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은 서울과 경기도에 접해 있으면서 자연경관이 뛰어나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울시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은평구 등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 등 3개 시, 모두 8개 시, 구가 걸쳐있다. 지난 20일 국민대학교 앞에서 출발하여 북한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며 생태계를 살펴봤다.
북한산 전망대를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는 절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북한산 숲 체험장이 있는 곳에서 전망대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올라가는 길에 야생화가 자라고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도 여러 곳 있다. 북한산 기온이 시내와 비교하여 다소 낮아서 야생화가 개화하는 시기도 시내보다 5일에서 10일 정도 늦다.
북한산에서 자연의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더욱 맑게 잘 관리되길 바랄 뿐이다.
가장 먼저 북한산 개울에서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볼 수 있었다. 북한산 개울의 물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개구리와 도롱뇽은 맑고 깨끗한 물에서 알을 낳는다. 북한산 전망대를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5개 정도의 개울 중에 3개의 개울에서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낳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구리 알에서 50 ~ 75일 정도 지나서 개구리가 되고 도롱뇽 알은 40 ~ 50일 정도 지나서 도롱뇽이 된다.
올라가는 곳곳에 야생화가 자라고 있었다. 시내보다 북한산 기온이 다소 낮아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는 시기가 늦지만, 곳곳에 신기한 모습으로 자라는 야생화를 볼 수 있었다. 산수유, 생강나무, 산벚나무, 진달래, 산철쭉과 바위취, 방가지똥, 뽀리뱅이, 방가지똥, 긴병풀꽃, 지칭개 등이 꽃을 피우려고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다양한 새들도 둥지에서 나와 활기를 찾는 모습이었다. 시내에서는 좀처럼 새들을 볼 수 없지만, 북한산에서는 새들을 볼 수가 있었다.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하여 나무 위에 지은 둥지와 까치집 들을 여러 곳에서 확인했다. 동고비, 직박구리, 상모솔새 등을 보았다. 새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었다.
성북구청 녹지과에서 북한산 주변 소나무에 재선충약을 투입하는 모습도 봤다. 재선충은 소나무 등의 침엽수에 기생하여 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이다. 큰 소나무의 밑동에 구멍을 내고 약을 투입했다. 봄에 한번 나무에 약을 투입하면 1년 동안 약효가 있어서 내년 봄까지 예방이 된다.
북한산에서 자라는 꽃은 평지보다는 다소 늦게 피지만 더 아름답다. 4월 초순에서 4월 중순이 되면 북한산에서는 개나리, 목련, 산수유, 생강나무, 진달래, 산철쭉과 애기똥풀, 민들레, 복수초, 긴병풀꽃 등의 꽃을 볼 수 있다. 북한산이 자연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길이 보전되길 기원한다.
아침 녘 꽤 눈이 내리기에 겨울다운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기대했는데 사르르 녹아버린다. ‘눈이 와야 겨울이 겨울다운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눈의 왕국이 보고 싶은 이라면 흰 눈이 하염없이 내려 동화 속 세상을 만드는 한라산으로 겨울여행을 떠나보자.
한라산 겨울산행, 어느 코스가 좋을까?
제주도의 근원이자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인 한라산의 겨울은 순수 그 자체이다. 백색 치마폭을 두른 듯한 겨울 한라산, 그곳을 오르지 않았다면 한라산의 진면목을 보지 않은 것과 같다. 한라산을 탐방하는 코스는 백록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성판악, 관음사 코스와 1700 고지인 윗세오름까지 가는 영실, 어리목 코스 그리고 남벽분기점까지 오르는 돈내코 코스의 총 5개의 등산코스가 있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면 어리목탐방안내소에서 어승생악 정상까지 다녀오는 코스나 짧은 시간에 한라산의 멋을 느껴볼 수 있는 영실, 어리목코스가 좋다. 한라산을 오르는 겨울 코스 중에 최고는 성판악코스다. 천천히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면서 오르는 산행로를 따라 숲과 능선이 조화를 이뤄 겨울산행의 묘미가 가득하다. 꽤 등산을 좋아한다면 몇 개의 계곡을 지나는 난이도가 높은 관음사코스를 추천한다.
