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랑의 계절, 중년도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기사입력 2024-03-04 08:39 기사수정 2024-03-04 08:39

줄어드는 혼인인구 속 재혼 비율은 늘어… 쌓인 경험이 플러스로

‘연애’는 사전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익히 떠올리는 연애(戀愛),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그리고 연애(煙靄), 봄날 햇빛이 강하게 쬘 때 공기가 공중에서 아른아른 움직이는 현상. 즉 봄에 만나는 아지랑이를 말한다. 뜻은 다르지만, 몽글몽글한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면 어쩐지 의미가 통하는 듯하다. 감정은 늙지 않는다는 말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다. 다시 돌아온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은 중년에도 충분히 찾아올 수 있다.

▲도움말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부부 솔루션’ 저자)(어도비스톡)
▲도움말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부부 솔루션’ 저자)(어도비스톡)

2022년 통계청 혼인인구 조사에서 부부 5쌍 중 1쌍(22.6%)은 재혼자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중 한쪽만 재혼인 경우(9.8%)보다는 양쪽 모두 재혼인 경우(12.3%)가 더 많았다. 지속해서 10년 넘게 혼인인구가 줄며 재혼자 수도 감소했지만, 그 비율(재혼자/혼인인구)은 소폭 상승한 상황이다. 고령화 흐름에 따라 황혼이혼 등이 늘며 중장년 재혼율이 앞으로 더 증가하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수치뿐만 아니라 최근의 변화 중 하나는 이혼·재혼 사실을 숨기던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사자들도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고 있다.

상담 현장에서 신혼, 이혼, 재혼 등 수많은 부부 사례를 경험한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은 “과거엔 이혼·재혼을 쉬쉬했다. 이혼한 지 20년 넘었는데 가족 외엔 아무도 모른다는 분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좋은 사람을 소개받기는커녕 외로움과 어려움을 나눌 길이 없었던 것”이라며 “100세 시대, 중년에 함께할 사랑을 찾지 않는다면 더 오랜 세월 홀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당사자들도 체감하는 듯하다. 죽을 때까지 혼자 살기보다는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게 오히려 현실적인 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때는 자녀에게 새아빠·새엄마를 만들어주고 내조나 외조를 바라며 재혼을 많이 했지만, 요즘은 그런 이유로 재혼을 수용하지 않는다. 오롯이 ‘사랑’의 감정으로 재혼을 결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브라보 마이 라이프)
(그래픽=브라보 마이 라이프)

초혼은 실패? 만회하려는 마음은 독!

“돌싱(돌아온 싱글)이 되어도 정상적인 연애 가능할까요?” 한 이혼법률사무소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협의이혼을 진행 중인 작성자는 이혼 후 혼자 살기 외로울까 걱정하면서도 이전 같은 결혼생활은 무섭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한 번의 아픔을 겪은 중년들은 종종 양가감정을 지닌다. 사랑을 원하지만, 한편으론 사랑이 두렵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어렵사리 사랑의 감정을 허락했을 땐 그만큼 더 절실한 마음에 노력을 기한다. 다만 상대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무언가를 숨기거나 문제를 덮으려는 행동은 훗날 독이 될 수 있다.

