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뒷산에 먹구름 모이더니 비가 내린다. 해발 500m 고랭지에 내리는 가을비. 서늘하고 축축한 날씨지만 분위기는 오롯이 호젓하다. 귀농인 이영석(78, ‘아막성농원’ 대표)의 집은 남원시 아영면 외진 산중에 있다. 집 뒤편엔 농장이 있다. 우중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말쑥하다. 언덕 경사면을 리드미컬하게 깎고 다듬어 만든 정원은 꽃을 매단 화초류와 갖가지 관목으로 아름답다. 텃밭의 정갈한 구색 역시 돋보여 정원과 경합한다. 이영석이 거처와 농원에 쏟은 땀방울의 총량이 몇 드럼에 달할지, 그건 그를 묵묵히 지켜본 뒷산이 기억하고 있을 테다. 올해로 귀농 12년 차. 때로 고추보다 매운 고초를 겪으며 건너온 세월이다. 농사의 이상을 추구한 날들이었다.
이영석은 전남대 농대를 졸업한 후 줄곧 농업 분야에 에너지를 쏟았다. 독일로 날아가 하노버대학에서 농업을 공부했다. 한국농촌경제원에서 다년간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15년간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전주시 소재) 교수로 재직하며 농업경영학을 강의했다. 농업에 관한 한 박학다식과 일가견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는 이력이다. 그의 귀농은 교수직 정년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건 물고기가 상류에서 하류로 나아가듯 자연스러운 순행(順行)이었다. 소싯적부터 농부의 꿈을 품었다는 게 아닌가. 자격은 넘치도록 충분했다. 농촌이라는 영토에 입국할 수 있는 여권과 티켓에 해당할 갖가지 경력을 보유했으니까.
“오래 묵힌 꿈을 이룰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귀농을 결심했다. 농업을 가르치는 데에서 나아가 직접 농사짓는 게 언행일치의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 길이라는 생각도 했다. 한국농수산대학은 농업보다 농사를 가르치는 곳이다. 농부 배출을 목적으로 삼은 대학이다. 즉 나는 학생들에게 농사 잘 짓는 방법을 ‘입’으로 가르쳤다. 이젠 ‘몸’을 쓰는 실천으로 농사와 만나고 싶었다. 그래 퇴직과 동시에 바로 이곳에 들어왔다.”
토지는 어떤 방법으로 마련했나?
“남원에 사는 친구의 소개로 싸게 나온 급매물을 샀다. 여유자금이 별로 없는 형편이라서 덜커덕 서둘러 매입했다. 그런데 사놓고 보니 햇빛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북향 땅이었다. 장점도 있었다. 거의 야생에 가까운 농토라 토질이 살아 있고, 통풍도 원활해 보였다. 고랭지라는 점에도 호감을 가졌다. 작목 선택을 잘하면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을 했던 거다. 숙고 끝에 오미자 농사를 하기로 작정하고 농원을 만들었다.”
작목 선택을 잘했다고 보나?
“당시 오미자 농사가 유망 작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유능한 농부로 성장한 제자들이 오미자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헤맨 세월이 길었다. 난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독일 굴지의 유기농업 농장에서 일한 바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유기농업이 진정한 농사라는 지론을 갖게 됐다. 그래 이곳에서 오미자 농사를 유기농으로 지을 작정을 하고, 5년간의 무농약 오미자 농사를 거친 뒤 유기농 인증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예상보다 힘든 대목이 많더라. 가령 풀을 수시로 일일이 베어내고, 할미꽃이나 은행잎 삶은 물로 해충을 물리치는 일 등 모든 게 쉽지 않았다. 관행 농사에 비해 곱절 이상의 품이 들어가는 게 유기농업이다. 작업 일체를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것, 이게 내겐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순도 높은 유기농업을 통해 깨끗한 농산물을 거두고자 노력하는 농부의 모습은 경건하기조차 하다. 정직한 생산을 한다는 자부심도 만만치 않고.
