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eiw 의 저자 이금형 교수
고졸 순경 출신으로 겪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35세에 방송통신대에 들어가 6년 만에 졸업하고, 40대에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석사 학위, 50대에는 박사 학위까지 받으며 만학의 열정을 불태운 저자 이금형. 특유의 긍정 에너지와 노력으로 여성 최초로 치안감 자리에 오른 그녀가 말하는 워킹맘을 위한 현실적인 지침과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마거릿 대처를 닮은 자신의 헤어스타일에는 경찰이라는 정체성이 숨어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부하는 엄마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제목의 책을 낸 계기는?
38년 동안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들이 경찰 후배들이나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어요. 늘 ‘고졸, 순경, 여성’이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는데, 그런 나의 노력이 ‘공부’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었죠. 실제로 경찰 일을 하면서 대학교, 대학원 석·박사를 했고 딸들에게 늘 열심히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어요. ‘시간이 거꾸로 간다’의 의미는 소신과 열정이 있다면 퇴보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죠.
여성 경찰로서 임신했을 때나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병행하다 보니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요. 어떻게 극복해 나가셨나요?
특별히 무언가 관리를 했던 것 같지 않아요.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렇고 경찰 일도 그렇고 마음가짐과 정신자세가 중요하죠.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긍정적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편이에요. 책에도 소개했듯 ‘긍정은 천하를 얻고 부정은 깡통을 찬다’는 말이 있잖아요?
반대로 엄마이기에 여자이기에 더 강점으로 작용한 부분이 있다면?
피해자들을 대할 때 ‘그들이 내 딸이라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도가니 재수사를 지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 아이들을 보며 범인을 꼭 잡아 그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경찰 조직은 남성 중심적인 조직이라 포용력이나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죠. 이러한 부분을 여성들이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책에서 ‘얼마 만에 공부를 마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꾸준히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함께 해준 가족들의 도움도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삶에 가족이 차지하는 역할은 무척 커요. 남편은 경찰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며 조언해주었고,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돌봐주셨죠. 딸들도 어렸을 때는 엄마가 일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청소년기부터는 엄마의 일을 존중해주었어요. 승진시험 때마다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이나 대학교 대학원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는 내 모습이 딸들의 학업과 인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뻐요.
부산지방경찰청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무리했는데요, 인생이모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현재 서원대에서 경찰행정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경찰로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어 보람되고 재미있어요. 또, 한국양성평등진흥원 초빙교수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이사로서 양성 평등 문제와 청소년 문제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과 공부에 도전하는 주부들을 위한 조언과 응원의 메시지.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바닥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주부들은 아이가 생기면 정말 시간이 모자라요.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워 직장을 그만둘까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때만 잘 견디면 올라가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또,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엄마인 여성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기억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해나갔으면 해요.
△ 이금형
現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한국양성 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前 광주지방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부산지방경찰청장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의 을 한국현대사회의 이야기로 재해석해 청년실업과 노년실업, 88만원 세대의 비애 등에 대해 다룬 작품이 있다. 배우 김명곤(金明坤·63)이 연출을 맡은 연극 ‘아버지’다. 직접 대본을 쓰고 주인공 아버지 역할까지 해낸 그에게 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와 닿았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20대 초반,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다니던 그는 친구를 따라 연극반에 문을 두드린다. 그때 아서 밀러의 을 접하게 됐다. 당시에도 분명 좋은 작품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라고 실감하지는 못했던 그였다.
“을 대학시절에 읽고, 30대, 40대에도 읽었지만 그때마다 느낌이 달랐어요. 주인공 윌리(아버지)의 나이(60대)와 내 나이가 가까워질수록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훨씬 많아졌죠. 문화관광부 장관을 그만두고 여러 작품을 구상하던 중 다시 이 작품을 읽게 되면서 나도 이제 책 속 아버지와 같은 세대가 됐으니,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그는 1940년대 미국의 한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원작을 한국의 가족 이야기로 각색하기 위해 몇 개월을 고군분투했다. 책 속의 아버지 윌리 로만은 세일즈맨으로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하며 좌절을 겪게 되고, 끝내 비극적인 말로를 맞게 된다. 책에서는 두 아들이 나오지만, 그의 연극에는 아들과 딸이 등장한다. 한국의 계약직 여성 노동자의 불안과 고충을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수정 작업을 진행하던 그에게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 시 한 편이 들려왔다.
“우연히 라디오를 듣는데 마종기 시인의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라는 시가 나왔어요. 그 순간 이 시야말로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이 시를 적극적으로 각색에 활용했어요. 연극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신문에 실린 시를 낭송하면서 자신이 국물만 내고 버려진 멸치 신세가 아니라, 한때는 남해바다에서 싱싱하게 헤엄치는 은빛비늘을 반짝이던 멸치였다는 것을 회상하며 아들을 위해 희생해요. 그렇게 원작에는 없는 멸치라는 소재가 한국의 아버지 이미지와 잘 맞아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었죠.”
그는 꿈을 이루고, 인생의 절정을 지나 그것을 되돌아볼 나이가 된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어느 누구나 인생에는 성숙기, 전성기, 쇠퇴기가 있어요. 이 책은 인생의 쇠퇴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버텨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죠. 비록 비극으로 끝나는 암울한 작품이지만, 주인공도 인생이모작을 마련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좌절된 사람이거든요. 그렇다 해서 우리도 좌절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과연 이 주인공이 이렇게 된 원인은 뭐고, 그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의 기회를 주는 거죠. 누구나 주인공처럼 자식을 위해 목숨을 희생할 순 없잖아요. 자식과 화해도 해야 하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못 받거나 은퇴하는 현실도 받아들여야 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차분히 생각해야겠죠.”
