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에 성장하는 퇴직연금
사회보장제도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퇴직연금이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다. 1988년에 국민연금이 도입되었고, 연금저축으로 일컬어지는 세제적격 개인연금이 도입된 것은 1994년이다. 퇴직연금은 이보다 11년이나 늦은 2005년 12월에야 도입되었다. 퇴직연금 도입까지 걸린 시간이 길어진 것은 퇴직연금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이해 조정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각자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겼고, 그만큼 법안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제도 도입 초기의 치열한 관심과 달리 퇴직연금이라는 열차가 괘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열의는 식기 시작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전면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3년이나 걸렸고, 2차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통과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열의가 식지 않았다면 과연 개정안이 국회에서 그토록 오랜 낮잠을 즐길 수 있을까? 아직도 퇴직연금의 기본개념조차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으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저출산 고령화의 큰 파고 앞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100세 시대의 노후생활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노후준비가 국민적 스트레스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준비 핵심 축의 하나인 퇴직연금이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아이러니를 넘어 배임행위라 여겨질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도 퇴직연금시장은 높은 성장세를 구현해왔다. 2016년 3분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30조원으로 전년 동기(111조원) 대비 17.1%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2012~2015년의 성장률은 20%를 훌쩍 넘어선다([표1] 참조).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장률이 아닐 수 없다. ‘관심의 불황과 시장의 급성장!’ 불황형 흑자를 떠올리게 한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문제는 성장률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관심의 불황과 시장의 정체’라는 불황형 적자의 시대가 올까봐 걱정스럽다.
퇴직연금, 쉽고 효율적인 노후준비 방법!
기업·근로자·금융기관 등 퇴직연금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열의가 식는다고 해서 개인 및 사회에 대한 퇴직연금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제반 상황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의 영향력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늘어날수록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와 늘어만 가는 후반 인생을 생각하면 근로자에 대한 퇴직연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땅한 신수종 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퇴직연금은 금융기관에게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다.
무엇보다도 퇴직연금은 가장 쉽고 효율적인 노후준비 방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가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면 적잖은 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별도의 자금을 염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다르다. 퇴직연금에 적립되는 부담금을 기업이 내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쌓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 손댈 필요가 없는 셈이다. 빠듯한 가계 상황을 걱정하지 않고도 노후를 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쉽고 좋은가! 또한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적립금 운용수익에 대한 세금이 인출하는 시점까지 이연되는 등 많은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다. 세금으로 내야 하는 돈이 다음 해 원금에 추가되니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가 극대화된다. “그까짓 이자가 얼마나 된다고?” 하며 얕보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한두 해 일하고 그만둘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보험료를 내고도 운용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각자의 상황에 맞는 운용 방법을 유연하게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노후자금을 불리는 방법으로 이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찾기 힘들다.
근로자들이 이런 장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쇼윈도 안의 마네킹이 입고 있으면 별무소용이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벗겨 내 손에 넣어야 비로소 내 옷이 되는 법이다.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제도적으로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근로자들이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진열장에 전시된 제품에 불과하다. 아이쇼핑은 심리적 만족감을 주지만, 활용하지 않는 제도적 장점은 공약(空約)의 씁쓸함을 가져다줄 뿐이다. ‘톡!’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 씨앗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잘 익은 봉숭아처럼 전국 방방곡곡 모든 계층의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아 노후준비를 제고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과 열의에 불을 지펴야 한다.
퇴직연금에 대한 근로자의 관심과 열의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기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본을 다지는 출발점은 퇴직연금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이해하기 쉽게 전파한다면 식어버린 관심과 열의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퇴직연금의 본질을 살펴보자.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퇴직연금의 법적 성질과 관련한 학설로는 노후보장·공로보상설·임금후불설 등이 있다. 노후보장설은 퇴직연금을 사용자가 선의로 근로자의 노후보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 보며, 공로보상설은 그동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퇴직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본다. 임금후불설은 매달 임금으로 지불해야 할 것의 일부를 나중에 퇴직할 때 지불하는 것이 퇴직연금이라고 보는 학설이다.
정설은 임금후불설이다. 퇴직연금의 법적 성질을 임금후불설로 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글로벌 퇴직연금시장에서 세계적 표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퇴직연금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비약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다. 전시통제정책의 하나였던 임금통제정책 때문이다. 원활한 전시물자 보급을 위해 취한 임금통제정책으로 기업들은 근로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에서 물건 만들 인력이 부족하니 얼마나 속이 타들어갔겠는가.
