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4일 MBN의 토크 프로인 황금알에 '고수'로 출연했다. 주제가 '인생에 정년은 없다'였다. '밑줄 쫙 긋고'란 말로 유명한 국어강사 서한샘 씨를 포함해 유명인사 총 아홉명 '고수'들이 녹화에 참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였다. 저녁 4시 반부터 녹화를 시작해서 밤 9시 반에 끝났다. 저녁까지 굶으며 녹화했는데 어찌나 재밌는지 몰랐다. 녹화 내내 즐거웠고 기운이 펄펄 났다.
'하루를 살아도 재미있게’
이 말은 오랫동안 추구해온 내 삶의 모토이다. 자식들을 다 키웠으니 이젠 내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하며 즐기며 살면 된다. 그래서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교사 시절부터 퇴근 후 인근 대학교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왈츠를 수강했고, 주말에는 상경하여 압구정동에서 놀았다. 그리하여 MBN에서 고수로 출연했던 당시 내 콘셉트는 압구정 날라리였다. 금요일에는 2번 출구로 나가서 클래식 음악감상실 무지크 바움에 가서 오페라 감상을 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압구정역 4번 출구에 있는 탱고 동호회 '땅게리아'에 가서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웠다. 운동 차원에서 왈츠와 탱고를 춘 것이다. 음악에 맞춰서 한 시간 춤을 추다 보면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이 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니 마음 또한 힐링됐다. 다른 시니어에게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다.
시니어 미디어 일인자를 꿈꾼다
퇴직 후 제일 불행한 사람은 집에 우두커니 있는 사람이다. 일본의 통계에 의하면 첫 번째 행복한 사람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고, 두 번째 행복한 사람이 취미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세 번째로 행복하다고 했다. 전반생인 퇴직 전의 삶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기간이 후반생인 퇴직 후의 삶이다. 요즘 트렌드인 일인 미디어의 주역을 꿈꾸며 올해는 한국방송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3학년에 편입해 공부하고 있다. 시니어도 하고 싶은 일을 차례차례 다 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다 보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모르는 것을 아는 기쁨이 크니 그 과정을 그냥 즐기면 된다. 공부하고 글쓰기를 하며 책을 읽는 것이 지금 나의 일상이다.
시니어 생활 이렇게 하자
즐기자 삶은 즐기는 것이다. 부부가 같이 왈츠와 탱고를 추자. 서로 교감하며 춤추는 동안 기분은 좋아지고 충분한 운동이 된다. 더불어 심드렁하던 부부간의 애정도 높아진다.
공부하자 우리나라는 교육인프라가 너무 잘돼있다. 지자체의 프로그램도 우수한 콘텐츠가 많다. 한국방송대 강의 또한 훌륭하니 방송대에 편입해서 질좋은 강의를 들어보자.
하고 싶은 일을 이루자 글쓰기, 독서, 사진작가 등 그동안 하고 싶어도 전반생에서는 여건상 못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그 과정을 즐긴다는 마음가짐이면 된다.
문화를 즐기자 오페라 감상, 음악회, 그림 전시회 등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골고루 누려보자. 진동하는 예술의 향기를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나를 몇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것이 예술의 향기이다.
여행여건이 되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삶과 색다른 풍광,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해보자.
감사하자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다. 더 갖고 싶은 욕망은 나를 불행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마음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비우고 덜어내며 하루하루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자.
김형석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학습하고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라고.
후반생의 삶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될 수 있으면 나누며 살자.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렇게도 살고 싶은 내일이다' 하루하루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흥미, 재미, 의미를 추구하며 살도록 하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 체 게바라
집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 안에 사는 사람이듯, 한 나라를 아름답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 아름다운 사람이 만든 역사. 살사, 시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캐리비언 바다…. 쿠바를 수식하는 단어는 무수히 많지만 누가 뭐라 해도 쿠바는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의 나라다. 아바나, 산타클라라, 바라데로, 트리니다드에 이르기까지, 쿠바 전역을 덮고 있는 순수한 열정과 문학적 향기를 찾아 떠나보자.
낡은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빈티지 도시, 아바나!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195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있으니 바로 쿠바, 그중에서도 아바나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들과 빨래가 나풀대는 발코니, 혁명가들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들과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거리를 누비는 클래식 카가 어우러진 아바나는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빈티지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사진작가들로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쿠바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과의 화해 무드가 일면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가봐야겠다는 숙제를 안겨준 나라이기도 하다. 주름진 세월이 그대로 내려앉은 올드 아바나 거리와 카리브 해안을 따라 가슴이 탁 트일 듯 시원하게 뻗어 있는 말레콘 방파제는 오늘도 변함없이 자유와 풍요를 꿈꾸는 쿠바인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쿠바의 상징, 체 게바라
본명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훗날 체 게바라(Che Guevara)로 불린 그가 고향 아르헨티나가 아닌 쿠바에서 더 유명해진 것은 11년 동안 쿠바혁명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혁명이 성공한 후 카스트로에게 명예시민권을 받은 그는 한동안 각종 요직을 수행하며 세계를 향해 제국주의의 문제점과 자유에 대한 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로움도 잠시, 편안함에 결코 안주할 수 없었던 진정한 혁명가는 모든 영예를 뒤로 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고난의 길을 택했고, 결국 이국땅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39년의 짧고 굵었던 그의 생애는 많은 사람에게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체 게바라 묘지가 있는 산타클라라
혁명의 도시 산타클라라로 가는 길. 끝없이 넓은 사탕수수밭과 길게 뻗은 길 위로 마차와 쿠바를 상징하는 올드 카, 현대 차, 그리고 모터사이클이 뒤섞여 달린다. 젊은 시절, 체 게바라의 삶을 바꿔버린 여행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오버랩된다. 그는 이 길을 달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 “고대 전사와 같은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를 원했던 그는 소망대로 산타클라라에 있는 묘지에 묻혔다. 묘지 앞의 흰 꽃다발은 오늘도 생생하게 그를 기리고 있다. 진정한 혁명은 자신을 위한 혁명이며, 어떠한 물질적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쿠바를 가장 쿠바답게 해주는 시가와 커피
전 세계가 지탄해마지 않는 담배도 쿠바에서는 매력 덩어리다. 체 게바라의 상징과도 같은 시가. 화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가를 입에 문 쿠바인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쿠바 산 에스프레소의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에스프레소 마니아라면 1달러(현지 화폐로 1CUC)로 네다섯 잔의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쿠바엔 관광객들이 가는 카페와 쿠바인들이 가는 카페가 따로 있다. 관광객들이 가는 카페는 깔끔하지만 아무런 풍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역시 허름하지만 진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현지인 카페다. 의자도, 커피머신도 없는 작은 공간에서 주인장이 막걸리 주전자처럼 생긴 용기에 커피가루를 넣고 끓인 뒤 평범한 유리잔에 주르륵 따라주면 끝이다. 묘지에서 돌아와 체 게바라의 진한 삶을 되새기며 쿠바인들과 섞여 마신 에스프레소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무례한 카메라 세례에도 친절로 응대해준 묵묵한 쿠바인들에게 1쿡으로 다섯 잔의 커피를 선물했다.
문학도 미술도 혁명
쿠바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한 명의 인물은 바로 헤밍웨이다. 아르헨티나 태생이지만 쿠바에서 더 많은 계기를 맞았던 체 게바라처럼, 미국 태생인 헤밍웨이도 쿠바에서 삶의 전환을 맞는다. 그는 군사독재자 프랑코를 반대하며,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가한 행동파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도 적극 참여했고,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등 주옥같은 작품을 썼다. 그 때문일까. 헤밍웨이도 쿠바를 좋아했다. 문학도, 미술도 혁명과 다름 아니니까. 태어난 나라에 국한되기엔 너무나 자유롭고 광대한 영혼들이었다.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비굴하게 뒤로 숨지 않고, 초라한 삶에 연연해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생명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가들의 공통점이니까 말이다.
