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인현동 인쇄 골목’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요즘은 성수동, 파주 출판단지 등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그래도 인현동은 인근 필동, 을지로동, 광희동과 함께 전통의 인쇄골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현동 인쇄골목은 충무로역을 중심으로 중부세무서, 대한 극장 맞은편의 작은 한 구역이다. 원래 인현동이라는 지명은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인현동이 되었으며 인쇄 골목이 된 이유는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관청인 주자소와 책자 인쇄를 관할한 교서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 시내 인쇄소가 총 2,400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 60%인 1,500여개소가 인현동 일대에 몰려 있다고 한다.
인현동이 인쇄골목으로 유명해진 것은 여기 오면 인쇄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점 때문이다. 디자인과 편집에서 시작해서 출력, 인쇄, 후가공까지 다 처리가 가능한 것이다. 원래 영세한 업체들이라 한 공장에서 모든 과정을 처리하기 어렵다 보니 협력체제로 컨베이어 벨트 흘러가듯이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오프 셋 인쇄과정만 봐도 인쇄전 공정부터 인쇄 공정, 인쇄 후 공정까지 세부적으로 나눠져 있는 것을 마치 한 회사가 해내듯이 처리해 내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다 보니 밀집된 인쇄 골목은 각 가공 공정에 맞게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도로 폭도 3.5톤 트럭이 들어갈 수 있는 도로 폭 10m가 있는가 하면 도로 폭에 따라 트럭도 1톤, 다마스, 삼발이, 오토바이, 손수레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골목도 있다.
인쇄업에 사람들이 매달리는 이유는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각종 출판물과 홍보물을 비롯하여 문화국가에서는 인쇄업이 발달한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으며 부가가치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업종이지만, 인쇄와 관련된 직업들이 있었다. 근대 활판 인쇄에서는 활자를 일일이 뽑아서 인쇄 활판을 만들어서 인쇄에 들어갔으므로 여러 직종이 있었다. 조각공, 문선공, 식자공, 그리고 청타수 등인데 컴퓨터 조판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일반 직장인들보다 월급이 3~4배 높았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들 숙련공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전에는 잡지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회사가 설립되고 그 안에 편집기자, 사진 기자, 그리고 출판, 영업을 따로 두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기자는 외부 용역을 쓰고 잡지 만드는 일은 여기 인쇄 골목에 맡기면 알아서 잡지를 만들어줄 정도로 정 직원 한 명 없어도 잡지 하나가 버젓이 만들어진다.
여기 인쇄 골목이 현재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강북 재개발로 인근 땅값이 뛰자 여기도 땅 주인들이 집값을 올려 받게 되고 아예 옮겨달라는 요청도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음에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대형업체들은 준 공업지역인 성수동, 파주 출판단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다고 인현동이 일시에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고 인프라가 탄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문 회장은 자신의 회사와 함께 문주장학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재단은 어느새 회사 자본금보다 더 큰 규모가 됐다. 이제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성취를 이루게 된 그가 어째서 그토록 사회 환원을 추구하는 걸까? 문 회장이 갖고 있는 돈과 사회, 그리고 시니어로서의 삶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준호 기자 jhlee@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 ‘노예’처럼 살았던 그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하게 가난했다. 후배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를 벌어 겨우겨우 필요한 돈만 메꿨던 생활. 2015년 매출액 4193억원을 기록한 MDM의 회장이자 한국자산신탁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국내 디벨로퍼 1세대 성공 신화의 주인공 문주현 회장의 20대 시절 얘기다.
가난한 사람이 돈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던 시절, 대학교 3학년 때 모 독지가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현재 200억 원가량의 기금으로 운용되는 문주장학재단을 갖고 있다. 2014년 기금 100억 원을 달성한 후 불과 2년 만에 그 두 배를 달성한 것이다. 재단은 2002년부터 초·중·고·대학생 175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1년에 장학재단을 세우니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 일을 안 하려나 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그러나 사람은 자기만족이잖아요? 내가 약속한 거고 신세를 졌는데, 해야지.”
문주장학재단의 수혜 대상자는 무조건 형편이 어려운 사람으로 선정된다. 그 외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다. 요즘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부도 더 잘하는 세상이다. 문 회장은 가난한 이들은 돈을 소중하게 쓴다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세상에 증명한 사실이다.
“장학 대상자는 웬만하면 바꾸지 말라고 해요. 다만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면 바꾸라고 하죠. 돈까지 대주는데 공부를 안 하는 건 기본이 안 된 거니까.”
돈이란 내 것이 아니다
문 회장은 장학재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장학재단을 하다 보니 나를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개를 안 해주고 좋은 일을 한다고 소개해줘요(웃음). 아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죠. 물론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회사보다 자본금이 더 큰 장학재단을 갖고 있어서 그렇겠죠.”
