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는 황주에서 매달 아주 적은 생활비를 받았기 때문에 식솔들의 의식주는 예전에 해두었던 저축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지출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는 매달 초 저축했던 돈 가운데 4000~5000개의 동전을 꺼내서 한 꿰미에 150개씩 나눈 뒤, 집 대들보에 걸어놓고는 매일 한 줄씩 풀어서 사용하였다. 가능하면 하루의 지출을 한 줄의 동전으로 제한하려고 했다. 만약 그날 저녁에 몇 개의 동전이 남으면 단지에 넣고, 그다음 날에는 다른 동전 줄을 풀어서 사용했다. 한 달이 지나면 단지의 동전을 정산해서 손님들이 올 때 접대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스야후이, )
요즘 개인형 퇴직연금(Individual Retire ment Pension, 이하 IRP)이 금융계의 핫이슈다. 지난 4월 퇴직연금법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7월 26일부터 소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후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공적연금의 보장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보장수준을 높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세대 간 부조에 의존하는 공적연금의 특성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인구학자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저서 에서 “사회적 미래는 정해져 있을지언정 개인의 미래는 매 순간의 판단과 선택과 노력으로 ‘정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학연금을 받게 될 20년 뒤에는 인구구조상 사학연금 급여가 반 토막 날 가능성이 크다며 별도의 노후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무리 사회적 미래가 암울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도 개인의 미래는 ‘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44세에 좌천된 소동파가 철저하고 체계적인 절약과 황무지를 개간해 몸소 농사를 지으며 고난을 헤쳐 나갔듯이(전원시를 많이 쓴 중국의 고대 문인들 중 장기간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도연명과 소동파 둘뿐이다), 현재의 삶이 고달프다고 욜로(YOLO)만 부르짖다간 언덕 너머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초원 같은 후반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를 최소화하고 우리의 인생을 만개시키는 데 IRP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출산·고령화시대 자조노력연금의 대명사로 우뚝 설 IRP를 남이 아니라 내 잔칫상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철저히 파보고 스마트하게 이용해야 한다.
IRP란 무엇인가?
원래 IRP는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축적해나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문용어로는 통산장치(portability)라고도 부른다. 애초에 IRP는 퇴직(일시)금을 수령한 퇴직 근로자와 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한 재직 근로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7월 26일부터는 자영업자,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와 1주 소정근로시간(所定勤勞時間)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 등의 퇴직급여제도 미설정 근로자, 퇴직금제도 적용 재직 근로자, 공무원·군인·사립학교교직원·별정우체국직원 등 직역연금제도 가입자들도 가입할 수 있도록 IRP의 문호가 활짝 열린 것이다. 사실상 모든 취업자가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7년 6월 말 현재, IRP 가입 건수는 226만 6000건이고, 적립금액은 13조6928억원에 달한다. 적립금액 기준으로 2016년 성장률은 14.1%로 다소 주춤했지만 2015년과 2014년에는 각각 44.3%와 24.8%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가입 대상이 크게 확대됨으로써 이전 수준의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IRP의 높은 성장률과 자조노력연금 대명사의 역할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IRP에 해당하는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가 이미 2010년에 DC(확정기여)형을 추월해 퇴직급여제도 중 가장 큰 적립금 규모를 자랑한다. 2017년 3월 말 미국 IRA의 적립금 규모는 8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IRP를 iDeCo라고 부르는데, 2017년 6월 말 가입자 수는 54만9943명에 불과하지만, 최근 자영업자는 물론 학생·전업주부·공무원·회사원 등 20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가 대폭 확대되었다. 명실상부 전 국민적 노후준비수단으로 격상된 것이다. 바야흐로 IRP가 글로벌 대세로 부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지금 당장 살림이 쪼들리는 사람들에게도 노후는 중요하다. 일일 생활비를 아껴 단지에 모아놨다 손님 접대비로 사용했다는 소동파처럼 돈이 부족한 사람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IRP에 가입하면 의외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바로 압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민사집행법에서는 급여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연금채권은 전액 압류금지채권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2014년 1월 23일) 이후 퇴직연금은 급여압류 대상채권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IRP는 퇴직연금의 한 종류다.
IRP에는 어떤 혜택이 있나?
IRP의 가장 큰 혜택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금융상품에 가입하면 발생한 이자(배당 포함)에 대해 15.4%의 이자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IRP에 가입하면 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3~5.5%의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이자소득세만큼 적립액이 늘어나고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IRP에는 연금저축과 합산하여 연간 18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보통 세액공제 한도액인 700만원까지 납입을 권유받거나 그렇게 납입하는 가입자가 많은데, 세액공제액을 초과하는 1100만원을 잘 활용하면 의외의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1100만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고, 중도해지나 연금을 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요즘 보기 힘든 비과세 상품인 셈이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는 분들은 IRP 납입 최고한도액을 적극 활용하면 노후가 든든해질 것이다. 참고로 연금소득세율은 연령별로 다른데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인 경우는 5.5%, 70~79세는 4.4%, 80세 이상은 3.3%다. 단,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이더라도 종신연금을 신청하면 4.4%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IRP의 두 번째 혜택은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간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IRP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400만원까지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연금저축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IRP에 가입하면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근로자 등 급여소득자의 세액공제율은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사람은 16.5%를, 이를 초과하는 사람은 13.2%를 적용받는다. 자영업자 등 종합소득세를 적용받는 사람들의 세액공제율은 4000만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16.5%, 초과하는 사람은 13.2%다. 연간 700만원을 납입할 경우 연말정산 때 16.5%를 적용받는 사람은 115만5000원을, 13.2%를 적용받는 사람은 92만4000원을 돌려받는다([표1] 참조). 쏠쏠하지 않은가?
IRP에 대한 세제혜택은 또 있다. 바로 퇴직금을 IRP 계좌에 넣어두고 운용하다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30%나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연금수급 자격에 대해선 [표2] 참조). 많은 사람이 퇴직할 때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간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금 규모와 근속기간에 따라 0~28.6%의 퇴직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실제로 받는 퇴직금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다. 그러나 퇴직금을 IRP 계좌로 이체한 뒤 연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소득세율의 70%만 연금소득세로 납부하면 된다. 퇴직소득세 대비 연금소득세가 30% 절감되도록 소득세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하더라도 60일이 경과되지 않았다면 이미 납부한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금융기관을 방문해 IRP 계좌를 개설한 뒤 수령한 퇴직금을 이체하면 퇴직한 회사에서 원천징수해둔 퇴직소득세를 IRP 계좌에 입금시켜주기 때문이다. 만일 퇴직금 중 일부를 사용했다면 남은 금액만 IRP 계좌에 입금해도 입금비율에 맞춰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IRP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세액공제한도를 초과해 납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액공제한도 초과분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를 면제받는 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다음 해에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을 넘는 근로자가 2017년에 1000만원을 납입했다면 당해 연도에 700만원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고, 2018년도에 300만원을 이월신청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보너스를 받을 경우에 활용하기 좋은 방법이다.