그래도 그는 잘(?) 살고 있는 듯 보였다. 배우와 연출뿐만 아니라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동양대학교 교수 등을 맡고 있는 그에게 ‘쇠퇴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려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좌절과 불안은 있어요. 겉보기에 인생이모작을 잘하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깊이 들어가 보면 가족과의 갈등도 있을 수 있고, 지금의 화려함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공포 등이 있게 마련이죠. 특히 노년이 되면 죽음과 건강에 대한 두려움은 다 있잖아요. 여러모로 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기 때문에 겉과 속을 단단히 다져나가야죠. 누군가는 내 모습을 보고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어느 한순간에는 나만의 두려움과 좌절도 있는 법이거든요. 그것을 이해하고 음과 양을 잘 헤쳐나가는 것이 남은 인생인 거죠.”
인생 2막, 다시 ‘나’로 돌아가는 시기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 유봉 역을 연기했던 배우 김명곤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립중앙극장 극장장과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지냈던 시절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 안타까운 그다.
“난 20대부터 가난한 연극배우, 극단대표, 연출가로 20년을 살아왔어요. 그러다 ‘극장장’, ‘장관’ 이런 타이틀을 가지고 한 10년간을 공무원처럼, 정치인처럼 넥타이 매고 살았더니 대중들은 그때의 모습만 알더라고요. 20년간 해왔던 내 연기와 작품들은 잊고 말예요. 어쨌든 나도 직장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그것을 그만두고 다시 내 직업으로 돌아오기까지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사람들의 의식보다도 우선 내 의식이 잘 안 돌아왔고 수입이 없다 보니 아내도 불안해했죠.”
그렇게 다시 배우, 연출 김명곤으로 돌아오기 위한 노력은 시작됐다. 한동안은 백수처럼 지내기도 했지만, 꿈을 버리지 않고 작품을 하겠다는 그의 목표의식과 일념은 대단했다.
“어떤 이들은 왜 장관까지 했던 사람이 얼굴에 분을 바르고 연극을 하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아, 나는 배우인데 사람들은 나를 배우로 안 보는구나.’ 그래서 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무대, 영화, 드라마 등 끊임없이 연기하며 노력했더니 이제는 배우 김명곤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건 그렇게 내 인생을 위해 내가 노력한 것이지, 누가 만들어 준 것은 아니죠.”
직장, 잠시 거쳐 가는 정류장
주인공 윌리는 해고를 당하자 자신이 평생직장이라고 여겼던 회사의 사장에게 지난날의 노력과 열정을 회상하며 하소연한다. 그는 이 대목이 가장 감명 깊었다고 말하면서도 윌리의 좌절을 이해하지만, 남은 인생을 위해서는 억울한 마음은 뒤로하고 현실적인 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 직장을 직업이라고 착각해요. 예전에는 평생직장이라는 말을 했으니 그게 맞았지만, 지금은 아녜요. 직장은 그저 직업을 갖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징검다리죠. 작가라면 글을 쓰는 곳이 곧 직장이지, 월급을 주는 곳이 직장은 아니거든요. 어느 회사의 팀장, 부장, 사장 이런 것도 직책일 뿐이고, 잠깐씩 옷을 갈아입는 것에 불과해요. 나 역시 지금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언젠가는 벗어야 하겠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것을 벌거벗었을 때 남게 되는 타이틀이 무엇인가. 금융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금융가 누구누구로 남아야죠. 나는 배우 김명곤이겠고요. 그러니 은퇴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직장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잠시 거쳐 가는 정류장과 같은 거니까요.”
파릇파릇 잎사귀가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5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존재를 만끽해보고 싶다면 국립생태원이 제격이다. 손주와 함께 생태원 구경도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까지 심어주면 어떨까? 그런 이들에게 국립생태원 최재천(崔在天·61) 원장은 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온 가족이 함께 생각을 마주하는 어른동화
최 원장이 추천하는 은 프랑스 동화작가 프랑수아플라스의 어른용 동화다. 어른, 아이 모두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최 원장은 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여느 책처럼 추천사를 부탁받아서 처음 접하게 됐는데, 이 책은 굉장히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해줬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읽기 어려운 책도 아니죠. 또, 어른이 읽어도 마치 자기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요. 아이가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고, 생각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하죠. 저는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만, 절대로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거나 독후감을 써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 부담을 가지고 읽으면 책 읽는 재미가 없거든요.”
평소 최 원장네 부자(父子)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서로 허물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책은 그와 아들 사이의 소통의 매개체이자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이제 이십대 후반인 아들이 가끔은 제가 읽는 책을 뺏어서 읽기도 하고, 서로 빌려 읽기도 해요. 읽고 나면 다짜고짜 앉아 토론하듯 말하는 게 아니라 얼마가 지난 후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면서 책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하죠. 그러고 있으면 아내도 ‘무슨 책인데?’라며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고, 그렇게 온 가족이 독서를 하고 대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요. 도 세대마다 느끼는 바가 조금씩 다를지라도 온 가족이 쉽게 읽고 저녁을 먹으면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요. 대화를 하다 보면 때론 아이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죠.”
소중한 자연, 알아가고 보듬어야 할 세대
책의 주인공은 한 노인에게서 산 ‘거인의 이’의 지도 속 ‘거인족의 나라’를 찾아간다. 순수하고 다정한 거인들과 2년 7개월여 동안 겪은 일을 책으로 펴냈는데, 책을 통해 거인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이 거인을 해치고, 그들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목이 잘린 거인이 주인공에게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죠.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고. 그 말이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예전에 학생들과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 탐사를 하다가 반딧불이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요즘에 어디 반딧불이를 발견했다고 하면 먼저 신문에 났겠죠? 그러면 사람들이 몰리고, 축제를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 자연이 훼손될 거예요. 그래서 그냥 우리만 알고 세상엔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학문적인 기록에는 작은 구멍이 날지라도, 가끔은 이렇게 자연을 숨겨줘야 할 것 같았거든요. 거인의 마지막 말처럼요.”