겨울왕국으로의 여행, 은빛 한라산을 오르다
한라산 겨울산행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날씨를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전날 한라산이 통제될 정도로 눈이 내렸고 다음날 맑음이라는 예보가 있다면 최상의 겨울 한라산을 만날 확률이 100%다.
성판악휴게소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산행을 시작하면 다채로운 눈꽃의 향연에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꽃이 펼쳐지면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눈꽃을 보며 천천히 걷기 때문에 평소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진달래밭 통제소를 12시까지 통과해야만 백록담까지 갈 수 있으니 시간 안배가 필요하다.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면 경사가 급해진다. 그동안은 숲길을 산책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지점부터는 산행이다. 앞사람의 발끝을 쫒으며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급경사의 숲이 끝나고 눈이 시원해지는 너른 벌판이 나타난다. 흰색의 한라산과 구름의 경계가 모호하다. 우뚝우뚝 서있던 구상나무는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빙판길처럼 미끄럽고 몰아치는 바람은 살을 에듯 날카롭다. 한라산 최고의 눈꽃인 상고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고대는 안개처럼 미세한 입자가 바람과 갑자기 낮아진 온도에 얼어붙은 것이다. 바람의 자국을 선명하게 보여주면 얼어붙은 상고대는 섬세한 눈 조각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맹추위를 지나 겨우 도착한 정상 부위는 대부분 구름이 오락가락 백록담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매서운 바람이 귓불을 후려치지만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본다. 1년 중 백록담을 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음을 생각하면 화구호에 흰 눈이 수북한 백록담을 잠시라도 볼 수 있다면 크나큰 행운이다.
동절기에는 1시 30분까지 정상에서 내려가야 한다. 하산 길은 마음이 여유롭다. 소담스러웠던 눈꽃들이 햇살 아래 물방울로 변해 떨어진다. 눈 무더기에 싸여있던 붉은겨우살이 열매도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한라산이 펼쳐 보인 은빛 동화책을 덮어야 할 시간이다. 나태함이 마음속에서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 삶의 활력을 채워서 돌아간다. 한라산 겨울산행이 사람들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성판악코스 탐방 정보
성판악 탐방안내소 -> 속밭/화장실 -> 사라오름입구 -> 진달래밭대피소 -> 정상(동릉) (진달래밭 3시간, 정상 4시간 30분) 왕복 19.2km, 9시간 소요
입산통제시간 : 동절기 11~2월 입산시간 06:00부터, 성판악탐방로 입구 12:00부터, 성판악 진달래밭안내소 12:00분, 정상탐방 제한, 정상 (백록담) 13:30 하산
매점 : 성판악휴게소 (식수, 김밥, 국수, 해장국, 과자류, 아이젠, 비옷 등 등산장비), 등산로에는 매점이 없으니 미리 준비하도록 한다.
화장실 : 성판악휴게소, 속밭대피소, 진달래밭대피소
한라산 겨울 등반 Tip!!