기업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성을 일터로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가급여(fringe benefits)로서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성인 여성들은 전업주부로서 주로 가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로 나간 젊은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노동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려 대거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불러온 예상치 못한 사회 변화였다. 퇴직연금과 같은 부가급여는 전시임금통제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임금을 올려줄 수 없는 상황에서 중장년 남성 인력은 물론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여성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임금을 올려줄 수 없으니 나중에 올려주겠다는 당근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퇴직연금이었다. 즉 임금으로 줘야 할 것 중 일부를 퇴직연금이라는 형태로 해당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연금회계기준서에는 퇴직연금을 임금후불이라고 못을 박아놓았다.
이처럼 퇴직연금은 단순한 인센티브가 아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어떤 배경으로 인해 지급을 뒤로 미룬 임금의 일부인 것이다. 퇴직연금을 제2의 임금이라 부르는 이유다. 모든 근로자들은 임금협상철만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 과연 올해는 임금이 얼마나 오를까? 최소한 물가인상률만큼은 올라야 할 텐데… 임금이 오르면 가계의 재정상태도 좀 나아지겠지. 이런 기대를 하며 임금투쟁에 적극 나선다. 기대에 어긋나면 파업까지 불사한다.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 중 하나다.
그런데 제2의 임금이라는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도입 당시 타오르던 관심이 금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당장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지 않는 돈이라고 관심 영역 밖으로 밀려난 퇴직연금은 주인을 잘못 만난 화초처럼 생기를 잃고 시들어갔다. 내 퇴직연금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내가 가입한 퇴직연금이 어떤 종류인지, 어느 퇴직연금사업자에 내 적립금 운용을 맡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내 퇴직연금이 안녕한지 그렇지 못한지 알고 있는 사람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자신의 임금에 이처럼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음지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퇴직연금을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퇴직연금의 본질은 3층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서 노후준비의 한 수단이 아니라 제2의 임금이다.
노후준비 수단은 임금을 활용하는 한 형태일 따름이다. 최소한 1년에 한 번만이라도 퇴직연금에 관심을 기울이고 점검하자. 그 결과 변화가 필요하다면 사업자를 바꾸거나 상품을 바꾸거나 자산배분을 바꿔보자. 시들해진 퇴직연금이 되살아날 것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잠재적 액티브 시니어
퇴직연금의 본질과 관련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는 퇴직연금 가입자에 대한 것이다. 바로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는 모두 잠재적 액티브 시니어라는 점이다. 누구나 은퇴 후 활기차고 행복한 노후를 꿈꾼다. 이 점에서 퇴직연금 가입자는 특히 더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퇴직연금 도입에 동의할 때 동의를 해달라니 마지못해 동의할까, 아니면 노후에 대한 희망을 안고 동의할까? 비록 지금은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도입 당시 각자 나름의 꿈과 희망을 퇴직연금에 담았을 것이다.
퇴직연금은 액티브 시니어가 되기 위한 중요한 물적 기반이다. 이전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액티브 시니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함을 기반으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연장자’를 뜻한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정신적 건강함과 함께 재무적 탄탄함을 필요로 한다. ‘가난한 강남 부자’라는 말이 암시하듯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금흐름이 말라버리면 사회적 활동은커녕 움직이기조차 힘들다. 퇴직연금은 재산이 적더라도 현금흐름이 풍부한 시민이 되기 위한 초석이다. 많은 근로자들은 이런 심정으로 퇴직연금 도입에 동의하고,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하고, 적립금 운용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퇴직연금을 잘 가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노후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한바탕 바람이 일고 난 뒤 일상으로 돌아오면 꿈은 사라지고 일상의 권태와 피로에 지배당하고 만다. 이 권태와 피로를 잊게 하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꿈임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그 이성을 일깨우는 데에는 게으르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셈이다.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임을 회상하며 다시 꿈을 일깨우자. 근로자 입장에서 퇴직연금은 은퇴 이후에 받는 또 다른 임금이다.