그는 전 세대가 다 읽어볼 만한 책이지만, 특별히 중·장년에게 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중·장년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자연에 대한 공감, 감성이 제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배워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연,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니, 그걸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가 되어버렸어요. 이 나이에 자연공부를 다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더욱 아니죠. 세대를 불문하고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우리가 사는 지구, 자연을 어떻게 더 망가지지 않게 하느냐이거든요. 배우지 않았다 해서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까지 보듬어야 할 세대인 거죠. 다짜고짜 학술적인 책 등을 읽고 덤비는 것보다는 일단은 을 통해 그런 것들을 감성적으로 공감하고 접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자연에 대한 생각을 키우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는 법도 10년은 배워야
2005년 는 도서로 인생 이모작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최 원장.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인생 이모작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준비돼 있건 없건 다가오는 은퇴라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나에게 다가올 인생을 기획하자. 그래서 인생을 딱 두 번 나눠서 살아보자. 일하면서 사는 인생, 그리고 일을 멈추고 사는 인생으로 이모작하자고 해서 지어낸 말이죠. 근데 인생 이모작하라 해놓고 정작 나는 뭘 하고 있나. 그런 것으로 치면 나는 낙제점이에요. 사실 제 경우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놀 준비를 못 하고 있어요. 다들 일 걱정은 많이 하지만 놀 걱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한 교장 선생님 말씀이 노는 것도 10년은 준비해야 한다더라고요. 운동이든 뭐든 노는 방법도 10년은 준비해야 은퇴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거죠. 은퇴하고 재산을 많이 모은 사람이라도 노는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어디 끼지도 못할 거 아녜요. 그럼 노후가 얼마나 쓸쓸하겠어요. 저도 노력해야겠지만, 다들 어서 놀 준비하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야~ 야~ 야~ /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 느낌도 하나요 /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가 방송에서, 길거리에서 울려 퍼진다. 한국갤럽이 2014년 10월 2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3세 이상 남녀 1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한국인 애창곡’ 1위로 선정된 곡이다. 10~20대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엑소를 비롯한 유명 스타 가수들의 노래를 누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젊은이들의 다양한 사랑이 스크린을 장악한 가운데 4월에 눈길 끄는 영화가 있다.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다. 박근형과 윤여정이 장년의 설레는 사랑을 그린다. 중장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점차 늘고 있다. 20~3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MBC ‘전설의 마녀’를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가 중장년의 멜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인생 이모작이 일상화되고 중장년층의 물리적 나이 조정이 필요한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요즘 변화된 대중문화의 단면들이다. 최근 들어 중장년의 사랑과 연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랑과 연애는 나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늘 관심과 설렘을 촉발한다. 사랑과 연애의 설렘은 이상적인 데이트 상대로 구체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장년이 데이트하고 싶은 이상적인 유명인은 누구일까. 중장년 여성들은 탤런트 최불암(75)을, 중장년 남성들은 연기자 박정수(62)를 가장 데이트하고 싶은 이상형 1위로 꼽았다.
최불암은 잘생긴 장동건도, 국민배우 안성기도, 그리고 영원한 청춘스타 신성일도 제쳤다. 박정수는 섹시한 김혜수도, 단아한 이영애도, 그리고 빼어난 미모의 김태희도 눌렀다.
결혼정보업체 선우 부설 결혼문화연구소가 지난 1월 중장년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장년이 데이트 하고 싶은 유명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꼽은 데이트 하고 싶은 인물로, 최불암 뒤를 이어 박근형(75)이 2위를 차지했고 노주현(69)과 안성기(63)가 공동3위, 그리고 신성일(77)과 이덕화(62) 순이었다. 조각미남으로 알려진 장동건(44)과 자상하고 멋진 차인표(48)는 각각 7위와 10위에 머물렀다.
중장년 남성들이 데이트하고 싶은 여성으로 박정수가 첫 손에 꼽혔고 다음은 김혜수(45), 김희애(48, 공동2위), 이미숙(55, 4위), 강부자(74), 고두심(64), 사미자(75),이영애(44, 공동 5위) 순이었다.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김태희(35)는 9위에 머물렀다.
중장년 남녀에게 데이트하고 싶은 상대 1위로 꼽힌 최불암과 박정수는 “영광스럽고 감사하다”며 1위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면 최불암과 박정수는 1위에 오른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중년 여성들에게 데이트하고 싶은 상대 1위로 꼽힌 최불암은 “연기자로서 살아온 50여 년 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야비한 역할을 하지 않고 악한 캐릭터보다는 착하고 자상한 남자나 권위 있지만 강압적이지 않은 아버지 역할을 주로 했기 때문일 것 같다”며 극중 캐릭터로 유발된 이미지를 1위 원인으로 꼽았다. 여기에 최불암은 “아내(중견 연기자 김민자)와의 오랜 시간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도 데이트 이상형 1위 선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며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짓는다.