김숙기 원장은 “초혼을 스스로 실패라고 여겨 그걸 만회하려고 본모습과 다르게 포장하거나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처음부터 자신의 흠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상대가 안 좋게 보고 관계가 깨질까 봐 일단 감추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되고, 뜻하지 않게 드러났을 땐 더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패를 만회하려다 생겨나는 또 하나의 오류가 있다. 전 배우자가 지닌 특성이나 문제를 배제한 상대를 고르려 하고, 계속해서 두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가령 전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고충이었다면, 새 배우자는 ‘술 안 마시는 남자’를 조건으로 하는 식이다. 물론 큰 갈등이 있었다면 고려는 해야겠지만, 그 기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 원장은 “가끔 전 배우자의 영향으로 ‘OO 지역 사람들은 성격이 별로’라거나 ‘OO대학 나온 사람들은 문제가 많다’ 등 혐오성 발언을 하는 분들이 있다. 이는 일반화의 오류다. 전 배우자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재혼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야만 이전과 같은 문제가 안 생기고 재혼에 실패하지 않으리라 여기는데, 이 또한 현명한 판단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어떤 분들은 나름 칭찬이랍시고 ‘전남편은 무뚝뚝했는데 당신은 다정해서 좋아’, ‘전부인은 씀씀이가 헤펐는데 당신은 알뜰해서 마음에 들어’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더라. 가끔은 기분 좋게 들릴지언정, 계속해서 전 배우자와 비교되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한편으로 그런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아직 이전 결혼생활의 갈등이나 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혼 후 법적인 것은 물론 심(心)적인 정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도비스톡)
(어도비스톡)

마음·관계 정리, 어렵다면 함께 다뤄야

가급적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이를 함께 해결해가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내가 아직 이런 부분은 마음에 남아서 자꾸 말을 하게 되는데, 노력해보겠다”라든지 “전 결혼생활이 큰 상처였는지 쉽게 괜찮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등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숙기 원장은 “어떤 문제에 대해 ‘다뤘다’는 것과 ‘다루지 않았다’는 건 나중에 큰 차이를 불러온다”며 “어떤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이야기하고 다뤄본 경험이 중요하다. 한번 다룬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대화하고 조정해볼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묵인했을 때는 ‘왜 말하지 않았냐’, ‘나를 속였다’며 오해가 불거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재혼을 앞두고 상담을 청하는 이들 중에는 “아직 애인한테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결혼 안 한다면 어쩌나”라며 물어오는 경우가 많단다. 이에 김 원장은 “그분에게 직접 말씀해보시라. 이런 얘기도 못 할 단계라면 어떻게 결혼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서로가 마음의 정리와 준비가 됐다는 건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 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가령 재혼 커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전 결혼생활이나 자녀 문제 등에 대해 언급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이 나오는 걸 껄끄러워하거나 금기하는 등 대화가 부자연스럽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위기는 기회,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

기왕이면 소통하는 과정에서 특정 상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두면 더 좋다. 재혼자들에게 특별히 권하는 항목이 있다면, 이전 배우자로부터 생겨난 관계에 대한 처세다. 다툼이나 사건 등으로 인해 이혼했다면 덜 어렵겠으나, 사별의 경우라면 전 배우자의 부모·형제·지인 등과의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고. 김 원장은 “재혼을 했다면 새로운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어영부영 전 배우자와 관계된 인연을 부여잡고 있으면 서로가 난처해진다. 새 배우자와 ‘어느 부분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논의해보길 바란다. 가령 자녀가 있으니 자녀를 조부모(전 배우자 쪽)에게 1년에 두 번은 보여준다든지, 사별한 배우자의 기일에는 그의 가족들을 만난다든지 재혼 전 함께 가이드라인을 정해둬야 큰 불찰이 생기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까다로운 주제를 두고 이야기하다 보면 때론 다툼도 생기고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도 기회로 보고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게 좋다. 김 원장은 “문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나가느냐를 통해 상대의 성품과 인격도 확인해볼 수 있다. 가령 위기가 닥쳤을 때 폭언이나 폭행을 한다든지, 그동안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시절과 차원이 다른, 더 어려운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어려서는 연애에 대한 환상을 깨기 싫어서, 경험이 부족해서 그러한 문제들을 미숙하게 다루기도 한다. 서로의 경험과 혜안을 빌려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얼마든지 사랑의 낭만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중년기 연애의 장점이다. 인생에서 잘 무르익어 인격이 성숙해졌을 즈음, 중년에야말로 진정한 어른들의 연애가 가능하지 않을까?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언제나 사랑을 꿈꾸시라”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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