임금 인상 여부에 일희일비하던 기억을 퇴직연금에 접목해보자. 그러면 꿈은 되살아나고 삶에 대한 구체적 그림이 보일 것이다. 그 구체적 그림 속에서 퇴직연금의 역할을 부여해보자. 그러면 현재 나의 퇴직연금은 안녕한지 불편한 상태인지 보일 것이다. 안녕한 상태라면 잘 유지하고, 불편한 상태라면 상품·사업자·자산배분 등을 조정해 더 나은 상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자연과의 조화가 아름다운 궁궐, 조선시대 정원 중 가장 아름다운 창덕궁을 4월 초순 둘러보았다.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건축미에 빠져들기도 했고 궁궐 대문 양쪽에 장식된 장석(裝錫, 사진 참조)을 보며 저출산율로 ‘인구절벽’에 빠진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장석의 문양이 대여섯 자녀에게 물린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장석을 다산(多産)의 의미를 담아 자손의 번성을 기원한 장식으로 사용했기에 더욱 그랬다. ‘인구절벽’은 베이비붐 세대가 일으킨 경제 규모를 이어갈 생산가능인구(15세~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든 사회 현상이다. 여기에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젊은 층의 미래도 걱정이지만, 한국 경제를 일으킨 주역들의 미래 복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조들은 이미 많은 자녀 출산의 필요성을 예견하고 기원의 뜻을 담아 궁궐 곳곳에 부적처럼 붙였다. 그래서인지 다산 의미를 담은 포도송이 문양의 장석은 궁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자손번영을 으뜸으로 꼽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105년 2.25명에서 최근엔 1.17명으로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궁궐의 주요한 곳에 다산 기원의 장석을 붙여 한마음으로 염원했듯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인구절벽’이 우리 경제를 조여오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저출산으로 한국전쟁 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베이비붐 세대를 이어 경제를 주도할 ‘생산인구’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출산율은 1.25명에서 1.17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듦으로써 정부의 세금 자원도 줄어 세금으로 이뤄지는 복지정책이 어렵게 되었다. 통계가 아니어도 저출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가,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결혼할 생각조차 않는 총각, 처녀들이 많다. 결혼 적령기가 지난 딸을 둔 친구가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집을 늦게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다. 딸의 논리 정연한 이유를 듣고 설득할 말을 잃었다고 실토한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큰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왜 시집가서 남편을 섬기고 아이 낳는 고통까지 짊어져야 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이 지난 필자의 아들 녀석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혼자 살기도 힘든데 벌어서 여자까지 먹여 살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또 지금의 이 고통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고차원적 변명도 한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까? 자식들 인생이니 알아서 살도록 나둬야 할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부모는 자식들이 새 가정을 만들어 오순도순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힘든 일도 생기고 일심동체라 일컫는 부부도 격한 싸움을 할 때가 있다. 부부싸움이 잦은 사람에게 “그렇게 싸울 바에야 아예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려고 하니 싸우지 헤어지려면 뭐하러 싸워요!” 이해가 가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난관도 견디어내기 마련이다. 그게 가족의 힘이고 그 힘은 결혼을 해야 생겨난다.
어느 철학자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라고 하면서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통계를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주변이나 친구들을 봐도 결혼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와 같은 세대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적었다. 다만, 형편이 어려워 결혼이 늦은 사람들은 있었다. 결혼을 후회하는 경우는 결혼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불만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혼을 해도 또 재혼을 하는 것 아닐까? 결혼 자체를 싫어한다면 재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배우자가 문제될 뿐인 것이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를 둔 자녀들은 결혼을 꺼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모의 결혼생활을 통해 미리 경험하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선뜻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의 책임도 크다.
우주의 법칙은 무엇인가? 한 마리의 작은 잠자리도 종족을 이어가기 위하여 가을 하늘을 날며 암수가 사랑을 나눈다. 한 그루의 꽃도 씨를 남긴다. 모든 동물도 새끼를 낳아 기른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고귀한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가 해야 할 대자연의 기본 법칙이 아닐까? 또한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한 부모에 대한 보답이다. 왜 자기를 낳아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냐고 반문하면 딱히 할 말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결혼해서 참기름이 쏟아지도록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노부부들을 보면 부럽다. 그들은 분명 결혼은 안 하면 후회한다고 말할 것 같다. 70대까지 독신으로 살아온 한 시니어가 KBS 1TV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코너에 출연해 혼자 사는 외로움을 실토하며 꼭 결혼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혼자’라는 용어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혼자 살겠다는 처녀, 총각들을 어찌하오리? 저출산율에서 벗어나는 고민을 함께해야 할 때다.