중년 남성들이 가장 데이트하고 싶어 하는 박정수는 “매력적인 여자 스타들이 많은데 솔직히 내가 왜 1위에 올랐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아마 억척스러운 배역보다는 품위 있고 단아한 분위기의 캐릭터를 많이 맡은 때문인 것 같다. 캐릭터와 저를 연관시켜 1위로 꼽아준 것으로 보인다”며 드라마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정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의 외모나 행동을 보면서 여전히 소녀 같은 감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 것도 설문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고 했다.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 연기자들이 생각하는 최불암과 박정수의 매력은 무엇일까. ‘전원일기’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부부로 나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제 최불암의 아내로 오해까지 하는 김혜자는 “소탈하고 편한 외모에 늘 한결같은 심성과 믿음직스러움,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을 위한 헌신 등이 최불암씨의 강점이자 매력이다”고 설명했다.
박정수와 함께 1972년 MBC 5기 탤런트로 함께 연기를 시작했고 최근 방송에서 “40년 동안 박정수를 짝사랑했다”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던 이계인은 “박정수씨는 세월이 비켜 간 듯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외모와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좋다. 박정수 씨는 남자가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여린데 이것이 남성들에게는 연애 감정을 촉발한다”고 말했다.
중장년들이여,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에 아내와 남편을, 그리고 연인을 사랑하며 설레는 감정을 다시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오승근의 노랫말처럼 사랑에는 나이가 없고 지금이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이기에.
명로진(明魯鎭·49). 그의 얼굴을 아는 이라면 배우 명로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명로진의 인생에 있어 그는 배우이기 전에 작가의 길을 먼저 걸어왔다. 지난 15년간 펴낸 책만 40여 권.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저자 명로진’으로 남고자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 책을 쓰고 싶다는 그에게도 오래도록 남게 될 책 한 권이 있으니, 바로 ‘장자’다.
중년의 길목에서 만난 장자, 그리고 깨달음
5년 전, ‘홍대학당’이라는 고전읽기 교실을 개설하며 ‘장자’를 만났다. 논어, 맹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다양한 고전을 접했지만 ‘장자’는 그에게 남다른 깊이로 다가왔다.
“책 쓰기 교실을 하다 보니 인문 고전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장자를 접하게 됐는데, 굉장히 재밌고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전은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한 번 읽었을 때는 잘 모르는데,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거예요. 분명 똑같은 문장이고 똑같은 내용인데도, 그때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라고요.”
내가 ‘빈 배’가 되어라
깊은 관계일수록 기대가 커지고, 기대가 큰 만큼 갈등이 생겼을 때 받는 상처 또한 크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는 자신이 ‘빈 배’가 되고자 한다.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날 때면 장자의 ‘빈 배’를 떠올리곤 해요.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는데 뒤에서 오는 다른 배하고 쾅 부딪친 거예요. 돌아보니 빈 배였죠. 그러니 화를 낼 수가 없잖아요. 그러고 다시 가는데 또 뒤에서 오는 배하고 쾅하고 부딪쳤어요. 이번엔 사람이 타고 있었죠. 좀 전과 똑같이 부딪쳤는데도 사람이 있으니, 언성을 높이고 싸우다 결국 욕설까지 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거기서 깨달은 것이, 그러면 우리 자신이 빈 배가 되어 살아간다면 어떨까라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나를 보고 소리를 치지도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도 않고, 다툼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속세의 번뇌를 씻어주는 장자
그는 마음이 번잡할 때 북한산 정상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고 했다.
“장자는 제게 북한산 같은 책이죠. 북한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보고 있으면 ‘아, 내가 왜 저 밑에서 그렇게 아옹다옹 살았나’싶어요. 장자도 마찬가지예요. 읽고 나면 그런 위안이 되죠. 장자가 죽을 때, ‘내 시체를 길바닥에 놔둬라’라고 했다는 거예요. 제자들이 ‘그럼 개미와 벌레가 스승님의 시신을 먹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장자는 ‘밤하늘이 관 뚜껑이고, 흙이 나의 관 밑바닥이고, 온 우주와 별들이 나의 죽음을 애도할 텐데 뭐가 아쉽겠느냐. 또, 내가 길바닥의 시체로 썩지 않으면 개미와 땅강아지들은 뭘 먹고 살겠느냐’라고 했다는 거죠. 그런 구절을 읽으면 ‘그래 사는 거 뭐 있어. 너무 욕심낼 것도 없고 너무 집착할 것도 없고 그렇게 물 흐르는 대로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
장자가 씌어진 지도 어언 2400년이 흘렀다. 장자는 이 세상에 없지만, 장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읽는다는 건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힘을 얻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죠. 논어나 맹자에 비해 장자는 굉장히 이야기가 많아요. 저 역시 이야기를 통해 오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통해 힘을 얻고 위안이 될 수 있는 책이요.”
진정한 성공의 의미, 장자에서 찾다
청년은 성공하는 삶에 의미를 두지만, 중년은 성공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 그는 그 의미를 ‘장자’를 통해 찾길 권했다.
“장자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진짜 성공인가?’라는 의문을 던져요. 장자는 중년 이후에 읽어야 하는 책 같아요. 나이가 들어 많은 것을 이뤘을 때, 그 이룸의 의미가 뭔가라는 깨달음을 주거든요. 살다 보면 그 이룸이 인생의 끝은 아니라는 거죠. 장자를 읽다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 명예, 권력이 인간의 존재나 행복에 있어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힌트를 발견하게 되죠.”
명로진의 인생 이모작
다양한 이력만큼이나 다채로운 인생2막을 꾸며가고 있을 법했던 그에게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물었다.
