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재미’ 모 방송 채널의 슬로건이기도 한데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이 둘의 균형을 잡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실험성이 강해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 흥행에 실패해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고, 진부한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올리는 일은 흔하다. 욕하면서 본다는 우스개처럼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진저리를 치지만, 그런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나름 일정한 역할이 있음에 틀림없다.
인간이 본디 그렇게 생겨먹은 것은 아닐지. 사실 진종일 의미만 찾다가는 피곤과 스트레스로 제명대로 살기 어려울 듯싶다. 재미는 그 반대편에 있으면서 긴장을 이완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테면 아줌마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며 실컷 욕을 하고 나면 응어리졌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이치이다. 두통이 오면 아스피린을 찾듯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지도 모른다.
영화 ‘미드나잇 선’(6월 21일 개봉, 스콧 스피어 감독)은 로맨틱멜로 장르에 속하나 사실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다. 내용과 장면들이 거의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다. 주인공의 불치병은 ‘러브 스토리’를 닮았고 우리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해 뜨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 하는 것이나 노트를 두고 와 결국 다시 만나는 스토리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빼다 박지 않았나. 곳곳의 대사나 영화적 장치도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주인공 케이티(벨라 손)는 XP(색소성건피증)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이 병은 태양에 노출되면 급속히 악화되어 죽는 병이므로 햇빛을 피해야만 한다. 종일 방에 격리된 그에게는 엄마가 남겨준 기타와 창문 너머 10년째 짝사랑하고 있는 찰리(패트릭 스왈제네거)가 유일한 세상의 희망이다. 밤에만 외출이 허락된 케이티는 어느 날 기차역에서 심야의 버스킹을 하게 되고 현장에서 찰리를 만나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져 매일 밤 데이트에 나서고 함께 기차여행까지 가게 된다. 케이티는 길거리에서 버스킹도 하고 수영을 즐기기도 하는데 시계가 방수가 안 되어 고장 나는 바람에 집에 갈 시간을 놓치게 되고 결국 햇빛에 노출되고 만다. 그 사건으로 병이 악화되어 병상에 눕는다. 케이티는 찰리에게 상처를 주기 싫다며 만나지 않게 되고 둘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여기까지 들어봐도 매우 익숙하지 않은가. 극의 전개 또한 매우 손이 오글거릴 정도로 작위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이 뻔해 보이는 익숙함이 주는 감정적인 편안함이다. 마치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똑같은 음악을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듯이. 이 영화에도 갈등은 있지만, 모든 등장인물의 익숙한 진정성이 갈등을 녹이는 감동의 원동력이다.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음악에 불협화음이 없는 것처럼.
케이티는 아빠와 대화를 통해 부성애를 확인하고 아빠는 케이티와 찰리가 다시 만나게 도와준다. 케이티는 어깨를 다쳐 수영을 그만둔 찰리를 격려해 다시 재기하도록 하고 찰리는 죽기 전 케이티가 만든 찰리 송을 녹음하도록 돕는다. 케이티는 자신이 아끼던 수첩에 찰리를 향한 마음을 남긴다. 케이티의 노래는 유튜브에서 대박을 친다. 아, 모두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내용은 진부하고, 연출은 작위적이고, 연기는 서툴지만, 보고 난 뒤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는 감동이 있다. 어차피 세상에 비슷하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성경 전도서에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 그만하면 푯값은 충분히 했다.
도보여행은 조금 특별해야 한다. 많은 곳을 바쁘게 보는 것보다는 좀 더 느리고 여유로운 여행, 사람이 무조건 많은 관광지보다는 자연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단순히 사진만 찍고 돌아서기보다는 그 지역의 풍경과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여행. 그래서 시니어 전문 테마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링켄리브와 함께 준비했다. 천천히 길 위를 걸으며 문화와 예술,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경을 만끽할 수 있는 일곱 색깔의 여행지, 시니어가 걷기 좋은 길이다.
스톡홀름 감라스탄 옛길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의 감라스탄 지역은 약 800년 전에 조성된 거리로 중세의 건축물과 왕실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느린 걸음으로 천년 세월을 견딘 돌길을 걷고 있으면 북유럽 고유의 정경이 그림 같다. 물의 도시 스톡홀름이라는 명성답게 감라스탄 주변으로 헬게안스홀멘 등 작은 섬들이 물 위에 떠 있다.
3대 피오르 트레킹
수만 년 동안 빙하가 조각한 장엄한 협곡을 ‘피오르’라 부른다. 노르웨이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가 많기로 유명한데, 이 중 대표적인 3대 피오르(시에라볼텐, 프레이케스톨렌, 트롤퉁가)를 등산하는 트레킹 코스는 살면서 꼭 한 번 걸어볼 만한 길이다. 걸음마다 진귀한 꽃이 꼬리를 물고, 등반 끝에는 마치 지구가 아닌 것 같은 피오르가 황홀하게 펼쳐진다.
코펜하겐 아트 스트리트
감라스탄이 북유럽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길이라면 코펜하겐 도심의 예술 거리는 북유럽 감각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따뜻한 감성과 소박하지만 값진 행복을 의미하는 덴마크의 휘게 라이프는 바쁘게 살아온 한국의 시니어에게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에 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코펜하겐의 디자인센터, 세계적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공방, 가구 갤러리를 걷다 보면 북유럽 문화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토스카나 사이프러스의 정경
프로방스가 예술가들이 흠모했던 곳이라면 전 세계 문인과 작가들이 찬사를 보낸 지역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다. 태양의 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따뜻한 햇살이 막힘없이 펼쳐진 들판 위로 쏟아져 내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른 길 양옆으로 길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잘 익은 와인과 한없이 넓은 와이너리, 풍성한 올리브나무가 천국을 상상하게 한다.
남부 절경의 해안마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를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들어선 작은 마을들(소렌토, 아말피, 포시타노)은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든 절경을 선물한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아찔한 절벽과 가슴 탁 트이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절벽 위에 아기자기하게 지은 마을들을 반나절씩 걷고 나면 카프리 해의 맑은 바람이 다정하게 땀을 식혀준다.
프로방스 작은 예술마을 길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파리를 떠올리지만 사실 수많은 예술가와 명사가 사랑하고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지역은 따로 있다. 프랑스의 찬란하고 눈부신 남쪽 땅 프로방스. 고흐부터 피카소, 샤갈, 마티스, 세잔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영감을 얻고 말년에 정착했던 곳이다. 아를, 액상프로방스, 생폴드방스, 그라스 등 작고 동화 같은 마을을 걷고 있으면 따뜻한 남프랑스의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삶의 영감은 더욱 풍성해진다.
기적의 알펜루트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알펜루트는 봄가을에 각기 다른 정경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오죽하면 기적의 알펜루트라 불릴까. 봄에는 자그마치 높이 22m의 설벽이 30km에 걸쳐 펼쳐지고, 가을에는 온갖 단풍이 세상을 가득 물들인다. 잠시이지만 이 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알펜루트를 잊지 못해 다시 방문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걷기좋은길 #해외 #여행
도보여행은 조금 특별해야 한다. 많은 곳을 바쁘게 보는 것보다는 좀 더 느리고 여유로운 여행, 사람이 무조건 많은 관광지보다는 자연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단순히 사진만 찍고 돌아서기보다는 그 지역의 풍경과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여행. 그래서 시니어 전문 테마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링켄리브와 함께 준비했다. 천천히 길 위를 걸으며 문화와 예술,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경을 만끽할 수 있는 일곱 색깔의 여행지, 시니어가 걷기 좋은 길이다.
