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금융기관에서 줄줄이 대규모 희망퇴직이 발생했다. 비대면 금융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영업점의 인원이 줄어든 탓이다. 은퇴한 전문직 종사자들은 근로 의욕이 상당히 높아서, 퇴직 이후에도 쉬지 않고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전문직 출신 은퇴자는 창업이나 창직에 관심이 많다.
참고 한국고용정보원, 신사업창업사관학교
적성을 고려한, 창업
박 씨는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선박 전문가였다. 선박 기술 서비스 분야에서 임원까지 올랐다. 오랫동안 일한 회사를 떠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사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실제로 적성검사를 하면 사업가 체질로 나왔다. 그래서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분야인 선박 기술 서비스와 선박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다른 일도 생각했지만, 이제껏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은 포기할 수 없는 큰 자산이었다.
실제로 시니어 창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창업 기업은 34만여 개로 2019년과 비교해 13.3% 늘어났다. 특히 연령별로 규모를 파악했을 때 60세 이상의 전체 창업은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8% 올랐고, 기술창업은 28% 상승했다.
이들이 창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고, 창업의 진입 장벽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경련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중장년 구직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6명 이상은 6개월 이상의 장기 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100년행복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퇴직자 3명 중 1명은 자영업을 선택했다. 선호하는 이유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업의 장기화와 손쉬운 접근성이 창업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창업의 길도 어렵다. 국민의힘 소속 양금희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창업 기업 생존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창업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9.2%로 집계됐다. OECD 주요국 창업 기업 5년 생존율 41.7%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한편 코로나19도 창업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창업 문의는 많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창업을 미루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만약 창업을 준비한다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창업을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창업자, 아이템, 상권, 창업자금이다. 어느 하나도 부족함 없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창업자의 역량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아이템을 찾았다면 적합한 상권을 알아보고, 그 상권에 입점하기 위한 창업자금을 비축해야 한다. 다음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을 살펴보고, 최근 부상 중인 유망 창업 아이템을 소개한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
#1 적성이 최우선
창업은 만만치 않다. 남들이 한다고 덩달아 휩쓸려 창업을 시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선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좋다. 퇴직한 중장년 세대는 성격이나 장단점 같은 본인의 정확한 특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평소에 즐기는 취미나 흥미,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역량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 유망 아이템은 적합성을 고려
유망 아이템을 정하라고 하면 모두 장사가 잘되는 일을 선택한다. 물론 수익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창업자와의 적합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직접 자료 조사도 하고, 발품을 팔면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황윤정 한국열린사이버대학 디지털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시니어인 만큼 동년배의 니즈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3 상권의 분위기와 유동 인구
점포 창업에서 상권은 중요하다. A급 상권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무조건 A급 상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A급 상권의 점포는 임대비용도 비싸고 권리금도 장난이 아니다. 상권이 좋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상권 내에서도 입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입지에 맞는 업종이 다 다르다. 황 교수는 “상권의 분위기가 업종과 어울리고, 유동 인구가 많은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4 비용과 매출
이제까지 조금 이상적이었다면 지금은 현실적인 얘기를 할 필요가 있다. 창업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창업자금은 총투자비용의 70%를 자기 자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본이란 그 돈이 없어도 당장 사는 데 문제없는 자산을 말한다. 만약 자금이 부족하면 선택한 업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창업 규모를 줄이는 것이 낫다. 중장년 창업 컨설팅 관계자는 “예상 비용이나 예상 매출액을 꼼꼼히 따져보고, 관련 분야의 비용 지원 제도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2021 뜨는 창업 아이템
맞춤형 향기 서비스 ▶ 최근 향초와 디퓨저 같은 향기 산업이 급성장 중이다. 영국 시장 분석 업체 ‘IAL컨설턴트’에 따르면 글로벌 향기 산업 규모는 2022년까지 약 40조 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 및 스트레스 해소로 향기 제품이 많이 애용된다.
공유 주방 ▶ 공유 경제를 활용한 공유 주방 사업이 뜨고 있다. 점포 창업을 하는 대신 공유형 주방을 이용해 배달음식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점포 창업보다 초기 비용이 저렴하다. 공유 주방은 4평 정도의 공간에 1000만 원 내외의 보증금과 월 160만 원 정도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배달을 이용하는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창문농장 ▶ 반려식물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창문농장(Windowfarm)이 뜨고 있다. 창문농장은 아파트 거실이나 베란다 창문에 수직으로 설치하는 수경 재배 시스템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친환경 채소를 직접 재배해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홈가드닝과 플랜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많아 앞으로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새로운 대안, 창직
A씨는 호텔리어로 20년 동안 일하다 은퇴했다. 은퇴 후 여가를 즐기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아내의 잔소리와 더불어 계속해서 비는 통장 잔고를 메워야만 했다. 얼떨결에 대리운전을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취객의 난동과 폭언 및 욕설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들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 이동 서비스에 영감을 받아 결혼식 당일 웨딩카로 신랑 신부를 이동시켜주는 웨딩쇼퍼 사업을 시작했다. 호텔리어와 대리운전 경험을 발휘해서 창직을 시도한 것이다.
위는 대표적인 창직 사례다.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탓에 중장년의 재취업도 쉽지 않다. 음식점, 숙박업, 카페 등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는 창업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고학력 베이비붐 세대가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창직’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생계유지와 함께 일로써 보람을 얻기를 원하는 중장년층이 많아지면서 창직을 원하는 수요가 생기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원하는 진로 유형을 파악했는데, 창직 추구형이 64.27%로 가장 높았다. 이 유형은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지속해서 경제적 소득을 얻기를 희망했다. 주로 장기 근속한 도시의 화이트칼라 남성 노동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구직하고 있었으며, 정부의 창업과 자영업 지원 정책을 선호했다.
창직은 쉽게 말해서 새로운 직무를 만드는 일이다. 그 직무를 하기 위한 내용과 지식, 기술 등이 포함된다. 창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제품이나 기술이다. 반면에 창직은 직무를 분석하고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창업과 창직을 자주 혼동하는데, 이는 창직을 통해 구현되는 방법이 대부분 창업이기 때문이다.
창직을 위해서는 참신성, 수익성, 실현 가능성,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일은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것인 만큼 참신해야 하고, 새 직업의 직무 수행은 기존의 일과는 확실히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직업’이기에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적 및 제도적 여건을 살펴야 한다. 창직 관련 전문가는 “창직은 새로운 업을 만드는 일이기에 업으로서 지속할 수 있고, 경제적 소득이 있어야 한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도 이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창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미래에 전망이 밝은 창직 업종을 소개한다.
예비 창직자가 알아두면 좋은 Tip
#1 다방면으로 탐색하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웰빙에 대한 관심과 주 5일 근무 확산으로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나 파티 플래너가 생겨났다. 또한 빅데이터의 발달로 빅데이터 분석가도 유망한 직업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새로운 직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변화, 수요자의 욕구, 과학기술의 발전 등 다방면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2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해외 직업 중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적용 가능한 직업을 찾을 수 있다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맥주 주조사나 VJ 같은 직업도 해외에 있던 직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경우다. 다만 각 나라의 문화, 제도, 시장에 따라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직업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조정해야 한다.
#3 융합을 고려하자
기존 학문, 직업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음악치료사나 미술치료사가 있다. 기존 노동 시장에 전혀 없던 직무보다 기존 직업 간의 결합 또는 융합으로 발생한 직업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직업 간의 결합과 융합 가능성을 찾아보자. 특히 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장을 주의 깊게 보면 좋다.
