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채 오지 않은 겨울 끝 무렵에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강화도로 향한다. 섬이지만 섬이 아닌듯한,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강화도에서 어렴풋이 남아있는 섬이 주는 그리움과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역사의 자취를 만나볼 것이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놓인 후에는 섬이 섬답지 않아졌다. 이것을 아쉬워해야 할 것인가, 기꺼워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의 몫이다. 어찌 되었든 다리가 놓여 섬 주민들의 생활이 한결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섬 나들이가 한결 편해졌다. 초지대교를 지나 강화도에 입도한다.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는 두 개다. 처음으로 연륙교가 놓인 때는 1969년이다.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듯 다리는 노후되었고 1997년에 재시공하여 만들어진 다리가 지금의 강화대교다. 김포시와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와 강화대교 외에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 2017년에 개통된 석모대교까지 합치면 네 개의 다리가 강화도를 사통팔달로 연결하고 있다.
강화도가 육지와 연결된 지는 어언 50년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섬이 육지가 되다시피 한 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섬이라기보다는 육지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 느낌이 남아있는. 그래서일까? 강화도를 제2의 터전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많다. 가까운 이도 강화도에 집을 짓고 강화도 자연을 해설하며 활기찬 인생을 살고 있다. 역사의 섬 강화도에는 휴식과 새로운 용기가 꿈틀거린다.
강화도가 섬이라는 사실은 초지대교를 건널 때 실감한다. 마니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마니산은 일종의 전망대다. 여유만 된다면 꼭 올라보길 추천한다. 전체 전경을 확인하려면 전망대에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 마니산 능선을 타면서 만나는 경치는 삭막함이 진을 치고 있는 이런 계절에도 충분히 경이롭다. 근육처럼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해바다를 향해 두 팔로 벌리고 있고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섬이 올망졸망 떠 있다. 이런 풍경만으로도 오를만한 가치가 있지만 정상에 있는 첨성단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면 흘린 땀방울이 아깝지 않다.
첨성단은 고조선 시대 단군이 제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제천 행사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신라, 백제, 고구려의 왕들과 고려의 제관과 왕 그리고 조선시대에까지 국가적으로 단군왕검에 대한 제를 이곳에서 지내왔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본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는 둥근 기단 위에 네모난 제단의 형태로 되어있다. 하늘에 대한 제사는 현재에도 개천절에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제단과 함께 눈여겨볼 것은 제단을 지키기라도 하듯 서 있는 소사나무 한 그루다. 유난히 바람이 센 정상,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린 150년 된 소사나무는 지금도 의연하다.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니산의 첨성단은 강화도 역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을 지나 근세기에 이르는 역사의 자취를 따라서 강화도를 한 바퀴 휙 돌아본다.
강화도의 굴곡 진 역사를 만나기 전 바다가 보고 싶다면 동막해변부터 가보자. 해변 가까이 분오리둔대에서 바라보는 서해 풍광은 시름을 잊게 할 정도로 시원하면서도 애잔하다. 서해바다가 갖는 먹먹함 때문이다. 갯벌에서 느껴지는 끈끈한 바다의 흔적을 삶의 흔적인 양 곱씹으며 강화도 대표 사찰인 전등사로 향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전등사는 그리 화려하지 않으나 시간의 결을 품고 있다. 대웅전 앞 느티나무가 현실의 위태로움을 잊고 쉬어가라며 부른다. 전등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절이다. 명부전에서 100m 정도 오르면 정족산사고터가 나온다. 초지대교가 보이는 너른 풍경을 앞에 두고 잠시 쉬어 가도 좋다.
전등사를 주변으로 삼랑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삼랑산성은 삼국시대에 쌓았던 토성이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했던 5세기경부터 백제,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가며 강화도를 점령하였고, 강화도에 요새를 설치하였다. 강화도는 한강을 낀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39년간 몽골에 대항하였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5진, 7보, 54돈대를 설치하여 외세의 침입을 막고자 하였다.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 돈대 같은 군사 시설이 강화도 곳곳에 남아있다. 조선말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강화도를 무대로 벌어진 전투다.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하는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등이 있다. 송림 사이를 지나 용두돈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사계절 언제 걸어도 좋은 산책로다. 길 끝, 좁은 강화 해협을 향해 용머리처럼 쑥 튀어나온 돌 위에 서 있는 용두돈대는 천연방어지다.