한라산은 외형적으로는 완만한 형세를 보이지만 바람과 비가 잦아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급변하는 기후와 눈이 많이 오는 겨울 날씨로 인해 각종 조난사고가 빈번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날씨 점검과 겨울산행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겨울 등산 준비물로 아이젠과 스패츠는 필수다. 옷은 보온성을 높이도록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는 것이 좋으며 폴라폴리스나 모직이 가볍고 따뜻하다. 방수 기능이 있는 등산화, 등산용 스틱, 귀를 덮는 모자, 핫팩, 방수 재질 장갑 외에 여벌 옷과 양말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초콜릿, 사탕, 에너지바와 같은 칼로리가 높은 간식을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2020년 2월~12월까지 성판악(1,000명)/관음사(500명) 탐방예약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노란빛은 늦가을이고 산국은 향기였다
산을 오를 때면 한 송이 따 맡는 향기
세상은 바뀌어가도 변치 않는 진한 향기
이상범, ‘샛노란 향기 - 산국에게’
뒷동산을 지키는 건 등 굽은 소나무뿐만이 아닙니다. 무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초가을부터, 무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도, 그리고 눈이 부시게 하얀 첫눈이 오는 초겨울까지도 노란 꽃잎을 잔뜩 매달고 선 산국은 아마도 소나무 못지않게 고향 뒷산을 소리 없이 지키는, 또 하나의 파수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인적이 끊겨가는, 그리하여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가는 삭막한 뒷동산을 넉넉하고 사랑 가득한 어머니의 품처럼 가꿔주는 게 바로 산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에 피는 국화과 식물의 하나라는 정도의 뜻을 담은 산국(山菊). 가을에 피는 국화과의 야생화들을 통칭해 부르는 보통명사인 들국화와 달리, 산국은 키 1~1.5m의 숙근성(宿根性) 여러해살이풀을 일컫는 고유명사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시베리아에도 분포합니다. 봄에 피는 개나리, 진달래처럼 우리 산하 방방곡곡에서 노랗게 피건만, 놀랍게도 그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꽤 긴 기간 개체 수도 풍부하게 피지만, 많은 이가 눈앞에 펼쳐진 꽃밭을 보고도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식물학자나 야생화 동호인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들국화란 이름의 식물이 실제로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음에도, 산국이니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등을 구분해 낱낱이 불러주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냐는 고루한 주장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주목했듯, 산국의 진짜 매력은 우리의 눈을 선뜻 사로잡는 황금색 꽃잎보다는, 그 어떤 허브 향보다도 진한 향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온몸을 감싸는 자연의 향, 폐부를 찌를 듯 파고드는 알싸한 산국 향이 한 줄기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처럼 꽃의 향이 매우 진해 꽃잎은 국화차 원료로 쓰입니다. 물론 독성을 빼는 과정을 거치지요. ‘국화 베개’에 쓰이는 베갯속도 바로 산국의 꽃잎을 말린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피는 감국(甘菊)은 바로 산국과 쌍둥이 같은 야생화입니다. 노란색 꽃색도 같고 꽃 모양도, 전초도 비슷해 전문가들도 헷갈리곤 합니다. 손쉽게 꽃 크기가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하면 감국, 그보다 작은 100원·50원짜리이면 산국으로 구분합니다. 감국은 주로 바닷가 인근 산과 들에 피고, 전체적인 꽃 형태가 성글고 꽃잎이 깁니다. 물론 성질도 다릅니다. 쓴맛이 강한 산국보다 단맛 나는 감국이 차의 원료로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Where is it?
제주도에서부터 서해 5도, 강원도 철원과 설악산 등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자생한다. 그중 한강과 임진강, 강화도를 거쳐 서해로 이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굽어보며 한가득 핀 김포 문수산 정상의 산국이 사진 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경주시 건천읍 오봉산 정상 주사암 주변에 뿌리 내린 산국도 오래된 절집의 분위기와 어울려 운치 있다. 내륙 북쪽 지장산 석대암, 남쪽 경남 합천군의 오도산 정상, 그리고 서쪽 안면도의 꽃지 해변, 철원 한탄강가 등 이름난 산과 바닷가, 강변 모두가 초가을에서 겨울까지 산국꽃 더미로 노랗게 물든다. 이름은 산에서 피는 국화[山菊]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산은 물론 야트막한 언덕이나 들녘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다.