아바나에서 한 시간 거리, 헤밍웨이가 만난 코히마르
헤밍웨이는 키 웨스트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들른 쿠바의 한 바닷가 마을에 매혹된다. 그 후 무려 20년을 그곳에서 살며 낚시를 하고, 어부들과 친구가 되고, 친구를 모델 삼아 ‘노인과 바다’를 썼다. 이 작품으로 노벨상을 받은 그는 어부들에게 상을 바쳤다. 어부들은 그를 기리며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그의 동상을 세워줬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라 테라사(La Terraza)에 들러 모히토 한 잔을 마셔본다. 1928년 헤밍웨이가 머물며 ‘노인과 바다’를 썼다고 전해지는 ‘핀카 라 비히아(Finca La Vigía)’는 현재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바나 시내도 헤밍웨이의 자취로 가득하다. 그가 머물며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를 썼다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Hotel Ambos Mundos) 551호실과 라 플로리디타(La Floridita) 칵테일 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까지 보고 나면, 당신의 삶에도 혁명 같은 바람이 불어올지 모르겠다.
파스텔 톤의 동화마을에서 배우는 춤 ‘살사’
17세기 스페인 통치 시절의 풍경이 가장 잘 남아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 트리니다드.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교회와 건물, 돌로 포장된 길이 고풍스런 멋을 더하는 트리니다드는 쿠바에서도 살사의 본고장으로 불린다. 전기를 아껴야 하기에 해가 지면 쿠바의 도시들은 온통 깜깜해진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잠이나 청하려던 차에 갑자기 온 동네가 떠나갈듯 살사음악이 울려퍼진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 무렵. 도저히 그냥 잠들기에는 아까운 장면이라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역사박물관과 산티시마 교회가 있는 중앙 광장엔 하바나 클럽이 있다. 밤마다 현지인과 여행자가 어우러져 한바탕 살사 파티가 벌어지는 곳이다. 프로 뺨치는 쿠바인도, 태어나 처음 리듬에 몸을 맡긴 여행자도 흥겨움에 가득 취하는 밤이다. 스페인어로 ‘소스’라는 뜻의 살사는 맛깔스런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소스처럼 격렬하고 화끈하며 율동감이 넘치는 춤이다. 동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살사 레슨 안내지는 지금 아니면 언제 살사를 배워보겠냐고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망설이던 끝에 결국 살사를 배워보기로 했다. 레슨 장소인 카사 데 라 무시카(Casa de la Musica)로 가서 근사한 춤 선생을 기다렸다. 그러나 탄탄한 구릿빛 몸매의 섹시남을 기다리던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그렇지! 이상과 현실은 다르기 마련이니까.
travel info.
항공한국에서 쿠바까지의 직항은 없으므로, 토론토나 멕시코시티를 경유해야 한다.
여행코스 수도인 아바나에서 시작해서→바라데로→산타클라라→트리니다드→산티아고데쿠바가 일반적이다.
언어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여행적기11월부터 2월까지로 낮에도 무덥지 않으며 밤엔 선선하기까지 해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때이다.
치안 사회주의국가라 위험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나라일수록 관광수익이 중요하므로 관광객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중대범죄로 취급되어 오히려 매우 안전하다.
화폐 CUC과 CUP이라는 이중화폐를 사용하고 있어 좀 불편한 점이 있다. 1CUC(쎄우쎄)=1USD, 1CUC(쎄우쎄)=24CUP(쎄우뻬)이며, 외국인이 주로 가는 곳에서는 CUC을, 현지인이 가는 곳은 CUP을 사용한다. 외국인이 CUC으로 계산해도 거스름돈은 CUP(혹은 모네다라고도 함)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무선인터넷망이 깔려있는 공원/호텔/건물등에서 접속가능하며, 인터넷카드비용은 1시간에 1달러정도이다.
숙소호텔도 좋지만 민박집 까사에 머물기를 권한다. 인심좋은 아침상을 받으며 때묻지 않은 현지인들을 만나는 일은 쿠바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행전 보고가면 좋은 영화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치코와 리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여행전 보고가면 좋은 책 체게바라 평전, 쿠바의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레트로는 단순히 오래된, 옛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50년째 장사를 이어온 노포와 1970년대 인테리어로 새로 문을 연 식당. 전자는 전통이라 말하고, 후자가 ‘레트로’라 하겠다. 이러한 레트로 콘셉트의 가게들은 중장년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자녀와 함께 데이트 즐기기 좋은 레트로 핫 플레이스를 소개한다.
◇ 익선동 한옥섬을 한눈에 ‘낙원장’
옹기종기 기와지붕 아래 레트로풍 맛집과 아틀리에가 즐비한 익선동 거리. 부티크호텔 ‘낙원장’에서는 골목을 가득 메운 한옥 150채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지어졌던 ‘그린필드’라는 낡은 여관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매입,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해 탄생시킨 공간이다. 클래식한 건물 외관과 달리 세련되고 모던한 실내 인테리어가 레트로 플레이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객실은 일반뷰와 한옥뷰, 프리미엄 한옥뷰 총 3단계로 나뉜다. 그중 LP플레이어가 있는 한옥뷰 룸을 선택하면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선동 풍경과 함께 LP음악까지 만끽할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5 숙박비 평일(일~목) 7만~9만 원, 주말(금~토) 9만~11만 원
◇ 아날로그 선율에 빠지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PLASTIC)’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사라져가는 음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음악체험형 공간이다.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소재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입구 왼편으로는 턴테이블이 놓인 긴 탁자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선정한 200장의 LP명반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에서는 클래식, 재즈&소울,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LP음반 9000여 장과 다양한 음향장비를 전시, 판매한다. 2층은 1만6000장에 달하는 CD와 더불어 음악감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 공간으로 꾸며져 여유를 즐기기 좋다.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이용시간 화~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2:00~18:00 (현대카드 미소지자도 입장 가능)
◇ 한국·태국의 퓨전 레트로 맛집 ‘동남아’
태국요리전문점 ‘동남아’의 입구.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낡은 검푸른색 철문을 활짝 열면 레드벨벳 커튼과 이국적인 샹들리에가 맞이한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 오묘한 식당은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한옥을 개조한 실내는 태국 연회장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로, 동남아 여행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표현했단다. 메인 홀 외에 공간을 다양하게 나누었는데, 룸마다 강렬한 색감의 독특한 벽지가 눈길을 끈다. 특히 대중탕 욕조(?)를 연상케 하는 앞마당의 테이블은 겨울철 식사를 즐기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인기 메뉴인 꽃게와 커리로 맛을 낸 ‘뿌빳 퐁 커리’와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팟타이’ 등 현지 셰프가 요리한 다양한 오리지널 로컬 푸드를 맛볼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3-6 이용시간 매일 12:00~22:00, 브레이크타임 15:30~17:00(주말 제외)
◇ 도도한 모던걸의 화려한 외출 ‘경성의복’
익선동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개화기풍의 원피스와 정장을 입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궁 일대에서 한복 체험을 하듯, 이곳에서는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레트로 감성을 한껏 즐기는 것이 트렌드. ‘경성의복’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복고 의상과 셀프 촬영을 위한 포토존이 구비돼 있다. 고풍스러운 원피스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모던걸이 되어 거리를 누벼보는 것 어떨까?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30길 56 2층 이용시간 매일 10:00~20:00
가격 의상대여(의상·장신구·모자·기타소품) 3시간 3만 원/6시간 4만 원/하루 4만5000원/1박2일 5만 원
◇ 딸과 데이트하는 날엔 ‘경양식 1920’
1980년대 전후, 가족외식 하면 떠오르는 경양식집을 테마로 한 레스토랑 ‘경양식 1920’. 레트로 거리로 유명해진 인선동 골목에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와 함께 올 수 있는 외식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를 꾸미고 추억의 메뉴들을 불러왔다. 24시간 숙성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실제 방문한 고객들을 살펴봐도 젊은 연인부터 엄마와 딸, 노부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사이드 메뉴로는 1980년대 경양식집에서 맛보던 수프와 멕시칸 사라다(샐러드)를 선보인다. 특별한 날에는 하우스 와인 한 잔 곁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17-30 이용시간 평일 12:00~22:00, 주말 11:00~22:00, 브레이크타임 15:00~17:00(주말 제외)
◇ 뒹굴뒹굴 잠시 쉬어가는 ‘만홧가게’
과거 만화잡지 ‘챔프(CHAMP)’를 비롯해 ‘우주소년 아톰’, ‘스타워즈’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과 그래픽노블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평일에 방문한다면 런치스페셜(라면·즉석밥·계란·김치/단무지+만화 1시간, 6000원)로 이용해보자.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33-7 영업시간 11:00~23:00 가격 1인 기준 10분당 500원, 좌석(주말 및 공휴일) 2000원
동년기자가 직접 다녀온 레트로 핫 플레이스
◇ 최원국 동년기자/ 돌고 도는 레트로 액티비티 ‘자이언트 롤러장’
부천의 레트로 명소 ‘자이언트 롤러장’.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 인파가 붐벼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부천의 ‘자이언트 롤러장’이 유명했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복고풍에 맞춰 추억의 이름을 다시 불러왔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부천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30년 전 롤러를 타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옛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아이들과 많이 찾는 듯하다. 롤러장의 경쾌한 분위기를 담당하는 DJ가 있어 음악에 맞춰 롤러를 타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곳곳에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을 이용하면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다. 과거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의 낭만을 다시 느끼고 싶은 시니어라면 친구 또는 아이들과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위치 경기도 부천시 장말로 376 지하 1층 1일 입장료 성인 1만1000원, 유아~고등학생 9000원 영업시간 평일 12:00~22:00(무제한 이용), 주말 10:00~22:00(3시간 이용)
◇ 윤영애 동년기자/ 시간이 머무는 곳, 우유 카페 ‘희다’
논현동 주택가 골목에 하얀 3층집, 카페 희다. 낮은 계단을 테라스 삼아 나무 소반에 왕골방석이 놓인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젠가 분명 와본 듯 너무나 친숙한 느낌!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냄새도 나는 듯하다. 높다란 1인용 앤티크 의자, 사각밥상 테이블, 양은 개다리소반, 자개문양 화장대와 거울, 낡은 찬장과 괘종시계까지. 곳곳을 돌아보며 낡은 물건들에게 속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 있다가 여기로 왔니?’ 메뉴를 보니 우유가 주다. 기본 우유에 커피, 홍차, 말차, 페퍼민트, 미숫가루까지 6가지다. 사이드 메뉴로 옥춘당 때때사탕과 큼직한 레몬 마들렌도 있다.
