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30

좁은 문, 그 안의 넓은 행복

입력 2026-05-30 06:00

[‘나의 브라보! 순간’ 공모전 당선작 | 행복상]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부신 조명 아래 번쩍거리는 후광을 뽐내며 웅장한 자태로 고객을 유혹하는 놈. 몇 번이고 동네 백 원짜리 고스톱 판에서 상대방 패를 가늠해보듯 이리저리 살피고 살펴본 그날, 사건의 발단이었다. 딸의 혼수용 전자제품을 사기 위해 딸과 함께 매장을 찾았다. 로봇 청소기·스타일러 등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를 신제품이 한가득. 유독 냉장고는 최신형을 장만해야 한다며 딸이 이끄는 곳으로 갔다. 문이 두 개, 양문형 냉장고다. 사용하다 싫증 나면 겉면도 바꿔준다고 한다. 깊이며 크기며 에너지소비효율 등급 1등급 절전형이란다. 이렇게 크고 좋은데 우리 집 고물 냉장고보다 전기료가 몇 배는 덜 나온다는 말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다.

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문득 우리 집 고물 냉장고가 눈에 밟혔다. 결혼한 지 삼십여 년·시집올 때 장만한 냉장고는 몇 년 쓰다 버렸고 이후 다시 구매, 십오 년쯤 사용했다. 공짜는커녕 돈 주고 버려야 할 냉장고와 십오 년을 동고동락 지내다 보니 이제는 냉장·냉동이 자주 고장 나 제법 수리비가 든다. 냉장고 겉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의 끈적한 자국들, 아이들의 낙서, 여기저기 긁힌 자국, 휴가나 졸업식 날 등에 촬영한 스냅 가족사진들, 남편과 두 아이 키우면서 생긴 삶의 흔적들이 훈장처럼 붙어 있는 냉장고. 예정에 없이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충동구매 신이 벼락처럼 머리에 들어왔다. 양문형에 속도 깊고 최고 등급의 절전형이라 전기료도 적게 나온다는 직원의 설명. 몇 년만 사용하면 본전 뽑는다는 말. 앞으로 뒤로 바닥에서 아래로, 마치 첫선 보는 날처럼 안 보는 척하면서 현미경 눈으로 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덜컥 24개월 할부 카드 결제했다. 휴대폰 지문 인증이 마지막 열 번째에 가서야 겨우 열렸다.

‘한 달에 십만 원 조금 넘는데, 뭐.’

‘이 정도는 사치도 아니지.’

‘나 혼자 잘 살자는 것도 아닌데.’

나름 합리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가볍고 날아갈 것 같은 마음이다.

새벽 배송하느라 밤늦게 출근한 남편이 새벽이 지나 오전에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여차여차 냉장고를 샀다고 말하니 남편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담담한 척.

“몇 개월 할분데?”

“24개월, 한 달에 십만 원꼴이야.”

“그 정도면 양호하지, 뭐. 잘했다.”

“발 닦고 와. 주물러줄게.”

잘했다고 하면서도 영 찜찜한지 헛기침을 두어 번 한다. 매달 몇십만 원씩 나가던 화물차 할부가 마침내 지난달에 끝난 참이다. 내 인생 마지막 사치라는 생각에 냉장고 하나 산 것인데, 나만 위하자고 산 것도 아닌데, 나한테 선물하는 것도 아닌데, 별의별 서운한 마음을 속으로 투덜거리며 자금 계획을 짜다 설핏 잠들었다.