IRP에 가입할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로 중도에 해지할 경우 이미 세제혜택을 받은 납입금액은 물론 운용수익까지 16.5%의 기타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망, 해외 이주 등 세법상 부득이한 인출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인출액에 대해 세율이 낮은 연금소득세(3.3~5.5%)가 적용된다. 사유 발생일 이후부터 6개월 이내에 증빙서류를 갖춰 금융회사에 신청하면 된다. 한편 IRP에 가입해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때 연금수령한도를 초과해 수령하는 경우 한도초과금액에 대해 16.5%의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연금수령한도는 연금개시 신청일 당시의 적립금을 ‘11-연금수령연차’로 나눈 뒤 1.2를 곱해 계산된다. 예를 들어 연금개시 신청일 현재 IRP 적립금 평가액이 5000만원이면 첫해 연금수령한도는 ‘5000만원/(11-1)×1.2=600만원’이 된다.
IRP 가입과 적립금 운용은 어떻게?
절세상품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절세덩어리인 IRP는 매우 매력적이다. IRP 가입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신분증과 [표3]과 같은 필요서류를 준비해 금융기관을 방문하면 그만이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온라인으로도 가입할 수 있으니 업무시간 중 금융기관을 방문하기 힘든 사람들은 이를 활용하면 된다. 계좌를 개설할 때는 0원으로도 가능하다. 계좌를 개설했으면 그다음은 계좌에 들어갈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표4]에서 보는 것처럼 IRP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도 있고, 선택할 수 없는 상품도 있다.
특히 투자형 상품을 선택할 때는 수익률과 리스크를 잘 따져야 한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현재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수익률만 보고 펀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의 수익률과 함께 수익률 추이,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 수준, 펀드운용 시스템, 자산배분, 수수료 수준 등을 잘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금융기관별 수수료율과 장기(5년/8년) 연평균 수익률은 노동부 퇴직연금 홈페이지에 공시되어 있다.
만약 이미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이 최근 나빠졌다면 다른 펀드로 갈아타자. 이를 위해선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은 수익률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손성동(孫盛東)한국연금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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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 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지인 중에 환갑나이가 되어 남편과 1년간 별거를 선언하고 원룸으로 옮겨 생활하는 분을 만난일이 있다. 그 당시에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잘사는 집안으로 큰 아들은 변호사이고 작은 아들은 의사다. 남편도 잘 나가는 고위공무원 출신으로 연금만 해도 3백만 원 이상을 탄다. 황혼이혼도 생각해보았으나 단지 남편이 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는 이혼사유가 되지 않아 결국 남편과의 합의하에 이 길을 택했다고 한다. 수년전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엄마 김혜자씨가 남편의 허락아래 1년간 안식휴가라는 명목으로 원룸을 얻어 자유를 구가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놀랍게도 남편이 싫어진 이유는 단한가지였다. 정말 착실했던 남편이 2년전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그동안 소홀했던 와이프를 위한 집안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누라 힘들까봐 그동안 도와주지 못한 빨래는 물론, 밥도 짓고, 시장을 보아 반찬도 직접 만들어 바치고, 이른 아침부터 먼지하나 없을 정도로 집안 청소를 깔끔하게 해놓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정말 좋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남편이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서부터 무언가를 송두리째 남편한테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남편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삶이 무기력해지며, 소화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우울증까지 찾아왔고, 급기야 도저히 같이 살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의학적으로 ‘남편 재택(在宅) 스트레스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의 심리내과의사인 구로카와 노부오(黒川順夫)박사가 명명한 것이다. 주로 정년 후 집에 있는 남편이 귀찮게 여겨져 스트레스를 받고 심해지면 우울해져 다양한 이상증세가 몸에 나타나기 때문에 엄연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남편으로서는 그동안 열심히 일만하다가 모처럼 자신이 집에 있을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심각해지는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이 나쁜 것도 부인이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편이 집에 없는 전제하에 자신의 생활이나 인간관계를 구축해온 부인으로서는 남편의 정년으로 갑자기 자유를 빼앗기게 되어 참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심한 초조감과 우울한 기분에 휩싸일 뿐 아니라, 두통, 어깨 결림, 위궤양 같은 소화기계통의 이상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쁜 등 신체적 부조화가 나타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굳어진 생활습관과 남편의 정년 후의 생활 차이를 갑자기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남편 재택 스트레스증후군은 부인이 한 마디 말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을 억제하는 성격인 경우 더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노년을 바라보고 가는 연령이 되면 서서히 뺄셈을 해 두는 것이 좋다. 뺄셈이 필요한 것은 바램이나 욕망, 어깨의 힘, 잘나가던 과거의 생각 등이다. 특히 점점 바램이나 욕망을 낮추어 갈수록 오히려 만족도는 더 깊어진다.
일본의 사이토 시게타(斎藤茂太)씨의 글 중에 ‘40%의 마누라’가 걸작이다. 그의 부인은 ‘40%의 마누라’를 자칭하고 있고, 본인은 그것을 매우 만족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부부는 원래 다른 인격체이므로 내가 생각하는 바램의 반만 충족해 줘도 ‘그것으로 대만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모든 바램의 레벨을 낮추어서 80%정도로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부인에게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50% X 0.8=40% 이루어졌다면 대만족, 즉 40%의 마누라는 훌륭히 합격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부부관계에 큰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고, 평온무사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부부라도 정년을 맞이하면 정년은 부부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온했던 집안에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주일쯤이야 마누라가 집을 비우거나, 반대로 남편이 집을 비운다 해도 서로가
“그까이꺼....” 하고 너털웃음으로 넘겨버리자.
100세 시대엔 자산관리도 평생 동안 해야 한다. 평생학습처럼 평생 자산관리 시대다. 평생학습이 정신적·심리적 강장제라면 평생 자산관리는 재무적·경제적 예방주사이자 영양제다. 지금까지 일만 하면서 살아온 것이 억울해 앞으로 열심히 놀고 싶은데 자산관리를 평생 하라니…. 원통한가? 그러면 곤란하다. 평생 자산관리는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인생을 보다 의미있고 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의식주는 당연한 일이고 사회활동을 하는 데도 돈이 든다. 노후에 몸이 아파도 큰일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평소 건강관리를 하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아무리 초연해지려고 해도 돈이 없으면 건강도 챙기기 힘들고 하고 싶은 일 하기도 어렵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돈 걱정 없는 노후의 삶을 바란다. 특별한 사람의 대표적 사례는 톨스토이다. 그는 돈을 매우 싫어했으며, 평생 가난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돈이 그를 너무 사랑해 한 번도 가난해진 일이 없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삶을 찾아 길을 떠났고 객사하고 말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돈을 매우 좋아했으며 평생 부자를 꿈꾸었다. 글도 돈을 벌기 위해 썼으며, 선금을 주지 않으면 작품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는 물질적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인 두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을까? 톨스토이는 돈이 마를 수 없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그 재산을 물려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원고료를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 기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박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다.
톨스토이가 모든 재산을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건전한 삶을 살았다면 꿈을 실현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오! 저런!’과 ‘오! 이런!’