#4 분화를 검토하자
새로운 수요에 따라 기존 직업에서 분화되거나 전문화하여 직업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애견 옷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애견 옷 디자이너가 나타났다. 이 직업은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핵가족 및 독신 인구 증가로 애완동물 시장이 성장하면서 패션 디자이너에서 분화된 것이다. 기존의 직업과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살피면서 분화할 수 있는 직업을 눈여겨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직
로봇 컨설턴트 ▶ 일반 기업의 로봇 사업 도입 및 전환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콘셉트 디자인, 타당성 연구, 품질 관리 등 다양한 테스트를 실시한다. 고령화와 자동화 추세에 따라 생활 전반에 로봇 사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심 RPG개발자 ▶ 도시를 게임판 삼아 참여자가 직접 역할을 수행하면서 도시의 문화나 역사를 체험하는 일종의 놀이마당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게임을 문화 체험, 도시 체험 등 다양한 영역에 접목하여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VR이나 AR 체험이 늘어나면서 유망한 직종으로 뜨고 있다.
스마트팜 전문가 ▶ 시설 원예 및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사물인터넷 등 ICT를 활용해 농가 시설을 현대화하고, 이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 및 수익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스마트팜 설계, 구축, 운영 등에 관해 조언한다. 스마트팜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정한 8대 혁신성장 산업 중 하나다.
갈림길에 섰을 때 사람은 세 가지로 나뉜다. 남들이 지나간 길을 가는 사람,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 남들이 꺼리는 길을 기꺼이 가는 사람. 어느 것이 더 맞고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걸 ‘용기’라 읽고 ‘모험’이라 쓴다. 이번 호에서는 전형적인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타투이스트 조명신(56)을 만났다.
의사와 타투이스트. 이 두 단어를 보고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수술실처럼 어두운 곳에서 일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접점이 없어 보였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한쪽은 엘리트에 가깝고, 다른 쪽은 고독한 예술가 같다. 바둑으로 치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백돌이고, 타투를 새기는 타투이스트는 흑돌처럼 보인다. 물론 의미의 경중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미지의 대조는 확실하다.
이 거리감을 증명하듯 수술복을 입은 채 타투 시술을 하는 그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두 번째는 궁금했다. 메스를 들던 의사가 왜 수술복을 입고 몸에 타투를 새기는 걸까? 의사로서 남극에도 다녀오고,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공부한 이유는 뭘까? 특이한 이력에 관한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위해서 그를 만나 지나온 시간 속 사연을 들어봤다.
성형외과 의사 시절 타투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당시 의사로서 타투 제거 시술을 많이 했다. 진짜 다양한 타투를 많이 지웠다. ‘착하게 살자’, ‘영숙아! 사랑해’와 같이 다소 유치한 문장부터 화려한 꽃이나 화살표가 꽂힌 하트 등을 지웠다. 일종의 낙서라고 보면 된다. 10대 때는 이렇게 하고 다닐 수 있지만, 커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 했던 타투를 지우는 분이 많았다.
타투이스트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느 날 병원에 장미가 그려진 타투를 지우러 온 분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려진 문양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 장미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마음에 무척 들어서 시술한 분을 찾아갔다. 그분은 송탄 미군 부대 앞에서 ‘키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셔서, 제자가 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분 덕분에 타투이스트로서 첫걸음을 잘 뗐다. 당시 타투는 법적으로 의료 행위였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없었다. 나는 성격상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의사 교육 과정에 타투가 있었다면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타투 시술을 시작했고, 실력을 더 쌓기 위해 미국에 가서 배우기도 했다.
메스를 들지 않는 의사, 아쉬움은 없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의사가 된 건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위에 있는 형과 누나들이 다 재수,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집에 부담이 컸다. 알다시피 등록금부터 생활비, 월세 등등 들어가는 돈이 많지 않나? 우리 집 형편으론 그게 빠듯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의사를 선택했다. 학력고사 성적도 잘 나와서 의대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다만 경제적 부담 없이 다니고 싶어서 여러 의대를 알아봤는데, 마침 한 대학에서 장학금과 함께 매달 용돈을 지원했다. 그렇게 들어간 의대였지만,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길과 달라서 방황했다.
원래의 꿈은 고고학자
가고 싶었던 길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며 별을 관찰하거나 고대의 유물을 발견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직업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그때는 잠시 보류했다. 의사가 된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런 마음으로 잠시 그 꿈들을 내려놓았다.
매머드 연구가 그 연장선일까요?
연구까지는 아니고 매머드와 관련된 공부를 잠깐 했다. 끝내 못 이룬 고고학자의 꿈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지도 교수님이 사하 공화국으로 매머드 연구를 하러 가자고 제안하셔서 함께 다녀왔다. 사하 공화국에는 냉동 상태로 발견되는 매머드가 많아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의사로서 미생물학을 공부한 적도 있고, 인류학이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흔쾌히 다녀왔다. 예전에는 남극에도 잠깐 있었다.
남극에는 어떤 일로 다녀오셨나요?
월동의사로 다녀왔다. 알다시피 남극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니다. 아무나 갈 수 없다. 의사라고 해서 남극 기지의 월동의사로 무조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특수성이 있어,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기회였다. 한 명을 뽑았는데 여덟 명이 지원했다. 정말 간절하게 가고 싶어서, 전략적 승부수를 띄웠다. 그때 관장 부서가 복지부였는데, 복지부 장관에게 내가 가야 하는 이유 7가지를 적어서 편지를 보냈다. 장관 대신 실무자가 편지를 읽고, 나의 적극성을 높이 샀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결국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중보건의 시절 중 1년을 남극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의사로서 본분을 잊은 적 없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했다. 밑에 있는 직원도 와서 만류하고, 동료 의사도 반대하고, 타투이스트도 찾아와서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동료 의사로부터 질타를 많이 받았다. “왜 그런 걸 하냐”는 식이었다. 홈페이지에는 “이게 그림이냐? 학원이라도 다녀라” 같은 댓글도 달렸다. 아무 맥락 없이 “밤길 조심하세요” 하며 험악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타투이스트는 직접 찾아와서 자중하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꾸준하게 활동하고 교류하면서 이제는 그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주로 어떤 타투를 하시나요?
정해진 틀은 없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 다만 의사이다 보니 메디컬 타투에 신경 쓰고 있다. 의료 문신 혹은 재건 문신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타투가 미(美)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타투는 복원에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백반증 환자의 경우 하얗게 된 부위를 타투를 이용해 보통의 살처럼 만들어준다. 의사로서 가진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타투를 하면서 내 신분을 한 번도 망각한 적은 없다.
타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성형외과를 하면서 3만 건 정도의 쌍꺼풀 시술을 했는데 얼굴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타투는 시술한 사람의 얼굴이 모두 기억난다. 특히 한 부자(父子)의 사연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유대가 없던 부자였는데, 타투가 하나의 매개체가 됐다. 아버지는 타투를 한다는 아들을 한사코 말리셨는데, 직접 병원에 와서 보시고 생각을 바꾸셨다. 나중에는 등판에 타투를 새기고 가셨다. 마지막 시술을 받고 가시면서 고맙다고 했다. 타투 때문에 평소 대화가 없던 아들과 말문을 열게 됐다고 하시면서. 그 기억이 참 오랫동안 맴돌았다.
타투는 구속할 수 없는 자유
20년 동안 타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타투는 늘 새롭다. 코와 쌍커풀은 정형화된 방법으로 시술한다. 하지만 타투 세계에서는 그런것이 없다. 사람마다 옷을 입는 방법이나, 귀걸이를 고르는 취향도 다 다르지 않나? 타투도 마찬가지다. 같은 독수리 도안이라도 취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서 늘 새로운 걸 시도했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새로움이 없었다면 지루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인 소양을 알려준 건 키미이지만, 실제로 나를 키운 건 고객이다. 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한다. 기자나 포토그래퍼도 그렇지 않나? 나도 똑같다. 타투도 같은 형식 속에서 계속해서 다른 내용을 담는 일이다. 끊임없는 새로움이 내 원동력이다.
삶의 롤모델이 있나요?