일본경제신문 기자 출신으로 30년간 미국, 한국 등지에서 활동했던 타마키 타다시가 쓴 책이다. 현재 법무법인 광장에서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고 일본이 앞서간 것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이 3만2천 달러이고 한국이 2만7천 달러이니 14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본이 한국보다 14년 앞서간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나 액정, 부문은 이미 한국이 앞서 있고 조선 등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부문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최근 한국의 저성장률, 고령화, 저출산, 디플레 등에서 일본이 겪은 고통을 답습하는 것 같아서 일본의 경험이 더 궁금했다. 일본은 앞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긴 고통이 터널을 겪었다. 그 덕분에 우리가 맹추격해서 격차를 크게 줄였으니 이제는 우리도 구조도 비슷하고 이미 여러 부문에서 그런 조짐을 보인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아파트 가격은 반 토막이 나고, 팔리지 않은 집은 많은 수가 빈 집이 되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던 시대는 끝났다는데도 여전히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오르고 있다. 물론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거나 재테크 수단으로 아파트를 청약하는 수요가 많아 가계 부채가 위험수준이라는 경고는 늘 있다. 필자도 현재 사는 집 외에 부동산을 언제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일본과 같은 궤도로 간다면 당장 팔아야하지만, 한국은 일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귀중한 노하우를 쌓았다. 일본 물가가 싸다고 느껴지는 것은 환율의 변동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는 줄어들고 극심한 가격 경쟁 속에 가격 파괴 현상이 일어났다. 비싼 명품보다는 실용적인 가격에 고품질을 원하는 세태에 맞춰 등장한 ‘유니클로’가 성공한 배경이기도 하다. 서울 물가가 비싼 이유는 한국은 아직도 유통업이 공급자 위주인데다 가격 파괴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본다.
일본 기업들의 흥망성쇠도 참고할 만 하다. 카메라 필름 사업이 주 사업이던 후지필름이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도산의 위기를 맞아 변신에 성공한 케이스는 많은 참고가 된다. 필름의 주원료가 콜라겐이라 안티 에이징 화장품을 개발했다든지, 필름 기술을 활용하여 평판 디스플레이 보호 필름을 개발한 일 등이다. 활발한 M&A를 추진하여 40여 개 사를 사들인 것도 새 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사진 필름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코닥이 도산하고 만 것에 비하면 회사의 대표 제품이 사라져도 살아날 길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20년에도 불구하고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로 등극한 토요타 자동차, 미국의 일개 국가 체인으로 시작했지만, 경영난에 봉착한 미국 본사를 사들여 성업 중인 세븐 일레븐의 성공 사례 등도 참고할 만 하다.
소프트 뱅크는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CPU나 통신용 반도체 설계회로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90% 이상이라는 영국의 반도체 대기업 암(ARM)을 한국 돈 약 35조라는 대규모 합병을 성사시켰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이런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정치에 발목이 잡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동네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공기업 헬스장에서 70세 이상은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붙였다. 지금까지 함께 운동해오던 건강한 70대의 할아버지가 나이제한에 힘없이 되돌아가는 뒷모습이 안타까움을 넘어 불쌍해 보였다. 공기업이 동네주민을 위해 무료 운영을 하는 헬스장이니 경비절감을 이유로 코치도 없고 자율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운동하는 체제이다. 코치나 관리인이 따로 없다보니 혹 나이 먹은 사람이 운동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 헬스장의 공식 거절 이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70대 후반임에도 헬스장에서 몸을 멋지게 만든 할아버지가 미스터 코리아 육체미 대회에도 출전하고 90대의 할머니 마라토너도 있다. 예쁜 할머니 멋쟁이 할아버지가 방송에 패션모델로도 출연하는 세상인데 공사판 건설현장도 아니고 헬스장일 뿐인데 생뚱맞게 나이로 뚝 잘라서 출입 제한을 하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사람마다 체력이 다 달라 실제는 70세 미만인데도 신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70이 넘고도 젊은이 못지않게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나이로만 제한하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 행정편의주의인가?
이는 열심히 노력하여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온 사람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격이고 나이에 대해 역차별 논란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국민인권 위원회에서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여 쓴 웃음을 지어본다.
