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회사는 회의 시간이 짧다’의 저자 랠프 G. 니콜스는 “듣기 능력(경청)은 읽기나 쓰기보다 세 배 정도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 책의 내용이 더욱 가슴에 다가온다. 우리는 왜 듣기를 잘하지 못할까? 교육과정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읽기였고 듣기 교육은 소홀했다. 그러나 경청하는 일은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가슴 속에 숨어있는 감정을 파악해 내는 것이기에 그리 소홀히 할 일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나타내보이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대화 때마다 지나치
한 지상파 방송의 유명 앵커가 휴대폰 불법 촬영으로 방송에서 사퇴하고 검찰의 기소를 앞뒀단다. 저녁 9시 뉴스 앵커를 맡으며 잘 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게 된 까닭이 대체 뭘까? 그의 입장에선 어찌 보면 재수가 없어 꼬리가 잡힌 것으로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그와 유사한 많은 사소한 범죄들이 무수히 일어나고 흐지부지 잊혀버리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그로서는 불행한 이 ‘작은 사건’ 속에, 실은 우리 사회가 가진 뿌리 깊은 병의 단서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모습
45년 전 육군 소위로 임관했던 동기들이 성삼재에서 뭉쳤다. 대부분은 연고지가 서울이었지만 대구와 구미에서도 각각 한 명씩 합류했다. 총 13명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곧 성삼재를 들머리로 지리산 종주 등반이 시작됐다. 전날,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구례역에 내린 시간은 새벽 3시 15분경. 구례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는 버스로 올라갔다. 성삼재에 올라서자 세찬 바람이 불었다. 갑자기 한기가 몰려왔다. 그때 대구에서 온 동기가 따끈한 커피와 간식거리를 내놓았다. 칼바람 속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성삼재에서
며칠 전에 유명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치인의 자살은 대부분 검찰 수사를 받을 때다. 그러나 그는 수사와 관련이 없었다. 정치인은 낙선했을 때 좌절한다지만 선거가 끝난 지 오래다. 정치인은 연예인처럼 대중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지만 그는 정치평론가로서 명성도 높았다. 최근에는 생업이 있어야 한다며 일식집을 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스스로 삶을 놓아버렸을까. 죽음의 종류도 수없이 다양하다. 중한 병으로 예고된 죽음이 있는가 하면 교통사고처럼 뜻하지 않은 죽음도 있다. 안타까운 죽음도 있고 관심을 못 받는 죽
도심을 벗어나 어느덧 국도를 달린다. 햇살 쏟아지는 시골 마을을 지나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로 들어서자 소음조차 숨죽인다. 숲길에서는 뒤엉킨 마음을 맡겨버린다. 구불거리는 좁다란 산길 위에서 너울거리는 계절을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땅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이다. 보탑사 삼층 목탑과 꽃 정원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했다. 사는 곳은 진천이 좋다 하더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진천에 닿는다. 친절한 사람들이 비켜주는 좁다란 숲길을 따라 산밑을 지나면 길 옆 계
60대 부부는 대체로 은퇴한 세대다. 60대 부부와 관련한 몇 가지 흥미로운 통계가 나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은퇴 후 보내야 할 여가시간을 엄청나게 늘려 ‘여가 혁명 시대’를 가져온다. 배우자와 함께 여가활동하기를 바랄까,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남편은 배우자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비율이 59%, 여성은 46%다. 여가 학자들도 여가활동 중에서 한 가지 정도만 부부가 함께 하기를 권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누가 병 간호하기를 원하세요? 병들어 혼자 움직이기 어려울 때 누가 병 간
한국 근대미술이 한 곳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2시간마다 해설도 있다. 전시회 이름은 이태준의 소설 ‘꽃나무는 심어 놓고’에서 차용해 왔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30명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좋은 기회다. 김환기, 김기창, 권옥연, 박수근, 이대원,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7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몇 작품을 소개한다. 이중섭의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는 1953~54년 종이에 유화로 그
‘할담비’의 인기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주위에서 할담비, 할담비 하길래 검색해봤다. 전국노래자랑 종로구 편에서 손담비 가수의 “미쳤어!”를 부른 지병수 씨(77세)가 할담비란다. 할아버지와 손담비의 합성어인 셈이다. 노래도 노래지만 춤사위가 ‘할아버지 버전’이 아니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공중파 방송을 비롯하여 대학축제장에도 초대받는 인기인이 됐다. ‘할담비’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전혀 ‘할아버지스럽지’ 않은 선곡과 춤사위, 다시 말해 ‘남들과 다름’인 것으로 보인다. 정보와 지식이 쉽게 그리고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아버지의 향기가 무척 그리워진다. 1950~60년대의 척박한 농촌에서 살면서 억척스럽게 농사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8남매를 낳아 오순도순 가정을 꾸려 열심히 사셨다. 농사일의 고단함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잘 견뎌내던 아버지는 유난히 백합꽃 향기를 좋아했다. 집 마당 한쪽 꽃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지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가장 사랑한 꽃은 향기 좋은 백합꽃이었다. 망종(芒種) 때가 되면 피기 시작하는 백합꽃은 온 집 안을 진한 향기로 물들이고 집 앞 100m 밖까지 향을 퍼뜨렸다.
