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속에서 발견되는 와인의 매력

기사입력 2022-05-18 09:20 기사수정 2022-05-18 09:20

와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물로써 세상이 멸망한다는 성경의 예언에 따라 40주야 내린 폭우로 세상은 물에 잠기고 유일하게 노아의 방주에 탄 노아와 가족들, 동식물 암수 한 쌍씩만 살아남게 되었다. 물에 떠다니던 노아의 방주는 현재의 터키 아라랏산 산꼭대기에 걸리게 된다.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는 방주 문을 열고 나와 가장 먼저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심은 포도 품종이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이고 전 세계에 전파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고대 미술서도 와인은 등장

비니페라는 7000년 넘는 와인의 역사에서 포도주 담그기에 가장 적합한 품종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집트에서 본격적으로 포도주를 발전시켰고, 이미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를 구분하여 생산했을 정도로 와인 문화가 발달했다. 피라미드 안의 포도주 담그는 모습을 그린 이집트 벽화를 보자. 그런데 이집트의 그림들은 왜 하나같이 사람들의 포즈가 어색해 보이는 것일까. 우리가 어릴 때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가 아닌 아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이집트인들은 그림에 주술의 의미를 담아 눈은 눈답게, 코는 코답게, 발은 가장 발답게 그리길 원했다. 당시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 주술의 의미였다.

제우스 신은 자신과 지상의 여인 세멜레 사이에서 얻은 아들 바쿠스를 죽이려 하는 아내 헤라 여신의 눈을 피해 바쿠스를 동굴 안에 숨기고 동굴 입구를 포도나무 넝쿨로 가려놓았다. 어린 바쿠스는 자연스럽게 이 포도를 따 먹으며 자랐고 포도주를 마시며 술의 신이 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대가 카라바조(Michelangelo Caravaggio)의 ‘바쿠스’(241.3×215.9cm, 1596)를 보자. 르네상스 시대에는 드라마틱한 순간 바로 전의 정적인 순간을 포착해 그렸다면, 바로크 시대 화가들은 드라마틱한 행동이 막 진행되는 동적인 모습을 묘사하려고 시도했다. 청년이 된 바쿠스는 와인잔을 우리 쪽으로 내밀며 건배를 권하고 있다. 건배를 권하는 건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제 막 잔을 들어 건배를 권하는 바쿠스의 손에 들린 와인잔 안의 와인이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잔이 흔들리고 있고 시간의 진동으로 그림은 정적인 시간이 아니라 동적인 시간이 된다. 르네상스 시대와 다른 바로크 화풍이 생동감을 갖는 묘미다.

지구상에서 미술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비싼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한 여인의 초상화,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모나리자’(77×53cm, 1503~1506)다. 앞에 붙은 모나(Mona)는 이탈리아어로 부인이라는 뜻으로,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 리자 부인을 그린 그림이다. 20세기에 차용과 광고에 가장 많이 쓰인 그림으로, 해마다 1000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관람객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툴루즈-로트렉 ‘카페 라미에서’
▲툴루즈-로트렉 ‘카페 라미에서’


천재 화가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눈 끝과 입꼬리 부분을 또렷한 윤곽선으로 마감하는 대신 흐릿하게 지우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으로 마치 웃을 듯 말 듯, 표정이 금방이라도 바뀔 것 같은 효과를 내어 신비감을 주었다. 또한 배경 지평선의 높낮이를 다르게 표현하여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더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이 작은 그림 ‘모나리자’의 가격은 40조 원이다.

그런데 ‘모나리자’와 와인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한 곳, ‘모나리자’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프랑스 중부의 유명한 와인 산지인 센트럴 루아르 밸리(Central Loire Valley)다. 이곳의 진흙과 석회석이 혼합된 해양 화석토양 키메르지엔은 풍부한 미네랄을 품고 있어, 이곳에서 재배되는 주요 품종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은 그 맛과 향이 풍성하기로 유명하다. 잔디 향 뒤로 레몬, 복숭아 같은 과일 향이 바닐라 향과 긴 미네랄의 여운을 남기는 소비뇽 블랑의 매력과 함께 ‘모나리자’의 배경을 떠올려보는 것도 근사할 것이다.

신 중심 세계관 아래 창조성을 억압받던 중세에서 벗어나 찬란했던 고대 문화로 돌아가자는 문예부흥운동(Renaissance)으로 과학, 예술,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회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중세 때 평면적이던 회화의 표현이 과학적 접근의 원근법으로 2차원 평면에 3차원적 입체감과 공간감을 표현하게 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460.2×880.6cm,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벽화, 1495~1497)은 그림 중앙에 소실점을 두어 원근법과 투시법을 활용해 그림 전체의 완벽한 조화로움과 공간의 깊이감을 잘 보여주는 르네상스의 대표적 작품이다. 예수와 제자들 뒤로 깊어진 공간감이 보이는가? 이 작품 속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저녁 열두 제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예수의 바로 왼쪽에 가장 나이 어린 청년 요한이 있고, 은 30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는 돈주머니를 쥐고 요한 바로 옆에 앉아 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명은 알아도, 왜 예수가 떡과 포도주로 만찬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장면의 성경적 명칭은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을 잡아 재앙을 넘긴 절기에서 유래됐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날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표상하는 떡과 포도주로 새 언약, 즉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선포한 날이다. 새 언약 유월절에는 예수가 십자가 희생으로 인류에게 베푼 죄 사함과 영생의 약속이 담겨 있다. “이 잔(포도주)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누가복음 22:20) ‘최후의 만찬’ 속 포도주를 단순한 음료로 정의하기에는 그에 담긴 의미가 작지 않다.