나이로만 제한할 것이 아니라 70세 이상자는 해마다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체력검정을 통과하면 (보건소에 가면 유료 체력검사를 해준다) 헬스장 출입을 계속 허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져본다. 좀 더 정밀하게 전문 의료진이 진단하여 가칭 ‘신체운동능력검증서’를 발부해주는 제도가 마련되면 신체나이에 자신있는 시니어가 더 증가하지 않을지 싶다.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신체나이 얼마 현재나이 얼마를 측정해주고 있다.
전문 의료기관에서 발부된 신체운동능력검증서가 노인의 운전면허 계속 연장에도 쓰이고 재취업에도 역량을 발휘하면 시니어 스스로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금주· 금연은 물론 건강관리에도 열심히 하여 의료보험료 절감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자기 몸을 잘 관리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사회 시설물의 이용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다.
나이든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물에서도 이러한 이용 기준을 갖고 합리적인 선발과정을 밟았다면 객관성이 충분히 있으니 행여 사고가 나도 성실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고 차후에도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젊은 사람에게도 일어나고 나이든 사람에게도 일어난다. 무조건 나이든 사람만이 행동이 굼뜨고 사고우려가 높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하는 것은 편견이다.
맥아더 장군은 나이70에 유엔군을 지휘하여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은 70세에도 전장에서 펄펄 날았다. 나이를 근거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엄격히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알게 모르고 사회통념상 나이라는 잣대로 불이익을 주는 일이 도처에 비일비재하다.
무슨 일을 하려면 일반적으로 신체적 건강과 해야 할 일을 잘 알아야 실수도 줄어들고 효율도 오른다. 나이든 사람은 다소 체력이 달려도 경험이 있고 요령을 안다.
나이를 잣대로 무조건 자르려고 하지 말고 형평에 맞는 기준을 세우고 나이든 사람도 선별해서 활용해야 고령화 저출산 정책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발굴하는 데 도움을 줄거라고 믿는다.
영화 를 보러 간 날은 가랑비가 내렸다. 철 늦은 낙엽이 가랑비에 젖어 을씨년스럽게 길 위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보러 가는 발걸음이 그리 흥겹지는 않았다. 영화관에 도착할 무렵 영화 제목이 ‘그리움’인지 ‘잃어버림’인지 궁금해졌다.
싱글맘 지선(엄지원)은 딸 다은을 몹시 예뻐하는 보모 한매(공효진)가 있어 참 다행이다. 한매는 코를 핥아줄 정도로 다은을 예뻐한다. 지선은 그런 그녀가 고마워 월급과 함께 선물도 전한다. 이렇게 가족 같던 한매가 어느 날 다은을 데리고 자취를 감춘다. 지선은 상상도 못 한 일에 의아해하며 다은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유괴와 그를 추적하는 스릴러의 문법을 따른다. 그러나 사이사이 보모 한매의 과거가 플래시백 되면서 여성에 관한 사회적 고찰이 전개된다. 이혼한 남편과 양육권 문제로 경찰에 제대로 신고도 못 하다 의심만 받게 된 지선은 홀로 한매의 옛 흔적을 밟아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죽어가는 딸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한매의 불행이 낱낱이 드러난다. 그녀는 조선족 여인으로 시골에 돈 받고 팔려와 씨받이가 되었으나 가족의 핍박으로 아픈 딸의 병원비를 위해 장기까지 팔았건만, 끝내 죽고 만 딸에 대한 복수로 다은을 유괴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현재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총망라되어 등장한다. 워킹맘이 부딪히는 일과 양육의 병행 문제, 남편의 바람기로 이혼한 여성의 문제. 이주여성들이 겪는 온갖 어려움과 사회적 문제들. 감독이 여성인 게 드디어 이해되었다.
여성감독의 의욕에 넘쳐 문제 과잉 속에 길을 잃을 위기에서 영화를 구제한 것은 두 여배우의 열연이었다. 공효진은 자신이 로맨틱 코미디에만 최적화된 배우가 아니라는 듯 새로운 캐릭터 창조에 성공하였고 엄지원은 스릴러에 적합한 순발력으로 화면을 지배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뱃전에서 마주친 지선과 한매는 다은을 뺏고 뺏기는 관계가 된다. 지선은 자신이 대신 죽을 테니 다은이 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이 기막힌 장면에 관객들의 눈에서도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모두가 엄마이거나 자식이다.