문 회장의 사회를 향한 지원에는 장학재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의 모교에 씨름부를 만들고 공공버스도 운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전국 우승도 다수 경험하는 강한 씨름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에 마련된 서울책방이 다시 문을 여는 데는 문 회장이 쾌척한 1억원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자바둑대회에는 2억원을 내놨다. 모교인 경희대학교에도 매년 1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가 갖고 있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인가? 내 것인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회로부터 얻은 거고,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리하라고 맡긴 겁니다. 이걸 갖고 자기 거라고 유세를 떠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이 돈이 내게 관리하라고 온 것은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놔야 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 사회의 양극화가 해소될 방법이 없고 시장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 문 회장의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그러한 진실을 우회해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가 유독 젊은이들에게 기부의 타깃을 맞춘 것도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자기 탓이 아닙니다. 대신 정신이 올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주장학재단은 예술계 쪽 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검토하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니 문화예술계 쪽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 있고 자질 있는 사람을 골라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상문학상’처럼 공모를 통해 권위가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아직 밑그림을 정확하게는 안 그렸지만 오페라, 소설, 악기 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재생,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인생 목적
최근 문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도심재생 사업이다. 그에게 시기가 괜찮은지를 물어보자 확신처럼 ‘해야 할 시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재생을 지금까지는 자기 지역, 구역 별로 민간에서 했는데 민간이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의 세계는 도시가 국가 브랜드입니다. 싱가포르, 홍콩, 도쿄, 뉴욕 등등을 봐요. 관광할 때 그 나라를 왜 가느냐는 겁니다. 관광은 자연관광과 도시관광으로 나눌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자연관광이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도시관광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도시 관광 국가로 만들려면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살 거주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신도시를 마구, 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 저성장기가 도래했다. 더 이상 신도시는 안 만들어질 것이라고 문 회장은 진단했다. 그렇다면 오래된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도시재생이 중요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문 회장은 발 벗고 뛰는 적극적인 ‘전도사’였다.
“공청회나 세미나를 하자, 우리나라의 발전 방향을 토론해보자. 하다못해 광화문, 테헤란로 등등으로 나눠 섹터 별로라도 하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민간과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도시 부동산은 대개 개인 소유라.”
문 회장은 우리가 아이디어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관광을 대개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로 가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가서 보는 게, 결국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지어 놓은 걸 보는 거예요.”
실로 예리한 한마디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개발과 보존은 공존해야 합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은 보존해야죠. 다만 재개발해야 하는 곳은 과감하게, 제대로 개발해야 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성공하면서 흔히 강남스타일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막상 강남을 가면 갈 데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밤이 되면 거리는 죽고 뒷골목만 살아난다. 문 회장의 주장대로 도로 옆에 문화공간을 배치하여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함으로써 진짜 ‘강남스타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설회사는 도면대로 짓고, 도면이 없으면 한 삽을 못 떠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디벨로퍼는 지휘자고 소프트웨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상상력을 실현하는 이들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종합부동산 금융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버타운, 도시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
“나이 들어 은퇴하면 인생에 낙이 없어요. 즐거움, 기쁨, 재미가 없어지죠. 젊었을 때는 뭐든 재미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손주에게 끌리는 거겠죠. 나도 늦둥이가 있어요. 지금 제주도에 있는데 ‘네가 아빠 희망이지’라고 말하곤 해요. 손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시니어이자 부동산 전문가로서 문 회장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실버일수록 도심으로 들어오고자 합니다. 전철, 공원, 병원 옆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손주들을 못 보기 때문이에요. 실버가 되면 외롭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전철역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어느 성공한 시니어가 하는 말이, 자식들이 손주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간다든지 하면 손주와 함께 있는 게 그렇게 즐겁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지방에 있으니 전화만 하고 안 와서 섭섭하다는 겁니다.”
문 회장은 실버타운을 짓는다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기능적인 구분을 꼽았다. 몸이 불편하여 간병인 등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들과 취미 생활 등을 할 수 있는 시니어 타운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두 영역을 합친다 해도 중간에 병원을 두어 병원을 중심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건 공통된 조건이다.
“실버타운은 구성원의 특성상 죽음과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젊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도시와 섞여 살아야 해요. 구분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장은 굉장히 성장할 것이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산다
문 회장은 올해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그에게도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있을까?
“사실 후회를 좀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내 청춘이 가버렸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연애를 잘 해봤겠어요? 당구도 못 치지.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삶 자체가 옆을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죠. 아내가 저에게 ‘음악을 알아?’, ‘그림을 알아?’ 하고 물어요. 그럼 저는 ‘몰라’라고 대답할 수밖에요. 저는 솔직한 얘기로 너무 안 해본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아요. 내 업무와 내가 하는 부분만 알지. 그래서 요즘은 정말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될 수 있으면 비행기로 6시간 이내로 끊어서 가려고 해요. 좀 더 많은 여행을 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을 위한 중요한 일이겠네요.”