시대를 거슬러 삼국시대 이전의 유적인 강화도 부근리 고인들을 만난다. 강화도 북부에 위치하여 이동 경로에서 뒤로 밀린 때문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이다. 부근리 고인돌은 규모가 워낙 커서 무덤이 아니라 제단이 아닐까라는 의견도 있다. 두 개의 굄돌 위에 53톤에 달하는 덮개돌이 얹어져 있는데 그 옛날 이 돌을 옮기기 위해 동원되었을 사람 수를 떠올려 보면 이것이 과연 믿음의 힘인지 권력인지 궁금해진다. 부근리에 16기의 고인돌이 있고 오상리에 탁자식 고인돌 군락지가 있어 청동기시대의 주 생활무대가 이곳 강화도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현장을 짚어가며 나름 알찬 여행을 했다 싶다. 이제는 추억의 소환이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를 지나 대륭시장으로 간다. 제비집이 처마 끝에 붙어있고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시장통이 눈에 들어오는 키가 작은 시장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옛날식 다방에 앉는다. 달걀 동동 쌍화차에 옛 기억을 앞에 두고 겨울 볕을 쬔다. 좁은 골목길은 꽈배기 도넛 하나에도 웃음이 스민다. 교동도는 강화도 섬 속의 섬, 당신의 옛 시간을 만나게 해주는 여행지다.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선사유적부터 고려, 조선의 문화재가 즐비하다. 섬을 빙 둘러 53개의 돈대가 자리하고 있고 어느 돈대나 조망이 시원하다. 최근에는 강화 나들길이 인기다. 해안 절경을 끼고 오르는 고려산, 마니산 산행도 해볼 만하다. 요즘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 탓에 식당이나 여행지가 한산하다. 달리 말하면 여행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시기라는 이야기다. 주변 환경에 주눅 들어 있기보다는 겨울 햇볕을 쬐며 기지개를 켜 몸과 마음을 쫙 늘인 뒤 단단하게 움켜쥐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강화도 한 바퀴에서 답을 찾는다.
그 외 가볼 만한 곳
정수사
마니산 자락에 호젓한 분위기의 정수사는 강화도의 대표 사찰인 전등사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이곳에서 마니산 첨성단까지 오를 수 있는 짧은 산행코스가 있다. 자그마한 절, 정수사는 여행의 호흡을 가다듬기에 좋은 소박하면서 고즈넉한 산사다.
연미정
고려시대에 지어진 정자로 월곶돈대 앞 물길이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이름이 연미정이다. 정자에 서면 확 트인 전경이 눈길을 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북녘 땅과 파주시, 김포시가 선연하게 보인다. 두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멋스럽다.
강화 추천 살 거리
순무김치
순무김치는 매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일품이다. 비타민 함량이 높고 소화를 촉진하는데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관광지 앞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나 강화풍물시장에 가면 맛을 보고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어 좋다. 순무김치는 처음 담갔을 때보다는 익었을 때 더 맛있다. 잘 익은 순무김치는 무와는 다른 쫀득하게 씹히는 아삭거림과 혀가 아리다 싶게 톡 쏘는 맛이 난다. 한번 맛을 들이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강화도 먹거리
밴댕이회무침
가장 인상에 남는 맛은 강화풍물시장 2층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밴댕이회무침이다. ‘서울식당’에서 투박하지만 찰진 그 맛을 처음 보았다. ‘밴댕이 가득한 집’, ‘밴댕이로 왕창 잘되는 집’이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시장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포구에서 여유롭게 밴댕이 맛 탐방을 즐겨도 좋다. 다양한 밴댕이 요리와 찬거리가 강화도 만찬으로 기억될 만한 후포항의 ‘청강횟집’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