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먼저 봄 맞이 분주
모진 추위 견디고 생기 충만
여유를 갖고 주변 둘러보면
살아 숨 쉬는 봄 느낄 수 있어
냇가의 버들강아지가 눈을 떴다. 아직은 추운 듯 하얀 솜털을 곧추세웠으면서도 여린 연둣빛이 안에서부터 배어 나왔다. 까만 밤에 어둠을 밀어내는 가로등처럼, 버드나무는 누구보다도 서둘러 겨울을 등지고 봄을 밝힌다. 부지런한 버드나무가 눈을 떴으니, 바야흐로 봄이 왔나 보다.
이른 아침 출근해 늦은 밤 퇴근하고, 실내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이 봄을 제대로 느낄 겨를은 없다. 따뜻한 볕을 쬐며 봄이 왔나 싶을 때 즘엔 이미 여름이 시작된다.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리는 사이 봄기운은 얄밉게도 싹 달아나 버린다.
하지만 나무는 사람보다 언제나 한 발 빠르다. 입을 열지 않고도 몸으로 더 분명하고 확실한 말을 건넨다. 눈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봄이 왔노라고 가만히 속삭인다. 머플러를 두른 채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다가 이제서야 ‘그렇구나, 봄이 왔구나’ 하게 됐다. 삼월은 춘(春) 삼월이 정말로 맞다. 나무들이 저마다 ‘봄, 봄, 봄’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봄은 사람에게도 기지개를 켜게 한다.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달콤한 꿈도 꾸게 한다. 올 봄, 이름모를 나무 한 그루에 꿈을 심어 볼까하는 작은 설레임도 그래서 움튼다.
아직 여민 옷깃을 펴기가 망설여지는 날씨지만 나무 한 그루 심어보자는 다짐을 하며 오산 물향기수목원을 찾았다. 엇그제 봄비로 인적은 드물었고 나무들은 아직 헐벗어 있었다. ‘아직 추우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살며시 가지를 들여다 보았다. 잔이슬이 맺혔나 싶었은데 이미 눈이 돋아있었다. 겨울잠을 자며 추위를 견뎌낸 눈들이 봄이 되자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는 거다. 나무가 가득한 수목원에는 봄이 진작에 시작됐다.
12년째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의식 한국숲해설가협회 고문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봄을 맞이하려는 생명이 뻗고 있다”고 시를 읊듯 자연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김 고문의 말처럼 이미 발밑에는 새별꽃이 하트 모양의 꽃잎을 펼치고 머리 위로는 날개를 단 단풍나무 씨앗이 빙그르르 돌며 떨어졌다. 털이 북슬북슬 달린 마른 무궁화 꽃잎은 이리저리 흩날리며 새 생명을 틔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끼가 낀나무 아래로는 민들레가 카펫처럼 깔렸다.
나무에 잎이 생겨 그늘지기 전에 햇볕을 받고 영양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부지런히 피어나는 거다. ‘드르르르륵’ 부리로 쪼아대며 나무에 집을 짓는 딱따구리와 ‘꿩꿩’울어대며 먹이를 찾는 꿩도 봄맞이가 한창이다.
김 고문은 “우리나라는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바로 자연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 산이 있고 빼곡한 나무 속에서 누구든 쉽게 자연을 접할 수 있었지만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어려워졌다. 몸 안에는 나무가 있는데 접할 수가 없으니 힘들어지는 것”이라며 “봄에 만나는 나무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나무를 살펴보면 살아숨 쉬는 봄을 느낄 수 있다. 이 봄에 나무 한 그루 심으며 ‘마음의 봄’을 맞이하자”고 제안했다.
마침 경기도내 곳곳에서도 일찌감치 나무시장이 문을 열고 봄 손님맞이가 한창이다.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나무시장은 이달부터 수백여종의 묘목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 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이번 주말에는 나만의 나무 한그루를 심으며 백일을 훌쩍 넘겨 어느덧 퇴색해 가는 올해의 꿈과 희망을 다시 한번 붙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경기일보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