문 회장은 아내가 자신을 보며 종종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일밖에 모르니까. 그런데 그는 일이 없으면 공허해지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문 회장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 부분을 일로 채우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그게 쉽게 안 돼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비빔밥이에요. 비벼서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리고 비생산적인 데에는 투자를 안 하려고 해요. 와이프는 왜 남은 도와주면서 자기는 그렇게 안 하냐고 타박합니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는 일이죠.”
힘들었던 어린 시절, 서른 살이 넘어 입사한 나산에서의 승승장구, IMF 한파로 인한 퇴직, 퇴직 후 MDM 설립과 한국자산신탁 회장이 되기까지. 고난과 성공을 오가며 쉼 없이 살았던 그가 살면서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뭘 하든지간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 참여자들이 만족하느냐, 소비자가 만족하느냐, 사회가 만족하느냐가 기준이었죠. 그래서 저는 디벨로퍼의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이걸 짓다가 멈춰 서버리면 사회적 악이 돼요. 금융사, 시공사, 협력업체, 분양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흉물이 되잖아요. 그만큼 디벨로퍼란 정> 문주현 MDM 회장
1958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1983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입학·졸업했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 부동산개발 사업에 발을 들였고, 7번의 특진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하지만 나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는 재취업을 고민하다가 1998년 분양대행 업체인 MDM을 만들었다. 2007년 첫 시행사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등 굵직한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출연금을 200억원까지 늘렸다.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2013년부터 서울시탁구협회 회장, 2014년부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2015년부터는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예전에 둘이 누비고 다녔던 종로로 정했다. 클라우드 하우스라는 레스토랑으로 빌딩 꼭대기 층 유리로 된 구름다리에 서면 발아래로 거리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바깥 모습도 차가 달리는 모습도 모두 밟고 있는 유리 아래로 보이니 아찔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종로2가 사거리는 많은 추억이 담긴 동네이다. 보신각 건너편의 이제는 종로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는 이 빌딩은 예전 화신백화점 자리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화신백화점은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화려한 백화점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움직이는 계단이라며 별 볼 일 없이도 중 고교 시절 친구들과 어지간히 들락거렸다. 우리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움직이는 계단인 에스컬레이터를 보려고 온 관광객도 많았다고 한다.
종로에는 화신백화점과 건너편 신신백화점이 있었다. 화신은 높은 고층백화점이었고 신신은 단층의 상점이 이어진 아케이드 형식의 백화점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친구들과 ‘신난다, 신난다, 신신백화점, 화난다, 화난다, 화신백화점’이라고 운율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했다. 지금은 모 은행이 된 신신백화점은 참으로 아기자기했다.예쁘게 단장한 가게가 줄을 이어서 동대문에 있는 여학교에 다녔던 필자는 방과 후 이곳에 들러 가운데 분수도 감상하고 예쁜 가게를 들여다보며 구경하는 게 일과일 정도였다. 또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일식 초밥 스시를 사러 신신백화점에 다니기도 했다. 돈암동이 집이었는데 엄마의 취향을 맞추려고 아버지는 언제나 필자에게 종로 신신백화점에 있는 스시 집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신신백화점 뒤편의 한일관이라는 한식집은 우리 가족의 단골 음식점이었고 엄마의 계 모임을 따라서 자주 가 본 곳이다. 엄마의 계 모임에서 갈비탕이나 냉면 불고기를 먹었던 맛있는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던 한일관이 몇 년 전 재개발 때문에 문을 닫고 압구정동으로 궁전 같은 건물을 짓고 이사했다. 맛을 잊지 못해 찾아간 우리는 옛날 그 맛이 아니라며 발길을 끊었다. 엄마는 예전 종로의 한일관이 그립다고 하셨다. 추억이기 때문에 예전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일 게다.