프런트의 젊은이에게 주문을 하고 대표님이 누구시냐 물으니 본인이란다. 긴 생머리가 멋진 나두리 대표 역시 작년 7월 오픈 이래 가장 연로한 리포터가 왔다며 빙긋 웃는다. 주고객은 복고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고, 우연히 동반한 부모님이 친구들과 다시 와서 단골이 된단다. 대부분의 물건은 나 대표 할머니가 집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때문에 “외할머니 집에 온 것 같다”는 고객의 평이 가장 맘에 든단다.
느슨한 공간에서 익숙한 것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이 콘셉트였다는 나 대표의 의도는 조용한 음악과 소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갓 씌운 백열등, 도자기, 왕골바구니, 낡은 찬장 속 오래된 커피 잔과 유리컵까지 모든 것이 눈에 익어 정겹다.
‘희다’는 기쁘다[喜]와 많다[多], 즉 기쁨이 넘치는 곳 혹은 우유의 하얀 빛깔을 뜻한다. 오래됨과 잘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다. 카페 한편에 ‘검다’라는 글자가 쓰인 화분을 가리키니, 개업 후 “희다인지, 검다인지 카페는 잘돼가냐?” 했다던 아버님의 조크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창밖 현관 옆에는 ‘웃다’라는 이름의 화분도 있다. 잠시 후 혼자 들어온 고객은 동네 주민이라며 아이를 기다리다 들렀는데 편안하고 조용하다면서 레트로풍의 독특한 인테리어에 흡족해한다.
바람 불고 서늘한 가을의 어느 날, 논현동 도심 한복판에서 어릴 적 시골집을 본 듯하다. 500㎖의 대용량 미숫가루우유는 인심만큼 넉넉하다. 남겨온 때때사탕을 구순 노모에게 드리니 어디서 이런 사탕을 사왔냐며 좋아라 하신다. 시간이 멈춘 나만의 비밀 아지트에 다녀온 것처럼 왠지 마음이 따시다.
위치 서울시 서초구 주흥15길 16-4층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어딘가 처박아뒀던 먼지 쌓인 앨범 속 장면이 총천연색 화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 같다. 통바지에 브랜드 이름이 크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풋풋한 젊은이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먹거리가 편의점 한편에 자리 잡았다. 돌고 돈다는 유행은 조금씩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그 시대를 대변해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어릴 적 유행과 흡사하지만 뭔가 새롭다. ‘복고(復古)’라는 말 대신 ‘레트로(retro·복고)’란 용어로 바꿔 부른 지도 오래다. 친숙한 듯 아닌 듯 우리 시대 레트로 열풍. 뭔가 달라진 옷[衣], 먹거리[食] 그리고 생활공간 [宙]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패션계는 한마디로 힙트로·뉴트로·영트로
“맨 처음 옷을 이렇게 입을 때 복고 패션이라기보다는 유행하는 와이드 팬츠(통바지)나 데님재킷 정도를 따라서 사서 입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제가 요즘 입는 옷을 아빠가 보시더니 본인이 어릴 때 입었던 옷이랑 똑같다고 예전에 입으셨던 것을 주셨어요. 진짜 요즘 유행하는 거랑 너무 비슷해요. 그런데 1990년대 패션이랑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요! 예전에는 통나무처럼 바지가 컸다면, 지금은 슬림하고 길어 보이게 입는 추세랄까요?”
은평문화재단에서 시민연극 연습이 한창인 한규열(21) 군은 요즘 스타일대로 깔맞춤(?)을 하고 다닌다. 통이 살짝 큰 바지에 넉넉한 사이즈의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바지는 허리춤까지 올려 단정하게 허리띠를 두르고 티셔츠는 바지 안에 넣어 입는다. 가끔은 티셔츠 앞부분만 바지 안에 넣은 뒤 살짝 옷을 밖으로 잡아당겨 느낌을 살린다. 말해놓고 보니 1990년대에 즐기던 스타일 아닌가. 199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 보기에 그저 신기한 젊은이 패션이 아닐 수 없다. 예전과 엇비슷한 모습에 웃음이 나지만 정작 선뜻 선택하지는 않는다.
패션계야말로 작년 초부터 시작된 레트로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분야다. 특히 1990년대 유행했던 패션이 1980년대에서 2000년 초반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혹은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다. 부모 세대가 20대에 향유했던 패션을 지금의 스타일로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움직임이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다 보니 레트로 패션을 의미하는 다양한 신조어도 탄생했다. 개성 있고 신선함을 표현하는 신조어 ‘힙하다’의 ‘힙(hip)’과 레트로(retro)를 결합한 단어 ‘힙트로’, 젊은이(young)를 붙여 ‘영트로’, 새롭다(new)를 더해 ‘뉴트로’라 부른다. 지루한 ‘복고 패션’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새로운 세대가 추억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유레카가 이 시대 레트로 열풍이다.
코듀로이, 체크 그리고 호피
폐기처분한 줄 알았더니 전설의 코듀로이가 레트로 바람을 타고 돌아왔다. 일명 ‘골덴’으로 불리는 코듀로이가 포근한 느낌과 함께 내구성이 뛰어나 최고의 한파가 예고된 올겨울 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코듀로이는 물론 벨벳과 스웨이드, 트위드(두꺼운 실로 직조해 무게감이 느껴지는 원단), 플란넬(부드럽고 가벼운 모직원단) 등 편안한 캐주얼 분위기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원단도 이번 겨울을 대표하는 소재다. LF의 김현진, 김은정 디자인 실장은 남녀 인기 색상과 관련해 “뚜렷한 구분 없이 밤색과 빨강, 노랑 계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강렬하고 도발적인 빨간색 계통을 의외의 인기 색상으로 꼽았다. 남성의 경우 붉은 계열에 벨트가 있는 트렌치코트처럼 레드로 포인트를 준 스타일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여성의 경우 레트로 여파로 ‘웨스턴 스타일’이 뜰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카우보이 복장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1980년대에도 큰 인기였다. 술 장식 조끼, 부츠컷 청바지 등이 대표 아이템으로 사랑받을 전망이다. 올겨울 남성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체크무늬다. 체크는 유행이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늘 인기가 있지만 이번 시즌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클래식한 느낌의 체크부터 다채로운 컬러가 섞인 개성 있는 체크까지 다양하다. 패션 포인트로 체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옷 전체를 체크로 맞춘 슈트 패션도 곧 거리에서 볼 수 있을 예정.