“자식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오! 저런!’을 모릅니다.” 로 잘 알려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본을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이 그에게 해준 말이다. ‘오! 저런!’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런 극단적인 일 말고도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단말마처럼 ‘오! 이런!’을 내뱉는다. 리스크 관리는 바로 ‘오! 이런!’의 빈도를 줄이는 일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노후자산 관리의 핵심은 돈과 죽음의 경주에 있다. 다시 말하면 돈의 고갈 시점이 더 빠르냐, 생명의 소진 시점이 더 빠르냐를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돈과 죽음의 랠리는 흔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비교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것은 토끼가 도중에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죽음의 경주는 다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없다. 돈은 빠져나가는 속도는 너무 빠르다. 쉬어가는 법도 없다. 가끔은 키다리처럼 보폭이 커지거나 아예 도약대를 딛고 날아오르는 체조선수처럼 큰 점핑을 하기도 한다. 그 속도와 높이를 쉽게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 생명의 소진 속도는 너무 느리다. ‘오! 이런!’
돈과 죽음의 경주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추거나 돈 뭉치를 크게 만들면 된다. 많은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익률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 자산관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산관리는 소득과 지출 수준, 자산과 부채 규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2040세대에게도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고, 5070세대에게도 수익률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산관리의 무게 중심이 2040세대는 수익률에, 5070세대는 리스크 관리에 둬야 한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말하면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5070세대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3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5070세대는 현금 유입이 급감하거나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하면 월급이 끊어진다. 퇴직 후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돈 뭉치를 키우기 위해 수익률 높은 곳을 찾아 기웃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별일 없으면 다행이지만 리스크가 터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키우려고 한 돈 뭉치는 더욱 쪼그라들고 생활은 불안해진다. 현금이 계속 유입되는 2040세대는 리스크가 터져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그 자산을 사들임으로써 가격상승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이른바 물타기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금 유입이 급속히 줄어드는 5070세대는 그럴 여유가 없다. 수익률보다는 리스크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둘째 급감하는 현금 유입에 비해 지출의 규모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금 유입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출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고정비에 가깝고, 나이가 들면 몸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한다. 게다가 장성한 자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더해지면 설상가상이다. 노후가 길어진 만큼 지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만약 연금이 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장기적으로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자산관리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화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기술의 수용 속도를 보면 라디오 38년, TV 13년, 아이팟 4년, 인터넷 3년, 페이스북 1년, 트위터 9개월 등이다. 변화를 이끄는 신기술에 대한 수용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세대를 가르는 시간 기준 역시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세대를 구분할 때 30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20년에서 10년으로 짧아지더니 최근에는 5년까지 짧아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4~5년이면 세대 간의 차이와 거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변화는 곧 리스크다. 자산관리에서 리스크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한낮에도 그저 적요한 읍내 도로변에 찻집이 있다. ‘카페, 버스정류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버스정류장’이란 떠나거나 돌아오는 장소. 잠시 머물러 낯선 곳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거나, 마침내 귀환하는 정인을 포옹으로 맞이하는 곳. 일테면, 인생이라는 나그네길 막간에 배치된 대합실이다. 우리는 모두 세월의 잔등에 업히어 속절없이 갈피없이 흔들리며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아니던가. 저마다 여정을 손에 쥔 순례자이며 여행자! 상호에 서린 서정을 음미하며 찻집으로 들어선다.
‘카페, 버스정류장’ 주인 박계해(57)씨는 5년여 전까진 문경시 가은읍의 산골에서 귀농자로 살았다. 그보다 더 오래전엔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교직생활은 신바람 났었더란다. 그럼에도 교사직을 버리고 귀농을 한 건 그 어떤 틀에 사로잡혀 살기를 악어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일처럼 싫어하는 성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이 어느 날 귀농을 선창하고 나선 데 있었다. 그녀는 고분고분 따랐으며, 남편보다 더 빠르게 시골생활에 적응했다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그렇게 시작된 시골 살림은 이후 10여 년간 계속됐으나 다시 행선지를 바꾸었다. 인생이라는 여행 혹은 순례에 무슨 고정된 목적지가 있을 것인가. 박계해씨는 우연히 상주시 함창읍의 거리를 걷다가 오래된 일본식 2층 고가에 필이 꽂혀 단박에 임대를 하고 찻집을 차렸다.
교사에서 농촌생활자로, 다시 소읍의 찻집 운영자로. 다채로운 편력을 하며 중년기 15년여의 세월을 흘러온 셈이다. 섭렵이 쏠쏠했으니 드라마도 푸짐하렷다. 행복과 불행이, 만족과 불안이, 빛과 그늘이 순리처럼 그녀의 시간을 곡예하며 통과했을 게다. 그렇다면 마땅히 자리에 모시어 경청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 운치도 정취도 남실거리는 찻집에 마주앉아 한 여자의 삶에 서성거리는 나름의 광량(光量)이라는 걸 느껴볼 수 있는 기회란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귀농 10년의 얘기부터 들어볼까? 순식간에 학교에 사표를 내고 후다닥 귀농한 대목으로부터 얘기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제안을 따라 귀농 교육을 받으며 곧바로 제 마음도 시골로 향했어요. 제 고향이 하동 악양의 시골인데요, 허물어져가는 돌담집에 대한 애호 같은, 농촌의 자연과 풍경에 매료되는 성향 덕분이었죠. 드디어 지인의 소개로 가은의 시골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모든 게 맘에 들었어요. 빈집 하나를 사서 적당히 고쳐 시골 살림을 시작했어요. 도시 출신인 남편과 달리 저는 풀이나 피도 잘 뽑고, 매사 빠르게 적응했어요. 시골생활의 많은 점들이 좋았어요.”
“귀농의 초기 정착에 갖가지 애환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선생의 시골생활은 좀 달랐군요. 일테면, 어떤 점들이 만족스러웠죠?”
“무엇보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자연이 주는 감흥들이 참 좋았어요. 하늘, 땅, 나무, 풀, 모든 자연 생태가 주는 힘이라는 것, 그게 좋았어요. 재래식 화장실을 쓰며 도시에서 좌변기를 쓸 때 느꼈던 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어요. 이웃분들과의 소통은 늘 즐거웠어요. 제가 말이죠,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어요. 상(喪) 당한 집에서 이웃들과 둘러앉아 전을 지진 기억도 많아요. 학교생활의 경험을 살려 할머니들을 모신 학급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귀농 경험, 책으로 펴내다
“처음 3년간은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았어요. 교직 근속 20년을 채우기 직전에 사표를 써 연금 대상자가 되진 못했지만 퇴직 때 받은 돈이 있었기에 미리 걱정하거나 연연해하질 않았어요. 그런데 3년이 지나자 돈이 바닥나고 말았어요(웃음). 저나 남편이나 돈 문제엔 워낙 태평한 사람들이었어요. 저축이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거든요.”
“돈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게 귀촌귀농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물질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이 세속에선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저희 집 가훈을 들어보실래요? ‘내비도!’ 바로 그거였어요. 남편이나 저나 그냥 사는 스타일이었어요. 귀농해서 살며 생전 처음으로 돈의 위력을 실감했어요. 어느 정도 돈 문제에 덜미를 잡혔던 거죠.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웃음).”
‘내비도!’ 내버려둬라, 저절로 흘러가련다. 렛 잇 비(let it be)! 근사한 푯대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낭만적 지향이건 급진적 가치이건, 물적 토대에 의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소식이 난무하지만, 그게 반드시 그러기만 하랴.
