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예인.’
박윤초 명장을 칭하는 문화예술계의 표현이다. 세기의 명창이었던 만정 김소희 선생의 딸로,그녀의 예술적 기질을 모두 가진 듯한 박 명창은 판소리, 가야금 병창, 전통 춤 등 많은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TV 출연과 같은 요란한 활동과는 철저하게 담을 쌓은 채 자신의 예술 세계를 더욱 공고하게 다듬으면서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는 박 명창의 열정은 어머니를 향한 사무침을 시대의 소리꾼답게 불사르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가 말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김소희. 본명은 김순옥. 아호는 만정(晩汀). 지난 세기를 살았던 한국 사람이라면 그 이름 익숙할, 5척의 작은 몸에서 나오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소리를 가지고 있던 명창. 고창에서 태어나 6개월간의 배움으로 14살의 나이에 남원명창대회 1등을 거머쥔 김소희 씨는 일제 강점기에 이미 레코드 회사들 사이에서 섭외 1순위였다.
또한 판소리뿐만 아니라 춤, 악기 연주, 서예 등에서도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어 국악계의 대모로 불리웠고 1964년에는 인간문화재 5호로 지정된 김소희 씨는 세계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이었다. 1995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후학들의 존경은 그녀의 영향력이 격함을 알려준다.
만정 김소희 씨에겐 딸이 한 명 있다. 바로 박윤초 명창이다. 그녀는 마치 어머니처럼 자연스럽게 명창의 자리에 올라 국악계의 거목이 됐다.
“제 어머니는 천부적인 목소리를 지닌 소리꾼입니다. 성음이 청미한 애원성으로 심금을 울렸죠. 여기에 삶과 예술에 대한 자기성찰과 노력이 더해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창이 됐습니다.”
고맙디 고마운 ‘어머니이자 스승’
1944년생인 박 명창은 20년 전부터 목이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여전히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 납득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어머니께서 1995년에 돌아가시면서 제게 미안하니까 목을 주고 가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선몽을 자주 꿉니다.어머니가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나쁜 일을 암시해 주는 꿈을요. 어머니께서 곱게 화장하고 푸른색 한복을 입고 업어달라는 꿈을 꾸는 날에는 제가 다리가 아파서 일을 그르치게 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겨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일기를 써 왔다는 박 명창은 자신의 역사와도 같은 일기장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기장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게 말이 됩니까”라는 말이 시크하게 돌아왔다.
“일기장에 어머니에 대한 글을 투덜투덜 썼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그 글들이 시가 되어 있더군요.” 당연한 일이었지만, 만정 김소희는 박 명창의 어머니인 동시에 스승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시절 뉴욕타임스에 보도되었듯이 마리아 칼라스를 능가하는 분이었어요. 어머니는 제게 판소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발림(춤)을 잘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죠. 다행히 저는 발림의 중요성을 포인트로 하는 편이라 소리는 어머니보다 형편없지만 발림은 제가 더 잘했어요.”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어머니의 외로움
그러나 국악인이라는 쉽지 않은 삶.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평범한 아낙으로 요조숙녀의 길을 가지, 가시밭길 같은 국악인의 길은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생전에 말했다고 한다. 와 같은 영화에서 봤던 치열하고 기구한 국악인들의 삶을 기억하는가.
그런 삶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박 명창이 기억하고 바라보는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에는 애증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천상 여자였지만, 사랑을 받는 걸 못했어요. 제가 남편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아보니 알게 됐어요.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으셨던 어머니가 외로운 여자였다는 걸.”
박 명창의 아버지인 박석기는 거문고 산조의 달인으로 부잣집 둘째 아들에 동경제국대학교를 나온 재사였다. 그는 담양에 별당을 하나 만들어서 전국에서 똑똑하고 장래성 있는 사람들을 뽑아 모아서 국악을 가르치기로 했다. 국악을 지켜야만 문화적으로 일제에 지지 않을 수 있다는 뚜렷한 민족의식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거기에 뽑혀서오게 된 어머니 김소희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게 이 모든 인연의 시작이었다.