남과 북으로 땅이 갈리고 길이 막힌 지 오래. ‘분단 50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0년을 넘어섰습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잊히고 사라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식물 분야에서도 각종 도감에 나오는 엄연한 ‘우리 꽃’들이 갈수록 이름조차 생소해지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집니다. 노랑만병초니 두메양귀비, 구름범의귀, 개감채, 홍월귤, 두메자운, 비로용담, 화살곰취, 구름꽃다지, 두메분취, 구름국화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에서 자라는 각종 북방계 식물들이 그들입니다. 이 중 노랑만병초와 홍월귤, 비로용담 등 몇몇은 설악산과 한라산 등 극히 제한된 곳에서 극소수의 개체를 근근이 보존하고 있지만, 대개는 남한 지역에서의 자생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백두산과 연변 지역은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꽃’들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물론 내 나라 내 길이 아닌, 남의 땅을 통해 ‘우리 꽃’을 만나러 가야 하는 현실이 불편하고 불만스럽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다시 만나 힘차게 끌어안아야 할 ‘우리 꽃’이 거기에 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카메라에 담아 널리 알립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 꽃’을 사랑하는 이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두산과 그 일대의 ‘우리 꽃’을 만날 수 있는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9월이면 눈이 내리고 이듬해 5월 말이 되어야 새싹이 움트면서 6~8월 3개월 동안 모든 꽃이 피었다 집니다. 그 짧은 기간 천지 주변은 희고 붉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천상의 화원으로 변모합니다. 그 많은 고산식물 가운데에서 오늘 소개하는 꽃은 남한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가솔송입니다. 그렇다고 북녘 맨 끝 백두산 일대에서만 자라 왠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그런 꽃이 아닙니다. 백두산의 대표 야생화 중 하나인 건 분명하지만, 그 아래 함남 검덕산과 차일봉 일대를 거쳐 평남 맹산·영원·대흥군에 이르기까지 해발 1000m 이상 북녘의 고산 초원 지대에 폭넓게 분포합니다.
6월 중순 백두산, 자작나무와 사스래나무 군락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수목 한계선 위로 들쭉나무, 월귤,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콩버들, 좀참꽃, 가솔송, 시로미, 백산차 등 풀처럼 키 작은 나무들이 나타납니다. 그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무수한 꽃송이를 레드 카펫 깔듯 눈앞에 펼쳐놓는 가솔송. 작은 항아리 모양의 꽃만으로도 깜찍하기 이를 데 없는데, 눈부신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은 채 이슬을 머금은 진홍색 가솔송 꽃들의 반짝거림이란….
가는 잎이 솔잎을 닮아 그 이름을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솔송은 매송(梅松) 또는 송모취(松毛翠)라고도 불리는데, 항아리 모양에 뾰족한 입까지 꽃을 가만 살펴보면 잘 구워진 매병(梅甁)의 미니어처와 똑 닮았습니다. 키 작은 나무여서 다 자라야 높이 10~25cm에 불과합니다. 줄기 밑 부분에서부터 옆으로 누우면서 많은 가지가 갈라집니다. 좁고 긴 잎은 빽빽이 나는데, 잎의 뒷면 가운데에 흰색의 털이 있습니다. 꽃은 6~8월 묵은 가지 끝에 2~6개씩 달려 땅을 보고 핍니다. 개개 꽃의 크기는 7~8mm에 불과하지만, 전초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 보입니다. 우리나라 외에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합니다.
꽃이 핀다. 온갖 봄꽃들, 활짝 몸을 연다. 그러니 온 산야가 후끈하다. 백목련, 벚꽃, 동백꽃, 유채꽃, 개나리, 진달래…. 붉거나 희거나 샛노란 꽃들의 미색에 쓰러질 것 같다만 정신은 깬다. 순결한 꽃들의 성(聖)으로 내 안의 속진(俗塵)이 헹궈진다. 봐라, 절정이다! 꽃들은 그리 속살거린다. 잘난 척하는 바 없이, 뭘 내세우는 기척 없이, 수줍은 듯 바람결에 하늘거리며 자연스러운 제 생태에 당당함을 슬며시 웅변한다.
숲길을 오르자니 이내 다산초당. 기와를 입었으니 초당이 아니고 와당이겠으나, 숲속 산방이라 외져 수수롭다. 지금 이곳에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지만 다산 정약용, 그는 진정 꽃핀 사내였다. 꽃다운 한살이를 누리고 떠난 인물이었다.