앙드레 김 선생님과 반 고흐를 존경한다. 둘 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좋아한다. 같은 해바라기이지만 고흐는 전부 다 다르게 표현했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는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앙드레 김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것도 모자라 패션에 자신만의 가치를 불어넣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큰 목표는 없다. 그냥 타투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 지금 하는 걸 잘하고 싶다. 2년째 소방관에게 무료로 타투를 시술해주고 있다. 앞으로는 경찰관과 응급실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사소하지만 나의 무료 시술이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 테러가 발생할 당시 태평양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후에 미국 여행 중 만난 분이 인상적이었다. 팔에 영어가 빼곡하게 타투로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9·11 테러로 희생당한 소방관들의 이름이었다. 미안과 존경의 표시로 말이다. 그분을 만난 이후 나도 나중에 소방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결심을 이제야 실행하게 됐다.
타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구속할 수 없는 자유다. 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본인의 자유다. 독수리를 새기고 싶으면 새기면 된다. 20대에 할지, 나이 들어서 할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누구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운 것이다.
바둑 용어 중에 미생(未生)이란 말이 있다. 몇 년 전 유행한 드라마의 제목과 같다. 미생은 가능성을 품은 순간을 뜻한다.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서 상대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삶의 경로가 달라진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헷갈린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를 때가 많다. 선택의 결과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용기는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도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조명신 원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그가 선망하던 인디아나 존스처럼 고고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공중보건의 시절 남극 월동 의사에 도전했다. 의사로서 안정적인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수술실에서 메스를 드는 대신 몸에 타투를 새겼다. 유년 시절 못다 이룬 꿈에 다가가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탐구했다. 현재도 타투이스트로서 안주하지 않고, 메디컬 타투를 시술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바둑판 안에 갇힌 돌로 남기를 거부하고 늘 새로운 길을 찾으며 도전하고 있다.
그는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안락한 안정이 아닌 구속할 수 없는 자유를 좇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이지만 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에서 ‘안정’ 대신 ‘모험’으로 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년에 소박하게 타투와 관련된 책을 쓰고 싶다는 조명신 원장의 또 다른 모험을 응원한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 하면 그녀의 연인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떠올린다. 그녀를 비롯한 당대 여성 예술가들은 사랑하는 연인의 빛에 가려 탁월한 예술성이 평가절하되곤 했다.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 프리다 칼로 등이 그러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녀들의 작품도 속속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독자적인 아티스트로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그중 대표적 인물이 바로 마리 로랑생이다.
로랑생의 작품에는 기욤 아폴리네르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특유의 그루미한 무드로 녹아 있다. 특히 그와 이별한 후의 작품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한층 두드러진다. 주로 핑크, 블루, 그레이 등 파스텔 톤을 사용해 몽환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미묘한 나른함에 취하고, 때론 쿨한 색조 안에 스며든 사랑스러운 온기를 느끼기도 한다.
지난해 코코 샤넬(Coco Chanel, Gabrielle Chanel, 1883~1971)의 일생을 다룬 영화 코코 샤넬(Coco Before Chanel, 2009)을 봤다. 패션의 아방가르드이며 모더니스트인 샤넬의 삶이 어쩐지 로랑생과 퍽 닮아 보였다. 짧지만 연인과 열렬히 사랑했고 온 열정을 쏟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해낸 강인함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들. 사실 두 여인에겐 한 가지 사연이 있다. 로랑생이 무대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즈음, 샤넬이 로랑생에게 직접 초상화를 의뢰했던 것. 그런데 완성된 초상화를 본 샤넬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쓸쓸하면서도 우울한 기운이 감도는 그림 속 자신이 실제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에도 로랑생은 그림을 수정하지 않았다. 두 여인의 팽팽한 신경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결국 샤넬의 초상화(Portrait of Mademoiselle Chanel, 1923)는 로랑생이 평생 소장하고 있다가 사후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로랑생의 그림을 내키지 않아 했던 샤넬의 심정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명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녀원의 고아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샤넬은 그곳에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패션업에 뛰어든 그녀는, 모진 세파와 우여곡절 속에서도 가장 독립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삶을 일궈나간 당찬 여인이었다. 모던하면서도 우아한 샤넬의 디자인은 화려한 오브제를 포인트로 단조로움을 없애며 절제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생전 그녀가 구축한 샤넬 디자인은 현재 ‘샤넬’ 브랜드 패션쇼에서도 명맥을 잇는 고유의 콘셉트가 됐다.
“심플함은 우아함의 열쇠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 “성공은 종종 실패를 모르는 사람에 의해 달성된다”, “나는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도 당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까” 등 샤넬이 남긴 수많은 명언 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내가 바로 스타일이다”(Style, that’s what I am)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여성성 안에서 여성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악하면서도, 자존심과 당당함을 패션으로 승화하며 현대 여성을 대변했다.
샤넬의 근거 있는 자신감에 반해버린 까닭일까? 개인적으로 로랑생이 그린 샤넬 초상화도 좋아하지만, 샤넬이 그토록 거부했던 마음도 절절히 이해가 간다. 아마도 그녀는 백년전쟁의 선두에서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끈 잔 다르크처럼 자신감이 충만한 진취적 신여성의 모습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제가 사는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 가는 길목의 인구 20만 명이 사는 도시입니다. 온타리오의 많은 주택지처럼 계속 인구가 팽창해 집값이 많이 오른 타운입니다만 제 주거지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큰길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콘도를 구입했던 게 6년 전인데 한적하고 운치 있는 동네를 떠나 큰길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것은 결코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쾌적한 동네가 아니어서 망설이기는 했지만 수년 전 과감하게 결론을 내렸던 이유는, 제 연령대의 여성들에 비해 건강이 빨리 나빠지고 있어 시니어(senior, 65세 이상의 노인을 칭함)가 될 때를 위한 필수 준비를 서둘렀던 것입니다.
모든 편리한 시설들이 가까이 있습니다. 가정의 병원과 치과, 약국, 우체국, 급할 때 필요한 일용품과 간단한 식품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 버거킹 햄버거 숍까지 근처 500m 거리에 있어서 차를 더 이상 몰 수 없게 되었을 때 걸어서 가거나 휠체어를 밀고도 갈 수 있습니다. 1km 떨어진 곳엔 백화점이 있는 쇼핑센터와 거래 은행도 있습니다. 큰길 건너편에는 예술대학교가 있어 학교 입구에 여러 곳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들이 있고, 그 버스들은 대개가 버스로 5분 거리인 GO(Government of Ontario) train 기차역으로 연결되어 있어 근처 도시와 토론토까지 한두 시간 정도면 승용차 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
캐나다 노인복지혜택은?
시니어가 된 후 처음으로 캐나다에 사는 시니어들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시에서 받는 일반 혜택은 전혀 없고 한국처럼 노인정 같은 편리시설은 인구 20만 명인 이 도시에 오직 두 곳인데 거리가 멀어 자동차 없이는 불편합니다.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수업료는 무료가 아니며 치매 환자들을 도와주는 데이케어센터(Daycare Center)도 없습니다. 집에서 오갈 수 있는 시니어 데이케어센터가 아니라 아예 치매 환자만 모여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연방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OAS)과 시니어이지만 저축성 국민연금(CPP)을 적립하지 않았거나 다른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 시니어에 대한 보조금 액수도 알아봤습니다. 현재 캐나다 국적자이거나 영주권자 시니어가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은 최고 한도액이 한 달에 613.53달러(약 55만 원)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자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으로 40년 이상 캐나다 거주자만이 최고 한도액을 수령할 수 있으며 거주기간에 따라 수령액수가 달라집니다. 25년을 거주한 저는 현재 242.98 달러(약 21만 원)를 받고 있으며 정부 보조금은 일절 없습니다. 저소득층 시니어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GIS)은 노인기본연금과 보조금을 합해 최고 한도액이 1529.95달러(약 136만 원)입니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생활 어려워
노인기본연금 수령액이 적든 많든 소득이 전혀 없을 경우의 총합계이며 별도의 소득이 있다면 보조금 액수는 적어집니다. 정부 보조금 최고 한도액은 916.38달러(약 81만3000원)입니다. 그리고 저축성 국민연금의 최고 한도 수령액은 한 달에 1200달러 정도이지만 그것도 얼마나 오래 적립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연금은 소득으로 계산되어 정부 보조금 수령액이 적어집니다.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매월 정부 보조금과 노인기본연금을 합한 최고 한도 수령액 1529.91달러(약 136만 원)의 연금과 저축성 국민연금 최고 한도 수령액 1200달러로 캐나다에서, 특히 GTA(Great Toronto Area) 토론토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이 경우는 보조금이 줄어듭니다. 제 경우는 저축성 국민연금 수령액이 약 600달러여서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과 국민연금 합계는 842.98달러입니다.
