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후 내가 변했죠, 도시에선 잘난 맛에 살았는데…”

기사입력 2024-10-25 08:49 기사수정 2024-10-25 08:49

[박원식이 만난 귀촌 사람들] 충북 청주시 문의면으로 귀촌한 이소연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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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문의면은 대청호를 끌어안은 입지로 경관이 수려하다. 산수풍광이 환해 생기가 돈다. 대전에서 살던 이소연(43, ‘내안에Book’ 대표)이 이곳으로 귀촌한 건 자연환경에 이끌려서다. 문의면 소재지엔 작은 서점이 하나 있다. 이소연이 차린 책방이다. 40세쯤엔 로컬에 서점을 꾸리고자 한 계획에 따른 행보다. 그렇더라도 인구 4000명도 안 되는 면 지역에서 서점을? 장사가 될까?

못 말릴 과감성이 발동했거나, 뭔가 독특한 취향에 추동됐거나, 둘 중 하나의 동기가 작용해 서점을 열었을 터다. 그가 서점 간판을 달자 지나가던 이가 한 말이 이랬단다. “아이고, 어떡하려고 그랴, 여기 사람들은 책 안 읽어유!” 이건 자못 명석한 일갈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그의 서점은 끄떡없이 잘 돌아간다. 장사야 시원찮지만 속 터질 게 없다. 서점과 더불어 이소연의 삶이 매우 유쾌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귀촌 5년 차에 이른 지금,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발랄하게 활개치고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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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사양 사업이라는 데 동의하나?

“책 판매만의 수익성 측면에선 사양 사업이다. 그러나 서점 공간 활용의 방향성 여하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난 책을 파는 공간에서 나아가 주민들과 교류하는 영역으로 서점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했다.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게 좋다는 평소의 가치관을 서점 공간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다. 우선 지역의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었다. 아이들이 책과 더불어 자유롭게 놀고,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지역 초등학교를 찾아가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큐레이션한 책은 주로 아동 도서인가?

“모든 세대를 위한 다양한 종류를 갖추었다. 책은 드문드문 팔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갖가지 행사와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재미있다. 가령 동네 아줌마들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의 경우 열성파들이 많다. 선정 도서를 함께 읽고, 책이 주는 메시지를 각자의 삶과 연결시켜 수다를 쏟아낸다. 독서와 수다의 조합은 예상보다 신선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참여자마다 수다의 질이 달라지고 생각에 깊이가 생기는 걸 느끼며 만족스러워한다. 일상과 가정 안에서 경험하지 못한 형태의 대화를 나누는 자신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삶을 재발견하게 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교량 역할. 이게 서점이 할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서점주라면 보통 그 무엇에 앞서 책을 더 많이 파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소연의 방향은 다르다. 책방의 의미를 넓게 읽는다. 마을 커뮤니티로 개방해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는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이 서점에 고이기를, 나아가 각박하고 괴로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머물기를 바라는 것 같다. 후련하게 열린 그의 사고와 행동은 서점 문을 열고 외부로 나가 서서히 지역사회 전면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귀촌 초기에 그는 지역의 문화 인력들과 함께 프리마켓이나 버스킹을 펼친 적이 있는데, 이후에도 문의면의 문화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갖가지 작업에 뛰어들었다.

“문의면에서는 마을 소식지인 계간 ‘문의엔’이 발간된다. 마을 어르신들이 주도하는 잡지인데, 어느 날 동참 요청을 받았다. 서점을 차려놓고 장사보다는 지역의 공적인 일에 관심 갖고 움직이는 나를 좋게 보시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편집진에 들어갔다. 소중한 기회였다.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마을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채집해 서사로 구성하면서 문의를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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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무 막 달리는 거 아닌가?

마을 소식지 발간 작업에 동참하면서 문의면의 제반 물정을 파악한 이소연은 향후 자신이 할 일을 한결 구체화할 수 있었다. 문의면엔 자연자산은 물론 문화자산도 풍부하다. 문화예술인들이 곳곳에 박혀 산다. 공공 영역에서 움직이는 문화 일꾼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비옥한 문화적 토양에 한 줌 거름을 보탠다는 생각이었을까? 이소연은 차분하게 상황을 바라보며, 서서히 열정의 온도를 높여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일의 목록을 볼까? 그는 문의 5일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내안에Book 장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역 명소와 예술인들을 탐방하는 ‘로컬투어’도 운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 지역의 공적인 공간 두 곳에 미니문고를 설치했다. 문의향교에서 ‘문의향교 동요음악회’와 ‘어린이 마당극’ 등을 공연했다. 지역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다. 그는 현재 문의면주민자치위원회 문화분과장 직함을 갖고 있다. 올가을에 개최되는 대형 축제 ‘대청골두루봉물빛축제’의 실무를 맡기도 했다. 1주일에 한 번씩 청주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양서를 소개한다. 햐! 일이 많다. 게다가 그에겐 건사해야 할 가족이 있다. 대충 부지런히 움직여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람들은 흔히 바쁘게 사는 게 좋은 삶이라고 본다.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양 몰두한다. 당신은 진짜 자신의 일을 하나?

“가치관에 걸맞은 일을 만들어 하고 있다. 힘들거나 후회되는 기분에 사로잡힌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원하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일로 시간을 채우다 보면 오히려 새로운 생각이 더 잘 떠오르기도 하더라. 가끔은 내가 지금 그냥 막 달린다는 생각을 한다. 이럴 땐 나를 비워 절제한다. 이건 아마도 독서를 통해 얻은 힘인 것 같다. 생활을 가급적 단순한 쪽으로 가져가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단순한 생활이 가능할까? 알고 보면 다들 복잡하게 사는데.

