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자주 듣는 핀잔이 있다. “내 말 듣고 있어? 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 나는 대답을 못 한다.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나는 카페에서든 술집에서든 옆자리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말이 더 재밌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방송 인터뷰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남들 사는 모습이 궁금하다. 그들을 알아가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외 패키지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경관이나 유물, 유적에 별 관심이 없다. 함께 간 사람들에게 관심이 더 많다. ‘이 사람은 뭐하는 분인지’, ‘저 사람은 어떤 계기로 여행을 오게 됐는지’, ‘함께 온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하다.
아내는 정반대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나는 같이 여행한 사람들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밥 먹을 때 대화하는 걸 듣기도 하고, 궁금한 건 묻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게 여행의 재미는 모르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아내는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아는 게 많은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남의 말을 듣는 게 즐겁다. 하지만 남의 말을 하는 건 되도록 삼간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누가 어떻더라’,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 ‘내가 누구와 친하다’ 등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 누군가를 말하는 걸 꺼린다.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십중팔구 남을 헐뜯는 말, 남 탓하는 말, 이간질하는 말,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는 말을 일삼는다.
듣기로 얻는 일곱 가지
나는 잘 듣는 것만으로도 얻는 게 많다. 첫째, 말을 잘 들어주면 말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하지 않는가. 말에는 귀를 열지만 들어주면 마음을 연다고 했다. 누구나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둘째, 잘 들으면 많이 배운다. 배우고 익히는 방법은 일곱 가지가 있다.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말하고, 쓰면서 익힌다. 이 가운데 가장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게 듣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듣는 걸 가장 먼저 하고, 죽는 순간까지 듣는다. 잘 들으면 한 사람이 평생 공부하고 익힌 내용을 짧은 시간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들인 시간 대비 효과가 가장 좋은 학습 방법이다.
셋째, 상대를 알 수 있다. 말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만족시킬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들어야 알 수 있고, 알아야 맞춰줄 수 있다. 나는 직장 생활 내내 상사의 말을 잘 듣는 것으로 버텼다.
넷째, 많이 들으면 아는 게 많아진다. 우리는 학교 다닐 적에 선생님 말씀을 듣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서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아는 체할 수 있도록 자락을 깔아준다. 내가 깔아준 판 위에서 마음껏 아는 체하며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도록 유도한다. 그는 아는 걸 과시할 기회를 가져서 좋고, 나는 모르던 걸 알아서 좋다.
다섯째, 잘 들으면 잘 쓸 수 있다. 나는 들은 걸 글로 쓴다. 누구나 들은 만큼 쓸 수 있다. 대통령과 회장의 연설문을 쓸 때 세 사람에게 들은 것으로 쓸 수 있었다. 먼저 대통령과 회장에게 듣고, 전문가를 찾아가 듣고,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회장의 말을 들을 사람에게 들었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지, 무엇이 궁금한지 들으면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섯째, 들으면서 통찰을 얻는다. 불현듯 들은 한마디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결정적 한마디가 인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어떤 말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면교사 역할도 한다.
일곱째, 잘 들으면 잘 말할 수 있다. 나는 두 번 말을 배웠다. 태어나서는 엄마에게 말을 배웠고, 쉰 살 넘어서는 롤 모델들에게 배웠다. 서너 명의 벤치마킹 대상을 정해두고, 유튜브나 방송을 통해 그들의 말을 반복해 들었다. 프로들의 말을 본받고 흉내 내는 것으로 말을 연습했다.

듣기의 5단계
잘 듣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들을 때 다섯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이해하면서 듣는 것이다. 나는 말귀가 밝은 편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를 잘 챈다.
두 번째 단계는 요약하며 듣는다. 모든 말을 다 들어선 아무 말도 못 듣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려서 들어야 한다. 불필요한 말, 본심이 아닌 말, 주제에서 벗어난 말, 중복되는 말은 버리면서 듣는다. 동시에 중요한 말, 핵심적인 말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면서 듣는다.
세 번째 단계는 말하지 않는 내용을 채우면서 듣는다. 말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게 된 배경이나 의도, 목적 등은 말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유추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분석하고 평가하며 듣는다. 내 생각과 비슷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 배워야 할 점과 문제가 되는 내용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지 요모조모 따져가며 듣는다.