“저는 달리고 있지 않아요. 슬슬 걸어가고 있어요. 제 두 번째 삶은 단순화시키는 게 목표예요. 읽고, 쓰고, 놀고. 그게 남은 인생의 3대 프로젝트예요. 책도 슬슬 읽고 여행 다니고 바람처럼 살아요. 얽매일 게 없잖아요. 정년을 다한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조직이나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까요. 마음이 젊으면 젊은 거예요. 뭐든 할 수 있죠. ‘당신이 얼마나 잘하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잘하고 싶어 하는지가 문제다’라는 책 제목처럼, 잘하고 싶으면 되는 거예요. 성과를 낼 필요는 없어요. 잘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자체로도 보상되거든요. 못하면 또 어때요. 그냥 재밌게 하면 되는 거죠. 성과는 인생 전반기에 다 냈고, 지금까지 했는데 성과 안 났으면 이제는 그냥 그만큼인 거에요. 그럼 그거에 만족하고 이제부터라도 재밌게 살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당신이 이제 막 인생 후반전에 도착했다고 상상해보자. 나름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은퇴를 대비해 자산은 확보했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으며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친구들도 갖춰졌다. 이제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잠깐, 도리어 당신이 착실하게 준비했다고 결론 내린 것들로 인해 당신의 나머지삶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지? 그럴 리 없다고? 전문가들은 그럴수 있다고 말한다.
생애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실현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인프라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재무, 승계, 관계, 일, 보람, 건강이다. 인생 후반전을 좌우하는 6대 키워드를 차근차근 파헤쳐본다.
도움말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대표,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가나다순)
10억대 이상 자산가라면 “부동산 팔아 금융자산 만들어라”
대한민국 1% 부자도 인생 후반전 재무 리스크를 벗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산가들은 돈 버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60세가 됐을 때 번 돈이 모자란다면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을 배워야 하고 부자라면 아름답게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 눈을 신경 쓰다 무리한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이들의 불행한 사연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목돈이 있는 사람들은 은퇴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데다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부동산 자산을 서서히 줄이고 금융 자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201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부자의 총자산 구성비를 살펴보면 △부동산 자산 54.1% △금융 자산 39.6% △기타 자산(예술품·회원권 등) 6.3% 등인 것으로 나타나 부동산 비중이 높았다. 이러한 자산의 부동산 쏠림현상은 고도 경제성장기와는 달리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난 지금은 잠재적인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소득의 기회가 줄어들 뿐더러 노후자금 및 의료비용 지출이 늘어나게 돼 결국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매물화 되는 부동산은 부동산 가격시장에 악순환을 몰고 올 수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 상무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줄어드는 현실과는 반대로 노후
생활에 적합한 금융자산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적절한 가계자산 정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식이 가업 승계할 자질이 되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으며 의 저자로 역사에 남게 된 성군이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황제이자 친아들이었던 콤모두스는 잔인한 폭정, 무능함으로 문제만 일으키다가 결국 암살당한다.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업적만을 남긴 아들은 이후 전개되기 시작한 로마의 멸망을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내가 세운 집안의 미래를 자녀가 완전히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입증된 얘기다. 이상건 상무는 노후에 도달하면 가업을 자식에게 승계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매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식에게 승계할 경우에는 가업에 대한 보람이나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러나 자식의 자질이 부족하면 전문경영인을 두거나 매각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수십 년을 일군 사업을 자식이 한순간에 망쳐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가업 승계의 경우 아들 가운데 물려줄 인재가 없다고 판단되면 딸을 매개로 데릴사위를 들여 가업을 물려주기도 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매각 계획을 세워 정리 작업에 서서히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부부와 자녀 관계 모두 새롭게 바라보라
한국영화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좋아 죽겠다”고 극찬한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2002년에 나온 박진표 감독의 . 70대 노인들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나이와 노골적인 묘사로 인해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영화에 비난을 퍼부었던 이들은 ‘다 늙어서 노인들이 추잡하게 논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그러니까 그런 비난을 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영화의 가치는 재평가 받았다. 이러한 재평가는 시대가 노후 행복을 보다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건강한 부부관계는 노후 행복의 지름길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 자녀 양육 이후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도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친밀감과 화목함을 키워주는 부부간 성생활이 더욱 중요해지기도 한다. 은퇴 후 자식들을 출가시키고도 부부가 최소 30년 이상 함께 붙어 살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남자가 은퇴하면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다툴 여지가 많아질 수 있다. 남자들은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내와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며 오순도순 느긋한 노후를 보낼 거라 기대하지만 그것도 딱 한 달이다.
나이가 든 아내들은 이러저런 취미활동을 하느라 예전처럼 남편을 돌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친구를 찾고 남편은 아내랑 함께 하길 원한다. 이런 경우 아내는 남편이 재취업이나 창업으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걸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내조해야 한다. 지금껏 가장으로서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평생을 바친 만큼 남편 인생 이모작을 위한 좋은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자도 집에서 아내에게 기대려고 하기 보다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온전한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 관계도 만만치 않다. 요즘 같은 저성장시대에는 그만큼 청년층의 성공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식들이 성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결핍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부가 소신을 갖고 자식 교육에 나서야 한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무리해서 외국 MBA코스에 무작정 보낸다거나 억대에 이르는 결혼 자금을 무턱대고 지원해줘서는 안 된다. 자칫 젊은이들이 냉혹한 이 사회에서 물러터진 자세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될 수도 있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은 신중년들은 미혼자녀와 대화 시간이 짧고, 성인자녀와의 교류빈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자녀와의 관계가 취약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퇴 후 일은 필수 과제
똑같은 노후자금을 갖고 있더라도 일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소일거리라도 하는 사람은 마음이 덜 불안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괜한 욕심을 내거나 겁을 내기 십상이다.