재회, 어머니와의 전쟁이 시작되다
그러나 지성과 남성적 매력을 갖춰 인기가 많아 ‘걸물’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애정을 많이 주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그토록 여성스러웠음에도 정작 사랑받는 법은 몰랐다. 결국 아버지의 바람기에 분노한 어머니는 박 명창이 2~3살 되던 때 박 명창을 두고 서울로 올라 갔고 박 명창은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와 더 친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요조숙녀로 예쁘게 크시길 바랐던 아버지였어요. 그분은 노래를 돈 받고 팔지 말라고 가르치셨죠. 하지만 아버지는 6·25 피난길에서 얻은 병으로 제가 열 살 때 돌아가셨어요.”
박 명창은 12살이 됐을 때,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됐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막내 동생이고 박 명창을 잘 살펴 주던 큰어머니가 박 명창을 이끌어서 어머니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오매불망 저를 보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를 보고 싶으면서도 함께 살고 싶진 않았어요. 나쁜 애였지(웃음). 그래서 만나긴 해도 서먹서먹했죠. 그때부터 어머니와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근본부터 완전히 달랐던 모녀
“저년은 사막에 내놔도 안 죽고 살 거다.”
어머니가 박 명창을 가리켜 했던 말이란다. 거친 표현이지만 그 정도로 박 명창을 믿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런 굳은 믿음이 있었음에도 만나면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건, 원래 서로의 성정부터가 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색깔부터가 달라요. 저는 쥐색이라든지 어두운 색을 선호하는데 어머니는 주황색, 분홍색 같은 밝은 색들을 좋아했어요. 눈썹이 좋은데도 거기에 또 뭔가를 그리려고 하시고. 완전 달랐지. 저는 어머니 속에서 나왔지만 아버지 딸이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대로 박 명창을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 근저에는 어머니 나름의 걱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너는 세상에 의해 멍들 거라고 하시며 저를 길들이려고 하셨죠. 하지만 전 절대로 엄마 스타일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어요.”
완벽한 소리꾼으로 살아간다는 고독
그녀는 어머니가 한 말 중 ‘나는 슬퍼도 기뻐도 그리워도 외로워도 소리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있는 명창으로서의 무게만큼이나 말 그대로 예인으로서의 생활이 인생 그 자체였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제자들이 많았고, 그 제자들이 좀 성장했다 싶으면 어머니를 밟으려고 그러고. 저는 그게 보였어요. 하지만 제가 그걸 지적하며 어머니께 뭐라고 하면 제가 그들을 질투하는 거라고 화를 내시니….” 국가를 대표하는 명창의 딸이라는 입장 때문에, 그리고 계속해서 부딪치는 혈육이기에 기운이 빠져서, 어머니는 박 명창을 일대일로 못 가르쳐줬다. 그래서 박 명창은 몰래 어머니의 소리를 녹음기에 녹음해서 혼자 집에서 들으며 소리를 배웠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목소리의 키를 높일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소리를 높여서 부르곤 하셨습니다. 그거 사람 죽이는 일이에요. 그런데 어머니는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인지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생 고달팠던 건지도 몰라요. 그에 비하면 저는 소리를 즐기는 편이었죠. 그렇게 높이지 않아도 하늘에서 내린 목소리라는 평을 받던 분이셨는데.” 하고 말하는 박 명창의 목소리에선 늦은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한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박 명창은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와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고, 대신 그 정이 벌판의 풀처럼 부드럽고 강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늦은 깨달음은 안타까움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멈추어만 준다면 죽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어머니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은 죄를 빌 최소한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이승에서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굴곡 졌는지 알고 있는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안식을 바란다면 죽어도 품어서는 안 될 소망입니다.”
78세의 어머니를 보내면서 박 명창은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고 자책했다. 할 수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긴 세월 동안 맺히고 맺힌 한의 매듭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될지를 몰라서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한마디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가 없지만, 사랑과 미움의 뒤엉킴이라고밖에 표현이 안 됩니다. 평생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무슨 천형이라도 되는 양 남이 볼까봐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꽁꽁 숨겨놓고 거칠고 드센 미움으로 어머니를 대했습니다. 마음 밑바닥에 있던 내 삶의 불행의 근원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를 위한 후회 없는 20주년을 만들고 싶어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해독하기 어려운 상형문자라고 표현하는 박 명창은 자신의 부족했던 바를 늦게라도 채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김소희라는 거목을 둘러싼 주변의 잡음은 그녀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같은 일을 하는 명창들과의 알력들도 있었죠. 어머니 추모 1주기 때 어머니에 대한 사무침이 워낙 강했어요. 그래서 후원을 받아서 넉넉하게 할 수 있었는데, 그때 그런 제 행동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허무했죠. 저는 딸로서의 도리를 다하려고 하는 것뿐인데.”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년 2015년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된다. 박 명창은 이번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모로 고민하던 차에 이명희 선생님, 김미숙 씨 등 진정으로 어머니를 사랑하는 분들로부터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시금석이 되어 내년의 20주년은 부끄러
움 없이 치르고, 그 이후로는 그분들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알림. 가슴 한 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리움, 안타까움을 쏟아내고
싶을 때 기자를 부르세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두 스푼, 추억 세
스푼 담아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기꺼이 차 한 잔 마주하고서 부모님을 향한 마음을 온전히
읽어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불러보세요.
