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가고 더욱 더 더워진 무더운 여름, 더위를 식힐 피서의 시즌이 다가왔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두고 갈 반려동물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은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것은 어떨까?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멍비치’, 그리고 반려동물과 같이 가볼 만 한 여행지를 추천한다.
반려견과 시원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멍비치!
반려견과 함께하는 바다 여행과 물놀이는 반려인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사실 반려견과 같이 갈 수 있는 해변이 많지 않을뿐더러 다른 이용객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이런 견주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해수욕장이 바로 강원도 양양 남애해변에 있는 ‘멍비치’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반려견 전용 해수욕장으로 일반 관광객과 분리돼 있다. 해변에 반려견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도 있고, 함께 해변에서 해수욕도 즐길 수 있다. 멍비치에는 100m의 길이로 안전펜스가 둘려 있고, 1m 20cm 깊이의 바다까지만 들어갈 수 있도록 울타리가 쳐져 있어 안전하다. 또한 해수욕장 입구에는 강아지 전용 놀이터와 샤워장까지 마련되어있다.
이용수칙과 주의해야 할 점
멍비치는 한 사람이 반려견 두 마리를 데리고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는 인당 3천 원, 강아지는 kg에 따라 5천 원 이상 낸다. 맹견류(입마개를 해야 하는 종류)는 입장이 불가하고 반려견이 없는 일반인도 들어갈 수 없다. 깨끗한 해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울 수 있는 비닐봉지가 파라솔마다 준비되어있다. 배설물을 수거해 오면 간식이나 사료 같은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루에 2번씩 모래사장 소독을 하고 매일 해양경찰 점검도 받고 있단다. 이 외에 애견 에티켓과 공지사항을 잘 참조하여 즐긴다면 우리 강아지들과 함께 시원하고 즐거운 바다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78-20 광진해변
개장 기간 2017년 7월 8일 ~ 8월 20일
강원도 평창 봉평 허브나라 농원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강원도 태기산 자락에 허브나라 농원이 있다. 1993년 문을 연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 허브 테마 관광농원으로 평창의 대표 명소 중 하나다. 이곳은 반려견과 함께 입장할 할 수 있어 애견인들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손꼽힌다. 태기산의 흥정계곡을 따라 조성된 허브나라는 1만여 평 규모의 정원으로 7가지 주제로 꾸며져 있다.
이용수칙과 주의해야 할 점
허브나라 농원의 입장료는 인당 7,000원이며, 반려견 입장료는 없다. 허브나라 농원 안에서는 반려견에게 목줄을 반드시 착용시켜 주변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실내 관람 시에는 반려견을 안고 입장하며 배변 봉투를 지참하여 배설물을 즉시 수거해야 한다. 대형견은 출입할 수 없다.
주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길 225 (흥정리 302-7)
덕평 자연 휴게소 ‘달려라 코코’
강아지와 장거리 이동이 걱정되시거나,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를 원할 때 애견 테마파크 ‘달려라 코코’를 추천한다.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체험장소로 애견 테마파크가 떠오르고 있다. 그 중 덕평 자연 휴게소 내에 위치한 ‘달려라 코코’는 반려견을 기르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명소 중의 명소다. 덕평 자연휴게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 테마파크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운전 중 휴식의 목적이 아닌, 이곳 휴게소의 테마파크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중 ‘달려라 코코’는 도심 속에서 산책할 공간이 부족한 반려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서 반려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친환경 애견 놀이터 ‘달려라 코코’는 1,200평의 천연 잔디 시설로 전력 질주 코스, 물고 당기기, 터널, 망루 등과 같은 시설을 마음껏 뛰놀며 도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소형견을 위한 인조잔디 공간과 반려견카페가어 다른 애견친구를 만나 사회성을 기를 수도 있다.
이용수칙과 주의해야 할 점
친환경 애견 놀이터와 애견카페를 이용할 수 있는 입장권은 10,000원이다. 반려견을 동반할 시 5,000원이 추가된다. 강아지가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위생 관리도 철저히 한다. 퇴장 시 소독용 물티슈와 세면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달려라 코코’는 예방접종이 완료된 3개월 이상의 건강한 반려견만 입장이 가능하다. 반려견의 건강과 쾌적한 환경을 위해 음식물 반입은 금지하며 일부 공격성이 강한 강아지나 타인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품종은 입장이 제한된다.
주소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덕이로 154번길 287-76 덕평 자연휴게소 내
제주도 애견 동반 가능 관광지
요즘 반려견과 함께 제주도를 여행하는 관광객이 많다. 국내 항공사에도 반려견이 탑승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제주도 내 애견 펜션과 애견 출입 가능 식당도 증가했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 어렵지 않게 반려견과 함께 여행할 수 있다. 반려견이 입장 할 수 있는 제주도의 관광지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 섭지코지
드넓은 초원과 광활한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제주도의 대표 관광지다. 영화 , , 드라마 의 로케현장이기도 하다. 이 근처 성산일출봉은 반려견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섭지코지는 가능해 반려견을 동반한 관광객을 종종 볼 수 있다. 섭지코지 입장은 무료이고 이곳 역시 배변 봉투와 목줄은 필수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 제주 카멜리아힐
제주 카멜리아힐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풍경이 펼쳐지는 동백 수목원이다. 80개국의 동백나무 500여 종에 6,00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꽃과 식물들로 예쁜 풍경을 이루어 계절마다 보는 즐거움이 다르다. 동백과 벚꽃, 튤립, 야생화가 계절마다 자태를 뽐내는 이곳의 여름은 동그랗고 풍성한 수국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반려견의 출입이 가능한 곳으로 입장료는 성인 기준 8,000원, 청소년은 5,000원, 반려견은 따로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병악로 166
● 한림공원
입구에서부터 야자수가 늘어져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한림공원은 반나절을 할애해도 될 만큼의 큰 공원으로 9가지 테마로 즐길 수 있다. 적정한 습도가 유지되며 넓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 좋다. 재암 민속마을에서 옛 제주의 초가집을 볼 수 있고, 사파리 조류원에서 먹이를 주는 등 체험도 가능하다. 용암동굴과 석회동굴이 공원 안에 각각 있고, 7월에서 9월은 연꽃축제 기간이다.
한림공원 역시 반려견 입장 가능한 제주도 관광지로, 성인은 11,000원이며 반려견은 따로 입장료가 없다. 또 한림공원 바로 앞으로는 에메랄드빛의 금능으뜸원해변이 있다. 한림공원에 반려견과 함께 입장할 때에는 목줄과 배변 봉투를 반드시 지참한다.
주소 제주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300
반려동물과 이동 시 주의해야 할 점
과거와는 다르게 반려동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러워졌다.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 멀리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운송수단마다 준수해야 하는 사항이 각기 다른데 어떤 규칙이 있는지 간단하게 알아보았다.
⊙ 자동차 장시간 여행시 휴게소에 들려 휴식을 갖는 것이 좋다. 반려견 또한 장거리 탑승의 경우 멀미를 할 수도 있다. 여행 가기 전 동물 병원에 들려 멀미약을 미리 처방 받아 준비해놓아야 한다.
주의점 어떠한 이유라도 개를 차안에 혼자 있게 하면 안 된다. 바깥의 기후 변화를 예측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를 스트레스, 저체온증, 열사병, 혹은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다.