귀농이나 귀촌이란 소유를 헐겁게 하는 실천일 수도 있다. 소유하지 않음이 아니라 가급적 소유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지혜를 발휘할 절호의 찬스일 수도 있겠지. 박계해씨의 사고와 삶은 자유로운 지평을 향했던 것으로 보이며, 귀농의 나날들은 한동안 유쾌했던 것 같다. 그러나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면서 당장 활로를 찾아야 했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라서 일을 만들어 덤벼들었어요. 가은읍내에 점포를 얻어 옷을 팔았어요. 전에 천연염색과 바느질 공부를 해둔 게 있었는데, 그게 도움이 됐어요. 손수 염색한 옷가지들이 제법 팔려나갔으니까.”
“시골 옷가게 매상이라는 게 소소했을 테고, 남모르게 진땀 흘린 시절들이었겠어요.”
“당시 아들과 딸, 두 녀석이 학생이었는데 교육비 부담이 컸어요.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갈까, 늘 고심이 많았어요. 그러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위축되진 않았어요. 이왕이면 일을 즐겁게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게에 딸린 안방을 동네 사랑방처럼 활용해 아줌마들과 교류를 했어요. 제가 교직에 있을 때 교사 극단을 만들어 활동한 경험이 있는데요, 가은 시골의 초등학교 학부형들과 작당을 해 연극 캠프를 열기도 했습니다.”
고심이 많은 생활이었지만 여흥을 누리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던 셈이다. 취향과 재능을 죽이는 난감한 상황에서도 여하튼 들고 일어서는 게 낙관의 힘이렷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처럼 즐거운 게 다시 있을까. 무슨 일이건 억지로는 하기 싫은 반면, 하고 싶은 일은 기어이 해내면서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실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벌인 일이기도 했어요. 연극 강사로 나서 수입을 얻었으니까. 주부강좌에 나가 천연염색을 강의하기도 했어요.”
“가은 시골에서의 귀농 경험을 담은 책, 를 출간했더군요.”
“촌에 살며 농사를 좀 했지만 사실 일머리가 서툴렀고 커다란 애착도 없었어요. 자연이 드러내는 사계의 민감한 변화를 만끽하는 일, 야산에 올라 산나물을 뜯는 일, 어른들과 어울리는 일은 참 좋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 같은 게 있었어요. 나, 이렇게 살다가 마는 거야? 아니지,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으로 귀농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데, 그가 말했어요. ‘기록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과 마찬가지다’라고. 그 말에 자극을 받아 마을 얘기,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좌충우돌한 경험담 등을 글로 썼던 겁니다. 책 출간 뒤엔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비록 물적 애환이 자심했다지만 동분서주, 야무지게 자신을 건사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말이죠, 귀농으로 맞닥뜨린 시련 중에 부부간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더군요. 선생의 그 열렬한 날들 중에 부군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흠. 저희 부부는 이혼을 했어요. 제가 먼저 이혼을 원했고, 마침내 남편이 동의해줬어요. 저는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고 사랑했어요. 그러나 더 이상 발전이 없는 한계를 깨달았어요. 소통에 문제가 생겼어요.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옳다는 판단을 했죠.”
언젠가는 섬에서 살고 싶어
이혼을 금기시하는 묘한 모럴도 있지만, 결혼이 자연스럽듯이 이혼 역시 당연한 귀결로 찾아드는 수가 있다. 이혼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고, 차라리 좋은 경험이었다고, 박계해씨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녀는 이혼 절차를 완료하고 남편과 함께 법원을 나서던 날의 기억을 다음처럼 글로 썼다.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독립을 축하해! 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이 대단한 남자와 결혼했던 것이 뿌듯해서 그에게 몸을 찰싹 붙이고 팔짱을 끼었다.’
박계해씨의 찻집 ‘카페, 버스정류장’은 귀농 이후 그녀의 삶을 새로운 쪽으로 데려다주었다. 인생엔 터닝 포인트라는 게 있는 법. 찻집 운영과 더불어 그녀의 나날은 바닷장어처럼 생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로 시인 강은교 선생이 이 찻집을 다녀간 뒤 ‘카페 버스정류장’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어지간히 지역의 명소로 부상해 일부러 찾아드는 이가 드물지 않다. 토속적 미감과 모던한 감각이 잘 버무려져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적막한 소읍의 찻집에선 차만 파는 게 아니다. 예술인들을 위한 전시장으로, 노래 공연장으로, 시낭송 공간으로 쓰이기도 하니까.
“귀농 이후 그 어느 시절보다도 편합니다. 일단은 규칙적인 소득이 발생하기에 안도할 수 있고,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과 만나 삶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아이들도 잘 자라 아들놈은 부산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딸은 만화가로 일하고 있어요. 두 번째 책 을 펴낸 일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어요.”
“귀농으로 촉발된 인생의 색다른 여정이 어떤 안착에 이른 거예요?”
“꽤 안심을 느끼지만 이 찻집은 앞으로 5년 정도만 더 할 작정입니다. 경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이곳을 지역 예술인들에게 내놓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저는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거나 환경을 바꿔야겠죠. 음, 요즘엔 시나리오를 쓸 궁리를 하고 있어요.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용 시나리오를요. ‘나의 경제’라는 제목의 책도 한 권 쓸 예정이에요.” “가령, 무인도에 혼자 살아야 할 경우 꼭 가져가고 싶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이상의 예요. 어, 그런데 제가 최종적으로 가서 살고 싶은 곳이 섬인데요?(웃음)”
“섬에서의 삶을 꿈꾸세요? 고독을 견딜 수 있겠어요?(웃음)”
“가급적 환경을 새롭게 바꿔 자신의 삶이 점점 나아지는 걸 느끼고 싶어요. 경험 세계를 넓혀 내적으로 성숙하는 기쁨을 맛보며 살고 싶다는 거!”
길은 다양하며, 모든 길마다 나그네의 경전이다. 삶의 문제를 여행으로 혹은 순례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귀농이건 섬이건 가슴 설레는 행로이지 않겠는가. 잠정적인 고난이야 해 뜨기 직전의 어둠이나 추위에 불과할 테고.
길은 다양하며, 모든 길마다 나그네의 경전이다. 삶의 문제를 여행으로 혹은 순례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귀농이건 섬이건 가슴 설레는 행로이지 않겠는가. 잠정적인 고난이야 해 뜨기 직전의 어둠이나 추위에 불과할 테고.
박원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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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노후파산’이란 글자 그대로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삶’을 말한다.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이 만든 책이다. 장수국가이고 노후 정책이 잘 되어 있다는 일본의 숨겨져 있던 현실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원래부터 빈곤했던 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열심히 살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수입은 줄고 어중간한 상태에서 살다가 한계에서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아주 가난하면 국가에서 보조해준다. 그러나 이런 노인들은 집이 한 채 있다는 이유, 저축 잔액이 50만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국가 보조 대상에서 제외된다. 물론 밑바닥까지 가면 국가 보조를 받을 수 있지만, 보잘 것 없는 집 한 채와 약간의 저축액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다. 물론 집을 팔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추억이 깃든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기서 여생을 보내다가 집에서 죽고 싶은 것이다. 팔아 봐야 큰돈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저축액을 50만 원 이하로 줄이면 보조를 받을 수 있으나 배우자의 장례비 등으로 준비하고 있는 돈이다. 그러므로 못 줄인다. 저축액이 제로가 되면 그야말로 절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므로 돈을 아껴서 쓰고 절벽에 가는 것을 늦춘다.