제보 받습니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천리 먼길에 다시 험한 산이 가리니 쉬어가라.
84년생 : 몸과 기분을 상하는 일은 하지 말것이다.
72년생 : 꾀를 내어도 통하지 않는다.
60년생 : 붙으라는 돈은 어디 가고 이성이 돈 쓸곳을 일러준다.
48년생 : 매사가 뜻과 같으니 천금을 얻으리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달 밝은 밤에 풍류소리가 나는 도다.
85년생 : 자존심만 죽이면 하는 일마다 잘된다.
73년생 : 적은 것 쌓아 큰 것 이루니 점점 형통하다.
61년생 : 엉뚱한 일에 손재수는 있으나 즐거운 일이 있다.
49년생 : 재회의 기쁜 일이 생긴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외롭고 고득한,괴로운 일들을 잘 이겨내라.
86년생 : 침체되던 일들이 다소 해결된다.
74년생 : 목전의 이익이 몸을 손상시키거나 체통을 상하게 한다.
62년생 : 즉석에서 결정하는 일은 후일에 여한을 만든다.
50년생 : 눈감으면 될 것을 나서서 손해보는구나.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일들이 많다.
87년생 : 움직이면 힘든 일이 생기니 조용히 쉼이 길하다.
75년생 : 나아가지도 그냥 있지도 못하니 갑갑하도다.
63년생 : 뭇 새들이 날아다니나 활과 화살이 없도다.
51년생 : 밖을 돌아보면 잊었던 것들이 나타난다.
◇ 용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팔도 강산에 널려 있으니 건지면 올라온다.
76년생 : 노여움을 건강을 해치니 마음을 넓게 가지면 좋은 일이 있다.
64년생 : 말로 어려움이 생기니 입을 조심하라.
52년생 : 한번 용기를 내어 움직임을 보일 때다.
40년생 : 되지도 않을 일을 빨리 포기하면 좋은 날이 온다.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귀는 길게 혀는 짧게, 말을 아끼자.
77년생 : 경쟁심을 없애면 마음이 편해진다.
65년생 : 새로운 자리를 잘 선택하라.
53년생 : 주변을 잘 살펴보면 손해는 안 본다.
41년생 : 생각지도 않던 일이 재물로 변한다.
◇ 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말은 좋은데 뛰어갈 광야가 보이지 않는구나.
78년생 : 좋은 일 찾지 말고 재충전하는 마음을 가져라.
66년생 : 빚내서 엉뚱한 곳에 날리는 일이 있다.
54년생 : 구하고자 하는 것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42년생 : 질러간 길이 오히려 돌아 간 길이 된다.
◇ 양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태양이 밝음을 발하니 안 되는 일이 없다.
79년생 : 억울한 일이 생기나 뒤에는 좋다.
67년생 : 고민하던 일은 밀어붙이면 해결된다.
55년생 : 망설임은 오히려 큰 손해를 불러온다.
43년생 : 좋은 소식이 오는 중에 방해가 있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산너머 산이요 강 건너 또 강이라 힘든 하루다.
80년생 : 저녁에 밥 먹고 또 생기는 운이다.
68년생 : 많은 사람과 접촉하라 이득이 생긴다.
56년생 : 멀리 돌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라.
44년생 : 아랫사람에게 상처되는 말을 삼가하자.
◇ 닭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닭 쫓던 개가 구름 쳐다보는 격이니 몸조심해야 된다.
81년생 : 애정문제는 좋으나 금전 운이 나쁘다.
69년생 : 갈등만 자라지면 만사 편안하다.