⊙ 비행기 항공사마다 약관에 의해 다르나 국적기의 경우 소형 반려동물의 기내 동반 탑승을 허용한다. 전용 이동장을 사용해야 하고 기내에서는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도록 한다. 대형견의 경우 수화물 위탁을 해야 하며 소형견과 대형견 모두 kg에 따라 규정 요금을 지불한다.
⊙ 지하철 운영 약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모든 지하철에서 반려동반 동반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이때 전용 이동장에 넣어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한다. 또한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 반려동물의 동반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 버스 장애인 보조견 및 전용 이동장으로 이동하는 반려동물은 함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운송 시 불쾌감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 탑승이 제한될 수 있다.
⊙ KTX 외 기차 전용 운송장 또는 가방을 이용해 반려동물이 보이지 않게 이동한다. 광견병 예방접종 등 예방접종을 마친 애완동물의 동반 탑승을 허용한다.
반려견 여행 다녀온 뒤 케어
해수욕을 했던 여행이라면 바닷물의 소금기로 인해 피부병이 날 수도 있으니 해수욕 후에 꼼꼼히 씻겨야 한다. 뙤약볕에 오랜 시간 있었다면 미지근한 물에 부드럽게 마사지 하듯이 씻겨주는 것이 좋다. 허브 농원 또는 수목원, 놀이터 다녀온 뒤라면 반려견의 몸에 벌레나 진드기가 붙어 있을 수도 있으니 부드럽게 빗질을 해준 뒤 목욕시킨다. 귀가 덥힌 품종의 경우 귀 쪽에도 벌레가 들어 갈 수 있으니 유심히 봐주는 것이 좋다. 여행에 신이 난 반려견의 몸에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여행 전에 반려견의 상처 연고를 처방받아 가져가는 것도 좋다. 반려견에게도 여행이 피로 할 수도 있으니 다녀온 뒤 반려견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한 뒤 이상 징후가 있다면 동물 병원을 내원해야한다.
나방을 고운 시선으로 본 적 있던가? 여름밤, 밝은 조명 주위로 크고 작은 나방이 몰려들면 무서웠다. 누군가는 살충제를 들고 나와 연신 뿌려대기도 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의 사오정 입에서 나오는 나방은 그저 웃음거리. 더럽고 지저분하고 방해되는 날개 달린 벌레. 인간사 속 ‘나방’이란 정체의 위치가 그러했다. 허운홍(許沄弘·64)씨가 나방의 생활사에 대해 관찰하고 알리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차갑던 시선에 조금씩 꽃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부 허운홍, 나방에 빠지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만 ‘나비’가 아닌 ‘나방’을 연구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있다니! 대학 교수라면 이해가 갈 것 같다. 자연계열과는 거리가 멀던 주부가 ‘나방생활사 전문가’로 불린다. 바로 허운홍씨 얘기다. 우선 허운홍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0여 년 동안 직접 채집해 길러낸 나방이 2000여 마리 900여 종에 이른다. 이렇게 채집한 나방은 손수 표본으로 만들었고 올해 초 광릉수목원에 기증했다. 나방뿐만 아니라 파리와 벌들의 표본도 함께 기증해 시민에게 내줬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출신, 곤충과는 멀던 삶. 나이 오십 넘어 그 작고 날라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돌볼 것 많은 주부생활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자식도 남편도 아닌 나방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녀는 왜! 수많은 곤충들 중 나방에 빠지게 된 걸까?
“전업주부로만 살아왔어요. 대학 졸업하고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과 곧바로 결혼했거든요. 뭐든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잘 안 풀렸어요. 그런데 뭘 하고 살 것인가는 늘 고민했죠. 그러다 1997년에 남편이 교환교수 자격으로 영국에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생태학과 만났어요.”
영국에서 생태학에 눈뜨다
가족과 함께 간 영국 케임브리지. 그곳이 나방 연구에 힘을 실어주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케임브리지는 지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도시의 한가운데는 대학교와 도서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배울 것이 널려 있었다. 학업에 대한 갈증과 궁금증이 많았던 허운홍씨는 케임브리지 개방대학에서 관심 있는 것이 있으면 뭐든 찾아서 수강신청을 했다. 천문학에 미술사, 영국사 강의도 들었다. 그중에 생태학도 있었다.
“생소했어요. 식물에 관한 걸 배울 수 있다기에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어요. 그때까지 에콜로지(Ecology·생태학)란 단어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학교였지만 수준은 남달랐다. 생물학, 곤충학, 천문학 전문가가 한 학기 동안 전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숙제도 내주었다. 무엇보다 허운홍씨가 놀란 것은 학문을 대하는 영국인의 자세였다.
“천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은하계를 볼 수 있는 필름과 슬라이드 장비를 가지고 있었어요. 옷은 정말 허름하고 냄새가 날 정도였는데 슬라이드는 다들 가지고 있더군요(웃음). 생태학 수업을 같이 듣는 분과 영국의 유명한 습지에 간 적이 있는데 차 트렁크에 장화며 쌍안경, 돋보기 등 없는 게 없더라고요. 저는 운동화 신고 뒤따라갔거든요. 문화수준인 거 같았어요. 그게 제가 느낀 차이였어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다들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셨어요.”
지식이 넘쳐나는 영국에서 소녀처럼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은 잠시였다. 1998년 한국에 IMF 위기가 와서 1년도 채 못 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조금 더 영국에 빨리 가서 공부를 시작했거나 더 오래 있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늘 아쉬움이 남는다.
벌 대신 나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는데 1999년에 길동생태공원이 문을 열었어요. 2008년까지 생태안내 자원봉사를 하면서 곤충 생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영국에 있을 때 교수님이 소개해준 책도 해석해서 보고 말이죠. 사실 벌을 더 연구하고 싶었어요. 벌이 선구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이 배워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자은행의 시초였을 것 같은 여왕벌의 저정낭, 말벌의 독특한 아파트 생활 등 벌들의 사회생활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꿀벌과 말벌을 제외한 대부분의 벌이 나무줄기 속, 집 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생활을 해 포기했다.
“그래서 나방으로 돌아섰습니다. 처음에는 이쪽 분야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다 연구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구가 전혀 안 돼 있었어요. 도감 대부분이 일본 책을 베낀 거였어요. 영국에 있을 때도 생태학 교수가 일본 책만 소개시켜줬죠. 그때까지 한국 책은 없다고 했어요.”
2007년부터 중부지방을 기점으로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나방 애벌레를 채집하고 인공으로 키워냈다. 수백 회 반복한 끝에 2012년과 2016년에 1권과 2권을 발표했다. 나방의 탄생과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도감이다.
새로운 나방 찾아 순천으로 남하(南下)하다
현재 허운홍씨는 남편과 순천에서 살고 있다. 서울 생활을 접은 이유는 나방 때문이다.