꽃다운 한살이? 이는 웬 거친 은유? 다산은 다산초당에서의 10년을 포함, 강진 땅에서 도합 18년간 유배를 살았다. 말하자면 그는 이 적막한 숲에서 ‘지옥의 한철’을 살았다. 그러나 기이하도록 고등한 이 인물은 운명의 농간에 굴복하지 않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유형 체험을 창작의 퇴비로 변용했듯이, 다산은 유배의 고난을 정련해 학문의 보검(寶劍)을 벼렸다. 그는 유례가 드문 운명의 연금술사이자 뛰어난 곡예사였다. 거대한 학문의 포식자이자 불굴의 강철 인간이었다. 불후의 명저 ‘목민심서’를 비롯해, 자그마치 500여 권에 이르는 각종 경집과 문집이 다산초당에서 생산되거나 기획되었다. 독을 약으로 삼아 개화 만발한 특유의 기화(奇花). 후세에 쏟아진 갈채는 응분의 몫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꽃핀 다산의 한살이는 그 자신의 영광이자 시대의 쾌거였다.
유배객 신세에 고독인들 없었으랴. “봄잠 자고 술에 취해 사립문 닫았노라”, 다산은 그리 시를 썼다. 술과 시로도 누르지 못할 외로움이 들솟으면 숲을 배회했을 테지. 궁지에 몰릴수록 자연이 살가워지는 법. 만고에 믿을 만한 벗인 자연과 교유하며 시름과 갈증을 다독였을 게다. 나는 지금 다산이 즐겨 걸었다는 숲길을 밟아 나가고 있다.
만덕산 허리춤을 빙 에워 도는 숲길이다. 휘거나 꺾이거나 오르내리거나, 다채롭게 변주하는 오솔길이다. 숲을 이룬 수종 역시 다양하다. 흔전만전하기론 소나무·참나무·물푸레나무·조릿대·소사나무이지만, 남도 특유의 상록 교목인 동백나무·후박나무·비자나무·차나무 또한 숲을 채워 식생의 향연을 펼친다.
유배객 다산에겐 절친하게 지낸 승려 둘이 있었다. 저 아래 두륜산 일지암에 머물렀던 초의와 여기 만덕산 백련사 주지였던 혜장이 바로 그들. 당대 최고의 선승이었던 두 스님은 연상의 다산을 스승으로 섬겼다지. 특히나 혜장은 다산의 고달픈 유배생활에 많은 편의를 제공했더란다. 둘의 학문적·사상적 교류 또한 흐벅진 것이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1km 남짓한 숲길. 이 길이 바로 다산과 혜장이 만나고 통하고 논하고 배운 길이었다. 당대의 걸출한 석학과 선승이 교유한 ‘유(儒)·불(佛) 소통의 크로스로드’였다. 다산의 고독과 사색이 서린 길이기에 ‘다산의 철학 산책로’라 이를 수도 있겠지.
숲길 막판엔 백련사가 있다. 절 앞 저만치에서는 구강포 바닷물이 너울거린다. 꽃빛 낭자하게 번진 뒤편 만덕산은 젖을 내주는 어미의 표정을 지은 채 산사를 와락 보듬는다. 그리고 산사의 옆 자락엔 붉은 꽃초롱 총총! 동백꽃, 지천으로 흐드러져서다. 백련사 동백숲엔 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들이 있으며 수령 300년이 넘었다는 노거수들도 많다. 주름과 검버섯, 생채기와 옹이에 뒤덮인 거목들 가지마다에 붉디붉은 꽃이 피어 회춘의 일락(逸樂)을 구가한다. 동백 꿀을 탐하는 습성이 있어 마냥 동백숲에서 지지구재재구 노래하는 저 새들은 동박새.
