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5

시대를 담은 사진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입력 2026-06-05 06:00

[아트 탐방] 뮤지엄한미 삼청

▲뮤지엄한미 삼청 본관(브라보 마이 라이프)
▲뮤지엄한미 삼청 본관(브라보 마이 라이프)
삼청동 길이 끝나갈 무렵, 뮤지엄한미 삼청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골목 끝에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듯, 바깥에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고요함이 안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펼쳐진다. 넓은 공간을 지나 만나는 물의 정원은 시선을 잠시 쉬게 하고, 관람객의 걸음을 천천히 늦춘다. 전시를 보러 왔지만, 어느새 공간 자체를 오래 바라보게 되는 곳이다.

뮤지엄한미는 2003년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으로 출발했다. 사진예술 대중화와 한국 사진의 세계화를 목표로 전시·출판·교육 활동을 이어왔고, 2022년 삼청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뮤지엄한미로 재출범했다. 사진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과 뉴미디어까지 품는 공간으로 확장했다.

현재 삼청 본관에서 열리는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은 한국 현대사진의 지평을 넓혀온 네 작가를 기리는 전시다. 인물과 자연, 기록과 성찰이라는 서로 다른 축을 따라 한국 사진이 쌓아온 시간의 결을 차분히 보여준다.

사진이 붙잡은 시대의 표정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육명심의 ‘백민’ 연작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과 삶이 담긴 사진 앞에서 오래전 농경사회의 정서와 한국적인 삶의 표정이 조용히 다가온다. 이어 홍순태의 ‘청계천’과 ‘서울’ 연작에서는 급격히 변해온 도시의 시간이 이어지고, 사라진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의 서울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한정식의 ‘고요’ 연작에는 자연과 사물이 말없이 놓여 있지만, 그 침묵 안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박영숙의 ‘36인의 포트레이트’는 인물의 얼굴을 통해 한 시대의 기운과 개인의 삶을 동시에 마주하게 한다. 사진을 본다기보다 누군가의 시간 앞에 조용히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시 제목은 정현종 시인의 시 제목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진 속 순간들은 지나간 장면이지만, 아직 다 피지 않은 꽃봉오리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전시장을 나설 때는 사진보다 더 많은 것이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의 얼굴, 사라진 도시의 풍경, 물의 정원에 내려앉은 고요까지. 모든 순간은 지나간 듯 보이지만, 다시 바라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주요 공간·작가 설명

▲유영호, ‘Bridge of Song’, 2023(브라보 마이 라이프)
▲유영호, ‘Bridge of Song’, 2023(브라보 마이 라이프)

유영호, ‘Bridge of Song’, 2023

뮤지엄한미 삼청의 중심에는 물의 정원이 있다. 여기에 자리한 유영호의 ‘Bridge of Song’은 거대한 거인이 공손히 고개와 상체를 숙이고 팔을 길게 늘려 공간과 공간을 잇는 듯하다. 그 위로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간다. 고요한 수면과 조각이 어우러지면서, 미술관 공간은 잠시 머물며 사유하는 자리로 확장된다.

▲육명심, ‘경상남도 하동 청학동’, ‘백민’ 연작, 1979(브라보 마이 라이프)
▲육명심, ‘경상남도 하동 청학동’, ‘백민’ 연작, 1979(브라보 마이 라이프)

육명심, ‘경상남도 하동 청학동’, ‘백민’ 연작, 1979

한국 사진사에서 인물 사진의 깊이를 보여준 작가다. 대표 연작 ‘백민’을 통해 우리 사회를 이루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과 삶을 기록하며, 한 시대의 정신과 문화적 자화상을 담아냈다.

▲홍순태, ‘청계천’ 연작, 1968(브라보 마이 라이프)
▲홍순태, ‘청계천’ 연작, 1968(브라보 마이 라이프)

홍순태, ‘청계천’ 연작, 1968

홍순태는 서울의 변화와 시간을 오래 응시했다. ‘청계천’과 ‘서울’ 연작을 통해 약 50년에 걸친 산업화와 재건 과정을 포착했으며, 그 안에 전통과 현대가 겹쳐진 서울의 복합적인 표정을 드러냈다.

▲한정식,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 ‘고요 Ⅲ’ 연작, 1986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한정식,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 ‘고요 Ⅲ’ 연작, 1986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한정식,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 ‘고요 Ⅲ’ 연작, 1986

한정식은 자연과 사물의 고요를 절제된 화면으로 담고자 했다. 대표 연작 ‘고요’는 풍경을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침묵과 사유의 시간으로 바라보게 하며, 사진이 지닌 정적인 깊이를 보여준다.

▲박영숙, ‘한영애, 가수’, ‘36인의 포트레이트’ 연작, 1981(브라보 마이 라이프)
▲박영숙, ‘한영애, 가수’, ‘36인의 포트레이트’ 연작, 1981(브라보 마이 라이프)

박영숙, ‘한영애, 가수’, ‘36인의 포트레이트’ 연작, 1981

인물의 얼굴을 통해 시대와 삶을 바라본 사진작가다. 연작 ‘36인의 포트레이트’는 작가 주변의 시인·소설가·교수 등 동시대 인물들을 깊이 응시하며, 개별 존재 뒤에 흐르는 시대의 기운을 기록했다.

▲뮤지엄한미 삼청 별관(브라보 마이 라이프)
▲뮤지엄한미 삼청 별관(브라보 마이 라이프)

뮤지엄한미 삼청 별관

본관 바로 앞에 자리한 별관은 사진 도록과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루프톱에서는 삼청동 골목과 북촌 일대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시 관람 뒤 잠시 머물며 미술관의 여운을 이어가기 좋은 장소다.

뮤지엄한미 삼청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전시 정보

기간 7월 19일까지

관람 시간 화~일요일 10: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뮤지엄한미 삼청(서울시 종로구 삼청로9길 45)

관람 요금 본관·별관 통합권 1만 5000원(65세 이상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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