“중부지역 쪽에서만 주로 채집했어요. 친정이 밀양이라 그곳에서도 좀 했고요. 그렇게 900종을 채집했으니 새로운 곳에서 채집을 해보려고 순천에 왔어요. 이곳에 친척 한 명 없는데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웃음). 남쪽은 사는 식물이 달라요. 그래서 나방도 다른 종이 나와요. 예덕나무, 푸조나무 이런 것들은 서울에 없어요. 제주도에서도 살아볼까 생각했는데 여기랑 식물이 비슷하고 섬이라 한계가 좀 있죠. 이곳에 훨씬 생물이 더 다양하게 있어요. 지리산도 가깝고. 내려와서 70~80여 종을 찾았습니다. 백운산, 제석산, 조계산, 봉화산 등 순천 쪽 산은 거의 다 다니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 주위 산을 오르고 반가운 마음에 애벌레를 채집하고 관찰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대학 박사, 교수 같은 명함은 없지만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수 몇 분이 와서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면 어떻겠느냐고 한 적이 있어요. 공부를 하면 채집을 못하지 않냐 물으니까 채집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채집하러 나가면 새벽 6시에 나가서 왕복 6시간, 6시간 채집해서 한두 종 추가해요. 어떻게 공부하면서 할 수 있겠어요? 안 해본 사람들 생각이죠. 벌레들이 생각처럼 쉽게 찾아지지 않아요.”
허운홍씨는 78세까지 2000종의 애벌레를 채집해 나방 성충으로 키워낼 꿈을 가지고 있다.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모아둔 자료를 가지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
“채집 생활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나방을 생활사별로 정리하고 싶어요. DNA 검사를 비롯해서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싶은데 눈이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시력이 너무 떨어져서 의사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원시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만 하는 일들을 멈출 수 없단다.
“제가 78세까지 2000종을 채집하겠다고 허풍을 쳐놔서요(웃음).”
경조사는 못 다녀요
나방 애벌레 채집에 집중하는 기간은 4월 말부터 9월 말까지. 10월에도 밖을 나선다. 비가 오는 날은 사진을 정리하고 그 외 모든 시간은 산 이곳저곳을 다닌다. 나방 엄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특히 표본작업을 할 때는 강의나 다른 일들은 하지 않아요. 6월에도 성남에서 토크쇼에 와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일단 채집이 시작되면 사람도 안 만나요. 친인척 결혼식도 안 가요. 장례식에는 꼭 가죠. 그 외에는 아무 곳도 안 가요.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집중이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은 올해 채집을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묻는다. 애벌레를 집으로 들여와 길러보니 매년 나는 종들이 다른 것을 알게 됐다. 한 해 거르면 영원히 못 보는 개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여름 여행도 포기했다. 이런 허운홍씨. 가족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가족은 서로 관여 안 해요. 예전에 아들들은 ‘엄마 나방이 날라 다녀요,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봐요’ 그러기도 했어요. 손자들은 벌레들에게 너무 관심이 많죠. 친구들은, 제가 경기여고를 나와서 수준이 있거든요(웃음). 동기 모임도 미술관, 박물관 이런 곳에서 하니까 제 생활을 이해해요. 가끔은 제 남편 대단하다고 해요. 벌레 키우는 여자랑 이혼 안 해주고 산다고요.”
그래도 주부로서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새벽에 나갔다 저녁이 돼서 집에 오면 남편 먹을 반찬은 꼭 만들어놓는단다. 남편이 반찬투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자연을 만나다
채집할 때 가방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열어봤다.
“물, 카메라, 우산, 비닐, 샬레(실험도구인 납작한 원통형 용기), 가위는 3개 정도 꼭 넣고 다녀요. 작업하다 가위를 떨어뜨려서 찾으려고 보면 뱀이 있다거나 보이지 않은 곳에 떨어져 못찾을 때가 있거든요.”
가위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식물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잎사귀나 가지를 깨끗하게 잘라주지 않으면 병이 들 수도 있고 끝이 갈라져 보기에도 좋지 않다.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은 가위를 이용해 가지를 잘라주는 것이란다.
“사람 좋을 대로 하면 안 됩니다. 식물 입장도 생각해봐야죠.”
올해 허운홍씨의 나이는 64세. 적지 않은 나이에 매일 새벽 나방이 될 애벌레 채집을 위해 길을 나선다. 집안일하다 생긴 손가락 관절염에 점점 나빠지는 눈, 매일 걸어 다녀 굳은살 박인 발은 물론이고 어깨 통증도 달고 산 지 오래다. ‘가지에 손만 닿으면 되지’ 싶어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 사명감일까.
“여섯 시간을 찾아 헤매야 한두 종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10년을 이렇게 찾은 것입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나방생활사 연구를 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잖아요. 누가 하겠어요. 제가 할 수밖에 없죠. 결과물에 비해 시간이 너무 많이 요구됩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다면 가르쳐주고 싶지만 돈도 안 되는 것을 누가 하겠어요.”
보물찾기, 퍼즐게임 그리고 컬렉션(?)
요즘도 매일 나방 애벌레를 찾아 곳곳을 돌아다니는 허운홍씨는 이를 두고 ‘보물찾기’라고 표현한다. 숲속을 헤매다 눈앞에 새로운 종의 애벌레가 보이면 날아갈 듯 좋단다. 그 시기가 지나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재미, ‘퍼즐게임’에 돌입한다.
“겨울에는 동정(생물의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을 해요. 표본한 것을 쫙 펼쳐놓고 종류를 구분해요. 애벌레 사진 찍어놓은 것과 성충 표본을 보면서 일본 책을 가지고 이름을 찾아요. 밖에 나가는 건 보물찾기, 동정은 퍼즐게임 그리고 모으면 컬렉션이에요. 재밌는 일이 아주 많은 저만의 취미입니다.”
78세가 되면 소속된 학교도 단체도 없지만 나방 아줌마의 멋진 퇴임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에 “2000종 채우면요!” 한마디 외치며 산속으로 걸어갔다.
아침 출근길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정말 모처럼의 단비다. 제발 대지를 흠뻑 적셔주면 좋겠다. 바싹바싹 타 들어가는 농심이 얼마나 고대한 비인가. 그러나 좀 내리나 하던 빗줄기는 야박하게도 금세 그쳐버린다. 또 태양이 쨍쨍한 햇볕을 내리비추며 심술궂게 혀를 내밀고 있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 뭐 그런 게 있을까 싶지만 문득 떠오르는 곳이 있다. 피하기보단 오히려 태양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곳, 바로 부산이다. 부산은 가끔이 아니라 수시로 생각하는 곳이다. 벚꽃이며 목련이며 봄꽃 소식에서부터 부고장이며 청첩장까지 줄줄이 달리는 SNS 댓글들 속에서 말이다.
지난 6월 1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해수욕장을 개장한 부산은 지금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해운대로 찾아든 사람들로 벅적일 것이다. 필자도 이참에 올여름 휴가지로 부산여행이나 추천해볼까?
부산이 처음이라면 동백섬 한 바퀴 돌고 해운대 백사장 거닐다 달맞이고개에서 야경에 취할 수 있는 데이트 코스도 있고, 줄서서 먹는다는 대연동 쌍둥이 돼지국밥에서 민락동 회센터로 이어지는 식도락 코스도 좋고, 남포동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을 누비는 지름신 쇼핑 코스도 있다는 것을 알고 가면 좋겠다.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와서 대학 졸업 때까지 약 18년간을 살았으니 그야말로 청춘의 황금기를 오롯이 보낸 곳이 바로 부산이다. 몇 년 전엔 졸업 후 약 30여 년 만에 초등학교를 찾아가기도 했다. 학교 정문 앞에 있던 문방구가 아직까지도 있는 걸 보고선 너무 놀랍고도 반가워 한참을 쳐다보며 닫힌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간절함이 통했는지 이젠 칠순이 훌쩍 지난 그 옛날의 문방구 아저씨와도 짧게나마 재회의 기쁨도 누렸다. 추억의 키워드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오륙도의 윤슬!