오전 중에 배달 온다는 대리점 전화.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새벽부터 왈그락달그락 고물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김치, 음식 재료, 맥주 몇 캔, 냉동만두 등등을 꺼냈다. 이 녀석들도 새집으로 이사한다는 생각에 마냥 기쁜지 얼굴이 반지르르하다. 꺼내놓고 보니 이렇게 많은 것이 들어 있었나 하며 혼자 놀랄 정도다. 언제 두었는지 알 수도 없는 양지머리 한 덩어리가 거무죽죽한 얼굴로 느닷없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작년 가을이 유통기한 만료. 유효기간 만료를 1년이나 지난 이 덩어리는 무슨 생각을 하며 검은 비닐봉지를 온몸에 둘러쓰고 냉장고 구석진 곳에서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나를 보고 있었을까? 괜스레 양지머리에 미안해진다. 미역국이나 소고기뭇국을 자주 끓여 먹었어야 했는데. 냉장고 뱃속의 내용물을 다 꺼내놓고 살펴보니 겉의 생채기보다 더 많은 생채기투성이다. 음식 재료에 감춰 보이지 않던 상처들. 냉장이 잘 안 돼 잔뜩 서리 낀 것을 걷어낸다고 칼로 긁어낸 자국. 김칫국물이 말라붙어 만든 남해의 어느 섬인지 알 수 없는 지도들. 냉장고는 가족의 이야기와 애환을 모두 제 속에 감춰두고 살았나 보다. 문을 열 때마다 밝고 환하게 등을 켜주면서.

텅 빈 냉장고. 우리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스물네 시간 쉴 틈 없이 심장을 돌리던 녀석의 몸에 난 수많은 생채기. 마치 남편의 속처럼 한없이 품어주다 휑하게 되어버린 녀석.

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작은 살림이나마 잘 꾸려 ‘몽구스’ 닮은 마누라와 ‘미어캣’ 같은 자식들 잘 키워보려는 마음. 제 몸과 속에 난 무수한 상처를 혼자 삭이며 남들 잠자리에 들 시간에 출근길을 나섰던 남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자신의 구역에 신선식품을 배송했다. 정작 자신의 건강은 배송은커녕 박스 포장도 못 한 채. 해가 넘어갈수록 점점 힘들어하고 지친 남편을 보면서도 따뜻한 소리 한 번 못 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매일 남편은 최고의 로맨틱 가이처럼 출근길에 힘찬 입술 박치기를 하고 갔는데.

“다녀올게. 아침에 아이들 깨워서 학교 잘 보내주고 커피 한잔 마시고 푹 쉬다, 오후 아르바이트하고 와.”

졸음에 겨워 눈만 반쯤 뜬 채 “어, 운전 조심하고, 새벽에 눈 많이 온다더라.” 그러곤 이내 꿈나라행 KTX 침대칸에 탑승하곤 했다.

남편의 몸 이곳저곳도 수리가 필요하다. 낮과 밤이 바뀐 바깥일 하느라 몇몇 기능도 상실해 약을 달고 사는 남편. 냉장고야 바꾸면 된다지만 남편은 바꿀 수 없는 존재. 냉장고를 바꾸려 정리하다 보니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가장은 집안의 기둥이자 가족 모두가 안식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남편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그 품이 넉넉하기에 남편의 문 안쪽에 사는 우리는 맘 편하게 살았다. 가끔 뉴스에서 과로로 인한 동료들의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에게 좀 더 많이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사모님! 가전 대리점입니다.”

“아, 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해맑은 전화벨 소리에 이런저런 생각은 금세 철새가 되어 고향으로 날아가 버리고, 양문형 씨를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 반, 세 근 반, 심장 소리가 널뛰듯 요동친다.

‘미스터 양! 내가 잠도 설치며 얼마나 기다렸다고. 우리 오늘부터 평생 같이 살자.’

첫선 보는 날보다 설레는 이 마음의 실체는 무엇인지? 삼십 년도 훌쩍 넘어 나물 캐러 다니던 시절의 풋풋한 처녀로 환생한 기분이다. 귀를 기울여보니 양문형 씨가 다세대주택 삼 층을 힘차게 걸어 올라오는 소리. 마치 후광을 머금은 듯한 눈부시고 고귀한 그의 등장. 찬밥이 된 고물 냉장고를 가리키며 야멸차게 말했다.

“이걸 치우고 이 자리에 놓아주세요.”

“네, 사모님!”

오늘따라 소프라노로 상기된 내 목소리를 따라 다가오는 미스터 양문형 씨. 그 중후한 모습은 점령군 사령관의 발걸음처럼 묵직하고 위풍당당했다. 첫사랑을 만난 그날처럼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은 나와 함께 있어요.”