결국 돈만 있으면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그러나 노인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돈이 없어서 택시비가 무서워 못 타고 병원에도 못 간다. 돌봄 서비스도 충분히 못 받는다. 노후 파산이 겁나는 것이다. 그러다 죽는다.
또 하나는 노인 건강 문제이다. 노인들은 병을 안고 산다. 혼자 사는 노인이 병에 걸리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 병원에 가면 치료비가 엄청나서 바로 노후 파산으로 이어진다. 다행히 병이 낫는다 하더라도 병원비를 내고 나면 돈이 없으니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이 일찍 퇴직하면서 동반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근근이 먹고는 살지만, 취업이 그리 쉽게 될 리 없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기생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나마 나오던 연금도 안 나온다. 노인도 되기 전에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도 독거 노인 600만 명 중에 그나마 생활보조를 받는 사람은 70만 명 정도 되고 그 나머지는 연금만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들이란다. 이런 사람들이 건강할 때는 그런대로 살아가지만 수술을 받거나 삐끗했다 하면 바로 노후 파산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부류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참으로 대단히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해서 받는 돈이므로 떳떳하다. 만약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자녀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것이다. 이미 투자한 원금은 다 까먹고도 죽을 때까지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해서 계속 나온다니 대박이 아닐 수 없다. 그 자금 조달을 보면 이미 자녀들 세대의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사전 체크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던 1960년(남 51.1세, 여 53.7세)에 5070은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5070은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들이다. 반백년 만에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올해 김형석 교수의 나이는 98세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 정도(78.3%)는 70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70은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신중년’인 셈이다. 지금의 5070세대는 그 전까지 일과 가족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50세를 넘기면서 ‘신중년’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경제적 토대다. 5070 액티브 시니어가 2040일 때는 월급이라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아직 현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070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이미 은퇴한 5070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적 현금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답습하며 모아놓은 돈을 빼내 쓰는 행위로는 평안한 노후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역 시절 안정적인 생활이 노후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5070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지위를 노후에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재무설계는 재무 상황을 파악하여 관련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구체적인 자금 준비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070세대가 이전까지는 월급을 통해 재테크, 저축, 목돈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왔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 가치관의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를 특별히 ‘은퇴재무설계’라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5070세대에게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
첫째, 속성이 다르다. 재무설계 측면에서 5070세대와 2040세대는 그 속성이 다르다. 2040세대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우물이라면 5070세대는 더 이상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우물이다. 5070세대가 자신의 우물에서 죽을 때까지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막혀버린 샘물이 다시 나오도록 다른 길을 뚫거나, 우물의 물이 썩지 않은 상태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속성이 다른 2040세대 때 해오던 재무설계를 5070에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2040 시절에 고수익·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070 은퇴재무설계는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소비하고 지출할 것인가 하는 현금흐름 중심의 재무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현역 때인 2040 시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When the music change, So does the dance)”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을 노멀(normal) 시대, 그 후부터는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5070세대가 살아왔던 노멀 시대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그리고 저축만 열심히 해도 돈을 불릴 수 있는 시절이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무설계였다. 1980년에 시중은행의 평균금리는 24%였다. 5년 만기 재형저축상품의 금리는 무려 36%였던 적도 있다.
목돈을 만드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72법칙이 있다. 72법칙은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는 공식으로 ‘72÷금리=기간’으로 산출한다. 과거 금리가 24%였던 시절에 1억 원을 예금해두었다면 원금은 3년(72÷24=3) 만에 2배로 불어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떨까? 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하더라도 원금을 2배로 만드는 데 36년(72÷2=36)이나 걸린다. 예전처럼 예금으로 자산을 급속히 늘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모아놓은 한정된 자산으로 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은퇴 자금으로 제법 큰돈을 모아놓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노후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년 2400만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은 2%라 가정하자. 이 사람이 3억원에서 언제까지 노후생활비를 꺼내 쓸 수 있을까? 이는 3억원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3억원을 예금도 적금도 아닌 자신의 금고나 장롱에 넣어두고 사용할 경우(운용수익률 0%) 약 11년이면 소진된다. 운용수익률이 2%일 때는 12년, 4%일 때는 14년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7%일 때는 약 20년으로 노후자금 사용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즘은 노후생활비를 이자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금리생활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셋째, 수명 증가 속도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몇 명일까? 통계청(2016) 자료에 따르면 3159명이다. 90세 이상 인구는 이보다 약 50배 많은 15만 명 정도다. 10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에 비해 72%, 90세 이상 인구는 67%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82.1세로 2년마다 기대수명이 1년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 심지어는 14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퇴직 후 10~20년을 더 산다는 전제로 노후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5070세대 중 액티브 시니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의 기대수명은 더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3.7세로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77.6세)보다 6년이나 더 길다. 한마디로 부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상영된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돈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고,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넷째, 가계 재무상태가 적절치 못하다. 5070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 세대는 전쟁과 굶주림, 경제개발과 IMF 경제위기 등 롤러코스트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축적한 자산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2016)’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자산은 4억4302만원, 부채는 8385만원으로 순자산이 3억5917만원이다. 60대 이상은 자산 3억6648만원, 부채 4926만원, 순자산 3억1722만원이다. 5070세대는 평균적으로 3억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액수다.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50대는 전체 자산의 69%가 부동산이고, 60대의 부동산 비중은 79.1%나 된다. 60대 이상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1656만원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하우스 리치(house rich)’, ‘캐시 푸어(cash poor)’ 현상이다. 자산은 많으나 현금이 없는 것이다. 자산으로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그마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도 파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하면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까? 5070세대의 가장 큰 숙제다.