북유럽
Sweden
스톡홀름 감라스탄 옛길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의 감라스탄 지역은 약 800년 전에 조성된 거리로 중세의 건축물과 왕실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느린 걸음으로 천년 세월을 견딘 돌길을 걷고 있으면 북유럽 고유의 정경이 그림 같다. 물의 도시 스톡홀름이라는 명성답게 감라스탄 주변으로 헬게안스홀멘 등 작은 섬들이 물 위에 떠 있다.
Norway
3대 피오르 트레킹
수만 년 동안 빙하가 조각한 장엄한 협곡을 ‘피오르’라 부른다. 노르웨이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가 많기로 유명한데, 이 중 대표적인 3대 피오르(시에라볼텐, 프레이케스톨렌, 트롤퉁가)를 등산하는 트레킹 코스는 살면서 꼭 한 번 걸어볼 만한 길이다. 걸음마다 진귀한 꽃이 꼬리를 물고, 등반 끝에는 마치 지구가 아닌 것 같은 피오르가 황홀하게 펼쳐진다.
Denmark
코펜하겐 아트 스트리트
감라스탄이 북유럽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길이라면 코펜하겐 도심의 예술 거리는 북유럽 감각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따뜻한 감성과 소박하지만 값진 행복을 의미하는 덴마크의 휘게 라이프는 바쁘게 살아온 한국의 시니어에게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에 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코펜하겐의 디자인센터, 세계적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공방, 가구 갤러리를 걷다 보면 북유럽 문화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서유럽
Italy
토스카나 사이프러스의 정경
프로방스가 예술가들이 흠모했던 곳이라면 전 세계 문인과 작가들이 찬사를 보낸 지역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다. 태양의 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따뜻한 햇살이 막힘없이 펼쳐진 들판 위로 쏟아져 내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른 길 양옆으로 길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잘 익은 와인과 한없이 넓은 와이너리, 풍성한 올리브나무가 천국을 상상하게 한다.
남부 절경의 해안마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를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들어선 작은 마을들(소렌토, 아말피, 포시타노)은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든 절경을 선물한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아찔한 절벽과 가슴 탁 트이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절벽 위에 아기자기하게 지은 마을들을 반나절씩 걷고 나면 카프리 해의 맑은 바람이 다정하게 땀을 식혀준다.
France
프로방스 작은 예술마을 길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파리를 떠올리지만 사실 수많은 예술가와 명사가 사랑하고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지역은 따로 있다. 프랑스의 찬란하고 눈부신 남쪽 땅 프로방스. 고흐부터 피카소, 샤갈, 마티스, 세잔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영감을 얻고 말년에 정착했던 곳이다. 아를, 액상프로방스, 생폴드방스, 그라스 등 작고 동화 같은 마을을 걷고 있으면 따뜻한 남프랑스의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삶의 영감은 더욱 풍성해진다.
아시아
Japan
기적의 알펜루트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알펜루트는 봄가을에 각기 다른 정경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오죽하면 기적의 알펜루트라 불릴까. 봄에는 자그마치 높이 22m의 설벽이 30km에 걸쳐 펼쳐지고, 가을에는 온갖 단풍이 세상을 가득 물들인다. 잠시이지만 이 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알펜루트를 잊지 못해 다시 방문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시니어를 위한 테마여행사 ‘링켄리브’
느림의 미학이 있는 여행, 삶의 여유와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을 지향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테마여행사 링켄리브는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여행을 기획, 진행하고 있으며 그동안 아무나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여행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니어가 걷기 좋은 도보여행,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있는 테마여행, 유명 작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 등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인간의 생활에서 의식주(衣食住)는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食)이며 매일처럼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날마다 아침 일찍 아내가 요리해 준 음식을 먹고 일과를 시작하여, 퇴근하면 저녁 식사를 맛있게 끝내고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 아내는 일품(逸品) 요리연구에 관심이 대단했다. 어느 날 별명 하나를 아내에게 지어준다고 하니 매우 궁금해 하는 모습이었다. “요리여왕님, 뚝딱이!”라고 농담조로 불러 주면 답례로 미소를 머금었다.
‘각 나라 요리 특색은 향신료의 가감에 달려 있다’라고 한다. 나는 어느 전문가의 말을 듣고 아주 흥미로웠다. 나의 아내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더욱 일품 요리여왕이 되어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향신료는 요리할 때 없어서는 안 될 만큼 많이 쓰인다. 그리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에 나오는 대목이 있어 공유한다. "후추는 태양처럼 뜨겁고 후끈하다.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될 인생의 소스와 같단다."
얼마 전 한 침목단체에서 동료와 식사를 했다. 이날 식탁 위에 놓인 향신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특히 세계 3대 향신료 중 하나로 꼽히는 계피에 대하여 더욱 관심 있게 관찰했다.
계피(桂皮, cinnamon bark)는 계피나무의 껍질로 약재에 쓰인다. 또 세계 3대 향신료로 계피, 후추(pepper), 정향(clove)이 꼽힌다. 그중 계피와 계피말(桂皮末, cinnamon powder)은 고대 로마에서 황제와 귀족들의 전용으로 쓰였다.
로마 네로 황제는 그의 애첩 사비나가 세상을 하직할 때 계피를 태워 애도했다. 그것도 1년은 써도 될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분량을 사용했단다. 그 이유는 계피를 태울 때 피어오르는 야릇한 향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것과 서양에서 쓰는 계피는 종류가 다르다. 우리가 애용하는 계피는 계수나무(桂樹, cinnamon tree) 껍질이다. 그러나 서양의 것은 육계(肉桂)나무 껍질로 건위(健胃) 강장제로도 쓰이는 것을 말한다.
수십 년 전에 멋진 제복을 입고 항공사에서 해외 첫 출장을 갔었던 나라가 스리랑카였다. 그곳에서 자라는 육계가 가장 좋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계피와 육계는 모두 상쾌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과 향취가 난다.
그러나 계피는 향이 매콤하면서 좀 더 강해 한약재 또는 식용으로도 쓰인다. 한편 육계는 서양에서 케이크나 디저트를 만들 때, 커피와 코코아에 첨가한다.
향신료는 식물의 꽃, 잎, 씨앗과 줄기, 뿌리, 껍질 등에서 얻는다. 그런데 채취 시기와 가공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우리가 많이 쓰는 향신료는 고추, 마늘, 생강, 겨자, 후추 등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그 종류가 다양하여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어떤 향신료를 가감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 요리 특색이 달라지기도 하고 결정되기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다음에는 후추와 정향(clove)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향신료의 왕이 바로 후추라면 꽃봉오리로 만든 향신료가 바로 정향이다. 상쾌하면서 달콤한 향이 나는데, 그 맛에 대한 역할을 더욱 세밀히 알아보고 깊이 음미하려 한다.
