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닐 적에는 말하는 게 가장 두려웠다. 늘 말을 피해 다녔다. 그래서 말이 필요 없는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쓰는 일은 듣는 귀만 있으면 됐다. 직장을 나와서는 말을 해야 했다. 전에는 말만 잘 들으면 월급도 받고 승진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말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을 다시 배웠다. 엄마에게 말을 배운 이래 두 번째 말 연습을 했다.

그 방법은 이렇다. 첫째, 혼잣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중얼거리며 혼자 노는 걸 즐겼다. 혼잣말의 역사가 길다. 나의 혼잣말은 생각, 감정, 양심 세 갈래다. 먼저 내 생각을 묻고 답한다. ‘너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누군가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 거야?’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혼자 걸으면서, 화장실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며, 잠들기 전에 묻고 답한다. 말은 때로 순발력을 요구한다. 나는 임기응변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혼잣말을 자주 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판단해 말하는 능력이 좋아졌다.
또 하나는 내 감정을 묻는 것이다. ‘지금 기분이 어때?’, ‘이렇게 우울한 이유가 뭐야?’, ‘너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이렇듯 내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감정을 들어준다. 그렇게 의식의 수면 위로 감정을 길어 올리면 내 감정이 이해되고 정화된다.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나 어려움과 억울함을 하소연한 것처럼 속이 후련하다. 이런 혼잣말은 감정적이고 거친 언사를 자제하는 힘을 키워주기도 한다.
때로는 양심도 묻는다. ‘너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해도 돼?’라고 묻고, 고백하고 회개하고 용서한다. 내가 그나마 크게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건 이런 혼잣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를 만드는 과정
둘째, 공부와 메모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할 말을 장만해둬야 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도 좋은 재료 없이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할 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읽고 말을 들어야 한다. 또한 많이 보고 겪어야 한다.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서부터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공부한 것을 강연이나 방송을 통해 말하는 게 즐겁다. 배우고 알게 된 걸 남과 공유할 때 공부하는 보람이 있고 재미가 있다.
공부만 해선 안 되고, 공부한 내용을 메모해야 한다. 메모는 공부와 말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다. 나는 글을 읽거나 누군가의 강의를 들으면 반드시 메모할 거리를 찾아 기록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해본다. 나는 메모할 거리를 찾기 위해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메모를 써먹는 재미로 말한다. 메모하지 않을 때는 말하는 게 두렵고 말을 피해 다녔지만, 지금은 말할 기회를 엿보고, 말하는 시간을 기다린다.
셋째, 기억력이다. 나이 먹을수록 기억력이 감퇴하는 걸 실감한다. 말을 해야 하는데 이름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하는 어려움이 더 커질 테니, 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강의할 때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보고 읽지 않고 기억으로 말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 말할 내용을 암송한다. 또 수시로 하는 건 상기(想起), 즉 떠올려보기다. 읽고 듣고 보고 경험한 걸 시시때때로 떠올려본다. 책을 읽다가도 책장을 덮고 읽은 내용을 떠올려보고, 유튜브 강의를 듣다가도 스톱 버튼을 누르고 들은 내용을 상기해본다. 지난 시절을 회고하고, 영화 등에서 봤던 장면을 재생하기도 한다.
넷째, 준비와 연습이다. 내가 모신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아무리 사소한 자리라도 자신이 할 말을 미리 준비했다. 회의하거나 보고받을 때, 누군가를 접견하거나 누군가와 식사할 때,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지, 첫마디는 어떻게 꺼내고, 무엇을 물을지,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마련한 후 사람들과 마주했다.
할 말만 준비한 건 아니다. 할 말을 연습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비서를 앞에 앉혀두고 할 말을 미리 연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머릿속에 말할 내용의 이정표를 그려놓고 차근차근 말해봄으로써 실전에 대비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는 대화 내용을 시뮬레이션해봤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상대가 저렇게 말하면 나는 어떻게 말할 것인지, 예행연습과 모의훈련을 하곤 했다. 말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을 법한 두 분이었지만, 말 앞에서 결코 교만하지 않았다. 백수(百獸)의 왕 호랑이가 작은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늘 신중하고 최선을 다했다.
다섯째, 복기와 복습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면 세 가지를 복기해본다. ‘내가 무슨 말을 했지?’, ‘해선 안 되는 말을 한 것은 없나?’, ‘해야 할 말을 빠트린 것은 없나?’ 그러고 나면 ‘내가 미쳤어. 그 말은 왜 한 거야’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아, 그 말을 깜빡했네. 말했어야 했는데’ 하며 이불킥을 한 적도 많다. 왜 말은 꼭 한 템포씩 늦게 생각나는지. 청와대에서 일할 때도 정작 대통령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져 대답을 못 하고, 내 방으로 돌아갈 때 생각나서 후회하곤 했다.