은 한매가 왜 다은을 데리고 사라졌을까를 묻는 미스터리로 시작해 지선과 한매의 교감을 그리는 드라마로 흐른다. 한매에 대한 궁금증이 안쓰러운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그에 대한 지선의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한매에 대한 공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의 기본 테마는 ‘모성’이지만, 그 모성이 영화 속에선 철저히 짓밟힌다. 한매는 사회적 보호가 미흡한 가운데 가족들에게 무자비하게 핍박당하고 결국 어린 딸의 죽음을 맞는 가련한 모성으로, 지선은 이혼하고 일에 치이며 자식을 보살피지 못하는 불행한 모성으로 그려진다.
이언희 감독은 어쩌면 저출산 대책으로 고심하는 우리 사회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떠들기는 하지만, 아직도 모성을 ‘잃고’, 모성애를 ‘그리워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영화관을 나서며 바닥에 들러붙은 낙엽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영화 를 보러 간 날은 가랑비가 내렸다. 철 늦은 낙엽이 가랑비에 젖어 을씨년스럽게 길 위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보러 가는 발걸음이 그리 흥겹지는 않았다. 영화관에 도착할 무렵 영화 제목이 ‘그리움’인지 ‘잃어버림’인지 궁금해졌다.
싱글맘 지선(엄지원)은 딸 다은을 몹시 예뻐하는 보모 한매(공효진)가 있어 참 다행이다. 한매는 코를 핥아줄 정도로 다은을 예뻐한다. 지선은 그런 그녀가 고마워 월급과 함께 선물도 전한다. 이렇게 가족 같던 한매가 어느 날 다은을 데리고 자취를 감춘다. 지선은 상상도 못 한 일에 의아해하며 다은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유괴와 그를 추적하는 스릴러의 문법을 따른다. 그러나 사이사이 보모 한매의 과거가 플래시백 되면서 여성에 관한 사회적 고찰이 전개된다. 이혼한 남편과 양육권 문제로 경찰에 제대로 신고도 못 하다 의심만 받게 된 지선은 홀로 한매의 옛 흔적을 밟아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죽어가는 딸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한매의 불행이 낱낱이 드러난다. 그녀는 조선족 여인으로 시골에 돈 받고 팔려와 씨받이가 되었으나 가족의 핍박으로 아픈 딸의 병원비를 위해 장기까지 팔았건만, 끝내 죽고 만 딸에 대한 복수로 다은을 유괴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현재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총망라되어 등장한다. 워킹맘이 부딪히는 일과 양육의 병행 문제, 남편의 바람기로 이혼한 여성의 문제. 이주여성들이 겪는 온갖 어려움과 사회적 문제들. 감독이 여성인 게 드디어 이해되었다.
여성감독의 의욕에 넘쳐 문제 과잉 속에 길을 잃을 위기에서 영화를 구제한 것은 두 여배우의 열연이었다. 공효진은 자신이 로맨틱 코미디에만 최적화된 배우가 아니라는 듯 새로운 캐릭터 창조에 성공하였고 엄지원은 스릴러에 적합한 순발력으로 화면을 지배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뱃전에서 마주친 지선과 한매는 다은을 뺏고 뺏기는 관계가 된다. 지선은 자신이 대신 죽을 테니 다은이 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이 기막힌 장면에 관객들의 눈에서도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모두가 엄마이거나 자식이다.
은 한매가 왜 다은을 데리고 사라졌을까를 묻는 미스터리로 시작해 지선과 한매의 교감을 그리는 드라마로 흐른다. 한매에 대한 궁금증이 안쓰러운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그에 대한 지선의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한매에 대한 공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의 기본 테마는 ‘모성’이지만, 그 모성이 영화 속에선 철저히 짓밟힌다. 한매는 사회적 보호가 미흡한 가운데 가족들에게 무자비하게 핍박당하고 결국 어린 딸의 죽음을 맞는 가련한 모성으로, 지선은 이혼하고 일에 치이며 자식을 보살피지 못하는 불행한 모성으로 그려진다.
이언희 감독은 어쩌면 저출산 대책으로 고심하는 우리 사회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떠들기는 하지만, 아직도 모성을 ‘잃고’, 모성애를 ‘그리워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영화관을 나서며 바닥에 들러붙은 낙엽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저출산과 수명연장,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초고속 고령화가 진행 중인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과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9월 27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창조경제연구회(KCERN) 제29회 정기포럼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에 참여한 각계 분야 패널들의 조언을 담아봤다.