마지막 단계는 공감이다. 나는 어떻게든 들은 내용을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와 사정이 있을 테니, 그런 그의 처지와 심정, 의견과 주장에 대해 나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만이 아니라 눈빛과 표정으로 표시해준다. 입으로도 공감의 추임새를 넣는다.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런 연습을 2년 반 넘게 했다. 진행자로서 내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의 말을 잘 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지켰다.
첫째, 잘 묻는다. 잘 듣기 위해서는 잘 물어야 한다. 질문을 잘해야 상대가 말할 기회를 갖는다. 질문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상대의 말을 듣고 싶다는 것, 배우고 싶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질문을 잘해야 출연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할 수 있고, 나는 그걸 청취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질문을 잘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게 공부다. 만나는 사람에 관해 충분히 공부해야 한다.
둘째, 출연자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후회 없이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잘못 말한 부분이 있다면 즉각 개입해서 해명할 기회를 주고, 어렵고 모호하게 말한 부분은 재차 질문해서 쉽고 명료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말을 너무 길게 하면 적당한 곳에서 잘라준다.
셋째, 세 가지를 내려놓고 듣는다. 그 하나는 속단이다. 내 판단이 그의 말에 앞서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듣는 사람이 예단하면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평소 그에 관해 갖고 있던 색안경을 벗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 또 하나는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이다. 고착된 생각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으면 남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것으로 상대 말을 재단하고 검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상대 말이 맞을 수 있다는 가정과 전제 아래 들어야 한다.
끝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입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 편 네 편을 가려서 듣지 않아야 한다. 나의 입장에만 갇혀 있으면 객관적으로 들을 수 없고 모든 말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되며, 견강부회하게 된다.
듣는 태도도 중요하다. 딴생각하거나 딴짓하며 듣지 말아야 한다. 설사 말을 잘 듣고 있어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등 자세가 불손하면 말하는 사람은 맥이 빠진다. ‘당신 말이 재밌고, 더 많이 듣고 싶다’는 자세로 상대 말에 집중해야 한다. 강의를 해보면 수백 명이 모여 있어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 자리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온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들어도,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살핀다.
나는 귀가 얇다는 지적도 많이 받는다. 나이를 먹어가며 입은 닫고 귀는 열어놓되, 세상 말에 휘둘리지 않고 가려서 들으려고 한다. 특히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진위 여부를 파악하면서 듣고자 노력한다. 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지혜와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분별력으로 가려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듣지 못하는 두 가지 말이 있다. 하나는 쓴소리다. 듣기는 싫지만 들으면 좋은 고언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불평하는 소리다. 참고 들어줘서 불만을 해소해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다. 나이 이순(耳順)이 지났으니 가능할 법도 한데 말이다.
듣기가 어려운 이유공자는 ‘말을 배우는 데는 2년, 경청하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만큼 듣기가 어렵다. 이유는 여섯 가지다.
첫째, 말하지 않고 듣고만 있으면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둘째, 시간이 없다. 직장 다닐 때 상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었다. ‘그 얘기 꼭 지금 해야 돼? 다음에 하면 안 돼?’,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결론만 말해.’
셋째, 말을 듣다 보면 할 말이 생각난다. 그걸 잊어버리기 전에 상대의 말을 끊거나 대화에 끼어들어 말하고 싶다.
넷째, 상대의 말에 흥미를 잃어버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우리의 뇌는 듣는 속도보다 빠르게 상대가 할 말을 유추한다. 그래서 상대 말의 결론이나 결말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알아, 알아!’ 하면서 듣기 싫어진다.
다섯째, 자신의 생각과 다른 얘기를 하거나 자신을 폄훼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듣는 걸 멈추고 상대 말을 반박하고 싶어진다. 너그럽게 계속 듣고 있으려면 많은 인내와 관용이 필요하다.
여섯째, 우리의 말 문화는 경쟁적이다. 말로 승부를 겨루려고 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말하는 게 이기는 거고, 듣고만 있으면 지는 거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그래서 듣고만 있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