말의 복습은 노무현 대통령께 배웠다. 그분은 말을 하고 나면 좋은 비유나 사례, 통계를 넣어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하곤 했다. 그리고 그다음 말에는 그런 내용을 추가했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서 익히는 복습을 일상적으로 했던 것이다. 이런 학습 덕분에 그분의 말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어제 말보다는 오늘 말이, 오전 말보다는 오후 말이 더 나았다.

타개할 수 있는 방법
여섯째, 선수 치기다. 나는 항상 말을 피해 다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나면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말에서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부터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하며 말문을 먼저 열었다. 말에서 후수를 둘 때는 늘 떨리고 할 말도 별로 없었다. 앞서 말한 사람이 내가 할 말을 다 해버려서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뒤로 갈수록 더 좋은 말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어 더 긴장되고 부담도 크다. 후수를 둬서 끌려가기보다는 선수로 말을 끌고 가는 게 재미있다.
일곱째, 말동무를 둔다. 말에 익숙해지려면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가까운 곳에 자주 대화할 수 있는 말동무가 필요하다. 나는 아내가 그 역할을 해준다. 나같이 배우자여도 좋고, 친구나 자식, 부모가 말동무가 될 수도 있다. 말동무가 있어야 공부하고 메모한 걸 써먹어 볼 수 있고, 준비와 연습, 복기와 복습도 가능하다.
여덟째, 낭독이다. KBS1 라디오에서 ‘강원국의 말 같은 말’이란 프로그램을 1년 넘게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원고를 쓰고 내레이션까지 하는 프로였다. 원고를 틀리게 읽거나 버벅대면 안 되기 때문에 읽고 또 읽어 외울 정도가 된 상태에서 방송을 했다. 그러면서 내 말이 유창해졌다. 그전에는 말을 웅얼웅얼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또박또박 말하게 됐고, 말의 크기와 속도, 높낮이 등이 안정적으로 만들어졌다. 쉴 때 쉬고 강조할 때 강조하는 기술도 생겼다.
말은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 듣기 편한 어투와 말씨를 가질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 ‘패러랭기지(Paralanguage) 이론’이 있는데, 말의 내용보다 속도나 억양, 높낮이, 운율 등 말투가 더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말을 담는 그릇의 모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좋은 억양과 말투를 가지려면 글을 소리 내 읽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시 낭송을 해보는 것도 좋다.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대본 연습하듯, 아나운서가 스크립트를 반복해서 읽어보듯 말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돌아가며 교과서를 읽게 한 것도 말의 유창성을 키우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아홉째, 역할모델을 만든다. 말처럼 쉽게 전염되고 흉내 내기 좋은 것도 없다. 어렸을 적 우리는 엄마 말을 흉내 내며 말을 배웠고,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끼리 선생님 말투를 흉내 내며 웃기도 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말하고 싶다’ 하는 사람을 찾아보라.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또 들어보라. 그러면 어느새 그 사람같이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도 유시민 작가, 정준희 교수, 유재석 씨 등 말을 닮고 싶은 분이 많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그들의 말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지금은 ‘매불쇼’ 진행하는 최욱 앵커를 본받고 싶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의 말을 듣는다. 언젠가 그처럼 웃기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면서.
끝으로, 글쓰기다. 말만 해서는 말을 잘할 수 없다. 말은 글과 함께 가야 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병행해야 말을 잘할 수 있다. 할 말은 글을 써서 준비하고, 한 말은 글로 정리해둬야 한다. 글을 써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곧장 글을 쓰지 말고 말을 충분히 해본 후 써야 한다. 그래야 말이 글 같아지고, 글이 말처럼 된다.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 좋은 말과 글이다.
누군가의 말을 들었는데 빠진 것도 없고, 뺄 것도 없고, 고칠 것도 없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글을 쓰는 사람이다. 말은 글이 바탕이 되어야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말하기 전에 먼저 글을 써보라. 그것이 말을 잘할 수 있는 필살기다.
앞서 말한 열 가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말솜씨가 몰라보게 나아졌다. 3분 스피치를 하지 못해 승진에서 탈락하고, 발표에 자신 없어 조별 토론을 두려워했던 내가 이제는 방송을 진행하고, 강연으로 돈을 번다. 스스로도 대견하고 기적처럼 느껴진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할 도리와 노력을 다한 후, 남은 것은 기도뿐일 때 기적은 기적처럼 온다’고.
그야말로 말의 시대다. 누구나 말을 해야 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다. 사방에서 말을 요구한다. ‘너도 한마디 해라’, ‘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요구는 더 거세진다. 나이 먹은 사람은 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동안 보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은 다음 세대에 전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나는 오늘도 혼잣말하면서 공부하고 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 준비와 연습, 복기와 복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일로 점철된 하루하루가 보람차고 행복하다.