첫 주자로 나선 이남식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은 ‘고령화 위기 진단’이라는 주제를 발표하며 이번 포럼이 지니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 총장은 “디자인 분야에 있는 사람은 사용자(실제 고객)와의 공감을 중요시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니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며 “실질적이면서 훨씬 더 폼 나고 위엄 있게 노후를 디자인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토론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시니어 분야의 리더십을 발휘해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번 포럼의 주최 측인 창조경제연구회의 이민화 이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이사장은 “지구온난화보다 더 심각한 것이 고령화”라고 언급하며 “속도는 빠르게, 질은 나쁘게 늙어가는 게 한국의 문제”라고 화두를 던졌다. 그는 KSM(KCERN Silver Model)을 제시해 고령화 현상 및 정책을 분석하며, 고령화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선행돼야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공유경제와 긱(Gig) 이코노미의 등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긱은 일종의 소규모 밴드로 인력 매칭 직업의 종말과 프리에이전트의 등장을 의미한다”며 “미국의 긱 플랫폼, 일본의 클라우드웍스 등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시니어 프리랜서와 사내 기업가 양성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초고령화 국가가 되기까지 10년 남았다. 만약 고령화가 선행된다면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O2O(Online to Offline)제도와 기술혁신 등으로 4차산업 완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두 발표자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김일섭 aSSIT 총장의 진행으로 패널 토론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운을 뗀 강시우 창업진흥원 원장은 “현실적으로 재취업이 어려운 은퇴자들은 대개 치킨집이나 편의점 등의 창업에 도전한다. 창업 경쟁이 과열되면 성공할 확률이 낮은데, 그보다는 기술창업 쪽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이롭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전국에 시니어창업기술센터가 23곳, 여기에 투입된 기업만 430여 개다. 이곳에서 중·장년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예산은 정부 보조금과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 마련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시니어가 경제활동에 기여하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소기업의 창업지원을 돕고 있는 박광회 르호봇 대표는 “시니어 세대와 주니어 세대의 협력을 통해 청년과 고령자 취업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협업 모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멘토 모델이다. 은퇴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청년 세대와 공유하고,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배워나가는 등 세대 간 융합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민간의 지혜와 집단의 지성이 존중되는 형태로 그들을 돕기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 기획단 단장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은퇴자와 청년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단장은 “그동안 노인은 부양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지만, 고령화 사회에서는 경제의 주체가 돼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령자의 노동력을 저평가하는 연령 차별주의가 사라져야 하며, 시니어 스스로도 일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후의 경제력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유익한 삶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노호성 웰니스IT협회&협동조합 부회장은 ‘맞춤형 행복 플레이팅 서비스’ 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노 부회장은 “시니어 인력 활용에 대해 논의할 때 그들의 건강과 체력은 기본”이라며 “시니어의 체력을 측정하는 기준은 젊은 세대와 차별화해야 한다. 가령 윗몸일으키기나 달리기 등은 그들의 신체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자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시니어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제도와 서비스를 찾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노후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재 이투데이 대표 겸 한국SR전략연구소 소장은 고령화 문제를 바라보는 언론인의 관점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컨트롤타워가 분명하지 않아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오갈 뿐”이라며 “고령화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책임감 있게 해결해나갈 주체가 필요하다. 연구소나 언론 등 객체의 역할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람찬 노후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해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 사회의 큰 흐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져온 출산 관련 표어 내용이 재미있다. 전쟁 후 우리나라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국가에서는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가난한 나라에 인구가 늘어나니 고민도 컸을 것이다.
필자가 결혼할 당시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있었고 곧이어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도 등장했다. 그 후부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자녀를 낳지 않았는데도 공무원들이 피임을 계몽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큰 문제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2750년도에는 인구가 없어 대한민국이 없어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휴~ 올해가 2016년이니 2750년이라면 700여 년 후의 이야기다. 700여 년 후라면 필자는 당연히 이 세상에 없고 우리 아들 세대와 꽃처럼 예쁜 우리 손녀 세대도 다 떠난 아주 먼 훗날의 일이라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나라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봐 두렵고 한숨이 나온다. 물론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좋은 방안들이 나올 것이고 대처 방법도 생겨서 나라가 통째로 쉽게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한 집에 자식이 보통 열 명은 되었다. 충남대학교 교수이셨던 외할아버지도 우리 엄마를 장녀로 삼촌 4명과 이모를 두셨고 어려서 잃은 자식도 있었다 하니 열 명에 가까운 자녀를 낳으신 셈이다. 친할아버지댁도 장남인 우리 아버지를 시작으로 삼촌 세 분과 고모 네 분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양쪽 집이 다 대가족이었다.