남구 용호동 끝자락을 밟으면 눈앞에 좌~악 펼쳐지는 장관이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오륙도가 바로 그곳이다. 오늘 같은 날 햇빛에 아롱질 그 눈부신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은 정말 혼자 보기엔 아까운 풍경이다.
좌측으론 광안대교를 굽어보며 우측으론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조망할 수 있는, 해안절경을 따라 이어진 길도 너무 매력적이라 쉽게 설명할 길이 없다. 또한 몇 년 전에 개장된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보이는 벼랑 끝, 그 넘실대는 파도에 부서지는 바위섬은 아찔한 스릴과 폐부를 찌르는 쾌감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때다 하고 ‘부산 아지매’들이 권하는 회 한 접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재주가 없다. 흥정 연습이라도 미리 해둬야지 싶다.
철썩이는 밤바다에 풍경소리, 해동 용궁사!
해운대를 돌아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면 금방 닿는 곳이 있는데 최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용궁사다. 바닷가 해안을 따라 조성된 덕분에 용궁사라는 이름이 정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절이다. 낮 시간대의 비경도 일품이지만 필자는 밤 시간대의 관람을 권하고 싶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철썩철썩 귓가를 때리는 파도소리와 바람결에 실려오는 풍경소리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 그 밤바다의 ‘콜라보레이션‘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Kiss in the dark’은 바로 이런 곳에서 해야 한다. 애독자들이시여, 부디 ’낮 뜨거운‘ 시간을 피해 어둠을 틈 타 살짝궁 다녀가시길 권한다. 참고로 인근의 송정해수욕장 바다 산책로도 추천한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고 서울에 둘레길이 있다면, 부산엔 갈맷길
와우~ 여긴 또 어디일까? 부산 앞바다 남서쪽 끝부분에 위치한 송도해수욕장에서 암남동으로 이어진 해안절경 길인 송도 갈맷길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케이블카까지 재가동 했다고 하니 올 여름 ’핫 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빨리들 다녀가시라.
어떤 투어이든 일단 여행길엔 입이 심심해선 안 된다. 돼지국밥이나 곰장어 구이, 밀면, 물회도 있으니 입맛 따라 고르면 된다. 부평시장 야시장(일명 깡통시장) 구경하며 거인통닭 시식도 권할 만하다. 인근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단팥죽 한 그릇 하는 것도 이열치열엔 그만이겠다.
아~ 부산, 그곳에 가고 싶다.
통상 어딜 가나 꼭 들러봐야 할 곳이란 게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런 곳이 마음에 든 적이 별로 없고 내 마음대로의 코스를 다니곤 했다.오키나와 여행 중 츄라우미 수족관((沖縄美ら海水族館)은 꼭 들러보는 코스라고들 하는데 이곳 역시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아이들이나 즐거운 곳 같았다. 그러나 청정한 오키나와 바다를 보여주는 아시아 최대의 수족관이라 하며 꼭 들러야 한다 해서 할 수 없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도착했을 때는 간간히 뿌리는 비와 함께 습한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족관은 총 4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방대함이란 가히 어마어마하다. 아주 오래전 홍콩에서도 이런 수족관엘 갔던 적이 있는데 내부가 거의 흡사했다. 외국인 여행객은 물론이고 일본인 여행객들도 꽤 많이 보러 온다는 명소라고 한다. 오키나와현이 일본에서는 우리의 제주도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8m의 고래상어나 쥐가오리, 산호초나 심해의 생물들의 풍부한 어종과 신비한 풍경들을 생생하다. 물론 야외에서는 다이내믹한 돌고래쇼가 있는데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치며 관람하는 여행객들이 몰려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바닷속 풍경에 더위를 식혔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흐리고 후두둑 빗방울을 뿌린다. 수족관 건물 아래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가면 에메랄드 비치가 있었다. 수질이 AA등급으로 코발트블루의 바다 빛깔로 유명하다고 한다. 구름이 덮이며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고 해변 쪽으로 오는 여행자들도 별로 없다. 인적 드문 해변을 조용히 한 번 둘러본다.
어차피 기왕 왔으니 샅샅이 둘러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건너편 쪽에 있는 해양박물관과, 그 아래쪽에 민속촌처럼 생긴 아주 오래된 옛 마을이 있었다. 여행자들이 거의 와 보지 않아서 관리하는 직원들이 한가로이 있다가 반가이 맞이한다. 어릴 적 읽었던 일본소설이 떠오르던 풍경들이다. 높은 기온과 습도에도 추억어린 듯한 마을을 둘러보니 지친 마음을 상쇄해 주는 듯 하다.
모두 돌아보고 나오니 츄라우미의 바다와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이렇게도 후텁지근하고 짜증유발의 날씨는 지금도 기억난다. 고온다습으로 미칠 것 같았던 날씨였다. 어떤 계절이나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관없이 여행했었는데 이젠 인내심이 부족해진 건지 요즘의 여행조건에 계절과 날씨를 빠뜨릴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녀오고 나니 좀 더 잘 참고 찬찬히 살피며 다녀보고 사진도 잘 좀 담을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여행이란 가끔씩 이렇게 일상에서 떠올리며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기억으로 또 하루가 쌓여가는 것이 아닐지.
지하철보다 버스를 탄 이유는 버스가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에 푹 잠겨 가기엔 버스에 앉아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며 가는 게 좋은 걸 필자는 잘 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번거로움이 날 더 심란하게 하는 것 같아서 30분쯤 더 걸리는 버스를 타기로 한 것이다.
친구는 항암치료를 잠깐 멈추고 혈소판 수치를 높이기 위한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한없이 생각에 잠긴 필자를 태운 버스는 서울 시내를 두 시간이나 돌고 돌아 그곳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문자를 보냈다.
“뭐 먹고 싶으신가?”
“읎어.”
“다른 말 말고 얼른.”
“그럼 커피나 한 잔 사올래?”
병원 도착하기 전에 커피랑 이것저것 주섬주섬 샀다. 항암치료 중이긴 하지만 식생활은 제한이 없어 좋아하는 커피를 가끔씩 마신다고 했다. 단 걸 좋아하지 않는 친구이지만 이런 날은 기분전환으로 한 번쯤 달달한 걸 마셔도 좋을 것 같아 캐러멜 마키아토를 담아달라고 했다.
사랑하는 친구는 병실 침대에 앉아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 중인 그녀는 그동안 빠져버린 머리가 제법 자라서 짧지만 시원한 쇼커트 스타일이 되어 보기 좋았다.
“오옷~ 멋지신걸~!”
“뭘, 염색도 안 해서… 희끗희끗 이상하지 않니?”
“무슨 말씀을, 산뜻해!”
그렇게 서로 반기며 우린 병실 안에서 조용조용 떠들었다.
필자가 사가지고 간 커피를 마시며 이전과 달라진 세상 이야기랑, 뜻대로 안 되는 다 큰 자식들 흉보기랑, 제주도엔 멋진 계절이 한창일 거란 이야기랑… 끝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커피는 반도 더 남은 채 줄지 않는다.
“너무 달지?”
“단거 안 좋아하는 네가 왜 안 하던 짓을 한 거야?”
“단것도 가끔씩 마셔주는 거 좋잖아?”
어느 새 병실을 나설 시간이 되었다.