다섯째, ‘노후난민’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은 5070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충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80세 이후에도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후난민’은 은퇴 후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급기야는 의식주 같은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한 자금조차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이기는 바람에 노후파산이라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적잖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명과의 경쟁에서 돈이 지도록 만드는 원인은 뭘까? 자산관리 소홀, 의료비 부담, 자녀부양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산관리 소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안전심리가 노후난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일에서 은퇴했다고 투자활동까지 막을 내리면 곤란하다. 은퇴 이후에는 나를 대신해 돈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은퇴 및 투자전문가인 노지리 사토시는 노후난민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삶을 은퇴 전과 은퇴 후의 2단계로 구분하지 말고 3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즉 ①직장생활로 ‘돈 버는 시기’, ②은퇴 후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자산 투자기’, ③투자활동을 끝내고 불린 자산을 느긋하게 소진하는 ‘완전 은퇴기’로 구성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불려나가는 ‘자산 투자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지리 소장은 은퇴 후에도 20년 정도는 자산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75세쯤에야 투자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 의료비 부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관련 생활비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보지만 도적처럼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노후 질병’이다. 게다가 꽤 큰돈까지 삼켜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0만2904원으로 전체 인구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9만9315원)보다 3배 이상 많다. 70세 이후 보건의료비 지출은 소비지출의 15.5%나 차지한다. 노인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 부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했으나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문제로 노후에 파산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의료비 지출은 일정연령이 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과 오래 살수록 위험이 급증하고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자녀부양 문제: ‘73만7000원!’ 25세 자녀를 둔 부모가 한 달 자녀에게 쓰는 부양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4명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취업, 결혼한 자녀를 계속해서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해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면 부모의 자녀부양 의무는 끝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캥거루족, 부메랑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부모가 성인 자녀를 돌보는 역부양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란 ‘더블케어(double care)’ 현상에 직면해 있는 5070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미국의 예금 금리가 올랐고 우리나라도 예금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최저 금리다. 금리를 낮추어 경기 부양을 시도했지만 경제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망해야 할 기업은 망해야 한다. 낮은 생산성과 적자 기업을 낮은 금리로 겨우 기업 목숨을 부지하다가 결국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더 크게 망했다. 낮은 금리로 빚을 내어 부동산을 사고 빚을 내어 창업에 뛰어들다보니 가계부채는 1.000조를 훌쩍 넘어섰다. 앞으로 금리가 인상되면 줄도산이 우려되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금리 인하의 역습으로 근로 소득 없이 알량한 퇴직금에서 나오는 이자 소득만으로 생활하는 노인의 삶은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1억 원의 즉시연금 이자가 반 토막이 되어 30만 원 대에서 17만 원 대로 주저앉았다. 은행 이자를 받아도 세금 15.4%를 제하면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친다. 일본에서는 마이너스 금리라고 겁을 주고 우리나라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으라고 한다. 이제는 저축의 시대가 아니고 투자의 시대라고 한다. 투자의 위험은 스스로 감수해야 하고 그 위험을 직시하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경제 공부를 하라고 하지만 노인들에게 이제 와서 경제 공부를 하라는 것은 소수의 노인에게만 해당될 뿐 대부분 노인으로서는 감당 못할 소리다. 부동산이나 증권투자도 위험부담이 높아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노인은 금리가 낮아지면 소비를 증가하기 보다는 낮은 이자만큼 허리띠를 더 졸라 맬 뿐이다. 낮은 금리가 소비를 진작시킬 것이라는 이론은 노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금리가 낮다보니 불빛을 찾는 불나방 모양 한 푼이라도 이자를 더 준다는 곳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이나 친척들이 사업을 해서 더 많은 이자를 주겠다고 빌려가서는 뒤는 내 몰라라하는 똥배짱에 속절없이 당한다. 어찌 동방예의지국에 영수증 없이 돈을 빌려준 자식과 송사를 벌린단 말인가. 부동산 임대 수입이 최고라며 상가 구입을 꼬드겨 막상구입하면 임차인을 못 찾아 빈 상가에 관리비만 물어주고 있다. 기획부동산은 노인의 돈을 요리하기 쉬운 먹잇감으로 보고 밤낮으로 하이에나처럼 덤빈다. 새로운 유망산업이라고 투자만 하면 놀고 이익금을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피 같은 돈을 날리고 눈물짓는 노인들의 사연을 들을 때 마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가난한 노인들이 가난하게 된 원인 중에 자기 돈을 허망하게 날린 사람이 많다. 은행금리가 낮아지면 노인의 돈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하다 허망하게 날린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의 노인 빈곤 국가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 율은 45.1%로 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보다 3배 이상 높고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라고 한다. 자식들을 위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열심히 살아온 노인세대가 왜 가난에 시달리는지 근원을 파악해야 함에도 그 근원은 외면하고 현 실태만 파악해서 극빈자로 취급해주고 일정액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정부는 할일 다 했다고 손을 놓는다.노인들이 갖고 있는 돈을 보호해 주지 않으면 이들은 금방 극빈자 대열에 합류한다. 극빈자가 된 후 쌀을 주네 지원금을 주네 하지 말고 극빈자로 떨어지는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인이 갖고 있는 돈을 보호해 주기위해서도 65세 이상 노인의 비과세 예금 한도를 대폭 높여야 한다.
가난하게 사는 노인을 전수 조사하여 왜 가난의 나락에 떨어졌는가를 파악하고 이를 교훈삼아 후배세대들이 똑 같은 수순을 밟지 않도록 계도해야 한다.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고 노인이 가난하게 된 원인을 알아야 탁상 대책이 아닌 실질적 구체적 대책이 마련된다. 젊어서 열심히 일한 노인이 왜 지하실 단칸방에서 가난과 질병과 고독과 싸워야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빈곤층의 노인을 지원하는 제도는 있지만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전의 예방책이 없음을 개탄한다.
어느 60대 여성들의 대화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어린이 놀이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벤치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할머니의 존재를 잊은 듯 신나게 노느라 여념이 없었고, 할머니 두 분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잠시 손주들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우연히 그 옆에서 할머니들과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필자는 어느 순간 벤치 쪽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고정했다. 남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직업병 탓으로 돌리며 그 내용을 여기에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할머니 한 분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곗돈을 탄 모양이었다. 그 곗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요즘은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얼마 붙지 않아 재미도 없는데, 곗돈을 어디에 쓸 거유?”
“연금에 가입해 매달 연금으로 받으려고 해요.”
“연금으로 받으면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 차라리 여행을 다녀오거나 며느리에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매달 받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그리고 이제 우리 노후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잖우.”
이 말을 들은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 게임
위의 대화는 오늘날 60대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돈이 좀 생기면 고민도 생긴다. 자식을 위해 써야 할지, 아니면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자신을 위해 써야 할지, 자신을 위해 쓴다면 어떻게 쓰는 게 과연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노후를 위해 연금에 가입하는 게 좋을까? 이성은 연금에 가입하라고 권하는데, 감정은 자식을 위해 쓰라고 부추긴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 나오는 여성처럼 꿋꿋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감정적으로 내린 판단보다는 이성적 판단이 지혜로운 판단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2001년, 미국의 저명한 두 교수가 2001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 중 2150년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을 두고 내기를 걸었다. 미국 앨라배마 버밍햄대학교 오스태드 교수는 메트포르민과 라파마이신 등이 인간의 수명을 상당히 늘려줄 것이라며 생존 쪽에 내기를 걸었고, 시카고대학교의 올생스키 교수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걸림돌로 작용해 아무리 오래 살아도 115세밖에 못 살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1년에 각각 150달러씩 내어 300달러를 펀드에 투자했다. 이 펀드는 2016년까지 연평균 9.5%의 높은 수익률을 보여 300달러가 1275달러로 늘어났다. 2016년 이들은 각각 300달러씩 또 내어 600달러를 이 펀드에 추가로 넣었다. 이 펀드가 2150년까지 연평균 9.5%의 수익률을 실현하면 2150년에는 약 2억 달러가 된다. 이 돈은 내기에서 이긴 사람의 유족이 다 가져가기로 했다. 지금의 60대가 150세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없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명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연금을 선택한 이성의 판단은 옳은 것이다.
60대 연금술의 핵심과 전략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어떤 연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가진 돈을 모두 연금으로 전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여기에 60대 연금술의 전략이 있다. 모든 자산을 연금화한 뒤 매달 받는 연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연금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나오겠지만, 당장의 큰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을 얻게 된다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쪼들린 생활을 해야 함을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의 저서 는 연금으로 일상적인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하더라도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 질병 등 추가로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곧바로 하류노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현금이 흘러넘치는데도 경제 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풀지 않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유동성 함정’이라 한다. 은퇴자의 경우도 연금이 쉼 없이 나오는데도 일시적 지출에 대응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이라고 하자. 은퇴자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결국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연금화와 유동성의 적절한 조화라 할 수 있다.