2011년, 신현림(申鉉林·57) 시인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1, 2편을 엮었다. 저마다 인생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을 이 세상 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녀 역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앞날이 캄캄하게 여겨졌던 어린 시절, 지혜를 갈망하며 시를 읽었다. 삶의 경구로 삼을 시구를 모으며 나약한 정신을 탄탄히 다졌고, 긍정적인 시의 리듬은 자연스레 그녀의 몸과 마음에 깃들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어도 늙지 않고, 절망스러울 때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신현림 시인. 그녀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3년 전,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들려줬던 신현림 시인. 이번에는 자녀 세대를 위해 새롭게 엮은 시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개정판, 이하 ‘딸아’)과 ‘아들아, 외로울 때 시를 읽으렴’(이하 ‘아들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베스트셀러인 ‘딸아’를 읽은 독자들이 종종 아들을 위한 시집도 엮어 달라고 했는데, 그 바람이 ‘아들아’로 이뤄진 셈.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전과 같은 인터뷰 장소에서 신 시인을 만났다. 변함없이 호쾌한 특유의 미소에는 그녀의 파란 카디건처럼 청아하고도 따스한 기운이 번졌다. 한쪽 손의 커다란 캐리어가 눈에 띄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느냐 물으니 기부할 새 시집들을 배송하고 오는 길이라고. 미혼모의 집, 소년원, 해바라기 센터 등 기부처를 직접 찾아 정리했는데, 40곳이나 된단다.
“요즘 애들이 입시에 관한 것 외에는 책을 잘 안 읽는대요. 물론 이 책들도 곧바로 읽히고 위안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공짜로 온 책이니 어디 한구석에 처박아두겠죠. 언젠가 비 오고, 쓸쓸하고, 잠이 안 올 때 불현듯 들춰볼 거예요.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어? 괜찮네?’ 하고 시가 와 닿으면 그때부터 읽는 거죠. 그러다 ‘시가 좋은 거구나’ 알게 되면, 뭔가 쓰고 싶고, 표현하고 싶어져요. 그렇게 한두 줄 일기라도 쓰게 되고요. 글을 쓰는 여유를 찾았다면, 그 자체로도 인생의 중심을 잡는 데 효과가 있죠.”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괴롭고 슬플 때마다 시를 읽으며 자신을 위로한 신 시인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시는 정신의 양식이며 구원의 등불이었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절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좌절을 느끼게 마련. 그녀는 특히 인생의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이 장차 살아가며 버팀목으로 삼을 수 있는 시 한 편을 간직하길 바랐다.
“부모와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들 만큼 절망스러울 때, 자기 마음을 다스릴 시가 있으면 좋아요. 누군가에게 듣는 잔소리가 아닌 글로 보는 시구는 오롯이 나와의 침묵 속에서 읽힙니다. 내 안에서 진정 위로받는 시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죠.”
신현림 시인의 인생에 버팀목이 돼준 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위로받은 여러 작품 중에서 그녀는 시의 경이로움을 처음 느끼게 해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를 꼽았다. ‘잎은 무성해도 뿌리는 하나/ 거짓 많던 내 젊음의 나날/ 햇빛 속에서 잎과 꽃들을 흔들었지만/ 이제 나는 진실을 찾아 시들어가리’라는 단 네 줄의 시가 소녀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를 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늙음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나중에 나이를 먹겠지만, 그래도 지혜를 얻을 수 있겠구나. 늙는다는 건 뭔가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구나. 아주 짧은 시인데도, 긴 여운이 남았었죠. 또 그때부터 시를 사랑하게 됐고요.”
열일곱 소녀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쉰일곱이 됐다. 40년 전 읽었던 시 덕분에, 나이 듦이 꼭 두렵지만은 않았다. 시의 제목처럼, 그녀가 나이 듦을 통해 얻은 인생의 지혜는 무엇일까?
“아픔까지 놓아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젊을 땐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한 일주일을 끙끙 앓잖아요. 나중에 보면 별거 아닌데도 당시엔 너무나 크게 와 닿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잖아요. 괴로운 건 툭툭 내려놓고 집착하지 않으려 하죠.”
그녀는 평소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얼마나 줬는가’를 자문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더불어 “이제는 주는 나이”라고 강조하는 신 시인. ‘주는 나이’는 몇 살이냐고 물으니 숫자보다 명쾌한 대답을 들려줬다.
“‘선생님’ 소리 듣기 시작할 때부터죠.(웃음) 내게도 언젠가부터 여기저기서 선생님, 선생님, 그러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돈도 쓰고, 밥도 사고, 그렇게 사랑을 줘야 할 때가 온 거죠.”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
신현림 시인을 만나보면 그녀가 시를 아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고 말하자 “아름다우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며 눈을 반짝인다.
“시를 사랑한다는 건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거죠. 아름다움은 규정된 게 아니에요. 또 계산 없이 순전한 마음에서 오는 사랑이 아름답듯, 순전한 영혼의 상태에서 써지는 게 바로 시가 아닐까요? 사랑, 아름다움, 시, 이 모든 게 다 같은 거라고 봐요.”
신 시인의 눈에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는 아마 하나뿐인 딸일 것이다. ‘딸아’의 초판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엄마와 입시제도에 관해 논담할 만큼 성숙해졌단다. ‘딸아’ 개정판에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추가됐다. 물론 시집은 세상의 수많은 딸을 위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진짜(?) 딸은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엄마가 엮은 시집을 읽고 딸이 가장 위안을 얻은 시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맨 처음 시집이 나왔을 때는 어린 나이라서 읽기 어려웠죠.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새로 나온 책도 어제야 줬어요. 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거든요. 아직은 시집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못해봤네요. 그런데 나도 참 궁금해요. 우리 딸이 어떤 시를 가장 좋아할까? 꼭 물어봐서 알려줄게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그녀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수많은 작가의 수많은 시 중에서 딸이 꼽은 최고의 작품은 바로 엄마 신현림의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였다. ‘매일매일 축제이니/ 우울해하지 마/ (중략)/어디에 있든 태양 장미를 잃지 마/ 너를 응원하는 나를 잊지 마’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속 ‘너’라는 주체에 대해 딸은 이 세상 어느 독자보다도 가깝게 느꼈을 것이다. 딸을 위해 시를 쓰는 엄마, 엄마의 시를 읽는 딸, 이 뜨겁고 오묘한 감정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테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엄마가 시인처럼 자녀를 위해 시를 쓸 수는 없다. 그녀는 좋은 시집을 읽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아들딸에게 시집을 한 권 선물해보세요. 재미있는 영화를 함께 보면 그것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시집을 읽고 좋은 시를 공유하며 서로 인생의 덕담을 나눠봤으면 해요. 부모와 아이 모두 영혼이 유익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되도록 많은 이가 시를 가까이하길, 또 시처럼 살아가길 바란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 짧고 명쾌한 깨달음을 주는 장점도 있지만, 시의 연과 연 사이 공간처럼 이따금 쉬어가는 쉼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매몰되기 쉬운 일상에 시로 브레이크를 걸면 잠시나마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스스로 묻거나, 잠깐 멈춰 서서 피부에 닿는 바람도 느껴보기도 하고요. 군더더기가 없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에서 쓸데없는 걱정과 부정적인 것은 모두 덜어내고 군더더기 없는 인생을 살면 좋겠어요.”