여성 패션은 더욱더 과감하고 재미있는 무늬가 거리를 수놓을 전망이다. 특히 호피무늬의 인기가 눈에 띈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 분석에 따르면 호피 패션이 올 하반기 패션 트렌드를 대표하는 패턴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 11번가 사이트 내 ‘호피’ 아이템 검색 횟수는 무려 15배 이상 급증했다. 11번가 하원지 MD는 “예전에는 다소 과한 패션으로 여겨졌던 호피무늬 패션이 요즘에는 한층 밝은 색상의 패턴이나 실크, 시폰 소재에 더해지면서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호피무늬는 스카프나 가방, 구두 등 한 가지 아이템만으로도 강렬한 포인트를 줄 수 있어 남녀 모두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레트로를 입다
숏패딩과 빅로고 재등판
평창동계올림픽 영향으로 발목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롱패딩이 지난겨울 유행했다면 이번 시즌에는 허리에서 마무리되는 짧은 점퍼가 대세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의 ‘레트로 두두느 다운 다운재킷’이 옛 인기 상품 소환 패션 중 하나다. 1980년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다운재킷 ‘듀벳’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제작한 의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덕다운 점퍼가 바람을 일으키면서 강렬한 색감의 짧은 기장의 점퍼가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에는 스톰, 겟유스트, 닉스, 잠뱅이 등 데님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세련된 느낌의 무채색 구스다운 점퍼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가 끝나갈 무렵 퇴물 취급받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구스다운 점퍼가 20년 만에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되어 숏패딩으로 돌아왔다.
이와 함께 대놓고 “나는 누구요!”라고 말하듯 브랜드 이름이 제품에 크게 박힌 이른바 빅로고 패션도 레트로 바람을 타고 있다. 브랜드 이름을 옷이나 가방, 모자 등에 크게 새기거나 예전에 비해 사이즈가 적당히 작아진 것이 특징이다. 199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랑받았던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도 옛 느낌을 살려 빅로고 패션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다. 굳이 빅로고를 새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명품 브랜드도 빅로고 패션 대열에 합류해 레트로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개성 있고 신선함을 표현하는 신조어 ‘힙하다’의 ‘힙(hip)’과 레트로(retro)를 결합한 단어 ‘힙트로’, 젊은이(young)를 붙여 ‘영트로’, 새롭다(new)를 더해 ‘뉴트로’라 부른다. 지루한 ‘복고 패션’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새로운 세대가 추억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유레카가 이 시대 레트로 열풍이다.
레트로를 먹다
곁에 있었지만 레트로였다!
패션을 넘어 옛 먹거리에 대한 향수 또한 레트로 열풍으로 번졌다. 인기의 일등공신은 단연
2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이다. 시청자들은 매회 쏟아진 음료, 초콜릿, 과자 등을 보면서 옛 감성을 느끼고 맛에 대한 기억도 제대로 자극받았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저거 한번 다시 먹어보고 싶다’ 했던 것들이 실제로 상품 출시로 이어져 레트로 호황을 반짝 누린 바 있다. 추억 속 먹거리가 슈퍼와 편의점에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74년 첫 출시돼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빙그레의 ‘바나나맛우유’가 드라마 인기와 함께 ‘1988에디션’으로 등장했다. 추억의 빙그레 로고와 서체가 부착된 것만으로도 너도나도 열광했다. 인기에 구애받지 않던 스테디셀러인 바나나맛우유가 다시 사랑을 받고 회자된 계기였다.
갈배사이다 그리고 따봉!
해태htd의 ‘갈아만든 배(이하 갈배)’의 경우 숙취 해소 효과가 입증되면서 눈에 띄는 레트로 전략 상품이 됐다. ‘갈배’가 숙취에 좋다는 입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2015년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실험을 통해 ‘갈배’가 두통 완화에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갈배’는 작년 말 숙취해소제로 등장하는가 하면, 올 3월에는 탄산이 추가된 ‘갈배 사이다’로 재탄생했다. 진일보하는 레트로 상품의 전형이 1996년 등장한 ‘갈아만든 배’라 할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 사상 최고로 인정받는 광고가 있다. 오렌지를 따는 브라질 농장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따봉(Esta bom)’이라 말하면 주위 사람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던 ‘델몬트 오렌지 주스’ 광고다. 델몬트라는 이름보다 따봉이 강렬했던 나머지 1989년 따봉주스가 출시되기도 했다. CU편의점에 등장한 롯데의 ‘따봉 제주감귤’이다. 복고 느낌에 친근감이 더해져 자꾸 손이 가는 음료다. CU 상품기획 관계자는 “복고가 촌스러움에서 벗어나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1980~90년대 감성을 즐기는 젊은 세대와 어릴 적 향수에 젖어 있는 40~50대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0월에 종영한 인기 드라마 ‘미스터선샤인’(tvN)에 등장한 ‘불란셔 제빵소’의 빵은 파리바게트 PPL 상품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아울러 ‘#불란셔제빵’과 관련한 ㅍ단순 검색만 SNS상에서 4000건이 훨씬 넘었다.
레트로를 살다
옛날옛적풍 요즘 냉장고
1980년대 안방에 모셨던 190ℓ 냉장고를 1990년대에 500ℓ 냉장고로 바꿨을 때 진짜 크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900ℓ 양문형 냉장고도 부족하다. 전자레인지 또한 오븐기능을 비롯해 눌러야 할 버튼이 너무 많다. 갈수록 대형화되고 복잡해지는 가전제품 시장에도 레트로 바람이 불고 있다. 대우전자가 선보인 레트로 디자인 ‘더 클래식’ 시리즈의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는 가전제품의 초기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욜로, 미니멀리즘을 삶의 주제로 받아들이는 세대에게 ‘가치소비’에 대한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작지만 고급스러움은 유지하고 유행에도 뒤지지 않는 스타일로 틈새시장에서 주목받는 상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더 클래식 시리즈는 120ℓ, 80ℓ급 소형 인테리어 냉장고다. 크림화이트, 민트그린 두 가지 색상으로 라운드형 도어와 프레임을 통해 ‘레트로’ 느낌을 살렸다. 동급 대비 약 30% 비싼 가격에도 독보적 디자인으로 올해 월평균 판매량 1500대 이상을 유지하며 레트로의 인기를 증명했다. 전자레인지 또한 크림화이트 색상에 은색 손잡이와 조그 다이얼, 라운드형 디스플레이로 소비자의 마음을 녹였다. 레트로를 표방한 ‘더 클래식’ 시리즈 대우전자 관계자는 “경기불황에도 자기만족과 개념 소비를 원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레트로 디자인 미니 가전들이 인기”라며 “레트로 디자인에 프리미엄 기능을 추가한 제품개발을 주도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시대보다 옛 감성 공유
큰 가구에서부터 작은 소품 하나까지 매일 사용하는 리빙 제품들은 질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실용성까지 겸비해야 하기에 꽤 까다로운 선택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앤티크’란 이름으로 레트로 감성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매번 대세 상품은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가구점에는 도시적인 느낌의 가죽소파 등이 즐비했다. 최근에는 레트로 인기 덕에 따뜻한 감성의 패브릭과 나뭇결이 적절히 살아 조화된 가구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창고에 쌓여 찾기 힘들었던 레트로 가구가 자주 눈에 띄는 걸 보면 유행은 유행이다. 인테리어 전문 브랜드 ‘까사미아’의 쇼핑몰 사이트도 요 몇 년 사이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로운 감성의 리빙 상품으로 대체됐다.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헤링본 패턴을 이용한 침대 시트와 카펫 등이 눈에 띄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북유럽 등지에서 전해져온 스타일이다. 나라마다 복고 스타일이 다르지만 유독 가구나 인테리어에서 북유럽 혹은 스칸디나비아의 오래된 스타일이 레트로 기본이 됐다.