“그럼 우리 내년에 제주도 여행 같이 가는 거다~”
“나 가야 할 여행이 엄청 밀렸네. 내년에 나 바쁜데 어쩌지? 하하~”
그녀가 웃는다. 어서 빨리 쾌차해서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병원을 나와 또다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 친구를 더 길게 천천히 생각하며 가고 싶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해야 함을 새삼 느낀다. 잊고 살았던 존재의 소중함, 깨닫고 또 깨닫는다.
어느 날 보고 싶어 문득 “나 오늘 너한테 간다” 하고 문자를 보내면 “아니, 다음에~”, “오늘은 검사가 길어질 거라 했어”, “아니 나 컨디션 좋을 때”, “오늘은 안 될 것 같아”라고 한다.
깔끔한 성격의 친구는 필자가 자주 찾아오는 게 미안하고 민폐라 생각하며 늘 사양을 한다. 그렇게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는데…. 다음엔 달지 않고 향기 좋은 개운한 커피를 사가야겠다. 친구를 다시 찾아갈 이유가 생겼다.
필자의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 그런 엄마 덕에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엄마는 참 바빴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 예쁜 옷 찾아 입히고 머리 빗기면서 3단 찬합 가득 김밥을 싸야 했고 그 와중에 화장도 해야 했으니 출발도 하기 전에 엄마 목소리가 커지기 일쑤였다. 4형제 중 누구 하나가 엄마 주먹맛을 본 후에야 우리는 집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엄마는 현관 앞에서 뒷짐 진 채 서 있던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아버지는 가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힘든데 왜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냐고 물으니 자식들이 넓은 세상 많이 보길 원했다고 하셨다.
“수덕사에선 너 때문에 살아났어.”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필자가 일곱 살 무렵이었는데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 머리가 아프다고 우는 바람에 가족들이 연탄가스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열 번도 더 들었다. 여행 중에 일어난 가장 큰 사고여서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나왔다. 자연농원에서 찍은 사진을 앞에 놓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도망치듯이 한국을 떠난 이야기가 펼쳐졌다. 주차장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을 보니 그 당시 우울한 집안 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는 누가 더 못생기게 나왔는지를 보며 깔깔댔다. 식탁에 앉아 여행에 관한 이야기보따리가 한 번 풀리면 수다가 멈출 줄 몰랐다.
엄마와 단둘이 일본 여행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몇 달 전에 봤을 때보다 등이 굽고, 키가 한 뼘이나 작아져 있었다. 80세가 넘은 티가 확 났다. 관광버스를 타고 남해에 다녀오셨단다. 엄마는 오랜만에 버스 타는 일이 얼마나 좋았던지 도착해서도 버스에서 내리기 싫었다고 했다. 버스 타는 게 그렇게 좋냐고 퉁명스럽게 내뱉곤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랑 둘이 여행 갈래?”
“좋~지.”
엄마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혼자 인천공항까지 올 수 있냐고 물으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냐며 나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일본은 몇 번 다녀와 별로라는 엄마는 미야자키를 맘에 들어 했다. 태평양 푸른 바다가 인상적인 우도신궁에서 소원을 빌고, 시원한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노천 온천도 즐겼다. 회전초밥집에 가서 싱싱한 초밥을 먹은 뒤에는 동물원 구경을 했다. 아주 가까이서 기린과 눈이 마주친 엄마는 깜짝 놀라 뒷걸음치더니 쪼그리고 앉아서 비둘기 모이를 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저녁이 되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초록색 표지의 낡은 수첩을 꺼냈다. 엄마가 메모를 열심히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행 수첩이 따로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뭐라고 쓸 건데?”
엄마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별거 없어. 며칠에 뭘 했고 뭘 먹었나 정도 쓰는 거야. 쓸 때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정말 재밌어.”
엄마는 수첩에 ‘산본 광장동 공항버스 정류장 오전 6시, 일본 공항 11시 30분 도착’, ‘쇼핑몰 구경하고 7시 회전초밥 저녁식사’와 같은 사소한 일정들을 적어 내려갔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여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는 엄마의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중국 여행, 싱가포르 여행, 캐나다 여행, 제주 여행, 울릉도 여행. 수첩엔 여행의 기록이 끝이 없었다. 대부분 아버지와 둘이서 한 여행이었다. 지금은 걷는 게 편치 않아 엄마와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건강이 안타까웠다. 그 많은 여행 중에 필자가 동행한 여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혼해서 내 자식, 내 식구 돌보느라 엄마,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엄마, 언제부터 이런 걸 쓰고 있었던 거야? 너무 멋진걸.”
필자의 칭찬에 엄마는 신이 났다. 수첩에 기록해놓은 여행지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밴쿠버에 사는 큰딸 집에서 보낸 두 달 동안의 기록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 집에서 먹은 삼시 세끼, 교회 가서 헌금하라고 사위가 쥐어준 빳빳한 달러, 주변 지인들의 식사 초대, 블루베리 따러 갔던 일 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엄마는 딸이 생각날 때마다 그 수첩을 펼쳐보았다고 말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 코끝이 시큰해졌다.
필자는 부모님과 자주 만나 식사를 하고 간단한 드라이브를 즐기긴 했지만, 잠깐 만나고 헤어졌기 때문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행 와서 엄마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를 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느라 관광은 뒷전이 되어버렸지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은, 여행이 목적이기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이 곧 여행이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행복의 최고 활동은 여행이라 하였다. 사람은 뭔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데, 여행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 옷을 산 얘기는 몇 년째 할 수 없지만, 몇 년 전 다녀온 여행에 대해서는 지금 이야기해도 즐겁다. 새로운 곳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같이 간 사람들과 말하고 노는 것도 즐겁지만, 여행은 다녀와서도 말할 거리가 있기 때문에 행복감이 높아진다.
행복하지 않은 인생은 재미없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을 텐데 여행을 통해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면 당장 가방을 싸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가족이라도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느라 서로를 돌아볼 새가 없다. 한집에 살아도 한상에 둘러 밥 먹는 일이 뜸해지니 별 할 말도 없다. 이럴 때 가족여행을 다녀온다면,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즐기는 재미는 물론이려니와 다녀와서도 식탁 위 대화가 풍성해질 것이다. 엄마가 쾌활하고 건강하게 사는 건 여행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는 엄마가 건강한 심장과 다리로 여행하고 살면서 행복한 감정을 늘 간직할 수 있기를 빈다.
여기저기 꽃이 만발한 봄날이다. 가고 싶은 데 있으면 얘기해보라는 필자의 말에 엄마는 미리 준비라도 해둔 듯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참 멋지던데” 하신다.
유채꽃은 제주도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부안의 유채꽃밭도 아주 볼 만했다.
샛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눈부신 풍경을 이루었다.
몇 년 전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돈을 내야 한다는 팻말이 있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곳 부안 유채꽃밭은 포근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 속에서 필자도 꽃이 된 양 마음껏 셔터를 눌러 멋진 유채꽃밭 사진을 얻었다.
유채꽃 만발한 부안 마실길인 수성당은 재미있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수성당은 딸 여덟 명을 낳아 일곱 명 딸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주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다스렸다는 개양 할머니의 전설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제사를 올리고 풍어와 무사고를 빌었다고 한다. 또 수성당 주변에서 선사시대 이래 바다에 제사를 지낸 유물이 발견돼 죽막동 제사 유적지임이 확인된 곳이라 한다.
