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도 정년도 없다… “직원은 가족” 요코비키 셔터

기사입력 2025-04-24 08:47 기사수정 2025-04-24 08:47

[해피 시니어 라이프] 시니어 고용으로 인력난 돌파한 日 기업

일본 정부와 기업은 시니어 고용 확대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쿄의 한 중소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나이·국적·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이 정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면서, 직원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요코비키 셔터(引シャッター). 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일터의 모습을 직접 들여다봤다.


▲설계부 가나이 신지, 82세.(신미화 교수)
▲설계부 가나이 신지, 82세.(신미화 교수)


일본 사회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 퍼솔 종합연구소(パーソル総合研究所)에 따르면 2025년에는 약 505만 명, 2030년에는 약 644만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의 고용 확대가 해결책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5년 4월부터 기업에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의무화했으며,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노력 의무’를 부여했다. 그 결과 2024년 12월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정년제를 폐지한 기업 수는 전체의 3.9%에 해당하는 9247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요코비키 셔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일반 기업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인사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실제로 요코비키 셔터의 채용 공고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연령·국적 불문, 65세 이후에도 급여 삭감 없음, 전원 정규직 채용.’


▲요코비키 셔터의 독특한 셔터 예시.(요코비키 셔터)
▲요코비키 셔터의 독특한 셔터 예시.(요코비키 셔터)


직원 29명이 만드는 특별한 셔터

도쿄 아다치구에 있는 요코비키 셔터는 특수 셔터 전문 업체다. 일반적으로 셔터는 위에서 아래로 닫히는 방식이지만, 이곳에서는 옆으로 부드럽게 열리고 닫히는 독특한 셔터를 제작한다. 이 혁신적인 제품은 창업자 이치카와 후미타네(市川文胤) 씨가 개발해 특허를 받은 것이다. 그는 1986년에 회사를 법인화했다. 현재는 그의 아들 이치카와 신지로(市川慎次郎) 씨가 2대째 사장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직원 수는 29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지만, 요코비키 셔터는 TV·라디오·잡지·웹 기사 등 300건 넘는 취재 요청을 받을 만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 이치카와 사장은 고용 정책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회사의 최고령 신입 사원은 히라히사 마모루(平久守) 씨였습니다. 78세에 입사해 94세까지 현역으로 일했죠.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근무하셨습니다. 연령뿐 아니라 국적과 인종이 다양한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장애를 가진 직원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고용 정책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신념입니다.”

이치카와 사장은 이러한 경영 방침이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비로소 진정한 장사가 된다’는 창업자의 경영 철학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이윤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출발점부터 다른 사고방식이다.


모든 직원은 가족

“회사는 직원이 만들어낸 성과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나이·성별·국적·장애 유무가 차별의 기준이 되어야 할까요?” 이치카와 사장의 말처럼, 이 회사에서는 외국인 직원도 일본인과 동일한 급여를 받는다. 단,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일본어 학습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으며, 현재 중국 출신 7명, 방글라데시 출신 1명, 베트남 출신 2명 등 총 10명의 외국인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치카와 사장은 면접에서 종종 60대 이상 지원자들이 “가르쳐주시면 뭐든지 처음부터 배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나는 별다른 능력이 없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30~40년을 일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당한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할 수도 있겠죠. 대신 지식과 경험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시니어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코비키 셔터의 채용 기준은 무엇일까? “직원은 가족입니다.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입사 면접에서 신입 사원이 기존 직원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사장의 중요한 역할이죠.”

일본은 1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데이코쿠 데이터뱅크(帝国データバンク)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창업 이래 100년 이상 된 기업은 4만 5284개에 달한다. 이들이 오랜 세월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경영자가 직원뿐 아니라 고객, 거래처,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화합(和)’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요코비키 셔터 역시 함께 성장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년 없는 이유