정상연금이냐? 연기연금이냐?
60대가 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국민연금의 수령시기를 법에서 정한 시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미룰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2017년에 만 60세가 되는 1957년생은 만 62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민연금은 정상 수령 연령부터 받는 것이 기본이지만 최대 5년간 앞당겨 받을 수도, 늦춰 받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당겨 받는 것을 조기연금, 늦춰 받는 것을 연기연금이라고 한다. 조기연금을 신청하면 정상연금보다 일찍 수령하므로 1년당 6%씩 수령액이 낮아지며, 연기연금을 신청하면 1년당 7.2%씩 수령액이 늘어난다.
1957년생이 62세에 연금을 신청할 경우 연간 1200만원(월 100만원)을 받는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연금 수령을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와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7.2%씩 급여액이 올라가므로 첫해 연금액은 36% 증가한다. 반면에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6%씩 급여액이 삭감되므로 첫해 연금액이 정상연금액보다 30% 줄어들게 된다. 첫해 받게 되는 월 연금액은 조기연금 70만원, 정상연금 100만원, 연기연금 136만원이다. 이렇게 보면 언뜻 연기연금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연기연금에 비해 조기연금은 10년 먼저, 정상연금은 5년 먼저 받기 때문이다.
어떤 수령 방법이 가장 유리한지는 누적연금액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적연금액 곡선의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것은 연기연금이고, 그다음이 정상연금이다.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초과하지만,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에게는 추월당함을 의미한다. 정상연금 월 100만원과 이 연금액이 매년 물가상승률(2% 가정)만큼 증가한다고 했을 때 76세가 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보다 많아지고, 80세가 되면 10년 늦게 시작한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추월하며, 84세가 되면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마저 넘어서게 된다( 참조). 이는 84세 말까지 생존해 있을 경우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가장 많음을 뜻한다.
2015년 완전생명표에 따르면, 62세 여성의 기대여명이 25.1세이므로 여성은 평균적으로 연기연금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며, 남성의 기대여명은 20.6세이므로 연기연금을 우선으로 생각하되 상황에 따라 정상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란 가족력이나 본인의 건강상태 등을 말한다. 이 상황을 감안해 기대여명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낮으면 정상적으로 62세에 연금을 신청해야 가장 많은 연금액을 받는다.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
이제 60대 연금술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에 대해 살펴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나오는 종신연금의 적정비율은 은퇴 자산의 규모, 국민연금 수령액, 주택연금 가입금액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은퇴파산 확률이 가장 낮은 종신연금의 비중은 24~42%라고 한다. 종신연금의 비율이 24% 이하로 떨어지면 장수리스크와 변동성리스크 때문에, 42%를 넘게 되면 구매력리스크와 이벤트리스크 때문에 은퇴파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조). 모든 자산을 종신연금으로 전환해버리면 은퇴파산 확률이 90%로 올라가는데, 이는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사적연금의 경우 연금액이 일정 금액으로 고정되어 있어 인플레이션에 취약하고, 이 상황에서 질병이나 사고 등 큰 금액의 지출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면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종신연금의 비중을 3분의 1 정도로 유지하고, 나머지 자산은 인플레이션 헤지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서는 투자형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저축 투자형 소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 자산을 운용하는 새로운 패턴을 말한다. 과거의 은퇴자들이 저축한 돈에서 매달 생활비를 빼 쓰는 방식을 취했다면, 단카이 세대는 저축한 돈의 일부를 투자로 운용하는 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투자를 위험한 행위로만 생각하지 않고, 돈에게 일을 시켜 새로운 돈을 벌어들이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일본의 50~60대 남성들의 일상 대화 속에 건강 이야기 못지않게 ‘돈이 되는 금융상품’이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어른 문화 연구소’의 소장인 사카모토 세쓰오는 저서 에서 아베노믹스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부 기관 투자가나 해외 펀드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참가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개인 투자가의 중심적 존재가 바로 단카이 세대였다”고 말한다.
투자를 통해 돈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면 괜찮은데,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투자의 세계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고 아울러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좋은 것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의 고령자가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매월 연금 방식으로 노후생활 자금을 지급받는 국가 보증의 금융상품(역모기지론)을 말한다.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우선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고, 이를 제휴 금융기관에 내면 그 금융기관에서 주택연금을 지급해준다.
주택연금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연금지급방식이다. 주택연금의 지급방식은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방식과 고객이 선택한 일정 기간 동안만 월 지급금을 지급받는 확정기간방식으로 나뉜다. 종신방식은 다시 인출한도 설정 없이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지급방식과 수시인출한도(대출한도의 50% 이내) 설정 후 나머지 부분을 월 지급금으로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혼합방식으로 구분된다. 수시인출한도를 잘 활용하면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주택연금을 신청할 때 무조건 종신지급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국민연금 수령액,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수령액을 먼저 계산한 뒤 부족한 월 생활비만큼을 종신연금으로 수령하고 나머지는 수시인출한도를 설정해 유동성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종신토록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조달받으면서 갑자기 도래할 수 있는 예상외 지출 건에도 대응할 수 있어 은퇴파산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에게 기대기도 쉽지 않다. ‘최고의 은퇴 준비는 은퇴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처럼, 노후소득 준비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능한 한 계속 근로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시니어가 소득활동을 완전히 그만두는 시기는 평균 71세로, 40~50대에 일단 은퇴하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입은 예전처럼 높지 않고, 건강 문제 등으로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은퇴 후에도 생활 수준 유지를 위해 원활한 소득 발생과 갑작스러운 목돈 지출을 막는 자산관리가 중요하다. 은퇴 전후에 있는 싱글들을 위한 실질적인 자산관리 방법을 알아봤다.
정하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연금은 노후소득이 꾸준히 발생하도록 돕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평균연령이 82세로 늘어난 지금, 50대에 은퇴해도 30여 년의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현재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5070 시니어에게는 충분한 연금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부족했다. 1970년의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61.9세, 1988년에는 70.3세에 불과했다. 2000년대 이후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가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자녀교육비 등이 우선순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현재 고령자의 연금은 생활비를 대체하기에 역부족이다. 통계청의 5월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55~79세 고령층의 연금수령액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을 모두 합해 월 평균 51만원에 불과하다. 싱글은 연금 부족 문제가 더 크다. 부부에 비해 받는 연금이 절반밖에 안 되는데 월세, 광열비 등 고정지출 때문에 생활비는 절반보다 높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표준생활을 위한 1인가구의 적정 노후생활비는 월 142만원으로, 부부 기준 225만원의 63% 수준이다.