화신백화점에는 삼류 극장도 있었다. 학생 불가인 영화를 보려고 선도부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드나들었었는데 걸리면 정학인 그 시간이 어찌나 스릴 있고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놀기만 한 종로통은 아니었다.종로엔 유명한 학원도 많아서 여고 시절 EMI 등 여러 학원에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YMCA 건물은 당시로써는 고층건물에 속했다. 그곳에서 실내수영을 즐겼고 대학생일 땐 쿠키 만드는 강습도 받았던 멋진 곳이다. YMCA 건너편에는 복 떡방이라는 떡집과 고려당이라는 큰 빵집이 있었는데 약속장소로 꼽을 정도로 맛있고 인기 있는 장소였다. 프랜차이즈 유명 제과점이 성행하면서 떡집이 없어지고 고려당이 문을 닫았으니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후에 다시 복떡방 가게가 문을 연 걸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종로통에는 음악감상실도 많았다. 요즘 뜨고 있는 쎄씨봉 이나 디세네, 고 아나운서 이종환 씨가 운영했던 쉘부르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곳이다. 종로는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게 예전처럼 변함없으면 좋으련만 발전을 위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필자만의 추억을 위해 옛 그대로 있어 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 것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부터 무지개처럼 피어났던 젊은 날의 추억이 곳곳에 스며 있는 아련하고도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종로통이다. 신나는 일도 많았던 종로에서 반가운 친구와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잠을 못자는 고통도 대단하다. 여름밤 너무 더운 열대야(熱帶夜)의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안다. 10여 년 전 재개발을 기다리는 대구의 5층 아파트 최상층 5층에 살 때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독신자용으로 18평짜리를 얻어준 곳이다. 혼자사니 그 정도 크기면 충분했다. 문제는 여름의 열대야다. 열대야는 최저기온이 25도를 넘어서는 밤을 말하는데 아파트 구조가 그렇다보니 여름의 여러 날들을 열대야로 시달려야 했다.
사람이 ‘미치고 팔딱 뛰고 환장하겠다.’는 말이 있는데 열대야의 밤이 꼭 그런 심정이다. 열대야의 밤에는 누워 잠이 들었다가도 안개처럼 아주 느리게 더위의 열기가 몸을 뱀이 휘감듯이 공격해온다. 누어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 반바지에 짧은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인근 공원을 어슬렁 거렸는데 열대야의 밤에는 이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산책할 숲이 있는 공원이 집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돗자리를 들고 아예 공원으로 잠자리를 옮긴 사람도 있었다.
평소에 잠을 잘 자는 사람이므로 잠을 잘 자기 위한 특별한 준비과정은 없다 다만 여름철 열대야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면 대구의 악몽도 되살아나 조심을 한다. 우선 녹차나 커피처럼 카페인이 든 음료수는 먹지 않는다. 음주는 취할 정도로 많이 먹으면 술김에 잠을 잘 잔다 하지만 몇 잔 설 먹어두면 혈액순환이 빨라져 새벽에 잠을 깬다. 새벽에 잠을 깨면 디시 잠을 들기도 어렵지만 잠이 들었다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나 정신이 개운치 못하다. 새벽에 무슨 이유로든 잠이 깨면 다시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내 잠의 신조다..
마라톤 등 심한 운동도 나쁘다 몸이 너무 피곤하면 식욕도 없어지고 잠 또한 쉽게 들지 못한다. 그러나 10km정도의 달리기나 테니스 두게임 정도는 몸을 기분 좋게 피곤하게 하여 잠이 잘 온다. 보통의 운동은 수면에 도움이 되고 나는 별 개의치 않는다.
열대야는 밤 1시가 지나면 온도가 내려간다. 더워서 잠이 잘 안 오면 인근 공원을 산책하며 대지의 온도가 내려가기를 기다린다. 우리나라 여름철 시원한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분다. 바람이 창문을 통과하여 지나가는 길이다. 집에도 바람이 잘 부는 곳이 있다. 나는 이를 바람통로라고 부른다. 바람통로에 바닥에 까는 요도 없고 이불도 없이 팬티하나만 걸치고 맨바닥에 누워 있으면 거실바닥의 시원한 냉기가 등줄기를 통해 올라온다. 쉽게 잠이 든다.
배를 열어놓고 자면 보통의 사람들은 배탈이 나기 쉽다. 런닝셔츠 정도를 입어 배를 덮어 보호하는 것이 좋다. 나는 소양인이여서 그런지 배탈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배를 열어놓고 자도 배탈 걱정은 하지 않는다. 더위에 잠 잘 자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자신의 체질에 맞는 잠 잘 자는 방법을 터득해서 자기만의 노하우로 알고 있으면 좋겠다.
1970년대 강남 부흥의 상징 같던 한 아파트는 2014년 재건축되면서 기억 속에서 잊혔다. 적은 돈으로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친구들과 술잔 기울이던 피맛골 또한 개발이란 이름으로 영영 사라졌다. 도시의 지도가 바뀌고 변화한 거리. 뭐든 새것이 좋다지만 우리네 따뜻했던 옛 시절도 아름답지 않던가. 혹시 그때가 그립다면 서울역사박물관(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가보시라. 정겨웠던 이웃, 친구들과 술잔 부딪히던 그때 정취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판자촌 위에 쌓아 올린 시민 아파트
전시실에 들어서서 1950년대 생활상을 지나 1960년대 ‘서울은 공사중’ 전시실로 들어서면 ‘돌격건설’이라고 크게 써 붙인 포클레인 삽이 건설현장을 연상하게 하는 모래 속에 처박혀 있다. 이 설치물 뒤쪽으로 1960~70년대 세워졌던 시민아파트 내부 모습을 클레이 아트로 꾸몄다. 아파트 속을 재현한 클레이 아트를 살펴보면 마루에 누워 TV 보는 남편, 아파트 상가의 레코드 가게, 금은방,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곤로 파는 가게, 다방 등 시대상을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1960~70년대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도심 주변으로 판자촌, 즉 무허가 불량주택이 급격하게 불어나자 도시 경관 개선을 이유로 1968년부터 시민아파트 건설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1969년에만 32개 지구에 406동 1만5840 가구의 아파트가 판자촌 위에 세워졌다. 시민아파트 건설은 1970년 4월 8일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중단됐으나 판자촌 마을에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서울의 모습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피맛골이 그립다!