현재 요코비키 셔터에서는 65세 이상 직원 10명이 활기차게 근무하고 있다. 이치카와 사장은 연령을 기준으로 한 차별이 오히려 기업에 손실을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회사의 꼼수라고 생각합니다. 59세에서 60세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60세라는 이유만으로 정년퇴직을 하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는 특히 숙련된 장인(職人)들이 보유한 기술과 경험이야말로 기업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숙련된 장인들은 자신이 습득한 기술을 쉽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년이 없으면 평생 일할 수 있어 회사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자연스럽게 후계자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세대 간 기술 전수가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기술과 지식을 젊은 세대에 전수하는 것은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 됩니다. 그리고 젊은 직원들은 선배들에게 배울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들을 존중하는 인성을 자연스럽게 함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정년제와 급여 삭감을 통해 인건비 절감을 우선시하지만, 요코비키 셔터는 나이가 들어도 지속적인 승급과 공정한 급여 지급을 유지하며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요코비키 셔터의 방식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다. 회사가 직원의 노고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보상할 때,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회사에 헌신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진짜 원동력이다.


▲시니어와 젊은 직원이 함께 일하는 모습.(요코비키 셔터)
▲시니어와 젊은 직원이 함께 일하는 모습.(요코비키 셔터)


신구의 화합

가나이 신지(金井伸治, 82) 씨는 요코비키 셔터에 76세 나이에 입사했다. 그는 44년간 대기업 전력회사 계열사에서 근무한 후 2017년 퇴직했다. 퇴직 후 한동안 쉬다가 부인의 암 투병을 계기로 다시 일하기로 결심했지만, 나이 제한에 가로막혀 번번이 취업이 좌절됐다. 그때 우연히 TV에서 90세 넘은 히라히사 씨가 현역으로 근무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요코비키 셔터에 입사 지원했다. 면접을 본 그는 뛰어난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인품을 인정받아 그 자리에서 채용이 결정됐다.

가나이 씨는 현재 설계부에서 주 4일(수요일 제외),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그는 82세에도 여전히 일할 수 있는 회사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설계 분야의 소프트 기술은 매년 변화합니다. 따라서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오히려 저에게 자극이 되고 재미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30대 영업사원 시미즈(清水) 씨에게 시니어와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보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혀 없습니다. 시니어와 함께 영업을 나갈 때도 있는데, 오히려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이 워낙 많으니까요. 무엇보다 사장님께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시니어분들을 신중히 채용하시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도 함께 일하기 편합니다.”

홍보를 맡고 있는 워킹맘 히라이(平井) 씨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저는 특별히 나이가 많은 직원과 일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냥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일 뿐이죠. 특히 우리 회사 어르신들은 사고방식이 젊고, 늘 배울 점이 많습니다. 업무와 관련해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시고, 잡담도 나누며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취재를 마친 후, ‘직원은 가족이다’라는 회사의 경영 이념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가족이라면 함께 일하던 사람이 나이 들었다고 쉽게 내칠 수 없는 법이다. 평생 현역으로 일하고 싶은 시니어가 정년 걱정 없이 일할 곳을 찾고 있다면, 이곳이야말로 유토피아일 것이다.


▲1 공장 직원 단체 사진. 사장(가운데)의 오른쪽이 94세까지 일한 히라히사 씨의 생전 모습. 2 디저트 카페에 설치한 요코비키 셔터. 3 개인 주택의 셔터 제작 사례(요코비키 셔터)
▲1 공장 직원 단체 사진. 사장(가운데)의 오른쪽이 94세까지 일한 히라히사 씨의 생전 모습. 2 디저트 카페에 설치한 요코비키 셔터. 3 개인 주택의 셔터 제작 사례(요코비키 셔터)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한국의 노동 시장 패러다임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일본의 요코비키 셔터 사례는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 연령이 아닌 ‘능력 중심’의 고용 문화 정착 : 시니어 근로자들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연령이 아닌 업무 수행 능력과 가치 창출을 기준으로 인력을 평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2. 시니어 근로자를 위한 근무 환경 개선 :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필수다. 자동화 기술 도입, 신체적 부담을 줄이는 작업 환경 조성 등을 통해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정부와 기업의 협력 강화 :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시니어 고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이미 시니어 고용 지원책(보조금 지급, 재취업 지원, 상담 창구 운영 등)을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다.

한국 역시 시니어 인력 활용 방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시점이다. 기업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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