성인이나 현자들이 하나같이 사막이나 황야를 찾아간 것은 그곳이 ‘비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비어 있지 않으면 신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많은 사람이 해오는 질문 중 하나는 가봤던 여행지 중 한 곳만 추천한다면 어디를 꼽겠느냐는 것이다. 장소마다 느낌이 다른데 그런 데가 어디 있냐며 웃어넘겼지만 결국 꼽은 곳은 모로코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진기한 것들로 가득한 곳. 정비된 수도 라바트와 천년 미로의 도시 페스, ‘본 아이덴티티’를 비롯해 온갖 영화의 배경이 된 다닥다닥 붙은 하얀 집들이 있는 항구도시 탕헤르, 이름만 들어도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낭만 가득한 카사블랑카도 좋지만 역시 모로코 여행의 백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 열리는 마라케시와 별이 쏟아지는 사하라 사막의 야영이라 하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에서 모래가 서걱대고 며칠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지만 밤이 되면 500만 개, 아니 5000만 개의 별을 이불 삼아 잘 수 있는 곳. 사하라 사막의 하룻밤은 세상 어느 5성급 호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모로코의 심장, 마라케시
카사블랑카를 지나 기차를 타고 모로코의 심장이라 불리는 마라케시(Marrakesh)로 간다. 밤이면 세상에서 가장 큰 포장마차촌이 펼쳐지는 제마엘프나(Djemaa el-Fna) 광장과 미로로 된 장터 수크(souq)가 있는 곳. 가게마다 손님을 불러 세우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 안 사도 좋으니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말을 걸지만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이곳에선 귀찮지 않다. 모로코 사람들 특유의 유머와 밝음 때문이다.
이곳에선 반드시 흥정을 해야 한다. 함께 여행한 유럽 친구들은 평소엔 콧대 높게 굴다가도 수크에 갈 때면 한껏 낮은 자세로 함께 가줄 것을 청했는데 그들에겐 흥정 문화가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단 80%는 후려치고 들어가며 흥정하는 내 모습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난 마치 묘기라도 부린 듯 으쓱해진다. 그들은 왜 정찰제가 아니냐고 투덜대지만 이런 맛이 있어야 장터이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민트차를 마신다. 제대로 씻지 않은 민트 잎에 뜨거운 물만 부었는지 흙이 우적우적 씹힌다. 포장마차가 열리기 전 낮의 빈 광장에선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진기한 묘기를 볼 수 있다. 젤라바(모로코 전통의상)를 입고 춤을 추는 마라케시의 명물 물장수를 비롯해서 뱀 부리는 사람, 약 파는 사람, 헤나 타투를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수백만 명이 들끓는 광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보는 것 같다. 저녁 무렵이 되니 목욕탕도 아닌데 거대한 광장에 일제히 연기가 피어오른다. 낮 동안 비어 있던 광장이 거대한 포장마차촌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다닥다닥 붙은 포장마차에서 타진, 하리라, 쿠스쿠스, 케밥, 에스카르고 등 갖가지 산해진미에 취해본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리는 동안 밤이 깊어간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막 여행이 시작되는 므하미드로!
마라케시에서 뭉친 일행은 미니버스를 타고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막 캠프가 있는 므하미드(M’hamid)로 향했다. 베르베르족들의 터전이기도 한 므하미드 사막 캠프의 숙소는 진흙으로 된 카스바다. 카스바라니? 가요에서나 듣던 카스바가 정말 존재한다는 말인가? ‘카스바(casbah)’는 ‘요새’라는 뜻으로 주로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도시의 방어를 위해 시가지의 일부 또는 그 외곽에 세워지는 성을 말한다. 붉은 사막 한가운데 미로처럼 붙어 있는 성안에 있는 집에서 민트차를 마셨다. 므하미드엔 사막 캠프가 여러 개 있다. 혼자서 온 여행객도 이곳에서 사막 투어를 예약하면 안내받을 수 있긴 하지만, 그럴 경우 차 한 대와 부대비용을 혼자서 다 감당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다. 사막 투어는 혹시 모를 위험도 있어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하는 것이 재미도 있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3대의 지프차에 나눠 타고 자동차 경주대회인 다카르 랠리가 열리는 길을 따라 에르그 시가가(Erg Chigaga)로 들어갔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용광로처럼 뜨겁다. 모로칸들은 머리엔 터번을 쓰고 젤라바라 부르는 긴 가운 같은 것을 입는데, 패션이라기보다는 이곳의 기후에 최적화된 의상이다. 어느 나라의 패션이든 그렇게 입고 다니는 이유가 다 있다. 사막에서 하는 스카프는 장식용이 아닌 것이다.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살을 몽땅 태워버릴 듯한 50℃의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필수품 중의 필수품이다.
사막 중의 사막, 사하라!
사막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붉은 모래사막을 떠올리지만 흰색과 핑크색의 소금사막부터 잡초가 자라는 사비나 사막, 이집트의 흑사막과 백사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막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막 중 사하라(Sahara)만 한 게 있을까. ‘사흐라(Sahra, 불모지)’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사하라는 사막 중 가장 규모가 큰 사막으로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비롯해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걸쳐 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끝없이 굴곡을 달리하는 사하라의 듄(Dune, 모래언덕)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막의 이미지는 바로 사하라다. 낮 동안 달궈진 사막은 걸어 다니기가 힘들지만 이른 아침의 사막은 밤 동안 식어 맨발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때 발끝에 느껴지는 시원한 감촉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큼 감미롭다. 인간의 기억 중 가장 오래가는 감각이 촉각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 해가 지자 사막은 변화무쌍하게 변했고 곧 밤이 찾아왔다. 모로코 전통의상 젤라바를 두른 사막 캠프 주인 하산과 운전기사는 음악을 크게 틀더니 “밥 먹으러들 내려와~” 하며 손짓했다. 언제나 유쾌한 모로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 짓게 하는 매력덩어리들이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에서 즐기는 야영
사막 야영을 갈 때는 운전사와 요리사가 함께 간다. 일행이 사막을 보며 광분하는 동안 그들은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한다. 사하라 사막의 밤, 전갈이 있다 해서 높은 매트리스를 깔았다. 무수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지붕이다. 새벽 무렵 사막을 덮어버릴 듯 쏟아져 내리던 별들. 그 향연을 잊을 수 없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모래 위에 발을 얹어본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밤새 식어버린 곱디고운 사하라 사막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 아름다운 듄에 호젓하게 올라본다. 최고의 명상이란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고요함 속에서 붉은색 모래 평원을 보니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하다. 가늘고 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질인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달콤한 오르가슴이다. 겹겹이 쌓인 산맥처럼 듄과 듄 사이를 너머 시야를 넓히니 멀리서 부지런한 이탈리아 친구가 벌써 산책 중이다. 모래 위에서 잠을 자던 운전기사 모하메드와 요리사 알리도 어느새 일어나 메카를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검은 옷의 카스바 여인!