유채꽃밭 속에서 손자, 손녀와 그네도 타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 첫날을 보내고 다음 날은 부안에서 유명한 누에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라며 고른 방문지다.
온종일 피곤했을 텐데 아이들은 잠을 안 자고 뛰어다닌다.
억지로 끌어안고 누웠더니 필자가 먼저 꿈나라로 갔던 모양이다.
아침에 손녀가 가만히 귀에 대고 “할머니~” 하고 불러 잠이 깼다.
콘도였으면 아침 정도는 간단히 해먹었겠는데 호텔이라 아래층 식당으로 갔다.
넓고 깨끗한 한식 식당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누에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누에 형상을 한 귀여운 캐릭터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해서 손자 손녀는 신이 났다.
누에로 비단 실을 만들므로 실크로드와 부안의 선잠 농가에 관한 설명이 있었는데 실크로드(비단길) 라는 이름의 어원은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팬’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에서 주요 교역품이 비단인 것에 착안 그의 저서 ‘차이나’에 ‘자이덴 슈트라쎄’ 라고 명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되면서 1910년 독일의 동양학자 ‘알버트 헤르만’이 교역로가 중국에서 시리아까지 간다고 주장했으며 오늘날에는 동서의 교역로를 비단길과 초원길, 바닷길, 3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부안은 참뽕 프로젝트로 세계제일의 누에 메카를 꿈꾸며 입는 실크에서 먹는 기능성 실크로 녹색성장의 힘찬 도약을 하고 있다.
부안 참뽕 오디를 이용하여 뽕 아이스크림, 뽕 오디 과자, 오디 케이크, 뽕 술, 뽕 바지락죽 등 많은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잠령제’ 라는 행사도 있는데 해마다 봄누에 치기를 앞두고 순조로운 누에치기를 빌며 인간이 기능성 식품생산을 위해 큰누에를 급랭 건조하는 죄를 천지신명께 고하고 잠령들의 안녕과 양잠 농가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의식이라 한다.
누에에 속죄하는 사람의 마음이 선하게 느껴졌다.
체험관에서는 실제 누에를 만져 볼 수 있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누에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니 캐릭터처럼 귀여운 모습이다.
5살 손녀는 징그럽다고 싫다지만 두 살짜리 손자는 단풍잎 같은 손으로 누에를 살짝 만져보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작은 누에에서 멋진 비단 실이 나온다는 게 정말 신비스럽다.
농약을 하지 않고 키운다는 참뽕나무 터널도 지나보고 참뽕 잎도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보았다.
부안의 참뽕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 보았다.
나이 차이가 얼마 없는 진짜 남매를 알아채는 방법 한 가지가 있다. 원활한 관계를 위한 친절한 안부는 없고 퉁명스럽게 다짜고짜 본론부터 들어간다면 100%다. 멋진 추억여행이 있다기에 만난 김미혜(42)씨와 김대흥(40)씨는 완벽한 남매 자체였다. 화창한 봄, 꽃향기 살짝 풍기던 어느 날. 인사인 듯 인사 아닌 인사 같은(?) 직설 화법 쏘며 대화를 이어가는 남매. 이들이 만나 두서없이 나누는 이야기는 역시나 여행. 부모님과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여행 이야기였다.
해군 출신 부자, 여행에 추억 더하기
“아버지! 저랑 같이 술 마시고 좀 돌아다녀요. 입원하고 나면 한 달간은 못 마시니까 여행이나 함께 하시죠?”
퇴역 군인 아버지와 배우 아들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해군에서 복무 중 잠수를 많이 한 탓에 생긴 염증으로 아버지 김성준씨가 고막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아들 대흥씨의 꿀맛 같은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술이나 마시게 여행을 가자니.
“동해안 해군 부대를 쭉 둘러보고 오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는 해군 퇴역 군인이시고 저 또한 해군으로 제대했거든요.”
군복을 벗고 다시 그곳으로 가면 어떤 느낌일까? 군부대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겠지만 근처라도 닿게 되면 그 또한 뜻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원도 봉평에서 메밀전병 사 먹은 것을 시작으로 정동진, 통일전망대까지 쭉 훑고 올라갔다. 아버지 김성준씨가 수술을 바로 앞둔 2012년 3월 중순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여행여행의 행선지가 동해안으로 정해진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흥씨가 찾아낸 빛바랜 아버지 사진. 발견 당시 기분은 소름끼칠 만큼 신기했다고 대흥씨는 말한다.
“해군에 들어가 얼마 안 됐을 때인 일병 시절, 배 위에서 사진 찍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 사진을 뽑고 난 뒤 집에서 앨범 정리를 하다가 아버지 젊을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됐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와 아버지가 찍은 사진 배경이 똑같은 거예요. 위치까지도요. 소름이 끼쳐서 ‘아버지 이거 뭐예요?’ 그랬더니 ‘그 배, 내가 미국에서 끌고 온 배야’라고 그때서야 말씀하셨어요. 시간을 초월해서 아들과 아버지가 같은 곳에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 언젠가 그 배에 가서 꼭 한번 같이 사진 찍자고 약속했어요.”
“늙은이들끼리 한번 늙은이 보러 갑시다”
여행에서 바라던 최고의 장면은 퇴역 함정과의 해후였다.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의 ‘강릉통일공원’에는 아버지와 김대흥씨의 군 시절을 함께했던 같은 기종의 구축함이 전시돼 있다. 배와 만난 시대와 그 이유는 달랐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오랜 친구임에 분명했다.
“둘 다 군 생활을 마치고 여행 가서 퇴역 배에 다시 올라탄 거잖아요. 다 고물로 만난 거죠. 배는 고물, 아버지는 퇴역 군인, 나는 제대 군인. 이 셋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말이다. 이 무심, 무뚝뚝, 무정한 부자는 정말 꼭 같은 장소에서 사진 한번 찍자는 말을 제대로 지키고야 말았다. 단둘이 간 여행에서, 단둘이 찍은 사진이 ‘바로 그 위치’란 곳에서 찍은 단 한 장(!)뿐이란다.
“남자들이 다 그렇죠 뭐(웃음). 만나면 술 먹고. 여행으로 서로 더 돈독해진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낮에는 운전해야 하니까 술은 못 마시고요.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젊으셔서 술 정말 잘 드셨어요. 수술 앞두고 어머니가 술 못 드시게 하시니까 제가 아버지에게 술 실컷 마실 기회(?)를 드린 것이죠. 그러고 딱 돌아오자마자 입원하고 수술하셨어요.”
여행 가서 정치 얘기는 금물
“술 먹고 아버지랑 싸우지 말걸 그랬어요.”
술이 부르는 여러 가지 사건 중 하나가 싸움. 대흥씨도 아버지랑 여행하던 중 다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배에 관한 이야기로 훈훈하게 시작해 천안함 사건으로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더니 결국 정치 얘기로 가고야 말았다. 해서는 안 될 대화였다고 회상했다.
“당연히 군인으로 한평생을 산 아버지와 저는 분명한 이견이 있었어요. 여행 가서 아버지랑 얼굴 붉힐 줄이야(웃음). 지금은 싸운 것도 웃기지만 좋은 추억이 더 쌓여서 괜찮아요. 이 여행을 계기로 영화 시나리오도 썼고요.”
여행 뒤 김대흥씨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을 주제로 한 작품 를 집필했고 2014년 제주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가작’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솔직히 엄마와 딸은 들어본 적 있어도 다 큰 아들과 나이 든 아버지의 여행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아버지와 싸웠던 것도 시나리오에 녹였죠. 단 정치로 싸우는 거 말고 다른 것으로 상상해 썼어요.”