안국역과 광화문역 일대에는 굽이굽이 작은 골목 사이로 정(情)을 한가득 담아내던 오래되고 허름한 음식점들이 모여 있었다. 피맛골이라 불리던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사라지기 전까지 고단한 하루를 풀어주던 우리의 이웃이자 친구였다. 그중 광복 직후부터 2010년 2월까지 가장 오랜 기간 그 자리에서 영업을 했던 ‘청일집’이 서울역사박물관에 그대로 옮겨져 전시 중이다. 손님들이 끼적인 낙서부터 사용하던 의자, 국자, 전을 굽던 철판, 주전자 등 옛 청일집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청일집 단골이었다면 향수에 젖기 딱 좋은 장소. 기억 속 친구와 술 한잔이 떠오르는 독자라면 부디 가보길 바란다.
우리가 살던 집이네
실제 아파트도 재현해 놓았다. 1978년 입주가 시작된 강남구 지금은 서초구 서초삼호아파트 9동에 살던 한 가족이 쓰던 가구, 생활용품, 집 내장재 등 기증품으로 꾸민 집이 전시실 마지막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1939년생, 1943년생 부부와 아들과 딸, 네 가족이 살던 아파트다. 주방 일부를 제외하고는 1981년 입주 초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식탁 의자에는 호돌이가 새겨진 강남구청 수건이 걸려 있다. 골드스타가 선명하게 쓰인 냉장고, TV, 믹서기, 밥통 등도 낯익다. 아이들이 쓰던 방 책꽂이 앞에 놓인 가방은 옛 추억을 방울방울 샘솟게 해 준다. 취재 당시 어린 아들과 함께 온 한 엄마는 “여기 엄마가 살던 집이랑 정말 똑같다”고 말하면서 즐거워했다.
관람시간 3~10월 평일 09:00~20:00 토·일·공휴일 09:00~19:00 / 11~2월 평일 09:00~20:00 토·일·공휴일 09:00~18:00 휴관일 1월 1일, 매주 월요일(1층 학습실, 서울역사자료실, 로비전시관, 강당, 식당, 카페테리아 개방) 관람료 무료 전화 02-724-0274~6
홈페이지 museum.seoul.kr
관악산이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는 관악구는 골목길, 고갯길, 사이길 등 도시화가 덜 된 ‘시골길’이 많다. 정이 넘쳐 활기 찬 골목길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뜸해 정을 그리워하는 고갯길도 있다. 대단지 아파트 사이에는 도심 속 같지 않는 포근한 사이길이 있어 가까이 사는 주민이 즐겨 찾고 있다.
정담은 골목길
시민들이 지름길 통로가 막혀 먼 거리를 돌아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 몇 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학교를 매일 차를 태워서 보낸다는 소식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정담은 골목길을 만들어 이웃끼리 즐겁게 사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
관악구 미성초등학교와 금천구 난곡중학교 사이 길이 100m 폭 3m에 이르는 아름다운 통로가 있다. 원래는 미성초교와 난곡중은 담으로 막혀 통로가 없었다. 10년여 전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자 미성초교의 부지 일부를 할애하여 통로를 만들었다.
두 학교는 인근 신림동 푸르지오와 건영 1차, 라이프 아파트 사이에 있어서 주민들이 통행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아침과 낮 등하교 때는 미성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문성, 난곡중학교와 독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골목을 가득 메운다.
다른 곳에서는 주민 간 통행 문제로 다투는 일을 종종 보아 왔으나 이곳은 오히려 이웃과 상생하는 정이 넘치는 곳이다. 다른 단지 주민끼리 서로 왕래하면서 가깝게 지낸다.
정이 그리운 고갯길
삼성동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삼성산성지로 올라가는 곳에 밤골마을 고갯길이 있다. 이곳은 도심 속 산골마을로 등산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통행로이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아직 정확한 개발 시점도 정해지지 않아 빈 집이 많아 인적이 뜸한 곳이다.