강창희 대표는 3번의 정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가 고용의 정년, 두 번째가 일의 정년, 세 번째가 인생의 정년이다. 젊은 시절부터 일하던 자신의 주 업종에서 은퇴(고용의 정년)한 이들은 ‘일의 정년’에 적응해야 한다. 대략 60~70세로 은퇴했지만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펼쳐야 한다. 이에 덧붙여 강 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취업 전의 공부란 단순히 학문과 기술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다. 강 대표는 “수입을 위한 일을 하든, 자기실현을 위한 일을 하든, 아니면 사회환원적인 일을 하든 준비가 필요하다. 재테크가 아니라 평생현역이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기출 소장은 단순히 생활 유지가 아닌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즐거운 일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에서의 그러한 추구가 재무적인 면에서나 관계적인 면에서는 물론, 건강까지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당장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신건강부터가 튼튼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현명하게 수입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현역이야말로 최고의 노후대비책이다.
박기출 소장은 은퇴자들이 여가생활을 하는 주된 목적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재미와 즐거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기 시절 시장 독과점을 통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실리콘밸리의 악마라고도 불렸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리더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자선사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가에 쏟아붓는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기부액은 2007년 이후 28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또한 엄청난 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와 그자신이 보고 감명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 영상 저작권을 사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한 것은 그의 기부행위가 단순히 돈만 많이 내놓는 게 아니라 인류를 위한 봉사정신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일화들이다.
건강관리는 곧 돈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죽음의 춤’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 유행했었다. 부자, 수도사, 농부, 귀족 등 각계각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이 기이한 그림들은 실은 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때를 은유하고 있다. 해석하자면 ‘죽음의 춤’은 흑사병-죽음은 부자와 서민, 왕과 하층민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건강관리는 재무나 자산 관리와 연결된다.
건강관리를 하느라 생활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아픈 데가 많아지지만 보험 등을 제대로 들지 않았다면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건강관리를 잘못해 큰병이라도 걸리면 모든 ‘은퇴 준비’가 허탕으로 돌아간다.
건강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화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상건 상무는 40대부터 건강을 위한 금연이나 절주를 비롯해 꾸준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제적 어려움이야 수입에 맞춰 지출을줄 여가며 노후를 보내며 지낼 수 있다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평생을 질병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현실이기에 예상보다 훨씬 힘든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시가 전문능력을 갖춘 은퇴자들의 사회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재뱅크'를 운영하기로 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시는 우선 인재뱅크 등록 희망자를 21일까지 모집한다.
인재뱅크 등록을 희망하는 50세 이상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서류심사를 실시해 '시니어 마이스터' 과정 등록자를 선발한다.
선발된 은퇴자는 인문 소양 교육과 자원봉사 활동을 이수해야 인재뱅크에 정식으로 등록될 수 있다.
이들은 활동계획서를 제출한 후 내년부터 사회참여 활동을 시작한다. 활동 결과는 공개 강연 형식으로 발표되고, 시의 종합심사를 통과하면 시니어 마이스터로 최종 선정된다.
시니어 마이스터는 전문성, 시민성, 헌신성을 바탕으로 자기주도적으로 사회참여 활동이 가능한 인재상이라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시는 시니어 마이스터에게 1년간 활동 기회를 보장하고, 비영리단체 명예기관장 등 직책 수행, 컨설팅, 강사 활동 등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참여 희망자는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홈페이지(http://seoulsenior.or.kr)에서 모집요강을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비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아간다. 배움은 먹고 살 수 있는 기회와 기술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삶의 보람이자 유희로서도 기능한다. 이러한 배움의 기능은 노년기에 속한 이들에게 더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을 일한 분야에서 나와야 하는 그들로서는 먹고 살 경제활동을 하려면 새로운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또한 퇴직금과 안정된 연금 디자인으로 경제적 문제가 없는 시니어라 할지라도, 교육은 그들의 삭막할 수 있는 나머지 삶의 풍요로움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노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한국에서 평생교육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더위보다 뜨거운 배움의 열정 ‘인생학교’
일이든 취미든 스스로 삶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시니어의 모습은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롤모델이 된다.
여전히 가슴 뛰는 열정으로 꿈꾸고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과 우리나라에서 배움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 어디일까? 입시에 모든 걸 걸고 있는 학원가?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배움은 제도에 적응하기 위한 강제적인 행위인 경우가 많다. 진정 배움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정말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뜨거운 열망을 보여주는 곳은 다름 아닌 ‘평생교육의 장’ 노인복지관이다. 그러나 현장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보건사회연구원 통계지표가 보여주는 65세 이상 시니어들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7%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황남희 인구정책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년층의 평생교육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요인은 개인의 경제 수준 및 교육 수준, 다른 사회참여 활동으로 확인됐다. 인구사회학적 요인을 통제한 후 노년층의 평생교육 참여요인을 살펴보면, 월평균용돈 및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평생교육 참여가능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교육 참여자의 1인당 연간 투자비용이 평균 21만 원으로 소액이다.
황 연구위원은 노년층이 중요한 인적자원이라는 공동인식을 갖고 노년기 평생교육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인복지법과 평생교육법에 의해 정부 주체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로 분리되어 있어 노년기 평생교육은 여가복지만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복지법에서는 노인여가복지시설로 분리되는 교육기관에서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평생교육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교육부의 평생교육법에서는 대상이 법조항으로 명시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혼선 때문에 실무적으로 노년층은 평생교육법에 의한 평생교육의 대상이 아니라는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
시니어 관련 분야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은퇴자나 명예퇴직, 베이비부머세대들은 기존의 주교육 대상인 청년층과는 다른 특성이 있으며, 특히 생애주기 특성상 신체적 건강수준과 교육에 대한 심리상태, 관심영역 등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여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 및 지원, 교육하는 자에 한해 시니어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교과목의 추가이수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황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인생학교를 통해 평생교육이 반드시 정착되어야 하는 이유
“학창시절 즐겨 부르던 팝송노래를 배우면서 친구도 사귀고 건강도 챙기니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만난 김복순(71)씨는 셔틀버스로 이곳에 와 각종 건강·복지 프로그램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김씨는 “하모니카, 생활영어, 요가 등을 배우고 물리치료를 하거나 야외에서 조깅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분당에 사는 이모(76)씨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몇몇 친구들과 매일 이곳에서 만나 놀고 밥먹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별로 운영하는 시니어건강복지센타는 병의원과 협약을 맺어 신경과·정형외과·치과·안과 ·한의원 등 진료 과목별 정기검진 시스템도 구축됐다. 무료 건강검진 혜택부터 인생과 세무·법률·재테크 등 전문분야별 상담도 펼쳐진다.