이는 나무가 많은 북유럽 일대에서 유명 가구 디자이너가 등장해 다양한 스타일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양질의 원목이 수입되고 있어 적당한 가격에 레트로 감성을 즐길 수 있다. 레트로 가구 하면 ‘북유럽 스타일’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꼭 이 스타일만이 레트로라 할 수는 없다. 만약 한국의 레트로 가구가 인기였다면 고가의 자개장, 저가의 비키니장, 실용적인 철제가구, 19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등나무 가구가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레트로 유행에서 있어 가구만큼은 20년 전의 한국 스타일이 소환되지 않았다. 패션이나 음료, 가전 등에서 이전 세대 제품들이 다시 불려나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까사미아 개발 팀장은 “골동품 느낌보다는 앤티크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잃지 않는 디자인이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레트로 놀이가 쉬웠어요!
옷만큼이나 패션에 민감한 주방식기도 레트로 열풍이다. 물방울무늬와 나뭇가지 형태의 접시 등 1980년대 후반 우리네 식탁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디자인이 다시 등장했다. 까사미아는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의 웅장함과 섬세한 패턴을 담아낸 ‘알함브라 양식기’ 6종을 내놓았다. 제품별로 화이트, 진한 남색, 연한 하늘색이 고급스러운 무늬와 함께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중고시장도 부쩍 바쁜 눈치다. 각 가정 찬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법한 디자인의 컵과 식기 등이 중고시장에서 인기다. SNS상에는 ‘할머니 찬장에서 찾은 컵’이라며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김용섭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 소장은 레트로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대해, 앞에서도 언급했듯 “핵심 축에는 20대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처음부터 경험치에 대한 소비욕구가 굉장히 커서 흔하고 비싼 물건보다 희소한 물건을 갈망했다. 기업도 업계 불황 혹은 새로운 답을 찾지 못할 때 증명된 과거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레트로를 활용해왔는데 잠재적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 소비욕구와 맞물려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창신동 언덕길을 지나 낙산공원 오르는 길을
걸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군데군데 담벼락에 그려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개성 있는 그림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큰 날개가 그려진 벽화들
예술가들이 봉제일 등으로 힘들고 무거운 어깨를 펴고
한 번쯤 비상하라는 의미를 그림에 담지 않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런 예쁜 마음, 관심의 산물들이 멋지게 늘어서 있고
발 빠르게 터 잡고 앉아 뽐내는 예쁜 카페들이 들어선 그곳
창신동 봉제거리~
더러는 청계천에서 미싱을 돌리던 공장들이 쫓기듯 밀려들어와
수많은 일터를 일궈낸 곳~
값싼 노동에 시달리며
땀과 눈물로 얼룩진 1960~70년대를 고스란히 관통하며 버텨온 참 노동의 현장~
치열한 삶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곳~
고마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곳에서
소잉마스터(sewing master)들~
봉제 기술자들을 위한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1970년 청계천에서 일하던 전태일 열사!
많은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고자
자신의 몸을 던져 산화한 곳
그렇게 현장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
그분들의 힘든 생활을 많이들 알게 되었지요.
어리고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준
용기 있는 사람들의 희생~
그리고 외침이 끊임없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해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마련된
음악회가 있었으니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행복해지셨겠지요?
서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낙산공원에서
미싱 돌아가는 소리대신
모처럼 클래식 선율이 울려퍼졌습니다.
제 노래 세 곡도 바람을 타고
그분들 가슴으로 들어간 듯합니다.
누군가 끝없이 투쟁하며 바꾸려…아니 바로잡으려 해도
대부분은 무관심 속에서 잊히곤 합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과 함께한 소중한 날~
전태열 열사의 숭고한 희생도 다시금 새겨보고
봉제 기술자들의 노고도 느껴볼 수 있었던
참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LP플레이어, 검정 교복, 불량 식품, 필름 카메라, 만화 잡지 등 ‘레트로(retro)’는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문화적 소품이나 콘텐츠를 지칭한다. 예능과 다큐는 물론 영화, 드라마에서도 이런 소품이나 콘텐츠를 마치 레트로의 본질적인 것인 양 부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지나치게 지엽적이다. 그것들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인 코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사치일 수도 있겠다. 레트로가 제대로 복권(復權)된 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복고는 온갖 비난과 폄하를 당해왔다. 특히 고성장기에는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한때 레트로는 단순 복고로 여겨져 세 가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이런 시선을 밟고 나가야 레트로의 본질에 닿을 것이다. 우선 문화 지체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복고는 취향과 선택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하다고 진단되었다. 복고 소재를 다루는 문화 콘텐츠의 경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답습하고 우려먹기 식으로 제작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하나는 현실 도피로 보는 시선이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과거로 퇴행한다는 비판이었다. 이 때문에 정신병리학적 측면의 진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미래 전망이 불투명할 때 매번 복고 열풍이 일어난다는 규정이었다. 마지막은 복고를 일시적 트렌드로 보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복고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복고는 항구적이다. 다만 시기와 대상이 달라질 뿐이다. 1970~80년대 문화가 1990년대로 이동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줬다. 얼마 안 있으면 2000년대가 레트로의 시공간으로 등장할 것이다.
레트로에는 단순한 추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본질적인 맥락은 복고풍에 있다. 즉 복고 스타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레트로가 단순히 옛날에 사용하거나 즐겼던 대상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에 쓰던 물건이나 즐기던 문화 활동이 다시 등장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똑같은 음악이나 옷, 가구가 아닌 과거의 스타일을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옛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차별화된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젊은 세대에 레트로는 재발견의 대상이다. 필름 카메라와 현상 사진은 새롭게 재발견되어 개인 취향이 된다. 그런데 필름 카메라는 단순히 옛날에 쓰던 물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디지털의 장점을 결합시켜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준다. 궁궐이나 한옥마을에서 입는 한복도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젊은 세대가 입는 한복은 기성세대가 입던 한복보다 더 화려하고 블링블링하다. 중년 세대에게 레트로는 추억이다. 그것도 아름답고 애틋함을 자아내게 만드는 황금 같은 기억들을 담고 있다. 친숙한 것들은 인지심리학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지 않아도 되어 뇌의 활동이 거의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레트로는 자기진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중년 이후의 세대가 복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청춘기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을 데려와 현재의 시간과 융합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라도 추억과 향수의 대상은 재창조되어야 한다.
젊은 세대의 재발견과 중년 세대의 추억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뉴트로(new-tro)다. 이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향유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과거 스타일로 보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기성 세대에게는 익숙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이러한 뉴트로 제품은 새 것이면서도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빈티지한 느낌을 하나의 스타일로 가전제품, 가구, 포장지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유행, 즉 뉴트로 트렌드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물품이나 콘텐츠에서만 생겨나는 게 아니다. 뭔가 보편적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뉴트로’라는 신조어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는 리메이크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일반 생활용품에만 적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나 음악작품의 리메이크는 과거의 콘텐츠를 새로운 감각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이다. 이때 레트로는 새로운 창조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세대 교감과 통합의 매개 역할도 한다. ‘불후의 명곡’이나 ‘히든 싱어’에 나오는 노래들은 과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작품으로 자리매김됐다. 이것들은 더 이상 낡은 것이 아니고 새로운 유행의 시작이다.
중년 세대만이 친숙하게 생각할 것 같은 복고는 레트로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레트로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의 문을 열어준다. 또한 가벼운 트렌드가 아닌 깊이와 품격을 지닌 고급문화를 알게 해준다. 신구 세대의 만남이 레트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 간의 문화적 갈등은 줄고 미래지향적 흐름이 존재하게 된다. 레트로는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분명 젊은 세대의 감각과 융합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다.
다만, 한국의 레트로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 창조되지 않는 면이 있다. 대중매체와 대기업이 대형 마케팅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레트로의 창조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유명 장소, 유행 콘텐츠를 따라 하거나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레트로 스타일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레트로의 생명력이 세대 간을 가로질러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다.
어떤 나이에는 인간이 만든 문명들을 보며 지식을 키우는 시기가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인간이 만든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그것이 아무리 대작이라 할지라도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대자연 탐험을 시작한 것은…. 힘든 만큼 더 단단해지고, 땀흘린 만큼 충전이 되는 여행이 바로 트레킹 여행이었다. 알프스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1200km의 돌로미티 트레킹! 겨울에는 스키 천국으로, 여름엔 트레킹 천국으로 변신한다. 지구라는 이름의 건축가가 만들어낸 웅장한 조각품에 감탄하는 시간 속으로 떠나보자.