“남들의 눈과 기준에 맞추기 위한 치장과 과시가 없는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남을 너무 신경 쓰거나, 남에게 너무 기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고 본다. 나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나만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게 좋은 삶이지 싶다.”


본인의 일과 공공의 일을 연결, 자연스럽게 활동 범주를 넓혀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와 관련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대전에 살 때 관여한 문화사업 경험이 바탕이 됐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신임이라는 토대가 있어 가능했다. 좋은 인적 관계를 통한 협업으로 일을 도모해온 셈이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더라. 이름이야 어떠하든 가지고 있는 작은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하고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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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달리 보수적 풍토가 강한 시골에선 외지인이 발붙이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에 따른 애로를 겪진 않았나?

“내가 마을 일에 나서는 게 개인적 이익만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이들이 많아 특별한 고충을 겪진 않았다. 그러나 다들 좋게 보는 건 아니다. 일에 열중하다가 때로 주춤하는 순간이 있으니까.”


그럴 때는 어떤 방법으로 상황을 해소하나?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요약한 네 글자가 있다. ‘그러려니!’가 바로 그것이다.(웃음)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며 넘겨버린다.”


도시나 시골이나 매력과 환멸이 공존한다. 도시와 구분되는 시골 특유의 풍토 중 하나만 꼽는다면?

“도시엔 ‘가공’이 난무하는 반면, 시골엔 ‘진짜’가 더 많은 것 같다. 예컨대 농사만 해도 그렇다. 이건 ‘진짜’다. 속임수를 동원해 농작물을 키워낼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하다못해 텃밭에 상추를 기르더라도 그렇다. 이런 점에서 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존중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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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서 배운 가치 중시해

이소연의 살림집은 서점에서 6km 떨어진 농촌 지역에 있다. 처음엔 농가를 빌려 살았으나 비워달라는 주인의 요청을 받고 인근의 주택을 사들여 이사했다. 지은 지 20년 된 집이지만 네 식구가 사는 데엔 불편이 없단다. 남편은 도시에 있는 회사로 출퇴근을 한다. 아이 둘은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시골 생활을 원하지만 아이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는 도시보다 시골이 훨씬 좋다고 본다. 사실 난 아이들을 위해 귀촌했다. 공부로 경쟁하는 도시의 학교를 다닐 경우 아이들은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환경에 몰아넣기는 싫었다. 남편 역시 나와 생각이 같아 도시 탈출에 이견이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불안감 없이 시골 환경을 즐기며 잘 지내나?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터득하며 성장하는 모습에 안도한다. 억압이 적은 시골 공기가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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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5년 차다. 일을 통해 거두는 수입은 안정적인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다. 다행히 남편에게 고정적인 수입원이 있어 도움을 받는다. 왜 만날 돈 안 되는 일만 하냐, 그는 그렇게 따지는 척하지만 실은 나를 전적으로 응원한다. 남편의 은퇴 뒤 노년에는 내가 먹여살릴 참이다.(웃음)”


시골 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만족스러운 걸 꼽는다면?

“나 자신의 변화다. 도시에서는 나 잘난 맛에 치우쳐 살았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남들을 가르치려 했다. 그게 한심한 짓이었다는 걸 시골에 와서 깨닫고 되게 부끄러웠다. 지금은 많이 바뀐 걸 느낀다. 내면적인 경향이 생겼다. 지식보다 구체적인 경험에서 배운 가치들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호주 원주민의 삶을 담은 ‘무탄트 메시지’다. 이 책에서 원주민이 말한다. ‘문명인들은 왜 생일을 축하하는가? 나는 내가 더 성장했다고 판단했을 때 축하한다.’ 이 구절을 머리에 담은 이후 한 해의 끝마다 삶을 돌아본다. 잘 살아낸 한 해라고 판단할 경우 가족과 축하파티를 한다. 올해엔 거한 파티를 했으면 좋겠다.”


한 해를 통째 긍정하는 파티라면 파티의 왕중왕? 삶을 기획하는 눈썰미의 일단이 비치는 발상이다. 귀촌의 날들을 일과 삶의 확장에 쓰며 즐기는 이의 모습이 싱그럽다.


이소연이 주는 귀촌 Tip

•원주민과 귀촌인 사이의 소소한 갈등은 대체로 귀촌인의 무신경한 처신에서 빚어진다. 시골이 지닌 좋은 조건을 누리기 위해 귀촌을 했다면, 우선 원주민의 입장을 고려하는 게 좋다. 가령 귀촌인이 기르던 허브식물을 옆집 원주민이 말도 없이 베어버리는 경우, 잡초에 질색하는 습성이 있는 농부가 허브를 잡초로 오인해 발생한 일이라는 걸 이해하면 그만이다.

•업무를 매개로 한 교류보다 봉사단체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 마을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 경우엔 자율방범대 활동도 했다.

•원주민과의 최소한의 접촉조차 싫거나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없는 깊은 곳에 사는 게 상책이다. 공연히 마을 복판으로 들어갈 일이 아니다.

•시골에서 서점을 하고 싶다면 공공에 도움이 될 역할에 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취향을 근거로 뛰어드는 식의 단순 접근으로는 자리 잡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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