전주에 있는 꽃밭정이 노인복지관에는 요가, 라인댄스, 근력강화운동 등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사교성을 높이는 활동적인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탁구장과 당구장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전북에만 특성화되어있는 순환운동(맞춤식 운동법)과 본인에게 맞는 맞춤 운동법으로 6개월 동안 집중관리를 해주는 프로그램 등이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이미 마을의 모임터로 자리매김한 복지관은 무언가를 배우고 즐기려는 사람들로 항상 활기가 넘친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지난 해 베이비부머의 행복한 내일 만들기를 돕는 ‘내일행복학교’를 열었다. 내일행복학교는 은퇴 후 새로운 배움을 통해 흥미롭고 설레는 노년을 기획하고자 한다거나, 지난 평생을 일과 가정에 몰두한 자신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휴식과 치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제2의 인생에 도전하기를 꿈꾸는 베이비부머를 위한 교육과정이다.
내일행복학교는 연간 총 5기가 진행될 계획이며, 각 기수별로 총 5개 과정(노년설계아카데미, 창업아카데미, 직업전문아카데미, 창의직업아카데미, 힐링아카데미)이 포함되어 있다. 바리스타 교육, 설문조사원 교육, 영상제작 교육, 소자본창업 교육 등 각 과정은 중복 수강도 가능해, 다양한 경험을 희망하는 베이비부머에게는 희소식이다.
워킹, 요가, 바리스타, 네일아트, 색소폰, 요리교실, 도슨트 등 평생교육은 다각화 중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노인 여가복지시설인 노인복지관·복지센터가 7곳으로 가장 많은 강남구는 총 현재 340여개의 노인 여가·학습 프로그램이 분기별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 강남시니어플라자는 강남구의 고학력, 고소득 노인들이 복지관 이용에 가지고 있던 기존 선입견을 없애고자 2011년 지하 3층·지상 6층 규모로 개관해, 노인복지관 최초 실비이용과 프로그램 질적 수준 업그레이드 등을 시도했다.
운영 초기에는 실비이용에 대한 거부감 등 주민들의 민원제기가 빈번했으나, 개관 3년 만에 이용회원이 7000명이 이르는 성공적인 성과를 얻었다.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복지관을 넘어서 도서관에서도 제공되고 있는 양상이다. 관악구에서는 2011년부터 노인 자서전 발간 프로그램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해까지 24명의 자서전을 발간해 도서관에 비치했다. 그 외에도 도서관은 인생이모작의 기회로도 역할하고 있다. 구로구는 지난해 시범 운영을 거쳐 지역 복지관까지 확대해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에서 들려주는 옛이야기’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개설한 ‘이야기활동 전문가 3급’ 과정은 55세 이상 노인 30여명이 수강하고 있다.
최근 평생교육의 커리큘럼은 생활영어, 팝송, 요가, 바리스타, 네일아트, 댄스, 동화 구연 등등 다종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평생교육이 단순히 소비만 이뤄지는 소비의 장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도와주는 생산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증거들이다.
이처럼 평생교육의 효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평생교육이라는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우선 성별로 보면 여성, 소득 수준 및 건강 상태가 좋은 노년층의 평생교육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이는 노년층 평생교육의 중요한 조건에 생활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연령집단별로는 65~69세가 7%, 70~74세가 8%, 75~79세가 7%, 80~84세가 5%, 85세 이상이 2% 수준.
교육 참여빈도는 주 2~3회가 4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다음이 주 1회로 37%였다. 노년층의 평생교육은 생활의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운영되는 경우의 호응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 제공기관은 노인복지관 46%, 시‧군‧구민 회관/동‧읍‧면 주민센터 18%, 종교 기관 16%, 사설문화센터 및 학원이 5% 순이었다. 각 지역의 노인복지관은 지역에서 기업이나 종교 기관에게 수주를 줘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맡는 곳의 성향에 따라 노인복지관의 운영하는 양상도 달라진다.
참여 프로그램은 여가 및 취미가 43%로 가장 많았고, 일반 교양 21%, 건강 관리‧운동 20%, 정보화 13%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교육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향후 평생교육 정책 개선에서는 노년층의 교육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50세 이상으로 구성된 인문학 동아리의 활동비를 지원한다.
‘마을로, 시니어 인문학 소모임’으로 선정된 5팀에는 팀당 최대 218만원이 지원된다. 또, 인문학 분야 전문가 2인, 마을 분야 전문가 1인, 시니어 분야 전문가 1인이 사업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시는 서류 및 면접 심사를 거쳐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고전 등의 학습을 통해 배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나눌 수 있는 총 5팀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심사를 통해 선정된 팀에게는 오는 9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3개월간 강사비, 다과비, 공간대여료 등 학습모임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최대 80%, 최대한도 218만원까지 지원하고,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시니어들이 정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팀 당 인원은 5명에서 최대 10명까지 가능하며, 50~65세 서울시민이 팀원의 70% 이상, 동일 자치구 구성원이 60% 이상이어야 한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홈페이지(www.seoulsenior.or.kr)와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관련서류를 내려받은 후 이메일(hjkimone14@seoulsenior.or.kr)로 접수하면 된다. 서류접수는 오는 8월 20일 마감된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기반조성팀(070-4666-8721·070-4666-8725)에 문의하면 된다.