근래에는 자원봉사단체에서 벽화 그리기 등 도시미화와 환경개선에 힘쓰고 있다. 장기적으로 지역 명소 화와 관악구 자연환경을 이용한 도심 속 산골 체험마을로 특성화해 발전시켜 나간다고 하는 곳이다.
포근한 사이길
난향동 휴먼시아 아파트에서 삼성동 산장 아파트로 넘어가는 대로변 옆에 도심 속 아담한 사이길이 있다. 큰 길 쪽에는 조그만 언덕으로 가려있고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서 전혀 도심 속 같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곳 주민만 잘 아는 곳이다. 시골 이웃마을 다니듯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도심 속 아담한 정원이다.
이태문 동경 통신원 gounsege@gmail.com
2020년 올림픽을 앞둔 도쿄( 東京)는 현재 변신 중이다. 여기저기 재개발이 추진중이며, 올림픽에 맞춰 새 경기장 건설과 거리 조성도 한창이다. 지금도 속속 새로운 명소가 등장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도쿄역 왼쪽에 새로 지은 JP타워는 도쿄중앙우체국과 각종 점포, 레스토랑 등이 가득 들어선 공공시설로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현재·미래의 융합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우편주식회사와 도쿄대학 종합연구박물관이 협력해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학술종합뮤지엄 인터미디어테크이다. 지상 2층과 3층을 연결해 2996m²의 널찍한 전시 공간과 강의 시설 등을 자랑하는 이곳은 산학협동의 롤모델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도쿄대학이 1877년 개교한 이래 수집해온 각종 학술 표본과 연구 자료 등 ‘학술문화재’로 불리는 귀중한 자료들이 상설 전시중이다. 특별 전시와 기획 행사에서는 최첨단 과학의 성과와 각종 표현 미디어의 독특한 창조물도 선보이고 있다. 일본은 물론 지구촌 구석구석 다양한 장르의 학문 분야를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색다른 융합도 맛볼 수 있다.
특히 렉처 시어터로 불리는 ‘아카데미아(ACADEMIA)’의 공간에서는 귀중한 영상 및 음성 자료가 학예사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정기적으로 소개돼 많은 마니아층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월 26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가량 열린 그래모폰(Gramophone) 기획 26회차 행사는 재즈의 집대성으로 알토편이 진행됐다. 아카데미아에는 1925~1928년에 만들어진 빅토롤라(Victrola)사의 명품, 캐나다제 크레덴자(Credenza) VV8-30 과 일본의 악기 설계자 히라바야시 이사무(平林勇, 1904~1938)가 1931~1932년경 제작한 독자적인 음성 증폭 시스템이 달린 축음기 등 2대의 축음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빅토로라의 크레덴자로 1942년 데카(Decca)사에서 출시된 앨범 ‘알토 섹소로지(Alto Saxology)’에 수록된 지미 도시(Jimmy Dorsey)와 1939년 5월 26일 녹음한 ‘로망스(Romance)’를 비롯해서 도시 형제의 ‘테일스핀(Tailspin)’, 알 쿠퍼(Al Cooper)의 ‘(When I GrowToo Old to Dream’ 등 주옥 같은 재즈 명곡 10곡이 축음기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음을 되살려냈다.
도쿄의 야경과 추억을…
깔끔한 디지털 사운드가 아닌 인간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음역대에서 재현되는 축음기의 아날로그 사운드는 LP판의 굴곡과 함께 숨결처럼 떨리는 잡음 속에서 마치 이야기를 걸듯 귓속으로 다가왔다. 이날 주제인 알토에 걸맞은 색소폰이 이끄는 재즈 리듬이 70여 명의 참가자들로 가득 찬 아카데미아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때로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속 우울한 대도시의 그늘을 묵직하게 그려내기도 했으며, 경쾌한 스윙풍의 재즈로 흥을 돋우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창밖의 도쿄역 야경과 함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수놓기에 충분한 시간 여행이었으며, 축음기가 지닌 소박한 휴머니즘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행사였다. 귀에 거슬리는 LP판의 잡음이 아니라 기억을 긁어 잠자던 감각을 일깨우는 느낌이라고 할까, 따뜻한 인정미마저 느껴지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현역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회사원 요시다 쇼타로 씨(62세)는 “대학 시절 재즈에 빠져 친구들과 밴드도 꾸려 연주 활동도 했지만, 직장 생활에 쫓겨 재즈와 거리를 두고 살았다. 재즈의 집대성 시리즈 행사로 모처럼 재즈의 매력에 젖을 수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며 “여기 설치된 축음기와 소장된 희귀 음반은 웬만한 집 한 채 값을 훨씬 넘을 텐데, 공짜로 매달 좋아하는 재즈와 해후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밝혔다.