이채로운 건 동백숲 안에 산재하는 석탑과 부도들이다. 이끼 낀 저 수려한 석물 사위로 동백꽃 향불이 물결처럼 일렁거린다. 해서, 숲 안은 법당처럼 그윽하며, 불화(佛畫)처럼 장엄하다. 옛사람 납신다. 이 요요한 봄날의 동백꽃 제전을 바라보다 휘적휘적 숲 밖으로 가뭇없이 사라진다. 환(幻)으로 오신 다산. 그는 동백숲이 못내 그리울 테고, 나는 외람되이 그가 그립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1925년 간행된 김소월 시인의 시집 ‘진달래꽃’에 실린 시이지요. 봄가을 없이 돋는 달이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나무를 하나하나 알아가기 전에는 그토록 많은 꽃이 산과 들에서 피고 지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특히 야생 난초의 존재는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난초는 으레 ‘잘 빠진’ 화분에 담겨 집 안이나 사무실 등 실내에서 감상하는 원예종이라고 생각해온 탓이지요.
그런데 서울, 경기, 강원 등 겨울이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서도 봄이 되면 감자난초, 은대난초, 나도제비란 등이 돋아나 희거나 노랗거나 붉은 꽃을 저마다 피워낸다는 사실을 알고는 1차로 크게 놀랐습니다. 이어 많은 사람이 보고 싶은 1순위 야생화로 꼽는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복주머니란, 보춘화 등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친숙한 이름의 난초들과 으름난초, 흑난초, 무엽란처럼 다소 생소한 이름의 난초 등 무려 90여 종의 야생 난초가 이 땅에서 저절로 자란다는 걸 알고는 두 번째로 놀랐습니다.
자주색, 즉 ‘짙은 남색을 띠는 붉은 색’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 자(紫)와 난초 난(蘭)의 의미가 더해진 자란(紫蘭). 군더더기 없이 단출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의 야생 난초는 이에 더해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하고 진한 홍자색 꽃 색으로 인해 열대 지역이나, 고온의 온실에서 자라는 이국적인 난초일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자란이 우리 땅에서 저절로 나고 자라는 야생 난초라는 걸 알고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나아가 한 야생화 애호가가 썼듯 “발에 밟힌다고 할 정도로 흔하게 자생”하는 걸 보는 순간 더 큰 기쁨과 놀라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2018년 5월 5일 차마 건너기를 주저했던 진도대교를 지나 진도(珍島)의 남쪽 바닷가에 도착해 갯바위를 밟았습니다. 그새 무성해진 산기슭을 살피니 군데군데 불쑥불쑥 돋아난 홍자색 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록의 숲에 홍자색 꽃이 피니 눈에 확 뜨입니다. 자란이란 단순명료한 이름의 연유를 알 것 같습니다. 자생 난의 화려한 개화 현장을 확인한 것만도 감격스러운데, 조금 뒤 더 놀라운 장면을 만났습니다. 수백 촉의 자란이 바다와 섬이 한눈에 보이는 해안 평지에 한데 뭉쳐서 홍자색 꽃잎을 일제히 벌리고 선 장관을 본 것이지요. ‘어린이날 교통 체증’을 무릅쓰고 서울에서부터 500km 가까이 달려온 보람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Where is it?
전라남도 무안, 신안, 진도, 해남, 완도, 고흥, 그리고 제주도가 자생지다. 남쪽 바닷가와 제주에서 자란다는 것은 자란이 열대식물까지는 아니지만 추위에 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남쪽에서 자라다 보니, 다른 야생 난초들에 비해 키도 크고 꽃도 큰 편이다. 50cm 안팎의 꽃대를 포함해 키가 60cm 정도까지 자란다. 길이 20~30cm, 너비 2~5cm의 길쭉한 타원형 잎이 5~6장이나 나와 줄기를 감싸며 위로 뻗는다. 5~6월 잎 사이에서 나와 50cm까지 자라는 꽃대 끝에 3cm 크기의 홍자색 꽃이 6~7개까지 달린다. 남서해안 10여 곳 미만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생하지만, 개체 수는 지천이어서 진도나 해남 등 자생지 야산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해마다 날짜를 꼽으며 천마산(경기도 남양주시) 너도바람꽃이 피는 시기를 가늠해본다. 얼추 비슷한 날짜를 맞추어 수년째 같은 곳을 헤매다가 봄 첫 꽃을 만났다는 것에 황홀해하곤 했다. 올해는 운이 좋은지 눈 속에서 피어난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꽃이 피고 난 뒤에 눈이 온 것이지만 사람들은 눈을 이기고 핀 너도바람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눈 속의 너도바람꽃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천마산을 찾지 않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봄꽃은 흔히 와글와글 피어나니 4월 중순의 천마산은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수진사 입구에서 숲으로 걸어들어가니 아직 새잎이 돋지 않은 나무들 사이 분홍빛 설렘을 담은 진달래가 점점이 박혀있다. 멀리 산 중턱에서 진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살구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봄꽃놀이를 시작한다. 생강나무는 만개하고 귀룽나무 새잎은 이미 풍성해졌다.