57년생 : 나가는 물이 있어야 들어오는 물도 있다.
45년생 : 두려운 마음이 생기나 소신대로 하면 길하다.
◇ 개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재물의 근원이 끊기니 고달프구나.
82년생 : 정신이 혼미해지니 꾀임에 조심하라.
70년생 : 동쪽에 길이 있다 내가 움직여야 찾아진다.
58년생 : 재수가 불통이니 일찍 마치고 들어감이 좋다.
46년생 : 갓 끈이 느슨하여 아무 데나 풀린다. 이성 망신을 조심하라.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모든 사람이 다 도운다.
83년생 : 가다가 중간에서 돌아오니 아니 간만 못하다.
71년생 : 술자리에서 실수할 일이 보이니 조심하라.
59년생 : 만금을 가져도 못쓰면 내 돈이 아니다.
47년생 : 무슨 말을 들어도 상처받으면 몸을 상한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천리 먼길에 다시 험한 산이 가리니 쉬어가라.
84년생 : 몸과 기분을 상하는 일은 하지 말것이다.
72년생 : 꾀를 내어도 통하지 않는다.
60년생 : 붙으라는 돈은 어디 가고 이성이 돈 쓸곳을 일러준다.
48년생 : 매사가 뜻과 같으니 천금을 얻으리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달 밝은 밤에 풍류소리가 나는 도다.
85년생 : 자존심만 죽이면 하는 일마다 잘된다.
73년생 : 적은 것 쌓아 큰 것 이루니 점점 형통하다.
61년생 : 엉뚱한 일에 손재수는 있으나 즐거운 일이 있다.
49년생 : 재회의 기쁜 일이 생긴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외롭고 고득한,괴로운 일들을 잘 이겨내라.
86년생 : 침체되던 일들이 다소 해결된다.
74년생 : 목전의 이익이 몸을 손상시키거나 체통을 상하게 한다.
62년생 : 즉석에서 결정하는 일은 후일에 여한을 만든다.
50년생 : 눈감으면 될 것을 나서서 손해보는구나.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일들이 많다.
87년생 : 움직이면 힘든 일이 생기니 조용히 쉼이 길하다.
75년생 : 나아가지도 그냥 있지도 못하니 갑갑하도다.
63년생 : 뭇 새들이 날아다니나 활과 화살이 없도다.
51년생 : 밖을 돌아보면 잊었던 것들이 나타난다.
◇ 용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팔도 강산에 널려 있으니 건지면 올라온다.
76년생 : 노여움을 건강을 해치니 마음을 넓게 가지면 좋은 일이 있다.
64년생 : 말로 어려움이 생기니 입을 조심하라.
52년생 : 한번 용기를 내어 움직임을 보일 때다.
40년생 : 되지도 않을 일을 빨리 포기하면 좋은 날이 온다.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귀는 길게 혀는 짧게, 말을 아끼자.
77년생 : 경쟁심을 없애면 마음이 편해진다.
65년생 : 새로운 자리를 잘 선택하라.
53년생 : 주변을 잘 살펴보면 손해는 안 본다.
41년생 : 생각지도 않던 일이 재물로 변한다.
◇ 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말은 좋은데 뛰어갈 광야가 보이지 않는구나.
78년생 : 좋은 일 찾지 말고 재충전하는 마음을 가져라.
66년생 : 빚내서 엉뚱한 곳에 날리는 일이 있다.
54년생 : 구하고자 하는 것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42년생 : 질러간 길이 오히려 돌아 간 길이 된다.
◇ 양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태양이 밝음을 발하니 안 되는 일이 없다.
79년생 : 억울한 일이 생기나 뒤에는 좋다.
67년생 : 고민하던 일은 밀어붙이면 해결된다.
55년생 : 망설임은 오히려 큰 손해를 불러온다.
43년생 : 좋은 소식이 오는 중에 방해가 있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산너머 산이요 강 건너 또 강이라 힘든 하루다.
80년생 : 저녁에 밥 먹고 또 생기는 운이다.
68년생 : 많은 사람과 접촉하라 이득이 생긴다.
56년생 : 멀리 돌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라.
44년생 : 아랫사람에게 상처되는 말을 삼가하자.
◇ 닭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닭 쫓던 개가 구름 쳐다보는 격이니 몸조심해야 된다.