이탈리아가 숨겨놓은 천상의 트레일, 돌로미티 알타비아 넘버원
북부 이탈리아 알프스의 동쪽 끝자락에 솟아오른 바위 산맥 돌로미티(Dolomite)는 해발 3000m 이상의 봉우리를 18개나 품고 있는 웅장한 산악지대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기묘한 바위 봉우리들과 에메랄드빛 빙하 호수, 울창한 숲과 계곡, 산상화원을 보는 듯 군락을 이룬 야생화가 어우러져 알피니스트들의 요람이자 암벽 등반가들의 성지가 된 돌로미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군과 이탈리아군이 치열한 접전을 펼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돌로미티를 가기 위해 베네치아로 들어가 ‘알타비아 넘버원(AV1)’의 관문도시 격인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짐을 풀었다. 아웃도어 매장과 레스토랑이 아기자기 모여 있는 마을이 너무 청량하고 예뻐서 굳이 어딜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마을은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자주 와 머물렀고, 헤밍웨이도 집필활동을 한 곳이라고 했다. 다음 날 드디어 ‘높은 길’이라는 뜻의 ‘알타비아’ 트레킹을 시작했다. 해발 2000~3000m의 고원을 걷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날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것을 제외하곤 난이도가 아주 높진 않아서 천천히 음미하며 걸었다.
니체가 사랑하고 르코르뷔지에가 극찬한 아름다움
니체는 돌로미티를 두고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어떤 이는 다시 내려올 산을 뭐하러 힘들게 오르느냐고 묻지만 인생에서 아무 어려움도 없고 그것을 이겨냈을 때의 희열도 없다면 니체가 말한 대로 삭막하고 의미 없는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또한 돌로미티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건축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독보적인 풍광을 지닌 돌로미티는 14좌를 알파인 스타일로 오른, 현존하는 최고의 등반가 라인폴트 매스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그가 고작 다섯 살일 때 이곳 3000m급 암봉을 올랐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트레킹을 하다 보면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목마 태우고 마치 동네 공원 산책하듯 가벼운 차림으로 험준한 산을 오르는 가족들이 있다. 또 주말에 친구들과 그룹을 짜서 걷다 쉬다 하면서 놀이하듯 등반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알프스 트레킹이나 암벽등반은 마치 우리가 매일 동네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로 보였다.
트레커의 로망, 알타비아 넘버원
히말라야, 로키와 함께 세계 3대 명산에 속하는 알프스 산맥, 그중에서도 돌로미티는 트레킹 코스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가장 유명한 3개의 봉우리 “트레치메(Tre Cime)”는 돌로미티를 말할 때 늘 대표 사진으로 등장한다. 가장 높은 치마그란데(Cima Grande) 봉우리의 높이는 무려 3003m에 이른다. 해가 지는 기울기에 따라 갖가지 색으로 변신하는 바위의 장관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유명 사진작가들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체다(Seceda) 봉우리를 비롯한 거대한 암봉들이 압도적 풍광을 선사하는 알타비아 넘버원은 돌로미티에서도 가장 클래식한 트레킹 루트다. 거대한 암봉군 사이를 걸으며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그동안 수없이 유럽을 들락거렸지만 단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유럽 문화의 진수를 맛보게 해줬다. “여행의 백미는 트레킹”이라는 어느 트레커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눈이 녹아 싱그러운 빛깔을 뽐내는 알프스 산자락의 맨살은 가는 곳곳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그늘이 많지 않은 돌산이지만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너른 평지를 걷는 코스라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길을 잃기 쉬운 돌로미티 트레킹은 현지 이탈리아 산악 가이드와 함께 했는데 이들의 스틱 사용법이 우리네와 달라 참으로 신기했다. 그가 등산 스틱을 쓰는 모습은 마치 스키를 타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 산장 사람들이 겨울이면 스키를 교통수단으로 삼아 이 산장에서 저 산장으로 다닌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해가 뜨면 걷기 시작해 다음 산장까지 걷다가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깔고 알프스 품에 안겨 도시락을 먹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다음 산장에 도착해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그 막간의 시간에도 산악 가이드는 산장집 어린 아들과 암벽등반을 하러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들에겐 정말이지 산악 스포츠가 밥 먹는 것 같은 일상이구나 싶었다.
산악 가이드는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긴 등산 바지를 입고 걷는 나를 보더니 왜 반바지를 입지 않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풀독이라도 오를까봐 늘 긴 바지를 입었던 나는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도 긴 바지 차림이었던 것이다. 돌로미티는 한국의 산과 다르고 바위산이라 풀독이 오를 일도 없다. 다음 날 반바지를 입었더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유러피언들은 햇살을 즐긴다. 내 긴 바지가 당연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림 같은 알프스 산장, 그리고 이탈리아 음식의 진수
돌로미티 트레킹은 겨울이면 스키어들의 성지인 산장과 산장 사이를 걷는 것이다. 눈이 없는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잘 느끼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을 듯하다. 케이블카도 있어 걷기 싫은 곳에선 이용할 수 있다. 눈뜨면 알프스의 압도적인 풍광들 사이를 걷다가 휴게소에서 최고의 이탈리아 코스요리를 먹고, 해가 지면 해발 2000m가 넘는 드라마틱한 풍경 속에 위치한 최고급 전망을 자랑하는 산장에서 잠을 자고 알프스의 일출을 날마다 맞이하는 일은 호사롭다. 이탈리아 음식이라면 피자와 파스타, 후식이라면 고작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만을 떠올린다면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알았다. 트레킹 여행이니 다이어트가 좀 될 거라는 희망은 무궁무진 미각을 자극하는 이탈리아 코스요리 앞에서 물 건너 가버렸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말 많이 먹는다. 보름 동안 매일 맛본 요리의 순서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우선 스프리츠 같은 식전주로 입맛을 예열한다.
② 프리미라는 일종의 전체요리다. 주로 덤플링(완자탕), 굴라시, 라비올리, 야채스프, 마카로니, 파스타 중 선택하는데 양이 메인디시 수준이다.
③ 세콘디 피아티라는 메인 요리를 먹는데 스테이크 종류, 감자 요리, 폴렌타, 스파게티 등이 나왔다.
④ 디저트로 팬케이크, 브라우니, 푸딩, 젤라토(아이스크림)를 먹는다.
⑤ 식후주로 그라파같이 향이 좋은 술이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트레치메 앞 산장에서 먹었던 라비올리의 맛과 트레킹이 끝나던 날 마지막 산장에서 마신 스프리츠의 황홀함을 잊을 수 없다. 환상적인 풍경을 벗 삼아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이탈리아 정찬의 세계를 느껴보는 일, 전통주 그라파 한 잔에 피로를 풀고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빛 아래 대자연과 하나 되는 일, 모두가 잠든 새벽 알프스 정상에서 고요한 일출을 맞이하는 일. 이것이 바로 알타비아 트레킹의 진수다.
흔히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어떤 운명적인 순간들과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당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선택들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작가 이언 매큐언은 자신의 소설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우리는 이를 영화로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나무와 꽃과 새 이름을 무수히 많이 알고 자연을 사랑하는 역사학도 에드워드(빌리 하울)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고 클래식을 전공한 옥스퍼드 출신의 재원 플로렌스(시얼샤 로넌)는 운명적인 만남의 결실로 결혼에 골인하여 지금 이곳 체실 비치에 있는 작은 호텔로 신혼여행을 왔다. 영화는 체실 비치의 아름다운 풍광과 끊임없이 흐르는 배경음악을 통해 이들의 운명을 암시한다.
신혼 첫날 호텔 방에 들어선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랑해!”를 연발하지만, 내심 초조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성이 조금씩 개방되기 시작한 1962년 영국의 젊은이들에게 섹스는 아직 서툴고 어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칠고 감정적인 에드워드는 무작정 서둘렀고 성에 엄격한 영국 사회의 문화에 익숙하며 어린 시절 성적 트라우마를 겪은 플로렌스에게 첫 경험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둘의 합방은 실패로 끝나고 거친 언사를 주고받은 끝에 플로렌스는 방을 뛰쳐나간다. 바로 이 순간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플로렌스는 밖으로 나가 체실 비치의 긴 조약돌 백사장을 걸어 낡은 나룻배에 앉아 있고 뒤를 따라 나간 에드워드는 그녀에게 모진 욕설을 퍼붓고 그녀는 마음의 결심을 그에게 토로한다. 가장 행복했던 날 그들은 헤어진 것이다.