“유기농의 목적은 단순히 건강한 먹거리를 거두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흙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고, 나아가 자연환경 전체를 고려하며, 후손에게 좋은 땅을 남겨줘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게 유기농가다. 크게 보자면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농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여느 작물보다 손이 많이 가는 게 오미자라고 들었다.
“수확기에 거두어들인 오미자 열매 선별 작업에 특히 공을 들여야 한다. 미숙과나 불량과를 하나하나 손으로 따내는 과정에서 자칫 멀쩡한 송이까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별 작업엔 다량의 시간과 노동력 투여가 필수다. 작업을 마친 오미자는 생과나 건과, 또는 오미자청이나 당절임으로 가공돼 시장에 나간다. 그런데 정작 시장에선 관행 농법으로 지은 오미자와 유기농 오미자가 차별화되지 않은 채 뒤섞여 팔리기도 한다. 이런 혼선이 어떻게 가능한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기후변동으로 야기되는 농사 피해로 농가마다 고생이 많다. 이를 모면할 묘안이 있을까?
“자연이 하는 일을 무슨 수로 교정하겠나? 나에게도 냉해라거나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가 잦았다. 올해만 하더라도 열대야가 길어 작황이 좋지 않다. 뜻과 노력이 있어도 어긋나기 쉬운 게 농사다. 한때 오미자 조합을 만들어 수출할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화가 쉽지 않더라.”
농민을 무시하다 큰일 터질 수 있어
이영석의 언술은 창밖에 내리는 궂은비처럼 간혹 울적한 톤으로 바뀐다. 이해할 만하다. 귀농인의 농사란 대체로 시련을 통과하고서야 진도가 나가는 게임이지 않던가. 귀농인들이 겪는 시련의 종목은 다수다. 개중 머리를 침통하게 감싸 쥐게 하는 건 유통 문제다. 판로가 옹색해 흔히 고민에 사로잡히는 것. 이영석 역시 마찬가지다. 매력적인 오미자를 생산하고도 유통 구조의 모순과 횡포에 치여 마땅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것 같다. 농업 전문가로 살아온 그가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새삼 유통 구조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건 직접 농사지으면서 한결 깊어진 문제의식을 갖게 된 탓일 테다.
“모든 농민이 판로 문제로 고통을 겪는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내가 잘 아는 독일의 농업과 비교할 때, 한국의 농산물 유통시장은 너무도 불합리하다. 심한 표현을 하자면 칼만 들지 않은 강도들이 설치는 구조가 고착된 상황이다. 예컨대 대형 유통업체를 반드시 복수로 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일부 힘센 조직이 유통을 독점하는 구조를 용인하고 있을 뿐이잖은가. 현재의 농정 가운데 유통정책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농협에 일을 맡기고 수수방관한다. 정작 농협은 마땅한 역할을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농민 조합원을 위한 봉사가 본분이지만 방기한다. 농민을 이용해 임직원들을 먹여 살리는 조직에 그칠 뿐이다. 정치권 역시 농업을 경시한다. 이렇게 계속 농민을 무시하다간 큰일이 터질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농협의 개혁 필요성이 자명하지만 요지부동이다.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농민들이 단합해야 한다. 각자도생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강력한 생산자 조직을 만들어 상업자본에 빼앗긴 유통망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을’의 처지에서 벗어나는 게 유력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례도 있다. ‘한살림 생협’의 경우를 보라. 조직화한 조합원들의 힘으로 기존 시스템에 맞서 가공, 유통, 판매 등에 따른 불합리를 깨뜨렸다.”
선생은 이곳 ‘흥부마을 영농조합법인’의 대표다. 조합 결성은 어떤 계기로 이루어졌나?
“원래 이 마을엔 휴양 체험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부실 운영으로 거미줄 내려앉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은 상황이었다. 그걸 ‘교수 출신인 당신이 맡아 살려내는 게 어떻겠냐?’는 주민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회생의 토대로 설립한 게 영농조합법인이다. 귀농 2년 차 때의 일이다.”