사막을 나와 낙타를 타고 카스바 마을을 지나는데 단체로 어디를 다녀오는지 검은 옷을 입은 카스바 여인들이 지나간다.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알라의 평화를)!” 하고 인사를 하니 “봉주르~” 하고 답한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은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프랑스어를 공용어처럼 사용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로코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등지에 별장을 사두고 바캉스 시즌이 오면 차를 몰고 온 가족이 내려와 한 달간 머물다 돌아가곤 한다. 사막에서 돌아온 밤, 숙소에서 생존을 축하하며(?) 하산이 열어준 모로칸식 전통공연을 관람했다. 마치 현실의 시간이 아닌 듯 몽롱했다. “별밤에 더워서 잠도 안 오는데, 이렇게 공연을 보며 놀지 뭐.” 멋쟁이 프랑스 언니 오빠는 흥에 겨운 듯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Travel tips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카사블랑카까지 직항이 있으며, 여기서 기차로 이동하면 된다.
■ 추천 숙소 및 카페/ Hotel & Guest House
Marrakech 추천숙소: Hotel Ryad Mogador(tel: 024-43-8646)
Earth cafe website: www.earthcafemarrakech.com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37년의 삶 동안 극한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끝내 자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런 고흐의 영원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는 궁핍하지만 숭고한 예술혼을 지닌 형에게 금전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흐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동생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수만 668통에 이른다. 그중 고흐의 예술적 고뇌와 작품의 비화를 엿볼 수 있는 편지 40여 통이 담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 마스터피스에 얽힌 비화
고갱이 사랑했던 고흐의 ‘해바라기’
한 집에서 작업하던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만다. 고갱은 집에 두고 온 자신의 습작 대신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중 하나를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기 습작을 주며 내 해바라기 그림을 요구하는 건 정말 우습다. 그는 내 해바라기 그림을 두 점이나 가지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해라”라고 쓴다. 이미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이 있고, 심한 다툼 후에도 또 한 점을 달라고 한 것을 보면 고흐의 해바라기를 향한 고갱의 사랑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조카 ‘빈센트’를 위한 ‘꽃 피는 아몬드 나무’
테오는 고흐를 향한 존경의 뜻을 담아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 윌렘 반 고흐’라 짓는다. 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고흐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조카가 내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아이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라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라고 묘사했다. 이 그림이 바로 고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1890)다.
◇ 고흐의 추천 도서
빈곤한 생활에도 독서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고흐는 “빵을 먹어야 살 수 있듯 책에 대해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정신을 고양하고 탐구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당시 진지하게 독서에 몰두하며 성경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디킨스 등의 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1887년 여동생 윌에게 쓰는 편지에 에밀 졸라의 ‘삶의 환희’, ‘목로주점’, 볼테르의 ‘캉디드’, 모파상의 ‘좋은 친구’ 등에 대해 “그들은 우리가 공감하는 삶을 묘사하고 있어 진실을 듣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킨다”라며 권유하기도 했다.
◇ 현대에 만나는 고흐의 삶
영화 ‘러빙 빈센트’는 전 세계 107명의 유화 작가들이 참여해 10여 년에 걸쳐 고흐의 작품 130여 점을 재현한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고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모티브로 시얼샤 로넌, 크리스 오다우드, 에이단 터너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고흐의 초상화 속 인물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의 조셉 룰랭, ‘아르망 룰랭의 초상’의 아르망, ‘닥터 가셰의 초상’의 가셰 등을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그대, 나의 뮤즈 – 반 고흐 to 마티스’ 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열린다. 반 고흐를 비롯한 르누아르, 카유보트, 클림트, 마티스 5인의 거장이 자신들의 뮤즈를 만났던 순간을 표현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에서는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릴 당시 영감 받은 남프랑스의 노란 태양과 따뜻하게 쏟아지던 햇살을 간접 경험하고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등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할 수 있다.
왜 여행하느냐에 대해서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정의와 이유가 있지만 아마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상에 묻혀버린 꿈과 환상을 충전하기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른이 된다는 건 시시해지는 것”이라고 일갈했듯이,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고 영원히 계속될 수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꿈이 있어야 할 자리에 후회가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하고, 이럴 땐 다시 한 번 꿈을 충전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떤 여행도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여행이야말로 진정 젊음을 충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
아프리카와 인도 대륙 사이의 바다, 인도양에 유유히 떠 있는 섬 마다가스카르는 실제로 가본 사람이 많지 않지만 그 이름만은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이곳이 바로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와 보아뱀의 고장이며,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여행은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목적한 나라의 비행기를 타는 경우 여행 기분은 배가된다. 마다가스카르항공은 프랑스 것이라더니 모든 안내방송이 프랑스어가 먼저 나온다. 그다음이 영어, 그다음이 말라가시어(마다가스카르 공용어) 순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여행의 인상은 바로 승무원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는 마다가스카르에는 18개에 이르는 다양한 부족이 살고 있고, 외모 또한 아시아인에서 아프리카인까지 다양하다. 그 이유는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2000년 전 인도네시아인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살기 시작한 뒤 아랍의 상인들과 아프리카의 노예, 유럽의 제국주의가 밀려온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는 80%의 국민이 농사를 짓는 농업 국가로, 국토의 많은 부분이 논이며, 우리처럼 하루 세끼 쌀밥을 먹는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루 세끼 흰쌀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게 다가오면서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바오바브나무의 고향, 모론다바!
바오바브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쪽 끝에 있는 모론다바라는 도시로 가야 한다. 모론다바로 가는 비행기는 19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로, 손님의 숫자에 따라 제멋대로 항공시간을 변경해버리기도 해서 고객을 당황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탑승수속 땐 짐의 무게뿐만 아니라 승객의 몸무게도 잰다. 비행기가 워낙 작아 무게를 초과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오지를 가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천천히, 천천히”와 “문제없다”는 말이다. 마다가스카르어(말라가시어)로는 “모라모라”, “짜마니노나”라 한다. 황당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들은 “모라모라”, “짜마니노나” 하며 활짝 웃는다. 오지 여행에서는 아무리 서둘러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니 느긋한 마음을 먹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마다가스카르의 최대 볼거리로 꼽히는 바오바브나무 군락지와 칭기국립공원의 입구 역할을 하는 모론다바는 ‘긴 해안’이라는 뜻으로 바닷가에 면해 있다. 수도 안타나나리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살갗을 태울 듯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람도 개도 늘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휴양 모드의 유럽 여행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동네 소녀들은 그늘에 앉아 머리를 땋으며 놀기도 하고, 소년들은 타는 듯한 태양 볕에도 아랑곳없이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천 년의 지혜가 들려주는 말들
해안가를 벗어나 바오바브 애비뉴로 들어서자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드문드문 바오바브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 바오바브나무 군락지! 그것은 목이 꺾어질 듯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도 장대했다. 1년에 고작 3mm씩 자라는 나무가 저만큼의 크기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걸까. 정말이지 바오바브나무 하나만 보고 간다 해도 마다가스카르 여행은 충분할 것 같다.
바오바브나무는 세계적으로 8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에 7종이 흩어져 있으며 나머지 1종은 호주에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바브나무는 다른 바오바브나무와의 비교를 불허한다. 속이 뻥 뚫릴 만큼 하늘을 향해 길쭉길쭉 늘씬늘씬 시원하게 뻗어 있다.