물론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이 영화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사이사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과거를 교차 편집한다. 그곳에서 그들의 만남과 연애 과정이 드러난다. 런던 변두리 지방대이긴 하지만, 역사학과를 수석 졸업한 에드워드는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눌 대상이 없다. 집을 뛰쳐나간 그가 어느 대학 반핵 행사장에서 플로렌스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아버지가 변두리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고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지만, 뇌 손상을 당한 사건으로 정상이 아닌 에드워드 가정에 비해 전기회사를 경영하는 중상층 가정으로 돈을 중시하는 플로렌스의 환경은 애초 어울리기 힘든 조건이다. 그럼에도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의 부모를 존중하고 에드워드는 플로렌스 부모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받지만, 참아내면서 사랑을 키운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키워왔던 사랑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끝나버린 배경에는 이런 환경과 계층 간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욱하는 성격으로 싸움을 즐기던 에드워드의 거친 감성이 플로렌스의 차분하고 예술적인 감성을 포용해내지 못한다. 어쩌면 이들의 헤어짐이 찰나의 행동에서 유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런 감정의 누적이 원인이라는 말이다.
가지런하게 뻗어 있는 조약돌 해변도 자세히 보면 작은 돌 해변과 큰 돌 해변으로 구분되어 서로 섞이지 못한다.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도 플로렌스의 클래식과 에드워드가 좋아하는 로큰롤로 양분된다. 결국 이언 매큐언은 모든 운명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해석을 드러낸다.
영화 후반부 동료 첼리스트와 결혼한 플로렌스가 45년간의 연주 생활을 마감하는 고별 연주회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아낸 에드워드가 일찍이 그녀와 약속했던 C 5번 좌석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엇갈린 삶의 회한이 응축되어 있다.
유독 중후한 가을의 정취와 잘 어울리는 클래식. 잔잔한 선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때론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일상의 생기를 더한다. 그러나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이 적지 않다. 공부하려 작곡가와 노래 제목을 외우더라도 정작 그 곡을 듣지 않는다면 헛수고. 책을 읽으며 손쉽게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는 ‘이지 클래식’을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이지 클래식’ 류인하 저 자료 제공 42미디어콘텐츠
일상에서 만나는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등 클래식 대표 음악가를 중심으로 영화, 드라마, CF, 만화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그들의 곡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개된 클래식을 바로 들어볼 수 있도록 동영상 링크가 연결된 QR코드를 수록했다. 글을 읽기 전후로 음악을 감상하면 그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수월할 것이다. 음악가의 삶과 작품 탄생의 비화, 당대 작곡가들의 얽히고설킨 사랑과 우정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알차게 담았다.
작곡가별 대표 음악과 추천 음악 알아보기
제목과 음악가는 몰라도 귀에 익숙한 클래식 몇 곡 정도는 있을 것이다. 앞서 도입부에서 클래식의 제목, 작곡가 등을 매치했다면, 그다음은 각 음악가의 또 다른 대표곡과 저자의 추천 음악을 알아볼 차례다. 작품명에는 영문과 작품 번호 등을 함께 실어 유튜브나 해외 사이트 등에서도 쉽게 검색하도록 정리했다. 추천 음악의 경우 유명 연주자나 지휘자의 공연 영상이 QR코드로 연결돼 훌륭한 연주가 어우러진 명곡을 감상할 수 있다.
클래식과 더불어 즐기는 당대의 예술
클래식 관련 지식과 감상에만 치중하지 않고, 음악가들의 삶과 당대의 예술을 엿볼 수 있도록 다양한 이미지를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각 음악가의 초상화나 사진, 명화 속에 담긴 모습, 기념 동상, 악보, 악기뿐만 아니라 그들이 태어난 곳과 묘지 등 풍부한 자료가 더해져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장과 장 사이 ‘인터미션’ 코너를 마련해 클래식의 장르, 공연 감상 에티켓, 세계음악축제, 오케스트라의 종류 포지션 등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 01
QR코드(Quick Response Code)란 세로줄 형태로 정보를 저장하는 바코드(Bar Code)와 달리 가로줄이 더해지며 격자무늬 형태로 나타나는 2차원 코드를 말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정보를 읽어내 활용도가 높다. 앱 스토어에서 ‘QR코드’를 검색하면 ‘QR코드리더’, ‘QR코드스캐너’ 등 관련 앱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plus 02
클래식을 자주 듣고, 관련 지식을 쌓다 보면 자연스럽게 악기에도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책에는 오케스트라 편성 포지션과 더불어 클래식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 종류가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트럼펫은 물론 마림바, 피콜로, 비브라폰 등 생소한 악기들까지 그 모양과 특징을 정리했다.
plus 03
올 9월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무대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프랑스 파리를 테마로 한 ‘원 나이트 인 파리(One Night in Paris)’는 9월 5일 예술의전당(서울)을 시작으로, 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전라)에 이어 8일 대전예술의전당(대전)에서 펼쳐진다. 이 외에도 ‘조수미 콘서트 판타지아’(9월 2일, 김해문화의전당), ‘조수미 파크 콘서트’(9월 9일, 올림픽공원 내 88잔디마당) 등의 공연이 다채롭게 마련돼 있다.
작년 초, 2기 동년기자 발단식에 범상치 않은 여인이 나타났다. 망사와 레이스로 된 코사지를 머리에 올려 쓰고, 화려하게 빛나는 공단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박애란 동년기자였다. 상냥한 어투로 자신을 핑크레이디라고 소개하던 그녀는 어느새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대표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중. 최근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영상 제작에도 참여하며 그 누구보다 활발히 동년기자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그녀다. 잘 영근 숙녀의 삶 속에는 어떤 우여곡절이 숨어 있을까?
동년기자 리포터 가능할까요?
박애란 동년기자에게 자주 가는 장소가 어디냐고 물으니 서울 강남에 있는 서초문화원이라고 했다. 현재 이곳에서 모델워킹 수업과 시창작 수업을 듣고 있다고. 대부분 시간을 주로 강남 일대에서 보내는데 1분 1초도 아깝지 않게 살뜰히 모아 사용하고 있다.
“2012년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평택에서 컴퓨터 선생님으로 교사생활 33년 하고 나서 서울로 이사왔습니다. 이곳에서 수필창작, 영어회화, 시낭송, 왈츠를 등록해 열심히 다녔어요. 패션학원도 등록해서 다녔어요.”
어렸을 때 꿈 중 하나가 교사였는데 이것은 벌써 이뤘고, 다른 하나는 패션디자이너라고 했다. 교사직을 맡고 있을 때도 꿈을 이루기 위해 평택과 서울을 오가며 패션 특강을 들었다고. 한국폴리텍대학교에서 패션디자인 야간과정을 6개월 정도 밟기도 했다. 순간마다 패션의 길로 접어들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패션 공부했던 경험을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 박애란 동년기자가 입고 두르고 가지고 다니는 것 대부분이 스스로 리폼한 제품이다.
“어렸을 때 바느질을 좋아했어요. 내 옷은 내가 리폼하고요. 이 가방도 다섯 번도 넘게 끈 부분을 갈았어요. 레이스를 손바느질로 덧대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명품가방을 만든 거지요.”
퇴직하고 난 이후에 더욱더 열심히 사는 박애란 동년기자다.
“생각을 바꿔야 해요. 퇴직 전은 전반생, 그 후는 여생이 아니라 후반생. 전반생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살았다면 후반생에는 의무감에서 벗어나도 괜찮아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돼요. 그래서 후반생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거죠. 내가 또 몸치이기는 한데 왈츠도 배우고 탱고 동호회도 나가고 있어요. 발레도 하고요. 이 나이에 몸이 잘 늘어나겠어요? 왜 내가 내 돈 들이면서 이 고생하나 하다가도 우아한 발레 음악 들으면 엄청 행복해집니다.(웃음)”
인터뷰 바로 전날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제작하는 영상 프로그램 촬영을 다른 동년기자들과 마친 상태였다. 이후 의학 관련 영상에서는 리포터로도 활약했다. 검증된 끼와 재능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간판 리포터(?)로 벌써부터 점쳐졌던 인물이 박애란 동년기자였다.