느려터진 발걸음으로 하늘정원이라고 불리는 노루귀 꽃밭에 12시 30분께 닿았다. 아침 8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꽤나 천천히도 걸은 모양이다. 이리 많은 노루귀들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무리 지어 군집을 이룬다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사면 하나를 채우고 그 옆의 골까지 피어나는 형상이다. 충분히 빛을 받아야 꽃잎을 여는 꿩의바람꽃도 꽃잎을 활짝 열었다.
한참을 꽃들과 놀다 돌핀샘까지 올라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운 좋게 꽃이 핀 처녀치마 두 송이를 보고 황금색 천마괭이눈도 만났다. 오늘 나는 만주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만주바람꽃은 단풍이 살짝 든 듯한 잎과 꽃이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계곡에 만주바람꽃이 잘 피어있다. 약간 시기를 지난 감은 있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이 봄바람 마냥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현호색이 밭처럼 피었다. 시선을 넓게 펼쳐서 보니 몇 개의 라인을 타고 흐르듯이 피어있다. 큰 나무 그림자 때문에 선을 그리듯이 핀 것은 아닐까 얕은 생각을 해본다. 오늘 천마산의 주연은 노루귀였고 현호색이 봄의 환희를 노래하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153웨더’에 따르면 이번 주 내내 전국 최고 기온이 10℃ 안팎을 넘나들며, 한낮에는 따뜻한 봄 날씨를 즐기게 됐다. 봄꽃이 만개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특히 올해는 평년보다 1~4일, 작년보다 1~2일 가량 봄꽃을 일찍 만날 수 있다. 개화에 영향을 미치는 2월 하순과 3월은 이동성고기압 영향을 받아 기온이 예년과 비슷하거나 높고, 강수량은 비슷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표적인 봄꽃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개화기를 살펴보자.
먼저 개나리는 3월 15일 제주를 시작으로, 남부(3월 16~24일), 중부(3월 25일~4월 2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및 산간지방(4월 3일 이후) 순으로 개화할 예정이다. 개나리보다 한발 늦게 피는 진달래의 경우 3월 18일 제주를 시작으로, 남부(3월 19~27일), 중부(3월 28일~4월 2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및 산간지방(4월 6일 이후) 순으로 만날 수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 내 ‘우리동네 봄꽃길 찾아가기’에는 산책 삼아 둘러보기 좋은 봄꽃길을 소개한다. 개나리와 진달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 궁산공원·우장산공원, 종로구 인왕산길, 중랑구 용마폭포공원 등이다. 그밖에 철쭉, 산수유, 유채꽃 등이 핀 봄꽃길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다양한 축제로 기대를 모으는 벚꽃은 3월 22일 제주를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 이어 남부(3월 23~28일), 중부(4월 2~7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및 산간지방(4월 7일 이후) 순으로 피어날 전망이다.
벚꽃 군락지로 잘 알려진 서울 광진구 워커힐길, 양천구 안양천 제방길, 영등포구 윤중로 등을 비롯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를 찾아가도 좋겠다. 올해 예정된 대표 벚꽃 축제는 진해군항제(4월 1~10일), 팔공산 벚꽃축제(4월 11~15일), 석촌호수 벚꽃축제(4월 5~13일), 섬진강변 벚꽃축제(4월 7~8일), 영등포여의도봄꽃축제(4월 7~12일) 등이다.