인터미디어테크 전시 공간과 아카데미아의 기획 행사는 모두 입장 무료이다. 일본 도쿄를 출장 혹은 여행으로 찾는 기회가 있다면 한번쯤 JP타워를 방문해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봄직하다.
최근 전국 미분양 주택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주목된다. 11일 국토 교통부에 따르면 3월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8167호로 전월대비 8.1%(4224호) 감소했다. 이는 6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미분양 주택이 감소하고 있는 이유는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8.28 대책의 영향으로 세율이 줄고 대출 부담이 적어지면서 실수요자 들이 내 집 마련을 결심하면서 거래로 이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 하는 상황은 주택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전반적인 산업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여 주택경기 침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분양아파트 축소에 대한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분양 아파트는 건설사업자가 분양계획을 받은 후 주택공급에관한규칙(제8조)에 따라 입주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매매가 되지 않아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주택을 의미한다.
국내 아파트 공급방식은 대부분 선 분양 방식으로 준공전과 준공후로 구분하며 특히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의 경우 분양을 시작하고 준공시점까지 분양이 되지 않을 경우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미분양 아파트” 하면 “하자가 있어 분양이 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분양 아파트는 청약통장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이미 주택을 소유하고 있어 청약가점이 낮은 수요자들에게 유용하고, 계약이 선착순으로 이어져서 원하는 동과 층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준공 후 미분양의 경우 즉시 입주가 가능하여 집을 구해야 하는 실수요자라면 이미 지어져 있는 집을 보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하자에 대한 우려도 적다.
또한 발코니 무상 확장, 중도금 무이자, 분양가 할인 등 추가 혜택이 있어 가격 면에서 유리하므로 미분양 아파트에 적용되는 장점들을 이해하고 구매 한다면 옥석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하지만 미분양을 고르는데 주의할 점이 많기 때문에 구매에 앞서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일단 미분양의 원인을 파악해야한다. 미분양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입지가 나쁜 경우를 볼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거나, 주변에 편의시설이 부족하거나 유해시설 등이 위치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인근에 기존 아파트대비 분양가의 차이가 커서 미분양이 발생하기도 한다. 간혹 이러한 이유로 입지가 양호한 재개발, 재건축 단지들이 미분양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또한 신도시나 택지지구에 분양물량이 과잉공급 되면서 미분양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시간이 지나 해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장기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원인에 대해 분석했다면 이제 정보를 수집해야한다. 미분양을 고를 때 분양가 할인, 중도금 무이자 혜택이 들어간 금액이 주변 지역 아파트와 비교해서 가격이 적당한지를 조사해야 하며 층과 방향을 체크하고 생활환경, 조망권 또한 좋은지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가격하락이 비교적 적은 택지지구, 대단지, 역세권 위주로 둘러보고 주변에 개발 호재가 있으면 더욱 좋다. 다만 개발 호재들이 확정된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해당 지자체에 직접 확인하거나 전문가들에게 답변을 구해야 한다.
미분양 아파트는 잘 고르면 입지 좋고 투자가치도 있는 곳들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알아보고 좋은 지역의 아파트를 선별 할 수 있다면 흙속에 진주를 고르는 것과 같은 성공적인 투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에 따르면 둘러볼만한 올해 입주 또는 즉시 가능한 대표적인 미분양 아파트로는 서울시 관악구 행운동 관악파크 푸르지오, 서울시 강남 세곡2지구 4단지 강남 한양수자인,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수원 SK Sky VIEW,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잠실 푸르지오 월드마크, 김포시 풍무5지구 한화 꿈에그린월드 유로메트로,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더샵, 고양시 삼송지구 삼송 동원로얄듀크 등이 있다.
5월에도 분양시장 열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개발호재와 녹지가 풍부한 택지지구를 비롯해 기반시설이 풍부한 재건축ㆍ재개발 분양 물량간의 분양 대전이 예상된다. 건설업계는 최근 분양시장 훈풍과 함께 건설사들이 비수기와 6.4지방선거 전에 분양을 완료하기 위해 앞다퉈 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택지지구에서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 입주와 수서발 KTX(고속철도) 개통 등 호재가 많은 평택시를 비롯, 쾌적한 주거환경을 자랑하는 하남 미사강변도시도 눈에 띈다. 게다가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용산 재개발 물량이 본격 분양에 나서고, 강남 도곡동에서는 모처럼 재건축 신규 분양물량이 나온다.
◆평택, 하남 미사강변도시 등 택지지구 눈길 = 평택은 삼성전자가 입주하기로 한 고덕산업단지(395만㎡)는 내년 준공될 예정이다. 수서발 KTX 평택 지제역 개통(2015년 예정) 역시 큰 호재다. 2012년 2월 수도권 KTX 지제역 역사를 확정한 평택시는 올해 상반기 착공을 앞두고 있다. 또 2016년에는 주한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완전 이전한다.