식구가 많은 게 부담스러웠는지 우리 부모님은 딸 셋만 낳으셨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장남인 아버지가 아들이 없어 엄마는 시댁으로부터 은근한 핍박을 받으셨던 것 같다. 작은아버지가 당신 아들을 우리 집에 양자로 주겠다는 제의까지 있었지만 아버지가 딸 셋으로 충분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아 필자는 딸 셋인 집의 장녀가 되었다.
필자는 아이를 하나만 낳았다. 물론 당시 유행하던 슬로건 때문은 아니다. 그냥 하나만 낳아 잘 키워야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너무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많았으므로 자식이 하나라는 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필자처럼 외동으로 끝난 집은 별로 많지 않다. 거의 두 명 이상의 형제나 자매를 두었다. 그래서 다들 필자에게 자식이 하나여서 얼마나 외롭겠냐, 아이도 쓸쓸할 거라고 걱정들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아들이 하나인 것에 만족했고 아이도 밝고 명랑하게 자라서 그런 걱정들은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불만 없이 잘 자랐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 필자는 하나만 키워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들 며느리는 둘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마 우리 아들이 형제 없이 혼자 자란 게 그리 좋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요즘은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니 속으로 하나만 낳아 잘 기르기를 바랐는데 이런 이기적인 생각도 저출산의 원인이어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는 셈이다. 너무나도 귀엽고 예쁜 손녀가 네 살이 되었을 때 동생이 생겼다. 저출산 시대에 너도나도 자녀를 하나씩만 갖겠다고 하는데 우리 며느리는 칭찬해줄 만하다.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많이 낳아 700여 년 후에 우리나라가 통째로 없어지는 재앙은 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가 문을 닫는다. 언제나 찾아가면 어릴 때 왁자지껄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데 잡초만 무성하다.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듯 한참이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국 시골 어디를 가봐도 이러한 폐교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저출산은 생산의 동력을 잃어 경제발전에 막대한 손실을 주기도 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한국의 발전을 이끌어 왔던 것도 높은 수준의 교육열과 풍부한 인적자원에 의해서였다. 1970년대까지 대학의 문은 좁고 고교 졸업자들은 넘쳐났다. 대학입학정원이 졸업생보다 적어 대학을 들어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 후 전국에 많은 대학이 생겨났다. 4년제 대학은 물론 전문인을 육성하기 위한 전문대학이 앞을 다투어 문을 열었다. 이들은 교육을 받고 경제성장의 큰 역할을 해내며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다.
그 후 몇십년, 지금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저출산에 의한 학령인구(6~21세)감소로 교육의 지형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통계청과 교육부에 따르면 1996년 1176만 명이던 학령인구는 2015년 말 기준 24.5%가 감소하여 892만 명이 되었다. 불과 20년 사이 학생이 4분의 1이나 감소한 것이다. 앞으로 2020년이면 775만 명, 2050년에는 561만 명 2060년에는 488만 명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학 정원도 2005학년도 전문대학 및 대학 입학정원은 62만 4,333명 이었다. 수능 응시인원은 57만 4,218명으로 5만 명 초과하는 정도였다. 2019년에는 대학 정원보다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적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대학은 미달사태로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 격차는 더욱 심화할 것이며 문 닫는 대학도 속출할 것이란 전망이다. 2023년에는 10만 명이 부족한 역전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금도 일부 지방대학은 정원이 부족하여 중국교포로 유지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교육부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예측하여 2023년까지 총 16만 명의 대학 인원을 줄일 계획에 있다. 이 사태를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대학은 미달 상태에 처하게 되고 폐교하는 대학이 나오리라 한다.
초등학교의 폐교에 이어 대학의 폐교는 저출산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는데 불과 몇십년 사이 이렇게 된 것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치열하게 대학입시 공부를 했던 우리에게 대학의 문은 좁고도 좁았다. 그러던 것이 대학의 정원을 채우지 못해서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이니 단순히 대학의 정원 문제가 아닌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걱정이 아닐 수없다
1960년대의 가족계획 표어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1980년대 표어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표어가 오늘 새삼스레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