전직 농업경영학 교수에게 적격인 일로 보인다. 운영 상황은 어떤가?
“책임감이 따르는 사안이라 신중하게 생각했다. 수차례 고사하다가 일을 맡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조합 사업의 관건은 수익성을 관철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마을의 주 작물 중 하나인 들깨를 통해 사업을 도모했다. 놀려둔 밭에도 들깨를 심게 해 생산 물량을 확보, 그걸 생들깨나 짠 들기름을 판매하는 한편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로를 열었다. 초기엔 적자가 났지만 결국 흑자를 거두면서 조합원들에게 배당금을 주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현재의 유일한 걱정은 후계자 문제다. 내 나이 내일모레면 80이다. 대표직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농사를 즐기라!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본이었던 ‘진짜 농사꾼’ 고 전우익이 쓴 책 제목에 이런 게 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농사와 자연에 관한 성찰을 통해 얻은 이타적 관점을 뭉뚱그린 글귀다. 한때 널리 회자되었던 메시지다. 이영석의 입에서도 이 글귀가 흘러나온다. 그가 영농조합을 설립해 근사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엔 ‘나도 좋고 너도 좋고’라는 상생 가치관이 작동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인즉 이렇다. “농사란 더불어 사는 일을 추구하는 행위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까지 배려해야 한다.”
이영석은 농업과 농촌이 지닌 사회적 충격 완충 기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가능케 한 동력의 근원은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있다고 읽기도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본원적인 정서와 힘이 농촌에서 나온다고 믿는 것. 그에게 농촌은 곧 ‘어머니’다.
“이를테면 가난이 만연했던 과거에 시골 농부들은 땅 팔고 소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그 자식들이 결국 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끈 주역이었다. 농촌은 이렇게 중요한 공적 기능을 담당했다. 농업은 한마디로 우리를 보듬고 키우는 ‘어머니’와 같다. 그러나 국가는 물론 국민도 흔히 농업을 경시한다. 농민을 허름한 존재로 여긴다. 농사를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는 태도도 무모하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나쁜 풍조가 만연하면서 농업은 점점 벼랑 끝으로 밀려나고 있다.”
돈을 벌고 싶어도 한계가 뚜렷한 게 농사라고 보는 귀농인들이 흔하다. 물론 부를 얻는 이들도 있지만.
“재벌들이 왜 농업에 뛰어들지 않겠나. 농사란 태생적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직종이다. 제도적인 뒷받침도 너무 빈약하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먹고살 만큼은 벌 수 있다. 그 이상의 욕망은 자제하고 농사를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돈을 굳이 많이 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돈을 쌓아둔다고 행복이 찾아오나? 많이 버는 것보다 잘 쓰는 데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돈 욕심은 퇴행을 가져오는 반면, 자제를 통해 내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삶의 진실 하나를 귀에 담은 기분이다. 산촌엔 여전히 비가 온다. 그것은 산색에 물들어 유난히 푸르게 내린다.
이영석이 주는 귀농 Tip•귀농의 목표를 오직 돈을 버는 데 두는 건 좋지 않다. 농사 기술이 발달할수록 생산 물량이 늘어나고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농업의 숙명이다. 정책과 제도의 미비도 농업을 통한 수익 증대를 가로막는다. 적은 소득에 자족하며 농사와 자연을 즐기는 게 똑똑한 귀농 생활이다.
•원주민을 존중하자. 그들은 거짓이 없는 농작물을 기르며 평생을 산 온전한 존재다. 이른바 텃세는 원주민을 무시하는 처신에서 비롯된다는 걸 유념하자. 주민들과 친해졌어도 뒷담화는 금물이다. 끈끈한 혈연과 지연으로 형성된 시골 사회의 특성상 귀농인이 발신한 뒷담화 내용은 언젠가 반드시 노출된다.
•은퇴자에게 귀농은 또 하나의 직업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농사엔 정년도 없다. 간섭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건전한 노동을 통한 건강 유지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과도한 노동은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