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마음을 다스리는 법… 글은 어떻게 삶을 치유하는가?

기사입력 2024-12-26 08:38 기사수정 2024-12-26 08:38

[강원국의 글발 만들기] 부정적 감정 바로 해소하는 효과 있어

나는 무엇을 하며 사는가. 읽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면서 산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감정을 느끼고 그들과 관계하며 산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글쓰기가 있다. 글쓰기가 내 삶을 이끌어간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메모는 나의 일상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메모한다. 일 처리, 시간 활용, 인맥 관리가 메모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메모는 나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메모하기 위해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사람들을 만난다. 읽고 들으면서 메모할 거리를 얻는다. 메모해두면 말하고 쓰는 게 두렵지 않다.


메모의 의미

메모의 가장 큰 효용은 글을 쓰게 한다는 점이다. 독서와 학습을 열심히 해도 메모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메모하지 않은 것은 모두 잊힌다. 메모하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또한 메모한다는 것은 언젠가 써먹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실제 글쓰기에 써먹어야 한다. 그래야 메모한 이유를 뇌가 분명히 알게 되고 기억하려고 한다. 생각을 받아 써주는 메모는 뇌를 격려해주는 것이다.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일이다. 뇌가 무언가를 생각해냈는데 그냥 흘려보내면 다음부터는 뇌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봤자 주인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난 것을 열심히 메모하면 뇌가 신이 나서 생각을 자꾸 길어 올린다.

글쓰기가 어려운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쓸 말이 없어서다. 글을 쓰려면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글 쓰는 시간에 생각하려고 하면 이미 늦다. 없는 것을 만들어 쓸 수는 없다. 이전에 해놓은 생각을 써먹는 게 글쓰기다. 글을 잘 쓰려면 쓸 말을 평소에 만들어두어야 한다. 평소에 써두는 글이 메모다.

메모는 생각의 조각을 키워드 중심으로 써놓은 것이다. 나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메모해둔 것을 본다. 과거의 생각을 낯설게 봄으로써 객관적으로 재평가해볼 수 있고, 당시 설익은 생각을 숙성시켜 표현하게 된다. 당시의 느낌까지 기록해뒀다가 글 쓸 때 녹여내면 생생함이 살아난다. 메모하면 이래저래 글솜씨가 좋아지는 건 틀림없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500권의 책을 썼다. 다산은 책을 읽다가는 물론이고 길을 걷다가도, 심지어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끊임없이 메모했다. 이런 메모를 ‘질서’라고 했다. 그의 메모 방법은 유명하다. 첫째, ​책은 눈으로 읽지 말고 손으로 메모하며 읽어라. 둘째, 깨달음이 있으면 즉시 메모하라. 셋째, 기억을 믿지 말고 습관처럼 메모하라. 넷째, 관심 있는 사물이나 일에 대해 관찰해 메모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라. 다섯째, 메모 중 쭉정이는 솎아내고 알맹이를 추려 계통별로 분류하라. 그것을 자신의 지식체계와 연관시키고 현실에 적용하라.

나는 오늘도 메모할 거리를 찾기 위해 남의 말과 글을 구석구석 기웃거리며 동분서주한다. 책과 칼럼을 읽고 강의를 듣는다. 그러다 메모 거리를 발견하면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대어를 낚아 올리는 낚시꾼같이 흥분한다. 메모는 안온하고 충만한 시간을 내게 선사한다.


치유의 글쓰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정이 있게 마련이고, 감정이 앞서는 게 사람이다. 감정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일상이 달라지고 삶의 행복과 품격이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늘 감정을 숨기고 억압하며 산다. 진짜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꾸며내고, 싫은 사람 앞에서도 미소를 짓는다.

문제는 감정이 쌓이면 병이 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풀지 못한 감정은 남에게 옮아간다. 사회생활에서 쌓인 감정을 애먼 가족에게 풀기도 한다. 부인과 싸우고 출근한 상사가 만만한 부하 직원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직장에서 쌓인 감정을 집에 와서 가족에게 풀기도 한다. 당하는 사람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는 격이다.