감탄사가 터지는 순간을 많이 만나는 일, 그것이 바로 행복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소혹성 B612를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무서운 식물이 있다”며 바오바브나무를 안 좋게(?) 묘사하고 있지만, 난 천 년이나 되었다는 신비한 바오바브나무를 보면서 식물이야말로 신의 안장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바오바브나무를 바라보며 한없이 걷고 또 걷는데 저 멀리 보이는 바오바브나무에 뭔가 자그마한 것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벌레라기엔 좀 크다 싶은 그것을 가까이 가서 보니 한 아이였다. 아이는 바오바브나무와 인간을 대조해서 보여주려는 듯 나무에 딱 붙어 서 있었다. 그 장면은 내게 영원히 잊지 못할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천 년이나 된 바오바브나무와 대조되는 작은 인간의 모습. 마치 “문명국가에서 온 너희들이 좀 산다고 오만해봤자 천 년 된 바오바브나무 앞에선 모두 다 ‘고작 요만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또 내게 나무처럼 살라고 말하는 듯했다. 현실이라는 대지에 굳건히 발을 딛고서도, 끝없이 천상을 향해 뻗어 나가라고….
러브 바오바브와 성스러운 바오바브
두 번째 날엔 바오바브 애버뉴를 조금 벗어나 독특한 바오바브나무들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러브 바오바브(love baobab)’와 ‘성스러운 바오바브(holy baobab)’다. ‘러브 바오바브’는 다른 바오바브나무와 달리 두 개의 줄기가 엉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신혼여행객이나 연인이 많이 찾아와 사랑을 맹세한다고.
‘신성한 바오바브’는 성황당처럼 마을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마을 주민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동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몹시 영험하게 여겨 아침저녁으로 이곳에 가 소원을 빈다.
그렇게 러브 바오바브와 성스런 바오바브를 거쳐 이윽고 다시 돌아온 ‘바오바브 애비뉴’. 역시 마다가스카르는 바오바브나무 하나만 실컷 봐도 그만인 곳이었다.
마다가스카르에 온 지 며칠 안 되었지만 그래도 묘사할 게 몇 개 있었던 것 같다. 온종일 먹어도 좋을 것 같은 끝내주는 바게트 맛이라든지 수도 안타나나리보 재래시장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모습, 칭기국립공원의 찌를 듯한 암석들까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숙소를 향해 달리는 길. 군락에서 떨어져 혼자임을 즐기는 바오바브나무들이 양손을 펼쳐 바이바이를 한다. 하나하나 작별을 고하며 바오바브나무들에 이름을 붙여본다.
발레리나 바오바브나무, 고독한 바오바브나무, 체조하는 바오바브나무….
천 개의 느낌표가 가슴에 와 박힌다.
travel tip
★찾아가기인천에서 방콕까지 타이항공(5시간소요), 방콕- 마다가스카르까지는 마다가스카르 항공(9시간 소요).
★기본여행정보한달간 무비자국가로 오랫동안 프랑스식민지였던 관계로 현재까지도 불어가 널리 통용되며 마다가스카르어(말라가시어)가 공용어다. 화폐단위는 아리아리(Ariary)로, 1000원=2000아리아리 정도. 커피와 사탕수수, 쌀이 주농작물이다.
★지도 & 추천여행루트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시내관광, 재래시장, 유적지를 본후 국내선으로 모른다바로 이동해서 바오밥 군락지, 그랑칭기국립공원을 보는 것이 핵심코스.
★준비물오프로드에 가까운 비포장도로를 장시간 달리므로 앉아있기 편안한 차림을 하는게 좋으며, 오지마을을 지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필이나 공책, 천으로 된 가방, 의류, 풍선, 사탕 등 준비해가면 현지인들을 위한 소중한 나눔이 될 수 있다.
★여행경비350만원 내외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 장석주님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파주 교하로 거처를 옮겨 첫겨울을 맞았어요. 교하의 평평한 들을 덮은 한해살이 초본식물이 서리를 맞고 시들어 헐거워진 무릎을 꺾으며 가을이 끝나고, 곧 겨울이 닥쳤지요.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에서 먼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에 햇빛이 약해지고 동절기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올겨울은 유난히 눈도 잦고 한파도 자주 몰아쳤어요. 한파경보와 폭설주의보에 귀를 기울이며 겨우내 실내에 갇혀 겨울을 납니다. 기온이 영하 20℃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이 이어질 때 한강 하구 일대는 북극의 바다처럼 얼음덩이로 뒤덮였어요. 강가에서 건물 잔해처럼 나뒹구는 얼음덩이들이 펼치는 낯선 풍경을 하염없이 보다가 돌아오는 날도 있습니다. 노숙자가 동사했다는 비보가 전해진 날 한뎃잠을 자다가 얼어 죽은 길고양이도 드물지 않았지요.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언 땅에서 먹잇감을 찾지 못해 인가까지 내려옵니다. 이래저래 겨울은 네 발로 움직이는 동물이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에게 두루 견디기 힘든 시련과 역경의 계절이지요.
사람이나 동물만 이 혹한을 견딘다고 생각하지만 풀과 나무도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하게 겨울을 납니다. 나무는 어떻게 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는 걸까요? 나무의 내부는 많은 수분이 있어 얼 수도 있을 텐데, 나무가 영하 20℃의 추위에도 얼지 않고 겨울을 난다는 게 신기하지요. 낮이 점점 짧아지면서 빛이 약해지는 신호를 받고 나무들은 월동 채비를 해요. 활엽수는 잎을 다 떨궈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지요. 그리고 “세포벽의 투과성이 극적으로 증가해서 순수한 물은 흘러나오고 세포 안에 남은 당, 단백질, 산이 농축”된다고 해요(호프 자런, ‘랩 걸’). 아무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은 얼지 않지요. 부동액이 얼지 않는 이치가 그것이지요. 살아 있는 유기체 거의 모두가 그렇듯이 나무 내부는 물로 채워진 상자이지만 그 액체가 순수한 상태여서 얼음 분자가 결정을 형성하지 못한다지요.
식물의 씨앗이 보여주는 기다림은 탄성이 나올 정도예요. 가을로 접어들며 초목들은 수백 개에서 수만 개의 씨앗을 제 발치께에 떨어뜨리는데, 씨앗은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배아가 함부로 자라지 못하는 구조이지요. “씨앗 안의 배아는 자라기 시작하면 일단 허리를 굽히고 기다리던 자세를 곧게 펴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형태를 정식으로 띠기 시작한다. 복숭아씨, 혹은 참깨씨나 겨자씨, 호두씨 등을 둘러싼 딱딱한 껍질은 이런 팽창을 방지하려고 존재한다”(호프 자런, ‘랩 걸’).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배아는 딱딱한 껍질 속에서 긴 기다림을 시작하지요. 운이 좋으면 1년 만에 싹을 틔워 식물의 한 생애를 펼치지만 많은 씨앗들이 기회를 엿보다가 사라지지요. 중국의 토탄 늪지에서 나온 어떤 연꽃 씨앗의 배아는 2000년 만에 과학자의 도움으로 껍질이 벗겨지자 싹을 틔워 놀라게 했습니다. 연꽃 씨앗은 싹을 틔우려고 무려 2000년을 기다렸던 셈이지요.