연금을 늘리기 위한 두 가지 단기 처방
좋은 소식은 지금이라도 연금수령액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20~30대와 달리 적립시간이 짧기 때문에, 소액 장기적립이 아닌 목돈을 활용해야 한다. 소중히 모아온 자산을 활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러한 자산이 단기에 바닥나지 않도록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활용해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방법이다. 현재의 5070 시니어들은 급격한 경제성장기 부동산시장의 높은 성장을 경험한 세대로, 자산이 부동산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혼자 사는 데 주택이 무슨 소용이냐며 집을 팔고 전·월세로 변경하는 싱글 시니어도 많지만, 살아왔던 거주지 근처에서 이사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은 노후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 고령자가 보유한 9억원 이하 주택을 담보로 매월 연금을 받는 역모기지 상품이다. 주택연금의 수령액은 주택 가격과 집주인의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만 60세인 1956년생이 5억원 가치의 주택으로 종신형 주택연금을 신청한다면, 살던 집에 계속 살면서도 매월 113만6000원을 평생 받을 수 있다. 또 목돈 지출에 대비한다면 연금을 조금 줄이고 대출한도의 최대 70%까지 인출한도를 설정해 가입하면 범위 내에서 수시로 인출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보유한 현금을 활용해 즉시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즉시연금보험은 목돈을 일시에 납입한 후 즉시 또는 정해진 기간 이후 일정한 연금을 받는 금융상품이다. 보통 만 45세 이상 가입할 수 있는 이 상품은 가입 후 다음 달부터 바로 연금을 수령할 수도 있어 연금 소득을 즉시 늘리는 데 효과적이다. 50대에 퇴직하고 만 60세 이후에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 소득 공백기간을 채울 때 특히 유효하다. 가입조건에 따라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2013년 이후 가입한 즉시연금은 사망할 때까지 지급하는 종신형일 경우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금액에 관계없이, 그 외의 방식은 계약 후 연금수령까지 10년 이상 유지하면 1인당 최대 2억원 한도 내에서 비과세가 적용된다.
노후 파산 막는 의료비 대책
싱글 시니어는 자기 건강관리에 쏟는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나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예상외의 지출이 크게 발생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주목되는 현상이 일본의 ‘노후파산’이다. 제도가 잘 발달되어 연금액이 높은 일본도 예상보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노후 의료비를 크게 지출하고 파산에 이르는 고령자가 200만명 이상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령자 연간 진료비가 국민 전체 평균의 3배 수준인 1인당 343만원으로 매우 높다. 이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합병증에 걸리거나 회복에 더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소득활동을 해왔다면 갑자기 그만두게 될 수도 있어 혼자 사는 시니어는 이중고를 겪을 수도 있다. 의료비 부담을 대비해 보험을 충분히 유지하는 한편, 비상시 예비자금으로 쓸 수 있는 금액도 일정 부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혼자 살수록 자산관리 필요
혼자 사는 시니어라고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독거 고령자는 평균 3.8명의 자녀가 있지만 같이 살고 있지 않을 뿐이다. 싱글이어도 자녀가 있으면 관련 지출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결혼비용이 가장 크고 최근에는 자녀 가족의 사정에 따라 부모가 계속 생활비를 보태주는 경우도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녀 셋 중 하나는 결혼비용의 60% 이상을 부모가 부담하며,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부모와 자녀 모두 높은 지원을 기대한다. 물론 부모로서는 가능한 한 많이 지원해주고 싶겠지만 노후자금을 생각해 적절한 선에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자녀 입장에서도 홀로 사는 부모가 마음 쓰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자녀에게 많이 퍼주어도 자녀가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기 어려운 시대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부자는 돈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는 사람이다.”
한 TV 인터뷰에서 부자가 내린 ‘부자’의 정의다. 혼자라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은퇴 후 긴 시간 동안 필요한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싱글들의 현명한 자산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싱글들의 노후 의료비 보험 추천
실손의료보험 병이나 사고로 통원이나 입원을 했을 때, 실제 환자가 지출한 의료비에서 자기부담금을 뺀 만큼을 보상해주는 의료보험이다. 대부분의 질병부터 CT, MRI 등 고가의 검사비용까지 보장하고 있어 활용도가 높지만, 여러 보험사에 가입해도 보장한도만 늘어날 뿐 총보상액은 지출비용만큼만 나오므로 중복 가입으로 보험료를 낭비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보험사에 따라 최대 75~80세까지 가입이 가능한 노후실손의료보험은 50대 이상 시니어가 일반의 70~80% 수준의 보험료로 가입할 수 있어 저렴하게 노후 의료비를 대비할 수 있다.
정액 보장보험 거액의 치료비가 발생할 수 있는 중증 질병 등에 대비하려면 정액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혼자 사는 시니어는 사망할 때 유족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종신보험보다는 질병이나 사고가 났을 때 보장 금액이 큰 보험이 효과적이다. 가입시 보험료도 중요하지만 보장 범위가 너무 좁지 않아야 하며, 보장기간은 가급적 긴 것이 좋다.
일본에 소츠콘(卒婚)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졸업과 결혼의 합성어로 결혼을 졸업하다. 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혼은 법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되는 것이지만 졸혼은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실제는 부부의 관계는 청산한 사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2014년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이 화재가 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별거는 이혼의 전단계로 상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위한 거리를 두는 시기라면 졸혼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준 비단계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은퇴를 하고 귀촌생활을 원하지만 아내는 익숙한 도시생활과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한발작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럴 때 졸혼을 선언 하면서 각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내게는 부부동반으로 세 가족이 만나는 조촐한 모임이 있습니다. 30년도 더 넘어 젊은 시절 같은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끼리 정분을 이어오다가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래도 먼 거리는 아닙니다. 질기고 질긴 인연으로 매월 한 번씩 만납니다. 밥값은 돌아가면서 쏘는 식으로 처리합니다. 이중에 한집이 앞에서 예를 든 일본의 졸혼과 비슷한 생활을 합니다.
남편이 생활비로 일정금액을 아내에게 주고 잠도 집에 들어와서 자지만 별거하는 형식으로 다른 방을 각자 쓴다고 합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남편은 밖에서 밥을 사먹고 집안에서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부부인데 속으로 보면 남과 다를 봐가 없습니다. 어찌 대화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나 같으면 속터져 죽을 것 같은데 잘도 견디며 생글생글 웃습니다.
일본식 졸혼의 태동배경이 아내가 퇴직한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의 수발 등 아내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황혼이혼이 생겨났고 거기에 불을 지핀 것이 이혼을 하면 남편의 연금의 상당액을 아내가 받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내들이 구속받지 않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고 황혼이혼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부인이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졸혼의 장점이라고 합니다. 반면 단점은 두 집 살림을 하니까 생활비가 많이 들고 혼자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도 119에 전화를 해주거나 간병 등 직접적인 도움을 배우자로부터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늘어나는 황혼이혼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본의 졸혼 사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국형 졸혼으로 한집에 별거 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황혼이혼도 막고 서로 도움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집에 살면서 남남처럼 지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눈에 안 보이면 모를까 같이 있으면서 투명인간처럼 서로 행동한다는 것이 속에서 천불이 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혼보다는 시간을 바탕으로 화해를 모색한다고 봅니다. 앞에서 예를 든 내가 아는 부부처럼 실제 졸혼 가정을 영위하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합니다. 맞벌이 부부는 연금도 따로 받으니 경제력으로도 짱짱하여 아내는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살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나라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졸혼 부부가 자꾸 늘어날까봐 걱정을 합니다. 나이 들어 ‘부부함께 하기’ 등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의 가부장만 고집하다가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