“아무래도 시작이다 보니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안 그래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영상을 시도할 만한데?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시작하더라고요. 동년기자들이 대단한 내공을 가진 시니어잖아요. 내 생각이 그대로 옮겨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대한 애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품격 있는 시니어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잡지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며 홍보 멘트를 꼭 날린다. 우리 잡지에 처음 자신의 기사가 실렸을 때는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생각해보니 당시 기자 앞에서도 본인 기사가 실린 잡지를 열어보고는 방방 뛰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웃는 얼굴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슬프고 착한 아이, 애란을 만나다
“내 패션이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지? 왜 이런지 물어봐주실래요?”
한껏 하늘을 날 것처럼 깃털 같은 얘기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기자에게 질문했다. 별 얘기 아니려니 하고 원하는 질문을 던졌다. 뜻밖의 소재로 이야기가 바뀌었다.
“옷을 이렇게 입게 된 건 언니 때문이었어요. 어린 시절 아빠가 언니만 사랑해줬어요. 언니가 아버지를 닮았거든요. 한번은 언니랑 싸우는데 아빠가 싸우지 말라고 우리를 다그치다 저랑 언니를 톱자루로 엉덩이를 한 대씩 때렸어요. 정말 너무너무 아팠어. 그때 든 생각은 ‘언니도 아프게 때렸을까?’ 였어요. 나도 사랑받고 싶었어요.”
이때의 기억은 말 그대로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남아 있었다. 똑같이 때렸을 거란 기자의 말에 “아니,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맞받아쳤다.
“어느 날 언니가 책을 산다며 아버지한테 용돈을 달라고 했어요. 저한테도 ‘돈이 필요하지 않냐?’고 아버지가 물었어요. 그런데 저는 ‘됐어요. 그동안 제가 모아놓은 돈으로 사면 돼요’라고 했어요. 누가 착한 아이야?”
이 말에 기자는 “아버지가 속으로 많이 상처를 받았을 거 같다”고 답했다. 이에 박애란 동년기자는 그게 왜 상처냐고 되물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돈 잘 모은 행동’을 칭찬받고 싶었겠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용돈을 주겠다’는 말이 일종의 사과였고 화해의 사인이지 않았을까. 박애란 동년기자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너는 도대체 애다운 맛이 없다”며 나무랐다. 화해의 손을 놓아버린 고집 세고 질 줄 모르는 애어른으로 아버지는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때 박애란 동년기자가 아버지한테 “저도 책이 사고 싶어요, 돈 주세요”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분명 화해를 표했던 것이라고 꼭 박애란 동년기자에게 얘기하고 싶다. 어린 시절 언니를 편애하던 아버지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초등학교 시절 너무 예뻐서 한 치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두 친구 이야기로 흘렀다. 외모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선생님께 예쁘게 보이기 위해 길에서 주웠던 군번줄을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학교에 갔던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려줬다.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사랑은 선생님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사랑으로 표출됐다. 이쁨받기 위해 고운 옷을 골라 입었고, 모자 쓰기를 좋아했다. 말을 하는 내내 박애란 동년기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도 그렇게 서러운 걸까. 밝은 웃음 뒤에 철저하게 감추고 있었던 상처받은 어린 박애란이 바로 눈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나마 박애란 동년기자 인생에서 다행인 것은 어린 시절의 아픔을 서둔야학에서 대신 치유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서둔야학은 박애란 동년기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야학으로 서울대학교 농대 재학생들이 주축이던 곳이다. 작년 말에는 서둔야학당터에서 ‘서둔야학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었는데 본지가 찾아가 탐방 취재를 하기도 했다. 선생님 모두 착한 아이로서 박애란 동년기자를 인정해주었고 예뻐해줬다. 훗날 박애란 동년기자의 교사 꿈을 이루게 해준 놀라운 곳도 바로 서둔야학이다.
박애란 동년기자가 울컥할 때 주문처럼 되뇌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 있다.
“울면 안 돼, 짜장면은 돼!”
세상의 모든 낭만적이고, 슬프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순간에 박애란 동년기자는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아픔을 덮어주는 이불과도 같은 말. 이제는 좀 따뜻한 마음으로 사그라지고 아물고 용서할 수는 없을까.
백설공주처럼 예쁘게 안녕
“큰일날 뻔했어. 이 좋은 세상 못 보고 이생을 하직할 뻔했잖아.(웃음)”
상황 불문 눈물, 콧물 짜며 소녀감성 폭발하는 박애란 동년기자. 세상을 비관하고 꽃다운 나이에 자살을 시도했던 일화도 꽤 오랜 시간 털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야학에서 공부를 하고 나니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선택한 곳은 대한방직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에 빠져 있는데 현실은 공장이잖아요. 숨이 턱턱 막혔어요. 내 방에 공주들 사진을 붙여놓으면 아버지는 그런 것을 벽에 붙이면 귀신 나온다며 떼어버리라고 그러셨고요.”
이러다 평생 여공으로 살 것 같았다. 그러느니 죽자. 수면제가 가장 깨끗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을 듣고 수면제를 사다 모았다. 사랑으로 감싸준 서둔야학 선생님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헝겊으로 꽃을 만들었다. 죽음 초읽기에 들어갔다.
“1968년도 5월 15일에 야학당에 가서 스승의 날 꽃이라며 선생님들 가슴에 달아드렸어요. 정말 눈물을 꾹 참고요. 내 나이 열여덟 살이었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예쁘게 죽겠다는 생각에 하늘색 브라우스에 스커트를 입고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입 안에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천운이었을까, 일어나보니 하늘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막 우시더라고요. 그래도 아버지가 고와보이지 않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맞았던 사건 이후로 아버지한테 사랑받기를 포기했어요. 무엇보다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 무력했습니다. 그땐 절망이었습니다.”
기운을 차리고 야학당으로 가서 그곳에 계신 대학생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자살소동과 관련한 얘기를 했다고.
“그때 번뜩 정신을 차렸어요. 선생님이 제 얘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어요.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누가 너 죽은 모습을 보고 아! 아름답다’ 하겠냐고. 백설공주를 본 왕자는 아름답다고 외쳤는데. 암튼 그때 제 생각에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죽으려 했던 것이 너무 낭만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반전은 죽었으면 큰일날 뻔했어. 지금 사는 게 너무 재밌거든. 요즘 생각하면 죽기 정말 아까워요.”
여직공, 여교사 되다
“되게 힘들게 살긴 했네요. 고비, 고비. 길고긴 고비. 내가 산전, 수전, 지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수원에서 딸기를 땄어요. 그다음에 버스회사 사환을 했어. 방직공장에 들어갔어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일반직으로 이십대 때 근무했어요. 그다음에는 타자학원 강사로도 일했고요. 그리고 결국 스물아홉 살에 중등교사자격시험에 합격했어요. 이후에 공립학교 임용고시에 붙어서 선생님으로 33년 살았잖아요. 교사자격증을 손에 쥐었을 때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울었어요.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말씀드렸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서울대학교 농대에서 일할 당시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농대 학장은 유독 박애란 동년기자에게 “우리 여 선생님 오셨네”라고 하셨다.
“일반직 여직원이 80명이 넘는데 저한테만요.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제가 학교와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제게 학교로 가는 길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트라우마를 조금씩 치유하고 어릴 적 자신과 타협하며 매일 조금씩 나아가며 살아가는 박애란 동년기자는 화려하게 보이는 일은 물론이고 매일 공부하며 사는 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현재는 문화원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는 것 이외에도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미디어영상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농학과, 국어국문학과, 가정학과와 문화교양학과에 이어 미디어영상학과까지 5번째 입학이다.
“우리 집 TV는 방송대 채널에 고정돼 있어요. 예능프로그램은 볼 생각해본 적 없고 클래식 음악 채널이나 다큐채널을 틀어놓아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 거 같아요.”
압구정 날라리는 폼생폼사?
인터뷰도 하기 전에 이런 제목이 어떨까 하고 물어온 박애란 동년기자. 저 느낌이 본인 캐릭터라고 밝게 웃는다.
글쎄 눈물의 근원과 굴곡진 인생 얘기를 듣고 나니 그녀가 가볍게 폼생폼사로 살아간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마감할 뻔했던 삶을 치유하고 보듬으며 매일을 기똥차게 열심히 사는 시니어, 내면에서 흐르는 진정한 멋을 가진 여인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더 깊고 고운 아름다움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빛내는 동년기자로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브라보 3기 동년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본지 에디터가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