81년생 : 애정문제는 좋으나 금전 운이 나쁘다.
69년생 : 갈등만 자라지면 만사 편안하다.
57년생 : 나가는 물이 있어야 들어오는 물도 있다.
45년생 : 두려운 마음이 생기나 소신대로 하면 길하다.
◇ 개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재물의 근원이 끊기니 고달프구나.
82년생 : 정신이 혼미해지니 꾀임에 조심하라.
70년생 : 동쪽에 길이 있다 내가 움직여야 찾아진다.
58년생 : 재수가 불통이니 일찍 마치고 들어감이 좋다.
46년생 : 갓 끈이 느슨하여 아무 데나 풀린다. 이성 망신을 조심하라.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모든 사람이 다 도운다.
83년생 : 가다가 중간에서 돌아오니 아니 간만 못하다.
71년생 : 술자리에서 실수할 일이 보이니 조심하라.
59년생 : 만금을 가져도 못쓰면 내 돈이 아니다.
47년생 : 무슨 말을 들어도 상처받으면 몸을 상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기술 교육을 하던 60대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이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다리를 잃은 제자가 한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7일 코이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중부 스마랑의 한 기술학교에서 자동차 기술을가르치던 정익재(66) 씨가 제자인 아리스만(20)의 사고 소식을 접한 건 2013년 3월.
아리스만은 부친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다 고압선에 감전됐지만 어려운 경제사정 탓에 병원조차 가지 못한 채 민간요법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정씨는 아리스만 집을 찾아 오른쪽 손발이 오그라들고 피부가 녹아 뼈만 앙상해있던 제자를 보고 난 뒤로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사고로 절망에 빠져 있던 아리스만이 무척이나 걱정됐다고 했다.
정씨는 코이카 인도네시아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아리스만의 가족을 설득해 그해 11월 제자가 현지 병원에서 첫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 9개월째가 돼서야 첫 치료가 이뤄진 터라 아리스만의 오른쪽 손발은 이미 썩어가고 있었고, 수족을 자르는 절단 수술로 이어졌다.
정씨는 실의에 빠진 아리스만에게 희망을 되찾아주고 싶었고, 이때 코이카 본사와 협력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이 아리스만의 치료를 돕겠다고 나섰다.
작년 12월 인도네시아를 떠나 한국에 온 아리스만은 서울 영등포의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했고, 신경치료와 함께 의족과 의수를 제공받아 재활치료에도 나섰다.
관심과 사랑 속에 집중 치료를 받은 뒤로 아리스만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사고 이후 어둡기만 했던 아리스만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온 것.
이달 3일 2년간의 코이카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정씨는 병원에서 활짝 웃던아리스만과 재회했고, 사제의 얼굴에 온통 미소가 번졌다.
정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고를 당했던 아리스만은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의족과 의수 덕분에 기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뒤로 코이카와 병원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보람된 일이었다”고 겸손해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자동차 기술 관련 일을 했던 정씨는 퇴직 뒤로 의미 있는 일을찾다 2012년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이 돼 인도네시아 봉사 길에 올랐다.
1948년생인 그는 당시 코이카 봉사단원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실버 봉사단원’으로 꼽혔다.
남북이 3년4개월만에 시행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참가자들은 오랫동안 그려왔던 혈육을 만나 그동안의 그리움을 눈물로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이산가족들의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상봉의 정례화 추진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1차 대상자 82명과 동반가족 58명 등 140명은 20일 금강산호텔에서 북측의 가족 178명과 재회했다.
북측 가족들 가운데 지난 1972년 12월 서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된 오대양61호 선원 박양수(56)씨와 1974년 2월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납북된 수원 33호 선원 최영철(59) 수원33호 선원 최영철(59)씨 등 전후 납북자 2명도 포함됐다. 이들은 40여년만에 만나 “행님아”“막내야”를 외치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이영실(88) 씨는 치매가 심해진 탓에 북쪽의 둘째 딸 명숙(67)씨와 동생 정실(85)씨를 알아보지 못해 안타까움을 샀다.
