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1

은퇴 후 어디서 살까? “집보다 생활권을 봐야”

입력 2026-06-01 12:00

[한국노년학회 학술대회] 주택 공급 넘어 의료·돌봄·생활서비스 결합한 거주 설계 필요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이 29일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 한국노년학회 전기학술대회 건축공간연구원 기획세션에서 ‘고령친화 주거·도시 조성의 방향’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이 29일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 한국노년학회 전기학술대회 건축공간연구원 기획세션에서 ‘고령친화 주거·도시 조성의 방향’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은퇴 고령자의 주거 정책이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 의료, 돌봄, 생활서비스가 연결된 생활권 설계로 확장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살던 집을 계속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일상생활이 이어질 수 있는 주거·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초고령사회 주거 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노년학회는 지난달 29일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 전기학술대회에서 건축공간연구원 기획세션 ‘은퇴 고령자, 어디서 살 것인가?’를 진행했다. 건축공간연구원은 국무조정실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건축·도시·공간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이날 세션은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가 주관해 은퇴자마을, 대도시형 고령친화도시, 노인 자립을 위한 주거·도시공간을 함께 논의했다.

좌장과 기조발표를 맡은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은 고령자의 주거 선택지가 소득과 건강 상태에 따라 양극화돼 있다고 짚었다. 저소득층이나 건강 상태가 나쁜 노인을 위한 제도는 일부 마련돼 있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으면서도 돌봄과 생활 지원이 필요한 고령자를 위한 주거 모델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 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서 고령자로서 국가의 지원을 받으려면 완전히 아프거나, 완전히 돈이 부족한 경우에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며 “중간 영역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살던 곳에서 늙기’를 기존 주택에 계속 머무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건강 상태가 바뀌더라도 사회적 관계와 생활권이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주거를 옮길 수 있다면, 그것도 넓은 의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발표자인 정연우 한국토지주택공사 연구위원은 은퇴자마을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정 연구위원은 은퇴자마을이 단순한 전원형 주거지가 아니라 주거, 의료, 돌봄, 문화, 생활서비스가 결합된 주거복합단지로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자료집에서도 은퇴자 주거복합단지는 단순한 부동산 개발사업이 아니라 주거·의료·돌봄·문화·공공서비스가 결합된 복합 인프라 사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됐다.

정 연구위원은 은퇴자마을 조성을 위해서는 수요자의 실제 선호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 살 것인지, 어떤 주택 유형을 원하는지, 분양과 임대 중 무엇을 선호하는지, 식사·의료·문화·체육 서비스 중 무엇이 필요한지에 따라 단지 모델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은퇴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선호도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춰 다양한 유형의 마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에서는 고창 웰파크시티와 미국 선시티 사례도 소개됐다. 고창 웰파크시티는 병원, 요양병원, 관광·휴양 기능이 결합된 국내 사례로, 선시티는 주거와 의료, 여가, 커뮤니티 활동이 함께 설계된 해외 사례로 제시됐다. 정 연구위원은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은퇴자마을이 지속가능하려면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공은 제도와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은 운영과 서비스 효율성을 맡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연우 한국토지주택공사 연구위원이 29일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 한국노년학회 전기학술대회 건축공간연구원 기획세션에서 ‘초고령사회 대응 은퇴자마을 조성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정연우 한국토지주택공사 연구위원이 29일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 한국노년학회 전기학술대회 건축공간연구원 기획세션에서 ‘초고령사회 대응 은퇴자마을 조성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두 번째 발표자인 정은하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위원은 대도시에서의 고령친화도시 정책을 다뤘다. 그는 서울처럼 규모가 큰 도시는 단일한 정책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광역 단위인 서울시는 큰 방향과 기반을 만들고, 실제 서비스는 자치구와 생활권 단위에서 작동하도록 역할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정은하 책임연구위원은 서울시가 노인 복지와 돌봄, 주거, 건강 관련 정책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생활 현장에서는 서비스가 끊겨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생활은 집, 병원, 복지관, 동네 상점, 이동 수단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지만 행정은 복지, 보건, 주거, 교통, 도시계획 등 부서별로 나뉘어 있기 때문.

그는 “서울시 같은 대도시는 개별 사업을 계속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광역 차원에서는 큰 방향과 기준을 만들고, 자치구와 현장이 생활권 안에서 서비스를 연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르신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어디서 신청해야 하는지, 건강 상태나 생활 여건이 바뀌었을 때 어떤 지원으로 이어지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 책임연구위원은 대도시형 고령친화도시는 정책의 양보다 실제 동네에서 체감할 수 있는 연결 구조가 중요하다고 했다.

세 번째 발표자인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는 노인의 자립을 주거와 도시공간의 문제로 설명했다. 노인의 자립은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생활 리듬과 선택권을 유지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집 안에서는 문턱 제거, 손잡이 설치, 미끄럼 방지, 야간 조명, 안전한 욕실 같은 작은 변화가 중요하고, 집 밖에서는 걷기 쉬운 보행환경, 쉬어갈 수 있는 벤치, 가까운 생활서비스, 열린 1층 공간과 커뮤니티 거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일본 사례를 소개하며 주거환경 개선은 건강이 나빠진 뒤에야 시작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낙상이나 거동 불편이 생긴 뒤 손잡이를 달고 문턱을 없애는 방식으로는 늦다는 것이다. 그는 “아픈 뒤에 집을 고치는 것은 사후 대응에 가깝다”며 “본격적인 노년기에 들어서기 전부터 자기 집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버타운이나 요양시설만 대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고령자가 살던 집과 동네에서 계속 지낼 수 있도록 집 안팎의 환경을 미리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토론에서는 은퇴자 주거 정책이 공급 목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영국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 원정연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임광빈 경기주택도시공사 도시주택연구부 부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고령자의 주거 문제를 주택 단지 안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교통, 의료, 돌봄, 생활서비스, 도시 재생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원정연 교수는 도시도 사람처럼 늙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령자가 같은 동네에 계속 살고 싶어도 동네 자체가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바뀌면 관계와 기억이 끊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집 한 채의 문제가 아니라 동네와 도시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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