갑옷으로 무장한 그의 어깨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그 순간. 심 봉사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인당수에서 살아 돌아와 ‘아버님’ 외치는 심청이 목청 같은 소리.

“사모님! 주방 문이 너무 작아서 못 들어가네요!”

“무슨 소리?”

“세워도, 눕혀도, 문짝을 떼고 다시 조립해도 도무지 방법이 없을 것 같네요.”

온몸의 맥이 다 풀렸다. 간신히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주방 밖으로 나와보니 ‘어머나, 세상에.’

낡고 오래된 집이라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은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전셋집 주인의 허락 없이 주방 문을 부술 수도 없고. 아무리 눈물을 머금고 발을 동동 굴러도, 최신식 양문형 냉장고를 해체한 후 다시 조립할 아무 방법도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들어가는 입구를 생각하지 못한 내 부주의가 결정적 패착이 됐다. 죄 없는 주방 문턱을 발로 차보기도 하고 양문형 문짝을 괜히 열었다 닫았다. 끝내 양문형 씨를 우리 집 성벽을 넘어 입성시킬 묘수는 없었다.

‘아! 어쩌지? 여기까지인가? 조용필의 노래 ‘Q’ 한 구절,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가 벼락처럼 온몸을 관통하고 후다닥 도망갔다.

웬만하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든 전투에 통달한 중년 아줌마와 아프리카에서도 온풍기를 팔 것 같은 대리점 직원,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전술을 짜보았으나 이미 게임은 종료다. 버린 돌, 사석(死石)이 된 것이다. 장고 끝에 결국 묵직한 양문형 씨와 되돌아 나가는 대리점 직원들. 등의 표정이 시베리아 고기압 찬바람처럼 냉랭하고 매섭게 차갑다. 새집으로 이주한다고 몇 시간을 밖에 두다 보니 흐물흐물해져 버린 김치, 데워진 맥주, 명절에 힘들게 부쳐 먹고 남은 각종 전. 헌 집이라도 다시 보내달라고 아우성친다. 텅 비워진 냉장고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아줌마, 미안하지만 몇 년 더 같이 살아요. 나도 힘내볼게요” 하며 문을 활짝 연 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장승처럼 우뚝 서 있다. 마치 다음 페이지를 놓친 지휘자처럼 넋 놓고 서 있다 문득 “할부 몇 개월인데?” 남편의 우울한 표정이 생각났다. 그러다 웃음이 났다. 남편의 얼굴에 부드럽지만 고소함을 풍기는 미소가 피어날 것을 생각하니 나름 위안이 된다.

“그렇지 뭐. 문이 좁지, 돈이 없나!”

남편은 문 씨다. 우리 집 문은 좁았지만, 그 문을 지켜온 남편의 마음은 누구보다 넓었다. 태생적으로 가족을 품어 안을 소박하지만 넉넉한 문이었다. 그 문 안쪽에서 삼십여 년, 우리 가족의 먹는 즐거움이라는 문으로 들어가는 재료들을 냉동하거나 혹은 해동하며 살았고 다시 살아야 하는 문 씨. 양문형이든 단문형이든 주어진 크기와 그릇에 만족하며 내 솜씨와 실력을 바탕으로 고물 냉장고가 되어버렸지만 성실한 남편과 아이 둘을 이만큼 키웠다. 하나는 대기업, 하나는 초등학교 선생님, 우리 가족은 나름 행복하게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산다.

소박한 돌봄이란, 저기 저 고물 냉장고처럼 스물네 시간 불평 없이 식재료들을 냉동하거나 냉장 보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생활에 지친 어느 날은 시원한 캔 맥주를 선물해주고, 입맛 없는 날엔 아삭한 겉절이김치를 슬그머니 건네주었다. 비록 상어 지느러미나 유산슬 같은 고급 음식은 보관하고 있지 않지만, 언제 열어도 제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작은 냉장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큰 행복의 무게는 최신식 양문형 냉장고보다 더 많은 행복을 열어둔 것이 아닐지.

