을 맞출 예정으로 기대를 모은다. 오영수와 박정자는 1971년 극단 자유에서 처음 만나 50년 이상 돈독한 우정을 이어온 연극계 동료다. 장현성과 배종옥은 꾸준히 연극무대를 병행해온 실력파 배우들로, ‘러브레터’를 통해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냈다. 오영수와 장현성은 멜리사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이며 와스프(WAST, 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슈퍼 엘리트 ‘앤디’ 역을 맡아 연기한다. 박정자와 배종옥이 연기하는 ‘멜리사’는 적극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자유분방한 예술가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일정 11월 8일 ~ 2023년 2월 26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연출 박소영 출연 최호중, 김도빈, 성태준, 조성윤, 박정원, 김현진, 김리현, 김기택 등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관객을 찾는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드(Creative Minds)에 선정된 후 2013년 초연했다. 당시 객석점유율 95%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같은 해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무인도에 표류된 남북한 병사들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작전을 펼치며 융화되어가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히스토리 보이즈 일정 10월 1일 ~ 11월 20일 장소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김태형 출연 오대석, 정상훈, 박은석, 김경수, 안재영, 이지현, 견민성 등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극작가 앨런 베넷의 대표작이다. 1980년대 영국 북부 지방의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내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이번이 6번째 시즌 공연이다. 인생을 위한 공부를 추구하는 문학 교사 ‘헥터’ 역에는 2019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열연한 오대석과 함께 정상훈이 새롭게 캐스팅됐다. 옥스퍼드 출신의 역사학 교사 ‘어원’ 역은 김경수·안재영과 재연부터 5시즌까지 ‘데이킨’ 역으로 참여했던 박은석이 출연한다.
- 2022-10-14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