씨앗은 껍질을 깨야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가 있지요. 씨앗은 생의 순환을 겪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저 울울창창한 숲은 작은 씨앗의 기다림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초목들은 지구상에서 공룡이 멸종하고 지구가 몇 번이나 빙하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도처에 숲을 이루며 번성했어요. 그 번성이 작은 씨앗의 분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아름드리 떡갈나무도 배아에서 싹을 틔워 자라난 결과일 뿐이지요. 그러나 무수한 씨앗들은 운이 나빠 싹을 틔울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 사라지지요. 우리도 기다림 속에서 도약의 기회를 엿본다는 점에서 씨앗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요.
식물이 환경에 순응하며 인고와 복종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로 알지만 식물만큼 자기 숙명과 싸우는 존재는 드물지요. 붙박이로 자라는 식물이 침묵 속에서 싸움을 펼치는 까닭에 그 격렬함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할 뿐이죠. 식물은 땅속으로 뿌리를 뻗고 물과 자양분을 끌어다 줄기로 퍼 나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매화나무는 혹한을 견디며 꽃눈을 두툼하게 키우고, 튤립 같은 구근 식물은 땅속뿌리에서 싹을 틔울 준비가 한창이지요. 매운 추위라야 봄꽃이 더 화사하게 피어나는 법이지요. 화사한 봄꽃들이 혹한과 싸워 이긴 승리의 전리품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요!
우리는 식물이 환경에 맞서 싸우는 저 용기와 지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현호색, 복수초, 양지꽃, 노루귀, 산달래, 변산바람꽃, 개불알꽃, 제비꽃, 패랭이꽃, 민들레 같은 야생 풀꽃조차 한자리에 붙박인 채 저를 짓누르는 숙명과 맞서지요. 그렇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동백, 모란, 작약, 산수유, 풍년화, 목련, 영산홍, 개나리, 진달래, 매화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배나무같이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는 초목도 맹추위 속에서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가만히 들어봐요. 초목이 속삭이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요. 헤르만 헤세는 ‘봄의 말’에서 그 말을 받아 적었어요. “어린애들은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살아라, 자라라, 꽃피라, 희망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내밀라.//몸을 던지고,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느덧 입춘 지나고 우수입니다! 기세등등하던 겨울은 물러나고 곧 누리에 봄이 오겠지요!
파주 교하에서 첫겨울을 나며 오래 소식이 끊긴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젊은 날의 혼돈과 기쁨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당신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은 따뜻한가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잘 살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의 살아냄은 태반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다림은 침묵과 혼돈을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지요. 독일 철학자 니체가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의 그 혼돈! 기다림이라는 씨앗 속의 배아인 혼돈이 체념의 내성(耐性)을 만듭니다. 하지만 당신, 잊지 말아요. 생명은 춤추는 별이 그러하듯이 불가능한 필연으로서 꿋꿋하게 제 앞의 불확실함을, 제 안의 혼돈을 견디며 살아남음의 영광을 취한다는 것을. 삶의 광휘는 오직 혼돈을 견딘 결과로서 눈부십니다. 당신의 처지가 나쁘다면 좋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기다리기를, 부디 불행에 꺾이지 말고 끝까지 견디고 잘 살기를 바라요. 잘 있어요, 당신.
>>장석주 시인
스스로 산책자 겸 문장 노동자라 일컫는다. 매일 사과 한 알을 먹고 산책하며 침묵과 고요, 단순한 것과 느린 것, 바다와 대숲을 좋아한다. ‘마흔의 서재’, ‘철학자의 사물들’,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외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서둔야학교 학생 중 몇 명은 주로 인근에 있는 ‘푸른지대’로 일당을 받고 일을 다녔다. 푸른지대는 그 당시 딸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는 서둔벌이 온통 선남선녀의 물결이었다.
농대 후문에서 도보로 3분 이내 거리의 유원지로 개발이 잘된 푸른지대는 갖가지 수목이 우거졌는데 커다란 백합나무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빨갛게 핀 해당화, 아침 이슬을 머금고 보랏빛 또는 흰색으로 청초하게 빛나던 아이리스,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라일락의 보랏빛 향기, 기품 있는 여인의 자태. 목련이 있었고, 주목, 눈향나무 등의 관목들도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푸른지대 주인집은 많은 화초가 우거진 곳에 들어앉아 있어서 언제 봐도 녹색 지붕의 빨간 벽돌 집은 ‘꿈의 집’이었다. 왼쪽의 커다란 2층 건물은 식당으로 썼고 오른쪽에는 딸기 판매점이 있었다. 그중 철골조로 둥근 아치를 만들어 그 위에 등나무를 얹었는데 보랏빛 등나무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아련했다.또 정원 중앙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가장자리로도 수국, 해당화, 장미 등이 피어 있었고 집 앞에는 함박꽃의 자줏빛 웃음이 흐드러지곤 했다.
아침 8시쯤에 일을 나가면 우선 딸기를 담는 채반부터 물에다 불려서 솔로 닦아 헹군 후 건조시켜야 했다. 5월의 태양은 눈부셨고 초록빛 타원형의 잎사귀 밑에는 빨갛게 익은 딸기가 수줍게 숨어 있었다. 이제 막 하얀 꽃이 핀 것도 있었고 대개는 중심이 되는 가지에 아직 익지 않은 올망졸망 크고 작은 열매들이 달려 있었다. 익은 것은 딸기 한 그루에 한 개 또는 두 개 정도였고 어느 것은 아예 익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 이슬이 딸기 잎에 맺혀 있다가 딸기를 따려고 잎사귀를 젖히면 딸기 밑에 깔아둔 볏짚 위로 이슬 진주가 '또르르’ 굴러내리곤 했다. 또 어느 때는 조그맣고 귀여운 청개구리가 잎에 앉아 가슴을 ‘팔딱팔딱’거리다가는 ‘펄쩍’뛰어서 달아나기도 했다.
딸기를 딸 때는 다른 것을 건드려 고개를 부러뜨리면 안 되었다. 아주 조심해서 익은 것만 따되 줄기를 너무 길게도 그렇다고 짧게도 자르면 안 되어, 엄지와 검지로 꼭지를 잡고 먹기 좋게 꼭지 줄기가 1㎝ 정도만 달리게 손톱으로 잘라냈다. 그래서 딸기를 따다 보면 어느새 손톱에는 초록빛 풀물이 잔뜩 들어 있곤 했다.
미국 남부의 목화 따는 아가씨들을 감독하던 감독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전체적으로 깡마르고 얼굴이 까만 최 씨 아저씨가 우리를 감독했는데 그분은 늘 장화를 신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필자는 그분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조금 큰 소리만 내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딸기를 딸 때는 앉아서 따면 안 되고 꼭 엎드려서 따야 했다.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늘 반대로 말했다. “좋은 것은 먹고 나쁜 것만 골라 담아라.” 한참 일하다 보면 아침 이슬에 신발이랑 양말이 다 젖어버리고 허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따끔따끔한 5월의 태양에 팔이 까맣게 타다 못해 허물이 벗겨졌다.