위풍당당하던 사령관 미스터 양문형 씨의 회군. 진정한 행복이란 화려한 양문형 시스템의 세상이 아니라, 이 좁은 문 안에 이미 가득 찬 가족이라는 이름이다. 남편은 성씨대로 늘 열려 있는 문이었다. 누구나, 언제든지, 아무 때나, 꺼내 가길 바라고 다시 채워놓길 바라는, 늘 제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단문형 고물 냉장고다. 비록 번쩍번쩍 빛이 나거나, 싫증 나면 문짝을 갈아주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쓸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손은 좀 봐야 하지만.

주섬주섬 제집으로 돌아간 음식 재료를 가슴에 품고 안색을 가다듬고 반짝 웃고 있는 고물 냉장고. 세제를 미지근한 물에 풀어 꼼꼼하게 목욕시킨다. 내친김에 까지고 해진 부분을 붓 페인트로 발라준다. 냉장고 속 얼음 트레이며 유리 받침대들도 꺼내 말갛게 씻어주고, 반찬통도 새색시 단장하듯 예쁘게 닦아준다.

나 혼자 법석거리다 보니 어느새 저녁. 제자리로 돌아간 녀석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갸릉갸릉.’ 어린 시절 왕자님 같은 막내아들 잠자는 모습인 양 평온한 숨소리를 내고 있다. 저도 피곤했나 보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녀석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 시원한 보리차라도 한잔하실까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대체 근무로 오후 배송 일을 나간 남편에게 ‘타다닥’ 카톡을 보낸다.

“여보, 양문형 씨 못 들어왔어! 주방 문이 좁아서. 일찍 들어와요.”

늘 자신의 자리를 장독대 된장 항아리처럼 지키며 우직하게 일해온 남편. 이제는 삐거덕거리는 관절과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매일 새벽 문을 열고 출근하거나 가끔 오후에도 일하러 나가는 그의 등이 오늘따라 앙상해 보인다. 어쩌면 작은 행복의 조건은 맞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에 맞춰 사는 일, 문에 맞게 사는 일을 잠시 잊었다. 딸의 혼사가 마무리되면 나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어떤 경우라도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짜증 내거나 하지 않는 든든하고 속 좋은 엄마·아내로 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응원하는지 깨끗이 목욕한 냉장고가 오늘따라 ‘윙’ 하며 힘찬 소릴 낸다. 행복은 좁은 문 안에서 그 크기에 맞춰 싹을 틔우는 작은 씨앗이었다. 행복의 조건은 문의 크기가 아니다. 어딜 바라보고 사는지, 어떤 풍경이든 품에 끌어안고 보듬어 사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주말엔 닭백숙이라도 한 그릇 푸짐하게 만들어줄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시끌벅적 주말의 풍경을 생각하며 딸과 사위 될 친구, 사내 기숙사에 있는 아들에게 ‘타다닥’ 카톡을 보낸다.

“토요일 저녁 식사, 다 같이 하자. 미참석 시 징역 10년. 이유? 우리는 가족이니까.”

좁은 문은 더 이상 내게 좁은 문이 아니었다. 그 문을 지키며 살아온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당당한 대한민국 아줌마 중의 한 사람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최신 뉴스

  • [브라보 문화 이슈] 65세 이상만 입장, '봉주르빵집'은 뭐가 다를까?
    [브라보 문화 이슈] 65세 이상만 입장, '봉주르빵집'은 뭐가 다를까?
  • ‘홍길동’ 아닌 ‘홍길동(단체)’로 표시, 사기 악용 ‘삼행시 통장’ 차단
    ‘홍길동’ 아닌 ‘홍길동(단체)’로 표시, 사기 악용 ‘삼행시 통장’ 차단
  • 일하는 시니어 근로장려금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
    일하는 시니어 근로장려금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
  • [카드뉴스] 실패 없는 '6월 전국 축제' 테마별 정리
    [카드뉴스] 실패 없는 '6월 전국 축제' 테마별 정리
  • [포용금융 리포트 ②] “주변에 은행이 없어요” 소외되는 고령층
    [포용금융 리포트 ②] “주변에 은행이 없어요” 소외되는 고령층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