고령에 따른 건강 악화도 절박함을 막지는 못했다. 거동이 불편한 김섬경(91)씨와 홍신자(84)씨는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는 상봉 의지로 구급차를 타고 상봉장을 찾았다. 정부 관계자는 “두 분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의료진 및 가족들과 협의 끝에 내일 21일 오전 개별상봉을 마친 뒤 조기 귀환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봉자들은 북측 혈육을 위해 선물을 마련했다. 1인당 30㎏으로 제한된 가운데 가장 많이 챙겨간 선물로는 ‘초코파이’가 꼽혔다. 이 밖에 선물 꾸러미에는 오리털 파카와 털옷 등 방한용 옷과 영양제, 진통제 등 의약품 및 화장품, 칫솔 등 생필품도 담겨 있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번 상봉을 계기로 행사를 정례화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20일 “지난해 추석 당시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있던 분들 가운데 14분이 돌아가셨다”며 “이산가족 상봉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라고 밝혔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되고 참여정부 때 금강산에 건설해놓은 상설면회소가 하루빨리 가동되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말했다. 이에 북측 이산 추가 상봉에 적극성을 부여 우리 정부가 쌀·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
한편 이산가족들은 21일 이틀째 만남을 통해 못다한 말을 나눌 예정이다. 이들은 금강산에서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단체상봉 등 3차례에 걸쳐 2시간씩 모두 6시간을 함께한다. 상봉 대상자는 오전 9시 외금강호텔에서 개별상봉을 한 뒤 금강산호텔에서 정오에 단체 식사를 하고, 오후 4시에는 단체상봉을 한다.
장르 : 코미디, 드라마, 판타지, 멜로/애정/로맨스
제작국가 : 미국
러닝타임 : 82분
감독 : 우디 알렌
출연 : 미아 패로우(시실리아 역), 제프 다니엘스(탐 벡스터, 길 셰퍼드 1인 2역), 대니 앨로(시실리아의 남편 역)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감독 우디 알렌은 타임슬립(시간여행) 판타지를 참으로 현실감있게 풀어나간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타임슬립 영화들이 있었고 숱한 타임 슬립방법들이 연출됐었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든가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든가 절벽에서 떨어진다든가 타임머신 기계에 몸을 싣는다든가 등등. 아마도 수많은 작가들이 며칠밤낮 제대로 자지도 못해가면서 고민한 결과물들이었으리라. 어떤 작가들은 ‘웜홀’을 공부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고 어떤 작가들은 하늘과 땅의 조화를 따져가며 옛날 서적들을 샅샅히 뒤졌을 법하다.
하지만 우디 알렌은 그저 과거에서 온 자동차 한 대를 지나가게 만들 뒤 펼쳐진 세계를 받아들일지 말지 그 결정을 전적으로 관객들에게 위임한다. 그런데도 그 방식은 상당히 세련되고 또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그가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의 사고 메커니즘이 특별할 뿐. 오히려 그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러한 설정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것인지 확인하며 또 한 번 탄복해마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우디 알렌의 그러한 재능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배경은 대공황 시대다.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일을 해도 쉽사리 돈을 모을 수 없는 팍팍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시실리아는 일이 서툰 탓에 매번 주인에게 핀잔을 듣고 실업자인 남편은 시실리아에게서 돈을 받아 딴 짓을 할 궁리밖에 하지 않는다. 삶이 지겹고 재미없는 그녀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 즉 영화에서 일상의 도피처를 발견한다. 그녀가 한 참 몰두하던 영화가 이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속 가상의 영화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레스토랑에서 해고까지 당해 어떻게 해서든 이 지독한 현실에서 탈피하고만 싶었던 딱 그 순간! 극장 객석에 앉아 있던 시실리아에게 그녀가 보고 있던 영화 속 주인공 탐 벡스터(제프 다니엘스)가 말을 걸어온다.
“맙소사. 정말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군요. 우리 얘기 좀 해요.”
시실리아가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몇 번 씩 반복해서 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영화 속 주인공은 뚜벅 뚜벅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시실리아의 손을 잡는다.
우디 알렌은 평범한 여자가 영화 속 주인공과 현실 세계에서 만나게 된다는 설정을 위해 이렇게 탄탄한 구성을 하고 있다. 즉, 이 영화에서 판타지는 현실의 아픔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극적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셈이다.