딸기는 한 채반에 2㎏ 정도씩 담았다. 채반이 다 차면 그것을 양손에 하나씩 받쳐 들고 딸기 파는 매장으로 일렬로 행진해갔다. 딸기를 씻을 때는 큰 그릇에 물을 충분히 부은 후 딸기를 가만히 쏟아 붓고 두 손바닥으로 몸체를 살짝 눌러 물에 잠겼다 올라오게 한 다음 건져서 다시 한 번 맑은 물에 헹궈 깨끗하게 건조된 채반에 담았다. 밭에서 금방 따온 것이기에 그 따글따글한 감촉을 씻으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에 따라 좋은 음악을 선별해 들려주는 DJ 일은 농대생들이 교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생상스의 ‘백조’ 타이스의 ‘명상곡’등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소품이 흐르는가 하면 ‘홍하의 골짜기’, ‘여름날의 세레나데’, ‘체인징 파트너’등 부드럽고 달콤한 팝송들이 한낮의 태양 아래 조용히 울려퍼졌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는 그 꿈을 꾸듯이 아름다운 선율이 일시에 나른한 환상의 나라로 인도하곤 했는데 어찌나 필자를 사로잡았던지 지금도 그 흐느적거리는 음의 선율이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일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또한 지금 나오는 곡이 누구의 무슨 곡인지 생각하며 반복해서 들으니 자연스럽게 음악 공부도 되었다.
‘딜라일라’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팝송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주인집 아줌마가 노래 중에 ‘딜라일라’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DJ 보는 농대생들이 "아마 그것밖에는 아는 게 없겠지" 하면서 자기들끼리 ‘킥킥’대며 아줌마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비록 집이 가난해 그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망정 '지적으론 우리가 우월해' 하며 과시하는 것 같았다.
매점에서는 두 명의 이대생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 살집이 넉넉한 여학생이 하는 얘기가 “자고로 미운 여자란 없는 법이란다. 마른 여자는 골격미인이고 살찐 여자는 육체미인, 아는 것이 많은 여자는 지성미요, 좀 모자란 듯한 여자는 백치미인이란다” 했다.
필자는 딸기 따는 일은 초기에 잠깐 했고 이내 매점에서 일을 보았다. 매점에서 일을 보던 우리들은 점심을 특별히 푸른지대 주인집에서 먹었는데 우리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식탁이 풍성했고 간혹 처음 보는 음식들도 눈이 띄었다.
이때 처음으로 야채샐러드를 맛보았는데 그 싱그러운 맛이 기가 막혔기에 기억을 되살려 나중에 집에서 해먹었는데 이상하게도 물만 많고 도무지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때까지 ‘마요네즈’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던 필자가 야채를 준비해놓고는 우유를 들이부은 것이다. 그 당시 필자가 갖고 있는 상식으로는 흰 색깔이 나는 액체는 우유뿐이었으므로.
필자는 어쩌다 며칠에 한 번씩 점심을 먹고는 거의 걸렀다. 밥을 얻어먹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기에 주인집 아줌마가 먹으라고 몇 번씩 채근을 해도 먹지 않았다. 그때마다 하얀 얼굴, 작은 눈의 아줌마는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고집이 세니?"
대개는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골라낸 찌꺼기 딸기로 배를 채웠다. 다른 사람들은 딸기에 연유를 부어서 먹기도 했다. 대부분은 설탕을 찍어서 먹었지만 필자는 설탕을 찍지 않고, 딸기도 잘 익은 것은 맛이 싱거운 듯해서 덜 익어서 파란 부분이 많은 딸기를 즐겨 먹었다. 그때 딸기 맛의 감별법을 익혀두어서 지금도 어떤 딸기가 맛이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
당시의 딸기 품종은 주로 ‘대학 1호’와 ‘아모아’였다. 딸기를 사러 매점에 찾아온 손님들은 필자의 피부에 감탄하곤 했다.
"딸기를 많이 먹어서 피부가 고운가보네."
"어쩌면! 이런 시골에 피부가 백옥 같은 아가씨가 있네!"
딸기는 씻어서 채반에 담고 지름이 10㎝쯤 되는 하얀 플라스틱 접시에는 흰 설탕을 적당히 담아서 손님들이 원하는 자리에 배달했다. 갖가지 수목과 화초 사이에 벤치가 놓여 있어 손님들은 거기서 먹었고 때로는 잔디밭에 앉아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젊은 남녀 아베크족들이었고,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여자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예쁜 옷들을 입고 와서는 고운 자태를 뽐내었다.
필자는 그들과 처지를 비교해보며 과연 어른이 되면 딸기를 따는 신분에서 딸기를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신분이 될 수 있을까 하면서 회의에 빠지곤 했다. 여자 손님들의 밝고 화사한 모습이 부러워서 한참 동안 쳐다보기도 했지만 곧 일에 빠져 잊어버렸다.
하루는 한 남자 손님이 손을 씻겠다고 해서 우리가 물을 부어주었다. 그러자 “당케이”라고 말해 우리가 까르르 웃었더니 “아, 독일 말로 고맙다는 뜻이야” 하고 당황해하며 설명했다. 아마도 그 손님은 우리가 땡큐도 제대로 발음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웃는 줄로 오해했던 것 같다.
푸른지대는 딸기 외에도 수익사업으로 밍크와 앙고라토끼를 키웠는데 앙고라는 눈만 빼꼼 내놓고 온몸이 털북숭이었다. 밍크는 사람도 마음대로 못 먹는 양미리라는 생선을 먹고 살았다.
푸른지대는 어려웠던 시절 우리에게 이모저모로 도움을 많이 준 곳이다. 일자리가 부족할 때 우리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어 필자는 열네 살 때부터 언니와 함께 찬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에서 어린 소나무의 묘목을 캐서 나르기도 했고, 햇볕이 따가운 딸기밭에서 일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는 하루 품삯이 20원이었는데 푸른지대는 우리 동네 구멍가게와 계약을 맺어 푸른지대의 일당표를 가져가면 가게에서 현금처럼 취급해주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식량난에 허덕이게 되니 가게에서는 면발이 가느다란 국수의 양을 20원짜리로 만들어놓았고 주민들은 대개 이 국수와 일당표를 맞바꿈했다. 우리는 그것을 끓여먹으며 일을 다녔다.
주인아저씨와 아줌마는 많은 아이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우리 형제를 귀여워하여 햇볕이 없고 시원한 매점에서 일을 보게 해주었고, 점심도 제공해줬다. 또 서둔야학교 선생님들이 도움을 청하니 전선을 제공해줘 학교에 전기가 들어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번창일로에 있던 푸른지대가 딸기술인 ‘파라다이스’를 개발했다가 판로가 신통찮은 바람에 일시에 부도가 나버렸다. 당시 아저씨와 아줌마는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필자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두 분이었기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사람들에게 욕심이 없다면 발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욕심이라는 풍선은 적당 양의 바람만 넣어야지 너무 많이 넣으면 터져버린다. 문제는 그 적정선이 어디까지인지 미리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