그래서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산이나 저축이 없는 시니어들은 연금으로 살 수 없어 집을 담보로 역대출을 받아 살아가든지 집을 팔고 정부 보조 임대 아파트로 옮겨가야 하는데 신청에서 입주까지 10년이 걸립니다. 이런 경우에도 무료가 아닌 연금 액수와 소득에 비례한 임차료를 정부에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주택 소유자가 아니거나 수입원이 없거나, 저축한 돈이 없는 시니어들은 홈리스가 되거나 빈민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서민층의 오래된 아파트 임대료가 한 달에 1800달러(방1, 거실1, 부엌, 욕실), 2000달러(방2, 거실1, 부엌, 욕실)인데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니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 식품비도 30%나 올랐습니다(온타리오 한국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한국산 식품비는 2년 전에 비해 40~50% 상승). 지하철과 버스 이용료도 무료가 아닙니다.
캐나다의 IT 통신요금은 비싸기로 악명 높습니다. 제 경우 핸드폰 수수료는 8기가 사용료로 매월 82~100달러, 가정용 인터넷은 제한된 TV 채널 사용료와 전화비를 포함해 125달러를 지불합니다. 제가 받는 노인기본연금이 통신 시스템 사용료로 모두 쓰이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콘도 관리비는 매월 1000달러, 주택세는 1년에 3000달러 정도 됩니다. 여기에 식품비, 약값, 보험료, 유류, 차량 유지비 등까지 더하면 아무리 절약해도 정부에서 받는 연금으로는 매월 수천 달러 적자입니다. 그러니 임대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든 자가 소유의 콘도가 있든 상관없이 정부가 저소득층 노인에게 주는 최고 한도액 보조금으로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물론 직장연금(소방서원이거나 공무원, 은행 같은 대기업의 경우)을 많이 받는 시니어는 형편이 좋겠지만요.
의료 서비스는 무료이지만 시니어들도 예외 없이 MRI·CT 촬영, 암 검사 등을 하려면 6개월~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전문의와의 상담은 최소 3~6개월 정도 걸리며 수술은 1~2년씩 차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약값도 개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1년에 한 번 시력검사, 폐렴·대상포진·독감 예방주사, 건강검진이 정부에서 무료로 주는 혜택이지요. 긍정적인 일은 슈퍼나 백화점이 일주일에 하루 시니어를 위한 날을 정해 5~10%의 할인 판매를 한다는 것입니다. 맥도널드는 시니어에게 커피를 1달러에 판매합니다.
복지국가로 소문난 캐나다이지만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캐나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시니어의 실상은 녹록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시니어들이 모여 놀 곳도 없는지 특히 남성들이 맥도널드 숍이나 백화점 입구 소파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한국에 사는 시니어들만 힘든 게 아니고 한국에만 빈곤층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세계 어느 국가를 가도 복지국가 캐나다처럼 빈민도 있고 거지도 있고, 힘없고 돈 없는 퇴직한 노인들이 길거리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래도 한국에는 지하철 연결이 잘되어 있어 시니어들이 무료 지하철을 이용해 갈 곳도 많아 보였습니다. 또 빠른 의료 시스템,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 보조금과 간병 도우미를 쓸 수 있는 혜택이 있고, 노인 무료 데이케어센터도 있으니 여기 캐나다보다 훨씬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고생만 많이 하고 이젠 젊은 세대들에게 부양은커녕 존경도 받지 못하는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저 역시도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삶을 다 바친 후 이 시대까지 숨차게 달려온 코캐네디언(Ko-Canadian) 시니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씁쓸하지만 이제 그 슬픔을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 디자이너로 종사.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구름 따라 떠돌며 구름 사진 찍는 나그네로 활동 중.
슈퍼리치의 소비가 가치를 묻는다. 과거에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 돋보이게 하기 위한 소비를 했다면 최근엔 가치를 따지고 스토리가 담긴 소비를 한다. 전 세계 슈퍼리치들은 과연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지 살펴봤다.
전 세계 슈퍼리치들은 어떤 상품과 어떤 서비스를 구매할까. 이들은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면 비용에 상관없이 구매하는 소비성향이 두드러진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주는 선물을 고를 때도 가치를 따진다. 슈퍼리치들이 소비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는 건 과연 무엇일까.
예술적 디자인 까다롭게 평가
슈퍼리치의 소비가 가치를 묻는다. 무작정 비싼 상품과 서비스에만 돈을 지불할 것 같았던 슈퍼리치들이 언젠가부터 가치를 따지고 스토리가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지갑을 연다. 먼저 슈퍼리치들이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것부터 살펴보자.
슈퍼리치들은 미용과 패션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들은 다른 슈퍼리치와의 만남에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미용에 대한 관심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은데, 품위를 위해서라면 지불해야 할 가격이 높건 낮건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전 세계 여성 슈퍼리치들이 이용하는 런던 불가리 호텔의 샴페인 목욕 서비스는 부자들만 누릴 것 같은 사치스러움이 있지만 가격 부담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약 67만 원의 호텔 예약비를 먼저 지불한 뒤 서비스를 받을 경우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샴페인 목욕에 사용되는 수십 병의 와인은 따로 구비돼 있고 90분짜리 전신마사지는 약 90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슈퍼리치들은 까르띠에, 티파니, 부첼라티, 반클리프앤아펠 등의 명품 주얼리를 너끈히 구매한다. 이들이 수억 원짜리 주얼리를 구매하는 건 과시욕보다는 감상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프랑스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앤아펠’은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액세서리다. 반클리프앤아펠의 베스트셀러 중 ‘빈티지 알함브라 롱 네크리스’는 가격이 무려 7800만 원이나 되지만 상상력과 기술이 낳은 예술적 자태를 뽐낸다. 반클리프앤아펠은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사랑한 주얼리로 유명하다.
‘희소성’ 있는 브랜드 선호
남성 슈퍼리치라면 자동차, 특히 명차를 빼놓을 수 없다. 벤틀리, 마이바흐와 함께 3대 명차로 꼽히는 ‘롤스로이스’는 과거엔 아무나 탈 수 없는 차였다.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격이 안 된다는 이유로 구매를 거절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롤스로이스는 돈이 있어도 가질 수 없는 명차였기에 슈퍼리치들은 자신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이 차를 더 간절히 원했고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부여했다. 2009년 이후 롤스로이스는 ‘성공한 사람이면 누구나 탈 수 있는 차’라는 콘셉트를 내세웠고 전 세계는 물론 국내 슈퍼리치들도 기꺼이 거금을 내놓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6억 원대인 ‘팬텀’보다는 저렴한 ‘고스트’. 이 역시 4억 원을 훌쩍 넘는다.
슈퍼리치는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해 JTBC의 ‘캠핑클럽’ 핑클 편이 시청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캠핑 열풍이 다시 몰아쳤다. 슈퍼리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이 캠핑카에 많은 관심을 보이자 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를 개조한 프리미엄 차량 ‘화이트 하우스B’를 슈퍼리치용으로 내놓았다. 이 차는 다임러트럭코리아의 2차 제조사 화이트하우스코리아가 스프린터 편의기능을 업그레이드해 제작한 1억600만 원대 모델이다.