어느 날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가 유난히 시선을 끄는 멋진 스타일의 여자 일행들을 봤다. 그중 큰 키에 날씬하고 우아한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방송 등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 더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꽤 됐는데도 청춘 못지않은 젊음을 자랑한다. 하루는 방송 진행자가 그 비결을 묻자 그녀는 “우린 친구처럼 살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또 한마디의 말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은 전문 직업인으로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김치 등
'기생충'이란 영화를 보며 ‘냄새’에 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는 빈부격차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를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보여주며 그 갈등과 파국을 묘사한다. 초반부터 가난이 유발하는 특유의 냄새를 복선으로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로 인해 벌어지는 충격적 결말을 보며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인 카뮈의 ‘이방인’이 연상되기도 했다. 프로 야구 선수로 큰 성공을 거둔 박찬호가 방송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 건너가 초기에 조롱 당한 것은 바로 몸에 밴 김치 냄새와 마늘 냄새 때문이었다. 분한 마음에 그날로 김치를 끊고 미
불교 성지 순례단의 한 사람으로 미얀마를 여행했다. 맨발로 다녀야 하는 사찰 경내에서 여행객이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해준 후 “원 달러! 원 달러!” 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얼굴 군데군데에 진흙 같은 것을 바르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피부 보호를 위해 바르는 미얀마 전통 화장품 ‘타나카(Thanaka)’였다. 곱게 보이기 위한 화장이라기 보다는 피부 보호제였다. 처음엔 우스꽝스러웠으나 타나카를 아무렇지 않게 덕지덕지 바른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의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예뻐 보였다. 타나카와 함께 아이
요즘 감성도 아니고 ‘갬성’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감성의 신조어로 ‘감성+추억’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아날로그적 향수가 그립다면 나주여행을 떠나보자. 나주는 천년 고도인 도시다. 고샅길(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나주 시내를 걸으며 갬성 나주와 마주할 수 있다.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붓는 토렴이라는 과정을 거쳐 75℃의 먹기에 알맞은 온도로 나오는 나주곰탕과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질 정도로 톡 쏘는 영산포 홍어는 나주여행의 특미다. 나주여행의 요즘 테마는 쉼이다. 특별한 잠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한옥게스트하우스에서의 하룻
‘AI’는 Appreciative Inquiry의 약칭이다. ‘강점기반 조직개발’로 번역하면 되겠다.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경영기법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조직개발 이론이다. AI를 정립한 데이비드 쿠퍼라이더(David Cooperrider) 교수는 ‘비피 프로케어’라는 회사의 AI 적용 사례를 대표적 예로 들고 있다. 그 회사는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조사했다. 만족도가 79%로 낮게 나오자 CEO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대책반을 만들어
딸애가 오래된 책들을 내놓으며 버려달라고 한다. 표지가 누렇게 바랜 무슨 무슨 개론 따위의 이론서 사이로 얼핏 얼핏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4대 비극’, 희랍 비극‘, 브레히트 연구’ 등 낯익은 책들이 보인다. 보관해 보았자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왠지 버리기는 아까워 며칠을 그대로 뒀다. 책을 못 버리는 습성은 왜일까? 이사할 때에도 책은 애물단지였다. 짐을 줄여야 하니 어차피 버려야 하지만 이별할 책을 선별하기가 옷 고르기보다 어렵다. 물론 내가 모든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계발서나 경영 관련 책은 큰 관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