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재택 스트레스와 40퍼센트 마누라

기사입력 2017-05-25 15:37 기사수정 2017-05-25 15:37

지인 중에 환갑나이가 되어 남편과 1년간 별거를 선언하고 원룸으로 옮겨 생활하는 분을 만난일이 있다. 그 당시에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잘사는 집안으로 큰 아들은 변호사이고 작은 아들은 의사다. 남편도 잘 나가는 고위공무원 출신으로 연금만 해도 3백만 원 이상을 탄다. 황혼이혼도 생각해보았으나 단지 남편이 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는 이혼사유가 되지 않아 결국 남편과의 합의하에 이 길을 택했다고 한다. 수년전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엄마 김혜자씨가 남편의 허락아래 1년간 안식휴가라는 명목으로 원룸을 얻어 자유를 구가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놀랍게도 남편이 싫어진 이유는 단한가지였다. 정말 착실했던 남편이 2년전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그동안 소홀했던 와이프를 위한 집안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누라 힘들까봐 그동안 도와주지 못한 빨래는 물론, 밥도 짓고, 시장을 보아 반찬도 직접 만들어 바치고, 이른 아침부터 먼지하나 없을 정도로 집안 청소를 깔끔하게 해놓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정말 좋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남편이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서부터 무언가를 송두리째 남편한테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남편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삶이 무기력해지며, 소화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우울증까지 찾아왔고, 급기야 도저히 같이 살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의학적으로 ‘남편 재택(在宅) 스트레스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의 심리내과의사인 구로카와 노부오(黒川順夫)박사가 명명한 것이다. 주로 정년 후 집에 있는 남편이 귀찮게 여겨져 스트레스를 받고 심해지면 우울해져 다양한 이상증세가 몸에 나타나기 때문에 엄연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남편으로서는 그동안 열심히 일만하다가 모처럼 자신이 집에 있을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심각해지는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이 나쁜 것도 부인이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편이 집에 없는 전제하에 자신의 생활이나 인간관계를 구축해온 부인으로서는 남편의 정년으로 갑자기 자유를 빼앗기게 되어 참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심한 초조감과 우울한 기분에 휩싸일 뿐 아니라, 두통, 어깨 결림, 위궤양 같은 소화기계통의 이상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쁜 등 신체적 부조화가 나타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굳어진 생활습관과 남편의 정년 후의 생활 차이를 갑자기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남편 재택 스트레스증후군은 부인이 한 마디 말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을 억제하는 성격인 경우 더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노년을 바라보고 가는 연령이 되면 서서히 뺄셈을 해 두는 것이 좋다. 뺄셈이 필요한 것은 바램이나 욕망, 어깨의 힘, 잘나가던 과거의 생각 등이다. 특히 점점 바램이나 욕망을 낮추어 갈수록 오히려 만족도는 더 깊어진다.

일본의 사이토 시게타(斎藤茂太)씨의 글 중에 ‘40%의 마누라’가 걸작이다. 그의 부인은 ‘40%의 마누라’를 자칭하고 있고, 본인은 그것을 매우 만족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부부는 원래 다른 인격체이므로 내가 생각하는 바램의 반만 충족해 줘도 ‘그것으로 대만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모든 바램의 레벨을 낮추어서 80%정도로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부인에게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50% X 0.8=40% 이루어졌다면 대만족, 즉 40%의 마누라는 훌륭히 합격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부부관계에 큰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고, 평온무사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부부라도 정년을 맞이하면 정년은 부부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온했던 집안에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주일쯤이야 마누라가 집을 비우거나, 반대로 남편이 집을 비운다 해도 서로가

“그까이꺼....” 하고 너털웃음으로 넘겨버리자.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 기사

  • 중장년의 '어른 공부'를 위한 공부방, 감이당을 찾다
    중장년의 '어른 공부'를 위한 공부방, 감이당을 찾다
  • 중년 들어 자꾸만 누군가 밉다면, “자신을 미워하는 겁니다!”
    중년 들어 자꾸만 누군가 밉다면, “자신을 미워하는 겁니다!”
  • [카드뉴스] 삶의 흔적을 담은 손
    [카드뉴스] 삶의 흔적을 담은 손
  • “은퇴 후 당당하게” 명함 없어도 자연스러운 자기소개법은?
    “은퇴 후 당당하게” 명함 없어도 자연스러운 자기소개법은?
  • ‘낀 세대’ X세대 무거운 짐, 홀가분하게 나누는 법
    ‘낀 세대’ X세대 무거운 짐, 홀가분하게 나누는 법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