홈파티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안목
슈퍼리치에게 홈파티는 당연한 사교모임이다. 다른 슈퍼리치를 집에 초대해 그들만의 사교모임을 갖는 건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일종의 관례와 같다. 하지만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슈퍼리치의 홈파티는 의미가 없다. 이들은 집 안을 럭셔리하게 꾸며놓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목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재력을 과시하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기다.
홈파티를 즐기는 슈퍼리치들은 집 안 가구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들에게 인기 있는 가구는 북유럽 감성을 담은 덴마크의 ‘프리츠한센’이다. 절제의 미학, 미니멀리즘 등 프리츠한센이 추구하는 디자인과 슈퍼리치는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유명 아티스트 작품을 소장한다는 의미와 오랜 시간을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 때문에 사랑받고 있다. 특히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의자들이 인기다. 동글동글한 디자인의 ‘에그체어’ 가격은 최고 1900만 원을 호가한다. 최근에는 하이메 아욘, 오키 사토, 세실리에 만즈 등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새 가구를 만들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요리를 준비하는 주방도 슈퍼리치들이 당연히 신경 쓰는 장소다. 이곳에 놓는 오븐으로는 프랑스 ‘라꼬르뉴’가 손꼽힌다. 오븐계의 명품으로 알려진 라꼬르뉴는 전문 장인이 주문을 받아 제작하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를 자랑한다. 구매자가 컬러부터 소재, 외관 등 디테일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슈퍼리치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오븐’이라는 희소성은 가치 있는 스토리가 된다. 라꼬르뉴의 최고가 라인 ‘샤또 시리즈’ 가격은 오븐이 8700만 원, 후드가 2000만 원에 달한다. 이 오븐은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칼 라거펠트, 이브 생 로랑 등 수많은 유명인사가 애용하고 있다.
건강이 ‘최우선’
슈퍼리치는 건강을 위해 식재료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심지어 송로버섯이 들어간 소금만 먹는 슈퍼리치도 있다. 가격대가 20만 원을 훌쩍 넘지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식료품점도 아무 곳이나 이용하지 않는다. 영국 런던의 부촌지역 첼시의 대형마트나 세계 최고의 백화점으로 선정된 셀프리지 등은 슈퍼리치가 애용하는 마켓이다. 이곳에서 파는 이베리코 돼지 뒷다리 가격은 200만 원이 넘고, 알비노 철갑상어 알 1㎏은 무려 2000만 원에 육박한다.
전 세계 슈퍼리치가 건강관리를 위해 찾는 의료관광 패키지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EW 빌라 메디카’가 있다. 세포재생시술을 한 번 받는 데 드는 비용은 2000만 원, 3박 4일 의료관광 패키지는 약 3000만 원이다. 연회비가 1억 원이 넘지만 전 세계 부자들이 앞 다퉈 예약한다.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 영화배우 미셸 로드리게스 등 유명인사가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피트니스센터도 인기다. 슈퍼리치가 주로 찾는 해외 유명 피트니스센터는 1년 회원권이 900만 원이나 하는 곳도 있다. 국내에도 고액의 피트니스센터를 즐겨 찾는 슈퍼리치가 많다. 이들은 근육운동보다는 자세교정을 위한 운동에 더 관심이 많다. 이들이 자세교정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시간당 7만~8만 원 선이다.
‘스토리’가 있는 선물
슈퍼리치들은 주변인들을 위한 소비에도 과감하다. 오히려 선물을 고를 때 까다로운 취향을 드러내며, 작은 펜 하나를 선택할 때도 스토리가 있는 상품을 선호한다. 슈퍼리치들이 좋아하는 펜을 꼽자면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 ‘파버카스텔’이 단연 최고다.
파버카스텔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필기구 브랜드. 슈퍼리치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구매하는 상품은 ‘클래식 퍼남부코’ 시리즈로, 가오리 가죽이나 상어 가죽, 스네이크우드, 말총, 상아 등을 소재로 사용하고 심지어 2억 년 이상 석화된 나무로 제작된 펜도 있다. 이 시리즈의 가격은 샤프와 볼펜이 각각 42만 원, 수성펜 55만 원, 만년필 80만 원이다.
그렇다면 슈퍼리치는 손자녀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영유아일 경우 유아용품을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유아용품이라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세계적인 부호들은 어린 손자녀를 위해 거액을 아끼지 않는다. 유모차 한 대를 사는 데 무려 500만 원을 지불하는 사람도 있다. 영국 유모차 제조업체인 실버크로스가 600대 한정판으로 만든 유모차는 이너시트를 양털로 만들었고 캐시미어 담요도 딸려 있다. 이탈리아의 유아용 고급가구 제작업체인 ‘수오모’는 순금으로 만든 침대를 165억 원에 판매한다. 침구는 비단과 최고급 면인 피마 면을 소재로 사용했고 금실로 자수를 놓았다. 다이아몬드와 백금으로 이름을 새길 수도 있다.
국내 슈퍼리치는 자녀들에게 주식을 선물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후상속보다 사전증여를 통해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성년자에게 주식을 선물한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2019년 5월, 자산 기준 5조 원 이상인 국내 대기업 59개사를 조사한 결과, 18세 미만 미성년자 주주가 19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무려 335억 원에 달했다.
안타까운 한국 슈퍼리치의 ‘기부문화’
슈퍼리치에게 기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통한다. 세계 최대 면세점 전문기업 DFS의 창업주인 척 피니는 부자들이 롤 모델로 여기는 슈퍼리치다. 그는 15년 동안 약 8조4000억 원을 기부했는데, 정작 자신은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3만 원짜리 플라스틱 손목시계를 착용한다. 척 피니를 존경한다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도 40조 원이 훨씬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고 추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부를 하면 돈의 가치가 한층 빛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한국에도 기부에 앞장서는 슈퍼리치가 있긴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적은 편이다. 평소에 삶에서 돈은 큰 의미가 없어 기부할 생각이 있다고 말하는 부자가 많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부자는 이기적이고 인색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일까? 바로 세금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기부를 하면 세금 부담이 많이 줄어드는 데 반해 한국은 혜택이 크지 않다. 그러나 세금 혜택을 떠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의식의 선진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강변의 노른자위 땅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중 한 곳인 성동구. 그리고 성동구의 중심지가 된 ‘성수동’. 서울숲공원과 최고급 주상복합단지 호재에 강남 접근성까지 갖춘 성수동 상권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높을까.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작은 골목에 공장들과 자동차공업사들이 들어선 준공업지역이다. 하지만 서울숲공원이 인접한 데다 강남 접근성이 좋고 지하철 2호선(뚝섬역·성수역)과 분당선(서울숲역)이 지나는 더블역세권이라는 장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최고급 주상복합건물의 등장과 기존 수제화거리, 카페거리, 갈비골목으로 몰리는 수요를 등에 업고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인만 있는 건 아니다. 아파트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한 정부 규제와 치솟는 임대료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또 새로운 상권이 기존 상권을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부작용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높다지만 실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성수동을 찾아봤다.
예술과 문화가 있는 ‘성수동’
1970년대부터 주택단지가 형성된 성수동은 현재 도로 폭과 주차 등이 열악한 편이지만 동서남북으로 골목이 정돈돼 실용적이며 편안한 느낌을 준다. 교육재단 등이 공익문화사업에 기여하고 있으며 혁신을 거듭하는 창의적인 젊은이들의 사회적기업이 정착했다. 유명 영화사와 스튜디오, 갤러리, 디자인, 공방 등 문화공간이 들어오면서 예술적 가치를 품었다. 길을 따라 상권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지역 전체(Sector)가 예술문화지역(Zone)로 변모하는 형태라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된다.