반도건설은 오는 5월 평택 소사벌지구 B7,8블록에서 ’소사벌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를 선보인다. 지하 1층~지상 25층, 총 15개 동에 1345가구(B7-630가구, B8-715가구)로 구성된다.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기준 74, 84㎡의 중소형 타입으로만 공급된다. 초․중․고교가 인접하여 있으며, 비전동 생활권으로 롯데마트, 뉴코아아울렛 등의 생활편의시설 이용이 편리하다. 평택 최초의 2층 규모의 별동학습관을 건립하고 이에 걸맞은 다양한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남 미사강변도시는 풍부한 녹지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약 137만㎡ 규모의 공원이 조성되고, 한강수변공원이 인접해 있는 등 녹지공간이 풍부하다. 또 서울 강동구와 맞닿아 있어 서울 접근성이 좋고, 2018년에 지하철 5호선 미사역이 개통될 예정이다.
포스코건설은 오는 5월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A10블록에 '미사강변도시 더샵 리버포레'를 분양한다. 전용면적 89~112㎡, 8개동, 총 875가구 규모다. 단지 동측 및 북측에 여의도공원의 6배인 약 137만㎡ 규모의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대우건설도 A6블록에 ‘미사강변 2차 푸르지오’를 공급할 예정이다. 전용면적 93~114㎡, 11개 동, 총 1066가구다.
▣용산, 도곡동 등 재개발ㆍ재건축 관심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무산으로 폭풍을 맞았던 용산이 최근 용산국제업무지구가 6.4 지방선거의 최대 이슈가 되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건설사들은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용산역 주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에 대해 속속 분양을 재개, 5월 공급에 나선다.
용산에서는 삼성물산이 다음 달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용산전면3구역을 재개발하는 '래미안 용산'을 분양한다. 약 150m 높이로 지하 9층~지상 40층, 2개 동으로 지어진다. 오피스텔은 전용면적 42~84㎡ 782실, 아파트는 전용 135~240㎡ 195가구 등 총 977가구로 구성되며 이 중 오피스텔 597실과 공동주택 165가구 등 총 762가구가 일반분양물량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중앙선 환승역인 용산역, 4호선 신용산역에 접한 트리플 역세권에 위치했다. 건물 지하 1층은 신용산역과 직접 연결한다.
대우건설도 다음 달에 용산전면2구역을 재개발하는 '용산 푸르지오 써밋'을 분양한다. 지하 9층 ~지상 최고 39층, 2개 동으로 건립된다. 오피스텔 전용 25~48㎡ 650실, 아파트 전용 112~297㎡ 151가구로 구성된다.
한라건설은 오는 5월 강남구 도곡동 동신3차아파트를 재건축한 '도곡 한라비발디'를 분양한다. 지상 20층 1개 동 규모, 전용면적 기준으로 84㎡ 94가구와 125㎡ 16가구로 구성된다. 총 110가구 중 일반분양은 16가구로 84㎡ 12가구와 125㎡ 4가구다.
리얼투데이 양지영팀장은 “분양시장에 훈풍이 불수록 현명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 훈풍에 휘말려 청약에 동참하기보다는 입지, 분양가, 상품 등을 잘 따져보는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소형주택 의무비율 폐지 여부를 놓고 정면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 서울시는 서민 주거권 보호를 이유로 이에 반대해 갈등을 빚고 있어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과밀억제권역 내 민간택지에서 공급되는 300가구 이상의 주택은 소형평형(전용면적 60㎡ 이하)을 최소 20% 이상 짓도록 했던 지침을 폐지할 방침이다.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 폐지로 규모에 제약 없이 주택을 짓게 되면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수 있다고 국토부는 보고 있다.
이에 국토부는 새 시행령을 지난달 29일까지 입법예고했고 마무리 절차를 밟고 있다. 새 시행령이 적용되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정한 소형주택 의무건설 비율 조항의 효력은 사라진다.
새 시행령 시행에 대비해 서울시의회에도 재건축ㆍ재정비 사업 때 소형주택 의무건설 비율 조항을 폐지하는 조례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이에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조례가 개정돼도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심의에서 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소형주택 의무공급 조항이 없어지면 갈수록 1∼2인 가구 증가하는 상황에서 소형주택을 확보하기 어렵고 기존 소형주택 거주자의 재정착도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했다.
무엇보다 강남처럼 고가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은 중대형 평수 위주로 건설돼 소형주택이 부족해져 전세와 월세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사업자들이 다시 중대형 주택만 건설할 수도 있는데 그때 소형평수 의무건설 지침이 없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물론 조례가 없어도 도계위에서 소형주택 건설을 전제로 사업계획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가 이런 방침을 밝힘에 따라 앞으로 서울시와 재건축ㆍ재개발 조합 간 갈등도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