요즘은 장수 시대다. 환갑나이는 나이도 아니다. 경로당에는 입학자격도 없다. 칠십은 먹어야 겨우 명함을 내밀 정도다. 오죽하면 칠십 된 분도 ‘경로당 형님들이 술 심부름 시킨다’고 발을 끊으셨다 하지 않는가? 의학이 발달한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은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일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학생 때 좋아했던 시와 시인의 사연 그리고 단명한 문인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중 하나가 교과서에도 실렸던 ‘초혼’이란 시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로 이어지는 시다. 전 국민 애송시 1위인 김소월 시인이 쓴 시다.
김소월은 만 14세가 되던 해 한 동네에서 자란 첫사랑 ‘오순’을 두고 조부에 의해 정혼을 약속한 ‘홍실단’과 강제 혼인을 하게 된다. 얼마 후 ‘오순’이 19세에 시집을 가면서 둘의 인연은 끊어졌다. ‘오순’은 결혼 3년 뒤 의처증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22세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소월은 첫사랑 ‘오순’의 장례식에 갔다가 돌아와 피를 토하며 시 한 편을 쓴다. 그 시가 ‘초혼’이다.
‘임의 노래’ ‘접동새’ ‘진달래꽃’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먼 훗날’ ‘못잊어’로 이어진 첫사랑의 그리움이 ‘초혼’으로 마지막 불꽃이 되어 타오르며 막을 내리게 된다. 그녀가 죽은 후 소월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술로 날을 보내다 32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 짧은 생에
동안 쓰인 500여 편의 시는 주로 15세 이후 20세 초반인 6~7년 동안 쓰인 시다.
김소월의 시는 많은 가수에 의해 노래로 불렸다. 진달래꽃(신효범, 마야), 먼 후일(최진희), 초혼(이은하), 못 잊어(장은숙), 그리워(양현경), 접동새(김수희), 부모(박일남), 엄마야 누나야(정여진), 개여울(정미조), 접동새, 팔베개 노래(김수희 낭독), 산유화(조수미) 등. 그만큼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애송시가 되었다.
그렇게 국민의 사랑을 받는 김소월의 짧은 생애 못지않게 비슷한 시기에 요절한 문인들이 있다. 세상을 일찍 떠난 사연들도 많지만 어쨌든 안타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다.
김소월(1902~1934) 32세, 나도향(1902~1926) 24세, 이효석(1907~1942) 35세, 김유정(1908~1937) 29세, 이상(1910~1937) 27세, 윤동주(1917~1945) 27세. 박인환(1926~1856) 30세, 그야말로 샛별 같은 생을 살았다.
이분들이 요즘처럼 70~80세 정도만 살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문학작품을 발표했을까? 아마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름에 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듯싶다.
흔히들 하늘나라는 천명을 다한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생각을 한다. 죽어서 밤하늘의 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젊은 나이에 하늘로 간 문인들은 하늘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아마도 노인정에도 갈 수 없는 아기별이 되어있지 않을까?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이신 아버지는 젊은 시절 경의선 철도 기관사였다. 집안 식구들이 전부 철도 쪽 일을 했다. 광복 후 남북으로 국토가 나뉘어졌어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통제가 심해지자, 금강산 여행 간다고 하고는 원산에서 경원선 기관차를 타고 남하하셨다고 한다.
그때 금강산 여행 증거품으로 아버지는 기념품을 사가지고 서울로 오셨다. 1946년도 제품이다. 진달래 뿌리로 만든 나무 함은 넓이 14cm, 높이 5cm 정도의 크기다. 나무뿌리의 굵기를 봐서 상당히 오래된 진달래 뿌리처럼 보였다.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나는 이 물건을 상당히 좋아했다. 사탕이나 과지를 주면 먹지 않고 꼭 이 나무함에 넣었다가 먹었다고 한다.
뚜껑에 조각된 금강산 폭포와 뒷배경의 소나무, 그리고 금강산이라 쓰인 글자를 본다. 작은 나무 함을 보면 금강산 전체를 다 본 듯하다. 불현듯 잊고 지낸 아버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