특히 서울숲공원은 면적 43만 ㎡에서 60만 ㎡로 40% 정도 확장될 전망이라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는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에 중랑천 둔치와 이어지는 수변문화공원을 조성하고 인근에 위치한 승마장터와 뚝섬유수지는 생태숲 등 자연녹지로 꾸밀 예정이다.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이 2022년 6월까지 진행되는 만큼 가능한 구역부터 단계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또 이 지역은 압구정 청담동 등 강남 업무 중심지를 마주하고 있다. 또 지하철을 이용하면 분당선 서울숲역에서 5정거장 거리에 선릉역이 있고 2호선 뚝섬역이나 성수역에서 5~6정거장 거리에 잠실역이 있어 앞으로 더욱 진화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성수동=부촌’으로 거듭나다
성공한 사업가나 연예인 등 유명인이 꼬마빌딩이나 아파트를 사들이는 것도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미스지콜렉션의 패션디자이너 지춘희와 가수 지코, 배우 권상우, 이시영 등이 성수동에 위치한 빌딩을 매입했다. 분양가가 40억 원이 넘어 화제가 된 갤러리아포레는 배우 김수현과 유아인, 가수 지드래곤 등이 거주하고, 204㎡가 33억 원 정도 하는 트리마제에는 가수 써니와 김재중, 김희철 등 유명 연예인이 살고 있어 ‘성수동=부촌’ 이미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고급 주상복합단지의 등장은 확실한 호재로 나타났다. 한강이 보이는 지상 45층, 230가구 규모의 갤러리아포레와 지상 47층, 76가구 규모의 트리마제는 현재 서울시의 일반 주거지역이 35층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오히려 혜택을 본 경우다. 갤러리아포레와 트리마제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지상 49층, 280가구 규모의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2021년 입주를 시작한다. 또 지상 49층, 34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와 5성급 호텔 1개 동을 짓고 있다. 초고층은 아니지만 지상 20층, 292가구 규모로 재건축할 예정인 장미아파트도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지식산업센터와 동반성장 중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상업시설도 덩달아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가 성수동 일대를 지식산업센터 등 정보기술(IT) 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면서 첨단산업을 비롯해 스타트업 기업들의 입주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덕분에 인근 뚝섬 상업시설과 성수지구 전략정비사업 등의 개발호재도 갖춰 성수동의 가치가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성수동에는 코오롱디지털타워, 한라시그마밸리 등이 있으며 앞으로 프리미엄 첨단 지식산업센터 ‘성수동 선명스퀘어’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식산업센터는 IT 관련 산업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아파트형 공장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산업센터 한 곳이 들어서면 최고 1000명 이상의 임직원이 상주하게 돼 인근 상권에 호재로 작용한다.
임대료 상승이 가파른 이유는?
다만 성수동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접근해야 한다. 이 지역이 임대료 상승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주택이나 상가의 임대인은 월세를 더 올려주겠다는 임차인들의 제안에 스스로 차임을 올렸고, 뜬다는 지역을 잘 아는 건물의 매입자는 소위 뜬 지역의 임대료 기준을 그대로 적용했다. 게다가 주변 임대인들도 덩달아 임대료를 높게 책정하는 비정상적이고 복잡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설비, 영업비 등 권리금도 문제다. 테이크아웃, 커피, 디저트, 공방 등을 차린 임차인들은 나중에 권리금 등이 상승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어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성수동은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을 앓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본래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문화 또는 상권이 생기며 지역 경기가 활성화되는 현상인데, 이로 인해 지역의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기존 자영업자들의 ‘둥지 내몰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제화거리 떠나는 ‘구두 장인’
성수동의 수제화거리는 과거엔 외부인의 왕래가 뜸한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핫플레이스로 변신했다. 교통편도 좋고 먹거리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임대료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기존 점포의 이탈을 초래하고 있다. 보증금과 월세, 특히 권리금이 오르면서 몇몇 수제화 점포가 부담을 견디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상황.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직은 수제화 점포가 많이 남아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부담에 치인 점포들이 빠져나가 수제화거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제화거리는 5년 전, 33㎡ 기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20만 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특히 권리금이 많이 올랐다. 5년 전에는 1500만 원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4000만 원 정도가 보통이고 많게는 5000만~7000만 원 하는 곳도 있다.
폐공장으로 번진 ‘권리금’ 진통
카페거리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의 카페는 폐공장과 창고였기 때문에
5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주 가끔 권리금이 없는 곳이 나오긴 하지만 곧바로 임차인이 나타나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렵다”며 “보증금과 임대료도 수제화거리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카페거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문을 닫은 공장이나 창고를 활용해 만든 새로운 공간이다. 대표적으로 대림창고가 꼽힌다. 공연과 전시회를 여는 등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는 공간이다. 이외에도 폐공장과 창고를 활용한 색다른 카페가 많아 외부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성수동 카페거리 일평균 유동인구는 9만6492명으로 월평균 약 300만 명이 성수동 카페거리를 찾는다. 같은 시기 카페거리의 평균 매출은 3113만 원. 유사 업종 11월 평균 매출 2155만 원에 비해 958만 원가량 더 많은 셈이다.
수요 몰리자 갈비골목도 ‘시끌’
갈비골목도 임대료 상승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갈비골목은 1980년대부터 인기를 끈 먹자골목이다.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도 했지만 서울숲공원과 최고급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서면서 다시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넘어온 커피전문점 블루보틀 1호점과 아모레퍼시픽의 체험공간인 ‘아모레성수’가 들어서면서 20~30대 수요까지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수제화거리나 카페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59㎡ 갈비가게 점포가 보증금 6000만 원에 월세 5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요즘엔 물건이 별로 없다”며 “게다가 권리금은 내부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많게는 1억 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수동은 몇 년 전부터 뜨는 상권으로 소문이 나서 보증금과 월세, 권리금이 많이 올랐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더 큰 부담을 안고 들어가야 할 지역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여전히 성수동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성수동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상권”이라며 “일시적인 가격 상승 등의 요인이 있지만 지식산업센터와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계속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유동인구 증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꿎게도 흰머리는 그동안 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처지가(?) 좀 달라졌다. 해외 유명 배우, 모델 등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까지 독보적인 백발 스타일을 소화하며 패션의 일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노화의 선물이자 시니어의 전유물로서 그야말로 백발이 빛 발하는 시대가 왔다.
# 예수정
나이가 들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배우 예수정. 백발 여배우를 보기 드문 국내에서 그녀의 캐릭터는 단연 독보적이다.
# 테리사 메이(Theresa May)
'옷 잘 입는 정치인’으로 유명한 그녀. 센스 넘치는 패션에 흰 단발이 카리스마를 더한다.
#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
CNN의 간판 앵커인 그의 백발은 냉철한 저널리스트의 면모와 중후한 멋을 동시에 살려준다.
# 야스미나 로시(Yasmina Rossi)
새하얀 장발과 비키니 몸매로 주목받은 모델 야스미나 로시. 그녀의 긴 백발은 마치 여신의 머릿결처럼 신비롭다.
# 박호산
40대 후반의 배우 박호산은 다소 이른 나이에(?) 무성하게 흰머리가 났지만 염색 없이 당당히 백발을 드러내며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사라 제인 애덤스 (Sarah Jane Adams)
보석 디자이너 사라 제인 애덤스는 개성 넘치는 패션 감각을 뽐내며 SNS 스타로 등극했다. 그녀의 백발이야말로 최고의 패션 액세서리다.
# 메이 머스크(Maye Musk)
‘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70대 현역 모델인 메이 머스크. 트렌디한 그녀의 스타일링에 백발은 훌륭한 패션 아이템이다.
# 박정자
원로배우 박정자는 오는 2월에 개막하는 ‘노래처럼 말해줘’의 포스터에서 고혹적인 백발을 드러냈다. 하얗게 쌓인 세월의 흔적만큼 농익은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 제이미 리 커티스(Jamie Lee Curtis)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할로윈’ 시리즈의 히로인 제이미 리 커티스. 그녀의 쇼트 백발은 중성적인 매력과 당찬 여배우의 카리스마를 잘 보여준다.