이후 주인공 탐 벡스터는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온다. 물론 번개가 치지도 않았고 주인공이 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한 것도 아니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일 따위는 더더구나 없었다. 시실리아가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을 때 그저 뚜벅 뚜벅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왔을 뿐이다. 이러한 우디 알렌의 대범함은 일상으로 판타지를 끌고 들어와 관개들로 하여금 쉽사리 판타지에 빠져들도록 유인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관객들은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 물씬 풍기는 주인공이 영화 밖으로 걸어 나와 열렬하게 사랑고백을 한다는 그 자체에 정신을 놓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학교 짱들이 “너 같은 여잔 처음이야. 네 마음에 들기 위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겠어.”하고 이야기하는 대신 “뒤져서 나오면 10원당 1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 세계이니 말이다.
영화관에서 도망 나온 시실리아와 탐 벡스터는 근처 버려진 놀이공원으로 향한다. 버려진 놀이공원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공간이다. 더 이상 낭만을 찾을 여유가 없어진 사람들은 놀이공원을 황폐하게 버려두었고 그곳엔 쓸쓸한 낙엽만이 뒹군다. 이곳은 황폐한 시대의 상징이자 동시에 현실에 함몰되어 살아야만 했던 시실리아가 버려둔 그녀의 마음 속 마지막 낭만을 상징한다. 무작정 탐 벡스터의 손을 잡고 환상과 낭만의 세계에 들어왔지만 시실리아는 현실에서 떨어져 살아갈 수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아요? 지금은 나라 상황이 좋지 않아요. 불황이에요. 모두가 가난하죠.”
그렇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뒤 영화 속에서나 사용하는 가짜 돈을 건네고, 열쇠도 꽂지 않은 자동차 위에 앉아 “영화에선 (열쇠 없이도) 잘 가던데”하고 말하는 남자와 현실 세계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순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직업이 구해지지 않아도)사랑으로 살 수 있어요.”하고 말하는 탐 벡스터에게 시실리아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한 마디 뿐이다.
“그건 영화 얘기죠.”
탐은 그런 세실리아를 위로하며 부드러운 키스로 그녀를 안심시키려 한다. 하지만 탐은 갑자기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다.
“불은 어디서 꺼지지? 키스가 강렬해지고 사랑을 나눌 때가 되면 불이 꺼지는데....”
현실에서 괴리된 탐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갈등하던 세실리아의 앞에 영화에서 탐 벡스터를 연기한 배우 ‘길 셰퍼드’가 나타난다. 도망간 탐 벡스터로 인해 영화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자 자기가 직접 탐을 잡으러 온 것. 처음엔 탐인 줄 알고 다가갔던 시실리아는 그가 진짜 배우 길 셰퍼드라는 것을 알고 몹시 흥분한다. 배우로서의 자신을 알아봐주는 세실리아의 모습에 길 세퍼드도 호감을 보이면서 둘 사이에도 묘한 분위기가 흐르게 된다.
그렇게 꿈만 같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 때 시실리아를 둘러싸고 있던 판타지의 공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편이 급기야 탐의 존재를 알게 된 것. 남편이 결국 탐과 함께 있는 시실리아를 찾아오면서 탐과 남편 사이에는 몸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하필 탐과 남편이 주먹질을 하고 있는 그 장소가 역설적이게도 교회 안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마치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이 신 앞에 절규하듯, 인상을 상징하는 탐과 현실을 상징하는 남편이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인다. 탐의 주먹에 결국 남편이 쓰러지고 잠시 탐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넘어진 남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려는 그때, 남편이 야비하게 공격을 해오면서 결국 탐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그 후 시실리아와 탐이 나누는 대화에서 이 영화의 주제가 함축적으로 요약된다.
탐, “원래 내가 이긴 건데 반칙 때문에 졌어요.”
시실리아, “그래서 현실은 더 살벌한 거예요.”
시실리아는 탐을 돌려보내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온 길과 우연히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점점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시실리아가 연주하는 우크렐라 소리에 맞춰 길이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그들은 교감하며 급기야 달콤한 입맞춤까지 나누게 된다. 탐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모습을 동시에 겸비한 길에게 시실리아가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그러다 영화관에서 시실리아와 탐, 길 세 사람이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시실리아에게 급기야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시실리아를 사이에 두고 길과 탐이 서로 자신을 선택하라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 그런 둘 사이에서 시실리아는 어찌할지 모르고 고민하는데... 과연, 시실리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엔딩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엔딩으로 꼽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엔딩이 조금만 다르게 그려졌어도 이 영화는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디 알렌은 82분간 이 영화를 보여준 이유를 마지막 한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