아버지와 단둘이 또 여행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기회만 되면 언제든 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대흥씨.
“아버지랑 함께 군함에 올랐던 것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예요. 아버지가 정말 많이 좋아하셨거든요.”
부모와의 여행은 좋지만 늘 고민되는 일
그러면서도 부모님과의 여행이 쉬워졌다거나 편해졌다고 선뜻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쉽지 않아요. 부모님과의 여행은 아무리 자주 여행을 함께한다 하더라도 늘 대단한 각오가 필요해요. 그게 쉽다고 말하면 정말 제가 이상한 사람이죠. 가기 전에 항상 고민해요. 이 돈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가서 맞출 것도 많고요. 그래도 갔다 오면 잘 다녀왔다 생각하게 됩니다.”
김대흥씨는 시시때때로 사진을 찍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시간을 기록한다. 여행은 부모와 가족 모두를 사진에 담기에 아주 적당한 장치 같은 것이다.
“지금 제 핸드폰에도 부모님 사진이 있거든요. 미혜 누나 결혼식 때도 북촌길을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요. 요즘 보면 대부분 부모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욱더 부모님과의 여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누나가 여행에 관해 할 말이 더 많을 거예요. 누나는 엄마랑 대만 여행을 다녀왔는데 정말 잘 놀다 왔더라고요.”
둘째 누나 김미혜씨의 꽃보다 엄마 ‘대만 편’
이제 그럼 김대흥씨 누나의 여행 이야기에 빠져볼까? 김대흥씨는 삼남매 중 막내. 둘째 누나 김미혜씨가 여행에 조예가 깊다고 귀띔해줬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은 전문가 수준이라고. 현재 IT업계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미혜씨는 전직 여행작가다. 거짓말 약간 보태 국내외 구석구석 안 가본 지역과 나라가 없을 정도다. 지금도 호시탐탐 여행 기회를 노리고 있다. 미혜씨는 가방에서 앨범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엄마와 대만 여행 갔을 때 사진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었어요. 기념도 될 것 같고요.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제가 원래 여행을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엄마랑 여행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여행지에서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늘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김미혜씨 가족은 제주 출신이다. 해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고 종착지는 부모님이 나고 자란 제주가 됐다. 제주에 살고 있는 부모님. 물리적인 거리가 다소 걸림돌이 되지만 엄마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곳에 갈까 찾아보고 고민한다. 그렇게 떠난 첫 외국 여행지는 대만. 이유가 있었다.
“꽃보다 할배, 대만 편을 재밌게 보셨나봐요(웃음). 일본이나 중국 2박 3일로 갈 수 있는 곳을 추천해드렸는데 갑자기 대만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혈액 투석하는 어머니를 위한 맞춤 일정
미혜씨는 고민 끝에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대만을 자주 다녔고 여행 일정도 짤 수 있었지만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어르신이랑 여행을 할 때는 식사와 동선이 문제거든요. 젊으면 모르겠는데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다니는 게 힘들어요. 무엇보다 식사를 특히 잘 맞춰주잖아요. 현지식과 한식을 고루 섞어주니까. 자유여행의 경우 자식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걸 눈앞에서 보시니까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패키지는 여행 전에 돈을 미리 지불하잖아요.”
혹시나 패키지여행의 일정이 빡빡하고 버스 이동이 많아서 어머니가 재미없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매 순간 즐기고 따라다니셨다고 했다. 그리고 패키지를 선택한 이유가 또 있다. 어머니의 건강이 문제였다. 어머니 이경숙씨는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한다. 그래서 멀리 가고 싶어도 2박 3일이 넘는 여행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월·수·금 중 하루 투석이 끝난 오후 시간에 여행을 떠나요. 제주도에서 투석하거나 서울에서 할 때도 있어요. 만약 엄마가 속초나 이런 곳에서 여행을 하시게 되면 며칠을 자야 하니까 제가 미리 그 근처 병원을 알아보고 시설이 어떤지 확인하고 예약해요. 그런데 항상 하는 일이라(웃음). 대만 갈 때는 아주 많이 기대하셨고 다녀와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고 말씀하세요.”
여행남매, 지금도 여전히 여행 계획 짜는 중
작년 미혜씨는 엄마와의 홍콩여행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 몸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어머니의 투석은 여행을 참 힘들게 하지만 해결하고 넘어야 할 일. 그럼에도 미혜씨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짧게라도 여행을 꾸준히 다닐 것”이라고 말한다. 오는 10월 아버지 김성준씨의 고희(古稀)를 기념해 김미혜, 대흥 남매는 온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중심은 단연 부모님이다. 아이들은 더 좋은 곳에 많이 갈 것이기 때문에 일정 대부분은 부모님 위주로 짤 계획이다.
김대흥씨는 자신과 누나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고 했다. 부모와의 여행이 불편하다는 편견을 좀 깨주고 싶었다고.
“여행 가고 싶은데 불편해서 못 간다구요? 어머니 투석 챙기는 누나 보세요. 그래도 누나는 하루라도 젊을 때 엄마랑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거든요. 게다가 저희 부모님은 제주에 사시잖아요.”
돈이 꼭 있어야만, 그리고 건강해야만 할 수 있는 게 부모와의 여행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터뷰 말미, 호기심이 발동해 질문 하나를 던졌다.
“누나와 동생, 단둘이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이구동성으로 단호히 대답했다.
“없죠(웃음).”
유장휴(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전략명함 코디네이터)
삶이 복잡해졌다면 재정비가 필요하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계획을 세우거나 재정비하는 시기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쌓이기 마련이다. 물건도 쌓이고, 추억도 쌓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쌓이면서 생활이 복잡해진다. 단순히 정리만 하면 가벼워지는 것도 있지만, 정리보다는 리셋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리셋은 초기화라는 의미다. 처음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리셋이란 용어가 종종 쓰인다. 컴퓨터가 오래되고 느려지면 파일 몇 개 지우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컴퓨터를 처음 산 상태로 초기화, 즉 리셋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성능을 어느 정도 살려낼 수 있다. 그런데 컴퓨터만 리셋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생활 속에서 도구가 너무 많아서 복잡하거나 매시간 울리는 의미 없는 단체 톡이나 밴드 알람에 짜증이 난다면, 생활은 물론 인간관계에서도 리셋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카톡, 밴드 단체방 홍수 시대! 단체톡 늪에서 빠져나오자!