# 팀 쿡(Tim Cook)
‘애플’의 CEO 팀 쿡은 전 CEO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경영 철학과 유연한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다. 캐주얼한 차림에 어울리는 짧은 은발이 인상적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Christine Lagarde)
국제통화기금의 첫 여성 총재 타이틀에 이어 현재 유럽중앙은행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세련된 정장과 스카프, 우아한 은발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다.
# 조성하
‘꽃중년’ 배우 조성하는 OCN 드라마 ‘구해줘’에서 백발로 변신했다. 본래 흰머리는 아니지만 탈색한 백발 스타일링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 배디 윙클(Baddie Winkle)
비비드 컬러의 의상을 즐기는 1928년생 패셔니스타 배디 윙클. 그녀의 새하얀 머리칼은 알록달록한 패션 속 더욱 돋보인다.
# 에이든 쇼우(Aiden Shaw)
백발과 더불어 풍성한 흰 수염으로 중후한 남성미를 자아내는 에이든 쇼우. 젊은이들은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로 패션 업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여름나기를 준비하며 다가오는 여름이 설레면서 걱정도 된다. 점점 더 무더워지는 날씨에 어떤 차림으로 외출해야 할지도 큰 고민거리 중 하나. 노출의 계절, 신발도 예외는 아니다. 작은 노출도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는 시니어를 위해 스타일 있는 여름 신발을 추천한다.
‘여름’ 하면 어떤 신발이 떠오르는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리퍼나 샌들, 가족 휴가나 물놀이 갈 때 신는 아쿠아슈즈, 쪼리 등 가벼우면서도 맨살이 드러나는 신발을 많이 떠올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내 발을 드러내려니 민망하기도 하고 대체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따라오시라. 올여름엔 당신의 발뒤꿈치도 맵시 있게!
맨발이 어렵다면 발목만 살짝
맨발을 노출하기가 어색하다면 시원하게 발목만 드러내는 슬립온은 어떨까? 조임 끈이나 벨크로(찍찍이)가 달려 있지 않아 신고 벗기 편하다. 디자인은 다소 밋밋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신을 수 있다. 어두운 색상의 슬립온은 단정한 정장 차림에도 무난하게 어울려 통기성이 부족한 구두보다는 여름철 신발로 안성맞춤이다. 또 밝은 색상은 평범한 일상복에 포인트를 주며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단, 슬립온을 신을 땐 발목이 확실히 드러나는 짧은 바지나 반바지를 입을 것을 추천한다. 반바지에 슬립온 색상과 어울리는 긴 양말의 조합도 젊어 보이는 스타일링 중 하나. 슬립온에 긴바지를 입을 때는 밑단을 접어 올리고, 정장에는 발목이 살짝 드러나는 ‘슬랙스’를 입어보자.
시원한 뒤트임
여성 시니어에게는 ‘뮬’과 ‘슬링백’ 슈즈를 여름 신발로 추천한다. 두 신발의 공통점은 앞부분은 막혀 있고 뒤꿈치 부분이 노출된 슬리퍼 형태라는 데 있다. 모양은 일반 구두와 비슷하지만, 굽이 높지 않아 하이힐이나 앞뒤가 막혀 있는 구두보다 훨씬 편하게 신고 다닐 수 있다. 발에 땀이 나면 살짝 벗어놓을 수도 있으니 여름에 제격인 신발이다.
뮬은 뒤꿈치 부분이 온전히 노출된 신발을 말한다. ‘블로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실내용 슬리퍼와 비슷해 신기도 편하다. 특히 흰 색상의 뮬은 청바지나 밝은 색상의 치마, 원피스에 신으면 보다 시원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최근에는 운동화처럼 생긴 ‘스니커즈 뮬’도 출시됐는데, 일상복에도 잘 어울리고, 발랄하면서도 젊어 보이는 느낌을 준다.
슬링백은 뮬과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발뒤꿈치를 고정하는 끈이 있어서 뮬보다는 걸을 때 좀 더 편하다. 일반 구두 형태에 단색의 디자인이 특징이며 단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뮬과 슬링백은 대부분 앞쪽이 막혀 있지만, 발가락 끝부분이 살짝 보이는 형태도 있다. 이런 디자인은 페디큐어로 또 다른 패션 포인트를 줄 수 있다.
돋보이는 단순함
남성 시니어에게는 ‘코르크 샌들’과 ‘글래디에이터 샌들’을 추천한다. 디자인이 심플해 어떤 의상에도 잘 어울리는 매력이 있다. 코르크 샌들은 와인 병마개로 쓰이는 ‘코르크(cork)’를 밑창 소재로 사용한 신발이다. 샌들 재질의 특성상 가볍고, 발등 부분은 가죽과 버클 장식의 단순한 조합으로 만들어져 착화감이 좋은 신발이다. 특히 패션 슈즈 브랜드 ‘버켄스탁’의 코르크 샌들은 쪼리, 슬리퍼, 로퍼형까지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다만 코르크가 물을 잘 흡수해 변색이 되거나 부서질 위험이 있어 비가 오는 날은 신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최근엔 방수기능을 강화한 제품도 출시되었으니 꼭 이 점을 확인하고 구매하시길.
글래디에이터 샌들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고대 로마 검투사가 신는 신발을 연상케 한다. 가죽 소재의 끈으로 발등을 엮어 웅장한 분위기는 남기고, 종아리까지 여러 줄로 감싸는 불편함은 없앤 디자인이 특징이다. 색상도 검정, 갈색 등 어두운 계열로 중후한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못생긴 게 대세! 계속되는 복고 열풍
마지막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여름 신발이 있다. 투박하고 못생겨 일명 ‘어글리 샌들’로 불리는 신발이 올여름에도 돌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울퉁불퉁하고 두꺼운 밑창, 전체적으로 큼지막하고 스포티한 것이 특징이다. 아빠들이 신는 신발 같다고 해서 ‘아빠 신발’이라고도 불리며 남녀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핏 보면 운동화처럼 보이기도 하며 밑창이 얇은 슬리퍼, 샌들, 쪼리 등 기존 여름 신발의 단점을 보완해 활동성까지 겸비했다.
어글리 샌들의 유행은 또 하나의 패션 스타일로 떠오르는 ‘고프코어’ 열풍 때문이기도 하다. ‘고프코어’를 선도한 영국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2018년 한국 동묘시장을 방문했다가 ‘아재 패션’에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동묘 거리 패션을 재해석한 복고풍의 고프코어룩이 출시되었고, 이 패션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촌스러움이 오히려 개성으로 해석되고 승화되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동안 샌들에 양말은 최악의 패션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제 그런 오해는 금물. 과감하게 좋아하는 색상의 양말과 함께 어글리 샌들을 신을 수 있다면 당신도 패셔니스타!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의상을 의미하는 ‘고프(gorp)’와 평범함과 철저함을 의미하는 ‘놈코어(normcore)’를 합쳐 만든 조어로,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 주로 입는 옷과 일상복의 조합을 의미한다.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는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명품 옷이든 구제 옷이든,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옷의 진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는 노화에 따른 심리적, 신체적 변화로 자꾸만 움츠리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옷들이 스타일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미적 요소가 결여된 의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더는 걱정하지 말라. 기능과 스타일까지 살린 세계의 패션 브랜드와 아이템을 소개한다.
시니어숍, 집 앞에서 편안한 쇼핑을
온라인 쇼핑몰은 집에서 간편하게 옷을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지 않거나 익숙지 않은 시니어에겐 곤욕이다.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날, 당신의 집 앞에 의류 매장이 직접 찾아온다면? 먼 곳에 있는 의류 매장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옷을 고르고 입어보며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상상 속 이야기처럼 생각되겠지만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시니어숍(Senior Shop)’이다.