대상을 미화하는 고전주의나 서사적 매력을 정열적으로 과장하여 표현하는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실주의에 이르며 미술은 점차 우리의 현실과 가까워진다. 더 이상 신화 속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기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며 우리의 삶과 가까워진다.

그리고 미술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1839년 카메라의 발명이다. 천재성을 인정받고 작가로서 명성을 획득한 작가들도 있었지만, 1800년대 당시 예술가는 작가라기보다 장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카메라의 발명으로 흑백이지만 화가의 그림보다 더 똑같은 사진이 등장했다. 화가들은 대상을 더 이상 잘 그리려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잘 그리는 기술을 넘어선 다른 가치를 찾아야 했다. 실내의 고정된 한 개의 빛이 아니라 실외 외광 햇빛 찬란한 대낮 한가운데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라, 어떤가? 또렷한 윤곽선과 함께 명암에 의한 입체감 대신 평면적으로 보일 것이다. 계산되고 의도된 입체감보다 외광에 드러난 사실적 평면적 표현이 더 중요해졌다. 인상파 화가들은 시간과 공간을 고정된 시점에 두지 않고 빛에 의한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면서 공간의 불규칙성(Irregularity) 속 시간을 표현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신분을 상징하는 소재로도 쓰여

인상주의 마네(Edouard Manet)의 마지막 작품인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96×130cm, 1882)을 보자. 역사화 같은 거대한 포맷에 수종(Suzon)이라는 여자 바텐더가 화면 중앙에 서 있다. 입체감 없이 평면적으로 무심코 터치된 붓질에도 그녀의 눈동자에서 우리는 어떠한 묘한 정감을 느낀다. 그녀의 시선은 약간 우울해 보이기도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멍하니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표정, 이러한 정감을 그려내는 것이 천재가 하는 일이다. 그녀는 뭘 응시하고 있는 걸까? 해답은 그녀 뒤의 거울에 비친 풍경에 있다. 우리도 또한 그녀의 시선을 통해 그녀가 보는 것을 함께 보고 있다. 거울 속 풍경의 인물들은 당시 시인 말라르메의 정부 마리 로랑 등 마네의 친구, 지인들이다. 거울 속 인물들과 스토리를 알고 나서 그녀의 시선을 다시 보니 신분 상승을 한 노란 장갑의 마리 로랑에 대한 부러움, 동경 같은 빛도 역력해 보이는 것 같다. 그녀 앞에 샴페인들이 보인다. 와인과 샴페인의 차이점은 탄산의 유무다.

후기 인상파 툴루즈-로트렉(Henry de Toulouse-Lautrec)의 ‘카페 라미에서’(59×67.9cm, 1880)라는 작품을 보자. 후기 인상파 화가로는 빈센트 반 고흐, 고갱, 세잔 등이 있다.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색도, 터치도 더 이상 형태를 완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화가의 감정과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그림 속 인물들은 화가 로트렉의 친구 기베르와 술집 여주인이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은 보르도(Bordeaux) 지방의 와인이다. 보르도 와인이라는 힌트는 와인 병 모양에 있다. 프랑스 지롱드 강을 중심으로 위치한 보르도 지방은 불규칙한 날씨 때문에 포도의 풍미가 강한 대신 포도 껍질이 두꺼워 침전물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와인을 따를 때 침전물이 걸러질 수 있도록 와인 병의 어깨 모양이 각진 형태다. 프랑스 지롱드 강을 중심으로 좌안에서는 샤토 탈보(Chateau-Talbot), 우안 지방에서는 샤토 피작(Chateau-Figeac)이 대표 와인이다.

19세기 인상주의에서 20세기 모더니즘의 가교 역할을 한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은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65×80cm, 1895)을 그렸다. ‘실재하는 것보다 더 실제적인’ 세잔의 그림이라고 표현하면 대부분 의아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사물을 표현하던 기존의 원근법 방식은 고정된 한 눈의 고정된 시각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세잔은 두 눈으로 끊임없이 지각하는 파편들로 대상을 표현한다. 세잔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사과를 잘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과의 본질을 그리려 했다는 것이다. 둘째, 세잔은 대상의 사실적 묘사에서 떠나 대상을 조형성 자체로 해석하여 ‘조형성’만으로 그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세잔은 대상을 원통, 원뿔, 구 등의 기하학적 형태로 봄으로써 모방에서 해방되어 근본 형태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렇게 추상미술이 탄생했고, 이 점 때문에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폴 세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폴 세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세잔 작품으로 더 유명해진 명품

세잔의 작품 속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다. 한 병에 기본 1000만 원이고, 유명 빈티지의 경우 4500만 원을 호가한다. 로마네 콩티는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1.5헥타르(축구 경기장 크기) 면적에서 연간 7000병 생산되어, 20%만 프랑스에서 자체 소비하고 나머지는 수출한다. 포도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가능한 한 늦게 수확하고 풍미를 살려 매년 새로운 오크통에서 자신들만의 비법으로 생산한다. 오래된 포도나무를 그대로 두고 포도원의 크기나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며, 일관된 맛, 색, 향과 함께 희소성을 지킨 노력이 명성에 크게 작용했다.

투명한 루비색의 로마네 콩티는 신선한 과일의 단단한 향과 함께 우아하고 에너지 넘치는 보디감의 매력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것이다.

회화와 와인에는 무수한 내용과 스토리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아는 만큼 그리고 알아가는 만큼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콜라주(Collage) : 화면에 종이나 오브제를 붙이는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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