부정적 감정은 그때그때 정리하고 풀어야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다. 글로 쓰면 된다. 감정을 글로 토해내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첫째, 감정이 일어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본다. 둘째, 느낀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서술한다. 셋째, 감정 동요의 원인을 파악해본다. 넷째, 감정의 원인 제공자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다섯째, 이를 객관적인 제3자 관점으로 평가한다. 여섯째,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본다.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매사에 감사하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고 힘든 일, 후회하고 걱정되는 일. 다른 한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일을 적었다. 그렇게 쓰고 나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글을 쓰면 감정이 풀리는 이유는 배설 효과 때문이다. 뇌도 부정적 감정에 시달리는 걸 싫어한다. 빌미만 주면 언제든 벗어날 준비가 돼 있다. 글쓰기가 그 빌미가 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뇌가 나에게 하는 하소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런 문제로 힘드니 제발 알아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뇌의 애원이 내가 느끼는 감정인 셈이다. 이걸 글로 쓰면 뇌의 탄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되고, 뇌 역시 ‘이제 내 감정을 알았으니 됐다’라며 응어리를 푼다. 친구랑 수다 떨고 나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정을 쓰고 나면 그 감정이 남의 일같이 느껴진다. 당사자 입장에서 벗어나 남의 일 구경하듯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네 가지 일을 당한다. 첫째, 갖고 싶고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함. 둘째, 갖고 싶고 되고 싶은 걸 이룸. 셋째,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당함. 넷째, 피하고 싶은 걸 피함. 첫째와 셋째의 경우 우리는 불행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둘째와 넷째의 경우에는 행복감을 느껴야 맞는데, 네 번째 경우엔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거나 암에 걸리지 않았을 때, 그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도 감사하지도 않는다. 그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글쓰기는 이 경우를 일깨워준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관계 글쓰기

글은 관계를 만들고 관계를 돈독히 한다. 글은 말에 비해 오해를 살 여지가 적고, 잡음이 날 확률도 낮다. 그만큼 글은 안전하고, 진심을 전하기에 적합한 소통 수단이다. 특히 나같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는 글을 통한 관계의 형성과 유지가 절실하다. 나는 요즘 두 가지 글쓰기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나간다. 하나는 메신저에서 나누는 인사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SNS를 활용해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꾸준하게 글을 올려야 한다. 10여 년 전 지금과 같은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글 쓰는 걸 시간 배정의 우선순위에 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올렸다. 소재의 일관성도 필요하다. 자기만의 주제로 지속적으로 써야 한다. 나는 ‘글쓰기’와 ‘말하기’란 테마를 파고들었다. 이렇게 특정 주제나 분야를 파면 팔수록 그 분야를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잘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 자산이 된다. 그 분야 전문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성취감도 크다. 무엇보다 사람을 얻게 된다. 온라인에서 친구와 이웃이 생긴다. 이 관계는 오프라인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그들은 언젠가 나의 우군 또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독자에게 주는 효용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온라인에 글을 쓰는 동기는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아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리고 우리가 같은 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세 가지 중 하나가 충족됐을 때 만족한다. 만약 어떤 글을 읽었는데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없거나, 받은 느낌이 없거나, 동질감 같은 걸 느끼지 못하면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온라인 글이다.

나는 간단한 인사 글을 쓸 때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 인사는 크게 여섯 종류가 있다. 안부 인사, 축하 인사, 위로 인사, 격려 인사, 당부 인사, 감사 인사가 그것이다.

첫째, 안부 인사를 자주 해야 한다. 때에 맞춰 누구에게나 하는 인사는 효과가 없다. 평소에 해야 한다. 또 누구에게나 하는 인사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만 하는 인사여야 한다.

둘째, 축하 인사를 해야 할 일도 많다. 축하 인사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 잘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축하해야 할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를 표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른살 생일을 맞은 사람이 있으면, 나이 서른이 갖는 의미를 말해주고 앞으로 있을 그의 미래에 관해 기대를 표명한다.

셋째, 위로의 인사도 필요하다. 위로의 말에도 조심해야 할 게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위로를 가장한 충고다. 동정에서 비롯한 위로도 좋지 않다.

넷째, 격려 인사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격려, 믿어주고 한편이 되어주는 격려, 자신감을 키워주고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격려, 주위를 살펴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향한 격려. 이런 격려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당부 인사도 빼놓을 수 없다. 당부를 잘하려면 먼저 칭찬해야 한다.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런 후 아직 부족한 점을 얘기한다. 이런 미진한 점과 함께 향후 목표도 제시한다.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어디이며, 그 길을 가야 하는 이유와 잘 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말해준다. 그런 후 당부대로 했을 때 뭔가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그 길을 온전히 갔을 때 누리게 될 청사진을 보여준다.

여섯째, 감사 인사다. 인사치레의 감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감사 인사는 일석삼조 효과가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며, 감사의 말을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좋아진다. 인사는 사람을 사람답게 해준다. 들인 수고에 비해 효과가 크다. 인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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