시니어숍은 1996년, 스웨덴 헬싱보리 오픈을 시작으로 유럽 6개국에서 60개 이상의 이동식 매장 네트워크를 갖추고,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고품질의 편안하고 세련된 의류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방문 신청은 무료이며 방문 당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1000여 가지 옷이 준비되어 있다. 사이즈도 S에서부터 3XL까지 다양하다. 20m 이상의 전시대와 거울, 직접 입어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느 옷가게 못지않다. 요청에 따라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한다. 편안한 쇼핑과 이색 이벤트로 시니어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시니어숍은 현재 북유럽 국가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마담토모코, 굽은 허리도 우아하게
일본의 고령 여성복 브랜드 ‘마담토모코(マダムトモコ)’는 등이 굽은 여성 시니어가 편안함과 옷맵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상체가 구부러진 사람이 입어도 등 쪽의 옷감이 당겨져 올라가지 않도록 주름을 넣어 조정한 상의와 하의를 개발한 것이다. 최숙희 교수(한양사이버대학교 시니어비지니스학과)가 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칼럼에 따르면, 이 제조법은 특허를 받은 공법으로 편안함은 물론, 굽은 등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자랑한다. 허리가 맞지 않는 옷 수선 서비스도 제공하는 마담토모코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일본에서만 2만 명 가까이 되는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치코스, 중년 여성의 개성을 살리는 패션
치코스(Chico’s)는 미국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류 및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600개 이상의 매장과 121개의 아울렛 매장을 운영 중이다. 물론 온라인 쇼핑도 가능하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의류 가격을 한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치코스의 경영 철학은 여성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감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기계 세탁이 가능하고, 뒤집어 입을 수도 있고, 더 부드러운 착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옷의 기능에 대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코스의 매력은 개인 스타일리스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에도 있다. 비용은 무료이며 전화상담도 가능하고, 매장을 방문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홈페이지에선 연중무휴 24시간 상담도 가능하다.
노화의 상징 NO, 패션 아이템 YES!
지팡이는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에게 없어선 안 되는 도구다. 하지만 의료용 기구로 인식되고, 신체적 결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사용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 ‘옴후(OMHU)’는 이런 시니어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지팡이를 개발했다. 덴마크어로 ‘아주 조심스럽게’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디테일한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패션 지팡이다. 이곳에서 만들어낸 제품은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소재로 충격에 강하고, 손잡이는 감촉이 부드러운 나무를 사용해 오래 쥐어도 불편함이 없다. 또한 손잡이 부분에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해 벽에 세워둬도 넘어지지 않는다. 길이가 3가지 종류로 나눠져 있고 색상도 6가지나 돼 소비자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국의 ‘엘더럭스(Elderluxe)’도 다양한 디자인의 지팡이를 판매하고 있다. 가죽 지팡이,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힌 지팡이, 접이식 여행 지팡이 등 252개의 지팡이를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도 시니어를 위한 특별한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바로 주얼리 돋보기를 제작해 판매하는 ‘이플루비(efluvi)’다. ‘efluvi’라는 회사 이름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고자 스페인어 ‘efluvio(자연의 향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돋보기는 굴절이 심해 오래 사용하면 어지럼증과 두통을 겪지만 이플루비의 돋보기 렌즈는 왜곡이 없는 독일 칼자이스 광학렌즈를 사용해 이러한 불편함을 없앴다. 또 목걸이형 손잡이형, 문진형 돋보기를 직접 디자인해 휴대성과 심미성을 높였다. 주얼리 돋보기 외에도 브로치, 안경줄 등 시니어를 겨냥한 세련된 패션 아이템도 많다.
낡고 늙음이라는 고정 관념을 끊어내고 시니어 모델로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두 사람을 만났다. 시니어 모델 최초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른 소은영(제이액터스·75) 씨와 최근 핫한 모델 김칠두(더쇼프로젝트·64) 씨다. 늦은 데뷔이지만 내공 가득 담아 시니어의 멋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두 사람. 그들만의 패션 포인트와 패션 피플로서의 삶을 엿봤다.
인생, 이러니 참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Q.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처음부터 옷을 잘 입었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동생이 그림을 그렸는데 옆에 있다 보니 색 배합에 관심이 생겼다. 일본에서 들여온 패션 잡지도 오래전부터 봐왔다. 그러다가 옷에 관심이 많아졌다. 친구들이 치마나 바지를 못 입겠다고 하면 수선집에 가지고 가서 새로운 옷으로 만들어 입었다. 집 앞에 나갈 때 그냥 나가는 법이 없다. 어디를 가도 단정하게 챙겨 입고 나간다. 젊은 시절의 옷도 장롱에 그대로 있다. 가끔 입고 나가면 그때처럼 마음이 젊어지는 느낌이다. 시니어 모델로서 늘 당당하게 옷을 입는다.
Q. 모델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일흔두 살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4년 차다. 어렸을 때 배우 김지미 씨가 나를 동생같이 예뻐했다. 탤런트가 되고 싶었는데 집안이 엄해서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다. 일흔이 넘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고민했다. 집에 앉아서 TV 보고, 친구 만나서 밥만 먹을 수는 없어서 나만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탭댄스와 한국무용을 배워봤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내 나이에 할 만한 활동들을 찾아봤다. 그러다가 시니어 모델 전문 교육기관인 제이액터스를 알게 됐다. 내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초반에 걱정이 좀 됐지만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딱 내 일이다 싶었다. 모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내 도전도 시작됐다. 재밌다.
Q. 나만의 원포인트 패션 비법이 있다면?
단연 스카프다. 대형 박스 2개에 스카프가 가득 들어 있다. 셀 수 없이 많다. 옷을 입을 때 스카프를 늘 염두에 두고 스타일링을 한다. 액세서리도 원래 크거나 화려한 것을 안 했는데 도전해보고 있다. 깔끔하고 캐주얼한 옷을 많이 입는다. 남들은 못 입어도 나라면 소화할 수 있는 옷이 좋다. 스카프도 매보면서 말이다. 스카프 하나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 정말 좋은 패션 아이템이다. 친구들 옷을 가끔 골라주면 친구 남편들이 더 좋아한다. 옷을 고를 때 나이 고려는 안 해봤다. 브랜드도 전혀 신경 안 쓴다. 단돈 1만~2만 원짜리도 내가 입으면 남들이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Q. 시니어 모델 최초 타이틀이 있다던데?
2017년 서울패션위크 박종철 디자이너 무대에 섰다. 시니어 모델로는 최초였다. 시니어 모델의 무대 위 워킹과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며 오디션에 붙여주셨다. 다 남자 모델이었고 여자는 나 하나였다. 12cm 킬힐을 신고 런웨이에 설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청심환을 먹고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지금도 계속 무대에 서고 있다.
Q.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모델 일을 한다고 해서 급격하게 살을 뺀 적은 없다. 내 생각에 다이어트가 좀 필요하다 싶을 때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체중이 50kg을 넘어본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스트레칭을 하고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는 무조건 걷는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하체 근력을 키우는 스쿼트는 아침저녁으로 50번 씩, 하루 100번은 꼭 채운다. 피트니스센터는 성격에 맞지 않아 깨끗하고 좋은 목욕탕을 찾아 일주일에 세 번, 3시간 정도 있다 온다. 물속에서 걷고 스트레칭도 하고 말이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 반에는 꼭 잘 차린 아침식사를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Q. 모델로서 도전하고 싶은 스타일은?
시니어 모델 하면 단연 카르멘 델로피체 아닌가. 나는 일흔이 넘었는데도 흰머리가 안 난다. 그녀처럼 해보기 위해 탈색을 했다. 이제 머리를 좀 길러 제대로 스타일링을 해보고 싶다. 국제무대에도 나갈 수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한국을 대표해서 어디든지 가고 싶은 의욕은 많다. 기대나 희망이 없으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이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큰 무대에 서보고 싶어 건강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시간이다. 내 인생을 어떻게 끝까지 마무리하느냐, 그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