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고 고즈넉하면서도 따뜻함이 흐르는 공주 제민천 일대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들이 모였다. 이곳에 모인 목적은 제각각이었지만 은퇴 후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일맥상통했다. 웃고 떠들며 삶의 궤적을 짚어보는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봤다.
은퇴 후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치열하게 보내야 하는 중장년들이 인생 2막 설계를 위해 공주 제민천에 모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주체적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 ‘중장년청춘문화공간 2교시: 공주 마을스테이’는 인생 후반전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1박 2일 동안 진행된 이번 프로그램의 이튿날에는 홍차와 커피를 체험하며 지역 이주 사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년배인 석미경 루치아의 뜰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공감하며 웃기도 하고, 청년인 황순형 반죽동247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존중하며 ‘잘해왔다’고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
새로운 길을 꽃 피우다
창원에서 온 문순희(60대) 씨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이들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걸 보며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운을 얻어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함께 온 김희자(60대) 씨 역시 “젊은이의 호흡, 진정성, 자부심을 느꼈다”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늘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순서인 ‘글쓰기 회고 워크숍 및 공유회’에서는 윤찬영 작가의 귀촌 체험담과 함께 글을 쓰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 김학곤 씨는 “공기업에서 36년을 일하고 지난 3월 은퇴했다. 퇴직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게 되더라”면서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하며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어 왔는데 좋은 체험이 됐다”고 했다.
한 참가자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분의 의도와 참여하고자 했던 나의 의도가 어떻게 봉합되는지를 느낀 시간이었다”며 “자유 시간을 이용해 설명 들었던 공간을 다시 찾아가 둘러보며 생각할 시간을 가진 것이 좋았다”고 전했다. 진해에서 온 또 다른 참가자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생각이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돌아가면 우리 지역에서도 이런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우리 지역을 살리는 일에 일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프로그램 곳곳에는 인문학적 요소들이 녹아있었다. 인문학은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도록 함으로써 위로와 희망을 주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정신을 인문정신이라고 한다. 인문정신은 서로 다른 개인들을 공통의 기반으로 묶어주고 연대와 협력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스스로 노년기를 책임지며 살아남아야 하는 중장년에게 인문학은 꽤 중요한 요소다. 특히 개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웃과의 소통과 공감이 개인의 불안과 상처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만난 지 몇 시간도 안 됐지만 서로 이름을 묻고,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이야길 나누던 참가자들은 “새로운 인연이 생겨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때로는 공감하고, 놀라고, 웃기도 하며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가도 자신의 삶에 영감 한 스푼을 더해가는 참가자들을 보며 김미정 대표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의 꽃은 나의 계절에 핀다’는 말처럼 사람마다 피어나는 계절이 다를 거예요. 어디에서 피우시든 나이에 주눅 들지 않고 뭐든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창원에서 오카리나동아리로 인연을 맺어 프로그램까지 함께 참여하게 됐다는 참가자들은 열심히 살아온 삶의 보람을 느끼고자 참여했다고 했다.(사진=이연지 기자)◇참가자가 말하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들’
“프로그램 목적이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새로운 인간관계라는 화두가 눈에 들어왔죠. 사회생활 할 때는 정해진 관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잖아요. 퇴직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공주에는 생전 처음 와보는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서 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1박 2일이 아쉽네요”-장미영(57세)
“60세가 되면 어떤 유의미한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읽은 글인데요.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3일뿐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1박 2일이 아쉽지만, 기억되지 않을 많은 것을 보고 갑니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을 구체화하고 싶어요.”-이홍래(60세)
“아직 정리는 안 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래를 고민하는 데 참고가 됐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저는 여행이 곧 삶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만났느냐가 중요한데,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김주희(45세)
“4년 전 퇴직 후 쉬고 있는데요. 프로그램을 따라가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변을 다 둘러보지 못해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자유여행 같네요. 평생 이런 시간을 또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생각한 것보다 좋은 경험이었어요.”-노창구(6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