카톡 단체 방이나 네이버밴드 모임 리스트를 보면서 모임 좀 줄여야지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대부분 단체 방을 만들기는 잘하는데 단체 방에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체 방 숫자만 늘어나고 대화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눈으로 보는 눈팅만 하게 된다. 불필요한 단체 방을 나오는 것이 관계 정리의 시작이다. 중요한 모임은 활발히 교류하고 방치된 방에서는 바로 나와야 한다. 모임 공지나 빠른 답변을 할 때는 이런 단체 방이 좋은데 깊이 있는 소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필요 없는 모임은 과감히 정리하고 정말 중요한 모임에만 집중하는 게 관계 리셋의 시작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활동하지 않는 밴드와 카톡방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나오는 순간 상대방이 알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 밴드에는 탈퇴 대신 밴드 숨기기 기능이 있다. 탈퇴는 안 하지만 내 눈에는 안 보여서 정리하는 효과를 준다. 티 안 나게 탈퇴하면서 방치된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간을 리셋하는 새로운 방법, 한달살이
관계 리셋 다음에 필요한 게 공간 리셋이다. 요즘은 심플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을 비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데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물건을 버리고 정리한다 해도 또다시 원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좀 줄인다고 삶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이럴 때는 물건을 정리하는 대신 공간을 바꿔 삶의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요즘 뜨고 있는 트렌드가 새로운 공간에서 살아보는 ‘한달살이’다. 한달살이는 여행지에서 한 달 동안 집을 빌려 사는 방식을 말한다. 낯선 곳에 살면서 색다른 일상을 만들어보는 한달살이는 지금 제주도에서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한달살이를 하려면 한 달 동안 써야 할 물건만 챙겨가야 하므로 많이는 못 챙겨간다. 꼭 필요한 물건만 선별해서 가져가야 한다. 공간이 바뀌면 사용하는 물건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설거짓거리가 가장 줄었다고 한다. 집에 있을 때는 무심결에 이런저런 그릇이나 요리 도구들을 펼쳐놓고 썼는데 새 공간에서는 꼭 필요한 그릇만 꺼내서 쓰고 음식도 간단하게 먹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설거짓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덕분에 여유시간이 늘어나면 책을 읽거나 취미생활에 집중할 수 있다. 한달살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제야 불필요한 물건들이 눈에 띄고 정리를 하게 된다. 삶에 변화를 주려면 생활 패턴을 조금씩 바꿀 필요가 있다. 연초에는 과감하게 인간관계와 공간을 리셋해보자.
◇ ‘밴드모임 숨김’으로 관계 정리하기
1. 밴드 어플을 실행시킨다.
2. 밴드 모임 리스트 중에 숨기고 싶은 모임을 선택한다.
•모임 이름을 확인한다.
•모임 이름에 있는 점 세 개 모양의 메뉴를 누른다.
3. 메뉴 중에 ‘이 밴드 숨김’ 기능을 선택한다.
•해당 밴드가 모임 리스트에서 숨겨진다.
4. 밴드가 숨겨지면 완료 메시지가 나온다.
•다시 보려면 내 밴드 편집 메뉴의 ‘숨김 밴드 관리’에서 변경 가능하다.
어느 날 나이가 들고 보니 살아온 삶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책상 앞에 앉았다. 펜을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볼까? 하지만 손에 들려진 펜은 곡선을 그리다 갈 길 몰라 방황한다. ‘그것참, 글 쓰는 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하던 사람들이 모여 글쓰기에 도전했다. 생활의 활력이 생기더니 내가 변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성장하는 감동 스토리도 하루하루 글로 쌓여갔다. 이웃들의 정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부천 글쓰기 모임’에 다녀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원미동으로 향했다. 마치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방송사 드라마 세트장 방문만큼이나 기대됐다. 양귀자의 소설 의 배경이 된 이곳에서 글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부천시 원미 2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반. ‘글쓰기 모임’ 강좌가 열린다. 강좌가 이어져온 지도 어언 6년. 수필집도 5권이나 출간했다. 등단한 회원, 부천 지역신문 시민기자가 된 회원, 이 강좌에서 공부한 것이 바탕이 돼 뒤늦게 대학 공부를 하는 회원도 생겨났다.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길을 찾고 발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보다 빛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부천시 글쓰기 모임은 부천시 평생학습센터 특화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지원을 받는 강좌 중 하나다. 원미동 글쓰기 모임 외 시(市)의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강좌는 몸을 움직이고, 발산하는 활동 프로그램. 글쓰기 모임을 6년간 이끌고 있는 박창수(52) 작가는 이 모임이 꽤나 희귀하다고 설명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데 6년 동안 모임이 이어져오는 것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는 19명의 회원이 글쓰기 모임의 문을 활짝 열었다.
노년의 글쓰기는 힐링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등단보다는 자신이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고민 끝에 문학에 도전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는 데 의미를 둔다. 박창수 작가는 글쓰기 모임의 기본 바탕은 ‘힐링’이라며 방점을 찍는다.
“글쓰기는 힐링 단계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글로 쓰는 연습을 하면서 풀어나가요. 그다음이 문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죠. 우리 수강생들 중에는 사실 상처받으신 분들도 많아요. 다 큰 자녀가 죽었다든가, 시어머니와의 갈등 등 정말 다양해요. 그런데 이곳에서 치유하고 가슴을 여는 것이죠.”
글쓰기를 하고 50세가 넘어서야 대학 공부에 도전한 회원도 여섯 명이나 된다. 박창수 작가는 글쓰기 모임 회원 개개인의 수필집 발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등단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박창수 작가는 “열심히 글을 쓰고 또 부쩍 글쓰기 능력이 늘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며 “제대로 된 방법으로 회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mini interview
류인록(부천글쓰기모임회장·71)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선물받다
이제 글 쓴 지 5년 됐습니다. 살면서 타자기 한번 못 만져봤습니다. 62세가 돼서야 노인복지관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습니다. 독수리 타법 면한 지는 오래됐어요. 그리고 포토샵(사진편집 프로그램)과 파워포인트도 배웠어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오면 포토샵 스위시로 사진들을 꾸밉니다. 사별하고 저 혼자 산 지 꽤 됐지만 이렇게 살다 보니까 세상 지루한 줄 몰라요. 지금은 우리 원미마을신문 기자로 활동해요. 글쓰기 교실도 다니고, 주병률 시인에게 시를 배우러 다닙니다. 취미생활이 또 하나 있어요. 여행을 다니는 겁니다. 작년에 홍도에 다녀왔고, 제주도, 안동 이육사 문학관, 영월에도 다녀왔어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글감이 나오더라고요. 기행문 쓰는 게 좋아요. 제 입장에서 쓰기가 좀 쉽더라고요. 그것도 갔다 와서 일주일 안에 써야지 지나가면 금세 잊어버려요.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제가 원래 운동신경이 안 좋아서 다른 건 별 흥미가 없었어요. 글쓰기를 선택했고 버틸 만했어요. 첫 글을 쓰고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6년 전 먼저 간 마누라에 대한 글이었거든요. 그 글이 실린 책은 우리 마누라 납골당에 넣어두었어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몇 편이라도 더 써서 수필집도 내고 싶고, 시집도 내고 싶어요. 시도 쓰는데 현재 68편을 썼어요. 시집도 하나 내고 싶습니다.
이양순(요양보호사·61) 올 가을에 제 이름으로 된 수필집이 나옵니다
글은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기록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2005년도에 요양보호사가 된 뒤 만나게 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보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분이셨는데, 치매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기억은 고스란히 안고 계셨어요. 제가 그 일에 대해 당시 글을 써놓았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수요집회를 TV로 접하다 제가 쓴 글이 생각나서 라디오 방송에 냈어요. 그런데 그게 방송으로 나오더라고요. 2013년도였어요. 방송에 채택된 뒤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거 행복합니다. 제 재능에도 놀라고 기억력은 한계가 있는데 글로 기록해놓으면 안 잃어버리니까 좋고요. 요즘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글감이 좀 많거든요. 아직 미흡해서 걱정입니다. 가을쯤 제 이름으로 된 수필집이 나온다고 하는데 고민됩니다. 물론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영광이지요. 부끄럽기도 하지만 기대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