쌈지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하여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적 기질을 가진 독자적 토종 패션 브랜드 쌈지. 10년 동안 운영됐던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 쌈지 스페이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뮤지션들의 축제의 장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인사동의 쌈지길 등은 쌈지라는 브랜드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감각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결과들이었다. 그러나 기업으로서의 쌈지는 2010년에 부도가 났다. 쌈지의 주인장이었던 천호균 대표는 ‘장사’를 버리고 ‘농사’로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을 드라이빙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쌈지의 정신을 농업과 연결시킨 (주)쌈지농부를 통해서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bravo-mylife.co.kr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저는 남들 신경 엄청 쓰는데 남들은 제가 신경 안 쓰는 줄 알아요.”
1949년 생 소띠, 올해로 예순여섯 살인 천호균 대표의 첫 모습은 ‘쌈지’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혁신적 브랜드의 수장다운(?) 수더분한 외모와 소년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10여 년 전, 예술인마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지인의 소개로 헤이리 파주에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주)쌈지농부를 세우고,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농사와 예술의 결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쌈지에서의 ‘예술’을 농업으로 이어가다
천 대표는 쌈지농부를 시작하면서 특히 느림의 미학을 조명하는 슬로우 아트(slow art)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어떤 작가는 농사를 짓는데, 밭 이름이 ‘반만 먹자’다. 농사를 지어서 사람은 딱 반만 먹고 반은 동물들과 나눈다. 원래 농사는 같이 먹으라고 하는 것, 그 철학에서 출발한다. 갤러리에서 병아리를 부화시켜 2주 정도 키워 독거노인들에게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하는 작가도 있다.
“쌈지를 할 때, 장사를 하면서도 마케팅을 예술로 했죠. 그 아트 마케팅을 농사에서도 융합시키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쌈지에서 시도했던 ‘예술’을 계속 이어간다는 의미가 되겠죠.”
그는 예전 인터뷰에서 과거에 패션디자인상 심사위원장을 하면서 ‘아름다움에는 순위가 없다’는 문제적 심사평을 낸 바 있다고 자평한 바 있다. 교육과 사회는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아름다움을 고정시키려 하는데, 그는 모든 생명이 ‘생긴대로’ 저마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편견 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굴해서 보여주는 이가 예술가라는 게 그의 지론. 생각해보면 농업은 그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실현시키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익숙한 기술 아니던가.
천 대표는 과거 쌈지 시절의 예술과 지금의 예술이 어떤 점에서 다르냐는 질문에 지금 농업을 통해 하는 예술은 거대담론으로 세상을, 환경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농업의 생산성과 예술의 가치를 합치니 지속가능, 정의, 나눔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히는 천 대표의 지론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었다.
“농업을 시작하니 가능한 한 농사하는 마음으로 장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형보다는 내용이나 가치에 충실하게 말이죠. 그 절실함을 담다보면 지속가능한 예술로 이어집니다,”
농부할아버지, 손녀와의 소통 비결… 측은지심을 알게 되다
농업을 하면서 천 대표는 세 명의 손녀들과 더욱 친근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식물이라는 돌보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약자를 돌봐서 길러내야 하는 농업의 특성이 소통의 비결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배경이나 교육이 아이들의 착한 속성을 계속 유지시켜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약자를 측은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 마음을 유지시켜주는 교육 말이죠. 농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약한 것들에 대해 측은하게 생각하게 되니까, 그게 아이들의 속성하고 일치하는 거 같아요. 농업이 만들어 준 제 속성이 손녀들의 속성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죠.”
인생이모작을 진행하는 시기의 동반자와의 관계도 궁금했다. 사실 많은 시니어들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동반자와의 관계에 관해 고민한다. 취미나 여가를 찾으려고 애쓰게 되는 건 동반자와의 관계가 불성실해진 것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닐까. 그런데 이 부분에서 천 대표는 거의 ‘완성형’이었다.
“자랄 때 아버지가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 분이었어요. 그러면서도 가정일을 챙기셨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내를 위하는 문화를 알게 됐어요. 그리고 살다 보니 여자들이 아는 게 참 많더라구요. 그렇게 자라고, 살고 배워 오면서 아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 말 잘 안 듣잖아요? 그런데 저는 습관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웃음).”
천 대표는 부인을 ‘감사야’라고 부른다. 늘 배울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 감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결혼할 때부터 ‘배우자’는 생각으로 부인을 배우자로 택했는데, 실은 ‘마누라말 잘 듣자’는 습관이 되다보니 얻게 된 것.
생각의 밭, 마음의 논을 가꿉니다
천 대표는 자신이 아직 초보 농부라고 고백한다. 말하자면 이제 막 인생 2막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중이라는 것. 그래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시대의 일가를 이뤘던 사람으로서 인생이모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말해 줄 수 있을지가 궁금하여 물어봤다.
“농부를 하다 보니 생명의 가치를 알게 됐습니다. 그 가치를 소비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돈을 많이 벌 때와 비교하여 행복하냐구요?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버는대로 만족스럽죠. 하지만 지금은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행복을 느끼게 되요. 만족보다는 행복을 찾아라,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생긴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에 가장 멋스러워 보이는 천 대표는 수익이 좀처럼 나지 않을 것 같은 ‘달동네’(천대표가 표현하는 절실하게 살기 위한 공간)에서 그만의 노련한 솜씨로 예술과 농사를 엮어 농부와 소비자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